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5-06-03 17:50:09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구해도 좋겠다
-영화 <하이파이브>(2025)







특별한 능력을 가지지 않은 우리들은 보통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삶은 힘들고, 여러 개인적인 어려움 때문에 때론 꼬인 행동을 하기도 하고, 남을 미워하기도 한다. 특히나 모든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땐, 점점 루저가 되어가기도 한다. 그건 특별히 자신이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단 자꾸만 꼬여가는 그 상황이 풀리지 않아 스스로 몽니를 부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몰래 비판 글을 쓰기도 하고, 누군가는 계속 조용히 용서를 빌고 다닌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조용히 집에만 박혀 있는다. 그들 스스로는 모르지만, 그들은 조용히 세상의 루저가 되어간다. 자신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점점 그들은 지상에서 멀어진다. 영화 <하이파이브>는 이미 지하로 내려가버린 루저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삶이 끝나기 직전, 누군가로부터 이식 수술을 받아 다시 세상으로 던져졌을 때, 그들에게 주어진 어떤 능력이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번째 감정] 태권소녀 완서의 외로움
완서(이재인)에게는 친구가 없다. 늘 외로움에 빠져 있고, 특히나 엄마가 없다는 상실감은 완서의 삶에 그늘을 드리운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아빠(오정세)는 딸을 사랑하지만, 과거 주변 사람들을 심장마비로 떠나보낸 기억 때문에 완서가 또다시 심장마비로 쓰러진 이후엔 과도할 정도로 딸을 감싼다. 완서는 보호받지만 동시에 고립된다. 영화에서 그런 모습을 보면 완서는 좋지 않은 굴레에서 계속 오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
심장 이식을 받고 다시 살아난 후에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는 있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은 무뎌져 있다. 외톨이 같은 느낌은 여전하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도 낯설다. 그런 그녀에게 초능력은 놀라움보다 당황스러움이다. 왜 나에게 이런 게 생긴 걸까. 그 의문은 곧 두려움으로 바뀐다. 그런 두려움을 없애려고 완서는 달리고 또 달린다. 운동만이 그녀를 달래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무언가를 겪으며, 완서는 조금씩 바뀐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그들 역시 외롭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외로움은 서로를 향해 손을 뻗을 때 작아진다. 때론 다투고 밀어내기도 하지만, 무언가 자신이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완서의 외로움은 조금씩 옅어진다. 능력이 그녀에게 준 것은 초능력 그 자체보다, 다시 누군가를 믿고 다가설 수 있는 용기였다. 완서는 그렇게 진짜 친구를 만나고, 처음으로 웃는다.
[두번째 감정] 초능력자들의 소심함

완서 주변에 모이는 초능력자들은 하나같이 평범하고 소심하다. 작가 지망생 지성(안재홍)은 더 잘 나가는 작가들에게 악플을 달고, 표절을 저질렀던 과거를 숨긴다. 야쿠르트 매니저 선녀(라미란)는 자신의 실수로 사람을 다치게 한 죄책감 속에 살고, FM작업반장 약선(김희원)은 종교적 신념 때문에 공사장에서 위험을 묵과했던 과거가 있다. 힙스터 백수 기동(유아인)은 욕심도, 꿈도 없이 하루를 떠돌 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잘못된 사람’은 아니다. 다만 ‘잘못된 선택’을 했던 사람들이며, 그 선택의 결과로 삶이 한없이 작아진 사람들이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 사이에는 묘한 동질감이 생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서로를 지키려 애쓴다. 기동과 지성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위험한 상황에선 서로를 구하려 뛰어든다. 그 모습이 코믹하게 그려져 있지만, 조금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평소엔 소심하고 약해보이지만, 위기의 순간엔 놀라운 용기를 보여준다. 개인으로는 작지만, 함께일 때 커지는 존재들. 하이파이브라는 팀이 점점 진짜 팀이 되어갈 때, 우리는 그들을 통해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본다. 그저 소심한 루저들 같았던 사람들이 서로의 무게를 지탱하며 영웅이 되어간다.
[세번째 감정] 교주 영춘의 욕망
영춘(신구/진영)은 나이가 많은 사이비 교주다. 이미 많은 신도들을 거느리고, 부를 쌓았으며, 사회적 영향력도 갖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젊어지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심장 이식을 계기로 초능력을 얻게 되자, 그는 다른 초능력자들의 능력을 흡수하고자 한다. 더 강해지고, 더 젊어지기 위해.
그의 욕망은 선을 넘는다. 딸과의 관계마저 무너뜨릴 정도로, 그는 모든 인간관계를 철저히 수단화한다. 하이파이브 멤버들을 철저히 깔보고, 조롱한다. 그는 권력자다. 그리고 자신이 무너질 리 없다고 믿는다. 하이파이브와의 대결은 그래서 흥미롭다. 순수한 욕망과 진심어린 연대가 부딪칠 때, 관객은 자연스레 후자에 응원을 보낸다.
영춘의 욕망은 단순한 악당의 클리셰가 아니라, 우리가 사회에서 자주 마주치는 탐욕의 얼굴이다. 나이를 먹어도 끝나지 않는 소유욕, 상대를 수단으로 여기는 방식, 그리고 거기서 오는 파괴. 이 영화는 초능력이라는 장치를 통해 욕망의 파괴력과 순수함의 회복력을 대비시킨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소시민 히어로 영화 <하이파이브>

<하이파이브>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에게 초능력이 생겼을 때 벌어지는 일을 보여준다. 선과 악의 구도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통쾌함을 준다. 평범한 이들이 결국 권력자를 이기는 설정은 고전적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이 설정이 가진 재미를 영화는 유쾌하게 잘 살려낸다. 특히나 사이비 교단의 일과 함께 그들의 활약을 보여주는데, 이미 사이비 교단에 세뇌된 평범한 사람들을 평범한 인물들이 구한다는 설정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써니>를 연출한 강형철 감독의 연출은 이번에도 빛난다. 유쾌하고 통통 튀는 리듬감, 캐릭터들의 매력을 살리는 방식, 그리고 만화적인 설정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톤이 훌륭하다. CG는 다소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이 장르의 특성상 수용 가능한 범위다. 가족 단위의 관객이 보기에도 부담이 없고, 후속편도 기대해볼 만한 영화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강형철 감독 특유의 리듬감 있는 연출 덕분이다. 그의 영화는 장면 하나하나가 박자처럼 흐른다. 캐릭터들이 서로 부딪히고,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에선 웃음이 터지고, 액션이 펼쳐지는 순간엔 딱 만화책을 펼쳐본 듯한 쾌감이 있다. 이건 작은 화면보단, 제대로 된 사운드와 넓은 스크린에서 느껴야 더 짜릿하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정서 자체가 유쾌하고 명랑해서, 관객이 많을수록 더 힘을 받는 영화다.
또 하나는, 배우들의 디테일한 표정과 리듬감 있는 몸짓 때문이다. 이재인 배우의 완서는 외로운 표정과 밝은 표정을 오가며 관객의 마음을 이끈다. 무엇보다 치사량의 귀여움이 영화 내내 분출된다. 그리고 박진영 배우가 연기하는 영춘은 과장된 듯하면서도 소름끼치는 욕망을 화면 가득 퍼뜨린다. 다른 하이파이브의 멤버인, 안재홍, 라미란, 김희원, 유아인의 연기도 흠잡을 곳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그들의 감정이 그대로 잘 느껴진다. 그런 감정의 미세한 결들이 얼굴과 몸짓으로 살아있는 영화라, 집에서 보기엔 조금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하이파이브>는 결국, 큰 화면에서 관객과 함께 웃고 몰입할수록 더 힘이 나는 영화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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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주 최신 개봉영화(귀문, 레미니 센스, 마더스 인스팅트, 여름날 우리, 캐논볼)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8월 4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귀문 #레미니센스 #마더스인스팅트 #여름날우리 #캐논볼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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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피어 스트리트> 3부작 공식 예고편
[2021년 7월, 넷플릭스 공개]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여러 세대에 걸쳐 마을을 괴롭혀온 무서운 사건들이 실은 모두 연관되어 있다면? 게다가 다음 표적이 바로 우리들이라면? 1994년, 이 섬뜩한 사실을 발견한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R. L. 스타인의 베스트셀러 공포 소설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3부작 영화. 셰이디사이드의 어두운 역사를 관통하는 악몽이 엄습한다.
《피어 스트리트 파트 1: 1994》 - 7월 2일
《피어 스트리트 파트 2: 1978》 - 7월 9일
《피어 스트리트 파트 3: 1666》 -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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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파라다이스> 메인 예고편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모여 사는 ‘파라다이스’ 이 고요한 곳에서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스털링 K. 브라운, 제임스 마스덴, 줄리안 니콜슨이 쫓는 거짓 속 숨겨진 진실의 정체는? [파라다이스] 1월 28일, 디즈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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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다섯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아직 여름 안끝났다! 막바지 여름을 달굴 서스펜스 영화 <타겟>과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한 남자>까지 8월 마지막주 개봉예정작 같이 알아보아요!
타겟
Target
ⓒ 네이버영화
개요: 스릴러 | 한국 | 101분
감독: 박희곤
출연: 신혜선, 김성균, 임철수, 이주영 등
개봉: 2023.08.30.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중고거래로 범죄의 표적이 된 ‘수현’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를 담은 스릴러
CINE PICK!
영화 <타겟>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이 된 중고거래라는 소재와 스릴러 장르가 만나 중고거래 범죄를 날카롭게 포착하여, 실제 사건을 보는 듯한 생생함과 함께 현실 속의 서스펜스를 극대화시킨 작품입니다.
조이 라이드
JOY RIDE
ⓒ 네이버영화
개요: 코미디 | 미국 | 95분
감독: 아델 림
출연: 애슐리 박, 스테파니 수, 셰리 콜라 등
개봉: 2023.08.30.
배급: 판씨네마㈜
시놉시스
성공 가도를 달리던 알파걸 변호사 '오드리'(애슐리 박)는 초고속 승진을 위해 어릴 적 헤어진 생모를 찾아오라는 황당한 미션을 받는다. 꼬ㅊ미남 전문가인 음란마귀 아티스트 '롤로'(셰리 콜라), 흑역사 숨기고 할리우드 진출 앞둔 톱배우 '캣'(스테파니 수), 흐린 눈의 케이팝 광인 '데드아이'(사브리나 우)가 합류하면서 네 친구들의 크레이지한 월드투어가 시작된다! 지구 반 바퀴를 돌고 도는 고생길 끝에 밝혀진 오드리의 출생의 비밀은… 오드리의 엄마가 'K-마미'라고!?
CINE PICK!
전미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할리우드에 아시안 신드롬을 일으킨 화제작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각본을 맡았던 아델 림이 첫 연출에 도전한 작품으로 산뜻한 웃음과 감동을 전할 코미디 영화입니다.
신체모음.ZIP
Body Parts
ⓒ 네이버영화
개요: 스릴러 | 한국 | 104분
감독: 최원경, 전병덕, 이광진, 지삼, 김장미, 서형우
출연: 김민석, 김채은, 권아름, 혁, 강준규, 김아현 등
개봉: 2023.08.30.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싸이더스
시놉시스
“마지막 조각은 바로 너야” 사이비 종교 단체를 잠입 취재하는 막내 기자 ‘시경’. 특별한 의식에 초대받아 참여하게 되고, 교인들은 차례대로 소원을 빌고 제물을 바친다. 드디어 ‘시경’의 차례가 된 순간, 제물이 바로 신체 조각이란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휩싸이게 되는데… 눈, 코, 입… 각 신체 조각에 얽힌 6개의 이야기! 모든 신체가 모이면 날것의 공포가 깨어난다!
CINE PICK!
지난해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신체모음집’은 ‘토막’ ‘악취’ ‘귀신 보는 아이’ ‘엑소시즘.넷’ ‘전에 살던 사람’ ‘끈’까지 총 6개의 에피소드를 묶은 옴니버스 공포영화입니다.
한 남자
A Man
ⓒ 네이버영화
개요: 범죄, 멜로 | 일본 | 122분
감독: 이시카와 케이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안도 사쿠라, 쿠보타 마사타카 등
개봉: 2023.08.30.
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시놉시스
“지금부터 당신의 죽은 남편을 ‘X’라 부르겠습니다” 변호사 ‘키도’는 어느 날 의뢰인 ‘리에’로부터 그녀의 죽은 남편인 ‘다이스케’의 신원조사를 해달라는 기묘한 의뢰를 받는다. 사랑했던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떠난 후, 오랫동안 소원하게 지내던 ‘다이스케’의 형 ‘쿄이치’가 찾아와 영정을 보고는 “이 사람은 ‘다이스케’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 한 순간에 정체가 묘연해진 남자 ‘X’. ‘키도’는 그의 거짓된 인생을 마주하게 되면서 점점 그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진실에 다가설수록 충격적인 과거들이 드러나는데... 그는 도대체 왜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던 걸까.
CINE PICK!
제 46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한 남자>는 2018년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미스터리 속에 충실히 담아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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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황스럽지만 결국 빨려들게 되는 그들의 우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 2022)
“당황스럽지만 결국 빨려들게 되는 그들의 우주”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액션, 판타지, 모험
러닝타임 : 126분
감독 : 샘 레이미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엘리자베스 올슨, 베네딕트 웡, 레이첼 맥아담스, 치웨텔 에지오프, 소치틀 고메즈
개인적인 평점 : 3.5/5
쿠키 영상 : 2개 (엔딩 크레딧 중간에 1개, 엔딩크레딧 후 1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줄거리
끝없이 균열되는 차원과 뒤엉킨 시공간의 멀티버스가 열리며 오랜 동료들, 그리고 차원을 넘어 들어온 새로운 존재들을 맞닥뜨리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 속, 그는 예상치 못한 극한의 적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타임라인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뉴욕에 남아있던 스티븐(닥터 스트레인지)은 전 연인 크리스틴의 결혼식에 참여하게 된다. 스티븐은 아직 크리스틴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남아있지만 크리스틴의 “행복하지?”라는 질문에 애써 괜찮은척, 행복한 척을 해 보인다. 그가 아주 지독한 후회를 느끼고 있는 찰나, 포탈이 열리며 괴물과 함께 멀티버스의 키를 쥐고 있는 소녀, ‘아메리카 차베즈’가 등장한다. 차베즈와 대화를 나눠본 결과, 여러 우주가 위험에 빠져있다는 걸 알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는 어벤져스 중 가장 유능한 마법사였던 완다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러 우주를 떠돌게 된다.
작년 12월 멀티버스의 시작을 알렸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개봉 이후 5달 만에 <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했다. 제목부터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멀티버스를 팔 거야!”라고 선언한 이 영화는 말 그대로 혼란스러운 멀티버스 이야기였다. 영화를 보며 이 캐릭터들을 더 사랑하게 됐고, 2시간 동안 아주 즐겁게 즐겼다. 영화 안에 이것저것 차려진 메뉴가 참 많아 음미하기에 바빴다. 근데 정리가 덜된 밥상을 마음껏 즐기려다 보니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다운 눈호강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을 때, 새로운 유형의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에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스티븐의 능력과 서사, 베네딕트 컴버배치 배우가 뿜어내는 매력.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영화가 보여준 웅장한 시각적 효과, 흔히 말하는 눈뽕! 그 눈뽕에 머리가 다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멀티버스’라는 키워드보다는 스티븐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이번엔 어떤 공간들을 보여줄지가 가장 기대됐다. <노 웨이 홈>에서도 스티븐이 만들어낸 공간을 볼 수 있었지만 다소 어색한 CG에 실망했던지라.. 그래도, 이번엔 닥터 스트레인지의 2번째 솔로 영화인데! 괜찮겠지!! 하며 희망 회로를 불타게 돌렸다. 그리고 희망 회로를 불태운 만큼 이 영화는 내가 만족할만한 퀄리티의 시각효과를 보여주었다. 첫 관람은 꼭 왕왕 큰 용아맥에서!!를 외친 보람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캐릭터의 색을 잘 살린 디자인과 다양한 우주의 모습, 반사의 활용, 영화의 메인 컬러 빨간색을 잘 활용해 시각적인 공포를 높인 부분, 역동적임과 동시에 긴장감을 높여주는 화면 연출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지금껏 본적 없는 어둡고 잔인한 마블 영화
마블 영화라고 하면 보통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이 봐도 괜찮은 영화, 슈퍼히어로 영화. 많은 관객들이 생각하는 마블의 이미지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좀 다르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배우들이 ‘새로운 마블 영화’,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라고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고, 예고편을 봐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듯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매우 어두운 톤을 갖고 있는 영화다.
분위기가 전보다 진중해지기도 했고, 어둡고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꽤 많다. B급 공포 영화의 명인으로 불리는 ‘샘 레이미’ 감독 특유의 역동적인 화면과 ‘마블 영화’라는 틀을 깨며 가감 없이 집어넣은 점프 스퀘어, 다소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상처와 액션 신들, 좀비물처럼 느껴지는 요소들도 꽤 많기에 ‘아이들과 함께 보는 마블 영화’라는 이미지는 잠깐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마블 영화’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색을 지켜낸 샘 레이미 감독의 능력에 감탄했다. 모 영화 같은 경우엔 마블 영화지만 너무 자신의 색을 지키는 바람에 말아먹은 경우도 있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정체성을 어느 정도 지키며 감독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닥터 스트레인지, 마블 영화로 이런 걸 한다고?
영화 개봉 전 공개된 홍보 영상 속, 샘 레이미 감독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 영화 정말 멋있다!’고 느꼈으면 한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아 이 영화 정말 멋있다!’ 150번도 더 말해 드릴 수 있다.
영화의 개봉일이 어린이날 전날이어서 그런지 ‘어린이날을 노리고 개봉한 마블 영화’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예고편을 안 보고 그 어린이날 연휴 개봉이 주는 느낌에 속은(?) 관객들이 꽤 많은 듯 보인다. 추가로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생각하고 간다면 꽤 놀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블이라고 이런 걸 안 하고 못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건 언제나 환영이다.
인간적인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이전에 개봉했던 <블랙 위도우>와 <노 웨이 홈>처럼 꽤나 인간적인 영화였다. 개인적으론 <엔드게임> 이후로 마블이 1대 히어로들의 상처를 하나둘 내놓고, 그것을 회복시키며 이들의 은퇴 수순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블랙 위도우>, <노 웨이 홈>, <호크아이>, 그리고 최근 예고편을 공개한 <토르: 러브 앤 썬더>와 이 영화까지. 커다란 전투를 마친 히어로들의 내면에 남은 아픔과 미련을 툭 까놓으며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안정감을 쥐어주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리 강인한 히어로여도 이들도 사람이기에 상처를 받고, 사랑을 하고, 아파하기도 한다. 스티븐의 경우는 능력을 얻고 칼자루를 쥐게 된 이후 연인 크리스틴과 헤어지게 됐고, 완다는 원치 않는 능력을 얻은 후 전투를 치르다 오빠 퀵실버와 연인 비전을 잃는다. 어디에도 풀어놓을 수 없었던 이들의 슬픔과 분노는 멀티버스의 문을 열게 되고, 스티븐과 완다는 멀티버스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깨우침을 얻는다.
사랑하는 모든 걸 잃은 완다, 어벤져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을 때 언제나 이성적으로 결정을 해야 했던 스티븐. 큰 힘을 가졌기에 많은걸 희생한, 아픈 손가락이었던 두 사람이 한 영화에 나와 세상과 자신을 구해가는 과정이 개인적으론 다소 안쓰럽고 슬프기도 했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멀티버스를 꿰뚫는 단 하나의 키워드 ‘사랑’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스티븐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이별했고, 완다는 사랑을 지키지 못해 결국 악에 현혹된다. 얻지 못한 사랑을 마무리 짓기 위해 시작된 멀티버스 이야기는 돌고 돌다 결국 제자리를 찾는다. 스티븐은 깨진 시계의 알판을 고치며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던 완다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죄를 알게 되고 또 다른 완다를 통해 위로를 받고 스스로를 희생하며 상황을 정리한다.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도 하고, 아프게도 하고, 지켜주기도 하고, 위로해주기도 한다. 각자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인물들은 조금씩 다른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들을 한 번에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랑’이다. <노 웨이 홈>에서 앤드류의 피터 파커가 그러했듯 스티븐 또한 또 다른 우주를 통해 사랑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위로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아쉬웠던 점
영화 자체는 정말 재밌었고, 타고난 과몰입러로서 온갖 감정을 다 동원하며 감상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았다. 개인적으론 완다를 100%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고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차베즈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며 다른 우주에 깜짝 등장한 캐릭터들이 그저 ‘작은 보너스’ 같은 느낌으로 반짝 빛났다 사라지는 것이 정말 아쉬웠다.
<완다 비전>을 본 관객이라면 완다가 왜 다크홀드에 손을 댔는지, 왜 드림 워킹을 하게됐는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겠지만, <완다 비전>을 보지 않고 영화 속 완다의 설명만 들은 관객이라면 그가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급발진을 한 빌런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완다의 마지막이 상당히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멀티버스 속 완다와 협력을 하는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 이상, 사실상 완다는 은퇴 수순을 밟게 될 텐데 이 캐릭터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한 게 못내 아쉬웠다. 매번 아픈 모습만 보였던 캐릭터인데 해방의 절차도 이렇게 어렵고 가슴 아프게 만들어버리다니… 속상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멀티버스의 문을 여는 새로운 능력자 차베즈는 배우의 매력, 서사와는 별개로 별다른 반짝임이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제 첫 등장이기도 하고, 멀티버스가 확장되며 차후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갈수도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깜짝 등장한 캐릭터들은, 긴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영화에 프로페서가?!’하고 놀랐지만 별다른 의미 없이 지나쳐갔을 뿐… 아, ‘너를 믿는다’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하나 남기긴 했다…
최근 마블 영화를 보며 느낀 아쉬움들
마블이라는 프랜차이즈는 가히 독보적이고 거대하다. 마블 이전에도 마블 이후에도 여러 히어로 영화들이 제작되었지만 마블의 히어로들과 이들의 세계관을 이길 프랜차이즈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나 DC 히어로 같은 크고 훌륭한 다른 히어로 프랜차이즈도 존재하지만 대중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히어로 영화’를 만들어온 곳은 마블이 아닌가. 마블은 마블만의 영화를 만들어냈고 그로 인해 관객들의 취향, 극장가의 풍경이 함께 바뀌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런 히어로 영화를 유치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이들의 거대한 자본력과 제작 형태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마블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거나 무조건적인 흥행 공식을 따르고 있는 건 팩트니까). 전세계적인 팬덤을 이끌고 있는 프랜차이즈인 만큼 마블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다양하다. 실제로 2019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마블은 시네마가 아닌 테마파크에 가깝다.”는 한 마디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국내 팬들이 바라보는 마블의 이미지 또한 가지각색이다.
이번에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고 퇴장로에서 들은 이야기와 개봉 전, 후 SNS의 반응을 보면… 최근 마블의 이미지가 꽤 하락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장 눈에 띄는 불만들은 크게 <엔드게임> 이후 은퇴한 캐릭터들에 대한 아쉬움 / 예, 복습에 대한 부담 / 개연성의 실종, 캐릭터들의 매력 부재 등이 있다. <엔드게임> 이후 1세대 히어로들의 은퇴는 당연한 수순이었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치고 다른 아쉬움들을 짧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마블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프랜차이즈이다 보니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한다 해도 이전의 캐릭터나 세계관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상태에서 디즈니 플러스가 런칭되었고, 그 부담은 배로 늘어났다. 이번 영화만 해도 꼭 <완다 비전>을 봐야한다, <로키>, <왓이프>도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디즈니 플러스 역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기 전, 디즈니 플러스에서 <완다 비전>을 만나보라며 광고를 하기도 했다.
다른 시리즈를 모르면 새로운 영화도 온전히 즐길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를 공부하고 가야 하다니. 상당히 부담스럽고 피곤한 상황이다. 물론 실제로 ‘이걸 안 보면 이해 못 함!’ 정도의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긴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다음에도 디즈니 플러스 예, 복습에 신경 써야 할지… 걱정되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재밌게 즐길 순 있지만 ‘알고 가야 더 보이는 영화’라고 한다면, 결국 이전 것들을 보지 않으면 100% 즐길 수 없다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러다 정말 ‘고인물들만 볼 수 있는 영화’가 되는 건 아닐까?
오래된 프랜차이즈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는 그만의 특별한 감동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커다란 세계관 안에서 뛰노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이란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 사이의 구분은 지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계속 이렇게 장벽을 높여간다면 자칭 덕후가 아닌 사람은 더 이상의 접근을 피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그리고 최근 들어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개연성의 실종이다. 활활 타오르는 덕심을 잠깐 내려놓고 말하자면, 영화는 분명 재미는 있는데… 가끔 개연성을 잃는다. 지금은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왜 이건 이유를 말 안 해주지?”라는 질문이 떠올라도 배우들을 보며 어느 정도 흐린 눈을 하고 있지만 이 흐린 눈 필터를 언제까지 장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쉬워도 다시 티켓을 끊게 되는 테마파크
전체적으로 아쉬운 부분들도 있고, 어떤 영화는 나를 크게 실망시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당분간 이 환상적인 테마파크 안에 머물 것 같다. 적어도 오래 함께해온 1세대 히어로들이 남아있는 한은 말이다. 이만큼 나를 즐겁고 슬프고 설레게 하는 프랜차이즈가, 이렇게 성공한 테마 파크가 또 없기 때문이다. 이래서 아쉽고 저래서 아쉽다고 말하면서도 토르가 개봉하면 당장 달려갈 내 모습이 벌써 눈에 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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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니엄의 환희와 청춘의 질감에 관한 인상적인 스케치
술 냄새가 난다. 담배 냄새가 난다. 땀 냄새가 난다. 정돈되지 않은 지저분한 집에서 날 법한 냄새가 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약 냄새가 난다. 제대로 닦아내지 않은 정액 냄새도 문득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것 같다. 시끄럽다. 클럽 음악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내내 쿵쾅거린다. 싸우는 소리가 난다. 불평하는 소리가 난다. 서로를 원망하는 소리가 난다. 홀로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가 난다. 물건을 집어 던지는 소리가 난다. 저주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난다. 청춘의 냄새, 청춘의 소리다. 이 지독한 냄새와 소리 속에서, 여성 청년 비키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다.
2001년의 대만, 고등학교를 중퇴한 비키는 남자친구 하오하오와 동거 중이다. 하오하오는 ‘예술적 퇴폐’를 지향하는 남성이 갖고 있는 쓰레기 같은 전형성을 고루 갖추었다. 돈을 벌지 않고 여성의 노동에 의존한다. 아버지의 롤렉스 시계를 훔쳐 경찰 조사를 받을지언정 결코 직접 노동하는 법은 없다. 하오하오는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집의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비키를 의심한다. 그녀가 바람을 피운다는 망상이다. 자신이 노동하면 비키가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상한’ 하오하오는 이런 가능성을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하오하오는 클럽 음악을 만들고 친구들과 술 마실 때만 생기가 돈다. 가끔 욕구가 일어 다짜고짜 비키에게 관계를 요구할 때만 다정해진다. 자기 신세의 비참함에 심취해 마약을 하고 이를 말리는 비키를 경멸한다. 그렇다. 하오하오는 자신의 자발적, 의도적 비루함을 예술가의 고난으로 오독한다. 비키의 몸과 돌봄, 노동에 극단적으로 기생하면서도 그녀에게 군림하려 든다. 치가 떨릴 만큼 익숙한 인물이다(이상의 〈날개〉를 떠올려보라).
소란 끝에 비키는 하오하오를 떨쳐낸다. 그러고는 클럽 관리자 격인 잭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잭은 책임감이 있고 점잖다. 하오하오가 갖추지 못한 것을 가졌다. 그는 비키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일본으로 떠난다. 비키는 그가 남긴 흔적을 쫓아 일본에 따라간다. 잭은 그녀를 위해 숙소를 잡아주었고, 편지를 남겼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비키는 끝내 잭의 비밀에 다가가지 못한 채 혼자 남는다. 잭에게는 비키와의 관계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음지의 일을 처리하고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두 남자가 떠나간 후, 비키는 그제야 홀로 선다.
비키를 비난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도대체 왜 저런 남자들이랑 붙어 있냐’라는 책망은 그 욕망의 소유자도 적당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물음이다. 우리 모두는 종종 알 수 없는 동기로 이해 못 할 선택을 내린다. 문제는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혼란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다. 욕망과 충동의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그 후과를 알맞게 갈무리하는 것이 성인의 자격이다.
불쾌한 냄새와 소음으로 가득 찬 비키의 2001년은 지극한 성장통의 시기였다. 하오하오는 비키가 자신을 떠나려 할 때마다 애원하며 그녀를 붙든다. 그는 자신이 쓰레기인 것을 안다. 만에 하나 ‘예술가’로 성공하면 미련 없이 비키를 버리겠지만, 그 희박한 가능성이 현실로 도래하기까지는 기생할 상대가 필요하다. 그런 자신을 품어줄 여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 하오하오는 그래서 비키에게 더더욱 매달린다. 비키는 이를 관계의 특별함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하오하오의 곁에 머물렀다. 잭은 상대적으로 비키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그녀와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비키는 잭에게 사랑의 대상이 아닌 친밀한 타자일 뿐이다.
세상의 떠들썩한 환호와 함께 맞이한 새로운 밀레니엄은 비키에게 지리멸렬한 현실의 연장에 불과했다. 오히려 모두가 희망적인 미래만을 말했기에 비키가 살아가는 현재의 형편없음이 더욱 극화되었다. 2001년 겨울, 비키는 하오하오와 잭을 거친 후에야 자신만의 뒤늦은 밀레니엄을 마주한다.
영화는 내내 명멸하듯 깜빡거리는 불빛과 뿌옇게 번진 빛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카메라에 담긴 대상의 경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많은 것을 뒤엉켜 보이게 하는 이 이미지들은 청춘의 열악한 삶을 환기하는 시청각적, 후각적 자극과 맞물려 비키가 살아가는 현실의 혼탁함을 구체화한다. 비키가 문제적 남성들을 떨쳐내고 하얗게 눈 덮인 일본의 한 마을에서 마침내 혼자가 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곳곳에 쌓인 하얀 눈은 어둡고 음습한 방의 뿌옇고 경계가 불분명한 혼탁한 이미지들을 단번에 무력하게 만든다. 일상적 장소에서의 이탈은 종종 시공간의 감각을 새로이 배열하여 기존의 감각을 성찰할 자원이 되어주고는 한다. 자기 자신의 욕망으로 두 남자에게 연루되어 고통받던 비키는 이 극명한 빛의 대비와 일상적 시공간에서의 이탈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할 계기를 마련한다. 두 남자로 상징되는 벗어날 수 없는 폭력적 수수께끼를 뒤로하고 밀레니엄의 환희에 뒤늦게나마 동참하는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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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형 막장드라마(feat. 판타지)
* 스포일러가 다분합니다.
** 리뷰를 쓸 당시는 넷플릭스에서 제공해서 본 것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현재는 왓챠에서 볼 수 있나봐요.
처음 방영된다고 했을 때 소재가 매우 흥미로워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볼 수 있는 TV는 없었고, 방법도 없었다. 불법 다운로드는 안 하고 싶었고 그러다가 놓친 것을 거의 10년 만에 보게 된 것이다. 사랑해요 넷플릭스(지금은 없지만...)
그런 애정의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던 그림, 결국 다 보고야 말았다. 보기 시작했으니, 완결도 났으니 끝까지 다 봐야겠다는 이 마음은 오기 혹은 의리에 가까웠다. 그러다보니 사실 꼼꼼히 보지는 않았다. 보는 도중에 다른 사람들 리뷰도 다 찾아봤다.
다른 리뷰를 보면서 가장 많이 봤던 이야기가 '막장'이라는 것이었는데, 정말 막장이다. 아주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출생의 비밀, 애인 바꾸기, 음모, 술수, 폐륜 등등 한국 아침드라마에서 볼 법한 내용들이 전 시즌에 걸쳐서 가득하다. 물론 간혹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도 있기는 하다.
"인물"
주인공 버크하트는 정말 이기적이다. 세상 맨날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동료들을 앞장 세운다. "먼저 가야지 않겠어?" 식이다. 그래서 본인은 잘 안 다친다. 맨날 위험한 현장에는 먼로를 보낸다던지 한다. 심지어 통찰력은 행크랑 우가 훨씬 높다. 버크하트는 뭐랄까 세상 엄청 감정적이다. '우와와와와와악!' 하는 느낌. 시즌 앞쪽이야 그럴 수 있겠다 쳤지만 뒤로 갈수록 오히려 그림이 아닌 다른 캐릭터들이 더 그림 같다.
"스토리"
인물이랑 연결된다. 아니, 줄리엣이 헥센비스트 되고 나서 엄청 삐뚤어지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자기 애 낳았다고 다른 헥센비스트랑 잘 되는 건 좀 어이없다. 줄리엣을 버린 이유가 헥센비스트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그러니까 막장소리를 들었겠지 싶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엄청 대단한 아이인 것처럼 나왔는데, 결국은 어린신부 후보였고, 막 무서워하다가 "나 이 아저씨 좋음" 이라고 말하면서 엄마아빠까지 죽게 만드는 엄청나게 나쁜 애였다. 성장을 쑥쑥 엄청나게 빨리 하더니 딱 7~8세 정도 되는 나이에서 멈춰서는 자라지가 않았다. 선택형이여? 심지어 성인이 된 모습 나오니 본인 동생이랑 나이 비슷하게 지나갔더라.
세상을 바꿀 애라고 해서 좀 더 빨리 자라서 엄마아빠 모습 쯤에서 멈출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물론 어린 신부 컨셉 맞추려 그랬을수도 있지만 살짝 어이가 없었다. 캐릭터를 잡아놓은 세계관보다 잘 못 쓴 느낌이었다. 드라마가, 그걸 쓴 작가가 '할말하않'의 마음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림은 무능력하고, 캐릭터들은 붕 떠있고.. 그러다보니 우가 제일 좋다. 인간적이야.
결국 판타지도 하고 싶고, 로맨스도 하고 싶고, 종교도 넣고 싶고, 다 넣고 싶어서 때려 넣었던 '원더풀데이즈' 같았다. 그리고 왜 다들 피붙이에 그렇게 집착하는 건지 진짜 한국 드라마인줄.
정말 꾸역꾸역 다 봤다. 기대가 커서 실망이 컸다고 하기엔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
신기한건 2011년~2017년 6년 걸쳐서 찍은건데 배우들이 어쩜 단 하나도 안 늙은 느낌인지. 그 시간동안 나만 늙었나 보다. 마지막 시즌은 다른 시즌보다 짧고, 급하게 마무리한 느낌이 있었다. 아마 정말 급하게 마무리한게 아닌가 싶다. 시작은 했으니 우선 끝은 내야겠다 같은 그런 마음으로 마지막 시즌을 내놓지 않았을까?
첫 시즌할 때 엄청 기대 했었는데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을 줄이야.
시간 때우기 용으로는 너무 길고, 좋은 드라마라도 보기에는 좀 그렇지만 그래도 은근 재미는 있었다. 줄리엣 불쌍해서 응원하게 된다. 이러나 저러나 발상은 좋았던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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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마라맛 이야기' 시켰는데 순한 맛을 받았어요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마라맛 이야기>는 코로나19가 창궐했던 팬데믹 기간에 벌어진 한 가족의 칠리소스 판매기를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감독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하는데요. 코로나19가 바꿔놓았던 삶의 풍경이 어떻게 코미디 영화로 재탄생했을지 궁금해 이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네, 여기까지는 있어 보이는 답변이었고요. 이 영화를 고른 진짜 이유는 다름 아닌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그제는 마라샹궈, 어제는 마라 떡볶이, 오늘은 마라 토스트를 먹은 제가 어떻게 <마라맛 이야기>라는 제목을 못 본 체하겠습니까. 누가 번역했는지 모르겠지만, 참 매력적인 번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칠리소스'를 만드는 가족에 관한 영화이고 영어 제목도 <Chilli Laugh Story>인 만큼, 사실 '칠리맛 이야기'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했을 텐데 말이죠. 아마도 저뿐만 아니라 마라맛에 열광하는 수많은 전주국제영화제의 관객들이 이 제목에 홀려 극장에 들어서지 않았을까 예측해 봅니다.
마라맛 이야기
Chilli Laugh Story
팬데믹 이후 늘어난 집밥 수요를 노려 사업을 시작하고 싶은 아들 '코바'와 칠리소스를 만드는 탁월한 솜씨를 가진 엄마 '리타'는 온라인으로 칠리소스를 판매하기로 합니다.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싶었던 엄마와 코로나19로 직장에서 잘릴 위기에 처한 아들은 가족 사업에 적극적으로 임하죠.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자 이런 걸로 돈을 벌 수 있겠냐며 콧방귀를 뀌던 아빠 '앨런'도 자연스럽게 사업에 합류했습니다. 그렇게 '코바'네 가족은 봉쇄령이 내려진 도시의 한 가정집 식탁에서 매일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고추를 손질하고 칠리소스를 만들어 포장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격리, 봉쇄, 재택근무, 비대면 사회 등 공통된 경험을 갖게 됐습니다. 어느새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 지 4년째가 된 지금, 코로나19가 만들어 낸 낯선 사회 풍경을 영화로 재현하는 움직임이 하나둘씩 눈에 띕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일상은 모두가 겪은 일이기에 국적, 인종, 성별, 나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는 면에서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마라맛 이야기>도 코로나19 이후 오손도손 한 집에 모여 사는 가족의 일상을 다룸으로써 관객의 공감과 웃음을 유발하는 작품 중 하나죠.
영어 제목이 'Chilli Story'가 아니라 'Chilli Laugh Story'인 것만 봐도, 이 작품이 지향하는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는데요. <마라맛 이야기>에는 '코로나19 유머'라고 부를 법한 코미디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천 명이 넘게 온 파티에서는 감염되지 않았는데, 쓰레기 줍기 봉사하러 갔다가 코로나19에 걸렸다는 한탄이라든가, 직장에서 잘리면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 된다는 농담을 주고받는 젊은 커플의 모습 같은 것들이 그렇죠. 마트에 간 남편이 여자 종업원이 끼워준 비닐장갑을 그대로 착용한 채 귀가하자, 아내에게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비닐장갑을 낀 것이라는 변명을 내뱉는 모습도 우리 모두에게 코로나19라는 공통된 경험이 있기에 웃을 수 있는 장면입니다.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면 한때 스마트폰을 왱왱 울려댔던 코로나19 재난 문자를 활용한 재치 있는 엔딩 크레딧 디자인을 볼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재난 문자의 당황스러움을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았어요. 이렇듯 <마라맛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인의 공통 분모를 사용한 재치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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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네 가족은 칠리소스 사업을 꾸려가면서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는 가족 간의 갈등과도 마주합니다. 맹목적으로 집을 사고 싶어 아들의 명의로 대출까지 신청한 엄마 '리타', 허세와 수다를 멈추지 못하는 눈치 없는 아빠 '앨런', 대기업의 속셈에 부당하게 사업 아이디어를 빼앗긴 아들 '코바', 무관심한 아들 대신 동생 가족에게 관심을 쏟는 고모 '웬디'까지. <마라맛 이야기>는 성행하는 가족 사업의 뒤편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가족 간의 갈등들을 묘사합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가족과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커뮤니티 등에 평소엔 몰랐던 가족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했죠.
하지만 이 영화는 또 금세 갈등과 긴장을 감싸 안아줍니다. 기복이 있고 때로는 주저앉을 수도 있는 게 인생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함께 뭉쳐 이겨내는 것이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통해서 말입니다. 가족의 사랑과 변화무쌍한 인생의 길흉화복이라는 뻔한 주제는 코로나19라는 시대적 배경을 만나 색다른 방식으로 그려집니다. 이러한 영화의 메시지는 엔딩곡에도 그대로 담겨 있는데요.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이니,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꼭 한 번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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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중국 문화권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유머들도 있고, 오직 웃기기 위해서 넣은 19금 개그나 불필요한 대사들도 많아서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했는데요. 그렇지만 가족의 사랑과 코로나19가 바꾸어 놓은 일상을 연결하여 재치 있는 영화로 재현해 냈다는 데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제목에 이끌려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물씬 드네요. 그러나 이름값 하는 작품은 아니라는 점, '마라맛'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순한 맛'에 가까운 이야기라는 점, 잊지 마세요!
Summary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해 전세계 사무직 노동자들은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코바는 어머니가 직접 만든 소스를 온라인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가족 간의 갈등이 다시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 간의 일상적인 줄다리기는 칠리 소스보다 매운 맛으로 변한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코바 쳉
출연: 정중기, 양영기, 러이적온, 오군여
Schedule in JIFF
2023.04.29(토) CGV전주고사 2관 11:00
2023.05.01(월) CGV전주고사 1관 10:00
2023.05.05(금) CGV전주고사 1관 17:3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4월 27일 -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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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글 크루즈 / Jungle Cruise, 2021
만약 "제이슨 스타뎀"이 로맨틱 코미디에 나오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가끔씩 떠오른다.
물론,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15년에 개봉한 "멜리사 맥카시"의 <스파이>에서 그도 충분히 웃긴다는 것을 입증했으니 충분히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호스텔>시리즈로 유명한 "일라이 로스"의 최근작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는 "잭 블랙"과 "케이트 윈슬렛"의 가족 영화인 것으로 보아 감독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정글 크루즈>는 "드웨인 존슨"과 "에밀리 블런트"보다 이를 연출한 감독 "자움 콜렛 세라"에 좀 더 눈이 갑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팬들에게는 <오펀: 천사의 비밀>, 그리고 "리암 니슨"과는 <언노운 - 논스톱 - 런 올 나이트 - 더 커뮤터>까지 그가 커리어로는 처음으로 "가족 영화", 그것도 "디즈니"에서 찍게 되었으니까요.
'과연, 이 영화도 앞에서 설명한 영화들처럼 만족감을 주었을지?' - <정글 크루즈>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고대의 전설, "생명의 나무"를 향해 학자 "릴리"와 남동생 "맥그리거"는 그 길로 아마존을 향합니다.
그곳에서 "프랭크"를 만나면서, 여정을 함께 하는 것으로 마음을 모았으나 게획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나 봅니다.
이들 말고도, 누군가 "생명의 나무"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고 이에 잠들었던 고대의 저주까지 깨어나는데..."할리우드"는 다 능력자들인가 봐
1. 어디서 타본 크루즈란 말이지.
영화 <정글 크루즈>는 앞서 말했듯이 파격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저와 같은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정글 크루즈>는 이를 제외하면, 어디서 봄직한 영화들의 장면들이 겹치는 등 새로움이라고는 볼 수도 없고요.
그럼에도, <정글 크루즈>에게 눈이 떼어지지 않는 건 말했던 "아는 맛"인데 이도 저와 같은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배가 됩니다.이거 어디서, 봤는데 말이지...
영화 <정글 크루즈>의 캐릭터 구성을 보면, "브렌든 프레이저"주연의 <미이라>시리즈가 생각나는 건 저만은 아닐 겁니다.
거친 남자 주인공에 비해 어딘가 덜렁거리는 여자 주인공의 케미가 "러브라인"으로 맺는 결과가 뻔하다고 해도 이게 아니라면 만족하지 않을 거잖아요.
여기에 어딘가 모자란 조연 캐릭터까지 영화 <정글 크루즈>의 캐릭터는 유독, <미이라>를 더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도 들 텐데, '혹시, "이모텝"도 그대로인가요?'라고 말이죠.2.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모텝"을 가르쳐줄 때가 되었지.
우리가 알고 있는 <미이라>가 1999년과 2001년에 개봉했으니 어림잡아 필자의 나이가 7살이 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이를 즐겁게 말하고 있지만, 정작 해당 영화를 보았을 때는 무서웠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 왜냐하면, 그땐 <미이라>가 너무 무서웠거든요.
극 중 살을 파먹는 '쇠똥구리'와 사람을 미라로 만드는 악당의 모습은 자꾸만 생각나게 하니 재밌어도 당분간은 시름시름 고통 속에서 앓았어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영화 <정글 크루즈>도 어린 날의 저처럼 많은 아이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할지, 말지?"의 딜레마를 일으킬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원래, 감독님의 특기가 스릴러?
앞에서 언급한 감독 "자움 콜렛 세라"의 대표작이 <오펀: 천사의 비밀>처럼 스릴러"에 쏠려있지만 데뷔작이 <하우스 오브 왁스>였던 것을 생각하면, 관객들을 놀래는 데에는 이만한 전문가도 없습니다.
영화 <정글 크루즈>의 "아기레"가 바로, 차세대 "이모텝"으로 등장하는데요.
먼저, 보여주는 비주얼에는 성인 관객들도 깜짝 놀랄 만큼 뱀들이 피부밑으로 들썩들썩 거리니 어린 관객들이 느끼는 공포는 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모텝"과 비교하여 쌓이는 스토리는 부실해 큰 인상으로 남겨지지 않으나 비주얼만큼은 압도하고도 남습니다.3. 잊고 있던 성룡식 액션
<미이라>를 언급했기에 이런 "어드벤처"장르에서 빠져서는 안 될 볼거리, 즉 "액션"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겠죠.
근데, 이것도 "자움 콜렛 세라"의 주특기 가운데 하나라는 걸 알고 있나요?
스릴러에서는 <오펀: 천사의 비밀>이 있듯이 액션에서는 그의 오래된 파트너 "리암 니슨"과는 함께 <언노운 - 논스톱 - 런 올 나이트 - 더 커뮤터>까지 해왔으니 가장 편안한 작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영화 <정글 크루즈>가 보여주는 전체적인 액션은 "성룡"과 "오웬 윌슨"이 나왔던 <상하이 눈 - 나이츠>시리즈가 떠올랐습니다.이런 액션을 2021년에 다시 볼 줄이야!
지금이야 그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성룡"의 액션은 저 같은 학생들에게도 충분히 통할 만큼 재밌었습니다.
<상하이 눈 - 나이츠>시리즈처럼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것을 제외하면, 여타 그의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액션이지만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최근까지 액션을 연출해온 "자움 콜렛 세라"도 알겠지만, 공간을 작게 가져옴으로 카메라는 더 현란하게 움직여 등장인물들의 동작들을 힘 있게 보여주는 게 요즘 액션이라면, 이번 <정글 크루즈>는 큰 화면에 큰 동작들로 빠른 반응과는 거리가 멀기만 합니다.
여기에 각종 사물들을 이용하는 모습은 상황을 길게 이어나감으로 해당 캐릭터들의 감정까지 보여주니 요즘 관객들에게는 신선함을 저 같은 관객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4. 모두를 챙길 수는 없잖아?
이렇게 본다면, <정글 크루즈>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오락 영화이나 앞에서도 말한 액션도 어디까지나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요소입니다.
이를 제외하더라도 차세대 "이모텝"으로 평가하기에는 "아기레"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확보된 "분량"의 차이가 큽니다.
먼저, <미이라>의 "이모텝"은 정확하게 누구인지 몰라도 자신의 무서움을 보여줄 이야기를 쌓아나감으로 관객들에게 무서움으로 자리를 잡아나갔죠.
그에 비해 <정글 크루즈>는 "아기레" 이전의 동일 포지션의 "요아힘"이 있어 힘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요아힘"의 후반전이 허무하게 날아간 것을 생각하면, "아기레"의 플래시백은 그저 명분을 만들어줄 장면은 아니었는지 의심을 지울 수가 없네요.
무려, 127분이라는 러닝 타임에도 <정글 크루즈>의 문제가 설명 부족이라니 얼마나 더 필요했단 걸까요?그래도 챙길 건 챙겨야지. 암!
이렇게, 악당들의 아쉬운 설명에도 영화 <정글 크루즈>가 챙겨가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건 "여성"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영화 <정글 크루즈>의 시간적 배경은 1916년으로 1차 세계대전이 한창 일어나던 시기이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릴리"를 보는 시선입니다.
극 중 "여성학자"의 조롱이나 "여성이 바지를 입는다?"라는 대사들로 그 시대의 여성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대충이나마 감을 잡게 만듭니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에 보이는 기존 남성 학자들의 분노와 여성 청중들의 박수갈채는 21세기에 만들어진 영화임을 인지하게 만듭니다.
모든 것을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정글 크루즈>는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극장용 여름 영화를 일깨워준다는 것에 다들 만족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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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주 최신 개봉영화(귀문, 레미니 센스, 마더스 인스팅트, 여름날 우리, 캐논볼)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8월 4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귀문 #레미니센스 #마더스인스팅트 #여름날우리 #캐논볼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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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피어 스트리트> 3부작 공식 예고편
[2021년 7월, 넷플릭스 공개]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여러 세대에 걸쳐 마을을 괴롭혀온 무서운 사건들이 실은 모두 연관되어 있다면? 게다가 다음 표적이 바로 우리들이라면? 1994년, 이 섬뜩한 사실을 발견한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R. L. 스타인의 베스트셀러 공포 소설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3부작 영화. 셰이디사이드의 어두운 역사를 관통하는 악몽이 엄습한다.
《피어 스트리트 파트 1: 1994》 - 7월 2일
《피어 스트리트 파트 2: 1978》 - 7월 9일
《피어 스트리트 파트 3: 1666》 -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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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파라다이스> 메인 예고편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모여 사는 ‘파라다이스’ 이 고요한 곳에서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스털링 K. 브라운, 제임스 마스덴, 줄리안 니콜슨이 쫓는 거짓 속 숨겨진 진실의 정체는? [파라다이스] 1월 28일, 디즈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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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다섯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아직 여름 안끝났다! 막바지 여름을 달굴 서스펜스 영화 <타겟>과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한 남자>까지 8월 마지막주 개봉예정작 같이 알아보아요!
타겟
Target
ⓒ 네이버영화
개요: 스릴러 | 한국 | 101분
감독: 박희곤
출연: 신혜선, 김성균, 임철수, 이주영 등
개봉: 2023.08.30.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중고거래로 범죄의 표적이 된 ‘수현’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를 담은 스릴러
CINE PICK!
영화 <타겟>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이 된 중고거래라는 소재와 스릴러 장르가 만나 중고거래 범죄를 날카롭게 포착하여, 실제 사건을 보는 듯한 생생함과 함께 현실 속의 서스펜스를 극대화시킨 작품입니다.
조이 라이드
JOY RIDE
ⓒ 네이버영화
개요: 코미디 | 미국 | 95분
감독: 아델 림
출연: 애슐리 박, 스테파니 수, 셰리 콜라 등
개봉: 2023.08.30.
배급: 판씨네마㈜
시놉시스
성공 가도를 달리던 알파걸 변호사 '오드리'(애슐리 박)는 초고속 승진을 위해 어릴 적 헤어진 생모를 찾아오라는 황당한 미션을 받는다. 꼬ㅊ미남 전문가인 음란마귀 아티스트 '롤로'(셰리 콜라), 흑역사 숨기고 할리우드 진출 앞둔 톱배우 '캣'(스테파니 수), 흐린 눈의 케이팝 광인 '데드아이'(사브리나 우)가 합류하면서 네 친구들의 크레이지한 월드투어가 시작된다! 지구 반 바퀴를 돌고 도는 고생길 끝에 밝혀진 오드리의 출생의 비밀은… 오드리의 엄마가 'K-마미'라고!?
CINE PICK!
전미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할리우드에 아시안 신드롬을 일으킨 화제작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각본을 맡았던 아델 림이 첫 연출에 도전한 작품으로 산뜻한 웃음과 감동을 전할 코미디 영화입니다.
신체모음.ZIP
Body Parts
ⓒ 네이버영화
개요: 스릴러 | 한국 | 104분
감독: 최원경, 전병덕, 이광진, 지삼, 김장미, 서형우
출연: 김민석, 김채은, 권아름, 혁, 강준규, 김아현 등
개봉: 2023.08.30.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싸이더스
시놉시스
“마지막 조각은 바로 너야” 사이비 종교 단체를 잠입 취재하는 막내 기자 ‘시경’. 특별한 의식에 초대받아 참여하게 되고, 교인들은 차례대로 소원을 빌고 제물을 바친다. 드디어 ‘시경’의 차례가 된 순간, 제물이 바로 신체 조각이란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휩싸이게 되는데… 눈, 코, 입… 각 신체 조각에 얽힌 6개의 이야기! 모든 신체가 모이면 날것의 공포가 깨어난다!
CINE PICK!
지난해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신체모음집’은 ‘토막’ ‘악취’ ‘귀신 보는 아이’ ‘엑소시즘.넷’ ‘전에 살던 사람’ ‘끈’까지 총 6개의 에피소드를 묶은 옴니버스 공포영화입니다.
한 남자
A Man
ⓒ 네이버영화
개요: 범죄, 멜로 | 일본 | 122분
감독: 이시카와 케이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안도 사쿠라, 쿠보타 마사타카 등
개봉: 2023.08.30.
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시놉시스
“지금부터 당신의 죽은 남편을 ‘X’라 부르겠습니다” 변호사 ‘키도’는 어느 날 의뢰인 ‘리에’로부터 그녀의 죽은 남편인 ‘다이스케’의 신원조사를 해달라는 기묘한 의뢰를 받는다. 사랑했던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떠난 후, 오랫동안 소원하게 지내던 ‘다이스케’의 형 ‘쿄이치’가 찾아와 영정을 보고는 “이 사람은 ‘다이스케’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 한 순간에 정체가 묘연해진 남자 ‘X’. ‘키도’는 그의 거짓된 인생을 마주하게 되면서 점점 그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진실에 다가설수록 충격적인 과거들이 드러나는데... 그는 도대체 왜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던 걸까.
CINE PICK!
제 46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한 남자>는 2018년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미스터리 속에 충실히 담아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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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황스럽지만 결국 빨려들게 되는 그들의 우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 2022)
“당황스럽지만 결국 빨려들게 되는 그들의 우주”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액션, 판타지, 모험
러닝타임 : 126분
감독 : 샘 레이미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엘리자베스 올슨, 베네딕트 웡, 레이첼 맥아담스, 치웨텔 에지오프, 소치틀 고메즈
개인적인 평점 : 3.5/5
쿠키 영상 : 2개 (엔딩 크레딧 중간에 1개, 엔딩크레딧 후 1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줄거리
끝없이 균열되는 차원과 뒤엉킨 시공간의 멀티버스가 열리며 오랜 동료들, 그리고 차원을 넘어 들어온 새로운 존재들을 맞닥뜨리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 속, 그는 예상치 못한 극한의 적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타임라인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뉴욕에 남아있던 스티븐(닥터 스트레인지)은 전 연인 크리스틴의 결혼식에 참여하게 된다. 스티븐은 아직 크리스틴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남아있지만 크리스틴의 “행복하지?”라는 질문에 애써 괜찮은척, 행복한 척을 해 보인다. 그가 아주 지독한 후회를 느끼고 있는 찰나, 포탈이 열리며 괴물과 함께 멀티버스의 키를 쥐고 있는 소녀, ‘아메리카 차베즈’가 등장한다. 차베즈와 대화를 나눠본 결과, 여러 우주가 위험에 빠져있다는 걸 알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는 어벤져스 중 가장 유능한 마법사였던 완다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러 우주를 떠돌게 된다.
작년 12월 멀티버스의 시작을 알렸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개봉 이후 5달 만에 <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했다. 제목부터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멀티버스를 팔 거야!”라고 선언한 이 영화는 말 그대로 혼란스러운 멀티버스 이야기였다. 영화를 보며 이 캐릭터들을 더 사랑하게 됐고, 2시간 동안 아주 즐겁게 즐겼다. 영화 안에 이것저것 차려진 메뉴가 참 많아 음미하기에 바빴다. 근데 정리가 덜된 밥상을 마음껏 즐기려다 보니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다운 눈호강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을 때, 새로운 유형의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에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스티븐의 능력과 서사, 베네딕트 컴버배치 배우가 뿜어내는 매력.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영화가 보여준 웅장한 시각적 효과, 흔히 말하는 눈뽕! 그 눈뽕에 머리가 다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멀티버스’라는 키워드보다는 스티븐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이번엔 어떤 공간들을 보여줄지가 가장 기대됐다. <노 웨이 홈>에서도 스티븐이 만들어낸 공간을 볼 수 있었지만 다소 어색한 CG에 실망했던지라.. 그래도, 이번엔 닥터 스트레인지의 2번째 솔로 영화인데! 괜찮겠지!! 하며 희망 회로를 불타게 돌렸다. 그리고 희망 회로를 불태운 만큼 이 영화는 내가 만족할만한 퀄리티의 시각효과를 보여주었다. 첫 관람은 꼭 왕왕 큰 용아맥에서!!를 외친 보람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캐릭터의 색을 잘 살린 디자인과 다양한 우주의 모습, 반사의 활용, 영화의 메인 컬러 빨간색을 잘 활용해 시각적인 공포를 높인 부분, 역동적임과 동시에 긴장감을 높여주는 화면 연출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지금껏 본적 없는 어둡고 잔인한 마블 영화
마블 영화라고 하면 보통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이 봐도 괜찮은 영화, 슈퍼히어로 영화. 많은 관객들이 생각하는 마블의 이미지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좀 다르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배우들이 ‘새로운 마블 영화’,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라고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고, 예고편을 봐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듯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매우 어두운 톤을 갖고 있는 영화다.
분위기가 전보다 진중해지기도 했고, 어둡고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꽤 많다. B급 공포 영화의 명인으로 불리는 ‘샘 레이미’ 감독 특유의 역동적인 화면과 ‘마블 영화’라는 틀을 깨며 가감 없이 집어넣은 점프 스퀘어, 다소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상처와 액션 신들, 좀비물처럼 느껴지는 요소들도 꽤 많기에 ‘아이들과 함께 보는 마블 영화’라는 이미지는 잠깐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마블 영화’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색을 지켜낸 샘 레이미 감독의 능력에 감탄했다. 모 영화 같은 경우엔 마블 영화지만 너무 자신의 색을 지키는 바람에 말아먹은 경우도 있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정체성을 어느 정도 지키며 감독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닥터 스트레인지, 마블 영화로 이런 걸 한다고?
영화 개봉 전 공개된 홍보 영상 속, 샘 레이미 감독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 영화 정말 멋있다!’고 느꼈으면 한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아 이 영화 정말 멋있다!’ 150번도 더 말해 드릴 수 있다.
영화의 개봉일이 어린이날 전날이어서 그런지 ‘어린이날을 노리고 개봉한 마블 영화’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예고편을 안 보고 그 어린이날 연휴 개봉이 주는 느낌에 속은(?) 관객들이 꽤 많은 듯 보인다. 추가로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생각하고 간다면 꽤 놀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블이라고 이런 걸 안 하고 못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건 언제나 환영이다.
인간적인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이전에 개봉했던 <블랙 위도우>와 <노 웨이 홈>처럼 꽤나 인간적인 영화였다. 개인적으론 <엔드게임> 이후로 마블이 1대 히어로들의 상처를 하나둘 내놓고, 그것을 회복시키며 이들의 은퇴 수순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블랙 위도우>, <노 웨이 홈>, <호크아이>, 그리고 최근 예고편을 공개한 <토르: 러브 앤 썬더>와 이 영화까지. 커다란 전투를 마친 히어로들의 내면에 남은 아픔과 미련을 툭 까놓으며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안정감을 쥐어주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리 강인한 히어로여도 이들도 사람이기에 상처를 받고, 사랑을 하고, 아파하기도 한다. 스티븐의 경우는 능력을 얻고 칼자루를 쥐게 된 이후 연인 크리스틴과 헤어지게 됐고, 완다는 원치 않는 능력을 얻은 후 전투를 치르다 오빠 퀵실버와 연인 비전을 잃는다. 어디에도 풀어놓을 수 없었던 이들의 슬픔과 분노는 멀티버스의 문을 열게 되고, 스티븐과 완다는 멀티버스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깨우침을 얻는다.
사랑하는 모든 걸 잃은 완다, 어벤져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을 때 언제나 이성적으로 결정을 해야 했던 스티븐. 큰 힘을 가졌기에 많은걸 희생한, 아픈 손가락이었던 두 사람이 한 영화에 나와 세상과 자신을 구해가는 과정이 개인적으론 다소 안쓰럽고 슬프기도 했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멀티버스를 꿰뚫는 단 하나의 키워드 ‘사랑’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스티븐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이별했고, 완다는 사랑을 지키지 못해 결국 악에 현혹된다. 얻지 못한 사랑을 마무리 짓기 위해 시작된 멀티버스 이야기는 돌고 돌다 결국 제자리를 찾는다. 스티븐은 깨진 시계의 알판을 고치며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던 완다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죄를 알게 되고 또 다른 완다를 통해 위로를 받고 스스로를 희생하며 상황을 정리한다.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도 하고, 아프게도 하고, 지켜주기도 하고, 위로해주기도 한다. 각자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인물들은 조금씩 다른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들을 한 번에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랑’이다. <노 웨이 홈>에서 앤드류의 피터 파커가 그러했듯 스티븐 또한 또 다른 우주를 통해 사랑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위로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아쉬웠던 점
영화 자체는 정말 재밌었고, 타고난 과몰입러로서 온갖 감정을 다 동원하며 감상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았다. 개인적으론 완다를 100%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고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차베즈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며 다른 우주에 깜짝 등장한 캐릭터들이 그저 ‘작은 보너스’ 같은 느낌으로 반짝 빛났다 사라지는 것이 정말 아쉬웠다.
<완다 비전>을 본 관객이라면 완다가 왜 다크홀드에 손을 댔는지, 왜 드림 워킹을 하게됐는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겠지만, <완다 비전>을 보지 않고 영화 속 완다의 설명만 들은 관객이라면 그가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급발진을 한 빌런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완다의 마지막이 상당히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멀티버스 속 완다와 협력을 하는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 이상, 사실상 완다는 은퇴 수순을 밟게 될 텐데 이 캐릭터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한 게 못내 아쉬웠다. 매번 아픈 모습만 보였던 캐릭터인데 해방의 절차도 이렇게 어렵고 가슴 아프게 만들어버리다니… 속상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멀티버스의 문을 여는 새로운 능력자 차베즈는 배우의 매력, 서사와는 별개로 별다른 반짝임이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제 첫 등장이기도 하고, 멀티버스가 확장되며 차후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갈수도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깜짝 등장한 캐릭터들은, 긴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영화에 프로페서가?!’하고 놀랐지만 별다른 의미 없이 지나쳐갔을 뿐… 아, ‘너를 믿는다’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하나 남기긴 했다…
최근 마블 영화를 보며 느낀 아쉬움들
마블이라는 프랜차이즈는 가히 독보적이고 거대하다. 마블 이전에도 마블 이후에도 여러 히어로 영화들이 제작되었지만 마블의 히어로들과 이들의 세계관을 이길 프랜차이즈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나 DC 히어로 같은 크고 훌륭한 다른 히어로 프랜차이즈도 존재하지만 대중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히어로 영화’를 만들어온 곳은 마블이 아닌가. 마블은 마블만의 영화를 만들어냈고 그로 인해 관객들의 취향, 극장가의 풍경이 함께 바뀌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런 히어로 영화를 유치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이들의 거대한 자본력과 제작 형태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마블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거나 무조건적인 흥행 공식을 따르고 있는 건 팩트니까). 전세계적인 팬덤을 이끌고 있는 프랜차이즈인 만큼 마블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다양하다. 실제로 2019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마블은 시네마가 아닌 테마파크에 가깝다.”는 한 마디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국내 팬들이 바라보는 마블의 이미지 또한 가지각색이다.
이번에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고 퇴장로에서 들은 이야기와 개봉 전, 후 SNS의 반응을 보면… 최근 마블의 이미지가 꽤 하락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장 눈에 띄는 불만들은 크게 <엔드게임> 이후 은퇴한 캐릭터들에 대한 아쉬움 / 예, 복습에 대한 부담 / 개연성의 실종, 캐릭터들의 매력 부재 등이 있다. <엔드게임> 이후 1세대 히어로들의 은퇴는 당연한 수순이었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치고 다른 아쉬움들을 짧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마블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프랜차이즈이다 보니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한다 해도 이전의 캐릭터나 세계관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상태에서 디즈니 플러스가 런칭되었고, 그 부담은 배로 늘어났다. 이번 영화만 해도 꼭 <완다 비전>을 봐야한다, <로키>, <왓이프>도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디즈니 플러스 역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기 전, 디즈니 플러스에서 <완다 비전>을 만나보라며 광고를 하기도 했다.
다른 시리즈를 모르면 새로운 영화도 온전히 즐길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를 공부하고 가야 하다니. 상당히 부담스럽고 피곤한 상황이다. 물론 실제로 ‘이걸 안 보면 이해 못 함!’ 정도의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긴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다음에도 디즈니 플러스 예, 복습에 신경 써야 할지… 걱정되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재밌게 즐길 순 있지만 ‘알고 가야 더 보이는 영화’라고 한다면, 결국 이전 것들을 보지 않으면 100% 즐길 수 없다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러다 정말 ‘고인물들만 볼 수 있는 영화’가 되는 건 아닐까?
오래된 프랜차이즈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는 그만의 특별한 감동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커다란 세계관 안에서 뛰노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이란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 사이의 구분은 지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계속 이렇게 장벽을 높여간다면 자칭 덕후가 아닌 사람은 더 이상의 접근을 피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그리고 최근 들어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개연성의 실종이다. 활활 타오르는 덕심을 잠깐 내려놓고 말하자면, 영화는 분명 재미는 있는데… 가끔 개연성을 잃는다. 지금은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왜 이건 이유를 말 안 해주지?”라는 질문이 떠올라도 배우들을 보며 어느 정도 흐린 눈을 하고 있지만 이 흐린 눈 필터를 언제까지 장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쉬워도 다시 티켓을 끊게 되는 테마파크
전체적으로 아쉬운 부분들도 있고, 어떤 영화는 나를 크게 실망시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당분간 이 환상적인 테마파크 안에 머물 것 같다. 적어도 오래 함께해온 1세대 히어로들이 남아있는 한은 말이다. 이만큼 나를 즐겁고 슬프고 설레게 하는 프랜차이즈가, 이렇게 성공한 테마 파크가 또 없기 때문이다. 이래서 아쉽고 저래서 아쉽다고 말하면서도 토르가 개봉하면 당장 달려갈 내 모습이 벌써 눈에 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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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니엄의 환희와 청춘의 질감에 관한 인상적인 스케치
술 냄새가 난다. 담배 냄새가 난다. 땀 냄새가 난다. 정돈되지 않은 지저분한 집에서 날 법한 냄새가 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약 냄새가 난다. 제대로 닦아내지 않은 정액 냄새도 문득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것 같다. 시끄럽다. 클럽 음악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내내 쿵쾅거린다. 싸우는 소리가 난다. 불평하는 소리가 난다. 서로를 원망하는 소리가 난다. 홀로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가 난다. 물건을 집어 던지는 소리가 난다. 저주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난다. 청춘의 냄새, 청춘의 소리다. 이 지독한 냄새와 소리 속에서, 여성 청년 비키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다.
2001년의 대만, 고등학교를 중퇴한 비키는 남자친구 하오하오와 동거 중이다. 하오하오는 ‘예술적 퇴폐’를 지향하는 남성이 갖고 있는 쓰레기 같은 전형성을 고루 갖추었다. 돈을 벌지 않고 여성의 노동에 의존한다. 아버지의 롤렉스 시계를 훔쳐 경찰 조사를 받을지언정 결코 직접 노동하는 법은 없다. 하오하오는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집의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비키를 의심한다. 그녀가 바람을 피운다는 망상이다. 자신이 노동하면 비키가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상한’ 하오하오는 이런 가능성을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하오하오는 클럽 음악을 만들고 친구들과 술 마실 때만 생기가 돈다. 가끔 욕구가 일어 다짜고짜 비키에게 관계를 요구할 때만 다정해진다. 자기 신세의 비참함에 심취해 마약을 하고 이를 말리는 비키를 경멸한다. 그렇다. 하오하오는 자신의 자발적, 의도적 비루함을 예술가의 고난으로 오독한다. 비키의 몸과 돌봄, 노동에 극단적으로 기생하면서도 그녀에게 군림하려 든다. 치가 떨릴 만큼 익숙한 인물이다(이상의 〈날개〉를 떠올려보라).
소란 끝에 비키는 하오하오를 떨쳐낸다. 그러고는 클럽 관리자 격인 잭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잭은 책임감이 있고 점잖다. 하오하오가 갖추지 못한 것을 가졌다. 그는 비키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일본으로 떠난다. 비키는 그가 남긴 흔적을 쫓아 일본에 따라간다. 잭은 그녀를 위해 숙소를 잡아주었고, 편지를 남겼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비키는 끝내 잭의 비밀에 다가가지 못한 채 혼자 남는다. 잭에게는 비키와의 관계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음지의 일을 처리하고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두 남자가 떠나간 후, 비키는 그제야 홀로 선다.
비키를 비난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도대체 왜 저런 남자들이랑 붙어 있냐’라는 책망은 그 욕망의 소유자도 적당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물음이다. 우리 모두는 종종 알 수 없는 동기로 이해 못 할 선택을 내린다. 문제는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혼란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다. 욕망과 충동의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그 후과를 알맞게 갈무리하는 것이 성인의 자격이다.
불쾌한 냄새와 소음으로 가득 찬 비키의 2001년은 지극한 성장통의 시기였다. 하오하오는 비키가 자신을 떠나려 할 때마다 애원하며 그녀를 붙든다. 그는 자신이 쓰레기인 것을 안다. 만에 하나 ‘예술가’로 성공하면 미련 없이 비키를 버리겠지만, 그 희박한 가능성이 현실로 도래하기까지는 기생할 상대가 필요하다. 그런 자신을 품어줄 여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 하오하오는 그래서 비키에게 더더욱 매달린다. 비키는 이를 관계의 특별함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하오하오의 곁에 머물렀다. 잭은 상대적으로 비키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그녀와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비키는 잭에게 사랑의 대상이 아닌 친밀한 타자일 뿐이다.
세상의 떠들썩한 환호와 함께 맞이한 새로운 밀레니엄은 비키에게 지리멸렬한 현실의 연장에 불과했다. 오히려 모두가 희망적인 미래만을 말했기에 비키가 살아가는 현재의 형편없음이 더욱 극화되었다. 2001년 겨울, 비키는 하오하오와 잭을 거친 후에야 자신만의 뒤늦은 밀레니엄을 마주한다.
영화는 내내 명멸하듯 깜빡거리는 불빛과 뿌옇게 번진 빛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카메라에 담긴 대상의 경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많은 것을 뒤엉켜 보이게 하는 이 이미지들은 청춘의 열악한 삶을 환기하는 시청각적, 후각적 자극과 맞물려 비키가 살아가는 현실의 혼탁함을 구체화한다. 비키가 문제적 남성들을 떨쳐내고 하얗게 눈 덮인 일본의 한 마을에서 마침내 혼자가 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곳곳에 쌓인 하얀 눈은 어둡고 음습한 방의 뿌옇고 경계가 불분명한 혼탁한 이미지들을 단번에 무력하게 만든다. 일상적 장소에서의 이탈은 종종 시공간의 감각을 새로이 배열하여 기존의 감각을 성찰할 자원이 되어주고는 한다. 자기 자신의 욕망으로 두 남자에게 연루되어 고통받던 비키는 이 극명한 빛의 대비와 일상적 시공간에서의 이탈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할 계기를 마련한다. 두 남자로 상징되는 벗어날 수 없는 폭력적 수수께끼를 뒤로하고 밀레니엄의 환희에 뒤늦게나마 동참하는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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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형 막장드라마(feat. 판타지)
* 스포일러가 다분합니다.
** 리뷰를 쓸 당시는 넷플릭스에서 제공해서 본 것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현재는 왓챠에서 볼 수 있나봐요.
처음 방영된다고 했을 때 소재가 매우 흥미로워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볼 수 있는 TV는 없었고, 방법도 없었다. 불법 다운로드는 안 하고 싶었고 그러다가 놓친 것을 거의 10년 만에 보게 된 것이다. 사랑해요 넷플릭스(지금은 없지만...)
그런 애정의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던 그림, 결국 다 보고야 말았다. 보기 시작했으니, 완결도 났으니 끝까지 다 봐야겠다는 이 마음은 오기 혹은 의리에 가까웠다. 그러다보니 사실 꼼꼼히 보지는 않았다. 보는 도중에 다른 사람들 리뷰도 다 찾아봤다.
다른 리뷰를 보면서 가장 많이 봤던 이야기가 '막장'이라는 것이었는데, 정말 막장이다. 아주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출생의 비밀, 애인 바꾸기, 음모, 술수, 폐륜 등등 한국 아침드라마에서 볼 법한 내용들이 전 시즌에 걸쳐서 가득하다. 물론 간혹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도 있기는 하다.
"인물"
주인공 버크하트는 정말 이기적이다. 세상 맨날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동료들을 앞장 세운다. "먼저 가야지 않겠어?" 식이다. 그래서 본인은 잘 안 다친다. 맨날 위험한 현장에는 먼로를 보낸다던지 한다. 심지어 통찰력은 행크랑 우가 훨씬 높다. 버크하트는 뭐랄까 세상 엄청 감정적이다. '우와와와와와악!' 하는 느낌. 시즌 앞쪽이야 그럴 수 있겠다 쳤지만 뒤로 갈수록 오히려 그림이 아닌 다른 캐릭터들이 더 그림 같다.
"스토리"
인물이랑 연결된다. 아니, 줄리엣이 헥센비스트 되고 나서 엄청 삐뚤어지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자기 애 낳았다고 다른 헥센비스트랑 잘 되는 건 좀 어이없다. 줄리엣을 버린 이유가 헥센비스트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그러니까 막장소리를 들었겠지 싶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엄청 대단한 아이인 것처럼 나왔는데, 결국은 어린신부 후보였고, 막 무서워하다가 "나 이 아저씨 좋음" 이라고 말하면서 엄마아빠까지 죽게 만드는 엄청나게 나쁜 애였다. 성장을 쑥쑥 엄청나게 빨리 하더니 딱 7~8세 정도 되는 나이에서 멈춰서는 자라지가 않았다. 선택형이여? 심지어 성인이 된 모습 나오니 본인 동생이랑 나이 비슷하게 지나갔더라.
세상을 바꿀 애라고 해서 좀 더 빨리 자라서 엄마아빠 모습 쯤에서 멈출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물론 어린 신부 컨셉 맞추려 그랬을수도 있지만 살짝 어이가 없었다. 캐릭터를 잡아놓은 세계관보다 잘 못 쓴 느낌이었다. 드라마가, 그걸 쓴 작가가 '할말하않'의 마음으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림은 무능력하고, 캐릭터들은 붕 떠있고.. 그러다보니 우가 제일 좋다. 인간적이야.
결국 판타지도 하고 싶고, 로맨스도 하고 싶고, 종교도 넣고 싶고, 다 넣고 싶어서 때려 넣었던 '원더풀데이즈' 같았다. 그리고 왜 다들 피붙이에 그렇게 집착하는 건지 진짜 한국 드라마인줄.
정말 꾸역꾸역 다 봤다. 기대가 커서 실망이 컸다고 하기엔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
신기한건 2011년~2017년 6년 걸쳐서 찍은건데 배우들이 어쩜 단 하나도 안 늙은 느낌인지. 그 시간동안 나만 늙었나 보다. 마지막 시즌은 다른 시즌보다 짧고, 급하게 마무리한 느낌이 있었다. 아마 정말 급하게 마무리한게 아닌가 싶다. 시작은 했으니 우선 끝은 내야겠다 같은 그런 마음으로 마지막 시즌을 내놓지 않았을까?
첫 시즌할 때 엄청 기대 했었는데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을 줄이야.
시간 때우기 용으로는 너무 길고, 좋은 드라마라도 보기에는 좀 그렇지만 그래도 은근 재미는 있었다. 줄리엣 불쌍해서 응원하게 된다. 이러나 저러나 발상은 좋았던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