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채원2025-02-11 22:01:20
특별한 시선으로 특별하지 않음을 말하다.
영화 <나는 보리 (2018)> 리뷰
<디어 에반 한센(Dear Evan Hansen)>, <나, 다니엘 브레이크>, <말아톤>, <7번방의 선물>과 같이 장애를 겪고 있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영화는 비록 상업영화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국내외 영화계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앞서 예시를 든 영화들처럼, 장애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들은 흔히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해당 인물이 어려움과 고난을 겪게 되는 모습을 통해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의 고난→ 조력자 혹은 특정 사건과 만남→ 주인공의 극복/ 희망’과 같은 클리셰를 사용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러한 영화의 전개는 관객에게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혹은 상상해보지 못한 상황을 이해하고, 몰입해볼 기회를 제공하며,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인물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행방식은 영화의 전반을 중심인물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때로는 영화의 중심인물이 아닌 주변 인물들이나 그들이 겪는 사건, 영화 전반에 걸쳐 숨겨져 있는 의도와 영화의 주제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도를 하락시킨다는 단점을 보이기도 하며 ‘주인공의 고난과 극복’이라는 전형적이고 반복적인 클리셰에 관객이 흥미를 잃게 될 가능성 또한 있다. 이런 ‘사회적 약자’라는 같은 소재를 가진 영화들의 어떤 공통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 속에서 영화 <나는 보리>가 갖는 시선은 특별하다. <나는 보리>는 농인을 바라본다. 소수가 아닌 다수로서, 장애인 가족이 아닌,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한 가족으로서,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소통하는 존재로서, 그리고 농인과 청인을 다르지 않은 시선에서 말이다.
1. 경계를 허무는 시선
‘코다(CODA:Child Of Deaf Adult)’는 농인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하는 용어로, 2020년에 개봉한 김진유 감독의 <나는 보리>는 ‘코다(CODA)’인 소녀 ‘보리’의 일상과 그런 보리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을 담은 영화이다. 김진유 감독은 실제 농인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코다(CODA)’로, 영화<나는 보리>는 김진유 감독의 유년기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때문에 <나는 보리>의 주인공이자, ‘코다(CODA)’인 소녀 보리는 김진유 감독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어있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보리>의 주인공인 11살 ‘보리’는 어린 시절 김진유 감독처럼 농인인 부모님을 대신해 은행 업무를 보고, 음식을 주문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등 주로 가정 내에서 아이보다는 어른들이 하게 되는 일들을 도맡아 한다. 영화 속 “나는 누나 귀 안 들리는 거 싫어. 치킨 못 먹어.”라는 농인 동생 정우의 대사를 통해서, 아침에 혼자 알람을 듣고 일어나 가족들을 깨우고 등교하는 보리의 모습을 통해서, 보리가 “내일 할아버지 집에 갈거야.”라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말에도 따라나서 엄마와 동생의 몫까지 기차표를 구매하고, 택시 앞자리에 탑승해 길을 안내하고, 수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할아버지와 농인인 엄마 사이에서 수화를 통역해주는 장면을 통해서 보리의 가족들이 생활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보리에게 맡기고 의지하고 있으며, 보리가 가족들 사이에서 어떠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는 보리가 이러한 책임들을 도맡음으로써 결코 불행하다거나 힘겹다거나, 가족들이 보리에게 과도하게 의존하여 보리가 없이는 아예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불리하고 힘든 요소를 지니고 있음에도 영화에서 보리네 가족은 따스함과 서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넘치는 화목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떻게 보면 가족 구성원 내에 농인이 없는 일반 가정보다 더욱 화목한 모습으로 말이다. 이는 은정이가 자신의 부모님은 항상 바쁘고 매번 걸려오는 전화와 부모님의 심부름은 다 자신의 몫이라고 투덜대며 보리를 부러워하는 장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화목하고 따뜻한 가족의 묘사는 농인인 부모님과 청인인 자녀로 구성되었지만, 보통의 가족들처럼 따뜻하고 화목했던 김진유 감독의 가정환경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화목한 가족 내에서도 왠지 모르는 소외감을 느끼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보리’이다. 들리지 않는 부모님 혹은 동생 정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수에 속하는 청인 ‘보리’ 말이다. 이러한 설정은 <나는 보리>가 농인의 문화와 세상을 특별하지 않게 바라봄으로써 가지는 미덕을 돋보이게 해준다. 보리는 가족들 사이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알 수 없는 소외감에 매일 아침, 자신도 부모님과 동생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기도 하며, 심지어는 소리를 잃기 위해 MP3를 최대 음량으로 키워 이어폰을 귀에 바짝 꽂은 채 음악을 듣거나 물에 귀를 자주 담그면 청력이 감퇴한다는 TV 속 해녀의 인터뷰를 보고 직접 바다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러한 보리의 행동과 소외감은 일반 청인 관객들이 보기에 이질적이고 쉽게 공감할 수 없으며 한편으로는 충격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이런 보리의 심리와 행동, 영화의 설정이 <나는 보리>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
가족 내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존재로서, 사회적으로 우리가 흔히 다수라 말하는 청인에 속함에도 보리가 농인으로 사는 삶을 원하는 모습을 통해 <나는 보리>는 장애인은 약자, 청인은 일반인이라고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이분법적 사고와 농인의 삶을 남다르게 바라보고 불편할 것이라 섣불리 동정하는 우리의 선입견을 깨트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보리>에는 농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하지 않기를 바라는, 있는 그대로의 농인을 보여주고 싶은 감독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앞서 말했듯, 보리는 물품을 구매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은행 업무를 보는 등 흔히 보호자가 해줄 법한 일들을 모두 맡아 하는데, 이렇게 가족들의 생활편의를 도울 뿐 아니라 보리는 사회로부터 가족들을 보호하기도 한다. 이는 보리가 동생 정우의 축구경기 출전과 엄마와 함께 옷을 사는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동생 정우 역시 농인인데, 정우는 축구 실력이 뛰어남에도 귀가 들리지 않아 경기 수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출전선수가 아닌 후보 선수로 지목된다. 이에 정우가 후보선수라는 것을 알게 된 보리는 이장님인 아버지를 둔 친구 은정이를 통해 정우가 축구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보리가 엄마와 단둘이 옷가게를 방문한 장면에서 보리는 옷가게의 직원들이 자신과 엄마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와 비하를 서슴지 않고, 옷 가격 또한 원가보다 높게 책정해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후 보리는 잘못된 거스름돈을 점원에게 돌려주며 엄마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자신은 들리지 않는 척하고 있었을 뿐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행동과 말을 했는지 다 보고 들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보리는 가족의 도우미와 더불어 보호자의 역할도 소화한다.
그렇다면 청인인 보리는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족들의 도움 없이도 모두 스스로 잘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보리가 가족을 돕듯, 보리 또한 가족의 도움과 관심,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영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보리는 불꽃놀이를 보러 가족과 함께 시장에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부모님의 손을 놓친다. 안내방송을 해도, 전화를 걸어도 들을 수 없는 부모님과 동생이기에 이들을 찾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보리는 막막하기만 하다. 이 순간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밝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보리는 처음으로 11살 제 나이 또래처럼 어린아이 같은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는 이렇게 가족 내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하는 보리 또한 가족들의 보살핌과 도움이 필요하며, 우리가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는 농인도 도움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큰 힘과 도움이 되어 주는 존재라는 걸 알려준다. 다음 소주제에서 더 언급하겠지만, <나는 보리>와 유사한 작품으로 미국에서 개봉한 <코다>라는 음악 영화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코다(CODA)’인 주인공 소녀가 “지금까지 가족 없이 뭘 해본 적이 없어요.”라며 망설이는 모습을 통해 <나는 보리>와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자신이 가족들을 도와야 하지만 역으로 자신도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는 청인과 농인이 모두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이기도 함을 보여주는데, 결국 <나는 보리>가 이야기하는 바는 이러한 영화의 장면들과 보리의 아빠가 보리에게 반복해서 뱉는 말을 통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들리든, 들리지 않든 우린 똑같아.” <나는 보리>가 바라보는 청인과 농인은 연약한 존재이자 때론 강한 존재로서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그저 똑같은 한 사람일 뿐이다.
2. 다르고도 같은 소녀들– 영화 <코다>의 루비, <나는 보리>의 보리
<나는 보리>의 보리와 유사하게 ‘코다(CODA)’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있는데, 바로 2021년 미국에서 개봉한 <코다>이다.
두 영화의 주인공 보리와 루비는 모두 코다 중에서도 가족 내에서 유일하게 소리가 들리는 자녀 'OHCODA’이자, 미성년자 코다 ‘KODA’에 속한다는 점, 그리고 영화가 청인과 농인의 화합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나, 두 영화 속 소녀의 가정 환경이나 농인의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 그리고 인물의 선택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나는 보리>에서 보리의 관심이 가족들과 보내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과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면, <코다>의 루비는 졸업과 성인을 앞둔 나이로 진학과 가족의 생계 등 자신의 삶과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고민하는 데에 몰두한다. 두 영화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차이는 보리는 가족들과 동일시 되어 자신도 소속감을 느끼기를 바라는 반면, 루비는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기를 원한다는 점이었는데, 이는 단순히 졸업 학년과 11살이라는 인물의 나이 차이 때문에 나타난 차이 만은 아닐 것이며, 두 소녀의 가정 환경과 제작자(감독)의 배경과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 잡은 문화적 배경 또한 영화의 관점과 주인공의 선택에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루비의 가족은 아빠와 오빠가 운양하는 어선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가는데, 일정치 않은 수입과 틈만 나면 중간에서 이익을 떼가는 중개업자들 때문에 루비의 진학비용 걱정은 물론, 늘 생활비 걱정을 안고 지낸다. 또한, 루비의 가족은 가족 내의 강한 유대와 결속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루비의 엄마가 식사할 때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가족의 일에는 꼭 모두가 함께 자리하게 하는 장면을 통해 루비의 엄마가 가족의 소통과 결속을 강조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거 알아? 엄마도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해.”라는 루비의 대사와 “들리는 년들은 나랑 말 안 해.”라는 엄마의 대사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사실 엄마의 이러한 행동은 청인과의 교류는 두려워하며 피하고, 농인에 공감할 수 있는 가족 내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유지하려는 엄마의 방어기제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 내의 유대를 강조하는 엄마의 행동과 자신도 부양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저절로 심어지게 되는 루비네 가정의 분위기와 환경은, 루비가 가족에게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반면, 보리의 가족은 루비네 가족과 같은 입장으로, 농인으로서 겪는 불편함과 어려움이 분명 있음에도 따뜻하고 화목한 가정의 본보기라고 표현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따뜻한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나는 보리>에서 보리의 부모님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수술비조차도 전혀 상관없다며 정우와 보리의 귀를 위해선 큰 비용지출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코다>에서는 가족의 생계수단이던 낚시도 <나는 보리>에서는 보리 아빠의 오랜 취미이자, 어린시절부터 아빠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준 존재, 아빠와 보리가 속마음을 교감하게 되는 시간과 배경으로 나타난다. <코다>는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이며 원작 영화인 <미라클 벨리에>는 프랑스에서 제작되었고, <나는 보리>는 우리나라의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제작되었다. 이에 루비와 보리의 선택 차이에는 우리나라보다 비교적 이른 나이의 면허취득과 독립을 맞이하는 서양의 문화와 개인주의, 그리고 한국의 가족공동체 정신과 협동, 한국의 ‘정’이라는 이데올로기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가정과 사회에 대한 루비와 보리의 관점과 선택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두 영화 모두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농인과 청인의 경계를 허물고, 화합과 이해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은 같다. <코다>의 경우 영화의 후반부. 음악 영화답게 음악을 통해 주제를 드러낸다. 루비의 오디션과 대학 진학을 내내 반대하던 루비의 부모님은, 교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루비의 모습과 루비의 노래에 환호하는 관객의 모습, 그리고 그 누구보다 노래를 사랑하는 듯한 루비의 태도를 보고 오디션 당일 아침, 직접 운전을 해 오디션장까지 함께 간다. 오디션장에서 루비가 부르는 노래는 “Both sids now”. 앞서 말했듯, 영화의 메인 사운드 트랙이자 주제를 나타내고 있기도 한 이 루비의 오디션 곡은 “하려던 일들이 많았지만 구름이 내 앞을 막았지. 이제 구름을 양쪽에서 보게됐어. 위와 아래에서”, “이제 사랑을 양쪽에서 보게 됐어. 주는 쪽과 받는 쪽에서”, “이제 인생을 양쪽에서 보게 됐어. 이기는 쪽과 지는 쪽에서”와 같이 성장하며 주변에 있던 것들에 대해 달라진 이해와 시선에 대한 가사를 담은 곡으로, 루비가 ‘코다(CODA)’로서 살아가며 때로는 농인인 가족이 자신의 인생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때로는 농인 가족 속에 속한 유일한 청인이 자신이 소외된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던, 때로는 다른 가족들과 다른 자신의 가족이 부끄럽고 이해할 수 없었던 루비가 이제는 농인과 청인의 입장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가족을 이해하게 되었음을 노래한다. 그뿐만 아니라, 오디션 현장에 몰래 들어온 가족들을 위해 루비는 노래를 부름과 동시에 가사에 맞추어 수화를 하는데, 이 장면을 통해 영화 <코다>는 루비의 성장과 이해, 농인과 청인의 교류와 화합을 완벽히 실현시킨다.
<코다>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이해와 화합에 중심을 두었다면 <나는 보리>는 서로 간의 이해와 더불어 ‘코다(CODA)’로서 살아가는 보리의 자아정체성 확립과 농인과 청인과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농인도 청인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점을 더 강조해 말한다. <나는 보리>의 미덕은 바로 이렇게 농인 가족이 등장하지만, 비장애인 가족과 다르지 않은 보편적 정서를 다룬다는 점에 있다. 다름보다는 같음을 느끼게 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게 한다. 실제로 나는 보리의 김진유 감독은 “처음부터 장애를 어떻게 다루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리의 감정에 집중했고, 그 감정선을 따라 보리 가족의 모습을 묘사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기존의 장애를 다룬 영화와 차별점을 갖게 된 것 같다.”라며 특별한 의도를 담기보단 오히려 그저 농인을 향한 시선이 특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뿐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영화 <나는 보리>의 후반부에서, 보리는 시장에서 구매했던 부적인 ‘악마의 눈’을 바다에 던지는데, 이러한 보리의 행동을 통해 일시적이지만 농인의 입장을 직접 체험해보고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을 경험해본 보리가 더 이상 가족에 대한 타인의 차별적인 시선이나 편견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으며 ‘코다(CODA)’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시선이 어떻든, 자신에게는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확립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나는 보리>는 보리가 도로와 바다 사이 좁은 방호벽 같은 길 위를 양팔을 벌린 채 균형을 잡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배우들의 이름과 함께 등장하며 마무리되는데, 도로도 바닷가도 아닌 사이 도로 방호벽 위를 조심조심 걸어가는 보리의 모습을 통해 농인과 청인 사이에 놓여있는 ‘코다(CODA)’ 보리의 정체성과 농인과 청인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완성한다.
3. 보리가 보여주는 농인의 세상
<나는 보리>에서 보리는 가족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에 농인이 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물에 귀를 자주 담그면 잘 들리지 않는다는 TV 속 해녀의 말에 직접 바다에 뛰어들며, 이상 없이 무사히 구조되었음에도 보리는 이후로 계속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척, 자신도 농인이 된 척 행동하는데, 이렇게 농인으로서 생활하는 동안 보리는 농인을 향한 사회의 시선을, 가족들이 농인으로서 겪었을 어려움과 외부에서 받았을 차별들을 경험하게 된다. 앞서 <나는 보리>의 미덕은 농인 가족이 등장함에도 비장애인 가족과 전혀 다른 바 없이 느껴지는 보편적인 정서를 다룬다는 점이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영화 전반에 걸쳐 경계를 허물고,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지만, 보리가 직접 농인의 입장으로 살아가는 생활들을 담음으로써 일상 속에서 농인이 겪게 되는 불평등한 차별과 시선 또한 짧은 내에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 또한 <나는 보리>의 또 다른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보리가 가족들처럼 농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친구들은 학교에서 이전과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 보리와는 상의 없이 보리에게 화장실 청소 당번임을 통보한다던가, 은정이와 보리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보리를 투명인간처럼 쏙 빼놓고 은정이에게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식으로 말이다. 학교와 또래 친구들 내에서뿐만 아니라 보리는 주변 어른들에게서도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보게 되는데, 부모님 대신 정우와 농인이 된 척하는 보리를 데리고 병원에 간 고모가 ‘착한 거짓말’이라는 명분으로 병원에 다녀온 후 엄마, 아빠에게 수술하게 되면 정우가 앞으로 축구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전하지 않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또한, 엄마가 함께 간 옷가게에서는 보리와 엄마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몰래 점원들끼리 상의하여 더 높은 가격으로 옷을 판매하는 것을 보게 되며, 지나가는 보리를 본 동네 어른들이 “어린 것이 딱해서 어떡해.”라며 들리지 않게 된 보리를 안타까워하며 안쓰러운 시선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바라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보리가 농인인 체를 하며 겪게 되는 주변의 변화와 상황들은 우리가 영화 밖 현실사회에서 농인을 바라보는 태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우리 사회는 흔히 장애를 섣불리 안타깝다는 식으로 바라보거나 ‘힘들겠다’라는 식으로 동정 같은 공감을 한다. 작은 시선, 별 의미 없는 말 한마디일 수 있지만, 때로는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툭툭 나오는 시선과 말들은 당사자의 마음에 꽂히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11살 소녀가 특별히 큰일 없이 지나가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차별을 경험하도록 한 것에도 농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하지 않았으면 하는 김진유 감독의 바람과 유년 시절 감독이 겪었던 감정, 그리고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진유 감독은 “제가 만났던 농인 부모 중 60% 정도가 자녀가 농인으로 태어나길 바랐다. 농인이라는 것 자체가 불편하지 않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사회에서 우리가 농인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감독이 영화에서 보리가 직접 농인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농인이 일상 속에서 빈번하거나 흔하게 겪게 되는 어려움을 보여주고, 그 어떤 가정보다 따뜻하고, 온전하고,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를 그림으로써 현실에서의 농인을 향한 특별한 시선을 제거하고자 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4. <나는 보리>에 대한 글을 마치며
영화 <나는 보리>는 농인의 삶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코다(CODA)’라는 익숙하지 않은 용어와 존재를 알리고, 이런 ‘코다(CODA)’ 소녀를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단순히 농인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농인과 청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경계를 허물고 농인 가족이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가족임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보리가 농인이 되고 싶어 하는 바람을 통해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사고에서 전환된 시각과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지닌다.
<나는 보리>의 김진유 감독은, “장애인 가족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식의 묘사도 하고 싶지 않았고,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농인 가족의 평범한 일상과 자신이 살았던 모습만을 보여줘도, 대중이 농인을 조금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라고 인터뷰에서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감독의 애정 어린 시선이 영화 <나는 보리>와 그것을 보는 관객에게도 통한 것일까. <나는 보리>의 보리네 가족은 보는 사람의 마음도 더불어 따뜻해질 정도로 그 누구보다 화목하고 행복해 보이며, 영화를 통해 그들의 삶과 ‘코다(CODA)’로서 살아가는 보리의 삶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더 이해하고, 그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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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판 "허클베리 핀의 모험", <피넛 버터 팔콘>
벚꽃이 봄눈 되어 거리가 하얗게 덮인 날, 다양한 장르의 예술영화와 함께 따뜻한 로드무비 한 편이 개봉하였습니다. 꿈과 희망, 그리고 돛단배 한 척이 담긴 포스터만 보더라도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영화 <피넛 버터 팔콘>은 레슬러가 되고 싶은 청년 '잭'의 꿈을 이뤄주기 위한 세 사람의 여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한 요양원에서부터 플로리다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2011년, 캘리포니아의 한 연기자 캠프에서 영화의 두 감독과 배우 '잭 고츠아전'이 만나며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이 주연 배우로 출연하는 영화를 찍는 것이 꿈이라는 '잭'의 말에 영화의 두 감독은 2000만 원을 들여 그와 함께 짧은 컨셉 비디오를 찍습니다. 그리고는 수년간 그 비디오를 통해 투자자를 찾는 작업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2017년, 마침내 그들은 펀딩을 통해 '잭'을 주연 배우로 하는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여정에는 배우 샤이아 라보프, 다코타 존슨, 그리고 원로 배우 '브루스 던'이 함께하게 되죠.
'마크 트웨인'의 명작이자 주연 배우 '잭'이 실제로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현대판으로 각색한 이 영화는, '잭'의 유일한 우상이자 꿈 레슬링 '선수 '솔트 워터 레드넥'을 만나는 길을 따라 갑니다. 무모할 수도 있는 그의 여정은 본인이 속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요양원을 탈출하면서부터 시작되고, 언제나 그렇듯 우연히 (그 나름대로 문제가 안고 있는) 조력자를 만납니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잭'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로드무비는 보통의 경우, 드넓은 미국 땅을 횡단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의 경우 옥수수밭을 제외하고는 물 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터도, 안전장치도 없는 작은 뗏목을 타고 그들은 천천히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의문점이 하나 생기죠. 미국의 남동쪽, 대서양 바다가 파도도 없이 저렇게 잔잔할 수가 있을까?
네, 있습니다. 이유는 '바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촬영지는 Pamlico sound 라는 석호(lagoon)로, 길이는 130km, 너비는 50km에 달하는 서울보다 큰 호수입니다. 그 어느 곳에서 찍어도 육지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당연히 이곳이 '바다'일 거라 으레 짐작하게 되죠.
이 외에도, 영화엔 몇 가지 특이점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음악이 지나치게 많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약간 낯설 수도 있는, 미국의 소울 음악부터 컨트리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가 흘러나오는 영화를 보며, 관객만큼이나 흥이 난 '잭'을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조금은 서툴 수 있는 '잭'을 위해, 영화의 두 감독은 촬영 전 리허설 단계에서 대형 붐박스를 가져다 놓고 영화에 사용될 사운드트랙을 크게 틀어놓았다고 합니다. 영화보다 사운드트랙이 먼저 작업되었다는 뜻이기도 하죠. '잭'을 위한 영화인만큼, 영화의 모든 부분은 '잭'이 꿈을 펼칠 수 있게 짜여져 있습니다. '잭'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첫 주연 영화에서 그가 마음껏 뛰노는 장면들을 통해 관객으로서 생각하는 바가 많아지기도 합니다.
'백인' 위주였던 할리우드는 최근 많이 달라진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어떠한 의도에서든,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전 세대의 관객들이 보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은 '인종'과 '성별'에서 더 나아가 '차별'이라는 산탄을 받고 있는 모두를 향해 갈 수 있다면 영화는 가장 대중적이고도 주도적인 문화예술로서의 그 가치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차별로부터 멀어지게 될 날까지
영화로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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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애거사 짓이야 | 작품성도 세계관도 챙긴 스핀오프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완다에게 모든 마력을 빼앗긴 후, 기억마저 삭제되어 웨스트뷰에 남겨진 '애거사 하크니스'(캐서린 한). 스스로를 형사라고 착각하며 참견쟁이 이웃으로 살아가던 애거사 앞에 난데없이 소년 마법사 '틴'(조 로크)이 나타난다. 애거사를 감싸고 있던 봉인을 해제한 틴은 애거사에게 '마녀의 길'로 데려가 달라 애원하고, 원치 않던 애거사도 잃어버린 마력을 되찾기 위해 함께 '마녀의 길'을 걸을 다른 마녀들을 찾아 나선다.
애거사의 악명에도 불구하고 '릴리아'(패티 루폰)와 '제니퍼'(사쉬어 자마타), '앨리스'(알리 안)와 '샤론'(데브라 조 럽)까지 마녀들을 모으는 데 성공한 애거사와 틴. 하지만 '마녀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목숨을 건 장애물을 마주치며 위기에 빠진다. 심지어 애거사와 악연인 죽음의 여신 '데스'(오브리 플라자)가 나타나고, 미지의 마법사였던 '틴'이 완다의 아들 '빌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애거사의 집회는 자중지란에 휩싸인다.
마침내 주인공이 돋보이는 멀티버스 사가
개국공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멀티버스 사가의 최종 빌런인 '닥터 둠'으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메가폰을 잡았던 루소 형제를 <어벤져스: 둠즈데이>와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의 감독으로 복귀시킨 MCU. 팬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지만, 마냥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간 멀티버스 사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방증이었기 때문. MCU에서 은퇴했던 영웅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멀티버스 사가의 영화 11편과 드라마 10개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새 캐릭터를 소개하느라 바쁜 나머지 본래 주인공이 잘 안 보인다는 것. <닥터 스트레인지: 광기의 멀티버스>만 보더라도 새로운 캐릭터인 아메리카 차베즈가 주동인물이었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녀의 성장을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에 그쳤다. 그 결과 멀티버스 사가에서는 인피니티 사가 속 아이언맨과 같이 관객들의 이입을 도와줄 길잡이를 찾을 수 없었다.
<완다비전>의 스핀오프 <전부 애거사 짓이야>도 겉보기에는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완다에게 마력을 봉인당한 마녀 애거사의 후일담을 보여준다. 완다의 쌍둥이 아들 중 하나인 '빌리', 죽음의 여신인 '데스' 같은 새로운 캐릭터와 함께. 하지만 <전부 애거사 짓이야>는 다행히도 멀티버스 사가의 문제를 피해 가는 데 성공했다. 본편의 메시지를 영리하게 확장하면서 스핀오프 역할에 충실한 결과 주인공이 가려지지 않았으니까.
보이는 것과 봐야 하는 것
<전부 애거사 짓이야>에서는 시나리오가 가장 눈에 띈다. 본편인 <완다비전>의 작법을 똑 닮았기 때문. 특히 반전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완다비전>보다 진일보한 듯 보인다. <완다비전>은 겉과 속이 다른 드라마였다. 겉으로는 완다와 비전의 일상을 다룬 시트콤이었다. 그들이 이웃들과 시간을 보내고, 두 쌍둥이 형제를 낳으며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미국 시트콤 형식을 빌려 보여줬다.
하지만 <완다비전>의 진짜 이야기는 달랐다. 마녀와 로봇 부부의 시트콤은 완다가 마법 장벽 '헥스' 안에서 꾸며낸 환상에 불과했다. 마지막 가족이었던 비전을 잃은 슬픔과 절망을 외면하려는 그녀의 피난처였다. <완다비전>은 이 겉과 속의 괴리를 완다의 환상 속에 침투한 마녀 애거사의 음모를 비롯한 여러 복선을 통해 암시했다. 그렇기에 이 모든 복선을 회수하며 진상을 보여주는 반전의 충격도 그 어떤 MCU 작품보다 강렬했다.
<전부 애거사 짓이야>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이는 이야기와 실제로 진행시키는 이야기가 다르다. 전자는 애거사가 주인공이다. 완다에 의해 모든 마력을 봉인당했던 그녀는 기억을 되찾은 후 자신만 아는 '마녀의 길'을 통과해 힘을 되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완다의 아들 중 하나인 빌리가 사실 생존했고, 그가 애거사의 봉인을 풀어 이용했다는 것. 쌍둥이 형 토미를 찾기 위해서.
그러나 '마녀의 길'의 끝에서 토미를 되살리는 데 성공한 빌리는 놀라운 진실을 깨닫는다. '마녀의 길'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 장소였고, 단지 본인이 마법으로 만든 가상의 공간이었다는 것을. 이처럼 빌리의 시점에서 모든 복선이 맞아떨어지는 전개는 <완다비전>의 반전을 연상시키에 충분하다. 아니, 그 이상처럼도 보인다. <완다비전>에 비해 <전부 애거사 짓이야>는 명확한 복선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사랑과 마법
본편 <완다비전>처럼 가족애와 마법의 비틀린 관계를 강조하기에 반전은 더욱 인상적이다. 그 중심에는 애거사와 아들 니콜라스가 있다. 애거사는 니콜라스를 출산한 직후에 그들 앞에 나타난 데스를 만나고, 데스에게 사정해서 간신히 아들과의 시간을 추가로 얻어낸다. 이후 애거사와 니콜라스는 마녀들을 유인해 그들의 힘을 빼앗는 삶을 살았고, 니콜라스는 그들의 일상에 멜로디를 붙여서 '마녀의 길'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하지만 '마녀의 길' 노래를 완성한 그날 새벽에 데스가 니콜라스를 데려가자, 애거사는 이별의 아픔이 담긴 아들의 마지막 선물을 악용하기 결심한다. 마녀의 길 끝에서 힘을 얻으려면 마녀의 집회를 모아야 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뒤, 집회에 모인 마녀들의 마력을 강탈하면서 더 강한 마녀로 거듭난 것. 멀티버스를 엉망으로 만든 완다만큼이나 삐뚤어진 방식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처한 셈이다.
사랑이 남긴 아픔을 잘못된 마법으로써 극복하는 이야기는 빌리의 서사에서도 반복된다. 완다가 헥스를 닫을 때 유대인 고등학생인 윌리엄의 몸에 깃들어서 홀로 생존한 빌리. 가족을 포기한 엄마에 대한 원망과 형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한 그는 자기도 모르게 현실 조작 능력을 활용해 토미를 되살려 낸다. 다만 그 과정에서 다른 마녀들을 희생한 만큼, 빌리의 여정도 사랑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한 결과물이나 다름없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면서 아픔을 극복한다. 죽을 위기에 처한 빌리와 아들을 겹쳐 본 애거사는 자신을 희생해 그를 구한다. 완다를 원망하던 빌리는 아들을 만나기가 두려워 죽어서도 유령이 된 애거사를 보면서 모성애의 힘을 배운다. 그렇게 아들을 잃은 마녀와 부모를 잃은 마법사는 둘만의 집회를 만들고 토미를 찾아 나선다. 이는 <완다비전>에서 끝내 혼자가 된 완다와 절묘한 대비를 이루기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다양성이라는 잔을 반만 채우다
이처럼 <전부 애거사 짓이야>는 본편을 성공적으로 계승한, 착실한 스핀오프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완성도가 만점에 가깝지만, 만점이라고 할 수 없다. 인종, 문화, 성적 지향성 등과 같은 다양성 관련 코드를 다소 편의적으로, 또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MCU에서는 백인 남성이 아닌 히어로나 조력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여성 히어로의 수도 늘었고, 중국이나 파키스탄 등 여러 문화적 배경을 활용하고 있으며, 동성애자나 장애인 히어로도 하나둘씩 조명받고 있다. <전부 애거사 짓이야>도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애거사의 집회' 구성원만 보더라도 백인, 흑인, 동양인 마녀가 모두 포함됐다. 애거사와 데스, 빌리와 그의 애인처럼 동성애자 커플도 전면에 등장한다.
문제는 <전부 애거사 짓이야>가 다양성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번 드라마는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신호는 보내고 있지만, 그 신호를 작품 속에 온전히 녹여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상적인 지점이 없지는 않다. 일례로 애거사와 데스를 레즈비언 커플로 설정한 선택은 효과적이었다.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극적 긴장감을 고조하고, 애거사와 아들의 서사를 비극적으로 만드는 역할과 기능이 분명했다.
그에 반해 빌리와 그의 애인을 등장시킨 의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빌리의 동성애 성향이 강조되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 빌리가 애거사를 이용해 토미를 되살리고자 하는 전개에 빌리의 애인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도 빌리의 이야기와 애거사의 서사는 완성도의 깊이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전부 애거사 짓이야> 속의 다양성이 절반 가량은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세계관도 챙기는 일석이조
그렇지만 <전부 애거사 짓이야>는 여전히 멀티버스 사가에서 오랜만에 접한 성공작이다. 본편에서 등장했던 주인공의 과거사와 후일담, 새로운 캐릭터의 성장 서사를 한 묶음으로 유려하게 풀어냈으니 그 자격은 충분하다. 이에 더해 MCU의 미래를 기대케 하는 여러 암시도 효과적으로 보여줬기에 이번 성공은 더 뜻깊다.
우선 빌리의 본격적인 데뷔는 캐시 랭, 케이트 비숍, 미즈 마블 등이 모일 <영 어벤져스>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데스'의 등장도 인상적이다. 초월적 존재로 묘사된 그녀는 <어벤져스> 쿠키 영상에서는 대사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토르: 러브 앤 썬더> 등에서는 배경으로 등장한 바 있다. 그런 그녀가 전면에 나서면서 <이터널스>처럼 더 초월적인 존재가 엮이는 큰 스케일의 이야기의 발판도 마련된 듯 보인다.
마지막으로 MCU 작품이나 세계관 외적으로도 기대할 만한 변화도 흥미롭다. 사실 MCU는 <전부 애거사 짓이야>를 시작으로 마블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모든 실사 드라마에 '마블 텔레비전'이라는 별도 레이블을 사용할 예정이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수년간 만족감이 낮아진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 지켜보는 새로운 재미가 생긴 셈이다. 확실한 것은 <전부 애거사 짓이야>가 그 초석을 단단히 다졌다는 사실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닥터 스트레인지의 멀티버스보다 흥미롭고 애절한 마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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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도시, 그리고 사랑의 방식
대도시, 그리고 사랑의 방식
과거 한국 영화계에서도 퀴어적 요소를 담은 작품들이 간혹 등장했지만, 비주류적인 코드로 소비되거나 단편적인 묘사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으며, 때로는 터부시 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OTT, 드라마, 영화, 웹툰 등 다양한 플랫폼의 확장으로 글로벌하고 젊은 관객층과의 접점이 넓어지면서 보다 입체적이고 퀴어 프렌들리한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영화가 바로 <대도시의 사랑법>이다. 이 작품은 퀴어적 요소만을 부각하거나 심오한 메시지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특성을 살려 유쾌하고 경쾌한 젊은 에너지를 한껏 발산한다. 특히, 대도시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청춘들의 사랑과 고민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특정한 정체성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적인 감정선을 구축해냈다. 그 덕분에 20대의 치열한 나날을 지나오며 ' 사랑 '을 해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스틸컷 / NAVER
영화 속에서 묘사된 대도시는 단연 ‘서울’이다. 서울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거대한 도시로, 면적만 놓고 보면 런던, 베이징, 뉴욕, 싱가포르, 도쿄에 이어 여섯 번째로 크다. 하지만 동시에 인구밀도는 보면 베이징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밀집도를 기록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즉, 서울은 거대한 도시임과 동시에 사람과 사람이 끊임없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공간이다. 서로의 퍼스널 스페이스조차 지켜기가 쉽지 않은 이곳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존하며 사랑을 해 왔다.
화려한 외피 속 고독이라는 내피
준수한 외모 덕에 ‘인싸’로 오해받기 쉬운 재희와 흥수지만 그들의 속사정은 다르다.“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어긋난다. 자유로운 유러피안 타입의 재희는 남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바로 그 태도 때문에 동기들의 조롱과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며 소외된다. 반면, 흥수는 다소 방어적인 태도로 학교생활을 영위한다. 교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관찰자처럼 멀찍이서 재희를 바라볼 뿐이다. 영화 초반에는 주변에서 재희를 두고 비아냥거려도 쉽게 동요하지 않는 듯한 흥수지만, 일련의 사건을 통해 재희와 가까워지면서 종국에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서로에게 달음박질치는 ‘찐친’이 된다. 두 사람의 심리적 거리감이 변화하는 과정을 비교하며 영화를 보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다.
두 사람을 이어준 일련의 사건은 무엇일까? 여느 날처럼 청춘을 불태우던 재희와 흥수는 자연스럽게 클럽에서 마주쳤다. 하지만 흥수는 재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흥수가 누군가와 열렬한 애정 행각을 나누던 순간을 재희가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날, 재희는 처음으로 흥수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흥수는 자신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며 날을 세웠고, 한동안 ‘아웃팅’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한국 사회는 종종 ‘다름’을 존중하기보다 고쳐야 할 문제로 간주하며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때로 폭력적이고 무례한 침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흥수가 재희를 경계한 이유도, 아마도 그가 겪어온 침범의 경험에서 비롯된 방어 본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폭력적인 시선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흥수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흥수가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함에도 재희는 그런 흥수의 내면을 알아봐 준 유일한 벗이다. 이 대사는 겉으로는 세상사에 무심하고 대범한 듯 보이는 재희가 실은 타인의 불가침 영역을 존중할 만큼 세심한 인물임을 보여준다. 자유롭고, 무심하며, 대범하면서도 쿨한—온갖 미사여구로 재희를 묘사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는 과거 학교 폭력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인물이다. 결국, 그가 보여주는 겉모습은 일종의 감투와도 같다. 흥수와 재희 모두 각자의 내면을 지키기 위해 저마다의 외피를 두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도시,그러나 피할 수 없는 고독–<Nighthawks>와 <대도시의 사랑법>
Nighthawks, Edward Hopper, 1942,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영화<대도시의 사랑법>에는 화려하지만 고독한 대도시의 정서가 깔려 있다.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그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 사회의 부흥기를 조명한 화가로, 그림자와 빛을 활용한 명암 표현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변화를 주로 그렸지만,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웅장한 도시의 풍경보다 그 속에서 외롭게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미국의 사회과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1950년 대에 발표한 저서 『고독한 군중』을 보면 그 비밀이 조금씩 풀리는 듯하다. 리스먼은 미국인은 소속된 집단에서 소외될까 불안해 늘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신경을 쓰는 타인지향적인 특징을 보인다고 했다. 이에 내면으로는 고립감과 갈등을 느껴 고독한 군중이 된다고 말했다.”1)
특히Nighthawks(1942)는 고독하고 차가운 도시의 밤과, 따뜻한 색감으로 채워진 가게 내부가 ‘안과 밖’을 기준으로 완벽한 명암 대비를 이루는 작품이다.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어딘지 모르게 외롭고 고독해 보인다. 그럼에도, 차가운 바깥 풍경과 대비되는 가게 안에서 멀찍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미약한 온기와 안도감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위 작품은 2차 대전 이후 냉전 체제와 경제 대공황이라는 근현대사적 배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을 제외하더라도, ‘고독’이라는 감정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흥수와 재희를 관통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이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한 세기를 거쳐 증명한 셈이다. 그렇기에 클럽은 도시에서 가장 화려한 빛이 가득한 곳이자 고독을 도파민으로 회피할 수 있는 두 사람의 도피처, 엑시트(Exit)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성애적 사랑 틀 밖에서 존재하는 두 남녀
영화 속 두 사람은 찐친으로 자연스럽게 함께 살림을 시작한다. 흥수 말처럼 "서울에서 방세가 얼만데!" 서로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며 성향도 잘 맞는 상대를 찾았다면 그보다 더 좋은 하우스메이트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때때로 크고 작은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재희의 법조인 남자친구는 끊임없이 의심을 품고, 흥수의 어머니는 종교의 힘으로 ‘흥수의 병’이 나았다며 기뻐한다. 이러한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두 사람은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 긴 시간 동안 서로의 곁을 지키며 의리 있는 친구이자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향하면서 재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흥수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두고 내적 갈등을 겪던 어머니와 얽힌 실타래를 풀고 나아간다. 이맘때 두 사람은 고독했던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며 한 층 더 성숙해진다.
예식장에서 흥수가 Miss A의 Bad Girl Good Girl을 추는 장면을 보며 왠지 모르게 콧등이 시큰거렸다. 재희를 누구보다 잘 아는 흥수가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선곡하고 무대를 준비했을지 절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 절친의 결혼식에 참석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았을까.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 앞에 서 있는 친구을 떠나보낸다는 아쉬움과 슬픔 속에서도 그를 유쾌하게 보내주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짠했던 것 같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두 남녀의 전통적인 에로스적 사랑이 아닌, 정신적이고 우정에 가까운 타입의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요즘처럼 일반인 남녀의 연애가 콘텐츠로 소비될 만큼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된 상황에서, 이 작품은 기존의 남녀 관계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구 콘텐츠에서는 ‘게이 판타지’ 요소를 포함한 작품들이 종종 등장하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조차도 본격적으로 다뤄진 사례가 많지 않다. 앞으로 더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한국 영화 속에서 조명되길 기대한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와 <room in brookyln>
Edward Hopper, Room in Brooklyn (1932), Artchive, https://www.artchive.com/artwork/room-in-brooklyn-edward-hopper-1932
출가외인이 된 재희가 떠난 후, 흥수는 다시 홀로 그 집으로 돌아왔다. 에드워드 호퍼의 Room in Brooklyn (1932)이 연상되는 시퀀스이기도 하지만, 흥수의 모습에는 ‘고독’보다 오히려 ‘여유’가 스며든 듯하다. 마치 20대의 불안과 혼란을 지나 30대의 어른스러운 여유를 갖게 된 것처럼. 이제 그는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원하던 일을 시작하고, 한때 격없이 청춘을 공유했던 재희와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그 모습에서 마침내 청춘이라는 장막이 완전히 내려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서글프지는 않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두 사람이기에.
동시에, 어떤 형태로든 각자의 길을 걸으며 사랑할 이 땅의 모든 재희와 흥수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살아낼 거라고.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Love in the Big City, 2024)>
한줄평: 고독까지 안아주는 우정, 그 또한 사랑이다.
평점: ★★★★
각주표기: 중앙일보, 「'혼자'를 좋아하는 사람과 '외로운' 사람의 차이」,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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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와 춤이 있는 한 여름 뜨거운 축제 같은 영화
올해 여름이 끝났다. 뜨거운 열기에 숨이 막히고 온 몸을 타고 땀방울이 흐를 때면 빨리 선선한 가을이 오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면 다시 여름만이 가진 특유의 느낌을 떠올릴 것이다. 푸르게 자라난 나무, 작열하는 태양과 일렁이는 파도, 시원한 물놀이, 달콤한 수박 한 입, 뜨거운 도시를 떠나서 도착한 휴양지. 모든 풍경이 여름을 기다리는 이유가 된다.
그러니 계절이 지나고 난 뒤 후회하지 말고, 여름을 닮은 영화 '맘마미아'와 함께 눈으로 마지막 여름을 즐겨보자.
여름을 닮은 영화 ‘맘마미아’
영화 ‘맘마미아(Mamma mia!)’는 지중해의 어느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뮤지컬 영화이다. 가수 ABBA의 노래를 사용한 동명의 뮤지컬 ‘맘마미아’를 영화화했다. 올 파커 감독이 연출했으며 메릴 스트립, 아만다 사이프리드, 콜린 퍼스, 피어스 브로스넌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2008년 개봉한 ‘맘마미아’의 흥행으로 인해 2018년 ‘맘마미아2 (Mamma mia! Here we go again)’가 개봉했다. 주인공이 운영하는 호텔이 있는 지중해 섬을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부분과 시원시원한 가창력, 사랑과 가족이라는 영화의 소재까지. 여름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맘마미아1: ‘아빠 찾기’ / 맘마미아2: ‘과거 여행’
응답하라 시리즈의 포인트를 ‘남편 찾기’라고 한다면, 맘마미아1의 재미요소는 ‘아빠 찾기’이다. 엄마 '도나 (메릴 스트립)’와 섬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주인공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는 결혼식을 앞두고 세 남자 해리(콜린 퍼스), 샘(스텔란 스카스가드), 빌(피어스 브로스넌)을 초대한다. 세 남자의 정체는 엄마의 일기장에서 발견한 과거의 인연들이다. 결혼식 전 날, 그들이 섬에 도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년 만에 제작된 시즌2의 줄거리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과거 여행’이다. ‘소피’는 엄마가 운영하던 낡은 호텔을 보수 공사와 재단장 후 오프닝 파티를 계획한다. 오프닝 파티를 준비하는 소피의 모습과 더불어 젊은 시절의 ‘도나’가 호텔을 운영하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과거 회상 씬이 교차되며 전개된다.
영화는 시즌1로 이미 완성형에 가까웠다. ABBA의 노래를 충분히 활용했고, 스토리에서 관객의 궁금증을 끝까지 가져가며 적당한 클리셰와 재미 요소를 가미했다. 호텔에서 시작해서 해변까지 수십 명의 출연진이 단체로 춤을 추다가 바다에 뛰어드는 '댄싱퀸(Dancing queen)'장면은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봤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시즌2는 시즌1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다. 먼저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 어렵다. 맘마미아는 주인공 모녀와 아빠 후보들, ‘소피’의 남자 친구, ‘도나’의 친구들까지 기본적인 등장인물이 많은 편인데, 과거와 현재의 서사가 번갈아 등장하면서 인물이 더 많아졌다. 각각의 감정을 설명할 시간이 없다. 사건 대부분은 우연에 의존하고 갈등은 갑작스럽게 생긴다. 대표적으로 시즌2에서 소피는 엄마의 꿈이 호텔이라고 설명하면서, 남자 친구에게 호텔을 떠날 수 없는지 설명한다. 영화는 ‘도나’가 호텔에서 느낀 감정을 보여주지만, 끝내 ‘소피’가 호텔을 이끌어가야 이유는 알려주지 않는다. ‘소피’가 호텔의 파티를 준비하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장면만 반복된다.
그리고 시즌 2의 마지막 부분엔 ‘소피’의 할머니 ‘루비(셰어 / 참고로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가수이자 배우라고 합니다.)’까지 등장한다. 그녀의 등장으로 강한 가족애를 다룰 거라 예상했던 영화의 끝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루비’와 호텔 지배인 ‘페르난도(앤디 가르시아)’가 과거 사랑했던 사이로 밝혀져 새로운 커플이 탄생된다. 감정의 급발진과 급정거 사이에서 관객으로서 약간의 의아함이 생긴다.
우리는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을까?
맘마미아 시즌1과 시즌2는 공통으로 엄마와 딸의 관계, 진정한 사랑, ‘도나’와 친구들의 우정, 가족의 소중함을 다룬다. 다양한 주제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생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다. 시즌1에서는 결혼 전에 갈등하는 ‘소피’와, 과거를 후회하거나 되짚어보는 ‘도나’와 ‘세 남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시즌 2에서 젊은 ‘도나(릴리 제임스)’가 등장하며 주제의식이 더 강력해졌다. 대학 졸업 후,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녀는 친구들에게 말한다.
“Life is short. World is wide. I want to make some memories.”
(인생은 짧고 세계는 넓어. 난 추억을 남기고 싶어.)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섬에서 살고 싶다며 ‘도나’가 ‘샘’의 의견을 물을 때도 잘 드러난다.
샘: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도나 : “복잡할 것도 없어. 생각하기 나름이야.”
당찬 말투, 환하게 웃는 미소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는 당당함이 ‘도나’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 그녀를 따라 주변 인물들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조금씩 성장한다. 그리고 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서로 사랑하고 지금 마주한 순간을 즐긴다. 시종일관 뜨겁게 젊음을 발산하는 그들을 보면서 잠시 생각해보자.
인생에서 어떤 선택들을 해야 하는가?
지금 스스로 결정하고 있는가?
남들의 시선에 떠밀려가고 있는가?
심각할 필요는 없다. 삶의 다양한 가치를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로 전하는 영화 '맘마미아'를 보면 저절로 한 여름의 뜨거운 축제 같은 기분을 느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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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깨어있든지, 다음이 되든지
데카메론(Decameron, 2021)
감독 : 쉬야수
상영시간 : 108분
시놉시스 : "역사는 단지 날짜의 문제가 아니다." 1997년 영국이 홍콩 행정부를 중국에 반환하기 직전, 크리스 패튼은 홍콩의 영국 총독으로서 마지막 연설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이 영화는 크리스 패튼의 연설을 포함한 역사적 자료들을 픽션과 결합한다.(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나는 한 번도 홍콩에 가본 적 없지만 홍콩을 좋아한다. 홍콩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제니쿠키와 몇 편의 홍콩영화만을 좋아할 뿐이다. 어릴 때 엄마가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로 시작되는 <홍콩 아가씨>라는 노래를 자주 불렀다. 내가 좋아했던 홍콩은 예술가들에 의해 잘 만져진 홍콩이고, 나는 홍콩을 모른다.
홍콩은 1841년 아편전쟁을 겪고,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근현대사에서 뭔가 구린내가 난다 싶으면 영국이 끼어 있다. 아무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도 영국은 홍콩을 계속 식민지로 둔다. 중국 본토에는 사회주의 체제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지만 홍콩만큼은 세계사의 흐름대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취한다. 그리고 중국의 부호들과 돈 좀 벌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홍콩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첨밀밀>의 이요와 소군처럼.
왕가위 감독은 홍콩 반환을 앞두고 그가 사랑하는 홍콩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1997년,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편입되었다. 덩샤오핑은 일국양제로 홍콩의 민주자본주의를 50년간 유지하기로 했으나, 우리가 중국에 대하여 보고 들은 바와 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우산을 들고 최루탄에 맞섰다. '우산혁명'이라 불리는 2014년 홍콩 민주화운동이다. 5년 뒤인 2019년에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맞서 시민들이 다시 거리에 나섰다. 우산혁명 당시에는 평화적 시위를 이어나갔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평화시위는 힘이 없었다. 1996년생인 조슈아 웡은 대한민국에도 홍콩과 뜻을 같이할 것을 호소했다.
영화는 영국령 홍콩의 마지막 총리 크리스 패튼이 연설하는 장면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교차편집하여 보여준다. 총리는 말한다. "역사는 단지 날짜의 문제가 아니"라고. 대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데카메론>은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가 쓴 소설의 제목이다. 흑사병이 돌고있는 도시를 떠나 교외의 별장에 머무는 귀족들이 떠드는 이야기. 홍콩의 민주화운동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는 굳이 '데카메론'이라는 제목을 차용했다. 21세기의 흑사병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겠다.
영화에는 홍콩 역사의 이모저모가 담겨있다. 100년 전인 1922년 홍콩 선원 파업 사건과 코로나 이후 홍콩 예술인들의 노조 설립을 병치하고, 1966년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잇는 유일한 운송수단이었던 스타페리호의 가격인상이 도화선이 되어 발생했던 1967년 폭동과 2019년 혁명,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광복홍콩 시대혁명'까지 영화는 홍콩의 큼직큼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훑어간다.
그 가운데, 코로나로 봉쇄된 도시에서 주부들이 화상회의로 만난다. 주부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코로나로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자 엄마들이 난감해졌다. 거시적으로도 난리가 났지만 미시적으로도 케파가 딸리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밖에서는 검은 옷만 입어도 전경에게 취조를 받아야 하고, 안에서는 밖에 나가지 못하는 가족을 돌보거나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경찰들 때문에 조마조마해야 하는 삶.
아무튼 <데카메론>은 홍콩의 과거와 현재다. 홍콩영화 특유의 찬란한 네온사인도, 화려한 액션도 없는, 홍콩 그 자체다.
'홍콩을 정말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제작했다는 엔딩 크레딧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작품은 공권력에 의해 살해되거나 실종된 수많은 홍콩사람들을 기억하는 일, 억울한 죽음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이는 일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마음 그 자체다.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기록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에서 교차편집하여 보여주었듯이,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홍콩 시위대가 남긴 "깨어있든지, 다음이 되든지(Be aware, or Be next)"라는 문구를 목격한 우리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우리나라에도 민주화운동이 있었고, 기록하는 사람들과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곧 행안부 소속 경찰국이 신설될 예정이다. 어쩌면 다음은 우리일지도 모르겠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 스케줄
2022년 8월 27일 17:30~19:18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9관
2022년 8월 31일 16:00~17:48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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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뚜기 월드'가 된 <쥬라기 월드 3>의 의미와 한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룡들의 터전이었던 이슬라 누블라 섬이 파괴되고, 섬을 벗어나 세상 밖에 자리 잡은 공룡들. 세계가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오웬(크리스 프랫)'과 '클레어(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공룡들을 보살피고, '메이지 록우드(이사벨라 써먼)'를 지키기 위해 작은 오두막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복제 인간 연구를 진행하려는 기업 '바이오신'에 의해 메이지가 납치당하고, 오웬과 클레어는 메이지를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한편, 미국 서부에 나타나 농가들을 휩쓸고 다니는 거대한 메뚜기 떼를 조사하던 '엘리 새틀러(로라 던)'는 오래된 친구 '앨런 그랜트(샘 닐)'과 함께 메뚜기들이 바이오신의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졌음을 깨닫는다. 이에 엘리와 앨런은 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과거의 동료인 '이안 말콤(제프 골드브럼)'의 도움을 받아 공룡들이 모여 있는 바이오신 소유의 보호구역으로 향한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1993년에 개봉한 <쥬라기 공원>을 시작으로 29년간 이어진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래서 <쥬라기 월드> 삼부작의 주인공인 크리스 프랫과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부터 <쥬라기 공원> 삼부작의 주인공인 로라 던, 제프 골드브럼, 샘 닐까지 한 자리에 모여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날레를 가장 화려하게 꾸며주는 이들은 역시나 공룡이다. 전편에서 이슬라 누블라를 탈출해 북미 대륙에 상륙한 공룡들은 이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항상 공원이라는 장소에 갇혀 있었던 공룡들은 이제 바다에서도, 눈 내리는 산맥에서도, 소들이 뛰어놀던 평원에서도, 심지어 암시장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한 가지 독특한 지점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공룡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을 배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영화는 정작 공룡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번 작품에서 세상을 위기에 몰아넣은 것은 온갖 곳으로 퍼져 나간 공룡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 메뚜기 떼이고, 영화의 메인 플롯도 유전자 조작 메뚜기를 개발한 기업인 바이오신을 고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룡이라는 소재에 국한되지 않는 대목은 긴 시리즈에서 반복되던 메시지를 탈피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일견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만의 개성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리즈의 진정한 주역인 공룡의 임팩트가 약해지고, 시리즈의 마무리로서도, 또 단독 작품으로서도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주제와 메시지
그간 <쥬라기 공원> 삼부작과 <쥬라기 월드> 1편의 주제는 분명했다. 인간의 기술적 진보에 대한 경고였다. 공룡이라는 환상 속에는 윤리 없이 유전공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거대 기업들에 대한 비판, 돈과 명예를 좇아 경쟁적으로 발전할 뿐 자기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대 과학에 대한 경고, 인간이 자연을 제어한다는 것은 혼돈 효과에 의해 불가능하다는 통찰이 담겨 있었다. 이는 오리지널 삼부작에서 쥬라기 공원이 끝내 실패로 귀결되고, 성공적인 듯 보였던 쥬라기 월드마저 폐장해야 했던 공통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전편인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부터 시리즈는 기본적인 뼈대는 간직한 채 주제를 조금씩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화산이 폭발하며 파괴되는 이슬라 누불라 섬에서 공룡들을 구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오웬과 클레어의 이야기를 담은 전편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었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 한 축이고, 다른 생명의 흥망성쇠에 인간의 개입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다른 한 축이었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도 마찬가지다.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의 인터뷰에서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위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이슬라 누블라 섬에서 데리고 나온 공룡들을 더 큰 세상 속에 풀어놓게 된 거예요. 그것의 결과를 탐험해 볼 수 있는 정말 멋진 기회였습니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우리가 자연계의 힘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영화입니다"라고 영화의 주제를 설명한다. 특히 '자연계의 힘'이라는 말은 영화가 공룡들이 일으키는 문제보다 거대한 메뚜기들이 일으키는 문제에 더 집중한 이유를 암시한다. 이제 <쥬라기 월드>는 단순히 공룡, 그리고 공룡과 인간의 공존을 넘어서서 인간과 공룡까지도 포함하는 쥬라기 '월드', 곧 공룡이 사는 '세계' 그 자체로 시선을 돌린다.
정치생태학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변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의 변화에서는 미국의 정치 철학자인 제인 베넷의 그림자가 짙게 느껴진다. 정치생태학자인 그녀는 자연과 물질도 인간처럼 세계의 변화에 반응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라는 주장한다. 그간 인간은 오직 인간만이 의지와 목적을 갖고 주변에 존재하는 환경, 사물, 비인간 생명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넷에 따르면 비인간 행위자에게도 인간처럼 의지와 목적을 가진 채 행동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비인간 행위자는 인간 행위의 방향성도 바꿀 수 있다. 인간은 식물, 동물, 무생물, 자연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에 속해 있고, 인간의 모든 행위는 매 순간 사물과 결합해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인간의 문화가 자연과 뒤얽혀 활기차게 반응한 결과이듯이, 인간의 의도 역시 거대한 비인간 행위자인 자연과 환경을 만나 실현된다.
거대 메뚜기의 등장도 정치생태학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이오신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곡물 종자들을 배포하고, 비대한 메뚜기 떼를 개발해 식량 공급망을 혼란시킨 후 식량 산업을 지배하려는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바이오신의 계획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메뚜기들 역시 그 계획에 반응하여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의 계획이 탄로 날 것을 우려한 바이오신의 CEO '도지슨(캠벨 스콧)'은 증거 인멸을 위해 키우고 있던 메뚜기 떼를 모두 소각 처분한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수준으로 질긴 생명력을 지닌 메뚜기들은 연구실을 탈출해 공룡이 거주하는 숲 전체에 불을 퍼뜨리며 도지슨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초래한다. 이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비인간 행위자의 의도와 반응과 만난 후에야 비로소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전편이 다른 생명체의 세계에 인간이 주체로서 어떻게 개입할 지에 주목했다면,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한 발 더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의 네트워크가 움직이는 방식을 비춘다.
영화는 이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정동(affect)하는 모습을 감정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그 중심에는 오웬과 벨로시랩터 '블루'가 있다. <쥬라기 월드> 시리즈에서 오웬과 블루의 관계는 항상 특별했다. 비록 누구도 쉽사리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웬은 언제나 블루를 조련할 방법은 없으며 그저 그의 선택과 행위를 존중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즉, 오웬과 블루는 동등한 주체로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인간과 공룡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 기제가 된다. 바이오신이 새끼인 베타를 납치하자 극도로 난폭해진 블루. 그런 블루에게 오웬은 메이지와 함께 베타도 구해오겠다고 약속한다. 이후 그의 약속에 예상치 못한 유전자 조작 메뚜기 사태가 더해진 결과 바이오신의 악행은 온 세상에 공개되고, 공룡들에게는 삶의 터전이 생기며, 블루와 오웬은 각각 가족을 되찾는다. 메이지와 베타의 관계가 오웬과 블루처럼 진전되는 것은 덤이다. 이렇게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공룡에 국한되지 않는 상상력을 통해 자연계의 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매력도, 비중도 없는 공룡들
문제는 공룡으로 인해 변화한 세계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정작 시리즈의 주역인 공룡의 매력과 비중이 모두 급감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중 공룡들은 전개에 따른 부속품 정도로 묘사된다. 이는 지난 시리즈에서 다양한 공룡들을 지속적인 등장시키고, 그들의 독특한 행동양식을 부각하며 개성을 어필해왔던 것과는 대비를 이룬다. <쥬라기 월드>에서 비정상적인 흉포함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인도미누스 렉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에서 생물병기로 길러졌던 인도랩터처럼 존재감을 과시하는 공룡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공룡들은 공룡 암시장이 있는 몰타에서, 하늘에서, 얼어붙은 댐 위에서, 그리고 지하 터널 등에서 주인공들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구체적으로 보면, 스토리 진행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블루만 하더라도 그 중요성이나 비중과는 별개로 시작과 끝에 겨우 모습을 비추는 데 그친다. 시리즈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시'의 대우도 다르지 않다. 첫 등장부터 마지막 액션씬까지 기가노토사우루스의 힘에 밀려 시종일관 제대로 싸우지 못하던 렉시의 모습은 시리즈의 상징에게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렉시가 다른 공룡과 협력하면서까지 기가노토사우루스를 쓰러뜨려야 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다 보니 렉시의 등장에는 반가움과 의문이 공존하기도 한다. 빌런 포지션에 가까운 기가노토사우루스 역시 평범한 육식 공룡에 불과할 뿐, 뇌리에 각인될만한 캐릭터성을 어필하지는 못한다. 심지어 후반부 공룡들의 액션씬에서 카메라가 공룡보다 싸우는 현장을 탈출하려는 인간에게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이들의 존재감은 안타깝게도 더욱 줄어든다.
피날레로서도, 독립 작품으로서도 아쉬운 완성도
이에 더해 시리즈의 최종장으로서 <쥬라기 월드> 3부작과 <쥬라기 공원> 3부작을 모두 아우르려는 시도가 크게 성공적이지 못한 나머지 영화의 메시지가 묻히는 듯한 인상도 남는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크게 세 개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오웬과 클레어, 그리고 케일라가 바이오신에게 납치된 메이지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엘리 새틀러 박사와 앨런 그랜트 박사의 이야기로, 그들은 거대한 유전자 조작 메뚜기와 관련된 진실을 찾아 바이오신 보호구역으로 향한다. 마지막은 도지슨의 음모를 저지하려는 이안 말콤 박사와 램지 콜의 서사다. 서로 다른 세 개의 스토리는 제각기 진행되다가 3막에 이르러 하나로 합쳐지고, 다양한 오마주를 통해 시리즈를 하나로 종합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역으로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선 세 개의 이야기를 묶기 위한 작위적인 전개가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바이오신 건물에서 탈출한 엘리, 앨런, 이안 일행의 차는 숲 한가운데서 전복되는데, 이 사고는 때마침 오웬과 클레어가 있는 바로 그 장소에서 일어난다. 또 복제 인간인 메이지를 세 스토리의 교집합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영화의 잠재력을 온전히 살리지 못한 선택처럼 보인다. 전편에서 미처 다 공개되지 않았던 메이지의 과거사는 원본과 복제본의 가치에 관해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을 가능케 하는 극적 장치다. 그러나 메이지의 개인사를 철저히 가족애와 모성애를 강조하는 감정적 측면에만 제한한 결과, 그녀의 이야기는 다소 평범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만다. 두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하나로 묶어서 시리즈의 전통도 살리고 향수도 고취하려던 선택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마지막으로 다루고자 하는 바가 많다 보니 147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조연급 캐릭터들의 동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제법 비중이 있는 조연인 '케일라 와츠(드완다 와이즈)'나 '램지 콜(마무드 아티)'만 해도 배경 설명이 없다. 케일라는 지나가다가 흘끗 본 아이(메이지)를 구하기 위해 직업과 목숨을 걸고 오웬과 클레어를 도울 정도로 정의감이 강한 인물이다. 그런데 영화는 케일라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해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다.
램지 콜 또한 바이오신 회사에 협력하는 중관 관리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부의 부패를 고발한 반전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시리즈의 메인 악역이었던 '헨리 우(B.D. 웡)'도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영화 내에서 그 과정은 제시되지 않는다. 이렇게 주인공들을 제외한 캐릭터들이 도구적으로 활용된 결과 영화 전반의 개연성도 부족해진다.
물론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오락영화로서, 또 블록버스터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해낸다. 특히 중반부 몰타에서 펼쳐진 공룡과의 속도감 있고 강렬한 추격씬은 마치 <분노의 질주>를 연상케 한다. 수많은 오마주를 통해 <쥬라기 공원> 시리즈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점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러나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너무 힘을 많이 준 탓일까?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시리즈의 끝으로서도 독립된 작품으로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야심 차게 준비한 메시지마저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 채 일단락되는 듯 보인다.
A(Acceptable, 무난함)
쥬라기 '월드'와 '쥬라기' 월드 사이의 불협화음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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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조조 래빗] 리뷰/해석:히틀러라는 허상에 대하여! 하일 히틀러.
#조조래빗#히틀러#우한폐렴
간만에 좋은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이 잃어버린 인류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였어요. 그리고 지금 현 시점에도 많은 교훈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다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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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 굿 맨> 메인 예고편
조용한 섬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는 ‘벤자민’과 ‘오드’는
서로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6년 차 연인이다.
가정을 꾸리고 싶은 두 사람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지만,
‘오드’가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벤자민’은 그런 ‘오드’를 대신해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데…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는
용기 있는 사랑과 연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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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변의 에트랑제> 메인 예고편
오키나와 외단섬, 해변 벤치에 혼자 멈춰있는 소년 '미오' . 그런 미오가 몹시 신경 쓰이는 소설가 지망생 '슌'
우연한 계기로 가까워졌다 생각한 순간, 미오가 돌연 섬을 떠난다.
그리고 3년 후, 그토록 그리워하던 서로를 다시 만난 둘은 이제 마음을 알아가며 서툴지만 따뜻한 사랑을 시작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