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4-17 08:33:06
앳된 얼굴의 청년이 교도소의 왕이 되기까지
영화 〈예언자〉
8★/10★
어느 범죄자 소년이 감옥에서 ‘갱생’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느와르, 범죄 영화 〈예언자〉(2010)를 보며, 자크 오디아르가 영화적 재미와 정치적 메시지를 배합하는 데 정말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감독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주인공 말리크는 부모가 없다. 어릴 때부터 감옥을 들락거렸다. 아랍계이긴 하나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프랑스어와 아랍어 모두를 말할 줄 안다. 그러니까, 말리크의 정체성은 ‘혼종적 백지 상태’다. 그래서 감옥의 왕으로 군림하는 또 다른 수감자 세자르의 심부름을 하면서도 이너서클에는 들지 못하고, 아랍계 죄수들에게서는 동포를 팔아먹은 자라고 비난받는다.
그러나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말리크의 정체성은 바꾸어 말하면 어디 한 곳에 속하지 않고 두 세계를 오고 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록 완전한 ‘내부인’은 되지 못할지라도, 즉 확고한 정체성은 갖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말리크는 타고난 순발력과 대담함으로 이를 자신의 무기로 만들어 스승, 아버지, 교도관 등의 역할을 종합해 폭력적으로 군림하던 세자르를 잡아먹고 새로 왕좌에 오른다.
영화에는 세자르와 그 수하들이 감옥에 점차 아랍계 죄수가 많아지는 데 불만을 표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온다. 유럽계 간수들이 자기들 편이라 감옥을 장악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아랍계 죄수들을 자신들 통치하에 두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세자르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말리크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과 맞물린다. 동료들이 다른 감옥으로 이송되고, 아랍계 죄수들은 점점 늘어나면서 세자르는 서서히 몰락한다. 그리고 말리크는 ‘타고난’ 인종적 정체성으로 아랍계 죄수 무리에 스며들어 그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한다. 지금까지도 프랑스에 횡행하는 인종주의적 극우의 공포 속에서 ‘백지’ 상태이던 말리크를 아랍계의 수장으로 만든 건 뭘까? 프랑스인을 우대하고 아랍계를 차별한 (감옥) 시스템 그 자체다. 말리크는 다른 모든 죄수와 마찬가지로 시스템 안에서 생존을 도모했고, 특출나게 성공해 왕좌를 대체했을 뿐이다.
앳된 얼굴의 청년 말리크가 몇 년의 수감 기간 중 ‘갱생’ 및 ‘교화’되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예언자’로 등극하는 과정은 어떠한가? 말리크는 수감되자마자 세자르의 강압적 요구로 아랍계 죄수 레예브를 살해한다. 이후 레예브의 유령과 말리크가 대화하거나 함께 있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말리크의 성장은 그가 레예브의 환영을 ‘불태우고’ 자신의 모호한 정체성이라는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혼란스러운 정체성에서 죄책감을 거쳐,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던 한 남자가 강력한 남성 주체로 우뚝 선다.
말리크의 성장은 극우와 인종주의를 둘러싼 감정 역학과 더불어 젠더 정치의 측면에서도 흥미롭다. 세자르가 그에게 레예브를 죽이라 했을 때, 말리크는 동성애자 레예브의 성기를 애무해주다 입안에 숨긴 면도칼로 그의 목을 공격하려 한다. 계획이 어그러져 그 방법으로 죽이진 못하지만, 세자르가 말리크에게 알려준 살인의 방법은 말리크가 남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갓 입소한 말리크는 세자르가 아랍계 남성의 성기를 빨다 살해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존재, 즉 ‘호모’ 혹은 ‘여성’이었다. 말리크에게 규범적 의미의 남성성은 부재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말리크는 죽은 동료 리야드의 아내, 아이와 함께 걷는다. 가장의 죽음으로 위기를 맞은 이성애 핵가족의 구원자로서 행진한다. 그리고 그 뒤로는 수많은 남자가 뒤따른다. ‘여성’이자 ‘호모’였던 그는 수컷 무리의 우두머리이자 한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남자’로 거듭난다. 〈예언자〉는 이처럼 여러 정치적 주제를 종횡무진 망라하며 장르의 재미를 구축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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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10 = 사랑’, 누가 뭐래도 사랑!
‘75+10= 85’가 아니다. 사랑이다. 누가 뭐래도 사랑! T는 도저히 이해 못 하는 이 답의 도출 과정을 보여주듯 <달짝지근해: 7510>는 MBTI는 물론, 성향도 성격도 다른 치호(75)와 일영(10)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10~20대의 달콤한 사랑은 아니지만, 이에 못지않은 풋풋하고 순수하고, 달짝~지근한 40대의 사랑은 가슴을 요동치기에 충분하다.
신은 그에게 외모와 친화력 대신, 미각을 줬다. 절대 미각으로 두부 과자를 만들어 회사 성장에 큰 공을 세운 치호(유해진). 그는 오로지 집, 회사만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가 좋아하는 건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와 과자,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형 석호(차인표)다. 도박에 빠져 살며 매번 돈만 가져가는 못난 형이지만, 치호에겐 소중한 가족. 그러던 어느 날, 석호는 캐피털에서 일하는 미혼모 일영(김희선)의 대출 상환 요청 전화를 받고, 치호에게 이를 해결하라고 말한다. 형의 빚을 갚기 위해 캐피털을 찾은 치호는 우연한 사고로 일영과 연을 맺게 되고,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된다.
<달짝지근해: 7510>은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남과 다른 성향과 과거를 지닌 이들을 사려 깊게 바라보고 응원하는 작품이다. 굳이 나누자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보단 <펀치 드렁큰 러브>에 가깝다. 서로 다른 성향의 남녀가 만나 사랑을 이루는 과정은 같지만, 사회에 잘 융화되기 어려운 이들(치호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있고, 일영은 미혼모라는 점)이 만나 서로의 빈 곳을 메우고, 사랑하고, 힘이 되어주는 부분은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펀치 드렁큰 러브>의 베리(아담 샌들러), 레나(에밀리 왓슨)의 러브 스토리와 닮았다.
영화의 전반부는 두 캐릭터의 상반된 성격과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충분히 할애한다. 서로 다른 이들이 만나 사랑하는 로코 공식은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이들이 얼마나 사회적 편견과 시선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치호는 그냥 쳐다봄에도, 째려보고 꼬나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일영은 미혼모라는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지만, 치호와 반대로 미소와 해탈 어법으로 대응한다. 마치 예전부터 받았던 편견에 생긴 마음의 굳은살을 매만지며 말이다.
이런 사회적 편견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치호와 일영은 서로의 공통점을 차차 알아가고, 각자의 빈 곳을 메워준다. 치호는 일영에게 장롱면허 탈출을 도와주고, 일영은 치호에게 건강을 위한 집밥을 제공한다. 서로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더 가까워지는 이들은 뒤늦게 사랑의 감정에 빠진다.
영화는 뻔한 사랑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의 사랑 방법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틈만 나면 아재 개그를 날리고, 밥 먹다가 방귀를 뀌는 등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동들이 이어지지만,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서로를 배려, 이해하며 사랑을 키워나간다. 누가 뭐라든 이들 애정행각의 주체는 남들이 아닌 자기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석호의 반대와 일영의 대학생 딸에 관련된 이슈로 인해 위기를 맞이하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은 끊을 수가 없고, 한 번 나눈 마음을 돌려받을 수 없는 게 인지상정. 사랑에 서툴지만 서로를 기다리고 배려하며 그 연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별나 보이지만 아름답고, 풋풋해 보이지만 성숙한 이 로맨스가 관객들의 마음을 이끄는 건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한(연출, 각색), 이병헌(각본) 감독의 시선에 기인한다. 두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다르지만, 이들은 영화를 통해 모두 사회 울타리 안 보다 밖에 있는 이들에게 주목하고, 응원과 희망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치호와 일영처럼 서로 다르지만 숨겨진 공통점을 알고 손잡은 두 감독의 사려 깊은 시선은 영화에 잘 녹아 흐른다.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유해진과 김희선은 그 자체로 치호와 일영이 되어 우연히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으로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린다. 특히 유해진은 치호가 가진 순수한 소년의 이미지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김희선은 드라마 <토마토> 등 1990년대 보여줬던 캔디형 캐릭터를 바탕으로, 긍정적 에너지를 뿜어내는 등 각각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차인표, 한선화, 진선규는 물론, 정우성, 염혜란, 임시완, 고아성 등 카메오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도 보는 맛을 더한다.
숏츠가 주류인 시대, 도파민 중독 시대에 <달짝지근해: 7510>은 긴 시간 우려내야 하는 사골국 같은 영화처럼 보인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로코이고 이는 단점으로 보이기 쉽지만, 남을 향한 이해와 배려가 상실된 각박한 세상 속에서 영화는 오히려 빛을 낸다. 화려하지 않지만 따뜻한 감동의 수프처럼, 치호와 일영의 사랑은 감동과 위로를 동시에 전한다. ‘75+10= 85’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공식도 함께~사진제공: 마인드마크
평점: 3.5 / 5.0
한줄평: 별나 보이지만 아름답고, 풋풋해 보이지만 성숙한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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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급 향취 풍기며 추는 그들만의 마지막 춤!
(팬들에게 미안하지만) 기대가 별로 없었다. <베놈> 시리즈를 모두 극장이 아닌 집에서 본 1인으로서 마지막 챕터인 <베놈: 라스트 댄스>는 그동안 방구석에서 쌓은 의리로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CU는 물론 SSU와의 연계성도 점점 희박해져 버린 이 시리즈의 마지막은 괴랄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개연성 무관한 이야기 구조를 단단하게 깔아 의외로 관객을 피식 웃게 만든다. 그리고 희생이란 가치도 전한다. 종잡을 수 없는 영화는 정말 마지막까지 베놈과 닮았다.
에디(톰 하디)와 베놈은 지명 수배자들이다. 패트릭 멀리건(스티븐 그레이엄) 살해 누명을 쓰고 멕시코로 도망친 이들은 심비오트를 추적하는 의문의 특수부대원들에게 쫓기는 신세다. 더 심각한 건 이들을 추적하는 게 이들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베놈을 창조한 널(앤디 서키스) 또한 이들 몸 안에 있는 ‘코덱스’란 열쇠로 영원한 자유를 얻고자 지구로 심비오트 사냥꾼 제노페이지를 보낸다. 쌍방 추적을 피하며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뉴욕에 가려던 이들은 자신들과 친구들, 그리고 지구를 위해 이 위기를 헤쳐나간다.
<베놈: 라스트 댄스>는 시리즈의 클로징을 담당하는 목적하에 그동안 시리즈가 고수하고 키워왔던 B급 매력을 보란 듯이 펼쳐놓는다. 그동안 살짝 눈치를 봐가면서 B급 향취를 뿜어냈다면 이번 영화는 아예 대놓고 ‘우리 원래 이렇잖아!’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이를 납득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쭉 밀고 나간다.
그 뚝심의 근원은 역시나 에디와 베놈이다. 어느 순간 한 몸이 된 이들의 남다른 브로맨스(?)는 지구와 우주, 인간과 외계생명체의 간극을 뛰어넘을 정도로 찐하다. 사사건건 부딪치고 싸우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지켜주고 위하는 이들의 관계는 40년 함께 산 부부나 다름없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티격태격 잦은 싸움은 코미디의 주재료가 되고, 액션의 활력을 불어넣는 불쏘시개가 된다. 별다른 것도 없는 이들의 관계, 그리고 빚어지는 이야기와 퍼포먼스들은 새로움보다는 안전함을 택한 느낌이다. 물론 여기에 낯선 B급 취향을 곁들이긴 한다.
영화는 마지막 챕터 답게 액션에 모든 화력을 지원한다. 사람은 물론, 동물, 식물 할 것 없이 옮겨 다니며 그 힘을 발휘하는 심비오트의 액션은 그 자체로 볼거리. 말은 물론, 물고기, 개구리 등 지구의 생명체를 탐험하는 베놈의 변신은 흥미를 돋운다. 51구역 안에 있던 다수의 심비오트들과 함께 제노페이지에 맞서 싸우는 액션도 장르적 재미를 충족시킨다. <아이언맨 3>의 후반부 액션이 생각나지만, 카니발리즘에 입각한 심비오트들의 액션는 그 자체로 축제다. 여기에 마지막 베놈의 살신성인 액션은 눈물 찔끔 나게 하는 감동을 전한다.
물론, 영화의 만듦새가 좋진 않다. B급 매력을 뿜는 영화라 할지라도 다양한 인물과 그 안에 담긴 스토리가 에디와 베놈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접착력이 떨어진다. 심비오트를 연구하는 과학자 페인 박사(주노 템플)의 전사와 외계인이라면 모두 잡아들이려는 스트릭랜드 장군(치웨텔 에지오포), 그리고 51구역을 여행하는 가족 등의 이야기는 구심점 없이 에디와 베놈을 그냥 맴돌 뿐, 큰 의미 없이 겉돈다. 얼토당토않지만 우연히 만나는 첸 여사(페기 루)와의 만남이 더 착 달라붙는다. 뭐 아바의 노래에 춤까지 추니, 말 다했지.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에디와 베놈의 여정을 함께 한다면 시리즈의 멋진 마무리를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순도 100%의 마음이 필요하긴 하다. 흥부자 베놈의 바운스를 함께 타며, B급 액션 매력에 몸을 맡겨 보길 바란다. 알고 보면 이런 외계인 흔치 않다. 물론, 공생하기는 싫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말: 쿠키 영상은 2개다. 하나는 널에 관련한 이야기고, 하나는 직접 보기 바란다. 더불어 이번 영화에 삽입된 올드팝 쓰임새가 좋다. 베놈과 첸 여사가 함께 춤을 출 때 나오는 아바의 ‘댄싱 퀸’은 물론, 데이빗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 토토의 ‘홀드 더 라인’ 등 명곡들이 나온다. 베놈의 마지막 춤을 함께 하기 위해서~
사진 제공: 소니 픽쳐스 코리아 제공
평점: 2.5 / 5.0
관람평: B급 향취 풍기며 추는 그들만의 라스트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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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웨인 존슨 주연, DC 빌런 영화 <블랙 아담> 개봉일 확정!
드웨인 존슨 (a.k.a. 더 락)이 그의 신작 DC 블록버스터 영화 <블랙 아담>의 개봉일이 2022년 7월 29일로 연기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실은 미국 남자 농구 챔피언십 경기 직전 광고를 통해 생중계됨과 동시에,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도 게재되며 DC 신작 다운 '광고 스케일'을 자랑하였는데요. 작년, 코로나19 확진 후 완치 판정을 받은 '드웨인 존슨' 단독 주연 영화이기에, 개봉일 연기는 불가피한 결정이었습니다.
DC 확장 유니버스 신작 <블랙 아담>은 '조커' 이후 DC의 두 번째 단독 '슈퍼 빌런' 영화로, 2019년 개봉한 <샤잠!>의 스핀-오프 작품입니다. '블랙 아담' 캐릭터는 1940년대 DC 코믹스에 처음 등장한 역대급 힘을 지닌 인물로, 영화는 그가 점차 안티-히어로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아낼 예정이라 합니다. <샤잠!>과 <블랙 아담>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드웨인 존슨'은 포브스가 선정한 2020년도 세계 최고 수입을 올린 남자 배우 1위에 오르기도 하였는데요.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영화부터 직접 출연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까지 제작 및 출연한 모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였기에, <블랙 아담> 또한 기획 단계부터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게다가, 007 시리즈의 5대 제임스 본드였던 '피어스 브로스넌'이 출연을 확정지으며 더욱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는 마법사 '닥터 페이트' 역으로 연기 인생 첫 '슈퍼히어로' 영화에 도전하였는데요. 마법에 한해서는 '전지전능' 그 자체인 닥터 페이트는 '헬멧'을 이어받는 자가 능력을 계승받기에, 향후 세대 교체 또한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로 인기를 끈 '노아 센티네오'가 '아톰' 역으로, 다수의 범죄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사라 샤히'가 중세 시대 혁명을 이끄는 대학 교수 '아드라아나'로 출연하여 흥행 가도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DC의 모든 영화들이 2021년, 북미에서 극장과 HBO Max 동시 개봉될 예정이기에, <블랙 아담>의 개봉이 2021년에서 2022년으로 연기된 것은 영화와 DC 팬들을 위한 결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밀린 개봉일은 디즈니의 다섯 번째 '인디아나 존스' 영화와 같은 주차인데요. 디즈니와의 정면 승부를 택한 워너 브라더스의 이런 결정이 과연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되는 바입니다. 또한, 2022년 7월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미니언즈 2>(7/1 개봉 예정), 디즈니-마블의 <블랙 팬서 2> (7/8 개봉 예정), 조니 뎁이 퇴출된 <신비한 동물사전 3>(7/14 개봉 예정), 그리고 '겟아웃', '어스'를 이을 조던 필 감독의 호러 신작 <캔디맨>(가제)가 모두 개봉할 예정이기에, 역대급으로 박 터지는 박스오피스가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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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존 인물을 스크린으로 소환하는 이유
죽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다룬 영화는 끊임없이 제작된다. 많은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왕세자비이자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인물인 다이애나는 영화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나오미 왓츠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연기했던 <다이애나>가 제목으로 왕세자비의 이름을 써버리는 바람에 이후 제작되는 영화들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름 자체가 하나의 아이콘이 되는 인물의 전기영화는 시선을 끌기 위해서라도 타이틀에 이름을 넣지 않을 수 없는데 스티브 잡스의 경우 <잡스>, <스티브 잡스>라는 영화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부인 재키의 삶을 다루며 타이틀을 <재키>로 잡았던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제목을 가지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왕실에서의 답답한 삶을 견디며 결혼 전의 삶을 그리워했을 다이애나를 상상하며 결혼 전의 삶 자체를 상징하는 결혼 전의 성 스펜서가 영화 제목이 되었다. 영화 내내 스펜서라는 성의 등장 빈도는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지만 나올 때마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든 누구든 간에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존 인물을 다루는 영화는 기실 그 인물에 대해 영화인들이 상상을 더해 재해석한 결과에 가깝다.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 분)가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왕실 가족들과 나누는 대화나 상황은 온전히 작가와 감독의 상상일 뿐 실제 이런 대화가 오갔다는 증거는 없다. 영화 <스티브 잡스>가 개봉한 이후에도 잡스의 지인들은 영화를 놓고 사실과 가깝다 아니다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고 한다. 실존 인물을 다룬 전기나 영화가 갖는 본질적인 한계는 그 인물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인물을 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다이애나>에서 다루었던 다이애나의 러브스토리는 진정 다이애나의 감정을 반영한 것인가? 실화 바탕의 영화를 보았다고 해서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관객은 더 잘 알게 되는가? 그런 게 아니라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실존 인물을 다루거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본질적인 한계에 부딪히며, 그 한계를 어떻게 돌파해 나가느냐가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실존 인물을 다룰 때 가장 기본은 인물과 최대한 유사한 외양의 배우를 섭외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도록 하는 것이다. 영화 <잡스>는 영화 공개 전부터 어느 쪽이 스티브 잡스이고 어느 쪽이 애쉬튼 커쳐인지 분간이 안되는, 얼굴을 반씩 붙인 사진으로 마케팅을 시작했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관객의 눈에 너무나도 뻔하게 스티브 잡스를 연기하는 것이 마이클 패스밴더라는 것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잡스>가 스티브 잡스를 더 충실하게 구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인물의 행적을 온전히 구현하는 것이 인물에 대한 영화의 이해도를 꼭 높인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의 경우 키가 작은 나오미 왓츠가 키가 큰 다이애나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항간의 비판이 있기도 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영화에서 다이애나비의 외양을 충실하게 재현함으로써 몇몇 장면에서는 알아보기 힘들 만큼 멋진 모습을 구현해냈다. 하지만 관객의 평가는 스튜어트가 재현한 외양이 아니라 연기에 방점이 찍힌다. 왕실의 결혼 생활로 무너져가는 다이애나비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 그의 연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같이 숨이 막히게 만든다. 여기서 스튜어트의 연기가 뛰어났다고 평가하는 것은 스튜어트가 다이애나비의 성격을 구현했다는 데 있지 않다. 어차피 관객의 대다수는 다이애나비의 실제 성격을 모르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는 다이애나비가 겪어야 했던 영국 왕실의 답답한 생활과 피로감 그리고 결혼 전의 삶을 그리워하며 무너져가는 한 인물을 섬세하게 묘사한 데 방점이 찍힌다. 실제 다이애나비가 스펜서라는 성에 애착이 더 있었는지, 스펜서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는지 관객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스튜어트의 연기를 통해 영국의 왕실 생활이 얼마나 관습에 얽매여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내면을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뜨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식사마다, 행사마다 갈아입어야 할 옷이 정해져 있고 자신의 곁에 둘 사람마저 선택할 자유가 없는 영국의 왕실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내부의 사람들을 조금씩 좀먹는다. 세상 화려한 음식을 매 끼니 먹을 수 있지만 다이애나는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먹고서 토해내며 일반 사람들은 평생 한 벌 사기도 힘든 명품 옷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을 수 있지만 다이애나는 입고 싶지 않아한다. 영화는 마치 다이애나비의 비극적인 삶을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국 왕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화려한 영국 왕실은 모순투성이다. 화려한 음식과 의복, 실내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음에도 전통에 얽매여 난방 온도조차 올리지 않으며 타이트한 의복을 제공하면서 크리스마스 기간 일정 몸무게 이상 찌우도록 강요한다. 다른 구성원들은 문제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리와 윌리엄조차 다이애나비와 이야기를 할 때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넌지시 보여준다.
결국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는 얼마나 다이애나비를 충실히 재현했느냐가 아니라 왕실 생활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했냐에 평가를 받는다.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은 어차피 배우가 아닌 각 부문 담당자의 몫이다. 스튜어트의 연기는 다이애나비에 대한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왕실의 모순을 관객이 목격하도록 만든다. 크리스마스 행사에 홀로 지각한 다이애나는 단순히 몸무게를 재는 것부터 반감을 드러내는데 이 장면까지만 해도 관객이 다이애나에게 연민을 느끼기는 어렵다. 모든 건 정해져 있고 고문을 하는 것도 아닌데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을 다이애나는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적대감을 드러낸다. 자신의 집인 스펜서 저택에까지 출입이 금지되는 장면에 이르러 관객은 왜 그토록 다이애나가 왕실 생활을 답답해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다이애나가 아이들을 데리고 차에 타 떠나며 자신의 이름을 스펜서라 말하는 대목에서 일순간이나마 관객은 다이애나의 해방을 맛본다. 물론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삶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관객 대다수는 알고 있지만 상상의 이야기를 통해 다이애나가 느꼈을 자유와 행복으로 위안받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의 각색은 비난받아야 하는가, 존중받아야 하는가. 어차피 두 시간이라는 영화의 러닝타임은 한 인물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지나치게 짧다. 아무리 제작진이 조사를 하고 공부를 해도 한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들을 전달할 수는 있다. 다이애나비의 비극은 결국 한 사람을 왕실의 소모품으로만 봤던 영국 왕실의 문제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스펜서>는 다이애나비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도 삶의 비극을 탁월하게 묘사해 냈으며 관객은 <스펜서>를 통해 다이애나비를 다른 방식으로도 애도할 수 있게 됐다.
* 본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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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적 사랑의 풍경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멜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대개 진득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과 클레멘타인,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철수와 수진, (멜로 영화는 아니지만 터무니없을 정도로 낭만적이어서 매력적인) 〈베이비 드라이버〉의 베이비와 데보라 등등. ‘운명’으로 엮인 두 개인이 여러 역경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랑을 쟁취해내는 이야기 말이다. 이들 영화는 현대인들이 사랑을 통해 갈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대변한다. 서로에게서 최후의 위안을 얻는 두 개인의 관계에는 사랑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지친 현대인들의 욕망이 깃들어 있다. 영화적 재미의 측면에서도 낭만적‧운명적 사랑이 더 매력적이다. 어딘가 심심한 사랑은 각본가가 이야기를 전개하기가 어렵고, 드라마틱한 구석이 없는 멜로 영화는 관객에게 어딘가 찜찜한 구석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멜로 영화가 그리는 사랑과 현실의 사랑이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저 영화의 소재가 되지 않았을 뿐, 현실 속 사랑의 빛깔은 영화보다 훨씬 더 다채롭다. 영화 〈파리, 13구〉는 그동안 영화가 담아내지 않은/못한 현대적 사랑의 풍경을 그린다. 중심 없이 부유하여 혼란스럽기에 사랑이라 부르기는 뭐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아닌 것도 아닌 그런 두루뭉술한 감정의 모습을 띠는 사랑 말이다.
영화가 주목하는 현대적 사랑의 풍경은 청년들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못하는 시대 조류와 관련이 있다. 그 이유에 관한 자세한 분석은 차고 넘치니 생략하자. 핵심은 불안이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회적 존재로 생존하기 위해, 삶에서 의미를 길어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동안 사랑이 사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적 조건이 가장 심층에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 불안은 정신적 공황으로 이어지고 그럴수록 사랑은 점차 멀어진다. 영화의 네 주인공 에밀리, 카미유, 노라, 앰버도 마찬가지다. 접촉하지만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하지는 않고, 미련은 있지만 사랑이라 부르기는 머뭇거리며, 그마저도 복잡하게 뒤엉키는 감정들. 〈파리, 13구〉가 ‘낭만의 도시’라 불리는 파리를 흑백의 질감으로 담아냄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건 바로 이 혼란스러운 감정의 궤적이다.
아시아계 여성인 에밀리는 프랑스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대학을 졸업했지만 콜센터에 다닌다. 콜센터에서 일하기로 결정하자 오히려 부모님이 좋아했다는 그녀의 말은 유럽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여성이 마주한 현실을 단적으로 포착하여 전달한다. 그러나 자그마한 반전이 있다. 에밀리는 알츠하이머로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생활한다. 게다가 그녀의 언니는 의사로 일한다. 즉, 에밀리가 가난 때문에 콜센터에서 일하는 게 아니란 소리다. 그녀는 어떤 공허, 외로움의 상태에 있다. 어쩌면 콜센터도 이 감정을 달래기 위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콜센터는 '대화'가 가능한 공간이니 말이다. 이는 에밀리가 룸메이트를 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적극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모색하지는 않지만 혼자 있고 싶지는 않은 상태. 아마도 파리의 에밀리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수많은 청년의 모습이 이와 같을 것이다.
룸메가 되고 싶다고 에밀리를 찾아온 사람은 카미유라는 이름의 남자다. 에밀리는 남자와는 룸메이트가 될 수 없다며 거절하지만, 카미유의 사정을 듣고는 그를 룸메로 받아들인다. 사실 카미유가 여자인 줄 알았다는 에밀리의 말도 의심쩍은 구석이 있다. 이왕 친밀성을 나눌 사람을 찾는다면 육체적 친밀성까지 나눌 수 있는 남자가 더 적합할 수도 있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카미유를 욕망한다는 점도 정말 에밀리가 카미유의 성별을 몰랐는지를 의심케 한다. 어쨌든 둘은 동거를 시작하고 종종 섹스를 하며 조금씩 관계를 맺어간다.
그러던 중 화면이 바뀐다. 새로운 주인공은 노라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간 그녀는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그녀를 인터넷 성인방송 진행자로 착각한 사람들이 이를 악용해 엉뚱한 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결국 노라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다. 에밀리의 공허함이 그러하듯, 노라의 경험 역시 ‘보편적’인 데가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심지어 자신이 피해자인 섹스 스캔들로 조직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밀리에게 그러했듯, 노라에게도 반전이 있다. 노라는 호기심과 분노, 체념이 뒤섞인 상태에서 자신의 닮은꼴이라는 인터넷 성인방송 진행자 앰버의 방송을 시청한다. 그러고는 홀린 듯 돈을 내고 일대일 영상통화를 시작한다. 앰버는 동성 고객을 자주 만나봤다는 듯 원하는 것을 말해달라며 능숙하게 노라를 대한다. 그러나 노라가 고객으로 자신을 찾은 것이 아님을 알고는 조금씩 대화를 이어가며 에밀리‧카미유처럼 관계를 쌓아 나간다.
따로따로 진행되던 두 이야기가 만나는 건 파리의 한 부동산에서다. 학교를 나온 노라는 부동산에서 일을 시작하는데, 그곳은 박사 준비 중 돈을 벌기 위해 친구의 부동산을 대신 맡아 운영하는 카미유가 일하는 곳이었다. 에밀리와 몸을 섞으면서도 마음을 주지는 않았던 카미유는 노라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노라 역시 카미유에게 끌린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장벽이 있다. 노라는 카미유와 만날 때마다 분위기에 맞춰 억지로 자신의 몸과 감정을 연출한다. 앰버와 대화를 나누며 진정한 위안을 얻기 시작한 그녀에게, 카미유와의 인위적 만남은 점점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새 카미유를 사랑하게 된 에밀리, 에밀리와는 쾌락을 나누고 싶을 뿐 마음은 노라에게 가 있는 카미유, 그런 카미유에게서 답답함을 느끼는 노라,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진 노라와 앰버. 이것이 세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이 맺은 관계의 지형도다. 저게 사랑인가 싶을 정도로 가볍지만 무시할 만한 무게는 아닌 감정, 인터넷으로 만난 관계는 진지할 수 없다는 통념을 조금씩 벗겨내는 감정, 희미한 호감이 있지만 적극적 구애로 전환하기는 애매한 감정. 이것이 바로 〈파리, 13구〉가 포착한 현대적 사랑의 풍경이다. 이 영화를 해피엔딩을 곁들인 로맨틱 코미디로 소개한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그는 자칫 가볍고 무의미해 보이는 청춘의 감정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그 안에도 행복의 가능성이 있음을 절제되었으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영화에는 넘치도록 강렬한 여성‧퀴어 캐릭터를 창조해온 셀린 시아마 감독이 각본에 참여한 흔적도 잘 묻어난다. 청년이 사랑하는 방식이 궁금한 사람 혹은 내 경험이 사랑이 맞는지 헷갈리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서 날카로운 통찰이 전하는 잔잔한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다시 한번, 파리는 낭만의 도시가 되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220428514629?OutUrl=naver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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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가 무너진 세계에서
2010년대부터 스마트폰의 이용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며, 인류의 삶은 예전과 달라졌다. 이 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스마트폰으로 고화질의 사진과 영상을 찍히고, 보호자는 자신들이 아이에게 눈길을 주지 못하는 시간엔 패드를 쥐어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만의 스마트폰을 가지는 이들. 직전 세대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시대를 경유한 세대라면,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태어난 알파 세대의 인생에 있어 스마트폰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소년의 시간>은 13살 소년 제이미를 주인공으로 삼는 시리즈이다. 마시멜로우가 들어간 핫초콜릿을 좋아하는 소년은 동급생 여자 아이 케이티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용의자이기도 하다. 4편의 리미티드 시리즈로 제작된 작품은 범인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데 긴 시간을 소요하지 않는다. CCTV에는 명백한 물증이 남았고, 제이미는 사건의 범인임이 틀림없다. 누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는 이미 밝혀진 바, 이제 질문은 ‘왜’ 제이미가 살인을 저질렀는가이다.
살인의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관계자들은 제이미와 케이티가 맺어온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10대의 소년 소녀가 맺어온 관계는 기존의 문법과는 다르다. 둘 사이에 있어 오프라인 상의 교류는 쉽게 찾아볼 수 없으나, 온라인 상의 SNS에는 두 사람이 나눈 소통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이들에게 SNS란 무엇인가. 알파세대에게 있어 SNS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으나, 학창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해온 앞세대로서 SNS의 의미에 대해서는 논할 수 있을 것 같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까지. 친구들이 사용하는 SNS의 계정을 자연스레 만들었다. 일상을 담은 사진을 올리고, 온갖 생각들을 기록했다. 친구들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고, 친구들에게 좋아요를 받기도 했다.
성인이 되었다. 페이스북의 시대는 어느새 저물어갔고, 인스타그램은 대세가 되었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찍고, 친구들을 태그하고, 태그당한 스토리를 리그램한다. 인스타그램은 하나의 연락처가 되기도 한다. 지인들과 번호 대신 계정을 교환하는 일도 왕왕 있다. 카톡은 하지 않아도 댓글을 달고 dm을 나누는 사이도 있다. 현시대에 SNS를 이용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를 넘어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의 관계자들은 이같은 문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CCTV에 남은 물증을 제외하면, 두 사람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인스타그램의 댓글뿐인 상황에서 이들의 분석은 끝없이 현실과 어긋난다. 첫 번째 면담의 시간, 경찰은 케이티가 제이미의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두 사람을 친구라고 유추한다. 임상 심리학자도 SNS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제이미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물으며, 여럿이 찍어 올린 사진 속 태그의 의미에 대해 묻기도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겐 그저 일상에 불과한 일들이 기성 세대에겐 의문이 되고, 제이미와의 소통은 끝없이 실패한다.
태어나자마자 디지털과 연결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흐릿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오프라인에서 배제된 이들의 삶에 있어서는 온라인의 삶이 더욱더 선명한 삶일 수도 있다. 케이티에게 ‘인셀’로 칭해지고, 또래 집단에서 따돌림을 받았던 제이미의 삶이 그랬을 것이다. 제이미는 인스타그램의 세계에서 노출이 심한 여성 모델들의 사진을 리포스트하고 댓글을 남겼다. 스냅챗을 통해서는 남학생들과 함께 케이티를 비롯한 같은 학년 여자애들의 반나체 사진을 돌려보기도 했다. 그는 이같은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모두 동참한 일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흐리고, 사진을 유출한 동급생은 안쓰러워한다. 한 번 사진을 유출했으니, 신뢰를 잃어 다시는 그런 사진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온라인 세계에서 그가 습득한 여성의 모습은 편향적이기 그지없다. 성인 여성들은 과도하게 성적 대상화된 이미지로 비춰지며, 또래 여자를 바라보는 모습 또한 인셀의 논리와 맞닿아있다. 그는 자신이 인셀이 아니라 주장하나, 여성을 일부 남자만 얻을 수 있는 ‘트로피’ 같은 것으로 여긴다. 그런 그에게 연애와 살인은 게임 같은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케이티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사진이 유포된 뒤 마음이 약해졌을 그녀를 얻을 ‘영리한 전략’을 세웠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그러자 홧김에 그녀를 죽인 것이다. 명백한 물증에도 무죄를 주장하는 제이미. 여성을 소유물이자 트로피 정도로 생각하는 그는 실제로 자신의 행동이 큰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라 해야할까. 결말부에 이르면 제이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어떤 과정을 거쳤기에 그가 유죄를 인정하게 되었는지 작품은 보여주지 않는다. 변한 것은 현실세계와 분리되어 스마트폰을 잃은 채 몇 달을 보냈다는 것 정도일테다. 어쩌면 그는 스마트폰이라는 ‘연결된 신체’를 벗어나, 비로소 오롯한 자신으로 사유하게 되었을 때 죄를 인정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문화비평가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 메시지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미디어가 다루는 내용이 메시지로 기능하는 것은 사실이나, 내용을 담는 그릇인 미디어 자체도 메시지로 기능한다고 주장한다. 언제나 손에 쥐고 있는, 어쩌면 신체의 일부라 보아도 무방한 스마트폰을 켜면 여성혐오적인 메시지는 시청각적으로 체화된다. 그렇게 소년들은 자연스레 여성혐오를 배운다. 그리고 이는 온라인 세계를 넘어 오프라인 세계에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소년의 시간>은 단순한 픽션이라 보기엔 현실과 닮아있는 작품이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
최근 호주에서는 16세 미만의 아동, 청소년에게 SNS 이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과연 이같은 조치가 무엇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이들은 우회하는 경로를 발견하거나,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특정 연령이 지나면 SNS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즉,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나아가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라고 할지언정, 미디어는 진공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제이미 이전에 직간접적으로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해온 가부장적인 제이미의 아버지가 있었고, 여성 임상심리학자를 낮잡아보는 남성 경비원이 있었다. 미디어는 사회가 이야기하는 메시지를 품고 발화한다. 기성 세대가 새로운 세대의 관계의 문법을 넘어, 삶의 문법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노력만으로는 우리는 함께할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여성혐오적인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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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모로우 워」 외계인 때문에 재입대하고 미래세계로 간다고?!ㅣ투모로우워 리뷰ㅣ아마존 프라임 비디오ㅣ아마존 프라임 영화추천ㅣ
? "투모로우 워(2021)" 영화소개 및 영화리뷰(*결말포함 아님)
#투모로우워 #아마존프라임 #투모로우워_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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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복> 1차 예고편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
그와의 특별한 동행이 시작된다!과거 트라우마를 안겨준 사건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전직 요원 ‘기헌’은 정보국으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마지막 제안을 받는다.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실험체 ‘서복’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일을 맡게 된 것.
하지만 임무 수행과 동시에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게 되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기헌’과 ‘서복‘은 둘만의 특별한 동행을 시작하게 된다.
실험실 밖 세상을 처음 만나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 ‘서복‘과 생애 마지막 임무를 서둘러 마무리 짓고 싶은 ‘기헌’은 가는 곳마다 사사건건 부딪친다.
한편, 인류의 구원이자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서복’을 차지하기 위해 나선 여러 집단의 추적은 점점 거세지고 이들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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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든 것은 아르망에서 시작되었다> 메인 예고편
“그건 제 아들이 한 짓이 아니에요” 어린 아들 ‘아르망’의 담임 ‘순나’로부터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게 된 ‘엘리자베스’ 학교에 도착한 그는 ‘아르망’이 불미스러운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아이들이 남긴 비밀과 어른들이 삼킨 진실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