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2025-03-11 18:01:17
人生無常(인생무상)
삶과 죽음에 관한 고찰
영화 <숨>(2023, 윤재호)
“삶과 죽음은 끝나지 않는다.”
생사에 관한 고찰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죽음을 다루는 이들인 장례지도사와 유품정리사,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중인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다.
장례지도사는 망자의 몸을 정성껏 닦아 장례를 치른다. 고인의 가장 마지막까지 기능하는 기관은 청각이라고 한다. 때문에 장례지도사는 항시 말을 조심하고, 유족들은 가지 말라고 통곡하며 붙잡기보단 마음 편히 가시라고 작별 인사를 건네는 것이 좋다. 대개 부자는 쪼그려 불편한 얼굴로 굳어간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물질들을 두고 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안간힘을 쓰듯 말이다. 반면, 가난한 자는 극락에 간다고 한다. 미련 없이 그 누구보다 편한 얼굴로. 유품정리사는 돌아가신 분의 물건과 집에 남은 부패의 흔적들을 지우는 역할을 한다. 돌아가신지 몇 개월 뒤에서야 좁은 방 안에서 홀로 발견된 분의 부패물과 물건을 정리하던 중, 과거 고인이 장영실과학상을 받은 상패를 발견한다. “이런 분이 어쩌다가.” 죽음을 다루는 일을 하며 깨닫는 것은 인생의 덧없음이다. 누구든 성공하고 망할 수 있고, 누구든 살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죽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가, 망한 뒤로 하루에 많이 벌어야 1,500원인 폐지를 주우면서 살아간다. 온몸 곳곳이 녹슬었다. 할머니도, 장례지도사도 병원에서 쇠약해졌음을 진단받는다. 불교, 윤회 사상을 믿는 장례지도사도, 하나님을 믿는 할머니도 죽음 앞에서의 태도는 비슷하다.
<숨>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정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허나, 장례지도사 남편의 손을 잡고 잘 수 있냐는 둥, 돌아가신 분의 집을 정리하며 나온 쓰레기를 길에 두지 말라는 둥, 죽음을 불쾌하게 여기는 자들에게 전한다. 숨이 시작되고 멈추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것, 생과 사는 그 자체로 고귀하다는 것. 우리는 타인을 배웅하고, 자신이 떠날 날을 준비하며 살아가야한다고 말한다. 장례지도사는 훗날 추하지 않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단식을 이야기하고, 연명치료거부 신청서를 작성한다. 숨은 붙잡기보다, 흐르는 대로 두는 것. 人生無常(인생무상)이기에 허무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하여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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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전에 1개, 끝나고 1개, 총2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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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감독을 찾아서’는 단편 영화 감독을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입니다. 영화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영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00:00 인트로 01:12 [대부]이야기 04:12 작가로서의 삶 05:53 [바다 저 편에] 이야기 14:59 아역배우 연출에 대하여 17:29 희망에 대한 이야기 21:29 순수함에 대하여 28:47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 43:29 괜한 이야기를 하였나…? 46:16 앞으로 이야기 47:42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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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천지와 청춘,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리뷰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감독 : 안소니 첸
주연 : 주동우 (나나) 류호연 (하오펑) 굴초소 (샤오)
개봉 : 2025.06.01
수입 : 찬란
배급 : (주) 디스테이션
장르 : 청춘 케미스트리
시놉시스
중국의 끝자락, 북한과 맞닿아있는 지역 연길로 상경해 살고 있는 나나, 샤오. 하오펑은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연길에 방문한다. 우연히 본 연길 단체투어에 참여하게 된다. 투어 중 핸드폰을 잃어버려 연길에 남은 하오펑은 나나와 샤오와 함께하며 여행한다. 그들은 저마다의 아픔과 고민을 안고 하얀 땅을 밟아나간다.
백두산 천지와 청춘
100번을 올라가도 한번도 못볼 수 있다는 그 천지, 천지는 기상과 운과 다양한 요소들이 받쳐주어야 천지를 볼 수 있다고들 한다. 나도 예전에 백두산에 올라갔을 때 결국 천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내려왔었다.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천지를 보여준다. 아주 크게. 어쩌면 그 천지는 청춘들이 향하고 있는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지의 이미테이션들. 사람들이 열광하는 천지의 모습은 올라가기만 하면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 길을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할 뿐더러 올라가도 못보고 내려올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백두산 천지의 아름다운 모습만 되풀이한다. 청춘이라는 말 속의 아름다움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 명의 주인공들은 천지를 보러 올라가지만 결국 코앞에서 기상악화로 내려오게 된다. 그들은 다시 천지에 올라가지 않고 헤어진 채 그들의 자리를 찾아간다. (나라면 천지에 다시 올라갔을 것 같다)
생각할만한 부분들
북한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연길은 중국 유일의 조선족 거주지이다. 그래서 한국어가 들리기도 한다. 백두산과 웅녀의 이야기, 천지, 아리랑, 연변 투어의 풍물놀이, 한복 등 영화에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사용되었다. 조선족의 문화가 한국문화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어색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졌다.
도둑과 얼음과 눈물
현상금이 엄청 크게 걸린 도둑의 이야기는 토막나 영화 중간에 삽입되어있다. 도둑이 주인공이 아는 사람들이었다면 내가 집중을 안한 탓이겠지만 나는 아예 별개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왜 감독은 도둑의 이야기를 추가했을까. 결국 영화의 끝에서 도둑은 잡히게 되는데, 은유의 표현이었을까? 도망치듯이 투어행 버스에 몸을 실었던 하오펑의 처지와도 비슷했을까. 인물들의 대화를 빌려 설명하자면 그 도둑의 현상금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의 큰 금액이었는데, 하오펑의 도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클럽에서 혼자 앉아 펑펑 울던 하오펑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정말 영화에서 대놓고 보여줄 정도로) 얼음을 씹던 하오펑은 쌓아올린 것들이 그만큼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인물들의 서사가 친절하지만 그렇게 친절하지 않고 무언가 감추고 있는듯한 장면들이 많이 나와 그냥 힘든 삶들을 살고 있구나 정도로 바라보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번쯤 보기에는 괜찮은 영화! 이미지도 예쁘고, 무엇보다 주동우가 연기를 너무 잘한다.
안소니 첸 감독은 감독뿐만 아니라 최근 화제작인 <해피엔드> 네오소라 감독의 작품을 제작한 사람이기도 하다. 제작사는 지라프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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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모범생과 나쁜 학생들
제27회 아시아영화의 창 <모범생 아논>
ⓒ 부산국제영화제
정보
개요 드라마 | 태국 | 87분
감독 소라요스 프라파판
출연 코른다나이 마르크 다우첸베르크, 원유 웡수라왓 등
줄거리
새 학기를 맞이한 방콕의 사왓디 고등학교.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아논은 학교의
‘모범 학생’이 되어 교장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지상 목표인 이곳에서
검은 유혹의 손길이 다가오자 갈등하기 시작하는 아논. 한편 학교에서 일어난 체벌 사건이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며 학생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모범생 아논>의 T.M.I
ⓒ 부산국제영화제
기획 계기
고등학교 때, 친구가 기존 정권에 반하는 행동을 보인 적이 있는데 이를 자신이 8년 전에 봤던 쿠데타와
연결 지어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더하여, 젊은 세대들의 '나쁜 학생 운동'에 대한 양상도
결합하여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 속 시위 장면
영화를 보면 시위의 장면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은 컷이 있다. 이 부분은 실제로 찍은 것도 있지만,
기사에 쓰이거나 SNS로 공유된 자료를 활용한 것도 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한 이유
코로나 시대 현상을 강조하고 싶기도 했고, 이전 단편 영화 작업을 통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하면
대사 수정하는 과정이 수월하다는 점을 깨닫게 돼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했다.
<모범생 아논> 리뷰
ⓒ 부산국제영화제
태국 사회를 풍자한 단편들을 통해 이름을 알린 소라요스 프라파판 감독이 첫 장편 데뷔작으로 역시나
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나온 스틸컷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컷들의
색감, 구도, 구성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속 아논의 모습은 영화의 제목과는 다소 다른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하지만, 수업 시간에 자고
담배도 피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학생들. 부패하고 과도한 체벌이
일어나는 학교에 부조리함에 맞서 학생들은 자신을 나쁜 학생이라고 지칭하며 나쁜 학생 운동을 하게 된다.
모범생과 나쁜 학생 모두 이들을 반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낸다.
본 영화는 영화적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태국에서 상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태국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담아냈다.
21세기, 동시대에 벌어진 이야기를 담았기에 영화에 공감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이런 분들께 추천 해드립니다"
- 태국의 현 사회에 대해 알고 싶다?
- 역사와 관련된 콘텐츠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
-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 ?
태국 사회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태국 사회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영화 <모범생 아논>.
영화 <모범생 아논>은 내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마지막 상영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예매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지금까지 영화 <모범생 아논>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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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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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또 다른 영화적 실험
넷플릭스 신작 <히트맨>이 화제를 모은 건 단연 글렌 파월이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스타 중 한 명인 그는 왜 자신이 수많은 제작사에서 러브콜을 받는지 이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작품이 글렌 파월만의 영화는 아니다. 메가폰을 잡은 이가 다름 아닌 <비포> 시리즈 <보이후드>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기 때문. 그의 필모그래피 중 대중성을 많이 고려한 영화임은 틀림없지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며, 전작에 이은 실존주의 실험을 진행하고 이를 증명한다.
| 실화, 그리고 <잠복근무>?
딱 봐도 평범한 대학 심리학 교수 게리(글렌 파월). 하지만 특별한 점이 하나 있으니 뉴올리언스 경찰서에서 히트맨(살인 청부업자)으로 활약한다는 점이다. 원래는 엔지니어로 이 작업에 참여한 그였지만, 우연히 히트맨 역을 맡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숨은 재능을 발견하고, 불법인 청부 살인을 의뢰한 이들을 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주위에서 잘한다고 하니 자신도 더 잘하고 싶어 청부 살인 의뢰자들의 SNS을 참고, 그에 맞게 매번 다른 히트맨을 연기한다. 그런 그가 단 한 번 삐끗한다. 가정 폭력에 시달려 남편을 죽여달라는 의뢰를 한 매디슨(아드리아 아르호나)를 만난 그는 첫눈에 반한다. 그리고 매디슨에게 살인 보다 이혼을 택하라 얘기한다. 임무 실패! 하지만 그 인연으로 개리는 매디슨과 연인으로 발전한다. 물론 게리가 아닌 히트맨 ‘론’으로 말이다. 그러나 거짓말은 언제나 들통나는 법. 그의 인생에 최대의 위기가 닥친다.
<히트맨>의 시작은 심리학 교수이자 오랜 시간 동안 60여 명을 체포하는 데 도움을 준 언더커버 경찰 게리 존슨의 이야기가 담긴 기사였다. 오디오, 비디오 장비 전문가이자, 새를 좋아하고 선불교 신자이기도 한 그는 영화처럼 사건에 맞춰 다른 인물이 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접한 글렌 파월, 그리고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이 실화를 기반으로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느와르와 스크루볼 코미디의 요소를 접목한 <히트맨>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의뢰인과 사랑에 빠진 킬러의 이야기라고 축약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보고 1987년 작인 존 바담 연출, 리처드 드레이퍼스,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매들린 스토우 주연의 <잠복근무>가 생각났다. 교도소를 탈출한 흉악범을 잡기 위해 애인인 집 근처에서 잠복근무한 경찰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인 이 영화는 액션, 서스펜스, 로맨스, 코미디가 조화를 이뤄 흥행에 성공, 이후 속편까지 제작되었다.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기존에 사랑받았던 장르적 외형을 가져와 믹싱하는 데 성공한다. 초반부터 따라가는 게 큰 무리 없었다면 이 공략이 제대로 먹힌 것. 본 게임은 이후부터다. <히트맨>의 장점은 장르 영화로서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독은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이 부분에 변주를 가한다. 그 예로 장르영화에서 마주했던 ‘킬러(또는 빌런)’의 이미지를 살짝 비튼다. 게리가 연기한 킬러의 모습은 우리가 영화에서 봤던 킬러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다. 게리는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크리스찬 베일), <자칼의 날>의 자칼(애드워드 폭스), <킬링 소프틀리>의 잭키(브래드 피트) 의 느낌으로 변하는데, ‘이 모습이 바로 킬러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의뢰인은 게리의 이 모습에 신뢰하고 의뢰비를 준다. 이후 의뢰인들은 경찰에 수감된다. 마치 자신이 믿고 있는 이미지에만 현혹되어 실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을 비꼬는 느낌이랄까. 장르 영화임에도 이런 비트는 구석이 있는 걸 보면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선댄스 대표 감독이었다는 걸 상기시킨다.
| 세상은 변해도 나는 변하지 않는다!
감독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동안 꾸준히 실험하고 증명했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또 한 번 내놓는다. 전작을 살펴보면 극 중 주인공들은 시간과 공간이 변함에도 인간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 왔다. 특히 영화 내외적으로 물리적인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에 따른 장소와 환경이 변했음에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인물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비포 선라이즈>부터 <비포 선셋>까지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를 통해, 실제 12년 동안 촬영한 <보이 후드>의 메이슨(엘라 콜트레인)을 통해 잘 보여줬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외형이 변해도, 삶의 환경이 달라져 생각이나 감정 표현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정체성은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것. 제시와 셀린의 변하지 않는 사랑처럼, 메이슨의 긍정적 삶의 태도처럼 말이다.
감독은 다양한 인물(혹은 정체성)을 연기하는 게리를 통해 그 역이 게리인가 아닌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극 중 메디슨이 사랑하는 인물은 게리가 아닌 게리가 연기한 론이다. 그럼 섹시미가 듬뿍 담긴 이 킬러를 좋아하는 메디슨은 너드미가 철철 넘치는 게리를 좋아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에 다다른다. 감독은 그가 바라는 자아를 쟁취했을 뿐, 그 주체가 게리인 것은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의도에 편승하듯 메디슨 또한 시행착오를 겪지만 론을 연기한 게리를 사랑한다. 물론, 그가 사랑하는 건 론의 매력이 합쳐진 게리의 모습이긴 하지만 말이다.
감독은 실존주의에 입각해 각자의 현실은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변화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바라는 자아를 쟁취하라고 강조한다. 마치 게리가 론의 캐릭터를 쟁취한 것처럼 말이다. 그에 맞춰 달라진 모습이 생경하다 하더라도 그 주체는 변함이 없으니까 걱정말라고.
| 글렌 파월의 연기에 흠뻑 빠지다!
감독의 이런 영화적 실험이 좀 더 흡입력 있게 다가올 수 있었던 건 글렌 파월의 팔색조 연기다. 왜 이제야 빛을 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이 영화에서 펄펄 난다.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제작에도 참여한 그는 그동안 자신이 연기해 보고 싶었던 강렬한 캐릭터를 매번 바뀌는 히트맨 역할로 대신하는 느낌이다. 보는 눈이 즐겁다. 특히 여성 관객들에게는 선물과 같은 연기일 듯.
그와 호흡을 맞춘 아드리아 아르호나의 연기도 일품이다. 어리숙하면서도 섹시한 느낌을 전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가늠이 가지 않는 팜므파탈 연기를 능숙하게 해낸다. 특히 게일의 감춰진 자아인 론을 끄집어 내어 세상에 빛을 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남성 캐릭터를 돋보이는 여성 캐릭터로서 소비되지 않는다. <6 언더그라운드> <모비우스> 등 다수의 작품을 거처 이제야 자신의 연기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대표작을 만난 듯 보인다.
극 중 ’세상에 맛없는 파이는 없다’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는 영화의 주제로도 활용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새로운 파이(혹은 세상)를 마주했을 때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은 쉬이 사라지지 않으니 걱정 붙잡아 두라고. 어쩌면 이 말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이 영화를 넷플릭스로 만날 전 세계 관람객들에게도.
사진제공: 넷플릭스
평점: 3.5 / 5.0
한줄평: ‘세상에 재미없는 영화는 없다’는 1960년생 감독의 의미 있는 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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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를 이겨내는 우주적 다정함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인생의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은 우리를 다른 인생으로 이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무술 고수, 영화배우, 맹인 가수, 요리사 등등이 될 수 있고 심지어 돌이 되는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미국에 건너와 코인 세탁소를 운영하며 힘겹게 삶을 꾸려가고 있는 중국인 이민자 에블린(양자경)의 삶이 있다. 수북이 쌓인 영수증 더미에 깔리기 직전의 그는 쇠약해진 아버지(제임스 홍)를 돌봐야 하고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쿠안)와는 이혼하기 직전이다. 세무당국의 세무조사와 남편의 이혼 요구 그리고 딸 조이(스테파니 수)의 여자친구 문제가 에블린에게 한꺼번에 덮쳐온다. 이런 에블린에게 모든 우주를 구하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모든 우주를 혼돈에 빠뜨리려 하는 ‘조부 투파키’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단다.
에블린은 여러 우주 중 하나에서 각 우주의 기술과 기억, 감정을 불러올 수 있는 ‘버스 점프’의 알고리즘을 개발한 인물이다. 알고리즘을 개발한 우주의 에블린은 능력이 출중했던 한 아이의 버스 점프 능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그 아이는 모든 우주의 자아를 동시에 경험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무한한 다중우주를 혼돈에 빠뜨린 빌런 ‘조부 투파키’가 탄생한다. 이 조부 투파키가 세탁소를 운영하는 우주의 딸 조이다. 에블린은 다중우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딸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조부 투파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우주의 자아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된 그는 엄청난 지식과 힘을 얻었다. 무료하던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베이글 위에 올려버렸다. 가운데가 뻥 뚫린 검은 베이글 위에 온 세상을 올리자 그는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모든 것은 ‘무’이며, 부질없다는 진실을. 조부 투파키가 원하는 것은 이 부질없는 우주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진정한 죽음이다. 검은 베이글은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조부 투파키의 블랙홀이다. 또 한 가지 조부 투파키가 원하는 것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에블린이 자신과 같은 것을 보는 것이다.
조부 투파키 혹은 조이는 끝없는 버스 점프에 갇혀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힘과 지식을 얻었을지 모르나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며 혼란함과 외로움을 느낀다. 버스 점프에 갇혀 있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갇혀 있는 것이다. 조이 역시 이 윤회와도 같은 끝없는 굴레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원>)의 플롯을 간단하게 보자면, 모녀간의 싸움이다. 그렇기에 단 한 사람의 이해와 공감이면 딸이 가진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바로 엄마다.
우주의 진짜 적은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다. <에에원> 속 베이글은 이 세상의 허무를 상징한다. 새하얀 공간에 둥실 떠있는 까맣고 가운데가 뻥 뚫린 베이글 말이다. 에블린이 싸워야 하는 것은 조부 투파키나 딸 조이가 아니라 세상의 폭력과 허무함 그리고 염세주의다. 이에 맞서는 단서는 남편 웨이먼드가 준다. 평소 웨이먼드가 세탁소 곳곳에 붙여놓은 하얀 바탕에 가운데가 까만 장난감 눈알은 베이글에 대항하는 다정함의 상징이다. 폭력과 고통 앞에서 자비와 연민을 가지라는 불교의 가르침처럼 에블린은 미간 근처 이마에 장난감 눈알을 붙이고 다정함의 방식으로 싸운다. 다른 우주의 어떤 누구라도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 손가락이 핫도그가 되어버린 우주일지라도.
멀티버스다운 영화적 스펙터클을 경험한 끝에 도달하게 된 곳은 다정함이다. ‘우리는 다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어쩌면 이처럼 거창해야만 풀릴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현재의 삶은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세탁하고 세금 내는 일이 지긋지긋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른 우주의 또 다른 나, 멋진 삶을 사는 나를 꿈꿀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지금, 여기의 사랑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 모든 우주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코인세탁소에서 세금을 내며 살아가는 이 삶을 사랑할 수도 있다. 에블린은 모든 우주의 자신을 보고 왔고,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조이와 여기 있는 삶을 선택한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평범하게 여겨지는 현재, 여기의 사랑을 멀티버스의 차원에서 설명해냈다. 무한한 다중우주를 거쳐 온 우리의 지금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가 현재 여기에서 서로 다정함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곧 기적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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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마지막 주 개봉영화 소개 with 씨네랩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
매 주 화요일!
한 주의 개봉작 중에서 여러분께 소개드리고 싶은 작품을
씨네랩이 직접 큐레이션하여 소개드리는 콘텐츠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씨네랩은 영화의 다양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또한 무부분별하고 방대한 영화 정보를 자체 검증 시스템을 통하여 선별하여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큐레이션 매거진입니다.
씨네랩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 'Film Library' 서비스는
현재 상영영화와 개봉 예정 영화의 정보 제공 아카이브인데요.
영화의 상영일과 줄거리는 물론 검증된 시스템을 통하여 선별된
씨네랩 크리에이터들의 영화 평점과 코멘트 또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OTT의 모~~든 콘텐츠 정보를 아주 쉽고 편리하게 제공받으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
그럼 씨네랩과 함께하는 12월 마지막 주의 개봉 신작을 소개하겠습니다!
1. 해피 뉴 이어(A YEAR-END MEDLEY)
멜로/로맨스 | 한국 | 138분
감독 : 곽재용 | 출연 : 한지민, 이동욱, 강하늘, 윤아, 원진아, 김영광, 이광수, 서강준, 이진욱 등
개봉 : 2021년 12월 29일 개봉/ 티빙 동시 공개
배급사 : CJ ENM, 티빙
5년째 남사친에게 고백을 망설이는 호텔리어 ‘소진’. 그런 소진의 속도 모른 채 여자친구 ‘영주’ 와의 초고속 깜짝 결혼을 발표하는 ‘승효’.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짝수 강박증으로 고생하는 호텔 대표 ‘용진’.
뮤지컬 배우의 꿈을 접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하우스키퍼 ‘이영’. 공무원 시험 낙방 5 년 차,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호텔 투숙객 ‘재용’ 에게 걸려온 뜻밖의 모닝콜 오랜 무명 끝 전성기를 맞이하고 함께하는 마지막 콘서트를 앞둔 가수 ‘이강’ 과 매니저 ‘상훈’ 40년 만에 우연히 첫사랑 ‘캐서린’을 다시 만난 호텔 간판 도어맨 ‘상규’ 매주 토요일 호텔 라운지에서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는 맞선남 ‘진호’까지..
때론 아찔하고, 때론 애틋하고, 때론 눈물나게 행복한 올해의 마지막, 호텔 엠로스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관전포인트* : 지금의 배우 전지현을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으로 유명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연출한 곽재용 감독의 차기작입니다. 곽재용 감독은 영화 <클래식>의 연출자이기도 한데요.
이 작품 역시 지금도 많은 영화팬들에게 인생 멜로작품으로 꼽히는 영화입니다.
가장 기대되는 점은 아무래도 배우, 출연진일 것입니다. 14인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화인만큼 개성있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여 저마다의 사연을 그려낼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한지민, 이동욱, 강하늘, 윤아, 이광수 등 국내외에서 사랑을 한껏 받고있는 배우들의 출연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훈훈할 것 같습니다. 연말과 어울리는 영화인만큼 시기적절한 영화이기도 하네요! :)2. 램 (Lamb)
스릴러 | 아이슬란드, 스웨덴, 폴란드 | 106분
감독 : 발디마르 요한손 | 출연 : 누미 라파스, 할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 비욘 흘리뉘르 하랄드손
개봉 : 2021년 12월 29일 개봉
배급사 : 오드 AUD
"눈 폭풍이 휘몰아치던 크리스마스 날 밤 이후 양 목장에서 태어난 신비한 아이를 선물 받은 '마리아' 부부에게 닥친 예측할 수 없는 A24 제작의 호러"
*관전포인트* : 제74회 칸국제영화제 오리지널리티상 수상(주목할만한 시선), 제54회 시체스영화제 3관왕, 제94회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노미네이트된 작품으로 일찍이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미드소마>, <유전>을 제작한 호러 명가 제작사 A24의 제작작품이라는 점이 영화관객들의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게 아닐까요?
또한 포스터나 예고편에 줄곧 등장하는 '어린 양'의 비주얼은 영화의 독특한 소재처럼 느껴지며, 궁금증을 품게합니다.항상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서스펜스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메이드in 'A24 호러작품'인만큼 당연하게도 기대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영화이네요.
마지막으로 주인공 '마리아'역을 맡은 누미 라파스 배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입니다.<밀레니얼>, <월요일이 사라졌다> 등 에서 항상 눈에 띄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인만큼 영화 <램>에서 역시 얼마만큼의 파급력있는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3. 노웨어 스페셜 (Nowhere Special)
드라마 | 영국, 이탈리아 | 96분
감독 : 우베르토 파솔리니 | 출연 : 제임스 노턴, 다니엘 라몬트
개봉 : 2021년 12월 29일 개봉
배급사 : 그린나래미디어(주)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은 창문 청소부 ‘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는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바로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에게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는 것. 세상에 혼자 남을 아이를 위해 ‘존’은 특별한 부모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아직 어리지만, 말도 잘 듣고 예절도 잘 지켜요. 내 아이를 키워줄, 새 부모를 찾습니다”
*관전포인트* : 제36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관객상을 수상.
그리고 전작 <스틸 라이프>로 베니스국제영화제 4관왕에 오른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차기작입니다.우연히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이 신문을 보고 '불치병에 걸린 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린 아들의 새 가족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알게되고 그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시작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프로젝트라고 전해집니다.
또한 차기 제임스 본드의 유력 후보로 떠오르는 배우 '제임스 노턴'의 감정연기, 그리고 아역 배우와의 연기 앙상블 또한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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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이 추천하는 12월 마지막 주 개봉신작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께서는 12월 마지막 주 개봉예정인 작품 중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 있을까요?
씨네랩의 본 콘텐츠가 여러분들이 좋은 영화, 마음에 드는 영화를 pick하는데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럼 오늘 하루도 안전하게 마무리 잘하시고,
다음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돌아오겠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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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인사가 주는 힘
안녕하세요는 김환희 배우, 이순재 배우, 유선 배우, 이윤지 배우 등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배우들이 출연하며 제가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작품입니다.
시놉시스는 보육원에서 자란 수미가 호스피스 간호사 서진을 만나게 되며 삶의 마지막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나고,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시놉시스의 내용처럼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그 힘으로 더 열심히 살아라" 라는 말과, 죽는 방법을 알기 위해 호스피스에 찾아가고 부부, 할아버지, 할머니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할아버지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며 사람들과 친해지게 됩니다.
곡성 이후 성장한 김환희 배우의 모습과 이순재 할아버지의 연륜있는 연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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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불호가 갈린 베놈 완결판 액션(?)드라마 / 액션보다는 브로맨스 / 라스트 댄스 / 감동적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베놈: 라스트 댄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전에 1개, 끝나고 1개, 총2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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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_#5] 순수와 희망에 관하여 (with. 김시진 감독)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는 단편 영화 감독을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입니다. 영화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영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00:00 인트로 01:12 [대부]이야기 04:12 작가로서의 삶 05:53 [바다 저 편에] 이야기 14:59 아역배우 연출에 대하여 17:29 희망에 대한 이야기 21:29 순수함에 대하여 28:47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 43:29 괜한 이야기를 하였나…? 46:16 앞으로 이야기 47:42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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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션 임파스벌 : 데드 레코닝 PART ONE> 2차 예고편
마지막 미션은 시작되었다! 역대급 액션과 스케일?️ 7월 극장에서 직접 확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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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1차 예고편
기억을 잃은 채 우주에서 깨어난 한 남자🪐 그가 구해야하는 건 지구 그리고 인류의 미래!? #마션 작가의 베스트셀러 원작📚 [프로젝트 헤일메리] 1차 예고편 공개🌍 #프로젝트헤일메리 #라이언고슬링 #필로드 & #크리스토퍼밀러 감독 #2026년극장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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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천지와 청춘,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리뷰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감독 : 안소니 첸
주연 : 주동우 (나나) 류호연 (하오펑) 굴초소 (샤오)
개봉 : 2025.06.01
수입 : 찬란
배급 : (주) 디스테이션
장르 : 청춘 케미스트리
시놉시스
중국의 끝자락, 북한과 맞닿아있는 지역 연길로 상경해 살고 있는 나나, 샤오. 하오펑은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연길에 방문한다. 우연히 본 연길 단체투어에 참여하게 된다. 투어 중 핸드폰을 잃어버려 연길에 남은 하오펑은 나나와 샤오와 함께하며 여행한다. 그들은 저마다의 아픔과 고민을 안고 하얀 땅을 밟아나간다.
백두산 천지와 청춘
100번을 올라가도 한번도 못볼 수 있다는 그 천지, 천지는 기상과 운과 다양한 요소들이 받쳐주어야 천지를 볼 수 있다고들 한다. 나도 예전에 백두산에 올라갔을 때 결국 천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내려왔었다.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천지를 보여준다. 아주 크게. 어쩌면 그 천지는 청춘들이 향하고 있는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지의 이미테이션들. 사람들이 열광하는 천지의 모습은 올라가기만 하면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 길을 가는 길은 매우 험난할 뿐더러 올라가도 못보고 내려올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백두산 천지의 아름다운 모습만 되풀이한다. 청춘이라는 말 속의 아름다움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 명의 주인공들은 천지를 보러 올라가지만 결국 코앞에서 기상악화로 내려오게 된다. 그들은 다시 천지에 올라가지 않고 헤어진 채 그들의 자리를 찾아간다. (나라면 천지에 다시 올라갔을 것 같다)
생각할만한 부분들
북한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연길은 중국 유일의 조선족 거주지이다. 그래서 한국어가 들리기도 한다. 백두산과 웅녀의 이야기, 천지, 아리랑, 연변 투어의 풍물놀이, 한복 등 영화에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사용되었다. 조선족의 문화가 한국문화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어색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졌다.
도둑과 얼음과 눈물
현상금이 엄청 크게 걸린 도둑의 이야기는 토막나 영화 중간에 삽입되어있다. 도둑이 주인공이 아는 사람들이었다면 내가 집중을 안한 탓이겠지만 나는 아예 별개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왜 감독은 도둑의 이야기를 추가했을까. 결국 영화의 끝에서 도둑은 잡히게 되는데, 은유의 표현이었을까? 도망치듯이 투어행 버스에 몸을 실었던 하오펑의 처지와도 비슷했을까. 인물들의 대화를 빌려 설명하자면 그 도둑의 현상금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의 큰 금액이었는데, 하오펑의 도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클럽에서 혼자 앉아 펑펑 울던 하오펑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정말 영화에서 대놓고 보여줄 정도로) 얼음을 씹던 하오펑은 쌓아올린 것들이 그만큼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인물들의 서사가 친절하지만 그렇게 친절하지 않고 무언가 감추고 있는듯한 장면들이 많이 나와 그냥 힘든 삶들을 살고 있구나 정도로 바라보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번쯤 보기에는 괜찮은 영화! 이미지도 예쁘고, 무엇보다 주동우가 연기를 너무 잘한다.
안소니 첸 감독은 감독뿐만 아니라 최근 화제작인 <해피엔드> 네오소라 감독의 작품을 제작한 사람이기도 하다. 제작사는 지라프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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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모범생과 나쁜 학생들
제27회 아시아영화의 창 <모범생 아논>
ⓒ 부산국제영화제
정보
개요 드라마 | 태국 | 87분
감독 소라요스 프라파판
출연 코른다나이 마르크 다우첸베르크, 원유 웡수라왓 등
줄거리
새 학기를 맞이한 방콕의 사왓디 고등학교.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아논은 학교의
‘모범 학생’이 되어 교장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지상 목표인 이곳에서
검은 유혹의 손길이 다가오자 갈등하기 시작하는 아논. 한편 학교에서 일어난 체벌 사건이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며 학생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모범생 아논>의 T.M.I
ⓒ 부산국제영화제
기획 계기
고등학교 때, 친구가 기존 정권에 반하는 행동을 보인 적이 있는데 이를 자신이 8년 전에 봤던 쿠데타와
연결 지어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더하여, 젊은 세대들의 '나쁜 학생 운동'에 대한 양상도
결합하여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 속 시위 장면
영화를 보면 시위의 장면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은 컷이 있다. 이 부분은 실제로 찍은 것도 있지만,
기사에 쓰이거나 SNS로 공유된 자료를 활용한 것도 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한 이유
코로나 시대 현상을 강조하고 싶기도 했고, 이전 단편 영화 작업을 통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하면
대사 수정하는 과정이 수월하다는 점을 깨닫게 돼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했다.
<모범생 아논> 리뷰
ⓒ 부산국제영화제
태국 사회를 풍자한 단편들을 통해 이름을 알린 소라요스 프라파판 감독이 첫 장편 데뷔작으로 역시나
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나온 스틸컷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컷들의
색감, 구도, 구성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속 아논의 모습은 영화의 제목과는 다소 다른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하지만, 수업 시간에 자고
담배도 피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학생들. 부패하고 과도한 체벌이
일어나는 학교에 부조리함에 맞서 학생들은 자신을 나쁜 학생이라고 지칭하며 나쁜 학생 운동을 하게 된다.
모범생과 나쁜 학생 모두 이들을 반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낸다.
본 영화는 영화적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태국에서 상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태국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담아냈다.
21세기, 동시대에 벌어진 이야기를 담았기에 영화에 공감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이런 분들께 추천 해드립니다"
- 태국의 현 사회에 대해 알고 싶다?
- 역사와 관련된 콘텐츠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
-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 ?
태국 사회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태국 사회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영화 <모범생 아논>.
영화 <모범생 아논>은 내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마지막 상영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예매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지금까지 영화 <모범생 아논>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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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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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또 다른 영화적 실험
넷플릭스 신작 <히트맨>이 화제를 모은 건 단연 글렌 파월이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스타 중 한 명인 그는 왜 자신이 수많은 제작사에서 러브콜을 받는지 이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작품이 글렌 파월만의 영화는 아니다. 메가폰을 잡은 이가 다름 아닌 <비포> 시리즈 <보이후드>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기 때문. 그의 필모그래피 중 대중성을 많이 고려한 영화임은 틀림없지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며, 전작에 이은 실존주의 실험을 진행하고 이를 증명한다.
| 실화, 그리고 <잠복근무>?
딱 봐도 평범한 대학 심리학 교수 게리(글렌 파월). 하지만 특별한 점이 하나 있으니 뉴올리언스 경찰서에서 히트맨(살인 청부업자)으로 활약한다는 점이다. 원래는 엔지니어로 이 작업에 참여한 그였지만, 우연히 히트맨 역을 맡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숨은 재능을 발견하고, 불법인 청부 살인을 의뢰한 이들을 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주위에서 잘한다고 하니 자신도 더 잘하고 싶어 청부 살인 의뢰자들의 SNS을 참고, 그에 맞게 매번 다른 히트맨을 연기한다. 그런 그가 단 한 번 삐끗한다. 가정 폭력에 시달려 남편을 죽여달라는 의뢰를 한 매디슨(아드리아 아르호나)를 만난 그는 첫눈에 반한다. 그리고 매디슨에게 살인 보다 이혼을 택하라 얘기한다. 임무 실패! 하지만 그 인연으로 개리는 매디슨과 연인으로 발전한다. 물론 게리가 아닌 히트맨 ‘론’으로 말이다. 그러나 거짓말은 언제나 들통나는 법. 그의 인생에 최대의 위기가 닥친다.
<히트맨>의 시작은 심리학 교수이자 오랜 시간 동안 60여 명을 체포하는 데 도움을 준 언더커버 경찰 게리 존슨의 이야기가 담긴 기사였다. 오디오, 비디오 장비 전문가이자, 새를 좋아하고 선불교 신자이기도 한 그는 영화처럼 사건에 맞춰 다른 인물이 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접한 글렌 파월, 그리고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이 실화를 기반으로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느와르와 스크루볼 코미디의 요소를 접목한 <히트맨>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의뢰인과 사랑에 빠진 킬러의 이야기라고 축약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보고 1987년 작인 존 바담 연출, 리처드 드레이퍼스,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매들린 스토우 주연의 <잠복근무>가 생각났다. 교도소를 탈출한 흉악범을 잡기 위해 애인인 집 근처에서 잠복근무한 경찰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인 이 영화는 액션, 서스펜스, 로맨스, 코미디가 조화를 이뤄 흥행에 성공, 이후 속편까지 제작되었다.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기존에 사랑받았던 장르적 외형을 가져와 믹싱하는 데 성공한다. 초반부터 따라가는 게 큰 무리 없었다면 이 공략이 제대로 먹힌 것. 본 게임은 이후부터다. <히트맨>의 장점은 장르 영화로서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독은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이 부분에 변주를 가한다. 그 예로 장르영화에서 마주했던 ‘킬러(또는 빌런)’의 이미지를 살짝 비튼다. 게리가 연기한 킬러의 모습은 우리가 영화에서 봤던 킬러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다. 게리는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크리스찬 베일), <자칼의 날>의 자칼(애드워드 폭스), <킬링 소프틀리>의 잭키(브래드 피트) 의 느낌으로 변하는데, ‘이 모습이 바로 킬러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의뢰인은 게리의 이 모습에 신뢰하고 의뢰비를 준다. 이후 의뢰인들은 경찰에 수감된다. 마치 자신이 믿고 있는 이미지에만 현혹되어 실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을 비꼬는 느낌이랄까. 장르 영화임에도 이런 비트는 구석이 있는 걸 보면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선댄스 대표 감독이었다는 걸 상기시킨다.
| 세상은 변해도 나는 변하지 않는다!
감독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동안 꾸준히 실험하고 증명했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또 한 번 내놓는다. 전작을 살펴보면 극 중 주인공들은 시간과 공간이 변함에도 인간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 왔다. 특히 영화 내외적으로 물리적인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에 따른 장소와 환경이 변했음에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인물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비포 선라이즈>부터 <비포 선셋>까지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를 통해, 실제 12년 동안 촬영한 <보이 후드>의 메이슨(엘라 콜트레인)을 통해 잘 보여줬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외형이 변해도, 삶의 환경이 달라져 생각이나 감정 표현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정체성은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것. 제시와 셀린의 변하지 않는 사랑처럼, 메이슨의 긍정적 삶의 태도처럼 말이다.
감독은 다양한 인물(혹은 정체성)을 연기하는 게리를 통해 그 역이 게리인가 아닌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극 중 메디슨이 사랑하는 인물은 게리가 아닌 게리가 연기한 론이다. 그럼 섹시미가 듬뿍 담긴 이 킬러를 좋아하는 메디슨은 너드미가 철철 넘치는 게리를 좋아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에 다다른다. 감독은 그가 바라는 자아를 쟁취했을 뿐, 그 주체가 게리인 것은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의도에 편승하듯 메디슨 또한 시행착오를 겪지만 론을 연기한 게리를 사랑한다. 물론, 그가 사랑하는 건 론의 매력이 합쳐진 게리의 모습이긴 하지만 말이다.
감독은 실존주의에 입각해 각자의 현실은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변화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바라는 자아를 쟁취하라고 강조한다. 마치 게리가 론의 캐릭터를 쟁취한 것처럼 말이다. 그에 맞춰 달라진 모습이 생경하다 하더라도 그 주체는 변함이 없으니까 걱정말라고.
| 글렌 파월의 연기에 흠뻑 빠지다!
감독의 이런 영화적 실험이 좀 더 흡입력 있게 다가올 수 있었던 건 글렌 파월의 팔색조 연기다. 왜 이제야 빛을 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이 영화에서 펄펄 난다.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제작에도 참여한 그는 그동안 자신이 연기해 보고 싶었던 강렬한 캐릭터를 매번 바뀌는 히트맨 역할로 대신하는 느낌이다. 보는 눈이 즐겁다. 특히 여성 관객들에게는 선물과 같은 연기일 듯.
그와 호흡을 맞춘 아드리아 아르호나의 연기도 일품이다. 어리숙하면서도 섹시한 느낌을 전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가늠이 가지 않는 팜므파탈 연기를 능숙하게 해낸다. 특히 게일의 감춰진 자아인 론을 끄집어 내어 세상에 빛을 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남성 캐릭터를 돋보이는 여성 캐릭터로서 소비되지 않는다. <6 언더그라운드> <모비우스> 등 다수의 작품을 거처 이제야 자신의 연기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대표작을 만난 듯 보인다.
극 중 ’세상에 맛없는 파이는 없다’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는 영화의 주제로도 활용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새로운 파이(혹은 세상)를 마주했을 때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은 쉬이 사라지지 않으니 걱정 붙잡아 두라고. 어쩌면 이 말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이 영화를 넷플릭스로 만날 전 세계 관람객들에게도.
사진제공: 넷플릭스
평점: 3.5 / 5.0
한줄평: ‘세상에 재미없는 영화는 없다’는 1960년생 감독의 의미 있는 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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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를 이겨내는 우주적 다정함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인생의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은 우리를 다른 인생으로 이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무술 고수, 영화배우, 맹인 가수, 요리사 등등이 될 수 있고 심지어 돌이 되는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미국에 건너와 코인 세탁소를 운영하며 힘겹게 삶을 꾸려가고 있는 중국인 이민자 에블린(양자경)의 삶이 있다. 수북이 쌓인 영수증 더미에 깔리기 직전의 그는 쇠약해진 아버지(제임스 홍)를 돌봐야 하고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쿠안)와는 이혼하기 직전이다. 세무당국의 세무조사와 남편의 이혼 요구 그리고 딸 조이(스테파니 수)의 여자친구 문제가 에블린에게 한꺼번에 덮쳐온다. 이런 에블린에게 모든 우주를 구하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모든 우주를 혼돈에 빠뜨리려 하는 ‘조부 투파키’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단다.
에블린은 여러 우주 중 하나에서 각 우주의 기술과 기억, 감정을 불러올 수 있는 ‘버스 점프’의 알고리즘을 개발한 인물이다. 알고리즘을 개발한 우주의 에블린은 능력이 출중했던 한 아이의 버스 점프 능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그 아이는 모든 우주의 자아를 동시에 경험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무한한 다중우주를 혼돈에 빠뜨린 빌런 ‘조부 투파키’가 탄생한다. 이 조부 투파키가 세탁소를 운영하는 우주의 딸 조이다. 에블린은 다중우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딸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조부 투파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우주의 자아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된 그는 엄청난 지식과 힘을 얻었다. 무료하던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베이글 위에 올려버렸다. 가운데가 뻥 뚫린 검은 베이글 위에 온 세상을 올리자 그는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모든 것은 ‘무’이며, 부질없다는 진실을. 조부 투파키가 원하는 것은 이 부질없는 우주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진정한 죽음이다. 검은 베이글은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조부 투파키의 블랙홀이다. 또 한 가지 조부 투파키가 원하는 것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에블린이 자신과 같은 것을 보는 것이다.
조부 투파키 혹은 조이는 끝없는 버스 점프에 갇혀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힘과 지식을 얻었을지 모르나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며 혼란함과 외로움을 느낀다. 버스 점프에 갇혀 있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갇혀 있는 것이다. 조이 역시 이 윤회와도 같은 끝없는 굴레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원>)의 플롯을 간단하게 보자면, 모녀간의 싸움이다. 그렇기에 단 한 사람의 이해와 공감이면 딸이 가진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바로 엄마다.
우주의 진짜 적은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다. <에에원> 속 베이글은 이 세상의 허무를 상징한다. 새하얀 공간에 둥실 떠있는 까맣고 가운데가 뻥 뚫린 베이글 말이다. 에블린이 싸워야 하는 것은 조부 투파키나 딸 조이가 아니라 세상의 폭력과 허무함 그리고 염세주의다. 이에 맞서는 단서는 남편 웨이먼드가 준다. 평소 웨이먼드가 세탁소 곳곳에 붙여놓은 하얀 바탕에 가운데가 까만 장난감 눈알은 베이글에 대항하는 다정함의 상징이다. 폭력과 고통 앞에서 자비와 연민을 가지라는 불교의 가르침처럼 에블린은 미간 근처 이마에 장난감 눈알을 붙이고 다정함의 방식으로 싸운다. 다른 우주의 어떤 누구라도 사랑으로 감싸 안는다. 손가락이 핫도그가 되어버린 우주일지라도.
멀티버스다운 영화적 스펙터클을 경험한 끝에 도달하게 된 곳은 다정함이다. ‘우리는 다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어쩌면 이처럼 거창해야만 풀릴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현재의 삶은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세탁하고 세금 내는 일이 지긋지긋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른 우주의 또 다른 나, 멋진 삶을 사는 나를 꿈꿀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지금, 여기의 사랑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 모든 우주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코인세탁소에서 세금을 내며 살아가는 이 삶을 사랑할 수도 있다. 에블린은 모든 우주의 자신을 보고 왔고,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조이와 여기 있는 삶을 선택한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평범하게 여겨지는 현재, 여기의 사랑을 멀티버스의 차원에서 설명해냈다. 무한한 다중우주를 거쳐 온 우리의 지금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가 현재 여기에서 서로 다정함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곧 기적임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