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2025-03-11 18:01:17
人生無常(인생무상)
삶과 죽음에 관한 고찰
영화 <숨>(2023, 윤재호)
“삶과 죽음은 끝나지 않는다.”
생사에 관한 고찰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죽음을 다루는 이들인 장례지도사와 유품정리사,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중인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다.
장례지도사는 망자의 몸을 정성껏 닦아 장례를 치른다. 고인의 가장 마지막까지 기능하는 기관은 청각이라고 한다. 때문에 장례지도사는 항시 말을 조심하고, 유족들은 가지 말라고 통곡하며 붙잡기보단 마음 편히 가시라고 작별 인사를 건네는 것이 좋다. 대개 부자는 쪼그려 불편한 얼굴로 굳어간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물질들을 두고 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안간힘을 쓰듯 말이다. 반면, 가난한 자는 극락에 간다고 한다. 미련 없이 그 누구보다 편한 얼굴로. 유품정리사는 돌아가신 분의 물건과 집에 남은 부패의 흔적들을 지우는 역할을 한다. 돌아가신지 몇 개월 뒤에서야 좁은 방 안에서 홀로 발견된 분의 부패물과 물건을 정리하던 중, 과거 고인이 장영실과학상을 받은 상패를 발견한다. “이런 분이 어쩌다가.” 죽음을 다루는 일을 하며 깨닫는 것은 인생의 덧없음이다. 누구든 성공하고 망할 수 있고, 누구든 살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죽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가, 망한 뒤로 하루에 많이 벌어야 1,500원인 폐지를 주우면서 살아간다. 온몸 곳곳이 녹슬었다. 할머니도, 장례지도사도 병원에서 쇠약해졌음을 진단받는다. 불교, 윤회 사상을 믿는 장례지도사도, 하나님을 믿는 할머니도 죽음 앞에서의 태도는 비슷하다.
<숨>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정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허나, 장례지도사 남편의 손을 잡고 잘 수 있냐는 둥, 돌아가신 분의 집을 정리하며 나온 쓰레기를 길에 두지 말라는 둥, 죽음을 불쾌하게 여기는 자들에게 전한다. 숨이 시작되고 멈추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것, 생과 사는 그 자체로 고귀하다는 것. 우리는 타인을 배웅하고, 자신이 떠날 날을 준비하며 살아가야한다고 말한다. 장례지도사는 훗날 추하지 않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단식을 이야기하고, 연명치료거부 신청서를 작성한다. 숨은 붙잡기보다, 흐르는 대로 두는 것. 人生無常(인생무상)이기에 허무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하여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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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걸음 뒤, 한걸음 앞에서 기록한 분열의 시대
시빌 워: 분열의 시대 (Civil War, 2024)
한걸음 뒤, 한걸음 앞에서 기록한 분열의 시대
개봉일 : 2024.12.31.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액션, 전쟁, 드라마
러닝타임 : 109분
감독 : 알렉스 가랜드
출연 : 커스틴 던스트, 케일리 스패니, 와그너 모라, 스티븐 헨더슨, 제시 플레먼스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믿고 보는 제작사 A24의 첫 블록버스터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모종의 이유로 두 갈래로 나뉜 세상’이 주는 공포와 긴장감을 동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거대한 동력을 선택한 것치고는 움직임이 다소 방어적이다.
이 영화는 자신이 얘기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내보이지 않는다. 그저 배경과 몇 개의 시선을 제시할 뿐이다. 이러한 태도는 최종에 이르러 애매한 감상을 남기게 만드는데, 이 싸움에 있어 확실한 선을 원한 관객에게는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 영화 예고편과 시놉시스를 보고 거대한 전쟁 블록버스터 또는 정확한 저격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이 전쟁에 뛰어드는 것을 조금 더 고민해 보길 권하고 싶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흔히 생각하는 전쟁 블록버스터가 아닌 전쟁 한가운데 서있는 한 기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과묵한 드라마에 가까우니 말이다.
극 중 미국은 최악의 내전을 겪고 있다. 이 혼란한 정세 속에서 종군 기자인 리, 조엘, 새미. 그리고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진 청년 제시는 아수라장이 된 도시를 누비며 끔찍한 순간들을 생생히 담아낸다. 이들은 정부와 반대 세력 사이 힘의 무게 추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마지막 특종 기회를 잡기 위해 대통령이 숨어있는 워싱턴에 가기로 결정한다.
기자들은 총을 든 군인과 반대 세력들 사이에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없이 카메라 한 대만을 들고 달려든다. 이들은 죽음이라는 공포를 바로 옆에 두고서도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 카메라의 뷰 파인더만을 쳐다본다. 빗발치는 총성 사이에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섞여들리고, 각자의 무기를 든 군인과 기자들의 비슷한 실루엣이 보인다.
리와 기자들은 자발적으로 뛰어들었던 전투에 이어 원치 않은 사건에도 휘말리며 몇 번의 위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비현실과 현실이 뒤섞인 상황과 오래 외면해왔던 공포들을 흠뻑 체감한다.
무엇을 위한 분열인가
워싱턴으로 향하던 네 사람은 한 테마파크 입구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군인 시체를 발견한다. 이상함을 느끼고 차를 돌리려는 순간 갑자기 총알이 빗발치고 새미를 제외한 세 사람은 차에서 내려 바닥에 엎드린 군인 옆에 자리를 잡는다. 조엘은 군인에게 묻는다. 저 안에 누가 있냐고, 지휘관은 누구냐고. 군인은 답한다. 저 안에 누가 있는지 모르고 지휘관은 없고 그저 저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해서 쏘는 것이라고.
군인의 대답은 현재 내전 상황을 한 번에 설명한다. 이들은 누구와 왜 싸우는지 모른다. 그저 살기 위해 총을 쏠 뿐이다. 기자들도 군인들과 다르지 않다. 처음엔 내전의 참혹함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건 영웅처럼 보이지만 나중엔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지 정확히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은 무엇을 찍고 그 사진 아래 어떤 말을 적고 싶었던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두 무리의 Shooting(총격, 촬영)이 가진 의미는 점점 흐릿해지고 이들은 더 이상 이 전쟁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 또한 이들에게 명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모든 걸 흐리게 만드는 피
피와 뷰 파인더에 가려진 제시의 시선
공포와 피는 뚜렷했던 것을 점점 흐려지게 만든다. 특히 처음으로 전쟁을 가까이서 겪은 된 제시가 이에 크게 반응하고 변화한다. 주유소에서 처음 고문 당한 사람을 봤던 날, 제시는 밤이 되었음에도 요동치는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 하지만 피 흘리는 사람을 다시 눈으로 보고 카메라로 담고 또 거대한 시체 구덩이에 떨어져 본 후 도착한 워싱턴에서 제시는 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탱크에 따라붙으며 사진을 찍는다. 심지어 리가 총알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까지도 그는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사진 현상액에도 자신의 체온을 담던 따뜻한 소녀는 어디로 가고 백악관 복도엔 징그럽다 싶을 만큼 사진을 찍어대는 기자 제시가 남는다. 제시의 눈에 가득 맺혔던 누군가의 피는 결국 그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고 그의 눈앞을 가로막은 뷰 파인더는 소중한 이(리)의 죽음마저 가려버린다.
뷰 파인더를 벗어난 리의 시선
제시는 주유소 사건을 겪고 리에게 묻는다. 저는 왜 사람들을 죽이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을까요?. 제시는 이 이상한 상황에 대해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리는 제시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우린 묻지 않고 기록하지. 다른 사람이 묻도록.”
리는 오랜 시간 모든 물음을 지운 채 뷰 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 그 덕에 리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수준을 넘어 거의 냉혈한에 가까운 종군기자로 여러 전쟁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제시와 그가 던진 질문이 리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새미는 주유소에서 충격을 받고 공포에 떨던 제시의 모습과 어린 리의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들은 리는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은 채 제시의 모습을 관찰한다.
주유소 사건 다음날. 리, 조엘, 제시는 시내에서 벌어진 소규모 격전에 참여한다. 제시는 어제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죽어가는 이를 찍는다. 이때 리는 셔터를 누르는 걸 멈추고 사진을 찍는 제시를 가까이서 바라본다. 그때부터 리는 제시를 통해 자신을 본다. 피에 벌벌 떨던 어린 소녀였던 자신과 뷰 파인더 뒤에 숨어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찍는 종군기자인 자신을.
리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연이어 터진 동료 새미와 토니의 죽음은 왜 이들이 죽어야만 하는지 이 전쟁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오래도록 외면해왔던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결국 리의 마음은 무너지고,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쯤 그의 종군 기자로서의 자아는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리는 커다란 탱크 뒤를 따라가지 못하고 몸을 웅크린다. 이제 뷰 파인더를 벗어난 리의 눈엔 누군가의 죽음이 보인다. 그래서 그는 제시의 죽음을 막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진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카메라 뷰 파인더 뒤에 가려진 제시의 눈엔 리의 죽음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총 맞는 순간도 찍을 거예요?”라는 제시의 질문에 리는 온몸으로 답을 내놨지만 그걸 알아줄 소녀 제시는 이제 뷰 파인더 뒤로 사라졌다.
<시빌 워:분열의 시대>는 기자들의 눈과 뷰파인더를 통해 이 이상한 전쟁을 기록하며 은근하게 묻는다. “우리의 눈은 어디에 있는가. 뷰파인더 뒤, 아니면 앞?”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 ‘누가 무너져야 하고 누가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아니다. 영화가 은근슬쩍 던진 ‘이 커다란 분열 속에서도 놓쳐선 안 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하고 깨닫는 것이다.
아무리 분열과 죽음이 익숙해진 시대라 해도 우리는 뷰파인더 뒤에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승, 패와 잘잘못이라는 결과 밑에 쌓인 수많은 죽음과 희생을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어린 리처럼, 처음 여정을 시작했을 때의 제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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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경계 없는 서사, 퍼펫 애니메이션의 마법
스톱모션은 지금 이 시대에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형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뭐든지 인공지능으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서, 장면 하나하나를 기워 완성하는 작업이라니. 인공지능의 활약이 마법처럼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사람의 손끝에서 오롯이 완성되는 이러한 결과물이 더 마법처럼 느껴집니다. 웬만한 용기와 끈기, 열정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지요.
'퍼펫 애니메이션(인형을 사용한 스톱모션)의 대가'로 불리는 퀘이 형제는 지난 19년간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물결을 지켜보면서도 묵묵히 또 한 편의 스톱모션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바로 그 퀘이 형제의 세 번째 장편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
Sanatorium Under the Sign of the Hourglass
Summary
요제프는 유령이 나올 듯한 기차를 타고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는 쓰러져 가는 요양원으로 향한다. 미심쩍은 고타르트 박사의 안내를 받으며 요제프는 요양원이 수면과 각성 사이 부유하는 세계 어딘가에, 시간과 사건이 어떤 형태로도 측정될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퀘이 형제
스톱모션으로 물성화한 현실과 환상의 세계
이 영화를 홍보하는 문구에서 "폴란드 작가 브루노 슐츠의 동명 소설을 물성화한 미스터리 영화"라는 표현을 발견했습니다. 흔히 '영화화'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이는데, 왜 '물성화'라는 표현을 썼는지 궁금했죠. 영화를 보고 나니 왜 하필 그 단어였는지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말로 붙잡기 어려운 어떤 관념이나 분위기를 손에 잡힐 듯한 실체로 만들어낸 작품, 그것이 바로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였습니다.
퀘이 형제가 주목한 브루노 슐츠의 소설 『모래시계 요양원』은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만나러 요양원을 찾아간 주인공의 경험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며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퀘이 형제의 영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주인공 '요제프'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만나러 요양원으로 향하고, 유령들이 살고 있는 낡은 요양원에서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험들을 하죠.
영화는 희귀한 물건을 경매로 판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실사)와 경매 물품 중 하나인 '죽은 망막 보관함' 안에서 펼쳐지는 신비로운 이야기(애니메이션)가 액자식 구성으로 펼쳐집니다. 퀘이 형제는 모호하고 몽환적인 경험을 구현하기 위해 실사와 그들의 장기인 퍼펫 애니메이션을 번갈아 사용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액자 밖의 사람들이 들여다보아야만 하는 '죽은 망막 보관함' 속 이야기는 꼭 나만 경험할 수 있는 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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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영화
스톱모션이라는 형식은 기본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기에, 어쩔 수 없이 스토리나 구조가 단순하고 평이할 수밖에 없다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는 19년이라는 작업 기간이 말해주듯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면서 심오한 주제 의식까지 다뤄냅니다.
사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친절한 작품은 아닙니다. 현실과 환상, 액자의 안팎을 오가는 구조는 복잡하고, 흐름은 비논리적이며, 이야기의 방향은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어떤 장면은 반복되고, 어떤 대사는 들리지 않으며, 어떤 소리는 불협화음처럼 익숙하지 않은 자극만을 주기도 하죠. 철제와 금속 소재를 중점으로 사용한 스톱모션을 낯선 경험이 주는 긴장감에 불편감을 더합니다. 한 마디로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어떠한 명확한 논리도 따르지 않는 겁니다.
도대체 이 영화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꼭 1인용 영화관처럼 그 안에서만 이야기가 펼쳐지는 '죽은 망막 보관함'이라는 설정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하나의 관객에게 가닿을 개별적인 이야기를 지향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이 영화의 핵심은 나에게만은 또렷하게 남는 단 하나의 현상, 즉 본질에 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정형화되지 않은 퀘이 형제의 어법은 흐릿하고 모호한 표상들로 구성되지만, 이로써 그저 영화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느끼게 합니다. 또 각각의 장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이지만, 모순적으로 이를 경험하는 순간은 유일한 단 하나의 일이죠. 한 번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경험이며 그것이 곧 본질이라는 메시지를, 이라는 본질을 퀘이 형제는 영화를 통해 선사하고 있습니다.
⊙ ⊙ ⊙
다소 어려운 영화였습니다만, 장인의 손길로 버무려진 퍼펫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이것이 또 하나의 본질일 수 있겠지요.
One-Liner
망막에 맺힌 상은 흐릿하나, 그 속엔 저마다의 본질이 있다.
Schedule in JIFF
2025.05.02(금) CGV전주고사 2관 20:30
2025.05.04(일) CGV전주고사 2관 20:30
2025.05.08(목) CGV전주고사 5관 21:3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4월 30일 - 05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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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시선으로 특별하지 않음을 말하다.
<디어 에반 한센(Dear Evan Hansen)>, <나, 다니엘 브레이크>, <말아톤>, <7번방의 선물>과 같이 장애를 겪고 있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영화는 비록 상업영화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국내외 영화계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앞서 예시를 든 영화들처럼, 장애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들은 흔히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해당 인물이 어려움과 고난을 겪게 되는 모습을 통해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의 고난→ 조력자 혹은 특정 사건과 만남→ 주인공의 극복/ 희망’과 같은 클리셰를 사용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러한 영화의 전개는 관객에게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혹은 상상해보지 못한 상황을 이해하고, 몰입해볼 기회를 제공하며,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인물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행방식은 영화의 전반을 중심인물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때로는 영화의 중심인물이 아닌 주변 인물들이나 그들이 겪는 사건, 영화 전반에 걸쳐 숨겨져 있는 의도와 영화의 주제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도를 하락시킨다는 단점을 보이기도 하며 ‘주인공의 고난과 극복’이라는 전형적이고 반복적인 클리셰에 관객이 흥미를 잃게 될 가능성 또한 있다. 이런 ‘사회적 약자’라는 같은 소재를 가진 영화들의 어떤 공통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 속에서 영화 <나는 보리>가 갖는 시선은 특별하다. <나는 보리>는 농인을 바라본다. 소수가 아닌 다수로서, 장애인 가족이 아닌,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한 가족으로서,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소통하는 존재로서, 그리고 농인과 청인을 다르지 않은 시선에서 말이다.
1. 경계를 허무는 시선
‘코다(CODA:Child Of Deaf Adult)’는 농인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하는 용어로, 2020년에 개봉한 김진유 감독의 <나는 보리>는 ‘코다(CODA)’인 소녀 ‘보리’의 일상과 그런 보리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을 담은 영화이다. 김진유 감독은 실제 농인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코다(CODA)’로, 영화<나는 보리>는 김진유 감독의 유년기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때문에 <나는 보리>의 주인공이자, ‘코다(CODA)’인 소녀 보리는 김진유 감독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어있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보리>의 주인공인 11살 ‘보리’는 어린 시절 김진유 감독처럼 농인인 부모님을 대신해 은행 업무를 보고, 음식을 주문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등 주로 가정 내에서 아이보다는 어른들이 하게 되는 일들을 도맡아 한다. 영화 속 “나는 누나 귀 안 들리는 거 싫어. 치킨 못 먹어.”라는 농인 동생 정우의 대사를 통해서, 아침에 혼자 알람을 듣고 일어나 가족들을 깨우고 등교하는 보리의 모습을 통해서, 보리가 “내일 할아버지 집에 갈거야.”라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말에도 따라나서 엄마와 동생의 몫까지 기차표를 구매하고, 택시 앞자리에 탑승해 길을 안내하고, 수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농인인 엄마 사이에서 수화를 통역해주는 장면을 통해서 보리의 가족들이 생활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보리에게 맡기고 의지하고 있으며, 보리가 가족들 사이에서 어떠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는 보리가 이러한 책임들을 도맡음으로써 결코 불행하다거나 힘겹다거나, 가족들이 보리에게 과도하게 의존하여 보리가 없이는 아예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불리하고 힘든 요소를 지니고 있음에도 영화에서 보리네 가족은 따스함과 서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넘치는 화목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떻게 보면 가족 구성원 내에 농인이 없는 일반 가정보다 더욱 화목한 모습으로 말이다. 이는 은정이가 자신의 부모님은 항상 바쁘고 매번 걸려오는 전화와 부모님의 심부름은 다 자신의 몫이라고 투덜대며 보리를 부러워하는 장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화목하고 따뜻한 가족의 묘사는 농인인 부모님과 청인인 자녀로 구성되었지만, 보통의 가족들처럼 따뜻하고 화목했던 김진유 감독의 가정환경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화목한 가족 내에서도 왠지 모르는 소외감을 느끼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보리’이다. 들리지 않는 부모님 혹은 동생 정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수에 속하는 청인 ‘보리’ 말이다. 이러한 설정은 <나는 보리>가 농인의 문화와 세상을 특별하지 않게 바라봄으로써 가지는 미덕을 돋보이게 해준다. 보리는 가족들 사이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알 수 없는 소외감에 매일 아침, 자신도 부모님과 동생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기도 하며, 심지어는 소리를 잃기 위해 MP3를 최대 음량으로 키워 이어폰을 귀에 바짝 꽂은 채 음악을 듣거나 물에 귀를 자주 담그면 청력이 감퇴한다는 TV 속 해녀의 인터뷰를 보고 직접 바다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러한 보리의 행동과 소외감은 일반 청인 관객들이 보기에 이질적이고 쉽게 공감할 수 없으며 한편으로는 충격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이런 보리의 심리와 행동, 영화의 설정이 <나는 보리>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
가족 내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존재로서, 사회적으로 우리가 흔히 다수라 말하는 청인에 속함에도 보리가 농인으로 사는 삶을 원하는 모습을 통해 <나는 보리>는 장애인은 약자, 청인은 일반인이라고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이분법적 사고와 농인의 삶을 남다르게 바라보고 불편할 것이라 섣불리 동정하는 우리의 선입견을 깨트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보리>에는 농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하지 않기를 바라는, 있는 그대로의 농인을 보여주고 싶은 감독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앞서 말했듯, 보리는 물품을 구매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은행 업무를 보는 등 흔히 보호자가 해줄 법한 일들을 모두 맡아 하는데, 이렇게 가족들의 생활편의를 도울 뿐 아니라 보리는 사회로부터 가족들을 보호하기도 한다. 이는 보리가 동생 정우의 축구경기 출전과 엄마와 함께 옷을 사는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동생 정우 역시 농인인데, 정우는 축구 실력이 뛰어남에도 귀가 들리지 않아 경기 수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출전선수가 아닌 후보 선수로 지목된다. 이에 정우가 후보선수라는 것을 알게 된 보리는 이장님인 아버지를 둔 친구 은정이를 통해 정우가 축구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보리가 엄마와 단둘이 옷가게를 방문한 장면에서 보리는 옷가게의 직원들이 자신과 엄마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와 비하를 서슴지 않고, 옷 가격 또한 원가보다 높게 책정해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후 보리는 잘못된 거스름돈을 점원에게 돌려주며 엄마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자신은 들리지 않는 척하고 있었을 뿐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행동과 말을 했는지 다 보고 들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보리는 가족의 도우미와 더불어 보호자의 역할도 소화한다.
그렇다면 청인인 보리는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족들의 도움 없이도 모두 스스로 잘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보리가 가족을 돕듯, 보리 또한 가족의 도움과 관심,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영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보리는 불꽃놀이를 보러 가족과 함께 시장에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부모님의 손을 놓친다. 안내방송을 해도, 전화를 걸어도 들을 수 없는 부모님과 동생이기에 이들을 찾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보리는 막막하기만 하다. 이 순간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밝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보리는 처음으로 11살 제 나이 또래처럼 어린아이 같은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는 이렇게 가족 내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하는 보리 또한 가족들의 보살핌과 도움이 필요하며, 우리가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는 농인도 도움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큰 힘과 도움이 되어 주는 존재라는 걸 알려준다. 다음 소주제에서 더 언급하겠지만, <나는 보리>와 유사한 작품으로 미국에서 개봉한 <코다>라는 음악 영화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코다(CODA)’인 주인공 소녀가 “지금까지 가족 없이 뭘 해본 적이 없어요.”라며 망설이는 모습을 통해 <나는 보리>와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자신이 가족들을 도와야 하지만 역으로 자신도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는 청인과 농인이 모두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이기도 함을 보여주는데, 결국 <나는 보리>가 이야기하는 바는 이러한 영화의 장면들과 보리의 아빠가 보리에게 반복해서 뱉는 말을 통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들리든, 들리지 않든 우린 똑같아.” <나는 보리>가 바라보는 청인과 농인은 연약한 존재이자 때론 강한 존재로서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그저 똑같은 한 사람일 뿐이다.
2. 다르고도 같은 소녀들– 영화 <코다>의 루비, <나는 보리>의 보리
<나는 보리>의 보리와 유사하게 ‘코다(CODA)’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있는데, 바로 2021년 미국에서 개봉한 <코다>이다.
두 영화의 주인공 보리와 루비는 모두 코다 중에서도 가족 내에서 유일하게 소리가 들리는 자녀 'OHCODA’이자, 미성년자 코다 ‘KODA’에 속한다는 점, 그리고 영화가 청인과 농인의 화합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나, 두 영화 속 소녀의 가정 환경이나 농인의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 그리고 인물의 선택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나는 보리>에서 보리의 관심이 가족들과 보내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과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면, <코다>의 루비는 졸업과 성인을 앞둔 나이로 진학과 가족의 생계 등 자신의 삶과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고민하는 데에 몰두한다. 두 영화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차이는 보리는 가족들과 동일시 되어 자신도 소속감을 느끼기를 바라는 반면, 루비는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기를 원한다는 점이었는데, 이는 단순히 졸업 학년과 11살이라는 인물의 나이 차이 때문에 나타난 차이 만은 아닐 것이며, 두 소녀의 가정 환경과 제작자(감독)의 배경과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 잡은 문화적 배경 또한 영화의 관점과 주인공의 선택에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루비의 가족은 아빠와 오빠가 운양하는 어선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가는데, 일정치 않은 수입과 틈만 나면 중간에서 이익을 떼가는 중개업자들 때문에 루비의 진학비용 걱정은 물론, 늘 생활비 걱정을 안고 지낸다. 또한, 루비의 가족은 가족 내의 강한 유대와 결속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루비의 엄마가 식사할 때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가족의 일에는 꼭 모두가 함께 자리하게 하는 장면을 통해 루비의 엄마가 가족의 소통과 결속을 강조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거 알아? 엄마도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해.”라는 루비의 대사와 “들리는 년들은 나랑 말 안 해.”라는 엄마의 대사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사실 엄마의 이러한 행동은 청인과의 교류는 두려워하며 피하고, 농인에 공감할 수 있는 가족 내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유지하려는 엄마의 방어기제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 내의 유대를 강조하는 엄마의 행동과 자신도 부양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저절로 심어지게 되는 루비네 가정의 분위기와 환경은, 루비가 가족에게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반면, 보리의 가족은 루비네 가족과 같은 입장으로, 농인으로서 겪는 불편함과 어려움이 분명 있음에도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의 본보기라고 표현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따뜻한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나는 보리>에서 보리의 부모님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수술비조차도 전혀 상관없다며 정우와 보리의 귀를 위해선 큰 비용지출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코다>에서는 가족의 생계수단이던 낚시도 <나는 보리>에서는 보리 아빠의 오랜 취미이자, 어린시절부터 아빠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준 존재, 아빠와 보리가 속마음을 교감하게 되는 시간과 배경으로 나타난다. <코다>는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이며 원작 영화인 <미라클 벨리에>는 프랑스에서 제작되었고, <나는 보리>는 우리나라의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제작되었다. 이에 루비와 보리의 선택 차이에는 우리나라보다 비교적 이른 나이의 면허취득과 독립을 맞이하는 서양의 문화와 개인주의, 그리고 한국의 가족공동체 정신과 협동, 한국의 ‘정’이라는 이데올로기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가정과 사회에 대한 루비와 보리의 관점과 선택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두 영화 모두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농인과 청인의 경계를 허물고, 화합과 이해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은 같다. <코다>의 경우 영화의 후반부. 음악 영화답게 음악을 통해 주제를 드러낸다. 루비의 오디션과 대학 진학을 내내 반대하던 루비의 부모님은, 교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루비의 모습과 루비의 노래에 환호하는 관객의 모습, 그리고 그 누구보다 노래를 사랑하는 듯한 루비의 태도를 보고 오디션 당일 아침, 직접 운전을 해 오디션장까지 함께 간다. 오디션장에서 루비가 부르는 노래는 “Both sids now”. 앞서 말했듯, 영화의 메인 사운드 트랙이자 주제를 나타내고 있기도 한 이 루비의 오디션 곡은 “하려던 일들이 많았지만 구름이 내 앞을 막았지. 이제 구름을 양쪽에서 보게됐어. 위와 아래에서”, “이제 사랑을 양쪽에서 보게 됐어. 주는 쪽과 받는 쪽에서”, “이제 인생을 양쪽에서 보게 됐어. 이기는 쪽과 지는 쪽에서”와 같이 성장하며 주변에 있던 것들에 대해 달라진 이해와 시선에 대한 가사를 담은 곡으로, 루비가 ‘코다(CODA)’로서 살아가며 때로는 농인인 가족이 자신의 인생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때로는 농인 가족 속에 속한 유일한 청인이 자신이 소외된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던, 때로는 다른 가족들과 다른 자신의 가족이 부끄럽고 이해할 수 없었던 루비가 이제는 농인과 청인의 입장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가족을 이해하게 되었음을 노래한다. 그뿐만 아니라, 오디션 현장에 몰래 들어온 가족들을 위해 루비는 노래를 부름과 동시에 가사에 맞추어 수화를 하는데, 이 장면을 통해 영화 <코다>는 루비의 성장과 이해, 농인과 청인의 교류와 화합을 완벽히 실현시킨다.
<코다>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이해와 화합에 중심을 두었다면 <나는 보리>는 서로 간의 이해와 더불어 ‘코다(CODA)’로서 살아가는 보리의 자아정체성 확립과 농인과 청인과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농인도 청인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점을 더 강조해 말한다. <나는 보리>의 미덕은 바로 이렇게 농인 가족이 등장하지만, 비장애인 가족과 다르지 않은 보편적 정서를 다룬다는 점에 있다. 다름보다는 같음을 느끼게 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게 한다. 실제로 나는 보리의 김진유 감독은 “처음부터 장애를 어떻게 다루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리의 감정에 집중했고, 그 감정선을 따라 보리 가족의 모습을 묘사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기존의 장애를 다룬 영화와 차별점을 갖게 된 것 같다.”라며 특별한 의도를 담기보단 오히려 그저 농인을 향한 시선이 특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뿐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영화 <나는 보리>의 후반부에서, 보리는 시장에서 구매했던 부적인 ‘악마의 눈’을 바다에 던지는데, 이러한 보리의 행동을 통해 일시적이지만 농인의 입장을 직접 체험해보고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을 경험해본 보리가 더 이상 가족에 대한 타인의 차별적인 시선이나 편견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으며 ‘코다(CODA)’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시선이 어떻든, 자신에게는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확립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나는 보리>는 보리가 도로와 바다 사이 좁은 방호벽 같은 길 위를 양팔을 벌린 채 균형을 잡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배우들의 이름과 함께 등장하며 마무리되는데, 도로도 바닷가도 아닌 사이 도로 방호벽 위를 조심조심 걸어가는 보리의 모습을 통해 농인과 청인 사이에 놓여있는 ‘코다(CODA)’ 보리의 정체성과 농인과 청인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완성한다.
3. 보리가 보여주는 농인의 세상
<나는 보리>에서 보리는 가족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에 농인이 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물에 귀를 자주 담그면 잘 들리지 않는다는 TV 속 해녀의 말에 직접 바다에 뛰어들며, 이상 없이 무사히 구조되었음에도 보리는 이후로 계속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척, 자신도 농인이 된 척 행동하는데, 이렇게 농인으로서 생활하는 동안 보리는 농인을 향한 사회의 시선을, 가족들이 농인으로서 겪었을 어려움과 외부에서 받았을 차별들을 경험하게 된다. 앞서 <나는 보리>의 미덕은 농인 가족이 등장함에도 비장애인 가족과 전혀 다른 바 없이 느껴지는 보편적인 정서를 다룬다는 점이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영화 전반에 걸쳐 경계를 허물고,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지만, 보리가 직접 농인의 입장으로 살아가는 생활들을 담음으로써 일상 속에서 농인이 겪게 되는 불평등한 차별과 시선 또한 짧은 내에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 또한 <나는 보리>의 또 다른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보리가 가족들처럼 농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친구들은 학교에서 이전과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 보리와는 상의 없이 보리에게 화장실 청소 당번임을 통보한다던가, 은정이와 보리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보리를 투명인간처럼 쏙 빼놓고 은정이에게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식으로 말이다. 학교와 또래 친구들 내에서뿐만 아니라 보리는 주변 어른들에게서도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보게 되는데, 부모님 대신 정우와 농인이 된 척하는 보리를 데리고 병원에 간 고모가 ‘착한 거짓말’이라는 명분으로 병원에 다녀온 후 엄마, 아빠에게 수술하게 되면 정우가 앞으로 축구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전하지 않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또한, 엄마가 함께 간 옷가게에서는 보리와 엄마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몰래 점원들끼리 상의하여 더 높은 가격으로 옷을 판매하는 것을 보게 되며, 지나가는 보리를 본 동네 어른들이 “어린 것이 딱해서 어떡해.”라며 들리지 않게 된 보리를 안타까워하며 안쓰러운 시선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바라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보리가 농인인 체를 하며 겪게 되는 주변의 변화와 상황들은 우리가 영화 밖 현실사회에서 농인을 바라보는 태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우리 사회는 흔히 장애를 섣불리 안타깝다는 식으로 바라보거나 ‘힘들겠다’라는 식으로 동정 같은 공감을 한다. 작은 시선, 별 의미 없는 말 한마디일 수 있지만, 때로는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툭툭 나오는 시선과 말들은 당사자의 마음에 꽂히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11살 소녀가 특별히 큰일 없이 지나가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차별을 경험하도록 한 것에도 농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하지 않았으면 하는 김진유 감독의 바람과 유년 시절 감독이 겪었던 감정, 그리고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진유 감독은 “제가 만났던 농인 부모 중 60% 정도가 자녀가 농인으로 태어나길 바랐다. 농인이라는 것 자체가 불편하지 않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사회에서 우리가 농인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감독이 영화에서 보리가 직접 농인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농인이 일상 속에서 빈번하거나 흔하게 겪게 되는 어려움을 보여주고, 그 어떤 가정보다 따뜻하고, 온전하고,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를 그림으로써 현실에서의 농인을 향한 특별한 시선을 제거하고자 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4. <나는 보리>에 대한 글을 마치며
영화 <나는 보리>는 농인의 삶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코다(CODA)’라는 익숙하지 않은 용어와 존재를 알리고, 이런 ‘코다(CODA)’ 소녀를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단순히 농인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농인과 청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경계를 허물고 농인 가족이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가족임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보리가 농인이 되고 싶어 하는 바람을 통해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사고에서 전환된 시각과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지닌다.
<나는 보리>의 김진유 감독은, “장애인 가족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식의 묘사도 하고 싶지 않았고,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농인 가족의 평범한 일상과 자신이 살았던 모습만을 보여줘도, 대중이 농인을 조금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라고 인터뷰에서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감독의 애정 어린 시선이 영화 <나는 보리>와 그것을 보는 관객에게도 통한 것일까. <나는 보리>의 보리네 가족은 보는 사람의 마음도 더불어 따뜻해질 정도로 그 누구보다 화목하고 행복해 보이며, 영화를 통해 그들의 삶과 ‘코다(CODA)’로서 살아가는 보리의 삶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더 이해하고, 그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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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마지막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4월의 마지막 주말도 잘 보내셨나요?5월의 첫 시작도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개봉 주 주말의 관객 수'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이 3주째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말 관객 수가 저번 주와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주말 동안 (4월 29일~5월 1일) 관객 수 18만 7,14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07만 5,520명을 돌파하였습니다.저번 주와 동일하게 누적 관객 수가 약 30만 증가하였습니다.이번 주에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하기 때문에 1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2.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NEW)▶ 가해자들의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인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주말 동안 (4월 29일~5월 1일) 관객 수 15만 9,58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22만 8,434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같은 반 친구 4명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남긴 채, 의식불명 상태로 호숫가에서 발견된 ‘건우’.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가해자 부모들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데…
3. <서울괴담> (NEW)▶ 10개의 현실에서 겪을 법한 괴담을 다루고 있는 작품 <서울괴담>.
연기파 배우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이돌까지 출연해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주말 동안 (4월 29일~5월 1일) 관객 수 4만 2,80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6만 912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어두운 터널을 홀로 지날 때의 두려움, 옆집에서 들려오는 의문의 소리
중고 가구에 얽힌 미스터리, 다른 사람을 향한 그릇된 질투.
복수, 저주, 욕망에서 시작된 죽음보다 더한 공포의 실체가 찾아온다!▶씨네픽의 이번 주 98회 예측 이벤트는 4월 마지막 주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유저분들이 예측해주신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의 4월 29일, 4월 30일, 5월 1일의 관객 수 스코어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55%, 여성 45%로 남성이 조금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네요!
연령대 별로는 20대와 30대가 똑같이 3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40대 초반 여성(157,882명)과 30대 초반 여성(162,976명)이었습니다.
또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29%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공기살인> (▼2)▶ <공기살인>은 저번 주말과 비교했을 때, 약 3만 명이 줄어들었는데요.
주말 동안 (4월 29일~5월 1일) 관객 수 3만 54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4만 3,622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수퍼 소닉2> (-)▶ <수퍼 소닉2>는 4주째 박스오피스 순위 TOP 5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저번 주와 동일하게 5위를 하였습니다.
주말 동안 (4월 29일~5월 1일) 관객 수 2만 8,12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28만 7,69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국내 박스오피스와 달리 <The Bad Guys> 차지했습니다.
주말 동안(4월 29일~5월 1일) <The Bad Guys>의 매출액은 $16,000,000 (한화 약 202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총 누적 매출액은 $44,000,000 (한화 약 555억)을 기록했습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4월 15일 ~ 2022년 4월 17일)1. <배드 가이즈> 1,600만 달러 (누적 4,400만 달러)2. <수퍼 소닉2> 1,135만 달러 (누적 1억 6,092만 달러)3.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830만 달러 (누적 7,955만 달러)4. <노스맨> 631만 달러 (누적 2,280만 달러)5.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554만 달러 (누적 3,549만 달러)...씨네픽의 4월 마지막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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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아녜스 바르다, 2000)에 관한 단상
아녜스 바르다, '줍기'로 결심하다
꽤 오래된 기억이지만, 전에 이런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풍요롭다'고 할 수 있는 나라 미국에서 대형 마트가 마감을 하면 사람들이 폐기되는 식품들을 가져가는 모습을 담은 장면이었다.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의 몇몇 장면들처럼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날 하루가 끝났단 이유로 마치 방출되는 듯한 수많은 식품들. 어린 나이에도 저 많은 음식물들이 적절한 경로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아갔으면 어떨까싶었다.영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엔 계속 '줍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감독 아녜스 바르다는 브루통의 그림처럼 이삭을 들었다가 과감히 내려놓고 바로 디지털 카메라를 든다. 아녜스 바르다는 '줍기'로 결심한다. 세상엔 이삭 줍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과 여전히 이삭을 줍는 사람들, 이삭이라 달리 말할 수 있는 버려진 것들을 줍는 사람들, 제도권 바깥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줍기는 각각 다른 맥락이지만, 누군가에겐 신념이기도 하다. 아녜스 바르다는 이들을 우연에 이끌리는대로, 마치 줍듯이 찍어나간다. 아녜스 바르다는 카메라로 무엇을 줍고있는가.<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속 '줍기'의 미학은 소탈하지만 아름답다. '줍기'란 버려지는 것들에서 생에 대한 열망을 찾는 일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버려진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줍는 행위로 식재료를 구하면서 어떤 재료도 버리지 않는 쉐프처럼 '줍기'란 '버리지 않음'이기도 하다. 이 영화 또한 그러하다. 아녜스 바르다가 얼마나 '버리지 않았는지'는 춤추는 렌즈 덮개의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이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통틀어 가장 사랑스럽다. 마지막으로 '줍기'라는 행위는 어쩌면 '나눔'과 유의어인 듯 하다. 낮에는 줍고 저녁엔 문맹률이 높은 청년들에게 보수도 받지않고 어학을 가르치는 선생.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고, 이 모습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감독 아녜스 바르다는 우연을 따라가며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세상의 부분들을 줍는다. 그래서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는 마치 감독이 세상에서 길어올린 이삭같다. 이 영화에서의 줍기는 기본적으로 남은 것이나 버려진 것을 줍는 행위다. 폐기되는 수톤의 감자들에서, 쓰레기통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분명 자본주의 시스템 속 과잉의 산물들이다. 무절제하게 생산되는 잉여가치들은 기준에 미달하거나, 고작 몇시간 차이로 정상 품목이 아니라, 폐기품으로 변한다. 이 얼마나 차갑고 서늘한 소재인가? 영화사 속에서 최근의 <기생충>을 포함해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는 수많은 걸작들의 리스트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의 위대한 점은 단 한 쇼트도 서늘하긴 커녕 오히려 따뜻하다는 점이다. 아녜스 바르다는 버려지는 것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거나, 정치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이 위대한 감독은, 카메라에 담긴 줍는 사람들처럼 그 모습들을 줍는다. 그리하여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는 주운 물건들로 만든 예술품처럼, 주운 장면들을 편집해만든 한 편의 영화임이 틀림없다.감독 아녜스 바르다가 카메라를 통해 줍는 대상은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70대에 이이른 그녀는 곧 세상을 떠날 마음을 가졌다. 그러나 아녜스 바르다는 카메라 앞에 나서길, 그리고 손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육신을 들여다보길 망설이지 않는다. 노인은 점점 주류사회로부터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전히 달리는 트럭을 손가락으로 잡는 순수한 마음을 유지한 지금의 모습을 이 영화의 맥락대로 줍는 듯이 기록한다.아녜스 바르다가 최신 디지털 카메라를 집어들때, 경량화된 카메라를 들고 세트장이 아닌 길거리로 나섰던 누벨바그 감독들을 상상했다. 인자한 웃음을 띈 할머니의 모습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젊은 것 같다. 50년 이상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70대의 여성감독이 자신의 다큐멘터리에 힙합 음악을 삽입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 것인가?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는 것은 <상보두앙의 이삭줍는 사람들>이다. 이 그림 속 사람들은 폭풍이 불어닥치고 있으나 여전히 이삭을 줍는다. 여전히 삶에 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사려깊게 담는 영화. 가끔 어떤 영화들은 이를 만든 사람이 보일때가 있다. <기생충>하나로는 봉준호가 이따금 GV나 인터뷰에서 보이는 것처럼 장난끼많고 짓궃은 소년같은 사람인지 알기 쉽지 않을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작품과 씨름하듯 고투하는 사람이란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는 감독의 태도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영화다. 아녜스 바르다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같은 영화사의 걸작이나 <행복>이나 <방랑자>와 같이 서늘하기 그지없는 영화들을 만들어왔지만 인생의 후반기에도 여전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며, 21세기엔 자애로운 어른의 면모를 보여준다. 나는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가 아니라 아녜스 바르다가 보고싶어질때 이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를 꺼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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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훈함이 곧 트렌드
사실 이 드라마 처음 풀렸을 때, 나만 볼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글을 쓰는 작품의 기준은 인기가 있든 없든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싶은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인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기란 결국 흐름을 알 수 없는 파도와 같은 것이기에, 좋은 작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인기가 있지도 않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 방영 첫 주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니,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그래서 아주 뿌듯하다. 뭔가, 내가 좋은 작품만 보고 다니는 사람인 것 같아서....... 하핫. 이 드라마가 인기있는 이유 그리고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 메시지는 무엇일까.
1. 판타지와 현실이 교묘히 섞인
처음에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자폐인 변호사의 천재적인 모습을 배우가 잘 구현해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한 상승 효과로, 박은빈 배우의 인기는 고공행진했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장애우들을 이질감없이 표현해내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어려워보이기 때문이다. 배우의 호감도와 배우의 능력치에 대한 인정이 합쳐져 큰 시너지를 발휘한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있다. 최근 잘 되는 플롯은 확실히 훈훈한 내용인 듯 하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쟁, 현실적인 인간관계 등등을 드라마에서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만큼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쿨하고 멋있는 상사(정명석), 매너있고, 공사구분 확실한 남자주인공(이준호), 장애에 대한 차별 없이 츤데레처럼 챙겨주는 동료(최수연) 이런 캐릭터들은 실제로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렇게 훈훈한 인간 관계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그저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캐릭터가 이 드라마의 지나친 판타지화를 막고 있다. 권모술수 권민우 캐릭터, 이 캐릭터가 있어 이 드라마는 현실에서 있을 법한 법정드라마가 되었다. 그만큼 중요한 캐릭터이기도 하고, 소중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드라마 판타지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게 도와주고,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트위터 주내..ㅠ^^
하지만 그래서인지 온갖 커뮤니티, 트위터 계정에서 그를 위협하는 짤이 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현실 속의 밉상들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이다 보니........하하.
2. 매화 미묘하게 다른, 하지만 같은 방향의 메세지
이 드라마는 그저 장애우 변호사의 사회생활 고군분투기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각 에피마다 짠한 포인트가 있다. 사람들이 장애우를 바라보는 시선, 장애우 가족이 바라보는 시선, 학교 안에서의 시선, 그리고 영우가 변호사로서 가진 핸디캡. 그로 인해 알게 모르게 고립된 영우, 이모든 복합적인 요소들이 매화에 조금씩 녹아있다. 이 드라마를 보며, 나를 돌아본다. 나는 장애우를 그저 동정만 한 건 아니었는지, 그리고 그 동정을 통해 나의 멋있음에 취해본 적은 없는지.
장애우를 챙겨주는 것은 단돈 얼마를 기부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장애우라고 해서 배려라는 명목 하의 왕따를 한 적이 없는지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아니, 바빠죽겠는데, 한 번 더 생각해가며 행동할 시간이 어딨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변해가는 사회의 가치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어 왕따시켜야 한다. 대단히 멋있어 보이게 장애우를 도와주는 것보다 그저 밥먹을 때 소외시키지 않고, 길가에 차가 올 때 알려주는 소소한 행동만으로도 장애우를 위할 수 있다. 그런 소소함은 장애우가 아니더라도 할 수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준호 캐릭터, 수연 캐릭터, 명석 캐릭터가 빛나는 것 같다. 마치 우리가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 드라마는 영우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다양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장애우에 대한 태도를 가다듬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3. 증인 그리고 우영우
이 드라마의 작가가 영화 증인의 작가 분이라고 한다. 자폐 소재에 관심이 많으신 작가분이신 것 같은데, 증인도 굉장히 잘 만든 영화여서 브런치에 리뷰에 올렸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 두 스토리는 비슷한 듯 하지만 명백히 다르다.
영화 속에서는 자폐가 증인으로서 영향력이 있는 증언을 하는 존재인지에 대해 증명해내는 내용이었다면, 드라마에서는 자폐인을 변호사로 그려, 조금 더 주체적인 캐릭터로 그린다는 차이가 있다. 자폐아의 말은 믿을만한 말인지 고민하는 플롯과 자폐인을 전문직으로 그려 공신력있는 사람으로 대우하는 내용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훨씬 하나의 사회인으로 인정받을 만한, 인격체로 대우받는 존재로 쓰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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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 #JIMFF 권철 감독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버텨내고존재하기 의 권철 감독님 본격 탐구! ?♀️ #하이스트레인저
? JIMFF X HISTRANGER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한국경쟁 상영작 [버텨내고 존재하기]의 권철 감독님을
하이스트레인저 웹 데일리 팀이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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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GEEKED WEEK 2022> 공식 예고편
넷플릭스의 Geeked Week가 6월 6일부터 10일까지 팬들을 위한 5일간의 라이브 온라인 축제로 다시 찾아옵니다. 넷플릭스 장르 영화, 시리즈, 게임과 관련된 독점 뉴스, 미리보기 영상, 출연진 패널 등과 함께 넷플릭스의 다양한 장르 콘텐츠를 즐기는 축제. 6월 6일부터 10일까지 매일 이어지는 Geeked Week를 http://geekedweek.com 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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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톨 걸 2> 공식 예고편
홈커밍 댄스파티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한 후, 조디(에이바 미셸)는 이제 더 이상 그냥 키만 큰 애가 아니다. 인기와 자신감을 얻었으며, 남자친구까지 생겼다. 그뿐이랴, 올해 학교 뮤지컬에서 주인공 역할까지 따냈다. 하지만 새로운 인기에 대한 부담감이 높아지자 덩달아 불안감도 커진다. 그 와중에 오래된 관계는 흔들리고 새로운 관계가 부상하는데. 지금껏 쌓아온 세계가 사방에서 휘청이기 시작하자, 조디는 큰 키에 당당해지는 건 그저 첫걸음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