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5-08 19:55:46
[JEONJU IFF 데일리] 달까지 가는 롤러코스터
영화 <외계 우주 정복자 환영> 리뷰
DIRECTOR. 안드레스 후라도
CAST. 안토니오 자르코
SYNOPSIS. 냉전의 긴장 속, 콜롬비아와 파나마의 국경 지대 다리엔(Darién)에서 길을 잃은 우주 비행사들이 원주민들 때문에 놀라 깊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들이 목이 잘리거나 야생 식인종에게 잡아먹히게 될 거라고 예상했을까? <외계 우주 정복자 환영>은 열대 생존 훈련에 사용된 프로파간다 아카이브와 관련 영화들을 재조립해 우주 정복이라는 미션에 새겨진 식민주의적 내러티브에 도전한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첫 감정은, 역사 속에서 갈기갈기 찢긴 상처의 조각들을 퀼트처럼 엮은 영화 같다는 것이었다. 파나마의 정글에서 생존 훈련을 받는 우주 비행사들에 대한 뉴스 풋티지 영상을 보여준 다음 "원주민의 콜럼버스 발견은 그들에게 재앙이었다"는 텍스트를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는 이 영화의 방향성을 명확히 해 준다. 이 영화를 거칠게 요약하면, 달과 우주에 대한 인간의 야심을 식민지 혹은 제3세계 착취에 대한 야심과 대구를 이루도록 병치시켜, 조각조각 자르고 붙인 작품이다.
우선 콜럼버스라는 이름을 어원으로 하는 국가명, 콜롬비아의 역사를 조금 살펴보자. 많은 남미 국가들이 그렇듯, 콜롬비아 또한 원주민들이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땅이었다. 천문학과 금 세공에 능했던 무이스카족의 이야기는 훗날 서양에 '엘도라도' 황금 도시의 전설로 전해진다. 그리고 15세기 말에서 16세기 무렵, 스페인이 무이스카 왕국을 정복하고 오늘날까지 수도인 보고타를 설립하면서 길고 긴 식민지배의 날들이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주민 인구가 급감할 만큼 잔혹한 학살이 있었다. 게다가 현지 주민들은 유럽인들에게 묻어 온 천연두, 홍역 등의 질병에 면역이 없었으므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스페인은 당시 식민지에서 엔코미엔다라는 시스템을 쓰고 있었다. 이는 해당 지역에 파견한 통치자에게 토지와 주민 통치권을 위임하는 것인데, 통치자는 노동력과 세금을 징발할 수 있었고 여기에는 보호와 기독교 개종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사실상 국가로서는 방임이었고, 통치자 입장에서는 현지 주민들을 쥐고 짜서 나오는 만큼 가질 수 있는 조건이었다. 착취적인 강제 노동과 폭력으로, 사실상 노예노동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괴롭고 지난한 역사 끝에 마침내 19세기, 뜨거운 심장을 가졌던 시몬 볼리바르가 이끄는 독립군을 주축으로, 콜롬비아 사람들은 독립을 이룩한다.

하지만 독립국이 되었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이제는 미국과의 관계가 협력과 갈등 사이를 미묘하게 오락가락하는 20세기가 시작된다.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영토였는데, 파나마 운하 건설을 원했던 미국이 파나마의 독립을 지원해 버린다. 추후 보상금을 지급하고, 군사와 외교 문제로 미국과 협력은 깊어진다. 남미에서 콜롬비아는 미국의 주요한 "반공" 동맹이었다. 그 결과 영화에서도 "더 나은 세계"를 위해 미국과 콜롬비아가 협력한다는 내용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우주를 향한 야욕은 패권에 대한 야욕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으므로, 닐 암스트롱을 비롯한 우주 영웅들이 콜롬비아를 방문했을 때 온 국가가 그들을 환영하면서도 동시에 질문이 나온다. 저개발 제3세계 국가로서, 우주에 수백만 달러를 태운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우주비행사들은 "달에서 돈을 찾은 사람은 없다."는 식의 정보값 0인 문장으로 대답한다. 할 말이 없었겠지.
그러나 달에서 돈을 찾은 사람은 정말 없는가? 애초에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에 충격을 받고 이룩한 성과로, 달 착륙은 철저하게 정치경제적 계산이 깔린 프로젝트였다. 물론 우리가 달에서 무슨 광물을 캐다 사는 건 아니니까 "향후 몇 년간 인류가 얻는 것은 정보일 것"이라는 닐 암스트롱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라지만, 수많은 산업이 창출되고 국방 전략 자산화를 했던 것, 소프트파워를 과시한 것을 고려하면 다양한 유무형 자산을 얻은 건 사실이다. 뭐랄까, 1945년에 일본인들이 살던 집을 내버려두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다고 해서 그들이 식민지배로 '돈'을 얻지 않은 건 아니니까.

식민지에 대한 착취는 언제나 다방면으로 이루어진다. 보고 있노라면 '달을 정복'하겠다던 옛 유럽인들의 상상도는 식민지를 향한 제국주의의 탐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래 전 유럽이 상상한 '달 정복'의 풍경은 이렇다. '야만인'과 '유인원'의 중간쯤 되는 존재들이 날아다니고 있고, 꽃잎 위에 여성이 자고 있으며 (와중에 망원경까지 쓰고 보고 있다), 낯선 동물들과 새들이 많다. 이들은 큰 범선을 타고 달에 날아가, '야만인'들의 목에 밧줄을 두르고 채찍질을 하고, 동물들을 사냥해 배에 주렁주렁 매달고 돌아오는 꿈을 꾼다. 나비 요정 같은 저 여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도에서조차,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겠지. 하긴 우주비행사들도 '여성 우주인'이 있어서 안고 자면 좋겠다는 소리나 하고 있다.
보고 있으면 "너네는 뭐가 그렇게 다 쉽냐?"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인디언'을 '발견'한지 20년 되었다고 그들의 '역사'를 쓰겠다더니, 그들은 '흥이 많고 호전적이다' 뭐 이런 소리나 하고 있다. '이우아나'라는 동물을 육상동물로 분류할지 수상동물로 분류할지 고민하다가 멋대로 어느 한쪽에 귀속시킨다. 이 동물은 훗날 생존 훈련을 받는 우주비행사들에게 먹이로 주어진다. 늘 이런 식이지. 신비화하는 동시에 그 신비를 쥐고 흔들고 싶어 하는 것.

이우아나를 보며 일제 강점기 때 숱하게 사라진 우리 개 '동경이'를 떠올렸고, 회사를 차려 금을 채취하는 장면을 보면서 구한말부터 우리도 겪은 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픈 사람들을 보낸 곳이 있다기에 병원이라도 지었나 했더니 거기서 '하이바나'를 했단다. 약초에서 기인하고,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부르게 만드는 것. '하이바나'가 샤먼이라는 의미임을 생각하면, 치료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 과정에서 식민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자화된다. '인간 사냥꾼', '금속을 좋아하는 사람들' 같은 식으로 신비화되고, 철저하게 세팅된 자리에서 우주비행사가 이들을 만나는 자리를 '크로스-컬처'한 경험이라고 한다. 어떤 문화도 넘나들지 않고,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자들이 이제는 언어까지 반지르르하게 넘본다. 대책 없는 착취. 상대를 지속 가능하게 두지 않는 착취. 그게 식민지의 본질이다.

이 모든 야만은 지난 세기의 것이어야만 한다고 선언하듯, 이 영화는 시종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듯한 옛날식 노이즈로 덮여 있다. 오래 전의 풋티지뿐 아니라 모든 장면이 그렇다. 일정한 화면비 안에서 펼쳐지지도 않는다. 달 모양으로 둥근 화면만 한참 보여 주기도, 화면을 양분해 멜리에스의 영화 한 장면과 현실을 나란히 보이기도 한다.
각종 풋티지가 빠르게 전환되고 많은 부분이 텍스트 자막으로 처리되어 지나가다 보니, 배경 지식 없이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다. 느낌만으로 따라가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앞에서 뿌린 ("갑자기 왜 이구아나?") 내용이 뒤에서 대구를 이루며 거두어질 때, 그리고 거기서 야만성의 편린이 드러날 때 한 번씩 가슴이 철렁한다. 그래도 가장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은 역시 마지막 풋티지일 것이다. 광고 문구처럼 빠르고 현란하게 지구가 아프다는 말을 내뱉는 순간, 이 식민지배의 야만이 우리 모두의 것임이 피부로 와 닿기 때문이다. 조각조각 이어 붙여 매단 돛단배를 타고 달까지 도달한 순간, 내가 타고 있는 것이 롤러코스터임을 깨닫는다. 신기한 영화적 경험이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2025.04.30-05.09) 상영일정]
2025.05.02 17:00 메가박스 전주객사 5관
2025.05.03 17:00 CGV전주고사 8관
2025.05.07 20:30 CGV전주고사 8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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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알라딘 총정리 #9
환몽씨네 디즈니 특집 1편!
영화 알라딘 (Aladdin, 1992) 분석**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올해도 내년도 디즈니꺼!
환몽씨네 '디즈니 라이브 액션' 특집!'알라딘'과 '라이온 킹'에 대해 재밌게 떠들어 봤어요 :)
1편에서는 알라딘 실사화를 기념해,
환몽씨네가 26년만에 애니메이션 알라딘을 이야기합니다.- 승승장구하는 디즈니
- 디즈니의 실사 프로젝트 ‘디즈니 라이브 액션’
- 알라딘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 알라딘이 중국인이라고?
- 디즈니의 캐릭터 설정
- 영화주제 : Be Yourself
- 실사화에서 기대되는 장면!영화 '알라딘'을 보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2편 '라이온킹'도 많은 기대해주세요!
#알라딘 #aladin #영화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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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4」리뷰 | 그래서 MODAL 101 은 무슨 뜻일까? | 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뷰 모달101 | 매트릭스4 영화리뷰 | 매트릭스4 해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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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1 오프닝 초반 장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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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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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스위트 투스: 사슴뿔을 가진 소년> 티저 예고편
[2021년 6월, 넷플릭스 공개]
반은 인간이고 반은 사슴. 하지만 너무도 사랑스러운 소년.
그 아이가 종말 이후의 세상을 가로질러 위험한 모험을 시작한다.
퉁명스러운 보호자와 함께, 어딘가 있을 새로운 시작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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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래곤 솔져> 예고편
깨어난 전설의 드래곤 vs 최정예 특수대원
마을 사람들이 정체불명의 괴수에게 습격당한다.
특수부대 용병들이 투입되고 산을 수색하는데
그들이 마주한 것은 전설의 거대한 드래곤이다.
영리한 드래곤에게 용병조차 하나 둘씩 당하고
드래곤과의 정면 대결을 위해 최후의 작전에 돌입하는데…
상상초월의 대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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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왜 272kg이 되었는가
- 더 웨일(The Whale, 2023)
장르 : 미국·드라마 │ 감독 : 대런 애러노프스키
출연 : 브렌든 프레이저(찰리), 세이디 싱크(엘리), 홍 차우(리즈)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7분그는 왜 272kg의 거구가 되었는가
자기혐오를 유발하는 순간들 중 하나가 바로 ‘식탐을 절제하지 못할 때’가 아닐까 싶다. 스트레스를 받아 절제력을 상실한 채 입안 가득 음식들을 밀어 넣고 나면, 배부름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혐오가 밀려오곤 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이 찌고, 그렇게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으리라. <더 웨일>의 주인공 ‘찰리’도 그 과정을 반복한 끝에 272kg의 거구가 되었다.
하지만 찰리가 소파에서 혼자 몸을 일으키는 것도 힘겨운 상태의 비만이 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에게는 가정을 저버릴 만큼 사랑했던 연인이 있었는데, 그 연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물리적으로 잃은 것도 괴롭지만, 그 사랑을 위해 포기한 원래의 가족 또한 잃은 셈이니 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너진 그의 세상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삶의 고통을 식음을 전폐하는 방식으로 견디듯, 그는 끊임없이 음식을 채워 넣으며 견뎠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맛’이 아니라 그저 먹는 ‘행위’를 추구했는지도.
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 다양한 주제
영화는 한 발짝도 제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거구의 남성이 집안에서 어떻게 삶을 비관하고 죽어가는지를 보여주기에, 화면 자체는 단조롭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의 세상은 온통 집뿐이다. 그럼에도 플래시백을 통해서조차 과거를 보여주지 않고 집안만을 조명하는 것은, 어쩌면 272kg의 찰리가 겪을 단조로움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면 영화가 다루는 주제들은 화면과 달리 결코 단조롭지 않았다. 퀴어와 종교,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나아가 자기 파괴와 구원까지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272kg의 거구를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물론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먼저 들겠지. ‘그래도 그렇지 얼마나 자기 관리가 안되면 저 지경이 돼?’ 사실은 나도 도입부의 찰리를 보고 함부로 그를 판단했다. 어쩌면 세상 모두가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찰리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깨닫고 난 이후부터는 그가 단순한 ‘비만인’으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자기 관리의 부재’, ‘절제력 부족’이라는 말만으로 한 인생을 가볍게 판단하기에 사람에게는 누구나 복잡다단하고 커다란 세계가 있음을 새삼스레 확인하게 되었을 뿐.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단순한 스트레스를 찰리의 고통에 견줄 수야 없겠지만,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부정적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입으로 음식을 밀어 넣고 있다. 나 또한 자주 그렇다. 세상은 그런 우리에게 자주 이런 잣대를 들이댄다. “정말 너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구나. 살을 빼야지! 건강해져야지! 이겨내야지!” 그리고 정신력을 발휘해 비만을 탈출하는 것만이 제대로 된 구원이라고 믿게 만든다. 물론 보통의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아마도 찰리는 사랑하는 딸과 친구를 위해 열심히 살을 빼고 다시 리즈시절의 몸으로 돌아왔을지도 모르지만, <블랙스완>의 ‘대런 애러노프스키’가 연출한 이 작품은 고요하게 현실적이었다.
그는 오히려 그 육신을 포기함으로써 구원받았다. 종교로도 그 무엇으로도 떨쳐내지 못한 이 생에서의 슬픔은, 그렇게 홀연히 껍데기를 벗으면서야 마무리 된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나를 과연 내 육신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진정한 구원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역겨워?”라고 묻던 찰리의 처연한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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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SF영화
많은 기억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저장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기억들은 저장해 두고 시간이 될 때마다 그 기억을 꺼내 떠올린다. 마치 영상이 재생되듯이 그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에는 그때 느꼈던 감정, 촉감에 집중한다. 어떤 기억은 아주 행복하고 어떤 기억은 아주 고통스럽다. 이렇게 기억들은 상황에 따라 선별적으로 저장된다. 의식적으로 이 기억을 저장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순간들은 어느 순간 지나고 보면 잘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한다. 모든 경험 중 아주 특별한 기억들만 남아 오랜 시간 저장된다.
이렇게 저장된 기억들은 모여서 기억 속 과거가 된다. 종종 과거를 떠올리고 그 순간을 다시 돌아본다.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누구나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과거의 특정한 기억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기도 한다. 때론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좋은 길잡이가 되지만 현재의 삶을 방해하기도 한다. 특히나 과거의 행복한 순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순간부터 현재는 불행해지고 살아가야 할 동력이 줄어든다.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현재보다는 과거의 영광을 생각하며 현재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현재는 불행해지고, 과거에의 집착은 더욱 심해진다.
과거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 <레미니센스>
영화 <레미니센스>는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 속 레미니센스는 과거의 특정 기억을 떠올려 그때의 감정이나 촉감을 좀 더 디테일하게 느끼게 해주는 기계다. 일종의 과거로의 여행을 하게 도와주는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과거로의 여행을 돕는 인물은 닉(휴 잭맨)이다. 닉은 이 기계에 들어간 의뢰자들을 음성으로 안내하여 안전하게 과거를 느낄 수 있게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닉은 동료인 와츠(탠디 뉴튼)와 함께 그 가게를 운영하면서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그가 가게를 운영하며 만나는 고객들은 대부분 과거의 행복한 기억에 반복해서 머무르려 한다. 꽤 다양한 사람들이 그 과거에 접속하는 모습은 꽤 흥미롭게 느껴진다.
초반에 보이는 닉은 꽤 이성적이지만 공감능력이 있는 인물이다. 고객들이 과거에 너무 빠지는 것에 대해서 주의를 주거나 우려점을 충분히 전달해주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객이 있다면 어느 정도는 금전적인 할인도 해준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고객으로 등장하는 메이(레베카 퍼거슨)를 만난 이후 그는 새롭게 만난 메이와 많은 공감과 감정을 공유한다. 과거 행복한 기억이 별로 없는 듯 보였던 닉은 메이를 만난 이후 그만의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간다. 그가 그렇게 현재의 좋은 기억들을 과거로 쌓아둘 수 있었던 것은 과거보다는 현재에 좀 더 집중했기 때문이다. 현재 눈앞에 있는 메이라는 여인에게 집중하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는 과거에 함몰된 영화 초반의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메이가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중반 이후 닉도 점점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 메이와의 순간들을 다시 느끼기 위해 기계에 스스로 접속하고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자신의 연인이 떠나간 이유를 찾으려 애쓴다. 그래서 아주 이성적으로 보였던 닉은 점점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현재보다는 과거에 머무르며 그 행복한 순간들을 다시 경험한다. 다만 사라진 연인이 왜 말도 없이 떠났는지에 대한 미스터리를 찾는 것이 주요 목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있긴 하다.
이성적인 닉이 과거에 집착하게 되기까지
옆에서 그를 돕는 와츠 역시 과거에 접속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아예 자신의 과거를 차단하고 있는 인물이다.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와츠는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단절시킴으로써 현재를 억지로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가 살아가는 현재는 꽤 공허해 보이고, 그가 들이키는 술은 그 공허함을 달래는 도구로 보인다. 그는 과거의 미스터리를 푸는 닉을 돕지만 그가 다시 현재를 살아가길 설득한다. 하지만 과거를 단절한 본인의 현재가 공허함을 잘 알기 때문에 그 설득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실 영화가 풀어가는 메이의 미스터리는 꽤 흥미롭다. 닉과 같은 시선으로 메이를 바라봤던 관객들은 그가 왜 사라졌는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를 동일한 감정으로 따라가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발생하는 미스터리는 영화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영화는 메이에 대한 약간의 반전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어서 다소 맥이 풀리게 한다. 또한 영화의 말미에 닉이 선택하는 어떤 모습은 그가 현재를 살아가지 않고 과거에 머무르는 것인데, 이런 닉의 선택 또한 초반에 그가 보여준 모습과 반대되는 모습이어서 영화가 가진 전체적인 주제와도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며 걸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마지막 닉의 모습은 과거에만 함몰된 것처럼 보여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온전히 현재를 살아갈 기회를 얻은 인물은 와츠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부패한 경찰이나 재벌, 심지어 주인공 닉까지 모두 현재를 살아갈 기회를 얻지 못했거나 스스로 포기한다. 하지만 와츠는 단절했던 과거를 다시 회복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고, 그가 스스로 만든 현재에도 동료인 닉을 끝까지 보살핀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영화의 주제를 대변하는 인물은 닉 보다는 와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설정에 몇 가지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 영화의 배경은 미래의 플로리다다. 도시의 일부가 바닷속에 잠기면서 도심지의 건물들의 저층은 대부분 물속에 잠겨있고, 일부 잠기지 않은 길은 차가 다니지만 대부분은 작은 보트로 이동을 한다. 또한 해가 진 이후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낮과 밤이 바뀐 도시처럼 보인다. 도시 건물의 저층 대부분이 물에 잠겨있는 모습은 이전에 보아왔던 완전히 물에 잠긴 도시의 모습과는 차별화되고 그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며 시선을 끈다. 과거를 시각적으로 영상화하여 제삼자가 볼 수 있다는 점도 새로운 설정이다. 과거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기억을 화면으로 터치하여 보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레미니센스>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만들어진다. 과거의 모습이 3차원으로 구현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기억을 하고 있는 본인이다. 즉,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레미니센스라는 기계 안에 연결되어 있어야만 영상으로 구현과 저장이 가능하다.
신선한 세계관 속에 영화의 주제의식과 모순되는 캐릭터의 선택
영화 <레미니센스>는 꽤 신선한 설정과 세계 관위에 구축된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이미 많이 보아온 SF의 세계관을 살짝 비틀어 조금 색다른 배경을 보여주고 있고, 영화 안에서 보여주는 과거 구현 기술도 좀 더 디테일하게 파고들어 그 기술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담고 있다. 그러니까 SF 영화답게 미스터리와 액션, 시각적 화면 그리고 철학적인 주제가 복합적으로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담고 있는 마이애미의 모습은 꽤 아름답고 닉과 메이, 와츠 같은 주요 등장인물들도 꽤 매력적이다. 또한 영화의 주제를 담아낼 수 있는 인물로 만들기 위해 적절하게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보인다.
이렇게 잘 구현된 세계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시종일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다른 방향으로 캐릭터가 소비되면서 그 주제의식이 희미해지고 말았다. 이 영화의 세계관을 구상한 리사 조이 감독은 유명한 SF 드라마 <웨스트 월드>의 세계관을 매력적으로 구성한 경험이 있다. 그는 <웨스트 월드>의 감독, 각본까지 담당하면서 꽤 훌륭한 주제의식과 세계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었다. 이번 첫 장편 연출작인 <레미니센스>에서도 그가 가진 뛰어난 구상 능력을 확인할 수 있지만, 영화 주제를 이야기하는 측면에서의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리사 조이 감독은 앞으로 다양한 스튜디오들과 함께 더 많은 SF영화나 드라마를 연출할 예정이어서 그가 만들어갈 세계관으로 어떤 이야기를 보여 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 영화가 해피엔딩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닉은 메이에게 행복한 이야기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해피엔딩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더 슬프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 이야기에 메이는 그럼 중간까지만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어쩌면 닉은 메이의 부탁과 마찬가지로 그 중간까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끊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가 어떤 식으로 망가지는지를 계속 이야기했다. 그 주제 의식 아래서는 닉의 마지막 모습은 배드 엔딩일 것이다. 하지만 닉과 메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적어도 그들에게는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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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구에서 외치는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
3년 전만 해도 듄친자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듄친자의 운명을 거부했다. <듄>만으로는 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듄: 파트2>를 본 이후 이젠 듄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모래 늪에 두 다리가 빠져 탈출하지 못할지언정 그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이 고전 원작을 자신만의 운명 사슬로 엮어낸 드니 빌뇌브의 연출력을 보아하니 더 이상 탈출구는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 수순은 그의 모든 계획이었으리니~ 폴을 위해, 그와 함께 대서사시를 만드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드니 빌니브를 위해 외쳐본다. 리산 알 가입!
|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자, 인간이니!
폴(티모시 살라메)은 살아남았다. 황제 샤담 4세(크리스토퍼 월켄)의 모략으로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없어졌지만, 가문 유일의 후계자인 그는 어머니인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와 함께 사막 부족인 프레멘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폴과 레이디 제시카는 각자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각 반란군, 부족 대모가 된다. 레이디 제시카는 더 나아가 폴을 프레멘이 그토록 바라던 메시아 ‘퀴사츠 해더락’으로 만들려 한다. 폴은 그 운명을 거스르려 하고, 동료인 챠니(젠데이아 콜먼)와 사랑을 키워 가려 한다. 한편, 반란군의 기세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 황제는 하코넨 가문의 암살자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를 아라키스로 보낸다.
(모두가 인정하지 않겠지만) 드니 빌뇌브 영화의 단골 주제는 ‘운명’이다. 극 중 인물들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이고, 그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그을린 사랑>의 쌍둥이 남매는 태생의 비밀, <컨택트>의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미래의 모습,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라이언 고슬링) 또한 정체성의 비밀을 확인하고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 마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수족관 속 활어처럼, 이들은 이미 정해진 운명을 목도하고, 그제야 자신이 처한 처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거스르고 싶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자진해서 들어간다. 그 희생과 감내를 해야만 사랑하는 이들에게 값진 것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가 <듄>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했을 때, 감독의 작품 속 관통된 ‘운명론’이 다뤄질 것이라 예상했다. 메시아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 자리에 섰을 때 우주의 재앙이 몰려온다는 걸 알고 이를 벗어나려는 주인공 폴은 드니 빌뇌브가 군침을 흘릴 캐릭터라 생각했기 때문. 운명을 알고 그것을 벗어나려 하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확인한 후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감독 이전 작품의 주인공들과 그 궤를 같이한다.
<듄>은 폴에게 닥칠 운명의 소용돌이 여파를 크고 깊고 넓게 만들려는 목적성이 가장 컸다. 감독의 운명론을 보여주기 위한 디딤판을 견고히 만들기 위해 영화는 아스트레더스 가문의 몰락, 하코넨 가문과의 악연, 프레멘과의 인연, 퀴사츠 해더락의 운명 등을 보여주고, 암시하는 데 주력한다.
이를 바탕으로 <듄: 파트2>에서의 폴은 자신에게 놓인 운명과 대립한다. 전반부 스스로의 힘으로 모레 벌레를 타며 프레멘에게 인정받고, 무앗딥, 우슬 이란 이름을 얻는 그는 운명을 거스르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챠니와의 운명적인 사랑 또한 그에게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정해진(또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운명과 환경에 무릎 꿇게 되는 폴은 메시아가 되어 황제군과 대립하고 많은 이들이 바라는 하지만 정작 자신은 바라지 않는 그 역할의 무게를 감내한다.| 누구를 위한 메시아인가?
운명 앞에 놓인 폴의 선택과 향후 벌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대서사시를 마주하는 듯한 거센 후폭풍처럼 그려진다. 가문의 비밀 무기를 등에 업고 프레멘들과 함께 황제와 하코넨 가문 군대를 공습하며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치르는 폴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죽을 고비를 넘기며 성장한 어른으로서 적 앞에 당당히 선다. 폴의 성장담만으로 <듄: 파트2>의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아니 어쩌면 폴의 성장을 지켜보기 위해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성장은 누구의 선택인가? 폴의 선택이라 장담할 수 없다. 레베카는 자신과 배 속의 아기, 폴을 모두 살리기 위해 아들을 메시아 퀴사츠 해더락의 길로 인도한다. 이후 메시아를 통해 평화를 누리고자 하는 프레멘들의 공통된 마음을 이용, 그들의 대모로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 그녀는 마치 프레맨은 물론, 폴을 체스판의 말처럼 운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영화에서 체스판이 나오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레베카는 폴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베네 게세리트다. 여성들이 주축이 된 이들은 ‘인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고 있는 집단인데, 전 우주의 평화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은 막대한 권력을 갖는다. 황제보다 더 위에 있는 이가 바로 베네 게세리트의 수장격인 가이우스(샬롯 램플링)다. 그녀의 계획에 반기를 들고 폴의 아버지와 결혼한 것도 모자라 자기 아들을 쿼사츠 헤더락으로 만들려는 레베카는 가이우스에게 눈엣가시다. (이는 1편에도 잘 나온다.) 이런 이유에서 가이우스는 레베카와 향후 권력에 치명타를 날릴 폴을 없애기 위해 황제를 이용, 장대한 암살계획을 세웠다. 어쩌면 목숨을 건 레바카의 체스판 놀이는 가이우스에게 던지는 복수의 체크 메이트처럼 보인다.
레베카보다 한술 더 뜨는 이가 있으니 프레멘의 수장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다. 사막 환경 속에서 프레멘을 한데 묶고 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그의 방법은 메시아다. 곧 메시아가 당도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 이 믿음으로 민족을 대동단결시키고, 군대를 조직화해 행성을 지키고 운용해 나간다. 스틸가가 레베카 보다 두뇌 회전이 빨라 보이지 않는다. 대신 메시아의 당도를 순수하게 믿는 쪽이다. 맹목적인 믿음. 그래서 더 위험해 보인다.
원작에서도 종교의 허위성, 우상화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드니 빌뇌브 또한 이를 오롯이 가져와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이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우상은 운명이자 선택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지는 것. 그리고 충분히 감언이설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과정은 영화를 통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각색의 방점은 챠니!
<듄: 파트2>가 좋던 싫던 간에 모두 다 인정하는 건 각색 부분이다. 방대한 원작의 이야기를 166분으로 압축한 것 자체만으로도 놀랍다는 의견. 원작을 읽은 이들에게는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드니 빌뇌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비판 어린 눈초리로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바로 챠니를 통해서.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의 챠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폴의 연인이자, 민족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며, 운명론에 휩싸인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철저한 객관화가 되어있는 인물이기 때문. 폴이 쿼사츠 헤더락의 길을 걷고 끝내 자신 앞에 황제를 무릎 꿇게 하는 상황을 지켜봄에도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달리 반기를 든다. 폴을 향해 머리 숙이는 병사들 사이에서 홀로 경의를 표하지 않고, 이내 그곳을 탈출하는 챠니에게 있어 이 상황은 마뜩잖은 것에 모자라 잘못된 길을 기어이 가는 이들을 향해 눈으로 질타를 날리는 듯하다.
이번 영화가 감독의 전작과 다른 부분 있다면 운명의 소용돌이에 놓인 이들을 주관적이지 않은 객관화된 시점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마치 챠니는 곧 감독의 분신처럼 보인다. 종교의 허위성과 우상화에 비판적인 원작자의 의도는 각색을 통해 챠니로 옮겨진다. 영웅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감독은 책이 출간된 1965년보다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현대 여성의 특징과 현시대의 관점을 챠니에게 입힌 후, 이 기막힌 운명을 지켜보게 한다. 감독은 마치 차니로 하여금 관객이 이 바보 같은 운명론자들의 행태가 어떤 일을 초래하는지 목도하게 한다. 드니 빌뇌브의 각색은 압축만큼 차니의 활용도도 빛나 보인다.| 극강의 수직 액션, 티모시 샬라메의 얼굴은 말해 뭐해!
다루고자 하는 비범한 이야기를 더 강하고 흡입력 있게 만드는 건 영상이다. 모레 벌레를 타고 이를 이용해 공격하는 액션, 프레멘과 하코넨, 황제군의 대결 등은 전편의 액션이 맛보기였음을 말하듯 극강의 영상미를 보여준다. 특히 100% 아이맥스로 촬영한 영화의 특성상 공들인 수직 액션이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데, 극초반 모래 언덕 라인을 기준으로 언제 올지 모를 적의 공격을 긴장감 있게 풀어내는 장면이나, 하늘에 떠 있는 하코낸 우주선과 프레맨 지상군의 대결, 원형 경기장 안에서 펼쳐지는 페이드 로타의 액션, 황제군을 향한 모레 벌레의 공격 등은 양옆이 아닌 위아래가 긴 아이맥스 고유 화면비 1.43:1에 안착, 최적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액션만큼 열일하는 이가 있으니 티모시 샬라메다. 점차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놓인 폴의 다양한 감정은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로 표출되는데, 종교, 정치적 권력을 얻으면 그 즉시 종말로 치닫는 다는 걸 아는 것처럼 티모시 샬라메는 표정과 눈빛으로 그 불안과 고뇌를 표출한다. 마치 조금만 건드려도 바스러질것 같은 그의 불안한 초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워 보인다. (이래서 티모시 티모시 하는가 봅니다.) 여기에 메시아 선택 후 나오는 리더의 위용과 카리스마 연기가 방점을 찍으며 관객은 넉다운된다.
이제 남은 건 재앙과 추락이다. 폴의 예지대로 파트3에서는 고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질 모양새다. 반대로 이 방대한 유니버스의 결말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든 이 시리즈는 현시점에서 할리우드 대형 프렌차이즈 제작 시스템의 고점을 찍을 듯하다.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도. 그리고 극장가에 거세게 부는 모래바람도.
사진= 워너브라더스 제공
평점: 4.0 / 5.0
한줄평: 사구에서 피어난 전설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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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보다 발전하지 못한 리메이크
영화 <모탈컴뱃>은 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게임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꽤 폭력적인 격투 게임이었던 모탈컴뱃은 게임 캐릭터의 여러 동작들을 실제로 촬영하여 게임 속으로 넣어 구현했다. 때리고 피가 튀는 모습을 꽤 잔인하게 묘사했던 게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많이 플레이했던 게임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그것보다는 좀 덜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마니아층이 만들어져 게임을 즐기고 나온 영화도 즐겼다.
과거에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 본 적이 있다. 좀 괴상해 보이는 CG가 이질감이 들어 조금 해보고는 이내 그만둬 버렸지만 그 당시 개봉했던 영화를 본 기억은 남아있다. 그 당시에는 신기하게 느껴졌던 여러 CG들과 효과들은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는 배우 크리스토퍼 램버트의 얼굴과 함께 기억된다. 온갖 폼을 잡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였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 1편 이후 기대감에 2편을 보고 나서 더욱 떨어져 버린 완성도에 실망했던 기억까지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은 ‘신기했지만 실망스러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세력이 지구의 운명을 두고 싸운다는, 그것도 토너먼트를 해 우승자가 나온 세력이 그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매우 이상한 설정이었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그걸 그냥 그 내용대로 받아들이고 영화를 봤다. 이번에 리메이크된 <모탈컴뱃>은 과거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서 구사한다. 게임 영상 연출에 재능이 있는 신인감독에게 연출을 맡기고 출연하는 배우도 모두 신인급으로 뽑아 배역을 맡긴다. 시나리오나 이야기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CG와 액션으로 나머지를 채운다.
사실 이번 리메이크에서도 보여줄 건 다 보여준다. 화려한 특수효과와 액션은 영화 내내 이어져 볼거리를 전달한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 자체가 90년대에 머물러있는 것처럼 올드하게 느껴진다. 영상이 잘 구현되어서 게임의 실사화가 잘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세력 간의 싸움과 캐릭터들이 각성하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으로 가득하다. 아무래도 나는 과거의 영화가 가졌던 한계를 조금은 극복하고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길 기대했기 때문에 더욱 실망감이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OTT 플랫폼 등에서 공개가 되었는데 꽤 반응이 괜찮은 것 같다. 이 영화를 본 숫자가 꽤 되는 것으로 봐서 추후 후속 편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완성도라면 굳이 더 챙겨봐야 할 필요가 있나 싶다. 과거 격투 게임을 여러 번 영화화했던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것들도 영화의 이야기 전개 자체에 문제가 있었고 관객들의 반응도 안 좋았다. 아무래도 격투 게임을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모탈컴뱃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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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업영화의 탈을 쓰려던 옹색한 시도
평소에 시사회 제안 메일을 받으면, 영화 예고편이나 정보를 일일이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특히 한국영화 제안의 경우에는 더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미우나 고우나 한국영화니까.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한국영화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나 하나라도 더 봐주는 게 한국영화 산업에 조금이라도 일조하는 일이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심지어 영화산업에 말을 얹을 만큼의 아주 작은 힘도 없다. 일개 글쓴이인 셈이다.
그런데 이번엔 처음으로 조금 억울했다. 최근 들어 다양한 영화를 보는 것에 노력하고 있다. 영화가 좋고 나쁨을 관람 전부터 계산하지 말자는 생각이다. 그게 비평가를 꿈꾸는 사람의 올바른 태도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 마음이 이번만큼은 금이 갔다. 좌석에 앉고서 오프닝 타이틀이 떠오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싸함을 느꼈다. 일종의 생존 본능이었다. 이거 보통 영화가 아닐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
<분리수거>는 결혼을 앞둔 한 여성이 예비신랑의 외도를 마주하고서 무턱대고 제주도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은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으면서, 다양한 사람을 마주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들로부터 자신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도모하는 셈이다. 조연들의 서사도 단편적으로 가미된다. 그들의 서사는 아무래도 영화 전개에 필수다.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 '왜 제주도인가?'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꼭 제주도여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피어오른다. 한편으로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간단히 말해 '젊음'의 상징이 아닌가. 그런데 웬걸,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이미지가 20대의 것과는 많이 동떨어져 보인다. 배역은 20대라고 하지만 배우가 제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왜 제주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제주도라는 장소가 주는 메시지는 무언가. 제주도가 아무리 여행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한들 연인에게 배신의 아픔을 겪은 이가 대뜸 제주로 떠날 어떠한 당위가 부족하지 않나. 제주의 아름다움을 필름에 담고 싶은 마음이었다면 이해하겠다. 그런데 영화는 그 아름다움도 제대로 담지 못한다. 촬영 당시 날씨가 우중충했던 건가. 아름답지도 않고 칙칙하기만 했다. 심지어 플롯의 주 배경인 게스트하우스의 주변이 해안가는커녕 논밭만 가득하다.
자고로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8할이다. 설득력을 위해선 스토리의 완결성과 납득 가능성뿐만 아니라 뒷받침하는 여러 배경과 요소들의 유기성도 중요하다. 그런데 <분리수거>는 부차적 요소들의 유기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설득력도 당연히 떨어진다.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가 얼마나 자질구레한지에 더 주목하게 된다.
캐릭터 설정도 마구잡이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 놀러 온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평범한 대학생 커플, 심지어 다른 하나는 사업가다. 주인공은 광고 연출가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라는 공간이야 당연히 여러 사람들이 모여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 영화계는 그 원망스러운 인플루언서라는 캐릭터를 놓지 못하는 걸까. 너무나도 어색하게 카메라를 들고 커뮤니티 센터에 입장하는 인플루언서 캐릭터를 보는 것은 관객의 몫이지 않나. 인플루언서 캐릭터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진행하는 인위적인 라이브 방송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편집이라도 현실감을 주어야 하는데, 졸작이 따로 없다. 유치한 역할극을 하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가 않는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마음도 분리수거가 되냐는 말들은 이미 저기 먼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리고 사라졌다. 인플루언서 캐릭터는 히키코모리 같은 편집자에게 고백 공격을 받는다. 그 외에도 각종 성희롱 DM들에 시달린다. 그런데 그게 영화 종반부에 등장하는 김동준 배우와 무슨 관련이 있나. 심지어 인플루언서의 마음은 무엇인지, 분리수거는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중간에 게스트하우스 직원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에 관한 서사는 아주 미약할뿐더러 그냥 좋아했다가 말아버리는 단순한 감정 변화로 일축된다.
뭐가 뭔지 제대로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서사에 관객이 편입될 수 있어야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영화를 즐길 수 있어야 그 속에서 메시지를 찾고 영화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분리수거>는 그 일말의 여지마저 주려고 노력하는 듯한 감각을 보여주지도 않는 것 같았다.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냥 그것을 혼자서 주절주절 나열하고 있다. 이야기를 여과의 과정 없이 내뱉으니, 처음 하고 싶었던 이야기나 제목을 분리수거로 정한 이유들도 영화 중반부부터는 저기 먼 곳으로 날아가버린다.
설득력을 잃은 이야기를 왜 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봐야 하나. 언제까지 관객에게 호소만 해댈 것인가. 가뜩이나 영화 표값이 너무 높다는 아우성이 거센데, 이런 영화를 내밀고서 "부진한 영화 산업, 한 번만 믿고 도와 달라"는 말을 하기에는 양심이 없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정신이 혼미하다. 이런 영화는 너무 오랜만에 본다. 옹색하고, 거추장스럽고 부끄럽다. 관객이 돈도 내고 고통까지 느껴야 한다. 러닝타임도 아주 길다. 거의 2시간에 달하는 길이다. 그 정도로 길게 끌어갈 내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건 누구 탓인가. 어떤 사람의 입김으로 이런 괴작이 탄생한 건가. 그 책임 소재라도 묻고 싶다.
전형적인 상업 영화의 틀을 쓰려 하고 있는 영화다. 그러니 소구력 있는 이야기와 그 요소들을 가미한 거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인플루언서, 청춘. 심지어 이 요소들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지도 않고, 영화 안에서 그것들끼리 맞닿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옹색한 시도다. 일단 러닝타임을 늘이고, 서사를 연장시키다보면 이야기가 완결성이 생길 것이라는 의미 없는 행동으로 종반부의 끝맺음마저도 우습다. 감독이 책임져야 하지 않겠나. 수많은 인원과 배우들의 이력에 이런 영화를 추가하게 만든 것을. 관객이 비싼 값 주고 이런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는, 볼 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영화를 선택지에 넣게 만든 것을.
* 이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다녀온 뒤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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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한의 전투기 조종 체험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개인적인 능력과 욕심이 최대로 표출되길 바란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목적이다. 실제로 그런 분위기는 조직을 발전시키고 다음 목표 달성을 쉽게 만든다. 좀 더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다양한 조직에서 표출되고 있다. 그런데 그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는 하나의 전제 조건이 있다. 조직 내에서 그것을 행하는 것은 조직 구성원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자신의 능력과 개성을 조직의 어떤 규칙 안에서만 행해야 한다는 조금은 보수적인 조건하에서 그것들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현재 존재하는 조직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곳은 군대일 것이다. 군대 안에서는 개인의 개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없다. 아주 강한 규칙이 존재하고 상관들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문화 안에서 개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은 힘들다. 군대에서의 목표는 단번에 성과를 보이기는 어렵다. 실제 전투와 전쟁에 투입되는 인원들은 상대방을 물리치고 살아남는 것에 목표를 둔다. 최근에는 그것이 기술적인 무기들로 인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능력이 그것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엘리트 전투기 조종사 매버릭의 이야기
영화 <탑건 매버릭>은 1986년에 개봉했던 <탑건>의 후속 편이다. 1편에는 매버릭 대위(톰 크루즈)가 전투기 조종사로서 겪는 일들을 보여준다. 엄청난 전투기 조종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좀 더 개성 넘치는 성향을 가지고 있던 그는 최정예 전투기 조종사를 만들어내는 탑건 훈련학교에서 자신의 능력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다른 인물들과 갈등을 겪는다. 친한 동료 구즈를 잃기도 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팀의 승리를 위해 자신이 능력을 적절히 이용하는 모습이 담겼었다.
이번 2편은 전편 이후 36년이 지난 시점이다. 매버릭은 여전히 군에서 전투기 조종을 하고 있지만 높은 지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그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군에서 반항아나 아웃사이더로 인식되고 있다. 영화에서 아무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않지만 매버릭에게는 좀 더 높은 지위를 얻으려는 야심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전투기를 조종하고 테스트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방식은 온전히 그만의 방식이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올리는 데에는 상부의 명령에 어느 정도는 반항을 해야 해낼 수 있다. 그건 과거에도 그랬듯 매버릭이라는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를 온전히 드러내는데, 그는 36년 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보수적인 해군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가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오랜 친구인 아이스맨(발 킬머)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매버릭은 다시 탑건으로 돌아가 교관이 되고, 젊은 파일럿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맡는다. 매버릭 자신은 전투기 조종을 계속하고 싶어 하지만 상부에서는 그의 마지막 임무로 그의 실력을 이어받은 뛰어난 파일럿이 만들어지길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교육을 받은 파일럿들은 실제 전투기가 투입되는 임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 수행을 성공해 내기 위해 매버릭이 파일럿들을 교육하는 과정이 영화 내내 이어지는데, 이 모든 과정은 사실 1편에서 봤던 것과 거의 비슷하다.
즉, 이야기의 구성 자체는 전편의 구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과거 1편의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장면과 내용으로 전개를 한다. 그래서 과거에 봤던 반복적인 이야기가 한 번 더 전개되는 것 같은 기시감을 준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구성은 그렇게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새로운 인물들과 매버릭 간의 관계는 극의 긴장을 일으키는데 충분하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과거 1편의 장면이나 과거 인물들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면서 <탑건>의 올드팬들을 만족시킨다. 또한 처음 이 영화를 통해 <탑건>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신구 갈등이나, 동료와의 경쟁 등 익숙한 구도를 흥미롭게 구성해 끝까지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조금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반복하는 것을 택했지만, 대신에 이번 영화에서 힘을 기울여 집중하는 건 실감 나는 전투기 조종 장면이다. 아이맥스 카메라를 활용하고 배우들을 직접 전투기에 태워서 촬영한 비행 장면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굉장한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1인칭 시점으로 배우들의 표정을 담으면서 어떤 특정 상황이 벌어지고 그것에 대응하는 액션을 취할 때는 카메라가 바로 전투기 외부로 시선을 옮겨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현실감은 영화에 극적인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또한 영화의 말미, 실제 미션을 수행하는 장면에서는 긴박한 상황이 계속 전개되고 과거 1편에서 주 전투기로 등장했던 F14까지 재등장시켜 완벽한 전투 장면의 마무리를 보여준다.
관객에게 전투기 체험을 하는 듯, 실감 나는 전투기 조종 장면
<탑건 매버릭>에서 설정된 임무 자체가 마치 매버릭이 그간 걸어왔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 불가능하게 보이는 임무는 전투기를 몰고 좁은 협곡을 낮은 고도로 통과하고 급경사를 올라갔다 내려오며 목표물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탈출하면서 마무리된다. 그 임무의 코스에서 전투기 조종사들은 엄청난 집중력으로 구불구불한 산골짜기를 지나야 하고 엄청난 속도에서 느껴지는 중력을 참아내야 한다. 그렇게 정신을 잃지 않고 목표물 앞에서는 정확성 있게 미사일을 조준하고 발사해야 한다. 매버릭은 보수적인 군대에서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그 과정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구불구불하고 높은 중압감의 과정을 모두 견뎌내면서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이번 영화에선 다음 세대의 파일럿들에게 전수하려 애쓴다.
영화에는 루스터(마일스 텔러)라는 인물이 나온다. <탑건>1편에서 죽은 구즈의 아들이다. 매버릭과 굉장히 친했던 구즈의 죽음은 매버릭에게도 트라우마를 안겼지만 아들인 루스터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매버릭과 루스터, 이 두 인물이 상대에게 가진 응어리와 감정이 이번 영화를 끌어가는 주요 감정선이 된다. 마치 유사 아버지처럼 느껴지는 매버릭은 루스터에게 미안함과 잘해주고 싶은 마음을 함께 느끼지만 선뜻 먼저 다가가지는 못한다. 그 응어리가 어떤 식으로 해소되는지를 영화는 화려한 전투와 더불어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인물 이외에도 매버릭과 페니(제니퍼 코넬리)의 관계도 보여주는데, 사실 영화에서 가장 긴장을 만들어내는 관계는 루스터와 매버릭의 모습이다.
영화 <탑건 매버릭>은 인물들의 갈등 구도를 단순화하고 파일럿들이 훈련받는 모습과 마지막 실제 임무를 해결하는 모습에 집중한다. 그렇게 영화를 단순화시키고 집중해야 할 부분에 확실히 공을 들이면서 굉장히 사실적인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조셉 코신스키 감독은 과거 <트론 새로운 시작>이나 <오블리비언> 같은 비주얼이 훌륭한 SF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다. 그가 가진 촬영 기술은 이번 영화에서도 굉장히 크게 발휘되고 있다. 1편에 비해서 좀 더 화려하고 사실적인 전투 활공 장면은 마치 관객이 실제 전투기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매버릭 역을 맡은 톰 크루즈는 그가 왜 프로페셔널인지를 이번 영화에서도 증명한다. 실제 전투기에 타면서 사실성을 극대화시키고 영화에 박진감을 높인 건 배우가 가진 사명감과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 이렇게 좋은 능력을 가진 이들이 모여 만든 영화 <탑건 매버릭>은 올여름 블럭버스터 영화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HYKIrZyvT8
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탑건 매버릭>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https://rabbitgumi.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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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알라딘 총정리 #9
환몽씨네 디즈니 특집 1편!
영화 알라딘 (Aladdin, 1992) 분석**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올해도 내년도 디즈니꺼!
환몽씨네 '디즈니 라이브 액션' 특집!'알라딘'과 '라이온 킹'에 대해 재밌게 떠들어 봤어요 :)
1편에서는 알라딘 실사화를 기념해,
환몽씨네가 26년만에 애니메이션 알라딘을 이야기합니다.- 승승장구하는 디즈니
- 디즈니의 실사 프로젝트 ‘디즈니 라이브 액션’
- 알라딘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 알라딘이 중국인이라고?
- 디즈니의 캐릭터 설정
- 영화주제 : Be Yourself
- 실사화에서 기대되는 장면!영화 '알라딘'을 보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2편 '라이온킹'도 많은 기대해주세요!
#알라딘 #aladin #영화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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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4」리뷰 | 그래서 MODAL 101 은 무슨 뜻일까? | 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뷰 모달101 | 매트릭스4 영화리뷰 | 매트릭스4 해석 |
?《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리뷰 / 매트릭스4 리저렉션 리뷰(*스포없음)
+ 매트릭스1 오프닝 초반 장면 리뷰
+ 모달 MODAL 101 / 그 외의 상징 해석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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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스위트 투스: 사슴뿔을 가진 소년> 티저 예고편
[2021년 6월, 넷플릭스 공개]
반은 인간이고 반은 사슴. 하지만 너무도 사랑스러운 소년.
그 아이가 종말 이후의 세상을 가로질러 위험한 모험을 시작한다.
퉁명스러운 보호자와 함께, 어딘가 있을 새로운 시작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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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래곤 솔져> 예고편
깨어난 전설의 드래곤 vs 최정예 특수대원
마을 사람들이 정체불명의 괴수에게 습격당한다.
특수부대 용병들이 투입되고 산을 수색하는데
그들이 마주한 것은 전설의 거대한 드래곤이다.
영리한 드래곤에게 용병조차 하나 둘씩 당하고
드래곤과의 정면 대결을 위해 최후의 작전에 돌입하는데…
상상초월의 대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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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왜 272kg이 되었는가
- 더 웨일(The Whale, 2023)
장르 : 미국·드라마 │ 감독 : 대런 애러노프스키
출연 : 브렌든 프레이저(찰리), 세이디 싱크(엘리), 홍 차우(리즈)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7분그는 왜 272kg의 거구가 되었는가
자기혐오를 유발하는 순간들 중 하나가 바로 ‘식탐을 절제하지 못할 때’가 아닐까 싶다. 스트레스를 받아 절제력을 상실한 채 입안 가득 음식들을 밀어 넣고 나면, 배부름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혐오가 밀려오곤 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이 찌고, 그렇게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으리라. <더 웨일>의 주인공 ‘찰리’도 그 과정을 반복한 끝에 272kg의 거구가 되었다.
하지만 찰리가 소파에서 혼자 몸을 일으키는 것도 힘겨운 상태의 비만이 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에게는 가정을 저버릴 만큼 사랑했던 연인이 있었는데, 그 연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물리적으로 잃은 것도 괴롭지만, 그 사랑을 위해 포기한 원래의 가족 또한 잃은 셈이니 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너진 그의 세상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삶의 고통을 식음을 전폐하는 방식으로 견디듯, 그는 끊임없이 음식을 채워 넣으며 견뎠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맛’이 아니라 그저 먹는 ‘행위’를 추구했는지도.
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 다양한 주제
영화는 한 발짝도 제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거구의 남성이 집안에서 어떻게 삶을 비관하고 죽어가는지를 보여주기에, 화면 자체는 단조롭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의 세상은 온통 집뿐이다. 그럼에도 플래시백을 통해서조차 과거를 보여주지 않고 집안만을 조명하는 것은, 어쩌면 272kg의 찰리가 겪을 단조로움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면 영화가 다루는 주제들은 화면과 달리 결코 단조롭지 않았다. 퀴어와 종교,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나아가 자기 파괴와 구원까지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272kg의 거구를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물론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먼저 들겠지. ‘그래도 그렇지 얼마나 자기 관리가 안되면 저 지경이 돼?’ 사실은 나도 도입부의 찰리를 보고 함부로 그를 판단했다. 어쩌면 세상 모두가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찰리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깨닫고 난 이후부터는 그가 단순한 ‘비만인’으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자기 관리의 부재’, ‘절제력 부족’이라는 말만으로 한 인생을 가볍게 판단하기에 사람에게는 누구나 복잡다단하고 커다란 세계가 있음을 새삼스레 확인하게 되었을 뿐.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단순한 스트레스를 찰리의 고통에 견줄 수야 없겠지만,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부정적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입으로 음식을 밀어 넣고 있다. 나 또한 자주 그렇다. 세상은 그런 우리에게 자주 이런 잣대를 들이댄다. “정말 너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구나. 살을 빼야지! 건강해져야지! 이겨내야지!” 그리고 정신력을 발휘해 비만을 탈출하는 것만이 제대로 된 구원이라고 믿게 만든다. 물론 보통의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아마도 찰리는 사랑하는 딸과 친구를 위해 열심히 살을 빼고 다시 리즈시절의 몸으로 돌아왔을지도 모르지만, <블랙스완>의 ‘대런 애러노프스키’가 연출한 이 작품은 고요하게 현실적이었다.
그는 오히려 그 육신을 포기함으로써 구원받았다. 종교로도 그 무엇으로도 떨쳐내지 못한 이 생에서의 슬픔은, 그렇게 홀연히 껍데기를 벗으면서야 마무리 된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나를 과연 내 육신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진정한 구원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역겨워?”라고 묻던 찰리의 처연한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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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SF영화
많은 기억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저장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기억들은 저장해 두고 시간이 될 때마다 그 기억을 꺼내 떠올린다. 마치 영상이 재생되듯이 그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에는 그때 느꼈던 감정, 촉감에 집중한다. 어떤 기억은 아주 행복하고 어떤 기억은 아주 고통스럽다. 이렇게 기억들은 상황에 따라 선별적으로 저장된다. 의식적으로 이 기억을 저장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순간들은 어느 순간 지나고 보면 잘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한다. 모든 경험 중 아주 특별한 기억들만 남아 오랜 시간 저장된다.
이렇게 저장된 기억들은 모여서 기억 속 과거가 된다. 종종 과거를 떠올리고 그 순간을 다시 돌아본다.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누구나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과거의 특정한 기억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기도 한다. 때론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좋은 길잡이가 되지만 현재의 삶을 방해하기도 한다. 특히나 과거의 행복한 순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순간부터 현재는 불행해지고 살아가야 할 동력이 줄어든다.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현재보다는 과거의 영광을 생각하며 현재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현재는 불행해지고, 과거에의 집착은 더욱 심해진다.
과거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 <레미니센스>
영화 <레미니센스>는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 속 레미니센스는 과거의 특정 기억을 떠올려 그때의 감정이나 촉감을 좀 더 디테일하게 느끼게 해주는 기계다. 일종의 과거로의 여행을 하게 도와주는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과거로의 여행을 돕는 인물은 닉(휴 잭맨)이다. 닉은 이 기계에 들어간 의뢰자들을 음성으로 안내하여 안전하게 과거를 느낄 수 있게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닉은 동료인 와츠(탠디 뉴튼)와 함께 그 가게를 운영하면서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그가 가게를 운영하며 만나는 고객들은 대부분 과거의 행복한 기억에 반복해서 머무르려 한다. 꽤 다양한 사람들이 그 과거에 접속하는 모습은 꽤 흥미롭게 느껴진다.
초반에 보이는 닉은 꽤 이성적이지만 공감능력이 있는 인물이다. 고객들이 과거에 너무 빠지는 것에 대해서 주의를 주거나 우려점을 충분히 전달해주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객이 있다면 어느 정도는 금전적인 할인도 해준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고객으로 등장하는 메이(레베카 퍼거슨)를 만난 이후 그는 새롭게 만난 메이와 많은 공감과 감정을 공유한다. 과거 행복한 기억이 별로 없는 듯 보였던 닉은 메이를 만난 이후 그만의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간다. 그가 그렇게 현재의 좋은 기억들을 과거로 쌓아둘 수 있었던 것은 과거보다는 현재에 좀 더 집중했기 때문이다. 현재 눈앞에 있는 메이라는 여인에게 집중하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는 과거에 함몰된 영화 초반의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메이가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중반 이후 닉도 점점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 메이와의 순간들을 다시 느끼기 위해 기계에 스스로 접속하고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자신의 연인이 떠나간 이유를 찾으려 애쓴다. 그래서 아주 이성적으로 보였던 닉은 점점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현재보다는 과거에 머무르며 그 행복한 순간들을 다시 경험한다. 다만 사라진 연인이 왜 말도 없이 떠났는지에 대한 미스터리를 찾는 것이 주요 목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있긴 하다.
이성적인 닉이 과거에 집착하게 되기까지
옆에서 그를 돕는 와츠 역시 과거에 접속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아예 자신의 과거를 차단하고 있는 인물이다.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와츠는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단절시킴으로써 현재를 억지로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가 살아가는 현재는 꽤 공허해 보이고, 그가 들이키는 술은 그 공허함을 달래는 도구로 보인다. 그는 과거의 미스터리를 푸는 닉을 돕지만 그가 다시 현재를 살아가길 설득한다. 하지만 과거를 단절한 본인의 현재가 공허함을 잘 알기 때문에 그 설득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실 영화가 풀어가는 메이의 미스터리는 꽤 흥미롭다. 닉과 같은 시선으로 메이를 바라봤던 관객들은 그가 왜 사라졌는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를 동일한 감정으로 따라가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발생하는 미스터리는 영화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영화는 메이에 대한 약간의 반전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어서 다소 맥이 풀리게 한다. 또한 영화의 말미에 닉이 선택하는 어떤 모습은 그가 현재를 살아가지 않고 과거에 머무르는 것인데, 이런 닉의 선택 또한 초반에 그가 보여준 모습과 반대되는 모습이어서 영화가 가진 전체적인 주제와도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며 걸어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마지막 닉의 모습은 과거에만 함몰된 것처럼 보여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온전히 현재를 살아갈 기회를 얻은 인물은 와츠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부패한 경찰이나 재벌, 심지어 주인공 닉까지 모두 현재를 살아갈 기회를 얻지 못했거나 스스로 포기한다. 하지만 와츠는 단절했던 과거를 다시 회복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고, 그가 스스로 만든 현재에도 동료인 닉을 끝까지 보살핀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영화의 주제를 대변하는 인물은 닉 보다는 와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설정에 몇 가지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 영화의 배경은 미래의 플로리다다. 도시의 일부가 바닷속에 잠기면서 도심지의 건물들의 저층은 대부분 물속에 잠겨있고, 일부 잠기지 않은 길은 차가 다니지만 대부분은 작은 보트로 이동을 한다. 또한 해가 진 이후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낮과 밤이 바뀐 도시처럼 보인다. 도시 건물의 저층 대부분이 물에 잠겨있는 모습은 이전에 보아왔던 완전히 물에 잠긴 도시의 모습과는 차별화되고 그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며 시선을 끈다. 과거를 시각적으로 영상화하여 제삼자가 볼 수 있다는 점도 새로운 설정이다. 과거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기억을 화면으로 터치하여 보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레미니센스>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만들어진다. 과거의 모습이 3차원으로 구현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기억을 하고 있는 본인이다. 즉,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레미니센스라는 기계 안에 연결되어 있어야만 영상으로 구현과 저장이 가능하다.
신선한 세계관 속에 영화의 주제의식과 모순되는 캐릭터의 선택
영화 <레미니센스>는 꽤 신선한 설정과 세계 관위에 구축된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이미 많이 보아온 SF의 세계관을 살짝 비틀어 조금 색다른 배경을 보여주고 있고, 영화 안에서 보여주는 과거 구현 기술도 좀 더 디테일하게 파고들어 그 기술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담고 있다. 그러니까 SF 영화답게 미스터리와 액션, 시각적 화면 그리고 철학적인 주제가 복합적으로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담고 있는 마이애미의 모습은 꽤 아름답고 닉과 메이, 와츠 같은 주요 등장인물들도 꽤 매력적이다. 또한 영화의 주제를 담아낼 수 있는 인물로 만들기 위해 적절하게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보인다.
이렇게 잘 구현된 세계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시종일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다른 방향으로 캐릭터가 소비되면서 그 주제의식이 희미해지고 말았다. 이 영화의 세계관을 구상한 리사 조이 감독은 유명한 SF 드라마 <웨스트 월드>의 세계관을 매력적으로 구성한 경험이 있다. 그는 <웨스트 월드>의 감독, 각본까지 담당하면서 꽤 훌륭한 주제의식과 세계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었다. 이번 첫 장편 연출작인 <레미니센스>에서도 그가 가진 뛰어난 구상 능력을 확인할 수 있지만, 영화 주제를 이야기하는 측면에서의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리사 조이 감독은 앞으로 다양한 스튜디오들과 함께 더 많은 SF영화나 드라마를 연출할 예정이어서 그가 만들어갈 세계관으로 어떤 이야기를 보여 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 영화가 해피엔딩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닉은 메이에게 행복한 이야기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해피엔딩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더 슬프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 이야기에 메이는 그럼 중간까지만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어쩌면 닉은 메이의 부탁과 마찬가지로 그 중간까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끊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가 어떤 식으로 망가지는지를 계속 이야기했다. 그 주제 의식 아래서는 닉의 마지막 모습은 배드 엔딩일 것이다. 하지만 닉과 메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적어도 그들에게는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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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구에서 외치는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
3년 전만 해도 듄친자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듄친자의 운명을 거부했다. <듄>만으로는 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듄: 파트2>를 본 이후 이젠 듄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모래 늪에 두 다리가 빠져 탈출하지 못할지언정 그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이 고전 원작을 자신만의 운명 사슬로 엮어낸 드니 빌뇌브의 연출력을 보아하니 더 이상 탈출구는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 수순은 그의 모든 계획이었으리니~ 폴을 위해, 그와 함께 대서사시를 만드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드니 빌니브를 위해 외쳐본다. 리산 알 가입!
|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자, 인간이니!
폴(티모시 살라메)은 살아남았다. 황제 샤담 4세(크리스토퍼 월켄)의 모략으로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없어졌지만, 가문 유일의 후계자인 그는 어머니인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와 함께 사막 부족인 프레멘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폴과 레이디 제시카는 각자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각 반란군, 부족 대모가 된다. 레이디 제시카는 더 나아가 폴을 프레멘이 그토록 바라던 메시아 ‘퀴사츠 해더락’으로 만들려 한다. 폴은 그 운명을 거스르려 하고, 동료인 챠니(젠데이아 콜먼)와 사랑을 키워 가려 한다. 한편, 반란군의 기세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 황제는 하코넨 가문의 암살자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를 아라키스로 보낸다.
(모두가 인정하지 않겠지만) 드니 빌뇌브 영화의 단골 주제는 ‘운명’이다. 극 중 인물들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이고, 그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그을린 사랑>의 쌍둥이 남매는 태생의 비밀, <컨택트>의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미래의 모습,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라이언 고슬링) 또한 정체성의 비밀을 확인하고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 마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수족관 속 활어처럼, 이들은 이미 정해진 운명을 목도하고, 그제야 자신이 처한 처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거스르고 싶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자진해서 들어간다. 그 희생과 감내를 해야만 사랑하는 이들에게 값진 것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가 <듄>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했을 때, 감독의 작품 속 관통된 ‘운명론’이 다뤄질 것이라 예상했다. 메시아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 자리에 섰을 때 우주의 재앙이 몰려온다는 걸 알고 이를 벗어나려는 주인공 폴은 드니 빌뇌브가 군침을 흘릴 캐릭터라 생각했기 때문. 운명을 알고 그것을 벗어나려 하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확인한 후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감독 이전 작품의 주인공들과 그 궤를 같이한다.
<듄>은 폴에게 닥칠 운명의 소용돌이 여파를 크고 깊고 넓게 만들려는 목적성이 가장 컸다. 감독의 운명론을 보여주기 위한 디딤판을 견고히 만들기 위해 영화는 아스트레더스 가문의 몰락, 하코넨 가문과의 악연, 프레멘과의 인연, 퀴사츠 해더락의 운명 등을 보여주고, 암시하는 데 주력한다.
이를 바탕으로 <듄: 파트2>에서의 폴은 자신에게 놓인 운명과 대립한다. 전반부 스스로의 힘으로 모레 벌레를 타며 프레멘에게 인정받고, 무앗딥, 우슬 이란 이름을 얻는 그는 운명을 거스르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챠니와의 운명적인 사랑 또한 그에게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정해진(또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운명과 환경에 무릎 꿇게 되는 폴은 메시아가 되어 황제군과 대립하고 많은 이들이 바라는 하지만 정작 자신은 바라지 않는 그 역할의 무게를 감내한다.| 누구를 위한 메시아인가?
운명 앞에 놓인 폴의 선택과 향후 벌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대서사시를 마주하는 듯한 거센 후폭풍처럼 그려진다. 가문의 비밀 무기를 등에 업고 프레멘들과 함께 황제와 하코넨 가문 군대를 공습하며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치르는 폴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죽을 고비를 넘기며 성장한 어른으로서 적 앞에 당당히 선다. 폴의 성장담만으로 <듄: 파트2>의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아니 어쩌면 폴의 성장을 지켜보기 위해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성장은 누구의 선택인가? 폴의 선택이라 장담할 수 없다. 레베카는 자신과 배 속의 아기, 폴을 모두 살리기 위해 아들을 메시아 퀴사츠 해더락의 길로 인도한다. 이후 메시아를 통해 평화를 누리고자 하는 프레멘들의 공통된 마음을 이용, 그들의 대모로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 그녀는 마치 프레맨은 물론, 폴을 체스판의 말처럼 운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영화에서 체스판이 나오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레베카는 폴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베네 게세리트다. 여성들이 주축이 된 이들은 ‘인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고 있는 집단인데, 전 우주의 평화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은 막대한 권력을 갖는다. 황제보다 더 위에 있는 이가 바로 베네 게세리트의 수장격인 가이우스(샬롯 램플링)다. 그녀의 계획에 반기를 들고 폴의 아버지와 결혼한 것도 모자라 자기 아들을 쿼사츠 헤더락으로 만들려는 레베카는 가이우스에게 눈엣가시다. (이는 1편에도 잘 나온다.) 이런 이유에서 가이우스는 레베카와 향후 권력에 치명타를 날릴 폴을 없애기 위해 황제를 이용, 장대한 암살계획을 세웠다. 어쩌면 목숨을 건 레바카의 체스판 놀이는 가이우스에게 던지는 복수의 체크 메이트처럼 보인다.
레베카보다 한술 더 뜨는 이가 있으니 프레멘의 수장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다. 사막 환경 속에서 프레멘을 한데 묶고 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그의 방법은 메시아다. 곧 메시아가 당도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 이 믿음으로 민족을 대동단결시키고, 군대를 조직화해 행성을 지키고 운용해 나간다. 스틸가가 레베카 보다 두뇌 회전이 빨라 보이지 않는다. 대신 메시아의 당도를 순수하게 믿는 쪽이다. 맹목적인 믿음. 그래서 더 위험해 보인다.
원작에서도 종교의 허위성, 우상화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드니 빌뇌브 또한 이를 오롯이 가져와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이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우상은 운명이자 선택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지는 것. 그리고 충분히 감언이설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과정은 영화를 통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각색의 방점은 챠니!
<듄: 파트2>가 좋던 싫던 간에 모두 다 인정하는 건 각색 부분이다. 방대한 원작의 이야기를 166분으로 압축한 것 자체만으로도 놀랍다는 의견. 원작을 읽은 이들에게는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드니 빌뇌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비판 어린 눈초리로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바로 챠니를 통해서.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의 챠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폴의 연인이자, 민족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며, 운명론에 휩싸인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철저한 객관화가 되어있는 인물이기 때문. 폴이 쿼사츠 헤더락의 길을 걷고 끝내 자신 앞에 황제를 무릎 꿇게 하는 상황을 지켜봄에도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달리 반기를 든다. 폴을 향해 머리 숙이는 병사들 사이에서 홀로 경의를 표하지 않고, 이내 그곳을 탈출하는 챠니에게 있어 이 상황은 마뜩잖은 것에 모자라 잘못된 길을 기어이 가는 이들을 향해 눈으로 질타를 날리는 듯하다.
이번 영화가 감독의 전작과 다른 부분 있다면 운명의 소용돌이에 놓인 이들을 주관적이지 않은 객관화된 시점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마치 챠니는 곧 감독의 분신처럼 보인다. 종교의 허위성과 우상화에 비판적인 원작자의 의도는 각색을 통해 챠니로 옮겨진다. 영웅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감독은 책이 출간된 1965년보다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현대 여성의 특징과 현시대의 관점을 챠니에게 입힌 후, 이 기막힌 운명을 지켜보게 한다. 감독은 마치 차니로 하여금 관객이 이 바보 같은 운명론자들의 행태가 어떤 일을 초래하는지 목도하게 한다. 드니 빌뇌브의 각색은 압축만큼 차니의 활용도도 빛나 보인다.| 극강의 수직 액션, 티모시 샬라메의 얼굴은 말해 뭐해!
다루고자 하는 비범한 이야기를 더 강하고 흡입력 있게 만드는 건 영상이다. 모레 벌레를 타고 이를 이용해 공격하는 액션, 프레멘과 하코넨, 황제군의 대결 등은 전편의 액션이 맛보기였음을 말하듯 극강의 영상미를 보여준다. 특히 100% 아이맥스로 촬영한 영화의 특성상 공들인 수직 액션이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데, 극초반 모래 언덕 라인을 기준으로 언제 올지 모를 적의 공격을 긴장감 있게 풀어내는 장면이나, 하늘에 떠 있는 하코낸 우주선과 프레맨 지상군의 대결, 원형 경기장 안에서 펼쳐지는 페이드 로타의 액션, 황제군을 향한 모레 벌레의 공격 등은 양옆이 아닌 위아래가 긴 아이맥스 고유 화면비 1.43:1에 안착, 최적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액션만큼 열일하는 이가 있으니 티모시 샬라메다. 점차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놓인 폴의 다양한 감정은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로 표출되는데, 종교, 정치적 권력을 얻으면 그 즉시 종말로 치닫는 다는 걸 아는 것처럼 티모시 샬라메는 표정과 눈빛으로 그 불안과 고뇌를 표출한다. 마치 조금만 건드려도 바스러질것 같은 그의 불안한 초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워 보인다. (이래서 티모시 티모시 하는가 봅니다.) 여기에 메시아 선택 후 나오는 리더의 위용과 카리스마 연기가 방점을 찍으며 관객은 넉다운된다.
이제 남은 건 재앙과 추락이다. 폴의 예지대로 파트3에서는 고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질 모양새다. 반대로 이 방대한 유니버스의 결말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든 이 시리즈는 현시점에서 할리우드 대형 프렌차이즈 제작 시스템의 고점을 찍을 듯하다.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도. 그리고 극장가에 거세게 부는 모래바람도.
사진= 워너브라더스 제공
평점: 4.0 / 5.0
한줄평: 사구에서 피어난 전설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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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보다 발전하지 못한 리메이크
영화 <모탈컴뱃>은 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게임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꽤 폭력적인 격투 게임이었던 모탈컴뱃은 게임 캐릭터의 여러 동작들을 실제로 촬영하여 게임 속으로 넣어 구현했다. 때리고 피가 튀는 모습을 꽤 잔인하게 묘사했던 게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많이 플레이했던 게임이다. 다양한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그것보다는 좀 덜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마니아층이 만들어져 게임을 즐기고 나온 영화도 즐겼다.
과거에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 본 적이 있다. 좀 괴상해 보이는 CG가 이질감이 들어 조금 해보고는 이내 그만둬 버렸지만 그 당시 개봉했던 영화를 본 기억은 남아있다. 그 당시에는 신기하게 느껴졌던 여러 CG들과 효과들은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는 배우 크리스토퍼 램버트의 얼굴과 함께 기억된다. 온갖 폼을 잡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였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 1편 이후 기대감에 2편을 보고 나서 더욱 떨어져 버린 완성도에 실망했던 기억까지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은 ‘신기했지만 실망스러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세력이 지구의 운명을 두고 싸운다는, 그것도 토너먼트를 해 우승자가 나온 세력이 그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매우 이상한 설정이었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그걸 그냥 그 내용대로 받아들이고 영화를 봤다. 이번에 리메이크된 <모탈컴뱃>은 과거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서 구사한다. 게임 영상 연출에 재능이 있는 신인감독에게 연출을 맡기고 출연하는 배우도 모두 신인급으로 뽑아 배역을 맡긴다. 시나리오나 이야기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CG와 액션으로 나머지를 채운다.
사실 이번 리메이크에서도 보여줄 건 다 보여준다. 화려한 특수효과와 액션은 영화 내내 이어져 볼거리를 전달한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 자체가 90년대에 머물러있는 것처럼 올드하게 느껴진다. 영상이 잘 구현되어서 게임의 실사화가 잘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세력 간의 싸움과 캐릭터들이 각성하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으로 가득하다. 아무래도 나는 과거의 영화가 가졌던 한계를 조금은 극복하고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길 기대했기 때문에 더욱 실망감이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OTT 플랫폼 등에서 공개가 되었는데 꽤 반응이 괜찮은 것 같다. 이 영화를 본 숫자가 꽤 되는 것으로 봐서 추후 후속 편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완성도라면 굳이 더 챙겨봐야 할 필요가 있나 싶다. 과거 격투 게임을 여러 번 영화화했던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것들도 영화의 이야기 전개 자체에 문제가 있었고 관객들의 반응도 안 좋았다. 아무래도 격투 게임을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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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탈컴뱃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