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4-17 08:33:06
앳된 얼굴의 청년이 교도소의 왕이 되기까지
영화 〈예언자〉
8★/10★
어느 범죄자 소년이 감옥에서 ‘갱생’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느와르, 범죄 영화 〈예언자〉(2010)를 보며, 자크 오디아르가 영화적 재미와 정치적 메시지를 배합하는 데 정말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감독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주인공 말리크는 부모가 없다. 어릴 때부터 감옥을 들락거렸다. 아랍계이긴 하나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프랑스어와 아랍어 모두를 말할 줄 안다. 그러니까, 말리크의 정체성은 ‘혼종적 백지 상태’다. 그래서 감옥의 왕으로 군림하는 또 다른 수감자 세자르의 심부름을 하면서도 이너서클에는 들지 못하고, 아랍계 죄수들에게서는 동포를 팔아먹은 자라고 비난받는다.
그러나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말리크의 정체성은 바꾸어 말하면 어디 한 곳에 속하지 않고 두 세계를 오고 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록 완전한 ‘내부인’은 되지 못할지라도, 즉 확고한 정체성은 갖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말리크는 타고난 순발력과 대담함으로 이를 자신의 무기로 만들어 스승, 아버지, 교도관 등의 역할을 종합해 폭력적으로 군림하던 세자르를 잡아먹고 새로 왕좌에 오른다.
영화에는 세자르와 그 수하들이 감옥에 점차 아랍계 죄수가 많아지는 데 불만을 표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온다. 유럽계 간수들이 자기들 편이라 감옥을 장악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아랍계 죄수들을 자신들 통치하에 두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세자르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말리크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과 맞물린다. 동료들이 다른 감옥으로 이송되고, 아랍계 죄수들은 점점 늘어나면서 세자르는 서서히 몰락한다. 그리고 말리크는 ‘타고난’ 인종적 정체성으로 아랍계 죄수 무리에 스며들어 그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한다. 지금까지도 프랑스에 횡행하는 인종주의적 극우의 공포 속에서 ‘백지’ 상태이던 말리크를 아랍계의 수장으로 만든 건 뭘까? 프랑스인을 우대하고 아랍계를 차별한 (감옥) 시스템 그 자체다. 말리크는 다른 모든 죄수와 마찬가지로 시스템 안에서 생존을 도모했고, 특출나게 성공해 왕좌를 대체했을 뿐이다.
앳된 얼굴의 청년 말리크가 몇 년의 수감 기간 중 ‘갱생’ 및 ‘교화’되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예언자’로 등극하는 과정은 어떠한가? 말리크는 수감되자마자 세자르의 강압적 요구로 아랍계 죄수 레예브를 살해한다. 이후 레예브의 유령과 말리크가 대화하거나 함께 있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말리크의 성장은 그가 레예브의 환영을 ‘불태우고’ 자신의 모호한 정체성이라는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혼란스러운 정체성에서 죄책감을 거쳐,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던 한 남자가 강력한 남성 주체로 우뚝 선다.
말리크의 성장은 극우와 인종주의를 둘러싼 감정 역학과 더불어 젠더 정치의 측면에서도 흥미롭다. 세자르가 그에게 레예브를 죽이라 했을 때, 말리크는 동성애자 레예브의 성기를 애무해주다 입안에 숨긴 면도칼로 그의 목을 공격하려 한다. 계획이 어그러져 그 방법으로 죽이진 못하지만, 세자르가 말리크에게 알려준 살인의 방법은 말리크가 남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갓 입소한 말리크는 세자르가 아랍계 남성의 성기를 빨다 살해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존재, 즉 ‘호모’ 혹은 ‘여성’이었다. 말리크에게 규범적 의미의 남성성은 부재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말리크는 죽은 동료 리야드의 아내, 아이와 함께 걷는다. 가장의 죽음으로 위기를 맞은 이성애 핵가족의 구원자로서 행진한다. 그리고 그 뒤로는 수많은 남자가 뒤따른다. ‘여성’이자 ‘호모’였던 그는 수컷 무리의 우두머리이자 한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남자’로 거듭난다. 〈예언자〉는 이처럼 여러 정치적 주제를 종횡무진 망라하며 장르의 재미를 구축한다.
Relative contents
-
- 주성치 스타일을 이식받은 한국형 하찮은 히어로즈
오랜만에 웃었다. 일반시사회라고 할지라도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기란 쉽지 않다. 요즘 같이 영화 산업이 힘들 때는 더 그렇다. 그래서 더 놀랍다. 본의 아니게 4년 동안 창고에 갇혀 있던 <하이파이브>가 의외로 재미졌다. 물론, 각 잡고 보면 헛점이 보이고,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장르 영화로서 관객을 만족시키는 매력은 있다.
이식 하면 원래 다 이런 건 아니다. 심장 이식을 받은 태권 소녀 여학생 완서(이재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이 넘쳐난다. 발차기 한 번에 샌드백이 터지고, 오르막길도 단숨에 달린다. 날기도 한다. 스파이더맨이 된 피터 파커처럼 신기한 신체 경험(?)을 즐기던 완서는 어느날, 작가 지망생 지성(안재홍)을 만난다. 자신도 장기 이식 후 신기한 힘을 가졌다면서 자신들처럼 장기를 이식받은 기동(유아인), 선녀(라미란), 약선(김희원)을 찾아나선다.
특수 혈청을 맞아 힘을 가진 것도, 과학 천재라서 슈퍼 수트를 만든 것, 방사능에 노출되어 괴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냥 장기 이식을 받았을 뿐이다. 심장, 간, 폐, 신장, 각막을 이식받은 5인은 각각 괴력과 스피드, 치유력, 강풍, 초능력 분배, 전자파 제어의 힘을 갖는다. 평범하지 못해 루저의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 초능력은 어쩌면 그들의 비루한 일상의 전환점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괴력과 스피드를 가진 완서는 모든 걸 감시하는 아버지 울타리에 갇혀있고, 강풍 능력을 가진 지성은 세상을 비관하며 시간 날 때마다 비트코인 등락폭만 보고 있다. 기동은 손가락 하나로 도박장에서 돈을 긁어 모으지만, 백수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선녀는 과거의 삶에 묶인 채 열심히 야쿠르트를 판다. 약선 또한 피 땀 흘려 번 돈을 사이비 종교에 헌납한다.
영화의 코믹 유발 시작점은 5명의 초능력자들이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능력을 쓴다고 해도 너무 사소한 일에 사용하는 그 모습이다. 초능력이 있어도 하찮은 일에만 쓰고, 변함없이 한심하고 찌질하게 사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웃프다. 특히 강풍 능력이 있는 지성과 전자파 제어 힘을 가진 기동(유아인)은 견원지간을 방불케하는 자존심을 싸움을 벌이는데, 이는 극중 주요한 웃음 동력으로 작용한다. 중반부 둘의 오묘한 장면도 한 몫한다.
코믹함은 좋다. 주성치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B급 코미디와 강형철 감독 특유의 말맛으로 이뤄진 코미디가 균형을 이뤄가며 계속 진행되는데, 종종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관객의 웃음을 공략하는 적중률은 꽤 높다.
중요한 건 이 웃음들이 단순히 휘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써니><스윙키즈>의 주인공들의 성향을 이식한 것처럼, 이번 주인공들 또한 관계가 서툴다. 각자의 이유로 친구가 없는데, 초능력을 가졌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이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점점 막역한 친구가 되어간다. 이 과정 속에서 멤버들의 아픈 과거가 나오는데, 웃음 뒤 자리한 페이소스가 잘 배합되는 듯한 느낌이랄까. 오합지졸 모인 이들이 팀워크는 후반부 췌장 이식자인 사이비 교주(신구, 박진영)와의 대결 시 필살의 힘으로 작용하며 멋진 결말로 가는 길을 틔워준다.
단, 액션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강형철 감독은 주성치 영화 스타일을 이식해 B급 액션을 구현했는데, <소림축구> <쿵푸허슬>를 좋아한다면 괜찮지만, 반대라면 액션 디자인에 대한 물음표를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초반 완서의 달리기 장면이나 야쿠르트 카트 체이스 장면, 그리고 하이파이브 멤버들과 사이비교주의 대결 장면은 누군가에게는 희열을, 누군가에게는 완성도에 따른 의문을 가질 터. 초반 액션은 좀 튀어 보이지만, 주성치 느낌의 액션을 구현하기 위한 목적성을 이해한 이후에는 걸림돌이 사라지겠지만, 그 반대라면 끝날 때까지 눈에 가시처럼 보이긴 한다. 개인적으로는 주성치 영화는 물론, <품행제로> <아라한 장풍 대작전>의 액션을 봤을 때의 느낌이 들기도 했다.
취향 타는 액션의 빈 곳은 역시나 배우들이 메운다. 감독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배우들은 각 캐릭터와 너무 잘 붙는다. 이재인은 첫 주연이 맡나 싶을 정도로 캐릭터를 잘 소화한다. 액션 만큼 대사를 통한 코미디 연기가 참 좋았는데, 안재홍과 아버지로 등장하는 오정세와의 대화 장면은 끝내 웃음꽃을 피워낸다. 유아인, 라미란, 김희원 등 다수의 배우들도 각자가 맡은 캐릭터를 잘 연기하는데, 유아인은 <승부>에 이어 이번에도 호연을 펼친다. 그래서 안타까움이 두 배로 든다.<하이파이브>의 독특한 코믹 액션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다면, 일단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즐기자. 기자간담회에서 강형철 감독은 “정체성이 오락영화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고 초능력을 넘어서는 더 위대한 힘은 주변의 친구, 가족”이라고 영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감독의 말처럼 친구, 가족과 함께 한국형 하찮은 히어로즈의 성장을 웃으며 지켜보기 바란다.
덧붙이는 말: 강형철 감독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음악이다. Rick Astley의 'Never Gonna Give You Up'을 비롯해 추억의 팝이 등장하는데, 적지적소에 삽입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더한다. 극장 밖을 나가면 ost를 쭉 들어보기 바란다.사진출처: NEW
평점: 3.0 / 5.0
한줄평: 마음을 비우고 코믹에 몸을 맡기면 ‘하이파이브!’
-
- 영화적 상상력이 궁금할 땐 고개를 들어 파묘를 보라
영화적 상상력이 궁금할 땐 고개를 들어 파묘를 보라
영화 <파묘> 리뷰감독] 장재현
출연]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시놉시스]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과 봉길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이 합류한다. “전부 잘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
#스포일러 주의#
이렇게나 매력적인 사운드라니영화 파묘는 사운드가 정말 매력적이다. 특히 극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때 음향 효과를 극적으로 쓰는 작품이었다. 화림과 봉길이 악귀를 만나 두려움에 떨 때 악귀가 내뿜는 고압적인 느낌을, 악귀가 제대로 보이지 않음에도 느껴지는 거대함을 청각적으로 잘 풀어냈다. 그래서 오컬트 영화하고 했지만 관객들이 공포감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러한 청각적인 요소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에 영화관이라는 어둡고 닫힌 공간에서 전달되는 사운드는 공포함을 배가 시킬 수 있었던 장치였다.
공포적인 요소를 부각하고 있었지만 그 사운드가 부산스럽지는 않았다. 사실 일반 매체에서 보여진 굿판의 장면들은 굉장히 혼란스러운 모습들이 많았었는데 영화 파묘에서는 절제된 사운드를 통해서 오히려 굿 자체에 집중을 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경문을 외는 목소리만을 사운드로 입히거나 단촐한 사물로 구성된 리듬을 넣음으로써 화려한 bgm이 아니어도 충분한 집중도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범과 여우라는 비유로 이런 상상을 해내다니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이 대사는 영화 파묘를 관통하는 대사다. 범은 조선을, 여우는 일본을 상징한다. 사실 화림과 봉길이 미국을 다녀오면서 이장을 결정하기까지 이 작품이 일본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둘째 손자 박지용이 할아버지에 빙의되어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다하는 발언을 하면서 이 작품이 과거 일제강점기와 연결이 되어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 깨달을 수 있었다.
박지용의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라는 직접적인 발언 이후 영화 속에서는 여우와 범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계속적으로 등장한다. 박지용의 할아버지의 묫자리를 알아봐준 스님 이름이 기순애(여우-키츠네)라는 점과 응급실에서 태백산맥을 보여주며 한국의 허리라고 표현된 액자를 굳이 포커스 해준다는 점 등 일본 여우가 조선의 범을 노렸는데, 그 허리가 산맥 중간에 있는 박지용의 할아버지 묫자리인 것이다. 이 미스터리가 풀리면서 극장 안에서 혼자 탄성을 질렀었다.
사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이 본다면 알 수 없는 경문을 외우고, 잘 모르겠는 음양오행 사주를 설명하며 물이 스며든 나무가 불에 달궈진 쇠를 부술 수 있다는 지독한 순환논리, 그리고 거대한 도깨비 같은 악인이 등장하고, 문신한 자리는 피해서 공격을 하고 말만 들어도 엄청나게 오컬트할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를 단순한 오컬트 영화라고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보기에는 오컬트에 합쳐진 공포와 아픔으로 외국인에게는 오컬트 그 자체로 한나라의 치욕적인 지배에 대해 역사적 이해를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모든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이 영화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에게 박수를 쳐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이용만 당할 뿐장재현 감독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역사적으로 이 작품을 접근해보자면 결국 조선인은 아무리 일본에 충성을 다했다 한들 죽어서까지도 이용만 당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줘서 친일파는 무엇을 누리고자 저렇게 친일을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일본은 정말 자신한테 잘해준 사람도 이용을 하는구나 하는 참담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박지용의 할아버지는 일제에 엄청난 친일을 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토지와 돈을 바치면서 일제강점기 시절 엄청난 부를 쌓으며 살았던 인물로, 이 인물을 위해 스님 기순애는 좋은 자리라며 묫자리까지 알아봐준다. 어느 누가 이들이 알려준 묫자리가 악지라고 생각했을까? 조선인한테 묫자리를 추천받은 것도 아니고 본인들이 그렇게 충성해 마지 않던 일본으로부터 묫자리를 추천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일본은 조선의 허리에 정기를 자를 수 있는 무언가를 심을 계획이었고, 이를 심은 뒤 절대로 뽑을 수 없게끔 고관대작의 무덤을 그 위에 겹장을 해두면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것이라는 꾀를 낸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들에게 그리도 잘해준 박지용의 할아버지는 죽어서 까지도 그 일본귀신에 시달리며 구천을 떠돈 것이었다. 이는 물론 영화적 상상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실제 일제강점기 하에서 일본이 얼마나 조선인들을 수단적인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는지 상상이 돼서 씁쓸했다.
영화 파묘는 삼일절에 봐서 그런지 더욱 울림이 컸던 작품이었다.
-
- 평행 세계 로맨스 영화, 그래서 뭐가 특별한데?
<나를 모르는 그녀의의 세계에서>
작가 지망생 리쿠(나카지마 켄토)는 교수에게 빼앗긴 창작 노트를 되찾기 위해 학교에 몰래 잠입한다. 경비원에게 들켜 도망치던 중, 비어 있는 강당에서 노래를 부르던 미나미(미레이)를 만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만남은 서로의 인생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두 사람은 곧 연애를 시작한다.
결혼을 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꿨지만 리쿠의 소설이 히트하고, 유명 작가로 떠오르면서 둘의 관계는 서서히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소설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가장 뒤편으로 밀려났다.
월식이 있던 어느 밤, 운명이 완전히 전복된다. 여느때와 같이 잠에서 깬 리쿠는 더 이상 소설가가 아니고 글도 쓰지 못하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아내인 미나미가 인기 가수가 되어 있다.
그녀는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학 완전히 타인으로 대하면서 리쿠는 큰 충격에 빠진다.
그녀가 자신을 모르는 세계에서, 리쿠는 그들의 행복했던 세계를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평행 세계라는 오래된 장치를 전형적으로 활용한다. ‘사랑의 반복 가능성’, ‘시간을 넘는 감정’은 이미 일본 로맨스 영화의 단골 소재이며,
그의 작품 <오늘 밤, 이 세계에서 사랑이 사라진다고 해도>처럼 그 전통은 이미 과잉 상태에 가깝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의 세계에서> 역시 그 계보를 충실히 따르며,
대중이 기대하는 멜로적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를 넘어서는 지점은, 주제의식의 ‘깊이’가 아니라, ‘조율’에 있다.낯을 섬세한 감정으로 풀어내며 진정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 진정성은, 무엇보다 두 배우의 연기에서 나온다.
미나미 역의 미레이는 첫 연기 도전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섬세한 감정선을 보여준다. 눈빛과 망설임, 짧게 머뭇대는 손끝의 움직임 같은 것들이 그녀의 진심이 된다. 칸토 역시 리쿠라는 인물을 갈등과 후회, 집착과 배려 사이에서 복잡하게 흔들리는 내면을 절제된 방식으로 드러낸다. 덕분에 이 비현실적인 설정도 끝내 감정적으로 납득된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축적 위에, 관객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끄는 인물이 있다.
바로 키리타니 켄타가 연기한 카지와라 선배다. 초반 그는 능청스럽고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조언자로 등장한다. 영화의 흐름 속에서 한숨 돌릴 여유를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관객들로 하여금 가장 이입하며 볼 수 있는 캐릭터로 조연으로 활용될 것 처럼 보이지만 후반부, 그는 자신의 죽은 아내에 대해 이야기하며 영화의 주제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어떠한 형태로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쿠는 미나미의 기억을 빌미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남편이었기에 알 수 있었던 디테일들’을 이용해 그녀의 마음을 열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자문하게 된다.
“내가 그녀의 삶에 없던 편이 더 나았던 건 아닐까.”
그 질문은 로맨스의 안락한 공식에 균열을 낸다. 사랑은, 그리고 함께한 시간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축복이었을까. 리쿠는 희생함으로서 비로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관계에 있어서 잘못된 선택은 없다. 그때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켜켜이 쌓여 때론 후회하기도 또 자연히 몸에 남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돌이킬 수 없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좋은 방식으로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이 영화는 만약, 이라는 가정으로 그가 정의하는 사랑에 대해 말한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 앤트맨이 새로운 페이즈의 시작을 여는 것은 좋았지만
이거 실화냐
이거 실화인가? 분명히 미래가 아득해 보였다. 번듯한 아르바이트도 못 구하던 스콧 랭. 전과자라는 이유로 배스킨라빈스에서도 짤린 그였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지라는 법은 없다. 팔콘의 픽을 받아 어벤저스에 합류했던 스콧. 독일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팀을 먹고 블랙 위도우와 싸우던 기억부터, 최악의 빌런 타노스와의 대결까지 두 눈 뜨고 믿을 수 없을 기억들이 그에게 생생하다. 차가웠던 세상. 이제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날 알아본다는 생각에 즐겁다. 습관처럼 갔던 커피숍은 아직도 음료 값을 받지 않는다.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바뀐 세상을 음미하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운 스콧. 사람들의 대우도 행복했지만 사실 그가 내일을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다. 어벤저스가 아니었다면 꿈도 못 꿀 것 같은 사람들이 지금 그의 곁에 있다. 예쁘고 능력 있는 아내 호프. 하워드 스타크만큼 똑똑한 장인어른 행크 핌. 그리고 그의 아내 재닛은 혼자였던 스콧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딸 캐시와의 관계는 두말하면 입 아프다. 예쁜 딸 캐시. 딸이랑 관계는 문제가 없다. 대신 딸에게 문제는 살짝 있다. 그 아버지의 그 딸이라고 했던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슈퍼히어로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가는 것이 부지기수다. 그날도 감옥에 들어간 딸을 빼오던 길이었다. 집에 도착한 앤트맨 가족. 아빠에게 캐시가 발명한 것에 대해 말한다. 바로 양자영역에 신호를 주고받는 도구였다. 겉으로 들으면 기발한 것 같지만 왠지 장모 재닛의 얼굴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잠깐만. 양자영역에 신호를 보내는 일이라고? 당장 꺼! 이해 못 할 말을 하는 재닛. 분명히 신호를 껐다. 양자영역과 신호를 주고받는 이 기계에서 갑자기 반짝이며 빛이 났다. 이 기계는 모든 걸 집어삼켜 앤트맨 가족을 양자영역의 세계로 빨아들였다. 이 다른 세계에서 스콧 가족의 모험이 시작된다.
앤트맨이어야 하는 이유
많은 분들이 <어벤저스 : 엔드게임>을 기억할 것이다. 이 영화 전편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에서 히어로 군단은 타노스에게 졌다. 빌런의 목적 따라 지구 인구가 반이 사라진다. 이 망가진 인피니티 사가를 다시 시작했던 건 앤트맨이었다. 앤트맨의 특성을 활용해서 인류를 다시 찾은 어벤저스. 인피니티 사가를 다시 시작했다는 막중한 임무를 안았던 그가 이번 영화에서 페이즈 5를 다시 연다는 과제를 안았다.
이 점에서 앤트맨이 이 페이즈 5의 시발점이 된다는 기획은 합리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로 마블은 몇 가지 새로운 시작을 보여줬다. 타노스의 뒤를 이을 전우주적 빌런 ‘캉’이 등장한 것이 가장 첫 번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정복자 캉은 드라마 <로키>에서 선을 보인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선보인 정복자 캉이 훨씬 더 구체적이다. 캉은 멀티버스를 관리하며 여러 시간선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특징을 구현하기 위해 영화가 어떤 설정을 만들어서 관객에게 제시한다. 왜 양자역학으로 인물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가? 에 대한 설명도 된다. 이 부분을 유심히 봐야 극을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극에서 나오지만) 이 영화에서 나오는 캉은 수많은 캉 ‘들’중 하나다.
또 영화에서 보여주는 개념은 새로운 세계로의 확장이다. 물론 저번 페이즈 4에서 영화의 배경을 우주로 끌고 간 부분이 있긴 하다. 바로 <이터널스>와 <토르 : 러브 앤 썬더>다. 그러나 히어로들이 직면한 문제가 전적으로 ‘시간 선을 관리하고 있는 캉과의 대립’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는가? 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영화는 비교적 소소하게 물건을 컸다 줄였다 하는 특성으로 소소한 코미디를 보여줬던 시리즈의 주인공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앞으로 정복자 캉이 등장해 판을 흔들려고 할 계획인데 앤트맨이 아직까지도 소박하게 살고 있으면 괴리감이 들 것이다. 이렇게 큰 스케일을 구현하듯, 마치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구체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 부분에 대해서 글쓴이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양자역학이라는 디테일을 잘 구현했나는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세계로 넓혔고 이 영화 자체의 시각적인 비주얼은 낡았다는 말은 거의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을 새롭게 리디자인한 감독과 시각팀의 창의성이 돋보였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이다.
그리고 이제 차기 mcu에서 다른 주인공이 될 것 같은 ‘영 어벤저스’ 한 캐릭터가 등장했다. 이 인물의 등장이 양날의 검처럼 작동하기는 하지만 극에서 생동감이 생기는 설정이 되기도 한다. 페이즈 4 ‘영 어벤저스’의 등장에 있어 가장 존재감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랬구나
영화에서 시각적인 비주얼 다음으로 꼽았던 것은 이야기의 큰 줄기다. 영화 전체적으로 ‘이래서 그랬구나’ 싶었던 부분이 몇 있었다. 우선 정복자 캉의 캐릭터성이다. MCU의 다른 작품 <로키>에서 나왔던 특성이 본작에서도 이어진다. 이는 글쓴이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어떤 관객분들은 응? 싶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글쓴이가 이 특성을 이해할 수 있던 이유는 <로키>를 보고 캉의 원작 특성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전의 마블 영화들과 차별된다고 생각한다. 의문점이 되는 핵심인물의 퇴장(<토르 : 러브 앤 썬더>), 히어로의 존재감이 미미함(<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 등 기존 작품들과는 나름 잘 만든 구석이 돋보인다. 그에 대한 근거는 영화 내적으로 재닛의 행방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 / 어떤 캉이 양자역학의 세계에 갇혔고 왜 거기에 있는가 / 앤트맨과의 대립 / 캐시의 활약 / 캉의 서사로 새롭게 시작되는 mcu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페이즈 4의 영화와 일부 드라마들이 떡밥을 펼치기 위해서만 기능한 것과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게 본인 혼자만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떤 관점에 따라서는 ‘왜 이렇게 결과가 나지’라고 이해하기 충분하다. 또 양자역학이라는 세상의 디테일은 살짝 부족하긴 하다.
또 영화의 다른 강점은 앤트맨과 와스프다. 사실 영화에서 어떤 장면이 있기 전에는 인물 연출이 좀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있을 때 앤트맨과 개미를 오버랩시키는 연출이 있다. 이 연출이 나오기 이전에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 장면이 나왔는지, 그리고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연출된 부분이기도 하다. 이 장면은 멀티버스 사가의 시작처럼 들리는 부분이다. 아마 여러분들도 이 장면이 들어가는 과정, 방식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늘 하던 패턴
그렇게 재미있게 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단점은 있다. 그것은 페이즈 4에서 공통적으로 전개됐던 몇 가지가 그대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물론 이 영화가 시리즈의 전작들과는 다른 점을 품고 있기도 하다. 인피니티 사가의 ‘ㅇ’만 언급된다는 점은 시리즈가 고를 수 있는 좋은 선택지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를 구성하는 형식이 공식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단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영화의 줄거리가 페이즈 4에서 갖고 온 것들이다. 예고편에서 나온 바와 같이 영화는 캐시가 만든 어떤 상황을 인물들이 겪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전개는 우리가 이전에 본 형태다. 바로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이나 <블랙 팬서 : 와칸다 포에버> 등에서 있던 이야기 전개이기 때문이다. <미즈 마블>도 그랬고 <호크아이>는 케이트가 벌인 일이 아예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큰 관련이 있다. <이터널스>도 주인공 사이에서 비교적 어려 보이은 어떤 인물이 이야기의 핵심이 된다. 이렇게 지난 2년 동안 전개됐던 계속 똑같은 공식이 페이즈 5에서도 볼 수 있다는 점은 이야기 전개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아쉽게 느껴진다. 이는 이 영화의 장르에도 이어지는 단점이다. 좀 이질감이 드는 장르 연출이다. ‘인커젼’ ‘멀티버스’ ‘핌 입자’ 같은 매니악한 소재들이 영화 전면에 등장하는데 영화가 가족영화인 것은 과연 mcu의 방향성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이 방향성에 대한 논의는 앤트맨이라는 시리즈의 특성이 이 작품에 얼마나 스며들었는가?와도 관련이 있다. 시리즈를 운영하는데에는 큰 무리가 없는 이야기 전개지만 앤트맨 시리즈를 기대하시는 분들은 크게 실망할 만한 요소가 많다.
이 가족영화로서의 강박은 영화의 형식과도 이어져 있다. 이 영화는 어떤 장면이 후반부에 반복된다. 이 반복이 굳이 필요했을까? 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다. 이는 마지막 시퀀스, 그러니까 사람들이 모여서 뭘 하는 장면에서도 느껴졌다. 가족영화로서의 강박이 뭔가 유치하게 들리는 것이다. 두 커플인 행크와 재닛, 스콧과 호프의 관계는 로맨틱해서 기억에 남는데 가족영화로서의 요소는 이야기의 억제가 되는 점은 안타까웠다.
이 단점은 재닛의 연출과도 이어진다. 가족 간의 유대감이 끈끈하게 묘사되는 이 영화. 특히 행크, 호프와의 관계는 어느 모녀와 부부보다 더 끈끈하다. 그러나 영화 간접적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다. 영화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인 재닛의 잃어버린 30년이다. 이 30년을 두고 인물들이 벌이는 대화는 좀 거리감이 있게 느껴진다. 이 영화가 성립되기 위해서 작위적으로 설정된 것이다. 어벤저스급 지능을 가진 두 사람이 이렇게 답답하게 행동했을 것이라는 것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또 글쓴이는 이해했지만 어떤 관점에서 정복자 캉이 품는 작중 행적이 이해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인물은 단점보다 강점이 더 많다. 담당 배우 조너던 메이저스의 명연기는 어마어마하다. 액션 신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나 소리 지를 때, 또 얼굴 표정 바뀌는 연기나 인물의 내면 묘사 등 감독이 신경 쓴 부분이 몇몇 보인다. 그런데 가장 결정적인 단점으로 보이는 부분이 하나 있다. 누구는 이해되고 누구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확실히 아쉽다고 여길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정복자 캉이 품는 첫 번째 이야기다. 앞으로의 mcu에서 풀 과제가 된 셈이다.
-
- 날카로운 조각별처럼
PROGRAM NOTE.
<시티즌포>(2014)의 로라 포이트러스 감독의 최신작이자 2022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이 다큐멘터리는 두 줄기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나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낸 골딘의 지난 삶과 예술 작업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골딘이 오피오이드 진통제 옥시콘틴 중독에서 벗어난 뒤 이 약의 제약사 퍼듀와 그 배후에 있는 새클러 가문을 상대로 벌인 투쟁 과정이다. 영화는 골딘이 비극적인 가정사를 넘어 1960년대와 70년대 혁명적 시대와 결합하면서 예술가로 성공하는 과정을 그의 대표적인 슬라이드 쇼들을 덧붙여 보여준다. 또한 그가 ‘에이즈 시대’에 벌였던 격렬한 투쟁이 골딘 예술의 본질 중 하나임을 드러낸다. 결국 포이트러스 감독은 골딘이 옥시콘틴 피해자 단체인 P.A.I.N과 함께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대학을 돌면서 벌였던 시위 투쟁도 그의 또 다른 예술 작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문석,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POINT.
✔️ 예술가들의 예술가 낸 골딘. 사진작가 낸 골딘을 잘 몰라도, 자비에 돌란이나 왕가위가 언급했음을 들으면 궁금해지실 거예요
✔️ 내부자이자 당사자로서 기록한 예술 세계의 아름다움. 사진과 음악이 동시에 펼쳐지면서 '아 이래서 영화가 종합 예술이지' 하고 만족스러워지는 영화입니다 (그러므로 꼭 영화관에서 보셔야 좋아요!)
✔️ 예술가인 동시에 투쟁하는 사람이라고? 예술가가 예술하는 이야기만은 아닌 영화랍니다. 보고 나면 우리 삶에 대해서도 생각거리들이 많아지는 영화
✔️ 근데 일단, 예술과 투쟁과... 이런 걸 다 떠나서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다큐멘터리
✔️ 전세계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52번 노미네이트되고 35관왕이 되었다는데...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이라는데... 이유가 있다!
날카로운 조각별처럼 터져나가는
사진작가 낸 골딘은 1970년대 미국의 "하위 문화"를 사진으로 담아 슬라이드쇼 형태로 클럽이나 공연장에서 선보이며 등장했다. 자신과 친구들의 세계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그 세계는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 예술가, 마약과 섹스가 혼재되어 있었고, 세상으로부터 배제되었던(marginalized) 동시에 세상을 배제하는 당대의 아웃사이더들의 세상이었다.
카메라를 여자가 들다니, 심지어 이런 "타락과 방종"을 담아내다니, 미술계에서는 낸 골딘을 거부하기도 했지만, 내부자이자 당사자의 시선은 강력하다. 낸 골딘의 예술세계는 깃발을 하나씩 꽂듯 '개저씨'들에 밀리지 않고 '맞다이' 뜨면서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낸 골딘의 사진 속 친구들은, 70-80년대 사진에서 각자의 잰으과 상처로 날카로운 조각별처럼 반짝반짝 터져 나가던 그 빛은, 이내 90년대에 전혀 다른 빛 안에 담기게 된다.
에이즈. 후천적면역결핍증후군. 항레트로바이러스제요법이 알려지고 널리 퍼질 때까지 마치 "신의 저주"처럼 여겨졌던 그 질병 앞에 친구들은 말라 가고 스러지고 죽어간다. 세상은 그들의 "타락과 방종"의 결과라고 손가락질하지만, 낸 골딘의 눈빛은 그 앞에서 더욱 단호해져 간다. 단호한 눈으로 친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친구들의 예술을 전시로 구성한다. 여기에 던져지는 눈총에는 "이것은 매카시즘이자 예술가들을 블랙리스트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말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손목수술 후 처방 받은 약이 마약성이었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게 된다. 그래도 중독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어 "운이 좋았다"는 낸 골딘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같은 고통을 겪고 회복된 사람들 혹은 같은 고통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고통과 상처를 아는 사람들은 모여서 투쟁한다. 마약성 진통제를 아무렇게나 처방하여 사람들을 중독되게 하고 막대한 부를 쌓은 제약 회사와 그 오너 일가를 규탄한다. 영화는 낸 골딘의 삶을 선형적으로 담지 않으면서, 다른 축에서 이 투쟁을 담는다. 영화는 그렇게 명확히 보여준다. 삶과 투쟁이, 예술과 정치가, 그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이 모든 것들은 한 줄기에서 태피스트리처럼 뒤얽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임을.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매끄럽고 티 없는 느낌으로만 아름다운 그런 것은 아니다. 매끄럽게 어떤 '규칙'에 따라 밟은 창작물에서 우리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그래서 그것을 엔터테인먼트라 부를 수 있고, 그것도 우리에게 필요하고 정말 좋은 것이지만, 예술은 다르다. 예술은 작가의 속을 파먹고 태어난다. 어딘가 거칠고, 피인지 땀인지 눈물인지 그 모든 것인지 모를 무언가가 축축하게 얽혀 있고, 스크래치가 나 있고, 툭툭 걸거치는 무언가가 이따금 박혀 있고, 그래서 내가 그 결과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게 예술이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예술은 결코 당의(sugarcoat)를 입을 수 없다. 존경스럽고 그들의 존재에 감사하게 되면서도, 그의 운명을 내가 지고 살고 싶은가 묻는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김애란의 소설에 매번 감탄하지만 그가 눅눅하게 표현한 슬픔의 농도를 내 마음에 지고 살고 싶지는 않다. <토지>를 비롯한 박경리 소설을 읽을 때마다 대문호의 높이를 느끼지만, 이 대문호가 대작을 쓰면서 느꼈을 마음 속의 소용돌이를 내 것으로 지고 살 자신은 없다. 오래 소설가 황정은 인터뷰에서 "문학 작품 주인공이라니, 그런 것이 되고 싶을 리가 있냐"고 응답한 것과 마찬가지다. 낸 골딘의 작품 또한 내게 그렇다. 슈가코트를 걸치고 매끄러워질 수 없는, 툭 불거지고,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예술이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정치적인 것들은 필연적으로 투쟁하며, 그 투쟁에는 절대 피상적인 구호가 끼어들 수 없다. 영화 속 제약회사와 오너 일가는 "기업 홍보 리스크"로만 이들의 싸움에 접근하지만, 낸 골딘과 단체의 목적은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싸움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예술은 언제나 어떻게든 삶의 본질에 가 닿는다. 심지어 작가 스스로 알든 알지 못하든. 70년대 친구들을 담던 낸 골딘의 사진에 담긴 예술성도, 오너 일가에 맞서 투쟁하는 순간의 예술성도 결국 같은 본질에 맞닿아 있듯이.
오명과 낙인에 맞서는 아름다움
이 영화에는 스티그마(stigma)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때로는 '오명'으로도, 때로는 '낙인'으로도 번역되는 이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가 아니지만 자주 보이는 현상이다. 에이즈 환자라서, 성소수자라서, 여자라서, 고양이를 예뻐해서, 머리가 짧아서, 참사 피해자의 유가족이라서... 각양각색의 이유들로 우리는 손쉽게 '낙인'을 찍고 그것으로 상대에 대한 평가를 끝내 버린다.
70-80년대 미국 "하위 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분명 스스로의 몸을 도구화하고 있었다. 섬광처럼 터져 나가는 젊음을, 마약이든 섹스든 예술이든 어떤 형태로든. 그러나 이는 타인의 몸을 도구화하는 것과는 다르다. 낸 골딘이 성매매에 대해서 "ugly"한 시절이었다고 말하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 같다. 스스로의 몸을 도구화하는 것에 나는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자신의 주장을 위해 이들의 삶과 몸을 도구화하는 시각에는 더더욱 동의할 수 없다. "타락과 방종"의 결과로 죽어가는 너희를 다 죽이면 이 병이 사라질 것이라고, 이 병은 신의 저주라고 말하는 마음. 그 마음에 깃든 생각들은 과연 "타락과 방종"이 아닌가? 그 심보를 그냥 두는 것이야말로 신의 저주가 아닌가?
그 모든 오명과 낙인에 맞서 깃발을 꽂은, 어떤 삶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그래서일까, 낸 골딘이 참여한 시위들이 담긴 이 영화 속 장면들은 무척 아름답다. 이런 중대한 이야기를 목 놓아 외치는데 내가 여기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앉아 있어도 되나, 싶으면서도... 전단이 나부끼고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순간 아름다워서 울컥하게 되고, 라임이 잘 들어맞는 투쟁의 구호에 감탄하고 있고, 체포되는 순간까지 우아한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아름다움을 느낀다.
나는 왜 그들의 투쟁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그 느낌 자체에 착잡해졌는가. 고민하다 보니 결국 그건 시민사회의 아름다움에 닿는다. 돌고 돌아 나에게까지 이어질 공공선에 대한 투쟁이더라도 (예를 들어 장애인 이동권이 보다 보장되는 사회는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며, 참사에 맞서 사회적 안전을 말하는 투쟁은 결국 우리 모두를 보호한다),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정치적"이라는 (부정적으로 쓰이는) 비난을 던지는 사람들, 그들로 인해 더욱 그악스러워져야만 가까스로 기능하게 되는 한국의 투쟁들을 생각할 때, 그 아름다움 앞에 착잡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기에, 정치적인 것들 안에서 우리는 예술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어쩐지 이 영화 끝에서 나는 <아무튼, 데모>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의 한 축을 이루는 이 투쟁기로 인해 중간중간 탐사 보도처럼 느껴지는 이 영화 속 장면들은, 우리에게 더 많은 대화거리와 고민을 안겨준다.
우리의 목소리는 어디까지
이따금 탐사 보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낸 골딘이라는 인물의 개인사를 선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드러내는 인물 다큐멘터리이면서, 슬라이드쇼 형태로 많이 '공연'되었던 그의 작업물을 넉넉하게 보여주는 종합 예술이기도 한 이 영화는, 아주 재미있는 작품인 동시에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인상을 남긴다.
시작부터 천명하고 시작한다. 삶을 이야기로 만들기는 쉽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고. 그 말은 낸 골딘이라는 인물에게서 사진작가, 예술가의 아우라를 일견 걷어낸다. 그의 예술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에 담길 정도의 고고한 인물의 일대기가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냥 단순명쾌하지도 깔끔하지도 않은 현실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임을,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구성된 이야기가 낸 골딘의 전부일 수도 없음을.
또한 아예 내레이션을 맡을 만큼 감독이 적극적으로 등장하지도 않으며, 아예 카메라 뒤에만 존재하며 표면에 등장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중간중간 아주 작은 순간에만 등장함으로 그 장면들을 주목하게 한다. 낸 골딘의 목소리도, 감독의 목소리도, 우리의 목소리는 어디까지 이야기로 정리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이야기 뒤에 펼쳐진 삶을, 현실을 놓치지 않게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와, 수많은 주제로 가닥가닥 이어지는 생각거리들을 자분자분 펼쳐 보면서 생각한다. 영화에서 보여준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고민하고 논의하는 데에서만 감상이 끝날 수 없다고. 이 감상은 결국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살아있는 영화들은 이렇게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 살아가게 한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으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는 5월 15일에 개봉합니다.
-
- 8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복귀 출연료 1100억 +@ 을 받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어벤져스: 둠스데이>를 연출하게 된 루소 감독은 "빅터 폰 둠을 전 세계 영화관에 선보이려면 이 캐릭터를 연기할 세계 최고의 배우가 필요했다"며 "마블 멀티-유니버스에서 상상할 수 없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존재로서 빅터 폰 둠을 연기할 수 있는 단 한사람"이라고 다우니 주니어를 소개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 2> 전 세계 15억 달러 돌파
<인사이드 아웃 2>가 전세계 박스오피스 수익 15억 달러를 돌파하며 애니메이션 영화 역사상 최고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이전 기록 보유작인 <겨울왕국 2>를 넘어선 기록입니다.
또한 역사상 12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가 되었으며, 이로써 디즈니는 역대 최고 수익을 기록한 애니메이션 영화 10편 중 7편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알폰소 쿠아론 차기작 <디스클레이머> 스틸 공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 <디스클레이머> 시리즈 스틸컷이 공개되었습니다.
24년 10월 11일에 Apple TV+를 통해 방영하는 오리지널 심리 스릴러 미니시리즈로 케이트 블란쳇, 케빈 클라인, 코디 스밋 맥피, 정호연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디스클레이머>는 주인공이 한 소설의 내용이 자신의 오랫동안 과거에 뭍혀 있기를 바랐던 이야기와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의 가장 어두운 비밀을 밝히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빌런으로 복귀한 로다주 위기의 마블 구할까
마블은 지난 27일 샌디에이고 코믹콘에서 로다주가 26년 5월 개봉하는 <어벤져스: 둠스데이>에서 닥터 둠으로 돌아온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연출은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 <어벤져스: 엔드게임>등을 연출한 루소형제 감독이 맡았으며 보도에 따르면 마블에서 루소형제감독, 로다주를 영화에 참여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트위스터스> 내한 무대인사 일정 공개
미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트위스터스>의 정이삭 감독이 내한을 확정한 가운데, <미나리>로 호흡을 맞춘 배우 한예리와 GV에서 다시 한번 재회한다고 합니다.
영화는 폭풍을 쫓는 연구원 ‘케이트’와 논란을 쫓는 인플루언서 ‘타일러’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역대급 토네이도에 맞서 정면돌파에 나서는 재난 블록버스터입니다.
-
-
- 봉준호 감독님 단편영화 이렇게 만드는거 맞죠..?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영화를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끼리 결국...!! 영화 제작까지 도전 합니다 ٩(๑• ₃ -๑)۶
많.관.부 ◟( ˘ ³˘)◞ ♡
-
- 영화 <오토라는 남자> 30초 예고편
운전연수 아무나 함부로 해주는 거 아니랬는데 ?♀️ 거슬리는 이웃은 차라리 도와주고야 마는 츤데레 끝판왕 할아버지 OTTO가 온다! ? [오토라는 남자] 3월 29일 대개봉!
-
- 넷플릭스 <낙원의 밤>
《신세계》《마녀》박훈정 감독의
가장 섬세하고 우아한 감성 누아르낙원의 섬, 제주에 어둠이 내린다 《낙원의 밤》
4월 9일,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