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샤2025-03-15 15:55:37
무대 없이 살 수 없는 사람들의 연대
다큐멘터리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삶은 무대다(All the World's Stage)'.
아마 지구상 최후의 인간도 모를 수 없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명언이라고 한다. 이 문장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 나오는 대사로 인생을 연극 무대에 비유한 것이다. 사실 우리의 삶은 죽는 순간까지 쉼 없이 이어지지만 중요한 분기점들을 기준으로 인생을 연극의 막(幕)과 장(場)처럼 나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대와 삶의 형식적 유사성보다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무대 위의 배우처럼 어느 정도 연기를 하면서 산다는 것이 무대와 삶의 더 중요한 공통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득을 얻기 위해 꼴 보기 싫은 사람 앞에서도 잘만 웃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슴지 않고 가시 돋친 말을 하기도 한다. 지구상 최후의 인간이 되어 혼자 살지 않는 한 우리는 타인과 공존해야 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누구나 배우 지망생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는 명맥이 거의 끊어진 여성 국극을 끝내 놓지 못하는 박수빈 배우와 황지영 배우의 삶을 중심으로 1900년대 중반 짧은 전성기를 누렸던 여성 국극의 전설적 배우들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다. 크든 작든 자신들을 위한 무대만 있다면 전국 어디든 출동하는 1985년생 박수빈, 1993년생 황지영 배우의 검질긴 열정도 놀랍지만 아흔이 넘은 조영숙 배우를 비롯한 나이 많은 배우들이 <레전드 춘향전> 공연 준비 기간과 공연 당일 무대에서 뿜어내는 기운이 경탄스럽다. 평상복을 입으면 그저 푸근한 할머니처럼 보이는 그들이 분장하고 배역에 맞는 의상을 갖춰 입고 무대에 올라 대사를 하고 동작을 하기 시작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예술이 부박한 삶의 정수를 길어 올리는 우물이라면,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의 배우들도 다른 많은 예술가들처럼 우물이 마를 일이 없도록 우물가를 지키는 파수꾼들이다. 그들은 무대 없이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대 없이도 숨은 붙어 있겠지만 제대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스크린으로 그들의 연대를 지켜보는 동안 새삼 예술의 힘과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끝)
* 씨네랩의 초청으로 3월 14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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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디즈니가 <모아나 2>에 이어 신작 <무파사: 라이온 킹>을 선보입니다.
영화 <문라이트>,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등 특유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연출로 많은 영화 팬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베리 젠킨스 감독이 이번 영화의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베리 젠킨스 감독은 “내가 십 대 청소년이었을 때 조카들을 조용히 시킬 목적으로 <라이온 킹>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강렬한 감정이 우리 모두에게 교차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를 잃고 고향을 떠난 외톨이 아기 사자는 거친 정글에서 조용히 성장해 세상을 개혁한다. 이 모든 것을 온화한 이미지로 말하는 시간이 마법 같았다.”라며 연출을 맡은 이유가 오직 <라이온 킹>에 대한 사랑과 존경 때문이었음을 밝혔는데요. (출처: 씨네21)
과연 그가 그려낼 <라이온 킹>은 어떤 모습일까요?
무파사: 라이온 킹
Mufasa: The Lion King
개요: 애니메이션 | 미국 | 118분
감독: 베리 젠킨스
주연: 아론 피에르, 켈빈 해리슨 주니어, 존 카니, 세스 로건, 빌리 아이크너, 도날드 글로버, 매즈 미켈슨, 탠디 뉴튼, 블루 아이비 카터
개봉: 2024.12.18.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줄거리
외로운 고아에서 전설적인 왕으로 거듭난 ‘무파사’의 숨겨진 이야기가 베일을 벗는다!
길을 잃고 혼자가 된 새끼 사자 ‘무파사’는 광활한 야생을 떠돌던 중 왕의 혈통이자 예정된 후계자 ‘타카(스카)’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마치 친형제처럼 끈끈한 우애를 나누며 함께 자란 ‘무파사’와 ‘타카’는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거대한 여정을 함께 떠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적들의 위협 속에서 두 형제의 끈끈했던 유대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예상치 못한 위기까지 맞닥뜨리게 되는데…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우리들의 공룡일기
Crayon Shinchan the Movie: Our Dinosaur Diary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105분
감독: 사사키 노부
주연: 박영남, 강희선, 김환진
개봉: 2024.12.18.
배급: CJ ENM
줄거리
다이노스 아일랜드에 어서 오세요! 멸종된 공룡을 현대에 부활시킨 테마파크 다이노스 아일랜드 오픈!
떡잎마을은 물론, 전국이 공룡 열풍에 빠져든다!
그 무렵, 흰둥이는 어디선가 작은 공룡 나나를 발견한다. 나나는 짱구네 집의 새로운 가족이자 떡잎마을 방범대의 친구가 되어 아주 특별한 방학을 보내게 된다. 한편, 자신이 나나의 주인이라는 빌리가 나타나 나나를 데려가겠다 하고 다이노스 아일랜드 창립자 버블 어마무시와 그의 수하들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나와 짱구를 쫓는다. 설상가상으로 다이노스 아일랜드의 공룡들이 탈출해 떡잎마을은 물론 도시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데…!
나나를 지키기 위한 짱구, 흰둥이, 떡잎마을 방범대의 사투가 시작된다! 지킬 거야, 나의 소중한 인연! 초거대 공룡들과 맞서는 지구에서 가장 다이노믹한 짱구가 온다!
힘을 낼 시간
Time to Be Strong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105분
감독: 남궁선
주연: 최성은, 현우석, 하서윤, 강채윤, 홍상표
개봉: 2024.12.18.
배급: (주)엣나인필름
줄거리
평균 나이 약 26살! 전 재산은 98만 원?
우리는 시끌벅적한 여행을 계획했다!
주목받지 못해 은퇴한 아이돌 ‘러브앤리즈’의 수민과 사랑, ‘파이브 갓 차일드’의 태희.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학창 시절에 갈 수 없었던 수학여행을 뒤늦게 떠나 보기로 하는데...
파라다이스 이즈 버닝
Paradise is Burning
개요: 드라마 | 덴마크, 스웨덴 | 108분
감독: 미카 구스타프슨
주연: 비앙카 델브라보, 딜빈 아사드, 사피라 모스버그, 이다 엥볼
개봉: 2024.12.18.
배급: (㈜트리플픽쳐스
줄거리
“뒤지고 싶으면 건드려 봐”
16살 로라에게 미라와 스테피는 자신이 지켜야 할 존재들이다. 가장 아끼는 사람들이고, 가진 것 중 최고로 소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 뺏길 수 없다. 절대,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설사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다 해도.
“혼자 마음대로 사는 게 누군데?”
12살 미라는 요즘 외롭다. 틱틱거리지만 다정했던 언니 로라가 요즘은 뭘 하는지 꽁꽁 숨긴 채 밖으로만 나돌고 자신과 스테피는 안중에도 없는 것만 같다. 미라는 언니가 필요한데. 언니에게도 미라가 필요했으면 좋겠는데.
“우리 언니 건들지 마”
모두들 7살 스테피를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스테피는 사실 다 안다. 무언가 언니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걸! 언니들을 괴롭히는 것들은 전부 X까! 스테피가 혼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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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디 (2021)
* 이 리뷰는 영화 <웬디>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웬디> 정보
감독: 벤 자이틀린 (대표작: 비스트)
출연: 데빈 프랑스, 야슈아 막, 개빈 나퀸, 게이지 나퀸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11분
개봉일: 2021.06.30 예정
피터팬 속 웬디의 재해석
시골 마을에서 식당일을 하는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어린 소녀 "웬디". 엄마의 식당 일을 도와주는 착한 아이이지만, 학교와 식당 일을 오가는 반복적인 삶에 바깥 세상과 새로운 모험에 궁금증을 품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유령 기차와 함께 신비함을 품은 자유분방한 소년 '피터'가 웬디 앞에 나타나고, 웬디는 쌍둥이 오빠 "더글라스"와 "제임스"와 함께 뜻밖의 여정을 떠난다.
무작정 기차에 몸을 싣은 웬디와 오빠들은 피터를 따라 바다를 건너 웅장한 화산이 있는 황량한 섬에 도달한다. 무인도 같은 섬에 남아있는 사람이라고는 피터와 몇몇 흑인 아이들, 그리고 몇 년 전 웬디가 살던 마을에서 사라졌던 '토마스' 뿐이다. 오직 아이들 뿐인 이곳은 늙지 않고 영원히 어린 아이로 살아가는 공간, 즉 동화 속 '네버랜드'다. 이곳에서 수장인 피터에 대한 믿음을 잃고, 슬픔과 현실적 감각이 머릿속에 드리우는 순간 급격히 늙어버리고 만다. 판타지 같은 공간에 쉽게 적응하며 하루하루의 모험을 헤쳐 나가는 웬디와 형제들 앞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네버랜드의 이면이 밝혀진다.
해체주의 수준의 원작 변형
디즈니 동화 속 <피터팬>을 재해석한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원작과 비교했을 때 영화 <웬디>는 외면적으로 딴판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터팬'은 귀여운 초록색 의상에 짓궃은 장난기가 묻어난 순수한 소년의 모습이다. 하지만, 본작에 등장하는 '피터'는 캐릭터 설정부터 흑인 소년으로 바뀌었고, 성질 또한 포악하고 독선적이다. 동화 속 '네버랜드'로 비춰지는 섬의 자연 경관 또한 늙지 않는 어린 아이들의 동심으로 채워진 순수한 판타지의 공간으로 보기 어렵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은 아이들에게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제공하고, 아이들은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시종일관 꾀죄죄한 모습으로 생활하며 생존을 위한 아이들의 의식 또한 잔혹하고 과격하다. 동화 속에서 한껏 포장되었던 '네버랜드'의 장면을 현실로 가져왔을 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사실상 '피터'와 '웬디'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가 <피터팬>과 관련된 작품이라는 것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수동적이었던 웬디의 변화
<웬디>는 2021년 작품인만큼 PC한 요소들을 가미하며 원작의 형태에 변화를 주었다. '피터'가 흑인 소년으로 바뀐 것도 시대적 반영의 산물이며 원작에서 수동적인 여주인공으로 그려졌던 '웬디' 또한 능동적인 여성상으로 변화했다. 원작에서는 피터가 후크 선장에게 납치된 웬디를 구출하지만, 본작의 웬디는 누군가의 도움이나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등장인물 중 가장 능동적이고 앞장 서서 움직이는 인물이며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피터에게 진정한 성장과 모험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시종일관 용감하고 씩씩한 소녀의 모습으로 그려진 '웬디'라는 캐릭터에 어느 정도 페미니즘적 요소가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구형의 인물상을 현 세대에 맞게 적절한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자의식 과잉에 묻힌 화려한 CG
촬영과 편집에 굉장히 힘을 준 영화다. 인물들의 대화나 서사보다는 휴화산이 있는 섬을 배경으로 신비로운 자연의 배경을 조명하는데,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 같은 심오한 느낌을 선사한다. 피터와 아이들이 '어머니'라고 믿는 심해 속 미스터리한 생명체를 중심으로 화산재로 뒤덮인 섬나라의 참상, 공포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바다와 해저 동굴 등 여러 자연적 요소들을 활용하며 메타포로 삼음으로써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하지만, 이러한 메타포들이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었다기 보다는 겉보기에만 그럴 듯하게 포장한 느낌이 강하다. CG로 멋지고 광활한 자연 경관의 모습을 구현해 관객을 압도하고 싶은 의도가 컸던 나머지 다양한 메타포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그저 장치들의 나열에 불과하달까. 작품을 보면서 영화를 감상한다기 보다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마음에 와닿지 않는 주제의식
외형적으로, 그리고 캐릭터의 성격 면에서 변화를 주었음에도 주제의식 측면에서는 원작의 메시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른들에게는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동심과 상상력을 일깨워주고 그와 동시에 하루하루 늙어가는 게 덧없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의식이 깔려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어른들에게 와닿을 만한 감정선을 형성하는데는 실패한다. <웬디>는 철저하게 아이들을 위한 꿈과 동화에 초점을 맞추며 어른들은 차마 공감할 수 없는 방향으로 스토리를 이끈다. 잔혹한 피터는 늙어가는 제임스의 손을 가차없이 자르고,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어머니라 믿는 아이들의 신념은 지극히 위험하고 맹목적으로 비춰진다. 현실적인 비주얼로 그려진 '네버랜드'에는 그림 같았던 낭만과 행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런 장면들에서 해방감과 자유를 느낄지 몰라도, 어른의 시각에서는 퍽 답답하기만 하다. <웬디>가 시사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함에도 감정적으로는 이입이 되지 않아 이내 공허함과 지루함만이 남는다. 어른들이 기억 속에 남은 어린 시절의 순수함 거칠고 현실적인 모습이 반영된 그림의 형태가 아니었기에 영화는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지 못한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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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길 잃은 당신을 위한 영화
호텔방의 커다란 통창으로 시끄럽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도쿄를 한 눈에 담는 주인공 샬롯. 그러한 그녀를 비추는 씬을 극중 몇번이고 반복된다. 빼곡한 빌딩숲 속 도로의 수많은 차와 사람들로 가득 찬 창 밖의 모습과, 창틀에 걸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이 대비되며 그녀가 느끼는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은, 마치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조차 피부로 느껴지는 듯 하다.
각 대학을 졸업해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요즘 필자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녀의 불안에 공감하는 밥의 모습에서는, 가끔은 그 불안과 혼란을 그대로 전부 받아들여줄 수 있고 비록 자신조차 그 답을 다 알지는 못할지라도 "괜찮다. 너는 할 수 있을거다"라 말해주는 정서적 지지의 중요성을 느꼈다.
어쩌면 지금 필자가 가장 듣고픈 말이기에 그럴까.
그가 그녀에게 해주는 말들이, 단순히 나이가 좀 더 많은 인생의 연장자로서 해주는 조언이나 첨언이 아닌
샬롯이라는 사람 자체를 믿는 그의 진심에서 비롯된 일종의 고백들의 나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내내 샬롯과 밥의 감정이 사랑일까 아닐까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키다리 아저씨와 주디일까, 사랑하는 남녀의 모습일까.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랑에 대한 선호가 없는 개인적인 성향 때문일지 몰라도, 영화를 보는 내내 깊은 우정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스시집에서 삐걱대는 마지막 점심을 먹은 뒤 괜시리 어색해진 두 사람이 한밤 중 호텔 비상알람으로 인해 잠옷차림에 가운만 걸친 모습으로 그 누구랄 것도 없이 우스웠던 점심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을 보곤, 필자는 두 사람의 마음이 사랑임을 겨우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이란 그런 거 같다. 확인하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말과 마음이 통하는 그런 거 말이다.
오래 전에 보고 묵혀두었던 이 영화가, 지금의 필자에게 너무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Lost in Translation" ,
영화의 원제이다.
마치 통역 오류가 나듯
지금 내 상황을 제대로 된 언어로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아도,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나의 생각과 진심을 상대에게 전하기가 어렵다고 해도,
나의 인생을 증명하는 그 통역의 과정에서 길을 잃었다고 해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저 오류일뿐이니까.
오류는 언제는 바로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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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비딸 | 영악한 이 영화가 반가우면서도 아쉬운 이유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댄스 열정을 불태우는 사춘기 딸 ‘수아’(최유리)와 함께 티격태격 일상을 보내는 맹수 전문 사육사 ‘정환’(조정석). 아침부터 수아의 생일 파티를 열던 정환은 창밖으로 동네 주민들이 과격한 스킨십을 하는 기괴한 장면을 본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던 정환은 그들이 서로를 깨물고 잡아먹는 모습을 본 후에야 좀비 바이러스의 존재를 깨닫고, 수아와 함께 서울에서 탈출해 어머니 '밤순'(이정은)이 사는 바닷가 마을 '은봉리'로 향한다.
하지만 탈출의 기쁨도 잠시, 정환은 수아가 좀비에게 물린 사실을 발견한다. 감염자를 색출해서 사살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환은 고뇌에 빠지지만, 딸을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감염 후에도 수아가 어렴풋이 사람 말을 알아듣고, 평소 좋아하던 춤과 음식에 반응했기 때문. 이에 정환은 호랑이 사육사로서의 경험을 살리고, 동네 친구 '동배'(윤경호)의 도움을 받아 좀비가 된 딸의 사회화 훈련을 시작한다.
공식은 이렇게 쓰는 거야
한국 코미디 영화는 모두가 아는 맛인 경우가 많다. 초반부는 기발한 설정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후반부는 주인공들의 사연을 본격적으로 보여주면서 눈물을 자아내는 공식에서 대부분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근래에는 예외인 작품도 등장하고 있다. 이병헌 감독의 최대 흥행작 <극한직업>이나 예상외의 흥행을 기록했던 <핸섬보이즈> 등은 '선 웃음 후 신파'라는 공식을 탈피하면서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영화화한 <좀비딸>은 새로운 흐름보다는 기존 공식에 충실하다. 갑작스러운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한 아버지는 좀비에 물린 딸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초반부는 좀비로 변해버린 딸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일어날법한 여러 소동극으로 가득하다. 중반부부터는 그토록 아빠가 딸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이유가 밝혀지면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7번방의 선물>과 유사한 구조의 코미디다.
따라서 <좀비딸>은 자칫 무난한 공산품 같은 코미디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좀비 영화를 더한 것도 별 도움은 못 될 뻔했다. <좀비딸>의 세계관과 설정은 좀비 영화의 기존 클리셰를 답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비딸>은 영리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영악하기까지 하다. 두 장르 모두 간과하던 '제삼자'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한국형 코미디와 좀비 영화 클리셰의 장점만을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퇴장하지 않는 감염자
<좀비딸>의 세계관은 절대 낯설지 않다. <부산행>, <월드워Z>, <28년 후> 등에서 자주 접한 좀비 아포칼립스 그대로이니까.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들이 출몰했다는 것, 좀비를 제거하기 위해 군대가 투입되는 등 준전시 상태가 닥쳤다는 점, 좀비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는 치료제가 임상실험을 앞두고 있다는 점까지. 전형적인 좀비 영화의 흐름에 충실하다.
단 한 가지가 다르다. 바로 감염자를 다루는 태도다. 일반적으로 좀비 영화에서 감염자는 철저히 주인공을 위기에 빠트리는 도구다. 설령 주인공이라 해도 감염자가 되는 순간에는 남은 캐릭터를 위한 제삼자로 위치가 그 즉시 바뀐다. 좀비에게 물린 즉시 그는 감정선을 자극하는 도구로써 소비된다. <부산행>에서 공유와 마동석이 감염되자마자 각각 딸과 아내와의 관계성에 방점을 찍어주면서 퇴장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에 반해 <좀비딸>은 감염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좀비로 변한 수아의 죽음을 보여줌으로써 정환의 부성애를 드러내는 단순한 스토리텔링과는 다른, 더 세련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정환이 맹수 사육사라는 직업 특성을 살려 수아를 교육하고, 가족과 친구들이 그를 돕는 과정에서는 부녀지간의 정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좀비딸>은 이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좀비 영화 분위기는 살리되, 색다른 장르와 내용을 펼쳐 보일 기회로써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실제로 <좀비딸>은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영웅적인 이야기에 가려져서 미처 보이지 않았던 감염자와 감염자 가족의 이야기를 펼칠 충분한 공간과 시간을 확보한다. 좀비 영화에서 빠지지 않던 액션과 스릴러 없이 코미디와 가족 드라마로만 러닝타임을 채워도 영화가 안 허전한 이유이기도 하다.
뻔한 코미디 공식을 낯설게 만드는 법
예상 못 한 인물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좀비딸>의 화법은 코미디를 만드는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좀비딸>에서 유머는 예상과 달리 정환과 수아 외의 인물들이 담당한다. 좀비들 사이에서 좀비 흉내를 내는 장면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코미디는 제삼자가 정환과 수아 부녀 사이에 끼어드는 순간 터져 나온다. 예를 들어 밤순이 효자손을 들고 좀비로 변한 손녀를 '참교육'하는 순간, 영화는 급격히 좀비 영화에서 코미디로 전환된다.
그 이후로도 <좀비딸>은 여러 제삼자를 차례대로 투입하면서 다양한 코미디를 보여준다. 일례로 정환의 동네 친구인 동배는 수아의 사회화 교육을 돕는 동안 수아에게 물릴 뻔한 위기를 겪으며 웃음을 자아낸다. 그다음은 정환의 첫사랑인 '연화'(조여정) 순서다. 일정 수준 사회화가 이뤄진 수아는 그녀가 근무하는 학교에 출석해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체육 수업을 듣는데, 이 시간은 여러 슬랩스틱으로 가득하다.
중요한 것은 제삼자들이 등장하는 순서다. 그들은 수아가 다시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환의 말을 믿는 정도가 높은 순서대로 투입된다. 즉, <좀비딸>은 수아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신뢰를 얻는 이야기인 셈이다. 상대적으로 낯선 사람들에게 수아가 노출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정환이 좀비가 된 딸을 훈련하기로 결심한 이유와 그의 과거사도 본격적으로 제시된다.
이를 통해 <좀비딸>은 '선 웃음 후 신파'라는 공식에 딱 들어맞는 환경을 영리하게 조성한다. 불신 가득한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숨겼던 개인사를 공개하는 장면이 눈물을 자아내면서 코미디 장르가 유려하게 신파로 전환되는 것. 놀이공원 시퀀스처럼 수아의 정체가 발각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위기 장면을 한 차례 비트는 연출이 더해진 덕분에 신파로의 전환은 더 자연스럽고, 공식 그대로인 전개도 뻔하지 않은 느낌을 줄 수 있다.
관객이라는 제삼자
더 나아가 제삼자의 존재감은 <좀비딸>의 신파에 깃든 사회적 함의도 부각한다. 정환의 부성애가 애틋한 것과 별개로, 좀비로 변한 딸을 숨기고 훈련하기로 한 정환의 선택은 본질적으로 반사회적인 선택이다. 만약 그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는 해악을 끼칠 수 있었기 때문. 이렇게 본다면 <좀비딸>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과 사회의 질서와 안전이 충돌할 때 어느 공익을 우선시하는 게 바람직한지 묻는 영화다.
<좀비딸>은 이 질문을 제삼자에게 순서대로 묻고, 그들은 각자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할머니는 가족이라서, 경호는 친구라서 정환의 선택을 지지한다. 반면에 좀비로 변한 연인에게 공격당한 기억이 있는 여정은 수아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정환을 믿지 않는다. 사살 명령을 받은 군인들 역시 수아가 말할 수 있다는 걸 보기 전까지는 총구를 내리지 않는다.
이 연쇄 덕분에 <좀비딸>은 관객에게도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며, 이때 현실과 영화의 틈은 관객을 괴롭게 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사회 질서를 우선해야 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팬데믹 초창기에 정부는 감염자 동선을 공개했고, 감염자가 많았던 특정 지역을 사실상 봉쇄한 전례도 있다. 하지만 정환에게 공감하고 눈물을 흘릴수록 그의 선택을 비난하기는 어려워지고, 또 이전의 합의가 옳다고 말하기도 힘들어진다.
영악한 선택과 집중
바로 이 대목에서 <좀비딸>의 신파는 이른바 '공업적 최루탄 신파'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을 손에 쥔다. 익숙한 장르적 설정, 관습, 공식을 영리하게 활용하여 설계한 구조가 관객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포섭한 덕분에 두 공리의 충돌과 딜레마를 고찰하게 만드는 힘이 정환의 눈물에 깃들기 때문이다. 제3의 역할과 인물을 연쇄적으로 강조한 <좀비딸>의 스토리텔링에 영리하다는 호평이 아깝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좀비딸>의 가능성은 곧 한계이기도 하다. 메시지와 담론의 층위를 더 깊이 만들 기회를 잡은 순간, 그 기회를 살릴 용기의 부재가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정환의 선택을 온전히 긍정하기 어렵다. 팬데믹 때도 한국이 다른 서구권 선진국들에 비해 정부 주도의 권위주의적 방역 정책을 취한 만큼,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에 둬야 한다는 정환의 소신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질 공산이 크다.
이를 고려해서인지는 몰라도 <좀비딸>은 질문을 던지되, 그 파급력을 축소하려 든다. 현실감이 느껴질수록 정환의 부성애보다는 그가 일으킬 사회적 여파를 필연적으로 고려하게 될 테니, 애초에 그 상황을 조성하지 않으려 한다. 현실적이고 논쟁적인 사회적 담론에 발은 걸치되, 그에 대해 확실한 답을 제시할 자신감까지는 없었던 셈이다.
매력적인 균형감
하지만 <좀비딸>은 영악하다. 복어독을 다룰 자신이 없으면 복어에 아예 손을 대지 않아야 하듯이, 가능성을 현실화할 자신은 없으니 철저히 한계를 가리는 데에 집중한다. 작품의 완성도는 아쉬워지더라도 상업영화로서는 안정된 선택만 골라 한다. 일례로 응봉리 바깥세상의 상황은 수아 친부가 등장해 위기가 고조되기 전까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을 둘러싼 사회적 대립과 갈등도 정환의 슬픔과 피로를 강조하는 장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묘사된다.
같은 맥락에서 원작 내용도 각색했다. 정환과 유사한 처지에 있었던 다른 시민들의 사연이나 존재는 모두 생략됐다. 결말도 달라졌다. 좀비를 숨긴 정환의 선택이 일으킬 논란은 다뤄지지 않고, 정환 덕분에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었다는 다소 급작스러운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즉, 관객의 시선을 철저히 정환의 부성애 쪽에만 붙들어 놓는다.
그와 동시에 배우들을 대중적인 이미지와는 조금씩 다르게 활용해서 허점을 가리기도 했다. 코믹한 이미지가 강한 조정석이 유머보다는 아버지로서의 절절함을 강조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사이에 이정은, 윤경호, 최유리 세 배우가 코미디를 나눠서 담당하는 식이다. 조여정에게도 명성에 비해 적은 분량을 주면서도 코미디에서 신파로 장르가 바뀌는 전환점을 맡겼다.
결과적으로 <좀비딸>은 식상함과 참신함, 코미디와 신파, 상업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모두 균형을 잡는 데 성공했다. 비록 사회적인 측면을 다룰 때 한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기획된 조화를 깨지 않았다는 측면에서는 마냥 비판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영리한, 더 나아가 영악한 균형감이야말로 영화 할인 쿠폰 관객을 겨냥한 여름 극장가 대전에서 <좀비딸>이 승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일 테니까.
Acceptable 그럭저럭
지금 한국 코미디 영화에 바랄 수 있는 최선의 영악함과 균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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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우연 속에서 나를 되돌아보는 과정
제7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영화 <우연과 상상>. 얼마나 명작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포스터 속의 싱그러운 배경 앞에서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있는 장면이 굉장히 힐리을 줄 것만 같은 생각에 기대감을 품고 봤던 작품이었다.
영화 <우연과 상상> 시놉시스“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걸 믿어볼 생각 있어?”
메이코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친구에게 새로운 연애 상대 이야기를 듣는다. 여대생 나오는 교수 앞에서 그가 쓴 소설의 일부를 낭독한다. 20년 만에 고향을 찾은 ‘나츠코’는 그토록 만나고 싶던 동창생과 재회한다. 우연이 만들어내는, 조용히 아주 크게 움직이는 인생의 순간들이 있다. 이 영화는 그에 대한 상상의 결과물이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우연과 상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연을 통한 회상
영화 <우연과 상상>은 3개의 단편 영화를 이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3개의 작품 모두 우연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내용이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친구가 지금 썸을 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전남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내용과 비밀이 담긴 녹음 파일을 잘못된 메일로 우연히 보내 인생의 굴곡을 맞이하고, 우연히 만난 동창생이 알고보니 동창생이 아니었던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본 우연에 대해 다룬 작품이었다.
영화 <우연과 상상>은 이러한 우연한 만남과 사건을 통해서 각각의 캐릭터들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있었다. 자신이 정말 전남친을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인지, 과거의 인생에서 존중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잊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해내며 행복했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한번쯤 그 시기와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자신이 어떤지 모든 에피소드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는 작품이었다.
편견없이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
2번째 에피소드인 ‘문을 열어둔 채로’는 문학상을 수상한 세가와 교수와 그의 팬이자 대학에 조금 늦게 들어온 학생 나오의 이야기다. 가정이 있는 나오는 남편이 아닌 사사키와 열애를 하고 있었고, 사사키는 세가와에게 찍혀 학부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사사키는 나오에게 세가와를 음모에 빠트릴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의 파트너 사사키를 돕기 위해 나오는 세가와 교수를 방문하고, 그가 쓴 소설 속 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낭독하면서 세가와를 유욕하고 자극한다. 하지만 순수 결정체였던 세가와 교수는 나오의 행동이 자신을 유혹하는지 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목소리가 너무 좋다며 혹시 그 파일을 전해줄 수 있냐고까지 나오에게 물어보나. 이 장면에서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떠올랐다. 마돈나가 유일하게 유혹하지 못한 사람이 마이클 잭슨이었는데, 한 일화에 따르면 어느날 마이클 잭슨을 유혹하기 위해 마돈나가 홀딱 벗고 다가갔는데 되려 담요를 덮어주며 추운 날씨에 벗고 있으면 안된다며 걱정을 해주던 순수결정체 마이클 잭슨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오의 상황과 약점을 들으면서도 그 편견에 휩싸이지 않고 나오의 감정과 장점을 알아봐주며 끝까지 존중하는 그의 태도를 통해서 심지어 자신을 속이고 음해하려고 한 사람에게도 순수하게 대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 저런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내 비밀을 털어놓다
길가에서 우연이 만난 동창생의 이야기를 그린 ‘다시 한 번’. 그런데 알고보니 둘은 동창생이 아니었다. 그저 오랜시간 흘러 서로가 아는 사람으로 착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행복이라는 가치에 대해, 현재의 자신에 대해, 그리고 과거 자신이 꿈꿔왔던 것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정말 상대방에게 대해 단 한가지도 알고 있지 않는 사이인데도, 이렇게 순식간에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그려낸 작품이었다.
사실 엄청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상대방이 나에게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 있고, 그 사람에게 나는 이런 사람인데 괜히 이런말을 꺼냈다가 관계가 틀어지면 어쩌나 하고 아예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히려 처음보는 사람에게 비밀을 털어놓는게 더 쉬운 사람의 사람을, 그리고 그 비밀을 통해 급격히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풀어내고 있어서 공감이 많이 됐던 에피소드였다.
영화 <우연과 상상>은 평범한 우연을 그려냈지만 그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함을 잘 녹여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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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왈로우> 리뷰
영화 「스왈로우」(2020)의 주인공인 헌터(헤일리 베넷)는 남편인 리치(오스틴 스토얼)와 함께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되고 헌터는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먹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행복하리라 예상했던 결혼 생활은 답답한 생활의 반복이다. 리치의 가족으로부터 지극히 이방인으로 대우받고 단지 대를 잇기 위해 필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헌터에게 가족 간의 유대감은 고사하고 어떠한 (감정적인) 출구도 제공되지 않는다. 탈출구 없는 결혼 생활과 원치 않아 보이는 임신으로 헌터는 이식증을 앓게 된다. 영화는 헌터가 겪는 이식증을 헌터의 생활과 맞물려 제시함으로 병을 앓는다는 느낌보다 신비로움에 이끌려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생활의 유일한 탈출구를 찾은 듯 보이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식증의 자기 파괴적인 성격을 쾌락과 고통을 넘나드는 헤일리 베넷의 연기로 드러내며 스릴러적 요소도 놓치지 않았다. 영화는 이식증이 발병하기 전 공허하고 단조로웠던 헌터의 삶과 대비된 그 이후의 삶을 화려해진 집의 공간과 빠른 템포로 마치 안정적이고 건강한 헌터를 보는 듯한 정서를 불어넣어 관객이 안정감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도록 한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들이 이식증을 들킬까 마음을 졸이던 순간들을 그리 길게 끌지 않는다. 이 영화가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헌터의 이식증이 리치에게 발각된 이후 드러나는 헌터의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이식증으로 인해 받게 된 심리 상담에서 불현듯 그의 과거가 드러나며 영화는 관객에게 이식증을 앓는 헌터에 집중하기보다 선행해 존재하던 헌터라는 한 인간을 다시 처음부터 이해하도록 한다. 헌터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의 과거를 심리 상담가에게 말한다. 헌터의 엄마는 강간범의 소행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였고 종교적 이유로 임신중절을 선택하지 않았다. 헌터 자신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던 이 과거를 헌터는 ‘많이 생각하여’ 극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가 리치에게 밝혀진 이후 헌터가 보인 심각한 불안 증세와 이식증의 재발은 아직 헌터가 그 과거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헌터는 결혼생활 중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이식증이 발병되었다. 헌터에게 이식증은 주체성과 자율성을 증명하는 행위이자 억압적 상황에서 하나의 감정적 배출구로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원치 않던 임신을 한 후, 억압적 상황에 대한 반영이 이식증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에 주목해볼 수 있다. 임신의 과정에서 먹는 행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헌터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는다. 부푼 배를 보고도 행복해 보이지 않던 그는 사실 자신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주체적으로 표명하지 못하는 억압의 상황에서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거부감을 이식증으로 발병시키고 그 잘못된 쾌락에 더 빠져듦으로 일종의 투쟁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헌터의 엄마와 헌터의 통화 내용, 그에 따른 헌터의 반응으로 유추해봤을 때 헌터의 엄마가 (의도적이라 확신할 순 없지만) 헌터의 동생을 헌터보다 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헌터의 엄마는 자신이 의지가 아닌 종교적인 이유로 임신중절을 선택하지 않았다. 헌터를 어쩔 수 없이 출산한 엄마에게 헌터는 자신의 딸인 동시에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제공한 강간범을 연상시키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엄마와의 관계에서 헌터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의 온전한 의지로 탄생된 필연적 존재’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자라났을 것이다. 따라 헌터는 자신의 존재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지는 경험에 대한 결핍이 있었고 이 관계에 대한 집착이 낳은 결과가 리치와의 관계이다. 그가 자신 때문에 행복해했기에 그의 모든 선택을 따랐고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이 사랑의 관계는 결국 관계에서 헌터를 수동적인 존재가 되도록 했고 억압적이고 고립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게 했다. 헌터는 혼자 지내게 된 모텔에서 리치에게 진심을 털어놓는다. 이제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흘러가는 상황을 맞이한 헌터는 더 이상 이질적인 것(흙)을 삼켜내지 못한다.
다른 가족에게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한 헌터는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의 집으로 간다. 강간범의 흔적으로만 그를 바라보았던 타인의 시선에 대한 수많은 경험들은 헌터에게 헌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도록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자는 자신을 탄생케 한 아버지였을 것이다. 마침내 헌터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권리로 그 물음을 던졌고 아버지라는 작자는 대답했다. 헌터는 헌터가 그를 닮지도 않았음을, 그가 가진 비열한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헌터는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드디어 확인받았다. 헌터는 누구의 흔적으로서도 아닌, 누구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존재도 아닌 ‘헌터‘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헌터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상황에서 내린 첫 번째 선택은 임신중절이다. 헌터가 가진 아이는 마치 헌터를 닮았다. 누군가의 간절한 의지로 생겨난 존재가 아니다. 헌터의 선택에는 배 속의 존재가 자신과 같은 운명을 반복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겼을 것이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생기는 비극의 굴레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헌터뿐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스릴러적 분위기로 시작하였으나 곧 드라마로 전환되어 주인공인 헌터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닌 그의 삶에 주목한다. 헌터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여성이 겪는 이타적이고 고립된 결혼생활부터 임신중절 선택까지 현재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여러 상황과 정서를 영화에 반영했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한 여성이 과거를 극복하고 주체성을 획득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헌터의 출생부터 마지막 헌터의 선택까지 이 이야기는 중점적인 주제로서 임신중절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말한다. 헌터가 자신에 대한 결정, 통제권을 생물학적 아버지 앞에서 온몸으로 부르짖은 뒤 행했던 일이 임신중절이었다는 사실은 단지 임신중절의 선택권을 임신을 한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이가 행사했다는 의미를 가질 뿐이다. ‘현실의 반영‘인 영화는 임신중절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다루었고 더불어 ‘반영의 현실’인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 이야기를 모든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시키며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여성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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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가 바닥에서 세계 최고의 래퍼가 되기까지 그에게 녹아든 모든 신념을 담아
당대 최고의 가수들과 함께 국적과 인종, 성별을 뛰어넘은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당신의 꿈이 실현될 이곳,
메이드 인 아메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