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정보
Canada, Mexico /2024 / 77min/ DCP/ Color / Fiction /15세 이상 관람가 /Korean Premiere
시놉시스
40대 초반의 세 친구가 중요한 배역을 따내기 위해 영화 오디션을 보러 간다. 오디션 과정 중 한 친구가 전직 문학 교사를 인터뷰한다. 그녀의 목소리가 우리를 그들의 과거로 인도하고, 우리는 그들이 문학을 통해 현실의 지루하고 비참한 세계에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꿈을 꾸고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거를 회상하는 동안, 그들의 우정은 불안한 삼각관계로 얽혀든다.
리뷰
시코와 캐나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니콜라스 페레다 감독의 2024년 작 <밤의 라사로>(Lázaro at Night)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가능한 영화를 향하여' 섹션을 통해 국내 관객에게 소개된 작품이다. 77분의 러닝타임 동안 감독 특유의 영화적 언어로 현실과 허구, 과거와 현재, 문학과 삶의 경계를 섬세하게 탐색하는 이 영화는 지적인 유희와 멜랑콜리한 정서가 공존하는 독특한 관람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는 다양한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인물들이 모여 각자의 직업관과 연애관에 대해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익숙한 풍경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페레다 감독과 꾸준히 작업해 온 배우들이 다시 한번 등장하며, 이들의 실제 모습과 영화 속 캐릭터가 미묘하게 중첩되는 세계가 펼쳐진다. 한 여성의 내레이션은 관객을 등장인물들의 과거로 인도하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그들이 지루하고 때로는 비참하기까지 한 현실에서 벗어나 문학을 통해 꿈꾸고 희망을 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과거를 회상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우정은 예기치 않은 삼각관계의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니콜라스 페레다 감독은 자신만의 확고한 영화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로 평가받는다. <밤의 라사로> 역시 그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미니멀한 서사, 인물들의 일상적인 대화 속에 숨겨진 미묘한 심리, 그리고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인 접근 방식을 이어간다. 영화 속에서 세사르 아이라, 마리오 레브레로와 같은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이름이 언급되지만, 특정 문학 작품의 직접적인 각색이라기보다는 문학적 사유와 영화적 상상력이 결합된 페레다 고유의 창작물로 읽힌다. 이는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감독의 예술적 지향을 반영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영화의 중심에는 기억, 문학을 통한 구원 혹은 도피,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라는 주제가 자리한다. 인물들은 문학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실의 무게를 잠시 잊고 다른 삶을 상상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관계의 균열과 갈등은 지극히 현실적인 아픔을 동반한다. 감독은 이러한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며, 관객에게 삶과 예술의 불가분성에 대해 성찰할 여지를 남긴다.
페레다 사단이라고 불릴 만큼 긴밀한 호흡을 맞춰온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오가는 듯한 영화의 독특한 질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의 존재는 단순한 캐릭터 연기를 넘어, 감독이 구축하고자 하는 영화적 세계의 일부로서 기능한다.
결론적으로 <밤의 라사로>는 명확한 기승전결이나 극적인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내면과 관계의 미묘한 흐름에 집중하는 관조적인 작품이다. 니콜라스 페레다의 영화 언어에 익숙하거나, 문학적 사유가 깃든 예술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이라면 영화가 던지는 지적인 자극과 여운을 깊이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와 같이 새로운 영화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장에서 이 작품을 만나는 것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 예술과 관계를 통해 위안과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초상을 담아낸 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더 짙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왕관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다수의 힘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영화 <킹메이커>는 그 빛과 그림자, 왕과 왕을 만들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김대중과 엄창록이라는 실존인물
우선 이 영화가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재해석된 이야기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이야기 자체는 픽션이지만, 영화를 보자마자 배우 설경구가 연기한 ‘김운범’이 어떤 정치인을 모티브로 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구수한 전라도 억양, 카리스마 있는 눈빛, 그러나 한없이 국민을 위한 애정을 겸비한 정치인. 바로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을 지낸 故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러나 그의 곁에 머문 ‘서창대’라는 인물은 다소 낯설었다. 그 역시 실존인물을 모티브 한 캐릭터다. 바로, 4수 끝에 김대중 대통령을 국회의원에 당선시키며 선거판의 여우로 불렸던 ‘엄창록’이라는 인물.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왕을 만드는 사람, 그 그림자에 대한 조명
사람들은 주로 빛을 본다. 무엇보다 당선된 정치인의 능력과 자질을 높이 평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이 당선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뒤를 받쳐주는 전략가들이 존재할 것이다. 이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빛과 함께 그 그림자를 조명했다는 점이었다. 영화 속 ‘창대(이선균)’는 운범의 그림자였다. 그는 운범을 존경했으며, 같은 이유로 운범을 돕고 싶어 했다. 계속해서 낙마하는 운범의 곁에서 자신의 전략을 총동원해 그를 당선시키고 싶어 했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이기기 위해서라면 대의만큼 전략도 중요한 법
대의만 있으면 통할 거라고 믿던 우직한 운범과는 달리, 창대는 셈이 빠르고 영리했다. 상대 당의 수와 선거판의 흐름을 읽을 줄 알고, 상대 당을 교란시키거나 민심을 얻는 방법을 그는 알았다. 때로는 이겨야 한다면 마타도어식 술수까지 펼칠 준비도 되어 있었다. 지금에야 선거캠프를 꾸려 이기기 위한 책략들이 활발히 논의되는 시대지만, 6-70년대 그 시절에 어디 그런 게 있었겠는가. 실제 ‘창대’의 모티브가 된 ‘엄창록’이라는 인물은, 점조직을 도입하고 피켓을 이용하는 등 당시로써는 매우 기발한 전략으로 故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에 큰 힘을 발휘했다고 전해진다. 어찌나 대단한 전략가였는지, 박정희 정권에서도 탐내던 인물이었다고.
두 가치는 양립할 수 없는 걸까
운범과 창대는 같은 목적을 가졌으나 그 목적을 이루는 방법이 너무 달랐다. 그런 서로의 차이점이 시너지를 빚어 눈부신 성공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그런 만큼 더 강렬히 부딪히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공세도 마다않는 창대의 욕심이, 때때로 운범이 지키려는 가치를 훼손하려 하기 때문이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져야 하는 대의
나는 굳이 따지자면 창대에 가까운 사람이다.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약간의 꼼수쯤은 필요하다고 믿는 얄팍한 인간. 하지만 그런 이유로 늘 운범과 같은 우직한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 덜 확실하고, 더 느리게 돌아가더라도, 진심과 떳떳함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운범의 모습을, 창대도 그래서 존경했던 게 아닐까.
물론 때때로 창대 같은 마인드는 분명히 필요하다. 대의를 펼치기 위해서는 일단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하는 것이 먼저니까. 하지만 운범을 통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지. 운범의 모티브가 된 故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 역시 그 메시지를 꼭 담고 있다. 편법과 술수를 쓰지 않더라도, 돌고 돌아 아주 느리게 실현되더라도, 언젠가 정의는 반드시 빛을 발한다고 말이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변성현의 스타일리시한 연출
변성현 감독의 영화 <불한당>에 한참 동안 빠져있었던 적 있었다. 그의 미술적 감각을 특히 좋아했다. 색감을 이용해 달리 연출하는 분위기, 빼어난 미장센, 흥미로운 편집 등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돋우는 그만의 마법 같았다. <킹메이커>에서도 그 감각은 여전했다. 그에 의해 구현된 60-70년대 풍경은 작은 소품부터 의상, 전체적 색감과 분위기까지도 그만의 특유의 스타일리시함이 묻어나,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이에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느낌이었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믿고 보는 명배우들 라인업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운범을 향한 존경, 이기고자 하는 전략가의 야망을 모두 담아낸 이선균의 섬세한 연기는 늘 그렇듯 안정적이다. 각각 청와대의 이 실장과 유망한 야당 국회의원을 연기한 조우진, 유재명 배우의 연기 역시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 대단한 배우들의 앙상블 그 중심엔 설경구가 있다. <불한당>에 이어 <자산어보>까지 매번 색다른 연기를 보여주며 남자 배우 3대 트로이카에서 빠지지 않는 설경구의 연기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을 만큼 탄탄하다. 전라도 억양과 표정 연기는 일품이었고, 연설 장면에서는 뜨거운 정치적 신념이 묻어나 너무도 뭉클했다. 그의 관록은 정말이지 언제 보아도 놀랍다.
* 해당 포스팅은 시사회 초대 및 소정의 비용을 지원 받아 작성하였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