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5-04-30 19:02:12
비극의 원인은 어디에 누구에게 있는가?<레이디 맥베스>
그녀가 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또 아닌 이유에 대해
* 본 리뷰는 영화의 반전과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이디 맥베스 Lady Macbeth, 2016
영국 | 드라마 | 2017.08.03 개봉 | 청소년 관람불가 | 89분
감독: 윌리엄 올드로이드
비극의 원인은 어디에, 누구에게 있는가? <레이디 맥베스>
경건하게 울리는 찬송가와 고풍이 흘러넘치는 교회 안. 그런데 어린 신부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가득하다. 자신의 결혼식임에도 불구하고 눈치 보기 바쁜 신부 캐서린. 세상 모든 이에게 축하받아야 할 결혼식장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4면이 돌로 세워진 교회 안에서 캐서린이 느낄 수 있는 건 차디찬 냉기와 어딘가 모르게 공포스러운 바람소리뿐이다. 그래서 캐서린은 자꾸 주변을 돌아보며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려 애쓴다. 두 눈을 열심히 굴려가며 상황을 관찰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아줄 이는 없다. 오히려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남편의 옆모습에 철저한 무관심을 느끼고, 아무 감정 없이 입을 벌려가며 찬송가를 부르는 시아버지와 목사에게서 어떠한 인간적인 면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혼 생활 내내 자신의 숨통을 쥐고 흔들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만다.
이 단 한 장면에서 <레이디 맥베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결정되어 버린다. 인물들의 비열하고 저속한 속내는 어김없이 카메라 사각틀에 드러나고, 진행될 사건들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란 강한 확신과 함께. 따라서 한동안 허공을 맴돌던 신부의 시선이 최종적으로 남편에게로 향할 때, 우린 단번에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날 것임을 예상한다.
출처: 영화 <레이디 맥베스> 스틸컷
남편의 무관심은 결혼식 첫날밤을 기점으로 경멸과 조롱으로 얼룩진다. 한 침대에 몸을 뉘어 함께 자지만, 그들은 부부가 아닌 남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남편은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방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캐서린에게 그대로 자신의 분노를 지배로 치환해 행사한다. 캐서린과 함께 사는 이유는 딱 하니다. 아내를 아버지가 돈 주고 사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캐서린에게 바라는 것도 딱 하나다. 조용히 집 안에서 기생하면서 아내의 본분을 지키는 것. 여기서 말하는 아내의 본분은 '본인 아버지가 말하는 아내의 본분'을 말한다. 결국 남편에게 캐서린은 처음부터 존재 가치가 없는 존재였으며, 버릴 수 없어 마지못해 세워두는 마네킹이었다.
집 안에서 하녀(애나)의 시중을 받으며, 완벽하게 외면을 치장하고, 보기 좋은 인형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캐서린. 그런 그녀 앞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세바스찬이 등장한다. 창고 안에서 애나를 위에 매달아 놓고 성추행을 일삼는 세바스찬을 보고 캐서린은 욕망을 가감 없이 분출하는 그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 몸에 잔뜩 묻은 흙도 꾀죄죄한 얼굴도 땀 냄새도 전부 비극적인 운명을 살아야 하는 그녀에겐 금기를 깨버릴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으로 이용된다. 그것을 캐서린은 '진정한 사랑'이라 스스로 칭하며 세바스찬에게 "내 마음을 의심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억압과 무관심, 조롱에서 벗어나는 수단일 뿐이다. 자신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하는, 자유를 품은 아름다운 관계로 인식했을지 모르나, 사실 캐서린의 행위는 오직 피지배자를 향한 잔인한 지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출처: 영화 <레이디 맥베스> 스틸컷
<레이디 맥베스>의 긴장감과 재미는 캐서린의 살인보다도 그들을 조용히 따르는 두 하인, 애나와 세바스찬에게서 찾을 수 있다. 애나는 자신을 짐승 취급한 주인(캐서린의 시아버지)이 캐서린이 쓴 독으로 죽어가는 것을 방관한다. 명백한 살인임을 알면서도 두려움에 떨 뿐, 주인을 구하지 않는다. 사실 애나 역시 하인의 본분을 다하라는 주인의 강압적 명령에 세뇌된 사람이었고, 당연히 인간적 대접은 받아 본 적 없었으며 그 결과 쌓이는 울분을 한 번도 속 시원하게 털어내지 못했다. 마치, 캐서린처럼 말이다. 따라서 그녀는 이후 일어나는 2건의 살인사건의 범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한다. 주인이 죽은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충분히 증언할 수 있었음에도, 심지어 자기 목숨이 달린 일이었음에도 애나는 역시 침묵한다.
밧줄에 묶인 채 짐승처럼 대저택에서 쫓겨나는 애나와 살려고 발버둥 치는 캐서린의 차이는 신분만 있지 않다. 그 신분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결정적 마음이 애나의 결말을 비극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본질까지 가장 낮은 신분으로 취급했다. 반항과 의심, 자기주장과 자기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캐서린뿐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는 세바스찬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캐서린의 지위와 권력에 눈이 먼 하인일 뿐이다. 입어보지 못한 옷과 앉아보지 못한 의자와,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흥분한 하인. 캐서린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자부했으나, 어림도 없었던 까닭이다. 그는 캐서린이 남편의 머리를 가차 없이 막대기로 내려친 후, 혼자 주인의 시신을 땅에 묻는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주인을, 사랑하는 애인이 대신 죽였을 때 느꼈던 희열과 평생 실종된 주인 자리에서 대신 부를 누리며 살 설렘에 사로잡힌 채 말이다. 살인을 방조하고, 오히려 범죄를 덮는 일을 도우면서, 죄책감과 죄의식에 괴로워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도 자신을 하찮은 하인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 따르는 일은 당연하다는 인식과 믿음이 본인의 순수하고도 귀한 인간성마저 훼손한 것이다. 영화는 애나와 세바스찬의 결정을, 캐서린의 결정과 붙여 의도적으로 더 대비해 보여준다. 마치, 무엇이 더 잔인하고 아픈지 결정하라는 듯, 세 사람의 결정이 담인 얼굴을 계속 클로즈업한다.
출처: 영화 <레이디 맥베스> 스틸컷
세바스찬의 설렘은 예상치 못한 변수의 등장으로 끝이 난다. 캐서린 남편의 혼외자(어린 아들)가 순식간에 대저택의 주인이 되자, 그는 자신이 누린 부가 원래 제 것이었던 것처럼 캐서린을 닦달한다. 닦달에서 끝나지 않고 사랑을 빌미로 그녀를 밀어낸다. 이에 캐서린은 자기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아이까지 죽여버리고 세바스찬과 사랑을 다시금 확인한다. 자, 그녀는 총 3번의 살인을 저질렀다. 자신을 억압하고 지배한 집 안에서, 자신을 억누를 위치에 있는 남성들의 목숨을 전부 단번에 끊었다. 첫 살인부터 계획적이었고, 일방적이었다. 애나는 첫 번째 살인을 함께했고 세바스찬은 나머지 2건의 살인을 동조했다. 그렇다면, 이 비극의 원인은 누구에게 있을까?
살인을 한 3명은 모두 살인 동기가 있었다. 하지만 살아남는 인물은 오직 캐서린뿐이다.
사랑을 확인했으나, 끝까지 자기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세바스찬은 캐서린과 함께 살인을 했음을 사람들에게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부에 선택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평생 누더기 옷을 입고, 괄시와 무시가 당연한 하인이었기에 세바스찬의 고백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고 지배자들의 발아래로 추락해 철저히 무시당한다. 잠시 잊고 있었던 캐서린의 지위가 불쑥 튀어나온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녀는 자기 지위가 가진 힘을 또 한 번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세바스찬의 배신에 악에 받친 눈으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애나와 세바스찬의 살인 공조로 사건을 종결 내버린다. 실어증에 걸린 애나에게서 어떠한 반전도 일어나지 않음을 확신한 채 말이다. 모두 시아버지와 남편이 말한 '가진 자의 본분'을 너무나 잘 습득한 덕이었다.
출처: 영화 <레이디 맥베스> 스틸컷
<레이비 맥베스>의 희한한 매력은 영화 내내 캐서린만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는 점이다. 특히 애나와 세바스찬의 선택과 행동에 이상하리만큼 엄청난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 점은 꼭 생각해 봐야 한다. 세 사람은 모두 대저택 주인들에게서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오직 캐서린만 홀로 반항하고 반기를 들었고 살아남았다. 그녀만 비인간적인 상황들에 순응하지 않았고 깊은 어둠 속에서 자신이 가진 권력을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다. 그렇게 비극의 원인인 남성 우월주의 사회를 무너트렸다. 그것도 아주 소름 끼치고 잔인한 방식으로 말이다. 알몸으로 세워두고 홀로 잠을 자던 남편의 조롱과 사고파는 물건으로 취급했던 시아버지의 경멸적 태도가 캐서린을 끔찍한 괴물로 만들었고,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상류층에게서 배운 괴기스럽고 소름 끼치는 지배력이, 그녀를 살인을 일삼아도 괜찮은 특권의식을 가진 괴물로 탄생시켰다.
<레이디 맥베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세 인물들이 전부 본인의 위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채 자기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나란 인간이 가진 고귀한 마음과 도덕적, 윤리적 아름다움이 사회에서 갖는 위치로 모두 파괴되는 순간을 맥없이 지켜보기만 했던 인물들. 따라서 소파에 앉아 가만히 관객을 응시하는 캐서린의 마지막 행보는 잊을 수 없다. 하인들마저 다 떠난 대저택에서 홀로 남아, 어떠한 후회도, 절망도 하고 있지 않음을 관객들에게까지 확인시키는 차갑고 매서운 그 표정.
그렇다.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을 힐끗대던, 두려움에 떠는 열일곱 소녀가 아니다.
앞으로도, 아닐 테고.
Relative contents
-
- 신화같이 잔혹한 인류의 폭력의 역사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매년 꾸준히 참석하는 영화제들중 하나이다.
거리가 가까워서도 크지만, 결정적으로 애니메이션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상영작 공개 이후 갑자기 추가된 상영작이 있었는데, 바로 <유니콘 전쟁>이다.
어떤 작품이길래 갑자기 초청까지 된걸까 생각이 들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라도 소개되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해 보석같은 애니메이션 중 한 편이었다.
러브 군사캠프의 테디 베어들은 조상 대대로의 적수인 유니콘과 맞서싸우기 위해 훈련중이다.
그러다 유니콘의 근거지인 마법의 숲에서 부대가 실종되는 사고가 생기게 되고, 이들의 부대는 숲으로 투입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의 욕망과 본능과 갈등이 폭발하게된다.
아기자기한 그림체를 보면 '마이 리틀 포니'를 연상시키는 아동용 애니메이션 같지만,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이다.
성기 노출, 신체 절단, 유혈, 마약 등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맞물려 괴리감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러한 괴리감은 단순히 쾌락적, 불쾌감을 주기위한 요소가 아니다.
테디 베어와 유니콘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욕망, 폭력, 본능은 인간에게 내재된것과도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아동용 애니메이션 같은 작화에 담아낸 인간의 폭력에 대한 은유가 담긴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
- 비에른 안드레센의 삶의 이면,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다
배우, 비에른 안드레센.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주연 배우로 유명한 배우이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 밖에 안드는 외모로, 그는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런 그의 삶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통해 그에게 붙은 별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그러나 그의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런 그를 응시하고자 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영화의 제목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은 당시 베니스에서의 죽음 영화에서의 유명세로 붙은 별명이다.
다만 이 다큐를 통해 비에른 안드레센 배우에게 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이라는 별명은 정말 평생을 따라다는 별명이자 낙인이었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어린 나이에 얻은 인기다 보니 당연히 좋은 의도만으로 접근하는 이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은 어느 정도 감이 잡혔지만, 정말 어린 나이에 아동학대급으로 방송에 출연했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비에른 안드레센의 가정사도 가슴 아프게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이 다큐멘터리는 비에른 안드레센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다큐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지금의 안드레센 배우가 바닷가에서 번갈아서 보여지는 후반부 장면은 정말 인상깊었다.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비에른 안드레센 배우에 관심이 있다면 강력히 추천하는 영화.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
- 가가 가가?(그 외계인이 너가 말한 그 외계인이니?)
줄거리
서른 살의 홍지효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외계인을 본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외계인이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애써 달래가며 살아가지만 도무지 평범하게 살 자신이 없다. 결국 지효는 동거를 앞둔 남자친구 '시국'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런데 이별을 고한 다음 날부터, 시국이 연락 두절이 되어 보이지 않는다. 지효는 시국의 마지막 위치를 추적해 한강 공원에 찾아가고, 그곳에서 외계인과 함께 우주선이 남긴 듯한 문양을 발견하게 된다. 자꾸만 주변에서 지지직거리는 전자기기들. 혹시 외계인이 납치해간 것은 아닐까?
지효는 큰마음 먹고 외계인을 연구하는 덕후 같은 모임에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감상 포인트
1. 1화에서 3화까지는 전개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서 어떤 사람에게는 살짝 답답할 수도 있다.
2. 연기 구멍 없이 배우들 모두 연기력이 훌륭해서 소재에 비해 오글거리는 느낌 없이 볼 수 있다.
3. 장르가 단순 SF, 미스터리 라고 하기엔 여러 가지가 혼합된 형태다.
감상평
마지막 회차까지 보고 나서 바로 든 생각은, "왜?"라는 물음이었다.
보통 이런 미스터리물은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결말 부분에서는 그 궁금증이 해소되어야 하는데, 이 드라마는 많은 것이 축약된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인물의 개인적인 성장이나 인물 간의 갈등 해소 부분에서도 만족스럽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각각의 소재를 얼기설기 꿰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청첩장 돌리니까 되게 어른 같다."
"지효 씨도 어른이야."
지효는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고자 노력했다. 모든 것이 적당한 때에 적당하게 이루어지는 듯했고, 무사히 정착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을 방해라도 하듯 야구 모자를 쓴 외계인은 지효의 삶에 깊이 침투해버리고 만다. 이윽고 지효는 자신이 여태껏 잘 싸매고 포장해온 것들이 일체 거짓임을 인정한다. 그리곤 진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기에 이른다. 거기에서부터 지효의 성장은 시작된다.
시국이 자발적으로 떠난 것임을 증명하는 증거들이 넘쳐나는데도 지효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일순간 평범하기를 포기한 지효는 몸을 사리기보단 점점 온몸으로 문제에 직접 부딪히며 대책 없는 싸움을 이어간다. 그러는 도중에 점차 지효의 내면은 단단하게 굳어간다.
지효가 자신이 쌓아온 모든 삶의 기반을 포기하면서까지 그토록 뛰어다녔던 것은, 내면의 결핍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이러한 모든 질문들을 뒤로 미뤘던 지난날들에 대한 자기반성이자 해답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인 것이다.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인물은 비단 지효뿐만이 아니다.
사실 드라마 [글리치]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각자 이루지 못한 성장을 위해 움직인다.
시국도, 보라와 외계인 모임 사람들도, 지효의 부모도, 영기와 김직진도, 심지어는 호산나를 믿는 신도들도. 내면에 채워지지 않은 각자의 이상향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이 진실한 자신의 모습이든,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이든, 부모와 자식에 대한 애정이든, 친구에 대한 우정이든, 삶에 대한 위로이든.
보라는 자신이 찾아 헤매던 것의 답을 찾고자 한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함으로써 남들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쩌면 드라마 [글리치] 내에서 가장 확고한 답변을 얻어낸 것은 보라일지도 모르겠다. 보라는 이제 새로운 미지의 존재를 탐구한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의 이야기가 계속될 인물은 보라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시국에게 지효와 같은 외계인이 보이는 것은 아마 그들이 같은 형태의 결핍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기 때문이라 해석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안정되고 성숙한 어른이 되려고 했지만 결국은 헤어지고 만다. 스스로 어른이 되지 않고 타인에게 의존한 채로 어른의 형태만을 띠는 것은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효의 부모에 대해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식에게 자신을 투영해 성공한 자식 즉, 성공한 자신을 만들고 싶었던 지효의 부모는 자식에게서 독립하여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고자 한다.
우리들 모두가 내면에 성장하지 못한 자아를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 드라마 [글리치]는 그 자아가 가진 불만을 해소해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만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여기서 '것 같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미 드라마가 메시지를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내면의 성장을 갈구하던 인물에게 외부의 존재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밝혀버리는 것이야말로 그동안 쌓아온 탑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일으켜 세운 것이 아닌, 외부의 힘을 통해 영원히 자립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결말에 더욱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인물들이 스스로 성장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는가. 그 지점에서 실망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실에서 우리는 외부의 도움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도움일 뿐이다.
결국 내면의 자아가 성장하느냐 마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모든 사진 출처 : IMDB*
-
- 여전히 남 못 준 제 버릇
[주의사항]
이 글은 영화 [엘리멘탈]과 비교하는 영화인 [에에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출처를 반드시 밝혀주세요. 구독과 댓글은 미천한 리뷰어에게 참 많은 힘이 됩니다.
어린이들에게도 다양성, 혹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는 보편화되어야만 하는 가치를 가르쳐줘야 할 때가 있다. 꽤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무거울 수도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안내자의 역할은 애니메이션이 도맡고 있었다. 물론 메시지보다 포장이 재빨리 가닿는 바람에 거의 모든 아이들이 푸른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렛잇고를 열창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애니메이션만큼 아이들에게 빠르게 메시지가 흡수될 수 있는 매체는 아직까지는 없다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스펀지에 비유되곤 하는 아이들의 습득력 때문에, 애니메이션은 다른 작품들보다 꽤 혹독한 검열을 거쳐야 했고. PC(Politically Correct)라 불리는 많은 "넘어야 할 산"들을 다루느라 고전적으로 내려오는 동화들도 다시 들여다보는 기회들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 픽사에서 만들어낸 [엘리멘탈]은 과감하게도 이민 2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메인 줄거리로 내세웠다.
언뜻 보면 [에에올]의 애니메이션 버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픽사의 이번 선택은 그다지 현명하지도. 그렇다고 새롭지도 못했다.
소수자, 혹은 이민 2세로의 삶
그림출처:다음 영화
비록 원소의 형태를 빌리긴 했지만. 엠버의 가족은 앞 구르기를 하면서 보아도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 정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부모(이민 1세대)의 모습, 옮겨 온 새 터전 안에서도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는 모습들. 그러면서도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하는 불꽃의 정수가 집에서 타오르고 있는 장면들에서는 일종의 슬픔마저도 느낄 수 있다.
부모 세대의 인생을 남김없이 빨아먹고 자란 가게인 파이어 플레이스는 불이라는 족속(?) 들에게야 쉼터처럼 보일 수 있었겠지만, 사실 도시에서 주류의 삶을 살았을 다른 원소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그저 흔한 잡화상에 불과한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소수에게는 절대 허락되지 않았을 도시에서의 기회들은 엠버에게도.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보이지는 않지만 명백히 존재하는 벽이 되어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고. 이런 넘을 수 없는 좌절감과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는 아버지의 자긍심은 주류를 향한 날카로운 칼이 되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기도. 또한 가족들을 향한 사랑과 헌신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엠버가 사는 동네가 물난리가 났을 때 가장 취약한 곳이라는 점에서는 영화 [기생충]이 떠오르기도 한다. 삶의 터전이 배 한 척의 움직임 한 번으로도 완벽하게 몰락해 버릴 수 있는 곳. 다수를 상징하는 물이 소수민족인 불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는 설정만 보더라도 엠버의 주거 환경이 화려한 도시 속에서도 슬그머니 응달에 위치하고 있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소수자의 삶을, 더 정확하게는 엠버의 일상을 브이로그 마냥 보여주는데 쏟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가뜩이나 집중력이 짧은 아이들을 위한 작품이 가진 이 단점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치명적인 결점을 갖게 한다.
바로 주인공의 매력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K-) 장녀?:주인공의 매력 없음에 대하여.
그림출처:다음 영화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
엄마 없으면 네가 엄마야. 그러니 (주로) 남동생 챙겨야 해.라는 말에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위치. 자신을 제대로 돌보거나 돌아볼 여유조차 없어 사춘기가 20대를 훌쩍 넘겨서 격하게 찾아오는, 부모님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절대 아파서는 안 되는 손가락인 장녀.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엠버의 모습은 K-장녀의 삶을 고대로 빼다 박은 듯하다.
상대적으로 나약해 보이는 웨이드와 비교를 했을 때 모든 일들을 해결하는 듯 보이는 엠버의 모습이 씩씩하고 당차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엠버의 모습은 자신이 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영화 내내 뛰어다닐 뿐. 자신의 미래나 감춰진 능력을 알아내기 위한 고뇌를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엠버의 미래, 혹은 적성이 "정해지는"과정 또한 조금은 의문스럽다. 엠버의 능력이 정말로 특별한 것인가.라고 물어본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엠버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능력에 대한 비교 대상조차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았으며 반드시 그녀만이 지닌 능력인가.라고 물어보았을 때조차 그런 능력을 가지지 못해 단념하는 엠버와 같은 소수 집단을 소개하지도 않는다.
자신과 정 반대인 남자친구와는 절대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주류가 선사해 준 사다리를 얼떨결에 부여잡는 것을 보며, 과연 엠버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주체적으로 한 일이 있기는 한 걸까.라고 생각해 보면. 정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그저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엠버의 마음에 동질감 정도는 느낄 수도 있겠으나. 동화되기는 어렵다. 그렇다 보니 K장녀인 나조차 스스로의 기억에 기반한 공감의 눈물은 흘릴 수 있었지만. 감동의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여전한 신데렐라 이야기;행복에 대하여.
그림 출처: 다음 영화
[엘리멘탈]은 앞서 잠시 언급한 에에올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극 중 에블린(양자경)은 쿵후 마스터가 될 수도, 유명한 배우로서의 삶도, 하다 못해 소수자로 치자면 이보다 더한 소수자가 있을까 싶은 손가락이 소시지로 된 인종(?)의 삶도 살 수 있었지만. 코인 세탁방을 하고 있는 현재의 삶 그대로 그 어떤 것도 바꿀 것 없이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에에올은 행복의 전형적인 조건을 구걸하지 않는다.
또한 삶의 변화가 필요할 때 누군가의 허락도 구하지 않는다. 또한 내 인생이 변화해야 할 때 필요한 것이 나를 구하러 와 줄 완벽한 왕자님이 아님을 명백하게 못 박는다.
아무리 거의 모든 동화의 끝이 그래서 두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이라고는 하지만. 최소한 소수자의 삶에 대해 애니메이션에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결말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각오는 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행복의 조건으로 반드시 이성으로 이뤄진 커플이어야 할 것. 또한 주류의 삶으로 편입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일 것. 임을 결말에서 전시하듯 보여준다. 정 반대의 누군가에게 끌린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에 불과 물이라는 원소의 형식을 빌리고는 있지만.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인의 인정과 사랑이 아니다.
현재를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개인은 자신의 인생을 바꿔 줄 그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다. 이 비루하고 못나 보이는 현재의 자신만이 조부 투바키와 싸워야 하는 유일한 사람임을 알고 무서워도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갈 뿐.
행복은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알려줘야 한다.
마치면서
영화관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꽤 좋은 시간대였기에 아이들이 많은 건가.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더빙판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더빙판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였기에 나의 무신경함에 조금 짜증이 났고, 한 편으로는 과연 이 아이들이 금쪽이가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슬그머니 내 옆자리에 앉힌 채 영화를 보아야 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지킬 수 있는 매너를 최대한 지키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영화를 즐겼다. 머릿속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바보 같음을 느낌과 동시에. 과연 이 결말을 아이들이 보아서 되는 것인가. 에 대한 의문도 떠올랐다.
마음이 복잡했다.
나는 이제 어른이 되어 어느 정도의 필터링이 되는 사람이 되었(다고 믿고 싶)지만. 이 아이들이 과연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약간의 두려움도 들었다.
찝찝한 마음을 마음 한 구석에 담은 채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닥의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나 역시 자라는 동안 몇 번이고 내가 읽은 동화에 담긴 의미를 곱씹고, 때로는 깨부수며 어른이 되었으니까.
나와 함께 영화를 본 이 아이들 역시. 영화를 보았을 때의 행복함과 즐거움은 오래 가지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이 영화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픽사의 게으른 선택에 조금은 입맛이 쓴 주말이었다.
[이 글의 TMI]
1. 대장 용종 떼내서 커피도 없이 영화를 봤다.
2. 이제 겨우 보식 끝나가는 중
3. 다행히 다음 주부터는 밥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엘리멘탈 #픽사 #피터손 #레아루이스 #마무두애시 #웬디맥렌던커비 #애니메이션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
- 어떤 의미에서든 절반의 성공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무기 ‘텐 링즈’의 힘을 이용해 수세기 동안 끊임없이 더 강한 권력을 쫓아온 '웬 우(양자 위)'. 만다린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아버지 웬 우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암살자로 훈련을 받아온 '샹치(시무 리우)'는 어느 날 아버지의 통제를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 도망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둘도 없는 친구 '케이티(아콰피나)'를 만나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아버지의 테러 조직 텐 링즈의 습격을 받은 후 그의 야욕이 자신은 물론 동생 '샹리(장멍얼)'에게까지 미친 것을 눈치챈 샹치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어머니 '장 리(진법랍)'의 고향이자 신비의 마을인 탈로로 향한다. 가족의 비밀과 내면의 힘과 관련해 이모 '장 난(양자경)'의 도움을 받으면서 샹치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거이자 두려움인 아버지 웬 우와의 전투를 준비한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시작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4에서 <블랙 위도우> 다음으로 개봉한 두 번째 영화다. 현재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 중인 드라마를 포함하면 페이즈 4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다만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페이즈 4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앞서 나온 영화와 드라마들이 어디까지나 이른바 '인피니티 사가'의 부록이었던 것에 비해, <샹치>는 <캡틴 마블> 이후 2년 만에 마블이 선보인 새로운 히어로인 만큼 페이즈 4라는 새로운 시대의 막을 알리기에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첫 선을 보인 샹치라는 캐릭터는 물론 그와 텐 링즈를 중심으로 암시되는 MCU의 미래 모두 불안감을 배제할 수 없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는 점이다.
우선 영화는 샹치라는 새로운 히어로를 두 가지 측면에서 소개한다. 첫 번째는 액션으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전반에는 <와호장룡>이나 <살파랑>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중국 무협 영화의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정교하고 화려한 합을 맞춰서 마치 하나의 춤을 추는 것 같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액션을 원테이크로 선보이는 것이다. 그 안에서 웬 우의 절도 있는 움직임과 장 난 혹은 장 리의 유려하고 부드러운 선이 이루는 대조, 즉 상이한 액션 스타일의 조화를 통해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표현해낸다. 일례로 웬우와 장 리의 대련은 사랑의 시작을, 웬우와 샹치의 대결은 부자의 갈등과 화합 등을 격한 춤에 싣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단지 중국의 전통을 오마주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대적인 재해석도 보여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초반부 대마무 숲에서 펼쳐지는 웬 우와 장 리의 맞대결이 많은 이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전형적인 중국 영화의 한 장면이라면, 마카오 고층 빌딩 외벽에 설치된 대나무 가건물에서 샹치와 샤링이 텐 링즈를 상대로 격투를 벌이는 것은 대나무 숲이라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이소룡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동양인 히어로를 21세기에 소개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그간 마블 영화들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신선한 스펙터클로 무장한 것도 흥미롭다. 새로운 무기인 텐 링즈의 활용은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그 존재감은 토르의 묠니르 혹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에 비견될만하다. 이에 더해 동양 판타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용과 그에 맞대응하는 존재인 서양의 악마적 존재가 펼치는 대결은 같은 디즈니 작품이자 동양 문화권을 배경으로 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을 연상시키면서 마치 괴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색다른 쾌감을 선사한다.
문제는 영화가 새로운 히어로를 소개하는 두 번째 방식에 있다. 영웅 서사의 구조적 측면에서 샹치라는 캐릭터는 결코 MCU에 안착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샹치는 다른 영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아버지 죽이기 신화의 전형을 따른다. 주인공인 아들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해서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아버지의 뜻과 철학을 수용하고,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아버지를 꺾어야 한다. 실제로 샹치에게 웬 우는 그의 모든 기술, 힘과 뜻을 전수하면서도 자신의 방식을 아들에게 강제하는 두려운 존재다. 이때 샹치는 아버지를 꺾는 대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도 알려주었지만 그가 잠시 잊고 있었던 가르침으로 그를 설득하려 한다. 그래서 텐 링즈를 이용해 파괴적인 전투를 벌이는 웬 우 앞에서 샹치는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고 상대방까지 포용하는 어머니의 방식으로 대항한다.
그런데 이 부자 관계는 사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 <아이언 맨> 속 토니 스타크와 하워드 스타크, <토르> 시리즈 속 오딘과 로키의 관계를 연상시킬 정도로 익숙하다. 그래서 영화는 샹치-웬 우의 관계에 역사, 사회적 맥락을 덧붙이며 단순한 이야기를 확장시키고 다채롭게 변주한다. 그 중심에는 샹치의 조력자인 샹리와 케이티가 있다. 예를 들어 샹치의 동생이지만 아버지에게는 거의 없는 존재로 취급받고 오빠가 받는 교육도 공식적으로 허락받지 못했던 샹리는 전통적 가부장제를 전복하는 여성을 상징한다. 웬 우-샹치의 부자 관계 그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아버지 죽이기 신화를 변주하는 셈이다. 이 상징성은 마카오에서 거대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는 그녀가 아버지의 제국을 차지할 수 없다면 자신의 것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으며, 두 번째 쿠키영상까지 보고 나면 더욱 확실해진다.
한편 샹치의 절친인 케이티는 중국계 미국인(넓게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현재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초반부에 카메라는 중국말을 쓰고 중국 전통대로 생활하는 할머니, 미국인이고 영어를 사용하지만 사고방식은 중국인인 어머니, 그리고 외관만 동양인일 뿐 보통의 미국 사람인 케이티 간의 갈등을 비춘다. 웬 우 - 샹치의 부자 관계를 성공을 위해 이민을 선택한 부모 세대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자녀 세대의 대립, 가정과 사회 사이의 문화적 차이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아시아계 이민자 2세의 이야기로 간략하게나마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초반부 배경인 샌프란시스코가 골드러시와 미국 대륙 횡단 철도 공사의 영향 때문에 중국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한 첫 번째 도시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샹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아픔을 다룬 <블랙 팬서>와 궤를 같이 하는 면이 있다.
문제는 샹치, 샹리, 케이티가 각각 뜻하는 아버지 죽이기 이야기가 하나로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케이티의 이야기를 다른 주인공들과 하나로 연결시키기에는 감정적 유대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주인공 일행의 가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서사를 굳이 함께 붙여 놓을 공통분모가 부족하고, 케이티의 이야기는 중반부부터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유달리 겉도는 경향을 보인다.
두 번째 이유는 웬 우의 가족사나 텐 링즈의 역사에 관한 정보가 굉장히 단편적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필요한 순간에만 플래시 백의 형태로 이들의 과거사가 등장하다 보니 샹치나 샹리가 아버지를 기필코 막아 세우려고 하는 동기나 각오는 머리로 이해되는 선에서만 머무를 뿐,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다. 이는 마블이라는 프랜차이즈 차원에서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만다린의 존재와 텐 링즈라는 테러집단은 <아이언 맨> 시리즈에서 10년 전부터 꾸준히 등장하고 암시가 되었던 존재이기에 이처럼 빈약한 묘사는 팬들의 호기심과 갈증을 모두 해결해주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는 곧 양조위의 웬 우, 만다린이라는 빌런의 존재감이 히어로인 샹치를 넘어설 정도로 뛰어나게 느껴지는 이유로 이어진다. 부족한 감정적 유대와 가족사를 대신해 배우의 존재, 그의 카리스마와 여유로운 분위기만이 영화에 통일감을 부여하기 때문에 샹치에게 향해야 할 삼중의 서사로 쌓아 올린 스포트라이트마저 자연히 빌런에게 쏠리는 것이다. 그 결과 샹치의 데뷔전은 데뷔 자체로만 만족해야 하는 애매한 성공에 머무른다.
이에 더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확장되는 MCU의 세계관 역시 절반만 성공적이다. 물론 MCU만의 매력이 돋보이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아이언맨 3>에서 가짜 만다린으로 등장했던 '트레버 슬래터리(벤 킹슬리)'의 재등장이 대표적이다. 반쯤 정신이 이상한 것으로 이미 각인된 이 캐릭터는 전개 상의 구멍을 피해 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곤경에 처한 샹치 일행에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적재적소에 제공한다거나, 자칫 작위적이나 편의적인 전개로 보일 수 있는 대목에서도 그는 모든 것을 말이 되게 만드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빠지지 않은 MCU 특유의 유머 역시 예상외로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자칫 가벼울 수 있는 일부 캐릭터들의 변심에 최소한의 개연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앞으로 이어질 페이즈 4의 기반을 놓아야 한다는 과제를 수행하다 보니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는 내려갈 수밖에 없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텐 링즈라는 무기가 수천 년 간 존재했고 만다린이 천 년간 늙지 않았다는 점, 또 만다린의 존재를 누구도 알지 못했다는 본작의 의문점들을 일부러 해결하지 않는 게 대표적인 예시다. 마블의 다음 영화인 <이터널스>가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던 인류 문명의 숨은 전파자이자 수호자들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기에 이에 대한 복선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후반부에 장르가 히어로 영화에서 괴수물로 급격히 변하면서 히어로와 빌런의 존재감을 약화시키고 괴리감을 안기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급전개는 최근에 큰 화제를 모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예고편에서도 볼 수 있는 멀티버스와 우주로의 세계관 확장을 염두에 둔 전개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10여 년 전 복선 뿌리기에 급급하던 마블처럼 텐 링즈를 인피니티 스톤처럼 활용한 결과 이번에도 단독 영화의 완성도에 큰 부담을 안기는 셈이다. 이렇게 한 편의 영화로서도, 시리즈의 한 부속으로서도 뚜렷한 명암을 보여준 채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데뷔전을 마무리한다.
A(Acceptable, 무난함)
아직은 안갯속에 쌓여 있는 샹치와 마블의 미래
-
- 5월 1주 차 개봉작,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이번 주는 극장에서 개봉하는 기대작이 많지 않은데요.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마블 '닥터스트레인지'의 두 번째 이야기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하기 때문이지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신기하게도 대부분 5월 4일에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5월 4일은 매우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럼 5월 첫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
.
극장 개봉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126분
감독: 샘 레이미
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엘리자베스 올슨 등
개봉: 2022.05.04
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줄거리
끝없이 균열되는 차원과 뒤엉킨 시공간의 멀티버스가 열리며
오랜 동료들, 그리고 차원을 넘어 들어온 새로운 존재들을 맞닥뜨리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 속, 그는 예상치 못한 극한의 적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데….관전 포인트
끝없이 펼쳐지는 차원의 균열과 뒤엉킨 시공간을 그린 스릴러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이번 영화는 독보적인 연출력과 뛰어난 영상미로 선보이는 샘 레이미 감독이 합류해 더욱더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데요.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과, 멀티버스 소재인만큼 깜짝 카메오가 등장할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에 벌써 예매율이 88.3%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배드 가이즈
ⓒ 네이버 영화
개요: 애니메이션 | 미국 | 100분
감독: 피에르 페리펠
출연: 샘 록웰, 마크 마론, 크레이그 로빈슨 등
개봉: 2022.05.04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줄거리
작전 설계부터 금고 해제, 해킹, 액션, 위장까지
완벽한 팀플레이를 펼치는 자타공인 최고의 나쁜 녀석들이 한순간의 실수로 체포된다.
하지만 그들도 착해질 수 있다는 ‘마멀레이드 박사’의 주장으로
나쁜 녀석들은 바른 생활 갓생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이들은 다시 한번 자유의 몸을 위해 태어나 처음으로 바른 생활에 도전하게 되는데…관전 포인트
영화 <배드 가이즈>는 자타공인 나쁜 녀석들이 사상 초유의 바른 생활 프로젝트에 휘말리케 되면서
펼쳐지는 드림웍스 최초의 범죄오락액션 영화입니다. 북미에서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했고,
한국에서 진행한 시사회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인 작품입니다.
우연과 상상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일본 | 121분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후루카와 코토네, 현리, 나카지마 아유무 등
개봉: 2022.05.04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줄거리
‘메이코’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친구에게 새로운 연애 상대 이야기를 듣는다.
여대생 ‘나오’는 교수 앞에서 그가 쓴 소설의 일부를 낭독한다.
20년 만에 고향을 찾은 ‘나츠코’는 그토록 만나고 싶던 동창생과 재회하는데...관전 포인트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인 <우연과 상상>.
<우연과 상상>은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우연과 상상을 키워드로 펼쳐진 각기 다른 세 편의 이야기는 때로는 발칙하기도 하고,
때로는 관객들을 애틋하게까지 만든다.
스프링 블라썸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프랑스 | 77분
감독: 수잔 랭동
출연: 수잔 랭동, 아르노 발로아 등
개봉: 2022.05.04
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이 난 수잔은 극장 앞에서 연극배우 라파엘을 만난다.
함께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
모든 것이 따분했던 수잔에게 설렘과 함께 첫 번째 봄이 찾아오기 시작하는데...관전 포인트
수잔 랭동 감독은 15살부터 각본을 쓰기 시작했고, 20살에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영화는 제73회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되었고, 이후에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단면을 통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선보여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OTT 공개 예정작
안나라수마나라
ⓒ Netflix
개요: 드라마 | 한국 | 6부작
연출: 김성윤
출연: 지창욱, 최성은, 황인엽 등
개봉: 2022.05.06
스트리밍: Netflix
줄거리
꿈을 잃어버린 소녀 윤아이와 꿈을 강요받는 소년 나일등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미스터리한 마술사 리을이 나타나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뮤직 드라마
관전 포인트
<안나라수마나라>는 하일권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환상적인 마술과 음악, 감성적인 메시지를
예고하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요. '이태원 클라쓰', '구르미 그린 달빛', '후아유 -학교 2015' 등
섬세한 연출과 영상미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김성윤 감독이 참여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드롭 아웃
ⓒ IMDB
개요: 드라마 | 미국 | 8부작
연출: 마이클 쇼월터, 프란체스카 그레고리니, 에리카 왓슨
출연: 아만다 사이프리드, 나빈 앤드류스, 스티븐 프라이 등
개봉: 2022.05.04
스트리밍: 디즈니+
줄거리
그릇된 야망과 명성의 결과로 몰락한 엘리자베스 홈즈(아만다 사이프리드)와
테라노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어쩌다 단숨에 최연소 여성 억만장자에서
추락한 빈털터리가 되었을까?
관전 포인트
<드롭 아웃>은 테라노스 CEO 엘리자베스 홈즈의 실화를 드라마화한 작품입니다.
42번 노미네이트되고,그중 21번을 수상했던 <타미 페이의 눈> 감독 마이클 쇼월터가
메가폰을 잡으며 기대감을 높인 작품입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
- '맥켄지 포이' 인터스텔라 소녀, 이제는 할리우드 성인 배우
? 인터스텔라 소녀 '맥켄지 포이' 배우 소개 영상
머피 가 이제 할리우드 주연급 배우로 성장을 했다니!!
*결말포함 영화리뷰 아닙니다#맥켄지포이 #멕켄지포이 #인터스텔라
-
- 캡틴아메리카4, "그"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
2021. 04. 28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
*영상 타임라인*
00:00 이제 시작이다
00:43 캡틴아메리카4가 온다
02:34 1대 캡틴, 크리스 에반스
03:48 숙제타임
05:17 와칸다 포에버
06:05 제2의 블랙팬서
-
- 영화 <아바타: 불과 재> 예고편
[아바타: 불과 재] 예고편 공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선사하는 새로운 판도라로의 여정이 시작된다 불과 재로 뒤덮인 판도라의 저편, 12월, 오직 극장에서 만나보세요!🔥 [아바타: 불과 재] 12월 극장 대개봉 #아바타 #아바타불과재 #avatar #avatarfireandash
-
-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티저 예고편
"망했다 죽었어" 궁극의 수프를 찾아 떠난 고로 씨, 무슨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