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gha2025-03-15 09:58:00
정당한 살인이 존재하는가?
OTT 드라마 <살인자0난감> 리뷰
정당한 살인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정당함과 살인이라는 단어가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흉악범에 대한 공적 제재가 약한 현대 사회. 시민들은 사적 제재를, 심지어는 흉악범에 대해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의 사적 제재를 용인하는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다. 나라가 벌주지 못한 사람을 개인이 나서서 혼내주는 것. 이 얼마나 멋진가.
이러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건들고 있는 작품이 있다. [살인자0난감]은 지극히 평범하고 소심한 대학생 이탕이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서 시작 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 중, 좋은 마음으로 말을 건 한 남성과 시비가 붙은 이탕은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다가 편의점에서 챙겨온 망치로 엉겁결에 살인을 저지른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은 목격자를 제거하기 위한 또 다른 살인으로 이어지고 두 살인을 저지를 이탕은 자신이 우연히 죽인 사람들이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이탕의 정당한 살인이 시작된다.
이 작품은 악인을 벌주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자들과 이들을 잡기 위한 형사의 대립구조로 진행된다. 이탕과 이탕의 살인을 돕는 노빈, 악인에 대한 살인을 저지르는 또 한 명의 인물 송촌은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믿는다. 악인들을 벌하고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살인은 정당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들을 쫓는 장난감 형사는 죽어 마땅한 사람을 왜 네가 정하냐고 반문하며 분노한다. 독특한 일이다. 형사의 역할은 범죄자들을 체포하고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악인들을 죽이는 무리는 어찌 보면 형사에 의해 지지가 되어야 하는 인물들이 아닌가. 여기서,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보인다. 이탕은 사회의 악을 벌주는 정의로운 영웅이 아니라 심판되어야 하는 죄인이라는 것. 정의로운 살인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살인자0난감]은 죽임을 당하는 인물들을 잔혹하고 우리가 분노하는 범죄를 저지른 캐릭터로 그려낸다. 죽어 마땅한 인물로 그림으로써 주인공의 살인을 응원하고 한 순간에 작품을 보는 시청자들이 살인을 지지하도록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죽어 마땅한 사람을 왜 네가 정하냐는 장난감 형사의 외침에 자신도 모르게 살인을 지지하고 있던 시청자들이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감독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게 아닌, 시청자들이 직접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러한 전개를 사용함으로써 가장 완벽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최근 들어, 악인들을 벌하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다. 악인들을 벌할 때 통쾌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그러한 작품들을 많이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아주 자연스럽게 정당한 살인을 인정하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린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가 모두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아무도 확답할 수 없는 ‘정당한 살인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살인자0난감]은 용감하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Relative contents
-
- 10월 4주 차 개봉작 추천,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해외 영화를 리메이크한 두 편의 <리멤버>와 <자백>의 개봉부터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단편영화 '몸값'을 새롭게 재탄생 시킨 티빙 시리즈 <몸값>의 공개까지!
그럼 10월 넷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더 자세히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극장 개봉 영화
리멤버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28분
감독: 이일형
출연: 이성민, 남주혁 등
개봉: 2022.10.26
배급: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줄거리
가족을 모두 죽게 만든 친일파를 찾아 60년간 계획한 복수를 감행하는 알츠하이머 환자 필주와
의도치 않게 그의 복수에 휘말리게 된 20대 절친 인규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관전 포인트
버디 무비 <검사외전>에 이어 신선한 스토리로 또 다른 버디 무비를 선보일 이일형 감독의 <리멤버>.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되지만, 세대 차이에 중점을 두고 버디 영화의 관점으로 연출했다고 한다.
자백
ⓒ 네이버 영화
개요: 범죄 | 한국 | 105분
감독: 윤종석
출연: 소지섭, 김윤진, 나나 등
개봉: 2022.10.26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줄거리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된 유망한 사업가 '유민호'와 그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승률 100% 변호사 '양신애'가 숨겨진 사건의 조각을 맞춰나가며 벌어지는 이야기
관전 포인트
치밀한 서사와 예측불허 반전의 스토리로 서스펜스의 밀도가 높은 영화가 탄생했다.
개봉 전 진행했던 시사회에서 많은 관객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유수의 매체에서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카사블랑카
ⓒ 네이버 영화
개요: 멜로 | 미국 | 102분
감독: 마이클 커티즈배우: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등
개봉: 2022.10.26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줄거리
2차 대전으로 어수선한 프랑스령 모로코, 미국인인 릭은 암시장과 도박이 판치는 카사블랑카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 미국으로 가기 위해 비자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틈에 섞여 레지스탕스 리더인 라즐로와 아내 일리자 릭의 카페를 찾는다.
라즐로는 릭에게 미국으로 갈 수 있는 통행증을 부탁하지만 아직도 일리자를 잊지 못하는 릭은 선뜻 라즐로의 청을 들어주지 못한다.
경찰서장 르노와 독일군 소령 스트라세는 라즐로를 쫓아 릭의 카페를 찾고, 결국 릭은 라즐로와 함께 일리자를 떠나보내는데...
관전 포인트
1943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은 작품이다.
1999년에 재개봉 한 이후 23년만에 재개봉을 하는 작품이다.
도그
ⓒ 네이버 영화
개요: 코미디 | 미국 | 101분
감독: 레이드 캐롤린, 채닝 테이텀배우: 채닝 테이텀
개봉: 2022.10.26
배급: CJ CGV줄거리
이라크 파병으로 후유증으로 부대복귀가 불가능한 특수부대 출신 미군 ‘잭슨’.
어느 날, 그의 동료의 사망소식을 듣고, 그의 군견 ‘룰루’ 를 2400km나 떨어진 그의 장례식장에
데려가면 복직을 추천해주겠다는 상관의 제안을 받는다. 잭슨은 이를 수락하지만,
룰루 또한 이미 전투후유증으로 사나운 사고뭉치가 되어있었다.
잭슨과 룰루는 서로에 대한 마음도 열지 못한 채 둘 만의 여정을 떠나게 되는데…
관전 포인트
코믹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며 다채로운 매력을 뽐낸 채닝 테이텀의 신작이자 감독 데뷔작으로,
<로건 럭키>를 공동 제작한 '리드 캐롤린'과 다시 한번 합을 이룬다.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77%, 팝콘 지수 89%를 기록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스타게이저: 아스트로스코프
ⓒ 네이버 영화
개요: 공연실황 | 한국 | 119분
감독: 도하배우: 엠제이, 진진, 차은우 등
개봉: 2022.10.27
배급: CGV ICECON줄거리
2022년 5월, 아스트로의 세 번째 콘서트 가 열렸다.
아스트로만의 다채로운 매력으로 가득 채운 무대들과
수많은 땀방울과 치열한 고민이 녹아 있는 콘서트 준비 과정,
어디에서도 공개된 적 없는 멤버들의 진심 가득한 인터뷰까지.
아스트로와 아로하가 함께 달려온 길, 그리고 함께 나아갈 빛나는 여정의 기록
관전 포인트
3년 5개월 만에 열린 아스트로의 세 번째 단독 콘서트 'STARGAZER'를 준비하는 멤버들의 모습과 비하인드,
생생한 실황 무대, 그리고 멤버 6인의 진솔한 인터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OTT 공개 영화
몸값
ⓒ YVING
개요: 스릴러 | 한국 | 6부작
연출: 전우성
출연: 진선규, 전종서, 장률 등
공개: 2022.10.28
스트리밍: 티빙줄거리
서로의 ‘몸값’을 두고 흥정하던 세 사람이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갇힌 후, 각자 마지막 기회를
붙잡기 위해 위험한 거래를 시작하며 광기의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
관전 포인트
원작의 설정에서 지진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면서, 바깥세상과 완전한 단절된
공간에서 어떻게 스토리가 전개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
- 천국의 나날들 Day of Heaven - 테렌스 멜릭
천국의 나날들 Day of Heaven - 테렌스 멜릭
멜릭 감독은 데뷔작 '황무지'를 연출하고 3년만에 다시 명작을 만들었다. '황무지'에서 보여준 황량하고 메마른 장면들이 여기도 등장한다. 주이공들 역시 '황무지'에서의 연인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이 영화에서도 떠돌이 노동자로 전전한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두번째 봤을 때 사뭇 다른 감정이 들었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쓴 글이 아래에 이어지고 있지만, 사회적 분석을 떠나, 이 영화는 처연하고 슬픔이 너무 깊어 그것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빌(리차드 기어)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노동자다. 그는 시카고에 살며 영세한 제철소에서 힘겹게 일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은 1916년 무렵이니까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의 배경과 비슷하다.
하지만 빌은 공장에서 일을 하다 관리자와 마찰을 빚고, 의도하지 않게 관리자를 살해한다. 이 앞부분은 매우 빠르게 진행하므로 관객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리둥절하다. 더구나 공장 내부의 소음이 너무 커서 빌과 관리자의 대화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마치 쏘련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몽타주 기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빌은 애인 애비(브룩 아담스)와 여동생 린다(린다 만츠)를 데리고 시카고를 떠나 남쪽 텍사스까지 내려와 떠돌이 노동자들이 넓은 밀밭을 수확하려 모여 드는 곳에 주인공들도 일자리를 얻는다. 빌은 애비를 애인이나 아내가 아닌, 여동생으로 소개하는데, 부부라고 하는 것보다 유리한 점이 있기 때문에 빌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직한 태도는 아니었다.
떠돌이 노동자로 일하려면 부부라고 말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빌은 애인 애비를 여동생이라고 말한 이유는, 언젠가 애비와 헤어질 거라는 예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즉 빌은 자신이 공장관리자를 실수로 살해하고 도망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이 비극적으로 끝날 거라는 짐작을 했을 수 있다. 그래서 애인 애비의 삶을 위해 자기와 묶어두기 보다는 조금 느슨하고 자유롭게 연결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밀 수확을 하는 농장의 농장주는 젊은 백인으로, 그는 돈이 많았지만 아직 결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병을 앓고 있었고, 가족도 없었다. 수백 명의 일꾼들이 수확철이 되면 기차를 타고 몰려왔다가 수확이 모두 끝나면 임금을 받고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에 오똑한 집 한 채에 머무는 농장주는 부유해도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 농장주가 우연히 애비를 발견하게 되고, 호감을 갖는다. 빌은 우연히 농장주가 시한부 삶이라는 걸 엿들었고, 애비에게 농장주와 결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빌의 생각은 애비가 농장주와 결혼하고, 농장주가 곧 죽으면, 농장을 물려받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으리라.
밀 수확이 끝나 떠돌이 노동자들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빌과 여동생, 애비는 농장에 남아 허드렛일을 하며 농장주와 함께 살기 시작하고, 곧 농장주와 애비는 결혼식을 올린다. 그렇게 농장주와 애비는 공식 부부가 되었고, 빌은 농장주의 처남이 된다.
네 사람은 밀 수확이 끝난 들판에서 노동을 하지 않고 매일 매일을 행복하게 지낸다. 이 영화에서도 데뷔작 '황무지'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빌의 여동생의 시각이다.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빌과 여동생, 애비는 농장에서의 삶이 마치 천국에서 지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풍족한 생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아름다운 자연,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온전한 시간들이 이들에게는 처음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농장주는 아내 애비와 처남 빌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낌새를 챈 빌은 농장을 떠나고, 세 사람은 다시 밀을 심고, 수확할 때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애비는 처음에 농장주와의 결혼이 정략결혼이었고, 애정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다정한 농장주의 태도에 자신도 남편(농장주)을 사랑하게 되는 마음을 느낀다.
한 해가 지나고, 다시 밀 수확철이 되었을 때, 떠났던 빌이 멋진 자동차를 타고 나타난다. 농장주는 다시 빌과 애비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결정적 장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밀밭에 메뚜기 떼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메뚜기를 없애려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농장주는 빌에 대한 분노와 배신의 감정으로 가득 찼고, 우연인지, 고의인지 알 수 없는 불씨를 밀밭에 던지며 밀밭이 모두 불에 타버리도록 방치한다.
농장주는 빌을 죽이려고 총을 들고 다가서지만 빌의 공격으로 살해당하고, 빌은 다시 애비와 린다를 데리고 도망한다. 보안관들이 빌의 뒤를 추적하고, 마침내 빌은 보안관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애비와 린다는 빌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지만, 살인자 빌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것이다.
이후 애비와 린다는 서로 헤어져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애비는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들과 함께 기차에 올라타 어디론가 사라지고, 린다 역시 무용학원에서 친구와 함께 도망쳐 철길을 따라 사라진다.
결말은 세 명의 주인공이 죽거나 미래를 알 수 없는 운명에 놓인다는 것이다.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의 운명이 가난에서 시작했고, 가난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삶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당시 시대 상황에 관한 인식은 아래,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썼던 글로 대신한다.
천국의 나날들. 1978년 테렌스 멜릭 감독 작품. 젊은 나이의 리차드 기어와 샘 쉐퍼드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멋진 영화임에 틀림 없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적 상황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하겠다.
스토리만 보면 단순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비교적 평면적인 이야기 구조 속에 미국의 20세기 초를 살아가는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성, 역사성을 잘 구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초의 미국 즉 1900년에서 1930년대까지의 미국 사회를 살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업튼 싱클레어가 쓴 소설 '정글'부터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로 이어지는 일련의 미국 현대 소설들은 당대의 현실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 시기에 이미 놀라운 판매와 함께 여론을 집중한 베스트셀러였다.
'정글'과 '분노의 포도' 사이에 이 영화의 시대가 있다. '정글'은 시카고 도살장에서 일하는 유르기스는 리투아니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가난한 노동자다. 그는 도살장에서 일하는데, 그가 일하는 도축장의 현실은 생지옥이 따로 없는, 참혹한 환경이다. 그가 받는 임금은 집세를 내기에도 버겁고,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참혹한 공장 환경을 비롯해 그가 살아가는 환경은 최악이다.
'정글'은 이 시기의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지만 그보다는 주인공 유르기스가 고통스러운 삶에 허덕이는 평범한 노동자에서 각성하는 사회주의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기에는 미국에서도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이 노동자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은 30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분노의 포도'에서도 조드 일가가 겪는 고통스러운 삶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이 가진 재산을 모두 잃고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은 바로 이 영화와도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또한 '분노의 포도'에서도 당시 미국의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무대는 텍사스의 농장이다. 대도시인 시카고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빌은 공장장과 말다툼을 하다 의도치 않게 살인을 하게 되고, 그의 애인과 여동생을 데리고 도망한 곳이 텍사스의 농장이다. 광활한 농장은 밀을 키우는데, 수확철이 되면 떠돌이 노동자들을 불러 들여 그들을 먹이고 재우면서 밀 수확을 하게 된다.
백여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 노동자들은 왜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 물음에 답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자본주의를 들여다 봐야 한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지금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이름들-J.P 모건, 록펠러, 카네기, 제이 굴드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유명한 자본가들의 이름이며, 지금까지도 미국의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는 지배집단이기도 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계급의 대립이 매우 격렬하게 맞붙게 되는데, 이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이후출판사)'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의 미국사회는 거대 자본에 저항하는 세력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치되어 있는 반면, 20세기 초에는 미국에서도 강력한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자들의 활약으로 미국노동자들의 계급적 각성은 세계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훌륭했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고 미국의 자본가들은 러시아에서 권력을 장악한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 미국의 노동자 계급으로 전이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폭력적인 방법으로 노동조합을 박살내고 사회주의자들을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이 자본(가)을 향해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결국 모든 노동쟁의와 반자본투쟁의 원인은 바로 자본(가)이 만든 것이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자본의 내적 모순'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했고,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것 역시 이러한 내적 모순에 의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미국의 자본주의는 지금도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지만, 폭력적인 방법으로 노동운동을 파괴하고 말살시킨 이후, 미국은 제3세계를 통해 착취한 이윤의 일부를 자국의 노동자들에게 분배함으로써 노동계급의 불만을 완화했고, 미국의 노동자들은 순치되었다.
이 영화는 그러한 미국의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공장에서 쫓겨나거나 배제된 노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빌과 그의 애인 애비, 여동생은 텍사스의 농장에서 밀 수확을 하게 되는데, 그 농장의 주인은 미혼의 젊은 남성으로, 애비를 눈여겨 보게 된다. 빌은 자신의 애인을 여동생이라고 소개하는데, 그들이 애인 사이인 것을 드러내면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미묘한 감정 싸움은 빌이 애인인 애비를 설득해 농장주와 결혼하라고 권하면서부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빌은 농장주가 병이 있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결국 빌과 애비의 관계를 눈치 챈 농장주(샘 셰퍼드)는 빌과 다투는 와중에 빌에게 살해당한다. 두 번씩이나 사람을 죽인 빌은 도망자가 되어 쫓기다가 결국 경찰관의 총에 맞아 죽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나지만, 겉으로 드러난 빌의 범죄-살인-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몰린 노동자가 두려움에 저지른 실수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발전하던 시기였던 20세기 초는 특히 노동자의 생존 조건이 말할 수 없이 열악했고, 노동자는 그야말로 소모품에 불과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때였다. 지금의 미국은 자본주의와 함께 민주주의도 발달한 나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상황까지 오는 동안 미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탄압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거의 유일하게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영상의 아름다움이 탁월한 작품이다. 멜릭 감독은 이 영화로 음악에서는 엔리오 모리꼬네가 영국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고, 전미비평가협회 최우수영화상, 뉴욕비평사협회 감독상, 로스엔젤레스비평가협회 쵤영상,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의 장면 한컷 한컷이 마치 회화처럼 아름답다. 이것은 영화의 주제와 내용이 매우 처연하고 슬픈 것과 대비되며, 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희생되는 떠돌이 노동자의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비극적으로 대비하고 있어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
- 7월 3주차 개봉예정작
안녕하세요, 씨네픽지기입니다 🐥
🎫 7월 3주차 개봉기대작 골라왔습니다!
우리의 의리 넘치는 AI 로봇 메간이 돌아왔습니다.
<메간 2.0> 아예 병맛을 콘셉트로 들고와서 더 기대되는데 한국의 유튜버 입짧은햇님도 출연한다고 하네요..?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 잠입편>,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 결전편> 2편이 동시에 개봉해서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또한 한국 제작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가 드디어 국내에서도 개봉하는데요,
이미 <기생충>을 제치고 북미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중 최고 흥행작에 등극하면서 금의환향 했습니다. 국내 성우진 캐스팅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병헌, 진선규, 이하늬, 양동근, 차인표, 장광까지… 과연 명성에 걸맞는 작품일지 궁금하네요 👀
이번 주 극장은 다큐멘터리부터 공포,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장르의 향연이 펼쳐질 것 같네요🔥
여러분은 추천작 중 어떤 영화 가장 먼저 보러가실 예정인가요?🤔
🎬 7월 3주차 PICK!
►<메간 2.0>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미세리코르디아>
►<킹 오브 킹스>
►<일과 날>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 잠입편>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
-
- 생의 마지막 일주일, 그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6★/10★
영화 〈더 웨일〉, 그중에서도 주연을 맡은 브렌든 프레이저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 브렌든 프레이저는 1999년에 첫 개봉해 2008년까지 세 편이나 이어진 〈미이라〉 시리즈에서 주연을 맡으며 훤칠한 외모와 액션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액션신을 촬영하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이혼 후 거액의 위자료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회장이었던 필립 버크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생긴 PTSD로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가 합성하여 제작한, 넋이 나간 표정과 충혈되고 눈물이 고인 눈의 그의 사진은 ‘모든 걸 포기한 남자’라는 이름의 밈으로 소비되기도 했다. 요컨대 브렌든 프레이저는 새로운 돌파, 즉 ‘구원’의 계기가 필요했다.
그런 그가 〈더 웨일〉에서 찰리 역을 맡았다. 찰리는 대학에서 에세이 과목을 지도하는 강사다. 그는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진행하는데 화면을 켠 학생들과 달리 홀로 카메라를 켜지 않는다. 찰리가 272킬로그램의 거구이기 때문이다. 살이 너무 많이 쪄서 보조 기구 없이는 걸을 수도 없는 찰리는 자신의 모습이 역겹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카메라가 고장 났다는 핑계로 강의 시간에 검은 화면만 띄워놓는다.
찰리와 그의 삶이 이렇게 망가진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결혼해 엘리라는 이름의 딸을 낳고 키우던 중 딸이 여덟 살이 되던 해에 가족을 떠났다. 동성 제자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딸 역시 사랑했지만 그 당시의 찰리에게는 연인과의 사랑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모든 걸 버리고 선택한 애인은 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이유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찰리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죄책감, 불안, 수치, 좌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찰리는 이를 달래기 위해 미친 듯이 먹었다. 영화에는 섭식 장애로서의 폭식증과 그 위태로운 과정‧결과를 적확하게 포착한 장면이 종종 나온다. 폭식할수록 몸 상태는 안 좋아지고, 그러면 폭식을 초래한 부정적인 감정은 더 증폭된다. 이는 또다시 폭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찰리는 이 악순환을 멈출 수 없다. 그에게 폭식은 당장에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은 괴로움을 즉각적으로 달래줄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찰리의 몸 상태는 일주일 정도밖에 버티지 못할 상태까지 악화된다. 찰리의 생애 마지막 일주일. 이는 그가 구원받을 마지막 기회다.
학교에서 낙제될 위기인 딸 엘리가 찾아오는 건 바로 이때다. 아빠인 찰리를 유독 잘 따랐던 그녀는 버림받았다는 상처로 괴로워했고, 지금은 엄마조차 ‘악’이라 부를 정도로 까칠하고 반항적인 청소년으로 자랐다. 찰리는 그런 엘리에게 손을 내민다. 과거의 잘못을 만회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지금 그가 사랑하는 딸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찰리의 죽은 연인의 동생이자 물심양면으로 찰리를 돌보고 간호하는 리즈, 종말론과 구원의 메시지를 선교하는 청년 토마스의 서사가 더해진다. 찰리, 엘리, 리즈, 토마스는 모두 나름의 이유로 삶의 끝자락으로 내몰린 사람들, 즉 누구보다도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서로밖에 없다. 누구보다 많은 상처를 갖고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상태의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처지의 누군가를 구원하라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이 네 사람은 서로 간의 뒤얽힘에서 무언가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저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이처럼 〈더 웨일〉은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구원의 길을 집요하게 질문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에세이 강사인 찰리가 늘 강조하던 ‘진실성’에서 찾고자 한다. 그러나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아픔을 놀랍도록 섬세하고 강렬하게 풀어내던 영화는 구원의 내용에서는 그만큼의 성취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물론 구원의 문제에는 당연히 명확한 답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왜 구원이 어려운지, 무엇이 구원을 가로막는지를 질문할 수는 있다. 영화의 결말, 찰리는 끝내 구원에 도달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갈구한 구원이 과연 찰리와 그 주변인 모두를 보듬을 만큼, 찰리가 환희에 젖은 표정을 지을 만큼, 무엇보다 영화에서 찰리가 내내 강조한 ‘진실성’을 온전히 담아낼 만큼 설득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더 웨일〉은 감동적인 영화다. 생의 막다른 길에 몰려 절망하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환기하고, 그런 사람들끼리도 희망과 구원의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무엇보다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의 서사와 영화의 서사가 묘하게 포개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쩌면 위로와 희망의 불씨를 전했다는 것만으로 이미 구원은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
- 충무로가 이 가문 호적에서 파버린다네요
이 사람은 누구야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 ‘토리’ 박대서다. 어느 날 일어나 눈을 뜨는 대서. 자기 집에 누워있는 거라 딱히 이상할 건 없다. 전날 술을 어마어마하게 마신 대서.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정신을 차린다. 상의는 탈의되어 있다. 무심코 돌린 고개. 마치 부인이 누워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누워있다. 아예 처음 보는 사람이랑 같은 침대에 누워있다. 설마 이 사람이랑? 대서는 아연실색하며 일어난다.
또 다른 영화의 주인공은 드라마 업계 쪽에서 일하는 작가 진경이다. 혼자 사는 인생이야 말로 빛난다. 심지어 결혼에 대해서도 비혼주의를 고수할 만큼 연애에 큰 관심이 없다. 어느 날. 친구들이랑 클럽에 간다. 신나게 노는 진경. 코와 귀가 동시에 삐뚤어질 것 같이 마신다. 정신을 잃은 진경. 다음날이 됐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상의가 없다. 화들짝 놀라는 진경. 남의 집에 멍하니 일어난 기억에 충격받는다. 한편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진경의 가족들이다. 진경의 가족들은 뒷골목에서 잘 나가던 집안이라 사람 많고 돈 많다. 홍덕자 여사를 위시로 한 집안 식구들은 두 사람의 결혼을 위해 전력투구한다. 과연 이 로맨스가 성사될 수 있을까?'
데뷔 53년 차의 레전드
이 영화의 주인공인 홍덕자 역의 김수미 배우는 1970년 mbc 텔런트로 데뷔했다. 김수미 배우가 처음 인지도를 알린 계기는 <전원일기>의 ‘일용엄니’ 역이다. 당시 조연 롤을 맡으면서 연기대상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강력했고 이 영향이 <전원일기> 후에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송희숙 캐릭터나 <젊은이의 양지>에서 천귀자 역할을 맡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이미지를 바탕으로 2005년 <가문의 위기 2 - 가문의 영광>, 2006년 <안녕, 프란체스카>에 출연하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김수미 배우는 여기서 얻은 이미지와 인지도를 바탕으로 연예계의 대모가 된다. 입은 거칠지만 마음 따뜻한 할머니로서 일반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으로 브라운관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한 끼 줍시오>나 <미운 우리 새끼>, <라디오스타> 같은 예능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기도 하고 <밥은 먹고 다니냐?> 같은 프로그램에선 속 깊은 카운슬러로 활약한다.
본작의 장점은 영화 전부가 김수미 배우에게 존경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김수미 배우는 혼자만 빛난다. 영화 이야기에서 홍덕자는 주요 포인트마다 의사결정을 주체적으로 수행한다. 나머지의 인물들이 실없는 말장난만 하다가 분량을 날려버리는 것과 대비된다. 구체적으로 왜 진경과 대서가 결혼해야 하는지, 두 사람의 관계에 파장이 일어날 때 덕자가 어떤 역할을 차지하는지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 이야기 내부에서가 아니라 영화의 등장인물들 중에 가장 연기력이 필요한 캐릭터기도 했다.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내내 들쭉날쭉한 영화에서 숨 쉴 틈이 되어준다. 이 인물이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관점이 영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에서 김수미 배우만 두드러진다는 점이나 홍덕자를 어떻게 묘사하는지에 대한 지점이 본작이 이 원로배우에게 바치는 일종의 존경심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이 스파이더맨 팬과 토비 맥과이어/앤드류 가필드에 대한 헌사인 것처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최근작이 해리슨 포드에 대한 예우를 갖춘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가 김수미라는 연예게 원로에게 감사함을 전한 것이다.
뭐 어떡하라고
영화의 표면적인 장르 구성은 코미디/가족/느와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 어떤 특이점도 갖지 못했다. 코미디에 대한 부분은 후술 하기로 하고, 영화에서 가족과 느와르적인 특성이 제 구실 하지 못한다. 일단 가족영화의 특징이다. 가족영화는 일반적으로 온 가족이 함께 부담 없이 볼 수 있음과 동시에 서사의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끈다는 특징이 있다. 대표적으로 <범죄도시 3> 같은 경우는 지나친 폭력은 아예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코미디가 됐다. 반대로 가족이 소재로 등장한다는 점 역시 이 영화의 장르 특성이 될 수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나 <브로커>가 그렇다. 이 두 영화에서 등장하는 가족들은 피를 나눈 혈연은 아니지만 실제 가족과 유사하게 공동체를 이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유사 가족이 가진 혈연의 유대감을 묘사한 방식은 디테일이다. <브로커>에서 송강호 배우가 눈빛연기를 통해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드러낸 부분이나 후반부 이지은 배우가 주인공 일행을 뒤늦게 찾아 나서는 부분이 그렇다. 또 <어느 가족>에서 안도 사쿠라가 맡은 감옥 오열신이 대표적인 예시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정들었던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본작 <가문의 영광 : 리턴즈>는 이 가족요소로서의 특성만 속속 피해 간다. 첫째로 자극적인 묘사다. 이 영화에서 성적인 농담은 수시로 들어간다. 이 영화를 찾은 가족이 전부 성인이면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 작품이 지키는 선이 과연 ‘온 국민이 다 보고 웃을 만큼 적절’한 지는 의문이 있다. 가령 대서와 진경이 둘이 뭘 했는지의 여부가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게 모든 이야기의 계기가 된 것은 맞으나 둘이 이어지는 기본 토대가 되는 기점은 홍덕자가 대서에게 친근감을 느낀다는 것에 있다. 이걸 인물 거의 대부분이 알면서도 말꼬리 잡듯 계속 성적인 농담을 친다. 들어가는 방식에서도 ‘이 대사가 이 영화에서 꼭 필요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진경과 누군가가 헬스장에서 대화하는 신이 있다. 이 장면은 그냥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성에 대한 이야기가 자유롭게 오가는 분위기를 흡수하기 위해 이 대사를 넣은 것으로 보이지만 맥락 없는 농담이기에 불쾌감만 느껴진다.
또한 가족을 소재로 했다는 것도 매가리가 없다. 전적으로 이야기의 의사결정에서 진경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별로 없다. 영화의 기본 설정이라서 당연하게 전제로 깔았다기엔 후반부에서 홍 씨 가문의 존재감이 아예 사라진다. '가문의 영광'시리즈인데 '진경이의 영광'만 남아있다. 또 덕자나 석재가 주인공 대서 곁에 수시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이는 영화의 기본 전제조건 '가족 구성원들이 막내딸의 결혼을 강제한다'는 설정과 모순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두 캐릭터가 주인공의 억지 로맨스를 만들기 위해 기능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이 이야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사건을 다 보고 나면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영화가 허구로 세계를 창조한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sf영화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핍진성과 개연성을 챙겨야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다음은 느와르적인 요소다. 영화에서 '뒷골목 출신'이었다는 설정은 대서의 행동에 인과관계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깡패들이 들이닥쳐서 압박하는데 대서도 위축되는게 당연하다. 이렇게 범죄물적인 속성을 띄는 도중에 가족영화를 버무린다는게 쉽게 와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느와르적인데 가족영화로서의 테마를 삽입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그랬다. 주인공 상훈이 사람을 수시로 두들겨 패버리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 인물을 둘러싼 캐릭터들의 리액션이 자연스럽다. 작중에서 연희의 어머니 포장마차가 영업정지됐다는 설정이 예다. <똥파리>와는 반대로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그 모든 상황을 쉽게 받아들인다. 조폭이라는 소재가 무색하게 인물들이 이에 반응하지 않는다. 특히 대서는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단 1초도 하지 않는다. 또한 장석재는 이 영화의 느와르인 요소를 방해하기까지 한다. 영화 중반부까지 이 사람은 조직의 행동대장으로서 회사를 경영한다. 조직 운영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야기의 그 어떤 위기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조직을 운영하는게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추성훈 배우가 맡은 역할은 장석재의 무능을 드러내기 쉬운 인물이지만 장석재는 그냥 방관만 하고 있다. 이럴 거면 사실 주인공 가족이 조폭이 아니어도 큰 문제가 아니다. 그냥 기업체 회장 딸이어도 이야기 전개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 느와르적인 노선을 타지 못한 이유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신에 있다. 이 장면은 촬영, 동선, 액션 모두 파악이 어렵다. 추성훈 배우가 빛나야 할 신에서 이 인물은 이야기의 내적 논리를 해치기까지 한다.
콩트 보는 듯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 중 예능에서 맹활약한 인물이 몇 있다. 보기만 해도 웃기다는 점은 장점같이 오히려 영화의 단점으로 작동한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플롯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장면에서 이걸 이렇게 한다고?'식의 웃음이 없다. 글쓴이가 두 감독 중 하나였다면 진경과 대서의 알콩달콩한 로코로 이야기의 톤을 정할 것이다. 그래야 공감이 돼서 웃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조연들이 이상한 말장난을 들이대면서 시간을 낭비한다. 대표적으로 홍 씨 가문의 주특기 묘사가 이야기에서 사건을 전달하는 데 있어 핵심이다. 그냥 염탐만 하고 가면 다행이지 이 행위가 인물들에게 아무 생산성이 없다. 웃기지도 않는데 소모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웃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코미디 신에서 '이 부분에서 이렇게 웃길 거야' 대놓고 암시한다. 예고에도 나온 부분인데, '1.5.x 12가 뭐냐?'라는 질문을 인물들끼리 주고받는 신, 골프장 장면, 헬스장 장면, 추성훈 배우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그렇다.
이는 오마주가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유사한 맥을 잇고 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가문의 영광> 1편과 비슷하다. 이때가 2002년이다. 이 때 <색즉시공>이 개봉했다. 이때 한창 유행했던 19금 코미디적인 요소가 그대로 옮겨왔다. 또 2005년 정준하 배우가 처음 이 시리즈에 등장하기 전에 ‘노브레인 서바이벌’에서 바보 이미지가 있었다. 추측이 무색하게 이 바보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온다. 탁재훈 배우가 맡은 장석재 역은 그냥 우리가 아는 예능인 탁재훈에서 전라도 사투리만 썼다. 이 탓에 두 사람(탁재훈, 정준하)이 맡은 역할은 별 연기력이 필요가 없다. 그냥 정자세로 두 손 모아 서있거나 전라도 사투리만 대충 늘어놓으면 임무 완수다. 반대로 김수미 배우가 맡은 역할은 영화에서 안정감이 느껴지는 유일한 파트다. 하지만 웃기는 방식 역시 정해져 있다. 욕설이다. 이 유머도 한 번만 나오는 게 아니라 이 인물 서사에서 계-속 나온다. 이렇게 저급한 유머가 듣기 싫은 것과 유사하게 보기도 싫은 장면은 대서-진경의 로맨스 서사다. 후반부 두 사람 서사는 부끄럽다. <달짝지근해 : 7510>에서도 이병헌 작가(감독)가 대서-진경과 비슷한 로맨스를 만들었다. 왜 전자는 부끄럽지 않은데 후자는 창피할까? 1차원적이기 때문이다. 이 대사와 수많은 몸개그 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넣었다는 것이 장면 전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제 그만합시다
MZ세대가 공감할 코미디를 표방하지만 영화는 많이 뒤떨어져 있다. 그나마 비교적 신선하다고 볼 수 있는 두 캐릭터는 윤현민/유라배우가 맡은 대서/진경이다. 이 두 캐릭터는 요즘 하는 말로 젠더의 관점에서 봤을 때 0점짜리 캐릭터다. 이야기에 강력하게 깔려있는 여성혐오적인 설정이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엄청나게 무례하거나 물질적인 것만 밝힌다. 이를 위해 대서는 영화에서 크게 희생된다. 특히 대서의 원래 여자친구로 등장하는 기은세 배우 캐릭터는 이야기에서 그 어떤 위기도 만들지 못하면서 얼굴만 비춘다. <달짝지근해 : 7510>에서의 한선화 배우 역할과 비슷한 캐릭터지만 이 인물이 후반부에 개과천선하면서 진정한 사랑에 대해 주제를 살린 것과 대비된다. 정용기, 정태원 감독이 이 인물을 설정할 때 딱 어떤 걸 노리고 쓴 지가 드러나기 때문에 이야기의 조악함이 더 두드러진다. 본작 최악의 캐릭터다. 기은세 배우의 열연이 그나마 살렸다.
이렇게 온갖 무리수로 점철된 영화의 설정들을 살리느라 유라 배우는 후반부 특정 몇 장면을 제외하고 이상한 디렉팅의 피해자가 된다. 특히 카페 시퀀스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몇 년 후에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카페 시퀀스에서의 톤이 영화 내내 반복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같은 사람이 연기하는 거니까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영화 안에서 진경이가 처한 상황을 잘 들여다보면 6할 이상이 짜증 내고 있다. 애초에 짜증 날 이유가 없거니와 이 일에 왜 이 인물이 휘말려야 하는지 납득이 어렵다. 상대역 남자주인공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러닝타임의 절반을 당황하고 있어 연기가 물린다. 그러다 보니 영화 초반부의 편집 상태나 전체적으로 먹힌 듯한 사운드는 이제 큰 문제도 아닌 듯 싶다. '작품성 기대하지 마라'라는 말이 전적으로 변명으로 남은 안타까운 코미디다.
-
- <그녀 her>, 인공지능에게 배우는 사랑
2013년 개봉해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미국 작가 조합상의 각본상을 받은 영화 <그녀 her>는 2025년을 배경으로 한다. 이전부터 미래를 다루고 있는 SF 영화들은 배경이 되는 미래가 현재가 되었을 시점이면 다시 거론되고는 한다. 지난 2015년, <백 투 더 퓨처>가 얼마나 현실이 되었는가에 관해 얘기했듯 말이다. 그래서 현재를 배경으로 상상을 펼쳐낸 과거의 SF 영화를 통해 현재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는 인공지능 서비스와 사랑에 빠진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의 이야기를 다룬 SF 로맨스 영화다. 영화계에 로봇과 AI(인공지능)를 소재로 창작된 영화는 많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인간이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 발전한 로봇과 AI가 공격적인 자아를 띠며 인간을 공격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아이, 로봇>은 로봇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벌어진 로봇의 살인 사건을 다룬다. <A.I.>는 인간과 감정을 지닌 로봇의 구분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는 인공지능을 통해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녀>의 한국 포스터와 인공지능 시스템을 다운로드하는 주인공 테오도르(역 호아킨 피닉스) (C) 한국 배급 ㈜더쿱
<그녀>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필해 주는 회사에 근무한다.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이전 편지와 사진 등을 통해 유추해 대신 작성하며 음성인식으로 타이핑된 글자를 필기체로 편지지에 인쇄해 낸다. 아내와 이혼 소송 중에 있는 그는 홀로 지내던 중 ‘당신을 이해하고 귀 기울이며 알아줄 존재’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서비스를 구입한다. 스스로를 ‘사만다’라고 부르는 인공지능을 만난 테오도르는 처음에는 거리감을 느끼다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공유하다 더 깊은 감정을 나누게 된다.
‘올해 가장 독창적인 로맨스 – New York Times’라는 한국판 포스터의 홍보 문구와 같이 <그녀>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애초에 이 영화를 로맨스 영화라고 불러도 괜찮을지 의문도 든다. <그녀>는 담백하게 흘러가지만 묘하게 기시감이 들고 불안감이 느껴진다. 어딘가 불편하고 잘못된 것만 같다. 하지만 그렇게 주인공이라는 캐릭터의 경험에 관객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닌, 제삼자로 이야기를 접하게 함으로써 영화는 인간들 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럼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찬찬히 풀어보도록 할까.
모두가 무선 이어폰을 끼고 각자의 일을 하는 영화 속 미래와 인공지능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C) 한국 배급 ㈜더쿱
편안함과 불안감을 동시에 선사하는 영화
앞서 말했듯 영화는 2013년에 공개된 2025년의 모습을 담고 있다. 12년이라는 어쩌면 그다지 머지않은 미래를 다루기 때문일까, 영화 속 2025년은 꽤 현실적이다. 무선 이어폰을 끼고 공중에 얘기하는 사람들, 구두로 하는 컴퓨터 타이핑, 인공지능이 읽어주는 메일, 노래를 창작하는 인공지능 등 모습이 오늘의 우리에겐 크게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배경은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으며, 그 부드럽고 차분한 색감은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영화 내내 알 수 없는 감정이 관객을 영화의 마지막까지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영화의 도입부, 전화로 밤을 달래는 테오도르의 장면 속 주인공의 상상과 상대의 욕구는 관객에게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 많은 점에서 잘못된 그 상황을 통해 영화의 주인공이 불안하며 다소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음을 알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불편함과 불안감에는 기존에 관객들이 가지고 있을 영화 속 인공지능에 대한 이미지도 한몫한다. 수많은 영화에서 과도하게 발전한 인공지능은 다소 잔혹하며 인간에 해로운 존재로 등장한다. 물론 그런 영화들에서는 인간적인 면을 가진 인공지능이 등장해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관객에게 남긴 것은 ‘인공지능은 과하게 발전하면 인간에게 해로울 수 있다’라는 인상이다. 게다가 ‘영화’라는 특성상 무언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지 자연스레 대비하게 되는 관객은 다음 장면에서 중대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을지 걱정하게 된다. 인공지능의 공격성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트루먼쇼>처럼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사실 사만다는 살아있는 사람이자 단순히 일로써 행동한 거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영화 내내 함께 한다.
심지어 영화 속 인공지능, 사만다는 지속적으로 예상치 못한 면을 보임으로써 긴장을 더한다. 보이스피싱과 인공지능의 개인정보 유출 위협 속에서 사는 2025년의 인간에게 사만다의 작동 범위는 다소 불안하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모든 개인정보를 그의 허락 없이 접속할 수 있으며, 그 외의 사람들과도 연락을 취한다. 자아를 발전시키며 인간처럼 사고하기 시작하면서는 테오도르와 말다툼까지 벌인다. 그렇게 평온하고 부드러운 화면과 대비되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긴장감이 영화의 마지막까지 함께 한다. 하지만 테오도르에게 인공지능, 사만다는 사랑이었다. 물론 인간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다는 점까지 관객에게 기시감을 더하지만 말이다.
인공지능과의 사랑, 언젠가는 이런 상상 또한 현실로 다가오기도 할까? (C) 한국 배급 ㈜더쿱
AI에게 배우는 사랑
사만다를 만나기 전 테오도르의 현실은 부재로 가득했다. 그의 집은 어딘가 텅 비어있고 어수선했다. 책장에는 장식과 책이 모두 제일 아래 칸만 채우고 있었으며, 조명과 잡동사니는 대부분 바닥에 방치되어 있다. 누군가의 편지를 대신 써준다는 직업 또한 부재 그 자체였다. 대신 써진 편지에는 보내는 이의 애정이 빠져있었고, 대신 편지를 쓰는 테오도르에게는 그의 이름이 남는 작업이 없었다. 테오도르와 그의 아내, 캐서린 사이의 부재는 소통이었다. 감정을 얘기하지 않는 테오도르에게 소통의 부재를 느낀 캐서린은 그를 떠났다. 테오도르의 회사 엘리베이터는 도시에는 없는 나무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었고, 회사 동료이자 친구가 개발하는 게임 속에는 남편이 없었다. 이처럼 테오도르의 삶은 그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 빠져있었다. 영화의 전반, 테오도르는 다소 바람직하지 못한 연애 상대로 그려진다. 그는 친구에게 소개받은 여자와 자고 싶지만, 연인이 되고 싶지는 않아 한다. 그러면서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며 이혼 서류에 서명해주지도 않는다. 그렇게 테오도르의 삶은 모순과 부재로 가득했다.
그런 삶에서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만난다. 처음은 낯선 존재인 사만다를 경계하지만, 자신에게 맞춰주는 그녀를 이내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그러고는 자아가 성장하는 사만다를 점차 한 인격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갓 사랑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여주던 둘은 이내 관계에 대해 말다툼까지 한다. 뒤이어 화해하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되기까지,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는 한 연인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만다는 떠나지만 그에게는 무언가가 남았다.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C) 한국 배급 ㈜더쿱
모순과 부재로 가득했던 테오도르는 인공지능을 통해 사랑을 배웠다. “서로 맞춰가기보다는 순종적인 아내를 원했지”라는 전처 캐서린의 말처럼 테오도르는 상대가 아닌 자신만을 생각했다. 문제나 고민이 생기면 상대와 공유하지 않고 홀로 앓다가 상대까지 고장을 냈다. 사람 간의 관계는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며 지탱해 주어야 유지될 수 있음을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를 통해 배웠다.
처음에 인간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사만다의 성장을 돕는다. 그러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주고받으며, 테오도르의 지식과 한계를 넘어 그 이상으로 나아간 사만다로부터 타자와의 관계를 배웠다. 그렇게 처음에는 자신만을 위해 모든 것을 맞춰는 인공지능일 뿐이라 여겼던 사만다로부터 테오도르는 오히려 배움을 얻고 버림을 받는다. 자신만이 주체라고 생각했던 관계 속에서 그는 그녀 또한 주체임을 배운다. 이 점에서 어쩌면 <그녀>는 두 등장인물 간의 로맨스라는 이야기에 인공지능이라는 설정만 더해졌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상대를 주체성이 없는 순종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하다가, 점차 그 상대가 성장하여 그로부터 배움을 얻게 만들고, 나아가 주인공 또한 버려질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기 위해. 상대 또한 생각하고 성장하는 주체임을 보여주기 위해. 관계에 있어 주체는 모두임을 보여주기 위해.
테오도르는 이후에는 어떤 사랑을 할까 (C) 한국 배급 ㈜더쿱
일반적으로 연인관계는 타인으로 시작하여 연인이 되었다가 부부가 되거나 다시 타인이 되면서 끝난다. 그런데 ‘타인이 되면서 끝나는’ 경우 우리는 상대를 만나기 이전인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 상대와 함께 한 경험도 없던 일로 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 관계에서 누군가는 사만다처럼 자아의 성장을 경험해 다음으로 나아갈 것이고, 누군가는 테오도르처럼 지난날의 자신을 반성하며 차츰 성장해갈 것이다. 영화 초반의 테오도르처럼 현실을 부정하고 타인과 혹은 스스로와의 대화를 단절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로맨스 영화는 보통 관객들이 등장인물에 자신을 대입하여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하지만 <그녀>를 보는 관객은 묘한 불안감과 거리감을 느끼며 제삼자로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렇게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그녀>는 과연 로맨스 영화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영화 속 배경이 현재가 되어버린 지금에서는 이 영화를 SF 영화라고 해도 괜찮을까 하는 등의 고민이 든다. 하지만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역시 로맨스 SF 영화를 기대하고 시작했다 곱씹어보게 된 지난날 타자와의 관계들이다.
더하는 글로, 오랜만의 로맨스 영화에 다소 두서없는 글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뒤로하며,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한국 독립영화 <마이디어>(2023)를 추천하고자 한다. <마이디어>는 청각장애가 있는 여자 주인공이 인공지능 어플 ‘마이디어’를 사용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인공지능과 감정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청각장애라는 주인공이 마주하는 현실을 비장애인은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측면에서 담아내고 있다. 지난 2024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만났던 이 작품이 <그녀>를 보는 내내 떠올랐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사용하는 인공지능 '뤼튼'에서 제공하는 '나만의 AI' 기능을 떠올리며, 어쩌면 인공지능과의 사랑이 SF가 아닌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그녀 her > (2013)
감독 스파이크 존스
주연 호아킨 피닉스, 스칼렛 요한슨
-
- '?콰이어트 플레이스 2' 관람 전 필히 숙지해야 할 리뷰
영화 흥신소 - 알고보면 쓸데없이 재밌는 영화리뷰
입도 뻥끗 못하는 가족들의 생존기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알아보자
'낮말도 괴물이 밤말도 괴물이 듣는다는 마을'
자그마한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예민보스 덕분에
사는게 사는게 아니라는 가족과연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
- 달과 함께 추락하는 영화, 문폴
재난 영화 전문 감독인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신작 문폴이 공개되었습니다.
이번엔 달이 추락해 지구와 충돌하게 되는 재난을 담고 있죠.
재난 전문 감독의 영화답게 달이 지구와 가까워지면서 다양한 재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많은 재난 장면들이 이미 과거에 본 적이 있죠?
그래서 기시감이 많이 들고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제 Rabbitgumi채널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ug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는 아래 링크에서!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
TRANSLATE withx
EnglishTRANSLATE withEnable collaborative features and customize widget: Bing Webmaster Portal
-
- 넷플릭스 <스위트홈 2> 공식 예고편
“인간은 바이러스고, 괴물이 백신이다” 괴물화 법칙이 깨지자 점차 허물어지는 인간과 괴물의 경계! 끝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스위트홈의 귀환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 시즌2 12월 1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
- 영화 <플래시백> 메인 예고편
“네가 선택하는 순간 그게 너의 현실이 될 거야”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하는 금지된 약 '머큐리'단조로운 일상에 지친 직장인 ‘프레드릭'.
어느 날 길에서 마주친 낯선 남자에게서 데자뷔를 느낀 뒤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고등학생 시절 첫사랑 '신디'를 떠올린다.
신디가 졸업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프레드릭은
그의 실종이 친구들과 호기심에 삼킨 금지된 약 '머큐리'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나는 과거의 기억인가, 미래의 환영인가”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 갇힌 프레드릭의 마지막 선택!
과거의 미스터리를 파헤칠수록 시공간이 무너지는 기묘한 감각을 느끼게 되고
악몽 같은 과거와 감옥 같은 미래의 경계에 갇힌 프레드릭은 자신의 현실을 결정할 최후의 선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