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2025-04-22 20:19:30
순간의 의미, <곤돌라>
영화 <곤돌라> 시사회 리뷰
영화 <곤돌라> (바이트 헬머, 2025)의 배경이 되는 곳은 한 산골이다. 이곳에서 곤돌라는 사람, 가축, 물건
등 다양한 것을 실어 나르며 마을과 마을 사이를 연결한다. 이곳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연결고리인 곤돌라는 나아가 곤돌라의 승무원인 ‘이바’와 ‘니노’의 사이를 연결한다. 두
사람은 곤돌라의 위쪽 정류장의 체스판으로 함께 체스를 둔다. 곤돌라가 운행을 해야 위쪽 정류장으로 이동해
말을 옮길 수가 있고, 곤돌라가 운행을 하면 두 정류장의 중간 지점에서 두 대의 곤돌라가 교차하며 두
사람이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을 태우고 다른 한 사람을 엇갈려 지나가던 영역은 어느새 두 사람이
함께하는 데이트 장소가 된다.
이러한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곤돌라를 소유한 남성이다. 그는 자신의 곤돌라가 이윤의 창출 수단이 아닌 연결과 연대의 장이 되는 것에, 또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이바가 니노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에 불만을 품는다. 하지만 오해를 넘어서며 단단해진 이바와 니노는 그의 사적인 생산수단인 곤돌라를 탈환하여 주민들을 위한 공공재로 탈바꿈하는 데에 성공하고, 그가 곤돌라로 축적한 이익을 바로 그 곤돌라 위에서 흩뿌린다. 그리고 곤돌라의 높고 얇은 줄 위에서 뛰어내려 함께 단단한 땅에 발을 붙이고 걷는다.
영화에 대한 인상은 간단하게 ‘귀엽다’는 말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만화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이 이러한 인상을 만든다. 상황에 맞는 소품과 코스튬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고, 거대한 장치가 곤돌라 레일에 뚝딱 설치된다. 인물들은 말 대신 표정이나
몸짓, 비명, 웃음 등을 활용해 감정을 표현한다. 이러한 연출은 현실에서 조금 붕 떠 있는 듯한 동시에 포근한 느낌을 주며 작품 전체의 톤을 잡는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 덕에 다소 허무맹랑한 장면들도 ‘영화적 허용’의 범주 안에 들어가며 웃음과 감동의 요소가 되어 준다.
대사 없이 표현되는 두 사람의 감정과 관계 변화, 그리고 영화의 전개에 따라 변화하는 곤돌라의 의미 등을 생각하며 보면 더욱 재미있는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영화 <곤돌라> 시사회에 참석 후에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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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은 어떻게 거장이 되는가?
이 시사회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천재에 대한 일화는 언제나 대중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가 다다른 '거장'의 지위가 눈부셔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러한 천재들이 그 나름대로의 탁월한 방식으로 한 분야의 새 지평을 여는 순간들이 짜릿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들의 남다름은 매력적이고, 그들의 열정은 경탄을 자아낸다. 대개 그들의 삶에는 혁신이 있고, 약간의 과장을 덧붙이자면, 그 삶의 흐름은 혁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그러한 천재의 반열에 오른 거장 중의 하나다. 그가 영화에 담아낸 음악들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그의 이름을 들어 본 일이 없더라도 그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을 것이다.(사실, 내가 그랬다.) 거친 황야 너머로 울려퍼지는 팬플루트 소리라든가, 낯선 남미 땅에서 울려퍼지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오보에 연주('넬라 판타지아'라는 음악으로 더 알려져 있다.)는 한국인들의 귀에도 너무나도 익숙한 곡들이 아닌가. <시네마 천국>, <황야의 무법자>, <피아니스트의 전설> 등 제목만 말해도 '아!'하고 탄성이 절로 나오는 영화들 역시 그의 음악을 말미암아 빛을 발했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엔니오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불후의 명곡들을 만들었을까? 우리는 운 좋게도 오는 7월에 나오는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에서 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거장의 삶을 추적하며 그가 음악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조명한다. 그와 동시에, 거장이 거장으로 불리기까지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그는 천재이자 혁신가이고, 또 한편으로는 한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낸 개인이기도 하다. 천재를 감히 평범하다고 일컫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의 삶은 분명 눈부셨지만 사람다운 구석이 있었고, 바로 그 점이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스크린 너머에서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거장은 그저 거장으로 태어나 거장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끝없는 노력과 열정, 실험 정신, 그리고 좌절을 말미암아 진정한 '마에스트로'로 거듭난다.
조용하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다던 그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혹은 정해진 길만을 걷기를 거부했다. 트럼펫 연주자가 되라는 아버지의 말을 어기고 작곡가가 되었고, 현대 음악을 경시하던 기존 클래식 학계에 기꺼이 반기를 들었다.
그는 나아가 그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상업적'이며 음악의 고유한 가치를 떨어트린다는 평을 받던 영화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가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을수록 클래식계에서의 비난은 거세어졌지만 그는 꿋꿋이 그의 길을 걸었고, 마침내는 클래식계와 영화계 양쪽 모두에게서 인정 받는 음악가이자 영화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언제든지 거만해질 수 있었고, 언제든지 그가 뿌리를 둔 고전 음악계나,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영화 음악을 뿌리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젊은 날의 그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매순간을 절실하게 살았다. 그는 혁신과 변화, 새로움을 꿈꾸는 자였지만 그와 동시에 음악 선배들이 수 백년에 걸쳐 전해 온 규칙을 계승하고자 했고, 바로 이 점이 그를 한 사람의 위대한 음악가가 되게 했을 것이다.
나는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내로라하는 작곡가들의 이름이나 아주 단순한 화성학이니 뭐니 하는 음악 용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사실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그의 삶은 충분히 눈부시고, 그가 기울인 탁월하고도 성실한 노력들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 동안 나는 나의 삶은 어땠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그처럼 천재가 아니고 그만큼 탁월하거나 성실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매일매일을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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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삶 뿐만 아니라 그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영화관에서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시간이 난다면 가능한 음향 시설이 좋은 시설에서 마음껏 그의 음악을 즐겨보는 것도 이 영화를 즐기는 탁월한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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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대아이 - 모성애, 성장 그리고 정체성
줄거리
대학교에서 늘 쓸쓸한 모습으로 혼자 공부하는 그를 만난 '하나'
둘의 만남은 우연이였으나 둘의 사랑은 운명과도 같았다.
하나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그
그는 늑대였지만, 하나는 그런 그의 모습도 사랑했고 둘은 동화같은 사랑을 나누었다.
그와 함께 보낸 하룻밤에 나은 두 아이.
눈 오는 날 낳은 '유키'와 비 오는 날 낳은 '아메'
그러나, 그는 어느 날 죽게된다.
혼자 아이 둘을 키우게 된 하나는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시골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 된다.
아이들은 아빠와 마찬가지로, 늑대와 인간이 섞인 늑대인간이였고
처음에는 사람들과 크게 접하지 않으며 지낸다.
하지만, 유키는 성장하며 학교에 가고싶어하게 되고
하나는 그런 유키를 학교에 보내게 된다.
그런 유키와 달리, 어릴 때 부터 유키와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아메는 학교보단 집에 엄마인 하나와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한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하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슬슬 선택하게 된다.
감독
이름 : 호소다 마모루
필모그래피 :
늑대아이, 썸머 워즈, 시간을 달리는 소녀, 괴물의 아이, 미래의 미라이, 원피스 극장판 6기 등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중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만한 감독 중 한명으로,
신카이 마코토 보다 작화는 좀 떨어질지언정(좀더 부드럽고 가벼운 듯한 작화) 스토리에선 밀리지 않는다.
이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2012년을 기점으로 갈리는데,
2012년 늑대아이 시기에 늦은 나이에 득남을 해서, 그 시기부터는 영화가 대체로 가족간의 이야기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그 이전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같은 경우는 청춘에 포커스를 두어,
그만의 여름세계를 창조해냈다.
대체로 작화가 신카이 마코토에 비해 떨어진다고 하지만 머리카락 한올 한올 휘날리는 이런 디테일 함이 아닌 밸런스 있는 작화를 선호해서
뭔가 스케치 하는 듯한 느낌의 작화를 선호한다.
이 감독이 연출한 작품 들은 배경 작화나 명암 효과는 균형이 잘 맞아서 보기 편하다는 느낌을 잘 받는다.
총 평
★★★★☆ 9.0/10.0
-짧은 평가-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리뷰할 때, 애니라고 하는 것이 있고 영화라고 말하는 것이 있는데,
두 가지로 분류하는 기준은 작품성을 가지고 종종 이야기합니다.
이 작품은 영화의 가치를 가지며, 애니메이션이란 선입견을 그냥 깨부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득남을 한 시기인 2012년 늑대아이를 분기점으로 작품세계가 갈려나갑니다.
과거는 청춘과 그 시절의 여름을 예찬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현하지만,
2012년 이후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이을 가족간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관계와 모성애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도 큰 틀로는 주인공과 아이들의 내적 성장을 심도있게 잘 다루었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많이 다르지만, 늑대아이만을 보면은 왜 이 감독이 포스트(차기) 하야오 라는 평가를 받는지는 충분히 이 작품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여운이 적절히 남는 결말-
결말을 보면은 오묘합니다.
따뜻하며, 춥고, 달달하며, 쓴 맛이 올라옵니다.
유키와 아메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서로 떠납니다.
유키는 인간에게 섞여 지내는 것을 선택하며 떠나고, 아메는 자신의 본질적인 거주환경인 야생에서 살아가는 것을 택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하나인 이유가,
다른 가족영화들과 달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난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성장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외적 모습이 변하는 것도 있지만,
내면의 모습이 더 성숙해진다는 의미도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내적 모습의 성장과 이상적 어머니상을 그리며, 영화를 전개합니다.
도시로 떠난 유키와 야생으로 떠난 아메, 그 뒤에는 홀로 남은 하나를 보여주는데,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며, 하나는 아이들의 아버지를 잠시 생각하며, 영화는 아메가 다 자란 늑대가 된 모습과
하나의 모습, 유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하나는 혼자 시골에 남게 되었고, 아이들은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게 되며,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됩니다.
영화가 그저 행복한 결말도 아니고, 불행한 것도 아닌 보는 이의 관점에서 다 다르게 느껴지게
장치를 설정한 것은 정말 일품이였습니다.
그냥 아이들과 엄마는 행복하게 잘 지냈다에서 그치지 않고, 한 술 더 떠서,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났다.
그 과정에서 엄마의 품을 떠나며, 엄마가 할 역할을 다 했고, 이제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하러 갔다.
라고 하며, 아이들의 관점으로는 희망찰 수도 있고, 부모인 하나의 관점에선 자식을 놓아주는 심정이다 보니,
아쉽거나 씁쓸한 느낌이 잘 남게 합니다.
-따뜻한 이야기 속에 내재된 고통-
영화를 보면, 유키와 아메의 엄마인 하나는 영화 내내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묵묵히 참으며 두 아이를 키웁니다.
영화는 따뜻한 이야기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냥 따듯하기만 했으면, 이정도 고평가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 어머니의 심정이 잘 들어나며, 아이들의 갈등과 서로 성장함에 따라 갖는
서로 다른 주관으로 인해 아이들은 서로 다른 미래를 선택하며, 부모를 떠나는 이야기까지 그려내었는데,
이 부분에서, 하나는 진짜 헌신적이며, 가장 이상적인 부모라 말할 수 있을 만큼,
홀로 아이를 키우며,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참고 버티며, 아이들을 키우는데, 영화에선 이 고통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 고통을 보는 우리에게 잘 전달합니다.
아이들의 성장도 마찬가지로
유키는 자신이 늑대라는 것을 들키지 않게 하기위해, 최대한 사람인척 하며 학교를 다니고
그러면서 인간으로 살려 하며,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동생 아메와 갈등이 생기며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갈등도 잘 보여주었습니다.
-깔끔한 연기, 적당한 음악, 절제된 연출 = 차기 '미야자키 하야오'-
근 10년간 나온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 가장 절제된 연출을 보이며,
적당한 음악과 함께 목소리 연기를 잘 보여준 작품을 뽑으라 묻는다면,
단연코 바로 이 작품을 말할 것 입니다.
너무 과하다하게 생각하지 않게 딱 끊은 절제된 연출을 선보입니다.
이게 상당히 힘든게, 이런 가족영화에서 정체성을 추구하며 극대화하기 쉽상인데,
이 작품은 그 극대화를 최소화하며, 더욱 인간적이게 그리려 애썼습니다.
그 부분이 영화 곳곳에 드러나며,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적당히 절제된 듯 하며 극의 분위기를 끓어올리는 음악은 최고였다가 아닌
딱 좋았다. 수준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음악이 작품을 뛰어넘는게 아닌 같이 잘 화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유키와 아메의 연기력은 준수했으며, 미야자키 아오이의 하나 목소리 연기도 일품이였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제작진과 성우를 한 사람들을 봤을 때,
이 사람이야 말로 차기 미야자키 하야오다. 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절제된 연출을 하며, 성우 기용을 하지 않고, 배우를 섭외하여 주연급 캐릭터 연기를 해서
성우들의 오버하는 톤이 아닌 현실적인 톤을 더욱 잘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인물의 성장-
위에서 계속 언급했듯, 인물들의 성장에 초점이 잘 맞춰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핵심 키워드를 꼽으라 하면, 싱글맘, 성장, 늑대, 등 많겠지만 가장 큰 주제를 내포한 단어는 정체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사람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졸업하여
어느 평범한 사람들 무리에 섞여 지내고 싶어하는 유키와
자신은 늑대라며, 늑대를 위험한 짐승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야생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늑대의 삶을 추구하는 아메
둘은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도 달랐다.
외향적인 것을 추구하며, 활기찼던 유키. 내향적이며, 늘 엄마의 그늘에서 지내던 아메.
서로 다른 둘의 모습을 보여주며, 중재자의 역할로 엄마가 있었으며
아이들은 늑대지만, 여느 일반 가정과 다를 거 없이 갈등과 행복이 공존하는 집이라는 걸 잘 보여주며
인간과 똑같이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커피처럼 향은 나를 편안하게 하며, 마실 때는 처음에는 쓴맛과 신맛이 느껴지지만,
혀에 닿았을 때는 씁쓸함을 느끼고, 목에 닿았을 땐 커피 향과 따뜻함에 내려가는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이상적과 현실적 두가지를 잘 늑대아이인 아메와 유키, 엄마인 하나에 잘 대입하여
성장이란 이야기를 심도있으며, 가족들이 쉽게 접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큰 칭찬을 합니다.
-관람객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는 초반의 전개와 설정-
이 영화의 유일한 허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두가지입니다.
초반에 갑작스러운 하나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늑대의 죽음 그리고
너무나도 이상적인 어머니.
우선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 작품에서 극의 분위기를 정 반대로 뒤집으며, 큰 서사적 흐름의 장치로 이용되는데,
그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 급하게, 그냥 어영부영 매꾸는 듯 합니다.
그리고 너무 헌신적이기만 한 하나의 모습은 작품 이입에 오히려 몰입이 힘들기도 합니다.
하나가 화를 내거나 싫어하는 내색이 하나도 없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몇가지 점을 제외하곤 현 시점,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상당히 퇴보하는 요즘시기, 근 10년간 나온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
제대로 영화라고 불러볼 법한 작품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가는거니? 난 아직 너에게 아무것도 해준게 없어…"
(行くの?私はまだあなたに何もしてあげたことがない。)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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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적인 세계에 맞서 자신을 지키는 일
영화 <문라이트>를 두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만을 한다는 것은 작품을 겉도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문라이트>는 서정성 짙은 퀴어 영화로, 이 영화가 서정성 짙은 퀴어 영화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있습니다. 때문에, 굳이 저까지 이미 나와있는 수많은 좋은 평론들위에 비슷한 한마디를 거드는 것보다는 비록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한 훌륭한 작품은 답을 정해놓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해주며, <문라이트>는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아도 이미 다양한 화두를 제시하는 훌륭한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사회, 방임된 채로 자라는 빈민가의 아이들, 다름의 이유로 받는 차별의 시선과 폭력, 그리고 사랑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문라이트>를 이야기할 때 다룰 중요한 이야기들은 많지만, 개인적으로 눈길이 갔던 이 영화의 화두는 ‘정체성’입니다. 타인의 시선이 정해주는 ‘나’, 내가 정의하는 진짜 ‘나’에 관한 정체성말입니다.
영화는 이 정체성에 대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졌습니다. Nomen est omen, 이름은 곧 운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 <문라이트>는 주인공 샤이론의 성장과정을 세 시기로 나누어 보여주는데, 이 세시기에 샤이론은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세 가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주인공 ‘샤이론’과 각각의 삶을 보자면, 각각의 샤이론과 그에게 붙여진 이름을 통해서 샤이론이 폭력적인 세상속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수 있을 것입니다.
ⅰ, Little
유년기의 샤이론은 가장 작은 존제, ‘Little’이란 이름으로 불려집니다. 덩치도 작고 키도 작은 샤이론은 또래 아이들에게 쫓겨 마약 소굴인 15번가로 도망쳐 온 후 어두운 폐가에 숨어듭니다. 캄캄하고 어두운 폐가로 친구들의 괴롭힘으로부터 숨은 샤이론. 그리고 그런 폐가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돈 후안(마허샤마 알리)입니다. 이 시기 샤이론은 특히 말이 없습니다. 가장 작은 존재이자 약자인 샤이론이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침묵을 지키면서 세상을 관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Little’은 그의 또래들 사이에서 샤이론을 부르는 별명인데, 이 별명은 또래들보다 덩치가 작은 샤이론을 빗대어 비하하는 말입니다.
그 와중에 오직 한 사람만은 샤이론을 낮춰 부르지 않고 그의 이름을 있는 그대로 불러줍니다.
케빈
그는 샤이론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Little’이라고 부르지만, 그 목소리는 어떤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고, 우정의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샤이론의 친구 케빈입니다. 케빈은 영화 <문라이트>에서 샤이론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인데, 이 시기 케빈이 샤이론에게 해준 “왜 당하고만 있어?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지.”라는 말은 샤이론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돈 후안.
돈 후안과의 만남은 첫 만남이후로도 계속됩니다. 유년기 시절 돈 후안과의 짧은 만남과 교류는 영화 <문라이트>를 관통하는 주제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특히 해변가에서 둘이 나눈 대화는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탐구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유년기의 아주 짧은 시간동안 만난 돈 후안은 아버지가 없는 샤이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며,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오는 세상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마.”
D : “한번은 어떤 할머니를 지나쳐 가고 있었어.”
D : “미친 듯이 들떠서 뛰고 있는데, 그 할머니가 나를 잡고는 말했어.”
D : ‘달빛을 쫓아 뛰어다니는구나. 달빛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너도 파랗구나. 이제 널 그렇게 불러야겠다. 블루.’
C : “그럼 아저씨의 이름은 블루인가요?”
D : “아니...”
D :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마.”
ⅱ, Chiron
청소년기의 샤이론입니다. 샤이론은 이제 ‘리틀’이라는, 자신을 놀리는 말을 거부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인 ‘샤이론’으로 불려지길 원합니다. 샤이론은 성장했고, 이제 세상 모든 일에 침묵으로만 일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르고 약해보이는 몸은 여전합니다. 때문에 차별의 시선과 폭력앞에서 샤이론의 저항은 무력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 이름, ‘샤이론’이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샤이론. 그것은 샤이론의 이름이긴 해도 샤이론이 선택한 이름은 아닙니다. 때문에, 샤이론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성장의 과도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중반에 있기에 적합할 것입니다.
케빈
이 시기 만난 케빈은 샤이론과 깊은 관계로 진전됩니다. 우정처럼 보였던 케빈과 샤이론의 관계는 이 시기에 애정으로 변합니다. 샤이론에게 학교에서 관계를 맺었다며 가볍게 말하는 케빈의 눈빛은 가볍고 철없으며, 목소리와 성대모사는 경박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남성성을 과장하여 드러내어, 또래들에게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행동일 것입니다. 하지만, 샤이론을 대할때만큼은 케빈의 눈빛은 깊고 진지합니다.
그리고 다시 학교. 이 시기 샤이론을 괴롭히는 동급생, 테렐은 케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옵니다.
블랙.
학교의 화단 앞. 테렐은 궁지에 몰린 초식 동물을 공격하려는 맹수처럼 누군가를 응시하며 그 누군가를 중심으로 한바퀴를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테렐이 이빨을 들어내고 달려든 것은 샤이론이 아닌 케빈입니다.
“이봐 케빈. 저 새끼 갈겨. 패버려.”
“그래 저 호모새끼말이야.”
테렐은 겁먹은 케빈을 다그칩니다. 케빈의 앞에 서있는 것은 샤이론입니다. 케빈은 테렐과 그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는 반면, 샤이론은 고개를 높이 들고 그들 앞에 당당하게,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샤이론은 케빈에게 맞을때마다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지만 계속해서 자세를 고쳐서 똑바로 일어서서 자신을 향한 폭력과 차별의 시선에 마주합니다. 아마 이 순간에, 샤이론은 이제 자신이 겪은 아픔의 크기만큼 성장했을 것이며, 자신의 진짜 이름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블랙. 냉수에 얼굴을 담았다가 고개를 들어올린 샤이론의 모습은 말 그대로 블랙입니다. 상처에서는 선혈이 붉게 빛나고, 피부는 검정색이지만, 그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투영되는 샤이론의 영혼이 가진 색은 더없이 맑고, 밝게 빛납니다. 그의 빛나는 눈빛에는 순수한 결연함과 용기가 녹아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자신의 운명을 찾은 것처럼, 그의 눈빛은 진중합니다.
ⅲ, Black
샤이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고, 해야 할 일을 하기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테렐을 향한 폭력은 단순한 복수의 감정도 있지만, 케빈을 위한 희생이자 용기이기도 합니다. 케빈은 자신을 향한 적대감을 보이는 세상과 시선에 주눅들어 자신을 감추는데 급급했던 반면, 샤이론은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했고, 케빈을 위해 기꺼이 용기를 냈습니다. 그래서 당시 경찰에게 연행된 샤이론과 케빈이 나눈 시선에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세상과 맞선 자’와 그러지 못한 자의 감정이 녹아있습니다. 케빈의 시선에는 어떤 분함이, 샤이론의 시선에는 흐릿한 안정감과 평화가 언뜻 읽히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샤이론은 이젠 완벽한 성인이 되었고, 이 시기는 ‘블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시작하는 한편의 꿈. 유년기 시절 ‘폴라’가 샤이론에게 했던 말, “쳐다보지 마!”라는 고함과 함께 잠에서 깨며 블랙의 삶이 스크린에 나타납니다. 꿈에서 깬 블랙은 세면대에 받아놓은 얼음물에 얼굴을 담았다가 꺼내는데, 이때 그의 피부는 달빛이 아닌 인공 조명의 빛을 받아서 푸르게 빛납니다. 이 두 개의 컷은 샤이론이 더이상 과거와 같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습다. 이 두 장면은 자신의 검은 피부를 인공 조명의 푸른 빛으로 물들이는 ‘부정’의 감정을 의미합니다.
이 시기에는 특히 푸른 빛을 뒤집어 쓴 샤이론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푸른 빛은 그의 본래 색위에 덮어 씌워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는 그가 가진 본래의 피부 색이 남아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겉모습을 근육질로 다부지게 만들어도 오랜만에 만난 옛 사랑과 엄마의 말 몇마디에 눈물을 흘리는 그의 변하지 않는 여린 내면처럼, 지워질 수 없는 그의 검은 피부색 위에 블랙은 푸른색을 덧칠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이름.
흐릿하게 보이는 잔상. 푸른 바다, 푸른 달빛. 도대체 누가 푸른 달빛아래에서 흑인아이들도 모두가 푸른 빛을 낸다고 했던가요? 아이들은 푸른 세상에서 모두가 자신의 색을 지키고 있습니다. 당연스럽게도, 푸른색이 그보다 더 짙은 검정색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는 것이죠. 이 잔상은 샤이론이 점차로 세계속에서 자신의 색을 되찾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가 되찾은 색은 그의 이름이 됩니다. 그의 이름은 누군가가 지어준 것이지만, 동시에 그가 선택한 이름입니다. 바로 케빈이 샤이론을 부르곤 했던 별명, ‘블랙’입니다.
영화는 샤이론의 세 시기를 보여주며 그의 성장과정을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시기, 샤이론을 칭하는 이름의 의미는 모두 다릅니다. ‘리틀’은 샤이론을 둘러싼 세계가 정해준 이름. ‘샤이론’은 태어나기전부터 부모가 정해주었으며, 샤이론 역시 옳다고 생각하는 이름. ‘블랙’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어준 이름인 동시에 자신이 살아가며 선택한 이름입니다.
영화 <문라이트>가 흥미로운 점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자신에게 적대적인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사랑’의 역할이 크다는 데에 있습니다. 리틀은 돈 후안과 테레사의 사랑으로 샤이론으로 성장했고, 샤이론은 케빈과 테레사의 사랑으로 성장했으며, 블랙은 폴라와 케빈의 사랑으로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정의하는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며, 그들의 사랑속에서 위로받고 한 뼘 더 성장해갈 것입니다.
푸른 빛의 상흔, 지워지지 않는 블랙
이 영화는 어린 리틀을 다시 호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푸른 달빛아래, 푸른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 온통 푸른 세상속에서 홀로 서 있는 아이. 온통 푸른 세상이지만, 아이는 그 안에서 여전히 자신의 색을 유지하고 꼿꼿이 서있습니다. 군데군데 푸르게 빛나는 아이의 피부는 아름답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의 푸른 빛이 아이가 가진 검은색의 피부위에 침투해있기에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아니, 그렇기에 아름다울지도 모르죠. 검은 피부위에서 푸르게 빛나는 것은 세상이 애정어린 손길로 샤이론에게 칠해준 아름다운 반사광이 아닌, 세상이 폭력적으로 모두에게 칠해버린, 일종의 상흔입니다.
때문에, 달이 세상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칠해놓은 푸른 빛과 자신의 본연의 색을 함께 갖고 있는 샤이론의 모습을 담은 <문라이트>는 폭력적인 세계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지켜내는 인간상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온몸에 수많은 상처를 입고도 세상과 당당히 마주하는 인간의 모습을 이보다 서정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문라이트>의 이전과 이후로 한동안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데미안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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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 속의 썸머에서 현실의 어텀으로.
마크 웹의 '500일의 썸머'는 조셉 고든 레빗과 조인 데이셔넬을 중심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처음부터 너무 달랐던 그들이 언제나 그 계절에 머무를 수 없는 시간 같은 사랑을 담았다. 겹겹이 쌓였지만 조각조각 흩어진 500일의 시간은 어떤 계절을 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사랑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부분들과 그렇지 않은 부분들을 톰과 서머의 관계를 통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듯하다.
남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같은 계절에 있지만 사뭇 다른 온도에 머무는 톰과 썸머의 모습을 보여준다. 썸머에게 운명을 느끼며 조금씩 다가가는 톰, 자신만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는 썸머에 좌절감을 느낀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지나가고 어떤 계기에 의해 관계가 진전되며 그들은 시작하게 된다. 온도는 다르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같아서 좋은 기억이든, 좋지 않은 기억이든 함께 할 수 있었다. 톰의 500일 중에 어떤 날도 썸머가 빠지지 않지만 함께할수록 환상이 조금씩 벗겨지며 현실로 바뀌며 그 운명은 조금씩 깨져간다. 하지만 그 운명이 깨지는 것을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엔 아직 어리석었기에 한참 후에 깨닫게 되었다. 운명은 없지만 우연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기에 계절이 바뀌면서 여름을 놓아주고 가을을 맞이한다. 링고 스타보다 건축이 더 잘 어울리는 계절로.
지극히 톰의 관점으로 비치는 이 영화는 서머를 나쁜 사람으로 규정한다 라기 보다는 그때 나이의 미숙했던 톰이 서머를 환상 속에 가두어놓고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특히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는 장면이 그를 뒷받침한다. 늘 나서지 않고 소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고 가볍다고 생각했고 결핍을 채우기 위해 톰을 이용한다고 생각했지만 깊고 진했던 썸머의 사랑을 다 이해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썸머의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장면을 통해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 자신에 취해있다는 것이 썸머의 시선에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만 남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시작하는 만큼 그의 시선에 가려진 여자 주인공의 시점도 궁금해진다. '500일의 톰'을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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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하고 깔끔한 거장의 쇼쇼쇼
아뿔싸. 노트북 충전기를 놓고 왔다. 노트북은 챙겼어서 충전기는 무조건 있을 줄 알았다. 오랜만에 들어간 맥주집을 들어간다. 새로운 장소를 들어가도 '큰일 났다'는 생각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배터리를 미리 충전시켜 놓을 걸. 20 퍼. 21 퍼. 왔다 갔다 하는 배터리에 내 마음도 초조해진다. 빨리 쓰고 끝내야 하는데. 집에서 마무리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기에 나 자신을 믿기 어렵다.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키보드를 연다. 가게의 음악 볼륨은 너무나도 컸다. 난 맥주집 아래에 다리를 꼬고 걸터앉아서 급하게 이 글은 이런 내용을 넣어야지 메모를 쓰고 있다.
누가 이런 나의 일상을 영화로 만들어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칠칠치 못함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랬으니 이는 충분히 코미디 영화로도 나올만하다. 또 나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하니 뮤지컬 영화로도 각본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아. 서스펜스도 있다. 왜냐면 맥주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탄산음료를 마실까? 무알콜 맥주를 마실까?'였으니 인생의 딜레마를 묘사하기도 탁월하다. 영화가 좋은 이유가 뭘까? 그건 모두의 인생사 한 구석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인 것 같다. 이런 나의 일면도 영화화시킨다면 사람들이 공감할 구석이 많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소설도 그렇고 시도 그렇고 뭐든 다 똑같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18퍼센트, 17퍼센트, 그렇게 배터리가 줄어드는 것을 구경하자니 속상하기도 하다. 그레도 매 주말마다 꾸준히 해왔던 것을 안 하기엔 이게 나의 영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건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과거에 있던 일이라도 충분한 메시지와 함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 나 역시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 글을 쓰려고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원작이 뮤지컬인 이야기를 상영관으로 가지고 왔다. 거장이 다시 만든 고전의 뮤지컬을 디즈니 플러스에서 재생해보도록 하자.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다
주인공 토니는 근본 없는 양아치다. 영화 초반부, 주인공의 무근본을 자랑하듯 패싸움을 하는 토니의 모습이 보인다. 틈만 나면 벌어지는 패싸움에 묘수를 던지는 경찰. 그것은 무도회장에 두 패를 불러 파티를 벌이는 것이다. 토니는 이 패싸움 일당 중 하나였던 제트파의 일원이었다. 제트파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무도회장에 출석한 토니. 그의 마음속에는 맨날 두드려 패고 때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꾸고 싶은 욕망이 있다. 반대 샤크파에서도 참석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다. 바로 샤크파 두목의 여동생 마리아다. 마리아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살던 사람이다. 불쌍하게 살던 과거에서 벗어나 뉴욕에서의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있기도 하다. 이 둘은 파티에 참석한다. 그리고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운명이란 이런 것인가. 맘에 드는 사랑을 찾아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고 싶지만 삶의 장난질이 그렇듯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즐겁게 노는 것도 잠시, 두 갱단의 패싸움으로 무도회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영화는 이 아수라장이 된 무도회장의 다음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았다. 토니와 마리아는 두 집단의 갈등 한가운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존재가 되는데, 이 분노와 혐오가 점철된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인물들의 고르는 선택지가 영화의 소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거장이기 때문에 가지고 온 소재와 이야기
사랑이라는 소재는 초콜릿 같은 느낌이다. 이 사랑이 소재로서 접근하기 쉽지만 다양하게 해석하면 깊은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기억과 사랑 사이의 불가분적인 속성, <노트북>에서의 운명론적인 사랑이야기 등이 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이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다루는 사랑은 사실 살짝 뻔한 감이 있다. 사랑은 우리의 삶 속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가치가 아니다. 열등감도, 분노와 혐오도 사랑 덕에 이겨낼 수 있는 거 아닌가. 영화는 이때 사용되는 '사랑'의 가치를 키워드로 삼았다. 또 이를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도 있다. 거장은 두 집단 사이의 혐오와 두 주인공의 사랑을 동시에 제시하며 둘의 쉬운 비교를 돕는다. 뭐. 이건 사실 내가 글을 쓰다 시나리오를 집필한다고 해도 전개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런데 스필버그는 역시 거장의 클래스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같은 소재를 쓰더라도, 자기만 할 수 있는 탄탄한 뮤지컬 연출로 사람들에게 능력을 선보였다.
이 외의 소재를 다룬 부분도 있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미국(내지는 세계)에 있는 갈등은 필연적으로 2022년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영화 안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도시 문제가 제시된다. 또 인종차별, 빈부격차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클래스가 있는 감독답게 이를 무리 없이 소화하기는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한 수많은 원작들
맞다. 이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변조한 서사다. 두 집단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나 첫인상에 반한 남녀 주인공이 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후반부의 이야기 전개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을 따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영화 자체가 1961년대의 영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또 원작 영화 자체가 뮤지컬을 기반으로 갖고 왔다. 이 수많은 원작들을 다 볼 필요가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2022년의 영화를 한국인이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미국을 공부해야 할 필요도 없거니와 작품의 매력이 복고 구현이 아니라고 보는 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느껴지는 단점이 있어 원작을 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의견이 있을 수는 있는데 난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 소재를 갖고 와 리메이크를 할 것이면 그것까지 다 고려해야 했던 것 아니겠어? 무슨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단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 논외로 친다)
가슴이 웅장 해지는 뮤지컬 연출
뮤지컬 영화는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이 영화 역시 춤추는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춤추는 인물들이 영화의 강점이기도 하다. 뮤지컬 신에서 감독은 그동안의 연출 노하우를 보여주는 듯했다. 첫 장면에서 두 패거리의 싸움 연출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다음 무도회장 신에서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춤추는 동선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의상의 색감, 음악의 멜로디 라인, 주인공의 동선 배치까지 탁월한 부분이 많았다. 이 부분이 이런 영화가 비슷하게 많이 나왔음에도 작품의 고유한 개성을 갖는 지점이기도 하다. 오롯이 스티븐 스필버그이기에 갖고 있는 장점과 특징이 반영된 셈이다.
좋은 구석만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음. 이 영화의 단점도 충분히 존재한다. 바로 인물들이 너무 기계적이라는 것이다. 스필버그가 혐오의 무의미함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의 요소들을 장치로만 쓴 감이 좀 있다. 물론 메시지 좋다. 지금의 2022년은 혐오가 판치는 사회다. 이런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야 한다. 맞는 말인데. 그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쪽이 좋을 텐데,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인물이 메세지에 알맞게만 기능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줄거리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별 무리 없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분명하다. 더 형식적인 부분에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만들었으면 극의 여운이 오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다. 좋은 영화. 깔끔한 영화인 건 맞는데 너무 안정적인 선택지만 고른 느낌? 딱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 느낌이 강하다.
아카데미의 선택?
다음 주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여우조연상, 촬영상, 음향, 의상상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이 부분 중 큰 부문은 당연히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일 것이다. 난 여우조연상은 가능성이 꽤나 높다고 생각한다. 아리아나 드보스의 카리스마는 뛰어났다. 이 배우는 나올 때마다 시선을 집중시키는 굉장한 매력을 보여줬다. (솔직히 주인공 둘의 러브스토리만큼이나 더 눈에 갔던 것 같다) 아카데미의 전초전인 SAG-BAFTA-골든 글로브-크리틱스 초이스에서 4관왕을 차지했기 때문에 평단과 대중 사이에서 인정을 받았다고 해도 무관할 듯. 큰 적수는 <파워 오브 도그>의 커스틴 더스트와 <벨파스트>의 주디 덴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작품상과 감독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의 단점 때문에도 있지만 다른 작품이 솔직히 더 좋기도 했다. 혐오와 자격지심에 관한 <파워 오브 도그>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갖고 있는 영화 내적인 논리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어 이 작품보다 더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감독상이다. 감독상 역시 제인 캠피온이 받을 것 같다. BAFTA와 골든 글로브에서 이미 감독상을 받아 유력하기도 하지만, 서서히 밧줄로 조여 오는 연출 방식이 기억에 남기 때문에 제인 캠피온이 유력하다고 예상하고 싶다. 아마 이변이 일어난다고 해도 <드라이브 마이 카>의 하마구치 류스케 쪽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디즈니플러스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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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궐의 암투를 목격한 맹인 침술사
그냥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정치는 조금은 멀게 느껴지는 일이다. 일단 자신과 가족의 안위와 배고픔을 먼저 해결해야 하고 여러 가지 상황이 조금 안정되었을 때 조금씩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누가 나라를 이끌고 있는지, 많은 정치인들이 그 안에서 어떤 암투를 벌이는지에 대해 한 번 눈이 트이면 좀 더 디테일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정치는 먼 이야기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근대화가 되기 전, 조선시대 같은 과거의 사회에서도 정치는 계속 이어졌다. 왕이라는 군주가 나라의 대표가 되고 그 밑에 신하들이 여러 의견을 내면서 앞으로 나아갈 결정을 해 나아갔다. 여기에 왕의 가족들까지 그 정치에 참여하거나 이용되면서 왕의 가족들은 본인의사와 상관없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양한 왕가의 사람들 주변에는 여러 가지 수발을 드는 신하들이 있었다 요리를 하고, 건강을 챙기고, 잡일을 하는 이들은 궁궐 안에서 다양한 일들을 보고 듣는다. 그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일반 백성에 비해서는 나라가 돌아가는 상황을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우연히 궁궐에 들어간 맹인 침술사의 이야기
영화 <올빼미>는 어느 순간 궁궐에 들어갈 기회를 잡은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의 이야기를 담는 영화다. 경수는 앞을 못 보는 맹인이지만 좋은 침술 능력으로 아픈 동생의 약값을 벌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는 어의가 되어 궁궐에 들어가면 동생의 약을 계속 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으로 생각하고 궁궐에 들어갈 기회를 엿본다. 그러다 궁궐의 어의 이형익(최무성)의 눈에 띄어 궁궐에서 일하게 된다. 그 안에서 좋은 침술 덕에 왕가 사람들을 치료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김성철)와도 만나게 된다.
영화는 경수와 소현세자가 친해지는 계기를 보여준 이후, 소현세자가 독살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적 긴장을 높인다. 사실 경수는 밝은 곳에선 거의 볼 수 없지만 어두운 밤에는 희미하게나마 앞을 볼 수 있다. 그는 어두운 밤 소현세자를 누군가 독살하는 모습을 본 목격자다. 영화는 이렇게 그가 앞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는 특성을 잘 활용해 어의 이형익을 비롯한 왕실 사람들과 대면할 때 손에 땀을 쥐고 만든다.
이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또 다른 인물은 바로 인조(유해진)이다. 인조는 아들 소현세자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는 모습보다는 불안한 모습을 더 보인다. 그가 가진 불안감은 그의 몸을 조금씩 마비시키며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아버지로서 자신의 아들조차 청나라에 포로로 보내야 했다는 불안함과 자신도 희생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그가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 인조는 언뜻 나쁜 결정을 하지는 않을 듯 보이지만 그의 진짜 결정과 진짜 모습은 영화 후반부에 완전히 드러난다.
짜임새 있게 쌓아가는 영화적 긴장감
영화 속에서 침술사 경수는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왕실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암투를 제대로 목격한다. 그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어의가 되려고 했던 경수는 왕실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치적인 일들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치적 운명 속에서 살아가는 소현세자를 보고 소현세자의 아들의 고통까지 목격한 그는 스스로 정치적인 변화를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경수라는 인물과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부분은 상상에 불과하지만 평민이 우연히 왕실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정치적인 상황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꽤 설득력이 있다. 영화의 후반부와 마지막은 너무 긍정적이고 편하게 결말을 맺고 있지만 주인공 경수가 서서히 암투 속으로 빨려 들어가 스스로 주도성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맹인이지만 밤에는 어느 정도 볼 수 있다는 설정을 잘 활용해 극적인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인조 역할을 맡은 유해진은 굉장히 불안하고 유약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아주 무서운 눈빛으로 변해 정치적 암투에서 이기려는 모습도 보여준다. 아버지로서, 한 인간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얼굴과 두려워서 피하고 싶어지는 얼굴을 번갈아가며 보여주게 되는데, 그 연기가 어색하지 않고 무척 실감 나게 표현되었다. 맹인 경수의 연기도 무척 좋다. 보일 때와 안 보일 때를 잘 구분해서 연기하고 있으며 특히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보일 때, 남들 앞에서 안 보이는 것처럼 연기하는 모습이 무척 훌륭하다.
영화의 서사는 평민이 우연히 왕실에 들어가 정치적 상황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 경수가 그 암투의 한복판으로 빠져들어가는 모습이 무척 긴장감 있게 보인다.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훌륭하게 활용하며 영화의 하이라이트에서 그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결말이 아쉽지만 영화가 앞부분에 만들어놓은 좋은 이야기는 그 단점을 만회하기에 충분하다. 영화의 좋은 완성도는 이번 영화가 첫 연출작인 안태진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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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이 우릴 완벽하게 속인 순간들
#산돌구름 #마블반전 #랄프보너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3. 20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이번에도 속았다..
00:44 오딘? NO I’M 로키
01:52 퀵실버? NO I’M 보너
02:38 만다린? NO I’M 트레버
03:44 닉퓨리’s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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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산어보] 배경지식 리뷰:돌아온 이준익 감독,자산어보는 어떤 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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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티저 예고편
폐쇄된 달 기지, 생존확률 10%의 미션 대원들이 살해되기 시작했다 SF 미스터리 스릴러 《고요의 바다》 12월 24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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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돈 룩 업> 공식 예고편
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 《돈 룩 업》 12월 일부 극장에서,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돈 룩 업》의 주인공은 무명의 두 천문학자.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거란 사실을 발견한 두 사람은 언론사를 있는 대로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재앙을 온 인류에 경고하기 위해. 애덤 매케이 각본 및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