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5-04-03 13:15:56
경쟁자를 제자로 둔 스승의 감정
- <승부>(2025)






가끔 인생에서 ‘보석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인연이 길든 짧든, 이 만남이 서로의 삶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는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어느새 그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때론 이 관계가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질 수도 있고, 그 경쟁의 자리가 때로는 스승과 제자의 구도로 나타날 수도 있다. 서로를 밀고 끌어주며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어느덧 ‘없으면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영화 <승부>는 실제 바둑계 전설 조훈현(이병헌)과 그의 제자 이창호(유아인)의 이야기를 담는다. 바둑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지만, 정작 둘 사이에 어떤 갈등과 감정의 교류가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영화는 이들이 단순한 ‘스승과 제자’를 넘어 ‘라이벌’이 되고, 결국 서로에게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가는 과정을 촘촘하게 펼쳐 보인다.
<승부>는 조훈현이 바둑 신동 이창호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신동이라 불릴 만큼 번득이는 실력을 지닌 이창호는 어린 시절부터 도전정신이 가득했고, 프로 기사들과 맞서는 일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국내 바둑 1인자를 굳건히 지키던 조훈현에게 계속 도전장을 내밀어, 끝내 그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이창호가 조훈현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기초부터 배우는 과정은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점차 두 사람의 스타일 차이와 승부욕이 드러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스승과 제자가 공식 대결에서 만나는 충격적 장면이 펼쳐지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흘러간다.
한편 영화는 단순히 ‘바둑 경기’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둑판 위에서의 사활만큼이나 치열하게 움직이는 스승과 제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다. 둘 사이에 형성된 끈끈한 인연이 경쟁 구도가 되면서 어떤 파문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감정을 어떻게 주고받는지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첫번째 감정] 제자 이창호의 미안함
어린 이창호는 무척 대담한 인물로 묘사된다. 바둑판 앞에서만큼은 자신감이 넘쳤고, 누구와 겨뤄도 결코 지지 않겠다는 강한 집착이 있었다. 바둑계 최강자였던 조훈현에게 거듭 도전한 끝에, 결국 제자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발랄하고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은 아이 같으면서도, 어딘가 기이한 집중력을 보여줘 관객에게 신동이라는 설정을 쉽게 납득시킨다.
조훈현의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 뒤, 이창호는 바둑의 이론과 전통을 배우면서도 특유의 반항적인 기질을 감추지 못한다. 스승은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바둑을 선호하지만, 이창호는 한 발 물러서서 전체 흐름을 관찰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바둑판 위에서는 정답이 없는 만큼, 두 사람의 대립은 ‘누가 옳다’라기보다 ‘누구의 방식이 더 강한가’로 귀결된다. 한 편으로 이창호는 이렇게 스승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게 옳은 걸까라는 내적 갈등을 겪는다.
처음 맞붙은 공식 대결에서 이창호는 스승에게 승리를 거두고, 이후 대회에서도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둔다. 이 순간부터 이창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감정에 사로잡힌다. 스승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프로 세계에서 이기고 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스승이라는 존재에게 패배를 안긴다는 점이 이창호에겐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승리할수록 커져가는 미안함, 그러나 동시에 승부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해지는 묘한 내면 충돌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두번째 감정] 스승 조훈현의 실망
조훈현은 처음에 이창호를 데려왔을 때, 분명 특출난 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의 적수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조훈현은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영민한 제자였기에, 누군가가 성장하는 속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이창호만큼 빠르게 스승의 자리를 위협할 줄은 몰랐다. 정작 자신의 삶과 바둑 철학을 전수해 주었는데, 제자는 아예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경쟁자로 거듭나는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창호의 바둑을 지켜보면서, 조훈현은 여러 차례 '그게 아니다, 이렇게 둬야 한다'며 짜증을 표출한다. 공격적이고 직선적인 스승의 성향은, 유연하고 변칙적인 제자의 기보와 부딪힌다. 그런데도 막상 성적이 좋으니, 단순히 틀렸다고 하기 어려운 현실에 부딪힌다. 결국 조훈현은 속으론 인정하면서도, 쉽사리 '내가 틀렸다'고 내뱉지 못한다. 제자를 100% 수용하기에는, 아직 자신이 현역으로 활약 중이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는다.
스승으로서 제자를 응원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경쟁자로서는 매번 패배를 맛보는 일이 고통스럽다. 제자가 강해지는 만큼 자신이 약해져 가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잇따른 패배 후에야 조훈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무너진다. 한때 최강이라 불렸던 자존심이 무너질 때 느끼는 허망함, 그리고 '내가 잘못된 길을 제자에게 가르쳤나?' 하는 후회가 그를 짓누른다. 이 영화는 그 실망의 순간들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며, 한때 최고의 선수였던 이의 내면에 깃드는 그림자를 애틋하게 보여준다.
[세번째 감정] 스승과 제자의 존중감
승부의 세계에선 언젠가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기도 한다. 바둑판 위에서 조훈현과 이창호의 관계 역시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렇지만 치열한 승부 뒤에 누가 이겼든,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실력을 존중한다는 본질적인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조훈현은 처음엔 불만과 실망을 표출하지만, 결국 이창호가 걸어온 독창적 길을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이창호 역시 스승의 옛 기록들을 되짚어 보며, 자신이 너무 빠르게 승리를 좇은 건 아닌지 반성하는 순간이 온다.
바둑판 위에서 마주 앉아 손가락 하나로 돌을 놓을 때, 그들이 느끼는 긴장과 흥분은 서로가 아니면 충족하기 어렵다. 결국 스승과 제자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유일한 동료가 된다.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기도 한 셈이다. 영화는 스승과 제자가 진심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지점이 어느 순간 찾아옴을 보여주는데, 그 순간의 성취감과 뭉클함은 대단히 크다.
끝내 조훈현과 이창호는 서로에게 '네가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하게 된다. 이기고 지는 문제를 떠나,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고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영화 <승부>는 승패보다 더 중요한 동반자로서의 자각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관객에게도 진정한 경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실화를 훌륭하게 각색해낸 영화
<승부>는 실제 있었던 조훈현-이창호의 바둑 역사를 바탕으로, 스승과 제자가 경쟁자로 변해가는 흥미로운 과정을 그려낸다. 바둑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주는 긴장과 성장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왜 둘은 한 판의 바둑에 그렇게 목숨을 거는지, 어떻게 제자가 스승의 자리를 위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은 어떤 것인지가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실제 조훈현과 이창호는 지금까지도 좋은 경쟁자로 서로를 인정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서로가 없었다면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며, 덕분에 한국 바둑계가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영화는 그런 실제 감정을 최대한 살려내, 경쟁의 긴장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동시에 보여준다.
연출은 차분하면서도 흡인력 있게 이어진다. 김형주 감독은 바둑판 위에 펼쳐지는 치열함을 디테일하게 포착하면서도,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바둑알이 놓이는 소리, 팽팽하게 얽힌 표정 등 작은 요소들도 극적 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이병헌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노련한 기사 조훈현 역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유아인은 이창호 특유의 무표정 속에 내재된 열정과 부담감을 표현해낸다. 최근 상황으로 인해 유아인의 연기를 당분간 보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이번 작품에서 보여주는 제자 역할은 참 매력적이다. 조연들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 영화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바둑이라는 소재 덕분에, 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층에게는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경쟁 세계를 보여준다. 바둑이든 어떤 게임이든, 인생을 관통하는 ‘승부’의 본질에 호기심이 있다면 이 영화를 꼭 보길 권한다. 마치 한 수 한 수 내딛는 모든 순간에, 인물들의 감정이 묻어나고, 결국엔 스승과 제자라는 틀 안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사랑하게 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승부>는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경쟁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끝내 서로를 깊이 존중하는 인연이 되어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담아낸 휴먼 드라마다. 바둑을 사랑하는 장년층 관객과 함께 관람하면 더욱 즐거울 것이며, “스승-제자” 관계가 빚어내는 미묘한 심리전과 진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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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율이 맞지 않는 시의 아름다움, <문라이즈 킹덤>
*영화추천*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감독: 웨스 앤더슨
운율이 맞지 않는 시의 아름다움, <문라이즈 킹덤>
출처: 영화 <문라이즈 킹덤> 스틸컷(네이버)
아이들은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어른들의 간섭에 벗어나기 위해선 그들과 같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그 욕망을 아이들이 가진 미성숙함이라 여긴다. 어른의 개입은 아이가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다. 자연스러운 욕망과 당연한 절차. 꽤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이와 어른이 각자의 입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대화를 회피하기 위해 만든 단순한 대답이다. 상대방에게 나의 입장을 선언하는 목적 말고는 아무 의미 없는 말로, 운율이 맞아 오히려 이해하기 힘든 시 같은 거다.
완벽한 사람이 완벽한 사랑을 하는, 그런 완벽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출처: 영화 <문라이즈 킹덤> 스틸컷(네이버)
<문라이즈 킹덤>엔 위와 같은 아이와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운율이 맞지 않는 시를 품고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목적에 따라 아이와 어른이란 두 역할로 나뉜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위험한 실수를 저지르고, 서로의 해결 과정을 지켜보며 자신을 기다리는 결말에 가까워진다. 그들은 점차 자기가 맡은 역할이 상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다른 길을 걷고 있으나 같은 풍경을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새 아이와 어른은 서로를 구분 지었던 장막을 없애고 ‘나’의 진심을 털어놓으며 예정되지 않은 선택을 한다.
영화는 세상과 우릴 아이와 어른, 감성과 이성, 솔직함과 거짓말 등으로 나누지 않는다. 빠르고 쉽게, 편리하게 분류하지 않는다. 열두 살 샘과 수지가 벌인 사랑의 도피를 섬 경찰과 수지의 부모, 카키 스카우트 대장, 사회복지국 직원이 개별적으로 겪는 사건과 같은 선상에 놓는다. 인물들은 감독이 구축한 독보적인 세계관(공간) 안에서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격돌한다. 운율이 맞지 않은 시들의 위험한 실수가 충돌할 때마다 이야기는 위트와 진솔함을 넘나들고, 결과적으로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신다.
출처: 영화 <문라이즈 킹덤> 스틸컷(네이버)
<문라이즈 킹덤>은 황홀하고 우아한 영상미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더 매력적인 건 인물들의 대사다. 이들의 대화 속엔 영화가 끊임없이 보여줬던 상징이나 명확한 의도가 없다. 독립적인 장치로서 사건을 이끌고, 정체된 인간관계를 변화시키면서 어느 순간 관객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한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함께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듯한 확신을 갖게 한다. 운율이 맞지 않는 시가 선사하는 아름다움이랄까.
출처: 영화 <문라이즈 킹덤> 스틸컷(네이버)
분명 비밀스럽고도 마법 같은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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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리뷰
켄 로치가 영화를 통해 전하는 미덕을 하나 꼽자면 바로 정직이 아닐까. 영화란 결국 각본에 의거한 허구이니 본디 있던 사건이라 할지라도 '살짝 비틀어' 손쉽게 관객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거나, 멜로드라마에 가까운 말랑한 요소를 가득 첨가하여 온갖 인기를 누려도 될 터인데 그는 언제나 각본의 기틀을 현실 위에 튼튼히 쌓는다. 그리고선 허상을 예리하게 벼려 관객의 마음을 후벼 판다. 그의 영화에는 대단한 시네마틱 수사가 가미되지 않곤 하지만, 나는 그가 일생을 던져 전하는 메시지가 여전히 푸르며, 흔들린 적이 없다는 사실에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그런 의미에서든 아니든, 잉글랜드인인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은 한국인인 내게 더더욱 특별하고도 놀랍다. 우리나라로 간단히 치환해 이야기하자면(굳이 ‘간단히’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역사적 갈등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인 감독이 한국 독립운동 역사를 그려낸 것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므로. 그래서일까. 켄 로치 역시 영국 내에서 반영주의자가 아니냐는 말을 꽤나(어쩌면 이골이 날 만큼일지도) 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감독의 대답은 그의 신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왜 내가 조국을 싫어한다고 말하는가?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내 고향과 영국인들과 정부를 싫어해야 한다는 말인가? 정부를 비판하는 건 민주주의의 의무다" (최을영, 2013).이런 외골수 감독이 그려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감상하고 나면 심경이 절로 복잡해진다. 그 까닭은 침묵하는 아름다운 대지와 피 흘리는 전쟁의 괴리에서도 일부 빚어지며, 아일랜드에 주둔하는 영국군의 야만적인 지배를 통해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인 데이미언과 테디(패드레익 딜레이니) 형제의 우애와 인생이 역사적 질곡에 빠지며 어떻게 변모하였는지를 목격하는 것, 외부적 조건으로 인해 치닫는 형제간의 파국을 통해 비극은 더욱 처절하고 절절해진다. 데이미언은 런던에서 의사로 지낼 수 있었던 삶을 접고 형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혁명가로 변모하며 형의 사살명령에 삶을 마감했고, 테디는 IRA (Irish Republican Army 아일랜드 공화군)을 이끄는 아일랜드의 영웅으로 시작하여, 자유국 육군 장교로 입지를 굳히나 동생을 자신의 손으로 처형해야만 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우리는 끝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투쟁인데, 왜 가족이, 연인이, 민족이 와해되어야 하나? 정녕 우리는 희생 없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도입부에선 적이 너무도 명확하다. 다름 아닌 영국군이다. 헐링을 하던 데이미언&테드 형제와 친구들의 인권은 순식간에 짓밟히고, 급작스레 수색당하며, 함께 게임을 즐긴 열일곱 살 미하일(로렌스 베리)은 자신의 이름을 게일어로 댔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초반의 데이미언은 그럼에도 영국 런던으로 향하고자 하는데, 아마 미하일이 영국군의 요구대로 이름을 게일어가 아니라 영어로 발음했다면 살 방편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데이미언은 곧 그러한 생生의 연장은 결국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차역에서 목격한다. 무기를 소지한 잉글랜드 군인은 기차에 탈 수 없다는 규칙을 말하는 무고한 기관사가 끔찍하게 구타당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인이 원하는 것은 생존이 아니라 삶이라는 깨달음은 의사 데이미언의 발걸음을 돌려놓는다.
그러하므로 데이미언이 지향하는 아일랜드는 처음부터 사람을 살리기 위한 장소여야 했다. 영국군을 몰아내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네이드(올라 피츠제럴드)가 외쳤듯 내 삶을 살 수 있는 터전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데이미언의 지향점이 더욱 명확하게 피어나는 장면은 그가 오랜 친구인 크리스(존 크린)를 밀고자라는 이유로 사살해야 했던 씬이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는 말에 따라 데이미언은 크리스를 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배운 지식으로 동포를, 그것도 피를 나눈 형제처럼 친했던 이를 죽여야만 한다. 데이미언이 지닌 의사라는 속성과 상극인 이 선택은 짙은 그림자가 되어 그를 끝까지 따라다닌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는 거대한 대전제가 짓밟은 친구의 대안적 인생을 떠올리는 행위는 데이미언이 테드와 달리 태생적으로 군인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고민이자 질문이다. 잠시 발을 헛디뎠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를 죽여야 하는 상황은 과연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세계일까? 데이미언은 동의하지 않는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에게, 아일랜드는 이제 크리스를 희생했을 만큼 가치 있는 곳이 되어야만 한다.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IRA는 부당한 고리대금업자에게 투자를 받지 않으면 이길 방법이 없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기아상태다. 아일랜드는 전쟁을 이어갈 체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기실,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영국에게도 1920년대의 상황은 그야말로 치킨게임이었다. 양국 모두에게 휴전이 절실했다. 양측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전 협정이 체결되는데, 문제는 협정 내용에서 비롯된다. 무수한 희생이 뒤따랐건만 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령으로 남아야 했고 분단이 이뤄져야만 한다니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이 내용은 납득하기 어렵기만 하다.
테디와 데이미언의 행보는 여기에서 갈라진다. 어쨌든 영국군이 머물지 않게 된 자유령을 수호하며 차근차근 완전한 독립을 이뤄낼 것인가, 혹은 협정을 인정하지 않고 완전한 독립을 이뤄낼 때까지 투쟁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각기 달랐던 탓이다. 형인 테디는 전자를, 동생인 데이미언은 후자를 선택한다. 영화가 데이미언의 시각을 주로 쫓아가기에 언뜻 테디의 선택이 그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질적으로 전쟁을 이어가기엔 아일랜드 역시 너무도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테디가 데이미언을 이상주의자라 비난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다만, 테디의 편에 서지 않은 데이미언이 현실적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어떤 면에선 옳을지도 모른다. 일단 자유를 얻는다면 지쳐있는 사람들은 일시적인 평화에 젖어, 추구해야 하는 이상과 혁명을 잊기 쉽다. 또한 실질적인 독립이 아닌 만큼 언제 영국이 돌변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부분을 외면하고 어쨌든 완전한 독립이 훗날 분명 가능하리라 말하는 테디의 꿈이 과연 데이미언의 것보다 곱절은 더 현실적인가(2021 현재 북아일랜드가 여전히 영국의 구성국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더더욱)?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1920년대 아일랜드 내전은 이미 지나간 역사다. 또한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식민지배와 저항, 내전의 비극이 동일하게 반복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를 그저 픽션으로만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다기엔 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 시네이드의 목소리가 사무치게 남는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념이라는 이름 하에 지구 상에서 자행되는 여러 종류의 집단적 폭력이 개인의 상상력을 어처구니없을 만큼 쉽게 넘어서는 경우가 잦다는 것을. 그러하므로 아일랜드 내전과 동일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지언정 유사한 사건은 무수히 많을 것이고, 영화의 메시지는 시대를 뛰어넘어 유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소한 관객인 우리만큼은 앞으로 이러한 형제의 비극을 반복해선 안된다는 울림, 이러한 비극이 시작되지 않도록 처음부터 정의로운 평화를 수호하고 추구해야 한다는 담담한 목소리 말이다.
그렇기에 켄 로치의 힘은 영화 후에 더욱 극적으로 발휘되는 것만 같다. 아마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감상한 관객이라면 형제의 비극을 멈출 수 있었을 법한 지점을 찾기 위해 저도 모르게 영화를 거슬러 올라갈 테니까. 상대방에게 이분법적인 꼬리표를 붙이고 배격하는 장소가 아니라, 궁극적인 지향점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장소와 충분한 시간이 있었더라면 형제의 반목(확장하여 아일랜드 민족 간의 내전)은 최소화할 수 있었으리라는 가정을 한 번쯤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깨달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을 내가 얼마나 납작하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어쩌면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암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 독립을 위해 투쟁한 열사들이 이 정도의 대한민국에 과연 만족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의 말마따나 태어나려는 자는 언제나 (기존의) 세계를 깨뜨려야 하고, 이러한 부류의 투쟁은 언제나 지난하고 고단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대한 청사진을 거듭 그려야 한다. 온 세상의 비극을 막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나 우리 주위의 비극을 최소화하는 데에 일조할 순 있을 테니.지치는가? 항상은 아니어도 좋으니 쉬엄쉬엄 힘을 내어 걸어가자. 도움은 되지 않겠다만 나는 내가 대단히 낙관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장기적 관점으론 언제나 긍정적이었다는 말을 덧붙여본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뤄온 많은 발전도 이미 믿을 수 없는 성과가 아니었는가? 예술이 우리를 응원하는 한, 우리의 꿈은 언제나 무한할 것이고, 우리를 추동하는 동력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발굴해낼 것이다. 결국엔.
★★★★★
* 참고문헌
최을영 (2013). 켄 로치 :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싸우는 사회주의 영화 작가. 인물과사상, 6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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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영화 Just the Two of Us 조이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영화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며 극이 진행되는 뮤지컬 영화는 보고 있노라면 흥겹고 즐거운데요.
마음 안에서 노래가 울려 퍼진지 오래된 이들에게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장르 중 하나일 수도 있겠어요.
그동안 뮤지컬 음악을 싫어한다고 여겨왔던 올리비아였지만, 최근 들어 '드림 걸즈'를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떠오르며 '사운드 오브 뮤직', '헤어 스프레이', '시카고', '레미제라블' 등을 재미있게 보았던 일들이 상기되었습니다.
오늘 포스팅 해드리는 '조이의 특별한 크리스마스'는 성탄절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으나, 배우들이 부르는 곡들은 크리스마스와는 무관한 노래들도 섞여 있답니다.
영화배우와 영화배우 겸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들은 영화 스토리를 대변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 조이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
개봉 - 2021년
국가 - 미국
관람등급 - 12세 이상
장르 - 코미디, 뮤지컬, 드라마, 판타지
러닝타임 - 99분
줄거리
어느 날 어떠한 사고로 인해 주인공 조이는 다른 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영화 '왓 위민 원트'에서는 상대방의 마음 자체를 텍스트처럼 읽을 수 있었다면, 조이에서는 노래로 표현됩니다.
그러한 능력은 조이에게 있어 상대방의 마음속 어려움과 고통까지도 알게 되어 독심술 같은 이 능력이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대부분은 조이가 듣고 있는 상대방의 마음이나 그녀의 마음을 음악으로 나타내기에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혹은 음악과 함께하는 연말연시 행사에 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녀는 작년에 하늘나라로 간 아버지를 대신해 늘 가족이 함께 해 오던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합니다.
좌충우돌 여러 어려움들은 있었지만, 더 이상 과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는 조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영화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했던 가족의 모든 크리스마스가 행복하고 마냥 좋기만 했던 것으로 추억하지만, 사실 그들은 서로 다투기도 하고 불완전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떠한 과거의 기억들은 늘 좋았던 것만 있었던 것 같지만, 막상 그때로 돌아가 보면 그 때 나름의 힘듦이 있었음을 깨닫곤 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공감이 되더군요.
'제인 레비'와 '알렉스 뉴웰' 배우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99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으로 몰입을 할 만큼의 작품성 있는 영화는 아니라 보아 지지만, 가족의 소중함과 어느 누구나 힘든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마치 오래된 친구가 내 곁에서 자신의 삶의 한 부분을 나눠주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합니다.
Just the Two of Us 단지 우리 둘만이
크리스마스 날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어 하는 조이에게 남자친구는 'Just the Two of Us'를 열창하며 그녀와 단둘이 보내고 싶다고 합니다. 영화 내에서 단연 돋보였던 음악 중 하나라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이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이 노래는 R&B 가수 '빌 위더스 (Bill Withers)' 씨가 1982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그는 가스펠과 퓨전 재즈에 기반을 둔 탁월한 음악성을 통해 많은 흑인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을 해소시켜 주었고, 소울풀한 창법은 백인계 팝팬들에게도 인기를 얻었습니다.
< 가사 >
수정 같은 빗줄기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네
그 아름다움은 태양이 그 빗방울들을 통해 투명하게 빛날 때이지
내 마음에 무지개를 띄우면서
때때로 너를 생각할 때면 나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네
단지 우리 둘만이
우리가 노력한다면 할 수 있다네
단지 우리 둘이서
단지 우리 둘이서
단지 우리 둘이서
하늘에다 성을 지을 수 있다네
단지 우리 둘이서만
-
- 절벽 끝에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몇 년 전, 친구와 미국 서부 자동차 여행을 했다. 샌프란에서 출발해 LA를 찍고 샌디에이고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LA로 올라오는, 나름의 모험이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몇 번을 왕복할 정도의 거리를 달리면서 온갖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했고, 미국이란 땅이 낯선 나를 위해 유학 중인 친구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소개해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흔한 미국 사람이 홈리스가 되는 시나리오'가 기억에 남는다. 친구에 따르면 미국 서민들의 경우 차를 한번 수리하는 비용과 인건비가 원체 비싸기 때문에 차 유리창이 깨져도 신문지로 붙이고 다니기도 한다. 도심 외곽에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어느 날 차가 완전히 고장 나기라도 하면, 수중에 단돈 몇 천 달러가 없어서 수리비를 변통하지 못한다.(렌트와 보험비를 포함한 기본 생활비가 비싸기 때문에 수중에 현금이 많이 없다고 한다. 저축이란 개념도 약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차를 타고 직장에 가지 못 하여 직장에 잘린다. 직장에서 잘리면 렌트와 보험을 내지 못하고, 그러다 어처구니없게도 홈리스로 전락한다.
샌프란 도심 거리에 보이는 홈리스들은 거리에서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있었는데 실은 파트타임 일을 몇 개씩 뛴다고 한다. 이들은 차가 없기 때문에 다운타운을 떠나지 못하고 슬럼을 형성한다. 미국인에게는 마치 신발과도 같은 자동차가 없다는 것은 일자리의 선택 범위를 확연히 좁히면서, 삶의 방식까지도 제한한다. <노매드랜드>를 보았다면,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과 위와 같은 홈리스들이 질적으로 어떤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물을 수 있다. 펀이 자처한 유목민 생활은 도심의 홈리스의 삶보다도 더 척박하고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그녀는 의도치 않게 동정 어린 눈길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마주친 옛 학생 앞에서 펀은 자신이 홈리스(homeless)가 아니라 엄연한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 선포한다. 홈은 곧 하우스라는 공식에 들어맞지 않을 뿐, 그녀는 홈리스와 다르게 기동력과 안식처를 동시에 쟁취했다고 청중을 설득하고자 한다. 후반부에 카센터에서 구제불능이 된 고물 밴을 집이자 안식처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그녀의 주장에 진정으로 동조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펀은 마치 60년대 히피 라이프를 시대착오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 유아적이라는 인상마저 주기에 이른다. 이러한 세간의 오해를 뒤로하고 그녀의 여정은 계속된다.
현대인의 끝나지 않는 노동이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고들 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중산층에게는 소박하게는 집 한 채 마련, 궁극적으론 경제적 자유가 최종 목표라고도 한다. 그러나 2008년 서브프라임이 촉발한 금융위기부터 지금의 Covid-19까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그 10년 간 경제적으로 낙오한 이탈자들 뿐 아니라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입한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이 '소박했던' 바람은 신기루 같은 꿈이 되어가고 있다. 현실 앞에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떠도는 주체로 남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한 삶을 실제로 실천하고 사투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음을 영화는 증명한다.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생활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이 마치 구석기시대로 회귀한 듯한 생활 풍경을 묘사한다. 이들은 수렵과 채집을 하듯 아마존 물류센터, 캠핑장, 고속도로 식당에서 단기 일자리를 구하며 동굴에 몸을 누이듯 밴 안에 몸을 누인다. 특히 영화는 실제 노매드인 린다 메이, 스웽키, 데이브와의 우정을 통해 이들의 다공성(porous)이면서도 쉽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노매드 식의 연대에 주목한다. 구석기인들처럼 이들은 서로 평등하고 계급을 의식하지 않으며 식량과 불을 나눈다. 또한 필요 없는 물건은 서로 교환하거나 나누고, 노동의 품앗이를 한다. 불을 지피는 모습, 공룡, 화석, 먼 별빛 등 태곳적을 상징하는 고고학적인 소재들이 도처에 등장한다.
방법론에 대하여
본 영화는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 저, <노매드랜드 : 21세기에 미국에서 살아남기>라는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하였으며 주인공 펀과 데이브를 제외한 일군의 조연 역으로 실제 노매드의 삶을 살고 있는 인물들이 자신의 삶을 연기하도록 하였다. 어딘가 익숙한 이 작법은 다름 아닌 TV 다큐멘터리의 DNA를 가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법과 닮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마침 최근에 그의 20년간의 영화 자서전을 읽을 기회가 있어서 이 감독의 작업 방식과,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데뷔작 <환상의 빛>에서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국적이고 동양적 가치관을 읽어내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서 그는 적잖이 당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부러 무관한 정서의 작품을 찍고자 하였으며 마치 재즈에 비유할 수 있는 TV의 즉흥적인 성격을 가진 비연극적인 작품을 찍고자 한 것이 바로 <원더풀 라이프>이다. 그는 <원더풀 라이프>의 방법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나 픽션이라는 식으로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해석하며,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배우든 일반인이든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규칙을 정한 것입니다.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허문 장르 안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직접 연기하는 인물들의 자기표현 욕구가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것이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놀라운 화학작용을 발견한다. 이로써 인터뷰는 기억의 재현이 아니라 표현의 생성 과정이 된다.
<노매드랜드> 역시 픽션과 다큐가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지점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를 두고 '픽션에 다큐멘터리식 터치가 들어갔다'거나, '페이크 다큐'라고 단순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 그의 영화에 다큐식 터치가 가미되었다는 평가에 억울하다고 반응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들을 다큐식 촬영을 단순 차용하여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여긴다). 그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은 자오의 섬세한 연출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카메라는 광활한 대자연과 그 안에서 늙고 풍화되어 가는 인물들을 자연주의적이면서도 애정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말하자면 극적이거나 작위적인 연출을 지양하는 대신, 대상이 스스로를 자연스레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을 애정과 시간을 들여 지켜보고자 한다. 특히 현실 고발의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여 한 생태계를 파괴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감독은 노매드의 삶에 미묘하고도 아주 깊숙이 그러나 그들의 존엄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침투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카메라의 존재와 배우의 존재는, 노매드들이 스스로의 삶을 인식하는 태도에도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노매드인 출연진들도 이제 카메라 앞의 배우처럼 자기 삶에 대한 표현 욕구를 드러낸다. 그때 우리는 이들만이 가진 긍지, 강인함, 존재론적 고독을 발견한다.
펀 역을 맡은 프랜시스 맥도먼드 또한 본인이 연기를 한다는 사실, 스스로가 배우라는 사실조차 잊고 5개월의 긴 여정 동안 순전히 펀이라는 인물로 살아간다. 맥도먼드는 실제로 아마존에 이력서를 내고 취업도 하고, 밥 웰스가 설립한 RTR(Rubber Tramp Rendezvous)에 머무는 노매드들과 교류를 하며 함께 생활한다. 그동안 누구도 그녀를 유명 여배우라고 의심해본 적 없을 만큼, 맥도먼드는 생활 연기에 녹아들어 완벽하게 한 캐릭터를 체화할 수 있었다. 이 성실하기 그지없는 배우는 나중에 펀이라는 인물의 핵심 코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터뷰한다(링크). RTR에 처음 입성했을 때 펀은 처음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역할만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밥 웰스와 일대일로 대면할 때 자신의 이야기(실은 픽션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두 사람의 독대 장면은 후반부에 한번 더 반복되는데, 맥도먼드 배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순수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밥 웰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그 장면이 끝나고 배우라는 사실을 털어놓고 말았다고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가 타인의 삶을 대하는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는 완전히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일 수 없으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감독이나 제작자의 생각을 투영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감독은 배우 양쪽에게 정보의 불균형을 주고 돌발적인 지시를 내린다든가 하는 '조작'과 테크닉을 통해 즉흥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밥 웰스가 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상실에 대해 고백하는 장면은, 펀이라는 같은 처지의 청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토로이자 고백이었다. 이 장면은 밥 웰스를 외부인으로서 관찰하면서 얻어내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사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배우였고 그녀의 남편도 멀쩡히 살아있다 한들, 그가 드러낸 진실된 감정은 결코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영화은 이런 진귀한 장면을 포착, 발굴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맥도먼드가 자신의 정체를 공개해버리고 용서를 구한다. 그 순간 아주 밀도 있게 형성된 특별한 관계는 다음 국면을 맞이한다. 이 영화는 배우와 카메라를 통해 실존하는 인물들의 삶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다가가려고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성숙한 태도를 취한다.
애도를 마치고 나면
이제 비로소 펀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2008년 경기침체로 미국 엠파이어의 석고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마을은 폐허가 되고 만다. 사랑하는 남편 '보'마저 병으로 떠나보내자, 펀은 집을 청산하고 밴 한대를 몰고서 노매드의 생활을 시작한다(영어로는 hit the road라고 표현하는데 모든걸 박차고 길 위로 떠나는 이미지가 상기된다). 이 유랑길은 1) 생존을 위한, 2) 도피를 위한, 그리고 3) 애도를 위한 유랑이다. 먼저 1) 생존이란, 삶의 터전을 잃은 이가 때때로 자신에게 떨어지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수렵/채집하는 과정이다. 초반에 비치는 아마존 물류 시스템의 부감은 왠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주인공이 저 18세기의 낭만적인 방랑객이 아니라 21세기 자본주의 시스템의 변방을 떠날 수 없는 취약계층 노동자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장면이다. 다음으로 2) 도피는, 상실로부터의 도피이다. 펀은 늘 새로운 시도나 친구들의 초대를 거절하는 습성이 있다. 펀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모든 옛 기억들을 자신의 밴에 차곡차곡 쌓아서 들고 다닌다. 그리고 데이브가 이를 훼손했을 때 노여워하고 심지어 다시 접착제로 붙이기도 한다.
이런 회피형 인물이, 의도치 않게 다른 노매드들과 스치고 대자연의 존재를 마주하며 하나둘씩 상처를 씻어내려가게 된다. 그녀는 한시적인 일을 하면서 유독 오물을 치우거나 얼룩을 닦는 일을 많이 한다. 샤워를 하는 뒷모습에서 검은 물이 씻겨내리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즉, 펀은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씻고 정화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주어진 애도의 과업을 완수해가게 되는데,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 영화를 노년의 성장 영화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서사는, 무언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떠났다가 깨닫고 돌아오는 서사인가?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돌아오기 위한 떠남이 아니라 떠남을 위한 떠남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해보인다. 첫번째에는 도망치고 잊기 위해, 두번째에는 기억하고 되찾기 위한 떠남이다. 예컨대 펀에게는 몇번 정착할 기회가 주어진다. 사실 주변에는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안전망이 있다. 데이브와 언니 부부의 존재가 그러한데, 이들은 펀이 도피와 애도의 순례를 끝마쳤을 때 노매드의 삶을 버리고 정착하게 될 것인지를 다시한번 자문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로드무비의 여정이 반지처럼 한 번의 원을 그렸을 때, 그녀를 추동하는 힘은 생존을 위한 갈구도, 과거로부터의 도피도, 상실한 자의 애도도 아닌 태생적인 자유로움과 독립심, 강인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녀는 프레임 바깥으로 사라지며, 망자의 시선으로부터 끝내 자유로워진다.
스웽키가 마침내 알래스카에 도착하여 보내온 영상에서 제비들은 알을 깨고 나온 껍질을 물가에 떨구고 어디론가 한없이 떠돈다. 겉으로 보기에 목적이 없는 어지러운 비행일 지라도 자연의 순리 안에서 이들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비상하고 있는 것일 테다. 이처럼 스스로의 방랑에서 각자 그 목적을 찾아내는 것이 노매드들이 거쳐야 할 통과 의례이자 숙명일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해석을 차치하더라도, 거대한 자연의 풍광과 목격한 자의 내면의 풍경을 2.39:1의 웅장한 시네마스코프 안에 담아내는 데 성공하였는데, 과연 테렌스 멀릭 스쿨이라고 자처할만하였다. 또 한편으로 감독은 노매드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지 않는 균형을 잡기 위하여, 평범한 가정의 일상 안에서도 생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려 한다. 펀이 데이브의 집에 초대받아서 데이브 손자를 어색하게 안고 있다가 잠든 아기의 손을 쥐어보는 장면은, 거대한 나무와 자라나는 여린 잎을 보듯이 자연을 바라볼 때와 같은 순일한 감정을 자아낸다.
마치며
이 글의 서두는 홈리스가 되는 취약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길 위를 달리고 대자연의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들의 시선은 점차 미국 사회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부터 대자연 그 자체, 자연 앞의 나의 미약한 존재에 대한 감각으로 옮겨갔다. (<노매드랜드>도 이러한 순차를 따르고 있다) 우리가 샌디에이고에 도착했을 때 꽤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험해보이는 절벽임에도 어떠한 보호막도 쳐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안내 간판에는 <접근하지 마시오, 바다사자 어미가 갓 낳은 새끼들을 떠날 수 있음>이라고 적혀있었다. 인간에게 추락할 수 있다, 위험하다고 경고하기는 커녕, 너의 위험은 내 알 바 아니고 생태 환경을 위해 접근하지 말라는 말이 미국 특유의 자유주의적인 사고라고 생각되었다. 노매드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이를 닮아있다. 야생에 맨몸으로 뛰어든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 상황이 얼마나 위험할지를 스스로 가늠하고 판단하면서 더듬거리며 길을 나아간다. 스페어타이어도 없이 서부를 횡단하는 펀에게 선배 스웽키가 조언해주듯이, 이들은 사회적 보호막에 의지하는 대신 절벽에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외침과 손길을 의지한다.
우리의 자동차 여행은 사실 험난했다. 하루 50불짜리 에어비앤비 숙소는 형편없었고 위험한 다운타운 동네의 안 좋은 집을 예약하여 숙소를 옮긴 적도 있었다. 그때 든 생각은 자동차로 미 서부를 횡단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절대 못하겠단 생각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늘 떠나기를 고대하고 있지만, 그만큼 정주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고 제대로 잘 정착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살기도 했던 것 같다. 영화 전반부에 노매드들이 무모하고 고집스럽단 인상마저 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 판단을 진정으로 거둘 수 있었다. 제비들이 알을 깨고 날아다니는 데에는 어떤 말과 해석도 필요 없듯이, 자연에서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풍화하는 삶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그동안 나름 여러 대륙의 대자연들을 찾아다니면서 눈물이 흐를 만큼 위엄있는 그 풍경들이 여행자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장면들은 강하게 뇌리에 박혀 때때로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지금 내 삶에 작용하고 있다. 어쩌면 <노매드랜드>도 그런 영화가 될 것만 같다.
2018년 겨울, 몬테레이 베이의 석양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자서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지수 옮김 pp. 32-45
이미지 출처
https://www.vogue.com/article/oscar-predictions-2021https://tonebenderspodcast.com/159-nomadland-with-sergio-diaz-and-zach-seivers/
https://edition.cnn.com/style/article/nomadland-film-making-of-spc-intl/index.html
https://i.pinimg.com/originals/1c/77/90/1c779035984fbca2c3080c4e93fb8490.jpg
https://www.imdb.com/title/tt9770150/mediaindex/?ref_=tt_mv_sm2021년 4월 26일 감상 / 2021년 4월 28일 씀
* 본 콘텐츠는 브런치 karenine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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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최고의 영화 TOP10
베니티 페어(Vanity Fair)는 미국의 연예정보 월간지로, 지난 2020년 1월 봉준호 감독이 커버를 장식하며 화제를 모은 잡지인데요. 1995년 이후, 세계적인 포토그래퍼인 애니 리버비츠 작가가 찍은 할리우드 스타들을 커버로 쓰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 잡지입니다.
베니티 페어에선 매년 말, '올해 최고의 영화 TOP10'을 발표해왔는데요. 해외 유력 매체인 만큼, 이 리스트는 오스카 시상과 비슷한 결을 보이기도 합니다. 일례로 2020년도 리스트에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과연, 올해는 어떤 작품들이 선정되었으며, 국내에는 언제 소개될 수 있을지 함께 확인해볼까요?
잇츠 CINE PICK!!
10. <베르히만 아일랜드> (Bergman Island)
멜로/로맨스 | 프랑스, 스웨덴, 벨기에, 독일 | 105분
감독 : 미아 한센-러브 | 출연 : 비키 크립스, 미아 와시코브스카, 팀 로스
? IMDb 6.7/10 ? Tomatometer 86%
? 제74회 칸 영화제(2021) 황금종려상 경쟁후보작
개봉 : 2022.01 예정
어떤 여름. 전설적인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이 거주하면서 수많은 걸작을 만들었던 스웨덴의 작은 섬 파뢰에 한 미국인 커플이 도착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감독인 크리스와 토니는 여름휴가 동안 이 평화로운 섬에서 각자 새 시나리오를 집필할 계획이다.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팬들에 따르면 <결혼의 풍경>(1973)의 영향으로 실제 많은 부부가 이혼을 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촬영지인 파뢰섬에서 부부가 함게 창작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야생의 풍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크리스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관객의 눈앞에 생생하게 재현되고, 현실과 허구의 인물이 뒤섞이면서 영화는 또 다른 차원으로 도약한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9. <그린 나이트> (The Green Knight)
모험, 드라마, 판타지 | 아일랜드, 캐나다, 미국, 영국 | 130분
감독 : 데이빗 로워리 | 출연 : 데브 파텔, 알리시아 비칸데르, 조엘 에저튼
? IMDb 6.6/10 ? Tomatometer 89%
? 2021년 한국 평론가 투표 1위
개봉 : 2021.08.05 (한국)
"녹색 기사의 목을 잘라 명예를 지켜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타난 녹색 기사,
"가장 용맹한 자, 나의 목을 내리치면 명예와 재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1년 후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똑같이 자신의 도끼날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고
마침내 1년후, 5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전설이 될 새로운 모험, 너의 목에 명예를 걸어라!
8. <매스> (Mass)
드라마 | 미국| 111분
감독 : 프란 크랜즈 | 출연 : 제이슨 아이삭스, 앤 도드, 마샤 플림튼, 리드 버니
? IMDb 8/10 ? Tomatometer 95%
?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2021) 플래시 포워드상 수상
총격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부모와 사건 가해자의 부모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만나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 그리고 화해까지, 그들의 짧지만 강렬한 대화를 통해 비극적인 과거를 가슴 아프게 그려낸 이 작품은 미국 배우 출신 프란 크랜즈의 데뷔작이다.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충격적인 주제와 배우들의 환상적인 연기로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특히 피해자와 가해자의 부모들을 연기한 네 배우 모두 아카데미 배우상 후보감으로 손색이 없다 할 정도로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든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올해의 화제작.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7. <더 휴먼스> (The Humans)
드라마 | 미국| 108분
감독 : 스티븐 카람 | 출연 : 스티븐 연, 비니 펠드스타인, 에이미 슈머
? IMDb 6.2/10 ? Tomatometer 92%
? 토니상 4관왕의 연극을 각색한 작품, A24 신작
전쟁 전, 맨하탄 시내의 복층 주택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영화는 블레이크 가족이 추수감사절을 기념하기 위해 모이는 저녁의 과정을 따라간다. 무너진 건물 바깥에 어둠이 내리자, 밤새 신비로운 것들이 부딪치기 시작하고 가족의 긴장감은 고조된다.
6. <수베니어 파트 II> The Souvenir Part II
드라마, 멜로/로맨스 | 영국| 107분
감독 : 조안나 호그 | 출연 : 오너 바이언, 로버트 패틴슨, 찰리 히턴, 틸다 스윈튼
? IMDb 7.8/10 ? Tomatometer 94%
? 영국 독립영화상 3관왕 수상, 칸영화제 감독주간 초청
불투명하기만 했던 앤소니와의 관계에서 헤어나지 못한 줄리는 그를 잊기 위해 다시 학교 프로젝트에 매진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경험했던 앤소니와의 과거를 토대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지만, 그 둘의 범상치 않았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스텝과 배우들 때문에 난항을 겪기 시작한다. 전작 <수베니어: 파트 I>이 앤소니와 줄리와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후속작인 <수베니어: 파트 II>에선 줄리의 험난한 제작과정에 비중을 둔다.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했던 한 젊은 여성의 삶을 솔직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전작 <수베니어: 파트 I>에 못지않은 찬사를 받았다. 줄리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틸다 스윈튼을 비롯해 모든 캐스트의 환상적인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5. <나의 집은 어디인가> (Flee)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가족 | 덴마크,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 90분
감독 :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 출연 : 라시드 아이투가노프, 베로즈 비그델리
? IMDb 8.2/10 ? Tomatometer 98%
?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심사위원대상
감독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은 10대 중반 아프간 난민 출신의 아민을 처음 만났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친구의 탈출 뒤에 숨겨진 진실을 듣고, 그가 고향을 떠나 덴마크에 홀로 정착하기까지의 여정을 아름다운 애니메이션과 아카이브 영상으로 재구성했다. 영화는 주인공이 자신과 가족을 부인하는 인고의 세월을 지나, 마침내 스스로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그린다. 특히 아민이 처음으로 클럽에 들어서는 순간은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커밍 홈' 장면이 될 것이다. 아리 폴만의 <바시르와 왈츠를>(2008)을 기억하고 있다면, 영화가 지닌 힐링의 힘을 믿고 싶다면, 혹은 그저 누군가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경험이 있었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수작이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박가언 프로그래머]
4. <컴온 컴온> (C'mon C'mon)
드라마 | 미국 | 108분
감독 : 마이크 밀스 | 출연 : 호아킨 피닉스, 가비 호프먼, 우디 노만
? IMDb 8.1/10 ? Tomatometer 96%
? 2021년 에너가카메리마쥬 시상식 2관왕. A24 신작
개봉 : 2022년 봄 예정
주인공의 여동생이 자신의 아들을 돌봐달라고 하자, 라디오 기자인 그는 그의 활기찬 조카에게 로스앤젤레스와는 다른 삶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대륙횡단 여행에 나선다.
3. <파워 오브 도그> (The Power of the Dog)
드라마, 멜로/로맨스, 서스펜스, 미스터리 | 영국,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 126분
감독 : 제인 캠피온 |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커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
? IMDb 7/10 ? Tomatometer 96%
? 아카데미 수상 제인 캠피언 신작, 넷플릭스 작품
개봉 : 2021.11.17 (한국)
1925년 미국 몬타나, 거대한 목장을 운영하는 필은 막대한 재력은 물론 위압적이고 묘한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공포와 경외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어느 날 그의 동생 조지가 로즈와 그의 아들을 가족으로 맞이하고, 동생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분노한 필은 로즈의 아들을 볼모로 삼아 그녀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2. <드라이브 마이 카> (Drive My Car)
드라마 | 일본 | 179분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 출연 :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코, 오카다 마사키, 박유림
? IMDb 7.9/10 ? Tomatometer 100%
? 제74회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
개봉 : 2021.12.23 (한국)
누가 봐도 아름다운 부부 가후쿠와 오토.
우연히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가후쿠는 이유는 묻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2년 후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되어 작품의 연출을 하게 된 가후쿠.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를 만나게 된다. 말없이 묵묵히 가후쿠의 차를 운전하는 미사키와 오래된 습관인 아내가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며 대사를 연습하는 가후쿠. 조용한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가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눈 덮인 홋카이도에서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서로의 슬픔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1.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멜로/로맨스 | 노르웨이,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 | 128분
감독 : 요아킴 트리에 | 출연 : 르나트 라인제브, 앤더스 다니엘슨 라이
? IMDb 8.1/10 ? Tomatometer 100%
? 제74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내일 모레면 서른이 되는 줄리는 옷을 갈아입듯이 직업과 애인을 바꾼다. 의학을 공부하는 모범생이었지만 '몸보다는 마음을 치료하고 싶어'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공부보다는 예술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아' 사진 찍기를 시작하고, 연애의 고충에 대해 쓴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얻자 이제는 작가에 도전해 볼까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줄리는 점점 초조해지고 임박한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중반 즈음, 세상이 멈춘 가운데 줄리 혼자서 오슬로의 길거리를 누비는 장면이 있다. 어른으로서의 책임감과 삶의 무게를 벗어 던진 그녀는 환하게 웃음 지으며 행복을 만끽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어른아이,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세상의 모든 줄리들을 위한 영화는 신예 레나테 라인스베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겼다.[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박가언 프로그래머]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되어 화제를 모은 작품들이 더러 보이네요.부디, 2022년엔 위 작품들을 볼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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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나리> 오스카 입성!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종 노미네이트 발표
영화 <미나리> 오스카 입성!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종 노미네이트 발표
2021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최종 노미네이트 후보를 발표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난 2월, 9개 시상 부문의 예비후보 10개 작품을 선정해 발표했다. '쇼트리스트'(shortlist)로 불리는 예비후보는 작품상, 연기상 등 주요 부문 외로 최우수 국제극영화상을 비롯해 장편 다큐멘터리, 단편 다큐멘터리, 분장, 음악상, 주제가, 단편 애니메이션 라이브액션 단편 등 9개 부문에 한정해 선정한다. 이후 10개 작품 가운데 본상 수상을 겨룰 최종 후보작 5편이 선정되며, 예비후보 발표 당시 <미나리>는 음악상, 주제가상 부문에 선정되며 오스카 최종 입성의 기대를 모았다.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43) 감독의 영화 <미나리>는 이번 최종 발표에서 작품상/남우주연상(스티븐 연)/여우조연상(윤여정)/감독상/각본상(이상 정이삭)/음악상(에밀 모세리) 등 총 6개 부문의 최종 노미네이트됐다. 예비후보에 있던 음악상뿐만 아니라 각 주요 부문에 이름을 올리면서 앞으로 이들의 수상 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미나리>의 오스카 입성을 기념하며, 수상 후보에 오른 각 6개 부문에 대하여 과연 어떤 경쟁작들이 함께 이름을 올렸는지 확인해 보자.
1. 작품상(BEST PICTURE)
더 파더(THE FATHER)
주다스 앤 더 블랙 메시아(JUDAS AND THE BLACK MESSIAH)
맹크(MANK)
미나리(MINARI)
노매드랜드(NOMADLAND)
프라미싱 영 우먼(PROMISING YOUNG WOMAN)
사운드 오브 메탈(SOUND OF METAL)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THE TRIAL OF THE CHICAGO 7)
2. 감독상(DIRECTING)
토마스 빈터베르그(Thomas Vinterberg) - <어나더라운드(ANOTHER ROUND)>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 - <맹크(MANK)>
정이삭(Lee Lsaac Chung) - <미나리(MINARI)>
클로이 자오(Chloe Zhao) - <노매드랜드(NOMADLAND)>
에머랄드 펜넬(Emerald Fennell) - <프라미싱 영 우먼(PROMISING YOUNG WOMAN)>
3. 남우주연상(ACTOR IN A LEADING ROLE)
리즈 아메드(RIZ AHMED) - <사운드 오브 메탈(SOUND OF METAL)>
채드윅 보스만(CHADWICK BOSEMAN) -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MA RAINEY'S BLACK BOTTOM)>
안소니 홉킨슨(ANTHONY HOPKINS) - <더 파더(THE FATHER)>
개리 올드만(GARY OLDMAN) - <맹크(MANK)>
스티븐 연(STEVEN YEUN) - <미나리(MINARI)>
4. 여우조연상(ACTRESS IN A SUPPORTING ROLE)
마리아 바카로바(MARIA BAKALOVA) -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BORAT SUBSEQUENT MOVIEFILM)>
글렌 클로즈(GLENN CLOSE) -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
올리비아 콜맨(OLIVIA COLMAN) - <더 파더(THE FATHER)>
아만다 사이프리드(AMANDA SEYFRIED) - <맹크(MANK)>
윤여정(YUH-JUNG YOUN) - <미나리(MINARI)>
5. 각본상(ORIGINAL SCREENPLAY)
주다스 앤 더 블랙 메시아(JUDAS AND THE BLACK MESSIAH)
미나리(MINARI)
프라미싱 영 우먼(PROMISING YOUNG WOMAN)
사운드 오브 메탈(SOUND OF METAL)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THE TRIAL OF THE CHICAGO 7)
6. 음악상(ORIGINAL SCORE)
Da 5 블러드(DA 5 BLOODS)
맹크(MANK)
미나리(MINARI)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
소울(SOUL)
<미나리>는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맹크>에 이어 총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공동 2위를 차지했다. 또한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작품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4개 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은데 이어 한국 배우가 연기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수상여부와 관계없이 최초의 타이틀이 가져다주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
한편, 제 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2021년 4월 25일(일) 진행된다.
씨네랩 에디터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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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팬, 웬디의 시각으로 새롭게 재해석되다-영화 웬디
올해가 피터팬 탄생 110주년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피터팬을 재해석한 웬디 라는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개봉 전 시사회에 참석하여 영화를 관람하고 왔어요!
원작과 마찬가지로 판타지 장르의 성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조금 다른 영화로 만들어졌는데요.
웬디가 중심 인물이 되어서 피터를 만나면서 한 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어요.
꽤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에요.
나이 듦에 대한 생각과 아이와 노인을 대비시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냅니다.
특히나 아름다운 섬의 풍경과 신비로운 고래의 모습이 눈길을 잡아두는 영화입니다.
단, 일반 판타지 물의 오락적인 성향은 적은 영화에요. 잔잔하고 진중합니다.
그래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조금 심심한 듯한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들은 유명한 배우가 나오지는 않지만 웬디 역을 맡은 데빈 프랑스의 좋은 연기를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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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대 너머에> 30초 예고편
지워져 가는 기억을 붙잡으려는 인숙.
다른 이들의 기억 속을 헤매는 지연.
과거의 기억속으로 던져진 경호.
서로의 기억 너머, 존재의 의미를 찾는 히치하이커들의 눈물겨운 사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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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범죄현장> 메인 예고편
거리의 고양이들을 ㄷ로보느라 빚까지 지게 된 마음 약한 람 형사, 어느 날 살인 사건 현장에 투입되게 되고 그곳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말하는 앵무새를 발견하며 이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람 형사의 상사인 입 팀장은 지난 번 벌어진 리슨 금은방 강도사건 주범인 션 왕이 이 사건의 주범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촉에 의지한 채 입 팀장을 의심하게 된 람 형사는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