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5-05-04 21:16:44
[JEONJU IFF 데일리] 낮에도 밤에도 고단한 사랑의 온도.
영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리뷰
요즘처럼 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날과 참 잘 어울리는 영화 한 편을 만났다. 바로 박송열 감독이 연출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쌀쌀한 밤과 더운 낮 사이 그 틈에서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가끔 구름>에 이어 다시 호흡을 맞춘 두 배우는 부부로 돌아왔다. 현실적인 사랑과 일상의 온기를 담아내고 있는 이 영화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가능한 영화를 향하여> 섹션에서 상영된다.
영화정보
박송열
PARK Songyeol
Korea
2021
90min
DCP
Color
Fiction
12세 이상 관람가
시놉시스
불안정한 일자리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영태와 정희 부부는 사채는 절대 쓰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러던 어머니의 생일날, 다른 형제들이 모두 두둑한 돈을 선물로 줄 때 이들 부부만 아무것도 주지 못한다. 영태는 초라함을 느끼고 괜스레 정희를 탓한다. 이에 정희는 홧김에 사채를 빌리러 간다.
영화리뷰
척박한 현실을 이겨내고 끝내 사랑까지도 지켜낸 두 사람은 현재의 일상을 지켜내는 것에 열중한다. 때론 버거운 삶에 지쳐 주저앉기도 했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견디곤 했다. 영태는 영상을 작업해 왔고 정희는 학교 강사로 일해왔으나 두 사람은 현실의 문제로 공사장, 택배, 대리운전, 마트, 식당 등 일용직을 전전한다. 평화로운 그들이 갈등을 겪게 되는 큰 이유 역시 '돈' 때문이다. 돈을 갚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인해 적어도 이것만큼은 하지 말자는 금기를 깨고 말았다.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경제적 여유'는 더 빠르게 무너져갔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 현재를 유지하는 것조차 벅찬 삶 속에서도 삶의 질을 챙기는 모습이 무책임하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필수적인 요건 중 하나이다. 작은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들의 행동은 무모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존엄이었다.
영화가 현실에 맞닿아 있는 만큼 그 생생함은 스크린 너머로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영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에 집중하기보다는 두 사람이 함께 나누는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큰 사건이나 드라마틱한 반전 없이도 이야기의 단단함이 살아있고 그들의 일상은 선명하게 전달된다. 겉 보기엔 아무 일도 없지만 미세하게 흔들리는 감정선과 관계의 파동은 왠지 모를 이끌림을 선사한다. 어떤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채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그 막연한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그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 투박한 사랑을 지켜내려는 고단한 일상이 불안정한 계절의 온도처럼 위태롭게 흔들린다. 영화가 끝나도 현실의 갑갑함도 막막함도 해소되지 않지만 낮이 덥고 밤이 추운 게 당연한 것처럼 인생은 흘러간다. 삶은 노력한다고 해서 그 대가를 온전히 돌려받을 수 없고 때론, 무책임감에 한숨 쉬고 배신감에 치를 떨어도 삶은 계속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기보다는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 무척이나 현실적이었다. 사람들의 삶을 다정하게 응시하는 이 영화의 시선은 아무것도 아닌 듯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고귀하고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오가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에서도 이어질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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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룸하우스 노하우 활용의 잘못된 예!
‘블룸하우스 = 호러 명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블룸하우스가 제작한 영화는 완성도를 떠나 궁금증을 갖게 한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인시디어스> <더 퍼지> 시리즈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메간> <프레디의 피자가게> 등 최근에는 홀로된 아이들 곁을 지키는 친숙한 것(장난감, AI 로봇 등)의 이면을 통해 공포감을 전했고, 그 전략은 시쳇말로 1~20대 관객에게 먹혔다. 젊은 세대 관객의 소구 포인트를 안 이상 제작사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터. 그 바통을 이어받은 <이매지너리>도 곰 인형이라는 친숙한 장난감이 공포의 대상으로 변한다는 설정을 가져왔다. 기획은 좋다. 문제는 블룸하우스의 여러 작품에서 봐왔던 요소들이 이곳 저곳에 덧칠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시카(드완다 와이즈) 자주 거대 거미에 쫓기는 악몽을 꾼다. 그 거미를 소재 삼아 만든 그림책으로 유명한 작가가 된 그녀는 돌싱남이자 두 딸의 아빠인 맥스(톰 페인)와 결혼을 한다. 남편과 두 딸이 생긴 제시카는 어린 시절 살았던 고향 집으로 이사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딸 앨리스(파이퍼 브라운)는 지하실에서 홀로 외롭게 앉아 있는 곰인형 ‘천시’를 발견한다. 이후, 앨리스의 상상 속 친구가 된 천시는 이 순수한 소녀와 재미있고도 무서운 놀이를 시작한다.
유년 시절의 경험을 통해 공포감을 극대화하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공감을 뒤틀면 관객이 불편함을 갖는다. 관객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을 비틀고, 거기서 공포와 서스펜스를 전한다.
<이매지너리>는 블룸하우스 대표 제이슨 블룸이 말하는 이 방법을 오롯이 반영한 작품이다. 영화는 누구나 유년 시절 갖고 놀았던 인형, 또는 상상의 친구를 데려와 공감을 갖게 하고, 이를 뒤트는 방식을 취한다. 일명 '큐렌들리(Cute+Friendly) 호러'라 불리는 영화의 중심에는 곰 인형 ’천시’가 있는데, 초반에는 외관상 귀여운 존재로만 각인된다. 감독은 반전 트릭을 강조하기 위해 천시의 정적인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마치 관객에게 안전하다고 느끼게끔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상상의 친구가 모두 ‘빙봉’은 아닐 터. 천시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은 작은 디테일에서 출발한다. 보통의 곰 인형처럼 보이는 천시는 감독의 말에 따라 5%가 부족해 보인다. 눈과 귀 크기가 다른 것은 물론, 점차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기 때문. 특히 앨리스에게 현실보다 더 나은 환상의 나라에 데려가 주겠다는 달콤한 말을 하며 위험한 미션을 하게 만드는데, 이를 발견한 제시카가 그 위험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천시의 위협이 더 거세지면서 잊었던 제시카의 진짜 유년 시절이 밝혀지고, 영화는 보다 호러 장르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문제는 익숙한 소재 활용법과 기시감 짙은 장면들의 나열이다. 지하실 공간, 벽에 남겨진 의문의 낙서, 수상한 이웃의 출현, 현실과 상상의 공간 등 기존 할리우드 공포 영화에서 봐왔던 소재들이 즐비하다. 차별화 포인트 없이 각 장면의 호러 요소로만 이 소재들이 사용되다 보니 긴장감은 떨어지기 마련. 이보다 더 아쉬운 건 블룸하우스의 성공한 영화의 장점들이 대거 활용되었는데, 영화에 잘 녹아들지 않고, 기시감만 든다. 천시의 활용은 <메간>, 지하실 파란 문과 그 안의 또 다른 세상, 그리고 그 세상 안에서 누군가를 구출해 오는 것은 <인시디어스> 시리즈, 잊고 지냈던 과거 속 공포의 근원을 찾는 과정은 <프레디의 피자가게>의 요소와 오버랩된다. 제작사의 노하우를 재활용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좀 더 다각적으로 고민해서 활용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든다.
표면적으로 이런 약점이 노출되다 보니 공포영화의 극적 긴장감은 다소 떨어진다. 하루아침에 두 아이를 키워야 하고 잘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계모로서의 현실 공포,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가며 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으로서 의미 또한 잘 살지 못한다. 올해 여름 시즌을 마무리하는 호러 영화로서 장르 팬들은 기대보단 실망이 더 클지도 모른다.
사진 제공: 올스타엔터테인먼트
평점: 2.5 / 5.0
한줄평: 검증된 소재, 게으른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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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과 죄책감, 그리고 후회가 만든 구원의 길
우리는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다. 처음엔 단순히 ‘불리기 위한 호칭’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름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겪게 될 모든 이야기와 감정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그렇기에 이름을 부르고, 또 불린다는 행위는 꽤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서로 다른 이름들 속에서 ‘나는 누구이고, 넌 누구인지’를 확인하며 관계를 맺는다. 이름이 없다면 나 자신을 정의하기도 어렵고, 타인에게 나를 제대로 각인시키기도 힘들다. 결국 이름이란, 우리 내면을 드러내고 서로를 구분 짓는 뿌리이자, 한 인간의 영혼을 상징하는 가장 기본적인 표시가 된다.
영화 <검은 수녀들>에서 우리는 유니아, 미카엘라, 바오로라는 ‘이름’을 지닌 세 인물을 만난다. 수녀이자 신부인 이들이 각각 품고 있는 절망, 죄책감, 후회는 그들의 이름 속 정체성을 흔들고 시험한다. 어둠에 사로잡힌 세계에서, 구마 의식을 둘러싼 제한과 의심 속에서, 이들은 자기 자신의 이름에 걸린 책임과 소명을 다시금 떠올린다. 과연 절망이 오히려 힘이 될 수 있을까, 죄책감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 수도 있을까, 후회가 도움의 손길로 바뀔 수도 있을까? 다음부터 살펴볼 세 가지 감정은 이 영화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치는 출발점이다.
[첫 번째 감정] 유니아 수녀의 절망감
유니아 수녀의 과거가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과 태도, 그리고 반응하는 방식에서 그녀가 깊은 절망감 속에 머물러 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조금은 외로운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니아 수녀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돕고 구하려고 애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녀의 절망감이 오히려 그녀를 움직이는 동력처럼 보인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마주할 때조차, 그녀는 흥분하거나 극단으로 치닫기보다 담담하게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 태도가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 이유는, 유니아 수녀가 어떤 상황에도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을 띠면서도, 막바지까지 타인을 위해 구마 의식에 나서는 모습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상징한다. 절망감은 흔히 사람을 고립시키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유니아 수녀는 그 절망 위에 일종의 ‘책임감’을 덧씌워,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더욱 단단히 다지게 된다.
특이하게도 영화는 이 ‘절망감’이 유니아 수녀에게서 연민이나 연약함이 아닌, 더욱 단단한 ‘투쟁심’을 끌어낸다고 묘사한다. 실제로 그녀가 처한 환경은 녹록지 않다. 구마 의식은 허가받은 신부만이 거행할 수 있는데, 유니아 수녀는 이 제약을 뛰어넘을만한 권한도, 신분도 갖고 있지 않다. 영화에서는 그녀가 무당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거절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사람을 구하고, 악령을 막아내려 애쓰는 모습은, 절망을 극복하는 데 있어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두 번째 감정] 미카엘라 수녀의 죄책감
영화 곳곳을 살펴보면, 미카엘라 수녀가 어릴 적부터 죽은 이들을 보아왔다는 암시가 있다. 친구가 자살한 듯한 과거가 엿보이는데, 그녀는 그 환영을 지금도 계속 목격한다. 이상한 기운이나 귀신 같은 존재가 주변을 맴돌면, 미카엘라 수녀도 금방 눈치채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질병’으로 치부하고, 외면하려 든다.
아마도 친구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현재 그녀를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 대신 살아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미묘한 부채감, 무엇인가 바꿀 수 있었을 텐데 바꾸지 못했다는 자책이 그녀를 무력하게 만든다. 미카엘라 수녀는 그러한 마음의 짐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려 하고, 수동적인 태도에 빠져 버린다. 그러나 유니아 수녀를 만나면서부터, 그녀는 조금씩 변화의 계기를 맞이한다.
죄책감은 사람의 행동을 옭아매는 강력한 감정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을 처벌하려는 듯한 충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 미카엘라 수녀는 스스로를 속이는 방식으로 이 감정을 억누르려 하지만, 유니아 수녀를 통해 ‘죄책감이 나 때문에 생긴 감정’이라면,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자각을 얻는다. 그제야 그녀는 더 이상 뒤로 숨지 않고, 마주보려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미카엘라 수녀는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이, 사실은 새로운 결심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 감정] 바오로 신부의 후회
바오로 신부는 영화 전반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인물임에도, 의외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사실 그는 ‘정신병 같은 건 의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으며, 구마 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쪽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그는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영화에서 가장 취약해 보이는 존재가 바오로 신부다.
다만 흥미로운 건, 바오로 신부가 어느 순간 결단을 내린 뒤의 모습이다. 영화는 그 과정 자체를 상세히 보여주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구마를 돕는 인물로 바뀐다. 바오로 신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구마 의식을 직접 행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위한 물품과 장소, 그리고 현실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후회’가 얼마나 강렬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진작 믿었다면, 아니, 적어도 무관심하지 않았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의 감정은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후회라는 감정은 이미 벌어진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사람을 무력감에 빠뜨리지만, 동시에 그 무력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게도 만든다. 바오로 신부가 보여주는 반전과 지원은, 여전히 죄의식과 후회를 품고 있음에도,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고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로 인해 유니아 수녀가 고립되지 않고 끝까지 악령에 맞설 수 있게 된다는 점은, 후회가 뒤늦은 도움일지언정 완전히 무의미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이야기 속 논쟁거리
정신병에 대한 평가는 사회적으로 여전히 논란거리다. 누군가는 의학적·과학적 치료가 최선이라고 주장하고, 또 누군가는 영적인 문제나 전통적 주술적 방식(무당, 굿 등)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이 영화 <검은 수녀들>은 구마 의식이라는 종교적 접근, 그리고 무당을 통한 민속적 접근, 의학적인 치료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시각에 따라 대처법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드러낸다. 현대사회에서도 정신적 문제나 질병을 두고 각기 다른 입장이 충돌하고 있는데, 영화가 그런 복합적인 관점들을 끌어모았다는 점은 꽤 흥미롭다.
물론 이야기 자체에 완벽하지 않은 구멍들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어느 한쪽 방식만이 옳다고 단정 짓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트라우마나 초자연적 현상에 접근하는 시도를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사회학적으로 본다면, 이것은 ‘질병’ 혹은 ‘이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다원성을 반영하는 사례일 것이다. 사람마다, 혹은 문화권마다 시각이 다르고, 그 다름이 때로는 갈등을 낳지만, 동시에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게도 만든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 던지는 메시지
영화 <검은 수녀들>은 제목만 보면 어두운 분위기의 공포·오컬트 장르로 느껴지지만, 정작 핵심은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한다. 유니아 수녀의 절망감, 미카엘라 수녀의 죄책감, 그리고 바오로 신부의 후회를 통해,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과 상처가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펼쳐 보인다. 우리는 종종 절망, 죄책감, 후회 같은 감정이 부정적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영화는 그 감정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그래도 앞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분명 영화상에서 아쉬운 구석이 없진 않다. 마치 급작스럽게 변하는 바오로 신부의 태도나, 미카엘라 수녀가 어떤 식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지 좀 더 구체적인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뚜렷하다. ‘결국 인간을 흔드는 건 외부의 악령이 아니라, 우리가 내부에서 품고 있는 절망, 죄책감, 그리고 후회가 아닐까?’라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진득하게 남는 여운이 있다면, 그것은 곧 우리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복합적인 감정을 어떻게 품고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감독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전반적으로 큰 사건과 스펙터클에 집중하기보다는, 인물 간의 심리적 갈등과 변화를 다루는 데 공을 들인 영화라서, 한 편의 심리 드라마를 본 듯한 인상을 남긴다. 오컬트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타인을 구하기 위해 절망감을 이겨내고, 과거의 죄책감을 짊어진 채라도 한 발씩 나아가는 사람들. 어쩌면 이 영화 <검은 수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일상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 이름이라는 것은 나 자신이자, 내가 지닌 모든 감정의 집합체다. 그리고 그 감정들 사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순간, 우리는 자기만의 구원과 용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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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격 노출 뒤 드러난 세 남녀의 숨겨진 욕망
밀실을 소재로 얽히고설킨 세 남녀의 치정극. 동명의 콜롬비아 영화를 리메이크한 <히든 페이스>는 에로틱 스릴러로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원작만 봐도 수위 높은 노출과 파격적 설정이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이는 리메이크 버전의 기대 요소 중 하나. 에로틱 장인인 김대우 감독이 연출을 맡아서인지 극장에서 마주한 영화는 그 기대감을 충족할 만하다. 아름답고도 수위 높은 베드신의 완성도 뿐만은 아니다. 그 장면에 숨겨진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뜨거움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이 좀 일찍 찾아오는 게 아쉽지만 말이다.
지휘자 성진(송승헌)은 오케스트라 첼리스트이자 약혼녀인 수연(조여정)의 영상 편지를 확인한다. 결혼 스트레스 때문에 해외로 떠난다는 내용을 본 그는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그녀의 부재를 대신해 첼리스트 미주(박지현)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들어온다. 자신에게 맞지 않은 상류층의 삶에 염증을 느낀 그는 자신과 비슷한 성향과 흙수저라는 공통점을 가진 미주에게 매력을 느끼고, 술을 건하게 마신 비 오는 밤, 자기 집에서 함께 밤을 보낸다. 중요한 건 이 모습을 수연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 집 안에 있었던 밀실 공간에 갇힌 그녀는 이후 성진과 미주의 불륜을 마주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작품을 제안받고 영화를 다시 보니 처음 볼 때와 사뭇 달랐다. 지금까지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와 DNA가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발현되지 못한 욕망의 뿌리들이 저 먼 아래에서 서로 연결돼 있는 듯한 지점에 가장 이끌렸다.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우 감독은 <히든 페이스> 리메이크 이유를 이렇게 답했다. 기존 원작은 개연성과 디테일보다는 밀실 콘셉트를 밀어붙이며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욕망에 집중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주인공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의도가 결여되어 위험한 사랑의 테스트로만 비쳤던 게 사실이다.
김대우 감독은 원작의 단점을 메우고 자신만의 결로 다잡기 위해 계급 갈등을 집어넣는다. 성진은 개천에서 용 난 흙수저 케이스다. 그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된 건 단장인 엄마의 소중한 딸 수연의 힘이 크다. 자기 손을 일궈낸 결과물이 아닌 수연의 힘으로 엉겁결에 상류층이 된 그는 내색하지 않지만 수연의 꼭두각시처럼 생활하게 된다.
이런 마음을 하소연할 때 없는 성진에게 슈베르트를 좋아하고 소주를 즐겨 마시는 흙수저 미주는 공감 대상이 되고, 서로 통한 마음을 바탕으로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욕정으로 분출된 것.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성진과 미주, 그리고 이를 밀실에서 본 수연의 관계는 더 복잡미묘하게 엮인다.
“인간은 포장이야” 오케스트라 단장이자 수연의 엄마 혜연(박지영)이 내뱉은 이 말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다. 흙수저든 금수저든, 실력이 있든 없든 간에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 마련. 알맹이가 어떻든 남에게 보이는 게 중요하다는 이 말을 역행하듯 감독은 성진과 미주의 베드신을 그저 아름답게만, 그리고 단순히 그들만의 복잡미묘한 사랑으로 그리지 않는다. 스포일러라서 밝힐 수 없지만 이 관계는 어떤 의도를 담고 시작된 위험한 불장난이다. 마치 <인간중독>의 진평(송승헌)과 가흔(임지연)과는 다른 결의 주인공들과 이야기로서 발전한다는 걸 내비치는 듯 말이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밀실에 갇힌 건 수연이 자초한 일. 그 안에서 이들의 불륜을 목격하고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이 설정 또한 주인공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밀실에 갇히게 된 원작과 달리 수연이 스스로 들어가 갇히게 된 이유를 집어넣는다. 수연과 미주가 원래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새로운 설정을 가미한 영화는 더 나아가 호의를 무기 삼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수연의 전사를 보여주며, 밀실에 갇힌 것 자체가 과거의 죗값을 치르는 것처럼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계급 갈등이란 무거운 주제 의식을 삽입, 밀실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차용한 에로틱 스릴러라는 고정관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음란서생> <방자전> <인간중독> 등 감독은 꾸준히 계급 갈등을 소재로 포장지에 감싸진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려왔다. 이런 점에서 <히든 페이스>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작에서 느껴진 애틋한 사랑과 연민은 이번엔 없다. 대신 정해진 계급 사회 안에서의 차가운 욕망을 발현하고 그에 따른 비틀어진 행복에 취하는 인물들과 결말을 보여준다.
<히든 페이스>는 김대우 감독의 진일보한 연출력을 보여준 건 맡지만, 마지막까지 관객들을 설득하기에는 힘이 달린다. 계급 갈등을 조장하는 부유층의 이미지는 피상적일뿐더러, 후반부 반전에 따른 관계 역전이 파격적인 놀라움을 주지만, 이를 도달까지의 속도감이 더디다. 결말에 따른 공허함도 크다. 이는 호불호가 갈릴 이유로 보인다. <주홍글씨> <상류사회> 등 소재와 이야기 흐름이 비슷한 영화의 기시감도 걸림돌이다.
이런 단점을 메우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송승헌은 꼭두각시로 살아갈 것인지, 자신의 원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갈등을, 조여정은 겉으로는 호의를 내비치지만, 그 자체를 족쇄로 삼아 사람들을 부리는 상류층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김대우 감독과 첫 협업인 박지현은 두 인물의 관계를 전복시키며, 반전을 꾀하는 모습을 잘 그린다. 특히 과감한 노출 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한다.
영화 제목처럼 세 인물은 숨겨진 자신들의 얼굴을 내보이고, 각자가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취한다. 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본연의 얼굴로 살아갈 수 없는 이 잔혹한 사회에서 그나마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더 가져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게 공허함 뿐일지라도.덧붙이는 말: 극 중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와 4개의 즉흥곡 D.899 중 제3번, 그리고 교향곡 8번 ‘미완성’이 삽입되었는데, 각 곡마다 성진의 마음과 각 장면의 의미를 더 아로새긴다. 특히 초반 성진의 마음을 빼앗는 미주의 첼로 연주곡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후반부 이 영화엔 얄팍한 서정성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걸 역설적으로 내보이는 듯한 교향곡 8번 ‘미완성’은 주의 깊게 들어보길 바란다.
평점: 3.0 / 5.0
한줄평: 원작보다 높은 수위, 원작보다 좋은 짜임새, 원작보다 아쉬운 속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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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만이 마에스트로를 할 수 있다?
- 6★/10★
1976년 프랑스가 발칵 뒤집혔다. 자국 와인에 큰 자부심을 가진 프랑스인들은 줄곧 미국 와인을 두고 ‘콜라 맛이 난다’며 혹평했다. 한 영국인이 재미난 이벤트를 기획했다. 프랑스와 미국의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각각 10종을 두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한 것이다. 테스트 결과 두 와인 모두 미국 와인이 1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심사 위원 10명 중 8명이 프랑스인이었는데도 그랬다. 일명 ‘파리의 심판’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심사에 참석한 콧대 높은 전문가들이 한동안 인터뷰를 피해 칩거해야 할 정도로 후폭풍이 거셌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테스트 결과를 폄하하는 시도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와인의 숙성 기간이 짧았다는 등의 주장이 근거였다. 그들은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보다 맛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프랑스 와인이 언제나 최고라는 것만이 ‘사실’이고 ‘진실’이다.
비단 와인에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클래식은 상류층의 음악으로 여겨진다. 존경받는 지휘자인 마에스트로는 백인 남자만이 할 수 있다고 으레 생각된다. 이민자 여성 청소년이 마에스트로를 꿈꾼다면? 불가능한 꿈을 단념하라는 조언이 쏟아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실’, ‘현실’이 구축되는 방식이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몰아낸, 아니면 처음부터 자격 조건을 암묵적으로 합의한 결과물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제시하며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이 거대한 착시 효과는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누군가가 도전했을 때 균열을 맞는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도전으로는 깨지지 않는다. 거짓 사실, 거짓 진실은 힘이 세기 때문이다. 반례가 존재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프랑스 와인만이 최고라고, 클래식은 백인 부르주아만이 진입할 자격을 가진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자연스러운 권위를 누려온 거짓 사실과 거짓 진실을 깨는 방법 중 하나는 집요하고 끈질긴 도전이다. 〈디베르티멘토〉는 이러한 도전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다. 전 세계 여성 지휘자의 비율은 6퍼센트라고 한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는 4퍼센트다. 알제리 출신의 서민층 이민자 가정의 자히아가 여기에 들 확률은? 지극히 낮다. 개인 연주자로 성취를 내기는 조금 더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리더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듯, 단원들이 자히아를 지휘자로 인정하지 않으면 능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반면 자히아의 경쟁자인 백인 남성 랑베르는 다르다. 그가 단상에 오르기만 해도 단원의 표정에는 진지한 긴장감이 돈다. 어딘지도 모르는 ‘변방’에서 음악을 배운 자히아가 ‘어디 해볼 테면 해봐’라는 단원들의 표정을 마주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자히아는 결국 꿈을 이뤘다. 자히아가 조직한 디베르티멘토는 실존하는 오케스트라로, 매년 2만 명 이상의 전 세계 청년을 대상으로 음악을 전파하고 수많은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디베르티멘토는 18세기에 유행한 다양한 악장과 편성의 악기를 사용하는 모음곡을 일컫는다. 자히아가 어렵게 꾸린 오케스트라의 여정, 그리고 다운 증후군을 가진 어린이나 도시 외곽에 사는 아이들에게 클래식을 가르치는 자히아가 추구하는 가치가 담긴 이름이다.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는 있다는 자히아는 자신의 음악으로 변화한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중이다. 귀가 즐거운 음악과 내내 함께하는 자히아의 여정은 잔잔한 울림과 기분 좋은 설렘을 남긴다.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 마에스트로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자히아를 인정한 것이 자히아가 꿈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세르주는 남자만이 마에스트로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인데, 자히아의 지휘를 보고는 단번에 마음을 바꾼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화음이 좋았기 때문이다. 즉 세르주는 자히아의 피부색과 성별이 아닌 능력에 주목했다. 이후에는 그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엄격한 훈련과 진정성 있는 조언을 줄곧 제공한다.
세르주의 태도는 사려 깊고 인상적이지만 ‘공정’하지는 않다. 능력주의는 자히아가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한 경쟁자보다 더 치열하게 고투했다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차분한 감동을 전하는 이 영화는 동시에 거짓 사실과 진실을 돌파하는 또 다른 방법을 고민하도록 촉구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를 여성 지휘자가 주인공이라는 점만 같을 뿐 장르와 질감이 전혀 다른 영화 〈TAR 타르〉와 함께 봐도 흥미로울 것이다. 겉으로는 능력주의를 표방하나 실제로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부정한 일을 일삼는 최고의 여성 지휘자가 몰락하는 과정을 담은 〈TAR 타르〉는 〈디베르티멘토〉처럼 클래식의 ‘상식’에 비추어봤을 때 ‘모순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여성 지휘자가 마주한 여러 딜레마를 두루 살피고 고민하는 데 밑절미가 되어준다. 능력주의와 보여주기식 할당, 전통과 도전, 실력 있는 개인과 무능한 기득권 등의 다층적 구도에서 여성들은 오늘도 거짓 사실, 거짓 진실을 거스르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두 영화가 대변하듯, 이 모순적인 질곡을 돌파하는 여성의 이야기는 다채로운 긴장감을 품고 있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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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임을 걷어낸다면 더욱 감동적일 한 여성의 이야기, 영화 <82년생 김지영>
소설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82년생 김지영>. 개봉 당시 이 작품이 페미니즘 작품이라고 프레임이 너무 씌여 있어서 솔직히 껄끄러웠던 작품이었다. 나는 솔직히 페미니즘이라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호명을 함으로써 차별을 종용하는 결과로도 이어지는 같아서 그 이념은 동의하지만 단어 자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영화 홍보가 너무 페미니즘이라는 틀로 이뤄져 있어서 조금 불편했는데 굳이 그렇게 홍보를 안했다고 하더라도 잘 됐을 너무나도 잘 만든 작품이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시놉시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당신과 나의 이야기
1982년 봄에 태어나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동료이자 엄마로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지영. 때론 어딘가 갇힌 듯 답답하기도 하지만 남편 대현과 사랑스러운 딸, 그리고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항상 든든한 가족들이 지영에겐 큰 힘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하는 지영. 대현은 아내가 상처 입을까 두려워 그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지영은 이런 대현에게 언제나 “괜찮다”라며 웃어 보이기만 한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여자의 이야기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제목 답게 김지영이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사회 속에서, 집안에서 여성이 겪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 번씩 겪는 부조리함이 자극적이지 않게 드러나고 있어서 평범하지만 충분히 그 부조리함을 캐치할 수 있게끔 거슬리지 않게끔 연출을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그저 평범하다고 보여졌지만 그 속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안타깝게 느껴져서 중반부터 엄청 눈물을 쏟으면서 봤다.
남자의 이야기
여성 캐릭터가 타이틀롤이었지만 더 눈길이 갔던 부분은 남성캐릭터들이었다. 여성의 이야기라고만 홍보가 많이 돼서 남성 캐릭터의 역할이 아예 죽어있거나 정말 가부장적인 인물들만 등장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입체적이고 그 관계 속에서 고민을 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도 꽤나 많이 등장해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았다.
그래서 왜 호보를 '여성'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을 했는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연의 남편인 대편 캐릭터들의 경우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 속에서 전형적으로 '도와준다'는 접근을 하는 일반적인 남성을 그리고 있긴 하지만 '도와준다'가 아니라 '마땅히 자신이 해야할 일이다'라는 가치관의 변화를 잘 드러내고 있었고, 그 고민의 과정이 아내 김지영이라는 캐릭터에 묻히지 않아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
가장 펑펑 울었던 순간을 꼽자면 김지영이 스스로를 김지영이라고 부르는 장면이었다. 항상 다른 사람에게 '지영'이라고 호명을 당하더라도 그 안에는 아내로서, 딸로서, 엄마로서, 친구로서 호명을 당해왔었다. 자신을 지운 채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습대로 행동을 하다가 동생이 자신이 갖고 싶어했던 만년필에 '김지영'이라 각인을 하고 선물을 주자 그 만년필을 가지고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노트에 적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담담하게 자신의 이름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드디어 스스로 주체가 되는구나하는 느낌이 들어서 펑펑 눈물이 났다.
페미니즘이라는 프레이밍을 걷어낸다면 충분히 한 가족의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볼 수 있었던 영화 <82년생 김지영>. 누구가 감동을 받고 그 속의 부조리함을 불편하지 않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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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타쿠 콜렉션] 이제 정말로 살아갈 이유가 없다면요?
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
......
...
아 썅 ! (왜 안 떨어지지?)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 최승자
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학부 시절 제가 참 좋아했던 모 교수님께서는 동화창작 수업 시간에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소설과 동화의 차이점이 뭔지 아세요?”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답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동화는 소설과 달리 주인공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동화에선 주인공이 궁지에 몰리더라도, 반드시 그 위기를 타개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홀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커다란 어려움 속에 있더라도 그의 곁에는 반드시 그를 돕는 조력자가 있으며, 결국엔 주인공이 다시 딛고 삶을 이어갈 용기와 힘을 준다는 것이 교수님의 설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다가 종종 상처 입고, 주저앉기도 합니다. 대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죠. 하지만 언젠간,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불쑥 그 때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는 무엇도 이어갈 수 없을 때, 모든 불행이 든 상자의 뚜껑이 열려버렸지만 신화 속 이야기완 달리 밑바닥에 한 톨의 희망도 남아있지 않을 때 우린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소개할 영화는 <더 폴: 디렉터스 컷>입니다. 1920년대 할리우드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바빌론>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스크린 뒤에서 그야말로 “갈려나가는” 구조였습니다. 주인공 로이는 이 시대의 스턴트맨으로,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스턴트 씬을 촬영하다 하반신이 마비된 청년입니다. 직업을, 건강을,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한순간에 잃어버린 로이는 병원에서 한 아이를 만납니다. 바로 과수원에서 오렌지를 따다 떨어져 쇄골이 부러진 알렉산드리아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5살 남짓의 소녀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에게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약국에서 모르핀을 가져오게 할 계획을 세웁니다. 로이는 당장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를 앉혀두고 모르핀을 위한 대서사시, 죽음을 위한 천일야화를 지어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야기가 이어지며 병원에서 만난 두 인물은 점차 이야기 속 인물과 동화됩니다.
※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비밀의 문>, <더 폴: 디렉터스 컷>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질게 말하자면, 로이는 형편없는 어른입니다. 그가 새파랗게 어린 청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다섯 살 남짓의 어린 아이를 끌어들여 약국에서 모르핀을 훔쳐오게 하고, 결국 큰 부상을 당하게 만든 데다가, 이야기에 몰입한 아이 앞에서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가차 없이 해하기도 하니까요. 그는 여지없이 나쁜 어른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습니다. 그가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절망 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로이에겐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나갈 의지도, 이유도 없습니다. 모르핀을 삼킨 후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아이에게 ‘내가 잠들면 나가고, 내일은 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그가 다친 마음을 짜내어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친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가 비추는 로이의 상황은 마치 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만을 앞둔 소설의 결말부 같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삶과 닮은 이야기의 결말부를 빚어냅니다. 힘을 합쳐 악에 맞서려던 무법자들에게 군대를 보내 차례로 죽입니다. 이야기 속의 무법자들은 도망칠 기력도 잃은 채 무참히 하나둘씩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들의 죽음에는 다른 개연성이 없습니다. 평온한 죽음조차 성취하지 못한 로이 자신이 그저 한없이 떨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니, 로이는 이미 떨어지고 있죠. 이처럼 충격적인 비극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듣던 알렉산드리아가 울부짖으며 왜 등장인물들을 전부 죽이는 거냐고 물을 때, 로이는 마침내 대답합니다. “이건 내 이야기니까.”
이에 알렉산드리아는 지지 않고 대답합니다. “내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리고 말을 이어갑니다. “죽이지 말아요.” 아무 것도 모를 줄 알았던 어린 아이가 로이를 붙들고 말합니다. 마치 로이의 모든 생각을 다 안다는 듯이요.
로이는 결국 죽이지 않기로, 죽지 않기로 약속합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살아가기로 합니다. 타셈 싱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후 로이가 마음을 바꾸어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지, 재활 후 마침내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되었을지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말했지만, 죽음을 결심했던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의 간절한 호소에 마음이 흔들린 것은 사실이었죠. 그리고 관객 중 한 사람인 저는, 로이가 살아갈 의지를 되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그의 이야기는 비극적인 결말이 예정된 소설이었지만, 이 소설을 동화로 읽어내는 눈을 가진 청자가 있었습니다. 로이에게 별이 총총한 밤, 나비를 닮은 섬, 헤엄치는 코끼리, 끝도 없는 사막에 대해 듣자마자 선명히 그려낼 수 있는 청자였죠. 로이가 도움을 청할 사람 하나 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불쑥 손을 내밀어 그의 이야기를 동화로 바꿔준 건 다름 아닌 5살 꼬마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물 한 모금 찾아보기 힘든 사막에서 적에게 둘러싸여 조롱당할 때 이야기를 뚫고 나타나 손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주고 적을 물리칠 총을 쥐어주기도 했죠. 알렉산드리아는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로이의 영혼을 구원하는 시도를 합니다. 성당에서 가져온 성체를 건네고, 부상을 딛고 살아가는 로이를 그려 선물하는 등, 허공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로이를 계속해서 평지로 밀어냅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어떠한 희망도 볼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우리와 가까운 사람이 이러한 절망 속에 빠져 있다면 우린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모든 비극을 동화로 보는 눈을 가지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잘 살펴보면 우리의 손 닿는 곳에는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조력자가 있고, 그 손을 잡으면 다시 힘을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살아갈 이유도, 여력도 동나버린 최악의 순간도 동화의 한 구간일 수 있으니까요. 우리 곁에 남아있는 기적은 아주 작고 힘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요. 우리가 이 연약한 손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조력자는 우리를 단숨에 들어올려 살아나가게 할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제작한 타셈 싱 감독은 한국에서의 예상치 못한 흥행에 힘입어 지난 2월 내한했는데요.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는 아무도 원하지 않아서 자비를 들여 개봉했다"며 2006년 최초 개봉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아기를 낳았는데 모두가 그 아기를 보고 못생겼다고 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여러분이 내 아기에게 예쁘다고 해주었고, 아이가 날아다닐 수 있게 해주었죠.”라고 감격하여 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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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더 폴>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험란하다 못해 다소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모티브가 된 불가리아 영화 <요호호> (YO HO HO, 1981)의 판권을 구매하는 데에 15년, 장소 섭외에 17년, 주인공을 찾기까지 7년, 실 촬영 기간 4년 반이 소요되었으며, 제작 비용 6,500만 달러의 상당 부분은 타셈 싱 감독의 사비였습니다..CF와 뮤직비디오 연출로 유명했던 타셈 싱 감독은 그간 벌어둔 돈을 모두 영화 제작에 쏟아 부었으며, 본인의 결혼자금까지 털어 투자했다고 전해집니다. 감독의 모든 것을 걸고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작품은 개봉 당시엔 크게 주목 받지 못했으며,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는데요. 디렉터스 컷 개봉 이후 한국 관객들 사이의 입소문으로 인해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며 인정 받기 시작했습니다. 전세계 28개국의 로케이션을 돌며 어떠한 특수효과도 없이 완성해낸 이 경이로운 영화는, 제작 과정의 수고를 다 알지 못하더라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경탄의 감정을 줍니다. 어떠한 경지를 넘어선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상처 입은 영혼을 구하는 서사의 감동이 뇌를 찌르는 영화, <더 폴>이 여러분에게도 소중한 기억이 되기를 바라며 마치겠습니다!
사진:
네이버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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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악녀 크루엘라, 패션계를 접수하다!
101달마시안을 새롭게 재해석한 디즈니 영화 크루엘라가 상영중이죠.
엠마 스톤이 크루엘라 역을 맡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요.
정말 기대 이상으로 잘 어울려서 너무 멋지고 또 이상하게도 보이기도 해요.
과거 영화와는 다르게 악녀의 길을 가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조금은 다른 길을 가려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크루엘라의 머리가 흑과 백으로 딱 나뉘어 있는 것처럼 기묘하게 균형감이 살아있는 영화에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 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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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미쳤네요...영화 끝날때 까지 초긴장 하면서 봤습니다.[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베이트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의 사용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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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대 너머에> 30초 예고편
지워져 가는 기억을 붙잡으려는 인숙.
다른 이들의 기억 속을 헤매는 지연.
과거의 기억속으로 던져진 경호.
서로의 기억 너머, 존재의 의미를 찾는 히치하이커들의 눈물겨운 사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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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장난 론> 30초 예고편
비봇을 갖는 것이 유일한 소원인 소심한 소년 '바니'에게도 드디어 '론'이라는 비봇이 생겼다. 그러나 첨단 디지털 기능과 소셜 미디어로 연결된 다른 비봇들과 달리, 네트워크 접속이 불가능한 고장난 '론' 자유분방하고 엉뚱한 '론'으로 인해 벌어지는 엉망진창, 스릴 넘치는 모험을 함께하며 '바니'는 진실한 우정이 무엇인지 점 점 깨닫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