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5-05-04 20:57:14
[JEONJU IFF 데일리] 성실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에서 사랑을 지켜낸 여자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꽃놀이 간다> 리뷰
‘J스페셜:올해의 프로그래머‘는 각 분야의 영화인을 프로그래머로 선정하여 자신만의 영화적 시각과 취향에 맞는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는 섹션이다. 올해로 5회 차가 된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배우이자 가수, 그리고 이제는 감독으로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이정현이다. 그녀는 자신의 출연작 3편과 선정작 3편, 총 6편의 영화를 통해 스크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내가 이번에 감상한 영화는 이정현 감독의 <꽃놀이 간다>와 안국진 감독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 정보
안국진
AHN Goocjin
Korea
2014
90min
DCP
Color/B&W
Fiction
청소년 관람불가
시놉시스
"미안해요, 그러니까 내가 죽이는 거 이해해 주세요. 전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에요. 제가 이래 봬도 스펙이 좋거든요. 잠도 줄여가며 투잡 쓰리잡 열심히 일했어요. 근데 아무리 꾸준히 일해도 빚은 더 쌓이더라고요. 그러다 빚을 한 방에 청산할 기회가 찾아왔는데! 왜 행복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기는 걸까요? 이제 제 손재주를 다르게 써보려고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5포 세대에 고함! 열심히 살아도 행복해질 수 없는 세상, 그녀의 통쾌한 복수가 시작된다.
* 해당 상영작은 J 스페셜클래스가 포함된 상영회차(상영코드 131)에서만 코리안시네마 단편 <꽃놀이 간다>와 묶음 상영 됩니다.
상영정보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2025.05.01 13:00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2025.05.03 21:00
영화리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10년 만에 전주에서 다시 상영되었다. 안국진 감독과 이정현 배우는 영화 상영 후 스페셜 클래스 시간을 통해 그때 당시를 회상했다. 이 작품은 이정현 배우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이정현 배우는 <꽃잎>으로 데뷔하여 큰 주목을 받았지만 그 뒤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아 가수로 활동했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권유로 <파란만장>에 출연하는 등 영화배우로서의 활동에 시동을 거는 그때, 운명처럼 찾아온 영화가 바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이 영화는 2015년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제36회 청룡영화상, 제3회 들꽃영화상에서 이정현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또한 제52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영화 부문 시나리오상을 수상하며, 상업성과 예술성을 두루 인정받았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이정현 배우를 위해 쓴 극본은 아니라고 했다. 극본에 쓰인 ‘수남’이라는 인물을 누가 수정 없이 연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와중 그것을 수정 없이 해낸 배우가 바로 이정현이었다고 한다. 이정현의 소속사에서 캐스팅 제안을 거부했지만 박찬욱 감독의 추천으로 이정현 배우가 출연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디에도 없던 여성캐릭터. 사랑과 삶을 지키기 위한 광기와 묘한 사랑스러움이 매력적인 ‘수남‘이라는 캐릭터는 무척이나 독보적이다. 이 등장인물은 감독의 어머님이 모티브라고 한다. 남자로서 여자의 일생을 제대로 그려내기 어려웠기 때문에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이 영화에 녹여내었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이 무한하고도 끊임없는 헌신적인 사랑의 형태가 이해가 됐다.
수남은 수많은 선택의 시간을 지나왔다. 첫 번째로는 여공으로 살 것인지, 엘리트로 살 것인지를 선택하게 된다. ’엘리트’의 삶을 선택한 수남은 여자는 무엇보다 ’몸매=가슴‘이중 요하다는 선생님의 말을 한편에 새기지만 곧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컴퓨터의 세상이 도래했고, 자신보다 더 큰 ‘가슴’은 곳곳에 있었으며 성실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하룻밤의 실수로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 평생을 꿈꾸게 된다. 그녀의 마음만큼은 ’실수‘가 아니었다.
규정은 늘 ‘집’을 먼저 사자고 말하며 우리 아이에게는 나처럼 살지 않게 기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청각장애로 인해 보청기를 끼고 있던 규정이 청력을 정말 소실하게 되며 수남의 권유로 집을 사려고 했던 2천만으로 인공와우 수술을 받게 된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으나 갑자기 인공와우에 문제가 생기며 손이 기계에 절단되는 사고를 겪게 된다. 그 후, 규정은 폐인이 되어버렸고 그런 규정에게 죄책감을 느꼈던 수남은 규정이 그토록 원했던 ‘집‘을 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잠을 줄여가며 청소, 요리, 신문 배달, 명함 날리기 등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10년 간 계속하지만 집 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결국에는 은행에서 1억 4천만 대출까지 동원해서야 집을 마련하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수남은 성실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사랑도, 일도. 이 모든 게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이 여자가 성실하다는 건 명백한 일이다. 이러한 헌신적인 사랑의 형태는 좀처럼 찾아보기도 힘들고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혐오스러운 마츠코가 생각나기도 하는 수남의 일생은 비극의 연속이다.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르며 그녀의 삶은 점점 빠져나갈 구멍이 사라진다. 희망이 생기는 순간, 저지되는 희망은 더 큰 절망으로 그녀를 찾아온다.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일군 수남에게 세상은 언제나 가혹했다. 어떤 상황이 찾아와도 그녀가 저지른 그 ‘죄’보다 앞서는 건, 그녀가 얼마나 성실히 살아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남은 끝내 울지도, 제대로 분노하지도 못한다. 세상은 그녀의 삶을 죄로 낙인찍고 그 죄를 옹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 죄가 어떤 절박함 속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를.
꽃놀이 간다
영화 정보
이정현 LEE Jung-hyun
Korea | 2025 | 28min | DCP | Color | Fiction | 12세 이상 관람가 | World Premiere
시놉시스
지병을 가지고 있는 수미는 죽음을 앞둔 엄마의 병원비가 계속 밀리는 상황에서 병원의 ‘중간 정산' 때문에 입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이 조금만 더 기도하면 엄마가 살아날 거라는 믿음을 확신하며 병원에서 난동을 피우고 강제 퇴원을 시켜 집으로 데려온다. 모든 게 뜻대로 풀리지 않지만 다음 주 시작되는 꽃놀이 관광에 엄마를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상영정보
2025.05.01 13:00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2025.05.04 10:00 CGV 전주고사 4관
2025.05.06 20:30 메가박스 전주객사 6관
수미는 엄마의 간병을 도맡아 하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엄마의 병원비가 밀려있는 상황에서 병원에서 난동을 피우고 강제 퇴원을 시켜 집으로 데려온다. 꽃놀이 관광에도 함께 갈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질 거라는 믿음과는 다르게 엄마의 상태는 점점 나빠진다. 엄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집을 내놓았지만 불경기라 팔리지 않고, 그 집 때문에 기초수급수령 자격이 되지 않았다. 그녀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절망적인 상황에도 여전히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과연 꽃놀이 관광을 갈 수 있을까?
이정현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비극적인 삶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꽃놀이 간다>에서는 연출자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또 다른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의도치 않게 두 영화는 참 많이 닮아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무한 경쟁과 생존의 논리 속에서 ‘성실한 사람’이 어떻게 밀려나고 지워지는지를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단순하게 피해자로 표현하지 않고 버텨내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해 낸 한 여성의 치열한 삶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정현 감독의 첫 연출작 <꽃놀이 간다>는 창신동 모자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라고 한다. 한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이면을 고요하고도 섬뜩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미의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현실의 벽에 부딪혀도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불안정한 시스템과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어 흥미로웠다. 이정현 감독이 두 번째로 연출한 단편 영화가 곧 공개된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Relative contents
-
-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줘요.
느껴야만 하는 합당한 감정이 왠지 좀처럼 터져 나오지 않고 몸속 어딘가 꼭 박혀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어딘가 있는데 도대체 어디 있는지 모르겠는 기분. 난 느끼지 못해도 내 몸 어딘가는 그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는다.
전달받은 곳은 고장이 나 삐그덕거린다. 발광하기도 하고 일부로 날 괴롭힌다. 그렇게 화가 나고 아픔을 느끼면 마음이 놓인다.
살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계속 반복한다.
아내를 만나고 장인어른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계획적이고 완벽하게 산다. 그러나 자기가 빠져 있는 일이 아니면 게으르고 무심하다.
물이 새는 냉장고에도, 그리고 아내에게 마저도.
아내를 무심히 여기고 놓치고 살던 그는 아내가 떠나고도 마치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은 듯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
슬프지가 않다. 그렇지만 왠지 삐그덕 거린다. 어딘가에서 위급상황을 외친다. 매미나방이 심장을 갉아먹었다.
문제점을 찾기 위해 분해를 시작했다. 모든 걸 부수고 나면 조금 나아졌다. 전과 다른 충동적인 삶을 산다. 파멸, 파괴 그것만이 흥미롭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주는 관심. 조금 무심할 수도 있지 바쁘고 힘들면 그럴 수 있지.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다. 날 아직도 뜨겁게 사랑한다는 관심. 그게 없이는 사랑이 아닌 걸까?
"전에 못 보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해요. 어쩌면 보긴 봤는데 무심하게 본 거겠죠."
오랫동안 아프던 마음이 사소한 위로 한 마디에 행동 하나에 싹 낫는 일이 있다.
어떤 정신질환 약과 치료보다 강한 게 누군가 날 사랑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그게 무엇보다 강력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알면서도 미루고 놓친다. 꼭 잃고 나면 그제야 깨닫고 후회한다.
-
- 일본에서 건너온, 귀엽지만 불편한 카나리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와 저녁을 먹던 중 아들의 행동이 평상시와 다르다고 느낀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집에 늦게 들어오고 다치길 반복하는 미나토. 이에 학교에서 문제가 있음을 직감한 그녀는 담임교사 '호리'(나가야마 에이타) 및 교장 '후시미'(다나카 유코)'와의 상담을 신청한다. 그러나 학교 측은 사오리의 문제제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갈등의 골만 깊어진다.
그렇게 학교를 오가던 와중 사오리는 왕따를 당하는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를 만난다. 그녀는 요리와 대화를 나누면서 요리와 미나토 사이에 자기가 모르는 깊은 사연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엄마에게도 감춰야 했던 아들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괴물>, 일본에서 건너온 카나리아
어두운 탄광 속 어울리지 않는 색깔이 하나 있다. 환한 노란빛을 몸에 두른 새. 카나리아다. 광부들은 그 새의 존재를 잊은 듯 일한다. 상관없다. 카나리아의 역할은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카나리아는 존재하지 않을 때 진가가 드러난다. 공기 중 산소 농도에 민감한 작은 새가 울지 않는다는 말은 곧 갱에 산소가 없다는 뜻이니까. 사라져 버린 카나리아의 울음소리는 타나토스의 등장이나 다름없다.
사회적으로는 예술이 카나리아일 수 있다. 예술은 사람들이 질식사하기 직전까지 산소가 없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경고한다. 일례로 <오펜하이머>와 <잠>은 전혀 다른 영화다. 하지만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편견에 눈이 멀고, 양극단에 갇혀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 못하는 사회상을 보여줬다. 전자는 매카시즘의 희생양이 된 물리학자의 비극을, 후자는 서로 다른 세상에서 자기 말만 반복하는 부부의 파국을 통해.
이제는 일본 영화 차례다. 칸 영화제 각본상을 비롯해 여러 시상식을 휩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괴물>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괴물은 누구인가?" <괴물>은 괴물의 정체를 보여줄 듯 말 듯 줄다리기를 펼치며 관객을 미궁 속으로 초대한다. 그러고는 돌연 역습을 가한다. 중요한 건 괴물의 정체가 아니라고. 사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너는 괴물이 아니니?"라고.
각본으로 쌓아 올린 미궁
<괴물>의 재미는 기본적으로 각본에서 나온다.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은 관객을 미궁에 빠트린다. 서로 다른 세 주인공의 시점에서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며 괴물의 정체를 쉽사리 확신하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같은 사건이 반복되다 보니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카모토 유지는 시점에 따라 정보를 공유하고 숨기기를 반복하면서 쉬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는 미나토의 이상 행동을 비추며 시작한다. 평소와 다른 아들을 보며 학교폭력을 의심하는 엄마 사오리. 그녀는 아들과 대화를 난 후 담임교사 호리가 체벌을 했다는 확신을 갖고, 곧장 학교로 향한다. 그런데 학교 측 대응이 엉망이다. 호리는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다. 교장은 제대로 된 조사를 부탁하는 학부모의 탄원을 한 귀로 듣고 흘린다. 그러니 괴물의 정체는 확실하다. 학생을 보호하지 않는 학교가 괴물이다.
하지만 관객의 확신은 호리의 시점이 등장하자마자 바로 부서진다. 2막은 앞서 보인 호리의 부정적인 면모를 모두 반박한다. 그가 유흥업소에 출입했다는 소문, 미나토를 때렸다는 의심을 모두 제거한다. 오히려 미나토가 고양이를 죽이거나 같은 반 친구를 요리를 때렸다는 새 정황을 제시한다. 심지어 체벌 교사로 몰린 후 호리의 일상이 잔인하게 무너지는 모습도 비춘다. 그 결과 3분의 2 지점이 되도록 <괴물>은 여전히 미궁이다.
미궁 속 진짜 괴물의 정체
그러다 보니 <괴물>이 무슨 이야기인지도 좀처럼 파악하기 어렵다. 얼마 전까지 핫한 이슈였던 교권 문제를 떠올릴 수도 있고, 일본 못지않게 항상 문제인 학교 폭력 이슈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고레에다 히로카즈답게 아이들의 시점에서 세 번째 이야기가 펼쳐지면 비로소 괴물의 정체도 밝혀진다.
미나토와 요리의 시점에서 그들이 처음 만나게 된 계기, 함께 보낸 시간, 그들의 비밀장소와 비밀 놀이가 등장한다. 편지를 쓰는 그들만의 규칙, 마니토가 요리를 때린 이유 등 이전 시점에서 좀처럼 이유를 알 수 없던 사건의 전말도 비로소 드러난다. 우정이라기에는 깊고,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어린 그들의 미묘한 관계가 한 꺼풀씩 모습을 보인다.
이 지점에 이르면 괴물의 정체를 특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관용 없는 편협한 시선이 그 답이다. 두 소년은 그들의 관계를 떳떳이 드러내지 못한다. 부모와 교사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볼지 걱정하니까. 실제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할 어른들은 미리 재단해 놓은 세상에 아이들을 끼워 맞추기 바쁘다. 그 결과 걱정이 낳은 사소한 오해, 오해가 쌓인 편견은 미나토와 요리를 막다른 길로 몰아간다.
누구든 괴물이 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괴물>은 메타적인 질문을 던지며 관객에게도 책임을 지운다. 실제로 <괴물>은 구조적으로 관객을 거듭 시험한다. 앞서 봤듯이 <괴물>은 일부러 관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처음 엄마의 시점에서는 학교 관계자를 몰인정한 괴물로 보도록 유도한다. 호리의 이야기를 펼칠 때는 과도하게 간섭하는 학부모와 자기 보신에 급급한 학교 시스템을 괴물로 여기게 만든다.
마지막 순간에 도달하면 이 혼란이 의도대로 정교하게 설계된 미궁임을 알 수 있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자기 자신을 자각한다. 카메라가 보여주고 짜깁기한 현실에 동조하는 모습은 세상을 자기 시점에서 짜 맞추는 등장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 즉, <괴물>은 아이들을 비극으로 내몬 괴물이 누구에게나 있고, 모두가 괴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영화가 끝을 향할수록 두 아이의 비극은 더 무겁게 느껴진다. 그들의 낙원이 행복할수록, 그들이 해방에 가까워질수록 마냥 기쁘지 않고, 좋아할 수도 없다. 그 상황을 초래한 책임이 사오리, 호리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함께 지워지기 때문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도 이 양가적인 감정이 커지는 데 한몫한다.
미노스로 남을 것인가, 테세우스가 될 것인가
그렇지만 <괴물>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괴물을 만들 수도 있고,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태풍이 몰아치는 미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미나토와 요리의 낙원을 보는 이의 심정은 불편할지 몰라도, 낙원 자체는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다.
결국 <괴물>은 테세우스가 될지, 미노스가 될지 묻는 영화인 셈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 못하는 편협한 괴물을 악용하는 폭군이 될지, 아니면 미궁에 들어가 그 괴물을 죽이는 영웅이 될지. 만약 답이 후자라면, 일본에서 건너온 카나리아는 죽더라도 마지막 숨을 기쁘게 내뱉지 않을까.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영화가 끝나고도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
- 국내최초 힙합영화
- 줄거리
줄거리라고 할 게 있는지 사실 모르겠다.
- 느낀 점
학생의 입장으로서 걱정이 되었다. 실제로 힙합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고, 랩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다수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는 한 명은 부유한 집안 외동아들, 한 명은 가난한 집안이지만 양아치 무리 중 한 명으로 캐릭터를 잡았다.
이로 인해서 현실에서 랩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모두 안 좋은 이미지로 바라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영화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현재의 학생들을 잘 알지 못하거나 질이 안 좋은 학생들 말고 만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대사에 욕이 많이 나오는 부분 또한 랩하고 힙합 하는 애들은 다 그럴 것이라고 작가가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나 싶었다.
중학생이라는 설정을 잡은 것 같은데 캐스팅된 배우들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고등학생으로 설정을 했어야 알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의 이미지 말고도 극 중에서 나오는 대사나 상황들을 보았을 때 중학교 3학년은 극에 이입하기에는 깨는 설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운전을 한다, 칼을 들고 다닌다)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동아리와 함께 랩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송주는 갑자기 마이크 스탠드를 고치러 간다.
근데 이 전에는 송주가 마이크 스탠드 근처에 가거나 그쪽을 쳐다보는 장면이 없어서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서 스탠드를 고치는 게 진짜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왜 이 이야기가 들어갔는지, 왜 이 장면이 나온 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 영화감독이 하고 싶은 건 많고 담고 싶은 건 많은데 제대로 담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다 감상하고 나서는 내가 뭘 본 건지도 모르겠고, 뭘 느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헷갈리고, 누구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심지어는 저 등장인물이 왜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졌고, 이 이야기는 왜 들어간 것이며 엔딩 또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영화의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면 불편하게 느껴졌던 장면들도 이해하고 넘어갔을 텐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대체 그 부분들이 왜 들어간지도 몰라서 그냥 불편했다.
(+주연 와 송주가 햄버거를 만들 때 장난치면서 했던 대사들, 전체적으로 많은 욕, 오토바이 교통사고, 중3의 운전 등)
영화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고, 시나리오가 좋아야 한다는 이유 또한 알게 되는 경험이 되었다.
파노라마_테디 에디터
-
- 아주 매력적이지만 다소 조화롭진 못한 영화
1. 영화 <외계+인>의 좋았던 점
1) 대한민국스러운 판타지 SF영화
- 도술이라는 소재가 잘 들어난 아주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다양한 도술에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고, 그동안 상상했던 모습들을 스크린을 통해 보니 굉장히 재밌게도 느껴졌습니다. 특히나 염정아, 조우진 배우님의 후반부 도술 액션은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면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 다양한 배우님들의 케미스트리
- 김태리, 류준열, 김우빈 배우님 등 한국 앞으로 영화계를 끌고 가실 젊은신 배우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충분히 주목해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순히 모이기만 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고 각 배우님들의 연기력이 아주 상당했습니다. 오글거리고 유치할 수 있는 상황이나 대사를 배우님들의 연기력이 많이 커버합니다. 배우님들의 조합 역시 말할 것이 없었고요. 이런 와중에 다소 혼자 서사를 이끌어가시는 김우빈 배우님의 연기가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3) 화려한 액션과 CG
- 그동안 한국영화에선 보지 못 했던 독특하고 참신한 액션이 펼쳐집니다. 고려시대에 권총을 쏘며 외계인과 대결하는 모습은 그 어느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매력을 자랑하죠. 최동훈 감독님이 그동안 상상하시던 모든 영화적 상상력이 한 곳에 모인 기분이 들어 영화 감상 내내 소재와 연출의 참신함에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CG역시 조금 티나는 부분이 더러 있기는 했지만 요즘은 마블 영화에서도 CG가 티가 난다고 느낀 적도 많이 있어서 <외계+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 영화 <외계+인>의 아쉬웠던 점
1) 다소 독특한 서사 진행 구조
-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크게 두가지로 (1) 과거 _ 고려시대 (2) 현재 _ 2022년 입니다. 다만 영화의 서사 진행 구조는 현재 2022년에 일어난 사건 이후 과거 고려시대의 이야기로 흘러가죠. 서사의 진행 구조가 다소 복잡하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타임 워프에 익숙한 관객들도 많지만 그게 아닌 사람도 정말 많습니다. 텐트폴 영화로 무려 700만 관객이 손익분기점으로 잡은 영화치고는 서사진행 구조가 복잡하다는 점은 전 연령대의 많은 관객들이 찾기는 다소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재미 여부를 떠나서요.
2) 많은 캐릭터 + 많은 소재 = 많은 관객?
- 포스터만 봐도 알겠지만 등장하는 캐릭터가 정말 많습다. 거기에 소재 역시 '판타지'라는 장르 아래 정말 많은 장르적 요소들이 섞여 있습니다. 다만 이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진 않습니다. 이런 많은 요소 덕에 영화 타임라인이 142분이지만, 의도된 142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캐릭터의 특징은 살리고 각 장르의 특징도 살리다 보니 142분이 된 것 같은 기분이들어요. 142분이 마냥 즐겁진 않습니다.
3) 좋은 말론 '키치'한데..
- 영화의 분위기가 의도적으로 가볍고 키치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지만 이번에 나온 영화 <토르 : 러브앤 썬더>를 보는 기분과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무거워질법한 모든 순간에 시종일관 가벼운 대사와 BGM이 나오니 참 힘이 빠집니다. 영화 내내 이 가벼움이 유쾌함으로만 이어지진 분명 않습니다. 완벽하게 웃기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영화에 빠져들게 하지도 못했어요.
3. <외계+인> TMI 알아보기1) '썬더'의 정체는?!
- 이번 영화에서 귀여움을 담당한(?) 가드 김우빈의 도우미 '썬더'는 배우 김대명 님이 나레이션을 하셨습니다. 여오하 내내 AI스러운 목소리를 잘 표현하셨으며, 매력적인 감초역할을 해주셨죠.2) 김해숙 배우님과 최동훈 감독님의 인연..
이번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 김해숙 배우님은 2012년 최동훈 감독님이 연출하신 <도둑들>에서 부터 지금까지 쭉 감독님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시고 있으십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나름 반전 있는 역할을 또 맡으셨죠! (못 듣는 게 아니었죠!)
총평을 짧게 하자면 썩 만족스럽진 않으나 진심으로 이 영화를 응원합니다. 언제든 새로운 시도는 처음에는 빛을 발휘하기 쉽지 않은 법이죠. 익숙하지 않을 뿐 이번 영화는 분명 특유의 매력이 분명 존재합니다. 2부가 나온다면 이 대서사가 어떻게 끝나는지 반드시 극장에서 확인할 예정이에요 :)
-
- [JEONJU IFF 데일리] 경계를 넘어, 지경을 넓히는
DIRECTOR. 이자벨라 브루네커
CAST. 야나 맥키논, 빌 케이플
SYNOPSIS. 늦여름.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 이가가 이상적인 행복을 꿈꾸며 공상에 잠기는 시기다. 그녀는 차를 몰고 스코틀랜드로 가기로 결심한다. 여행 중 이선이라는 서른 살의 영국 남자와 동행하게 되면서 이가는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목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새로운 인연을 맺게 만드는 로드무비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을까. 2010년대에 <비포 선라이즈>를 보며 나는 몇 번이나 생각했다. 얘들아 기차에서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하면 위험해. 그리고 잔디밭에 누우면 쯔쯔가무시의 위험이 있단다… 하지만 애초에 내겐 그런 로맨스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차에서는 내가 예매한 자리에만 얌전히 앉아있을 것이며, 옆자리 사람들이 시끄러우면 조용히 이어폰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켜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이 차가운 시대에, 전주국제영화제에 도착한 자동차 로드무비 한 편. 영화 <슈거랜드>의 스토리라인은 자못 단순하다. 한 여자가 휴게소에 잠시 멈춰섰다가, 불을 빌리며 히치하이킹을 청하는 남자를 만난다. 내키지 않았지만 고민 끝에 여자는 남자를 태우고, 두 사람은 일련의 자잘한 사건들을 겪고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모르는 곳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이야기는 수많은 이야기의 전형이고, 이 영화 속 사건들은 진폭이 크지 않음에도, <슈거랜드>는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물론 <비포 선라이즈>를 보며 쯔쯔가무시를 우려하던 나의 마음은 <슈거랜드>를 보면서도 드러난다. 라이터 빌려주지 마! 모르는 남자 차에 태우지 마! 내릴 때 차키를 왜 두고 내리는 거야, 그 사람이 차 끌고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러나 다행히 여정은 계속된다. <비포 선라이즈>의 시대를 지나버린 관객의 우려를 이해한 듯, 주인공 두 사람도 조금씩 쭈뼛거리고 망설인다. 단지 그 작은 망설임을 조금씩 넘기고, 서로의 친절함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심심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알아 가게 된다.
경계하고 벽을 세우는 게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잊혔던 사실이, 그렇게 새삼스럽게 드러난다. 관계는 결국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쓰면서, 장벽이 낮아지면서 시작하는 거란 것. 그러다 보면 결국 상대를 버려두고 갈 수 없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의아해 한다. 친절이 사라지고, 그 냉기가 나의 숨통을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답답한 세상.
그 시대는 에단(이라 불린 남성)의 입에서 “탈낭만주의” 시대라고 정리된다. 그 시대에도 여전히 진정한 사랑을 믿고 싶어하는 이가(Iga), 그리고 현실은 다르다고 말하는 에단(Ethan) 두 사람 모두 사실 본질은 비슷하다. 친절의 가치를 아직 믿고 싶어하는 서로를 알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서로를 “미쳤다”고 말하면서. 이런 시대에 사랑의 가치를 믿는다는 건 거의 종교적인 측면이 있다. 그런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세속적인 풍경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작은 음악 소리를 듣고 “좋아하는 노래”라며 벌떡 일어나 웃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같이 일어나 같은 동작으로 춤 출 때, 우스워질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때 그 음악이 선명해지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그런 용기가 없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용기, 서로의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망설임이 뒤섞이면서 그 안에서 무엇이 선명해지는지를 천천히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생은 우리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그때 설렘만큼 선명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간 내용이 커지고 많아질수록, 유리창처럼 깨져 서로를 찌르는 파편들도 커질 수 있다. 어차피 모든 성향과 성격은 양면적으로 평가될 수 있기에.
사랑이라고 부르기에 아직 어린 감정이지만 힘이 세다. 잠시 내 경계를 잊게 하고, 그 모든 경계를 넘어서 다른 세계로 데려가 준다. 사랑은 그래서 위험하다. 둘이 넘어선 경계는 단순히 행정구역의 경계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에서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두 사람 모두 각자 뛰어넘고 싶은 삶의 경계와 고민을 가득 안고 있었다. 삶은 그런 곳이니까.
이 영화 속 날은 늘 흐리고 안개가 끼어 있다. 채도가 낮은 16mm 필름의 색감 안에서, 물기 어린 시각으로 우리는 두 사람의 세상을 본다. 삶은 쩌면 그토록 모호한, 미지의 세계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동차 한 대처럼 유유히 차곡차곡 나아간다. 가끔은 유리창도 깨지고, 가끔은 대화도 나누면서. 가본 적 없는 곳에도 거침없이 달려가면서.
그렇게 뛰어들었다가 돌아 나오면, 세상의 경계선은 한층 넓어져 있다. 그리고 나면 비로소, 이가의 앞에 해가 뜬다. 지난 시간을 딛고, 지금까지의 시간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힘. 푸르스름한 질감 너머 그 힘의 빛이 전해지는 영화였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2025.04.29-05.09) 상영일정]
2025.05.02 11:00 CGV전주고사 7관 (상영코드 209)
2025.05.05 14:30 CGV전주고사 7관 (상영코드 527)
2025.05.08 21:30 CGV전주고사 7관 (상영코드 837)
-
- 나를 죽이는 나의 사랑, <피터 본 칸트>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터 본 칸트 Peter von Kant, 2022
프랑스, 드라마, 85분
감독: 프랑수아 오종
나를 죽이는 나의 사랑, <피터 본 칸트>
사랑은 난감하다. 입으로 소리 내어 발음하면 달콤한데,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땐 한없이 어렵다. 솔직한 만큼 씁쓸하다. 좋으면서도 아프고, 모르는 척해도 다 알 것만 같고, 낯설다가도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해진다. 영원한 사랑, 불멸의 사랑, 조건 없는 사랑, 헌신적인 사랑, 이기적인 사랑... 사람들은 틈만 나면 사랑에 조건을 붙인다. 그리고 누구나 사랑을 원한다. 사랑은 그 힘을 받아 스스로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변화해 인간의 외면은 물론 내면까지 바꿔 놓는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어 동시에 한계 없이 존재하는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이란 사실이다. 사랑은 개인의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 권력을 과시하고 무한한 힘을 발휘한다. 특별한 조건? 필요 없다, 나만 좋으면 된다. 그다음 당신도 좋다면, 난감해도 사랑이란 걸 할 수 있다.
결과는 각자 감당하면 되는 일이고.
<피터 본 칸트>엔 사랑이 쏟아진다. 말로, 눈으로, 손짓과 발짓을 포함한 몸짓은 물론이고 인물들의 침묵마저도 전부 사랑을 얘기한다. 무엇이 사랑이고, 사랑이 아닌지 구분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스토리가 품은 반전도 인물이 숨긴 배신도 아니다. 천재 감독, 피터의 파격적인 짝사랑과 절절한 외사랑, 그리고 모두를 죽이고 다시 피어날 끝사랑, 그야말로 '사랑'이다.
아주 사적인 피터만의 사랑, 영화 제목이 '피터 본 칸트'인 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얘기다.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다음)
쓰레기를 반복적으로 찍어내기 바쁜 할리우드(?)와는 다른 차원의 예술 작품을 만든다고 자부하는 영화감독 피터는 거대한 창이 세 개나 달린 저택에서 어시스턴트 칼을 두고 새 작품을 위해 대본을 집필 중이다. 하지만 그는 대본 집필에 열성적이지 않다. 자신의 성공을 질투해 끝나버린 사랑, 즉 이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층 예민해져 뭐든 듣고 보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칼에게 더 날카롭고 무례하게 이래라저래라 한다. 칼은 자신의 고용주를 남몰래 사랑한다. 피터를 향해 있는 칼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피터에겐 그냥 눈알 따위로 보이는 게 슬플 뿐이다. 해서 칼은 매일 무표정한 얼굴로 피터의 손과 발이 되어 집 안을 누빈다.
한때 자신의 뮤즈였던 시도니가 찾아오자 피터는 대본에 녹여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사랑에 대한 본인의 철학과 상념을 열정적으로 토해낸다.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술과 담배, 마약으로 본격적인 이야기 장을 만들고 각자의 사랑을 주고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너무나 개인적인 견해이자, 누군가의 생각으로 모두의 가슴에 와닿는 명언이 아니다. 딱 내뱉는 순간 흩어지는 물거품이다. 영양가 있고 포만감도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이 내쉬는 담배 연기만큼이나 가볍고 허하다. 마치 헛배가 부른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언제나 나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옳으며 진리라고 강조한다.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다음)
자신감 넘치는 시도니는 자부심까지 넘치는 피터에게 무명 배우 아미르를 소개한다. 방금 전까지 사랑을 험담했던 피터는 아미르를 보자 사랑에 빠진다. 이때의 카메라 동선이 흥미롭다. 피터와 아미르가 처음 만나 악수를 하는 장면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데, 그 찰나의 순간 피터의 눈이 반짝인다. <피터 본 칸트>는 아미르와 피터가 사랑에 빠지는 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선도 매우 간결하고, 무척 간단하다. 의미를 두지 않는 컷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래 음미하며 볼 컷도 아닌 것이다. 피터와 아미르의 사랑이 모두가 예상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미리 보여준 정도랄까.
피터는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 자존심, 자부심까지 전부 이용해 아미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감독과 연인의 위치를 능숙하게 바꿔가며 적재적소에 아미르에게 꿈과 사랑을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나의 차기작은 아름다운 너를 위한 영화이며 우린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정복도 할 수 있기에 반드시 함께 해야한다고 말한다. 무명 배우 아미르는 피터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아미르에게 요구되는 건 사랑뿐이고, 완벽하게도 그는 피터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었다. 그에게 사랑은 꿈을 위한 조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혼했고 아내가 호주에 살지만, 아직 세상에 자기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그에겐 가정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을뿐더러 최우선의 고민거리도 될 수 없었다. 반면 피터에게 아미르의 사랑은 삶의 연료로 필요했다. 전부와 일부의 줄다리기, 피터와 아미르의 사랑은 처음부터 다른 선상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길 위를 달린다.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다음)
먼저 식어버린 건 아미르다. 호텔 생활을 하는 아미르를 자기 집에 살게 한 피터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을이 된다. 아미르는 별다른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당연하게 갑이 됐다. 피터가 먼저 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미르는 피터의 헌신적인 사랑과 자신의 쌓여가는 업적으로 인해 소위 말해 버릇없는 애가 됐다. 자신이 모든 걸 조정할 수 있고, 뭐든 해도 괜찮다고 믿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귀중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된 것이다. 그와 같이 속물적이고 세속적이지만, 그보다 더한 것을 바라는 피터는 애원과 원망을 섞어가며 다시 아미르의 마음을 잡으려 한다.
아내를 만나러 가겠다는 아미르와 추잡스러운 몸싸움까지 벌인 피터는 자기 돈까지 건네며 흔한 연인의 사랑싸움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다시 그에게 이별, 아니 버림 이후의 시간이 온 것이다. 피터의 성공을 질투해 헤어지게 된 전 연인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피터는 늘 그런 유형의 사랑을 해 온 남자다.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상대의 일부만 갖는 그런 사랑. 그것이 자신의 예술을 돋보이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결국 피터는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집에 놀러 온 딸과 엄마 그리고 친구 시도니에게 분풀이하기 시작한다. 딸의 사랑을 콧방귀 뀌며 비웃고, 돈을 빨아먹는 기생충, 노력이란 걸 해본 적 없는 흉측한 늙다리 창녀, 할리우드 쓰레기나 찍는 배우라 욕하며 마지막까지 아미르의 전화를 기다리다 쓰러진다.
영화 <피터 본 칸트> (스틸컷, 다음)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이 된 채 차라리 죽고 싶다며 오열하는 피터를 진정시키는 건 그의 엄마다.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아들을 가엽게 여기는 그녀의 손길에 피터는 아이처럼 안겨 운다. 사랑은 늘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엄마의 조언에 자신이 그동안 누리고 취했던 사랑이 잘못됐음을 시인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조건 없는 사랑이라면서 소유를 위한 사랑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까지 한다. 이후 그토록 기다렸던 아미르의 전화를, 감정이 배제된 냉철한 전 연인으로서 받는다. 꼭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엔 배움이 없다. 배움을 가장한 태움이 있을 뿐이다. 피터는 처음부터 자기 사랑에 대해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불신도 의심도 필요치 않았다. 그에게 사랑이란 자기 작품과 같고, 가장 열정적이며 아름다운 불꽃이다. 언제든 발화되어 주변의 것을 다 태우고 끝나는 삶이다. 따라서 피터에게 필요한 건 다른 불꽃이다. 그는 조건 없는 사랑을 원하는 척, 그 사랑을 줄 수 있는 척 칼에게 향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본 칼에게 진짜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너에 대해 말해달라고 속삭인다. 맹목적인 숭배를 받기 위해 아미르에게, 그 전의 아미르와 같았던 이들에게 썼던 방식을 또 답습하는 것이다.
칼은 대답으로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그리곤 지금까지 살았고 앞으로도 평생 살 것만 같았던 피터의 집에서 제 발로 떠난다. 미친 고용주를 견디지 못한 걸까? 드디어 한계가 온 걸까? 아니다, 칼이 원한 사랑이 아니었을 뿐이다. 피터의 엄마가 말한 사랑처럼, 피터의 딸이 처음 남자 친구에게 느끼는 사랑처럼, 본인만이 설명할 수 있기에 가장 솔직하게 원할 수 있는 '나'의 사랑과 다르기 때문이다.
감히 예상하건대, 칼이 원한 사랑엔 분명 '동등'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 <피터 본 칸트>(스틸컷, 다음)
텅 빈 집 안에서 홀로 아미르의 테스트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피터, 그는 자신을 죽이는 사랑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다. 몇 번이고 스스로를 죽이더라도, 자기가 바라는 아름다운 사랑을 또 꿈꿀 것이 분명하다.
그게 피터이자, <피터 본 칸트>다.
관객은 칼의 시선으로 피터를 열심히 관찰하다 나중에서야 제삼자로 그에게서 완전히 멀어진다. 아미르와 시도니에게서도 마찬가지다. 가까워졌다가, 찰나의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리를 둔다. 지독한 일인칭 이야기는 사실 수많은 예시 중 하나에 불과하고, 칼의 이탈에 명백한 이유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상 피터의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피터, 아미르, 시도니는 사랑에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야만 삶이 진행되는 인물들이다.)
"모든 이가 사랑하는 것을 죽이네."
시도니의 노래 중 한 구절이며, <피터 본 칸트> 속 세 사람의 사랑 해석본이다.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보자면,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은 반드시 사랑하는 것을 죽이면서 사랑을 한다.' 정도가 되겠다
이야기를 이끄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빨려들 수밖에 없는 음악이 본 영화의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시도니를 보여주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피터에게 전화하라고 시킨 시도니의 모습은 <피터 본 칸트>가 유일하게 가져간 긴장감이자, 뼈 있는 반전이며 풍자의 대상을 끝까지, 정확하게 겨눈 한 방이다.
p.s <피터 본 칸트>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1972)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
-
- 밝혀지는 라이온 킹의 대서사 / 무파사: 라이온 킹 / 라이온 킹의 프리퀄 / 형제에서 적으로 / 감춰진 스카의 이야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무파사: 라이온 킹"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따로 없네요~
-
- 영화 <걸어도 걸어도> 재개봉 메인 예고편
료타’와 가족들은 십여 년 전 바다에 빠진 소년을 구하려다 세상을 떠난 장남 ‘준페이’의 제사를 위해 매 여름 고향 집에 모인다 ‘준페이’가 목숨을 구해준 ‘요시오’ 역시 기일마다 그들의 집을 찾아오고 그런 ‘요시오’를 놓아주자는 ‘료타’의 말과 함께 가족들은 묻어뒀던 속마음을 꺼내 놓는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재개봉: 2025년 5월 21일 -등급: 전체관람가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공동배급: ㈜하이스트레인저 #고레에다히로카즈 #걸어도걸어도 #5월영화 #영화추천
-
- 영화 <척살소설가> 메인 예고편
6년 전 실종된 딸을 찾고 있는 관닝.
어느 날 그의 앞에 묘령의 여인 투링이 나타나
소설의 작가인 루쿵원을 죽이면 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거래를 제안한다.
이에 관닝은 그녀의 위험한 제안을 수락하고 루쿵원을 죽이기 위해 접근한다.
한편 루쿵원은 자신의 팬이라 밝힌 관닝을 그의 소설에 등장시키고
관닝은 곧 소설이 현실을 바꿀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현실을 바꿔 딸을 구할 것인가? 소설을 바꿔 딸을 구할 것인가?
소설과 현실이 이어진 평행이론의 세계관!
펜 끝에서 창조되는 새로운 세계의 문이 지금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