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5-04-03 13:15:56
경쟁자를 제자로 둔 스승의 감정
- <승부>(2025)






가끔 인생에서 ‘보석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인연이 길든 짧든, 이 만남이 서로의 삶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는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어느새 그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때론 이 관계가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질 수도 있고, 그 경쟁의 자리가 때로는 스승과 제자의 구도로 나타날 수도 있다. 서로를 밀고 끌어주며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어느덧 ‘없으면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영화 <승부>는 실제 바둑계 전설 조훈현(이병헌)과 그의 제자 이창호(유아인)의 이야기를 담는다. 바둑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지만, 정작 둘 사이에 어떤 갈등과 감정의 교류가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영화는 이들이 단순한 ‘스승과 제자’를 넘어 ‘라이벌’이 되고, 결국 서로에게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가는 과정을 촘촘하게 펼쳐 보인다.
<승부>는 조훈현이 바둑 신동 이창호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신동이라 불릴 만큼 번득이는 실력을 지닌 이창호는 어린 시절부터 도전정신이 가득했고, 프로 기사들과 맞서는 일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국내 바둑 1인자를 굳건히 지키던 조훈현에게 계속 도전장을 내밀어, 끝내 그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이창호가 조훈현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기초부터 배우는 과정은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점차 두 사람의 스타일 차이와 승부욕이 드러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스승과 제자가 공식 대결에서 만나는 충격적 장면이 펼쳐지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흘러간다.
한편 영화는 단순히 ‘바둑 경기’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둑판 위에서의 사활만큼이나 치열하게 움직이는 스승과 제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다. 둘 사이에 형성된 끈끈한 인연이 경쟁 구도가 되면서 어떤 파문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감정을 어떻게 주고받는지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첫번째 감정] 제자 이창호의 미안함
어린 이창호는 무척 대담한 인물로 묘사된다. 바둑판 앞에서만큼은 자신감이 넘쳤고, 누구와 겨뤄도 결코 지지 않겠다는 강한 집착이 있었다. 바둑계 최강자였던 조훈현에게 거듭 도전한 끝에, 결국 제자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발랄하고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은 아이 같으면서도, 어딘가 기이한 집중력을 보여줘 관객에게 신동이라는 설정을 쉽게 납득시킨다.
조훈현의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 뒤, 이창호는 바둑의 이론과 전통을 배우면서도 특유의 반항적인 기질을 감추지 못한다. 스승은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바둑을 선호하지만, 이창호는 한 발 물러서서 전체 흐름을 관찰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바둑판 위에서는 정답이 없는 만큼, 두 사람의 대립은 ‘누가 옳다’라기보다 ‘누구의 방식이 더 강한가’로 귀결된다. 한 편으로 이창호는 이렇게 스승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게 옳은 걸까라는 내적 갈등을 겪는다.
처음 맞붙은 공식 대결에서 이창호는 스승에게 승리를 거두고, 이후 대회에서도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둔다. 이 순간부터 이창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감정에 사로잡힌다. 스승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프로 세계에서 이기고 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스승이라는 존재에게 패배를 안긴다는 점이 이창호에겐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승리할수록 커져가는 미안함, 그러나 동시에 승부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해지는 묘한 내면 충돌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두번째 감정] 스승 조훈현의 실망
조훈현은 처음에 이창호를 데려왔을 때, 분명 특출난 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의 적수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조훈현은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영민한 제자였기에, 누군가가 성장하는 속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이창호만큼 빠르게 스승의 자리를 위협할 줄은 몰랐다. 정작 자신의 삶과 바둑 철학을 전수해 주었는데, 제자는 아예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경쟁자로 거듭나는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창호의 바둑을 지켜보면서, 조훈현은 여러 차례 '그게 아니다, 이렇게 둬야 한다'며 짜증을 표출한다. 공격적이고 직선적인 스승의 성향은, 유연하고 변칙적인 제자의 기보와 부딪힌다. 그런데도 막상 성적이 좋으니, 단순히 틀렸다고 하기 어려운 현실에 부딪힌다. 결국 조훈현은 속으론 인정하면서도, 쉽사리 '내가 틀렸다'고 내뱉지 못한다. 제자를 100% 수용하기에는, 아직 자신이 현역으로 활약 중이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는다.
스승으로서 제자를 응원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경쟁자로서는 매번 패배를 맛보는 일이 고통스럽다. 제자가 강해지는 만큼 자신이 약해져 가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잇따른 패배 후에야 조훈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무너진다. 한때 최강이라 불렸던 자존심이 무너질 때 느끼는 허망함, 그리고 '내가 잘못된 길을 제자에게 가르쳤나?' 하는 후회가 그를 짓누른다. 이 영화는 그 실망의 순간들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며, 한때 최고의 선수였던 이의 내면에 깃드는 그림자를 애틋하게 보여준다.
[세번째 감정] 스승과 제자의 존중감
승부의 세계에선 언젠가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기도 한다. 바둑판 위에서 조훈현과 이창호의 관계 역시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렇지만 치열한 승부 뒤에 누가 이겼든,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실력을 존중한다는 본질적인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조훈현은 처음엔 불만과 실망을 표출하지만, 결국 이창호가 걸어온 독창적 길을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이창호 역시 스승의 옛 기록들을 되짚어 보며, 자신이 너무 빠르게 승리를 좇은 건 아닌지 반성하는 순간이 온다.
바둑판 위에서 마주 앉아 손가락 하나로 돌을 놓을 때, 그들이 느끼는 긴장과 흥분은 서로가 아니면 충족하기 어렵다. 결국 스승과 제자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유일한 동료가 된다.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기도 한 셈이다. 영화는 스승과 제자가 진심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지점이 어느 순간 찾아옴을 보여주는데, 그 순간의 성취감과 뭉클함은 대단히 크다.
끝내 조훈현과 이창호는 서로에게 '네가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하게 된다. 이기고 지는 문제를 떠나,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고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영화 <승부>는 승패보다 더 중요한 동반자로서의 자각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관객에게도 진정한 경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실화를 훌륭하게 각색해낸 영화
<승부>는 실제 있었던 조훈현-이창호의 바둑 역사를 바탕으로, 스승과 제자가 경쟁자로 변해가는 흥미로운 과정을 그려낸다. 바둑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주는 긴장과 성장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왜 둘은 한 판의 바둑에 그렇게 목숨을 거는지, 어떻게 제자가 스승의 자리를 위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은 어떤 것인지가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실제 조훈현과 이창호는 지금까지도 좋은 경쟁자로 서로를 인정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서로가 없었다면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며, 덕분에 한국 바둑계가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영화는 그런 실제 감정을 최대한 살려내, 경쟁의 긴장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동시에 보여준다.
연출은 차분하면서도 흡인력 있게 이어진다. 김형주 감독은 바둑판 위에 펼쳐지는 치열함을 디테일하게 포착하면서도,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바둑알이 놓이는 소리, 팽팽하게 얽힌 표정 등 작은 요소들도 극적 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병헌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노련한 기사 조훈현 역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유아인은 이창호 특유의 무표정 속에 내재된 열정과 부담감을 표현해낸다. 최근 상황으로 인해 유아인의 연기를 당분간 보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이번 작품에서 보여주는 제자 역할은 참 매력적이다. 조연들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 영화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바둑이라는 소재 덕분에, 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층에게는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경쟁 세계를 보여준다. 바둑이든 어떤 게임이든, 인생을 관통하는 ‘승부’의 본질에 호기심이 있다면 이 영화를 꼭 보길 권한다. 마치 한 수 한 수 내딛는 모든 순간에, 인물들의 감정이 묻어나고, 결국엔 스승과 제자라는 틀 안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사랑하게 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승부>는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경쟁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끝내 서로를 깊이 존중하는 인연이 되어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담아낸 휴먼 드라마다. 바둑을 사랑하는 장년층 관객과 함께 관람하면 더욱 즐거울 것이며, “스승-제자” 관계가 빚어내는 미묘한 심리전과 진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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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틸워터> 잔잔해 보이는 물처럼 흘러가는 드라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국 오클라호마 주 스틸워터에서 프랑스 마르세유로 향하는 '빌 베이커(맷 데이먼)'. 그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마르세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딸 '앨리슨(아비게일 브레스린)'의 면회를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앨리슨의 사건 현장에 또 다른 목격자 '아킴'이 있었고, 그를 찾으면 딸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빌은 호텔에서 만난 '버지니(카밀 코탱)'와 그녀의 딸 '마야(릴루 소바드)'의 도움을 받아 목격자를 찾아 나서지만, 그는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예기치 못한 진실을 깨달으면서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 난제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테세우스의 배'다. 이 역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테네 인들은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로 귀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탔던 배를 보존해 왔는데, 배의 판자가 썩을 때마다 그 낡은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새 판자로 대신했다는 것이다. 이때 판자가 하나만 바뀐다면 여전히 그 배는 테세우스의 배겠지만, 만약 결국에 모든 판자를 갈아 끼우더라도 여전히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사물의 변화와 정체성의 유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테세우스의 배는 근래 MCU의 <완다비전>처럼 많은 작품의 핵심 주제를 관통하는 알레고리로 활용되어 왔으며, 톰 맥카시 감독이 연출하고 맷 데이먼 주연을 맡은 <스틸워터>에서도 그 존재감을 발휘한다. 2007년에 발생한 아만다 녹스 사건을 모티브로 한 <스틸워터>는 빌 베이커라는 한 남자, 아버지, 이방인의 일상을 조용히 따라가며 그 안에서 한 개인의 변화와 그로 인한 혼란과 충격, 슬픔 등을 관조한다. 그리고 설령 외관에는 변화가 없어도 판자가 다 달라진 배는 더 이상 테세우스의 배라 부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영화 초반의 빌은 소나무처럼 굳건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거나 안락한 환경은 아니어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매일 같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딸을 위해 기도를 드릴만큼 종교적으로 확고한 삶을 산다. 달리 말해 그는 변화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필요한 서류를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마르세유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지냈는데도 미국인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는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도 총기 소유에 대한 대화에서 지극히 미국 중남부 출신다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미식축구 중계를 챙겨보고 유럽 축구를 거부한다.
이렇게 완고하기까지 한 그의 성정은 초반부 전개에 중심 동력이 되어준다. 앨리슨의 면회를 갔다가 딸의 무죄를 확신하게 된 그는 맹렬히 증거를 수집한다. 딸의 변호사를 찾아가 격렬히 항의하고, 사설탐정을 만나 유일한 증거이자 증인인 아킴을 찾으러 다니며, 상황이 여의치 않게 흘러가자 직접 아킴을 찾기 위해서 마르세유의 빈민가를 돌아다닌다. 인종차별과 무슬림 차별 이슈처럼 프랑스에서 민감할 수 있는 이슈와 접점이 생길 위험이 있어도 그저 딸의 무죄를 밝히는 데만 집중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스틸워터>는 범죄 영화, 스릴러 영화에 가깝다.
하지만 딸의 무고를 증명하려는 아버지의 노력이 빈민가에서 실패로 돌아간 이후로 영화는 방향을 바꾼다. 여전히 모자를 쓰고, 청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미국인이지만 초반부에 보여준 빌과는 다른 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만난 버지니와 그녀의 딸 마야와 함께 지내면서 프랑스어로 간단한 대화도 나눌 줄 알게 되고, 매일 마야와 함께 하교하는 책임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는 미국에서는 생계를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족을 떠나 지내야 했고 몇몇 전과가 남을 정도로 무책임한 삶을 살았던 그가 마르세유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렇게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드라마로 전환되는 전개는 예상을 벗어나는 선택이기도 하고, 그래서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확고한 목적과 신념 하나로 똘똘 뭉쳐있던 단단한 남자가 한 조각씩 교체되는 이야기 덕분에 막바지에 다시 스릴러로 전환되는 영화의 발걸음에는 큰 힘이 실린다. 새로운 삶을 살면서도 항상 앨리슨의 무고를 밝혀내고자 조사를 멈추지 않던 그는 자신이 믿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저 진실의 내용이 놀라워서가 아니다. 이미 진실에 근접해 있었지만 너무나도 완고했던 본인의 확신이 그 진실을 가리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지낸 시간 동안 점차 달라졌고, 그렇기에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앨리슨의 사건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빌의 충격과 혼란은 그의 배가 한 조각씩 교체된 결과 전혀 다른 배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빌의 모습은 앨리슨과 대비를 이룬다. 사실 그녀는 사건의 발생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줄곧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변한 적이 없다. 이는 앨리슨의 진실이 등장하는 타이밍에 영화의 장르가 다시 범죄, 스릴러로 되돌아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두 부녀의 차이와 빌의 심경을 간단히 정리해준다. 고향에 돌아온 앨리슨은 스틸워터가 예전 모습 그대로라고 말한다. 하지만 빌은 자신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면서, 마르세유로 돌아갈 수 없듯이 그 이전으로도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단정 짓는다. 이렇게 영화는 실화 사건 자체의 임팩트 대신 그 사건으로 인해 큰 변화를 겪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집중한다.
<스틸워터>의 이야기는 맥카시 감독에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긴 전작 <스포트라이트>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울림을 준다. 특히 기자들의 취재 과정을 그저 관찰하듯 제시했던 것처럼, 빌의 발걸음을 뒤따르며 굳이 감정선을 억지로 고조시키거나 갈등을 극대화하지 않는 매우 사실적이고 건조하기까지 한 연출이 눈에 띈다. 이는 맷 데이먼의 부성애 연기를 만나 그의 혼란과 허탈함까지 온전히 전해준다.
다만 두 가지 문제가 있기에 절반의 성공으로 보이기도 한다. 일단 영화의 흐름이 느리고 템포가 늘어져서 13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온전히 쫓아가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의 지향점 자체는 <스포트라이트>와 같지만,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선택처럼 보인다. 기자들이 거대 권력의 결탁과 비리를 쫓는 내용은 담백하게 전달되더라도 이야기 자체서 긴장감과 비장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범죄 영화 내지는 추적극의 형식에서 드라마로 전환되는 이야기에서는 같은 몰입도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반전이 너무 늦게 등장한다. 빌의 개인 서사와 변화를 지켜본 후 반전을 접할 때 그 임팩트가 가장 강렬할 것이라는 판단한 듯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만큼 굳이 반전을 마지막까지 숨기는 것이 꼭 필요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길고 느린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후반부에 몰아치는 전개는 분량 조절에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결국 <스틸워터>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스포트라이트>의 그것보다 덜 강렬한 사건인데도 동일한 접근법을 취한 구성이 한쪽 발목을 잡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빌의 이야기와 제목인 스틸워터를 곱씹어보면 이 작품이 칸 영화제에 비경쟁작으로 초청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서서히 느낄 수 있다. 빌의 이야기는 단순하 가십이나 이슈로 여겨질 수도 있던 사건 이면에 깃들어 있는 인생에 대해 말한다. 사람의 신념과 감정은 변하기 마련인데 과연 나는 여전히 나인지, 내 앞에 있는 딸과 같은 이들도 여전히 내가 아는 그 사람인지와 같은 보편적인 고민을 건드린다. 이때 단순한 지명이었던 스틸워터(Stillwater)는 멈춘 듯 잔잔해 보이지만 천천히 흐르는 물(still water)이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스틸워터>는 천천히 변해가는 각자의 배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가 된다.
A(Acceptable, 무난함)
지중해의 항구 도시 마르세유에서 지중해를 가로지르던 테세우스의 배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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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의 밤
낙원의 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방법
'너 혼자 있기 싫다며'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특별한 상황에 놓인 경우, 그 죽음의 의미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죽음'은 모두 시한부 삶으로 나타난다. 태구의 누나도 태구가 '이식'을 해주고 싶지만, 아버지가 다른 남매라서 가능하지 않았고, 그마져도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는다.
태구가 제주도에서 만난 재연도 시한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수술해도 살 수 있는 확률이 10%에 불과한 불치병을 앓고 있는 재연은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지금의 삶에 미련이 없다.
태구 역시 누나와 조카를 죽인 북성파 도회장을 살해하고 조직 두목인 양사장의 지시로 제주도로 몸을 숨기면서, 자신의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한다.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지만, 인물들 사이를 들여다보면 이 사건이 오래 전부터 시작된 두 조직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마지막 과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누가 승자인지, 패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느와르 장르를 보여주려 하지만,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농담이 마냥 웃기지만은 않는다.
태구가 찾아간 제주도의 쿠토는 한때 태구의 조직에서 최고 실력자였고, 상대 조직과의 전쟁에서 잔인하고 무서운 실력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의 가족들이 몰살당하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이 조카인 재연이다.
재연은 학생 때 부모와 동생이 살해당한 장면을 봤으며, 그 트라우마로 지금도 힘들어 한다. 재연은 삼촌인 쿠토를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민을 갖는 양가 감정으로 자신을 괴롭히는데, 이건 자식이 부모에게 갖는 감정과 거의 같다는 점에서, 삼촌 쿠토는 사실상 재연의 아버지다.
북성파의 마이사는 재연이 중학생 때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한때 마이사와 쿠토가 같은 조직에서 일했다는 것을 뜻하며, 어떤 사건으로 쿠토가 북성파 조직을 떠나 양사장과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쿠토는 제주도에서 농장을 하며 무기 밀매를 한다. 러시아에서 밀반입한 총기를 국내 폭력조직에 판매하는데, 이 총을 구입하는 조직은 서울의 조직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 제주도의 독자적 조직으로 보이지만, 나중에 보면 힘 있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어들어가서 북성파의 마이사 쪽으로 붙는다.
사건은 크게 서울과 제주도에서 발생한다. 태구가 서울에서 북성파 도회장을 살해하고 제주도로 내려올 때까지의 상황은 빠르게 진행된다. 거대 조직인 북성파는 양사장 조직을 찍어누르는 상태였고, 양사장은 조직 2인자인 태구가 도회장 쪽으로 빠져나갈 것을 몹시 걱정하고 있다. 이때 태구의 누나와 조카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양사장은 도회장이 한 짓이라고 말한다.
북성파 마이사는 양사장을 '양아치 새끼'로 부를 정도로 하찮게 여기는데, 그런 양사장에게 자기가 모시는 도회장이 당했다는 말을 듣고 이를 간다. 조직의 크기나 인물의 배포, 성격에서 양사장은 마이사의 발끝에도 닿지 못하는 '양아치'가 분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양사장은 경찰의 고위 간부에게 줄을 대고 있고, 폭력조직을 관리하는 경찰 간부 '박과장'은 마이사와 양사장을 불러 화해시킨다.
그 조건은 도회장과 북성파 조직원을 살해한 태구 하나를 없애는 것이다. 태구를 없애는 것은 마이사가 하되, 뒷처리는 양사장이 하는 것으로 세 사람은 합의한다. 이렇게 태구는 자신의 운명이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모른 채 제주도에 남아 있게 된다.
쿠토에게 무기를 사가던 지역 조직원들이 러시아 마피아와 직접 거래를 하겠다며 쿠토를 살해하자 재연과 태구가 이들을 전부 살해하고 농장을 떠난다. 이들은 이제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떠돌이가 되었는데, 평소 잘 알던 펜션하는 부부에게 펜션을 빌린다.
서울에서 양회장이 태구에게 전화해 자신도 쫓기는 몸이라 제주도로 내려오겠다고 말하고, 공항으로 마중나오라고 한다. 재연과 태구는 티격태격 하면서도 서로를 안쓰럽게 여긴다. 태구는 재연이 불치병으로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자신의 누나를 떠올린다. 그래서 재연이 맛있게 먹는 '물회'를 처음에는 먹지 못하지만, 재연과 함께 떠돌이가 되면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 '물회'를 맛있게 먹는다.
재연은 태구가 여느 깡패처럼 무식하고 멍청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태구의 눈빛에서 서늘하고 처연한 감정을 공감한다. 태구는 말하지 않았지만, 바로 얼마 전, 누나와 조카를 잃고, 삶의 희망이 사라진 태구의 눈빛은 제주의 바다만큼 짙고 푸르다.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애써 모른 척 한다. 그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두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사치라는 걸 알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심한 척 하는 두 사람의 마음은, 짧은 삶을 남겨둔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농장에서 재연을 인질로 잡은 마이사가 태구에게 전화해 '너 혼자만 죽으면 되잖아'라고 말한다. 태구는 재연과 조직의 동생 진성을 살리려고 마이사를 찾아간다. 그는 자기가 죽을 것임을 알고 있다. 다만, 재연 앞에서 죽게 된다는 것, 재연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간절하다. 재연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은 태구가 자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누나와 조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연은 이미 삼촌 쿠토로 인해 부모와 동생이 억울하게 살해당하지 않았던가.
마이사를 찾아 농장에 온 태구는 처음부터 죽도록 맞는다. 그런 태구에게 마이사는 누나와 조카를 죽인 놈이 누구인가를 말한다. 북성파 마이사는 태구를 죽이려고 태구의 누나와 조카를 죽일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도회장을 죽이려는 의도로 태구의 누나와 조카를 죽이고, 태구에게 도회장이 한 짓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태구의 두목 양사장이라고 말한다. 이때 옆에 있던 양사장도 그 말을 듣지만, 부인하지 않는 걸로 봐서 마이사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태구는 양사장을 죽이려 하지만, 마이사는 박과장과의 약속 때문에 양사장을 살리고 태구를 죽인다. 태구는 죽어가면서도 재연에게 농담을 건넨다. 두 사람만 아는 농담은 두 사람의 마음 깊은 곳으로 연결된다.
폭력조직에 몸담은 깡패 태구는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의외로 마음이 여리다. 재연과 만나면서 그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진다. 태구는 그동안 연애를 한 적이 없었을까. 아니, 마음을 울리는, 사랑의 감정으로 심장이 뛰는 그런 여성을 만난 적이 없었을까.
재연을 만나고 태구는 그런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시한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깨닫게 되고, 서로의 감정을 다치지 않도록 애쓴다. 재연도 평범한 여학생에서 권총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단단한 여성이 되지만, 그 과정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오히려 재연이 냉정한 킬러로의 면모를 보이는 것이 어땠을까. 그랬다면 마지막 장면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태구와 재연의 캐릭터는 잘 구축되었고, 배우 엄태구와 전여빈은 인물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느와르를 추구하고 있는 건 분명한데, 중간에 가끔 나오는 코믹한 대사는 느와르의 긴장을 풀고, 호흡을 쉬어갈 수 있는 여백이면서,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블랙코미디의 떠올리게 한다. 비극적 상황에서 오히려 농담을 할 수 있게 되는 부조리는 현실에서 종종 일어난다.
다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이 없는, 냉정하고 잔혹한 리얼리즘의 느와르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 잔혹하되 인물의 부조리를 드러낼 것인지는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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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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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스트 슬램덩크’ 200만 돌파 기념 전국 응원 상영회 개최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 ⓒ 네이버 영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관객들의 성원에 보답해 오는 11일부터 이틀간 전국 응원 상영회를 연다고 발표했습니다. 응원 상영회는 관객들이 상영관에서 각자 응원하는 팀과 선수의 응원 구호 등을 외치면서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경기를 직접 보는 것처럼 더 특별하고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관객 참여형 이벤트로, 예매 관객 전원에게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특별 응원봉이 증정되며. 별도의 응원 도구 지참이나 선수 유니폼 착용 등 자유로운 형태의 응원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김다미X전소니X변우석 ‘소울메이트' 3월 15일 개봉
'소울메이트' 포스터, ⓒ 네이버 영화
김다미, 전소니, 변우석 주연 영화인 '소울메이트'가 오는 3월 15일 개봉할 예정입니다. 영화는 첫 만남부터 서로를 알아본 두 친구 미소(김다미)와 하은(전소니), 그리고 진우(변우석)가 기쁨, 슬픔, 설렘, 그리움까지 모든 것을 함께 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2023 아카데미 기획전' 개최하는 CGV
'타르' 스틸컷, ⓒ 네이버 영화
CGV가 오는 2월 11일부터 3월 21일까지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른 17편 작품을 상영하는 '2023 아카데미 기획전'을 개최합니다. 기존 국내 상영 작품은 물론이고 'TAR 타르', '더 웨일' 등 국내 미개봉작도 포함돼 있어 후보작들을 궁금해하는 영화 팬들의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더 배트맨',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된 연대기', '바빌론',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아바타: 물의 길', '애프터썬', '엘비스',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 '탑건: 매버릭' 등 관객들에게 사랑받은 작품들도 다시 상영할 예정입니다.
부산 영화의 전당 '아키 카우리스마키 특별전' 개최
'죄와 벌' 스틸컷, ⓒ 네이버 영화
부산 영화의전당이 오는 19일까지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밝혔습니다. 1957년 핀란드에서 태어난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1983년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무대를 현대 헬싱키로 옮겨 재해석한 '죄와 벌'로 장편 데뷔하였으며, 이번 특별전에서는 '죄와 벌'을 비롯하여 '햄릿, 장사를 떠나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프롤레타리아트 3부작' 등 총 16편이 상영될 예정입니다.할리우드 배우 '멜린다 딜론' 별세
'매그놀리아'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캡틴 아메리카’ ‘사랑과 추억’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멜린다 딜론이 향년 83세로 별세했습니다. 멜린다 딜론은 1963년 드라마 ‘디펜더스’로 데뷔해 ‘크리스마스 스토리’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으며, 이후 '캡틴 아메리카’(1990), ‘사랑과 추억’(1992), ‘매그놀리아’(2000) 등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습니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세상의 끝까지 21일’이 고인의 유작이 되었습니다.
할리우드 퇴출 배우 아미해머 '성폭행 피해' 주장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 네이버 영화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세상을 바꾼 변호인’ 등으로 국내 팬들에게 익숙하며 식인과 불륜, 성폭행 의혹으로 할리우드에서 퇴출된 배우 아미 해머(Armie Hammer)가 어린시절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13살 때 청년 목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그 상황에서 무력했고 스스로 성적인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으며, 이어 그 일을 계기로 성적으로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관심사가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재 아미 해머는 파산한 상태로 영국령 케이먼 제도에 있는 리조트에서 콘도 세일즈 및 예약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화 '웅남이' 3월 개봉
'웅남이' 포스터, ⓒ 네이버 영화
단군 신화를 모티브로 한 코믹 액션 영화 '웅남이'가 3월 개봉됩니다. 영화는 반달곰이라는 특별한 ‘비밀’을 가진 사나이가 특유의 짐승 같은 능력으로 국제 범죄 조직에 대항하여 공조 수사를 하며 벌어지는 내용으로, '젠틀맨', '내안의 그놈', '신세계' 등 느와르부터 액션, 코미디까지 폭넓은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압도적인 장악력을 과시하는 박성웅의 1인 2역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박성웅은 곰에서 인간이 된 캐릭터로, 전직 경찰이자 지금은 동네 백수인 '웅남'과 국제 범죄 조직 2인자인 '웅북'을 동시에 연기합니다.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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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도, 그 존재만으로도 악당이 될 수 있다는 것.
고요한 밤이지만 절대 조용하지 않은 두 사람의 사이는 독특하고도 요란한 빛 사이에서 잔잔하게 입맞추며 이어진다. 같은 방향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교환과 메구는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내레이션이 들리며 실은 그렇지 않은 마음을 드러낸다. 이제 더 이상 교환을 사랑하지 않는 메꾸는 한때, 사랑했던 교환과 헤어지고 싶지만 여린 마음에 상처를 줄까 봐 어떻게 이별을 건넬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메구는 교환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헤어질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그는 교환의 옆에서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은 채,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메구의 옆에서 운전하고 있던 교환은 졸린지 껌을 찾다가 메구에게 있어서 헤어질 이유에 충분함을 가져다주는 행동을 저지르고 만다. 그렇게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교환과 이미 정리를 끝낸 메구는 끝까지 제대로 된 의미를 의지 있게 전달하지 않는다. 의지가 사라진 소통은 곧 단절로 이어져 해방의 축제가 되어 메구 안에서 펼쳐지고 이별이 시작 된다.
이별을 선언했음에도 계속해서 찾아오는 교환은 메구에게 있어서 ‘러브 빌런’ 같고 헤어질 구실을 만듦과 동시에 소통하지 않는 메구도 교환에게 있어서 ’러브 빌런‘같다. 그렇게 서로에게 러브 빌런이 되어버린 그들은 메구가 먼저 추억이 되었던 모든 것을 쏟아내고 그것을 또 제대로 듣지 못한 교환으로 인해 완전한 소통 단절을 끌어낸다. 소통 단절은 곧 이별이다. 그렇게 ‘사랑의 슈퍼맨’이었던 메구는 ‘러브 빌런’이 되었다. 빌런이 되어서도 예의를 지키는 그들의 번쩍이던 사랑이 3년간의 추억을 게워내며 빛을 잃은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춘다. 이 영화는 이옥섭 감독이 독특한 영상미로 인해 시선을 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됐을지 감히 예상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움직이는 도로 위와 멈춰져 있는 이 집 위에서 그려낸다. 상상을 현실로 펼쳐내는 이 빛의 흔적을 따라가다가 마주하는 두 사람의 추억이 곳곳에 펼쳐지고 끝끝내 돌아갈 수 없는 두 사람의 이별도 곳곳에 펼쳐진다. 이런 독특함은 이엑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더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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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보다 ‘과정’을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는 성장하면서 계속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또 도전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무척 애쓴다. 청소년 시절에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바로 시험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장 큰 목표인 수학능력시험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좋은 시험 결과를 얻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우리 교육 시스템 안에서 학교에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에 있겠지만 결국에는 좋은 시험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가장 클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고 또 시험을 보면서 누군가는 그 결과에 만족하고 또 한걸음 나아가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아 든다.
삶의 많은 것이 그 시험의 결과에 의해 좌우된다. 현실이 그렇다. 수능 시험의 결과에 따라갈 수 있는 학교가 정해지고, 학교가 정해지만 그곳에서 다시 또 다른 시험 준비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시 직장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의 삶 전체가 그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한 편으로는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저 알고 있는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그 ‘시험’이라는 것이 우리 전체 삶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숙학교에 다니는 수포자 지우의 이야기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학 시험 성적 때문에 고민하는 지우(김동휘)의 이야기를 담는다. 지우는 현재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다. 과거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은 어머니와 떨어져 살면서 최대한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모든 과목 중에서 수학이 그를 가로막는다. 수학 성적은 하위권이고, 그것 때문에 그의 담임 선생님(박병은)은 일반학교로 전학을 권유한다. 그때 지우는 학교의 경비원이면서 숨은 수학천재 학성(최민식)을 만난다.
영화 속 학성은 개인사에 비밀을 가지고 있다. 늘 딸기우유를 먹는 그는 어느 날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을 지우에게 들킨다. 그리고 수학을 가르쳐달라는 지우의 부탁을 결국 받아들인다. 이렇게 둘은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된다. 지우는 전형적으로 결과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반면에 학성은 과정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이렇게 두 인물을 대비시키면서 이들 간의 긴장감이 만들어진다. 이 모습은 일반적으로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교육 시스템과 그에 반하는 학성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 학성은 그저 과정에만 충실하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아니다. 학성이 말하는 과정은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밑바탕을 만드는 것이다. 수학이라는 학문은 정확한 결과를 내는 학문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결과를 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중요하다. 그 문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오는 도전정신과 희열감을 통해 숫자, 수식과 친해지는 과정이 있어야 원하는 결과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학성은 결과에만 집착하는 지우를 못마땅해하고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런 태도가 지우에게 일종의 도전정신을 심어준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천재 수학자 학성
이 영화의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담임 선생님 근호는 전형적인 나쁜 선생님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영화들에서 그동안 봐왔던 아주 전형적인 선생님의 모습이라서 좀 평면적으로 보이는 인물인데, 영화는 이 근호라는 인물을 이용해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까지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학성이 풀고 있는 방정식에서 결과를 중시하는 일종의 상수로 그려진다. 워낙 학성과 지우가 중심인물이 되다 보니 주변의 다른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근호와 같이 너무 평면적으로만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탈북자인 학성과 평범한 남한 학생 지우에게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영화는 그들 사이에 어떤 유사 부자의 감정을 넣었다. 아주 대표적인 장면이 둘이 앉아 된장찌개와 계란 프라이를 먹는 장면일 것이다. 밥 위에 계란을 얹어주는 학성의 모습과 그걸 받아서 맛있게 먹는 지우의 모습에서 그 둘이 현재 결핍된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영화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이 둘 사이에 만들어진 신뢰와 챙기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영화답게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좋은 결과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학성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은 <천문:하늘에 묻는다> 이후 오랜만에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힘을 뺀 연기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려주며 과거의 회한과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탈북 수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우 역을 맡은 배우 김동휘는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과 <피터팬의 꿈> 같은 영화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적이 있다. 이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는 자신이 피해를 입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밖으로 내지 않고 힘든 일을 안고 가려는 조금은 소심하고 체념적인 지우를 잘 표현해냈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최민식과 김동휘
영화를 연출한 박동훈 감독은 많은 작품을 연출하지는 않았다. <전쟁영화>라는 단편 영화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단편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 <소녀 x소녀>, <계몽영화> 같은 작은 영화들을 간간히 연출했었고, 가장 최근에 연출한 작품이 이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다. 이번 영화에서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학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을 올바른 과정 속으로 끌어당기는 건 결국 과정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깨어있는 어른의 목소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결국 결과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 그것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과정 역시 중요하다. 좋은 과정이 생략된 결과는 오래가지 못하고 머릿속에 남지 않고 증발되어 버린다. 영화 속 지우는 학성의 의도에 맞게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와 ‘희열’을 느낀다. 조금 느리지만 그가 원하는 시험 결과도 얻어낸다. 그 이후 그 학생과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건, 결국 어른들의 몫이다. 영화는 다소 극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수학’이라는 과목의 특성을 잘 활용하여 보는 관객들에게 과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현실에서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 그 사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다시 전달된다. 무엇보다 그 모든 전달 과정이 지우와 학성의 따뜻한 관계를 통해 전달되고 있어, 영화를 다 보고 난 관객들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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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상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의상, 패션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의상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를 추천 드리려고 합니다!
씨네랩이 추천하는 영화와 함께 눈이 즐거워지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의상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클루리스
Clueless, 1995
ⓒ IMDB
synopsis
베버리 힐스 고등학교의 셰어는 변호사인 아버지 밑에서 양오빠 조시와 함께 살고 있다.
물질적으로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는 셰어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해결하는 등 10대에 이미 삶의 패턴을 형성해가고 있다. 어른들이 보기에 아직 소녀인 셰어에게 세상은 어떻게 살아야 할 지가 너무나 단순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셰어는 토론 과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자 성적을 올리기 위해 친구 디온과 함께 독신인 홀 선생과 노처녀 가이스트 선생을 엮어 주고 좋은 점수를 받게 된다. 그 후 학교에는 타이라고 하는 소녀가 전학을 오는데 셰어는 촌스러운 친구 타이를 세련되게 바꾸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파티와 쇼핑에 데리고 다니며, 남자친구까지 소개시켜준다. 하지만 남자친구 문제로 타이와 싸우게 되면서 셰어는 세상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는데...
cine pick!
하이틴 영화이자 예쁜 의상으로 유명한 영화 <클루리스>.
돌고 도는 유행으로 현재 영화 속 의상을 따라 입기도 좋아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영화이다.
타이틀부터 엔딩 크레딧까지 빈티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2006
ⓒ 네이버 영화
synopsis
최고의 패션 매거진 런웨이에 기적 같이 입사했지만 화려한 세계가 낯설기만 한 앤드리아.
편집장 미란다의 비서로 일하며 칼 같은 질타와 불가능해보이는 미션에 고군분투한다.
cine pick!
패션 영화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패션 매거진 회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보니 굉장히 트렌디한 패션을 볼 수 있다.
상의원
The Royal Tailor, 2014
ⓒ 네이버 영화
synopsis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들던 상의원에서 펼쳐지는 조선최초 궁중의상극으로 아름다움을 향한 대결을 그린다.
cine pick!
궁중 의복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준 영화 <상의원>.
의상 제작비에만 10억원을 사용하고, 한복 제작에 동원된 전문가가 거의 50명에 달할 정도로
그 시대의 의상을 구현하기 위해 힘을 쓴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2019
ⓒ 네이버 영화
synopsis
저마다 다른 꿈을 지닌 마치 가문의 네 자매 메그, 조, 베스, 에이미는 이웃 로리와 시끌벅적하지만 따뜻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7년 후, 어른이 된 그들의 삶에는 각기 다른 숙제가 놓이게 된다.
cine pick!
제32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과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을 받은 영화 <작은 아씨들>.
개봉 당시, 고전 의상을 완벽하게 재해석하며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의상 안에 캐릭터의 성격도 엿볼 수 있어, 영화에서 또 다른 언어로 작용하기도 한다.
크루엘라
Cruella,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재능은 있지만 밑바닥 인생을 살던 ‘에스텔라’가 남작 부인을 만나 충격적 사건을 겪게 되면서
런던 패션계를 발칵 뒤집을 파격 아이콘 ‘크루엘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cine pick!
약 277벌의 의상 제작을 완벽하게 해내며 제 27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제 75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을 수상하는 결과를 이루게 되었다.
감탄만 나오는 의상과 퍼포먼스로 눈이 즐거운 영화이다.
하우스 오브 구찌
House of Gucci,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처음부터 사랑에 빠졌던 그 이름 구찌. 내 것이 될수록 더욱 갖고 싶었던 이름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었던 그 이름. 구찌를 갖기 위해 구찌를 죽이기로 했다.cine pick!
오스카 수상 의상 디자이너인 잔티 예이츠가 의상을 맡으며 구찌 패밀리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캐릭터들의 특징을 드러냄과 동시에 개성 넘치는 스타일로 화제를 모았다.
스펜서
SPENCER,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왕비가 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찾기로 결심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새로운 이야기
cine pick!
실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아이콘이었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코디를 완벽하게 재현한 영화 <스펜서>.
많은 양의 레퍼런스 자료를 찾으며 연구한 결과,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미장센과 의상으로 극찬을 받았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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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페서 앤 매드맨 영화 후기 / 멜 깁슨, 숀 펜 주연 / 대배우들의 연기대결 / 옥스포드 영어사전의 탄생비화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프로페서 앤 매드맨”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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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분노의 질주 : 라이드 오어 다이> 예고편
전 세계를 짜릿하게 만든 극강의 질주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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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프원> 1차 예고편
이번엔 카 레이싱이다! 두 드라이버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