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2-18 12:01:44
2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1
크리스토퍼 놀란 <오디세이> 첫 모습 공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 역을 맡은 맷 데이먼의 첫 모습이 공개되었습니다.
공개된 모습으로 비추어 볼 때, 놀란은 현대적인 해석보다는 전통적인 그리스 배경을 선택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디세이>는 2026년 7월 17일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통해 극장 개봉될 예정이며,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앤 해서웨이, 젠데이아, 루피타 뇽오, 로버트 패틴슨, 샤를리즈 테론 등 유수의 많은 배우가 출연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배우 케이트 윈슬렛, 영화감독 데뷔 앞뒀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배우인 케이트 윈슬렛이 영화 <Goodbye June 굿바이 준>으로 감독 데뷔를 앞뒀습니다.
케이트 솔로몬과 윈슬렛이 공동제작하며, 워킹 타이틀이 총괄 제작자로 참여하는 <굿바이 준>은 윈슬렛의 아들 조 앤더슨이 각본을 썼고,
현재 영국을 배경으로 갑작스럽게 겪게 되는 힘든 현실을 계기로 함께 뭉치게 되는 붕괴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고 합니다.
토니 콜렛, 조니 플린과 더불어 윈슬렛 본인도 영화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폴 메스칼, 조쉬 오코너 주연 퀴어 영화 <역사의 소리> MUBI 판권 구매

연기력과 스타성을 인정받고 있는 신예 폴 메스칼과 조쉬 오코너가 출연하는 퀴어 영화 에 MUBI가 합류했습니다.
벤 샷턱이 쓴 단편 소설을 기반으로 한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리오넬(메스칼)과 데이비드(오코너)가
나라의 이야기와 노래를 녹음하며 사랑에 빠지는 역사적 로맨스 드라마로 알려졌으며, 2025년 칸 영화제에서 첫 상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배우 해리스 딕킨슨의 감독 데뷔작 <Urchin>

<베이비걸>, <슬픔의 삼각형> 등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배우 해리스 딕킨슨이 첫 장편영화 연출에 도전했습니다.
그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장편 영화 <Urchin 부랑아>는 베를린 유럽 필름 마켓(EFM)에서 판매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영화는 런던에서 자멸의 고리에 갇혀 자신의 삶을 바꾸려는 노숙자 마이크의 이야기를 다루며,
“거칠고 어처구니없으며, 우리를 다시 끌어당기는 이상한 패턴에 관한 이야기”라고 알려졌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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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기만큼 아름다운 쓰러지기.
이형기의 낙화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군가가 은퇴를 선언한 순간
그의 과거를 톺아보려는 시도는 많이 있었다.
발레의 이단아라 불리던 세르게이 폴루닌의 서사를 생각하면
그가 은퇴를 선언한 시점,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은 당연하다.
<댄서>는 젊은 무용수가 발레를 그만두는 시점에서 자신의 역사를 톺아보는 영화다.
그가 발레를 시작한 순간부터 그가 자신의 은퇴 무대를 준비하고 끝내기까지의 과정.
위에서 언급한 부분은 시의 첫 연이다.
다음 연에서는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가난했지만 발레를 사랑한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의 '봄 한철'을 추억한다. 그러곤 과감히 이 사랑하는 일을 멈추고자 선언한다.
그의 선언은 발레가 싫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이 저물고 있음에 대한 경각심에서 비롯된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라고 이어지는 구절처럼, 발레를 그만두기로 한 그의 선택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해야 하는 것'이 된다.
이미 허공으로 뛰어버린 그의 발끝은 다시 바닥에 다을 수 없는 거시앋.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꽅답게 죽는다."
라고 선언하 듯,
무성한 녹음 속에서 춤추는 그의 마지막 춤
Take me to church는
자신의 청춘(발레)에 대한
애달픈 연서이면서도
가차 없는 이별 통보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을 추억하듯,
그의 뛰기는 섬세하고
그보다 인상적인 넘어지기와 구르기가
이 댄스비디오를 지배한다.
그의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코
이형기가 낙화의 마지막 연에서 말하듯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처럼 슬프지만 성숙한
때론 담담하고 의지에 불타있는
그의 들숨과 눈빛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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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는 강하게, 공포는 약하게
우리는 종종 가슴 아픈 일들을 만난다. 그렇게 만난 아픈 과거는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아픈 일을 완전히 잊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심한 상처를 남긴 과거를 완전히 잊기는 어렵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괴롭히는 그 일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마음에서 멀어져 간다. 그것도 단지 생각이 멀어질 뿐이지 마음 깊은 곳에 그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사람들은 그 아픈 일은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앞으로 나가면서 과거의 아픔을 어느 정도는 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또한 그렇게 아픈 기억을 지우는 것만이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과거의 일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미래를 대처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따라 마음의 짐이 가진 무게가 달라진다.
<인시디어스> 1편과 2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인시디어스: 빨간 문> 은 2012년과 2013년에 연달아 개봉했던 <인시디어스>와 <인시디어스: 두 번째 집>에서 9년이 지난 현재를 다루고 있다. 조쉬 램버트(패트릭 윌슨) 가족에게 찾아온 기이한 일을 다루는 영화는 ‘저 너머 세상‘ 로 불리는 다른 차원의 세계와 연결되는 조쉬와 그의 아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기이한 일들로 고통받던 조쉬의 가족은 영매인 엘리즈(린 샤예)와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에게 나타나는 기이한 일의 원인을 알게 된다.
특히나 ‘저 너머 세상’에 있는 악령은 현실에서 넘어온 조쉬와 그의 아들 달튼(타이 심킨스)의 삶이 큰 영향을 준다. 지난 이야기 속에서 악령에 의해 조정되어 움직이는 아빠 조쉬는 그의 가족들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적이 있다. 그건 악령의 조종이라는 타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모든 가족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일이 해결되고 나서 최면을 통해 그 기간에 벌어진 일을 잊게 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니까 조쉬와 달튼은 아픈 상처를 계속 떠올리는 것 보단 완전히 잊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시리즈의 1편과 2편이 흥미로웠던 건 '저 너머 세상'의 모습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것이 가족 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습을 담았다는 데 있다. 특히나 악령에 씌인 아빠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가장 친숙한 존재가 망치를 들고 가족을 해치려 하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아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평소엔 아주 좋은 아빠이지만 어느 순간 돌변해서 가족들을 해치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마치 영화 <샤이닝>의 정신 나간 아빠를 보는 듯한 모습은 무척 공포스러웠다.
이번 <인시디어스: 빨간 문>은 전편에서 9년의 시점이 지난 후를 다루고 있다. 본의 아니게 가정폭력의 상흔을 가지고 살아온 가족들 중 모든 것을 기억하는 아내 리나이(로즈 번)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그 상흔을 가지고 살아왔다. 비록 조쉬와 달튼은 최면을 통해 그 당시의 기억을 지웠지만 조쉬는 다시 과거와 같은 다정한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달튼도 성장과정에서 일상에 적응하고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조쉬와 아내는 이혼을 했고 조쉬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아이들을 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가족과 잘 지내지 못하는 아빠 조쉬
영화는 마치 아이가 어린 시절 느꼈던 아빠에 대한 공포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조쉬와 달튼은 서로 가까워지려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아 보인다. 조위와 달튼의 대화를 딱 그 시점만 보면 그저 사춘기 소년과 아빠의 어색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시리즈의 1편과 2편까지 생각하면 과거에 겪었던 폭력적인 일과 쉽게 연관 지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 5편에서는 조쉬와 달튼의 상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왠지 모르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기억을 지웠기 때문에 그들 자신도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과거의 상처를 그냥 덮어놓는 방식으로는 서로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가진 상처를 드러내고 그것을 서로 이해해야 비로소 진짜 좋은 관계가 시작된다.
<인시디어스: 빨간 문>에서 훌륭한 건 이렇게 과거의 상처를 덮은 가족이 다시 그 기억을 복원하고 그 공포를 이겨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잘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 자체로 과거 1편과 2편의 이야기를 완전히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는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다. 아빠와 아들이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그 감정이 왜 그렇게 행동하게 했는지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 두 사람은 다시 '저 너머 세상'에서 만나 힘을 합한다.
두 사람이 따로 떨어졌을 때보다는 함께 있을 때 전달되는 감정의 파고가 더 크다.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불편함을 크게 드러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 얼마나 상대방을 아끼고 있는지, 상대방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후반은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마음 속의 아픈 상처를 드러낸 아빠와 아들
이렇게 아빠와 아들, 그리고 조쉬 가족 모두의 서사는 나쁘지 않다. 과거 1편과 2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이야기도 좋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드라마가 아니라 공포 영화라는데 있다. 과거 시리즈에서 '저 너머 세상'과 현실을 오가면서 벌어졌던 숨 막히는 긴장감이 이번 영화에서는 덜 느껴진다. '저 너머 세상' 이 초반에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고 후반부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렇게 보여지는 공간이 오히려 작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악령이나 '저 너머 세상' 보다는 조쉬와 달튼의 관계에 집중하다 보니 공포 영화로서의 매력이 과거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과거 <인시디어스>와 <인시디어스: 두 번째 집>은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을 맡았었다. 그는 <컨저링> 시리즈를 연출했던 것처럼 집안과 가족들의 주변을 활용해 무척 효율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 이후 <인시디어스3>과 <인시디어스: 라스트 키>는 각각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이번 <인시디어스: 빨간 문>은 극 중 조쉬 역할을 연기한 배우 패트릭 윌슨이 직접 연출을 맡았다.
패트릭 윌슨은 자신이 <컨저링>이나 <인시디어스> 시리즈에서 연기를 하면서 경험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번 영화를 첫 연출작으로 택했다. 그는 조쉬와 달튼의 부자 관계를 보여주면서 드라마를 더 강화했고,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 효과인 점프 스케어 등을 활용하면서 공포 영화로서의 효과도 높이려 했다. 드라마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게 전개되었지만 시리즈 특유의 공포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시키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절반의 성공인 연출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조쉬의 가족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들은 과거의 가슴 아픈 일을 잊는 것을 택했지만, 영화는 그렇게 잊는 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조쉬와 달튼이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하는 순간이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비록 공포 영화로서의 힘은 조금 떨어지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풀려가는 과정 자체는 무척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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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도시 여성의 세 갈래 삶
7★/10★
세 여성의 삶과 생활로 대도시 뭄바이에 입체적, 구체적 질감을 부여하는 이 영화의 전반부는 정말 최고다. 뭄바이에 대한 단순하고 건조한 설명과 해설을 넘어 그 공간의 근본적인 특징을 결정짓는 아주 미세한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전달해내는 것이다. 영화는 대도시 뭄바이로 몰리는 사람들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도시의 풍경과 더해져 펼쳐진다. 그 연장에서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 사람은 모두 병원에서 일한다. 프라바와 아누는 간호사고, 파르바티는 조리사다. 그들은 각자의 문제를 대면하고 있다. 프라바는 얼굴도 모르고 결혼한 남편이 어느 날 독일로 떠난 후 1년 넘게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다정한 의사가 프라바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어찌 되었든 남편이 ‘있다’는 이유로 프라바는 그를 밀어낼 수밖에 없다. 발랄하고 솔직한 성격의 아누는 이슬람교도 남성 시아즈와 연애 중인데 서로 다른 종교 문화권에 속한 두 사람은 긴장을 품은 채로 만남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파르바티는 남편 사망 후 살던 집이 재개발로 헐려 쫓겨날 위기다. 오랫동안 살아온 집이지만 자기 집이라는 걸 입증할 서류가 없어서다.
세 사람의 문제는 동시대 뭄바이가 어떤 공간인지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프라바는 전근대적 결혼 풍습과 근대적 친밀성 경험의 충돌이 여성에게 어떤 혼란을 야기하는지를 보여준다. 아누는 도시 내 종교적으로 구획된 생활, 문화의 경계가 굳건하며 이를 넘는 것이 하나의 금기라는 점을 일러준다. 파르바티의 고난은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진행되는 재개발이 어떻게 그곳에 먼저 살던 사람들의 삶을 소외시키는지를 증명한다. 세 여성의 삶을 통해 우리는 역사, 문화, 자본의 관습과 욕망이 어지러이 중첩된 뭄바이의 현재를 분명하게 목격하고, 감각한다. 우기를 맞은 도시에는 늘 거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중이다.
후반부, 영화의 방향이 바뀐다. 이번에는 파르바티의 고향 집이 있는 시골이 무대다. 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이사 가는 파르바티를 돕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이곳은 그들이 자기 문제를 ‘해소’하는 무대가 되어준다. 프라바는 꿈 혹은 환상 속에서 자신을 떠나간 남편에게 완전한 단절을 선언한다. 뭄바이에서, 프라바는 언젠가 다리를 벌린 채 바닥에 앉아 남편이 보내준 고급 밥솥을 품으로 끌어안은 적이 있다. 마치 밥솥이 남편 신체의 상징물이기라도 하다는 듯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것만 같다. 신체 없는, 관념 속의 남편과의 공허한 섹스 시도다. 파르바티의 고향에서 프라바가 남편을 떨쳐내는 과정은 그녀가 바다에 빠져 의식을 잃은 남자를 구조한 후 그와 대화하며 이뤄진다. 남편의 상징물에 불과한 밥솥을 껴안던 프라바가 다른 누군가를 살린(인공호흡) 후 남편을 끊어내는 건, 그녀가 공허한 상징의 세계에서 구체적 물질의 세계로 나아가며 남편(즉 프라바의 현재를 붙잡는 전통적 친밀성의 질곡)과의 단절을 이루어낸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누와 시아즈 역시 관계에 깊숙하게 깃든 두려움을 걷어낸다. 즉, 두 사람을 멀게 하는 사회문화적 차이를 제쳐두고 서로에게 집중하며 관계를 깊게 만들어나갈 것을 다짐한다. 파르바티도 그곳에서 새로 일자리를 얻어 서류로 증명하지 못해 빼앗기는 삶과는 다른 삶, 즉 주권을 박탈당하지 않는 삶을 이어갈 것이다. 프라바, 아누, 시아즈, 파르바티는 어느 해가 저문 바닷가에 가만히 앉아 뭄바이를 떠난 후자신들에게 닥친 변화를 호흡한다. 누군가는 다시 뭄바이로 돌아갈 테고, 누군가는 그곳에 남을 것이다. 뭄바이를 매개로 한 동시대 인도 여성의 무수한 삶 갈래 중 세 가지 노정路程이 이렇게 갈래가 잡힌다. 그리고 마침내, 비가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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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련된 신파와 영리한 전략이 만나면 생기는 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걱정을 딛고 일어선 <무빙>의 대성공
지난 2달간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 <무빙>은 600억 가량의 제작비, 조인성, 한효주, 류승룡 등 화려한 라인업으로 인해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마냥 긍정적인 기대는 아니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디즈니+가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의 흥행이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오리지널 콘텐츠 팀이 없어졌다는 말이 들릴 정도였다.
<무빙>의 장르도 악재였다. 초능력자 히어로물은 더 이상 특별한 소재라 볼 수 없다. 초능력자를 이용하고 팽한 국가와 국가에게 복수하려는 초능력자의 갈등과 비극. 숱한 할리우드 작품에서 이미 여러 번 맛본 이야기다. <엑스맨 시리즈>가 그러했고, 넓은 범주에서 보면 <어벤져스> 시리즈도 비슷한 소재를 다룬 바 있었다.
하지만 <무빙>은 결과로 증명했다. 우려를 넘어서 기대대로 디즈니+의 구세주가 되는 데 성공했다. 구독자 수는 75%가 넘게 늘었고, 시즌 2 추진도 결정됐다. 달리 말해 <무빙>에게는 다른 디즈니+ 작품이 갖지 못한 매력이 있었다.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고,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소재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매력. 그 힘은 명백하다. <무빙>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가능한 세련되게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한국인의 최애, 가족 드라마
<무빙>의 외피는 히어로물이다. 하늘을 날고, 초인적인 오감을 지녔으며, 미친 듯한 회복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로 움직일 줄 아는 초능력자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화려한 액션은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감추는 포장일뿐이다. 한 꺼풀만 벗겨 봐도 <무빙>이 본질적으로 가족 드라마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무빙>은 세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장주원(류승룡)-장희수(고윤정), 김두식(조인성)-이미현(한효주)-김봉석(이정하), 이재만(김성균)-이강훈(김도훈) 가족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마지막 결전을 향해 달려간다. 이들이 어떻게 국정원 요원이 되었고, 사랑에 빠졌으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시련을 겪어야 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무빙>에서 초능력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가족을 비극에 빠뜨리는 트리거다. 액션도 쾌감보다는 애절함이 크다.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북한 측 초능력자 이야기도 맥락이 같다. 남한 측 초능력자와 같은 애환을 공유한다. 국가는 가족을 인질 삼아 초능력자를 강제하고, 조종한다. 초능력자는 자의에 반해서,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국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는 후반부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감이 있는 북한 측 인물들의 서사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전체 흐름에 녹아들 수 있는 이유다.
초능력자판 <국제시장>
사실 가족 드라마를 중심에 두는 스토리텔링은 모험수에 가깝다. 근래 트렌드에 역행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반응이 조금 다르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소한 국내에서는 가족애에 기반한 신파가 환영받는 분위기가 아니다. 김용화 감독의 두 작품, <신과 함께>과 <더 문>의 흥행만 비교해 보더라도 불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달라진 트렌드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무빙>은 달랐다. 다른 작품들이 모두 실패했지만, <무빙>의 가족 드라마, 신파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뻔한 가족 드라마를 보여주지 않는다. 무작정 울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세대별로 공감하고 이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특히 초능력자판 <국제시장>을 보는 듯한 스토리가 핵심이다. 극 중 부모 세대는 시대의 피해자다. 안기부에서 이용당하다가 버려지거나 범죄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 무장 공비 때문에 인생이 바뀌고 청계천 정비 사업에서 일상을 잃은 이들. 그들이 어떻게 한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버텨냈는지를 들려준다. 그러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수많은 주인공과 가족의 서사 중 최소한 하나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식의 초능력은 다르다
그렇다고 <무빙>이 과거만 회상하며 눈물샘을 자극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국제시장>과 달리 <무빙>은 신파를 눈물을 자아내는 수단 그 이상으로 활용한다. <무빙>은 과거를 비춘 후,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산업화, 이념 전쟁, 민주화, 노동 인권 투쟁 같은 시대적 과제를 해결한 기성세대의 경험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할지를 고민한다.
그래서 극 중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관계는 유독 흥미롭다. 이제 부모와 선생이 된 이들은 각자 나름대로 아이들을 키우려 한다. 그들은 자기 과거에 비추어 미래 세대를 통제하려 한다. 장주원과 이미현은 아이들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이재만은 정시에 아들이 집에 오기를 기다린다. 악역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은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의 초능력을 공장식으로 통제하고 길러내려 든다.
하지만 선역, 악역 가리지 않고 부모 세대의 교육은 전부 실패한다. 초능력이라는 유산을 다루는 세대 간의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를 떨치지 못한 이들에게는 초능력이 저주다. 반면에 아이들 눈에 초능력은 상상을 가능케 하는 거대한 가능성이다. 첫사랑을 이루고, 집안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수단이다.
시의성 있는 신파
그렇기에 <무빙>은 망령에 사로잡혀 과거를 답습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부모 세대의 방식을 고집해서는 어느 쪽이든 같은 결말에 도달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선생과 학교에서 정한 길을 따라가다가 버려지는 전계도(차태현)의 삶만 있을 뿐이라고. 이는 초능력이라는 소중한 유산을 헛되이 날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각자 알아서 각성한 전계도와 아이들이 없었다면 해피 엔딩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는 <무빙>의 가족애와 신파가 세련된 이유다. 단순히 눈물을 자아내는 게 아니라, 눈물로써 공동체의 고민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무빙> 속 가족들의 고민은 현재 한국 사회의 불안과 맞닿아 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오히려 미래 세대의 발목을 붙잡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사회가 잘못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무빙> 속 가족애와 자연스레 결부되기 때문이다.
장르는 이렇게 섞는 거야
마지막으로 신파로 시청자로 끌고 가는 장르적 접근도 인상적이다. <무빙>은 처음부터 가족 드라마를 보여주지 않는다. 로맨스로 문을 열고, 액션으로 눈을 사로잡은 후, 눈물을 자아내며 출구를 막는다. 특히 로맨스가 눈에 띈다. 로맨틱 코미디, 정통 멜로, 청춘 로맨스까지 다양한 장르를 종합선물세트로 보여주면서 다방면으로 시청자를 끌어 모으는 1등 공신이기 때문.
특히 청춘 로맨스를 초반부에 배치한 게 신의 한 수로 보인다. 간과될 수 있지만, 근래 극장가에서는 1020 세대 중심으로 청춘 로맨스가 인기를 모은 바 있다. 21년 개봉 당시 관객 약 4만 명에 그쳤지만, 올해 재개봉해서 40만 명을 돌파한 <여름날 우리>가 대표적이다. 즉, 온라인상에서 초반 화제성을 불어 일으키는 데 최적화된 승부수였던 셈이다.
또 청춘 로맨스가 분위기를 돋우고, 이어서 부모 세대의 과거사와 로맨스를 등장시키는 순서도 영리했다. 몰입도와 화제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드라마에 유입된 후에는 각 커플의 개성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면 부모-자식 간의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거부할 틈도 없이 비극적인 가족사와 신파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시청자 니즈를 읽은 승부수
강풀 작가와 디즈니+가 선택한 공개 방식도 눈길을 끈다. <무빙>은 7화까지 한 번에 공개한 후 매주 2편씩 공했다. 마치 시즌 1을 몰아본 후, 곧장 시즌 2가 공개되는 듯한 독특한 느낌을 줬다. 이는 넷플릭스와의 차이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디즈니+ 플랫폼 자체 인지도까지 끌어올리는 일석이조처럼 보인다.
화제성 유지에 유리한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무빙>은 내용이 방대하다. 20화가 부족해 보일 정도로 다룰 내용이 많다. 만약 넷플릭스 스타일대로 시즌을 나눠서 공개했다면 지금만큼의 화제성을 담보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시즌을 기다리면서 답답하거나 감질맛만 났을 테니까. 최근 넷플릭스도 시리즈 한 시즌을 여러 파트로 나누어 공개하면서 화제성을 유지하려 애쓰는 중인데, 디즈니+는 <무빙>으로 한 발 빨리 답을 찾은 듯하다.
물론 단점이 없는 드라마는 아니다. 제작비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 CG 완성도는 분명 아쉽다. 특히 비행 장면에서 CG 장면과 일반 장면 간의 연결이 유독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짜임새도 문제다. 마지막 학교 액션 시퀀스는 클라이맥스 치고 맥이 빠지며, 인물들의 행적도 어색하다. 그렇다고 <무빙>의 성공을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시즌 2에서 몇몇 아쉬움까지 지워주길 기대케 한다는 점에서 이미 제 몫을 다 했으니까.
Acceptable 무난함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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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죽어가는 것들을 쓰다듬는 한 사람의 손길을 마주하며.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는 2025년 4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열린다. 개막작 <콘티넨탈 ‘25>는 라주두데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루마니아와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혼란과 균열 속의 인간의 존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혐오와 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이 고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영화정보
감독 – 라두 주데
Brazil, Luxembourg, Romania, Switzerland, United Kingdom
2025
109min
DCP
Color/B&W
Fiction
청소년 관람불가
Korean Premiere
시놉시스
오르솔랴는 트란실바니아의 중심 도시 클루지의 법정 집행관이다. 어느 날 그녀는 건물 지하에서 노숙자를 강제로 퇴거시켜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오르솔랴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초래한 도덕적 위기를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분투한다.
영화리뷰
영화는 궁시렁궁시렁거리며 온거리를 누비는 한 남자의 모습을 비춘다. 온갖 쓰레기를 뒤지며 먹을 것을 찾고,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돈을 벌기 위해선 취직을 해야 했지만 일자리가 없었고 남자를 뽑아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건물 지하에서 근근이 살아가던 그 남자는 강제 퇴거 명령을 받고 쫓겨날 처지에 놓인다. 오르솔랴는 트란실바니아의 중심 도시 클루지의 법정 집행관이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을 줬음에도 나가지 않는 그 노숙자를 퇴거시켜야만 했던 그녀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맞게 된다.
바로, 궁지에 몰린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 남자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지나칠정도의 자책감이 그녀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오르솔랴는 어떤 말도 위로로 들리지 않았다. 주변사람들을 비롯하여 자신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되어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힘듦을 털어놓는다. 하소연, 기부, 술, 섹스, 고해. 그 무엇을 해보아도 그 죄책감을 내려놓을 수 없었고 괜찮아지지도 않았다. 도무지 덜어지지 않는 죄책감에 끝없이 괴로워한다. 그녀가 그렇게 괴로워할 정도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간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수많은 침묵과 오해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 ‘대화’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말없이 치러지는 전쟁, 혐오, 언쟁 그 모든 것에 반하는 행위처럼 느껴질 정도로 길고 오랜 대화를 나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그 수많은 전쟁을 막아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대화’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는 ‘지혜’가 남아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희망이다.
하지만 영화는 대화를 만능의 해결책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화는 해결이 아닌 ‘과정’이며, 때론 그 과정을 거쳐도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 오르솔랴는 끊임없이 대화를 통해 마음의 죄책감을 내려놓으려 하지만 결국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가 마주한 무력감은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감정일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지만 사람의 죽음조차 가볍게 소비되는 세계에서 무엇을 잃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연결과 공감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제도, 사회도, 그리고 개인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
상영스케줄
2025.04.30 18:30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2025.05.01 13:00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2025.05.03 20:30
CGV 전주고사 4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 2025.04.30 ~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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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한 웃음도 웃음이다, <조용한 가족>
<조용한 가족> (김지운, 1998)의 포스터에는 ‘코믹잔혹극’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김지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그 문구와 참 잘 어울리는 잔혹한 블랙코미디 영화이다.
부모님과 삼촌, 3남매로 이루어진 여섯 명의 가족은 이장의 추천으로 산장을 싸게 매입하여 영업을 실시한다. 파리만 날리던 산장에 드디어 첫 손님이 찾아오지만, 그는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된다. ‘아버지(박인환 扮)’는 산장의 영업에 지장이 갈 것을 우려하여 시체를 몰래 묻어 버리자고 한다. 그리고 이 첫 번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여러 가지 일들이 가족을 덮친다.
이 ‘조용한’ 가족은 죽음을 비밀로 묻어 버리기로 하고, 시체도 묻어 버린다. 그리고 일은 눈덩이가 눈밭을 굴러가듯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인물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자신들의 행위에 점점 과감해지고 익숙해지며 가벼운 태도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악행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땅에 묻었던 시체들은 비가 쏟아지면서 밖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땅을 파헤치는 도로 공사가 산장 주변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도 가족들은 여전히 검지를 입술에 댄 채 ‘쉿’ 하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관객들은 여전히 침묵을 요구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복잡한 심경으로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이 영화의 재미를 유발하는 가장 큰 요소는 블랙코미디 장르의 불편한 웃음이다.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씁쓸한 미소를 짓도록 유도한다.
영화는 인물들이 범죄 행위에 점점 익숙해지며, 범죄와 일상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영민(송강호 扮)’은 바닥에 고인 피를 밟고 미끄러지고,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보고 시체를 발견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라던 처음과 달리, 이내 살인이나 매장을 농담삼아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을 정도로 악행에 무뎌지는 모습을 보인다. 영민의 삽질 실력은 점점 늘고, 와중에 다른 가족들은 영민의 실력을 칭찬하며 함께 웃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지점에서 주목해 볼 만한 점은 가족들이 내부인(가족 구성원)과 외부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이다. 처음 가족들이 죽음을 묻기로 한 것도 가족들의 생계와 직결된 산장 영업을 계속하기 위함이다. 영민은 동생 ‘미수(이윤성 扮)’를 강간하려는 남성과 몸싸움을 하다 남성이 절벽에서 떨어지게 하고, ‘어머니(나문희 扮)’는 시체를 묻고 귀가한 가족들에게 수고했다고 인사하면서 든든한 밥상을 차려 준다. 영화의 후반부, 산장에서 청부살인까지 발생(하려고)했을 때에도 시체 두 구를 본 가족들은 계단에 발이 걸려 넘어진 영민을 위해서만 의사를 부르고, 병원에 가는 영민을 걱정하며 자신들의 봉고차까지 끌고 나선다. 그리고 잠시 뒤, 같은 계단에서 이번에는 외부인이 떨어져 죽자 가족들은 한 번 더 죽음을 감춰 수습하려고 한다. 영화는 이렇듯 내부인과 외부인에 대한 가족들의 태도에 차이를 두면서 아이러니를 통한 웃음을 유발한다.
그리고 가족들의 웃음 또한 아이러니를 유발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가족들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웃는 장면은 이 영화에 꽤 자주 등장한다. 웃고 있는 가족의 모습, 그리고 그 인물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죽음을 맞는 외부인의 상황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또 가족들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무장 간첩’들의 모습을 보며 ‘생매장을 시켜 버려야 한다’는 식의 농담을 하면서 즐겁게 웃기도 한다. (이때의 ‘간첩’은 한국 사회의 외부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외부인의 죽음에 등을 돌린, 또는 익숙해진 인물들의 모습 또한 불편한 감정을 유발한다.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를 고르자면, 역시 배우들의 조합과 호연일 것이다. 박인환, 나문희, 최민식, 송강호 등 하나의 작품에서 뭉치기 힘든 배우들이 한 가족을 연기하며 만들어내는 호흡은 인상적이고 확실한 재미 요소가 되어 준다.
잘 만들어진 한국형 블랙코미디라는 말로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가족 중심 문화, 내부인-외부인의 관계(가족과 가족이 아닌 사람, 한국인과 한국인이 아닌 간첩 등) 등 한국 문화의 중요 코드를 과장하기도 하고 끼워 넣기도 하며 극적으로 활용한, 잘 빚어진 한국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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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나병의 영화정보 #11? ?영화 제작팀과 연출부가 궁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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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죽어도 좋은 경험: 천사여 악녀가 되라> 메인 예고편
남편의 실수로 아이를 잃은 ‘여정’은
우연히 만난 ‘명자’가 남편의 외도로
억울하게 이혼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비밀과 진실을 알고 있는 ‘여정’은
‘명자’와 치밀한 계획 아래
서로 상대방의 남편을 살해한다는 범죄를 공모한다.
독을 품은 두 여자의 광기 어린 복수극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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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빛나는 순간> 메인 예고편
“제 이름은 고진옥, 제주 해녀입니다”
‘바다에서 숨 오래 참기’로 기네스북에 오른 제주 최고의 해녀 진옥(고두심)
성질도, 물질도 제주에서 그를 이길 사람이 없다.
진옥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다큐멘터리 PD 경훈(지현우)
하지만 진옥의 반응은 냉담하다.
경훈은 진옥의 마음을 열기 위해 그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하고,
진옥은 바다에 빠진 경훈의 목숨을 구해준 이후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졌음을 알고 경훈에게 마음을 연다.
제주 그리고 해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경훈
그런 경훈을 통해 진옥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을 마주하기 시작하는데…
당신을 만나고 비로소 알게 된,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