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5-02 20:07:42
썬더볼츠* | 버려진 부품들이 이뤄낸 MCU의 시네마
<썬더볼츠*>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레드룸이 파괴된 후 CIA 국장 '발렌티나'(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 휘하 비밀 요원이 된 '옐레나'(플로렌스 퓨). 반복되는 임무와 외로움에 지친 그녀는 러시아 슈퍼 솔져이자 양부, '알렉세이/레드 가디언'(데이비드 하버)을 찾아간다.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뒤 옐레나는 결심한다. 언니 나타샤처럼 양지에서 활동하기로. 발렌티나도 최근 중단된 프로젝트의 증거를 훔치려는 '고스트'(해나 존케이먼)를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조건으 그녀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지하 저장고에 잠입한 옐레나는 예상 못 한 상황을 마주한다. 본인과 고스트뿐만 아니라 '존 워커'(와이엇 러셀), '태스크마스터'(올가 쿠릴렌코)가 서로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모인 것. 더 나아가 그녀는 저장고에 남은 자료를 통해 발렌티나가 어벤져스보다 강력한 영웅 '밥/센트리'(루이스 풀먼)를 만들어 냈음을 깨닫는다. 이에 그녀는 다른 이들과 협력해 저장고를 탈출한 뒤 발렌티나의 음모를 세상에 알리려 한다. 하원 의원이 된 윈터 솔져 '버키'(세바스찬 스탠)의 도움을 받아서.
MCU의 꼬리표
역대 영화 프랜차이즈 중 흥행 수익 1위를 기록하며 영화계의 한 획을 그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 하지만 MCU에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늘 따라붙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빌리자면 MCU는 액션과 유머처럼 즉각적으로 휘발되는 쾌감을 먼저 추구하는 '테마파크'이지, 한 인간의 삶과 감정적 경험을 공유하거나 성찰하는 '시네마'가 아니라는 것.
물론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로는 MCU도 비평적으로 인정받은 감독들의 권한을 최대한 보장하며 꼬리표를 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효과뿐이었다.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의 <이터널스>도,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타이카 와이티티의 <토르: 러브 앤 썬더>도, 슈퍼히어로 영화의 거장 샘 레이미의 <닥터 스트레인지와 대혼돈의 멀티버스>도 산만하거나, 유치하거나, 지루하다는 이유로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숱한 실패 끝에 MCU는 마침내 '테마파크' 밖으로 한 발짝 내디딘 듯하다. MCU에서 히어로가 될 수 없었던 낙오자들을 모은 팀업 무비, <썬더볼츠*> 덕분이다. 잘해야 MCU 판 <수어사이드 스쿼드> 혹은 지구 버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일 거로 전망한 <썬더볼츠*>는 현대인의 내면을 관통하는 섬세하고 야심 찬 서사를 선보이며 불완전하게나마 MCU의 '시네마'를 선보이는 데 성공했다.
옐레나의 그림자
<썬더볼츠*>는 첫 장면부터 이전 MCU 작품과는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야심을 드러낸다. 기존 마블 스튜디오 로고가 그림자로 물드는 연출이 대표적이다. 이는 <수어사이드 스쿼드>처럼 '비인가 프로젝트를 숨기려는 첩보 기관이 빌런들을 소집하고, 그들이 하나의 팀을 이룬 뒤 첩보 기관과 감당 못 할 적에 함께 대항한다'라는 전개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에 가깝다.
이어지는 옐레나의 내레이션은 그 선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녀는 쿠알라룸푸르의 한 고층 빌딩 옥상에서 낙하하여 실험실에 잠입한 뒤 증거를 지우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때 그녀는 언니 '나타샤'(스칼렛 요한슨)를 잃은 후의 외로움, 목적 없이 반복되는 삶에 마모되면서 느껴지는 공허함에 대해 내레이션으로 토로한다. 폭탄을 설치한 뒤 실험실에 혼자 남은 기니피그를 챙겨서 나오는 모습도 그녀의 고독함을 방증한다.
액션 시퀀스의 연출 또한 그녀의 내레이션을 시각적으로 치환하여 직관적으로 제시한다. 카메라는 그녀가 얼마나 멋지게 요원들을 해치우면서 실험실에 잠입하는지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긴 복도에서 그녀가 싸우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옐레나가 아니라 옐레나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모습에 집중한다. 그녀가 임무를 수행하고, 사람을 죽이고,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그림자가 되어가는 그녀의 상황을 각인시킨다.
이처럼 옐레나의 시점에서 진행된 오프닝 시퀀스는 <썬더볼츠*>의 의도를 명확히 규정한다. 빌런이나 안티히어로가 모이는 이벤트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옐레나처럼 외롭고 공허한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다. 이는 인지도가 가장 높은 버키 대신 옐레나를 화자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발렌티나에게서 받은 임무 외에는 목적이 없고, 가족도 없는 그녀야말로 영화의 메시지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니까.
버려진 부품들의 공허함
공허함과 외로움에 빠진 주인공은 옐레나뿐만이 아니다. 다른 썬더볼츠 멤버들도 그녀의 같은 상황에 부닥쳐 있다. 캡틴 아메리카 방패를 빼앗긴 이후 아내와 아이와 별거 중인 존 워커, 정보 당국의 체포를 피해 도망 다니기 바쁜 고스트, 러시아가 만든 슈퍼 솔져이지만 리무진 택시 기사로 일하며 보드카에 절어 지내는 레드 가디언까지. 그나마 미 하원 의원이 된 버키가 예외지만, 그의 정신적 고통도 이미 전작에서 다뤄진 바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공허함에 빠진 이유다. 바로 썬더볼츠 멤버들이 낙오자로 낙인찍히고, 버려진 부품이 되어 버렸다는 것. 그들은 주인공들의 서사에 필요할 때 사용되고 버려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MCU라는 세계관에서는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이들. 국가에 의해서, 기관에 의해서, 기업에 의해서. 필요할 때는 부품으로 활용됐지만 가치가 다하자 폐기 처분된 이들이라는 것.
밥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으로는 썬더볼츠가 마주할 수 있는 최악의 미래에 가깝다. 어려서부터 가정 폭력에 시달린 그는 목적 없이 살면서 삶의 의지도, 목적도, 희망도 잃었다. 우울증과 이중인격을 비롯한 여러 정신 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발렌티나의 실험은 돌파구였다. 어벤져스를 모두 합친 것보다 강력한 존재 '센트리'로 거듭나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되찾을 기회였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다시 한번 짓밟힌다. 본인이 창조한 영웅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려 하자 발렌티나는 그를 폐기해 버린다. 문제는 실험 과정에서 밥의 이중인격이 센트리보다 강력한 존재, '보이드'로 거듭났다는 것. 또 한 번 버려질 상황에 부닥치자 3차원 그림자처럼 생긴 보이드는 폭주하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절망과 공허함 속으로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그렇게 맨해튼 전체가 보이드가 만들어낸 그림자에 점령된다.
외계인보다 무서운 그림자
흥미롭게도 <썬더볼츠*>는 현대적 맥락을 덧붙여 주인공들의 공허함을 집단적 경험으로 확장한다. 그들의 역경은 단순히 허구의 세계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인의 현실적인 일상과 다르지 않기 때문. 무한한 성장과 생산이 목표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에게 끊임없는 경쟁을 요구한다. 개인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아야 하고, 시스템의 부품으로써 활용되다가 가치가 떨어지면 버려진다.
이처럼 무한한 생산성과 성장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성과 사회'라는 형태로 구현될 때, 개인은 성과를 내 위해 스스로를 착취하도록 내적인 압박을 느낀다. 그 결과 사람들은 번아웃에 빠지고, 우울증에 걸리고, 공허해지면서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안으로는 곪아 버린다. 이에 더해 사회가 개개인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그들로부터 공동체적 맥락을 제거해 버리기에 한 번 공허해진 현대인은 쉽사리 회복하지 못한다.
이는 정확히 옐레나가 겪은 일이다. 존 워커, 레드 가디언, 고스트, 그리고 밥이 경험하는 일상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그렇기에 보이드가 맨해튼을 집어삼키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어벤져스>에서 외계인이 뉴욕을 침공했을 때보다 더 섬뜩하다. 맨해튼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임을 고려하면, <썬더볼츠*>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공허함이 공동체 차원의 경험일 때 생기는 일을 경고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음이 병들고 파편화된 개인들의 폭주는 이미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을 비롯해 조현병이나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의 범죄 소식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즉, 센트리/보이드는 만화처럼 묘사됐을 뿐, 이미 실존하는 현상을 보여주는 존재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썬더볼츠*>는 테마파크에서 벗어나 시네마로 나아간다. 그림자에 삼켜진 맨해튼은 옐레나와 밥처럼 속으로 곪은 현대인들의 공허함이 우리 사회를 점령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만국의 현대인이여, 단결하라!
그렇기에 썬더볼츠가 맨해튼과 시민들을 보이드로부터 구하는 방법도 일반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와는 다르다. <썬더볼츠*>의 클라이맥스가 주인공들이 각자의 초능력을 발휘해 빌런을 무찌르는 액션 시퀀스로 구성되지 않은 이유다. 그들은 보이드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보이드에게 제압당한 밥이 그를 집어삼킨 공허함으로부터 통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그 과정에서 각자의 공허함과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극복한다.
즉, 썬더볼츠는 타인과 협력하고 연대함으로써 각자의 공허함을 이겨내고, 더 나아가 썬더볼츠라는 새로운 가족과 삶의 의미도 발견한다. MCU에서 부품으로 사용되고 버려진 이들이 하나로 뭉쳤을 때 새로운 목적과 서사가 만들어진다는 것. 이는 현대 사회에서 과소평가되는 공동체와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전개이기에 파편화되고 부품화된 현대인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절 작지 않다.
더 나아가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클라이맥스는 팀의 이름이 썬더볼츠로 명명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썬더볼츠는 레드 가디언이 농담 삼아 붙인 이름이다. 옐레나가 데려온 멤버들을 본 뒤 그녀가 어릴 때 속했던 축구팀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 하지만 옐레나에게 썬더볼츠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알렉세이, 나타샤와 함께 지냈기에 혼자가 아니었고, 삶의 의미도 있었던 어린 시절을 일깨워 주는 이름이기 때문.
처음에는 레드 가디언의 말을 비웃던 다른 멤버들. 하지만 그들도 하나둘 자신들을 썬더볼츠라 지칭하기 시작한다. 옐레나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에 썬더볼츠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발렌티나에 의해 '뉴 어벤져스'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지만, 여전히 썬더볼츠라는 명칭이 그들의 정체성을 더 잘 보여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MCU의 부품
다만 <썬더볼츠*>를 특별하게 만드는 메시지와 스토리텔링은 후반부로 갈수록 빛이 바랜다. MCU의 일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조각으로서 기능하는 과정에서 완성도에 금이 가기 때문. 일례로 많은 캐릭터 중 일부는 허망하게 소모된다. 극초반에 퇴장하는 태스크마스터가 대표적이다. 전작들에서 닉 퓨리를 대체할 흑막처럼 묘사됐던 발렌티나가 갈수록 개그 캐릭터로 전락하는 묘사도 일관성이 부족하기에 실망스럽다.
액션 연출도 시간이 지날수록 임팩트가 약해진다. 지하 저장고에서 처음 조우한 썬더볼츠 멤버들끼리 각자의 능력과 무기를 활용해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이나 오토바이를 탄 버키의 액션 시퀀스는 오랜만에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센트리 대 썬더볼츠의 액션씬도 부활한 슈퍼맨과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이 맞부딪히는 <저스티스 리그>의 장면을 오마주 하면서 센트리의 압도적인 능력을 충분히 각인시킨다.
그런데 후반부에서는 액션의 쾌감이 약해진다. 밥의 내면에서 보이드가 만든 트라우마의 미로에서 탈출하고, 밥을 설득하는 식으로 클라이맥스가 구성되면서 액션씬의 비중이 덩달아 낮아진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각 캐릭터의 서사, 특히 옐레나와 밥의 감정선을 잘 따라간다면 뜻깊은 방점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원더우먼 1984>의 클라이맥스와 비슷한 결의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MCU라서 인상적인 장면도 많다. 샘 윌슨이 재건한 어벤져스와 뉴 어벤져스 간의 갈등, 판타스틱 4와의 만남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은 <어벤져스: 둠스데이>를 향한 기대감을 키운다. 버키와 고스트를 제외한 썬더볼츠가 멤버 전원이 페이즈 4 출신이라는 점은 비로소 MCU의 새출발을 선언하는 듯하다. 단지 <썬더볼츠*>가 보여준 예상외의 스토리텔링에 담긴 함의가 다소 가려지는 것 같아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Expected Expectations 기대 이상
마블답지 않은 시작과 마블다운 끝이 만나 이뤄낸 MCU의 시네마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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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lp or hurt
핑계 없는 무덤은 없고, 나의 모든 행동에는 늘 이유가 있다.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낙인찍듯 단편적으로 결론 내려질 때 억울하다. 그러나 동시에 인터넷에 올라오는, 짧은 영상이나 몇 줄 글만으로 상대를 쉽게 간파했다 생각하며 낙인찍듯 손쉽게 말한다. 사람은 정말 왜 이럴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내일 되면 뉴스 속 누군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나는 또 왜 이럴까?
영화 <더 웨일>의 주인공 찰리는 사랑스럽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다.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에게 주어지는 정보를 종합할 때, 그가 과거에 내린 선택이나 행동들이 남긴 상처를 생각하면 그렇다.
그러나 건강하지 않은 몸과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면서도 괜찮다, 미안하다, 말을 달고 있는 그의 측은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궁금해진다. 무엇이 그를 저렇게 몰았을까?
#hurt: 상처받은 마음
극이 진행되면서 조각조각 이어지는 정보들을 통해, 관객은 찰리의 삶을 스친 일들을 가늠해볼 수 있다. 그가 남긴 상처와 그에게 남은 상처. 너무 사랑한 것들이 소실된 자리에 남은 커다란 상처들. 그 자리는 어쩌면 누군가가 쓰던, 지금은 텅 비어버린 방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찰리로서는 들어갈 수도 없는 방.
찰리는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여기까지 왔다. ‘저렇게 먹으면 없던 병도 생기겠는데…’ 싶은 음식을 욱욱거리며 밀어 넣은 끝에 그가 토해내는 것은 눈물이다. 눈물을 토하기 위해 음식을 토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눈물도 토해내기 어려운 마음이란 무엇일까.
그 안에서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했던 찰리는 이제 잔뜩 지친 고래처럼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그 자리에서 그가 꺼낸 카드는 뜻밖에도 딸이다. 상처를 주었던 존재이자, 이제 상처를 되돌려 받으면서도 바라보는 존재.
#help: 도움의 손길
이 극에는 찰리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친구 리즈는 찰리의 필요를 살피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함께 있다. 찰리의 서사를 공유하고 있고, 찰리에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는다. 찰리의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 뻔한 음식도 사다 준다. 이대로는 찰리의 죽음이 가까워져 온다는 걸 감지하지만, 찰리의 방향성을 바꾸려 하진 않는다. 리즈는 인간이 결코 서로를 구원할 수 없다고 믿으니까.
반면 토마스는 자신이 보기에 찰리에게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 즉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따금 찰리를 찾아온다. 찰리의 건강 상태에 대해 알고 난 후로 오히려 찰리에게 더욱 접근하며, 찰리의 방향성을 바꾸기 위해 애쓴다. 그는 자신이 내미는 손길이 선의의 도움, 도움닫기를 할 수 있도록 내미는 발판 같은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본 도움이 있다면, 메리가 앨런에게 건넸다는 “May I help you?”라는 말에서. 어쩌면 종교인들이 그토록 목 놓아 외치는 복음은 그 안에 있는 것 같다. 메리에게는 사랑이 있다. 오랜 고통과 절연의 시간 끝에서 상대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 자리에 생명이 있다. 이제는 말해도 소용없는 추억들을 굳이 더듬거리면서 듣는 숨소리. 상처와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면서도 잠깐 내보이는 그 속살 같은 마음.
그 마음을 찰리도 느꼈는지 모른다. 토마스가 엘리에 대해 말하면서 “날 도우려고 한 건지 아니면 상처 주려고 한 건지help me or hurt me” 모르겠다고 할 때, 그게 도움이었다고 판단한 걸 보면. 결국 상처를 남겼지만 사랑한 대상에게서 미진하나마 포용을 보고, 그는 날아오르는 고래가 된다.
#love, 어쩌면 그것이 사랑
찰리뿐 아니라 이 극 속의 인물들은 제각각의 생채기가 나 있기에,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상처 난 마음에서 배어 나오는 말들은 절반의 진실만을 품고 있다. 사람은 사람의 무게를 온전히 구원할 수 없다는 리즈의 말도 맞지만, 동시에 사람이 사람을 무조건 외면할 수 없다는 찰리의 말도 맞다.
그 안에서 help와 hurt는 어쩌면 한 끗 차이다. 종교적인 행위의 일탈에 대한 토마스의 이중적인 태도에서 help라는 말에 감추어져 있던 hurt를 보아도, help로도 hurt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는 엘리의 행동을 보아도, hurt의 마음을 품고 있다 생각했지만 실은 괴로워하면서도 help가 우러나왔던 메리의 마음을 보더라도. help와 hurt는 모순적으로 뒤죽박죽이다.
인간과 인간이 솔직한 마음을 부딪는 일은 너무 어렵지만, 어쩌면 그것이 사랑인지 모른다. 솔직하게 마음을 여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의 서사에 귀를 기울이며 포용하는 것. 지저분해진 찰리의 방에 붙어 있는 포스터는 하필 <템페스트>다. 복수 대신 포용과 용서로 화해라는 결말을 이루는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서사를 품고 있다. 찰리가 토마스에게 했던 말처럼, 누구에게나 겉보기로 알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어쩌면 ‘전형적인’ 사람이란 없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서사는 계시처럼 받아들이면서 타인의 서사를 견디지 못한다면 그들의 help는 hurt밖에 될 수 없으며, 사랑은 전해지지 않고, 구원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솔직할 것. 마음을 열 것. 그것이 모든 처음이다. 그 작은 단추를 풀지 못하면 온 생에 상처가 남고 만다. 고래를 향한 “가엾은 집념”으로 가득한 <모비 딕>의 늙은 선장처럼. 동시에 이는 모든 끝이기도 하다. 남은 상처를 다시 헤아리게 만드는 힘 또한 여기에서 비롯되니까.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무수하게 변용되고 변주되며 닳고 해진 문장. 우리가 모두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이 문장을, 빛나는 고래 같은 찰리의 순간들을 통해 다시 헤아려 본다. 솔직하게, 열린 마음으로.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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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영화 속 역대급 악역 캐릭터 TOP 5!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범죄도시 3>가 개봉하며 벌써 100만을 넘었을 뿐만 아니라
빌런역으로 분한 이준혁 배우의 연기 변신에 더욱 이목을 끌고 있는데요!
그러하여 오늘 씨네랩은 근 3년동안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악역 연기 선보인 한국 영화 빌런 캐릭터 top5를 선정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극악무도 악역 캐릭터 TOP 5,
지금 만나보실까요?
범죄도시 2 (2022)
the roundup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무자비한 악행을 일삼는 범죄도시2 악역 '강해상'역의 손석구
시놉시스
대한민국 대표 범죄 액션 시리즈 '범죄도시2'는 괴물형사 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이 베트남 일대를 장악한 최강 빌런 강해상을 잡기 위해 펼치는 통쾌한 범죄 소탕 작전을 그린 영화.
영화정보
개요: 범죄, 액션 | 106분
개봉: 2022.05.18.
감독: 이상용
출연: 마동석, 손석구, 최귀화, 박지환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CINEPICK
무자비한 악행을 일삼으며 자신에게 거슬리는 인물을 가차없이 없애버리는 역을 선보인 손석구는
특유의 서늘한 눈빛과 악행으로 많은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범죄도시2>는 팬데믹 이후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바 있습니다.
코멘트
강해상이 가진 "집요함"이 장첸이 가진 서늘한 잔인함보다 더 무섭게 다가왔다
- 씨네랩 M 님 -
비상선언 (2022)
EMERGENCY DECLARATION
ⓒ쇼박스
▷섬뜩한 두 얼굴의 테러리스트 '진석' 역의 임시완
시놉시스
뜻하지 않은 비행기 내 테러로 인해 재난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을 그린 이야기
영화정보
개요: 드라마 | 140분
개봉: 2022.08.03.
감독: 한재림
출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배급: ㈜쇼박스
CINEPICK
처음 맡은 악역 연기 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연기 변신으로 호평이 쏟아졌으며 특유의 선한 얼굴과 대비되어 서늘한 눈빛과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로 강렬하면서도 새로운 ‘빌런’을 완성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코멘트
임시완의 신들린 듯한 연기
- 네이버 zida**** 님 -
보이스 (2021)
On the Line
ⓒCJ ENM
▷ 보이스피싱 기획실 총책 곽프로 역의 김무열
시놉시스
보이스피싱 조직의 덫에 걸려 모든 것을 잃은 서준(변요한)이 빼앗긴 돈을 되찾기 위해 중국에 있는 본거지에 잠입, 보이스피싱 설계자 곽프로(김무열)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
영화정보
개요: 범죄,액션 | 109분
개봉: 2021.09.15.
감독: 김선, 김곡
출연: 변요한, 김무열, 김희원, 박명훈
배급: CJ MNM
CINEPICK
보이스피싱 본거지의 기획실 총책인 곽프로를 연기하며 외형부터 음성까지 철저히 캐릭터에 맞도록 변신해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며 극악무도한 악역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코멘트
곽프로 김무열의 능글맞은 악역 연기는 최고
- 네이버 ume1**** 님 -
콜 (2020)
call
ⓒ 넷플릭스
▷광기와 섬뜩함이 가득한 사이코패스 '영숙'역의 전종서
시놉시스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된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여자가 서로의 운명을 바꿔주면서 시작되는 광기 어린 집착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정보
개요: 미스터리 | 112분
개봉: 2020.11.27.
감독: 이충현
출연: 박신혜, 전종서
배급: 넷플릭스
CINEPICK
자신의 미래를 알고 폭주하는 영숙 역을 맡은 전종서는 예측할 수 없는 영숙의 양면성과 사이코패스적 면모를 완벽히 소화하며 강렬한 악역 캐릭터로 많은 관객을 사로 잡았습니다.
코멘트
전종서의 광기, 살기, 똘기.
- 왓챠피디아 재*님 -
반도 (2020)
Peninsula
ⓒ(주)NEW
▷욕망을 향해 질진하는 독보적 존재감을 선보인 '서대위' 역의 구교환
시놉시스
<부산행> 이후 4년, 폐허에 남겨진 이들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담은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정보
개요: 액션 | 116분
개봉: 2020.07.15
감독: 연상호
출연: 강동원, 이정현, 이레, 권해효, 김민재, 구교환
배급: (주)NEW
CINEPICK
631 부대의 리더 서대위를 연기하며 냉혹하고도 종잡을 수 없는 악역 캐릭터로 그의 첫 상업영화이자 인간성을 상실한 광기 어린 모습을 선보이며 영화 팬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코멘트
구교환의 재발견. 악역 캐릭터를 정말 본인의 색으로 맛깔나게 소화했음
- 네이버 0idi****님 -
총 5편의 한국 영화 속 빌런 캐릭터 어떠셨나요?
이번 주말은 씨네랩이 추천드린 영화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GONI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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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독일]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장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면,
당신은 천국의 문턱 앞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마틴과 루디라는 두 인물을 통해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질문을 던진다.
같은 병원, 같은 병실. 서랍 속 데킬라 한 병을 나누며 처음 이야기를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 한 번도 바다를 본 적 없다는 말에 병원을 뛰쳐나온다. 병원 주차장에서 훔친 벤츠와 그 안에 실려 있던 100만 마르크로 양복을 맞추고, 고급 호텔에 머물며 사치를 누리기도 한다. 호텔에서 작성한 버킷리스트는 둘의 여정에 새로운 꿈을 더하고, 이들은 훔친 돈을 돌려주거나 마음에 드는 주소로 돈을 보내며 세상에 작지만 따뜻한 흔적을 남긴다.
계속되는 경찰과 조직의 추격 속에서도 두 사람에게는 이상하리만치 큰 운이 따른다. 그리고 여정의 끝에서 마틴과 루디는 처음처럼 데킬라 한 병을 들고 바다로 향한다. 마침내 마주한 끝없는 수평선 앞에서, 이들은 조용히 파도를 바라본다.
다소 유치한 총격전, 어딘가 나사 하나씩 빠진 듯한 경찰과 악당, 돈을 훔친 이들을 순순히 보내주는 인심 좋은 보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운 좋은 주인공들.
언뜻 보면 이 영화는 어디선가 본 듯한 B급 영화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엔딩까지 제대로 음미하고 나면, 더 이상 이 영화를 가볍게 넘길 수 없을 것이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제법 유쾌하게 풀어낸다. 영화에서는 시한부인 마틴과 루디가 웃고 떠드는 모습을 내내 보여준다. 그 모든 장면이 따뜻하면서도 유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중간중간 종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마틴의 모습, 그에게 약을 챙겨주는 루디의 손길은 그들이 삶의 끝자락에 서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죽음 앞에서 시작된 꿈
보통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마틴과 루디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오히려 삶에 더 가까워진다. 바다를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이들이, 죽음을 직면한 후에야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나간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누구나 병원을 뛰쳐나올 수 있는 건 아니다.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나였다면?
두 사람은 여유롭게 드라이브를 즐기며 말한다.
“트리니다드, 발리, 아카풀코, 하와이… 발음도 어려운 데로 가자.”
처음엔 그저 바다를 보는 게 목표였던 이들이 더 큰 꿈을 품게 된다. 전 같았으면 상상조차 못했을 꿈들이다.
카메라는 차량 백미러에 쓰인 한 문장을 비춘다.
사물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다.
영화 초반, 마틴과 루디는 그저 평범한 행인일 뿐이다.
죽음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동시에 삶의 일탈과 새로운 시작 역시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
마틴과 루디는 죽기 직전에서야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도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아카풀코도, 하와이도, 마음먹는 순간 그리 멀지 않은 곳이 된다.
천국에는 주제가 하나야. 바다지.
영화에서 바다는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 아니다. 삶의 목표이자, 소망이다.
영혼 속의 불길만이 영원한 거야.
유일하게 남아있는 불은 촛불 같은 마음속의 불꽃이야.
영화는 여러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한다. 천국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결국 바다뿐이며, 그 끝에 남는 것은 영혼 속의 불꽃이라고.
마틴과 루디에게 바다는 삶의 마지막 꿈이었고, 불꽃은 그 꿈을 향한 여정을 가능케 한 갈망과 내면의 용기였다.
나의 바다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바다를 향해 달릴 만큼 마음속 불꽃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가.
삶의 끝에 선 마틴과 루디의 여정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꿈을 다시 꺼내 보게 하고, 지금껏 삶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조용히 묻는다.
천국엔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다. 결국 우리가 천국에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 품었던 꿈, 그리고 그 꿈에 대한 진심이다.
마틴과 루디는 지금도 바다가 보이는 어딘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바다를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천국의 문턱 앞에 섰을 때, 우리도 우리만의 바다를 이야기하자.
“그럼 뛰어. 시간이 얼마 안 남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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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난해하다 vs 걸작이다 평이 갈리고 있는 가운데 100만 관객수를 돌파했습니다. 대만 거장 감독 허우샤오시엔의 은퇴소식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까지 오늘의 씨네뉴스
같이 만나보시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11월 개봉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작품 <괴물>은 <어느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연출한 일본
거장 고레에다 감독의 신작입니다. 초등학교에서 학교 폭력을 의심할 만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이
일에 연루된 두 소년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외계+인 2부> 1부 실패만회 가능할까
영화 <외계+인 2부>가 <외계+인 1부>가 나온지 18개월만에 관객을 만납니다. 현재와 630년 전
고려 시대를 오가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신검(神劒)을 차지하기 위해 과거와 미래 인물들이 한 데
모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난해하다 vs 역작이다평 갈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관객 수 10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걸작이라는 평가와 난해한 작품이라는 평이 갈리는 가운데, <소년들> 개봉에도 1위를 지키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만 영화 거장 허우샤오시엔,치매 투병으로 은퇴
<비정성시> <타이페이 스토리>의 대만 거장 감독 허우샤오시엔이 치매를 진단받고 영화 제작을 중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가족의 성명에 따르면 차기작 <수란 강>을 작업하려 했으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폐렴과 후유증 등으로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전했습니다.
BTS 공연 실황 영화 11월 공개
쿠팡플레이는 <BTS: Yet to Come>을 11월9일 선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 작품은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담은 영화로다음 달 9일 오후 8시부터 쿠팡플레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CGV 3분기 매출·영업익 모두 상승
CJ CGV가 2023년 상반기 첫 반기 흑자 이후 3분기에도 연속 흑자를 달성했습니다.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 4,076억 원, 영업이익 305억 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중국 사업 호조 및 광고 사업 매출
증가로 영업이익이 증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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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으로 봐선 몰라요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욕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욕망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 속 아주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욕망에 휘둘린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오든지 말이다.
영화 <욕창>은 퇴직 공무원 창식, 뇌졸증으로 쓰러진 아내 길순, 그리고 입주 간병인 수옥의 평범한 하루를 보여 준다. 창식은 매일 동네 한 바퀴를 걸으며 운동을 하고 길순은 침대에 누워 수옥의 수발을 받는다. 수옥은 불법체류자라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지만 월 200만 원을 받으며 창식의 식사와 말동무, 그리고 길순을 간병한다. 이러한 평범한 일상 속, 어느 날, 길순의 등에 욕창이 생긴다. 창식은 이 사실을 딸 지수에게 알린다. 그 날 이후, 창식을 포함한 가족들의 욕망이 하나 둘씩 드러난다.
“욕창은 겉에서 봐서는 몰라요. 속이 얼마나 깊은지 문제거든요.”
욕창은 한 자세로 오래도록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때 신체의 부위에 지속적으로 압력이 가해져 그 부분의 피하조직 손상(궤양)이 유발된 상태를 말한다. 길순의 몸에 생긴 욕창처럼 가족들 간의 불화는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겉으로 봐선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창식의 가족은 겉으로 봤을 때 평범한 가정이다. 첫째 아들은 과일과게를 하고, 둘 째 아들은 미국에 가있다. 그리고 막내 딸은 목공일을 하며 각 자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병든 어머니가 있지만 최선을 다해 돌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들의 불화는 아주 깊숙한 곳에서 부터 시작된다. 가부장제, 고령화, 노인복지, 입주 간병인 등 더 이상은 감출 수 없는 현실이 드러난다.
가부장제
창식은 가부장제의 표본이다. 여자는 집안일을 해야한다. 밥은 삼시세끼 매일 챙겨 먹어야 하며, 밥, 국, 반찬은 세가지 이상이 꼭 식탁위에 차려져 있어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옥이 잠시 전화를 받기 위해 국을 뜨다 말고 방으로 들어간다. 전화를 받고 돌아와 국을 창식에게 가져다 주는데 창식은 그런 수옥에게 윽박지른다. 수옥은 죄송하다고 말하며 방에 들어간 사이 국을 퍼서 드실 줄 알았다며 다시금 죄송하다고 말하지만 창식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결국 수옥의 뺨을 때리게 되고 수옥은 일을 그만두게 된다. 창식의 이러한 모습은 남자는 부엌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창식은 남성으로서의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그는 병든 아내에게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더이상 느끼지 못한다. 그와 반면 수옥은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자신에게 살랑거린다. 그런 수옥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을 알게 된 창식은 질투심에 사로 잡힌다. 결국 수옥의 비자 문제로 위장 결혼을 해야되서 일을 정말로 그만둬야 한다고 말하자 자신과 결혼을 하자며 통보한다. 자식들과 모인 자리에서 수옥과 결혼할 것이라고 말하는 창식의 표정은 굳건하다. 그러한 창식의 모습에서 ‘너희들은 내 말을 들어라. 그러나 나는 너희들 말을 듣진 않을 것이다.’라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창식은 자식을 가르치는 데에도 편애가 심했다. 첫째 아들 문수는 공부를 못해서 대학도 보내지 않고 유학도 보내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서 내놓은 자식처럼 대했다. 그 반면에 둘째 아들에게는 모든 것을 퍼다 주었다. 대학도 보내주고 미국으로 유학도 보내주었다. 한국에 돌아와 벤처 기업을 만든다고 모든 돈을 날려도 다시 미국으로 보내줄 정도로 둘째 아들에게 모든 것을 퍼다 준 것이다. 그렇기에 문수는 가족의 일에 무관한 사람처럼 굴며 관여하지 않았다. 막내딸 지수는 다른 자식들과 달리 창식과 길순을 보살피고 집 안 관리를 하지만 창식은 딸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습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 준다.
돌봄 노동
영화 <욕창>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돌봄 노동의 실체를 보여 준다. 돌봄 노동은 혼자서 생활 및 생계를 가꿀 수 없는 노인, 아동, 환자 등을 돌보는 일이다. 이는 여성이 도맡는 가사노동도 돌봄 노동에 포함된다. 이러한 가사 노동은 무급이거나 무급이 아니더라도 적은 돈을 받으며 행해진다. 노동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수옥은 입주 간병인으로서 창식의 삼시 세끼를 챙기며 온갖 잡일을 할 필요가 없다. 만약에 한다고 해도 월 200을 받으며 그 모든 것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반찬을 만드는데 주 3만 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되며, 창식에게 말을 해도 창식은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냐며 윽박지를 뿐이다. 창식과 수옥의 위장 결혼 문제로 인해 딸 지수는 수옥에게 소리 지르며 말한다. “돈 받고 하시는 일이잖아요!” 그렇다. 아무리 수옥이 길순을 진정으로 보살피고 창식의 안녕(安寧)을 바랬어도 그녀는 그저 돈 받고 일하는 노동자일 뿐이며, 그 누구도 수옥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 돌봄은 85% 이상이 여성이 전담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여성 평등과 남성의 일, 여성의 일이라는 구분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곳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정말 돌봄이 필요한 곳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고령화
한국은 고령화 사회이다. 이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노인 요양, 독거노인 등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 복지 문제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지만 젊은 사람들에겐 크게 와 닿지 않는 문제이기도 하다. 딸 지수 또한 자신의 가족 문제와 일 때문에 어머니의 병간호를 수옥에게 일임한다. 어머니, 아버지의 생활을 생각하기엔 자신 또한 딸의 반항과 남편의 바람으로 인해 머리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머니, 아버지의 부양 문제는 최대한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싶었다. 수옥이 일을 잠시 그만뒀을 때 그만한 돈을 주고 일할 간병인이 없다면 어머니는 요양원에 보내고 아버지는 실버타운에 보내겠다고 말한다.
길순은 이 모든 상황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몸은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일 뿐 살아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길순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그녀는 아내도 어머니도 아닌 그저 병든 노인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길순의 모습이 미래의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과 고령화 시대에 살아가며 좀 더 노인 복지와 노인 요양 문제에 대해 한 번쯤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아버지, 어머니를 부양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노인을 부양하는 일이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자신의 선에선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우리도 언젠간 늙어 노인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고령화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
불법체류자
수옥은 조선족 불법체류자이다. 그러므로 수옥은 늘 약자일 수밖에 없다. 저임금 고강도의 노동을 해도 불만을 느끼거나 따지지 않는다. 그저 숙식할 수 있다는 것과 매달 60만 원씩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한다.
매년 한국에 불법으로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난다. 이들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남들보다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이 다치고 위험에 노출되어도 법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국가에 걸리는 순간 바로 귀환 조치 된다. 그들은 ‘가성비’ 좋은 노동자일 뿐이다.
수옥은 억척스러워도 최선을 다해 창식과 길순을 보살펴주었다. 그러나 수옥도 사람인지라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일을 대충 한다고 느껴졌지만, 이것은 창식의 시선에서 본 수옥의 모습일 뿐, 그녀는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불법 체류자로 신고받아 경찰에게 끌려가는 뒷모습 뿐이다.
불법체류자가 본국으로 귀환 조치 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이용해 불법체류자들에게 과한 노동과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욕창
욕창은 가족들의 곪은 문제들을 보여주는 메타포이다. 사람은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 그 속에 곪은 문제들은 자신도 모르게 차곡차곡 깊이 쌓이게 된다. 그렇기에 욕망에 쉽게 좌지우지되고 농락당한다. 영화에 등장인물 중 절대 악은 없다. 그렇다고 절대 선하지도 않다. 그저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나와 각자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이것이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현실은 가까이 있고 깊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는 삶은 정말 다양한 관계로 얽혀있으며 각종 사회 문제 그리고 골치아픈 일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애써 그 문제들을 무시하기도 하고 타인에게 떠 넘기기도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겉으로 봐선 아무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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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은 어째서 기생충을 선택했을까?
개봉 직전 칸의 선택을 받은 영화 <기생충>. 우리나라의 첫 황금종려상 수상작품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고, 그 기대만큼 사람들의 환호도 넘쳐났다. 그래서 나 역시 기생충에 대한 기대감을 안은 채 봤지만 볼수록 의문덩어리였던 작품이었다.
영화 <기생충> 시놉시스“폐 끼치고 싶진 않았어요”
전원백수로 살 길 막막하지만 사이는 좋은 기택 가족. 장남 기우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 준 고액 과외 자리는 모처럼 싹튼 고정수입의 희망이다. 온 가족의 도움과 기대 속에 박사장 집으로 향하는 기우.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의 저택에 도착하자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가 기우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 뒤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사회적 계층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
<기생충>이라는 작품이 빈부 격차가 드러나는 영화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교묘하게 그 차이를 드러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그 현실을 더 크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반지하와 대저택이라니,, 유치원생이 봐도 부자와 가난한자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이 돼서 너무 흑백논리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상을 받을만큼 역작이었나?
칸이 선택한 작품이라기에 기대했지만 굉장히 평범했던 작품이었다. 빈부격차 속에서 일자리를 찾아보려 기존의 사람을 없애고 자신들이 그 자리로 들어가려고 하는 모습은 한 번쯤 영화 속에서 봤던 장면들이니 말이다. 근데 그것이 가족 전체라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온 것일까?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만큼 과연 작품들이 뛰어난 영화였는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조금 당황스러웠다. 칸의 저명한 영화 관계자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한국영화를 많이 보고 자란 내 눈에는 내용이 뻔했고, 예상이 가능해서 보는 내내 이게 상을 받을 만한 작품인가? 의심스러웠던 영화였다.
그래도 연기력은 좋았던 작품
의심을 하면서 영화를 봤지만 영화를 중간이 끊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그 합이 너무나도 찰떡같았기 때문이다. 송강호와 최우식, 박소담 그리고 장혜진까지 진짜 가족을 보는 것처럼 연기가 너무 물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이질감 자체가 없었다. 그냥 실제 가족을 직접 보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찰떡같이 캐스팅을 했는지캐스팅 디렉터의 안목이 빛났던 작품이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뻔했지만 그들의 연기력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던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영화 <기생충>은 개인적으로 상을 왜 받았을까?하는 의문이 든 작품이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력만큼은 정말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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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건 매버릭, 실감나는 전투기 액션을 담다!
?Rabbitgumi 입니다!
탑건 매버릭이 개봉했습니다.
1986년에 1편이 나온 이후 30년이 넘게 지난 시점이죠.
톰 크루즈의 매력이 돋보였던 1편인데, 이번 2편에는 그 매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까요?
전투기 액션이 많이 담겼고 실제로 배우들도 전투기를 조종했다고 하죠.
여러가지 제약이 많았을텐데 과연 멋지게 담아냈을까요?
제가 영화가 어땠을지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는 아래 링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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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재개봉 예고편
기차가 서로 스쳐 지나갈 때 ‘기적’이 일어난대~
그래서 소년이 바라는 건.. 화.산.폭.발?!!나는 엄마랑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삽니다. 동생 류랑 아빠는 저기 멀리서 따로 삽니다. 엄마랑 아빠랑 맨날 싸우더니, 이런 꼴이 될 줄 알았습니다. 나의 소원은 우리 가족들이 다시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저기 저 위에 있는 화산이 폭발해서 아빠랑 류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면 됩니다. 형은 화산이 꼭 폭발하게 해달라고 매일매일 기도하는데 철부지 내 동생은 가면라이더가 되고 싶다고나 하고, 정말 어린이 같은 소원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하는 말이 새로 생기는 고속열차가 반대편에서 서로 달려오다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아싸~ 그럼 거길 가서 소원을 빌면 되겠네! 그래서 좋아하는 선생님이랑 결혼하고 싶은 친구랑,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친구랑 거길 가려고요. 동생도 오라고 해서 나랑 같은 소원을 빌라고 해야겠어요. 난, 우리 가족이 꼭 같이 살았으면 좋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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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로스트 인 스페이스> 공식 예고편
《로스트 인 스페이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시즌의 공식 티저 예고편. 모든 에피소드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