사월2025-06-26 02:37:17
함께 기억할 또 하나의 삶
바다호랑이(2025)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 2014년 봄, 침몰한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희생자들을 가족 품으로 데려온 민간 잠수사 나경수는 고통스러운 잠수병과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또 해경이 민간 잠수사 대표 류창대를 참사 현장에서 사고로 죽은 동료 잠수사에 대한 과실치사죄로 넘기며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게 된 경수의 마음은 더욱 황폐해져 간다. 하지만 자신들을 이용한 후 폐기한 비정한 국가를 상대로 무죄를 증명하고 짓밟힌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재판! 경수는 기억하기 싫은 과거지만 거대한 배 안의 미로 같은 지옥을 홀로 헤매며 겪었던 고통을 털어놓는데… 고개를 높이 들어라.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
<바다호랑이> 줄거리
2014년 4월 16일. 그리고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노란 리본을 달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혹시 당시 배 안을 오고 가며 시신을 수습하던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나. 현장에서 누구보다 쉼 없이 구조에 힘쓰던 그들을 국가가 어떻게 대했는지 우리는 전부 알고 있나. '바다호랑이'는 참사 수습 당시 현장에서 순직한 동료 잠수사에 대한 책임으로 기소된 류창대의 재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재판을 이어가면서 끊임없이 고통을 되짚으며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민간 잠수사들의 모습은 그날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국가가 세월호와 관련된 인물들에게 얼마나 잔혹했는지가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바다호랑이'는 국가가 덮은 과거를 다시 수면 위로 올리고 아물지 못한 상처를 꺼내드는 동시에 치유와 화합으로 나아간다. 그 삶을 담아낸 카메라는 무거운 사실을 날카롭게 파고들면서도 구조에 힘썼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되어버린 잠수사들을 따스히 비춘다.
영화는 연극적 요소를 차용한 실험적인 형태로 진행된다. 제한된 공간인 무대를 주로 사용하며 배우의 연기, 설명만을 통해 여러 공간을 연출한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실제가 아님에서 오는 여백을 상상으로 채워 넣게 되는데, 이는 세월호 수습 현장, 공격적인 재판 과정 등 자칫 자극적으로 비칠 수 있는 장면들을 시각적으로 배제하면서도 배우의 연기와 관객의 상상이 더해져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몰입감은 우리의 마음속에 왜 아직도 세월호가 남아있는지, 왜 기억하며 애도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참사 이후를 영화를 통해서라도 봐야 하는 이유는 아직도 그날에 남겨져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기억하고 기억하며 연대를 이어나가야 한다. '바다호랑이'는 그런 연대를 영화 속에서 그리고 영화 밖에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영화로 지금, 그날 이후의 우리에게 필요한 작품이다.
*이 글은 씨네랩에서 초청받아 참석한 <바다호랑이>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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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TT행을 택하는 영화들
영화 '사냥의 시간', '콜', '서복' 포스터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 박신혜, 전종서 주연의 <콜>, 차인표 주연의 <차인표>,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 그리고 이용주 감독의 <서복>까지. 이들 영화들의 공통점은 당초 극장 개봉을 염두하고 제작되었으나 결국 OTT 공개 혹은 동시공개를 택했다는 점이다. (<서복>의 경우 당초 2020년 12월 개봉을 염두했으나 무기한 연기되었고, 결국 4월 중 티빙(TVING)과 극장 동시 공개를 택했다.) 앞선 다섯 편의 영화들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거나 공개 예정이며 <서복>처럼 넷플릭스가 아닌 다른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더이상 새삼스럽지는 않게 되기도 했지만 다시 떠오르는 질문. 극장은 앞으로 괜찮을까?
이 글은 본격적인 분석이나 전망을 하려고 쓰는 글은 아니나 그럼에도 통계자료는 살펴야겠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0년 한국 영화 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한국 영화시장 극장 매출액은 전년 대비 73.3% 감소한 5,104억 원에 불과했다. 이는 2000년대 초반 수준. 관객 수 역시 전년 대비 73.7% 감소한 5,952만 명이었다. 국내 극장 연간 관객 수는 2013년 이후 줄곧 2억 명을 넘어선 수치를 기록했었다. 지난 10년간 계속 증가해왔던 극장 수 역시 2020년에는 일부 휴관 및 폐관 등 영향으로 2019년 513개(3,079개 스크린)에서 2020년 474개(3,015개 스크린)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국내 OTT 시장 규모가 2020년 7,801억 원 정도일 것으로 전망했으며 PwC에 따르면 글로벌 OTT 시장 규모는 2020년 584억 5,600만 달러, 한화로 약 66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도 넷플릭스와 왓챠는 물론 네이버 시리즈, 티빙, 시리즈, 시즌 등 여러 플랫폼들이 본격적으로 경쟁을 시작한 만큼 앞으로도 극장 밖 플랫폼을 통한 영화의 최초 공개는 여럿 있을 것 같다. 당장 HBO Max(워너브러더스), 디즈니 플러스(월트디즈니컴퍼니) 등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OTT를 통한 독점 공개 혹은 극장과의 동시 공개 역시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서 이런 추세는 국내와 국외를 구분하지 않고 당분간 이어질 듯.
*워너브러더스는 2021년 신작 열일곱 편 모두를 극장과 HBO Max 동시 공개할 것이라고 지난 12월 발표했고, 그 시작은 <원더 우먼 1984>였다.
영화 '원더 우먼 1984' 스틸컷
다만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극장의 미래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2020)이 국내에서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후 처음으로 2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 되었으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 발표를 앞두고 주요 작품으로 거론 중인 <미나리>(2020) 역시 국내에서는 2주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누적 관객 5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21주째 상영되며 매출액으로는 역대 1위, 관객 수로는 역대 2위에 오르는 등 사람들은 여전히 극장을 찾고 있고, 극장에서만 가능한 종류의 경험을 여전히 소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아바타>(2009)가 재개봉해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 내주었던 글로벌 역대 흥행 1위를 탈환하기도 했다. (마블 스튜디오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아바타>의 1위 탈환을 축하하는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미나리' 스틸컷
일단 국내에서는 3월 말 <고질라 VS. 콩>과 <자산어보>를 비롯해 4월 <모탈 컴뱃>과 <서복>, 5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등 개봉 예정작들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뉴욕에서도 일부 극장이 제한적으로 영업을 재개하는 등 각 국가와 지역별 상황은 다르지만 조금씩 극장 업계도 다시 관객들을 불러들일 채비를 하고 있다. 쓰고 보니 다소 용두사미급의 결론이 된 것 같기도 하지만, 여전히 극장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걸음하게 할 만한 화제작들이 있는 한.
영화 '고질라 VS 콩', '자산어보' 포스터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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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 학생 부모, 그들의 비열한 본능
모든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많은 것을 한다.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아이를 챙기면서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 노력한다. 자식과의 관계가 좋든 나쁘든 기본적으로는 자식에게 문제가 가해자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 부모의 보호와 챙김 아래서 아이는 큰 걱정 없이 자신이 해야 할 공부와 기본적인 생활을 이어나간다.
아이들은 학교 생활을 시작하며 여러 관계를 맺어간다. 그 관계는 대부분 크게 문제가 없지만, 어떤 아이들에게는 왕따나 학교 폭력 같은 시련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나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고 더 나아가 삶의 의지마저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학교 폭력에 희생당하는 아이가 있다는 건, 반대로 가해자 그룹에 속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들이 가해자의 위치에 가게 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이 맺는 관계는 실패한 관계이고, 그 실패를 메꾸는 것 역시 부모의 몫이 되어버린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건 본인들의 고통뿐 아니라 부모의 고통이 된다.
가해 학생의 부모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화
우리는 과거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피해자의 위치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접해왔다. 하지만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가해자, 특히 그 부모들의 위치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다. 한음 국제중학교의 같은 반 친구들의 이야기인데 그중에서도 한결(성유빈)이 그 중심에 있다. 영화 초반에 건우라는 학생이 호숫가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는 임시 담임 선생님인 정욱(천우희)에게 죽기 전 편지를 보내고 그 편지에는 병원 이사장 아들 윤재, 전 경찰청장 손자 규범, 학교 중학교 교사 아들 이든, 그리고 변호사 아들 한결의 이름이 적혀있다. 시체가 발견된 이후 영화가 집중하는 건 학생 당사자들의 모습이 아니라 그 소식을 접한 부모들의 얼굴이다.
병원 이사장 지열(오달수), 전 경찰청장 무택(김홍파), 한음 국제 중학교 교사 정선생(고창석) 그리고 변호사 호창(설경구)가 맨 처음 학교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가해 학생들의 부모인 이들은 피해자가 자살 시도를 했고, 미리 쓴 편지에서 가해자로 지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부인한다. 가해자의 부모로서 그들이 가장 먼저 택한 행동이 바로 그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식을 믿어야 하는 입장에서 가장 본능적인 반응이 먼저 나타나는 것이다.
영화 중반 이후 이 가해 학생들이 피해자에게 행했던 가혹행위와 폭력이 동영상의 모습으로 이들 앞에 나타난다. 그때 가해 학생 부모들이 선택한 건, 증거인멸 시도와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 방법으로 외부에 그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그들은 진실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있기보다 그들의 자식에게 올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할 뿐이다. 그들에게 피해자의 안위나 그 행위에 대한 죄책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제시되는 가해 부모들의 모습은 왜 그들이 반성이나 사과를 먼저 하지 않는가에 대한 일종의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반성을 하지 않는 가해 학생 그리고 그들의 부모
영화에는 피해 학생의 시선은 최소화되어있다. 피해 학생인 건우의 엄마(문소리)가 진실을 접하는 모습은 우리가 이미 일반적으로 많이 보아온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특히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피해 학생의 편에서 있는 인물은 임시 담임 정욱뿐이다. 그만큼 현실에서 그들의 편이 되어 목소리를 내는 사람 자체가 없다는 의미다. 매스컴이 피해자 편에 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진실은 왜곡되어 버리고 결국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는 마지막까지 보여주고 있다.
가해 학생 중 하나인 한 결과 그의 아빠는 특이한 위치에 있다.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가해자로 보이는 한결의 특성 때문에 아빠 호창은 최대한 그의 죄를 덜어보려고 노력하는데 그 과정에서 한결이 정말 가해자인지 아니면 건우와 같은 피해자인지 헷갈리게 된다. 이건 영화의 극적 긴장을 높이는 요소로 활용되지만 현실에서도 이렇게 피해자와 가해자의 중간 위치에 있는 학생들이 있을 수 있다. 모든 가해자가 똑같은 비중으로 나쁜 행동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경중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이 영화가 말하고 있기도 하다.
가해 학생들의 영화답게, 부모뿐만 아니라 학교도 가해의 위치에 선다. 교장 선생님(강신일)은 이 일을 무마하기 바쁘고, 피해 학생의 편에 서있는 교사 정욱을 회유하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또한 피해 학생 부모의 학교 방문을 막아서는 학교 관리자와 경비들 모두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해자의 위치에 선다. 그러니까 피해 학생을 대변해주고 편들어줘야 할 시스템도 자신의 피해를 막기 위해 가해 학생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힘을 더해주는 건 자신의 지위를 활용할 수 있는 부모의 존재들이다. 큰 병원 이사장, 전 경찰청장 등 높은 지위를 이용해서 피해 학생을 두 번 짓밟는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를 제시하는 영화
이 영화의 이야기에서 또 눈에 띄는 건, 가해 학생들의 부모는 무척 이성적이고 침착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감정에 흔들리기보다 이성적으로 자신의 자식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동원한다. 하지만 피해 학생의 부모는 감정적이다. 울음을 터뜨리고 화를 낸다. 그리고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호창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다가도 감정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영화의 훌륭한 점은 현실을 잘 반영하면서도 그들이 가진 특성을 훌륭하게 구분 짓기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영화의 반전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위치와 행동에 더욱 씁쓸함이 느껴진다.
호창 역을 맡은 배우 설경구는 이 영화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연기를 보여준다. 자신의 아들의 생각과 감정을 알기 어려워하고 진짜 일어났던 일들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잘 표현해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로 등장하는 임시 교사 정욱을 연기한 배우 천우희도 정규직과 피해자의 입장에 서는 것을 고민하고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해내는 역할을 잘 소화했다. 나머지 가해 학생의 부모로 등장하는 배우 오달수, 고창성, 김홍파 등도 아주 이성적으로 진실을 은폐하려는 부모를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지훈 감독은 과거 <싱크홀>이나 <타워>, <7광구> 같은 오락영화를 많이 연출했던 감독이다. 하지만 그런 오락영화 이외에도 <화려한 휴가>나 <코리아>같이 탄탄한 드라마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다. 사실 이번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이미 5년 전에 촬영과 편집을 마친 작품이다. 출연 배우의 안 좋은 일 때문에 개봉일을 잡지 못해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개봉을 하게 되었다. 5년이 지나 개봉하게 되었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묵직한 메시지는 여전히 현재 시점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현실은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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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에서 나풀거리며 날아온 무근본 코미디
새삼 신기한 이야기지만 300여 일 남았다. 시간 겁나 안 간다고 한탄할 때가 엊그제 같았다. 근데 사실 그건 엊그제 일이 맞다. 시간 정말 안 간다. 무려 336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안 가는 건 매한가지다. 신기한 일이다. 아마 반강제적으로 경제난을 겪고 있으니 그런 것 같다. 또 막상 이렇게 시간 안 간다고 하다가 정신 차려보면 100일이 지나 있겠지. 뭐 그런 행복회로가 없으면 정말 정말 지루해서 못 견디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막연하게 지루한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소집해제 하면 뭘 할까? 적금을 깨는 거야. 적금으로 여행을 가는 거지. 그리고 남은 돈 얼마 남겨서 노트북을 바꾸면 되겠어. 10개월이나 남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꿈 정도는 꿀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만약 로또에 당첨된다면? 그럼 건물 한 두 채 사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잉여롭게 누워있어도 될 것 같다. 엄마, 아빠한테 효도도 하고 말이지. 없는 지갑 털어서 복권을 살 까 싶지만 5천 원은 소중하기에 참기로 한다. 최전방의 어느 군부대. 여기에 나와 비슷한 꿈을 꿨던 말년 병장이 있다. 갑자기 날아온 복권 한 장과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아보자. 장소는 극장이다!
길 가다가 만원 주운 것과는 달라
이게 뭐야? 갑자기 웬 복권? 군생활 끝자락을 보내고 있는 말년 병장 천우는 종이 한 장을 주웠다. 복권? 갑자기? 사실 군대와 복권이란 단어는 꽤나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천우도 아무 생각 없이 복권을 주웠다. 이거 발표는 언제 하는 거지? 뭐 돈 주고 산 것도 아니고 결과를 확인한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다. 방송을 보는 천우. 숫자 하나가 맞았다. 맞았네. 무덤덤한 천우. 두 번째 숫자도 맞았다. 어. 맞았네. 오늘 운이 좋은가보다. 세 번째 숫자도 맞았다. 어? 뭐지? 뭔가 이상한 것 같다. 그런데 말년병장이라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재미가 없어지는 마력이 있는 시기다. 금세 평정심으로 돌아온 천우. 근데 맞는 숫자가 네 개가 되고 다섯 개가 된다. 응? 여섯 번째 숫자 하나 남았다. 이것까지 맞았다. 엥? 이게 뭐지? 실화인가? 눈앞에 보이는 건 꿈이 아니다. 말년병장 천우는 여섯 개의 복권 전부를 맞춘 당첨자가 됐다.
헐. 헐. 헐. 말도 안 돼. 받을 수 있는 금액을 조회해봤다. 57억이라는 숫자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57억이면 집 한 두 채를 사도 남는 돈 아닌가. 집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꿈이었던 농장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전역까지는 3개월이 남았다. 안 그래도 안 가는 시간이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아니. 57억이라니. 밥을 먹으면서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웃음이 나오다 못해 저절로 눈물이 난다. 그동안의 고생이 왠지 모르게 생각나는 것 같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내무반. 천우는 복권 용지를 가지고 밖에서 후임과 대화하고 있었다. 바람이 서늘하게 부는 근무지도 왠지 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다. 안 읽던 책을 읽기 시작하던 천우. 책을 읽으며 근무를 하고 있는데 후임 한 명이 말을 건다. "병장님. 저 화장실 가고 싶지 말입니다." "갔다 와~" 배가 아픈 후임은 천우의 앞을 스윽 지나가며 아픈 배를 움켜잡았다. 그때, 후임이 지나가던 찰나에 복권 용지가 사르륵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복권 용지가 북으로 넘어갔다. 자. 57억이 눈앞에서 증발되게 생긴 천우. 천우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일단 웃겼어
일단 장르는 코미디다. 이 장르의 가장 첫 번째 본분은 무엇? 웃겨야 한다. 별생각 없이 상영관에 들어가서인진 모르겠지만 난 꽤나 웃다 나왔다. 가장 최근에 봤던 코미디 향 첨가 영화는 두 편이었다. <외계+인> 1부와 <불릿 트레인>이다. 전자에선 그냥 내내 정색하고 봤고 후반부에는 정확히 두 번 웃었으므로 코미디 타점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영관에 들어가기 전에 '티켓 값이 4천 원이니까 봤지 아니었으면 중간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고 들어갔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선회하는 재미를 느꼈으니 내 기준에서 코미디의 기능을 충분히 한 셈이다.
이 웃긴 고경표 배우가 복권 당첨을 확인하고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이때 각본을 상상하면 좀 허무맹랑할 수도 있다. 근데 고경표 배우는 이를 굉장히 잘 소화한다. 좀 실없는 인물의 내면 묘사,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하고, 초중반부의 인물 구도를 설계하기 위해 나름 중요한 장면을 연출했는데 이 시퀀스는 좋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 좀 미친놈처럼 보일 수도 있는 연기를 진짜 미친놈같이 소화해서 '역시 이 배우는 좋은 배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에 공개됐던 <서울 대작전>, 배우의 전작 <헤어질 결심> 세 역할의 톤이 다 다른 건 이 배우가 얼마나 욕심이 있고 능력까지 받쳐주는지를 볼 수 있는 훌륭한 단면이었다. 이 장면 이후에도 좀 여러모로 입장이 난처한 인간의 마음이 표정에서 잘 드러났다. 전체적인 코미디 톤을 이끄는 좋은 연기였다.
다른 배우들의 호연 외적으로 이 영화의 코미디 요소에 대해 쓸 수 있다. 바로 '무근본'코미디라는 것. 이 코미디는 근본이 없다. 일단 이야기의 전개에 대해 써보자면, 솔직히 아쉽다(그리고 이 부분은 후술 할 것이다). 극을 전개할 때마다 '와 이러면 진짜 웃기겠는데?' 속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대로 이어진다. 이러면 따라오는 단점이 뭐냐. 일단 뻔하다는 전개와 이야기 간의 접착력이 딱 달라붙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뒤집어서 표현하면 상황상황마다 인물의 표정이나 구도 촬영을 잘해놨어서 웃기기에는 최적화됐다는 뜻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코미디에는 웃음 강박이 없는 것 같다. 뭐 이 부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글쓴이가 말하고자 했던 부분은 알던 웃음 패턴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일단 여러분이 이 글과 영화의 예고편을 읽으며 바로 눈에 들어오는 설정이 하나 있다. 바로 군대다. 우리나라 군대 하면 생각나는 것이 뭐가 있을까? 폐쇄된 공간, 억압된 자유, 남북한의 군사 긴장상태 등등이 있을 것이다. 이때 생각날 수 있는 소재를 경제적으로 박박 긁어모은다. 그 외에도 우리가 예능프로그램을 본다거나, 수많은 짤에서 볼 수 있던 유머 소재들도 적재적소에 잘 쓰였다. 뭔가 억지로 웃기려고 하는 것보다 익숙한 패턴을 잘 변용했다는 점에서 코미디 영화로서의 안전장치는 잘 구성한 것 같다.
얕게 쓰이진 않았던
이 영화가 <D.P>처럼 우리나라 군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했다고 보기는 사실 어렵다. 뭐 그런 사회비판적인 코드가 주요하게 작동할만한 영화가 아닌 것도 맞다. 애초에 코미디 영화니까. 그 이유 때문에 사실 좀 불필요하게 들어간 부분이 없진 않다. 굳이 그 상황이 아니어도 인물이 그런 행동을 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이 마저도 코미디로 활용한 재기 발랄함은 강점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말 단순히 웃기기 위해 모든 세포를 기울인 효과다.
또 반대 측면에서 북한 묘사도 코미디로 활용한 부분이 있다. 이렇게 남북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 때 어려운 부분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그럼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북한에 대한 묘사다. 일단 남북한 현실에 대한 묘사 중 어느 쪽에 힘을 더 줬냐고 묻는다면 북한 쪽에 힘을 더 줬다고 생각한다. 일단 북한은 실질적으로 기본적인 농축산업도 유지하기 어려운 국가로 묘사된다. 또 군 내부가 어떻게 평소에 운영되는지 모를 정도로 조직력에 문제가 있다. 또 북한 내부 시스템의 문제도 제기했다. 구체적으로 쓰자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작동하는 ‘인재가 등장하기 어려운 현실’에 관한 내용이 코미디 요소로도 쓰이지만 소재의 활용에서도 적절하게 잘 쓰인 부분은 흥미롭다. 그리고 병사의 동기부여에 관한 부분, 나라를 위해 10년씩이나 꿈을 희생해야 하는 청년들의 현실까지 단순히 웃기려고만 이런 것들을 설정한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가장 결정적으로 시각적으로 북한군을 묘사하는 방식이 있다. 앞에서 상기한 내용은 글쓴이 본인의 생각이 어느 정도 담겨있다. 그런데 몇몇 장면들은 이 감독이 북한이란 나라를 조롱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모두가 들 것이다. 이 외에도 인물 간의 처지를 의도적으로 대비시켜서 북한이란 나라를 더 깊게 비판하는 부분은 어렵지 않게 관객들이 알아차리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물들이 상대 나라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것을 어떻게 영화가 거리를 두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본다면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각본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점 당연히 있지
뭐 이렇게 순수하게 웃기고 남북한 현실 묘사 깔끔하게 잘했다고 해서 모든 게 능사인 건 아니다. 이 영화 단점 당연히 있다. 일단 각본의 퀄리티다. 일단 영화 시작되고 한 10분까지 설정에서 크게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뭐 이런 소소한 것들이 말이 안 되는 건 그렇다 치자. 모든 영화에서 핍진성, 개연성을 따지는 건 피곤하니까. 그런데 이 가정법이 영화 끝까지 쭉 이어진다는 건 분명한 호불호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밌겠는데!’를 때려 박은 이 영화. 그런 코미디 요소에 모든 걸 다 투자했기 때문에 이야기 몰입하는 데 있어 좀 깨는 부분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이야기가 불협화음으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내적 논리와 함께 진행되는 영화. 그냥 웃기기 때문에 이 정도는 그래, 싶어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살짝 위험한 부분이 있다. 후반부다. 남한에서 한 인물이 어떤 사건을 겪는다. 그리고 그 사건을 겪기 전에 배경으로 제시되는 부분은 나름 잘 설정했다. 이 나름대로 코미디가 되기도 하고, 허무맹랑하긴 해도 다음에 이어지는 일의 배경이 되는 점에서 꼼꼼함은 어느 정도 챙긴 셈이다. 그런데 이런 인물을 극 중 타인들이 지켜보거나 대응하는 방식은 의문부호가 들 수밖에 없다. 이 방식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가는 둘째 치고, 얼핏 보면 이 사람들을 혐오하는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역시 앞에서 쓴 바와 마찬가지로 그냥 이 상황에서 가장 재미있는 방식이라 이런 식으로 전개한 건 그럴 수 있다. 근데 이 지점은 살짝 다르게 변용해도 이야기 전개가 말이 된다. 그 부분까지 코미디로 소화시켜야만 하는 이유도 없고.
또 이 외에는 극후 반부가 살짝 아쉽긴 하다. 일단 CG가 엔딩부에서 중요하게 쓰인다. 안 그래도 결말 부분의 이야기 전개가 아쉬운데 이 부분까지 있으니 더욱 도드라지는 느낌이 강하다. 또 앞 문장에도 썼듯 이야기를 쓰다 만 것은 좀 아쉽다. 엔딩부에서 보여주는 떡밥 하나는 아예 불필요했고, 물렁했던 극 전개가 빈약해지기까지 한다. 뒷심이 강했으면 조금 더 완벽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기다려 왔던 영화
뭐 이런저런 이유로 아쉬운 부분도 있는 영화지만 사실 많은 분들이 이런 작품들을 기다려 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해 개봉했던 이른바 '빅 4'들은 스케일이 큰 영화들이었다. 반면에 이 영화는 규모가 작다. 그러다 보니 큰 스케일의 영화에 익숙했던 글쓴이 같은 분들에겐 눈이 편한 느낌이 든다. SNL이나 여타 시트콤에서는 보기는 좀 크지만 규모가 크지도 않아 왠지 잊고 있었던 정통파 코미디를 그리워했던 분이라면 안성맞춤이다.
또한 한국영화의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신선하다. 주인공인 천우 역의 고경표 배우는 드라마에 많이 나왔다. <응답하라 1988>로 유명세를 얻었던 고경표 배우는 영화판에서는 그렇게 많이 볼 수 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나왔다 하더라도 영 시원찮은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고경표 배우가 표현력이 굉장히 뛰어난 연기자라는 걸 알게 된다. 난감하면 난감핟대로, 맘먹고 웃기려면 웃긴대로 표정연기가 뚜렷하니 이 배우는 유아인 배우처럼 큰 존재감을 뽐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헤어질 결심>에 이어 이 <육사오>에서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음은 음문석 배우다. 아마 올해 1200만 명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 2>에서 봤던 얼굴로 많이 기억하실 것 같다. 이 배우 연기 잘했다. <범죄도시 2>에서도 연기 잘했는데 이 영화에선 특히 더 잘했다. 감정조절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뻔뻔함,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 대위 역이기 때문에 장병들을 이끌어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위치까지 이 작품의 최전선에서 극을 이끈다. 래퍼 겸 댄서 겸 배우신 것 같은데 이 쪽에 굉장한 포텐이 있는 것 같다. 얼굴도 잘생겼다. 39세 안 같다. 또한 박세완 배우는 이름만 알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반짝반짝하는 존재감은 많은 분들의 머릿속에 남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일단 겁나 예쁘시다.
또 윤병희 배우와 이이경 배우도 기억에 남는다. 윤병희 배우는 얼굴이 굉장히 익숙하다. <범죄도시 2>에서 휘발유 역을 맡았을 때도 뭔가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 이 배우는 휘발유 캐릭터와는 다른 인물을 보여준다. 개성이 센 마스크라 이 배우 하면 휘발유가 먼저 생각나겠지만 후반부까지 극을 끌고 가는 힘은 굉장한 박력이 있었다. 또 이이경 배우는 얼마 전에 본 <공조>에서 봤었다. 그런데 이 배우는 확실히 여기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우리나라 그 좁은 면적에서 이렇게 예술 잘하는 사람들이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유치할 수도 있고 질척댈 수도 있는 유머를 생기 있게 잘 소화한 건 이 배우들의 뛰어난 역량 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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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뒤섞인 난맥상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법정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승패를 가리는 장소라고 믿으며 각종 꼼수와 편법에 능통한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그는 감옥에서 암에 걸린 아버지의 가석방을 약속받자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이선균) 대령의 변호를 맡기로 결정한다.
군인 신분 때문에 재판 기회가 한 번 밖에 없는 박태주. 하지만 그는 변호인에게 쉽사리 협조하지 않는다. 원칙주의자인 그의 눈에 정인후는 양아치니까. 그가 내란을 사전에 공모했는지, 아니면 위압에 의해 명령을 따랐는지가 재판의 쟁점인 가운데 박태주는 거짓 혹은 편법 증언을 요구하는 정인후와 거듭 부딪힌다.
한편, 10.26 사태를 계기로 박정희의 후계자가 되어 권력을 잡겠다는 야욕을 품은 합수부장 '전상두'(유재명). 박 대령 재판을 자기 발판으로 삼기로 결정한 그는 실시간으로 재판관에게 쪽지를 전달하고 재판을 도청 및 녹음하며 정인후의 노력을 물거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무위에 그친 역발상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경호원들은 박정희 대통령 외 5명을 사살했다. 이 사건의 재판을 다룬 <행복의 나라>는 시간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어중간하다. 사건의 전후사정이 이미 영화화돼 대성공을 거뒀기 때문. <남산의 부장들>은 김재규의 동기를, <서울의 봄>은 사건 이후 12.12 군사반란을 영화화했다. 심지어 둘은 장르도 달랐다. 전자는 누아르를, 후자는 전쟁 영화의 속성을 강조했다.
이에 <광해, 왕이 된 남자>와 <7년의 밤>을 연출한 추창민 감독은 역발상을 했다. 10.26 사태나 주동자인 김재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상대적으로 관심을 못 받은 공범 박흥주 육군 대령과 그를 변호한 태윤기 변호사에게 주목했다. 특히 그들의 인생사를 각색해 극명하게 반대되는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하게 되는 과정을 법정물로 포장해 감동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행복의 나라>는 역발상의 힘을 스스로 포기했다. 신념과 규칙에 충실한 삶 대 생존을 위해 유연해야 하는 삶이라는 대립 구도를 깊게 파고드는 대신 쉬운 길을 간다. 무조건적인 악역 전두환을 전면에 내세워 스케일을 키우고 군사 정권과 민주 시민의 대립을 강조한다. 문제는 같은 이야기로 천만이 넘는 관객의 뇌리에 각인된 선배들이 있다는 것. 결국 노선을 바꾼 순간 <행복의 나라>는 자기 자리를 잃고 말았다.
거대한 사건 속 개인적인 이야기
장르만 놓고 보면 <행복의 나라>는 <변호인>과 비슷해 보인다. 둘 다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법정물이니까. 하지만 두 영화의 지향점은 전혀 다르다. <변호인>은 분노를 연료로 삼아 달리는 작품이었다. 무고한 피고인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군사정권의 무도함과 그에 맞서는 변호인의 투쟁. 이 명확한 선악 구도에 송강호라는 배우의 연기력을 더하니 마치 들끓는 불과도 같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행복의 나라>는 다르다. 선악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 보고 있는 변호인과 피고인의 관계성이 핵심이다. 살인을 저지른 피고인의 행위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두 주인공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정인후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공을 꿈꾸며 판검사가 되려다가 실패한 변호사다. 법정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곳이 아니라 이기고 지는 곳이라는 대사에는 그의 인생이 축약되어 있다.
그 반대편에는 박태주 대령이 앉아 있다. 그는 중앙정보부 비서실장인데도 판자촌에 집이 있을 정도로 청렴한 군인이다. 요직에 있지만 권력을 마다하고 최전방 전출을 거듭 요청한 참군인이기도 하다. 영화는 10.26 사태를 매개로 완전히 다른 두 삶을 충돌시킨다. 배경은 대한민국의 향배를 뒤바꾼 거대한 사건이지만, 정작 내용은 철저히 개인적인 이야기인 셈이다.
감독의 전작인 <광해, 왕이 된 남자>와도 유사하다. <광해>도 중심 사건은 광해군을 축출하기 위한 정치극이었다. 하지만 정작 주된 내용은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충(忠)으로 무장한 유학자 '허균'(류승룡)이 광해군으로 위장한 광대 '하선'(이병헌)과 지내면서 자기 신념과 사상의 문제를 깨닫고 새 나라와 새로운 왕을 꿈꾸게 되는 티키타카야말로 천만 관객을 휘어잡은 원동력이었다. <행복의 나라>도 마찬가지다.
두 인생의 충돌로 빚은 법정극
전혀 다른 삶의 궤적과 신념을 지녔다 보니 정인후와 박태주의 첫 만남은 엉망이었다. 정인후는 철저한 원칙주의자 군인 박태주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관등성명, 상명하복이 권위주의의 발현에 불과하다며 비웃는 사람이니까. 박태주도 다르지 않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법정에서 온갖 편법을 써가며 승리를 추구하고, 정의가 아니라 돈과 이익을 위해 변호를 맡는 정인후는 단지 변호사일 뿐, 신뢰할만한 변호인이 아니다.
1차 공판만 해도 정인후는 자기 의도대로 재판에 임한다. 군인이니 군법에 따라 단심제 군사 재판을 받겠다는 박태주. 정인후는 그를 설득하는 대신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한다. 군사 재판은 받지만, 단심제는 3심제로 바꿔달라며 위헌심사요청을 한다. 위헌심사요청이 기각되자 재판관을 교체해 달라며 재판을 여론 싸움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2차 공판부터는 다르다. 정인후는 점차 피고인의 입장과 신념이 녹아든 전략을 수립한다. 군인에게 명령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저 명령을 따른 박태주의 책임을 부정하는 식이다. 대통령을 살해한 후 정보부가 아니라 육군본부로 가자는 의견을 박태주가 냈다는 진술에 착안해 내란죄 혐의를 부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태주도 정인후를 만나 변한다.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재판을 포기하려던 그. 그는 군인이고 원칙주의자면 규칙대로 재판장에서 최선을 다해 싸워서 책임을 지라는 정인후의 일갈에 마음을 다잡는다.
이는 법정극 특유의 쾌감으로 이어진다. 감정 호소로 일관한 <변호인>과 달리 <행복의 나라> 속 재판씬은 판세가 거듭 뒤집히다 보니 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에 더해 흐름을 가져오려고 머리를 쥐어짜면서 변호인과 피고인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한 팀이 되는 이야기가 병행되니 복합적인 재미가 만들어진다. 진정한 인권변호사가 되어가는 정인후를 보면서 박 대령이 웃음과 하이파이브로 화답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익숙한 맛으로 돌파하는 고구마
정인후와 박태주가 한 팀이 되어가는 과정은 자칫 고구마일 수 있다. 비록 역사를 반영한 것이기는 하나, 박태주라는 캐릭터가 다소 과하게 올곧은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 자기는 죽고, 아내와 두 아이만 남아 험난하게 살아야 할 상황에서도 그는 자기 신념을 좀처럼 꺾지 못한다. 상관도 못 버리고, 명령에 충실한 군인이라는 자부심도 저버리지 못하고, 대통령을 살해했지만 옳은 일을 했다는 확신도 내려놓지 못한다.
추창민 감독은 고구마를 익숙한 맛으로 뚫어버린다. 정인후의 아버지와 박 대령을 겹쳐 보이게 한다. 개척 교회 목사로서 시위하는 학생들을 돕다가 수감되고, 가족을 돌보지 못한 아버지. 정인후는 자기 신념대로 살아야 하는 아버지를 머리로는 받아들이지 못해도 가슴으로 이해해 간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가 박태주를 만나는 장면과 이어진다. 그 덕분에 자칫 답답할 뻔한 전개는 가족애로 변환되어 더 큰 감동을 자아낸다.
물론 다소 양식적인 스토리텔링이기는 하다. 사건과 무관한 인물을 통해 시대적 사건에 접근하면서 특히 감정선을 자극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유발하는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화법이니까. 야매 변호사였다가 사건을 맡은 후 진정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성장 서사는 정인후나 <변호인>의 송우석이나 다를 바 없다. 또 정인후와 아버지의 관계성도 이러한 맥락에서는 신파를 의도한 구조 배치로 보일 수밖에 없다.
과욕과 함께 무너지다
하지만 과욕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행복의 나라>는 이내 본연의 색을 잃는다. 의외로 초중반부까지 이 작품은 10.26 사태의 배경이나 실체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부마 민주 항쟁이 대학살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민주화를 앞당기기 위한 김재규의 결단 정도로 언급할 뿐이다. 애초에 핵심 플롯 자체가 정인후와 박태주 둘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이는 의도적인 공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12.12 군사반란을 필두로 실제 사건에 가까워진다. 그러니 역사적 맥락의 공백이 서서히 두드러지면서 영화의 만듦새도 무너진다. 배경이어야 할 사건이 돌연 주인공이 되다 보니 묻어 두었던 의문점이 한 번에 터져 나오기 때문. 일례로 중반부까지만 해도 매력적이었던 입체적인 인물상은 중심점을 잃고 흩어진다. 정인후의 경우 단지 박태주를 살리려는지 민주주의 투사가 되려는지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박태주도 명령에 의한 피해자인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투사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가 청렴한 군인이고 신념에 맞는 명령을 따랐으니 민주주의 투사로 여겨야 하는지, 군사 정권에 협력한 군인을 살리는 게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항거인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10.26 사태의 본질과 맥락을 외면한 채로 시작한 미시적인 이야기를 무리하게 거시적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에 더해 장르적으로도 균형을 잃는다. 12.12 군사반란이 시작되는 순간부터는 <서울의 봄>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서울의 봄>처럼 쿠데타 과정을 자세하거나 긴장감 넘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 10.26 사태는 지우고 12.12 군사 반란을 부각한 선택은 법정극이라는 장점도 희석시키고, <행복의 나라>만의 개성을 깎아먹는 악수가 되고 만다.
전두환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마지막으로는 극 중 전상두, 곧 전두환을 다루는 방식도 <서울의 봄>과 비교를 피할 수 없다. 황정민의 전두광과는 달리 유재명의 전상두는 상대적으로 일차원적이다. 전자는 들끓는 성공욕,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보스 기질, 위기 때마다 빛나는 간교함이 어우러진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반면에 전상두는 그저 권력을 잡기 위해 살인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절대악으로만 묘사된다.
그 결과 전상두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영화는 편의적으로 느껴진다. 전두환이 의문의 여지없는 악역이기는 하나, 그를 덮어두고 비난하면 메시지가 뻔해지고 재미도 덜해지기 때문. 정인후가 전상두 면전에서 욕을 하는 골프장 시퀀스가 통쾌하거나 희열이 느껴지는 대신 지루하고 늘어진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슈퍼맨처럼 압도적인 힘을 지닌 히어로를 잘못 활용해 액션의 긴장감과 쾌감을 모두 놓친 <저스티스 리그>와 비슷하다.
그렇기에 <행복의 나라>가 전두환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포기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유독 짙다. 악명 높은 한 인물 대신 비교적 덜 알려진 이들의 서사에 우직하게 집중했다면 한국 현대사를 다룬 이전 시대극들과는 또 다른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조정석과 이선균, 다시는 재회할 수 없는 두 주연의 연기도 함께 빛이 바래기에 더욱 안타깝다.
Acceptable 무난함
시대의 그림자에 가려진 개인을 비추기에는 조명이 너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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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메이크 영화 추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신청 받은 주제는 바로 '리메이크' 영화입니다.
이 게시물 혹은 씨네픽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동일 내용의 콘텐츠 게시물에
자신이 보고싶은 영화에 대해 적어주신다면 다음 콘텐츠를 올릴 때 여러분들의 댓글을 바탕으로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1:1 맞춤 영화 큐레이션 시작해볼까요?٩( ᐛ )و
써니
ⓒ 네이버 영화
synopsis
아무로 나미에가 여고생의 우상이었던 1990년대!
지방에서 전학 온 ‘나미’를 유일하게 챙겨주던 ‘써니’의 멤버들.
성인이 된 ‘나미’는 우연히 병원에서 ‘써니’의 리더였던 ‘세리카’와 재회하게 되고,
불치병으로 딱 한 달의 시간만이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그녀의 마지막 소원은 바로 ‘써니’의 멤버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
‘세리카’의 소원을 위해 멈춰있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cine pick!
한국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2011년에 개봉한 영화 <써니>를 일본에서 리메이크하여 만든 작품이다. 원제를 번역하면 써니: 강한 마음, 강한 사랑으로 그 시대에 유행했던 오자와 켄지의 노래를 제목으로 사용했다.
콜
ⓒ 네이버 영화
synopsis
과거와 현재,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두 여자가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cine pick!
푸에르토리코, 영국 합작 영화인 <더 콜러>를 원작으로 하는 한국 영화 <콜>.
큰 틀을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이 원작과 달라 거의 다른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광기로 가득한 영숙이라는 캐릭터를 해내며 전종서 배우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하며,
장르물에서도 뛰어난 연기를 보여줘 호평을 받은 박신혜 배우까지. 주조연 배우의 연기력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모어 댄 블루
ⓒ 네이버 영화
synopsis
외로움에 갇혀 혼자 남겨졌지만, 크림을 만나 함께 살게 된 케이
그러나 영원한 이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자신이 떠난 후에도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라게 된다.
늘 혼자였지만, 케이를 만난 후 가족도 친구도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은 크림
자신을 떠나 행복한 사랑을 찾으라는 케이의 소원을 듣고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하지만,
케이에 대한 마음이 자꾸만 그녀를 붙잡는다.
cine pick!
2009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권상우, 이보영 주연의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대만 영화 특유의 분위기와 영화의 색감, 그리고 OST 등으로 극의 몰입감과 감동을 더했다.
레스틀리스
ⓒ 네이버 영화
synopsis
극단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은폐해 버린 부패 경찰. 정체불명의 목격자로부터 협박을 받으면서 그의
인생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cine pick!
이선균 배우 주연의 영화 <끝까지 간다>의 리메이크작인 <레스틀리스>. 원작과 거의 동일하게 진행되기에
원작과 비교하면서 보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완벽한 타인
ⓒ 네이버 영화
synopsis
오랜만의 커플 모임에서 한 명이 게임을 제안한다.
바로 각자의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통화 내용부터 문자와 이메일까지 모두 공유하자고 한 것.
흔쾌히 게임을 시작하게 된 이들의 비밀이 핸드폰을 통해 들통나면서
처음 게임을 제안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상치 못한 결말로 흘러가는데….
cine pick!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가 원작인 한국 영화 <완벽한 타인>.
원작 영화가 한국을 비롯해 18번 리메이크가 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 받은 작품이다.
<완벽한 타인> 역시 한국에서 529만 누적 관객수를 기록하였고, 로컬라이징이 잘 된 작품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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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선택한 소녀
모아나
줄거리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고, 드넓은 바다가 사방 천지에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섬, 모투누이.
그 곳에서 나고 자란 족장의 딸 '모아나'는 어려서부터 바다를 좋아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에 유일하게 쫄지 않았던 아이이기도 하다. '테 피티'여신의 심장을 훔친 '마우이'라는 영웅을 찾아서 '테카'를 잠재우고 심장을 돌려놔야 한다는 옛 이야기. 사람들은 다 그거 헛소리라고 해도 할머니는 모아나에게 너가 바로 바다에 선택된 아이라며 얼른 배 타고 나가라고 꼬신다.(물론 진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너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을 뿐.) 할머니는 모아나가 나가는 것을 두려워해도, 그러면서도 바다 근처를 서성거리며 망설여도 그저 바라보고 모아나의 선택을 존중한다.
모아나는 물론 너무나 바다로 나가고 싶지만, 완강한 아버지는 모아나가 족장의 자리를 지켜서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난리다. 그러나 책임감 스웩 넘치는 아빠도 언젠가부터 섬에 일어나는 이상한 일을 감지한다. 할머니는 이 때다 하면서 심장을 돌려놓지 않아서 저주가 온 거라고, 모아나에게 원래 이 부족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일깨워준다.(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뭐, 예상하겠지만 결국 모아나는 바다로 떠난다. 바다가 나를 선택했다는 것 하나만 믿고!
책임지는 방식에 대하여
숨은 의미 찾기
디즈니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 고전적 공주들로 큰 흥행을 거두었지만, 그 공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공주의 상은(이보시오, 관상쟁이 양반. 내가 공주가 될 상인가? feat.이정재) 아니었던 것 같다.
모법답안처럼 여겨지는 옛 공주들을 뒤로하고, 자신들이 만족할만한 새로운 공주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시도를 통해 '포카혼타스/ 뮬란/ 미녀와 야수/ 벅스라이프의 개미공주' 같은 공주들 말고도 '타잔의 제인/ 인어공주의 딸/ 인크레더블의 헬렌' 처럼 여러 여자주인공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해서 정착한 공주들이 바로 '공주와 개구리/ 라푼젤/ 메리다와 마법의 숲' 속의 공주들이었다. 여기서 잭팟 터진 게 바로 '겨울왕국의 엘사(feat.레리꼬)'였던 것이고. 그러나 디즈니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세상에 숨어있는 더 많은 공주들을 발굴하고자 한다. 그런 시도에서 나온 것이 바로 모아나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대를 잇거나, 가문을 책임지거나, 책임을 지는 것은 보통 남성의 역할로 도드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성별에 관계없이 극성 부모님을 만나면 누구나 다 똑같을 거다. 마치 모아나처럼. 이렇게 말하니 마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일 뿐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모아나는 분명 '디즈니가 최종적으로 다다랐던 공주들'과는 다르다.
보통 주인공에게 어떤 책임이 주어지면 '책임 vs 자유'의 구도로 나아가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주인공에게 책임을 분배하는 방식이 이분법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엘사와 모아나의 구도를 비교해보자면,
엘사 :'왕국에서 자신의 힘을 숨기고 훌륭한 여왕이 되는 것 vs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
모아나 :'족장이 되어 사람들을 바다로부터 지켜서 책임지는 것 vs 바다로 떠나 섬의 저주를 풀어 사람들이 넓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
이라는 상황에 놓인다. 엘사와는 달리 모아나는 '책임 vs 책임'의 구도를 갖는 것이다. 거기에 바다로 떠나는 것이 자신의 자유임과 동시에 부족의 정체성을 찾는 모험이기도 하다. 모아나는 아빠가 찾지 못했던 새로운 책임지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번에 디즈니가 말하고자 한 것은 '책임지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이전에 인크레더블 2를 리뷰할 때, 제작진이 세대교체를 노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특이한 것은, 모아나를 격려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도록 조언하는 것이 할머니라는 점이다. 그것과는 반대로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모아나를 흔드는 것이 바로 아빠다. 이로써 두 종류의 어른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자신의 편견에 휩싸여,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인격체로 존중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어른은 진실을 알려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가 원하는 방향을 선택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나 자신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결국 공생하며 서로를 돕고 도움 받으며 살아야 한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지혜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다.
세상은 변한다. 문제에서 도망쳐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회피하고 그저 참기만 하던 옛날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부딪히고, 직면해야 한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전세대에게 말하고 있다.
젊은 층에게 자리를 양보하되, 그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짜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선택받은 게 아니다
감상평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사회에서 가장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단연 90년대생이다. 세대교체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세대를 무시하거나 제멋대로 굴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를 꾸려나갈 준비를 해야한다. 그 방식이 설령 믿을만한 것이 아니더라도, 시도조차 못하게 막는 것은 이전세대의 권력남용이다. 늘 새로운 것은 비난받았지만, 세상을 바꾼다.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아직은 모른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마우이'는 '모아나'와 같은 처지이다. 전설의 영웅이라 불리지만,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철부지일 뿐이다. 하지만 그건 모아나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길을 선택했지만,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막막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때에 필요한 것은 마음이 통하는 동료이다.
두 사람은 서로 부족한 점을 배우고 채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함께' 결말을 만들어낸다. 뱃머리가 약간 삐그덕거려도, 거센 물살에 가끔은 심하게 흔들릴 지라도, 배가 바다에 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 모아나는 관객을 하나의 지점으로 이끈다.
우리 인생은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한 척의 배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가끔은 큰 파도를 만나서 다치기도, 누군가를 잃기도 한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다가, 다른 배를 만나고 무인도를 찾고, 새로운 곳을 개척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항해를 멈출 수는 없다. 가끔씩 지독한 인생의 파도에 너무나 지쳤을 때, 내가 발견했던 땅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물론 너무 마음에 드는 땅이 생긴 사람은 그곳에 정착할 수도 있고, 뭍보다는 파도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은 땅에 발 디딜 틈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바다로 내몰 수도, 땅으로 붙잡을 수도 없다.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영화 속에서 발견한 것은, 단순히 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뭉친 소녀가 아니었다. 자신이 선택한 바다라는 모험을 즐기고, 그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결국 모아나가 책임진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마우이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졌다.
때로 항해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결국 나의 마음이 어디로 끌리는지,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언젠가는 바다 위에서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답은 언제나 나에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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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괴도 키드가 주인공? / 명탐정 코난 극장판 /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 핫토리와 카즈하의 연애사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후기입니다.
*평소 코난 극장판처럼 쿠키영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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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화 서울의 봄 - 이 영화에 담긴 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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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레빗구미입니다. 오늘은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이 영화는 1212 사태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인 사건을 극화한 작품입니다. ?
? 영화는 전두광과 이태신이라는 두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감정의 격동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전두광의 탐욕과 이태신의 분노, 그리고 국민의 허탈감까지, 이 영화는 다양한 감정을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 황정민과 정우성의 연기는 각각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군사반란과 그로 인한 국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 이 영화가 갖는 감정적 가치를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서울의 봄'을 꼭 관람해보세요. 감독 김성수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여러분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입니다.
?️ '서울의 봄'에 담긴 감정들을 직접 경험해보세요. 영화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저희 채널을 구독하고 다음 리뷰를 기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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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귀신> 티저 예고편
귀신이 출몰하기로 유명한 강원도 폐교회!
초자연 미스터리 현상을 취재하는 방송국 제작진과 귀신을 쫓는 무당, 그리고 미스터리 체험단이 귀신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찾는다. 그날 밤, 역시나 범상치 않은 기운에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다음날 낮, 기겁한 이들 앞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면서 밤보다 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나오라는 귀신은 안 나와도, 귀신보다 더 무서운 사건들이 득실대는 현실 공포를 경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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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로커> 티저 예고편
“우리랑 이제 행복해지자꾸나” 6월,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