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11 17:38:25
제78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발표
다르덴 형제부터 아리 애스터까지

제78회 칸영화제 상영작이 공개되었습니다!
특히 경쟁 부문에는 이제는 신성이라고 부르기 어려워질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아리 애스터, 요아킴 트리에,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작품부터
한국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클레버 멘돈사 필로, 켈리 라이카트 감독,
이미 거장으로 인정받는 다르덴 형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작품까지,
다양한 영화들이 선정되어 영화 팬들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경쟁 부문 외에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배우 해리슨 딕킨스과 스칼렛 요한슨의 감독 데뷔작이
선정되어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반면, 국내 작품은 경쟁, 비경쟁 부문에 모두 공식 초청이 불발되어 아쉬움을 자아냈습니다.
제78회 칸영화제는 5월 13일부터 5월 24일까지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씨네픽지기는 칸영화제 수상 소식과 함께 돌아올게요!
**제78회 칸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THE PHOENICIAN SCHEME>, Wes ANDERSON
<EDDINGTON>, Ari ASTER
<JEUNES MÈRES>, Jean-Pierre et Luc DARDENNE
<ALPHA>, Julia DUCOURNAU
<RENOIR>, HAYAKAWA Chie
<THE HISTORY OF SOUND> Oliver HERMANUS
<LA PETITE DERNIÈRE>, Hafsia HERZI
<SIRAT>, Oliver LAXE
<NEW VAGUE>, Richard LINKLATER
<TWO PROSECUTORS>, Sergei LOZNITSA
<FUORI>, Mario MARTONE
<AGENTE SECRETO>, Kleber MENDONÇA FILHO
<DOSSIER 137>, Dominik MOLL
<UN SIMPLE ACCIDENT>, Jafar PANAHI
<THE MASTERMIND>, Kelly REICHARDT
<EAGLES OF THE REPUBLIC>, Tarik SALEH
<SOUND OF FALLING>, Mascha SCHILINSKI
<ROMERÍA>, Carla SIMÓN
<SENTIMENTAL VALUE>, Joachim TRIER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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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로의 여정 속에서 찾는 '나'라는 존재
과거로의 여정 속에서 찾는 '나'라는 존재
영화의 제목 "이다(Ida)"는 안나의 본명이다. 안나는 서원식 전에 자신에게 혈육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유일한 혈육인 이모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모에게 두 가지 사실을 듣게 된다. 자신의 실제 이름이 "이다(Ida)"라는 것과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 이모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이다. 쌀쌀맞은 이모의 태도와 그녀가 전하는 정보에 혼란스러우면서도 자신의 부모에 대해 알고 싶어진 안나는 이모와 함께 그 흔적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이 영화는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을 취한다. "이다"라는 한 이름의 제목이 주는 강렬한 인상과는 다르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 이다(안나)와 완다 두 명이라 할 수 있다. 안나는 부모에 대해 알아가며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진실들을 하나씩 마주한다. 그러나 안나가 부모에 대한 진실에 점점 다가갈수록 완다는 잊고 싶던 과거의 기억을 점차 떠올리며 그것에 잠식되어간다. 두 사람의 동행은 안나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임과 동시에 그녀의 이모 완다가 자신의 과거 기억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과정이다.
수녀원의 제한적인 정보와 환경 속에서 격리되다시피 살아오던 안나에게 바깥세상은 신기하기만 하다. 안나는 바깥세상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호기심을 가진다. 수녀원 측의 배려로 서원식을 앞두고 직접 완다를 찾아가지만 이모 완다는 그녀를 쌀쌀맞고 퉁명스럽게 대한다. 이모는 안나가 유대인이라는 것과 그녀의 실제 이름과 부모의 이름, 그리고 사진 한 장을 주고는 그녀를 수녀원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첫 만남부터 비밀로 싸여있던 완다는 안나가 수녀원에서 그녀에 대해 아무 정보도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알자 안나에 대한 경계를 늦춘다. 판사인 완다는 법정 재판 중에 생각이 잠기더니 이다를 데리러 버스터미널로 가고, 이때부터 그녀의 태도는 상반되게 온화해진다. 이다를 보고 마주하기 힘들던 과거를 떠올려서일 수도,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들에 대한 죄책감이나 후회 때문일 수도, 혹은 온전히 이다에게 뿌리를 알려주기 위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계기가 어떻든 간에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다시 만나 서로의 과거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안나 가족의 죽음은 1941년 독일의 폴란드 점령 당시 폴란드 민간인들이 유대인 수백여 명을 죽였던 예드바브네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추측해보건대 안나의 부모와 함께 죽은 어린 남자아이는 아마도 그녀의 아들일 것이다. 과거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죽은 가족들의 유골을 마주한다. 완다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스탈린 정부 하의 폴란드 공산당원이 되어 살아남았고, 안나는 갓난아이라 유대인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들 가족을 죽인 남자는 무덤을 판 구멍에 앉아 죄의식을 보이긴 하지만 끝까지 이들에게 사과를 하지는 않는다. 자신들을 더이상 괴롭히지 않고 집에서 계속 살게 되는 조건으로 유골이 묻힌 곳을 알려주는 거래를 했을 뿐이다. 완다는 아들의 유골을 소중히 끌어안는다. 그녀는 자신이 판사로서의 권력을 휘두르며 저질렀던 과거의 행보를 되돌아보면서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고, 결국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반면 이다의 선택은 어떠한가. 이 영화의 엔딩씬을 그녀의 선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엔딩씬은 무척 독특하다. 내내 정적이던 카메라는 엔딩씬에서 급작스럽게 흔들린다. 감독은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는 이다의 모습을 핸드헬드로 잡는다. 핸드헬드 자체가 특별한 연출기법은 아니다. 다만 앞선 모든 장면에서 감독이 유지해오던 연출 방식과는 상반되게 끝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엔딩씬은 특별해진다. <이다>는 여백을 통해 스토리텔링하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점은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연출 특징이기도 하다. 차기작 <콜드 워>에서도 이어지는 1.33:1의 풀 프레임 화면비와 흑백의 이미지, 헤드룸을 많이 남기며 전통적인 미장센을 깨는 과감한 시도까지 그의 영화는 형식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크고, 그는 형식을 통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화면의 중심이 아닌 사이드에 위치하고 카메라는 여백이 많이 보이도록 대상을 비춘다. 그럼으로써 영화 속 인물들은 어딘가 위태롭고 불안해 보인다. 마치 세상의 구석으로 내몰린 느낌까지도 든다. 이 점을 <이다>에서 <콜드 워>까지 이어지는 그의 영화 속 시대 배경과 연결 지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와 운명이 반기지 않는 가운데, 세상으로부터 내쳐지는 인물들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다시 엔딩씬으로 돌아와서, 내내 무표정하던 그녀의 표정이지만 그 순간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 의지의 분위기가 엔딩씬 전체를, 관객을 압도시킨다. 안나는 어쩌면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제대로 찾게 된 건지 모르겠다. 아니, 그 길을 비로소 시작하는 건지도. 지금까지 살아온 '안나'로서의 삶을 계속 살아가든, 새롭게 알게 된 '이다'로서의 삶을 살아가든 중요한 것은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가와 같은 사소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어딘가로 묵묵히 걸어 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그녀의 결연한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제 어떤 선택을 하든 그녀의 선택은 오로지 그녀의 의지와 발길에 달렸다. 이다는 자신의 길을 계속해서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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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달, 작가, 밀수꾼, 첩보요원 조인성 그는 대체!
[극장]에서는 밀수꾼, [디즈니+] 에서는 첩보요원! 조인성 배우는 캐릭터의 폭이 다양하고 넓은 배우 인데요. 첩보원, 밀수꾼, 작가, 영화와 드라마 로맨스, 액션까지 못하는게 없는 보기만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조인성의 대표 필모그래피 같이 함께 살펴봐요!
클래식
같은 대학에 다니는 지혜와 수경은 연극반 선배 상민을 좋아한다. 하지만 호들갑스런 수경이 상민에게 보낼 편지의 대필을 부탁하고, 지혜는 수경의 이름으로 상민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다. 지혜의 편지로 맺어진 수경과 상민이 가까워지면서 지혜는 괜한 죄의식에 상민을 멀리 하려 하지만, 우연하게도 자꾸만 마주치게 된다
비열한 거리
삼류조폭조직의 2인자 병두. 조직의 보스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틈에서 기회한번 잡지 못하는 그는, 별볼일 없는 인생을 살고있다. 병든 어머니와 두 동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그에게 남은 것은 쓰러져가는 철거촌 집 한 채 뿐. 삶의 무게는 스물아홉 병두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무빙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 나게 살고 싶었던 태수는 우여곡절 끝에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을 만나 핵심 라인을 타고 승승장구 하게 된다 정권이 교체되는 중요한 시기, 새로운 판을 짜며 기회를 노리던 이들 앞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치는데…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유년시절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첫사랑에 실패한 후 의미 없는 삶을 사는 남자와 부모의 이혼과 오빠와의 결별, 갑자기 찾아온 시각 장애로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사는 여자가 만나 차갑고 외로웠던 그들의 삶에서 희망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
괜찮아 사랑이야
작은 외상에는 병적으로 집착하며 호들갑을 떨지만 마음의 병은 짊어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과 사랑을 되짚어보는 이야기
모가디슈
내전으로 고립된 낯선 도시, 대한민국이 UN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기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일촉즉발의 내전이 일어난다. 통신마저 끊긴 그 곳에 고립된 대한민국 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은모가디슈를 탈출하려 하는데
밀수
평화롭던 바닷가 마을 군천에 화학 공장이 들어서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해녀들. 그러던 어느 날,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고 사람들은 서로를 속고 속이며 거대한 밀수판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무빙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닥치는 거대한 위험에 함께 맞서는 초능력 액션 히어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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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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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티빙·웨이브, 광고요금제 추진
ⓒ 웨이브, 티빙
앞서 넷플릭스가 광고요금제를 한국에 도입한다고 밝힌 가운데, 국내 OTT인 웨이브, 티빙 등에서도
광고요금제를 논의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구체적인 계획은 따로 밝혀진 게 없다.
NCT DREAM의 첫 번째 영화, 11월 전세계 극장 개봉
ⓒ 드림메이커 / CJ 4DPLEX
올해 9월에 열린 NCT DREAM의 두 번째 단독 콘서트 '더 드림 쇼2'는 무대 영상뿐만 아니라
무대를 준비하는 멤버들의 모습과 미공개 단독 인터뷰까지 더해져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공연 실황
최초로 카메라 18대를 투입해 더욱더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선빈·이준혁, 오디오무비 <리버스> 11월 18일 공개
ⓒ 네이버 바이브
기억을 소재로 하는 영화로 유머와 긴장감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미스터리 스릴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돌비 애트모스 기술을 활용해 영화의 생생함을 더했다.
배우 이정은, 런던아시아영화제 최고 배우상 수상
ⓒ 네이버 영화
지난 19일에 개막한 제 7회 런던아시아영화제에서 이정은 배우가 <오마주>로 최고 배우상을
수상했다. 이정은 배우는 과장되지 않은 현실 연기 속에 꿈을 꾸는 중년여성의 욕망과 좌절 그리고
용기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으며 수상자로 선정됐다.
배우 김선호, 영화 <폭군> 출연
ⓒ 솔트엔터테인먼트
배우 김선호의 소속사 솔트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박훈정 감독의 신작 <폭군>에 김선호 배우가
출연한다고 한다. 김선호 배우는 이전에 박훈정 감독과 <슬픈 연대>로 함께 작업을 했다.
콜드플레이, 월드 투어 콘서트 CGV 단독 생중계
ⓒ CJ 4DPLEX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콜드플레이 월드투어 라이브 생중계를 CGV에서 단독 진행한다. 콜드플레이의
히트곡인 'Yellow', 'The Scientist', 'Viva La Vida' 등이 화려한 조명쇼와 함께 펼쳐질 예정이며, BTS의
진이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한다고 한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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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불한당>,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거야
*<불한당>과 <무뢰한>의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고품격(?) 막장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두고 누군가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불륜이 선빵이면 그 정도는 해줄 수도 있지 않겠냐고 농담조로 말하자 상대방은 부부, 아니 인간관계에서 믿음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냐고 진지한 답을 내어놓았다. 동감하며 답했다. 맞다. 그런 메세지는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믿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짓인지를. 안 믿고 있다가 믿을 만한 사람이란 걸 확인하는 게, 믿었다가 못 믿을 놈이란 걸 확인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데 말이다. 그런 인생의 교훈을 일찍 깨달아서 도움이 되었겠다는 말에 웃으며 답했다. 아뇨, 알면서도 당했다고. 이번은 다르겠지. 이 사람은 다르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결국 결과가 똑같았다고. 알면서 당하면 진짜 바보인데. 안 그런가?
현수 曰 "(어휴) 촌스러워요"
<불한당>은 촌스러운 듯하면서 까리하다.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빨간 스포츠카 같은 영화다. 맛깔나는 대사나 장면도 많다. 다년간의 드라마와 영화 학습으로 쌓인 우리의 기대와 예지력을 조금씩 벗어난다. 처음부터 생선 눈이 무서워서 회를 못 먹는다는 둥, 사람 눈을 보면서 어떻게 사람을 죽이냐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더니 최후의 만찬처럼 회를 사주고 머리에 총알을 박질 않나, 사람 죽이는 건 안 무서운데 여전히 생선 눈은 무섭다고 깻잎을 덮질 않나. 그러다간 또 푼수 떼기처럼 허세를 부리다가 삼촌에게 얻어맞고 차에 가서 훌쩍거린다. 그 눈물이 어찌나 새롭게 느껴지던지. 덩치가 작은 현수가 덩치 큰 수감자와 뺨 때리기를 하면서 주먹을 쓰는 반칙을 하면서도 당당하고, 재호는 그걸 보며 '혁신적인 또라이'라며 마음에 들어하기도 한다. 그런 현수에게 열광하는 당신도 두말할 것 없이 압도적인 또라이 아니겠어.
숨겨둔 카드를 빨리 보여준다. 아니, 벌써? 살짝 당황스럽지만 별로 걱정되진 않았다. 재호는 현수가 위장 경찰인 걸 일찌감치 알고 있고, 현수는 심지어 순진무구한 얼굴로 "형, 나 경찰이야"라고 자백을 한다. 이쯤 되면 누구나 알아차리게 된다. 무간도 같은 언더커버 전개가 아닐 거라는 것. 실제로 영화는 나쁜 놈인 건 둘째치고 등장인물들이 어지간히 또라이들이다. 이상하게 순정파 같은 또라이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사실 재밌어서 도와준 거 같기도 하고
재호와 현수의 영화이다. 좀 더 치자면 재호와 현수, 병갑과 천 팀장이 남는다. 현수의 행동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차피 재호는 잘해야 미끼 혹은 돌다리다. 검거해야 할 타켓 중 일부에 불과했다. 어지간해선 칼을 가지고 재호를 얼마나 다치게 할 수 있을까 싶은데 기를 쓰고 그렇게 말리고선 대신 다친다. 재호를 구하지 않았어도, 다치지 않았어도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있진 않았을까. 목숨은 어머니 말씀처럼 박애주의적인 입장에서 구할 수도 있다 쳐도 교도소에서 남은 기간 동안 모든 힘을 다시 찾을 수 있게까지 해준 게 제법 과하게 느껴졌다. 목적을 위해 마음을 얻는 일이 이렇게 정성이 가득한 일이었나 싶었다. 재호에게 든든한 믿음을 얻으려는 전략이었을까, 그 사이에 진심이 있었던 걸까.
게임 끝나버렸는데요
재호가 왜 현수를 아까워하고 아꼈는지는 분명하다. 고아원부터 함께한 병갑과는 다르다. 병갑은 무조건적으로 재호를 좋아하고 무해하다. 하지만 그라고 뒤통수를 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재호는 늘 뒤통수를 조심하라고, 뒤를 돌아보며 살라 하지 않았나. 병갑이 현수를 꼬마 새끼, 짭새 새끼라며 부르며 질투하고, 회장 자리에 앉아보면서 히히덕거리는 순진한 힘에 대한 로망은 빤히 보이니까 괜찮다. 병갑이 정말 재호를 아끼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던 건 삼촌이 재호를 죽이려고 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놀라지 않았을 때였다. 별스럽지 않게 면회를 와선 뒤늦게 삼촌이 널 죽이려고 했다며 재호의 뒤통수에 대고 말하는 장면. 아, 이래서 병갑이와는 안 되겠구나 했다. 만약 재호가 잘못됐어도 지금처럼 침착할 수 있었을까. 훌쩍거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현수가 재호의 뒤통수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병갑은 늘 한 박자 늦고 어딘가 빈틈이 있다. 재호는 병갑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야속하게도 마음이 수평을 이루는 사이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병갑의 마음이 재호보다 훨씬 깊고 무거운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나 상황이냐, 앞통수냐 뒤통수냐
<불한당>은 내게 믿음에 관한 영화다. 그 안에 사랑이 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무뢰한> 이후에 믿음의 씁쓸한 얼굴이 떠오르는 영화다.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누구나 뒤통수를 칠 수 있다. 신뢰가 필요하다는 말은 역으로 현재 세상의 기본값이 거짓말과 뒤통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뢰한>은 <불한당>과 비교하면 그나마 해피엔딩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비참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재곤과 해경은 살아있다. 둘 중 어느 누구도 서로를 완전히 믿진 못했다. 재곤은 해경을 속일 힘과 집요함이 있었고 혜경은 속일 수는 있지만 끝까지 모질지 못했다. 그에게 칼을 꽂아도 치명상에 이르지 못한다. 재곤은 혜경을 찾아가 변명도 하고 믿음을 저버린 걸 나름의 방식대로 속죄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게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다. 해경의 복수는 바들바들 떨면서 그에게 칼을 꽂는 것이고, 재곤의 속죄는 그 칼을 그대로 맞고서도 그녀의 새해 복을 챙기는 것이다.
그러나 <불한당>은 다르다. 현수와 재호는 둘 다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다. 인정사정없이 칼을 꽂고 목을 조르고, 얼굴을 뭉개고 총을 쏜다. 재호의 배신은 순순히 넘어가기 힘들다. 다른 건 몰라도 부모님은 건드리는 게 아니지 않나. 재호가 현수를 감는 방법을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다. 하나뿐인 어머니를 아끼는 현수를 알고도 완전히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려면 어머니의 죽음쯤은 감수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오열하는 현수를 보던 재호의 얼떨떨한 표정이 인상 깊다. 마치 "그렇게까지 괴롭고 슬퍼할 일인가" 싶으면서 약간은 잘못했나 싶은 표정.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죽음으로 현수가 심지어 신분을 드러내는, 평생 재호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믿음을 눈앞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비밀과 속내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게, 가족을 그렇게 아낄 수 있다는 게 재호에게는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재호의 마음도, 어깨도 무거워진다. 우리만 생각한 건 아니었겠지. 그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그 생각.
이렇게 어려운 건 현수 네가 처음이야
재호는 착실히 판을 짜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서 원하는 것들을 이뤘다. 수많은 사람들이 곁에 왔다 가면서 세워놓은 방법이었다. 이제 현수도 곁에 있고 고병철 회장도 사라졌다. 살기 위한 일이었을 뿐 지겹고 피로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현수에게는 마지막까지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수의 목소리가 여느 때와 다른 게 분명한데도, 주변의 공기도 날씨도 다른데도 함정에 걸어 들어갔다. 병갑을 직접 명패로 때려죽이면서도 현수가 복수를 하고 있구나, 내 손으로 복수를 하게 하는구나 했을 것이다.
묘하게 밉고 묘하게 미워할 수 없다
재호의 병 주고 약 주고(어머니는 돌아가시게 하곤 장례식 비용과 마무리는 도와주는) 식의 행동을 알게 된 후, 현수는 재호를 이상하게도 많이 배려해 준다. 일찌감치 어머니를 죽인 사실을 얘기해서 자신을 죽일 기회도 주고, 경찰들로부터 피할 수 있게 작전을 모조리 바꿔버린다. 재호 역시 자기 한 몸 지키기 바쁜 와중에도 현수가 곤경에 처하자 다가와서 도와주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재호를 천 팀장이 차로 받아버릴 때는 순간 이 영화의 악역이 천 팀장이었나 싶게 느껴질 정도다. 하긴, 천 팀장이 제일 못된 사람은 아니지만 제일 야멸찬 사람이긴 하다. 모든 걸 알고도 원하는 걸 위해서만 움직이는 사람. 죄책감 같은 건 스스로 괴롭기만 하고 당하는 놈이 바보라고 하더니 그럼 이제 누가 바보인가. 얼마나 악역인지는 재호의 웃음소리 뒤에 현수가 천 팀장에게 박아 넣은 총알 소리를 세어보자.
현수가 될 수도 있었지
재호와 현수를 보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안타까워진다. 재호가 현수의 어머니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아니 현수가 원하는 대로 감방으로 입학하지 않고 취직을 했다면, 재호가 오세안 무역 사람이 아니고 현수가 경찰이 아니었다면, 재호가 가족애라는 걸 공감하거나 현수가 좀 더 솔직하지 않았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 것이다. 현수가 바라던 대로 취직을 했다면 회를 먹으면서 영화 시작과 동시에 머리에 총알이 박혔을 것이고 오열하면서 홀로 남은 쪽은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 재호가 현수의 어머니를 알뜰히 챙겨줬다면 어머니를 핑계로 현수를 움직이게 했던 천 팀장이 무슨 짓을 했을지도 알 수 없다. 만약 뭔가 달라졌다고 해도 결과가 과연 안타깝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다.
처음에는 현수 입장에서 재호를 원망했다. 하고많은 방법 중에 꼭 어머니를 죽이는 방법이었어야 했을까. 좀 더 솔직할 순 없었을까.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으면 너를 죽였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 번도 누굴 믿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말이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나를 믿는다고 말할 때마다 괴로웠다고도. 천 팀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이야기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을 입도 이해는 간다. 경찰인 걸 속이는 것과 어머니를 죽였다는 점을 속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말했다 하더라도 현수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재호가 밝히는 순간 현수는 세상에 홀로 버려지게 된다. 차라리 끝까지 몰랐으면 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영화를 보고 나선, 현수에게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과연 현수가 재호의 숨을 끊었을까 싶었다. 총도 맞고 차에도 치어 치여 움직이지도 못하는 재호의 고통을 줄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는 끈질기니까 살아남을 순 있겠지만 어차피 이젠 함께할 수가 없다. 현수와 재호는 정말 모든 걸 그만두고 버리고 떠날 용기는 없었다. 재호가 다시 감방에 잡아넣는다고 치면 지난날처럼 감방을 주무르며 지낼 수 있을까. 또 나온다 한들 다시 이 일에서 손을 뗄 수 있을까. 현수는 이 일을 계기로 경찰을 그만둘 수 있을까. 현수는 모든 것을 재호에게로 돌린다. 이 모든 상황도, 사람들도, 시간도. 사람들도 역시 상황을 믿을 테니까. 재호의 손에 쥐여준 그 총을 믿을 테니까.
마지막 장면의 현수의 표정은 춥다. 늦은 후회와 밀려오는 공포와 두려움에 허여멀건 하게 질려있다. 굳이 손으로 재호의 숨통을 막을 필요가 있었을까. 여태까지 잠입을 위해 때리고 죽였던 수많은 사람들과 재호는 다르다. 의미가 생기고 믿어버리게 됐다. 차라리 그가 알아서 고통받도록 그대로 두었다면 적어도 죽음은 현수의 탓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죽이고 믿음을 저버린 복수는 현수를 스스로 세상에 홀로 버려진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현수가 재호를 덮었던 손을 늦지 않게 놓아버리고 뒤도 돌아버리지 않고 걸어갔으면 어땠을까. 그 빨간 스포츠카가 비어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들이마시는 재호의 숨은 인셉션의 팽이처럼 마지막 숨인지 계속되는 숨인지 알 수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영화는 불한당이고, 나쁜 놈들의 세상이다. 현수는 재호를 죽게 함으로써 불한당이 되고, 재호의 마음을 이해한 채로 살아가게 됐다.
여담이지만 <무뢰한>에서 목적을 위해 믿음을 뒤로했던 형사 재곤은 <열혈 사제>에 가서는 신부가 되어 "너에게 말한다. 77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역대급으로 성장한 인내심과 믿음을 보여주었다. <불한당>의 피와 눈물, 배신감과 불안, 슬픔과 두려움에 젖은 경찰 현수는 재호와의 사이에서 용서가 물 건너가 버린 게 마음 아프기도 하다. 인생이 그런 걸지도 모른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용서를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내 안에 살아있던 그 사람을 죽은 사람처럼 사라지게 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부정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을 것이다. 언제 봤다고 대뜸 자기라고 부를 때였는지, 처진 어깨로 등 뒤에 칼이 있는지도 모르고 감방 복도를 걸어갈 때였는지, 출세하기 한참 전에 낡아빠진 사무실에 데려가 사람을 믿지 못하는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을 때인지, 알면서도 자기가 불러들인 죽을 자리로 들어오는 초연함 때문인지, 혹은 언제든 총을 쏠 수 있던 사람이 자신 앞에서는 결국 총을 제대로 겨누지도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인지. 다만 현수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차마 총을 쏘지 못하고, 손을 떼지 못하는 그 순간에 여실히. 그 마음이 미안함 뿐만이 아니었다는 걸. 어둠 속에서 느낀 모든 것들이 날이 밝아오면서 밀려올 때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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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2022
이젠, 가볍게 바라볼 수준은 아니다.
전작 <닥터 스트레인지>는 물론이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봐야 한다. (물론, 이 사이에 있는 <어벤져스>도 당연히 봤겠지?)
여기에 <완다 비전>과 <왓 이프...?>는 "디즈니 플러스"에서만 볼 수 있는 "드라마"와 "시리즈"이다.
근데, 이렇게까지 꼭? 꼭! 봐야 하냐...? - 응!먼저, 해당 장르에 있어 "돈이 잘 벌리는 장르"라는 선입견을 만들어준 사람은 누굴까?
<슈퍼맨>과 <배트맨>, 그리고 <엑스맨>도 있지만 흔히 말하는 "억대 오프닝"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준 영화는 <스파이더맨>이다.
2007년 3편을 슈트를 벗었던 "샘 레이미"가 15년 만에 다시 슈트를 입었다. (공교롭게도 "닥터 스트레인지"는 전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조력자"였는데?)1. 보직과 영웅이 달라진 "샘 레이미"
일단, 그때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샘 레이미", 그가 당시에 선보였던 <스파이더맨 3부작>에는 "세계관"이라는 개념이 전무했다.
물론, 감독 본인과 제작사가 그려내는 청사진은 존재했겠지만 이에 대한 갈등은 2007년 <스파이더맨 3>로 나왔으며 '하차'와 '리부트'라는 결과로 도출된다. (그로 인해, 이후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나오게 된다.)그런 점에서 처음부터 경기를 운영하는 "선발"이 아닌 중간에 투입하는 "중계", 그리고 선수 본인이 아닌 "감독(케빈 파이기)"의 "청사진(세계관)"대로 움직여줄까?
무엇보다 부제 <대혼돈의 멀티버스>에도 쓰여있듯이 넘나드는 세계관으로 되려, 관객들에게 혼란을 줄법하니까...
하지만, "샘 레이미"는 그 누구보다 "청사진(세계관)"을 가장 잘 이해하는 선수이다.2. 똑같은 공인데, 왜 다르지?
먼저, 전작 <닥터 스트레인지>가 호평을 받았던 시각 효과(ex.'미러 디멘션')부터 살펴보자.
"야구"를 비롯하여 스포츠에서 말하는 "자세"는 '어떻게, 힘을 전달하는지?' 혹은 '부상 없이 건강하게 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그런 점에서 '미러 디멘션'은 문제가 없으나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다.
무엇보다 전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까지 여러 차례 선보인 장면은 신선함이 떨어지기까지 한다.분명히, 똑같은 홈런 타자이고 강속구 투수임에도 타격폼과 투구 자세는 다르다.
그런데도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유에는 '자신에게 맞는 폼과 자세가 있다'라는 것이다.
'특히, 실밥을 어떻게 쥐는지?'에 달라지는 공의 궤적처럼 "샘 레이미"의 '미러 디멘션'은 무섭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는 관절이 우두둑거리며, '미러 디멘션'에서 나오는 "스칼렛 위치"의 장면으로 부족함이 없다.3. 외면부터 내면까지 무섭다!
앞서 말한 '미러 디멘션'에서 보여준 "스칼렛 위치"의 무서움을 비롯해 시가전에서 나타난 촉수 괴물, 썩은 시체의 "닥터 스트레인지"까지 외적인 모습부터 관객들을 한층 물러서게 만든다.
이외에도 "공포 영화"에서 볼법한 카메라 워킹까지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어떤 느낌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재밌는 건, 전작의 감독 "스콧 데릭슨"도 <살인소설> 등 "공포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그리고, 이 가운데에서 무서움이 여과 없이 전달되는 장면은 "스칼렛 위치"와의 추격전이다.
<왓 이프...?>에서 나왔던 "캡틴 카터"를 비롯하여 그 세상의 "어벤져스"가 등장하는데, 머리가 터지거나 돌려지고, 허리가 잘리는 등의 제법 고어스러운 장면들로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다.
여기에 "닥터 스트레인지 일행"을 쫓는 그녀의 모습은 역시, <왓 이프...?>에서 보았던 "좀비"를 연상시킬 만큼 우두둑거린다. (역시, 무서워!)4. 영화도 혼자가 아닌 "어벤져스"
그렇다면, 관객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만든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원동력은 뭘까? - 아이러니하게도 이 힘의 원천은 본 작품이 아니라 <완다비전>에 있다.
물론,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 설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오빠와 남편, 그리고 가족을 잃은 "완다"의 감정, 그리고 마지막에 보여주는 그녀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완다비전>이 차지하는 역할을 배제할 순 없다.
앞서 말했듯이 "샘 레이미"는 그 누구보다 세계관을 잘 이해하는 선수이지 감독이 아니다.(이제는...)작년 <블랙 위도우>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이터널스>, 그리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살펴보자!
"가족 영화"로 정리되는 <블랙 위도우>와 "8-90년대 홍콩 무협 영화"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팬 서비스"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그리고 <이터널스>까지 각자의 특색보단 "MCU"라는 큰 퍼즐, "세대교체"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보여준 으스스한 활기가 반갑다. - 역시, 원조가 뭐가 다르긴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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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 논리로 선 땅에서 예술의 정수를 쌓아 올리다!
3시간 35분. 극장에서 인터미션 마주할 수 있게 한 <브루탈리스트>는 잊지 못할 영화적 경험을 안긴다. 영화 외적일 뿐만 아니라 영화 내적으로도 잊지 못할 경험을 전한다. 왜 이 영화가 이렇게도 길수밖에 없는지, 긴 시간 동안 왜 우리는 미국으로 간 한 유대인 건축가가 돈의 논리로 선 땅에서 예술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목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끝내 알게 된다. 마치 기나긴 터널을 묵묵히 버티며 끝내 밝은 빛을 맞는 느낌처럼, 영화는 끈질기게 자유를 갈망하는 라즐로의 고통의 나날을 촘촘하게 쌓아 올린다.
파시즘을 피해 미국행을 택한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자유의 삶이 아닌 이민자로서 겪는 냉혹한 현실이다. 사촌의 일터에 얹혀살고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은 참기 힘들다. 부유한 사업가인 해리슨(가이 피어스)의 서재를 리모델링하는 일을 맡고 유려한 공간을 만드는 데 성공한 그지만, 결과는 되려 거친 항의를 받는다. 결국 사촌 집에서 쫓겨난 라즐로는 막노동으로 근근이 먹고산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버럭 소리치던 해리슨이 찾아와 과거 일을 사과하며, 자기 집에 초대를 한다. 이에 응한 라즐로는 그에게 건축물 설계 제안을 받는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 여긴 라즐로. 하지만 예산, 시대를 앞선 건축 양식 등 장애물을 만나고, 또 다른 시련을 겪는다.
| 자유의 여신상이 거꾸로?
“자유롭다는 착각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노예다”
<브루탈리스트>라는 영화를 설계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건 자유다. 극 중 등장하는 괴테의 말처럼 라즐로는 파시즘의 공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배에서 올라와 자유의 공기를 마신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온전한 자유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깊은 늪이다.
영화 초반을 생각해 보면 라즐로에게 미국은 자유의 나라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유의 여신상이 거꾸로 비친 것만 봐도 그렇다. 라즐로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해 배를 타고 미국으로 온 이민자들에게 자유의 여신상은 온전히 그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어쩌면 이 여신은 온전히 그리고 똑바로 미국인들에게만 자유를 선사하는 아이콘일 수 있다.
이렇듯 라즐로는 이민자로서 본의 아니게 차별을 받는다. 한 예로 자신을 미국인으로 칭하고, 기독교 신자인 사람을 아내로 맞이한 사촌은 라즐로의 유일한 구원자인 동시에 철저한 배신자로 나온다. 이유는? 돈값을 못 해서다. 의도가 어떻든 그가 설계한 서재를 보고 화가 난 해리슨 때문에 공사비를 못 받은 사촌은 이 모든 잘못을 라즐로에게 돌리고, 그를 쫓아낸다. 아무리 혈연관계라 해도 미국에서는 이용 가치가 없는 이민자를 곁에 둘 이유가 없다. 어찌 보면 전쟁으로 고향을 도망쳐 나왔지만, 결국 돈의 논리로 선 미국에서도 그가 누릴 자유는 없는 것이다.
| 아메리칸드림 속에 숨겨진 이민자의 수난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라즐로에게 산타가 나타난다. 바로 해리슨이다. 라즐로가 만든 서재 덕분에 유명세를 탄 덕분에 해리슨은 라즐로를 곁에 두고 자신에게 특별하고,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에 남을 건축물을 지어달라고 한다. 이를 승낙한 라즐로는 그 즉시 헤어 나올 수 없는 족쇄에 채워진다.
미국과 자본주의의 결정체로 보이는 해리슨은 돈으로 라즐로의 재능을 산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착취한다. 겉으로는 선의를 배푸는 척하지만, 그의 속내는 어떻게든 라즐로의 재능을 빼먹을 궁리만 하는 것. 이런 속내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는데, 자신이 고용한 이들의 입을 통해 경비 감축 등의 이유로 라즐로를 압박한다. 라즐로의 예술성만큼이나 해리슨에게 중요한 건 돈이다.
생각해보면 해리슨이 이 건축물을 짓는 건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기 위한 것도, 마을 공동체를 위한 것도,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예술 건축물을 짓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명예 도취. 있어 보이기 위한 과식욕의 매개체를 만드는 것뿐이다. 예산 때문에 단 몇 미터를 줄이는 것에 분노하는 라즐로를 겉으로 이해하지만, 그의 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해리슨의 모습은 마약 같은 명성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가를 착취하는 자본가들의 모습과 일치한다.
자신이 갖지 못한 그 예술성을 탐닉하고 어떻게든 동경을 넘어 빼앗고 싶어 하는 모습. 해리슨을 연기한 가이 피어스는 ‘록펠러와 살리에리 중간쯤’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한 바 있다. 해리슨의 모습은 유럽의 아름다움을 오로지 돈으로 사서 만들려고 했던 미국의 민낯과도 일치한다. 이를 보여주듯 극 중 해리슨은 라즐로는 정신적으로, 성적으로 착취한다. 결국 미국은 이런 예술가들의 피와 땀, 눈물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66:1의 화면비, 비스타비전이 주는 폐쇄성<브루탈리스트>는 현재는 거의 쓰지 않는 비스타비전으로 촬영되었다. 브래디 코베 감독이 이 화면비를 고수한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라즐로 등 이민자들이 느끼는 폐쇄성을 오롯이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영화는 조피아의 취조실로부터 시작되고, 이어지는 장면은 짙은 어둠 속 배 안에서 가판으로 올라가는 라즐로의 모습이다. 마치 감옥처럼 느껴지는 통로를 어떻게든 탈출하려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데, 보는 입장에서는 시네마스코프와 달리, 비스타 비전만의 폐쇄성이 느껴진다. 이후, 이 화면비로 보이는 라즐로의 여정 또한 어딘가 모르게 갇힌 듯한 느낌을 전한다.
결국 영화는 이 비율을 통해 미국에 와서도 온전히 자유를 찾지 못하고 감옥에 갇힌 듯한 라즐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의 감옥에서 스스로 나오지 못하는 그의 모습. 어떻게 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그만의 감옥은 그가 마약을 끊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브루탈리즘을 소재로 한 영화는 건축처럼 대칭과 반복 등의 구조적 특징을 오롯이 펼친다. 조피아의 얼굴로 시작해 조피아의 얼굴로 끝내는 영화는 인터미션을 기준으로 1막 ‘도착의 수수께끼’, 2막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은 수미쌍관 구조를 가져간다. 특히 혼자던(1부), 가족과 함께 하던(2부)는 미국이란 땅에서 그는 자유가 아닌 감옥신세라는 걸 동일하게 보여준다. 극중 에르제벳이 말한 것처럼 이들에게 미국은 썩은 나라이며, 말을 하지 않던 조피아는 결혼과 동시에 약속의 땅이스라엘로 떠난다.
|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니라 예술이자 목적지!
끝내 완성한 건축물은 해리슨이 아닌 라즐로의 것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나라에서 죽어가는 예술혼은 끝내 지난한 여정을 관통하며 우뚝 솟아오른다. 이 건축물은 파시즘으로부터 도망친 이후 보이지 않는 그의 마음속 아픔과 인생이 녹아 있다. 후반부 라즐로를 강간한 사실을 에르제벳의 입을 통해 공개된 이후 해리슨은 이 건물로 도망치는데, 그때 비로소 이 건축물의 내부가 온전히 공개된다. 마치 자신과 에르제벳이 경험했던 감옥이 이 공간에 녹아져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어둡고 폐쇄적이며, 기도 공간에서는 햇빛에 비치는 십자가를 통해 비로소 자유를 느끼게 한다.
라즐로의 내상과 에르제벳의 외상이 합쳐져 완성한 듯한 이 건축물은 결국 이 부부가 겪은 아픔과 인생을 응축한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브루탈리즘은 ‘날것 그대로의 콘크리트’(Béton brut)라는 어원이 말해주듯, 아무런 장식 없이 콘크리트로 구축한 이 건축물은 누군가에게는 흉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시련과 고난을 버텨 끝내 자유를 찾고자 노력한 이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나이가 든 조피아는 라즐로의 예술을 전시하는 비엔날레 행사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삶이 아무리 유린당해도 중요한 건 목적지이지 여정이 아닙니다.” 미국의 삶을 접고 예루살렘에 온 라즐로가 조피아에게 했던 이 말은, 고통의 나날을 보냈지만, 어떻게든 삶의 인장을 남긴 라즐로와 에르제벳, 그리고 수많은 이민자를 향한 찬사다. “어떤 격변이 있어도 오래 살아남는 것을 만들기 위해 건축을 한다”는 라즐로의 답은 이민자들의 역사를 바탕으로 세워 올려진 미국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과연 미국은 누가 세웠는가!
사진제공: 유니버셜 픽쳐스
평점: 4.0 / 5.0
한줄평: 돈의 논리로 선 땅에서 예술의 정수를 쌓아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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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13] (브런치작가/영화리뷰/결말X) 아이를 잃은 부부가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법
1월초 그녀의 조각들 이라는 영화가 넷플릭스에 공개 되었습니다.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아이를 잃은 부부가 그 상실감을 어떤 태도로 극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에요.
바네사 커비가 출산 과정의 비극을 겪은 마사로 나오는데, 연기가 굉장히 좋습니다.
이 영화는 바네사 커비의 영화입니다.
지난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타기도 했죠. 그저 액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로만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텐데
그런 선입견을 보기 좋게 날려보리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영화 초반 30분정도 출산 과정을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그 출산 과정에 대해 관객들에게 직접 보고 판단해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죠.
영화는 그 초반이후 주인공들이 상실감을 대하는 모습을 대비시키며 결론으로 나아갑니다.
마지막 마사의 법정 발언 장면은 그렇게 전달된 내용이 감정적으로 발산되는 장면입니다.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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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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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완다비전> 메인 예고편
이상하고 충격적이지만 거대하고 아름다운 세계 상상 그 이상을 초월하는 마블 오리지널 최고의 웰메이드 [완다비전]은 11월 12일, 오직 디즈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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