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3-05 18:39:00
미키 17 | 봉준호답게 일탈한 SF 모범생
<미키 17>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빚을 내어 친구 ‘티모’(스티븐 연)와 함께 차린 마카롱 가게가 망한 나머지 사채업자를 피해 다녀야 하는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 아예 지구 밖으로 도망치기로 결심한 그는 정치인 '케네스 마셜'(마크 러팔로)의 외계 행성 니플하임 식민지 개척단에 합류한다. 티모와는 달리 아무 기술도 없었던 미키는 위험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신체가 출력되는 '익스펜더블'로 자원한다.
온갖 생체 실험에 동원되면 죽고 출력되기를 16번이나 반복하면서도 여자친구 '나샤'(나오미 애키) 덕분에 4년의 항해를 견뎌낸 '미키 17'. 니플하임 행성 탐사 임무를 부여받은 그는 탐사 도중 외계 생명체 ‘크리퍼’를 조우하고, 죽을 위기를 피해 우주선에 간신히 복귀한다. 하지만 우주선에는 이미 ‘미키 18’이 프린트되어 있었고, 복제 인간이 둘 이상 공존할 수 없다는 규칙에 따라 두 미키는 서로를 죽이려 든다.
봉준호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만남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복기해 보면 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한 작품 내에서도 의외의 타이밍에 장르를 변환하거나, 과감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다는 것. <기생충>에서는 '부자는 악하고 빈자는 선하다'는 고정관념을 뒤엎는 전개와 블랙 코미디에서 스릴러로 전환되는 구성으로 충격을 선사했다. 꼬리칸의 반란의 성공이나 실패에 얽매이지 않고 열차라는 시스템 자체를 전복하는 <설국열차>의 결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미키 17>은 기대만큼 우려도 컸다. '관습에 구속되지 않는 비틀림'이라는 봉준호의 특징이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다뤄질지 의문이었던 것. 워너 브라더스와 협업하고 제작비만 1억 2천만 달러가 투입된 <미키 17>은 <설국열차>나 <옥자>와는 또 다른,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였으니까. 규격화된 시스템과 봉준호가 어떤 조화를 보여줄지 걱정 반, 기대 반일 수밖에 없었다.
<미키 17>의 결과물은 전반적으로 할리우드스럽다. 전개는 SF 클리셰에 충실하다. 봉준호라는 명성에 비하면 깊이도 얕아 보인다. 다양한 철학, 종교, 윤리, 정치적 딜레마와 알레고리가 삽입됐지만, 어느 것도 진득이 다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특별하다. 디테일로 빚어낸 블랙 코미디가 영화 전체를 지배하기 때문. 즉, <미키 17>은 할리우드의 SF 모범생이 전학생 봉준호를 만나 펼쳐 보이는 성실한 일탈의 결과물 같다.
'봉테일'로 빚은 불쾌한 블랙 코미디
<미키 17>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감정은 불쾌함이다. 특히 디테일하게 빚어낸 불쾌함을 토대로 이뤄지는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다 보면 '봉테일'이라는 수식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그 중심에는 3D 생체 프런터가 있다. 이 프린터는 일반 3D 프린터처럼 입력된 설계도대로 인체를 찍어낸다. 그런데 이 프린터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도 일상적이라서 그 자체로 기괴한 유머처럼 느껴진다.
프린터가 작동하는 방식부터가 그렇다. 외관은 MRI 기계처럼 깔끔하고 미래지향적으로 생겼지만, 정작 작동하는 방식은 옛날 프린터처럼 투박하다. 과거 프린터들은 출력물을 인쇄할 때 종이를 한 번에 매끄럽게 내보내지 않았다. 문서를 한 줄씩 인쇄하면서 덜커덩거리면서 조금씩 종이를 내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 프린터 또한 덜컹거리면서 미키를 머리부터 서서히 밖으로 뽑아낸다. 마치 종이 문서를 출력하듯이.
이처럼 일반적인 프린터가 작동하는 익숙함과 프린터에서 종이가 아닌 사람이 출력되다는 낯섦 간의 괴리감은 미묘한 불쾌함을 조성한다. 이 불쾌함은 프린터 사용자들의 태도 때문에 증폭된다. 그들의 태도는 지극히 일상적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하다. 핸드폰 게임을 하느라 출력 과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거나, 받침대를 뒤늦게 깔거나, 출력이 되는 사이 다른 작업을 하다가 출력물이 이상하다고 짜증을 내는 식이다.
문제는 프린터에서 종이가 아니라 미키 반스라는 사람이 출력된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투박한 작동 방식이라는 디테일의 진가가 드러난다. 단지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세태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로부터 아무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그로테스크함을 더 구체적으로 짚어주기 때문. 유머러스한 연출도 한 몫하다. '사람을 출력한다'는 사안의 심각성과 가벼운 분위기 사이의 간극 덕분에 불쾌함은 극대화된다.
익숙함+봉준호=특별함
프린터에서 느껴지는 불쾌함, 인간의 존엄성을 아무렇지 않게 훼손하고 짓밟는 그로테스크함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가짜 임무를 주고 미키를 우주로 내보내서 인체 방사선 실험을 한다. 새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보호 장비 없이 미키를 보내서 대기 상의 바이러스를 파악한 뒤 백신을 만든다. 저녁 만찬에 초대해서는 배양육을 임상실험하고, 부작용이 나타나자 내친김에 신형 진통제 효능까지 시험한다.
이 온갖 생체 실험에도 불구하고 미키는 일절 불평도, 반항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사채를 빌리고 돈을 갚지 못해 죽을 처지가 되자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했으니까.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해를 다루는 이 대목은 SF 영화의 클리셰에 가깝다. <설국열차>의 꼬리칸을 익스펜더블로 바꾼 것처럼도 보이고, <아바타>에서 제이크 설리가 판도라 행성으로 향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 기괴함과 유머가 뒤섞인 미묘한 분위기 덕분에 클리셰는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된다. 실제로 <미키 17>에서는 돈이 없어서 지구를 떠난다는 클리셰도 마치 생체 프린터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사채업자 '다리우스'는 돈을 안 받아도 되니 그저 사람이 죽는 모습을 즐기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이는 인명 경시 풍조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세태를 고발하는 다른 차원의 효과를 낸다.
<기생충>에서 '박동익'(이선균)이 '김기택'(송강호)의 냄새에 묻은 가난함을 지적하는 것과도 유사한 방식이다. 선악 이분법을 활용하지 않고도 빈부격차를 실감케 한 것처럼, 인간을 액수로 수치화하지 않아도 이미 인간이 돈이나 다름없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익숙하고 강고한 클리셰의 벽에 봉준호다운 디테일이 균열을 일으키면서 <미키 17>의 폭은 넓어지고 깊이도 더해진다.
SF 모범생을 일탈시키다
클리셰에 봉준호 향을 첨가해 색다른 맛을 내는 방식은 <미키 17>이 해결책을 제시할 때도 유효하다. 사실 앞서 보여준 문제의식에 대한 <미키 17>의 답안은 너무 모범적이고, 순진하기까지 하다. 두 방향의 아가페적 사랑을 해결책으로 내놓기 때문. <미키 17>은 니플하임에 사는 크리퍼처럼 모든 생명을 아끼고, 나샤처럼 타인을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면 생명이 경시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극 중 서로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크리퍼와 인간은 정반대 태도를 취한다. 인간은 크리퍼를 전부 죽이려 하지만, 크리퍼는 처음 보는 인간도 죽을까 봐 걱정하면서 구해준다. 또 종족을 위한 길이라며 미키를 17번이나 죽이는 인간들과 달리 크리퍼는 인간에게 잡힌 새끼 한 마리를 구하려고 모든 종족이 전투에 나선다. 즉, 모든 생명을 더한 만큼 한 생명이 소중하다는 <옥자>스러운 메시지를 인간과 크리퍼의 대비 속에 담아낸다.
한편 나샤의 사랑은 미키를 변화시킨다. 미키가 무기용 살상가스 테스트를 당할 때, 나샤는 그를 홀로 두지 않는다. 방호복을 입고 실험실 안에 들어가서 그가 죽을 때까지 옆에 있어준다. 또 티모가 다리우스의 협박 때문에 미키 17을 죽이려 할 때도 나샤는 목숨을 걸고서 그를 구해낸다. 이러한 아가페적 사랑은 우유부단하고 무기력한 미키 17을 각성시키고, 그가 케네스의 압제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사랑의 힘을 찬양하는 메시지도 사실 신선하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서도 봉준호다운 색다름을 엿볼 수 있다. 미키 17과 나샤는 항해 중에 여러 섹스 체위에 이름을 붙였는데, 그중 하나가 케네스의 압제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신호로 활용된다. 아가페적 메시지를 순간 에로스적으로 풀어내는 유머 덕분에 진부할 뻔한 장면에 생동감이 깃든 셈이다. 이 또한 봉준호가 할리우드 SF 모범생을 변화시킨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악역을 무찌르는 사랑의 힘
한편, 사랑의 메시지는 정치 풍자의 영역으로도 확장된다. 미키를 출력할 때 가장 독특한 지점은 그의 기억과 성격이 보존되고 이어진다는 것. 바로 이 대목에서 마셜 부부가 상징하는 파시즘에 대한 경계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미키는 존재 자체로 마셜의 이상에 반하기에, 그의 성장 서사는 그 자체로 케네스의 실패와 퇴락을 뜻하기 때문.
마셜 부부는 인간 중심주의와 우생학을 신봉한다. 식민지 행성 개척 프로젝트도 더 우월한 인류를 만들겠다는 비틀린 신념의 일환이다. '일파'(토니 콜레트)'가 만드는 '소스'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소스를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한다. 소스를 즐길 줄 아는 우월한 종자와 즐기지 못하는 열등한 종자로. 더 맛있고 좋은 소스에 집착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생학에 기반해 니플헤임 행성을 개척하려는 케네스의 신념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케네스가 보기에 복제품이라서 진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미키는 열등한 존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복사되는 존재이기에 미키는 진정으로 진화할 수 있다. 미키 17과 미키 18의 만남이 미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어주기 때문. 미키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자기가 엄마 차에 있던 빨간 버튼을 누른 순간 교통사고가 발생해서 엄마가 죽었다고 믿는 것. 버튼이 실제 원인이었는지와는 무관하게.
미키 17은 또 다른 '나'를 만나 달라진다. 그는 우유부단한 자신과 달리 과감한 미키 18을 보면서 모든 미키가 죄책감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케네스와 크리퍼의 전쟁을 막기 위해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자폭 버튼도 망설임 없이 누르는 미키 18로부터 자신에게도 있을 가능성을 배운다. 마셜 부부가 등장한 백일몽에서 과거와는 달리 당당히 일파와 맞서는 미키 17의 모습은 그의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평범함의 힘을 믿다
미키의 변화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한 격려처럼도 보인다. 현실적으로 대중에 속한 한 개인은 미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케네스 같은 독재자의 시점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수없이 복제된 미키의 집합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범한 이들이, 대중이 미키처럼 자신의 가능성과 힘을 자각할 때, 케네스는 비로소 힘을 잃는다.
일례로 미키와 나샤는 번역기를 만들어 준 과학자 '도로시'(팻시 패런)나 일파의 지시를 불이행한 '지크 요원'(스티브 박) 등 자기 본분에 최선을 다한 평범한 대원들 덕분에 크리퍼를 몰살하려는 케네스의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즉, 자기 자신을, 연인을, 동료를,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는 평범한 이들의 가능성을 믿는, 달리 말해 민주주의를 신뢰하는 이야기가 <미키 17>인 셈이다.
다만 사랑이라는 주제와 정치 비판 간의 연결고리가 부각되지 않다 보니 <미키 17>의 의도는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미키 17과 미키 18의 협력 과정보다 갈등이 강조된 결과 미키 17의 변화와 성장이 조명받지 못한 것. 그렇다고 두 미키의 갈등을 제대로 다루지도 않았다. 나샤의 진짜 연인이 누구인지를 중심으로 둘 중 누가 진짜 '나'인지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돌연 둘의 갈등을 유야무야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수박 겉핥기처럼 지나가는 대목이 많은 나머지 정치 비판이 일차원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일례로 케네스는 정치와 종교의 결합, 극단주의의 심화라는 정치적 흐름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배경이나 개인사가 단편적으로 묘사되다 보니 케네스라는 캐릭터 자체가 다소 직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거시적인 정치 흐름이 아닌 특정 정치인만을 겨냥하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 셈이다.
최고는 아닐지언정
이에 더해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가 여러 플롯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인상도 짙다. 크리퍼 번역기가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눈에 띄는 복선이나 암시 없이 함장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식이다. 티모나 카이 같은 미키의 주변 인물들이 명확한 쓰임새 없이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전개는 과욕이 아닌가 싶다. 복제 인간 활용법도 '멀티버스의 나'를 등장시킨 MCU의 스토리텔링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어서 신선하지는 않다.
그래서 <미키 17>을 봉준호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할리우드 SF 영화로서 성실하고 매끄럽게 만들어졌지만 특별한 지점은 보이지 않는다. 예상보다 블랙 코미디에 가까워서 큰 스케일이나 막대한 제작비도 와닿지는 않는다. 클라이맥스를 제외하면 우주선 내부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 그 결과 전반부에 가득한 기괴함의 충격에 비해서는 후반부와 결말의 즉각적인 쾌감이 부족하다.
그 대신 곱씹을수록 풍미는 깊어진다. 봉준호다운 장치가 친절하고 모범적인 상상력 사이로 만든 균열이 덕분에 의도한 맛이 뒤늦게 느껴지는 것. 가까이서 보면 범작이지만, 멀리서 볼 때 수작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거대 자본과 작가의 창조성이 타협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처럼 보인다. 이렇게 <미키 17>은 봉준호 스타일로 소화한 할리우드 SF를 보여준 게 아닐까 싶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봉준호가 제출한 할리우드 SF학 개론 중간 과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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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의 몰락으로 세워진 바빌론,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미국 영화 산업의 중심이자 황금기였던 고전 할리우드 영화 시대는 시기상 메이저 스튜디오*의 성립과 쇠퇴가 이루어진 1910년대 말에서 1950년대 말 중 무성영화가 사라지는 192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다. 이 시대에는 감독과 배우들이 스튜디오별로 소속되어 이미지 관리까지 받으며 영화 제작에 참여한다. 타 스튜디오의 영화 제작에 참여하려면 스튜디오 간의 협의가 필요하며 배우를 포함한 제작진들은 스튜디오로부터 스카우트를 받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종의 소속사 개념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또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발전하며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로 많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이 저항하기도 하고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큰 격변기를 맞이한 때이다. 이 변화는 특히 배우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기존에 화면에서 표정과 몸짓만으로 연기의 찬사를 받던 배우들이 목소리 또한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곤혹을 겪은 것이다. 이러한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을 유쾌하게 풍자한 영화가 <사랑은 비를 타고>(1952)인데 당시 ‘영화로 보는 영화사’로 유명했던 영화인만큼 <바빌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시절(1920~1940년대 말)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주도했던 영화사로 당시 제작, 배급, 상영 기구를 수직 통합한 5대 메이저 스튜디오 (워너브라더스, 파라마운트, MGM, RKO, 20세기 폭스)와 상영기구를 갖지 못한 3대 마이너 스튜디오(유니버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콜롬비아)로 분류
영화는 시기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또한 실제 인물을 소재로 이용했다. 스타들의 스타인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는 무성영화의 대스타였으나 유성영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대표적인 스타 존 길버트(John Gilbert, 1897-1936)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결혼을 4번 했던 것부터 자신의 발성에 콤플렉스를 느꼈던 것과 전쟁로맨스 <빅 퍼레이드>(1925)로 초기에 대성공해 관객의 비웃음을 샀던 첫 토키영화는 <위대한 밤(His Glorious Night)>(1929)의 상대역 이름은 ‘캐서린’이라는 점까지 실제 배우의 많은 부분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넬리 라로이는 완벽히 매치되진 않지만 유독 눈물 연기에 능했던 클라라 보우(Clara Bow, 1905-1965)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배경과 자유분방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성적학대를 일삼는 할리우드의 조롱거리 아버지가 기본적인 배경이다. 클라라 보우와 다르게 추가된 설정은 알마 루벤스와 잔는 이글스를 떠올릴 수 있다. 두 배우 모두 1920년대 유명한 배우였지만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기에 심각한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된다. 지금까지 다른 장편에서 볼 없었던 디에고 칼바의 마누엘 토레스(매니)는 정확히 기존의 인물을 차용했다기보다는 <사랑은 비를 타고>의 등장인물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주 배경시기였던 30년대를 뛰어 1952년에 할리우드로 돌아와 영화관에 앉아 <사랑을 비를 타고>를 보는 장면에서 앞서 매니가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에게 ‘유성영화, 유성영화’를 외치던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영화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이러한 설정들을 따라 스토리를 보자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인기 스타가 되고 싶지만 끼는 있고 지속적인 스타의 자질은 부족한 넬리, 이미 스타가 되어 지속적인 스타의 삶을 원하지만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잭, 영화사 고위 직원이 될 만큼 사업 수완은 좋지만 사랑하는 넬리를 스타로 유지시키려는 매니가 중심인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 세 인물들의 두 가지로 공통점이 있다. 애정하는 대상이 있으며 본인 스스로가 장애물이라는 점이다. 세 인물 모두 기본적으로 영화를 애정한다. 또한 앞서 적은 바와 같이 인물이 목표를 이루는 데에 있어 원인이 본인에게 있으며 그 원인은 본능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욕망과 사랑이라는 본능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이에 대해 감독은 ‘배설’을 주요 메타포로 여기는 것으로 보여진다. 영화 시작부터 카메라에 묻혀가며 시점샷으로 코끼리의 변을 보여주며 강조한다. 이어서 나오는 ‘배설’은 파티장에서 영화사 임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맞는 소변, 화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브래드 피트의 뒤로 칸 안에서 거하게 나오는 방귀 소리, 고위층 파티장에서 넬리의 구토, 멕시코로 도망가는 길에 암살자를 마주한 매니의 소변으로 볼 수 있다. 코끼리의 변과 화장실의 소리가 가장 기본적인 배설욕이라면 파티장의 남성은 성욕으로 볼 수 있으며 넬리의 구토는 자신의 본능과 다르게 가식적인 부유층 앞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하는 역겨움과 매니는 두려움에서 오는 본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 중에서 파티장을 주로 한 오프닝 시퀀스는 30분가량 지속된다. 하필이면 차에 코끼리를 싣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매니는 ‘할리우드’라는 세계에 신분 상승을 위한 노력과 겹쳐진다. 그리고 광란의 파티장 시퀀스가 끝나고 브래드 피트의 ‘마법과 같은 곳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영화의 타이틀을 중심으로 영화 촬영장이 따라 나오며 영화의 타이틀을 중심으로 대칭을 만든다. 첫 번째로 두 장소 모두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있다. 파티장은 키노스코프라는 극 중 영화사의 사장이 주최하는 행사이기에 사실상 키노스코프 스튜디오의 직원들이 모인 곳이다. 연이어 나오는 촬영장은 잭 콘래드가 영화 촬영 중인 장소이기에 또한 영화 제작진들과 배우들이 등장한다. 또한 각각 죽음이 연이어 나오는데 다음날 첫 촬영을 앞두고 약물중독으로 죽음에 가깝게 기절한 미성년자 여자 배우와 카메라 운반을 담당했으나 전쟁씬 촬영 중 사고로 사망한 남자 배우이다. 또한 이들은 각각 넬리와 매니에게 할리우드에 진입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각 인물들의 사건 발단이 되는 동시에 배경 설명을 하기에 과한 시간의 분배처럼 보이지만 ‘바빌론’에 투사하는 당시 할리우드를 설명하기에는 적당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빌론은 욕망으로 세워졌고 할리우드 또한 욕망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그 욕망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이끌었으며 개인과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가이다. 감독의 최근 전작들을 살펴보자면 <위플래쉬>(2015), <라라랜드>(2016), <퍼스트맨>(2018) 모두 개인의 삶(본능)에 대한 고뇌를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위플래쉬>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견디며 완벽한 드러머가 되기 위한 자신과의 갈등이라면 <라라랜드>에서는 LA에서 피아니스트로 배우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연인의 꿈과 사랑에서의 갈등이며, <퍼스트맨>은 좀 더 지나 첫 우주비행사로서의 도전과 이미 만들어버린 가정에서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바빌론>또한 연장선상에 놓여있지만 개인의 애정과 연관된 본능을 다루며 영화사(史)까지 확장시켜 진행했다는 점에서 관객에게는 더 심층적인 질문을, 영화 팬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계의 수많은 대도시를 연구한 벤 윌슨은 관능과 혼란스러움이야말로 메트로폴리스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각 인물들은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각자의 본능을 통해 할리우드의 일원이 된다. 영화에 대한 애정들은 영화사의 형태로 남겨졌고 계속 발전하며 변화하는 형태를 요구하는 산업에 적응하지 못한 욕망(본능)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었다. 하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몰락과 탄생의 반복하며 발전하는 구조다. 즉 더 중요한 일, 큰 일을 하고 싶다고 한 매니와 같은 개인의 욕망들이 이루어져 개인은 몰락했지만 어쨌든 영화사(史)라는 바빌론은 세워졌다. 영화는 매니가 1952년도의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을 보며 지난날을 복기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매니의 삶(고전 할리우드)을 담아내기도 한 동시에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쇠퇴기(1946~1967년)의 영화기도 하다. 따라서 할리우드 시대의 끝과 함께 영화가 끝나는 셈이다. 따라서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바빌론에 비유한 것은 지리적인 의미의 메트로폴리스인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 고전 할리우드 영화 시대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바빌론>을 굳이 빗대어 표현하자면 <라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위플래쉬>라고 생각한다. 극 중 잭이 개봉한 자신의 첫 토키영화의 관객 반응을 살피러 가는 상황에서는 크게 잭의 대사가 웃기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매니가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재연하는 잭의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처럼 연출된 두 장면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잭이 도태된 이유를 설명해 주면서 잘못된 점을 알아채지 못했던 잭의 입장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고전 할리우드의 역사, 데이미언 셔젤의 연출,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력, 스펙터클,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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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쇼맨? 위대한 베러맨!
! 해당 리뷰는 씨네랩 초청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감독) 마이클 그레이시
출연) 로비 윌리엄스, 조노 데이비스, 스티브 펨버튼, 앨리슨 스테드먼
영국을 휩쓸었던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로비 윌리엄스’가 영화로 돌아왔다. 그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베러맨(BETTER MAN)>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위대한 쇼맨>의 감독 ‘마이클 그레이시’가 메가폰을 잡았으며, 제 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시각효과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을 정도로 작품성 또한 인정받은 작품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을 통해 ‘프레디 머큐리’, <컴플리트 언노운>을 통해 ‘밥 딜런’을 알게 되었다면 <베러맨>은 ‘로비 윌리엄스’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침팬지가 주인공이라고?
로비 윌리엄스가 주인공인 영화로 알고 온 관객들은 ‘내가 관을 잘못 들어왔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주인공이 침팬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연출이라고 한다. 로비 윌리엄스는 스스로를 원숭이라고 지칭해왔으며, 그것을 영화 속에 녹여내는 대담한 시도를 한 것이다. 따라서 처음 침팬지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혹성탈출>이 떠올르는 비주얼에 당황할 수 있지만, 극이 점차 진행될수록 그것은 하나의 캐릭터로 자리잡아 그의 개성을 드러내며 극의 몰입감을 높여준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나면 왜 스스로를 침팬지라고 불렀는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에 다다른다.
끝내주는 뮤지컬 씬
감독의 전작 <위대한 쇼맨>을 본 관객들이라면, 영화 속 음악과 퍼포먼스에 대한 기대감이 높을 수밖에 없겠다. <베러맨>은 관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했다. 로비 윌리엄스의 음악과 마이클 그레이시의 연출력이 만나 끝내주는 뮤지컬 씬을 선보인다. 특히 공간감을 굉장히 잘 살렸는데,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카메라 워킹은 마치 영화 속 현장에 놓이게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또 ‘시각효과’에 있어 인정받은 영화인만큼 영화 속 때깔과 특수효과들이 눈에 띈다. 마치 영화 자체가 하나의 무대를 보는듯하다. 그만큼 큰 화면으로, 빵빵한 소리와 함께 관람한다면 영화 속에 즐겁게 동화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의 삶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로비 윌리엄스의 자전적 이야기일 것이다. 그의 성장 과정, 가족, 꿈, 사랑, 자기혐오 등 보편적이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십 만명 앞에서 노래하는 예술가도 결국 무대를 내려가면 하나의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타’를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스스로 더 나은 사람, ‘베러맨’이 되기를 바랬던 그의 파란만장한 과거를 영화를 통해 확인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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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끊어내지 못한 과거
지금의 나는 어떤 것들로 만들어진 걸까.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것들은 DNA라는 틀을 따라 계속 이어져온 것이어서 무척이나 분명하다. 하지만 그 외에 우리는 꽤 많은 것에 영향을 받는다. 집안 환경이나 사회적인 분위기도 이어져 내려오면서 조금씩 그 당시 상황에 맞게 변화한다. 그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는 모든 것들 속에 작게나마 변하는 것들이 있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이 함께 지금의 나라는 존재를 만든다.
이 모든 연결고리의 시작은 결국 과거다. 과거의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역사를 우리는 평상시에 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결국엔 영향을 받으면서 현재를 만들어간다. 우린 미래에 내가 어떤 결과를 받게 될지를 궁금해하며 살아가지만, 가끔씩은 과거를 돌아보기도 한다. 조상의 역사를 찾아보고 그것을 통해 내가 다르게 갈 방향이 어떤 쪽인지를 생각해 본다. 때론 점집이나 무당을 찾아 현재 좋지 않은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미래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영화 <파묘>는 젊은 무당 화림(김고은)의 뒤를 따라가는 영화다. 화림은 그의 일을 돕는 봉길(이도현)과 함께 기이한 병이 대물림 되고 있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 가족에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3대째 이어내려오고 있는데, 무당인 화림은 이 병이 조상의 묫자리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이 가족에게 찾아온 기이한 병은 이 집안의 미래를 막고 있는 병이면서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이 과거를 끊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집안의 장손은 네 사람을 고용해 파묘를 하려고 한다.
첫 번째 감정 - 화림의 두려움
화림은 무당의 관점에서 본능적으로 이 모든 문제가 묫자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이건 그의 몸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감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묫자리의 위치는 무척 좋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화림은 관객이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다. 묫자리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존재까지 감지할 수 있는 화림은 이 영화 안에서 만큼은 초능력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 내내 초자연적인 것들을 감지해 내고 그걸 다른 인물들에게 설명해 나간다.
여러 인물들 중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화림은 사실 초자연적 존재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존재의 힘에 따라 다른 태도를 보인다. 초반에는 자신만만하게 굿을 하고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다른 인물들을 이끌어나간다. 하지만 좀 더 강한 존재가 등장했을 때, 그는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가 두려움에 풀썩 주저앉는 순간, 그걸 보는 다른 인물들과 관객들은 두려움을 넘어서 공포를 느낀다. 달리 대항할 방법이 없어 보이는 엄청난 존재가 화림의 두려움 때문에 더 무서운 존재가 된다.
사실 젊은 무당인 화림을 겉으로 보기엔 무서워하는 것이 없고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그도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화림이라는 인물이 만들어내는 공포스러운 점이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엄청난 힘을 가진 과거의 존재다. 이미 육체가 없는 과거가 만들어내는 공포 속에서 화림은 자신의 미래마저 잡아먹어버릴 듯한 힘을 느낀다. 이 영화가 이야기 전반부에 감추고 있는 과거는 미래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청산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화림은 그런 청산되지 않았던 과거에 짓눌린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나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무당의 옷을 입고 칼춤을 춘다.
두 번째 감정 - 영근의 체념
무당 화림이 파묘를 위해 찾는 인물은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다. 그중에서 영근은 아주 평범한 장의사다. 죽은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무덤에 묻히거나 화장하는 순간까지 그는 덤덤하게 자신의 일을 해왔던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평범한 인물인 영근은 풍수나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그저 돈벌이를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다. 풍수사 상덕도 마찬가지지만, 상덕은 적어도 풍수지리라는 지식을 공부하고 배운 경험이 있다. 하지만 영근은 그야말로 평범한 관찰자의 입장이 된다.
영근은 큰 능력이 없지만 화림, 상덕, 봉길과 함께 파묘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는 그 모든 과정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고 빨리 상황이 마무리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후반부 엄청난 존재가 등장하는 것을 본 이후 영근은 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그에게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빠르게 그 상황을 체념해 버린다.
그의 체념은 과거를 끊어내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지 않는다. 누군가가 다치고 힘든 상황에 놓여서야 움직이는 영근은 끝까지 그에게 찾아온 과거와 적극적으로 싸우기보다는 그저 옆의 사람을 돕는데만 급급해있다. 그는 비록 모든 상황을 체념했지만 주변 사람들까지 저버리진 않았다. 끝까지 과거를 끊어내려는 사람들 옆에 서서 작은 힘이나마 돕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근은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던 일반 국민들을 대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체념은 했지만, 돕는 걸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감정 - 상덕의 집념
상덕은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화하는 캐릭터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의 말들은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왠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한 편으론 그의 말에 신뢰가 가는 느낌도 있다. 아마도 그가 그 일을 하는 껄렁하고 대충 하는 듯한 태도가 그런 느낌을 주는데 이야기 내내 상덕은 이런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선 무당 화림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되고, 상덕의 말이나 입장은 한 번 걸러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공포스러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이후 이 존재와 과거에 대해서 제대로 파헤치는 건 상덕이다. 이 이야기에서 그의 역할이기도 한데, 그는 어느 순간부터 진짜 과거 모습을 알고 싶은 호기심을 느낀다. 진실에 조금씩 다가간다는 걸 느끼면서 상덕의 집념은 점점 더 커진다. 특히나 영화의 말미 그의 집념이 폭발하듯 몰아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의 집념이 폭발하는 그 순간은 바로 나쁜 과거를 청산하고 끊어내는 순간이다. 그래서 꽤나 통쾌하게 느껴진다. 마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몰랐던 과거를 찾아내고 그 당시의 잘못된 무언가를 벌하고 끊어내는 느낌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상덕의 집념은 무당 화림의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과거 청산의 힘이다. 그가 힘껏 과거를 내리칠 때 모든 것이 바로잡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영화 <파묘>는 우리 모두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영화다. 오컬트 장르로 시작한 영화는 중반부 이후 그 장르를 공포로 완전히 바꾼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꽤나 쉽게 설명하고 묘사하고 있는 공포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좀 더 쉽고 대중적으로 역사적인 문제들을 엮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에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나 공포스러운 과거와 그것을 끊어내는 과정을 보면서 아직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유산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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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영화, <코다>
오늘의 영화는 바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영화 <코다>입니다.
ⓒ 네이버 영화
정보
개요 드라마 | 미국 | 111분
감독 션 헤이더
출연 에밀리아 존스, 퍼디아 월시-필로, 트로이 코처 등
등급 12세 관람가
줄거리
24/7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 '루비'는
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간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기쁨과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다.
합창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일스와의 듀엣 콘서트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까지 얻지만
자신 없이는 어려움을 겪게 될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루비는 망설인다.<코다>의 T.M.I
ⓒ 네이버 영화
코다란?
영화 제목인 '코다(CODA)'는 Child of Deaf Adult의 약자로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청인 코다는 수어와 음성 언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농인과 청인의 세상을 연결해 주는 다리 같은 역할이라고 합니다.
배우
<코다>에서 루비의 가족인 배우 말리 매트린, 트로이 코처, 다니엘 듀런트는 실제로도 농인입니다. 말리 매트린은 농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트로이 코처는 <코다>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코다>의 감독 션 헤이더는 이렇게 캐스팅을 진행한 이유를 "농인 가족을 주연으로 내세우면서 청인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밝혔습니다.
"따뜻한 온기를 담은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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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에서 음악 감독을 맡으셨던 마리우스 드 브리스 감독이 <코다>에서도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였는데요. 마리우스 드 브리스 감독은 라라랜드뿐만 아니라 뮤지컬 영화 <물랑 루즈>에서도 음악 감독으로 참여해, 마리우스 드 브리스 감독이 참여한 음악 영화는 믿고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음악에 있어 신뢰도가 높은 감독입니다 . 이번 영화에서는 조니 미첼, 데이비드 보위, 마빈 게이 등 여러 팝송 명곡을 색다르게 편곡하였는데요. 영화의 따뜻한 분위기와 함께 들려오는 OST는 관객들에게 따뜻한 감성을 불러 일으키곤 했습니다. <코다>를 본 지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OST는 여전히 플레이리스트에 담아 놓고 즐겨 듣고 있는 중입니다.
"풋풋한 사랑 이야기"
ⓒ 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를 꼽자면, 바로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입니다.
2021년에 나온 영화 중에서 '여름이었다.'라는 문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싱그러운 풀과 나무, 맑은 하늘과 바다가 두 배우와 어우러져서 이들의 이야기가 더욱더 풋풋하게 느껴졌는데요. 첫사랑의 떨림과 설렘을 모두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뛰어난 음색까지 지닌 배우"
ⓒ 네이버 영화
사실 에밀리아 존스 배우는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음색이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에밀리아 존스의 노래가 영화의 첫 시작을 열어주는데, 단숨에 스크린에 집중시킬 정도로 엄청난 음색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남자 배우는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음악 영화 <싱 스트리트>의 주연 배우 '페리다 월시 필로'가 맡았는데요.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진 두 배우가 만나, 영화를 보는 내내 귀호강을 할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 음악 영화를 좋아한다?
- 성장 영화를 좋아한다?
- 잔잔하게 감동을 주는 영화를 좋아한다?
잔잔한 영화였지만, 어떤 영화보다도 마음에 큰 파동을 일으킨 영화,
지금까지 영화 <코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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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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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영화 <117편의 러브레터>
죽음에 대해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던가. 죽는다는 건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듣지 못한다는 거라고. 내 식대로 하자면 이렇게 적을 수 있을까. 죽는다는 건 더 이상 영화를 보지 못하는 거라고.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문장일 것이다. 죽음에 관한 문장에서 내가 내 삶을 유지해야 할 유용한 근거 하나를 얻게 되는데, 결국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하므로 나는 살아야 한다.
그렇게 미클로시(밀란 쉬러프)는 살았다. 자신의 생명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듣고도. 누군가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직 사랑하는 힘이 자신의 삶을 이끄는 추동력이었으므로. 시한부라는 진단을 듣고서 곧바로 117명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그가 아직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장면이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의 간절한 편지에 응답한 여인은 열일곱 명. 미클로시는 자신이 사랑할 사람을 한 명 선택한다. 릴리(에모크 피티)라는 여인이다.
미클로시가 릴리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친구 해리에게 그는 왜 자신이 릴리에게 마음이 가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알파벳 b를 우리 엄마처럼 써.” 미클로시는 덧붙인다. “그리고, 아프대. 나도 아파.” 이 장면은 흥미로운 논리학 하나를 우리에게 던져주는데, 너의 ‘있음’이 나의 ‘없음’을 채워줄 거라 기대하며 너에게 매혹당하는 것이 욕망이라면, 사랑은 나의 ‘없음’이 너의 ‘없음’을 알아볼 때 발생한다는 것. 미클로시와 릴리 둘 모두의 ‘없음’은 단연 둘이 앓고 있는 폐결핵과 신장 질환일텐데, 이것은 사랑의 성사를 방해하는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촉진시키는 둘의 매개물이라는 것. 신형철은 이 점에 대해 유려하게 이미 표현한 적 있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26쪽)
이렇게 느낀 건 릴리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 ‘새벽의 열기’에서 릴리는 미클로시의 편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클로스는 글씨를 정말 예쁘게 잘 썼다. 아름다운 글씨, 우아한 세로획. 단어들 사이에는 다시 숨을 쉬는 데 필요한 만큼 여백이 머물렀다. 편지를 다 쓰면 그는 봉투를 찾아내서 집어넣은 다음 봉인하고, 머리맡 테이블 위에 놓인 물병에 기대 놓았다.” (피테르 가르도시, 새벽의 열기, 12쪽) 릴리는 미클로시의 편지에서 아름다운 글씨체만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 빈 공간을 찾은 것이다. 릴리도 미클로시의 첫 편지에서 그의 ‘없음’을 알아차린 거라고 말하면 지나칠까.
미클로시와 릴리, 둘 사랑의 이행과정이 편지, 목소리(전화), 얼굴이라는 점은 필연적이다. 편지부터 시작한 것은 당시의 시대적 한계이겠지만, 또 편지여서 사랑이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편지는 너의 부재를 더욱 감각하게 만드니까. 그래서 나는 너의 빈자리에 내 사랑을 하나씩 채운다. 자주 얼굴이라는 너의 현존에서부터 시작하는 오늘날의 사랑이 가닿을 수 없는, 아득한 사랑의 깊이다. 우리의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이정식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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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도그 맨 Dog man>이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지난주, 3,6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에 비해 62% 하락한 1,370달러를 벌어들이며 자리를 지켰지만,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과연 마블 스튜디오의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개봉하는 2월 3주 차에도 왕좌에 오를 수 있을까요?
북미 박스오피스 2위와 3위는 신작으로 채워졌습니다.밸런타이데이에 연인을 살해하는 연쇄살인마 '하트 아이즈 킬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R등급 슬래셔 무비 <하트 아이즈 Heart Eyes>가 85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2위에 올랐고,
키 호이 콴의 액션 영화 <러브 허츠 Love Hurts>가 3위를 차지했습니다.
<러브 허츠>는 <블랙 팬서>, <어벤져스>, <존 윅> 등의 스턴트 코디네이터였던 조나단 유세비오의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으로, 로튼 토마토 19%, 시네마스코어 C+라는 저조한 점수를 기록해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영화는 과거 킬러였던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자신이 살해한 줄 알았던 범죄 파트너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시 폭력의 세계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한편, 국내 박스오피스 왕좌의 주인도 동일합니다. 여전히 1위를 지키고 있는 <히트맨2>가 누적 관객 수 230만 명 달성에 성공하며 손익분기점에 도달했습니다.
지난주, 3위에 머물렀던 <말할 수 없는 비밀> 역시 2위로 한 계단 상승했지만, 누적 관객 수 57만 명에 그쳤습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손익분기점인 80만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위는 하정우, 김남길 주연의 <브로큰>이 차지했습니다. 개봉 첫 주임에도 누적 관객 수 16만 명에 그치며 불안한 시작을 보였습니다.
국내에서도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미키 17> 같은 대형 영화가 줄줄이 상륙하는 만큼 손익분기점인 110만 명을 달성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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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주 최신 개봉영화(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라라와 크리스마스 요정, 피부를 판 남자, 하우스 오브 스네일스, 엔드리스)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2월 2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스파이더맨노웨이홈 #라라와크리스마스요정 #피부를판남자 #하우스오브스네일스 #엔드리스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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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린 나이트> 메인 예고편
”녹색 기사의 목을 잘라 명예를 지켜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타난 녹색 기사,
“가장 용맹한 자, 나의 목을 내리치면 명예와 재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1년 후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똑같이 자신의 도끼날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고
마침내 1년 후, 5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전설이 될 새로운 모험, 너의 목에 명예를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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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링: 더 라스트 챕터> '아이 씨 유' 영상
반복되는 죽음, 끝나지 않은 소설
“이 페이지를 열겠습니까?”심리학 전공의 대학생 ‘샤누’는 다급하게 걸려온 사촌 ‘탕징’과의
통화가 끊기자 그녀를 찾아가지만, 이미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샤누’는 의문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초자연 현상을 연구하는 ‘마밍’을 찾아가고,
두 사람은 ‘탕징’이 죽기 전 써내려 간 인터넷 소설의 내용과
동일한 방법의 살인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죽은 ‘탕징’을 대신한 누군가에 의해 계속 업데이트 되는 소설.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숨막히는 저주가 시작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