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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평2025-05-24 15:19:32

상업영화의 탈을 쓰려던 옹색한 시도

영화 <분리수거> 리뷰

 평소에 시사회 제안 메일을 받으면, 영화 예고편이나 정보를 일일이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특히 한국영화 제안의 경우에는 더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미우나 고우나 한국영화니까.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한국영화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나 하나라도 더 봐주는 게 한국영화 산업에 조금이라도 일조하는 일이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심지어 영화산업에 말을 얹을 만큼의 아주 작은 힘도 없다. 일개 글쓴이인 셈이다.

 

 

 그런데 이번엔 처음으로 조금 억울했다. 최근 들어 다양한 영화를 보는 것에 노력하고 있다. 영화가 좋고 나쁨을 관람 전부터 계산하지 말자는 생각이다. 그게 비평가를 꿈꾸는 사람의 올바른 태도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 마음이 이번만큼은 금이 갔다. 좌석에 앉고서 오프닝 타이틀이 떠오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싸함을 느꼈다. 일종의 생존 본능이었다. 이거 보통 영화가 아닐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

 

 

 

  

 

 

 <분리수거>는 결혼을 앞둔 한 여성이 예비신랑의 외도를 마주하고서 무턱대고 제주도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은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으면서, 다양한 사람을 마주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들로부터 자신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도모하는 셈이다. 조연들의 서사도 단편적으로 가미된다. 그들의 서사는 아무래도 영화 전개에 필수다.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 '왜 제주도인가?'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꼭 제주도여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피어오른다. 한편으로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간단히 말해 '젊음'의 상징이 아닌가. 그런데 웬걸,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이미지가 20대의 것과는 많이 동떨어져 보인다. 배역은 20대라고 하지만 배우가 제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왜 제주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제주도라는 장소가 주는 메시지는 무언가. 제주도가 아무리 여행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한들 연인에게 배신의 아픔을 겪은 이가 대뜸 제주로 떠날 어떠한 당위가 부족하지 않나. 제주의 아름다움을 필름에 담고 싶은 마음이었다면 이해하겠다. 그런데 영화는 그 아름다움도 제대로 담지 못한다. 촬영 당시 날씨가 우중충했던 건가. 아름답지도 않고 칙칙하기만 했다. 심지어 플롯의 주 배경인 게스트하우스의 주변이 해안가는커녕 논밭만 가득하다.

 

 

 자고로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8할이다. 설득력을 위해선 스토리의 완결성과 납득 가능성뿐만 아니라 뒷받침하는 여러 배경과 요소들의 유기성도 중요하다. 그런데 <분리수거>는 부차적 요소들의 유기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설득력도 당연히 떨어진다.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가 얼마나 자질구레한지에 더 주목하게 된다.

 

 

 

 

 

 

 캐릭터 설정도 마구잡이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 놀러 온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평범한 대학생 커플, 심지어 다른 하나는 사업가다. 주인공은 광고 연출가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라는 공간이야 당연히 여러 사람들이 모여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 영화계는 그 원망스러운 인플루언서라는 캐릭터를 놓지 못하는 걸까. 너무나도 어색하게 카메라를 들고 커뮤니티 센터에 입장하는 인플루언서 캐릭터를 보는 것은 관객의 몫이지 않나. 인플루언서 캐릭터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진행하는 인위적인 라이브 방송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편집이라도 현실감을 주어야 하는데, 졸작이 따로 없다. 유치한 역할극을 하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가 않는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마음도 분리수거가 되냐는 말들은 이미 저기 먼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리고 사라졌다. 인플루언서 캐릭터는 히키코모리 같은 편집자에게 고백 공격을 받는다. 그 외에도 각종 성희롱 DM들에 시달린다. 그런데 그게 영화 종반부에 등장하는 김동준 배우와 무슨 관련이 있나. 심지어 인플루언서의 마음은 무엇인지, 분리수거는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중간에 게스트하우스 직원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에 관한 서사는 아주 미약할뿐더러 그냥 좋아했다가 말아버리는 단순한 감정 변화로 일축된다.

 

 

 

 

 뭐가 뭔지 제대로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서사에 관객이 편입될 수 있어야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영화를 즐길 수 있어야 그 속에서 메시지를 찾고 영화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분리수거>는 그 일말의 여지마저 주려고 노력하는 듯한 감각을 보여주지도 않는 것 같았다.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냥 그것을 혼자서 주절주절 나열하고 있다. 이야기를 여과의 과정 없이 내뱉으니, 처음 하고 싶었던 이야기나 제목을 분리수거로 정한 이유들도 영화 중반부부터는 저기 먼 곳으로 날아가버린다.

 

 

 설득력을 잃은 이야기를 왜 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봐야 하나. 언제까지 관객에게 호소만 해댈 것인가. 가뜩이나 영화 표값이 너무 높다는 아우성이 거센데, 이런 영화를 내밀고서 "부진한 영화 산업, 한 번만 믿고 도와 달라"는 말을 하기에는 양심이 없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정신이 혼미하다. 이런 영화는 너무 오랜만에 본다. 옹색하고, 거추장스럽고 부끄럽다. 관객이 돈도 내고 고통까지 느껴야 한다. 러닝타임도 아주 길다. 거의 2시간에 달하는 길이다. 그 정도로 길게 끌어갈 내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건 누구 탓인가. 어떤 사람의 입김으로 이런 괴작이 탄생한 건가. 그 책임 소재라도 묻고 싶다.

 

 

 전형적인 상업 영화의 틀을 쓰려 하고 있는 영화다. 그러니 소구력 있는 이야기와 그 요소들을 가미한 거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인플루언서, 청춘. 심지어 이 요소들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지도 않고, 영화 안에서 그것들끼리 맞닿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옹색한 시도다. 일단 러닝타임을 늘이고, 서사를 연장시키다보면 이야기가 완결성이 생길 것이라는 의미 없는 행동으로 종반부의 끝맺음마저도 우습다. 감독이 책임져야 하지 않겠나. 수많은 인원과 배우들의 이력에 이런 영화를 추가하게 만든 것을. 관객이 비싼 값 주고 이런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는, 볼 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영화를 선택지에 넣게 만든 것을.

 

 

 

* 이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다녀온 뒤 작성한 것입니다.

작성자 . 오기평

출처 . https://brunch.co.kr/@sangok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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