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 soyo 2025-04-02 00:09:56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고], 네가 너인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고]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남녀 대학 동기와의 동거를 통해 주인공들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세상은 어쩌면 ‘다름’과 ‘틀림’이란 두 개의 개념으로 나눠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름’은 봄과 겨울의 공기가 다르듯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차이로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여지를 남긴다. 반면 ‘틀림’은 다름이 받아들여지지 못할 때 붙는 낙인과도 같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틀림이 될 수도 있고 세상이 정해 놓은 답을 따르지 않는 것이 틀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틀림은 정말로 잘못된 것일까? 어쩌면 우린 그저 익숙하지 않은 게 아닐까?
어릴 적부터 프랑스에서 자라며 개방적인 시선을 지닌 ‘재희’는 자연스럽게 다름을 받아들이며 컸다. 서로 다른 언어와 생각 속에서도 다름은 그저 차이일 뿐 틀림이 아니라고 여겼다. 반면 ‘흥수’는 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남들과 다른 사랑을 한단 이유만으로 세상은 늘 그에게 끝없는 기준을 들이밀었고 그는 그 기준 안에서 스스로를 조각내 숨겨야만 했다. 그의 엄마는 그의 사랑을 목격한 후 말없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며 이해하려 하기보다 기도로 해결하려 했고 그의 연애는 가족들 사이에서 언제나 침묵 속에 갇혔다.
결국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을 외면했고 스스로의 사랑을 때론 죄책하며 자신을 더 숨겼다. 그런 그에게 재희는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라 말한다. 그렇게 그들의 유대는 물감이 서로 다른 색을 만나면 더 깊어지듯 사랑이 아닌 우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동거를 시작한다.
우린 때때로 너무 쉽게 다름을 틀림이라 단정짓고 틀림을 멀리하려 한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다름을 이해하려 할 때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세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차이는 고유한 색깔을 가진 꽃들의 차이와도 같다. 꽃은 같은 땅에서 자라도 저마다 다양한 빛깔과 향기를 뽐내지만 한 송이가 다른 송이보다 틀리다고 말할 순 없다. 어쩌면 우린 그저 우리만의 꽃을 피우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Relative contents
-
- 캐릭터는 있지만 내용이 없던 액션 영화, 악인전
2019년 칸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악인전>. 그래서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고, 마동석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잘 살렸을까 설마 그대로 이용하진 않았겠지,,, 기대반 우려반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우려가 현실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악인전> 시놉시스
영화 <악인전>은 조직 보스와 강력반 형사,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이들의 공통의 목표를 위해 손잡는 흥미로운 설정에서 시작한다. 중부권을 장악한 조직의 보스 장동수가 접촉사고를 가장해 접근한 남자 K에게 공격을 당한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상대를 공격한 K는 사라지고, 졸지에 피해자가 된 조직 보스 장동수는 분노로 들끓는다. 연쇄살인을 확신하고 홀로 사건을 추적하던 강력계 형사 정태석은 또 다른 검거 대상이었던 장동수와 손을 잡는다. 그와 연쇄살인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이자 증거였기 때문이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악인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내용보다 스타일 중심의 영화
영화 <악인전>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배우들의 캐릭터를 믿고 스토리의 탄탄함 없이 극을 밀고 나가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현대사회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 한다. 내용보다 스타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고 흐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뭔가 이번 작품을 통해서 마동석 배우의 이미지가 굉장히 소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작품들에서 가장 나쁜 역으로, 그리고 힘도 가장 많이 쓰는 역으로 나왔지만 액션의 종합선물세트를 딱 주고 이제는 다 똑같은 연기로 보인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연쇄살인마 K의 사연은?
영화 <악인전>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연쇄살인마 K 강경호의 이야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강경호가 뭔가 그냥 사이코패스로 미친사람인 것으로 결정을 내려놓고 원래부터 그런사람이니 사람을 죽인거다. 이렇게 몰고가서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연출이 강경호를 쫓는 과정에서 강경호의 가족 사진도 보여줘서 무슨 사연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떡밥들은 회수가 다 되지 않고, 그저 사이코패스라는 결정을 내려놓고 몰아가는 것 같아서 캐릭터가 너무 단편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액션신만큼은 끝내줬다
안타깝거나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액션신은 실로 괜찮았다. 마동석의 캐릭터를 잘 활용했고, 김무열 역시 액션신을 잘 소화했다. 다른 영화에서 다 한 번씩 봤던 장면들이었지만 그래도 영화 <악인전>에서 튀는 장면없이 잘 묻어났던 것 같다. 다만 스토리 전개가 갑자기 차에 치어서 그렇게 잘 싸우던 장동수가 송장처럼 누워있고, 갑자기 장동수가 형사를 도와주면서 법정 증언을 하고 거의 감독 하고 싶은 거 다해! 이런 느낌으로 후루룩 끝나버려서 당황스러웠지만 액션은 재밌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영화 <악인전>은 기대를 하고 본 작품이었지만 시간과 돈을 들일만큼의 작품은 아니었다. 킬링타임용으로 적당한 작품이었다.
-
- #007 노 타임 투 다이 / 007 No Time To Die, 2021
아시다시피, "코로나19"로 많은 영화들이 부득이하게 극장에서의 개봉을 포기하거나 개봉일을 연기하는 결정을 했습니다.
물론, "코로나19"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현재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전 세계 7억 달러를 넘겼고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이번 사태 이후 첫 북미 2억 달러를 목전에 앞두고 있습니다.
아직 예전의 극장가는 아니지만, 또 한 편의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드디어 개봉을 했습니다.이미, 제작비만으로도 <007>시리즈 가운데 최고 제작비로 주목을 받은 <노 타임 투 다이>는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었습니다.
물론, 개봉이 미뤄진 만큼 스트리밍의 가능성도 점쳤지만 제작사가 6억 달러를 부르며 "극장 개봉"을 끝까지 고수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의 손익 분기점은 9억 달러까지 치솟았으니 걱정이 드는 건 제작사뿐만이 아니라 팬들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아무튼, 이번 <007 노 타임 투 다이>은 어떤 작품이었는지? - 영화의 감상을 "SCREEN X"로 한 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날을 보내던 '본드"에게 "CIA"의 "펠릭스"는 하나의 임무를 부탁합니다.
내용은 납치된 과학자를 구출하는 것으로 현지의 요원과 함께 수행만 한다면 문제없이 끝날 임무였죠.
하지만 이번 일에 "CIA"뿐만 아니라 "MI6", 그리고 "스펙터"까지 있음을 알게 되면서 가벼이 끝날 일이 아님을 감지하는데...마지막이라 굽쇼?
1. 뭐가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이번 <노 타임 투 다이>을 소개하는데, 앞서 이번 영화는 <007>시리즈에서 25편에 해당되는 작품입니다.
그만큼 '시리즈'가 흥행이 보장되는 단어이나 이게, 누적됨에 따라 새로운 관객들을 이를 따라가기에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미뤄둔 학습지들처럼 봐야 하는 작품들이 쌓여 관람을 하기에도 앞서 포기하고 맙니다.
그런 점에서 <노 타임 투 다이>도 '시리즈'에 해당되는 영화로 이전 자기들에서부터 나왔던 캐릭터들과 이야기들을 그대로 가져옵니다.전작들을 썼는데도, 163분?
무엇보다 '시리즈'가 좋은 점은 러닝 타임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고, 분량의 제한 없이 할 수 있기에 '시리즈'라면 응당,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근데, 이번 <노 타임 투 다이>의 러닝 타임은 163분으로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입니다.
특히,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잠시 휴식시간을 주자는 "인터미션"이 논의되었던 <어벤져스: 엔드게임> 의 181분과도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많아 저 같은 새로운 관객을 포함해 기존 시리즈 팬들에게도 충분히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숫자입니다.2. 시리즈의 패착
그렇다면, 이렇게나 러닝 타임을 많이 할애했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할 텐데요.
이런 이유에는 이미, 예고되었듯이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시리즈>라는 외부적인 의견도 있겠지만 전작 <스펙터>의 영향이 커 보입니다.
물론, 전작을 챙겨보지 않았던 입장이라 상세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이번 <노 타임 투 다이>에서 "스펙터"가 끊임없이 언급됩니다.
특히, 전작에서 악역을 맡았던 "크리스토프 왈츠"와 본드걸 "레아 세이두"가 출연해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번 <노 타임 투 다이>의 새로운 악당 "라미 말렉"과 새로운 본드걸 "아나 디 아르마스"가 등장하지만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지 못하는데요.<스펙터>를 지웠어야 했다.
이로 인해서, 느껴지는 <노 타임 투 다이>은 전작 <스펙터>을 수습하는 영화가 아닐까 할 정도입니다.
정도로 말하면, 저처럼 전작 <스펙터>에 못 본 관객들은 이번 <노 타임 투 다이>보다 더 궁금증을 만들 정도이니 주객전도가 된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노 타임 투 다이>의 새로운 악당 "라미 말렉"이 맡은 "사핀"은 이야기적으로 많은 아쉬움이 생깁니다.
극 중 "매들린"의 아버지와 얽힌 세대 간의 복수가 "스펙터"까지 확장된 것으로 보이나 이게, 관객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습니다.3. 007도 해보는 그 대사
영화는 관객들과 '매들린'에게 '사핀'을 소개하는데, "노"라는 일본 정통극 가면을 씁니다.
하얀색의 이목구비가 있는 평범한 가면은 얼핏 보면, 화가 났거나 무섭게 보일 만큼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인상이 달라지는데요.
이를 썼다는 건 관객들에게도 '사핀'이라는 캐릭터를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캐릭터의 야심으로 비칩니다.
하지만, 앞서 영화가 <스펙터>를 수습하면서 해야 하는 "사핀"의 설명은 생략하니 때아닌 "다도"와 "다다미", 그리고 정원의 구성까지 "와패니즘"스러운 장면들은 뜬금없이 다가옵니다.내가 니 아빠다!
여기에 이번 <노 타임 투 다이>의 엔딩에는 많은 불만이 있을 겁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007"의 이미지는 악당에게 "본드. 제임스 본드"로 멋들어지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는 쿨한 이미지입니다.
근데, 이번 <노 타임 투 다이>의 엔딩에서 보여주는 "제임스 본드"의 모습은 그동안 보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물론, 이런 변화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로 인해서 "사핀"은 앞서 보여준 야심과 다르게 위협하는 평범한 악당이 되었으며 이를 대처하는 "제임스 본드"도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법한 특수 요원 아빠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4. 그래도 즐길 수만 있다면야...
그런 점에서 영화 <노 타임 투 다이>는 시리즈 영화에서 예고한 "마지막"이 아쉬운 영화입니다.
마지막인 만큼 수많은 감정이 오갈 텐데, 특수 요원 아빠라니 이것 참...
물론, 이에 대한 설명이 충분했다면 눈물 한 바가지쯤이야 쏟아낼 수 있겠지만 황당함이 먼저 생기는 이유는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일 겁니다.
무려, 163분인데도 말이죠.진흙탕에서도 연꽃은 피어난다.
그래도, 영화 <노 타임 투 다이>는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런 이유에는 "SCREEN X"로 보는 카 체이싱을 비롯한 액션도 있지만, 이번 <노 타임 투 다이>에 새로운 본드걸 "팔로마"로 등장하는 "아나 디 아르마스"의 모습이다.
극 중 요원이라는 설정으로 격한 액션신도 있지만, 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허당미"를 선보여 갭 차이를 보여주는데요.
비록, 짧은 분량이나 캐릭터성으로는 이번 <노 타임 투 다이>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
- 관객을 사냥하고 싶었던 <늑대사냥>
과거에 교통사고가 나는 모습을 앞에서 본 적이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택시가 사람 한 명을 쳤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잠깐 넘어지는 선에서 끝난 교통사고. 큰일이 아니었어서 다행이었지만 이 기억은 나에게 굉장히 크게 남아있다. 안 그래도 겁이 많은 나는 이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잔인한 거 잘 못 본다. 잔인한 걸 잘 못 보지만 스릴러 장르는 취향에 맞는 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아무튼 그런 타입이라고 설명하기로 한다. 타란티노와 크로넌버그가 그렇게까지 끌리지 않았던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 취향저격 300%인 <큐어>와 <추격자>도 수위 묘사가 있는데 아무튼 이런 장르는 박진감이 있으니 좋아한다고 주장하고 다닌다. 그러면 이 영화도 완전 취향저격이어야 할 텐데? <아수라>도 나쁘지 않았던 나는 이 영화가 내 시간을 사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필리핀으로 배를 타고 이동해서 한 영화를 만났다. <늑대사냥>이다.
아수라장 5분 전
어느 날의 대한민국.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배 안이다. 강력범죄자들을 데리고 이동하고 있는 프런티어 타이탄. 온갖 나쁜 놈들은 죄다 모아놨기 때문에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살인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범죄는 다 저질렀던 범죄자들이지만 이송 과정은 나름 인격적인 대우를 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잡무에 시달리는 형사들. 투정을 내뱉는 부하들을 다독이며 석우는 항해를 시작하고자 한다. 카메라는 지상으로 옮겨간다. 아마 해안 쪽을 담당하는 경찰의 한 부서로 보인다. 모니터로 해안 상황을 감시하고 있던 사람들. 갑자기 어떤 남자가 들이닥친다. 대웅과 일당들은 경찰 인원들을 내쫓고 경비단에 자리를 잡는다. 대웅의 일당들 역시 같은 경찰인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는 다시 배 안으로 옮겨간다. 여전히 어수선한 배. 범죄자들을 수송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얼른 작전이 마무리됐으면 하는 마음은 어린 형사 다연도 마찬가지다. 다연은 형사가 직업이라지만 이 남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의사 경호는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가 싫다. 그런데 경호에게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 같다. 수상한 기색은 경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찰 내부에서도 이상한 눈빛을 교환하는 남자들이 있다. 폭풍전야 속에 있는 배. 배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이상한 눈빛을 교환한 남자들이 배의 사람들을 죽이고 죄수들의 탈옥을 도운 것이다. 아수라장이 된 배. 죄수들은 한국으로 향하는 항로를 뒤엎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과연 그들의 계획이 성사될 수 있을까?
하드보일드
우리나라가 확실히 잔인한 장르가 발달한 나라는 아니다. 일단 나부터 그렇게까지 잔인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많은 분들의 취향과도 이어진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우리나라 시네필들한테나 익숙하지 일반 대중들은 사실 잘 모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외화 수입이 발달했긴 했지만 한국에서 로컬화를 시켜서 표현하긴 좀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화라는 게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 지점에서 이 영화가 도달한 성취, 또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는 폭력에 대한 수위다. 영화는 하루 온종일 내내 피 튀기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고. 이런 건 기본이다. 심지어 팔다리 뜯는 게 꽤나 자주 나온다. 팔과 다리가 몸을 관통하기도 하고 목을 조르다 못해 손가락으로 찌르기까지 한다. 이런 취향이 있으신 분들은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느낄 만큼 수위가 굉장히 세다. 이렇게 수위를 세게 설정하면 장르적으로 아드레날린이 급상승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건 후반부 장르 비틀기와도 관련이 있다. 이 장르와 높은 수위는 확실히 시너지가 있다.
또 예고편에서도 잠깐 모습을 드러낸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담당 배우가 이 영화에 캐스팅됐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도 한데, 바로 이 영화는 장르가 중반부를 넘어서 한번 뒤바뀐다(또 이 장르 변화가 영화 엔딩이랑 크게 관련이 없기도 하다). 그러니까 영화 구성이 1부/2부로 나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전반부/후반부에서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기는 한다. 1부는 스릴러물이다. 범죄자들이 합심해서 경찰들을 죽이고 탈옥을 도모하는 게 영화의 중심 내용이다. 2부는 호러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등장해 배 승객들이 생존게임을 펼친다는 것이 주요 서사다. 1부 범죄/스릴러물에서 빌런 종두가 강력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좋은 연기를 펼쳐 보이며 시각적으로 압도한다. 또 뭔가 찝찝한 화면 색감이나 배 안을 구현한 미술까지 나름 장르적인 특색을 잘 갖췄다고 볼 수 있다. 2부 호러물에서는 '초대받지 않은 그것'의 연출이 좋았다. 동선이나 액션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했다. 중후반부 영화를 이끄는 주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당 배우가 연기력으로는 검증받은 사람이기도 하고 이 인물을 중심으로 한 승객들의 리액션이 잘 구성되어 있어서 2부 자체로도 몰입하기 좋다. 또 극후반부 액션도 잘 뽑았다. 후반부 액션 연출은 이 영화의 최고 장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의아한 선택
1, 2부 각각의 완성도 자체는 좋았다. 두 장르의 특성을 잘 살린 부분이 러닝타임 곳곳에 보인다. 이거까진 좋았다. 그런데, 사실 이 장르 변동이 영화에 플러스가 됐는지는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써보자면 전후반부의 구분선 때문에 러닝타임을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단 전반부. 경찰을 살해하고 탈옥을 도모하는 죄수들의 이야기다. 후반부. 예상하지 못한 변수 때문에 배 안이 혼란 속에 빠진다. 이 두 가지를 기준선으로 잘라 중심인물로 다르게 설정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반부는 서인국 캐릭터가, 후반부는 성동일 캐릭터가 이끈다. 제목이 두 번 들어가는 건 이 구분선을 더 선명하게 해 준다. 가장 처음에 '늑대사냥'이 제시되는 부분이나 후반부에 제목이 왜 '늑대'가 들어갔는지를 보면 이는 극이 두 번으로 나뉘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1,2부가 딱 달라붙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가령 <헤어질 결심>을 보자. 이 영화 역시 1,2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래의 남편 기도서의 살인사건이 1부, 사기꾼 임호신의 피살사건이 2부다. 두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서래와 해준의 사랑이야기가 영화의 주요 서사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사건 사이에는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1부의 로맨스를 2부에 감정적으로 터트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박찬욱, 정서경 두 사람이 극을 위해 필수적으로 설정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또 홍콩 영화 중 명작으로 꼽히는 <중경삼림>은 그냥 옴니버스 영화다. 애매모호하게 떡밥을 해소한 게 아니라 양조위, 왕페이 캐릭터의 사랑이야기와 금성무 캐릭터의 사랑이야기가 공간만 같지 아예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이런 설정도 이해할 수 있다. 애초부터 감독이 그걸 노리고 영화를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이 1,2부 구성이 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일단 영화 자체가 1-2부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1부에서 뿌린 일부 떡밥이 2부에서 회수되기 때문이다. 인물도 비슷하고 주요한 사건까지 공유한다. 그럼 <헤어질 결심>처럼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뜻이다. 장점으로 발휘되면 좋았겠지만 이 형식이 영화의 오히려 단점이 되어버렸다. 2부가 있기 때문에 1부가 의미 없이 느껴진다. 2부에서 불청객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마무리될 건데 1부에서 범죄자들이 경찰은 왜 죽이고 탈옥 계획은 왜 잡아? 어차피 그렇게 될 건데? 이는 반대로도 작용한다. 1부의 범죄자들의 탈출기를 주요 서사로 잡아도 이 영화는 큰 문제가 없다. 그냥 시놉시스만 생각해도 편하다. '범죄자들이 힘을 합쳐 잔혹하게 경찰을 죽이고 탈출하는 범죄/스릴러물'이라 생각하면 살짝 뻔하기는 해도 이야기에 손상이 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중요한 이야기가 전반부랑 큰 관련이 없으니 앞의 서사가 '왜 넣었지?'라는 의문점만 든다.
이는 이 영화의 폭력 수위와도 비슷한 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주요한 원동력은 폭력적인 에너지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굉장히 강한 수위로 영화는 내내 기를 빨아놓는다. 그런데 전반부에서 맡았던 피비린내가 비슷한 템포로 후반부까지 이어지니 아무래도 극을 보는 게 지루할 수밖에 없다. 또 그렇게 온 에너지를 분출하며 러닝타임을 봤는데 후반부에 들어서고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전개되면 다 예상이 가기 시작한다. '영화 계속 이런 톤이었으니까 앞으로 저렇게 되겠네' 그렇게 예상한 것이 정확히 이루어지고, 이내 곧 맞는다. 사람이 죽는 걸 고민을 많이 했을 영화다. 애초에 감독은 이런 지점을 장점으로 염두하고 만들었을 테니까. 그런데 이 부분만 생각하고 형식과 이야기 구성이 산만하니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세상을 설득시키기가 어려웠다.
꼼꼼하지 않은 디테일
이렇게 영화 내내 겉돌다 보니 자잘 자잘한 아쉬움도 크게 다가온다. 첫 번째는 퀴어 캐릭터 활용법이다. 이 영화에는 퀴어 캐릭터가 나온다. 이 퀴어 캐릭터의 첫 번째 등장은 전화를 받으며 뭔가를 지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성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이거 사실 이럴 이유가 없다. 굳이 그 상황에서 그 성적인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그냥 의자에 앉아서 지시하는 장면만 나와도 극 전개에는 아무 무리가 없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 영화에서 퀴어라는 소재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냥 이 사람만 퀴어로 설정된 것 빼곤 아무런 특징을 잡을 수 없다. 왜 이렇게 설정했을까? 간단하다. 자극적이니까. 이 상황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 같은 강렬한 이미지를 넣고 싶으면 그 인물의 그 행동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영화 전반적으로 과한 폭력 수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생각은 더 탄력을 받는다. 이 연출 방식은 사실 굉장히 불쾌했다. 서사에서 1도 중요하지 않고 자극적으로만 쓰기 위해서 넣었다. 이게 소수자의 입장인 퀴어를 활용해서 그런 연출 방식을 쓴 건데 그냥 동성애 혐오같이 느껴졌다. 쓸데없이 자극적인 느낌?
또 영화 전반적으로 사운드 편집은 굉장히 아쉽다. 아마 이 부분은 영화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아도 충분할 것이다. 간단하다. 내내 귀가 아프다. 그 전부터 귀가 아프지만 특히 '그것'이 등장하고 나서가 더 아팠다. 물론 영화 안에서 '그것'의 존재감이 강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게 이 귀 따가움의 변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의 존재감으로 고통받아야 할 건 극 중 인물들이지 관객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에서도 꼼꼼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하나도 기대가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아는 부분이 있다. 솔직히 여기서 좀 기대했다. 극 전개의 핵심이 있을까 봐. 근데 그런 것 없다. 승객들의 대응은 굉장히 단순하다. 이 때문에 이야기 전개가 다 예상 가능하고 서스펜스를 느끼기도 어렵다. 그리고 극후반부 하이라이트가 되는 액션신이 있고 나서 진주 인공과 관련된 어떤 설정이 있다. 이거, 좀 많이 이상하다. 극에서 내내 제시됐던 큰 설정이랑 안 맞는다. 이게 전형적인 이야기와는 벗어나긴 했는데 그걸 위해서 기본적인 토대까지 흔들어버린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 전체가 극 전체적으로 장르의 특성을 따르기보다는 '클리셰를 부순 신선함'을 추구한 티가 난다. 그런데 그것도 기본적인 완성도가 보장이 되어야 유효타로 작동하는 지점이다.
그래도 장점은 있어
뭐 그렇게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영화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있다. 성동일, 서인국, 정소민, '그것'을 맡은 배우, 그리고 극후 반부의 액션신이다. 일단 성동일 배우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많이들 아는 배우다. 또 <아빠 어디 가>나 <슛돌이> 시리즈에서 입담이 좋은 배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 글쓴이는 성동일 배우의 진지한 연기를 한번 보고 싶었다. 초중반부까지는 베테랑의 클래스를 보여주지만 중반부에선 뭔가 매가리가 없었다. 그리고 후반부는 이 배우의 모든 경험치가 다 드러난다. 후반부 극을 마무리 짓는 카리스마로는 손색이 없었다. 또 서인국 배우는 처음 보는 악역 연기였는데 꽤 잘했다. 이 사람이 욕을 하는 게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이 부분도 무리가 없었다. 또 배우가 비주얼을 어떻게 구현하나? 도 영화에서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좀 기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문신을 그냥 좌시하지 않고 톤, 표정, 제스처로 시너지를 내는 좋은 연기가 돋보였다. 이 인물의 행보는 극에서 중요하다. 이 들쭉날쭉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보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 좋은 연기였다. 또 정소민 배우는 존재감이 돋보였다. 비율이 은근히 좋으시던데 이런 배우였나? 싶었다.
또 극후반부의 액션신은 정말 대단하다. 두 배우의 합이 엄청났다. 그렇게 잔인하지도 않은데 이 두 사람의 전투신이 러닝타임 내내 전개되는 고어함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두 배우가 액션을 하는 건 그렇게 자주 봤던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 하나만큼은 탄탄하게 구성해서 극의 생동감을 부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성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
- <켈리 갱> - '거짓과 진실을 거둬낸 네드 켈리의 이야기'
켈리 갱 (True History of the Kelly Gang, 2019)
개봉일 : 2021.08.31 (한국 기준)
감독 : 저스틴 커젤
출연 : 조지 맥케이, 러셀 크로우, 니콜라스 홀트, 에시 데이비스, 토마신 맥켄지, 찰리 허냄, 션 키넌
거짓과 진실을 거둬낸 네드 켈리의 이야기
혹시 Ned Kelly(네드 켈리)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지 모르겠다. 19세기 후반 오스트레일리아(이하 편의상 호주로 표기)에서 활동했던 은행강도인 네드 켈리. 네드 켈리가 왜 유명한가 하면 그는 단순한 도둑이 아닌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핍박하는 자들의 물건을 훔치던 의적이자 공권력에 저항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영국의 막강한 힘에 눌려 폭력과 불평등함으로 점칠 된 사회에서 시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저항했던 영웅이자 공권력이 가장 제거하고 싶어 했던 범죄자 네드 켈리. 그는 호주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홍길동과 임꺽정과 같은 인물이라고 한다.
교과서에서도 만나본 적 없는 네드 켈리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조지 맥케이 배우 덕분이었다. 그가 영화 <1917>의 히로인으로 주목받던 해, 자연스레 조지의 진중한 연기에 빠져들어 그의 필모그래피를 훑던 중, 내 시선을 순식간에 빼앗은 작품이 몇 개 있었다. 거친 표정과 단단하게 다져진 몸, 날카로운 눈빛. 지금껏 봐왔던 조지의 이미지와는 조금 달라 강렬하게 다가온 네드 켈리의 모습을 보고 순식간에 온갖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대체 어떤 영화일까.”, “네드 켈리란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처음 알았을 땐 영화가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던 때였고, 솔직히 무자막으로 볼 용기는 또 없었다. 그래서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사진들을 찾아보며 속칭 존버-를 했다. 그리고 존버는 승리한다더니, 2021년 여름의 끝자락. 네드 켈리를 만났다.
<켈리 갱>엔 위에서 소개한 인물, 네드 켈리의 불안정했던 유년시절과 저항 정신을 가득 담은 켈리 갱을 창설하고 마지막 전투를 벌이던 26살까지. 그의 생애가 담겨있다. 투박한 글체로 적어내려간 네드 켈리의 편지를 바탕으로 재해석된 소설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우선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딘가 아쉬웠다. 아무래도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과 2시간으로 일부 압축된 영화는 근본적인 정보량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영화 <켈리 갱>은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의 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웠다고 해야 할까.
조지 맥케이의 내레이션과 함께 천천히, 아주 깊게 훑고 지나간 유년시절 부분까지는 정말 좋았다. 어린 네드 켈리를 연기한 배우 올란도 슈워드의 연기도 훌륭했으며, 그 위에 얹어지는 조지 맥케이의 정갈한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매력에 빠진 채 “이제 그토록 궁금해했던 네드 켈리의 이야기를 듣는 건가.”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초반부를 감상했다. 하지만 네드 켈리가 성장하고 각성하는 계기가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졌고 그의 전투엔 비장함과 결의보단 흥분이 조금 앞서는 느낌이었다.
지배받고 있는 나라에서 태어나 지배자들에게 억압을 받으며 슬픔과 분노를 안고 자란 아이가 어떠한 계기로 각성을 했다기보단 갑자기 어느 날 폭발해버린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별로였다, 재미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네드 켈리라는 인물을 만들기 위해 공들인 티가 역력했고, 배우들 또한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롭고 놀라운 액션들을 보여줬으며 카메라 안에 담아낸 광활한 배경 또한 정말 멋졌다. 결말까지도 참 좋았는데, 많은 기대를 해서 그런지 기승‘전’.. 전에 해당하는 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만일 이 영화를 볼 예정이라면 네드 켈리라는 인물 또는 시대 배경에 대한 정보를 조금 훑어보고 가는 걸 추천한다. 그가 왜 이토록 분노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포인트를 미리 알고 간다면 감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억압의 시대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평범한 시민이 되기 위해 거칠게 저항한 네드 켈리.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전설처럼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켈리 갱>은 용감한 시민 네드 켈리와 그의 동료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박수갈채를 담은 작품이다.
아쉬운 시점을 지나고 나면 약간의 벅찬 감정이 밀려오는데, 그 순간 정말 희한하게도 아쉬웠던 감정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아쉬운 점은 분명 있었지만 조지 맥케이, 러셀 크로우, 니콜라스 홀트, 에시 데이비스와 같은 굵직한 배우진들의 연기 조합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누군가에겐 범법자로 낙인 되었던 그의 거칠지만 용감하고 진실된 일대기가 궁금하다면, 조지 맥케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다면 <켈리 갱>을 추천한다.
켈리 갱 시놉시스
폭력과 부패로 가득했던 시대
온갖 범죄로 세상을 더럽히는 무법자 ‘해리’와 부패경찰 ‘알렉스’에 맞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악인들을 단죄한 전설적 영웅이자 세상이 버린 위대한 범죄자 ‘네드 켈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이야기는 1867년 호주. 네드 켈리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진실과 거짓으로 뒤섞여 범법자 또는 영웅으로 불리는 그의 일대기에서 진실과 거짓이란 이분법을 거둬낸 후 깨끗하게 다듬어 내놓은 인생의 시작점은 다소 휑하고 뻐근하게 다가온다.
나의 비를 막는 지붕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던 어머니 엘렌은 아무리 파내려 가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해리 파워에게 네드를 제자로 팔아넘겼고 해리 파워와 함께 다니며 이 넓은 세상에서 나를 지켜줄 자는 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도 빨리 알아버린 네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마리 짐승 같은 남자로 자라게 된다.
무능하게 살다 감옥에서 갑작스레 생을 마감한 아버지, 여러 남자들을 거치며 서서히 네드를 지키길 포기한 어머니. 아직 어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동생들. 먼지만 날리는 땅에 살고 있는 네드 가족을 억압하는 영국 경찰들까지. 어린 네드가 감당하기엔 세상은 너무 거칠고 불공평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빠르게 막을 내렸고 희망 또한 보이지 않았다.
신이 버린 땅에서 아버지를 잃고, 남은 가족들의 일부는 볼모로 잡힌 채 공권력 밑에 무조건 수그려야 하는 불합리한 삶. 네드는 이 삶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 억압된 사회의 진실을 감추면 숨이 막힐 것이고 편안한 길을 찾아 거짓을 숨기면 삶이 서서히 부패할 것이니 그는 진실된 사회를 되찾기 위해 거친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네드는 원망스럽지만 잊지 못했던 가족들과 사랑에 빠진 여인 매리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경찰들에게 대항한다. 그는 어릴 적에 발견한 아버지의 드레스에 담긴 저항정신을 그대로 물려받은 동생 대니와 친구 스티브, 오래된 절친 조니와 함께 흐드러지는 드레스를 입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네 명의 청춘들은 이 조직의 이름을 ‘켈리 갱’이라고 명했다.
네드는 부패한 공권력 대신 진실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지만 소수의 힘으로 거대한 권력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끝없는 도망 대신 맞서 싸우기를, 조용히 입을 닫기보단 우리의 역동적인 삶을 글로 남기기를 선택한다. 그는 평범한 시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죽음도 불사한 자신들의 피로 쓴 역사를, 신이 버린 땅이라지만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소중한 땅을 되찾기 위해 겪어야 했던 거친 여정을 틈틈이 적어나간다. 네드는 두서없고, 문법과 문장 규칙 따위는 하나도 배우지 못한 티가 역력하지만 후세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이 글을 자신의 미래인 아이에게 바친다.
광기와 날것의 분노가 가득했던 마지막 전투를 마친 네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 후 사람들은 네드가 남긴 기록을 보며 손뼉을 치고, 형장에 매달려 있는 네드의 모습에 박수 소리가 얹어진다. 이 박수는 네드의 후손들이 네드와 그의 삶에 보내는 박수갈채를 의미하려는 연출이 아니었을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보다 좋은 세상을 남겨주고 싶었던 남자 네드 켈리. 거짓에 물들지 않은 진실된 그의 삶은 예상보다 더욱 거칠었고 어쩐지 버거워 보였다. 그는 자신이 남긴 기록이 후손들에겐 낯선 이야기가 되기를 바랐다. 핍박받던 나의 삶이 나의 후손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라면, 이 억울하고 답답한 현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이어져선 안될 역사지만 여전히 잊히기만 하고 사라지진 않고 있는 강자의 압제와 폭력들. 안타깝지만 그가 원하던 세상은 아직 완전하게 도래하지 못한 것 같다. 남은 건 그가 미래라고 칭했던 우리의 몫이니 우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로 물든 저항의 역사를 잊어선 안된다.
-
- ? 10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가을에 만나보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30일 , 서커스 당나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당나귀EO 등 10월 첫째 주 개봉예정작 같이 알아보아요
30일
30days
ⓒ 네이버영화
개요: 로맨스, 코미디 | 한국 | 119분
감독: 남대중
출연: 강하늘, 전소민등
개봉: 2023.10.03.
배급: (주) 마인드마크
시놉시스
“완벽한 저에게 신은 저 여자를 던지셨죠” 지성과 외모 그리고 찌질함까지 타고난, '정열'. “모기 같은 존재죠. 존재의 이유를 모르겠는?” 능력과 커리어 그리고 똘기까지 타고난, '나라'. 영화처럼 만나 영화같은 사랑을 했지만 서로의 찌질함과 똘기를 견디다 못해 마침내 완벽한 남남이 되기로 한다. 그러나! 완벽한 이별을 딱 D-30 앞둔 이들에게 찾아온 것은... 동반기억상실?
CINE PICK!
<스물>이후 두 번째로 호흡하는 강하늘, 전소민이 부부로 다시 만났습니다! 두 배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연들이 등장한다고 하는데요 특히 이번 영화로 스크린 데뷔를 이룬 송해나, 엄지윤이 눈길을 끕니다
당나귀 EO
EO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폴란드 | 88분
감독: 백승기
출연: 산드라 지말스카, 이자벨 위페르 등
개봉: 2023.10.03.
배급: 찬란
시놉시스
가련한 눈망울의 회색 당나귀 EO는 세상의 전부였던 서커스단으로부터 구조된 뒤 폴란드와 이탈리아를 가로지르는 긴 여정에 오른다. 평화로운 농장, 훌리건으로 가득한 축구장 공포의 소시지 공장, 쇠락 직전의 저택... 다양한 공간을 오가며 겪은 인간 세계는 다정하면서도 잔혹하다.
CINE PICK!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 및 각본의 2022년작 폴란드 영화로 제 75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입니다. <당나귀 발자타르>에서영감을 받아 제작된 영화로 한 폴란드 서커스단에서 태어난 당나귀의 일생을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당나귀의 시선으로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직시하는 도전적 시도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독의 개성이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크리에이터
The Creator
ⓒ 네이버영화
개요: SF | 미국 | 133분
감독: 가렛 에드워즈
출연: 존 데이비드 워싱턴, 젬마 찬, 와타나베 켄, 매들린 유나보일스 등
개봉: 2023.10.03.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이것은 인류의 존망이 걸린 싸움입니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AI가 LA에 핵폭탄을 터뜨린 후, 인류와 AI 간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인류를 위협할 강력한 무기와 이를 창조한 ‘창조자’를 찾아 나서고, 그 무기가 아이 모습의 AI 로봇 '알피'란 사실을 알게 되는데…
CINE PICK!
<고질라>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연출, 각본, 제작을 맡은 오리지널 SF 영화로 감독은 인터뷰에서 “리얼리즘과 퓨처리즘을 동시에 담으려 노력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여행 중 승려들이 사찰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로봇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팟 제너레이션
The Pod Generation
ⓒ 네이버영화
개요: SF, 멜로/로맨스, 코미디 | 영국 | 109분
감독: 소피바르트
출연: 에밀리아 클라크, 치웨텔 에지오포
개봉: 2023.10.03.
배급: (주)왓챠
시놉시스
임신/출산 2.0 이제는 팟이 대신 낳아드립니다. 기술이 자연을 능가하게 된 머지않은 미래. 거대 테크회사 임원 레이철은 승진하면서 모두가 탐내는 최첨단 자궁센터의 예약 기회를 얻는다. 알을 닮은 인공 자궁 팟, 모니터링 앱, AI 상담사까지, 상상할 수 없던 ‘팟 제너레이션’ 부모 되기 여정이 지금 펼쳐진다!
CINE PICK!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이미 국내 관객을 만난 이 작품은 기술이 발달한 근 미래를 배경으로 인공 자궁인 ‘팟’을 통해 임신과 출산을 해보기로 한 신혼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제39회 선덴스영화제에서 알프레드 P. 슬로안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
- 필경사 바틀비의 대척점에 선 남자
톰 크루즈가 연기를 잘한다는 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마이너리티 리포트》, 《미션 임파서블》시리즈 등을 봐오면서 익히 알고 있었으나, 《제리 맥과이어》를 보는 순간 나는 다시금 탄식하듯 내뱉었다. 세상에, 톰 크루즈 연기 좀 봐! 특히나 도입부에서 주인공이 얼마나 얄밉고 짜증 나던지. 그 톰 크루즈인데도 상관없이, 꿀밤을 먹이고 싶다는 충동이 절로 치밀었다. 하여간에, 오늘 이야기할 《제리 맥과이어》는 톰 크루즈가 근사한 얼굴을 빛내며 "You Complete Me, "라고 고백하는 장면으로 유명하지만 내겐 그리 어여쁘지만은 않은 영화였다. 《제리 맥과이어》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말랑말랑한 버전의 필경사 바틀비가 아닐까, 라는, 다소 울적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엔 모두가 생각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테마가 몇 가지 있다. 아니, 말하더라도 다 함께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것이 있다. 『피로사회』라는 책 제목을 훑거나, 과로사로 세상을 등진 이들이 많다는 신문 기사를 읽을 때 그들과 나의 처지를 동일시하며 상대와 자신을 눈물겹게 여기고, 소위 말하는 '이놈의 세태'에 분노하면서도 어제와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살아나가는 우리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데없는 감성/감정/소망 등은 결국 우리의 발목을 잡을 뿐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통계로 대표되는 경제 논리의 관점에선- 우리의 경험이 진실이기도 하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제리 맥과이어》엔 이런 세태에 반기를 든 남자가 등장한다. 주인공인 제리(톰 크루즈)는 스포츠 에이전시에 근무하는 유능한 매니저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일상에 환멸에 느낀 그는 새벽 감성에 젖어, 칸트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업무 지침서를 작성하여 회사 내 전 직원에게 선물한다. 안타깝지만 회사의 시선으로 보자면, 제리가 저지른 한순간의 기행은 그가 효율적인 경쟁력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영화가 시작한 지 25분이 채 되기도 전에 제리는 해고된다.
그렇다면 해고된 직후 제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자신이 키워내고픈 스포츠 유망주와 일대일의 가슴 뛰는 관계를 순탄하게 이어나가며 승승장구할까? 인간을 도구화시킨 자본주의의 허무함을 신랄하게 폭로할까? 전혀 아니다. 생각해보자. 제리의 업무 지침서는 충동적으로 쓰인 글이었고, 전날 밤까지만 해도 제리 맥과이어라는 남자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누구보다 훌륭하게 적응한 남자였다. 스포트라이트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매니저라고 이야기했다지만, 그는 미국이 사랑하는(혹은 사랑하게 될) 스포츠 거물들을 이어주고 커미션을 획득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업무 지침서에 '취해'있었을 진 몰라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그래도 운명의 여신이 제리를 완전히 버리진 않았나니, 제리는 자신의 업무지침서에 깊은 감명을 받은 도로시(르네 젤위거)와 새로운 에이전시를 꾸린다. 도로시는 마법세계에 발을 잘못 디딘 동화 속 주인공처럼, 경리직원임에도 자본주의 특유의 비인간적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며, 감성적 순수를 지닌 여자다. 제리의 비서인 웬디가 월급 인상이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며 그를 따라가지 않는 것과 달리, 어린 아들을 키우는 미혼모인 도로시는 4대 보험조차 보장이 어려운 제리의 신생 회사를 택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여기서부터 영화가 뻔해질 거라 코웃음 치기 쉽다. 남주인공을 따라간 여주인공이니, 당연히 사랑에 빠질 것이고, 사랑을 원천 삼아 직업적 성공까지 일궈낼 것만 같다. 아니, 실상은 다르다. 《제리 맥과이어》에서 제리와 도로시의 관계는 오랜 세월에 걸쳐 녹슨 문처럼 끊임없이 삐끄덕댄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다 겪은 하루의 끝에서조차 제리와 도로시가 바라보는 세상은 하염없이 다르만 하다. "가끔은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라는 도로시의 고백은 제리가 업무적으로는 뛰어난 협상가였을지는 몰라도, 사적이고도 내밀한 인간관계에선 문제적 인물일 수 있음을 폭로한다. 물론 도로시 역시 어느 정도 인간관계에 있어 능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제리를 먼발치에서 동경하는 인물로 그려졌으며, 열 명의 이혼녀와 이야기하는 현실을 지긋지긋해하는 동시에 또래 여자들의 삶을 부러워했다. 영화 중후반부, '우리가 황홀함에 빠져서 사랑한다고 믿었'던 게 아니었겠냐는 도로시의 지적은, 최소한 도로시에게 있어선 일부 사실이었으리라.
이러한 두 사람의 위태로운 관계를 임시적으로 봉합하는 존재는 바로 도로시의 아들인 레이(조나단 립니키)다. 제리든 도로시든 결국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하는 어른인 반면, 레이는 그렇지 않다. 어린아이는 자야 한다는 엄마의 규칙을 손쉽게 넘나들고, 제리에게 "안녕, 제리 아저씨"라고 인사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다. 한밤중 모르는 아저씨에게 "지금 동물원에 가자"라고 이야기할 만큼, 어떤 사회적 속박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소망에 충실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레이는 그 어떤 어른보다 삶의 주권을 뚜렷하게 쥔 존재처럼 보인다. 모든 인간관계를 합목적성 하에 계산을 했던 제리가(그는 심지어 레이가 자신의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하자, 그 '대가'로 동물원에 꼭 가야겠다고 이야기한다) 잘 나가던 스포츠 에이전시를 나오자 연인으로부터, 친구로부터, 동료로부터, 사업 파트너로부터 루저 취급당한 모습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그렇다 한들 영화의 드라마적 요소를 충족시키는 제리의 성장은 보이드 가家에서 이뤄지지 않으며, 오히려 로드 티드웰(쿠바 구딩 주니어)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두 사람이 비즈니스 파트너에서 친구로 거듭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나 제리에게 더욱 그랬다. 에이전시를 나온 후 경제적으로 파산한 그는 절박하다. 모든 가능성을 붙잡아야 한다. 사무실에서 그에게 쇼 미더 머니를 외치게 했던 이해할 수 없는 선수에게 '내겐 너 하나뿐이야, '라는 말을 건네야 했고 모든 자존심을 저버리며 도와달라 외치고 광고주에게 비굴하리만큼 굽신거려야 했다. 남은 패가 많지 않은 제리에겐 더 이상 물러날 자리도 없고, 포기할 여력도 없다.
하지만 어디 인생사가 마음대로 흘러가던가? 제리와 달리 자신의 하나뿐인 클라이언트는 불만이 산더미다. 약속했으니까 의리를 지키겠다며 제리 곁에 남은 로드는 언뜻 영화 내에서 가장 자유로운 인물처럼 보이기 쉬우나, '쇼미 더 머니'나 '콴'을 큰 소리로 외치는 그는 기실, 경기장 밖에서의 매너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거액의 계약금을 원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자본주의에 강하게 예속된 인물이었다. 이기적인 그의 태도가 자꾸만 몸값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던 로드는 제리의 잔인하리만큼 정직한 말에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넌 너무 액수에 연연해. 가슴은 없고 머리만 굴릴 뿐이야. 경기에선 돈 생각만 하고 그런 태도로는 관중을 감동시키지 못해.” 그렇다. 20세기 서프러제트 역사에서 “We want bread, but we want roses, too!”라는 슬로건을 찾을 수 있듯, 인간에겐 울림이 필요하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오로지 돈과 계산만으로는 인간이 살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 영화는, 그러나 제리의 시선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이 영화의 장르다. 《제리 맥과이어》는 드라마/코미디/멜로/스포츠라는 네 가지 장르를 납득 가능할 만큼씩 흡수한 영화다. 한 가지 장르에만 집중해서 두 시간을 투자해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네 가지 장르가 한 영화에 뒤섞인 이유가 뭘까? 최소한 《제리 맥과이어》에서의 답은 단 하나뿐이다. 주인공인 제리 맥과이어가 관계에 있어서, 비즈니스에 있어서 두 시간 내내 우왕좌왕했기 때문이라는 것.
위에서 말했듯 그의 업무지침서는 충동적으로 쓰였다. 새벽녘에 쓰인 '꿈'이 신념으로 자라기 전 제 자리에서 쫓겨났기에, 제리는 기존 체제와 완전히 척을 진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도로시를 움직인 낙관적인 인간 찬가를 자신 있게 확대할 만큼의 용기 혹은 배짱이 없다. 우연에서 출발한 도로시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로시를 배려하고 그의 아들 레이에게도 친절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진 못한다. 분명 끔찍한 사이도 아니고, 머리로 계산한 관계인 것도 아니나, 진정성 있는 관계도 아니다. 그렇기에 제리는 집에 돌아가는 시간을 줄였고, 결국 맥과이어 부부는 너무도 금방 별거하는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이 다시 함께할 수 있던 이유는 제리가 도로시를 향해 뛰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 말미 제리의 대사에선 그의 성장이 끝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로드가 멋진 경기를 이끌어내자 택시를 잡고 무작정 도로시에게 달려갔음에도 제리의 입에선 곧바로 사랑한단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은…… 모르겠어. 다만 오늘 밤은 우리 회사가 성공한 날이야. 아주 크게 성공했어. 하지만 뭔가 부족했어." 한참 후에야, 그것도 '차가운 세상'과 '힘든 경쟁'을 먼저 언급한 후에야 제리는 비로소 도로시에게 사랑한단 말을 건넸다. 그러하므로 제리는 여전히 사랑을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사람이다. 다만, 제리가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며, 자신의 가장 특별한 사람에겐, 특별한 애정을 건넬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단 것 역시 자명하다. 그렇기에 도로시는 그의 입에서 그리움이 먹먹하게 담긴 "안녕, "이라는 말이 흘러내린 순간 모든 걸 용서했다.
이렇듯 《제리 맥과이어》는 둘의 결합이 서류상의 부부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부부로 거듭났다는 것을 보여주며 제리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제리의 선택이 궁극적으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 제작진이 선택한 엔딩 장면이 유명 CEO의 한마디였기 때문이다. 제리가 로드와의 관계, 도로시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으로 해피엔딩은 완성될 수 없다는 가정이 영화 뒤에 자리한다. DICKY FOX라는 명패가 똑똑히 새겨진 그가 말한다. "살아오면서 성공만큼 실패도 많이 했지만, 아내를 사랑했고 인생을 사랑했죠." 영화 내에 묘사된 제리 맥과이어의 기행과 업무상의 순간적 추락은 높은 확률로 '실패' 축에 속할 것이다. 다만 영화 이후 제리의 삶은 달라질 터다. 로드가 높은 금액으로 재계약하는 데에 성공했듯, 제리는 곧 뛰어난 기량의 소수의 스타 선수들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커미션 금액으로 가족을 부양할 것이고, 레이는 어쩌면 야구선수가 될 것이다. 새아버지인 제리가 일궈둔 인맥이 도움이 될 건 뻔하다. 관객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본주의적 성공신화에 대한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둔 후, 디키 폭스(제러드 주심)가 영화 끝에서 관객에게 충고한다. "바라건대 여러분도 저처럼 살아가세요."
결국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우리는 일과 사람을 양분하지 않고 모두 누릴 수 있으리라 속삭인다. 제리처럼 무모할지라도 충동적인 용기를 낸다면 말이다. 굳이 사회 시스템 전반을 흔들지 않고도 획득할 수 있는 이 달콤함은 심지어 기업의 CEO가 되는 것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암시를 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결국, 소시민들에게 “체제가 허용한 한도 내에서 자유를 생산하고 소비한다는 착각을 적극적으로 누리"며 "스스로가 속한 체제에 더욱 철저히 속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게(이용화, 2018)"되는 모습을 종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일까. 《제리 맥과이어》를 모두 감상한 내 마음속에 남는 대사는 다름 아닌 이것이다. “그건 단지 업무 지침서일 뿐인데. (It was just a mission statement.)”
★★★☆
참고문헌
이용화 (2018). 필경사 바틀비에 나타난 호모 에코노미쿠스적 삶에 대한 멜빌의 고찰. 인문학 연구, 29, 135-160
-
- [2021 CINEPICK AWARDS] 최고의 한국영화를 pick하라!
? 씨네픽 연말 EVENT!
2021 국내 개봉 한국 영화 중
최애 3편에 투표하면
커피 기프티콘이???
영화 정보도 얻고 상금도 받고!
영화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 씨네픽!
? 기간 : ~ 12월 31일
? 응모는? 씨네픽 어플에서 부탁드려요
? 씨네픽 큐큐(Quote Quiz) 절찬리 진행중!! ?
? 씨네픽 숏-퀴즈 절찬리 진행중!! ?
아이폰 다운로드 https://apps.apple.com/kr/app/%EC%94%...
안드로이드 다운로드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
#씨네픽 매주 목요일 밤 11시 59분 오픈
#CINEPICK #영화 #추천 #박스오피스 #예측 #상금 #20만원 #클릭비 #김태형 #오윤희
TRANSLATE withx
EnglishTRANSLATE withEnable collaborative features and customize widget: Bing Webmaster Portal
-
-
- 영화 <소울메이트> 메인 예고편
서로 달라 가까워지고 서로 달라 멀어지다 기억할게 모든 순간 '소울메이트' 메인 예고편 공개
-
- 영화 <재춘언니> 메인 예고편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해고 노동자의 4464일, 문화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재춘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