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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5-06-12 18:51:51

우리의 종착지는 불행이 아니야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2025)

 

 

 정해진 대로 사는 것이 과연 정말 ‘나’의 행복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네스트는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꿈인 음악가로 살기 위해 좋은 직업을 가진 부모와 집안을 뒤로한 채 고향인 샤라비를 떠난 것이다. 망가진 바이올린을 고치기 위해 다시 돌아간 샤라비는 여전히 법을 정확하게 지키며 어네스트로 인해 음악이 금지되어 오로지 ‘도’만 소리 낼 수 있는 곳으로 변해 있다. 음악이 금지된 이유 역시 쉬이 납득할 수 없는데, 판사가 되기로 했던 어네스트가 도망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샤라비에 거주하는 모든 곰들의 멜로디를 앗아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이라는 이유로 체제에 순응하는 곰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미파솔과 음악 부흥회는 사라진 멜로디를 되찾기 위해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악회를 통해 음악을 간직하고 있다. 법을 어기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법이,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계속해서 알리는 역할을 한다. 셀레스틴은 이러한 샤라비의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계속해서 어네스트의 바이올린을 고치고, 음악을 되찾아 주기 위해 노력한다. 미파솔 다음으로 샤라비에 균열을 가하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판사라는 직업은 이미 좋다고 평가된 대상이다. 어네스트의 아버지 역시 그렇게 믿어왔기에 어네스트에게 계속해서 판사라는 직업을 강요한다. 자신 역시 음악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샤라비에 거주하는 모든 곰들은 자신의 미래의 직업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법에 따라 직업이 ‘결정되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행복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정해진 대본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은 곧 자신을 잃어가는 것인데도 말이다.

 

 

 

 

 

 

 

 모든 직업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사회가 정한 ‘좋은 직업’에서 이탈하면 불행해질 것이라는 위협을 받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어네스트 역시 판사라는 직업에서 이탈했기에 어네스트가 사랑하는 음악이 금지되어 모두가 불행해졌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마치 그 결과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그런 결과를 피하도록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나아가기 위해 현실을 거부하고 불합리한 체제에 불응하는 이러한 선회를 해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의 편협한 행복 대본에 아이들을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대본의 약속에서 벗어났기에 어네스트는 셀레스틴이라는 소중한 우정도 만날 수 있었다. 셀레스틴과 어네스트는 서로가 원하는 행복에 가까워지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어네스트는 셀레스틴에게 가족을 만들어 줬으며, 셀레스틴은 어네스트가 사랑하는 음악을 다시 되찾아 주었다. 이렇듯 사회가 정해 둔 약속에서 벗어나는 경험은 늘 우리를 어딘가로, 어쩌면 더 넓은 세상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인 것이다. 누군가가 정해 준 목표를 현실로 만드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목표를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음표라는 취향을 찾다 보면 결국 멜로디라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 틀림없기에. 

 

 

 

<해당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것입니다.>

작성자 .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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