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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I2025-06-13 10:42:48

비극(悲劇)을 비극(非劇)으로 그리다

영화 <엘리펀트> 리뷰

이 글은 영화 <엘리펀트>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알렉스 프로스트, 에릭 두런, 존 로빈슨

 

5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감독상 수상작인 <엘리펀트>는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이다. 여러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이 작품은 여느 실화 모티브 영화들과는 다른 지점들을 갖고 있다. , 극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과 포스터를 가진 영화인데, 그 이유에 대해 조심스레 추측해보고자 한다.

 

 

 

 

비선형적 구조와 평범한 캐릭터

이 영화는 아버지와 차를 타고 등교하는 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와 아버지 사이의 대화는 일반적이며 학교에 도착하는 시점까지 별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인물 사진을 찍는 엘리의 시점으로 넘어간다. 그 또한 다른 학생들과 평범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네이트의 시점. 운동장에서 학교로 들어간 그는 여자친구 케이트를 만난다.

 

이 영화를 재난 영화로 본다면, 옵니버스식 구조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여타의 재난 영화들에서도 각 캐릭터들에 서사를 부여해, 그들이 하나의 재난 앞에 내놓는 구조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펀트>는 다른 영화들과는 무언가 다르다. 이 영화는 롱테이크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인물의 뒤를 쫓으며 그들의 서사와 다른 이와의 관계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렇게 인물 파악이 끝나고 다음 사건을 기다리는 순간, 감독은 시점을 바꾼다. 다른 지점에서 시작된 다른 인물의 행적은 왠지 모를 기시감을 가져다주는데, 실제로 영화 속 캐릭터들의 동선은 서로 겹치기도 하며, 이미 보았던 장면을 다른 캐릭터의 시점으로 다시 접하기도 한다.

 

인물들의 서사를 쫓던 관객들은 이내 진실을 알게 된다. 그들이 마주했던 캐릭터는 너무나 평범하며 그들의 시점 조각들을 하나의 퍼즐로 완성했을 때, 거대한 코끼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코끼리는 학교라는 공간, 그리고 그들이 곧 마주할 비극이다.

 

 

 

 

악몽의 16

영화의 후반부, 두 남학생이 총을 챙겨 학교로 향한다. 그들은 학교를 나서는 존과 먼저 마주한다. 그리고 존에게 돌아오지 말라고 경고한다. 존은 엘리와 인사를 나누고 나오던 참이었다. 급식실에서는 세 여학생이 학교를 나서는 존을 발견한다. 그 시각 미셸은 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한다. 마침 엘리는 도서관에 들어선다. 그들의 시점은 한 곳에서 모아진다.

 

그 순간 총을 든 남학생들이 도서관으로 들어서고, 미셸과 엘리에게 총구를 겨눠 방아쇠를 당긴다. 그들은 복도로 나와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총을 난사한다. 급식실에 있던 세 여학생은 화장실에 있었다. 그녀들이 바깥 소리에 무심할 때, 총을 든 남학생 하나가 화장실로 들어온다. 학교 내부는 아수라장이 된다. 경고를 들었던 존은 자신과 함께 학교로 왔던 아버지를 찾는다.

 

두 남학생의 학살은 약 15분간 이어진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학생들은 알 리가 없다. 동시에 관객들 또한 혼란스럽다. 총을 든 남학생들에게서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극은 일상 속에서 발생한다

이 영화 속 사건은 실화이며, 그 실상 또한 끔찍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차분하며 클라이맥스 씬 또한 처연하게 느껴진다. 이유는 정말 영화 속 대부분의 시간에 특별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스 반 산트는 비극(悲劇)을 비극(非劇)으로 그려냈다. 다시 말해 심하게 슬픈 사건을 심하지 않게 그려냈다. 그들의 서사, 사건의 인과관계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사건이나 감정을 과장해서 그리지도 않았다. 그에게서 이 사건은 일상 속에 갑자기 찾아온 사고에 가까운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왜 <엘리펀트>인 것일까? 여러 해석들이 존재하지만, 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는 사자성어의 뜻처럼 일부를 통해 전체의 것을 파악하는 것에 대한 비유라는 의견이 정론이다. 사건이라는 것은 매우 복합적이면서도 우연적인 요소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하나의 정답을 찾을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건 이전과 이후의 상황이며, 그 속에 있었던 사람들 또한 포함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 속 캐릭터를 맹인과 같은 위치에서 볼 수도 있다. 관객은 캐릭터들의 관계, 상황을 조합해 큰 틀을 만들 수 있지만, 각 인물의 시점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들이 무척 많다. 결국 그들은 코끼리의 일부를 만졌을 뿐이며, 그들의 일상에 찾아올 비극의 순간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를 본 우리 또한, 코끼리의 전부를 볼 수 없다.

 

작성자 . C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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