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5-04-30 09:40:24
우주의 먼지임을 인정하지 않고 '나대는' 인간의 이야기
미키 17
이 영화의 배경은 비교적 간단하다. 사람들을 선동하는 정치적 세력이 있고, 그 세력과는 관계없는 삶을 살았지만 돈에 쫓겨 우주로 도망온 한 남자가 있다. 그저 사채업자에게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 제대로 설명서를 읽지도 않고 매일 같이 죽는 선택을 하게 되는 미키, 여기서부터 그의 삶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삶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죽음으로서 새로이 시작한다는 아이러니, 그를 보고 있자면 0이라는 숫자는 없다는 뜻도 될 수 있지만 다시 새로이 시작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키는 제로베이스의 인간의 표본 같았다. 그의 제로베이스 인생은 그의 제로에 가까운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삶을 이렇게 생각없이 사는 인간도 있다니,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었다.
1.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에
미키가 자신의 생명을 팔아 도망간 우주 행성을 가는 과정도 참 험난했다. 행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는 수많은 마루타 실험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의 쳇바퀴같은 죽음을 통해 그는 매일 새로이 태어난다. 그는 관념적 인간의 삶으로서는 죽은 것이 맞지만 과학기술이 너무 발전하다 못해 인간을 복제하는 기술까지 생겨버린 것이다. 그의 정신은 죽었지만 육체는 복사할 수 있게 되어 복사한 육체에 데이터화된 정신을 주입시켜 하나의 멀쩡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기억은 일종의 메모리와 같은 것이고, 몸은 프린터기에 복사되는 그런 개념인 것이다. 그런 개념으로 인간을 다시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의 존엄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이면 다시 태어날 것이기에 죽음이 더 이상 슬프지 만은 않은 일이 되는 것이다. 당장 내가 차에 치여 죽더라도 내일이면 나의 삶은 다시 시작될 것이기에, 하루하루 삶도 대단히 소중해지지도 않고, 매일 매일이 가지는 의미 또한 사라지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삶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시간의 유한성이다. 세상의 시간은 무한하지만 인간의 삶 속의 시간은 유한하다. 나의 육신이 다할 때까지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기 때문이다. 미키처럼 내일 죽어도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다면 지금 아니면 안되는 일 같은 건 없어진다. 삶에 대한 간절함과 기한이 사라지니 삶을 사는 낙이 없어질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무형의 가치들이 의미가 없어진다면, 인간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그저 존재로서 의미가 있지 않고, 미키처럼 도구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에 미키를 보면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한다. 애초에 미키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해진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성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뜻인데, 인간성이 상실해가는 인간의 세상에서는 상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니 케네스 마샬과도 같은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던 것이겠지. 선동과 옐로우 저널리즘이 판을 치는 그런 세상 말이다.
2. 연극적인 설정, 하지만 그래서 더 명확한, 하지만 그래서 더 진부할 수도 있는
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이 가진 나름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보여주는 세상 속 캐릭터들은 굉장히 단면적이다. 생각보다 입체적인 심리를 그리는 작품을 하는 감독이라기 보다는, 모든 인물이 존재 이유가 명확하다 못해 단편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도 있는데, 항상 그 지점을 인지하면서도 영화를 보는 중에도 내가 그걸 단점이라고 인지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미치자, 왜 그럴까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본다면, 그의 영화는 일종의 연극을 보는 것과 같아서, 캐릭터들의 깊은 심리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서사 안에서 역할이 가진 존재 이유가 명확하다. 빌런은 처음부터 끝까지 빌런으로 남고, 주인공은 자신의 퀘스트를 깨는 것에 집중한다. 모두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잘 짜여진 정말 각본 그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는 선인은 선인으로서 존재하고, 악인은 악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면서 한 번도 답답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매사 서사의 이유가 깔끔하니 의심할 필요도 없었고, 감정이입을 하면 되는 타이밍에 그저 느끼기만 하면 되는, 소위 어렵지 않은 영화를 만드는 데는 특화되어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항상 그의 영화에 흥미를 느껴왔었고 진부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공식이 따로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방식이 반복되다 보니, 분명히 재밌게 잘 보고 나왔고, 후련한데 뭔가 아쉬운 느낌이 남는 것은 이런 감독의 공식이 내 머릿속에 박혔기 때문일까. 이건 확실히 관점의 차이인 것 같다. 분명히 재밌게 보고 나왔음에도 한 켠의 아쉬움이 남는 것은, 감독의 스타일을 간파하게 되었다는 나의 오만 때문일까. 이 생각을 하는 내가 오만하긴 한 것 같지만서도 어딘가 아쉬웠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총평
인간이 가장 악한 이유가 이 영화에 다 있다. 어딜가든 인간이 가장 깨끗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행성에 가서도 침입자인 주제에 원주민을 더럽게 생각하는 그 오만, 하층민은 다이어트시키면서도 상류층은 스테이크를 먹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계급주의 가스라이팅의 향연, 이걸 보면 인간은 이렇게 모두가 종잡을 수가 없어 아직까지 살아남은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면 인간이 종교에 빠지는 과정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의 불안정성을 해소해줄 절대자를 언제나 찾아왔던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불안정성을 해소시켜준 사람 혹은 이전에 해소시켜줬다는 전해지는 사람 등의 말을 잘 믿어버리고 이들이 구원해줄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절대자의 말을 맹신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삶을 구원할 수 밖에 없는 건 본인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며 그 우주선에 탄 사람들은 모두 사이비종교에 홀린 사람들 같았고 그 중 미키의 여자친구와 같은 반란세력은 그 종교의 허점을 알고 비로소 자신을 삶을 주체적으로 보기 시작한 세력 같았다. 마치 사이비종교의 실체를 알고 도망치는 사람처럼. 다만, 이들의 경우 우주선은 타버렸고 지구도 별반 희망을 걸 게 없으니 지도자는 몰아내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겠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항상 몇 가지 키워드가 생각나는데 하나가 해학이다. 그의 작품은 사회현상을 해학적으로, 재치 있게 다룬다. 이번 영화도 그랬다. 그래서 다음 영화도 개봉하면 보러는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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