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4-21 07:35:14
‘따뜻한 혁명’과 공공재의 우화
영화 〈곤돌라〉
이 ‘조용하고’ 따뜻한 로맨스 혹은 우화에서 곤돌라는 사랑의 장소이자 우정의 장소, 연대의 장소, 전유의 장소, 연결의 장소다. 영화에는 대사가 없다. 그래서 자막도 없다. 우리는 외화를 보고 있지만, 시선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 자유로움의 틈새로 동화 같은 어느 유럽 시골 마을의 풍경이 들어온다. 아니, 곤돌라를 타고 스크린에서 관객에게로 도달한다.
이바는 마을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곤돌라의 새로운 승무원으로 일한다. 곤돌라에서 일한다는 건, 마을의 모든 연결망의 중심에 선다는 의미다. 곤돌라가 없다면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교류는 없다.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는 관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이 조의를 표할 수 있는 건, 곤돌라가 가능케 한 위와 아래의 연결 덕분이다.
이바가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거나 올라갈 때, 가운데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다. 또 다른 승무원 니노다. 두 사람이 곤돌라의 승무원으로 일하는 한, 이 마주침은 강제된 것이다. 피할 길이 없다. 몇 번의 수줍은 혹은 어색한 교차 이후 두 사람은 이 무료한 반복을 조금씩 다르게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체스를 둔다. 체스판은 곤돌라의 위쪽 정류장에 있다. 곤돌라가 한 바퀴 돌아야 이바와 니노가 말을 움직일 수 있으므로, 체스 게임은 한없이 길어진다. 두 사람의 체스를 매개로 연결된 시간도 그만큼 길어진다. 체스를 하며 두 사람은 무료하기만 한 곤돌라에서 다음 수를, 서로의 얼굴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곤돌라의 ‘강제된’ 마주침이 설렘으로 변한다.
곤돌라에는 아이들이 탄다. 농부와 마을 주민이 탄다. 가축과 와인도 실어 나른다. 이 다채로운 승객들은 이바와 니노가 맺은 관계성을 더욱 확장한다. 차가운 기계일 뿐이던 곤돌라가 인간의 온기를 품는다.
이 변화가 싫은 사람도 있다. 곤돌라를 운영하는 남자는 곤돌라의 목적이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에게 곤돌라는 이윤을 안겨주는 생산수단이어야만 한다. 돈을 낼 수 없는 사람은 당연히 승차가 거부된다. 사장은 이바와 니노가 곤돌라로 온 마을을 연결하는 게 불만이다. 그래서 체스판을 발로 차버린다. 또 하나의 불만이 있다. 사장은 이바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한다. 그래서 날로 친밀해져가는 두 사람과 마을 사람들이 더 눈꼴사납다. 이바와 니노의 곤돌라는 이윤 축적과 이성애 욕망 충족의 두 영역 모두에서 곤돌라의 ‘소유주’를 배반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바와 니노의 관계는 점점 깊어진다.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 반복되는 일상에 차이를 기입하고, 서로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사소한 행동들에서 깊은 친밀감이 피어난다. 니노가 남몰래 항공사 승무원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 위기를 맞기도 한다. 이바가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니노의 비밀이 두 사람이 곤돌라에서 차근히 형성한 친밀한 관계의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곤돌라의 반복되는 회전 속에서 만들어온 두 사람의 관계성은 그새 위기를 넘길 만큼 충분히 단단해져 있었다. 서로를 향한 분명한 마음을 확인한 이바와 니노는 사장에게서 곤돌라를 탈취, 전유해 이를 오롯이 두 사람을 위한 것, 나아가 온 마을을 위한 공공재로 바꿀 계획을 꾸민다. 두 사람을 비롯한 온 마을 사람이 함께한 이 작전에서, 마침내 이바와 니노의 친밀성은 결실을 이루고 곤돌라는 자본주의적 용도를 박탈당한 채 공공의 것이 된다. 〈곤돌라〉는 기계의 차가운 속성에 다채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곁들인다. 그리하여 의미 없는 반복에 지친 사람들에게 일상의 공허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혁명의 따뜻함을 품은 산뜻한 공공재의 우화로 거듭난다. ‘따뜻한 혁명’이라는 형용모순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현실성을 잃지 않는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
- 가장 건전한 먹방 그리고 외로움에 대한 담론
요즘 먹방은 하나의 장르로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먹방을 보진 않는다. 항상 안 봤던 것은 아니고, 어느 순간부터 보게 되지 않았다. 특히 먹방이 인터넷 영상의 한 장르를 넘어 공중파의 소재로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선택해서 볼 수 있는 컨텐츠가 아닌, TV 채널을 돌리다가 무심코 보게 되버리는 순간들이 축적되며 점점 찾지 않게 된 장르다.
하지만 공중파의 탓만 하기엔 다른 이유가 있다. 언젠가부터 많이 먹는 행위가 보기 좋고, 복스럽게 보여 음식을 더 먹고 싶어지게 만든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많이, 그리고 과도하게 빨리 먹어버리는 행위는 복스러움을 넘어 탐욕스러워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많이 먹는 행위가 보기 좋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결핍의 일환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음식을 먹는 양과 상관없이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어느날 갑자기 이미 봤던 영화이지만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정주행했다. 아, 물론 처음은 일본판으로 시작해 한국판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음식들이 다 맛있어 보여서 내가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의 요리들은 전부 다 따라해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은 수제비였는데, 그 수제비를 먹으면서 '리틀 포레스트' 시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먹방이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 건강한 형태로 식욕을 유발하는, 그래서 더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먹방 말이다. 물론 내 입맛이 토속적인 편이기에, 영화 속 음식이 다 맛있어 보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소식좌가 생겨나는 것을 보아, 많은 사람들도 이제 나처럼 많이 먹기만 하는 먹방은 질린 것 같다. 오히려 많이 먹지 않아도 천천히 먹는 것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오늘도 생겨나는 수많은 먹방 방송들 중에서 오늘도 나는 이 영화를 다시 켜보는 것은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수많은 먹방러들보다 이제는 음식을 천천히, 온전히 먹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고파진다는 것은 결국 나는 먹방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질려 버렸다는 반증인 것 같다. 수많은 퓨전 음식들이 있어도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은 음식 본연의 맛이고, 그 본연의 맛을 구현해 내고, 맛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내 것이 있는 독립적인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내가 내 요리를 만들어먹을 줄 아는 사람은 혼자 먹고 있어도 외로워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배달음식에 의존하며 오늘도 먹다남은 플라스틱통을 냉장고에 우겨넣으며 현타가 올지는 몰라도. 내가 먹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성과도 있고 희로애락이 담겨있기에 외로움에 침잠해있을 틈이 없다.
나의 엄마가 한 말 중에
"외롭다고 난리치는 사람들은 참 할 일도 없나 싶더라. 취미도 없고, 좋아하는 것을 지속할 끈기들도 없어서 계속 남한테 뭘 해달라고 조르기만 해. 외로울 시간이 어딨어, 내 할일만으로도 신경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외롭다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 싶더라고."
물론 내 엄마는 좀 독립적인 스타일이라 매정한 사람일 때도 있지만 이 말에 공감했다. 내 것을 나를 위해 만드는 삶은 나를 외롭게 할 틈을 주지 않고 여유를 가져다주기에 먹방러들처럼 급하게 먹을 필요도 없다. 남에게 애정을 갈구하지 말고, 남에게서 바라는 애정을 내가 나에게 해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영화 속 김태리도, 일본판 주인공도 혼자 살지만 외로워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내 눈에도 멋있어 보였고 말이다.
-
- 사제간에 그려낸 서로의 초상화.
이 글은 영화 [승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때 그려진 초상화를 보면. 드라마 촬영 후 후보정까지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적나라하다는 표현 밖에는 붙여줄 수가 없는 작품이 많다. 하지만 초상화를 남기는 것은 어명의 영역이었기에 그 어떤 숨김도 거짓도 없어야만 한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당연하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 폭의 그림에 담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땐. 마냥 어명이라 하더라도 신이 나지는 않았을 것만 같다. 애써 숨기고 싶었던 곰보 자국이 그림 안에서 살게 될 자신의 뺨 위에서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던 단점마저도 초상화에 들어있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사진출처:다음 영화
제자인 창호(유아인)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발견했을 때. 조훈현(이병헌)은 아마도 처음으로 자신의 곰보자국들을 들여다봤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익숙한 흉터뿐만 아니라.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기풍에 있는 부스럼까지 발견했을 때의 그 무력감은. 아마도 바둑의 신(神)과 겨루어도 질 것 같지 않았던 그 당시 그의 자존감의 크기만큼이나 크고 깊었을 것이다.
처음엔 제자의 초상화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들여다보니 보인 것일 뿐이라 믿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을 결승전에서 앞에 두고 스승의 초상화를 또 한 번 묵묵히 그려내는 제자의 모습을 보며. 훈현은 자신의 장점도 단점도. 승패를 가린다는 어길 수 없는 어명 같은 하나의 목적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을 것이다.
창호가 그린 초상화가 자신과 똑 닮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몸을 일으켜 애써 그 초상화 앞에서. 그리고 그 초상화의 주인 앞에서 멀어져야만 했다. 더 들여다보았다가는 정말로 제자에게, 혹은 제자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으니까.
사진 출처:다음 영화
스승과 승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데 훈현은 꽤 오랜 세월을 바쳐야 했다. 그동안 결승마다 만난 자신의 제자 앞에서 수도 없이 패배와 친해져야 했다. 무관왕이라는 타이틀 아닌 타이틀도 어느새 그의 옆에서 입김이 느껴질 위치에서 머물곤 했다.
자신의 제자는 물과 같아서. 칼처럼 예리한 자신은 베어낼 수도. 손에 쥘 수도 없었다. 그는 속절없이 차디찬 물에 떠밀려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 아무리 자신을 휘둘러도 창호의 눈썹 하나조차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이대로 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에 빠져 죽는 것 외에 남은 선택지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신(戰神) 조훈현에게 후퇴한다는 말까지 수식어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분명 제자에게 스승과 승부는 다른 것이라 가르쳤으며. 자신이야 말로 이 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칼로 제자를 베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달궈진 자신을 식혀서 단단하게 연마해 주는 것이 제자의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순간부터. 조훈현의 손에는 제자의 모습. 아니 자신의 라이벌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가 완성되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다시 만난 제자는 자신에겐 패배를 배우게 한 스승이 되어 있었고, 승리를 알려준 스승을 만난 제자는 훈현의 손에 들려 있는 자신의 초상화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 기묘한 사제관계의 라이벌은, 다시 한번 치열하다 못해 피가 마르는 신선놀음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 신선놀음의 끝에는 분명히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지만. 영화의 말미에 가서는 더 이상 그 결과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물론 제삼자의 입장이라 그랬을지도.)
자신의 스승과 대국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자신의 곰보자국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스승과 제자, 라이벌 사이를 오가는 이 대국은. 단순한 승부라는 말을 넘어서서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했으니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르게 하는 바둑판 위에서 펼쳐진 그들의 대결은 승패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들이 남긴 서로의 초상화가 단순한 기보가 아닌. 인생의 기보로 남았기에 나 역시도 이런 영화를 보며 그들의 흉터에서 느껴지는 아픔마저도 느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면서;책임지지 못한 돌에 대하여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는 할아버지에게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도 말고. 이곳을 잊어버리라는 말을 듣는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야 없었겠지만. 그만큼 토토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것쯤은 어린 토토라도 이해했을 것이다. 어린 창호의 왼손에 채워진 시계는 그런 걱정과 염려를 담뿍 담은 채 굳건히 채워졌다.
물론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이창호는 변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묵묵히 해내며 앞으로 정진했다. 스승인 조 국수에게 배운 것처럼 바둑돌 하나하나에도 책임을 다 했고 그 결과 정상의 자리를 15년가량이나 지키며 남에게도. 스승과 라이벌에게도. 그리고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 유아인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분명 매우 좋은 영화이며 큰 만족감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나올 수 있었던 영화였으나. 그는 초심을 잃은 토토가 되어 영화 속에서만 강렬한 연기를 보일 뿐이다.
조훈현의 시점만이 아닌 이창호의 시점으로도 영화를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으나. 커버린 토토가 할 것은 참회밖에 없기에. 이 영화의 영광과 대단함이 한 풀 꺾이는 것만 같은 아쉬움을 지울 수는 없었다.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승리와 패배를 동시에 가르친 참된 스승이었다. 배우 유아인에게도 그런 스승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동시에 드는 영화였다.
[이 글의 TMI]
1. 영화관에서 팝콘 안 먹기 2회 성공
2. 오늘 점심 회식인데 도망가고 싶다.
3. 이 비를 통해서 불이 반드시 꺼졌으면 좋겠다.
#승부 #김형주 #이병헌 #고창석 #유아인 #한국영화 #실화바탕영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영화꼰대
-
- 소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시시콜콜한 이야기>
오늘의 영화는 바로,
<시시콜콜한 이야기>입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정보
개요 | 멜로/로맨스, 드라마 | 한국 | 33분
감독 | 조용익
출연 | 이수경, 엄태구
등급 | 12세 관람가
줄거리
감독 지망생 도환은 지난 연애로 고통받고 있는데, 프리랜서 모임에 나갔다가 이상하게 매력적인 은하를 알게 된다. 그녀의 도움으로 그는 지난 연애의 문제점을 알게 되고, 그의 시나리오 또한 해결책을 찾게 된다. 은하와 도환은 전화와 문자로 계속 가까워진다. 도환이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되지만, 그는 또다시 상처받을까 두렵다.
출처 | 다음 영화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제16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를 보면 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선택을 받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정말 소소한 이야기이지만,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아진다. 과연 왜일까. 아마 좋아하던 누군가가 떠올라서, 혹은 누군가를 좋아했던 나의 모습이 생각나서 아닐까. 도환과 은하가 이상하게 서로에게 끌렸던 것처럼 이 영화 또한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감정에 의해 관객이 끌렸던 것 같다.
출처 | 왓챠 유튜브 캡처
"싱그러움"
영화를 생각하면 딱 한 단어가 떠오른다. '싱그러움'. 싱그러운 초록 풀로 꽉 차있는 배경, 귀뚜라미와 매미 소리, 채도 높은 색감. 영화 속에서 보이고, 들리는 것에 의해 마치 싱그러운 여름 한가운데에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풍경과 함께 배우들의 풋풋한 연기는 영화의 싱그러움을 더욱 극대화했다.
출처 | 왓챠 유튜브 캡처
"사랑스러운 두 배우"
이수경 배우는 항상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며 다양한 연기를 보여줬다. 배우 최민식은 한 인터뷰에서 이수경 배우를 "천생 배우, 동물적인 본능으로 연기하는 배우"라며 칭찬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감독과 동료 배우는 이수경 배우를 '본능'의 배우라는 말하는데요. 그러니까 이수경 배우는 계산 없이 본능적으로, 그 캐릭터 자체가 되어 연기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수경 배우가 연기한 '은하'하는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조금 포스가 있고, 센 악역을 주로 맡았던 배우 '엄태구'의 로맨스 영화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엄태구 배우의 입덕작이었다고 말하는 팬들도 많고, 관련 영상 댓글을 보면 엄태구 배우가 더 많은 로맨스 작품을 찍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적혀있다. 한국인이 사랑을 시작하는 방법이 '하여튼 웃겨', '하여튼 희한해', '하여튼 이상해'라고 하던데 극 중 은하가 도환에게 빠지게 된 것도 이게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조금은 찌질하게 묘사되는 도환이지만...하여튼 웃기고, 희한하고, 이상하다.
출처 | 다음 영화
"은하의 시점은?"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도환의 시점만 있을 뿐, 은하의 시점은 알 수 없었다. 극 중 은하는 도환에게 "여자를 단순히 그냥 이별 통보하는 대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그 여자는 나름의 이별을 준비해 온 시간이 있었을 거라고 다가가는 건 어때요? '너무 남자 시점으로만 보는 영화보다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리는 이야기를 한다. 작품 속에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정작 이 작품에서는 볼 수 없어 조금 아쉬웠다.
출처 | 왓챠 유튜브 캡처
싱그러운 로맨스 영화를 찾고 계시다면 <시시콜콜한 이야기> 어떨까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왓챠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씨네랩 에디터 Hizy
-
- 돈으로도 채우기 힘든 사람의 마음
난 오늘도 크림 앱을 켜서 사고 싶은 물건을 구경했다. 보통이면 여러 개 찾아 보겠지만 근래의 나는 하나만 검색한다. 이제 물건은 나를 더 이상 기쁘게 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신발은 당근에 내놓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신는 것은 덩크 2족과 컨버스, 로퍼 4켤레다. 살 필요가 없던 것에 돈을 써왔다. 아. 이럴꺼면 그냥 우리 엄마 가방이나 사 줄걸. 무엇이든 경험해 보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라곤 하지만 요즘 신발장만 보면 씁쓸하다. 결국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건 내면이었다. 최소한의 사람구실만 할 정도로,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TPO만 맞는다면 일상을 사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남들 사춘기때 하는 걸 안하고 살았으니 그 만큼의 댓가를 겪었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이 합리화에 살을 더 붙힌다. 에잉. 그래도 뭐 먹는것보단 낫지. 물건이라도 남았으니까. 큰 손해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본다.
근데 이 합리화도 얼마 못 갈거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금전감각이란 큰 돈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무뎌지기
때문이다. 난 머지 않아 요즘은 뭐가 나왔나? 하는 마음에 스니커즈를 보고 있을 것이다. 또 아직 사회인도 아닌데 단일품목에 그정도를 태우는건 선 넘었지 하며 그거보다 싼 것들을 위시리스트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돈을 쓴다. 담배를 안 피우고 밖에서 밥을 잘 안 시켜먹는 내 생활패턴이 이 돈을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하며 내 자신을 속인다. 그리고 호구가 된다. 리셀가로 웃돈을 주고 산다. 이번엔 다를거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마찬가지다. 이걸 산다는 의미가 나의 어떤 것을 증명해주는게 아니라는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마음에 드니까 산다!라는 핑계로 난 나를 속인다. 이 세상은 내가 알아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남이 나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되게 잘 아는 인생의 교훈인데 가끔 나는 알아서 멀리 돌아간다. 가끔 내가 하는 행동이 코미디같다.<블루 재스민>은 자아의 붕괴에 관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재스민과 진저다. 진저와 재스민은 자매 사이다. 자매 사이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재스민의 남편이 진저의 돈을 갖고 사기를 친 것이다. 사실 사기꾼은 재스민의 남편 할이었어서 언니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긴 하다. 이에 따라 언니를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지만 진저는 수천의 빚에 명확한 일자리도 없는 언니가 루이비통 가방과 일등석을 타고 왔다는 사실에 황당해한다.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재스민. 정신 차리기는 커녕 재스민은 과거 회상에 자주 빠진다.
과거 회상에 자주 빠진다는 것은 현재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스민은 사실 오갈 데 없는 처지다. 동생 부부가 복권으로 딴 20만 달러를 사기당해 모두 날렸고 전남편은 남 등쳐먹은 사기꾼이었기 때문에 기댈 가족이 없다. 심지어 이에 대한 충격으로 아들 대니와도 멀어졌으니 낙동강 오리알이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돈 흥청망청 쓰던 과거에서 돌아와 현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재스민은 드와이트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드와이트는 정계 입문에 관심이 있는 외교관으로 품격 있는 미모의 재스민과 완전 찰떡인 커플이다. 둘의 연애 초기는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근데 이 알콩달콩한 분위기는 오래 못 갔다. 우연히 만난 진저의 전 남편(그러니까 남편 할의 사기 피해자)에게 재스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듣고 드와이트는 이별을 고한다. 어려운 이별을 받아들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재스민은 화를 불같이 낸다. 진저와 칠리가 깨를 쏟아내며 알콩달콩 사랑에 빠진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돌아버린 재스민은 진저 커플에게 악담을 내뱉고 밖으로 달려나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를 보자마자 '자아의 붕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지금 당장 네이버에 '자아'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과 관념이라는 뜻이 나온다. 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과 관념'은 구체적으로 딱 떨어지는 단어가 아니다. 그래서 각자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데, 나는 이 자아라는 단어를 삶의 기준이라고 적용하고 싶다. 내 자아가 무너졌을 때도 내 기준이 없어서 사람들이 규정한 것을 따라갔다. 재스민에게 있어 명품은 이 자아를 흐리게 만든 도구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나도 비싼 스니커즈들 좋아하고 아직도 신는 입장이라 잘 안다. 비싸다라는 기준은 애초부터 타인에게서 온다. 내가 싸다고 생각하면 싼거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또 이것은 상대적이다. 내가 어떻게 목표를 설정했느냐에 따라, 또 현실 지갑 상황에 따라 갈리는게 싸다 혹은 비싸다라는 관념이다. 이런 식으로 타인이 설정한 기준이 부조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을때가 있다. 나는 내가 비싼 스니커즈들을 사면서 느꼈던게, 이것들을 사다보면 사람의 돈이 쉬워진다. 넷플릭스 구독료가 올라간다고 하면 '와 얘들 돈독 제대로 올랐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30~40만원대 스니커즈들은 '괜찮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건이 주는 기쁨이 되게 신선한 것이라서 사치품을 사는 것이 자아가 혼자 설 수 있는 환경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더 중요한건 내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일텐데. 그것들에게서 받는 기쁨보다 중요한 건 맛있는거 먹고 좋아하는 사람 만나며 영화 재밌게 보는, 그런 사람의 근본적인 지점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이란 이런 '나는 누구인가'를 채워과는 과정이었다.
재스민은 명확한 직업 교육도 못받았고 무너지는 현실에 대한 대처능력도 없어서 이런 것에 대해 탐구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자아가 붕괴됐다. 오갈데 없는 입장인데 자기가 부자라는 환상에 빠진 채로 끝나는 결말이 그 예시다. 원래 자기가 만든 자아라는게 있었다면 돈을 해프게 쓰지도 않았겠거니와 동생의 복권 당첨금을 다 날려버리는 결과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 뿐일까? 돈 많은 남자랑 연애한다고 몸을 움츠리며 울 일도 없었을 것이고 사기꾼 남편을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쉬운 구조를 통해 현실감각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우디 앨런식의 코미디가 아닌 현실의 한 단면을 잘라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내가 누구라는 물음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있게 도와준다. 물건? 있으면 좋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내 자신이 어떻게 서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앞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살자.
-
-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스포가 있습니다.
*
상상력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컨택트>, 그리고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제목이 너무 길어, 이하 '그믐'>을 나란히 놓고 보자.
인간이 외계생명체를 만나면 시간을 초월하는 초능력을 얻는다.
<컨택트>에서는 미래를 볼 수 있게 되고, <그믐>에서도 역시 그렇다.
외계인의 침공으로 멸망을 맞게 된 인류.
세계연합군 육군 소령 빌 케이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있다.
재입대의 악몽이 현실이 된 것. 심지어 소령이 아닌 이등병으로.
장교 사칭 혐의와 탈영 혐의를 받는 그는 범죄자들이 득실한 J부대로 편성된다.
안전장치를 푸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실전에 투입된 그는 어떻게든 해 보려 하지만, 가슴에 부상을 입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계생명체의 체액을 뒤집어 쓴다.
죽은 줄 알았는데 또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끌려 간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또 죽는다. 그리고 또 태어난다.
전투 경험도 없던 그였지만,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하니 경험치가 쌓여 이제 언제 어디서 외계인이 나타나서 자신을 쥐어팰지 다 외워버렸다.
전장에서 병력을 해변에서 빼내기 위해 리타에게 접근하다가, 죽을 뻔한 리타를 구한다.
그것도 몇 차례 반복된다.
어느 순간 안 봐도 척척 위험 상황을 빠져 나가는 케이지를 보고, 리타는 자기를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지루한 죽음과 깨어남 끝에 리타를 찾아간 케이지.
리타는 어디 이등병 따위가 날 찾아왔냐는 눈빛으로 그를 본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리타는 자신도 그 능력이 있었고, 죽지 않고 살아남아 수혈을 받았더니 그 능력이 사라졌단다.
수없이 죽고 또 죽어 케이지는 점점 더 외계인의 정체에 가까이 간다.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오메가'의 존재도 함께.
자신이 타임루프를 할 수 있는 이유은 외계인 중 고위 개체인 알파의 체액이 몸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인 거다.
어차피 외계인들은 인간이 무슨 선택을 할지 다 알고 있다.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으니까.
인간에게만 시간은 순차적이지 4차원으로 한 차원만 올려도 시간은 왜곡되고 구부러진다.
우리는 4차원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감각적으로만 알 뿐이다.
아마 4차원의 나는 내가 이 글을 어떻게 쓰고 마무리할 것인지 다 알고 있을 터.
수많은 실험이 지루할 정도로 계속 반복된다.
매순간 죽었다 살아나야만 하는 케이지도 지루했을까.
이 영화 역시 무간지옥으로 빠지는 것만 같다. 죽지도 못하고 다시 살아나서 그 고통을 또 감내해야 한다.
무수한 시간을 반복하고 반복하다 방법을 찾은 그는 J분대를 이끌고 루브르박물관(오메가가 있는)으로 향한다.
분대원의 희생으로 리타와 둘만 살아남은 케이지.
수류탄과 함께 오메가 쪽으로 몸을 날린다. 참으로 헐리웃스러운 연출이다.
푸르른 액체가 케이지의 몸을 휘감고, 케이지는 죽는... 줄 알았지만 또 살아나, 다시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깬다.
자, 영화가 끝날 무렵의 톰 크루즈의 눈빛을 봐야만 하니 여기까지 이야기하도록 하자.
<컨택트>에서는 외계인의 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된 주인공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된다.
있지도 않은 딸의 죽음. 그 고통은 주인공에서 현실인 것처럼 생생하다.
<그믐>에서는 이런 부분이 있다.
너 참 타이밍 기가 막히다. 여자가 겨우 웃으며 말했다. 이게 우연인 것 같지? 남자도 웃었다.
'우주알'이라는 게 소설 속 남자의 몸에 들어가는 바람에 남자는 시간을 넘나드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라는 대사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란 한없이 낭만적인 존재여서, 끝없는 타임루프 끝에도 한 사람을 사랑한다(그런 스토리가 사랑받는다).
그러고 보니 <어바웃 타임>과도 비슷하다.
어쩌면 우리는 언젠가 만났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끝없이 죽고 다시 태어났는지도.
고작 사랑 때문에, 라고 말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한심하게도 거의 모든 일이 사랑 때문이었다.
그러나 끝이 없는 천국은 지옥과 다를 바 없다.
-
- [BIFF 데일리] 나의 영화를 담은 영화들
[BIFF 데일리] 나의 영화를 담은 영화들
아주담담 한국 영화의 오늘 - 비전 1
10월 6일 오후 2시.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시네마운틴 6층 아주담담라운지에서 ‘한국 영화의 오늘 – 비전1’이 진행됐다. 환상과 비전으로 다져진 세 편의 독립 영화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 <허밍>, <인서트>팀이 게스트로 참여했고 진행은 김은정 평론가가 맡았다. 친밀하게 마주 앉은 김은정 평론가와 게스트들의 얼굴엔 설렘과 긴장이 조화롭게 비쳐 보였다.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는 곧 죽어도 희망을 찾는 영화다.
영태와 미주는 작지만 아담한 월셋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그런데 식당을 같이 운영하기로 했던 영태의 동업자 선배가 갑자기 약속을 깨뜨린다. 영태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키케가 홈런을 칠 것’이라는 메모를 남기고 집을 떠난다. 남은 미주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박송열 감독은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를 “키케에게 타석을 넘겨주면서 그에게 희망을 걸고 가는 류현진의 마음. 그걸 계속 입 밖으로 꺼내는 영화”라고 말했다. 현재 상황이 좋지 않고 내가 해낼 수 있는 건 없어도 함께 인생이라는 게임을 헤쳐가는 동료가 홈런을 쳐줄 거라는 믿음과 희망. 이 영화엔 그 희망을 담은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라는 주문이 가득하다.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는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현실과 동떨어져있다. 부동산 규제가 사라진 세상.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을, 리얼리티를 끊어낸 그 세상 속에서 감독과 배우들은 자신의 상상과 의도를 광범위하게 펼쳐간다. 한정된 공간에 맞춰 웅크리는 것 대신 이 구석 저 구석을 휘저으며 탈피를 반복하는 앵글은 앞서 감독, 배우들이 만들어둔 세상을 더욱 광범위하게 펼쳐낸다.
감독, 주연, 촬영, 동시녹음, 촬영, 편집까지. 박송열 감독은 극 중 영태처럼 고군분투하는 사람이다. 영태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도전한다면 박송열 감독은 영화의 벽을 뚫기 위해 도전한다. 하지만 그는 고군분투하면서도 적당한 선을 잃지 않는다. 박송열 감독은 작업 방식을 묻는 김은정 평론가의 질문에 “지치지 않고 직전에 멈추는 것을 고려하여 촬영한다”, “A 신이 B 신에 관여하지 않도록,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안하며 시나리오를 작업한다.”라고 답했다.
박송열 감독은 자신만의 방식을 지키며 약 5-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꼼꼼히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를 경작했다. 한 영화를 끝내고 나면 “농사를 다 지은, 수확하는 농부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는 그에게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는 자신의 뿌듯한 수확물을 내놓는 자리라 할 수 있겠다.
녹음기사 성현은 영화의 후시녹음을 의뢰받고 고민에 빠져 있다. 주연을 맡았던 여배우 미정이 세상을 떠났고, 그녀가 영화의 결정적인 대목에서 했던 애드리브의 내용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단역 배우 민영이 미정의 녹음 대역을 위해 성현의 녹음실을 찾는데 오기로 한 감독은 도대체 나타나질 않는다.
이승재 감독은 “성현, 혜정, 미정을 맡은 세 명의 배우에게 같은 음악을 주었는데 다 다르게 불렀다. 이들이 같은 노래를 다른 허밍으로 해석했듯이 부재나 상실이 있을 때 그것을 다르게 대하는 각자의 태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영화와 제목의 의미를 설명했다.
감독의 말처럼 <허밍>은 상실이라는 하나의 멜로디를 각자의 허밍으로 소화해 내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실과 영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조용히 허물며 상실의 구덩이에 그 파편 몇 개를 던져 넣는다.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김은정 평론가는 어떻게 주인공을 동시녹음 기사로 설정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이승재 감독은 동시 녹음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주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녹음기사라는 직업을 설정하게 되었고 <허밍>은 경험과 이해를 통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답했다. 이어 성현을 연기한 김철윤 배우는 이 말에 힘을 실어주듯 이승재 감독의 경험이 성현을 연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녹음 기사가 주인공인 영화이자 소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감독의 작품인 만큼 <허밍>은 소리에 집중해야 하는 영화다. 감독과 사운드 디자인을 함께 맡은 이승재 감독은 영화와 인물의 정서에 어울리는 소리를 찾기 위해 앰비언스 수음에만 한 달이란 시간을 들였다며 “영화에 전반적으로 깔리는 재개발 현장 사운드에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이승재 감독이 한 땀 한 땀 세밀하게 수놓은 소리들을 부산국제영화제라는 훌륭한 상영 환경 속에서 즐겨보는 건 어떨까.
<인서트>는 영화 한가운데에 현실을, 뻔한 규칙 가운데 불규칙을 끼워 넣으며 괴상한 매력을 만들어낸다.
상업 영화 현장에서 인서트 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진주석의 팀에 기이한 분위기를 지닌 마추현이 들어오게 되고 두 사람은 가까워져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하지만 다음날 마추현은 모종의 이유로 진주석에게 화를 내고 이후 그는 애타는 마음으로 마추현을 기다리게 된다.
첫 상영을 마치고 토크에 참가한 두 영화와 다르게 <인서트>팀은 첫 상영을 앞두고 토크에 참여했다. 김은정 평론가가 첫 상영을 앞둔 심경을 묻자 이종수 감독은 “중간중간 마가 많이 뜨는 영화다.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된다.”며 떨리는 마음을 고백했다.
<인서트>는 영화 현장에서 만난 두 남녀 진주석과 마추현의 로맨스와 감독 특유의 괴유머를 담은 로맨스 코미디다. 준석은 추현 앞에서 화내고 슬퍼하며 추현이 던져놓은 사랑의 미스터리 안에서 헤맨다.
문혜인 배우는 자신이 연기한 마추현이라는 캐릭터를 “불길처럼, 등장하는 순간 영화가 어느 지점으로 흘러갈지 모르게 되도록 표현하고 싶었다.”고 언급했으며 김은정 평론가는 “문혜인 배우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는 캐릭터다. 미스터리하고 기묘하고 특이한, 종잡을 수 없기도 안쓰럽기도 한 여러 가지 면을 가진 인물”이라고 설명하며 마추현이라는 캐릭터와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여러 가지 면을 가진 마추현처럼 <인서트>는 로맨스와 코미디, 웃음과 눈물, 영화와 사랑이라는 여러 가지 면을 품고 있는 영화다. 김은정 평론가는 이종수 감독에게 영화를 만드는 것과 연애를 같이 묶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다. 이종석 감독은 “두 행위가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다. 서로 밑바닥을 보여주기도 하고 결국은 싸워야 해결되는 부분들도 많다. 영화를 향한 사랑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생각하며 주제를 잡았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어 “맨 마지막 엔딩 시퀀스가 감독의 마음이 가장 들어가 있는 부분이니 유심히 봐 달라.”라고 부탁했다.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 <허밍>, <인서트>는 희망, 상실, 사랑이라는 다른 트랙을 달리고 있지만 그 출발점엔 ‘감독의 마음속 영화를 담은 영화’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박송열 감독은 절망 속에서 희망의 주문을 외는 영태처럼 단단한 영화의 벽 앞에 희망을 외치는 마음을 담은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를, 이승재 감독은 소리를 녹음하며 쌓아온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허밍>을, 이종수 감독은 영화를 향한 사랑과 그것이 주는 미스터리한 답답함을 담아 <인서트>를 만들었다.
세 명의 감독과 배우들이 내놓은 이 영화들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영화에 대한 경험이 되고 그들이 또 다른 영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새로운 한국 영화의 비전이 되어줄 세 편의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동안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상영 시간]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
10월 9일 (수) 16: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허밍>
10월 8일 (화) 12:0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인서트>
10월 8일 (화) 19: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10월 9일 (수) 12: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
-
- ? 18th JIMFF 방민아 배우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오랜만이다 의 #방민아 배우님 본격 탐구! ?♀️
? JIMFF X HISTRANGER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한국경쟁 상영작 [오랜만이다]의 방민아 배우님을
하이스트레인저 웹 데일리 팀이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8월 25일 대개봉!! ??
? 씨네픽쳐(스틸컷 퀴즈) 절찬리 진행중!! ?
? 씨네픽 큐큐(Quote Quiz) 절찬리 진행중!! ?
? 씨네픽 숏-퀴즈 절찬리 진행중!! ?
아이폰 다운로드 https://apps.apple.com/kr/app/%EC%94%...
안드로이드 다운로드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
#씨네픽 매주 목요일 밤 11시 59분 오픈
-
- 영화 <십개월의 미래> 메인 예고편
만성 숙취를 의심하던 미래는 자신이 임신 10주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온 변수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가족과 연인, 국가는 각기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미래의 십개월은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
- 영화 <낫아웃> 메인 예고편
고교 야구부 유망주 광호는 프로야구 드래프트 선발에서 탈락한다.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대학 진학을 원하는 광호.
하지만 광호의 선택은 동료들과 보이지 않는 갈등을 만들고,
기댈 곳이 없어진 광호는 친구 민철과 함께 가짜 휘발유를 판매하는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