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슬2021-11-15 22:53:12
향이 아닌 냄새로 기억하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작은 아씨들 리뷰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었지만,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내 미소짓게 만드는 그런 기분 좋은 영화였다.
내용이 미치도록 좋았던 것도, 신선하고 웅장한 장면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분명한 건 영화 자체에서 주는 에너지가 엄청나다는 것. 그 하나로 충분했다.
모든 캐릭터가 사랑스럽고 통통 튀며 각자로부터 전달되는 에너지가 엄청났다. (에이미의 단단하고도 살짝 낮은 그 목소리가, 받쳐 올려주는 그 발성이 너무너무 좋았다)
그냥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당시 뒷자리 분이 타코야끼를 들고 들어오셨는지 가쓰오부시의 강렬한 향과 함께 영화 초반을 보냈다. 실소가 새어 나올 정도로 꽤 강한 냄새였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미소를 머금은 채 스크린 속 작은 아씨들을 보며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곤 생각했다. 오늘 영화는 가쓰오부시로 남겠구나.
기억에 향이 묻으면 단단한 추억이 된다.
언젠가 길에 흘러 다니는 타코야끼 냄새를 맡으면 문득, 작은 아씨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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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에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타코야끼 생각을 하면 작은 아씨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같이 팝콘을 나눠 먹던 영화관이 떠오른다. 사실 몇 년 되지 않았는데 까마득히 느껴져서 조금 웃기기도 하다.
영화 틈틈히 챙겨 먹으며 팝콘 잔량을 은근히 신경 쓰던 내 모습과 광고가 끝나고 영화 시작 전 완전 암전이 된 고요한 순간에 팝콘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던 그 순간들, 첫 데이트 때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에 팝콘 대신 나쵸를 사다 주었다 망했던 그 추억까지..
심지어 요샌 절대 내 돈 주고 사 먹지 않던 과자봉지 팝콘까지 사 먹어 봤다.
몰랐는데 나 팝콘 사랑했네... (노랑 포장지의 스윗&솔트 팝콘 맛있어요. 어디 회사 건지는 기억 안 남 ㅎ)
하루빨리 코로나의 상황이 나아져서, 영화관에서 마음껏 팝콘을 집어 먹을 수 있는 날을 고대해 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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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미야케 쇼, 2022)에 관한 단상
우리는 감각하고 그녀는 투쟁한다
미야케 쇼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감흥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따뜻하다”일 것이다. 후끈한 열기라기보단 딱 체온 정도의 따스함. 세상을 향한 의심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때, 마음의 온도가 식었을 때라면 혹은 그런 누군가를 만난다면 미야케 쇼의 영화를 찾고 싶어진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필자가 본 미야케 쇼의 영화 3편(<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새벽의 모든>)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보는 내내 ‘케이코’(키시이 유키노 분)의 투쟁을 지켜보면서도 스크린이 그 생동감 넘치는 세계의 따뜻한 온기를 관객에게 실어 나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각: 흐르는 이미지와 부산한 사운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극장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영화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청각장애인 복서의 드라마를 따라가지 않는 이야기, 관객은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다루는 영화 속 시간의 케이코만 만날 수 있을 뿐 그녀의 전사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카메라는 필요 이상으로 케이코에게 다가가려 하지도 않고, 때론 그녀의 아주 개인적인 부분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케이코를 계속 지켜보지만,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읽을 수가 없다. 이야기 자체도 그렇지만, 이미지와 사운드 측면에서도 다르다. 작품의 배경은 분명 도쿄다. 그러나, 우리가 ‘도쿄’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번화가의 이미지가-이를테면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 같은- 아니라 케이코가 냄새난다고 했던 강변과 평범한 골목길, 세월의 흔적이 가득 묻은 복싱 체육관이 주 무대다. 16mm 필름의 따뜻하고 생생한 질감과 빛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한겨울에 온기를 가득 부여한다. 로케이션만 생동감 넘치게 담아냈을 뿐 아니라,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복싱의 운동성, 특히 케이코와 관장, 또는 동생 커플이 함께 섀도복싱을 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일 것이다.
사운드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도시의 온갖 소음, 엠비언트 사운드를 영화의 후반 작업에서 누르지 않고 가능한 살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영화는 청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함과 동시에 대단히 소란스럽다. 상대적으로 적은 대사량과 달리 영화 내내 극장을 가득 메우는 소음은 거부감이 들기보단 오히려 작품의 세계를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영화엔 음악이 거의 삽입되지 않는다. 음악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체육관에서의 훈련에서 반복적인 소리다. 줄넘기, 미트, 운동기구의 반복적인 소리가 씬에 독특한 리듬감을 부여한다. 반드시 주목할만한 점은 주인공 케이코는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있는’ 사운드를 듣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관객은 평소보다 더 생동하는 세계를 체감함으로써 케이코의 불편을 인식한다.
투쟁: 작고 느리지만, 꾸준한
케이코는 소음뿐 아니라 경기 중의 코칭과 공이 울리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복서로서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그녀는 어쩌다 복싱에 빠졌을까. 이 영화는 그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가 왜 복싱을 그만두려 하는지도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없다. 내가 아는 (좋은) 영화에서의 복싱은 경쟁이라기보단 투쟁이다. 나 자신과의, 혹은 세계와의 투쟁. 이 영화는 케이코의 승패엔 별로 관심이 없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케이코가 세계를 제대로 대면하고 자세를 고쳐잡아 투쟁해나가는 성장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케이코에게 복싱은 어떤 동기나 목표라기보단 그녀가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케이코는 아픈 게 싫다. 그녀가 링 위에서 상대에게서 물러나고, 달려드는 이유는 마찬가지로 아픈 게 싫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번째 경기(케이코에겐 2번째)와 두 번째 경기의 양상은 상당히 다르다. 첫 번째 경기에서의 케이코는 승리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케이코가 상대보다 유효타를 더 많이 넣어 이긴 판정승이다. 경기 후 체육관에서 코치 ‘하야시’는 “두려우니까 앞으로 달려드는 거지?”라고 묻는다. 그리고 이어진 훈련에서 물러나지 말라는 말에도 케이코는 자꾸만 물러나 프레임 바깥으로 프레임아웃 한다. 영화 중반부에서 관장은 케이코에게 “복싱은 싸울 마음이 없으면 할 수가 없어. 싸울 마음이 없어지면 상대에게도 실례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후반부 두 번째 경기에서는 케이코는 패배하지만, 케이코는 상대에게 전력으로 달려든다. 브레이크 이후에 그녀가 내지르는 기합은 그녀가 상대에 대한 태도, 혹은 세계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순간이다. 그때 비로소 케이코는 상대의 ‘눈을 들여다본다’. 복싱을 계속할지 고민하던 그녀는 강변에서 상대를 만나 감사를 전해 듣는다. 그리고 뭔가 결심한 듯 언덕을 뛰어올라 로드워크를 시작한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의 영어 제목은 <Small, Slow but Steady>다. 작고 느리지만, 꾸준한. 케이코는 관장이 인터뷰에서 밝히듯 복싱에 재능이 있는 선수는 아니다. 다만 그녀는 ‘인간적인 기량’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케이코는 작고 느리지만, 솔직하고 정직하다. 그녀는 이제 세계와 제대로 대면함으로써 꾸준히 나아갈 것이다.
작고 느리지만 꾸준한 것은 안타깝게도 성장하는 케이코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관장 부부에게 설명하듯 “작은 빗방울이 긴 시간 동안 단단한 돌을 뚫는 일”이 있다.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단순히 케이코라는 인간의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만큼 사라져가는 것들에게도 주목한다. 뇌 질환을 앓는 관장, 낡은 체육관, 오래된 골목의 풍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사라지게 될 운명이기에 그 역시 작은 존재일 것이다. 케이코가 이 체육관을 떠나기 싫어함은 짐작해보건대, 그 공간에서 관장과 사제 이상의 가족애와 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케이코가 세상을 제대로 대면한다는 것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사라지게 두어야 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라지는 것들을 처연하게 섣부르게 연민하지 않는다. 병색이 짙어져 병원에 입원한 관장은 케이코의 경기를 보고 나서 만족한 듯 힘겨워 보이지만 천천히 휠체어를 끌고 간다. 미야케 쇼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히길 이 영화의 콘셉트는 “우리가 바라봐야 했던 것은 아마도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 그 작은 존재를 쌓아나가서 큰 영화로 만드는 게 아니었을까.”라고 했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분명 작은 존재들을 긍정한다. 그 긍정의 힘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필자의 생각엔 그 힘은 연대에 있다. 작중 시간적 배경은 오래되지 않은 코로나 시절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온라인을 통한 범세계적 연결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오프라인에서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던 시기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은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입 모양을 통해 소통해야 하므로,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코로나 사태는 소통의 어려움을 증폭시켰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케이코를 포함한 농인들이 수어로 대화할 때 자막을 삽입하지 않았다. 관객들도 그 소통의 어려움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연대는 언어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짓으로 하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 섀도복싱 장면들에선, 나란히 선 사람들이 비언어적인 제스처로 마치 합일되는 것만 같다. 언어로 말하기보단 눈을 맞추듯 몸짓을 맞추는, 따뜻하고도 놀랍도록 시네마틱한 그 순간들. 케이코는 “결국 사람은 혼자야”라고 말했지만, 그녀가 세상과 제대로 대면할 힘을 얻은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연대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엔딩 쇼트에서 그녀는 혼자 달려 나가지만 두 번째 복싱 경기에서 사람들이 멀리서 함께했듯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한 가지만 더 말하고 싶다. 두 번째 경기에서 케이코를 지켜본 사람들은 가족과 체육관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스크린을 통해 바라본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그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생생하게 느꼈던 세계 속에서 진심으로 투쟁하기 시작하는 케이코를 모두가 응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엔딩크레딧은 그 소란스러운 엠비언트 사운드와 함께 도쿄의 풍광이 하나씩 지나간다. 엔딩크레딧이 끝나고 상영이 종료되기 직전, 작게 줄넘기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오프닝이 끝나고 체육관에서 들었던 첫 번째 소리다. 아무래도 케이코는 복싱을 그만두지 않은 것 같다.
+) 올해 초에 작성했던 이 글을 일부 수정하고 문장을 추가하면서 다시 읽어보니 필자가 동시대 감독 중 최고로 여기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가 많이 떠오른다. 시네필 책방 ‘코프키노’의 대표님과 잠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는 “하마구치 류스케는 22세기 영화로 가고, 미야케 쇼는 20세기로 돌아가는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그 둘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고, 동료애를 쌓아나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연대의 가치를 믿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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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무너진 균형에 매몰된 감동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 그는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조용히 살아간다. 그는 괜한 관심과 주목을 피하기 위해 무뚝뚝하고 차갑게 학생들을 대하며 기피 대상이 된다. 어느 날, 그는 잘못된 친구 관계 때문에 기숙사에서 쫓겨나 떠돌던 '한지우(김동휘)'를 만나고, 어려운 가정환경과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수포자가 되어 좌절 중이던 지우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던 중 학성은 우연히 지우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만다. 수학을 가르쳐 달라는 지우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그는 정답만을 찾는 세상에서 방황하던 지우에게 올바른 풀이 과정을 찾아나가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자신의 삶에서도 전환점을 맞이한다.
박종훈 감독의 첫 상업영화인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정직하다. 영화의 첫인상인 제목으로부터 보여주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은 크게 '수학자'와 '이상한 나라'로 이루어진다. 이때 '수학자'는 수학이라는 소재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미끼일 뿐, 영화가 진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그 수학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또 이용하는 개개인들의 사연일 것임을 말해준다. 또 '이상한 나라'는 수학자들이 발 디디고 있는 공간이 품은 이야기에 따라 해당 사연들의 내용과 감흥이 달라질 것이라고 암시한다. 다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정직함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데 그친다. 수학자의 스토리는 감동적이고 그의 공간도 시각적으로 잘 구현되었지만, 이들의 만남은 하나의 짜임새 있는 플롯을 이루지는 못한다.
우선 '수학자'의 이야기를 보면, 이 영화에서 수학은 철저히 수단적인 도구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수학의 이름을 빌려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학성은 지우에게 특정 문제의 구체적인 풀이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수학에 접근하는 자세를 일러준다. 예를 들어 풀이를 단축시킬 공식을 알려 달라는 지우에게 학성은 칠판을 가득 채울 만큼 복잡한 계산을 모두 직접 하라고 말한다. 수학의 기술과 문제의 결과만을 쫓는 지우에게 수학의 진정한 묘미는 과정에 있음을 알려준다. 학성이 지우에게 내준 첫 문제가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라는 문제인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러 존재할 수 없는 삼각형을 보기로 주면서 기계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공식을 통해 답을 구하는 것보다 수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더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때 작중 수학을 대하는 태도는 곧 인생을 대하는 태도로 연장되기에 흥미롭다. 영화는 “수학이 단순하단 말을 못 믿네? 곧 믿게 될 거다. 인생이 얼마나 복잡한지 알게 된다면”이라는 대사를 통해 인생에는 하나만의 정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또 수학계의 난제인 '리만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감내해 온 학성의 사연을 빌려 왜 수학의 공식을 증명하고자 하는지, 곧 무엇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정답에 맞춘 증명이라는 결과 그 자체보다 정답보다 중요한 올바른 풀이 과정의 가치를 일깨우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끝을 장식하는 'Q. E. D. (증명 완료)'라는 자막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고, 그 증명을 강요당한다고 볼 수도 있는 시대에 따뜻한 울림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처럼 보인다.
또한 수학으로써 인생을 말하는 메시지의 울림은 수학이 아름답다는 학성의 찬양 덕분에 더욱 깊고 진하게 느껴진다. 수학의 아름다움은 삶의 미학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찬양의 수단이 수학과 뗄 수 없는 음악이기에 더욱 직관적이고 동시에 인상적이다. 음악은 소리를 소재로 삼을 뿐 그 구성요소인 박자나 선율, 화성 등은 모두 수학적 원리를 따르고 있다. 서로 다른 음을 내는 현 사이의 길이가 간단한 정수의 비로 표현될수록 어울리는 소리가 난다는 피타고라스의 발견처럼, 아름다운 음악에는 올바른 수학적 비율이 깃들어 있다. 그렇기에 학성과 함께 등장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삼인방이 함께 파이(π)의 값을 악보로 옮겨 연주하는 '파이송'은 예술과도 같은 수학의 아름다움과 수학에 대한 영화의 인문학적인 접근법을 부각한다.
이처럼 수학에서 인생의 올바른 가치와 길을 찾는 '수학자'의 관점은 '이상한 나라'의 의미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특히 같은 학교 안에서 극도로 대비되는 공간을 통해 '이상한' 대목을 비판하는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당장 지우가 다니는 자사고의 교실과 기숙사, 복도 공간은 무채색의 화이트 톤으로 명암 대비를 낮춰 평면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이는 ‘학성’과 ‘지우’의 집을 관통하는 콘셉트이기도 하다. 이 공간들은 모두 메말라 있고 비어 있는 황량한 느낌을 선사한다. 고액의 수학 과외가 이루어지는 학원 역시 같은 인상을 남긴다.
반면에 지우와 학성이 함께 수학을 공부하는 장소인 과학관 B103 아지트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명암 대비를 높여 보다 입체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었고, 밝고 따스한 호박색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어두우면서도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가득하다. 동시에 신비롭기까지 하다. “으스스하지만 신기한 물건들로 가득 채워서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라는 느낌을 주는 미지의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박동훈 감독의 말대로 과학실을 가득 채운 잡동사니 덕분에 역으로 어떤 작은 변화도 이상하지 않을 아지트로 재탄생한다.이처럼 두 공간의 상반된 분위기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상한 나라'의 함의가 바뀌게 되는 힘이 되어준다. 초반부만 해도 지우의 수학 성적이 매우 낮고,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는 이유로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학 가기를 권유하는 학교의 태도는 냉혹하지만 현실적인 것처럼 묘사된다. 딱히 지우에게 인간적인 정을 주지 않는 주변 학생들의 모습도 이를 부추긴다.
그러나 과학관 B103이라는 공간이 등장한 이후로는 비록 냉정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였던 학교의 분위기는 비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비상식적인 인상으로 급격히 전환된다. 문제의 조건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으니 복수정답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지우에게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기술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것이 진짜 잘못된 것이라고 일갈하는 교사의 모습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는 답안지 유출 사건을 비롯해 왜곡된 교육 시스템의 진상이 이미 잘 알려진 만큼 효과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수학을 매개로 삶의 감동과 사회 비판의 메시지를 잘 이끌어 가던 영화는 '이상한 나라'에 남북관계를 끌어오려는 과욕을 부리고 만다. 작중 학성과 지우의 관계는 마치 유사 부자 관계나 다름없다. 탈북한 후 남한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아들을 잃은 학성이 아들의 모습을 지우와 겹쳐 보기 때문이다. 필생의 과업인 리만 가설을 증명하려던 노력 때문에 비극을 겪은 만큼 학성에게 유독 수학 때문에 괴로워하는 지우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선을 쌓아가면서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 영화가 적절히 균형을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우선 짐작 가능한 학성의 개인사를 굳이 숨기고 있다가 그의 사연을 나열하는 선택은 영화와 관객 간에 감정교류를 저해하고 학성의 감정선마저 작위적으로 느껴질 소지를 주고 만다. 또 탈북자인 학성과 국정원의 관계를 풀어나갈 때는 그 위기를 억지로 조성한다는 인상을 남기는데, 이는 딸기 우유로 대표되는 뻔한 클리셰와 결부되어 영화의 깊이감과 몰입감을 모두 방해하고 만다. 그 결과 '이상한 나라'에 담긴 사회적 의미와 현실의 무게감과 인물의 사연이 만들어 낸 일차원적이고 편의적인 감상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적으로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모든 문제가 요약되어 있다. 배우의 중량감이나 분량, 스토리의 깊이만 봐도 주인공은 이학성이 되어야 하지만, 미흡한 작법으로 인해 정작 영화를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이학성이 아니라 한지우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정직한 제목에 어울릴만한 짜임새를 보여주지 못한 나머지 표류선 마냥 '이상한 나라'와 '수학자' 사이에서 무너지고 만다.
P(Poor, 형편없음)
변수 없는 단정한 수식처럼 작위적인 교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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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보다 ‘과정’을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는 성장하면서 계속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또 도전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무척 애쓴다. 청소년 시절에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바로 시험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장 큰 목표인 수학능력시험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좋은 시험 결과를 얻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우리 교육 시스템 안에서 학교에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에 있겠지만 결국에는 좋은 시험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가장 클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고 또 시험을 보면서 누군가는 그 결과에 만족하고 또 한걸음 나아가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아 든다.
삶의 많은 것이 그 시험의 결과에 의해 좌우된다. 현실이 그렇다. 수능 시험의 결과에 따라갈 수 있는 학교가 정해지고, 학교가 정해지만 그곳에서 다시 또 다른 시험 준비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시 직장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의 삶 전체가 그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한 편으로는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저 알고 있는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그 ‘시험’이라는 것이 우리 전체 삶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숙학교에 다니는 수포자 지우의 이야기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학 시험 성적 때문에 고민하는 지우(김동휘)의 이야기를 담는다. 지우는 현재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다. 과거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은 어머니와 떨어져 살면서 최대한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모든 과목 중에서 수학이 그를 가로막는다. 수학 성적은 하위권이고, 그것 때문에 그의 담임 선생님(박병은)은 일반학교로 전학을 권유한다. 그때 지우는 학교의 경비원이면서 숨은 수학천재 학성(최민식)을 만난다.
영화 속 학성은 개인사에 비밀을 가지고 있다. 늘 딸기우유를 먹는 그는 어느 날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을 지우에게 들킨다. 그리고 수학을 가르쳐달라는 지우의 부탁을 결국 받아들인다. 이렇게 둘은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된다. 지우는 전형적으로 결과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반면에 학성은 과정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이렇게 두 인물을 대비시키면서 이들 간의 긴장감이 만들어진다. 이 모습은 일반적으로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교육 시스템과 그에 반하는 학성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 학성은 그저 과정에만 충실하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아니다. 학성이 말하는 과정은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밑바탕을 만드는 것이다. 수학이라는 학문은 정확한 결과를 내는 학문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결과를 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중요하다. 그 문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오는 도전정신과 희열감을 통해 숫자, 수식과 친해지는 과정이 있어야 원하는 결과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학성은 결과에만 집착하는 지우를 못마땅해하고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런 태도가 지우에게 일종의 도전정신을 심어준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천재 수학자 학성
이 영화의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담임 선생님 근호는 전형적인 나쁜 선생님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영화들에서 그동안 봐왔던 아주 전형적인 선생님의 모습이라서 좀 평면적으로 보이는 인물인데, 영화는 이 근호라는 인물을 이용해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까지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학성이 풀고 있는 방정식에서 결과를 중시하는 일종의 상수로 그려진다. 워낙 학성과 지우가 중심인물이 되다 보니 주변의 다른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근호와 같이 너무 평면적으로만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탈북자인 학성과 평범한 남한 학생 지우에게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영화는 그들 사이에 어떤 유사 부자의 감정을 넣었다. 아주 대표적인 장면이 둘이 앉아 된장찌개와 계란 프라이를 먹는 장면일 것이다. 밥 위에 계란을 얹어주는 학성의 모습과 그걸 받아서 맛있게 먹는 지우의 모습에서 그 둘이 현재 결핍된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영화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이 둘 사이에 만들어진 신뢰와 챙기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영화답게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좋은 결과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학성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은 <천문:하늘에 묻는다> 이후 오랜만에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힘을 뺀 연기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려주며 과거의 회한과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탈북 수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우 역을 맡은 배우 김동휘는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과 <피터팬의 꿈> 같은 영화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적이 있다. 이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는 자신이 피해를 입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밖으로 내지 않고 힘든 일을 안고 가려는 조금은 소심하고 체념적인 지우를 잘 표현해냈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최민식과 김동휘
영화를 연출한 박동훈 감독은 많은 작품을 연출하지는 않았다. <전쟁영화>라는 단편 영화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단편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 <소녀 x소녀>, <계몽영화> 같은 작은 영화들을 간간히 연출했었고, 가장 최근에 연출한 작품이 이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다. 이번 영화에서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학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을 올바른 과정 속으로 끌어당기는 건 결국 과정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깨어있는 어른의 목소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결국 결과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 그것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과정 역시 중요하다. 좋은 과정이 생략된 결과는 오래가지 못하고 머릿속에 남지 않고 증발되어 버린다. 영화 속 지우는 학성의 의도에 맞게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와 ‘희열’을 느낀다. 조금 느리지만 그가 원하는 시험 결과도 얻어낸다. 그 이후 그 학생과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건, 결국 어른들의 몫이다. 영화는 다소 극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수학’이라는 과목의 특성을 잘 활용하여 보는 관객들에게 과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현실에서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 그 사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다시 전달된다. 무엇보다 그 모든 전달 과정이 지우와 학성의 따뜻한 관계를 통해 전달되고 있어, 영화를 다 보고 난 관객들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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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의 씁쓸한 뒷면
이 글은 영화 [판의 미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는 조기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에 혼자서 책조차 읽을 수 없었습니다. 받아쓰기는 늘 30~40점을 오갔죠. 엄마는 속이 터져 한글 개인 과외라도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속 편한 아빠는 그런 거 다 때 되면 한다며 저를 품에 안고 파란 물고기가 바다로 간 이야기를 서른마흔다섯 번째로 읽어주셨죠.
딸이 드디어 한글을 깨우친 그날. 아빠는 신이 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제게 동화책 다섯 권을 선물해 주셨고 그 책은 부부 싸움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난생처음 그림보다 글자가 많은 책을 선물 받았는데 그 내용이 바로 동화의 실제 모습. 그러니까 팥쥐와 팥쥐 어머니의 알고 싶지 않은 결말이 담겨있는 '잔혹동화'였기 때문입니다. (참고 1)
덕분에 저는 생애 최초로 받은 조기 교육의 결과 동화가 얼마나 잔혹한지 알게 되었고 산타 따윈 없다는 것을 너무도 일찍 알게 된 시니컬한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사준 동화책에서 아는 글자가 나왔다며 환호성을 치는 저를 보며 쟤를 어쩌누.라는 말을 늘 하셨었는데. 결국 이렇게 커 버리고 말았죠.
영화 [판의 미로]는 스페인 전쟁(내전) 상황에서 오필리아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상황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제 겨우 한글을 깨친 제가 읽은 진짜 동화처럼 잔혹하고 또 잔인하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기이함과 신비함이 섞여 정말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죠.
영화 전체가 암울하고 어둡지만 오필리아의 환상과 현실의 대비로 인해 더더욱 아름답고 슬픈 영화입니다.
이게 어찌 15세란 말이요
나도 무섭다고요.
사진출처:구글 YTN Science/익숙하지 않거나 모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죠.
개봉 당시,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였습니다. 포스터만 봐도 동화 같은 분위기의 판타지 영화라고 생각했기에 많은 학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영화관을 방문했죠. 그 결과 개봉관마다 학생이고 보호자고 할 것 없이 울어 젖혔다는 전설의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동화의 기본 공식을 익히 알고 있죠.
착하고 순진한 주인공이 세상의 모진 풍파를 만나며 시련을 겪지만 결국 극복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로 끝나야 디폴트죠.(인어공주 제외)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이야기의 큰 줄기 자체가 스페인의 내전 이야기를 하고 있죠. 한국 영화 [밀정]을 생각하면 편하실 겁니다. 내부의 스파이가 있고 그를 통해 정보를 얻어 혁명을 일으키려 하는 이야기가 주가 되죠. 그 혼란 속에서 어린 오필리아는 임신한 엄마와 낯선 환경 속에 있게 되고. 그 안에서 만난 요정들과 작고 큰 모험을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무리 동화에 나오는 "의붓"이라는 단어가 붙은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지만. 이 영화의 대위는 그 수위를 이미 진작에 넘어버린, 너무도 잔인한 사람입니다. 의심 하나만으로 멀쩡한 사람을 활자 그대로 때려죽이는. 오필리아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뱃속의 아들만을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고지식하고 자신의 명예를 누구보다 생각하는 그런 자존심 밖에 남지 않은 사람 말입니다. 그가 벌이는 살인 혹은 살육의 행각은 지금의 제가 보아도 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오필리아의 모험 속에 나오는 괴물들 마저 기괴하기 짝이 없죠. 콩쥐팥쥐에서 나왔던 두꺼비는 귀여울 정도로 험악하게 생긴 두꺼비와 오물은 물론. 모든 아이들을 울리기 충분했던 그 "손바닥 괴물"까지 나옵니다. 요정이 잡아먹히는 건 뭐 말할 것도 없죠. 저는 정말 이걸 다 오필리아가 겪었다면 다시 기억을 찾아 공주가 된다 해도 PTSD에 걸릴 것이라는 걱정이 더 앞섰을 정도였습니다.
마치 제가 어릴 적 접했던 동화의 진짜 모습, 혹은 숨겨진 동화의 잔혹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익숙해진 달의 앞면이 아닌 숨겨졌던 달의 못생긴 뒷모습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고 우리가 몰랐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처럼. 이 영화는 그런 동화나 판타지가 가진 아름다움을 걷어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동화를 잃어버린지 오래인 어른들 틈바구니의 오필리아를 통해서 말이죠.
물론 배급사는 진짜 반성(?) 해야 합니다. 15세라뇨.
제가 보면서 먹던 딸기가 목에 걸렸을 정도였습니다. 너무 무서웠어요.
기예르모 델 토로, 세계관 최강자
역시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
사진 출처:구글 etoland/이걸 디즈니가 받아줬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제겐 팀 버튼 감독과 비슷한 색깔을 가진 사람입니다. 음울하고 어둡죠.
제가 색깔과 냄새로 이 두 감독을 구분하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팀 버튼 감독은 총천연색에 가깝고, 녹기 시작한 눅진한 사탕에 가깝습니다.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텁텁함이 있죠.
그에 반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달빛에 비치는 물체의 그림자 같은, 무언가 생명력이 빠져 가는 죽음과 삶 그 경계에 가깝습니다. 대충 꿈도 희망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덕후들에겐 늘 시련이 존재합니다. 이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잘 없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길을 가기 시작했고 우리에게 그들의 유니버스로 올 수 있는 초대장을 꾸준히 날렸죠. 기괴하지만 각인되기 쉬운 그들의 예술세계는 이제 그들의 이름을 딴 장르로 기억이 될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원더랜드가 되었습니다.
기예르모 감독의 취향(?)은 괴수물이었습니다.
물론 장르의 특성상 취향을 심하게 타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재능이 점점 영화 안에서 발휘되는 것을 보는 맛이 있는 감독이었죠. 다른 세계, 혹은 차원에서 불러들인 것 같은 생명체가 튀어나올 때마다 저는 환호성을 지른 것을 보면, 아마도 이 감독 특유의 감성을 제가 좋아하나 봅니다.
이 영화의 판(Pan)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염소(혹은 양)가 악마 혹은 나쁜 기운을 불러오는 장난의 정령 같은 느낌의 동물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로테스크 한 (혹은 쏘우에 가까운) 모습으로 재현해 낸 감독을 보며 저는 또 한 번 내적 댄스를 춰야 했죠.
그의 또 다른 영화인 shape of water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와 합쳐졌기 때문에 더더욱. 저는 이 불행한 결말과 크리처를 사랑하는 감독에게 홀라당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저랑 똑같이(?) 음울한 동화를 보고 자랐지만 감독은 세계적인 감독이 되었고. 저는 그냥 덕후가 되었네요.
이게 나라냐.그래서 결말은 해피엔딩인가요?
꼭 해피엔딩 이어야 하나요.
사진 출처:구글 뉴스 포인트/오필리아 너무 사랑스러움. 드레스 입었을 때 너무 깜찍했다.
오필리아는 마지막에 죽습니다. 의붓아버지가 될 뻔했던 대위가 쏜 총에 맞아서.
그리고 그녀의 피가 지하세계로 가는 마지막 관문에 닿아 그녀는 지하 세계 공주로 있었던 기억을 되찾고 백성들의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가 이 영화의 끝입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녀는 죽은 상태죠.
결말의 해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오필리아가 실제 지하 왕국의 공주였다는 사람들과 전쟁 때문에 힘들었던 아이가 그것을 피하기 위해 만든 판타지일 뿐이라는 부류로 말입니다.
저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오필리아는 아직 아이입니다. 엄마의 죽음을 비롯한 자신 주변에서 생긴 많은 변화들이 아이에겐 방어 체계를 불러일으켰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것이 극대화된 것이 자신이 만든 판타지 속의 세계인 것이죠. 그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고 목소리를 냈다 해도 무시당하는 상황에서 이 조그만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는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들은 정보를 통합해 그 세계 안으로 자신이 숨어버린 것이죠.
그렇기에 결말은 더더욱 안타깝고 아픕니다.
오필리어는 고통만 가득한 기억을 안고 죽어버렸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은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죠. 이승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말입니다. 다시 말해 이 작은 아이는 살아있는 동안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영화관을 찾았던 아이들이 울었던 이유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공주님이 죽어버렸으니. 자신들에겐 익숙한 결말이 아니었던 것이죠. 해피엔딩이 디폴트가 아닌 동화는 그들에겐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을 테니까요.
슬프고 아름답고. 그럼에도 이해가 간다.
동화가 당신을 부를 때.
한글을 제대로 쓰지도, 읽지도 못하던 아이는. 잔혹 동화를 읽고 나서 더 잔혹한 세상을 조금은 더 견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때 도피하는 방법을 배워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오필리아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지금도 악착같이 동화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제가 처한 현실이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아이의 모습으로 본 전쟁의 힘듦과 무서움을 잘 그린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씁쓸함과 행복함이 공존하는 영화의 결말에 다다르면 더욱 그러하죠. 이젠 오필리아도 저도. 그리고 여러분도 판타지가 아닌 현실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말입니다.
참고 1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정말 글이 그림보다 많은 책이었고 나는 내용보다는 내가 아는 글자를 찾아 읽기 바빴음. 근데 엄마의 입장에서는 다섯 살짜리 애가 "엄마 이거 젓갈!! 엄마 팥쥐가 젓갈!! 젓갈 되었대!!! 맞지!!"라고 하니 속이 뒤집어질 수밖에. 그 말에 엄마는 아빠를 베란다로 쫓아냈다고 함.
참고 2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영화 중 크림슨 피크, shape of water, 판의 미로 이 세 편을 가장 좋아함. 감독은 멕시코 사람이었나 그런데 우리나라 전래동화처럼 거기 민화? 도 장난 없다고 한다.
[이 글의 TMI]
1. 정형외과 갔다 옴. 의사 선생님이 운동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안 할 거면 병원도 오지 말라고 함.
2. 집 꾸미는 재미에 폭 빠짐. 아 물론 며칠 안 가겠지.
3. 패딩 찾아야 하는데. 까먹었다.
4. 택배가 하도 와서 이젠 나도 움찔움찔 놀랄 지경.
5. 오늘은 빨리 자야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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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스트리트 댄스라는 열정에 대한 헌사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킵 스텝핑(Keep Stepping)
Australia/2022/95min/루크 코니시 감독 작품
스트리트 댄서 문화를 담은 영화 〈킵 스텝핑〉은 세 인물의 서사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루마니아 출신의 브레이크 댄서 파트리샤, 칠레-뉴질랜드(사모아)인 부모를 둔 팝핀 댄서 개비, 스트리트 댄스 대회 ‘디스트럭티브 스텝스(Destructive steps)’를 조직한 한인 출신 조가 주인공이다.
셋 모두에게 춤은 치유와 열정의 계기였다. 파트리샤는 서른셋의 적지 않은 나이지만 낯선 나라에서 경제 활동을 하면서도 춤 연습을 이어간다. 개비는 남들과 다른 피부색과 체형으로 위축된 적이 있고, 조 역시 백인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그러나 스트리트 댄스 커뮤니티에서는 이들의 불리한 조건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춤에 진심인 구성원을 보듬고 춤 실력으로만 사람들을 평가한다. 즉 춤에 쏟는 열정을 순수히 보상받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는 도달 불가능한 욕망을 양산하여 개인에게 좌절을 안기지만 스트리트 댄스 신(scene)은 누군가의 욕망과 노력을 착취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금지만 당하지만 댄스 배틀에서 주어진 45초의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라는 한 댄서의 말이 이를 증언한다.
파트리샤와 개비는 모두 오랫동안 춤을 출 수 있을지, 경제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불안해하며 고민한다. 춤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더 중요한 고민이 있다. 파트리샤는 윈드밀 기술을 익히는 것, 개비는 사모아 전통 춤을 팝핀과 결합해 자신만의 춤을 선보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조는 자신을 키워준 스트리트 댄서 친구들과 커뮤니티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적자를 내면서도 대회를 꾸려왔다.
‘무용’해 보이는 것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자신만의 길을 닦아 나가는 자들이 뿜는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 아름다움이 현실에서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채 사그라들 때도 많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처음부터 ‘실패’의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 태도가 언젠가 도달할지도 모를 ‘실패’를 하찮게 만든다. 누군가가 부여한 욕망이 아닌 자기 내면에서 솟은 욕망을 따라 조금씩 나아가는 이들의 여정이 비슷한 상황의 많은 이들에게 큰 용기와 위로, 연대로 다가가리라 확신한다.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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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괴의 바다에 울려 퍼지는 세이렌의 노래
이 글은 영화 [헤어질 결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보다 복수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복수의 세계는 때론 잔혹했지만 아름다워 몰래 훔쳐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고. 눈을 가리면서도 쉬쉬하며 들여다본 복수들은 우리에게 크고 작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이제 복수를 버리는 카드 마냥 내려놓은 그가 야심 차게 다음 "믿을 구석"으로 집어 든 카드는 사랑인 듯하다. 복수가 끝나고 낫지 않을 것만 같은 상처들만 가득한 마음을 이제야라도 들여다보려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뭉툭한 막대기로 마음껏 긁어놓은 모래사장의 흉터도 모조리 끌어안는 바다처럼. 조용하고도 깊은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영화가 늘 그랬듯 모질고 지독한 면으로 가득하기도 하다.
누군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사랑이 없다. 혹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을 찬찬히 훑어보면. 사실 사랑이란 테마는 언제나 그와 함께였다.
사랑해야. 미워할 힘도 얻는 법이니까 말이다.
언어로 표현하는 사랑의 단절;언어와 사랑을 둘 다 배워가는 두 사람.
사진 출처:다음 영화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을 시어머니로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마블 프랜차이즈 영화에서. 닉 퓨리를 지고지순한 효자로 만들어버린 엔드게임의 한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기념비(?) 적인 사건이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해석하는 데 있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는지 알려주는 사건임과 동시에. 번역(혹은 통역) 실력이 단어의 뜻만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닌 의역, 혹은 맥락에 있어서도 통달해야 함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어렴풋이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 정확히 마음에 와닿게 해야 하는 것. 거기에 승패가 달린 셈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서래와 해준이 서로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언어의 차이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으로 선택한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덕분에 두 사람은 영화 내내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에 대해 답답해하고. 왜 이 말을 지금 자신에게 했는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마음을 심장으로밖에 번역할 수 없는 앱 하나에 겨우 의존해 자신들의 마음을 어렴풋이 전달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두 사람의 비언어적 표현들은 누가 뭐라 해도 사랑임을 말하고 있지만. 온전하고 정확하게 "그 단어"를 내뱉지 않는 상대방에 대한 약간의 원망도. 또는 거기까지 해석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지만 이미 몇 번이고 과대 해석과 오역을 끝낸 채 자신에 대한 마음을 멋대로 키워놓은 상대방의 눈을 봐야 하는 고통도.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떤 노력을 한다 해도 완벽하게 메울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을 언어적 장벽에 빗댄 설정은 최선의 방법임과 동시에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서래의 노래는 세이렌의 목소리를 닮았다;붕괴의 바다에서 울려 퍼지는 세이렌의 노래
사진 출처:다음 영화
서래와 해준의 관계는 세이렌의 신화가 진행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서래는 자신에게 살인자 판결을 받게 하고도 남을 수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는 해준을 온몸으로 유혹했다. 나의 바다에 어서 빠지라고 손짓하는 서래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기꺼이 홀린 채. 해준은 붕괴의 바닷속으로 스스로 풍덩.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몸을 던졌다.
이미 한 번 죽어버린 해준은 예전의 모습을 거의 잃었고. 자신의 목숨 값으로 서래의 존재를 망각하는 것을 맞바꾸었다고 생각했지만. 서래의 노래와 서래는. 마치 이포의 안개처럼 없어지지도 않고 계속해서 해준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서래는 이제 두 번째 해준을 상대해야 했다.(참고 1) 이번만큼은 너의 노랫소리를 듣지 않겠노라는 의지와. 그때처럼 자신을 확신으로 바라봐 주지 않는 눈빛을 가진 해준 앞에서. 먼저 흔들렸던 것은 아마도 서래였을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 두 사람이 이포를 배경으로 벌이는 마지막 혈전(?)은 서래와 해준이 벼르고 별러 온 13개월 만큼이나 치열하고 가슴 아프다. 어떻게든 상대방의 마음속에 생채기를 내려는 말들은 아프고 날이 서 있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편 이 서걱서걱 썰려 나가는 것 같기만 하다.
결국 서래는 마지막 전투(?)에서 진 죗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이포에 바쳐야 했다. 마치 해준이 한 번 빠졌던 붕괴의 바다처럼 유난히 차갑고 거친 이포의 바다에서. 서래가 최후의 순간에 읊조린 노래는 세이렌의 빛바랜 마지막 절규처럼 느껴졌다.
결심의 순간과 만조가 맞아떨어지는 마지막 5분;모든 것을 뒤집는데 필요한 시간 단 5분
사진 출처:다음 영화
서래와 해준은 각각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한 과정들을 겪는다.
무언가를 결심하기까지의 고민. 또는 결심을 미루는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와 답보상태가 계속되는 것을 영화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는 드라마틱 해 보이지 않고. 약하다 못해 자신들의 결심이 무엇인지도 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도 한다.
영화 전반부의 그들은 그렇게 우유부단하고. 때로는 휘청거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연민을 벗어나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들 속에서도 그 들은 쉽사리 결심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약한 의지들이 기어코 쌓여 이미 발목까지 차올랐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두 사람의 결심도, 그리고 결말을 담은 만조도 가까워졌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결심과 만조의 순간은 그렇게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이 바닷물을 받아 들여야 할지. 혹은 지금이라도 살려달라며 소리를 쳐야 할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만조 때의 바다는 다짐 전의 모든 것을 수면 아래로 휩쓸어 버리고는 시치미를 뗀다.
결심이란 것이 그렇게 크고 단호한 것이며. 두 번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마지막 5분은. 영화를 보고 있는 나의 허파마저도 물에 잠기는 것 같은 압도감을 느끼게 한다.
마치면서
영화의 중간중간은 사실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늘어진다는 생각을 벗어나 영화가 “길다”라는 생각에 다다르는 지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마지막 5분을 보고 나면. 이 모든 과정이 왜 반드시 있어야만 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최후의 5분을 보며. 정말로 말 그대로 숨이 막혔다.
머릿속에서 영화의 앞부분들이 순식간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지리멸렬해 보이던 모든 모습은 사실 매 순간 사랑한다고 외치는 두 남녀의 모습이었고.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 위해 발톱을 세운 것이 아닌. 내가 여태 얼마나 아팠는지를 알아달라고 말하는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토록 지독한 사랑 이야기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영화였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7월에 한 번 더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참고 1
세이렌에 관한 일화가 많긴 한데.
어떤 곳에서는 밀랍으로 귀를 막은 부하들과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은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노래에 반응하지 않고 바다를 무사히 건넜다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오르페우스가 세이렌보다도 훨씬 멋진 노래를 불러버렸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설이던 간에. 자신의 목적 달성에 실패한 세이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알려진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오디세우스의 설화를 더 좋아함.
[이 글의 TMI]
1. 한 달 내내 잇몸치료받은 6월.
2.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2킬로가 빠져버림.
3. 그런데 사랑니도 하나 남은 게 올라오기 시작함.
4. 지옥의 6월이 되어버림.ㅠ
5. 다들 더운데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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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광주 민주화운동]택시운전사와 화려한휴가/5.18 영화이야기/ 5.18 40주년
#화려한휴가#택시운전사#518광주민주화운동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여 영화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1.25배속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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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가수:서영은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oWj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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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은 수익을 창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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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주 최신 개봉영화(듄, 라스트 듀얼, 동백, 휴가, 한창나이 선녀님)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0월 3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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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행복의 나라> 2차 예고편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 든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 NEW는 영화, 음악, 드라마, 극장사업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의 분야를 아우르는 미디어 그룹입니다. NEW 영화사업부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고 NEW 영화 예고편, 미공개 독점 영상 등을 가장 먼저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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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춘정지란> 30초 예고편
우연과 악연으로 얽혔다? ? 성실하지만 가난한 선비, 금성 그 앞에 나타난 운명같은 상대, 혜성 그리고 둘을 쫓는 집착의 끝판왕, 서윤 애증으로 얽힌 세 남자가 그리는 로맨스 사극 ⟨춘정지란⟩ 5월 18일, 왓챠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