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 soyo 2025-02-20 19:10:33
[영화 ‘애프터 썬’을 보고] 널 진짜 사랑해, 잊지마
'아빠'라는 존재는 과연 뭘까
[영화 ‘애프터 썬’을 보고] 널 진짜 사랑해, 잊지마
'애프터 썬(After Sun)’이라는 영화와의 첫 만남은‘쓸쓸한 사랑 영화 추천 TOP 3' 이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에 올려진 행복한 모습의 아빠와 딸의 포스터를 통해 이뤄졌다. ‘쓸쓸한 사랑’을 서로가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외로운 사랑이라고 여겼던 것과 달리 다정해보이는 부녀를 보며 이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겉으로는 행복해보였지만 이 부녀 둘 사이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균열이 존재했다.
어렸던 딸은 아버지를 향해 깊은 애정을 느끼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던 아버지의 깊은 내면적 고통과 불안까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영화는 성인이 된 딸이 아버지와 여행했던 시간을 되새기며 그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고뇌와 감정을 조각처럼 짜 맞춰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기억은 이미 희미해졌기에 사랑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영화는 더 이상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이해하려 해도 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쓸쓸함을 남긴다.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빠는 딸 소피에게 자신의 우울감이 전해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지만 그의 눈엔 이미 슬픔이 가득 차보였다. 그러나 어린 소피(Sophie)와 마찬가지로 나도 영화를 보는 동안 그가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오히려 세상 무기력하고 게으른 아빠처럼 보였기에 그를 좋은 아빠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맥락을 단 몇 분으로 파악하려 했던 나의 판단이 오해였음을 깨닫게 된다. 소피 역시 그를 이해하기 위해 아빠와의 기억의 조각을 긁어모았지만 그의 속사정까지 깊이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렇듯 소피와 나는 아직 그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힘든 어린 나이다. 그러나 아빠는 딸과 재밌게 놀아주기 위해 일찍 풀어버린 깁스와 혼자 남겨졌을 때만 눈물을 흘리는 등 그가 딸과 행복한 시간을 망치지 않기 위한 노력만큼은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아빠의 외로운 모습을 보며 갑자기 ‘혹시 우리 아빠도 그러지 않았을까?’라며 소피의 상황을 ‘나’에게 이입해 의식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완벽히 알 수 없지만 어린 시절에는 더욱 이해하지 못했던 아빠의 마음이 이제야 어렴풋이 느껴졌다. 가족 앞에선 늘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혼자 있을 때만 슬픔을 흘렸을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 한 편이 먹먹해졌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늘 힘든 감정을 삼켜내며 우리에게 기쁨만을 주고자 했던 가장의 무게는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가 웃을 때 그 안에 숨어있는 눈물은 오직 그와 가족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그것을 마주하는 또 다른 한 인간의 애틋한 시선을 통해 사랑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특별한 순간들을 포착해내는 이 영화는 내게 평생 슬픔과 쓸쓸함의 잔향을 남길 것 같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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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차티드 / Uncharted, 2022
한창 인터넷 방송을 보았을 때, 그때 "게임"섹션에서는 다양한 콘솔 게임들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게임들을 볼 수 있었지만, 가장 공통된 주제는 "블록버스터(영화) 뺨치는 게임"이었고 이 조건을 충족시킨 건 <언차티드>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들려온 해당 게임의 실사화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들려오는 건 '제작이 안된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데이비드 O. 러셀"을 시작으로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숀 레비", 그리고 <A-특공대>의 "조 카나한", 그리고 <좀비랜드>와 <베놈>을 연출한 "루벤 플래셔"까지 이르기에 수많은 감독들이 오간 다음에 만들어졌고, 볼 수 있게 되었거든요.
'과연, 기대만큼 잘 나왔는지?' - 영화 <언차티드>의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뉴욕에서 "바텐더"를 하고 있는 "네이선"에게 한 남자가 접근합니다.
자신을 "설리"라고 소개한 이 남성은 그에게 "마젤란의 황금"을 찾아보자는 제안을 건네는데요.
잠시, 고민을 하지만 "네이선"은 이를 받아들이지만 이를 노리는 건 이들뿐만이 아님을 알게 되는데...게임에서의 느낌을 영화로 줄까?
1. 게임에서의 장점이 영화에선?
앞서 말했듯이 영화 <언차티드>는 동명의 게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렇다는 건, 이미 인정받은 이야기라는 동시에 팬들이 원하는 기대치가 분명히 존재했을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언차티드>만의 강점이 뭔지를 소개하는 것이 해당 영화를 재밌게 바라볼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게임 <언차티드>는 무엇이 재밌길래?' - 이렇게, 영화까지 만들게 되었을까요?영화 같은 게임, 영화가 된다면?
앞서 말했듯이 게임 <언차티드>는 "블록버스터(영화) 뺨치는 게임"입니다.
그만큼인 게임에서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장소와 거기서 펼쳐지는 화려한 액션은 게임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느낌입니다.
특히, 그곳에서 "퍼즐"을 맞춰 보물로 가는 그 과정은 <인디아나 존스>시리즈를 떠오르게 만드니 몸만 들썩이게 만드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기대를 걸어본 영화 <언차티드>의 결과부터 말하자면, 너무나도 평범한 작품이었습니다.2. 너무나도 평범해진 원작
물론, 이에 있어 많은 분들이 "게임의 장점들이 평범한 블록버스터와 큰 차이가 없지 않으냐?"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변을 하자면, 해당 게임이 나온 2007년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당시에 이런 스케일을 좋은 그래픽으로 밀어붙이는 게임이 드물었기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에 열광하고 해당 영화판에 기대를 한 겁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게임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그 무대를 영화로 옮기니 보이는 기준점이 달라지고 맙니다.굳이, <언차티드>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만든 작품들은 더 많으니까요.
그렇다면, <언차티드>라는 걸 어떻게 알죠?
여느 작품과 똑같다면, 원작 팬들에게 '이 작품이 <언차티드>라는 걸 어떻게 알리느냐?'라는 중요한 과제가 되는데요.
그렇기에 우리는 "싱크로율"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말했듯이 '하얀색 민소매 나시와 청바지, 그리고 콧수염만 있다고 해서 누구나 "프레디 머큐리"가 아니듯이' 그저, 이름만으로 해당 캐릭터들을 납득한 수는 없어 이미지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 점에서 "톰 홀랜드 - 마크 월버그"의 선정은 원작 팬으로서 아쉬움이 남는 선택이라 생각합니다.3. <언차티드>라는 제목이 없다면, 알 수 있을까?
게임에서 선보이는 "네이선"은 상당히 마초스러운 이미지이나 시종일관 구시렁거리고, 어딘가 허당스러운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톰 홀랜드"는 외모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들이 적합하나 마초보다는 어린 티가 나는 얼굴이죠.
여기에 "설리"의 "마크 월버그"는 그냥 "마크 월버그"이니 캐릭터보다는 배우 그 자체로만 보였고요.
무엇보다 그들의 관계가 유사 부자관계로 비쳐 마치, "토니(aka. 로다주)"로 보이는 착각마저 일으키니 더더욱 <언차티드>로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이야기마저, 새로워?
이렇게, "싱크로율"도 <언차티드>를 못 알아보는 상황에서 선보이는 이야기도 <언차티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비행기에서 쏟아지는 화물들을 올라타는 장면은 원작 게임에서 사막이었지만 해당 게임에서는 바다로 대체합니다.
이처럼 해당 게임에서도 보여준 장면이나 몇몇 부분들을 바꿀 만큼 각색을 거친 것이 보이는데,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여러 작품들을 짜깁기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때문이라도 원작을 즐겨본 팬들이라도 영화 <언차티드>는 새로운 느낌이겠으나 '기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의 익숙함도 선사합니다.4. 평범한 시작이 된 1편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 <언차티드>는 게임을 떠나 평범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비행기에서 쏟아지는 화물들을 올라타는 장면은 원작 게임에서도 선보인 스폿이나 이를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에서 볼법한 장면으로 여길 만큼 평범해졌습니다.
이외에도 배를 헬기에 매달아 하늘을 나는 마지막 액션까지 스케일에 신경 쓴 장면들도 있지만, 본 작품만의 시그니처로 받아들이기에는 역시 어디선가 본듯한 기시감을 지울 수가 없네요.그래서, 또 속편을 만들자고?
그렇게, <언차티드>는 마무리가 되지만 추후 선보이는 2개의 쿠기로 보아선 향후 시리즈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보는듯합니다.
여기서는 그래도, 원작 게임의 "설리"를 인식한 외모부터 개선된 방안을 보여주나 가장 문제인 "톰 홀랜드"의 "네이선"은 짙은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너무 어려 보이는 것도 참, 그렇네요.※ 하늘에서 떨어지고 "네이선 - 클로에"가 한 해변으로 도착하고서, 한 행인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원작 게임의 "네이선 드레이크"의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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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서사를 덜 폭파시킨 마이클 베이식 추격전
앰뷸런스 (Ambulance , 2022)
“이번엔 서사를 덜 폭파시킨 마이클 베이식 추격전”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액션, 범죄
러닝타임 : 136분
감독 : 마이클 베이
출연 : 제이크 질렌할,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에이사 곤잘레스
개인적인 평점 : 3,5/5 (저에겐 4점짜린데 취향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앰뷸런스 줄거리
인생 역전을 위해 완벽한 범죄를 설계한 형 ‘대니'와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해야만 하는 동생 ‘윌', 함께 자랐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형제는 각기 다른 목적을 위해 인생을 바꿀 위험한 계획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틀어지게 된 두 형제는 구급 대원 '캠'과 부상당한 경찰이 탑승한 앰뷸런스를 탈취해 LA 역사상 가장 위험한 질주를 하게 되는데....
영화 <나쁜 녀석들>로 데뷔해 <트랜스포머 시리즈>, <6 언더 그라운드>등, 거침없는 액션 영화들을 남긴 ‘마이클 베이’감독의 신작 <앰뷸런스>가 개봉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매 작품마다 특유의 쫀득하고 타격감 있는 액션을 보여주며 “제대로 폭파하는 감독”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무려 5편이나 끌고 가며 일각에선 ‘개연성도 폭파시킨 영화’라는 아쉬운 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앰뷸런스>에 우당탕탕 때려 부수는 액션을 제외하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내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비하면 확실히 개연성과 폭발. 두 가지를 모두 잡은 느낌이랄까. CG는 S**t이라며 어지간한 건 직접 다 폭발시키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뚝심과 최근 그의 작품에서 찾기 힘들었던 감정선까지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팬데믹으로 인해 예정되었던 차기작 촬영이 미뤄지자 소소하게 찍어보자(폭파시켜보자)는 느낌으로 유니버셜 픽처스의 회장에게 새로운 영화 제작에 대해 어필을 했고, <앰뷸런스>의 연출을 맡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트랜스포머에 비해선 약간 힘을 덜 주고 찍은, 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 담긴 액션들은 결코 소소하지 않다. 드론이 추가되며 하늘과 땅을 가리지 않게 된 키메리의 움직임과 제이크 질렌할의 아슬아슬 은은하게 돌아있는 눈빛, “언제 터지나” 기다릴 것 없이 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전개와 약간의 서사까지 더해지니 콕 집을 큰 단점이 없다.
영화관에서 봐야 할 영화
그냥 하는 말, 농담이 아니라 <앰뷸런스>는 영화관에서 만나봐야 할 영화다. 시원하게 터져나가는 액션을 극장의 화면과 스피커로 만나보는 것만큼 스트레스 풀기에 좋은 것이 또 없다. 개봉 전에는 IMAX와 돌비 외 특별 포맷 상영이 없는 게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니 왜 이 영화가 4DX 포맷이 없는지 알 것 같았다. 사족 전부 제외하고 최소한의 설명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영화이기에 거의 2시간 내내 카 체이싱 장면이 이어지는데, 2시간 내내 모션 체어에 앉아 이리저리 후두려 맞을 생각을 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리고 굳이 4DX가 아니더라도 화면 자체가 입체적이고 어질어질한 느낌이 있기도 하다. 딱 ‘마이클 베이’다운 액션신들이 가득하기에 이건 기회가 될 때, 극장에서 봐줘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너무 진지하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막힘없이, 멈추지 않는 질주
이야기의 구조는 보통 기승전결로 나뉜다. 2시간 정도 되는 영화라면 30분 정도는 배경 설명을 하고, 30분이 넘어갈 때쯤에 제대로 된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다. 근데 <앰뷸런스>는 바로 은행 털기! 카 체이싱!!을 외치며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본론으로 들어간다. “요즘 누가 은행을 털어요?”라며 영화의 소재가 식상하다고 툴툴댈 틈도 없이 일단 냅다 달린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몇 번이고 대사로 강조한다. “멈추지 않아.”라고. 정말 이 영화는 멈추지 않고 달린다. 긴 추격전 중간에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웃음 포인트를 넣어뒀으니 다행이지, 그마저도 없었으면 어깨가 뻐근했을지도.
LA 곳곳을 터트리는 마이클 베이
은행 강도는 빌드업이었을 뿐, 이 영화에서 실제로 보여주고자 하는 건 LA 곳곳을 훑는 앰뷸런스의 모습이다. 처음엔 추격전에 최적화되었다고 보긴 어려운 커다랗고 눈에 띄는 앰뷸런스를 추격전에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했다. 영화는 이 외적인 부분을 포기하고 앰뷸런스 안에 탄 사람을 볼모로 잡아 간단하게 끝낼 수 없는 긴 추격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혈관처럼 뻗어있는 LA의 도로, 골목을 달리며 온갖 것들을 터트리고 부수고 밀어버린다. 이 정도면 마이클 베이 감독이 LA를 좋아해서 이 영화를 연출한 건지, LA를 싫어해서 폭파시키고 싶어 이 영화를 연출한 건지 헷갈릴 정도다.
제이크 질렌할의 두 가지 눈빛
<앰뷸런스>를 무조건 봐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제이크 질렌할’때문에.
이 영화의 주연은 세명이다. 형 대니를 맡은 제이크 질렌할, 동생 윌을 맡은 아히아 압둘 마틴 2세, 구급 대원 캠 역할을 맡은 에이사 곤잘레스. 제이크 질렌할을 제외한 두 배우 역시 최근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인물들이지만, 극의 전체적인 텐션과 분위기를 책임지는 건 당연하게도 ‘제이크 질렌할’과 그의 캐릭터 대니다.
동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형 대니와 마지막으로 큰 한탕을 노리는 미친 은행 강도, 두 정체성 사이를 재빠르게 넘나드는 그의 연기에 이번에도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특히 제이크 질렌할의 큰 눈은 멜로나 서정적인 연기에도 잘 맞지만 광인 연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 같다. 그가 갑작스레 폭발해 소리를 지르거나 반대로 비정상적으로 침착한 모습을 보일 때면 자연스레 “이 캐릭터 정말 미친놈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트 크롤러>에서 제대로된 잔잔한 미친 연기를 보여주긴 했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언젠가 <아메리칸 사이코>처럼 진짜 본격적이고 폭발적인 광인 연기를 보여주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은근 괜찮게 다가오는 서사
앞에도 언급했듯 <앰뷸런스>는 개연성까지 부숴버린 영화가 아니다. 이야기는 대니와 윌 형제의 뜨끈한 형제애로부터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위선과 갈등, 진심이 뒤섞이며 누구의 말을 따르는 게 맞을지,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누군가의 선택에 의문이 생기는 부분도 있지만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서사였다고 생각한다.
거침없이 본론부터 / 이야기의 배경
영화의 주인공인 동생 윌은 해병대에 지원해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남은 건 공로 훈장뿐이고 연금도, 제대로 된 의료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윌은 아내 에이미의 수술을 위해 보험금을 받으려 하지만 임상 수술이란 이유로 지원을 거절당한다. 일자리도 구해지지 않고 도저히 돈 나올 구석이 없자 그는 마지막 보루로 형 대니에게 찾아간다. 윌은 백인인 대니의 집안에서 입양아로 자랐다. 대니는 윌을 ‘진짜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진심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둘은 끈끈한 우애를 유지해왔지만 아버지와 얽힌 상황 때문에 갈라져 살게 된다.
윌은 돈이 필요했고, 대니는 때마침 큰돈을 벌 마지막 은행 강도를 계획한다. 계획 시작까지 단 5분 만이 남은 상황,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대니의 말들이 몰아치고 “가족을 위해서!”라는 커다란 이유에 윌은 차에 함께 올라탄다. 이런 상황에서 휩쓸리지 않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갈 인물이 몇이나 있을까. <앰뷸런스>는 시작부터 강하고 빠르게 보는 이들을 휘어잡으며 시원하게 전개된다. 가장 거침없다고 느꼈던 건 여러 명으로 시작했던 강도 동료들이 한순간에 떨어져 나갈 때였다. 버켄스탁을 신은 동료와 차를 잘못 댄 동료, 윌을 배척한 동료 등등… 이름조차 거의 기억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주변인들을 밀어버릴 줄은 몰랐다. 그 덕분에 딱 추격전에 필요한 인물만 남게 되고, 가벼워진 몸체로 거침없는 액션이 시작된다.
추격전 중간에 삽입되는 잠깐의 쉬는 시간
은행을 벗어난 순간부터 이들의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숨차게 달리는 와중에도 대니의 입과 주변 경찰들을 통해 아주 잠깐의 쉬는 시간을 선사한다. “진정하고 냉정을 찾아”, “아타리 게임기처럼 생겨서 헷갈린단 말이야!”, “이거 캐시미어라고!”라고 윽박지르는 대니의 대사와 플라밍고, 반장의 커다란 개 나이트로, 80년대 음악으로 찾는 잠깐의 힐링 등등… 옅은 웃음이 피식 새어나오는 순간들이 꽤 많다. 여기서 더 재밌었던 건 영화에 나온 그 커다란 개가 마이클 베이 감독의 반려견이라는 사실이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해가 질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반려견이 차에 타주지 않았던 날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마치 반려견의 눈이 “나보고 이 작은 차에 타라는 거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근데 나였어도 그 몸으로 좁은 차에는… 타기 싫었을 것 같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위선과 갈등이 교차하는 앰뷸런스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듯 보이지만 앰뷸런스 안에선 별일이 다 펼쳐진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구급 대원 캠, 형과 예전 같은 삶의 선택지에서 갈등하고 있는 윌, 동생의 탈출과 돈을 모두 챙기고 싶었던 대니. 윌과 대니는 함께 멈추지 않는 질주를 하기도 하고, 인질은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반쪽자리 선의 앞에서 갈등하기도 한다. 대니는 끝까지 형으로서 동생을 감싸고, 윌은 끝내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한다.
추격전의 끝에서 되새기는 과거의 마음가짐 / 결말 해석
형으로서 보여준 모습과 엔딩 때문인지 희한하게도 대니가 ‘미친 은행 강도’라기보단 왠지 윌과 캠의 초심 찾기를 위한 희생양으로 보이기도 했다. 윌은 오늘 아침 은행 강도가 됐고, 캠은 오랜 구급 대원 생활에 지친 것인지 사건 현장을 떠나자마자 환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얼굴을 지워버리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그는 ‘가장 같이 일하기 싫은’ 구급 대원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추격전의 끝자락에서 다시 정의로운 마음가짐과 따뜻한 구급 대원의 시선을 되찾게 된다. 잔인한 은행 강도였던 양아버지를 떠나 자원입대를 결정한 정의로운 과거의 윌과 사람들을 구하고 그들의 손을 잡는 구급 대원 캠의 모습을 말이다. 윌은 대니에게 총을 겨누면서 은행 강도의 피를 이어받은 형으로부터 인질 두 사람을 구해준 사람이 되었고 아내를 위한 돈도 챙기게 된다. 그리고 캠은 자신이 구해준 아이의 병실을 찾아가 조용히 손을 잡는다.
두 사람에겐 이 추격전이 각성의 계기이자 해피엔딩이 되었지만 멀리서 지켜본 이의 시선으로는 대니만 애잔하게 되었다. 대니가 죽는 순간에 지나갔던 어린 시절의 보안관 놀이 장면도 어째 아련함보단 약간의 어이없음을 불러온다. 그럴 거면 쏘지 말든가…!
아니 어쩌면 이 장면을 통해 대니를 나쁘기만 한건 아닌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동생에게 무조건적으로 져주던 멋진 형이었던 그의 모습을 보여주며 은행 강도를 하다가 죽은 게 아닌 끝까지 동생을 도와주려다 유명을 달리한 형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려고 한걸 지도.
완벽한 해피엔딩이 되기 어려운 시작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이 형제를 응원하고 있었기에 꽉 닫힌 해피엔딩이 되길 바랐다. 엔딩이 조금 아쉬운 반쪽짜리 해피엔딩이긴 했지만 이만하면 마무리까지 괜찮게 맺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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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랑은 옥수수 같아
2X9 구교환 대리운전 브이로그
https://youtu.be/QmAWZMIRYEo?si=agfrUTK9C47TSwg1
내 사랑은 옥수수 같아. 만일 연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흔히 남들이 말하는 거창한 사랑 같지는 않을 것이다. 완벽해 보이지도 않고 말이다. 어떤 남자의 사랑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다소 특이하고, 틈이 있는 옥수수 같은 사랑을.
유튜브에서 〈대리운전 브이로그〉를 마주한다면, 정말 대리운전기사의 24시간을 담은 브이로그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혹은 썸네일의 이미지도. 브이로그가 아니라 단편영화에 가까운 〈대리운전 브이로그〉는 그래서 여느 2X9 연출작들처럼 특별하다. 옥수수 농장을 하시는 아버지, 춤을 추고 나머지 시간은 대리 운전 아르바이트로 보내는 아들. 그런 아들 ‘구교환’(구교환)에게는 자신의 춤을 좋아하는 연인 ‘소정’이 있다.
어김없이 콜을 받고 주차장에 도착한 교환을 맞이하는 건 파란 오픈카와 두 여자다. 코앞에서 나누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범상치 않다. 드넓은 주차장과 비좁은 차 내부의 간극이 긴장감을 조성하며 그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두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교환은 당황하지 않는다. 소정의 두 언니 앞에서 되레 당당하다. 연인과 절대 헤어질 수 없다는 교환의 의지와 함께 심판이 시작된다. 마지막 91번째의 총성이 울릴 때, 2022년판 ‘백 투 더 퓨처’는 막을 내린다. 이별을 선언하지 않으면 총알을 맞이하게 되는 굴레 속에서, 교환은 가져온 옥수수 하나를 다 먹으면 소정과 헤어지겠다고 약속한다.
교환에게 사랑은 옥수수다. 내용물을 흘리지 않으며 원형을 보존할 수 있고, 비워진 정도를 개수로 단박에 알아차릴 수도 있으며, 모든 게 끝나도 단단한 심이 되어 남는 건 분명 사랑이다. 어떻게 보면 완벽한 구황작물이란 뜻이다.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고 싶진 않지만 대리운전을 나갈 때면 킥보드에 달고 다니는 옥수수도, 자동차 보닛 위에 마지막 의지를 남기고 온 옥수수 한 알도. 전부 교환의 사랑이다. 오늘도 교환은 옥수수와 사랑으로 점철된 꿈에서 소정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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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우리 사회에 숨어있는 ‘신분제’에 대하여
신데렐라 스토리
신데렐라 스토리는 진부하다. 단순히 반복적 활용 때문에 생긴 싫증은 아니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왕자를 만나 삶이 역전된다는 서사는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노라>의 이야기는 그런 신데렐라 스토리를 정면으로 비튼다. 그래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욱 마음 아프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여운에 묻혀 자리를 뜨지 못하였던 것은 외면했던 현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아노라>의 이야기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에게도 작용될 만큼 우리가 외면해 왔던 냉혹한 사회의 현실을, 그 현실에 살아가고 있는 한 여성을 조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노라 그녀의 꿈과 현실
‘아노라’는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성 노동자이다. 그렇다고 별반 다를 게 없다. 기계적으로 일을 하며, 일을 마친 후 좀비처럼 집으로 퇴근하는 모습은 지하철 속 직장인의 얼굴과 다를 게 없다. 호화롭게 살진 못해 밤에 일하고 낮에 자야 하는 삶임에도 교각 위 지하철이 시끄럽게 울려대는 집에서 도움 안 되는 수면 안대를 끼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는 삶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순간 꿈만 같은 남자 ‘이반’이 찾아오게 된다. 스트립 클럽 손님으로서 맞이하게 된 ‘이반’은 재벌 2세이다. 그것도 소위 ‘다이아 수저’라 불릴 만큼 돈이 많은. ‘아노라’는 그런 그와의 행복한 삶, 신분 상승을 꿈꾸게 된다. 대체 왜 마약, 파티, 섹스의 끝이 결혼이었던가. ‘아노라’와 ‘이반’은 그렇게 충동적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까지 하게 된다.
행복했던 나날들도 잠시, 그들의 결혼 문제가 기사화가 되며 러시아에 사시는 ‘이반’의 부모님은 하수인 세 명을 시켜 ‘이반’의 결혼을 무효화시키려 한다. 그렇게 둘의 집으로 불청객 세 명이 무단 침입하게 되고, 부모님의 화가 무서웠던 ‘이반’은 ‘아노라’를 버리고 도망가며 영화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신분의 벽과 권력의 작용
<아노라>는 우리가 외면해왔던 소외 계층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에게 작용하는 권력 관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사회 현실에 대해 교훈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영화에 반영함으로써 반감 없는 큰 공감을 이끌어낸다. 스트리퍼인 ‘아노라’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시종일관 쾌락에만 관심있는 ‘이반’과 달리, 그녀는 신분 상승의 욕망, 돈에 대한 욕심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도 결혼 문제, 가정 문제에 대해서 누구보다 진지한 모습도 내비치는 입체적인 인물로서 그려진다. 그녀가 갖고 있는 신분 상승의 욕망은 이미 어그러질 것을 짐작하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 안쓰럽고 처량하다. 그러한 모습은 동시에 ‘블랙코미디’와도 맞닿아 있다. 하수인 세 명이 맨션에 침입한 씬에서,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이반’을 시종일관 찾으며 나는 이반의 아내임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아노라’와 그런 그녀를 쩔쩔매며 통제하려는 건장한 러시아 아저씨들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이 시퀀스에서 그녀는 처량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웃기다’.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발버둥은 사라진 줄 알았던 우리 사회의 ‘신분제’ 시스템이 아직도 인식 차원에서 잔존해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행동 대장인 ‘이고르’, ‘가닉’ 그리고 그들의 보스인 ‘토로소’와 ‘아노라’의 육탄전에서 그러한 미묘한 권력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가닉’과 ‘토로소’는 ‘이반’의 가문에서 고용한 수행원들로, ‘이반’의 ‘사고’를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그들은 꽤나 건장한 체형의 ‘몸을 쓰는’ 남자들이지만 ‘이반’에게 손을 대면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은 ‘아노라’를 대할 땐 다르다. ‘창녀’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그녀가 ‘이반’의 가문에 ‘결혼 제도’로써 들어오게 된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인식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닌 그들의 고용주인 ‘이반’의 부모에게 잘 보여야 하고 이번 사고를 수습하지 못하면 이 고용 관계가 끊길 수도 있다는 압박이 오기 때문이다. 세 하수인과 ‘아노라’ 그리고 도망가버린 ‘이반’과 그의 가문에 명확히 보이는 ‘계급’이 존재한 것이다. 재밌는 인물은 ‘이고르’이다. 그는 ‘가닉’이 오늘 일만 도와줄 사람으로 부른 어찌 보면 세 하수인 중 권력이 가장 낮은 인물이다. 멍청하게도 보이는 그는 ‘아노라’에게 어색한 공기 속에서 연신 미안하다, 이러면 안 된다 등의 말을 되풀이한다. 이런 사소한 유머 씬에서도 우리는 더 미묘한 권력 관계를 엿볼 수 있게 된다.
비극적 희극, 씁쓸한 웃음
영화는 이러한 미묘한 관계를 블랙코미디 요소와 결합하여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세 하수인과 ‘아노라’의 도망가버린 ‘이반’을 찾는 좌충우돌 로드 무비도 인상적이다. 하는 일마다 꼬이고 난관에 봉착하며 시종일관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서는 미묘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 상황에서도 권력 관계는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미묘하게 드러난다. 영화를 보며 씁쓸한 웃음을 계속 짓게 되는 이유이다. 이런 미묘한 권력 관계와 블랙코미디를 적재적소에 배합하여 하나의 극을 이끌어 간 그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의 여운을 자아내는 엔딩씬, 여러 해석이 존재하지만 그런 해석의 다양성이 이 영화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신분이란 무엇인가. 분명 조선시대 이후로 봉건 사회가 개혁되며 노예 제도, 신분 제도는 분명 없어진 것 아니었나. 단지 ‘스트리퍼’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한 인물의 욕망이 좌절되며 바꿀 수 없는 큰 벽에 부딪히게 된다. 소위 ‘결정사(결혼정보회사)’라고 불리는 곳에서 아직도 남아있는 신분제의 모습을 더욱 적나라하게 확인 할 수 있다. 남자의 학력, 연봉, 여자의 외모와 직업.... 이 모든 것이 평가에 대상이 되고 등급이 매겨진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을 보면, ‘돈’을 매개로 육체적 관계를 놓고 일종의 ‘거래’가 이루어지며 돈 있는 자와 몸을 파는 자의 권력 관계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러고 보니 과연 그뿐만일까. 우리 사회에 곳곳에 이러한 권력 관계는 미묘하게 숨어있다. 그러니 영화의 마지막, ‘아노라’가 ‘이고르’와 관계 도중 갑자기 울어버리는 그 장면에서 아직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그녀의 울음은 아마 진실된 사랑을 찾은 안도감에서 나오는 눈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신분’이라는 큰 사회적 장벽에 부딪히고, 자신을 ‘애니’가 아닌 ‘아노라’ 자체로 봐줄 수 있는 남자가 있음에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위치와 정작 그 남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섹스뿐인 그 비참한 현실에 낡은 차를 가득 뒤덮는 현실의 무거운 눈처럼 먹먹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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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디어 조이, 디어 재클린
편지로 영화 리뷰를 써보기는 처음입니다만, 당신들의 이름을 꼭 부르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고독의 지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명명해 주었듯이.
우선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대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감히 추측해보자면 수상이 당신들의 일과에 큰 변화를 줄 것 같지는 않아요. 조이는 여전히 매일 세이블 섬의 해안에서 죽은 새를, 말똥을, 쓰레기를, 물범을 살피겠죠. 재클린 당신도 어디선가 내가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끌어내고,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담아내며 작업을 계속할 같습니다. 우리 셋(이라고 묶어도 된다면) 중 이런 소식에 연연하는 사람은 저뿐일 것 같네요. 이 영화와 가장 무관한 사람인데 말이죠...
하지만 한 관객으로서, 이 이야기가 더 멀리 퍼져 나가길 바라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고 무작정 주장해 봅니다. 아무튼 기뻐요. 결과를 예상하고 예매한 건 아니었지만요. 뭐가 경쟁 부문인지 아닌지도 신경 쓰지 않고, 저의 일정과 영화에 붙은 짧은 소개글만을 보면서 영화를 고르거든요. 참고로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당신들의 영화는 한국어로 이렇게 소개되었습니다. 한번 보세요.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해역의 외딴곳, 세이블 섬에 두 여성이 있다. 환경 보호 활동가인 조이 루커스는 1970년대에 처음 이 섬에 당도했을 때 미술학도였다. 조이가 이 가느다란 땅에서 지낸 세월은 벌써 수십 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왔다."
"70년대 미술을 공부하던 조이 루커스는 캐나다 세이블 섬을 방문하고, 이후 그곳에 거주하기로 결정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섬의 식물과 동물을 연구하는 데 쓰고 있다. 카메라는 조이의 일상을 따라가며 섬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곳을 배회하는 야생마들을 비춘다. <고독의 지리학>은 감독과 그의 관찰 대상인 루커스의 삶과 작업에 대한 철학을 내포한 작품이기도 하다. 물질적 가치와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일에 대해 장인 못지않은 헌신적인 태도로 임하는 이들의 모습은 세상사와 관계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면서 기쁨을 찾는 두 여성의 행복감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비록 이런 삶이 외로움을 동반한다 하더라도 이는 진정한 예술가의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문성경]"
노바스코샤는 제가 사랑하는 빨간 머리 앤의 출생지예요. 프린스 에드워드 섬 에이번리 마을은 그가 자란 곳이고, 부모님이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기 앤은 노바스코샤에 있었죠. 게다가 야생마라니. 저로서는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말과 책만 있으면 된다고, 그렇게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던 사랑스러운 십대 시절의 그를.
내 어딘가가 잘못된 게 아닐까 스스로를 불안해한 적이 있고, 책을 좋아하며, 꿈이 많았던 여자아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앤과 조 마치를 그려봅니다. 저 또한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직도 사회가 기대하는 "삼십대 여성"의 삶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더 가깝게 느껴요. 그래서 그들을 연상시키는 단어에 끌렸고, 이어 당신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당신은 왜 그 섬에서, 왜 그 연구를 할까? 당신은 왜 거기서 그 모습을 촬영했을까? 무엇이 당신들을 그렇게 움직였을까?
언제부턴가 "이제 어디로 가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갈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많은 길 중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서요. 정답지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습니다. 오늘을 사는 건 처음이니까.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생을 톺아보다 문득, 지금이 나의 최전선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실 평생 동안 매일 마찬가지였는데 참 새삼스럽지요.
삶을 길에 비유하는 건 익숙하지요? 거긴 어떤지 몰라도 여긴 나이에 따라 할 일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어, 그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어떤 감정들에 부딪히게 됩니다. 내가 이상한 걸까 하는 고민부터, 내 선택을 행복과 성공으로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까지. 솔직히 저는 스스로가 아주 이상한 케이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평범과 거리가 멀다고 여기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긴 해요.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인생 전체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던 제 자신이 불안합니다. 내가 나를 책임져야만 할 것 같은데 방법을 몰라서요. 앞으로를 어떻게 그려갈 것인가 밑그림을 잡아두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직장인 생활을 몇 년 하고 나니 "커리어 패스career path"가 종종 입에 오르고, 주변에서는 결혼 계획을 묻습니다. 질문이 늘어갈수록 가볍게 떨쳐지지 않습니다. 훌륭한 직업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계획 없이 취미에 몰두하는 내가 너무 안일한 걸까?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 여기는 내가 이상한 걸까? 어른들이 인생의 지혜로 하는 말들을 나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걸까? 불안과 질문이 삶의 전방위로 거미줄처럼 뻗어갑니다.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내가 한 선택들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야만 할 것 같고요.
영화를 보면서 이 마음에 도움이 될 만한 실마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의 삶을 멋대로 기대해서 미안합니다만, 영화 속에 확신에 찬 당신들이 있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불안해지는 질문들 앞에 이 영화를 방패처럼 휘두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이유로 들어선 영화관에서, 기이하리만큼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파도가 깨진 자리에 빛이 튀기고, 바람이 풀밭을 쓸어주는 모습은 그래도 전에 좀 보았지만... 태어나 처음 보는 것들이 그토록 많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이런 걸 볼 수 있다 상상도 해보지 못했어요. 암실에서 작업하는 대신 별빛에 노출시키고 해초로 현상한 필름. 말똥에 묻었다가 들풀로 현상한 필름.
작업하면서 둘이 보냈을 시간을 상상해 봅니다. 잔잔하고 평온한 애정의 시간. 동시에 단조롭고 이따금 지치는 노동의 시간. 생이란 본디 그런 것일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무용한 것들이 정말 무용한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당신들의 작업에 자꾸 "왜?"를 붙이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말똥 속 벌레를 왜 잡아서 보는 거지? 물범이 새끼를 뱄는지 왜 살피지? 그걸 어디다 쓰지? 이 질문들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당혹하게 만듭니다. 나는 그걸 왜 묻지?
습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중구난방의 삶을 어떻게든 그럴듯해 보이도록, 멋진 일직선의 설계를 할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매 순간 저에게 하나하나 따져 묻고 있던 것입니다. 이걸 해도 되나? 왜 하려는 거지? 대신 저걸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들의 작업물에는 "왜"가 없었습니다. 단지 앎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기반으로 내린 수많은 선택이 있었습니다. 순간의 자잘한 선택들이요.
미대생이었던 조이 당신이 지금 모습이 되기까지, 그저 이 섬이 좋아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다는 오늘까지, 수많은 선택들이 중첩되었을 뿐. 무수한 선택들이 모여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갑니다. 3년용 프로젝트로 지은 집이 20년을 버티기도 하고, 때로는 한 번의 만남이 모든 걸 바꾸기도 하죠. 그러니 저는 예상할 수 없는 이 삶의 여정 각 단계를 설계하겠다고 아등바등 애쓰는 게 아니라,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내가 오래 바라봐도 지치지 않을 방향이 어디인가, 조용히 묻고 답을 찾으면 그만이었던 거예요.
"일단 해보자"는 재클린 당신은 또 어떤가요. 나무가 그림을 그리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는 사람이라니. 세상에 누가 개미의, 달팽이의, 딱정벌레의 음악을 전달해 주겠어요.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음악들이 있죠. 요즘 케이팝은 표절 시비를 피하기 위해 여러 곡을 믹스해 내기도 한대요. 그러다 보니 같은 곡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전혀 다른 곡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딱 케이팝이 복잡해진 만큼 세상 모든 게 다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알아야 할 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하나라도 놓치면 도태될까 두렵습니다. 이런 마음을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라고 부른다는데... 저는 이런 단어까지도 놓치지 않겠다고 아등바등, "포모"로 살아왔네요.
재클린, 당신이 음악에 조예가 깊은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만 당신이 포모가 아니었음만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일단 해보는 그 마음 하나로, 세상 가장 고유한 음악을 (저작권료 지불도 없이!) 여기까지 데려왔어요. 음악의 역사에 정통할 필요도, 지식을 섭렵할 필요도 없었을 거예요. 결국 세상이 뭐라든, 뭐가 어떻든, 자기 길을 가는 것만이 정답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알면서도 어딘가에서 더 손쉽고 덜 외로운 해답이 뿅 나와주지 않을까 기웃거리던 마음을 부정할 수 없네요.
두 사람이 내게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깊은 생각 하지 않고, 네 할 일을 하라고. 당장은 에둘러 가는 길처럼 보일 수도 있고, 뒤죽박죽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 보여도 괜찮다고. 굵직한 일 없어도 단지 계속하는 게 얼마나 강한 일인지 아느냐고. 물개 연구 모임에 취사 담당으로 자원해 세이블 섬을 다시 밟았던 조이, 당신이 지금 거기 남은 유일한 사람이듯이.
그 섬을 집이라 부르기까지 당신이 놓쳐버린 것들도 물론 많음을 인정하지만, 사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기에 그걸 인정하는 게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는 태도일 거예요. 그 끝에, 사랑이라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는 거겠죠.
저는 이제 저에게 "왜"라고 묻지 않으려 합니다. 이걸 해서 뭐에 쓸 거냐는, 생산성의 질문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무실의 일에서처럼 전체를 가늠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을, 제 인생을 대상으로도 해보겠다고 애쓰지 않을 거예요.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단지 바라볼 겁니다. 풀숲에 앉아서, 풀잎과 바람 속에서 녹색 바다를 보는 눈이 있다면 다 괜찮을 거예요. 오늘의 쓰레기를 줍고 숫자를 헤아리면서도, 조이 당신처럼 장미와 향나무 냄새를 느끼겠지요. 그거면 돼요.
재클린은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사랑으로 한 일a lavour of love"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이 삶을 들여다보려 해요. 지금 사랑하는 것들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아직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걸 지금 말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다만 우연으로 보이는 것들조차 첩첩 쌓이다 보면 상당한 무게가 생기고, 무게가 생긴 것들이 어디로 기우는지 보면 되겠죠. 놓치는 것도 낭비는 아닐 겁니다. 방목되다가 잊힌, 연안의 섬을 뛰어다니는 야생마들은 멋졌으니까. 제 삶에 그런 말들이 뛰어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무튼 끝에는 반드시 어딘가로 흘러갈 것만은 확실합니다. 당신들의 세이블 섬처럼. 직접 만든 드림캐처와 엽서가 가득 붙어 있는, 그 멋진 책상 위처럼. "일단 해본" 그 모든 아름다운 필름 위처럼.
거기서 다시 만날게요. 고독의 지리학도들에게 소실점은 그곳일 테니까.
전주국제영화제 정보
▶ 아쉽지만 이번 영화제의 모든 상영이 끝났어요.
▶ 자세한 정보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프레스로 참석하였습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2022년 5월 7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계속 진행됩니다.
일부 온라인 상영작도 있어요. 어디 계시더라도 우리 전주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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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후의 초상화 밖으로 뛰쳐나간 여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코르사주>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이름을 날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 '엘리자베트(비키 크립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플로리안 테히트마이스터)' 황제는 인형과도 같은 황후의 역할만을 요구한다. 이에 엘리자베트는 답답한 코르사주(코르셋)를 조인 채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며 그저 우아하게 앉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마흔 살이 넘어가면서부터 그녀는 아들인 '루돌프(아론 프리즈)' 황태자의 경고도 무시한 채 여행, 불륜, 마약에 손을 대며 한 명의 여성이자 개인의 삶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2022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고,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오스트리아 공식 출품작으로 선정된 영화 <코르사주>. <코르사주>는 흔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후이자 ‘시씨’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사실 엘리자베트 황후의 이야기는 뮤지컬 '엘리자베트(엘리자벳)'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자유분방한 소녀였지만 황후가 되었고, 전통과 관습이 지배하는 궁정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아름다운 미모로 전 유럽 사람의 찬사를 자아냈지만, 미모를 관리하던 중 거식증에 걸리는 등 온갖 고초를 거쳐야 했다. 그러면서도 궁전을 벗어나 자유를 갈망한 비운의 황후였다. 마치 다이애나 스펜서의 선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코르사주> 속 엘리자베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영화는 그녀의 일대기를 그려내는 대신 '마흔이 된 황후 엘리자베트’의 변화에 주목한다. 특히 그녀가 어느 시점부터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착안해 왜 그러한 선택을 내렸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렇게 영화는 황후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한 인간 엘리자베트의 얼굴을 세상에 내보인다.
영화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숨을 참는 엘리자베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목욕을 마친 그녀는 코르사주로 허리를 동여맨다. 준비를 끝내고 황제와 함께 미술관 개장 행사에 참여한 그녀는 코르사주를 지나치게 세게 묶은 나머지 돌연 정신을 잃고 기절한다. 하지만 그 후로도 그녀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계속해서 아름다운 인형으로 남아야 한다. 일례로 그녀의 식단은 만찬과 연회 중에도 철저한 관리 대상이다. 그녀는 남들이 먹는 화려한 음식들에 손조차 댈 수 없다. 황후에게는 황제 옆에 서서 인형처럼 웃는 것 외에 다른 일이 없으므로, 조금이라도 인형의 외관에서 벗어나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마흔 살 생일을 맞이하자 더 많은 압력이 가해진다. 황실 소속 화가가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자 주치의는 여성의 평균 수명이 마흔이니 더 각별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오프닝은 엘리자베트라는 역사적 인물의 삶을 빌려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지를 명확히 암시한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아름다움'이라는 미적 기준이 개개인을 억압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들며, 수동적인 존재로 격하한다고 비판한다. 이전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권리가 보장되었는데도 여전히 아름다움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엘리자베트를 구속한 악습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탈코르셋’(탈코) 운동처럼도 보인다. 사회구조적 외모 강박 혹은 여성성 강요에 저항하려는 목적으로 화장이나 긴 머리, 여성적 옷차림 등 ‘사회적 여성성’을 부정하는 시도가 엘리자베트의 삶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는 한 개인으로서 엘리자베트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선택과 황후로서 엘리자베트가 자신을 옥죄는 규범을 어기며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을 같이 위치시킨다. 그녀는 코르사주를 벗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단발로 잘라버린다. 동시에 황제의 부인이라는 지위를 거부한다. 황제에게 정부를 소개하고, 영국인 승마 선수 조지 베이나 사촌 루트비히 2세와는 사랑과 우정 사이의 관계를 유지한다. 한편으로는 황후로서 참석해야 할 공무를 외면한 채 자유를 즐긴다. 또 고정된 이미지로 남아야 하는 초상화 작업은 거부하지만 자유롭게 들판을 거니는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동영상 촬영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황후의 삶을 포기하고 여성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하는 엘리자베트의 노력은 그녀가 갖고 있던 또 다른 가능성 때문에 더 인상적이다. 그녀는 우울증에 시달린 자기 경험을 투사하며 정신병 치료와 정신병원 시설 개선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림을 그리는 예술적인 면모도 지녔고,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발칸반도 진출과 관련해 전황을 판단할 줄 아는 식견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만약 그녀가 미모를 가꾸는 데 열중해야 했던 시간과 노력을 다른 데에 투자했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의 지향점을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는 황실의 모습을 비추면서도 화려한 궁전 내부를 기대보다 자주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각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칙칙하고 어두운 통로들을 더 자주 비춘다. 마치 겉보기에는 화려하나 실제로는 생기가 없는 엘리자베트의 외관과 내면을 한 공간에 담기라도 한 듯이. 또 그렇기에 <코르사주>가 완성한 황후 엘리자베트의 새로운 초상도 인상적이다. 황후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바닷속에 몸을 던져 자유를 얻는, 비극적이면서도 엄청난 해방감을 선사하는 결말의 순간에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엘리자베트를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인과 황후라는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엘리자베트의 변화를 <코르사주>가 과연 적절히 전달하는지는 의문이다. 영화는 엘리자베트라는 실존 인물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만 부각해 원하는 인물상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마리 크로이쳐 감독은 "영화적 내러티브로 전환하면서 내용과 형식적으로 많은 자유를 부여했다"면서 "이야기하거나 묘사하는 것에 있어 모든 역사적 ‘실수’는 모두 예술적 결정이었다. 나는 멋지고 깔끔한 전기 영화를 만드는 데 관심이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코르사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 또한 조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선택은 그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황후라는 지위가 얼마나 부담되고 무거운 자리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엘리자베트의 고난과 시련이 구체적으로 와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쇠락기에 접어든 제국이었다. 1866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제국이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헝가리의 요구를 일부분 받아들여 1867년에 오스트리아 황제가 곧 헝가리의 군주를 겸임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군주제 체제를 구축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나름 동등한 위치로 제국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제와 황실의 존재는 붕괴 위기에 빠진 제국을 지탱할 몇 안 되는 도구 중 하나였다. 마치 엘리자베스 2세와 영국 왕실이 영국이라는 국가와 영연방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어 유지한 것과 유사한 역할을 맡아야 했다. 즉, 당시 황제와 황후, 그리고 황실은 서로 다른 민족과 국가를 하나로 묶는 상징이자 실질적 제도로서 기능해야 했다. 실제로 엘리자베트의 막내딸 발레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제국의 통합을 상징하는 공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황후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은 단순히 미모를 관리하는 것 이상으로 무거운 책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나 맥락을 알 수 있는 장치는 많지 않다. 특히 오스트리아 관객이 아니기에 더욱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 결과 엘리자베트가 겪은 여러 어려움은 그저 막연하다. 짐작하고 동조할 뿐, 설득될 수가 없다. 황후로서 역할이 얼마나 막중했는지, 그녀의 역경이 얼마나 큰지, 또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강한지 명확히 드러날수록 해방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큰 쾌감이 느껴질 것이고, 그녀에게 자유가 의미하는 바가 더 절실히 느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왜 승마를 그토록 사랑했는지, 왜 그토록 손쉽게 마약에 빠져들 수박에 없었는지 그 동기와 계기도 더 잘 설명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다음처럼 이해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엘리자베트가 황후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도 져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전자를 누릴 뿐, 후자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 배경이 어떻든 간에 작중 엘리자베트가 결국 무책임한 인물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몸이 약한 막내딸을 굳이 새벽에 외출시켜서 감기에 걸리게 하는 것, 그토록 엄중한 상황에서 자신의 스케줄을 마음대로 거부하는 것, 평생 여행을 다니며 황후의 역할을 회피하는 것도 마냥 동정을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제목인 코르셋(코르사주)이라는 상징에 담긴 <코르사주>의 메시지는 여전히 시의적절하다. 그 메시지를 현현한 엘리자베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충분히 흥미롭다. 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소 부적절한 것도 사실이며, 그 결과 과연 이 영화가 원하는 대로 수용되거나 해석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코르사주>는 황후와 여성 사이에서 길 잃은 엘리자베트만큼이나 모호한 인상을 남긴 채 막을 내리고 만다.
A(Acceptable, 무난함)
평범한 여성이 되고 싶었던 황후. 실존적 불안과 치기 어린 불평 사이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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