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tkatniss 2025-06-25 22:03:12
드라마 <졸업> : 진정한 어른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주세요, 빛나는 졸업장을"
안판석 감독의 5년 만의 신작 <졸업> (TvN, 2024) 은 공개 전부터 관심과 우려를 한 번에 받았다. 시장이 감독의 전작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5년 전과는 사뭇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느린 드라마를 원하지 않는다. 모두가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수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합이라도 하듯, 콘텐츠는 조각나 숏폼으로, 유튜브 축약본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런 시대 속 문학적인 대사, 켜켜히 쌓이는 감정선, 그 안의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안 감독의 <졸업> 은 느린 이야기의 건재함을 증명한다.
안 감독은 항상 로맨스의 외피를 통해 사회의 이면을 조명해 왔다. 이번 작품 역시 학원 강사들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우리나라 사회에 자리 잡은 계급과 교육 문제를 드러낸다. 드라마의 배경은 사교육의 천국, 대치동 학원가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입시는 계급을 결정하는 첫번째 통과의례이다. 모두가 수단을 가리지 않고 타고난 계급을 지키거나, 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입시에 전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조를 이용해 일확천금을 노린다. 드라마 속 한밤중까지 불이 켜진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은 이런 욕망이 얽힌 한국 사회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극은 일타 강사 서혜진(정려원)과 10년 전 제자 이준호(위하준)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과거 혜진이 처음으로 가르쳤던 이준호는 혜진의 가르침을 통하여 꼴찌 생활을 청산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 대기업에 입사하는 정석 같은 삶을 산 인물이다. 어느 날 준호가 혜진의 학원에 선생으로 입사하며 혜진의 일상에는 큰 파문이 인다. 준호는 혜진의 실적 중심의 교육 신념을 흔들고, 주변 대치동 사람들은 혜진을 끌어내리기 위한 공작을 끊임없이 펼친다.
문제의식이 없던 한 인물의 삶에 갑자기 들어온 사랑. 그로 인해 문제에 눈을 뜨고 변화하는 인물. 안 감독이 유구하게 추구하는 로맨스의 방식이다. 혜진은 10년 전에는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인 국어의 본질을 가르침으로써 학생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인물이었다. 지금의 혜진은 성공했지만 더이상 자신을 교육자라 여기지 않는다. 혜진에게 자신의 역할은 “학생들 성적이나 올려서 좋은 대학 보내는 사람”이고, 학교는 대학에 가기 위한 관문일 뿐이다. 연인으로 발전한 준호와 혜진은 교육관의 차이로 부딪힌다. 성적 상승이 입시교육의 목적이라는 혜진의 의견은 계급 담론의 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교육의 현주소를, 국어가 아이들의 문해력을 높이고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는 준호의 의견은 교육의 본질적 측면을 강조한다. 여기에 힘없는 공교육에 회의를 느끼고 학원 선생이 된 표상섭(김송일)과 문제 풀이를 넘어 텍스트를 이해하고자 하는 학생 이시우(차강윤)가 더해지면서 드라마는 로맨스를 넘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교육과 배움의 의미는 무엇인가. 학생들이 12년의 학제를 통틀어 좇는 욕망의 실체는 무엇인가. 좋은 대학에 가는 물질적인 목표를 이룬 후에, 우리의 삶에는 무엇이 남는가. 준호와 상섭을 통하여 자신의 삶에서 본질적으로 의미 있는 것을 찾아가는 혜진의 모습을 통하여 감독은 말한다. 입시 교육이 대변하는 무한 경쟁과 물질주의에 경도된 삶을 살아가는 한, 우리는 평생 ‘졸업’하여 어른이 되지 못할 거라고. 우리의 삶에 본질적으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사유하고, 또 성찰하라고. 또 교육은 그런 여정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고.
Relative contents
-
- 시작과 끝이 무한히 반복되는, 깨지 못할 한때의 꿈
-
퀴어 (Queer, 2025)
시작과 끝이 무한히 반복되는, 깨지 못할 한때의 꿈
개봉일: 2025.06.20.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37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드류 스타키, 레슬리 맨빌, 제이슨 슈왈츠먼, 엔히 자가
개인적인 평점: 3.5 / 5
쿠키 영상: 없음
나에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는 딱 이 한 문장으로 정립되어 있다. ‘펄떡이는 것들로 그득한, 살아있는 영화’. 들끓는 욕망과 한순간 솟아오르는 치기, 따가운 햇살, 뜨끈한 피, 생생한 피부의 촉감. 온갖 감각이 넘치는 그의 영화는 매번 내 둔해진 감각을 새롭게 재생시킨다.
이 모든 감각들의 시작점엔 바로 ‘사랑’이 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그리는 사랑은 맹렬하고 솔직하기에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추하고 외롭다. 개인적으론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영화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고 생각하며 당연하게도 나의 루카 구아다니노 최애작 또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후로도 온전한 소유를 목적으로 한 카니발리즘 로맨스 <본즈 앤 올>, 세 주인공 사이의 다자간 사랑의 랠리 <챌린저스>처럼 여러 독특한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들을 쉼 없이 발표했고 나는 그때마다 그의 뜨거운 욕망과 변태력에 큰 박수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같은 영화.. 어떻게 한 번 더 안 되는 걸까…’하는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퀴어>를 정말 오래 기다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닮은 구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진 채. 그런데 영화가 끝나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이거였다. “뭐지? 이건 또 봐야 알 것 같은데?”
<퀴어>는 언뜻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닮아있는 듯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본격적으로 영화 <퀴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같은 느낌을 기대하고 있는 감독의 팬들에겐 이렇게 말하고 싶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언제 떠올려도 아름다울 한여름 밤의 꿈이라면 <퀴어>는 마음을 걸어 잠가도 비집고 들어오는 칼바람 같은 꿈이라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생생한 감각들을 떠밀어주는 영화라면 <퀴어>는 스스로 인물의 감각을 더듬어내야 하는 버석한 영화에 가깝다고.
<퀴어>는 동명 소설 [퀴어]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기존 질서에 반항하고 기행을 일삼았던 비트 세대의 주요 인물이었던 원작자 ‘윌리엄 버로스’는 다이내믹했던 자신의 생을 그대로 투영한 문학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퀴어]는 그중 한 편으로, 약물 금단증상에 시달리던 그가 멕시코에서 한 청년을 만나며 겪은 경험을 담은 책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줄기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화 <퀴어>는 원작에 비해 주인공의 감정이 비교적 아름답게 표현되었고, 이야기 사이 공백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갔던 원작에 비해 갈피가 잡혀있는 편이다. 하지만 원작과 영화 모두, 한 번 놓치면 길을 잃어버리기 쉬운 어지러운 작품이니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대략 피곤한 날 관람은 피하시라는 말이다.)
영화 <퀴어>의 주인공인 작가 ‘리’는 마약 단속을 피해 미국에서 멕시코시티로 이주한다. 그는 모아둔 돈으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며 인생을 함께할 짝을 찾는 중이다. 그런데 곱게 말해 ‘짝을 찾는다’고 표현한 거지, 그는 사실 아름다운 청년들에게 열심히 추파를 던지는 중이다. 하지만 리에게도 명확한 기준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퀴어여야 한다는 것.
하지만 리와 같은 퀴어, 그것도 진심으로 사랑을 나눌 퀴어를 찾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처음 등장하는 앳된 청년은 퀴어가 아닌 것처럼 보이고 퀴어임이 확실해 정사를 나눈 청년은 육체적인 사랑. 그 이상을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더해 퀴어가 아닌 이들은 리를 대놓고 괄시하니 리는 항상 사랑을 하면서도 외롭다.
그러던 어느 날, 열기 가득한 길거리. 리는 수많은 인파 너머로 지나가는 유진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노골적인 표현과 거짓말까지 동원하며 유진의 옆자리를 사수한다. 리는 지금껏 다른 청년들에겐 퀴어인지, 퀴어가 아닌지. 말과 몸을 동원해 거침없이 질문해왔지만 유진에겐 같은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그렇게 설레면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가득한 날들이 지나가고 리는 온갖 노력 끝에 유진과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몸을 맞췄으니 이제 마음을 맞춰갈 순서가 아닐까. 리는 기대감에 부풀어 유진을 다시 찾는다. 하지만 유진의 태도는 점점 미스터리하게 변하고 유진을 향한 리의 갈망과 애정. 외로움은 쉼 없이 몸집을 키운다. 그리고 그것에 짓눌린 리는 유진의 사랑을 얻기 위해 또 다른 것에 집착하게 된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Queers가 아닌 Queer
영화의 중심인물은 리와 유진, 두 사람이고 영화의 사건 또한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이어진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퀴어들(Queers)’이 아닌 ‘퀴어(Queer)’다. 그 이유는 리의 이야기 속에서 동성인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한 퀴어는 리뿐이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유진의 신체, 행동, 젊음은 리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대상화되지만 리의 모습은 그렇게 표현되지 않는다. 리는 유진에게 욕망을 느꼈지만 유진은 리에게 진짜 욕망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진이 퀴어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후, 리는 유진이 퀴어일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그의 몸에 손을 얹는다. 유진은 리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함께 밤을 보낸다. 리는 이를 유진이 퀴어이고 자신을 허락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유진은 리와 같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유진을 향한 리의 마음이 사랑이라면 리를 향한 유진의 마음은 호기심에 가깝다. 유진에게 리는 ‘가보지 않은 다른 동네 퀴어바’ 처럼 그저 궁금한 것. 딱 그 정도인 거다.
유진은 리와의 관계를, 퀴어와의 관계를 체험한다. 그는 리와 나란히 앉아 함께 술을 마시고, 같은 메뉴로 저녁 식사를 하고, 같은 영화를 보며 발을 맞춘다. 하지만 리가 그토록 바랐던 순간이 지나간 후, 유진의 호기심은 급속도로 사라진다. 유진은 첫 정사 이후 리가 여운에 빠져있는 사이 리의 성기에 닿았던 손을 리의 셔츠에 닦거나 키스를 나눈 후 입술을 닦거나, 더 이상 리와 같은 메뉴를 먹지 않는 -첫 정사 이후 장면들에선 리 앞엔 술. 유진 앞엔 콜라가 놓여있다.- 등 거리를 두는 행동을 보인다. 금전으로 얽힌 2장 이후의 관계는 예를 들 필요도 없을 만큼 한눈에 봐도 건조하고 일방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실제인지 리의 환상인지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영화의 끝에 가선 유진이 ‘저는 퀴어가 아니’라 말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사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첫 정사 전, 저녁 식사 장면에서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리가 식사를 미뤄두고 진지하게 퀴어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동안 유진은 리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게걸스레 식사를 이어간다. 이 때 카메라가 식당 밖에서 두 사람을 비추는 컷에선 유진이 앉아있는 쪽은 벽으로 가려져 있고 리가 앉은 쪽만 유리로 되어있어 마치 리가 앞에 앉은 유진이 아닌 두꺼운 벽에 대고 홀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리는 영화 내내 통할 수 없는 벽, 유진을 향해 열심히 사랑을 이야기했고 또 자신과 같길 바랐다. 하지만 유진에게 리와 리의 사랑은 구토를 불러오는 술 같은 존재였다. 유진은 리의 집으로 가던 날 밤. 리에게 맞춰 술을 마셨고 마지막으로 집에서 리가 직접 따라준 술을 한 잔 마시고는 결국 토를 하고 만다. 리는 ‘술은 별로 안 마시지 않았나?’라며 유진을 걱정함과 동시에 약간의 의아함을 가진 채 화장실 밖에서 그를 기다린다. 리는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아무리 유진을 사랑하고 또 사랑해도 만족하지 못하지만 유진은 리가 건넨 술과 사랑을 구역질과 함께 뱉어낸다. 그렇게 유진이 사랑을 뱉어내는 동안 리는 유진이 그어놓은 선 밖에서 괴로워할 뿐이다.
무한히 새로 시작되는 잘못된 사랑과 그것을 향한 진심
리는 유진을 위해 자신이 그어놨던 선을 하나 둘 넘는다. 리는 첫 번째로 만난 청년에겐 “너 퀴어 아니지?”라고 물으며 그를 추궁하고 청년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 판단한 후 자리를 뜬다. 두 번째로 만난 청년과 밤을 보낸 후엔 돈을 줘서라도 그를 잡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지갑을 닫는다. 그런데 유진을 처음 본 후, 리는 거짓말을 쳐 유진을 십아호이에 불러내고, 하룻밤을 보낸 남자들에게 집을 털렸다는 친구 조에게 “털리기 싫었으면 집이 아닌 모텔로 가지.”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은 유진을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유진에겐 지갑을 여는 걸로도 모자라 십아호이의 일부를 인수하기까지 한다. 더 나아가 리는 텔레파시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식물, 야헤에 집착하고 다시 약에 손을 대며 또 다른 선을 넘게 되는데 이 모든 건 유진과 얽힌 사랑, 외로움이라는 감정 때문이다.
리는 선을 넘으면서까지 진심으로 사랑을 쟁취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를 잘못 골라도 너무 잘못 골랐다. 리와 유진이 여행을 떠나기 전, 1장의 후반부에서 리는 메리와 함께 있는 유진에게 찾아가 돈을 줄 테니 자신과 함께 남미로 떠날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유진은 그의 제안에 이렇다 할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때 메리가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와 리와 유진 사이에 있는 체스판에 손을 뻗는다. 그리고 조금 전에 리가 손댔던 체스 말을 옮기며 “이거 여기 아니잖아.”라고 말한다. 둘 곳이 아닌, 두면 안 되는 칸에 자리를 잡은 체스 말처럼 리는 ‘퀴어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유진의 세계에 잘못 발을 들여버린 것이다.
하지만 리는 유진을 포기하지도, 그를 죽이지도, 자신을 죽이지도 못한다. 유진을 미워하고 또 사랑하기 때문에. 리가 마지막으로 본 환상 속엔 방 안에 누워있는 유진과 ∞ 모양의 지네 목걸이와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빨간 뱀이 나온다. 이 뱀은 꼬리를 삼키는 자 ‘우로보로스’를 떠오르게 하는데, 이는 ‘시작이 곧 끝’이라는 의미와 영원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리의 사랑은 이 뱀과 지네처럼 시작과 끝이 영원히 반복되는 ∞ 모양을 따라 움직인다. 리는 지독한 외로움에 벌벌 떨다가도 무심히 얹어진 유진의 발에 안정감을 느끼고 환상 속에서 유진을 죽이고도 그를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사랑하기에 미치도록 증오스럽고 사랑하기에 감히 죽일 수도 없었던 외로운 그의 사랑은 매일같이 부서졌다가 또 새롭게 시작된다. 심지어는 숨을 거두는 날까지도 말이다.
리는 침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유진과 함께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왼쪽으로 돌아누운 리의 발 위로 같은 방향으로 누운 유진의 발이 겹쳐지고 리는 마지막 숨을 뱉는다. 과거 현실에선 벌벌 떨면서 허락을 받고 나서야 겨우 자신을 등지고 있는 유진과 발을 한 번 겹칠 수 있었는데.. 리는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나마 잠시 유진과 자신의 자리를 바꿔본다.
사랑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여행의 끝
리에게 남미 여행은 사랑을 지킬 마지막 기회였기에 그는 여행에 최선을 다했고 죽을 때까지 이 여행을 잊지 못한다. 반면 유진에게 이 여행은 당시 하고 있었던 신문사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일 정도로 인식된다. 그래서인지 유진은 여행이 마무리되자마자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여행의 결말은 1장에서 두 사람이 영화관에서 함께 봤던 영화 <오르페>의 흐름과 비슷하다. <오르페>는 장 콕토의 영화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신화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랑에 빠진 오르페우스과 에우리디케가 결혼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는다. 슬픔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저승의 신에게 아내를 돌려달라 간청해 저승에서 에우리디케를 데려올 단 한 번의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앞서 신이 걸었던 조건을 잊고 실수를 저지르고 또 한 번 에우리디케를 잃는다. 유진을 얻었다 잃고, 다시 그를 얻기 위해 야헤가 있는 정글로 뛰어들었지만 영영 그를 다시 볼 수 없게 된 리의 이야기는 오르페우스 신화와 닮아있다.
의식을 한 겹 깨부수고 심장을 토하고도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은 파편화된 감정만을 남긴다. 혼자 남은 남자, 리는 그 파편들을 끌어안는다. 그것들은 리의 마음을 날카롭게 찌르지만 그는 절대로 그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정말 끝 맛까지 참 쓰디쓴 드라마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
- 씬 레드 라인 the thin led line - 테렌스 멜릭
씬 레드 라인 the thin led line - 테렌스 멜릭
'천국의 나날들'을 연출하고 무려 20년의 시간이 지나서 맬릭 감독은 새로운 영화 '씬 레드 라인'을 공개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후 서너 번을 더 봤다. 처음 보고 쓴 리뷰는 아래 있으니, 이번에 새로 보면서 느낀 부분을 정리해보자.
영화에서 '물'은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 물은 곧 '생명'이다. 영화의 시작, 중간 부분의 전투, 영화의 끝에서 물이 등장한다.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바다는 만물의 생명이 탄생하는 근원으로 보인다. 평화로운 남태평양의 섬에 주민들이 살아가고,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물에서 헤엄치며 행복하게 놀고 있다. 이 평화 속에서 군인인 주인공은 주민들이 군인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화로운 바다에서 나와 숲속으로 들어가면서 전투가 벌어지고, 병사들은 물이 부족해 힘들어 한다. 고지를 점령하기 전에도, 고지를 점령하고도 지휘관은 계속 물을 보급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물'은 갈증을 해갈하는 물질로써의 '물'이기도 하지만, '물' 그 자체가 생명을 상징한다.
여러 명의 주인공 시점으로 발화하는 나레이션은 그 상황에 맞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들의 독백처럼 들리는 이 나레이션은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기도 하다. 주인공 각자가 놓여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객관적 상황 - 전과의 전투 - 속에서 이질적이지만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이 영화가 다른 전쟁, 전투영화와 다른 점은, 전투를 '액션'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쟁, 전투'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멜릭 감독은 이 영화가 '전쟁 액션, 전투 액션' 영화가 되지 않도록 의도한다. 그렇다고 전투 장면이 적거나 대충 찍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어떤 전투 영화보다 뛰어난 장면들이 많고, 생생하며, 실감나는 전투 장면은 관객이 몰입하게 되는 힘이 있다.
그럼에도 전투의 사실성을 드러내면서도 관념화 하지 않으려는 장치를 곳곳에 넣고 있다. 총이나 폭탄에 맞아 죽거나 다치는 병사들의 비명이 거의 들리지 않고, 하반신이 사라진 군인의 처참한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의 모습을 희화화하지 않고 있다.
전투에서 이긴 쪽이나 진 쪽 모두 피해를 입었으며, 미군이나 일본군이나 군인의 생명은 다르지 않고, 누군가의 총과 폭탄에 죽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것이 정의인지 묻는다. 이 회의적 태도는 전쟁을 객관으로 바라보려는 것이며, 개인에게 생명은 오로지 단 한 번이라는 것에서, 전쟁이 인간을 소모품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고든 대령은 이 전투에서 공을 세워 장군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병사들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직업군인이다. 제임스 대위는 중대장으로서 자기 중대의 병사들이 적군의 총탄에 죽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 하고, 고든 대령과 대립한다. 이때 군인으로서 논리적인 주장은 고든 대령이 승리한다. 결국 눈앞에 있는 적과 싸워야 하고, 고지를 점령해야 하는 지상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터무니없는 공격 명령에는 따를 수 없다는 것이 제임스 대위의 생각이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지휘관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이 어떤가를 보여줌으로써, 전쟁 또는 전투를 지휘하는 고위 장교들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들은 승진에 관심을 두고, 병사의 죽음을 외면하며,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에 반발하거나 회의하는 지휘관은 제임스 대위처럼 중간에 군복을 벗어야 한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위트 일병은 6년 동안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음에도 계급은 일병이다. 그는 여러 번 근무지 이탈을 했고, 징계를 받아 진급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위트 일병의 태도는 관조적이고 집착과 욕망을 버린 초탈한 인물이다. 무엇이 그를 무심한 인간으로 만들었을까. 오랜 전투를 통해 위트는 삶과 죽음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을 수 있다. 그는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전투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자청한다. 그는 자신이 살아돌아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거나, 살아남는 걸 포기했는지 모른다. 그는 가장 위험한 전투에서 살아남았지만, 정찰을 나가서 일본군에게 포위되어 사살당한다.
위트 일병의 죽음으로 이 영화가 '영웅'을 만들 의지가 없다는 걸 분명히 하고 있다. 전쟁에서는 누구나 죽을 수 있으며, 살아남는 것은 오로지 '운'이 좋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즉, 전쟁, 전투에서 총알이나 폭탄은 우연한 작용이며, 그것은 개인의 의지, 희망, 계획 따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삶과 죽음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의미 없는가를 말한다. 인간의 주관적 의지는 마치 바다의 물방울처럼 거대한 파도의 한 부분일 뿐이어서, 외부의 조건 즉, 시대와 역사, 시간과 공간의 어느 순간에 놓여 있는 인간은 그 한계를 절대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제목이 늘 궁금했다. '씬 레드 라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무슨 뜻일까. 얇고 붉은 선이라니.
'나무위키'에서 설명한 것을 보니, '크림 전쟁' 때 영국군의 붉은 군복을 빗댄 별명이라고 한다. 러시아군과의 전투에서 영국군은 두줄로 가늘고 길게 늘어서 승리를 했고, 이 전투를 본 종군기자가 "A thin red streak tipped with a line of steel"이라고 쓴 데서 이 단어가 나왔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사용된 제목의 의미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일 수도 있고, '이성과 광기의 경계선'을 상징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테렌스 멜릭 감독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매우 잘 만든 전쟁영화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전쟁을 통한 인간의 광기와 성찰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원작이 있는 책을 바탕으로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과 주인공이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을 느리지만 깊이 있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어떤 전쟁영화와 비교해도 결이 다르다.
주인공과 그의 전우들, 중대장 스타로스 대위, 연대장 고든 대령으로 대표되는 인물은 이 전쟁을 바라보는 중요한 시각을 반영한다. 실제 전쟁의 상황으로만 봐도 미군이 과달카날 섬을 점령하지 않고, 지속적인 함포사격과 비행기 폭격만으로도 얼마든지 일본군을 전멸시킬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일본은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에게 선제 공격을 했지만, 그것이 미국을 이기겠다는 전술이 아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지기위한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유럽연합군에 의해 패퇴를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쏘련과 독일의 전쟁으로 이미 승패는 어느 정도 결정된 상황이었다.
독일과 일본은 추축국이었지만 그들끼리 연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리적으로 연합이 불가능했고, 미국이 초기에는 전쟁 군수물자를 엄청나게 유럽으로 보내면서, 초기에 독일에게 밀리던 유럽의 연합국은 군수품의 압도적인 우위로 인해 독일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좀 의아하겠지만, 미국은 쏘련에도 군수물자를 퍼부어 주었다. 미군이 비행기로 떨어뜨린 많은 군수물자가 독일군 진영으로 떨어지는 웃지 못할 일도 많이 발생했지만, 어떻든 쏘련군은 미국이 보내 준 다양한 군수품으로 인해 전투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병력 손실도 상당부분 막을 수 있었다.
과달카날 전투에서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투 가운데 사상 최대의 피해를 입는다. 이 영화에서도 미군의 피해가 막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휘관의 무능과 탐욕이었다는 것을 감독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는 고든 대령이 자신의 진급을 위해 끊임없이 중대장을 몰아부치지만, 사실 지휘부는 고든 대령 위에 있는 똥별들이다.
그들에게 병사들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은 애국심을 내세우지만, 정작 자신들은 가장 안전한 곳에서 지도 위에 빨간선을 그리는 것으로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전쟁터는 참혹한 장면들 뿐이고, 똥별과 똑같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지만, 전쟁의 논리는 지배자의 논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주인공 위트 일병은 전쟁터에 나온 군인이지만 그는 종종 무단으로 병영을 뛰쳐나와 혼자 돌아다니거나 원주민들과 어울린다. 보통의 경우 이런 병사는 당연히 군법회의에 회부되고 영창에 가게 되지만, 그를 이해하는 웰쉬 상사 덕분에 큰 문제 없이 군대생활을 하고 있다. 다만 진급을 못하는 것이 유일한 벌이다.
하지만 위트가 바라보는 전쟁터는 총탄과 대포가 날아다니고 군인의 몸이 갈기갈기 찢기거나 터져나가는 참혹한 현장이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과 싱그러운 바람과 구름과 따가운 햇살과 아름다운 원주민들과 고요한 바다가 있는 곳이었다. 그는 전쟁터의 가운데에서 오히려 평화와 고요를 느끼며 시간을 보낸다. 역설적이다.
전쟁영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전투장면이 있는데, 처음 이 장면을 볼 때, 내 심장 박동이 쿵쿵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실제 전투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테렌스 멜릭 감독의 연출은 탁월하다. 이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전쟁영화의 걸작으로 남을 수 있을 테지만, 이 영화를 빛내는 장면들은 전투 장면보다는 전투와 전투 사이에 보여주는 위트 일병의 일탈과 풍경들이다.
역시 전쟁영화 가운데 명장면의 하나인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마지막 장면이 평화로운 새소리와 함께 소리 없이 날아 온 총탄이었음을 떠올린다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보여주는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풍경은 전투를 겪는 군인이 가장 원하는 평화로운 풍경이며, 그것은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비현실의 풍경이라는 점에서 위트 일병의 환상일 수 있다.
과달카날 전투는 많은 미군이 사망한 격렬한 전투였고, 이 섬을 탈환하면서 남태평양에서 일본까지의 제공권과 제해권을 미군이 장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영화에서는 미군의 희생도 중요하게 다루지만, 적군인 일본군의 참혹한 상태도 보여주고 있다. 적군이니까 당연히 죽여도 좋다는 심리적 동조를 테렌스 멜릭 감독은 분명히 거부하고 있다.
일본군의 악명은 당대에도 이미 유명했지만, 그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이자 소모품으로 전락한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참혹한 장면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군은 미군에게 포로로 잡히기 전에 자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또한 참호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일본군의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이것은 일본군 개개인을 세뇌하고 강제한 일본 군국주의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또한 그들이 미군에게 포로로 잡혔을 때, 예상보다 훨씬 강렬하게 저항하는 것은, 미군들이 포로가 된 일본군의 피부를 산 채로 벗긴다는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군인 개개인의 전쟁범죄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강제였든, 세뇌였든, 빗나간 애국심이었든 자유로운 개인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책임을 방기한 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다. 그 당시 많은 일본 군인들은 잘못된 애국심으로 군국주의를 받아들였고, 군국주의의 체제를 내면화했다. 그것은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 국민의 정서와 결코 다르지 않으며, 국가의 범죄에 동조하고, 힘을 실어주었다는 점에서 단죄를 면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군국주의, 집단체제에 맞서는 개인의 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군과 일본의 군대 조직은 개인의 의지를 용납하지 않는다. 위트 일병의 일탈은 이런 집단에 맞서는 개인의 항의이며, 폭력을 만들어 내는 집단(그것이 미군이든 일본이든 상관 없다)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위트 일병이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과 평화로운 사람들은 그가 바라던 세상의 모습이었지만, 그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게 된다.
-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충격적인 '반전' 결말의 외국 영화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충격적인 '반전' 결말의 외국 영화들
안녕하세요, 영소남입니다. 요즘같이 추운 겨울날씨 속에선 충격적인 반전 영화를 보며 스릴감을 느끼는게 딱 좋은데요. 그래서 오랜만에 준비해보았습니다. 제가 살면서 본 외국 반전 영화들 중에 가장 최고였고 인상깊었던 20편의 반전 영화 모음집을요. 반전 영화를 찾으신다면 본 리스트 속 20편의 영화 어떠신가요? 아마도 굉장한 만족감을 느끼며 여러분도 충격을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서는 개봉 순서대로 나열 해보았습니다 !
• 본 글엔 스포일러가 자체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 여러분이 생각하는 영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반전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야곱의 사다리, 1990
감독/ 애드리안 라인 출연/ 팀 로빈스 등
드디어 이 영화를 소개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거의 반전 영화의 시초라고 보시면 될 듯한 <야곱의 사다리>인데요. 정말 영화의 반전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핵심 공포는 자꾸 사람처럼 생기지 않은 일그러진 얼굴의 환상, 환각 같은 걸 현실처럼 표현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결말과 반전을 위해 정신 이상자들이 경험하는 것들을 주인공이 경험을 한다던지, 환상과 꿈, 현실을 오고가며 무엇이 진짜인지 헷갈리게 한다던지 등의 다양한 볼거리를 쌓아가며 특별함을 선사해주는데요. 좀 오래된 영화이지만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긴장감 하나는 일품인 영화이니 꼭 한번 보시는걸 추천합니다.
세븐, 1995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브래드 피트 등
여러분은 이 영화 <세븐>의 반전이 다른 영화들에 비하여 약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7대 죄악에 맞춰 범죄를 실행하는 어느 살인마의 치밀함과 그 살인마를 쫓는 두 형사의 쫄깃한 이야기가 잘 버무러지고, 후반부에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반전까지 더해져 완벽한 미스터리/스릴러 영화가 탄생했다고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이 결말을 예상한 분들도 조금 있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케빈 스페이시의 대사를 듣고 굉장히 충격이었던 기억이 있는데 혹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화 <세븐>의 반전이 많이 약했던 것 같나요?
유주얼 서스펙트, 1995
감독/ 브라이언 싱어 출연/ 스티븐 볼드윈 등
90년대에 이런 말이 있었죠. 90년대 최고의 반전 영화는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 센스> 두 영화 중에 한 편이다. 저는 이 두 편의 영화를 접하기 전 이 말을 듣고 "에이 그래도 요즘 반전 영화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옛날 영화들을 보면서 충격을 먹겠어?"라고 생각한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난 뒤에 저는 요즘 반전 영화들을 볼 때보다 더 충격을 먹고야 말았죠. 영화를 아직 안보신 분들이라면 주인공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보시고,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추리해보거 생각하시며 보시면 더 재밌을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범인을 알고 보아도 충격을 먹었다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
더 게임, 1997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숀 펜 등
<세븐>, <파이트 클럽>을 모두 본 후, 여운이 너무 길게 남아서 두 편의 영화 감독인 데이빗 핀처의 다른 영화들은 무엇이 있을까 하다가 찾아보게 된 영화 <더 게임>. 처음부터 끝까지 끝나도 끝난 게 아닌 영화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영화인데요. 영화는 제목과 같이 인생이 바뀌게 되는 위험한 게임에 뛰어들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반전이라는 큰 재미도 있으나 <더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맞이하게 되는 게임으로 인해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 과정을 보는 사람의 호기심을 유발 시키는 연출로 심리를 자극하는 점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하지만 이 영화 <더 게임>의 결말은 약간의 호불호 갈릴 수도 있습니다.
식스 센스, 1999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출연/ 브루스 윌리스 등
<식스 센스>, 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도 모든 사람들이 반전의 내용을 알고 있는 작품이죠. 아마 반전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을 찾는게 더 힘들겁니다. 저 역시 반전을 알고 보았고요. 앞서 <세븐>과 <유주얼 서스펙트>, <야곱의 사다리>, <혹성탈출> 등의 영화가 나왔을 때에도 '반전'이 하나의 장르가 되진 않았는데 이 영화가 나오고 나서 하나의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는데요. 저는 반전과 결말 자체가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감동까지 주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지금까지 유명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과 브루스 윌리스의 감정적인 연기가 환상적이었죠.
파이트 클럽, 1999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브래드 피트
<세븐>부터 시작하여 <파이트 클럽>까지 90년대 중 후반을 사로 잡은 데이빗 핀처 감독의 작품들..! 정말 관객들을 상대로 반전 게임을 진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무엇보다 사물을 이용하지 않고 인물의 심리를 이용한 반전을 일으킨다는 점이 데이빗 핀처 감독 영화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단순한 두 남자가 만나 열정을 불태우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결말은 상당히 큰 충격을 안겨주었는데요. 초반 부와 후반 부의 분위기와 이야기 흐름이 극과 극이라 굉장히 긴장감 있게 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에드워드 노튼의 데뷔작 추리 범죄 반전 영화 <프라이멀 피어>도 보시는걸 추천해드리고 싶군요.
메멘토, 2000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가이 피어스 등
<인터스텔라>, <인셉션>도 좋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중 가장 많이 보고 많이 접했던 영화 <메멘토>, 이 영화의 결말을 알고 보아도 되냐고요? 됩니다. 색다른 촬영방식과 특이한 영화적 구성, 그리고 결말로 향하는 궁금증이 새로운 재미를 보여주니까요. 아마 첫번째 보았을 때랑 두번째 보았을 때 바라보는 자세와 느낌은 다를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처음엔 이 점이 충격이었다면 다음엔 또 이 점이 충격적일 겁니다. 한번 보고는 절대 모든 걸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거든요. 이게 바로 놀란 감독의 장점이죠. 그저 관람이 아닌 내가 영화에 직접 들어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또한 별로 아는 사람이 없지만 역시 충격적이었던 <프레스티지>도 꼭 보시는걸 추천합니다.
디 아더스, 2001
감독/ 알레한드로 출연/ 니콜 키드먼 등
빛을 보지 못하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두 아이와 그런 아이들을 홀로 지키며 어둠 속에서만 살아가는 여인에게 3명의 새로운 하인이 찾아오면서 벌어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디 아더스>. 많은 분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식스 센스> 이후에 최고의 반전 영화라고 불리울만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비록 신선한 소재에 비하여 생각보다 지루한 점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그 부분도 나중엔 떡밥이 되면서 마지막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왜 최우수 호러상을 받은지 알게 될거에요. 또한 이 작품이 리메이크 되어 재탄생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디 아더스>만의 어둠을 현대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살짝 걱정되군요.
엑스텐션, 2003
감독/ 알렌산드르 아야 출연/ 마이웬 등
누가 살인자고, 누가 피해자 인가? 벗어날 수 없는 두 소녀와 한 남자, 세 사람의 이야기 속 비밀을 파헤쳐가면서 최고의 긴장감을 보여주는 영화 <엑스텐션>, 이 영화는 마냥 살인자가 나와 사람들을 찔러 죽이는 슬래셔 무비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없는 숨막히는 긴장감을 선보여 주면서 관객들도 영화에 완전히 몰입시켜주는 작품입니다. 정말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스릴러 영화들 속 스릴감은 별거 아니다 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데요. 영화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까 마지막 결말에서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본지 오래 됐어도 반전은 아직도 새록새록한..!
아이덴티티, 2003
감독/ 제임스 맨골드 출연/ 존 쿠삭 등
반전 영화들 중에 최고의 광기를 보여주는 영화인 <아이덴티티>. 영화를 보다보면 후반 부에 반전이 여럿 나오게 되는데 몇 개는 예상이 되지만, 마지막 반전 만큼은 예상하기 힘든 영화이죠. 영화 속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주는 재미와 그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부터 일어나는 살인 사건들, 그 모든 것들이 초 중반 부를 이끌어 나가고, 후반 부터는 도대체 이 살인사건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결말을 추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걸 예상해도 진정한 끝은 예상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여러분도 꼭 한번 이 영화를 보면서 결말을 예측해보시길 바랍니다.
나비 효과, 2004
감독/ 에릭 브레스 출연/ 애쉬튼 커쳐 등
얼마 전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콜>.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바로 이 <나비 효과>라는 작품을 가장 먼저 떠올렸습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바뀐 과거로 인해 미래가 바뀐다?라는 게 굉장히 비슷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영화를 오늘 다시 보았습니다. 역시 명작이더군요. 여러분도 가끔 다시 그때 그 과거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나요? 영화 <나비 효과>는 그에 대한 즐거운 답변을 주지는 않지만 과거로 돌아가 내가 잘못한 부분을 바꾼다 해도 미래에선 새로운 잘못된 부분이 생겨난다는걸 깨닫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제대로된 소름을 겪어보셨으면 좋겠고, 메세지 역시 느껴봤으면 합니다.
스켈레톤 키, 2005
감독/ 이안 소프틀리 출연/ 케이트 허드슨 등
"뒷통수 한방 세게 후린 것 같은 결말이다"라는 영화의 평만 보아도 궁금증에 한번 보고 싶게 만들어주는 영화 <스켈레톤 키>. 영화 내에서 주어지는 정보와 떡밥으로는 절대 이 영화의 반전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정말 아무리 추리를 해보고 아무리 예상을 해보아도 모두들 단 한가지를 놓치고 아예 다른 길로 반전을 예상을 한다고 하더군요. 영화를 볼때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예상을 하면서 보는게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자칫하면 화가날 수도 있는 엔딩을 이리 안정적이게 표현했다는 것에 감탄하고 싶네요. 영화 <겟아웃>을 재미있게 보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스릴러 영화입니다
미스트, 2007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출연/ 토마스 제인 등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게 추리 영화랑은 거리가 먼 영화 <미스트>. 이 영화 속에 추리할만한 요소는 안개는 어디서 나온 것이며, 안개 속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정도 뿐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결말 부분에 있습니다. 아주 그냥 관객의 멘탈, 주인공의 멘탈, 모두의 멘탈을 휘어잡으면서 머리가 띵 해지는 결말이었죠. 아마 오늘 소개하는 영화들 중에 이 영화만큼이나 안좋는 충격을 준 영화는 없을 겁니다. 그정도로 찝찝한 영화이고 결말로 인해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린 영화이기 때문에 아직 못보신 분들은 각오 단단히 하고 보셔야 될겁니다. 허무하고 죽고싶은 그 짧은 순간.. 주인공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트라이앵글, 2009
감독/ 크리스토퍼 스미르 출연/ 멜리사 조지 등
이해가 안가는게 있어도 일단 끝까지 봐야되는 영화 <트라이앵글>. 그 끔찍한 결말과 마주하게 된다면 그 진실이 밝혀지게 된 순간에 다가오는 미친 공포는 어떤 영화와도 비교하기가 힘들죠. 무엇보다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봐야하는 영화입니다. 만약 자식들이 있다면, 여러분이라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선택할 수 있었을까요? 마주하기 싫은 일을 계속 맞이하게 된다면 그보다 큰 악몽이 어디있을까요? 타임루프물 안에 공포가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영화인 만큼 기존의 영화들과 다른 신선함을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트라이앵글', 제목 진짜 잘 지은듯!
오펀: 천사의 비밀, 2009
감독/ 자움 콜렛 세라 출연/ 베라 파미가 등
'비밀은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밝혀지면 너무 강한 스포일러가 되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정말 이 결말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한 결말을 보여주어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영화 <오펀: 천사의 비밀>. 누구에게나 다 비밀은 있지만, 이토록 놀라운 비밀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겠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깊었기 때문에 더 몰입하며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쩜 그 상냥하게 생긴 얼굴에서 그런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 영화를 본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서늘하네요. 군대에서 전역하고 나면 이 영화 꼭 한번 다시보며 그때 그 충격에 빠져보고 싶습니다.
셔터 아일랜드, 2010
감독/ 마틴 스콜세이지 출연/ 마크 러팔로 등
미쳐가는, 미쳐있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셔터 아일랜드, 여러분이라면 사건 수사를 위해 이 끔찍한 곳을 들어갈 수 있으신가요? 돋보이는 반전과 돋보이는 이야기 구성, 그 두가지 장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사람까지 미치게 만들어주는데요. 영화를 다 보고난다면 정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천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처음보면서 그저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 환자로 몰아가는 듯한 이야기인줄만 알았는데 결말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는데요. 최근에 개봉한 '판타지 아일랜드'..? 그 영화랑은 전혀 다른 아일랜드로 구성되어 있으니 혼자서 이 섬으로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그을린 사랑, 2010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루브나 아자발 등
반전도 훌륭하지만 절대 이 영화가 반전만으로 훌륭한건 아니죠. 영화를 다 보고난다면 탈진할 정도로 미친 몰입감을 선사해주는 연출과 충격으로 두 번 보고싶지는 않지만 절대로 잊혀질리가 없는 영화 <그을린 사랑>인데요. 전개 속도는 느리지만 그 느린 전개 속도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강력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몸소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컨택트>와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 당신은 천재적인 감독이자 예술적인 감독인 것 같아요. 현재 제작 중인 <듄>은 어떤 충격을 주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고 있습니다.
나를 찾아줘, 2014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벤 애플렉 등
이 영화는 단순한 납치 영화가 아닙니다. 단순한 영화였으면 본 리스트에 올라오지도 않았겠죠.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보며, 제목이 '나를 찾아줘'라길래 또 무슨 자아로 인해 반전을 주려나?하기도 하고 남자 주인공에 시선을 따라 이야기 전체적인 흐름을 보았는데, 전혀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영화를 다 보고난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결말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보았던 저는 큰 충격이었던 기억이 남아있는데요. 예상할 수는 있지만 너무 뻔하기 때문에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있던게 결말인 게 너무 놀라웠습니다. 벤 에플렉의 인생작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타임 패러독스, 2014
감독/ 마이클 스피어리그 출연/ 에단 호크 등
진짜 영화내내 뒤바뀌는 이야기 구성, 그리고 휘몰아치는 반전으로 인해 충격의 충격을 주는 영화 <타임 패러독스>. 에단 호크와 사라 스누크의 두 시점을 집중해서 영화를 바라보면 더욱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데요. 무엇보다 스토리 라인을 잘 잡아놓았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반전들이 나와도 납득이 가고 충분히 이해가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초반은 지루할 수 있어도 그 지루함을 견뎌낸다면 그 지루했던 과정이 나중엔 퍼즐조각으로 이어진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아, 처음부터 집중해서 봐야 더 큰 충격을 느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실겁니다. 영화를 보며 입을 몇번 막았는지 모르겠네요.
인비저블 게스트, 2016
감독/ 오리올 파울로 출연/ 마리오 카사스 등
드디어 마지막 반전 영화입니다. 미친 연출력으로 인하여 마지막까지 휘몰아쳐 긴장감을 주는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인데요. 초반에 반전 한번, 중반에 반전 한번, 마지막에 큰 반전 한번까지 탄탄한 과정과 짜임새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입니다. 영화가 약 106분의 러닝타임이지만 비록 느껴지는건 체감상 1시간 정도 영화를 본 것만 같이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하는 영화이죠. 아마 오늘 소개한 영화들 가운데선 가장 인지도가 낮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더 바디>에서는 아쉬웠던 연출 부분을 잡아내는 센스까지 보여주어 더 소름돋는 영화가 탄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소개하지 못해서 아쉬운 반전 영화는 <쏘우>, <더 바디>, <베리드>,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등의 굉장히 많습니다. 위 20편의 영화가 재미있었다면 저 영화들도 한번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본 콘텐츠는 네이버블로거 영소남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차린 건 많지만 먹을 건 별로 없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이한별/나나/고현정). 그녀에게는 비밀이 있다.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성인 방송 BJ로 활동한다는 것. 그녀가 마스크를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외모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함이다. 외모 때문에 연예인이라는 어린 시절 꿈도 포기해야 했던 그녀. 짝사랑하는 직장 상사 '박기훈'(최다니엘)에게도 무시당하는 모미는 인터넷 방송에서 자기 몸매와 끼를 뽐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어느 날, 모미는 회사에서 박기훈과 막내 여직원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다. 이를 이용해 짝사랑을 이루고 질투심을 해소하려던 그녀. 하지만 그녀의 정체를 아는 동료 '주오남'(안재홍)과 엮이기 시작하면서 그녀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이에 그녀는 주오남과의 문제를 해결하고, 얼굴을 바꿔 새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주오남의 엄마 '김경자'(엄혜란)가 그녀를 추적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마스크걸>, 주객이 전도되다
한국 사회에서 외모지상주의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취업, 연애, 결혼 등 인생의 고비마다 외모가 발목을 잡는다는 경험담은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미디어 역시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의 외모지상주의를 고발하는 작품은 장르를 불문하고 꾸준히 제작됐다. 멀게는 <미녀는 괴로워>부터 가깝게는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여신강림>, 그리고 <기기괴괴 성형수>에 이르기까지.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영상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김용훈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 드라마는 한 여성의 비극을 통해 외모지상주의 폐해를 고발하려 한다. 하지만 <마스크걸>은 절반의 성공이다. 총 3부, 130회에 이르는 웹툰을 410분, 7화 분량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주객이 전도됐기 때문이다.
피카레스크 구성으로 일군 절반의 성공
시작은 인상적이다. 전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처럼 각 중심인물 별로 에피소드를 분배한 선택이 적중했다. 옴니버스 구성, 특히 피카레스크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낸 결과 캐릭터의 동기와 선택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특히 김모미와 주오남, 김경자 중심으로 펼쳐지는 1~3화의 몰입력은 강력하다. 사실 김모미나 주오남은 일반적인 인물이 아니다. 외모로 인한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 마스크걸을 향한 집착은 극단적인 설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가 두 인물의 시점에서 같은 사건을 보여준 덕분에 자칫 지나치게 만화적일 뻔한 캐릭터에게 공감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
이에 더해 사건의 발단을 맡은 주오남은 물론, 드라마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김모미와 김경자의 서사는 유기적으로 얽혀 진행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빠져나갈 수 없는 악연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 장점은 1~3화의 특징 덕분에 더 눈에 띈다. 뒷 에피소드와 달리 도입부는 세 인물의 갈등과 조합이 두드러진다. 같은 사건을 상이한 시점에서 보거나, 시간대가 곧장 이어지는 에피소드이므로.
무너지는 성공 방정식
하지만 중반부부터 <마스크걸>의 성공 방정식은 독이다. 옴니버스, 피카레스크 구성은 필연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형식은 한 가지 공통 주제나 소재를 중심으로 연관이 없을지도 모르는 여러 이야기를 엮는다. 각 에피소드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캐릭터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묘사한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서사의 연결성이 약해져서 전반적인 디테일이나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마스크걸>의 각색은 옴니버스 구성의 약점을 극대화해 버렸다. 드라마를 7부작으로 구성하면서 원작 내용은 다수 생략됐다. 특히 원작의 1부와 3부 내용에 비해 2부 분량이 대폭 줄었다. 여기에 옴니버스 구조의 특징이 더해졌다. 도입에서 결말로 넘어가는 중간 과정의 디테일이 부재하고, 모미의 행적이 매끄럽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네 번째 에피소드가 문제다. 김춘애에게 초점을 맞춘 부작용이 크다. 초반부 김모미와 후반부 김모미는 별개의 캐릭터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4화에서 처음 등장한 나나의 김모미는 둘의 가교여야 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드라마는 오히려 춘애의 과거사에 주목한다. 모미는 그녀의 인생에 잠시 끼어든 조연일 뿐이다. 춘애가 중요한 캐릭터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녀는 4화 이후 등장이 없다. 그러니 모미의 변화도, 후반부 그녀의 감정선도 부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그녀가 주오남의 아기를 낳겠다고 말하거나 경찰에 자수한 동기는 이해할 수 있지만, 유추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성형 수술 전과 비교했을 때 감옥 안에서 보이는 모미의 성격이나 행동이 크게 달라진 점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극 중에서는 잠적 후 술집에서 일하기 전까지 그녀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 또 작중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모미는 외견상 전혀 임산부로 보이지 않는다.
장르적 쾌감을 잃다
덩달아 다른 문제가 파생된다. 우선 원작의 장르적 쾌감이 약하다. 따져 보면 작중 등장인물은 누구 하나 정상이 없다. 주인공부터가 악인이다. 김모미는 외모지상주의와 파렴치한 인간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다. 하지만 동시에 명백한 살인범이고 살인미수범이다. 주오남도, 김경자도, 김미모도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다. 이처럼 입체적인 인간이 서로를 비난하며 물고 뜯을 때 군상극, 곧 피카레스크의 재미는 극대화된다.
그런데 <마스크걸>은 장르적 재미를 스스로 포기한다. 일례로 원작에 없는 면죄부가 모미에게 매번 주어진다. 성폭행을 시도하던 핸섬스님은 주오남이 대신 죽인다. 강간범 살해는 자기 방어다. 탈옥은 딸을 구하기 위함이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그녀에게는 늘 정당한 이유가 생긴다. 그 결과 <마스크걸>은 피해자인 주인공이 인생 역경을 극복하는 흔한 감동 스토리로 귀결된다.
감독 전작을 고려하면 군상극을 포기한 결정은 의아하다. 마찬가지로 원작(소설)이 있는 군상극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는 악인들과 그들 사이에 낀 소시민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살렸기 때문. 영화는 등장인물을 '짐승'으로 비유했다. 악인들의 욕망과 비윤리적인 행동을 짐승에 빗대고, 동시에 오직 생존이 목적인 소시민들의 짐승적인 본능도 놓치지 않았다. 이를 보면 감독이 각색 능력이 없거나 극단적인 인물을 묘사하는 데 거부감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마스크걸>의 결과물에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차린 건 많은데 먹을 게 없는
군상극을 포기하자 <마스크걸>이 제시한 여러 사회적 주제도 평면적으로 소비되고 만다. 일단 작품의 핵심 주제여야 할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에는 힘이 안 실린다. 모미의 서사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성형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는 데 실패한 대가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주제의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모미의 성형 이유를 그녀가 겪은 차별에서 찾아야 했다. 그녀는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숱한 모욕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녀가 BJ 활동을 하다가 인생이 꼬인 근본적인 원인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정작 드라마는 그녀가 살인범으로 잡히지 않으려고 성형을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마스크걸'이라는 소재의 파급력도, 성형의 중요성도 약해진다. 고현정의 모미를 굳이 마스크걸이라고 지칭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데서 문제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다른 소재가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도 아니다. <마스크걸>에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 외에도 많은 사회적 이슈가 담겨 있다. 인터넷 방송, 스토커, 몰카, 가정환경의 중요성, 교도소 내 권력 문제... 선악이 공존하는 등장인물의 행동은 도덕적, 종교적 문제로 확장될 여지도 남긴다.
하지만 이 주제들은 극 전반적으로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한 에피소드 내에서의 양념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마스크걸>은 오히려 방향성을 잃는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애매하다. 차린 건 많지만 먹을 게 없는 셈이다.
용두사미로 끝나다
옴니버스 형식의 필연적인 약점. 무리한 축약으로 인한 장르적 재미 감소. 약해진 주제의식. 세 가지 문제가 결합된 결과 <마스크걸>은 용두사미로 끝나고 만다. 독특한 소재를 내세운 도입부와 달리 후반부는 평범하다. 도입부에서 캐릭터에게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 역시 차별점 있는 캐릭터가 없다는 단점으로 돌변한다.
실제로 후반부는 아들의 원한을 갚겠다는 엄마와 딸을 구하려는 엄마의 싸움이 펼쳐진다. 다른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익히 본 신파로 가득하다. 초반부의 기괴한 분위기와 후반부의 전개를 대조하면 이 결말은 더욱 전형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여러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와 다를 바 없는 행보다. 원작과 아이디어는 참신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지탱 못하고 무너진다. <택배기사>나 <종이의 집>,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
그래도 위안이라면 배우 한 명 한 명의 존재감을 뽐내는 데는 성공했다는 점이다. 배우의 연기력만 감상해도 결말까지 정주행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찾을 수 있을 정도다. <마스크걸>이 데뷔작인 이한별은 원작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며 초반부 눈길을 사로잡았다. 안재홍의 주오남은 괴기한 초반부 분위기를 단숨에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중후반부부터는 엄혜란이 시청자를 빨아들인다. 아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습은 <더 글로리>에 이어서 다시 한번 분위기를 주도하는 존재감을 뽐냈다. 나나와 고현정 역시 각본상 어느 정도 결함이 있는 캐릭터를 맡았지만, 한계선 내에서는 각자 역할을 충실히 다해냈다.
Poor 형편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를 보는 맛에 정주행 한다.
-
- 균열을 만드는 수많은 지진 속에서도 각자의 중심을 잡고 나아가려는 청춘
#50회서울독립영화제
근미래의 도쿄, 음악에 빠져있는 유타(구리하라 하야토)와 코우(히다카 유키토). 클럽에서의 EDM 공연을 규제하는 정부. 음악은 주인공이 사회에 던지는 반항의 상징이자, 재능 있는 개인을 그저 억압하는 정부의 부조리함을 증명하는 요소이다. 유타와 코우가 공무원들에게 로비하는 교장 선생님의 노란 차를 거꾸로 꽂아버리는 대담한 행보로 시작한다.
불안의 시각화, 지진
다수의 국민 사이 균열은 필수불가결하다.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인 지진과 같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해피 엔드>에서는 ‘지진 경보’를 시작으로 땅이 흔들리는 것만 지진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클럽, 신념이 다른 코우와 유타가 충돌할 때, 밍과 아타가 떨어뜨린 조명이 흔들린다. 이 조명은 코우와 유타의 그림자를 흔든다. 영화 초반부의 코우는 어두운 계단에 서서 유타에게 돌아갔지만, 다름을 자각한 코우는 유타를 떠난다. 영화 후반부, 교장 선생님이 자신의 차를 거꾸로 내리꽂은 범인이 자수를 하면 감시 시스템 철회에 합의하겠다고 한다. 유타는 코우를 위해, 전교생 앞에서 자수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코우네 가게, 대학 장학금에 합격한 코우지만 얼굴이 심히 어둡다. 흔들리는 조명을 바로잡아 보지만, 여전히 흔들린다. 다섯 아이에게 균열이 생길 때마다, 서로 다름을 깨달을 때마다 지진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AI 감시 카메라, 보수 정권의 인권 침해
불량한 행실이 카메라에 찍히는 학생에게 즉시 벌점을 부여하는 시스템이 도입된다. 하지만, 감시 카메라에는 빈틈이 있다. 사각지대에서 유타가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리자 한 남학생이 이를 꾸짖으며 담배꽁초를 집어 든다. 이때 카메라에 잡힌 학생이 계속해서 벌점을 부여받는다. 아이들은 감시를 통해서 변화하지 않는다. 아이들뿐 아니라 감시와 통제로 국민들을 제어할 수 없다. 반드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네오 소라 감독은 독재와 감시, 뿌리 깊은 시스템의 문제를 꼬집는다.
거울로 비춘 듯한 권력자
수업 시간, 자위대에서 특강을 하러 온다. 하지만, 자국민이 아닌 학생들은 들을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한다. 부당함을 참지 못한 몇몇 학생들은 들고 일어서 교장실로 향한다. 교장 선생님을 가둔지 오래되었을 때, 교장을 받드는 한 선생이 일식 도시락을 전달한다. 학생들은 도시락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교장 선생님에게 순응하지 않고 버린다. 이때 교장 선생님과 권력자가 겹쳐진다. 총리에게 행해진 도시락 테러, “아깝게..”라며 저항하는 시민을 멸시하는 장면이 겹친다. 학교는 독재와 억압이 판치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코우는 한국을 상징하는 ‘김밥’을 들고 가서 친구들과 뜻을 함께한다.
‘자유’란
코우와 유타는 합심하여 음악 장비를 옮긴다. 그 길은 가파르고, 울퉁불퉁하고 경찰에 의해 막아진다. 외국인인 코우에게 거주 증명서를 내놓으라며 잡아간다. 이방인 혐오로 가득한 사회에서 한국계 재일교포인 코우는 경찰에 같이 잡혀도 차별을 당한다. 유타는 땀을 흘리며 홀로 장비를 끌고 클럽으로 향했지만, 내진 설계를 위한 재건설로 아이들의 아지트는 사라지고 음악 장비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다. 지진과 사회, 개인의 다름은 아이들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이때 유타는 결심한 듯하다. 같은 장난을 저질러도, 외국인인 코우와 자국민인 유타는 다르다는 것을.
돈독한 우정의 두 주인공은 사실 너무나도 다르다. 코우는 부조리한 구조 퇴치, 구조적인 자유가 진정한 자유를 불러온다고 믿고, 이 과정에서 시위에 참여하는 후미와 뜻을 함께 한다. 유타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원하는 것을 하며 즐기는 것이 자유라고 믿는다. 시위를 한다고 이 썩은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신념의 두 주인공은 충돌한다. 코우와 유타는 다르지만, 원하는 바는 같다. ‘자유’이다. 두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를 추구한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서로 사랑한다. 유타는 철없는 어린 애로 통하지만, 사실 유타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도, 앞으로는 다 같이 놀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유타는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것이다. 코우가 장학금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온전히 자신이 책임을 진다. 코우는 부조리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코우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수를 선택한다. 사랑하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성장한다.
갈림길에 선 미성년
다섯 아이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간다. 똑똑한 밍은 초등학교 수준의 중국어라는 언어의 벽으로 아버지와 대화하기 어려워했지만, 함께 밥을 먹으러 간다. 미국인 톰은 자국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나라에서 살게 된다. 복장 불량으로 벌점 10점을 받던 아타는 패션 디자인의 재능을 찾는다. 철이 들면서 서서히 멀어지는 청소년들. 함께 해서 행복한 순간들이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자각하며 성장한다. “또 보자.”라고 말하지만, 다시는 예전과 같이 만날 수 없단 것을 알고 있다.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아간다. 모두가 그렇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언젠가는 멀어진다. 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며 성장했던 추억은 영원히 남는다.
갈림길에 선 유타와 코우. 그리고 유타가 코우의 가슴을 찌르는 프리즈 프레임.
그 순간 두 아이는 함께 했고, <해피 엔드>의 프리즈 프레임처럼 영원히 정지된 이미지로써 기억될 것이다. ‘HAPPYEND’로.
-
- 잃어버린 이름과 팔려나간 아이들
조세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케이 넘버>는 입양자 가족 찾기 서사가 아니다. 이 영화는 해외 입양을 개인의 선택이나 운명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감독은 해외 입양된 사람들이 왜 부모를 찾으려 하는 지를 보여 준다. 그렇게 점차 밝혀지는 진실은 해외 입양이야말로 한국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임을 직시하게 만든다.
영화는 1970년대 초 서울 길거리에서 발견되어 미국으로 입양된 미오카 밀러의 실화를 중심에 둔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하나의 사례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를 따라가다 보면, ‘해외입양’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을 수출하듯 내보냈던 한국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난다. 영화 제목인 <케이 넘버>는 해외 입양아에게 부여된 일련 번호다. 인간에게 붙은 숫자, 이름 대신 번호로 존재해야 했던 현실은 그 자체로 입양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시스템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케이 넘버>의 입양인들이 생모를 찾는 이유는 단지 혈연의 회복이 아니다. 정체성의 회복이다. 미오카 밀러는 자신의 엄마가 자기를 버렸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엄마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엄마를 찾는다. 이는 한국의 그 당시 여성들의 고통 아픔과도 연결된다.
수많은 해외 입양자들이 길거리에 버려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자신의 자식을 길에다 버리는 엄마는 실제로 얼마나 될까? 수십만명이 넘는 어린아이가 길에서 버려진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영화는 해외에 입양간 입양자들의 찾아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 또한 한국의 해외 입양 시스템이 큰 문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보통의 한국인들이 해외 입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해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보통의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 문제가 그동안 얼마나 감춰지고 숨겨지고 무관심했던 한국의 현실을 보여 준다.
이러한 질문은 개인적 고민이 아니다. 가족도 이름도 빼앗긴 존재가 남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구조적 상처이다. 이는 자본주의와 국가 시스템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소비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고발이기도 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영화가 입양인의 시선에만 머물지 않고, 아이를 떠나보낸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까지도 끌어안고 있다는 점이다. 생모들은 대부분 미혼모였다. 사회적 낙인과 제도적 지원의 부재 속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키울 수 없도록’ 강요당한 여성들이다.
어떤 이는 분만 직후 아이를 얼굴도 못 본 채 빼앗겼고, 어떤 이는 병원 서류 하나에 서명하며 ‘아이를 포기했다’는 낙인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 감독은 이 고통을 단지 개인의 불운이나 선택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이는 국가와 사회의 명백한 방조이며, 때로는 적극적인 개입이었다.
영화는 1970~80년대 한국 정부가 경제적 실리와 외교적 명분을 위해 해외 입양을 조직적으로 장려했음을 지적한다. 아이들은 복지를 위한 희생양으로 미화됐다. 그 이면에서 국가는 사회 문제를 외면한 채 ‘인간 수출’에 가까운 구조를 방치하거나 조장했다. 이 영화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침묵의 공범자에 한국 사회 전체가 포함돼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케이 넘버>는 미오카 밀러의 여정을 따라가면서도 다수의 입양인 증언, 서류, 과거 영상 그리고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층적으로 구조화된다. 감독은 감정적 몰입에 기대지 않고, 증거와 목소리로 관객을 설득한다. 그렇기에 영화의 충격은 오히려 더 깊다. 이 다큐멘터리는 관객의 눈을 적시는 대신, 외면하고 있던 사회의 민낯을 들이민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아이들이 거래되던 이 잔혹한 역사를, 한국 사회는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정체성을 잃은 사람들, 아이를 잃고도 죄책감을 떠안은 여성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방관하거나 정당화해온 사회는 이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영화는 요구한다. 반성 없는 발전은 없다. 기억하지 않는 사회는 정의로울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제목: 케이 넘버 (K-Number)
감독: 조세영
각본: 조세영, 남순아
촬영: 조영춘
편집: 이윤정
제작사: 선보필름
배급사: 마노엔터테인먼트
러닝타임: 112분
장르: 다큐멘터리
개봉일: 2025년 5월 14일
+씨네랩 초청으로 참석했습니다
-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끝장리뷰 | 개구리들의 연대 | 적색 vs 청색, 숲속 vs 도시 | 부성애의 세계 | 결말해석 | 술래, 숲속 상징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개구리들의 연대
Chapter 2 부성애의 세계, 숲속 vs 도심, 적색 vs 청색
00:00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00:52 아쉬운 지점들
02:16 개구리들
05:16 술래 의미
06:04 부성애의 왕국
06:46 숲속 의미
09:22 적색 vs 청색
10:29 별점 및 한 줄 평
10:49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도없는숲속에서 #아무도없는숲속에서리뷰 #아무도없는숲속에서해석 #아무도없는숲속에서넷플릭스 #아무도없는숲속에서드라마 #아무도없는숲속에서시리즈 #아무도없는숲속에서후기 #아무도없는숲속에서결말 #김윤석 #모완일 #고민시 #윤계상 #이정은 #박지환
-
- [Movielog #28] 복제인간이 묻는 삶과 죽음의 의미-영화 서복
공유와 박보검 배우가 주연한 영화 서복이 지난 주 개봉했습니다.
불신지옥, 건축학개론을 연출했던 이용주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인데요.
이번에도 드라마적인 이야기가 강한 영화입니다.
복제인간이 등장하기 때문에 SF장르의 표피를 두르고 있고 액션도 가미되어 있는데요.
이 영화는 볼거리 보다는 두 주인공 기헌과 서복의 관계를 통해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는데 더 집중하고 있어요.
그래서 다양하고 박진감 넘치는 볼거리를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실망하실 거에요.
그래도 공유와 박보검의 연기가 좋은데, 특히 박보검 배우는 서복과 너무 잘 맞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샹을 참고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
- 영화 <더 나쁜 녀석들> 메인 예고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재소자 벤 하시가 중태에 빠지자 민심은 격양된다.
한편 벤 하시의 출신지역으로 순찰을 돌던 경찰 젠스와 마이크는
불량해 보이는 소년 새미를 특별한 이유 없이 단속한다.
새미를 연행하려던 찰나 벤 하시의 사망 소식이 들리고,
이어서 그들이 탄 차는 무장 폭도들에게 습격을 당한다.
걷잡을 수없이 커져버린 폭동에 경찰 본부 지원마저 끊겨버리고,
무장 폭도들에 둘러 쌓인 그들이 도망칠 구멍은 보이지 않는데..
과연 젠스와 마이크는 이 혼란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
- 영화 <완벽한 축사를 준비하는 방법> 메인 예고편
PM 5:24 | 연애 거리두기 38일째, 소니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PM 6:56 | 소니아가 문자를 확인했다.
PM 8:07 | 소니아의 답장은 여전히 없는데 눈치 없는 누나와 예비 매형이 내게 결혼식 축사를 부탁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축사를 망치고 모두의 원망을 듣는 나의 미래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아 두렵다.
그나저나 소니아는 왜 문자 답장이 없을까?
연애가 복잡한 나! 사람들과 섞이기 어려운 너?
관계가 서툰 우리 모두를 위한 공감 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