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2-26 17:07:27
브루탈리스트 | 위로, 또 앞으로 나아가는 건축가의 삶
<브루탈리스트>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사촌 '아틸라'(알레산드로 니볼라)의 집에서 지내며 미국 사회에 적응하려던 찰나, 그는 아틸라의 아내 '오드리'(에마 레어드)의 모함에 빠져 쫓겨난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냉혹한 현실을 견뎌내던 라즐로. 그런 그에게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사업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이 야심 찬 건축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
건축가로서 재기할 기회를 잡은 라즐로는 열성적으로 프로젝트에 임하고, 빛의 경계를 넘나들며 브루탈리즘 양식이 돋보이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건물 설계안을 완성한다. 이에 더해 유럽에 있던 아내 '에르제벳'(펄리시티 존스)과 '조피아'(래피 캐시디)도 미국으로 건너올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자 라즐로는 찬란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해리슨의 감시와 압박, 주변의 비난이 거세지면서 라즐로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환상과 허상을 딛고 우뚝 서다
브래디 코베 감독의 <브루탈리스트>는 개봉 전부터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제8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과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고,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여우주연상을 포함해 10개 부문 후보로 선정됐으니까. 영화 내적으로는 근래 보기 드문 15분 간의 인터미션을 포함한 3시간 34분 51초짜리 장편 영화라는 사실이 호기심을 키웠다.
영화 외적인 뉴스도 <브루탈리스트>를 향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제작 과정에서 AI를 활용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 주연 배우인 에이드리언 브로디와 펠리시티 존스의 헝가리어 발음을 보정하는 데는 AI 음성 변조 기술을 사용됐고, 건축 도면 생성에도 AI 기술이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AI 기술로 인해 촉발된 미국의 작가 조합 파업과 배우 조합 파업 여파가 남아있는 가운데 논쟁에 불을 붙이는 뉴스였다.
하지만 <브루탈리스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바로 제목 그 자체였다. 215분의 러닝타임이 '브루탈리즘'이라는 과거의 건축 사조에 어떤 의미와 서사를 부여하고 쌓을지 의문이었으니까. <브루탈리스트>는 위로, 또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한 건축가의 품위 있는 서사시를 통해 호기심을 완벽히 충족시켜 준다.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과 허상의 폐부를 찌르는 고전을 펼쳐 보이기 때문. 단지 약간의 과욕이 옥에 티일 따름이다.
위로, 또 앞으로 나아가기
<브루탈리스트>는 프롤로그, 제1막, 인터미션, 제2막, 에필로그로 나뉘어 있다. 그중 프롤로그와 제1막 '도착의 수수께끼'는 라즐로가 미국에 정착하는 시기를 다룬다. 전반부는 이미지 두 개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이미지다. 뉴욕에 도착한 배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보는 라즐로. 이때 카메라는 그의 시점에서, 아래에서 위로 자유의 여신상을 비춘다. 자연히 여신상은 거꾸로 뒤집혀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오프닝 크레디트를 장식하는 직진의 이미지다. 라즐로는 버스를 타고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로 향한다. 이때 카메라는 버스 안에서 밖을 비추되, 버스 전면부로 보이는 풍경을 고정적으로 보여준다. 그 덕분에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이미지와 움직임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이 둘을 합치면 제1막의 서사,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환상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자는 미국에 건너온 이민자들이 갈망하는 구원을 상징한다. 나치의 압제에 시달리다가 자유의 땅에서 새출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눌러 담은 셈이다. 이 이미지는 여러 형태로 변형된다. 해리슨의 의뢰로 라즐로는 '마가렛 리 밴 뷰런 센터' 설계를 맡는다. 이때 그는 유독 높이에 집착한다. 그에게 하늘에 가까워지는 것은 그 자체로 구원에 다가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처음 본 미국 하늘에서 자유의 여신을 만났듯이.
후자는 이민자의 진취성을 상징한다. 희망이 현실로 이뤄지려면 어려움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 라즐로가 사촌에게 배신당한 후에도 기어코 건축가로서 재기한 것처럼. 이는 라즐로가 설계한 커뮤니티 센터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이 건물은 그의 수용소 생활을 상징하는 작은 방들 안에서 높은 천장을 올려다볼 때 하늘이 드러나는 구조가 핵심이다. 과거를 주춧돌 삼아 현재로 나아가고, 그 위에서 미래를 꿈꾸는 직진과 상승의 이미지로 가득한 셈이다.
인터미션이 만든 고전
이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현실에서 이룰 듯한 제1막의 감흥은 인터미션 직전에 정점에 달한다. 라즐로는 모두에게 잊혔던 자기 커리어와 명성을 되찾고, 자신을 신뢰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기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고, 유럽에서 떨어져 지내던 아내 에르제벳과 조카딸 조피아도 미국으로 데려올 연줄까지 갖춘다. 삶이 원래 궤도로 돌아와 비상하는 바로 그 순간 인터미션이 주어지기에 그의 감격과 환희는 긴 여운을 남길 수 있다.
인터미션 동안 라즐로의 결혼식 사진을 보여주는 연출도 여운을 극대화한다. 이 사진은 아내와 조카딸의 이민 작업에 필요한 서류다. 라즐로의 아메리칸 드림을 완성할 가족이라는 마지막 조각인 셈이다. 그래서 인터미션은 감질난다. 거의 현실이 된 그의 아메리칸 드림이 보여줄 제2막이 궁금하니까. 이는 절반만 봐도 <브루탈리스트>를 고전으로 확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인물의 삶에 푹 빠지는 '시네마'다운 경험은 흔치 않기 때문.
다른 의미로도 인터미션은 인상적이다. 인터미션 덕분에 라즐로의 감정선은 제1막의 끝과 제2막의 시작에서 극명히 대조되며, 아메리칸 드림의 그림자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밝은 미래를 확신한 라즐로. 하지만 아내와 조카딸을 기차역에서 재회한 순간 그의 기대는 부서진다. 하체가 마비된 아내와 실어증에 걸린 조카딸은 그가 상상한 가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 그가 애써 외면하던 현실이 가족의 모습으로 등장한 셈이다.
환상 뒤에 숨은 허상
제2막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은 라즐로가 목도한 현실,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구체화한다. 허상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중성이다. 미국인은 이민자를 환영하는 듯하나, 그들이 주류 사회에 동화되지 않으면 차별한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라즐로가 겪는 고초가 방증이다. 일례로 커뮤니티 센터 내에 교회를 짓기로 합의한 후에도 지역 사회는 라즐로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의도를 불신한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의 횡포다. 라즐로와 해리슨의 관계 변화가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라즐로가 해리슨보다 우위에 있다. 라즐로는 해리슨이 애걸한 끝에 그가 제안한 커뮤니티 센터 프로젝트를 수락한다. 하지만 건설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고, 선의로 시작된 후원자와 수혜자 관계는 점진적으로 수직적인 위계 관계로 비틀린다. 그렇게 해리슨은 돈을 목줄 삼아 라즐로를 통제하려 한다.
왜곡된 관계는 다른 영역에서 갈등을 초래한다. 라즐로 가족은 해리슨 가족으로부터 인격적 모욕을 당한다. 라즐로는 만찬 자리에서 해리슨에게 구두닦이 취급을 당하고, '해리'(조 앨윈)는 조피아에게 추근거린다. 가치관도 충돌한다. 철로 사고로 인해 부상자가 발생했을 때, 라즐로는 예술가로서 프로젝트를 강행하려 한다. 그에 반해 해리슨은 회사 이미지가 악화될 것을 우려해 공사 현장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프로젝트를 중단한다.
환상 뒤에 숨은 허상은 건축적으로도 암시된다. 제1막에서는 빛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뇌가 중점이었다. 커뮤니티 센터에 교회를 설계할 때 라즐로는 햇빛을 어떻게 십자가 모양으로 다듬을지를 고심했다. 마치 아메리칸 드림의 빛을 보여주는 듯하다. 반면에 제2막에서는 건물의 그림자 안에 깃든 추악함이 두드러진다. 공사가 재개된 후, 채석장 동굴 안 터널에서 해리슨은 술과 마약에 취한 라즐로를 강간한다. 그 이후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라즐로와 제1막 끝에서 환희에 찬 그를 비교하면 이보다 극적인 추락도 없다.
브루탈리즘이 마련한 구원의 길
아메리칸 드림의 이중성이 밝혀지는 과정을 쫓다 보면 제목 '브루탈리스트'의 의미도 서서히 분명해진다. 사전적으로 브루탈리즘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재건 과정에서 등장한 건축 사조를 뜻한다. 이전의 모더니즘이 추구하던 기능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게 특징이다. 적은 수의 창문과 기하학적 구조를 외장 없이 노출된 콘크리트 건축물로써 표현하는 양식이다.
극 중 라즐로는 브루탈리즘 양식의 특징을 구원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는 위양을 꾸미지 않고 콘크리트 구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특성을 솔직함의 미덕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그는 재개된 커뮤니티 센터 건축에 열과 성을 다한다. 자신의 상처와 절망, 구원을 향한 희망, 그의 탈선과 집착까지도 숨기지 않은 채로. 아메리칸 드림의 '잔인함(brutal)'에 '브루탈리스트(brutalist)'답게 맞서는 셈이다.
실제로 제2막의 후반부는 솔직한 고백의 향연이다. 라즐로는 아내가 미국에 도착한 이후로 숨겨왔던 마약 투여 사실을 고백한다. 에르제벳은 해리슨이 라즐로에게 저지른 만행을 그의 가족과 사업 관계자들 앞에서 폭로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마침내 아메리칸 드림 앞에서도 솔직해진다. 환상과 허상을 모두 거두어 내고 현실만 직시한다. 그래서 그들은 조피아가 이민 간 이스라엘로,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그들의 선택은 종교적으로도 의미심장하다. 특히 라즐로와 해리슨의 대비가 눈길을 끈다. 유대인이라서 배척받은 라즐로는 구원받지만, 해리슨을 비롯해 그를 배척한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으니까. 라즐로는 자신의 건축물이 그랬듯이 신 앞에서 떳떳해졌다. 그 솔직함은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릴 정도로 높아진 명예로 보답받았다.
반면에 독실한 개신교도라던 해리슨은 죄악을 숨기려다가 파멸했다. 그는 라즐로를 강간했다는 진실이 밝혀지자 커뮤니티 센터 교회의 그림자 속으로 실종된다. 그 순간 햇빛 대신 달빛으로 만들어진 역십자가는 그의 비극적 최후를 암시한다. 이 대조적인 결말에 다다르면 <브루탈리스트>를 호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민자라는 보편성과 유대인 건축가라는 특수성의 접점을 이렇게까지 깊고 다층적으로 파고들기는 어려울 테니까.
시대의 반영 또는 과욕
다만 에필로그는 옥에 티다. 이민자 서사와 유대인 서사 사이에서 절묘하게 잡았던 균형을 잃어버리기 때문. 라즐로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열린 본인 회고전에 조피아와 함께 참석한다. 그 자리에서 조피아는 라즐로의 건축세계를 설명하는 연설을 한다. 마가렛 리 밴 뷰런 센터의 디자인은 라즐로가 지냈던 강제수용소를 재현한 것이고, 그의 건축 세계에서는 과정보다는 목적지가 중요했다고.
얼핏 듣기에는 조피아의 연설이 라즐로가 추구한 건축 세계의 핵심만 짚어주는 듯하다. 하지만 화자가 라즐로가 아닌 조피아라는 점을 생각하면 연설의 뉘앙스가 미묘해진다. 극 중 조피아는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게 신의 사명이라고 믿는 강성 시오니스트로 묘사됐기 때문. 그녀의 신념은 라즐로와 에르제벳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의 이민을 강행할 정도로 굳건하다.
이 맥락에서 조피아의 연설은 다양한 종교적, 역사적, 예술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던 <브루탈리스트>의 이야기를 유대인 정체성과 시오니즘 이데올로기 안에 가두는 것처럼 느껴진다. 구원을 원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시오니즘을 추구하는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특히 영화의 시작과 끝에 라즐로가 아니라 조피아가 등장하기에 시오니즘 메시지는 더욱 강조된다.
물론 주인공을 유대인으로 설정한 이상 시대상을 반영한 불가피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추구한 시오니즘이 2025년에도 끝나지 않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유발한 현실을 고려한다면, 에필로그는 <브루탈리스트>의 유일한 오점이 아닐까 싶다. 에필로그에서 욕심 한 숟갈만 덜어낼 수 있었다면 보편성까지 갖춘 명작이자 고전으로 기억되리라는 점에 두말할 여지가 없을 테니까.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유대인 이민자의 과거와 현재가 지어 올린 아메리칸 드림의 빛과 그림자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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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살 차이 나는 커플의 사생활을 밝혀나가는 어느 배우의 탈선!
시놉시스
그레이시는 자신보다 23살 어린 남편 조와 결혼해 미국의 신문 1면에 공개된 적이 있다. 그런 과거를 알아보려고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의 가정에 찾아가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배우라서 그런지 자신의 영화에 쓰일 자료를 모으려고 그레이시와 조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레이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엘리자베스를 반갑게 맞이하지만 점점 심해지는 그녀의 집착에 슬슬 싫증이 나기 시작하는데...
엘리자베스 (나탈리 포트만)
엘리자베스는 줄리아드에 나온 배우이며 여러 영화들을 찍었다. 그리고 연출도 하고 있는데 그레이시에 대한 사생활을 그녀의 지인들에게 캐묻기 시작하고 많은 정보들을 알아낸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레이시의 남편인 조까지도 유혹한다. 조의 직장에 들어가서 그가 하는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친해지기 시작하는데 결국에는 성관계까지 맺는다.
천식이 있어 호흡기가 있어야 되며 부모가 너는 너무 똑똑한데 왜 배우를 하냐고까지 물어봤다고 한다. 또한 자신보다 내면이 여리고 어린 조와 불륜을 시작하면서 곤란하게 만드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레이시 (줄리안 무어)
그레이시는 자신보다 23살 어린 남자인 조와 결혼했다. 자신은 만난 남자도 별로 없으며 조와는 반대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집에 오자마자 큰 환영을 하지만 그런 엘리자베스의 집착에 싫증이 나고 자신을 전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레이시가 가족을 꾸리기 전에는 톰이라는 사람과 사귀었는데 톰은 변호사이며 범죄자들을 변호하는 역할만 해오다 그레이시에게 또 다른 남자인 조가 생기자마자 헤어진 것 같다.
조를 사랑하지만 그런 조를 가끔씩 미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총으로 동물 사냥하는 걸 즐기고 가족에게 헌신적이다.
조 (찰스 멜튼)
조는 내면이 불안하지만 여리고 자신의 아들인 찰리와 딸인 매리를 엄청 챙긴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맞는 찰리와 매리를 무척 아끼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자식들을 떠나보내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자신보다 23살 연상인 그레이시와 사귀었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 독립하지 못한 어른 아이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은 한국 혼혈이며 집 안에서 나비 애벌레를 키우는데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면 하늘에다 날려보내준다. 하지만 그는 무언가 모를 혼란을 겪고 있다.
<하니엘의 주관적인 해석>
이 영화는 불륜에 대해 다루고 있고 삼각관계를 미묘하게 영화에 녹여냈으나 안타깝게도 관객들이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았다. 필자도 이해가 쉽지 않았는데 23살 차이가 나는 그레이시와 조의 관계에 끼어드는 엘리자베스를 보니 정말 자신의 연기에 이용하기 위해 둘의 관계에 대해 주변인들에게 캐묻고 그것에 대한 사생활을 이용한 것 같다.
그런데 그레이시와 조는 각자 내면의 상처가 있었고 그 아픔을 안고 사는 듯하다. 미묘한 둘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사람의 도덕 기준과 혼란스러운 심리를 다룬 영화라고 생각한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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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트 레이더스 시사회 영화 후기 - 독재로부터 자유를 빼앗기질 않을 권리!
서기 2043년 독재국가인 에머슨이 전쟁을 명분으로 하여 미성년자들을 아카데미라는 곳에 데려가 인간병기로 만든다. 니스카는 자신의 어린 딸인 와시즈를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와시즈는 아카데미에 끌려가게 되고 그로부터 10개월이 흐른다. 니스카는 자신의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한편 와시즈는 아카데미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으며 지낸다. 하지만 외톨이로 지내는 와시즈에게 교관이 다가와 자신의 어머니인 니스카가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큰 실망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니스카는 자신의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아카데미의 경계에서 매일 원망한다. 그런데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부족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카데미에 있는 자신의 딸과 아이들을 구출하려고 준비하는데...
근미래의 디스토피아가 얼마나
끔찍한지 알려주는 영화!
하니엘의 영화 잠깐 엿보기
단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에머슨에게 길들여진 인간병기로 만들어진다면?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없는 걸까?
이 영화는 2043년의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다. 시민들은 식량을 드론으로 배급받는데 형편없는 음식들이다. 그리고 국가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죽여버리는 독재 국가인 에머슨을 보면서 우리의 삶에 자유가 빼앗긴다면 희망이 없는 채로 살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전쟁에 쓰일 인간병기를 만들기 위해 미성년자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아카데미에서 훈련시킨다. 하지만 미성년자들은 결국 군인으로 키워져 전장에 배치되고 권력의 도구로 쓰이게 된다. 만약 우리도 근미래에 이러한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대처할까? 자유라는 게 없어지면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과 다를 게 없어진다. 모든 것을 국가가 통제하면 사회가 얼마나 비참해지게 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독재가 실행한다 해도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그 예시가 니스카를 도와주는 인디언 부족들인데 이들은 토착민이면서 자신의 영토를 수호한다. 후반부에 갈수록 에머슨의 군대와 드론들이 쳐들어와 이들과 싸우려고 하지만 자연을 수호하는 와시즈의 능력이 늦게 발휘된 덕분인지 물러나게 된다. 전쟁을 한다는 이유로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자유를 빼앗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였다.
독재 국가는 독을 탄 음식을 억지로 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하니엘의 주관적인 영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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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이온더월>_ 쇼날리보스
2년 만에 다시 찾은 부산국제영화제.
티켓 부스 앞에 모여있는 사람들, 굿즈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영화제 관계자 목걸이를 매고 돌아다니는 영화인들. 모든 순간들을 다시 보니 반가웠다. 그렇게 곳곳에 시선을 두며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담았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영화를 사랑하겠지만.
영화제에 와서 밤새 영화얘기를 하다가,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아침 9시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겐 어떤 공통된 마음이 있지 않을까. 내게도 그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자부하며 아침 9시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몇 번의 고비를 경험했다. 이게 바로 영화제 아니겠냐며, 이게 바로 씨네필 아니겠냐며 같은 영화관에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속감을 느끼다가 좋은 영화였어… 하고 둘째 날 첫 스케줄을 견딘(?) 기억이 생생하다. 짧은 일정 탓에 보고 싶은 영화를 모두 다 보진 못했지만 계획했던 일정대로 티켓팅에 성공했다. 매 순간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영화제를 즐겼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여서 더 즐거웠던 ,
2024 부산국제영화제. 몇몇 단상을 남긴다.
1. 플라이온더월 (감독_쇼날리보스)
치카 카파디아는 말기 암 4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고 죽기로 결심한다. 스위스 취리히의 조력사 지원단체 ‘디그니타스’에 지원서를 넣고 종교적 의례처럼 일기를 써나가며 스위스로 이주를 한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인 쇼날리 보스 감독에게 자신의 죽음을 촬영해 주기를 청한다. 영화는 여기서 시작한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치카와 쇼날리가 함께한 마지막 2주는 생의 환희로 가득한 순간들로 채워진다. [강소원, 제29회 BIFF]
스위스 블루하우스에서의 조력 자살에 관한 이야기.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일 년 전, 어떤 영화 하나를 보고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들에 관심이 생겼다. 죽음을 앞둔사람은 남은 생애 동안 어떤 마음을 안고 살아갈까. 그 마음이 궁금해 선택한 다큐.
다큐멘터리 속 조력자살을 선택한 감독님의 친구 ‘치카’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지만 매 순간 생의 기쁨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죽음 앞에서 의연한 태도로 자신의 선택을 마주하는 그를 보며, 나도 죽음을 앞둔 순간에. 혹은 내게 죽음이 점점 다가왔을 때 그와 같은 모습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 후회가 전혀 남지 않는 생은 없을 테니까, 후회가 덜 남는 생이어야 그와 같은 마음일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그런 생을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영화는 죽음을 앞둔 치카가 쓴 일기를 요일이 바뀔 때마다 앞부분에 보여준다. ‘다시는’ 태양을 보지 못하고 ‘다시는’ 사랑할 수 없다고 쓴 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한 번 뿐이기에 더욱 값지지만 한 번만 주어지는 생이기에 죽음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것이라고, 그래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울음을 참으려 하지만 끝내 울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삶에는 꼭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다 배우고 나면 자연스레 떠나게 되는 것이기에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감독님. 헤어짐은 언제나 버겁겠지만 이 다큐를 통해 죽음에 관한 새로운 시선과 앞으로의 슬픔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 글에서 <지옥 2>, <나 홀로 여행하기>,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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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스펜스에 청춘 한 조각
출처 스포츠서울
사회적 명망이 있던 한 검사 출신 로스쿨 교수가 국내 최고 로스쿨 학생들의 모의법정 시간에 의문사를 당한다. 사인은 필로폰 과다복용에 의한 죽음현장에 남아있던 증거품이라곤 설탕 봉지, 안경, 필로폰 봉지 그리고 커피컵이 전부. 모의변론 수업이었기 때문에 학생들 다수가 목격자이고, 동시에 이들은 잠재적 용의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피해자와 질긴 인연이 있는 한 검사 출신 동료, 양종훈 교수가 용의자로 체포된다. 학생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런데 이 피해자, 그리 청렴결백한 삶을 살진 않았던 것 같다. 그에게 원한을 가진 이가 용의자 교수 뿐만이 아닌데, 이거 범인이 누구라는 거야, 대체???
1. 로스쿨 학생들의 각기 다른 성격, 빡세고도 청춘다운 캠퍼스 라이프
한국에서 가장 비상한 리걸 마인드(Legal mind)들이 모여있다는 한국대 로스쿨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있다. 차상위 계층전형으로 들어와 비상한 머리들 틈에서 아등바등 버티고 있는 강솔 A, 사시 2차를 합격하고도 굳이 로스쿨을 와서 동기들 중에서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한준휘, 까칠한 듯 도도하게 인생이 성적 아니면 의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두 명의 비슷한 청춘, 강솔 B 그리고 서지호. 로스쿨 최고 얼짱, 방예슬 그 외 의대생이다가 로스쿨을 온 승재까지 모든 캐릭터들의 성격이 명확하다. 이 각기 다른 성격들이 충돌하면서 모난 성격은 다정한 사람이 깎아내고, 츤데레처럼 챙겨주기도 하면서 티격태격 정드는 모습이 어른인 척 하는 아기들 같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성적 경쟁할 때에는 한없이 얄밉다가 준휘가 잠시 용의자로 몰려있을 때에 왕따도 시키지만 혐의점이 없어지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모습까지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경쟁적인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본성적인 모습부터 오해가 팩트로 무효화 되었을 때는 쭈뼛거리며 사과하는 찌질한 모습까지 우리네 모습 아닌가.
빡세게 공부하는 청춘들의 모습과 그들을 알게 모르게 지켜보는 교수진들의 묘한 흐뭇한 분위기는 심각한 플롯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 인간적이기까지 하구나 라는 인상을 심어주어 뭐 하나 놓치고 가는 게 없는 드라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학생이 머리를 쥐어뜯고 있으면 시크하게 힌트 주고 가는 양종훈 교수, 학생을 고소하는 쇼까지 하면서까지 더 큰 논란을 막아준 로스쿨 원장, 학생 이름을 일일이 다 외우는 김은숙 교수까지 정말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훈훈한 사제지간을 볼 수 있게 된다. 난 이 부분이 가장 이 드라마에서 판타지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판타지를 통해서 빡빡한 로스쿨 생활도 나름 아름다운 청춘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제작진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본다.
2. 범인을 찾고자 하는 메인 플롯, 캐릭터들의 사연을 담은 서브 플롯들
다른 법정 드라마인 비밀의 숲의 티저에서 등장한 카피 중에 이 드라마 플롯과 유사한 카피가 있었다.
"침묵을 원하는 자, 모두가 공범이다"
매 화가 release 되면서 이 피해자, 서병주 교수와 관련한 각 캐릭터들의 사정이 공개되고 있다. 목격자들 모두 사건 당일 서병주 교수의 죽음을 말하는 데 있어서 조금은 솔직해 질 수 없는 사연들이 있다. 각기 모종의 이유로 누군가는 양종훈 교수를 범인으로 몰아야 하고, 누군가는 지켜내야 한다. 지금 8화를 기준으로 솔 A는 변하지 않을 양종훈 교수 편이지만 예슬, 준휘, 서지호, 강솔 B 등의 솔직할 수 없었던 사정이 오픈되었는데, 앞으로 남은 회차에서 어떤 떡밥들이 풀어질지는 지켜볼 만하겠다. 모든 캐릭터들에 납득할 만한 서사를 갖게 하는 것, 정말 당연하지만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는 양종훈 교수가 범인이 아니라면, 누가 범인이냐는 큰 플롯을 가지고, 각 캐릭터들의 서사를 나뭇가지 삼아 진실을 위해 저울질하는 세부 플롯의 디테일함에 매화 시청하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사실 드라마 비밀의 숲은 로스쿨의 학생들이 일선에 투입되어 겪는 이야기라는 점만 다를 뿐, 범인을 찾고자 하는 메인 플롯에서 각기 개인의 사정을 서브 플롯을 넣어 모든 캐릭터의 서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시청자들이 내용에 몰입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메인 플롯의 단단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서브 플롯의 주인공들의 사연들이 이해가 가야 한다. 시청자들을 설득을 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비밀의 숲, 로스쿨 모두 법정 드라마라는 점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드라마에 빠지게 만들도록 설득하는 과정 모두 흡사하다. 아마 이 두 드라마만 그런 것이 아니리라.
결국, 드라마, 영화 자체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대단히 새로운 게 필요하지 않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메인 플롯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서브 플롯을 정교하게 짜야 하는데, 서브 플롯을 정교하게 구성하려면 인물의 성격에 기반해 그들이 했을 법한 행동들로 시청자들에게 '그럴 수도 있었겠다'라는 반응을 이끌어내면 그것이야말로 드라마 흥행의 좋은 징조가 아닐까. 캐릭터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 시청자는 이미 드라마 내용에 빠져 있을 테니까.
그런데 분석해보면 어렵지 않아보여도 막상 쓰는 사람이 되면, 이것만큼 골치아픈게 어디있을까. 그래서 어느 분야든 창작자들이 제일 존경스럽다.
결론- 좋은 드라마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동반한 시청자 설득 과정,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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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현재를 살아가다
대만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은 편인데다가 풋풋한 사랑이야기도 별로 안 좋아했는데 굉장히 재밌게 봤던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점과 은근히 반전소재 있었던 것이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시놉시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넌 영원히 내 눈 속에 사과야!
학교 대표 얼간이 커징텅과 친구들은 최고의 모범생 션자이를 좋아한다. 수업 도중 사고를 친 커징텅은 션자이의 특별 감시를 받게 되고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션자이에 대한 마음이 커진 커징텅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백을 하지만 션자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렇게 15년이 지나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 그 때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이 이후로는 영화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뭔가 하나씩 예상에서 어긋나는 재미
나는 영화를 볼 때 어느 정도 이렇게 되겠다 예상을 하거나 기대를 하며 보는 편이다. 그래서 그 예측이 어긋나거나 어긋나더라고 그 설명이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으면 화를 내는 타입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정말 거의 모든 것이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지만 정말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션자이와 커징텅이 이어질 줄 알았고, 그래서 첫 장면에서 커징텅이 신랑이고 션자이가 신부인줄 알았다. 하지만 션자이는 다른사람과 결혼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커징텅이 션자이와 함께 공부를 시작하면서 성적이 오르고 션자이와 커징텅 모두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뭐가 잘 될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센텐츠’들을 계속적으로 노출시키면서 정말 그 기대가 틀렸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센텐츠들이 영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었기 때문에 아,,, 이래서 그 말을 했구나, 이래서 뜸을 들였구나 이해가 되다보니 그 어긋남이 즐거울 수 있었다.
유쾌하게 그려내는 비극이랄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정말 내용만 보면 굉장히 비극적이다. 사랑하는 두 연인이 이어지지 못하고, 원하는 대학에도 못가고, 뭘 먹고 살지 모르겠다던 커징텅은 갑자기 인터넷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완벽하게 이루지는 못했지만 영화 속에서는 다양한 센텐츠들을 통해 비극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생의 모든 사건은 나름 의미가 있다. 열심히 해도 아무 속득 없는 거 인생이 원래 그런거야. 시험 문체처럼 모든 일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답이 없다 해도 늘 답을 알 수는 없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갖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는 것, 그래서 그저 주저 앉아 슬퍼하고만 있지 않는 주인공들 덕분에 유쾌함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던 작품이었다.
현재의 감성과 일치하는 영화가 아닐까?
풋풋한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지만 전반적인 주제를 살펴보면 굉장히 현재의 감성과 일치하는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10년전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그 감성이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놀면 뭐하니?에서도 나왔듯이 비가 ‘포기하지마’라는 주제를 추천하자 이효리는 ‘포기해’가 요즘 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라고 말한다. 요즘 사회는 안 되는 거 부여잡고 희망고문하지 말고 적당히 포기하면서 현새의 삶에 만족하며 그 소중함을 즐기는 것이 분위기다. 그러한 주제가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도 똑같이 등장한다.
“늘 미래만 상상할 뿐 현재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지요.”
션자이가 고등학교 졸업을 하며 고별사를 할 때 했던 말이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다. 뭐 그렇게들 발전을 좋아하는지,,, 그렇게 발전을 해도 또 그 원하는 자리에 가서도 발전해야 한다고 즐기질 못할텐데 말이다. 나는 지금 현재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미래의 행복을 정말 이뤘을 때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션자이가 저 말을 하는 순간 너도...? 나도!!! 하면서 내적 하이파이브를 쳤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첫사랑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현재에 대한 소중함과 유쾌함을 다룬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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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겁했기에 지킬 수 있던 이름들
<페르시아어 수업>은 한 사람이 살기 위해 순간적으로 내뱉은 거짓말로 인한 후폭풍을 겪어내는 이야기다. 영화는 시작부터 그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면 그에게도 똑같이 벌어졌을 유대인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배경으로써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풀지 않을 거라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질'은 유대인이지만 나치군에 끌려가는 과정에서 물물교환으로 우연히 얻게 된 페르시아 책을 증거로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 주장하며 목숨을 구한다. 한 장교가 페르시아어를 알려줄 페르시아인을 찾고 있다는 소식 때문에 목숨을 건사하게 된 질이 자신이 한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고 목숨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건 그다음 문제다.
장교도, 그를 데려온 군인들도 그가 페르시아인이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군인들은 사례품을 받기 위해 그를 데려오긴 했지만 유대인의 외모를 가진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장교는 그에게 매일 페르시아어 수업을 들으면서도 그가 가짜인지 확인하기 위한 덫을 파둔다. 질은 장교의 앞에서 '레자'라는 이름의 완벽한 페르시아인이 되어야 한다. 페르시아어라고는 책을 받을 때 들은 '아빠'라는 단어 정도만 알기 때문에, 그는 필사적으로 가짜 페르시아어를 만들어낸다. 가까스로 전혀 다른 체계의 단어 조합을 만들어야 할 상황에 처할 때, 인간이라면 당연히 한계를 체감하게 되기 마련이다. 기록을 남길 수 없는 환경에서 질이 써오던 입으로 외우고 머리로 기억하는 방법은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
이때 질의 눈앞에 펼쳐지는 묘수는 질에게 주어지던 우연 혹은 행운의 연속으로 보이면서, 영화의 마지막을 생각한다면 필연처럼도 느껴진다. 어느 군인이 제 할 일을 하지 못해 못마땅해하던 코흐가 질에게 맡기는 '수감자 명단 작성' 업무를 질이 보란 듯이 해내는 것은 질이 유대인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면도 있다. 군인들은 장교에게 특별 대우를 받는 그가 못마땅해 함정을 파고 그가 거기에 빠지길 여러 차례 기다리지만, 질은 그들이 만든 난관들을 위태롭고도 무사히 통과하며 계속해서 살아남는다.
그곳, 수용소에서 계속해서 살아남는 것에는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곳을 거쳐가는 유대인들은 목숨을 잃고, 수용소는 그런 그들이 거쳐가는 경유지 중 일부다. 질은 이들과 같은 처지에 처해 있지만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을 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자신을 점점 부끄럽게 생각한다. 핍박의 체제를 만든 사람들을 원망하고, 그런 체제가 유지되는 현실을 한탄할 여유는 수용소 안에서 존재할 수 없다. 계속되는 유대인들의 죽음을 보기만 할 수밖에 없는 질이 가지는 감정은 반복되는 분노와 허탈감이다.
페르시아어 수업과 함께 질과 코흐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질은 더 허망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에는 둘 사이의 미묘한 유대가 우정과도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여럿 존재하는데, 그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영화는 결국 두 사람 사이에는 넘지 못할 벽이 있음을 질의 울분에 찬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자신도 떳떳하지 못하고, 코흐는 더 비겁한 사람이라는 그의 말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백이면서, 코흐가 애써 보지 않던 현실을 보게 만들며 그를 찔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비겁했던 사람과 그보다 더 비겁했던 사람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라는 말은 살지 못한 자들의 눈에는 변명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사건들을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겪어냈고, 다른 이유는 그 시작에 있지 않았다. 외웠던 수많은 단어들도,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는 순간의 거짓말도,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행동들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질 때, 아마도 당신은 2,840이라는 숫자가 주는 충격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끄럽고 비겁했던 자가 자신을 위해 행했던 일이 모두를 위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목도하면서. 무엇보다도 그가 '살아있기에' 증명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더해져 영화의 마지막은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씨네랩으로부터 초대받아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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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빈의 소원> 스페셜 예고편
2014년 8월 11일. 할리우드의 명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로빈 윌리엄스가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특유의 익살스러운 연기로 관객을 울고 웃게 하며 꿈과 희망의 아이콘 같았던 배우였기에 전세계 영화 팬들은 충격이 더 컸다.
하지만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진 무성한 소문과 다르게 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가 바라던 진짜 소원은 무엇이었는지 이제 그의 죽음에 둘러싸인 소문과 진실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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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와이 우먼 킬 시즌 2> 공식 예고편
[왓챠 익스클루시브, 2021년 7월 28일 공개]
쉿, 시체와 비밀은 묻어둘 것!
돋보이는 존재가 되고 싶은 평범한 주부 엠마.
탐나는 것이 생긴 80세 재벌의 젊은 아내 리타.
1949년 LA, 욕망을 선택한 여자들의 치밀한 계획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