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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DAY2025-06-09 20:59:00

드래곤 길들이기 | 모범생이지만 아류일 뿐인 리메이크

<드래곤 길들이기>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수백 년간 이어진 바이킹과 드래곤의 전쟁. 드래곤과의 전투가 곧 삶의 모든 목적인 버크 섬에서 강력한 무력도 없고, 드래곤을 죽일 용기도 없는 '히컵'(메이슨 템즈)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히컵은 족장이자 혼자서 드래곤을 대적할 수 있는 전사이고, 히컵의 아버지인 '스토이크'(제라드 버틀러)와 갈등을 빚는다. 드래곤에게 아내까지 잃은 스토이크가 보기에 히컵은 바이킹으로서도, 아들로서도 낙제점이기 때문.

 

 

 

어느 날, 히컵은 부상당해 숲에 고립된 전설 속의 드래곤, 나이트 퓨어리를 만난다. 히컵은 그를 죽여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 하지만, 끝내 드래곤을 죽이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나이트 퓨어리에게 ‘투슬리스’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바이킹의 규칙을 어긴 뒤 그와 친구가 된다. 이를 계기로 인간과 드래곤이 공존할 방법을 고민하는 히컵. 그러나 스토이크가 드래곤과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인간과 드래곤의 우정은 시험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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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 영화의 숙명

 

리메이크 영화에게는 한 가지 숙명이 있다. 원작을 다시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를 작품 내에서 증명해야 한다는 것. 리메이크의 대상이 되는 영화들은 보통 평단의 호평이나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미 잘 만들어진 작품에 손을 대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리메이크 영화는 근본적인 존재의의를 찾기 어렵다. 단순히 원작을 재현할 거라면 원작을 다시 보는 게 적절한 선택일 테니까.

 

 

 

디즈니가 리메이크한 <라이온 킹> 실사영화가 대표적인 예시다. 실사판 <라이온 킹>은 어색한 CG만큼이나 리메이크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내용을 구체화한 것 외에는 원작 애니메이션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다시 만들어야 할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한 결과 <라이온 킹> 실사판은 전 세계 15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기록하고도 원작 애니메이션의 아성을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영화 중 처음으로 실사화된 <드래곤 길들이기>도 비슷한 함정에 빠졌다. 원작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감독이었던 딘 드블루아가 연출을 맡은 덕분에 <드래곤 길들이기>는 원작의 설정, 볼거리, 메시지를 모범적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 시점에 리메이크가 필요한 이유를 끝내 못 보여준 나머지 <드래곤 길들이기>도 결국 원작 애니메이션의 아류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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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정치적 올바름' 활용범 

 

지난 몇 년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프로젝트가 불만족스러웠던 관객이라면 <드래곤 길들이기>는 사실 꿈같은 선물과도 같다. '실사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원작의 설정과 볼거리, 메시지를 모범적으로 재현해 냈기 때문. 특히 근래 할리우드에서 끊이지 않는 정적 올바름과 관한 논란을 영리하게 피해 가고, 더 나아가 정치적 올바름을 적재적소에 활용한 각색이 인상적이다.

 

 

 

겉보기에는 <드래곤 길들이기>에도 논란거리가 될 만한 장면이 존재한다. 바이킹이 주인공인 작품에 흑인, 동양인 바이킹이 등장하고, 흑인 혼혈 배우인 니코 파커가 전형적인 금발 백인 여자 주인공 '아스트리드'를 연기하기 때문.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실사 영화에서 변경한 버크 섬과 바이킹 설정 덕분에 세계관은 더 확장되고 비장한 분위기가 강조된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실사영화에서 버크 섬은 인류의 최전방 기지처럼 묘사된다. 인류는 전 세계에 있는 드래곤들과 싸워왔고, 그 과정에서 사막도 비단길도 건너온 여러 민족의 전사가 드래곤들의 둥지에 인접한 버크 섬에 보여서 자신들을 바이킹으로 칭했다는 것. 그 덕분에 흑인이나 동양인 바이킹의 존재는 원작 왜곡이나 훼손과는 다른 맥락으로 수용될 수 있다.

 

 

 

초반부 회의 장면만 봐도 그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원작에서 이 장면은 스토이크가 계속되는 드래곤들의 공격에 지친 바이킹들을 격려하는 장면에 가깝다. 반면에 실사 영화에서 스토이크는 회의를 통해 바이킹의 역사를 언급하며 드래곤과 싸워야 하는 당위, 드래곤들의 둥지로 원정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역설한다. 여러 인종이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은 개연성과 실사화에 어울리는 비장미, 두 마리 토끼를 영리하게 잡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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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관이 아깝지 않은 액션

 

영리하게 구축된 세계관 위에서 <드래곤 길들이기>는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는 볼거리를 선보인다. 특히 <드래곤 길들이기>를 상징하는 투슬리스와 히컵의 첫 활공 장면은 압도적이다. 마치 <맨 오브 스틸> 속 슈퍼맨의 비행 장면처럼 흔들리는 카메라는 투슬리스의 속도감을 강조하고, 제삼자의 시점과 히컵의 시점을 오가는 카메라워크는 생동감과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여기에 원작에도 참여했던 존 파월의 더 웅장해지고 풍성해진 음악이 더해지면 3분가량 이어지는 활공 시퀀스는 무아지경에 가까운 경험을 선사한다. <탑건: 매버릭>과 유사한 형태로 특별관의 존재 의의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초점이 자주 흔들리다 보니 눈이 쉽게 피곤해진다는 단점도 있지만, 전체적인 쾌감이 그 단점을 상쇄해 주기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여러 장면이 원작을 초월한다. 클라이맥스인 레드 데스와의 전투는 레드 데스가 더 거대해지고 위압적으로 묘사된 덕분에 긴박함이 극대화됐다. 또 온 인류와 드래곤의 맞대결이라는 비장미가 더해지면서 슬픔과 감동도 더 절절해진다. 반대로 원작에 못 미치는 장면들도 있다. 일례로 오프닝 시퀀스는 실사화의 한계가 느껴진다. 어두운 화면으로 인해 드래곤들이 버크 섬을 습격하는 액션을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아쉬움이 두드러지는 순간도 있다. 투슬리스가 히컵과 아스트리드를 태우고 오로라를 보여주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이 장면은 본래 아름다운 밤하늘을 함께 날면서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을 보여줘 한다. 그런데 어색한 CG로 인해 배경과 두 주인공이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이 진하다 보니 이 흐름이 순간적으로 끊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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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라서 가능한 감정선

 

설정과 세계관, 볼거리 못지않게 메시지도 인상적이다. <드래곤 길들이기>의 핵심 키워드는 '소통'이었다. 좀처럼 대화가 안 통하는 부자 관계와 종족을 뛰어넘은 인간과 드래곤의 우정을 대조하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공통점과 관심사를 찾고, 상호 존중하면 오랫동안 쌓아온 종족의 벽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진정으로 소통하는 관계를 이루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곧 <드래곤 길들이기>였다.

 

 

 

원작의 메시지는 실사영화의 특성 덕분에 더욱 돋보인다. 실사답게 크기도 커지고, 위압감이 더해진 투슬리스의 모습은 드래곤과 서서히 우정을 쌓아나가는 히컵의 서사에 몰입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준다. 이미 관객들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투슬리스와 히컵의 관계성을 무리하게 각색하는 대신, 투슬리스와 히컵의 거리감을 부각하면서 분위기를 조성한 셈이다.

 

 

 

또 실사영화이기에 히컵과 스토이크의 관계도 더 실감 난다. 그 중심에는 원작에서 스토이크의 목소리를 연기했고, 이번에도 같은 배역을 맡은 제라드 버틀러가 있다. 그의 연기력 덕분에 막상 대화하려고 마주 보면 서로 할 말이 없는 부자의 미묘한 공기가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 그 결과 마음을 열고 진정으로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 익숙해서 더 안타까운 두 남자에게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짧게나마 다른 부모 자식 관계도 비추는 컷도 히컵과 스토이크의 관계성에 깊이를 더한다. 원작과 달리 실사영화는 아스트리드나 '스낫아웃'(게이브리얼 하월)의 아버지도 등장시킨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자녀의 노력, 실패했을 때 그들이 겪는 좌절감과 상실감을 증폭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히컵, 투슬리스, 스토이크의 관계가 더 입체화된 결과 아버지가 아들을 인정하고, 인간과 드래곤이 친구가 되는 변화 또한 더 드라마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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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사회로

 

히컵과 스토이크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모와 자녀 관계를 묘사한 대목은 영화 외적인 맥락과 맞물리면서 의도치 않게 더 의미심장해진다. 여러 가족의 공통점이 부각됨에 따라 히컵과 스토이크의 갈등이 가족 내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적 차원의 이야기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즉, 히컵과 스토이크의 대립은 새 언어와 상식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가 기존 상식과 관성을 고집하는 기성세대에 맞서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드래곤을 대하는 태도는 이 갈등 구도를 단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히컵과 그의 친구들은 그들은 드래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언어로써 세상에 접근하고, 세계를 이해한다. 드래곤과 우정을 쌓은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평생을 드래곤과 싸운 어른들보다도 그들의 약점을 더 많이 발견한다. 더 나아가 드래곤들의 둥지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인간의 힘만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레드 데스와의 전투도 승리로 이끈다.

 

 

 

스토이크와 부모 세대는 다르다. 그들에게 드래곤은 이유 불문하고 제거해야 하는 적일 뿐이다. 뿌리 깊은 적대감과 관습과 한 몸이 된 그들에게 인간 대 드래곤의 이분법 외에 다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토이크만 하더라도 온 공동체를 파괴할 뻔한 패착과 위기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히컵의 세상, 드래곤과의 공존이라는 변화를 수용한다.

 

 

 

세상을 새롭게 직시하는 이들과 기존 세계를 유지하려는 이들의 대립. 안타깝게도 이 갈등은 한국 사회의 거부할 수 없는 미래이자, 이미 일부분 현실화 현재라고 할 수 있다. 세대에 따라 첨예하게 갈린 정치적 의사가 그 방증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드래곤 길들이기>를 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념에 빠질 수 있다. 한국의 히컵과 스토이크들이 만들 버크 섬에서 드래곤이 적일지 친구일지는 아직 물음표로 가득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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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류를 벗어나지 못한 모범생

 

하지만 <드래곤 길들이기>는 한편으로 공허하다. 실사화 작품으로서는 더 바랄 게 없을 완성도를 보여줬지만, 관점을 바꿔서 보면 명확한 한계점 또한 노출했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실사화 프로젝트와는 달리, 상업성을 제외하면 이 실사영화가 필요한 이유를 작품 내에서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 한계다.

 

 

 

그간 디즈니의 실사화 작품들은 현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재해석이라는 의도를 꾸준히 제시해 왔다. <알라딘>은 '자스민'(나오미 스콧)'의 주체성을 강조했고, <백설공주>도 그저 주인공의 피부색만 바꾸는 게 아니라 그녀를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들의 연대를 상징하는 존재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물론 그 의도에 관객이 호응할 때도, 안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리메이크 영화의 필요성을 작품 내에서 설명할 수는 있었다.

 

 

 

그에 반해 <드래곤 길들이기>는 수익 창출이라는 기초적인 목적 외에 특별한 이유나 의도를 제시하지 못했다. 원작 애니메이션 개봉 후 불과 15년 만에, 3편 개봉 시점 기준으로는 6년 만에 제작된 리메이크이다 보니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명분도 성립하지 않는다. 결국 <드래곤 길들이기> 리메이크는 아무리 원작의 볼거리, 내용, 메시지를 충실히 재현한 모범생이라 하더라도 결코 아류라는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첫 실사화 작품이라는 점에서 <드래곤 길들이기>는 충분히 합격점을 받고도 남을 수작이 아닐까 싶다. 차별점이 부족하다는 단점 또한 첫 시도인 만큼 가급적 안정적으로 원작을 다시 보여주는 데 집중한 대가라고 이해할 수도 있으니까. 만약 드림웍스가 속편이나 다른 애니메이션도 실사화한다면, 그 초석인 <드래곤 길들이기>를 시급히 재평가하고, 추가로 고평가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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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모범생이 아니라 우등생이었다면 더 좋았을 리메이크

 

 

작성자 . KinoDAY

출처 . https://blog.naver.com/potter1113/22389375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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