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두codu2025-07-25 09:00:50
이게 록이야 영화야 <스탑 메이킹 센스>
조나단 드미 <스탑 메이킹 센스>
이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넉넉한 밝은 회색 정장을 입은 깡마른 남자가 통기타 한대를 둘러메고 나타난다. “테이프 하나 틀게요.”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단출한 반주에 맞춰 노래가 시작된다. 그는 순식간에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첫 번째 곡 ‘사이코 킬러(Psycho Killer)’부터 이 영화는 음악만으로 승부하겠다는 일종의 신념이 느껴진다. 토킹 헤즈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번은 독특하고 위태로운 스텝으로 무대를 휘저으며 다닌다. 무대는 이미 그의 몸짓과 음악으로 가득히 메워진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무대 위의 연주자는 늘어난다. 베이스 기타의 티나 웨이머스, 드럼의 크리스 프란츠, 키보디스트 제리 해리슨 그리고 각종 타악기와 코러스까지. 혼자로도 무대를 가득 메우던 그는 모든 구성이 갖춰진 밴드 사운드 속에서 날아다닌다. 아니 뛰어다닌다.
정말 아무런 정보 없이 봤다. 토킹 헤즈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이 영화가 그들의 무대로 꽉 차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러나 이런 사람도 즐거이 볼 수 있다면, 토킹 헤즈를 알고 록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은 얼마나 즐겁게 볼 수 있을까. <스탑 메이킹 센스>가 인터뷰 하나 없이 공연으로만 구성된 비전형적인 음악 영화라 해도 영화로서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공연 실황과 다른 점은 감독의 의도가 충분히 들어간 카메라의 숏과 움직임에 있다. 조나단 드미 감독은 이들의 무대를 연속적인 서사로 담아내기 위해 분위기와 가사에 따라 멤버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무대를 롱숏으로 담는다.
악기 구성이 하나씩 추가되는 연출 역시 다분히 연극적이다. 어두운 옷을 입고 악기가 올려진 검은색 단을 움직이는 스태프들은 연극 무대를 꾸미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악기가 늘어갈수록 음악 역시 자연스럽게 고조된다. 그렇게 완성된 구성으로 이어지는 무대에서는 조명의 극적 사용도 이루어진다. 인물들의 얼굴 바로 아래에 위치시킨 로우키 조명은 극적인 분위기를 드리운다. 조명은 무대 뒷면에 그림자를 만들기도 하면서 연주자의 움직임과 동선을 하나의 면으로 얽어낸다. 거실에 있을법한 스탠드 조명을 흔들며 무대를 즐기는 모습은 록 밴드의 무대에서는 생소한 풍경이다.
이 영화의 서사는 토킹 헤즈의 무대 그 자체다. 메시지도 연기도 무대에 모두 담겨 있다. 음악과 화면을 따라 그 흐름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야 비로소 카메라는 무대를 즐기는 객석의 관객들을 비춘다. 스크린 앞의 좌석에 앉아 허락된 만큼만 얌전히 몸을 흔들던 현대의 관객도 마음속으로는 그들의 흥과 동화되어 있다.
그 끝없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토킹 헤즈는 엄청난 에너지로 각 무대를 채운다. 나는 일면식도 없는 40여 년 전의 밴드와 그들의 무대를 스크린을 통해서도 감응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토킹 헤즈가 1974년에 결성되었고, <스탑 메이킹 센스>는 1984년에 개봉되었다. 토킹 헤즈가 1991년에 해체되었으니 <스탑 메이킹 센스>를 통해 본 이들의 무대는 영원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무대와 이 시절의 감성은 영화라는 매체가 어떤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둘 수 있는 영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이제는 전설이 된 1984년의 토킹 헤즈를 타임캡슐처럼 고이 간직해 놓은 이 영화가 누군가에게는 큰 기쁨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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