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us2025-03-26 00:26:13
인생을 스윙할 수 있다면
영화 <스윙 걸즈> 리뷰
청춘물이라는 환상
중학생 때 재활용 작가의 웹툰 <연민의 굴레>를 무척 좋아했다. 허술한 반항아 ‘차련’과 그녀의 소꿉친구이자 완벽한 모범생 ‘안민’이 주인공인 성장만화로, 차련은 불량 학생 소굴로 알려진 ‘미스터리 클럽’에 들어가서 거창한 꿈 대신 소소한 일상을 돌보며 살아가도 되는 점을 배우고, 학생회 소속의 안민은 몰래 차련과 친동생(안미나)가 가입된 미스터리 클럽을 보호하면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다.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미스터리 클럽과 학생회의 다른 인물들도 저마다의 성장을 이루는데, 그 과정이 정말 감동적이다.
당시 <연민의 굴레>는 고입을 앞둔 내게 동아리의 환상을 심어주었다. 고등학교에 가면 저렇게 다양한 동아리가 있고, 동아리 활동을 통해 친구를 사귀고 여러 경험을 쌓으면서 자아를 탐구하고 실현할 수 있겠다는 그런 환상. 딱 <연민의 굴레> 같은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부푼 꿈을 안고 고등학생이 된 나는 동아리 활동은커녕 무한 자습 지옥에 빠진 나날만 보내며 10대를 마무리했다.
이제는 안다. 청춘물은 어른의 환상이다. 현실의 10대는 마냥 아름답고 눈부시지 않다. 아름다운 청춘을 누리기엔 10대의 정신은 연약하고 제약도 많다. 이제 나는 청춘물을 보면 설렘에 빠지는 대신 회한에 젖는 사람이 되었다. 분명 나도 지나온 시기인데 어쩜 저렇게 다를까. 어쩜 저렇게 눈부실까….
<스윙걸즈>의 눈부신 여름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한 시사회에서 본 영화 <스윙걸즈>도 내겐 환상 같은 청춘물이다. 따분한 보충수업으로 여름방학을 보내게 된 아이들은 지루한 수학 수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밴드부를 위한 도시락 배달을 자처한다. 그러나 무더위와 험난한 여정을 견디지 못한 도시락은 상해버리고, 배달했던 아이들은 단체로 식중독에 걸린 아이들을 대신해 갑작스럽게 악기를 손에 쥐게 된다. 보충수업을 피하는 수단에 불과했던 밴드부 활동은 어느새 일상의 커다란 원동력이 된다.
청춘물은 나라별로 그 매력이 다 다른데, 내겐 유독 일본의 청춘물이 가장 찬란하고 아름답다. 정서적으로 우리나라와 제일 유사하면서도 동아리 활동이 특화되었다는 특이점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실제 일본의 10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겠지만, 공부와 스펙 쌓기에 짓눌린 채 10대를 보낸 나 같은 한국인에게 <스윙걸즈>의 세계는 현실과 유사해 보이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와 같다.
<스윙걸즈>의 10대들은 조금도 무겁지 않다. 그들이 피하고 싶은 건 지루한 보충수업뿐이다. 그러면서도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진지하기 그지없다. 소리내는 것부터 쉽지 않아 폐활량을 늘려야 한다며 운동을 시작한 그들은 고된 훈련에 보충수업이나 들을 걸 그랬다며 후회한다. 그러나 후회도 잠시, 점점 악기에서 소리다운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음악에 눈을 뜬 그들은 보충수업을 듣는 것보다 훨씬 바쁜 여름방학을 보낸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새로운 경험, 예상치 못하게 발견한 즐거움, 친구들과 함께 꽃피우는 열정. 그들의 여름을 수놓은 모든 것이 너무 반짝반짝 빛나서 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보상이 없는 열정이어도
<스윙걸즈>의 눈부신 여름은 식중독에 걸린 밴드부 멤버들이 예상보다 빨리 퇴원하면서 처음으로 위기를 맞는다. 밴드부를 대신해 시합 응원에 나서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던 건데 ‘진짜’ 밴드부가 돌아왔으니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단기간에 많이 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엉성한 그들의 연주보다는 능숙한 밴드부의 연주가 훨씬 시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잠깐의 백일몽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은 허무한 마음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처음부터 악기 연주는 관심도 없었다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미련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시합’이라는 뚜렷한 목적이 없어도 다시 연주를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 악기를 사고 연습할 공간을 찾아 떠돌아다니며 처음 연습했을 때보다 더 절박한 심정으로 아무런 보상이 없는 연습을 계속한다.
10대 시절 황폐한 내 마음속은 보상 심리로만 가득했다. 지금 아무리 삶이 남루해도 조금만 견디면 더 나은 인생이 펼쳐질 거라고 확신하며 모든 행복을 미래로 미뤘다.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장된 행복’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른다. 내가 10대 시절을 회한으로만 기억하는 이유는 단 한 순간도 현재를 즐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참고 견뎌야 했던 그 시기에 내가 얼마나 빛났는지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스윙걸즈>의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연습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지. 그 시절의 자신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든 상관없다.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가장 빛나는 선물을 얻었다. 추억이라는 선물.
영화의 제목에 들어있는 단어 ‘스윙’은 재즈 연주의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리듬감을 말한다. ‘흔들거리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에서 유래된 ‘스윙’이라는 말이 이 영화와 참 어울린다. 아이들은 계속 흔들거린다. 처음엔 소리조차도 내지 못하고 간신히 실력을 키웠더니 연주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악기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고 연습할 공간도 변변치 않다. 하지만 그 모든 흔들거림이 곧 리듬이다.
회한에 젖은 꼰대처럼 글을 쓰긴 했지만, 이 영화를 보고 오히려 내가 전혀 늦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순간을 즐기지 못한 10대 시절이 아쉬우면 지금부터라도 즐기면 된다. 영화를 보고 나니 ‘달라도 돼, 틀려도 돼, 엇박자로 OK~?’라는 포스터 문구가 뭉클하다. 좋아하는 마음은 늦을 수 없다.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어떠한 종착지에도 다다르지 못해도 빛날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스윙할 수 있다면 나의 매 순간도 청춘물일 수 있지 않을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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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나더 라운드 스포일러 없는 리뷰 - 권태로운 삶에 위스키 한 잔을 더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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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같은 고등학교 교사 니콜라이, 마르틴, 페테르, 톰뮈는 의욕 없는 학생들을 상대하며 열정마저 사라지고 매일이 우울하기만 하다.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르틴이 실험에 들어간다. 인기 없던 수업에 웃음이 넘치고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활기가 생긴 마르틴의 후일담에 친구들 모두 동참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정한다.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할 것!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을 것!]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 최적의 직업적, 사회적 성과를 위해 점차 알코올 농도를 올리며 실험은 계속되는데… 과연 술은 인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을지, 도전의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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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어른은 없다, 주름진 아이만 있을 뿐
#기쿠지로의_여름 #스포일러_없는 #리뷰
최신 일본 영화를 리뷰하고 추천합니다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을 소개합니다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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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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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2차 예고편
“우리는 격하게 세상을 구하고 싶다!”
살고 싶다면 무조건 성공시켜라!
최강 우주 빌런에 맞선, 자살특공대에게 맡겨진 ‘더’ 대책 없는 작전.
팀플레이가 ‘더’ 불가능한 최악의 안티히어로들.
최고의 팀워크를 기대한다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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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공식 예고편
대원들이 살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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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SYNOPSIS.
‘예분’은 손녀 ‘수정’을 사고로 잃은 뒤 삶이 1년 전 그날에 멈춰버렸다.
손녀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매일 같이 강가에 나가는 ‘예분’ 앞에 손녀의 절친 ‘지윤’이 나타난다.
두 사람에겐 들어야 할 진실이 있고, 삼켜야 할 비밀이 있는데…
진실과 비밀 사이 깊은 슬픔이 일렁인다.
#각자의 물결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스쳐간 자리는 그 이전과 영영 같을 수 없다. 설령 떠나간 이가 나에게 아주 작은 조각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아주 작은 구멍이 난 유리창이어도, 깨진 곳 없는 유리창과는 같을 수 없다. 그 작은 구멍 사이로 바람이 숭숭 불어와, 누군가의 빈 자리를 절감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아주 작은 순간일지언정.
하물며 이 이야기 속 예분과 지윤에게는. 손녀를 잃은 할머니 예분, 가장 절친한 친구를 잃은 중학생 지윤. 이들은 다른 부위에 난 같은 상처를 안고, 매일 다른 물로 뛰어든다. 예분은 손녀를 삼킨 강에 금속 탐지기를 들고 나가 손녀의 유품으로 추정되는 것을 매일 찾고, 지윤은 친구와 함께 있던 수영장에 매일 들어간다. 하나의 상실이 남긴 각자의 상처, 각자의 물결 속에서 이들은 매일 허우적거리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이들이 매일 뛰어드는 물 속의 축축함이 관객석까지 넘실넘실 전해진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문장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중간중간 교차하는 과거의 장면들을 보면서, 예분과 지윤의 시간을 순서대로 톺아볼수록 더욱 축축해진다. 그들의 과거와 그들의 현재, 그 사이 이들에게 있었을 무수한 감정들이 겹겹이 전해져서다.
#중첩되는 소리 속에서
이렇게 감정을 겹겹이 전달하는 데에는 소리가 큰 몫을 한다. 수정이 사고를 겪은 당일부터, 슬픔의 소리는 다른 소리들과 중첩되고 혼재되기 시작한다. 거센 빗소리, 경찰차 사이렌 소리, 수정을 잃은 엄마의 울음 소리...들이 어지러이 섞여들면서. 아주 거대한 슬픔의 소리는 다른 소리들을 쉽게 삼켜 슬픔으로 중첩시키고, 우리를 먹먹하게 한다. 예분의 금속 탐지기 소리처럼, 때로는 진실을 찾으려 날카롭게 세운 소리가 반대로 귀를 막기도 한다.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할 만큼 했다는 말을 격렬하게 거부하며 끊임없이 진실을 찾아 헤매는 예분처럼.
사실 예분에게, 지윤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진실을 드러내고 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깊고 진득한 자책을 덜어낼 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이를 잃어버린 빈 자리를 돌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인간에게는 꼭 필요하니까. 그토록 숱하게 죽은 몸을 어루만지고, 누군가의 떠난 자리를 정리하며 살았던 예분이지만 정작 손녀의 죽음과 거기 어린 자기 감정들을 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토록 함께 뛰어들던 물 속, 그 익숙한 감각 안에서 친구를 잃은, 이어지는 상실 속에서 도저히 여유가 없는 지윤 또한 마찬가지다.
#물결도 소리도 없이 고요하게
이러한 두 사람이 부딪쳐 파장이 이는 자리마다 삶과 죽음이 물비늘처럼 몸을 뒤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치열하게 마주한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찾고자 혹은 감추고자 한 것이 정말 진실이었을까? 진짜 필요했던 것이 과연 진실이었을까? 가까워지고 다가서는 두 사람의 장면들을 통해, 두 사람의 거리 사이에서, 영화는 그 답을 조심스럽게 피워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죽음 이후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뭐부터 버려야 돼요?" 묻는 지윤에게 "남길 것부터 정리해야지." 말하는 예분의 차분한 어투다. 그렇게 죽음의 대처법을 가르치고서는 정작 지윤을 데려가는 곳이 병원과 식당으로, 죽음에 앞서 삶부터 가르친다는 점 또한.
죽음과 삶은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맞붙어 있다. 삶은 애초에 그렇게, 무수한 이들의 삶과 죽음이 조각조각 물비늘처럼 맞붙어 강을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하나의 물비늘, 그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지도. 그러나 설령 이 하나하나가 아무 것도 아닌 순간이라 해도, 강은 그런 식의 물비늘이 모여 반짝반짝 흘러 간다.
그렇게 끊임없이 몸을 뒤채는 만남과 헤어짐, 이해와 오해, 그 틈바구니 삶이라는 곳에 우리 그저 소리 없이 나란히 눕는다면. 다른 베개, 다른 이불, 다른 부위의 같은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그대로, 그저 같은 요 위에 나란히 눕는다면. 그때 비로소 이 마음에서 축축하고 눅눅한 습기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사실, 모든 축축한 것을 마르게 만드는 햇볕이니까.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 개봉은 12월 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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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이와 이경의 눈부신 성장 로맨스
“우리는 마시고 내쉬는 숨 그 자체였다”
태생적인 갈색톤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로 놀림을 당해 온 평범한 고등학생 이경이 우연하게 날아온 축구공에 맞아 안경이 부러지며 축구선수 수이와의 첫 만남이 시작된다. 미안한 마음에 수이가 매일 같이 이경을 찾아 딸기우유를 건네며 둘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묘한 사랑의 감정을 키워 나간다. 시간은 흘러 고3의 여름, 둘은 서로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지만 수이는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축구 선수의 꿈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이경은 평범한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서울로 상경한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이어가며 사랑을 지속하지만 조금씩 어긋나고 뒤틀리는 관계에 이별을 맞이한다. 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된 동명 소설을 원작을 옮긴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그 여름은 수이와 이경이라는 두 여고생의 뜨거운 여름날에 시작된 반짝이는 청춘의 순간을 전한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된 사춘기 소녀의 첫사랑과 뒤이어 따르는 성장이라는 주제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관객들의 정서적 공감을 이끄는 형식으로 강렬하기보단 천천히 젖어드는 작은 떨림이 존재했다.
애초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정보만을 인식한 채 시사회에 간 거라 예상치 않은 퀴어(LGBT) 장르가 한국, 그것도 애니메이션 극장판으로 나왔다는 것에 조금 놀랐지만, 앞서 언급한 잔잔한 여운이 남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인종, 성별과 관계없이 대중들의 공감을 일으킨다는 건 이미 해외의 여러 수작들로 증명된 바이고 특히 첫사랑은 늘 설렘과 두근거림을 상기시켜주지 않는가? 묘한 눈빛과 감정, 소소한 손길이 닿는 베스트셀러 바탕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러한 강점들을 잘 살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이 떠오를 만큼 인물, 시골과 서울 등을 묘사한 한국 애니메이터들의 발전된 그림체는 학창 시절부터 20대 초반을 지나치는 시간을 담은 빛바랜 사진첩처럼 추억을 선사하며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더욱 그럴싸하게 꾸며준다. 여기에 메인 테마곡 정우의 ‘그 여름’,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브론즈 with 미노이의 ‘HARU’ 등의 노래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두 사람의 상황과 이어지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며 섬세한 작화만큼이나 감성적 터치로 관객에게 여운을 남긴다.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그 여름은 그렇게 성장과 첫사랑이라는 감정을 두 소녀의 풋풋한 감정을 시작으로 20대의 이별까지 그린다. 시종일관 담담한 기조는 격렬한 감정의 파고보다 한 방울로 시작된 호숫가의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평범했을지도 모르고, 혹자에게는 특별했을지도 모를 추억을 떠올려보라는 듯 말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연출과 누군가의 마음을 훔쳐본 듯한 스토리는 매력적이지만, 슬픔을 억누르고 상대방의 행복을 빌며 애써 웃음 짓는 이별의 순간도,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만큼 중요한 것이기에 60분가량의 짧은 분량에서 후반부 이별을 맞이하는 두 사람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여 비싸진 티켓값에 관객이 선뜻 선택할지 의문이 남는다. 멋지게 표현된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으테니 말이다.
“열여덟 여름에 처음 만났다”
갈색 눈동자를 가진 평범한 학생 '이경' 여름의 햇살을 닮은 고교 축구선수 '수이' 열여덟 살의 여름, 예기치 못한 사랑에 빠진 '이경'과 '수이'는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며 스무 살을 맞이한다. 대학에 진학한 '이경'과 달리 '수이'는 바로 사회에 뛰어들고, 낯선 행복과 사소한 오해 속에서 둘은 새로운 계절을 마주하게 된다.
예고편│Trailer
원제: The Summer│감독: 한지원│원작: 최은영 작가의 동명 단편 소설
출연진: 윤아영, 송하림 외 多
장르: 애니메이션, 드라마, 멜로/로맨스│상영 시간: 61분
국가: 대한민국│등급: 12세 관람가
제작: (주)레드독컬처하우스│배급: 판씨네마(주)
평점: 평론가 7.0
개봉일: 2023년 6월 7일
한 줄 평 : 비로소 깨닫는 첫 사랑이 남긴 계절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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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이 아닌 곳으로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건 서사일까. 물론 이야기의 기승전결 뼈대는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서사를 통해서도 감정을 실어나르는 쪽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사뿐 아니라 미술, 음악, 카메라 등 모든 요소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협업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서사 없는 영화는 있어도 감정 없는 영화는 없다고도 느낀다. <아네트>도 그렇다. 서사는 자못 단순하지만 그 안의 감정은 깊다.
감독 본인이 초반에 등장해 이제 시작하자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사람은 딸이다.), 배우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는 영화 오프닝 시퀀스는 이 영화가 현실이 아니라 극임을 똑똑히 못박는다. 이제 이 선을 넘어 현실이 아닌 곳으로 들어가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잠시 현실에서 눈을 돌려 몰입할 이 세계는 나에게 어떤 감정을 안길 것인가.
기대하는 관객 앞에, 이 영화를 함께 제작한 밴드 스팍스에 이어 배우들이 노래하며 차례차례 등장한다.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야르, 사이먼 헬버그까지 나란히 서서 노래할 때, "So may we start? 이제 시작할까요?" 하고 물을 때, <라라랜드>의 오프닝 시퀀스 생각도 나고 뮤지컬 시작할 때 같은 기분도 든다.
영화는 앤(마리옹 꼬띠야르)과 헨리(아담 드라이버)의 사랑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 다 무대에 오르는 직업이지만 양상은 많이 다르다. 오페라 가수인 앤은 드레스를 입고 무대보다 더 높은 무대로 올라가 장렬한 죽음을 맞는 반면, 스탠딩 코미디언인 헨리는 속옷 하나에 복서들처럼 로브 차림으로 직접 문을 열고 나와 마이크 줄을 채찍처럼 휘두른다. 어딜 가든 사과를 깨물고 있는 앤, 담배와 바나나를 들고 몸을 푸는 헨리. 관객을 죽여주는 헨리와 관객을 위해 죽어줌으로써 그들을 구원하는 앤. 두 사람이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둘을 보는 시선까지도 모두 다르다.
두 사람의 노래는 "We love each other so much 우리는 서로를 정말 사랑해"라는 가사를 반복한다. 둘을 둘러싼 세간의 시선을 잘 알고 있고,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푹 빠져있지만, 그 한 마디만 반복하는 사랑은 어쩐지 불안하다. 숲을 지나, 세상과 떨어진 곳에 두 사람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둘은 이내 결혼식을 올린다. 각자의 예술, 함께 부르는 노래, 중간중간 삽입된 기자들의 대사나 뉴스 보도를 통해, 사랑의 서사는 단순하게 쌓인다.
송스루 뮤지컬이란 참 특이한 장르다.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영화에서라면 인물의 표정과 입 모양으로 단박에 구분될 대사와 독백, 방백이 따로 없이 모두 노래로 흘러나온다. 그러다 보니 기묘하게 현실에서 들뜬 느낌, 현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레오 카락스 감독 특유의 독특한 스타일은 한층 더 새로운 감각들을 이끌어낸다.
무대에 오르는 일을 업으로 삼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한 사람은 승승장구를 한 사람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감정의 골이 쌓이고...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단순한 이야기에 스타일을 부여하면서, 기묘하게 현실에서 반쯤 떠오른 느낌을 준다. 인물들이 입는 원색 옷과 계속 등장하는 소품의 색깔조차 꾸며진 세계의 느낌을 더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아빠의 농담과 엄마의 웃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아네트는 작은 목각인형으로 표현된다. 불쾌한 골짜기에 걸친, 그러니까 애매하게 사람을 닮다 말아서 더 기묘한 기분이 드는 모양새다. 이런 불쾌한 골짜기에 놓인 물체들은 어쩐지 자꾸 눈을 의심하면서 계속 바라보게 만든다. 징그러워 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그것을 계속 바라본다. 왜일까. 내가 바라보게 되는 건 어떤 지점일까.
아마도 죽음과 가까운 어딘가. 이 영화는 그곳을 심연(abyss)으로 부른다. 엔딩 크레디트의 스페셜 땡스투에 에드거 앨런 포가 있어 의아했는데,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토대로 쓴 곡이 있다고 감독이 밝힌다. "바다 위의 절벽에 매달린 상태로 바다를 쳐다보면 떨어져서 죽을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계속 쳐다본다. 멈출 수가 없는 거다. 그게 바로 심연에 대한 마음이다. 죽고자 하는 마음과 같은 것." (GQ코리아 인터뷰 <레오 카락스의 선명한 세계> 중에서)
극중 인물들은 모두 죽을 걸 알고도 뛰어드는 사람들처럼 존재한다. 생사를 의식하지 않는 인물들의 생사. 생에 아득바득하지 않는, 오히려 그 심연을 바라보는 인물들. 어쩌면 그 점이 이 영화의 모든 인물들을 무대 위 존재로 보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넓게 보면 아네트뿐 아니라 모두가 목각인형처럼 움직이고 있다. 인물들은 마지막 장면에서야 내게 사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였을까. 엔딩 장면을 보는 내내 이유 모를 눈물이 줄줄 났다.
인간은 왜 심연을 바라보게 되는가. 아니 심연을 바라보기 전까지는 무엇을 응시하고 있었는가. 무엇에서 눈을 떼고 심연으로 시선이 이동하게 되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헨리의 삶으로 영화는 대답한다. 감독이 자랑스럽게 또 사랑스럽게 언급하는 그 딸의 존재를 비롯하여, 헨리에게서는 레오 카락스 감독의 냄새가 난다. 감독의 개인사는 물론 감독이 스스로에게 갖는 감정들이 반영된 캐릭터로 보인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만들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하는,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는 엔딩 장면은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말이 들어있다. 심연을 바라보지 말라는 말은 다시 말하자면 심연을 바라보기 전까지 응시하던 것들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는 뜻으로 치환해도 괜찮지 않을까. 사랑과 예술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던, 고된 것 같아도 자부심으로 빛나던 얼굴을 잃지 않고 삶에 발 디딘 채 살라는 말로.
극중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그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불쾌한 골짜기 너머 심연의 존재를 인식하며, 화려하고 그로테스크한 것들이 온통 엉켜 있는 영화 바깥으로 나온다. 아주 어쩌면, 영화 산업의 빛과 어둠을 하나로 뭉치면 이 영화와 같은 색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영화라는 세계로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을 이토록 선명하게 느끼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막이 오르면 세상은 무대가 되고, 막이 내리면 우리는 영화 바깥으로 다시 정중하게 퇴장을 요구받는다. 엔딩 크레디트 다음에 나오는, 인물들이 등을 들고 걸어가면서 부르는 노래는 "좋았다면 친구에게 이야기하세요. 친구가 없다면 모르는 사람한테라도 이야기하세요."라는 가사가 귀엽기까지 하다. 순순히 시키는 대로 안녕히 돌아오면서, 등 뒤로 막이 내리고 문이 닫힌 것 같은 착각마저 느낀다. 심연 대신 삶을 응시하며 걸어간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GQ코리아의 레오 카락스 인터뷰 <레오 카락스의 선명한 세계>를 참고하고 인용하였습니다.
https://www.gqkorea.co.kr/2021/10/19/%EB%A0%88%EC%98%A4-%EC%B9%B4%EB%9D%BD%EC%8A%A4%EC%9D%98-%EC%84%A0%EB%AA%85%ED%95%9C-%EC%84%B8%EA%B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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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 스프링스 시사회 영화 후기 - 타임 루프로 커플 만들기 어렵지 않아요!
에이브와 탈라의 결혼식에서 무한 타임 루프를 하게 된 나일스는 현재를 반복해서 살게 된다. 모든 죽는 방법을 써봐도 현재로 되돌아오는 타임 루프는 사실 어느 사막에 있는 동굴 입구에서 시작되었는데 로이라는 할아버지가 나일스를 죽이려고 계속 쫓아온다. 하지만 나일스는 세라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려다 우연찮게 같이 동굴 입구로 들어가게 되고 둘은 에이브와 탈라의 결혼식 아침 첫날에 깨어나게 된다. 세라는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고민을 하다가 나일스를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싸우다가 친해진다. 그리고는 무한 타임 루프를 벗어날 방법을 찾으러 세라는 간다. 과연 사막에 있는 동굴 입구에 존재하는게 무엇이길래 타임 루프를 반복하게 될까? 나일스는 로이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타임 루프를 겪게 된다면
얼마나 삶이 피폐해지는지
알려주는 영화!
너를 끈질긴 악연으로 만나다 좋은 인연으로 만났다
그러다 사랑으로 번져가~
나일스는 찌질하고 코믹스러운 캐릭터지만 그런 나일스에게도 타임 루프로 인해 세라라는 인연을 만났다. 둘은 처음에는 끈질긴 악연이 될 뻔했지만 나일스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세라는 나일스에게 매력을 느꼈고 사랑을 나누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랑에도 권태기가 있듯이 둘의 사이가 나빠지기도 했고 벗어날 수 없는 타임 루프로 인해 세라는 자신이 저지른 업보라고 말한다. 나일스는 이에 한 술 더 뜬 채로 상상 속이라고 하거나 꿈속에 있거나 다중 우주를 벗어난 시물레이션 오류까지 언급한다. 그렇다. 나일스의 언급이 일부 맞았는게 이 영화에서는 양자 물리학을 다루는 개념이 나온다. 세라가 타임 루프를 벗어나기 위해 양자 물리학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고 수많은 이론을 바탕으로 동굴 입구에 있는 에너지 존재를 찾아낸다. 그리고는 온갖 방법을 써서 탈출하려고 한다. 또한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자신의 현실에서 안식처를 찾는 것과 지독한 인연이라도 나중에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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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으로도 채우기 힘든 사람의 마음
난 오늘도 크림 앱을 켜서 사고 싶은 물건을 구경했다. 보통이면 여러 개 찾아 보겠지만 근래의 나는 하나만 검색한다. 이제 물건은 나를 더 이상 기쁘게 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신발은 당근에 내놓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신는 것은 덩크 2족과 컨버스, 로퍼 4켤레다. 살 필요가 없던 것에 돈을 써왔다. 아. 이럴꺼면 그냥 우리 엄마 가방이나 사 줄걸. 무엇이든 경험해 보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라곤 하지만 요즘 신발장만 보면 씁쓸하다. 결국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건 내면이었다. 최소한의 사람구실만 할 정도로,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TPO만 맞는다면 일상을 사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남들 사춘기때 하는 걸 안하고 살았으니 그 만큼의 댓가를 겪었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이 합리화에 살을 더 붙힌다. 에잉. 그래도 뭐 먹는것보단 낫지. 물건이라도 남았으니까. 큰 손해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본다.
근데 이 합리화도 얼마 못 갈거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금전감각이란 큰 돈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무뎌지기
때문이다. 난 머지 않아 요즘은 뭐가 나왔나? 하는 마음에 스니커즈를 보고 있을 것이다. 또 아직 사회인도 아닌데 단일품목에 그정도를 태우는건 선 넘었지 하며 그거보다 싼 것들을 위시리스트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돈을 쓴다. 담배를 안 피우고 밖에서 밥을 잘 안 시켜먹는 내 생활패턴이 이 돈을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하며 내 자신을 속인다. 그리고 호구가 된다. 리셀가로 웃돈을 주고 산다. 이번엔 다를거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마찬가지다. 이걸 산다는 의미가 나의 어떤 것을 증명해주는게 아니라는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마음에 드니까 산다!라는 핑계로 난 나를 속인다. 이 세상은 내가 알아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남이 나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되게 잘 아는 인생의 교훈인데 가끔 나는 알아서 멀리 돌아간다. 가끔 내가 하는 행동이 코미디같다.<블루 재스민>은 자아의 붕괴에 관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재스민과 진저다. 진저와 재스민은 자매 사이다. 자매 사이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재스민의 남편이 진저의 돈을 갖고 사기를 친 것이다. 사실 사기꾼은 재스민의 남편 할이었어서 언니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긴 하다. 이에 따라 언니를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지만 진저는 수천의 빚에 명확한 일자리도 없는 언니가 루이비통 가방과 일등석을 타고 왔다는 사실에 황당해한다.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재스민. 정신 차리기는 커녕 재스민은 과거 회상에 자주 빠진다.
과거 회상에 자주 빠진다는 것은 현재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스민은 사실 오갈 데 없는 처지다. 동생 부부가 복권으로 딴 20만 달러를 사기당해 모두 날렸고 전남편은 남 등쳐먹은 사기꾼이었기 때문에 기댈 가족이 없다. 심지어 이에 대한 충격으로 아들 대니와도 멀어졌으니 낙동강 오리알이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돈 흥청망청 쓰던 과거에서 돌아와 현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재스민은 드와이트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드와이트는 정계 입문에 관심이 있는 외교관으로 품격 있는 미모의 재스민과 완전 찰떡인 커플이다. 둘의 연애 초기는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근데 이 알콩달콩한 분위기는 오래 못 갔다. 우연히 만난 진저의 전 남편(그러니까 남편 할의 사기 피해자)에게 재스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듣고 드와이트는 이별을 고한다. 어려운 이별을 받아들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재스민은 화를 불같이 낸다. 진저와 칠리가 깨를 쏟아내며 알콩달콩 사랑에 빠진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돌아버린 재스민은 진저 커플에게 악담을 내뱉고 밖으로 달려나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를 보자마자 '자아의 붕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지금 당장 네이버에 '자아'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과 관념이라는 뜻이 나온다. 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과 관념'은 구체적으로 딱 떨어지는 단어가 아니다. 그래서 각자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데, 나는 이 자아라는 단어를 삶의 기준이라고 적용하고 싶다. 내 자아가 무너졌을 때도 내 기준이 없어서 사람들이 규정한 것을 따라갔다. 재스민에게 있어 명품은 이 자아를 흐리게 만든 도구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나도 비싼 스니커즈들 좋아하고 아직도 신는 입장이라 잘 안다. 비싸다라는 기준은 애초부터 타인에게서 온다. 내가 싸다고 생각하면 싼거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또 이것은 상대적이다. 내가 어떻게 목표를 설정했느냐에 따라, 또 현실 지갑 상황에 따라 갈리는게 싸다 혹은 비싸다라는 관념이다. 이런 식으로 타인이 설정한 기준이 부조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을때가 있다. 나는 내가 비싼 스니커즈들을 사면서 느꼈던게, 이것들을 사다보면 사람의 돈이 쉬워진다. 넷플릭스 구독료가 올라간다고 하면 '와 얘들 돈독 제대로 올랐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30~40만원대 스니커즈들은 '괜찮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건이 주는 기쁨이 되게 신선한 것이라서 사치품을 사는 것이 자아가 혼자 설 수 있는 환경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더 중요한건 내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일텐데. 그것들에게서 받는 기쁨보다 중요한 건 맛있는거 먹고 좋아하는 사람 만나며 영화 재밌게 보는, 그런 사람의 근본적인 지점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이란 이런 '나는 누구인가'를 채워과는 과정이었다.
재스민은 명확한 직업 교육도 못받았고 무너지는 현실에 대한 대처능력도 없어서 이런 것에 대해 탐구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자아가 붕괴됐다. 오갈데 없는 입장인데 자기가 부자라는 환상에 빠진 채로 끝나는 결말이 그 예시다. 원래 자기가 만든 자아라는게 있었다면 돈을 해프게 쓰지도 않았겠거니와 동생의 복권 당첨금을 다 날려버리는 결과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 뿐일까? 돈 많은 남자랑 연애한다고 몸을 움츠리며 울 일도 없었을 것이고 사기꾼 남편을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쉬운 구조를 통해 현실감각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우디 앨런식의 코미디가 아닌 현실의 한 단면을 잘라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내가 누구라는 물음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있게 도와준다. 물건? 있으면 좋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내 자신이 어떻게 서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앞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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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수녀들 | 길 잃은 오컬트와 빛바랜 여성 서사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등학생 ‘희준’(문우진)은 자살을 시도했다. 자신에게 숨어든 악령을 내쫓기 위해. 하지만 악령은 좀처럼 희준의 몸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구마를 시도하던 장미십자회 소속 '안드레아 신부'(허준호)도 악령의 힘을 당해내지 못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유니아 수녀'(송혜교)는 이 악령이 12 형상 중 하나라고 확신하고, 구마 사제가 없더라도 구마 의식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렇지 않으면 희준은 곧 죽을 테니까.
하지만 희준의 담당의 ‘바오로 신부'(이진욱)는 구마의식을 의심하며 정신과 치료만으로도 차도가 있다며 유니아의 계획에 협조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녀는 바오로 신부의 제자인 ‘미카엘라 수녀'(전여빈)가 자기처럼 악령을 느낄 수 있다는 비밀을 눈치채고, 그녀에게 막무가내로 도움을 요청한다. 미카엘라는 자기 과거를 희준에게 투영하며 유니아를 돕기로 결정하고, 두 수녀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구마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또 실패한 한국 영화 속편
한국 영화의 속편 제작 소식은 그렇게까지 기대받는 뉴스가 아니다.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호평받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해적 2>, <국가대표 2>, <강철비 2>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던 작품들의 속편만 보더라도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속담이 유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신과 함께>, <범죄도시> 시리즈처럼 애초에 시리즈물로 기획되는 경우가 예외일 뿐이다.
전편의 성공을 이어받지 못한 속편들은 공통점이 있다. 제목 외에 연속성이 없다. 이름만 같을 뿐, 배우부터 캐릭터와 감독까지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시리즈만의 장점보다는 단점만 부각된다. 시리즈 특유의 매력을 기대하는 관객이 오히려 실망할 가능성도 커진다. 음식점으로 치면 프랜차이즈 식당인데 지점마다 메뉴도 레시피도 다른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검은 수녀들>도 염려가 컸다. <검은 사제들>과 세계관은 같지만 감독, 배우, 캐릭터가 달라졌으니까. 특히 장재현 감독의 부재가 걱정이었다. 아무나 오컬트의 장르적 쾌감과 대중성을 조화시키지는 못하기 때문. 안타깝게도 <검은 수녀들>은 우려를 불식하지 못했다. '여성 오컬트'를 표방했지만, 오컬트를 살리지 못한 나머지 여성 서사만의 매력을 놓쳤다. 그 결과 <검은 수녀들>은 세계관을 확장하는 도구로만 소모되고 말았다.
가톨릭과 여성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검은 수녀들> 속 여성 서사는 예상된 수순이다. 그런데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꽤 흥미롭다. 여성과 종교의 관계성을 깊이 파고들기 때문. 역사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여성의 영성을 이중적으로 대했다. 성모 마리아 공경 교리나 성모 발현 기적 사례는 교회 내에서 강력한 종교적 상징으로 기능한 여성의 영성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여성의 영성은 상징성이 큰 만큼 경계의 대상이었다. 교회 제도 내에서 수녀로서 영성을 발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교회와 사제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다고 여길 정도였다. 이는 중세 시기에 교회가 민간 신앙 혹은 신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추구하는 신비주의 전통을 부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톨릭 교회의 권위와 권력이 약화되자 굳이 '마녀'를 외부의 적으로 상정한 역사 역시 여성의 영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방증한다.
<검은 수녀들>은 이러한 가톨릭과 여성의 관계에 주목했다. <검은 사제들>이 정통성 있는 구마의식을 다뤘다면, <검은 수녀들>은 그 이면에 존재한 비정통성을 다룬 셈이다. 영화 곳곳에 그 의도가 녹아 있다. 중세 시기라면 마녀로 몰렸을 정도로 특별한 영성을 두 주인공이 소유한 설정이 대표적이다. 바오로 신부와 같은 일반 사제들이 구마의식의 효용성을 부정하거나 수녀의 구마의식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이다.
무속도, 타로도, 자궁 타령도 억지는 아닌 이유
그렇기에 자칫 뜬금없을 설정도 <검은 수녀들>에서는 마냥 작위적이지 않다. 여성의 영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무당이 등장하고, 굿으로써 악령을 쫓아내려 하고, 수녀가 타로 점을 보는 전개도 나름 설득력이 있다. 정통 제도 종교의 영역의 밖에서 이어져온 여성의 여성을 한국이라는 공간적 맥락 안에서는 무당과 무속 신앙이 상징하기 때문이다.
악령의 존재를 남들과 다른 청각과 시각으로써 인지할 수 있는 두 수녀의 특별한 능력도 좋게 말하면 영성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미친 것이고, 한국적으로 표현하면 신내림을 받은 셈이다. 미카엘라가 타로 점을 볼 줄 아는 것 또한 제도 종교 외부에서 생명력을 유지한 종교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종교적 전통 간의 접점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구마 방식도 마찬가지다. 악령은 유니아를 창녀라고 모욕하면서 자궁을 영영 못 쓰게 만들겠다고 위협하고, 그녀는 실제로 자궁암을 앓는다. 하지만 그녀는 악령을 자궁에 가둔 뒤에 파괴하면서 그의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마녀가 악마와 성교를 하고, 악마의 아이를 낳는다는 중세 시대의 소문과 전승을 뒤집은 이 전개 역시 제도 밖에서 유지된 여성의 영성이라는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나아가 극 중 구마 의식도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는 듯하다. 두 수녀는 구마의식을 같이 진행하면서 신뢰를 쌓기 전까지는 세례명이 아닌 본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악마의 이름을 알아내는 게 구마의식의 핵심인 것을 고려하면 이는 의미심장하다. 두 수녀가 스스로를 가톨릭 교회 속하지 않는 괴물, 마녀, 악마로 여겼음을 암시하니까. 즉, 유니아와 미카엘라는 악령 들린 학생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구마하고 치유한 셈이다.
오컬트 없는 여성 오컬트
이처럼 종교사 이면에 숨은 여성의 영성을 중점적으로 묘사했기에 <검은 수녀들>의 스토리텔링은 흥미롭다. 문제는 차별화된 주제 의식과 소재가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 이유는 명확하다. 여성 오컬트를 표방하지만, 정작 오컬트가 없다. 드라마에만 힘을 준 나머지 오컬트 영화라는 사실을 망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 대가로 종교적 맥락과 깊이 연관된 서사도 덩달아 힘을 잃는다.
우선 오컬트 분위기를 조성할 디테일이 부족하다. <검은 사제들>은 치밀했다. 의식의 순서마다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일례로 구마 사제는 여성의 분비물을 몸에 뿌린다. 본래 수컷이라서 남자 육신을 취하려는 악령에게 성별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에 반해 <검은 수녀들>에서는 두 수녀가 하는 행동, 외우는 기도문, 준비한 성물 등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구마 예식은 지나치게 가상적으로 느껴진다.
디테일이 없다 보니 구마의식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누가 됐든 악마를 못 이길 것 같으면 성수를 잔뜩 쏟아부은 후에 예식을 다시 시작하는 식이다. <파묘>에서 '이화림'(김고은)이 여러 형태의 굿을 보여줬던 것과 비교하면 오컬트 특유의 재미가 현저히 부족하다. 악령의 권능도 비교적 단순하게 묘사된다. 주변 사물로 구마자를 해하거나 겁 주고, 구마의식을 방해하기 위해 쥐를 풀어서 도로를 엉망으로 만드는 정도다.
구마의식은 스토리텔링을 이끌지도 못한다. <검은 사제들>의 구마의식은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악령은 여동생과 관련된 '최준호 아가토'(강동원)의 트라우마를 악용했고, 그는 간신히 악령을 이겨냈다. <검은 수녀들>은 다르다. 미카엘라는 자기처럼 영성을 지닌 친구가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악령은 이를 이용하지 않는다. 유니아 역시 별다른 약점이 없다 보니 구마의식은 단순한 볼거리로 소비된다.
스스로 맥을 끊다
그 결과 종교적 맥락 내에서 전개돼야 할 여성 서사는 부자연스럽고, 오독될 소지도 크다. 사제들이 수녀라는 이유로 유니아를 억압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본래 의도대로라면 종교 내에서 여성의 영성이 경계받는 미묘한 긴장감이 전해져야 한다. 그러나 오컬트 분위기가 약하다 보니 이 장면은 여성 차별적 구도 안에서 여성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평면적이고 편의적인 연출처럼 느껴진다.
드라마의 잠재력을 스스로 제약하는 결과도 초래했다. <검은 수녀들>은 바오로 신부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희준이 겪는 일련의 현상이 악령에 의한 것인지, 단순한 정신병인지 유니아도 확신하지 못하는 식으로 초중반부를 연출할 수 있었다. 이 경우 바오로 신부와 유니아의 갈등은 일차원적 남녀 대립 구도를 넘어서서 정통성과 비정통성의 충돌이라는 종교적 맥락을 입체화하고 강조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는 바오로 신부와 유니아가 결국 협력하게 되는 전개를 더 극적으로 꾸미고, 원칙주의자인 바오로 신부의 매력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검은 사제들>과는 다른 과점에서 구마의식을 조명하며 세계관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가능성이 무위에 그친다. 그 결과 <검은 수녀들>의 결과물은 지나치게 <검은 사제들>을 의식한, 전작 주인공의 성별만 뒤바꾼 열화판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기술적 완성도 때문에 아쉬움은 더 크다. 초반부와 후반부에 왕왕 등장하는 부자연스러운 컷 전환은 오컬트 특유의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긴장감 조성을 방해한다. 한국 영화의 고질병인 음향 문제도 재발했다. 구마의식 중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사 내용이 들리지 않을 정도다. 배우들도 빈 공간을 채우지 못한다. 희준을 연기한 문우진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수녀복, 사제복을 입은 채로 이전 캐릭터를 되풀이하는 듯하다.
세계관은 커졌지만
결국 <검은 수녀들>은 한 가지 미덕만 남긴다. 바로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확장했다는 것. 성공한 작품의 외피만 빌려 쓰는 대신 두 작품을 엮어 본격적으로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야심이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장미십자회의 존재와 역할을 더 부각하고, 12 형상이라는 설정을 구체화하면서 속편의 토대를 다진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최준호 아가토의 재등장도 단순한 팬서비스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다만 이 또한 일장일단이 있다. <검은 수녀들>은 <검은 사제들> 세계관을 위한 발판, 그 이상 그 이하의 인상을 주지 못한다. 마치 <아이언맨> 이후 <어벤져스> 개봉 전까지 <아이언맨 2>, <토르: 천둥의 신>, <퍼스트 어벤져>를 공개한 MCU를 보는 듯한 인상이다. 만약 속편이 나오더라도 유니아의 빈자리가 그리 커 보이지 않다는 점, 그리고 최준호와 미카엘라의 향후 활약상이 그다지 기대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 방증이다.
Poor 형편없음
방향은 맞았으나 길을 잘못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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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나더 라운드 스포일러 없는 리뷰 - 권태로운 삶에 위스키 한 잔을 더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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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같은 고등학교 교사 니콜라이, 마르틴, 페테르, 톰뮈는 의욕 없는 학생들을 상대하며 열정마저 사라지고 매일이 우울하기만 하다.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르틴이 실험에 들어간다. 인기 없던 수업에 웃음이 넘치고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활기가 생긴 마르틴의 후일담에 친구들 모두 동참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정한다.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할 것! 밤 8시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을 것!]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 최적의 직업적, 사회적 성과를 위해 점차 알코올 농도를 올리며 실험은 계속되는데… 과연 술은 인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을지, 도전의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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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어른은 없다, 주름진 아이만 있을 뿐
#기쿠지로의_여름 #스포일러_없는 #리뷰
최신 일본 영화를 리뷰하고 추천합니다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을 소개합니다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제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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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witch.tv/sura_chtr※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writer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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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2차 예고편
“우리는 격하게 세상을 구하고 싶다!”
살고 싶다면 무조건 성공시켜라!
최강 우주 빌런에 맞선, 자살특공대에게 맡겨진 ‘더’ 대책 없는 작전.
팀플레이가 ‘더’ 불가능한 최악의 안티히어로들.
최고의 팀워크를 기대한다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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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공식 예고편
대원들이 살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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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SYNOPSIS.
‘예분’은 손녀 ‘수정’을 사고로 잃은 뒤 삶이 1년 전 그날에 멈춰버렸다.
손녀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매일 같이 강가에 나가는 ‘예분’ 앞에 손녀의 절친 ‘지윤’이 나타난다.
두 사람에겐 들어야 할 진실이 있고, 삼켜야 할 비밀이 있는데…
진실과 비밀 사이 깊은 슬픔이 일렁인다.
#각자의 물결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스쳐간 자리는 그 이전과 영영 같을 수 없다. 설령 떠나간 이가 나에게 아주 작은 조각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아주 작은 구멍이 난 유리창이어도, 깨진 곳 없는 유리창과는 같을 수 없다. 그 작은 구멍 사이로 바람이 숭숭 불어와, 누군가의 빈 자리를 절감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아주 작은 순간일지언정.
하물며 이 이야기 속 예분과 지윤에게는. 손녀를 잃은 할머니 예분, 가장 절친한 친구를 잃은 중학생 지윤. 이들은 다른 부위에 난 같은 상처를 안고, 매일 다른 물로 뛰어든다. 예분은 손녀를 삼킨 강에 금속 탐지기를 들고 나가 손녀의 유품으로 추정되는 것을 매일 찾고, 지윤은 친구와 함께 있던 수영장에 매일 들어간다. 하나의 상실이 남긴 각자의 상처, 각자의 물결 속에서 이들은 매일 허우적거리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이들이 매일 뛰어드는 물 속의 축축함이 관객석까지 넘실넘실 전해진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문장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중간중간 교차하는 과거의 장면들을 보면서, 예분과 지윤의 시간을 순서대로 톺아볼수록 더욱 축축해진다. 그들의 과거와 그들의 현재, 그 사이 이들에게 있었을 무수한 감정들이 겹겹이 전해져서다.
#중첩되는 소리 속에서
이렇게 감정을 겹겹이 전달하는 데에는 소리가 큰 몫을 한다. 수정이 사고를 겪은 당일부터, 슬픔의 소리는 다른 소리들과 중첩되고 혼재되기 시작한다. 거센 빗소리, 경찰차 사이렌 소리, 수정을 잃은 엄마의 울음 소리...들이 어지러이 섞여들면서. 아주 거대한 슬픔의 소리는 다른 소리들을 쉽게 삼켜 슬픔으로 중첩시키고, 우리를 먹먹하게 한다. 예분의 금속 탐지기 소리처럼, 때로는 진실을 찾으려 날카롭게 세운 소리가 반대로 귀를 막기도 한다.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할 만큼 했다는 말을 격렬하게 거부하며 끊임없이 진실을 찾아 헤매는 예분처럼.
사실 예분에게, 지윤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진실을 드러내고 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깊고 진득한 자책을 덜어낼 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이를 잃어버린 빈 자리를 돌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인간에게는 꼭 필요하니까. 그토록 숱하게 죽은 몸을 어루만지고, 누군가의 떠난 자리를 정리하며 살았던 예분이지만 정작 손녀의 죽음과 거기 어린 자기 감정들을 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토록 함께 뛰어들던 물 속, 그 익숙한 감각 안에서 친구를 잃은, 이어지는 상실 속에서 도저히 여유가 없는 지윤 또한 마찬가지다.
#물결도 소리도 없이 고요하게
이러한 두 사람이 부딪쳐 파장이 이는 자리마다 삶과 죽음이 물비늘처럼 몸을 뒤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치열하게 마주한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찾고자 혹은 감추고자 한 것이 정말 진실이었을까? 진짜 필요했던 것이 과연 진실이었을까? 가까워지고 다가서는 두 사람의 장면들을 통해, 두 사람의 거리 사이에서, 영화는 그 답을 조심스럽게 피워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죽음 이후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뭐부터 버려야 돼요?" 묻는 지윤에게 "남길 것부터 정리해야지." 말하는 예분의 차분한 어투다. 그렇게 죽음의 대처법을 가르치고서는 정작 지윤을 데려가는 곳이 병원과 식당으로, 죽음에 앞서 삶부터 가르친다는 점 또한.
죽음과 삶은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맞붙어 있다. 삶은 애초에 그렇게, 무수한 이들의 삶과 죽음이 조각조각 물비늘처럼 맞붙어 강을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하나의 물비늘, 그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지도. 그러나 설령 이 하나하나가 아무 것도 아닌 순간이라 해도, 강은 그런 식의 물비늘이 모여 반짝반짝 흘러 간다.
그렇게 끊임없이 몸을 뒤채는 만남과 헤어짐, 이해와 오해, 그 틈바구니 삶이라는 곳에 우리 그저 소리 없이 나란히 눕는다면. 다른 베개, 다른 이불, 다른 부위의 같은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그대로, 그저 같은 요 위에 나란히 눕는다면. 그때 비로소 이 마음에서 축축하고 눅눅한 습기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사실, 모든 축축한 것을 마르게 만드는 햇볕이니까.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 개봉은 12월 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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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이와 이경의 눈부신 성장 로맨스
“우리는 마시고 내쉬는 숨 그 자체였다”
태생적인 갈색톤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로 놀림을 당해 온 평범한 고등학생 이경이 우연하게 날아온 축구공에 맞아 안경이 부러지며 축구선수 수이와의 첫 만남이 시작된다. 미안한 마음에 수이가 매일 같이 이경을 찾아 딸기우유를 건네며 둘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묘한 사랑의 감정을 키워 나간다. 시간은 흘러 고3의 여름, 둘은 서로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지만 수이는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축구 선수의 꿈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이경은 평범한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서울로 상경한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이어가며 사랑을 지속하지만 조금씩 어긋나고 뒤틀리는 관계에 이별을 맞이한다. 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된 동명 소설을 원작을 옮긴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그 여름은 수이와 이경이라는 두 여고생의 뜨거운 여름날에 시작된 반짝이는 청춘의 순간을 전한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된 사춘기 소녀의 첫사랑과 뒤이어 따르는 성장이라는 주제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관객들의 정서적 공감을 이끄는 형식으로 강렬하기보단 천천히 젖어드는 작은 떨림이 존재했다.
애초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정보만을 인식한 채 시사회에 간 거라 예상치 않은 퀴어(LGBT) 장르가 한국, 그것도 애니메이션 극장판으로 나왔다는 것에 조금 놀랐지만, 앞서 언급한 잔잔한 여운이 남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인종, 성별과 관계없이 대중들의 공감을 일으킨다는 건 이미 해외의 여러 수작들로 증명된 바이고 특히 첫사랑은 늘 설렘과 두근거림을 상기시켜주지 않는가? 묘한 눈빛과 감정, 소소한 손길이 닿는 베스트셀러 바탕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러한 강점들을 잘 살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이 떠오를 만큼 인물, 시골과 서울 등을 묘사한 한국 애니메이터들의 발전된 그림체는 학창 시절부터 20대 초반을 지나치는 시간을 담은 빛바랜 사진첩처럼 추억을 선사하며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더욱 그럴싸하게 꾸며준다. 여기에 메인 테마곡 정우의 ‘그 여름’,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브론즈 with 미노이의 ‘HARU’ 등의 노래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두 사람의 상황과 이어지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며 섬세한 작화만큼이나 감성적 터치로 관객에게 여운을 남긴다.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그 여름은 그렇게 성장과 첫사랑이라는 감정을 두 소녀의 풋풋한 감정을 시작으로 20대의 이별까지 그린다. 시종일관 담담한 기조는 격렬한 감정의 파고보다 한 방울로 시작된 호숫가의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평범했을지도 모르고, 혹자에게는 특별했을지도 모를 추억을 떠올려보라는 듯 말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연출과 누군가의 마음을 훔쳐본 듯한 스토리는 매력적이지만, 슬픔을 억누르고 상대방의 행복을 빌며 애써 웃음 짓는 이별의 순간도,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만큼 중요한 것이기에 60분가량의 짧은 분량에서 후반부 이별을 맞이하는 두 사람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여 비싸진 티켓값에 관객이 선뜻 선택할지 의문이 남는다. 멋지게 표현된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으테니 말이다.
“열여덟 여름에 처음 만났다”
갈색 눈동자를 가진 평범한 학생 '이경' 여름의 햇살을 닮은 고교 축구선수 '수이' 열여덟 살의 여름, 예기치 못한 사랑에 빠진 '이경'과 '수이'는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며 스무 살을 맞이한다. 대학에 진학한 '이경'과 달리 '수이'는 바로 사회에 뛰어들고, 낯선 행복과 사소한 오해 속에서 둘은 새로운 계절을 마주하게 된다.
예고편│Trailer
원제: The Summer│감독: 한지원│원작: 최은영 작가의 동명 단편 소설
출연진: 윤아영, 송하림 외 多
장르: 애니메이션, 드라마, 멜로/로맨스│상영 시간: 61분
국가: 대한민국│등급: 12세 관람가
제작: (주)레드독컬처하우스│배급: 판씨네마(주)
평점: 평론가 7.0
개봉일: 2023년 6월 7일
한 줄 평 : 비로소 깨닫는 첫 사랑이 남긴 계절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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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이 아닌 곳으로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건 서사일까. 물론 이야기의 기승전결 뼈대는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서사를 통해서도 감정을 실어나르는 쪽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사뿐 아니라 미술, 음악, 카메라 등 모든 요소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협업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서사 없는 영화는 있어도 감정 없는 영화는 없다고도 느낀다. <아네트>도 그렇다. 서사는 자못 단순하지만 그 안의 감정은 깊다.
감독 본인이 초반에 등장해 이제 시작하자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사람은 딸이다.), 배우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는 영화 오프닝 시퀀스는 이 영화가 현실이 아니라 극임을 똑똑히 못박는다. 이제 이 선을 넘어 현실이 아닌 곳으로 들어가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잠시 현실에서 눈을 돌려 몰입할 이 세계는 나에게 어떤 감정을 안길 것인가.
기대하는 관객 앞에, 이 영화를 함께 제작한 밴드 스팍스에 이어 배우들이 노래하며 차례차례 등장한다.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야르, 사이먼 헬버그까지 나란히 서서 노래할 때, "So may we start? 이제 시작할까요?" 하고 물을 때, <라라랜드>의 오프닝 시퀀스 생각도 나고 뮤지컬 시작할 때 같은 기분도 든다.
영화는 앤(마리옹 꼬띠야르)과 헨리(아담 드라이버)의 사랑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 다 무대에 오르는 직업이지만 양상은 많이 다르다. 오페라 가수인 앤은 드레스를 입고 무대보다 더 높은 무대로 올라가 장렬한 죽음을 맞는 반면, 스탠딩 코미디언인 헨리는 속옷 하나에 복서들처럼 로브 차림으로 직접 문을 열고 나와 마이크 줄을 채찍처럼 휘두른다. 어딜 가든 사과를 깨물고 있는 앤, 담배와 바나나를 들고 몸을 푸는 헨리. 관객을 죽여주는 헨리와 관객을 위해 죽어줌으로써 그들을 구원하는 앤. 두 사람이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둘을 보는 시선까지도 모두 다르다.
두 사람의 노래는 "We love each other so much 우리는 서로를 정말 사랑해"라는 가사를 반복한다. 둘을 둘러싼 세간의 시선을 잘 알고 있고,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푹 빠져있지만, 그 한 마디만 반복하는 사랑은 어쩐지 불안하다. 숲을 지나, 세상과 떨어진 곳에 두 사람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둘은 이내 결혼식을 올린다. 각자의 예술, 함께 부르는 노래, 중간중간 삽입된 기자들의 대사나 뉴스 보도를 통해, 사랑의 서사는 단순하게 쌓인다.
송스루 뮤지컬이란 참 특이한 장르다.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영화에서라면 인물의 표정과 입 모양으로 단박에 구분될 대사와 독백, 방백이 따로 없이 모두 노래로 흘러나온다. 그러다 보니 기묘하게 현실에서 들뜬 느낌, 현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레오 카락스 감독 특유의 독특한 스타일은 한층 더 새로운 감각들을 이끌어낸다.
무대에 오르는 일을 업으로 삼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한 사람은 승승장구를 한 사람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감정의 골이 쌓이고...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단순한 이야기에 스타일을 부여하면서, 기묘하게 현실에서 반쯤 떠오른 느낌을 준다. 인물들이 입는 원색 옷과 계속 등장하는 소품의 색깔조차 꾸며진 세계의 느낌을 더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아빠의 농담과 엄마의 웃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아네트는 작은 목각인형으로 표현된다. 불쾌한 골짜기에 걸친, 그러니까 애매하게 사람을 닮다 말아서 더 기묘한 기분이 드는 모양새다. 이런 불쾌한 골짜기에 놓인 물체들은 어쩐지 자꾸 눈을 의심하면서 계속 바라보게 만든다. 징그러워 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그것을 계속 바라본다. 왜일까. 내가 바라보게 되는 건 어떤 지점일까.
아마도 죽음과 가까운 어딘가. 이 영화는 그곳을 심연(abyss)으로 부른다. 엔딩 크레디트의 스페셜 땡스투에 에드거 앨런 포가 있어 의아했는데,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토대로 쓴 곡이 있다고 감독이 밝힌다. "바다 위의 절벽에 매달린 상태로 바다를 쳐다보면 떨어져서 죽을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계속 쳐다본다. 멈출 수가 없는 거다. 그게 바로 심연에 대한 마음이다. 죽고자 하는 마음과 같은 것." (GQ코리아 인터뷰 <레오 카락스의 선명한 세계> 중에서)
극중 인물들은 모두 죽을 걸 알고도 뛰어드는 사람들처럼 존재한다. 생사를 의식하지 않는 인물들의 생사. 생에 아득바득하지 않는, 오히려 그 심연을 바라보는 인물들. 어쩌면 그 점이 이 영화의 모든 인물들을 무대 위 존재로 보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넓게 보면 아네트뿐 아니라 모두가 목각인형처럼 움직이고 있다. 인물들은 마지막 장면에서야 내게 사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였을까. 엔딩 장면을 보는 내내 이유 모를 눈물이 줄줄 났다.
인간은 왜 심연을 바라보게 되는가. 아니 심연을 바라보기 전까지는 무엇을 응시하고 있었는가. 무엇에서 눈을 떼고 심연으로 시선이 이동하게 되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헨리의 삶으로 영화는 대답한다. 감독이 자랑스럽게 또 사랑스럽게 언급하는 그 딸의 존재를 비롯하여, 헨리에게서는 레오 카락스 감독의 냄새가 난다. 감독의 개인사는 물론 감독이 스스로에게 갖는 감정들이 반영된 캐릭터로 보인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만들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하는,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는 엔딩 장면은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말이 들어있다. 심연을 바라보지 말라는 말은 다시 말하자면 심연을 바라보기 전까지 응시하던 것들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는 뜻으로 치환해도 괜찮지 않을까. 사랑과 예술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던, 고된 것 같아도 자부심으로 빛나던 얼굴을 잃지 않고 삶에 발 디딘 채 살라는 말로.
극중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그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불쾌한 골짜기 너머 심연의 존재를 인식하며, 화려하고 그로테스크한 것들이 온통 엉켜 있는 영화 바깥으로 나온다. 아주 어쩌면, 영화 산업의 빛과 어둠을 하나로 뭉치면 이 영화와 같은 색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영화라는 세계로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을 이토록 선명하게 느끼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막이 오르면 세상은 무대가 되고, 막이 내리면 우리는 영화 바깥으로 다시 정중하게 퇴장을 요구받는다. 엔딩 크레디트 다음에 나오는, 인물들이 등을 들고 걸어가면서 부르는 노래는 "좋았다면 친구에게 이야기하세요. 친구가 없다면 모르는 사람한테라도 이야기하세요."라는 가사가 귀엽기까지 하다. 순순히 시키는 대로 안녕히 돌아오면서, 등 뒤로 막이 내리고 문이 닫힌 것 같은 착각마저 느낀다. 심연 대신 삶을 응시하며 걸어간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GQ코리아의 레오 카락스 인터뷰 <레오 카락스의 선명한 세계>를 참고하고 인용하였습니다.
https://www.gqkorea.co.kr/2021/10/19/%EB%A0%88%EC%98%A4-%EC%B9%B4%EB%9D%BD%EC%8A%A4%EC%9D%98-%EC%84%A0%EB%AA%85%ED%95%9C-%EC%84%B8%EA%B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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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 스프링스 시사회 영화 후기 - 타임 루프로 커플 만들기 어렵지 않아요!
에이브와 탈라의 결혼식에서 무한 타임 루프를 하게 된 나일스는 현재를 반복해서 살게 된다. 모든 죽는 방법을 써봐도 현재로 되돌아오는 타임 루프는 사실 어느 사막에 있는 동굴 입구에서 시작되었는데 로이라는 할아버지가 나일스를 죽이려고 계속 쫓아온다. 하지만 나일스는 세라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려다 우연찮게 같이 동굴 입구로 들어가게 되고 둘은 에이브와 탈라의 결혼식 아침 첫날에 깨어나게 된다. 세라는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고민을 하다가 나일스를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싸우다가 친해진다. 그리고는 무한 타임 루프를 벗어날 방법을 찾으러 세라는 간다. 과연 사막에 있는 동굴 입구에 존재하는게 무엇이길래 타임 루프를 반복하게 될까? 나일스는 로이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타임 루프를 겪게 된다면
얼마나 삶이 피폐해지는지
알려주는 영화!
너를 끈질긴 악연으로 만나다 좋은 인연으로 만났다
그러다 사랑으로 번져가~
나일스는 찌질하고 코믹스러운 캐릭터지만 그런 나일스에게도 타임 루프로 인해 세라라는 인연을 만났다. 둘은 처음에는 끈질긴 악연이 될 뻔했지만 나일스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세라는 나일스에게 매력을 느꼈고 사랑을 나누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랑에도 권태기가 있듯이 둘의 사이가 나빠지기도 했고 벗어날 수 없는 타임 루프로 인해 세라는 자신이 저지른 업보라고 말한다. 나일스는 이에 한 술 더 뜬 채로 상상 속이라고 하거나 꿈속에 있거나 다중 우주를 벗어난 시물레이션 오류까지 언급한다. 그렇다. 나일스의 언급이 일부 맞았는게 이 영화에서는 양자 물리학을 다루는 개념이 나온다. 세라가 타임 루프를 벗어나기 위해 양자 물리학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고 수많은 이론을 바탕으로 동굴 입구에 있는 에너지 존재를 찾아낸다. 그리고는 온갖 방법을 써서 탈출하려고 한다. 또한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자신의 현실에서 안식처를 찾는 것과 지독한 인연이라도 나중에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