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2-03 12:07:57
2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황금연휴 극장가의 승리자는?

개봉 첫 주 1위를 빼앗겼던 <히트맨2>가 누적 관객 수 190만 명을 돌파하며 <검은 수녀들>을 넘어서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현재 추이와 별다른 대작이 개봉하지 않는 극장 상황상, 손익분기점인 230만 명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검은 수녀들>은 2위에 머물렀지만, 누적 관객 수 143만 명을 불러들이며 손익분기점인 160만 명에 한층 가까워졌습니다. 앞서 160개국 선판매를 완료한 것으로 알려진 <검은 수녀들>은 해외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 개봉 후 5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이라고 합니다.
한편, 동명의 대만 멜로 영화를 리메이크한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개봉 첫 주 누적 관객 수 35만 명을 기록하며 다소 아쉬운 성적을 남겼습니다.

북미에서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선보인 <도그 맨 Dog Man>이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도그 맨>은 미국의 아동 그래픽 노블 시리즈 '캡틴 언더팬츠'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며, 개봉 전부터 입소문과 가족 관객층의 기대감으로 개봉 첫 주에만 3,6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습니다.
2위를 차지한 SF 스릴러 <컴패니언>은 누적 수익 95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제작비가 1,000만 달러에 불과하여 흥행 수익은 양호한 편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로튼토마토 94% 등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소피 대처, 잭 퀘이드가 주연을 맡았고, 이상적인 커플이 친구들과 함께 떠난 호화로운 휴가 중 일어난 예상치 못한 사건을 다룬다고 합니다.
<무파사: 라이온 킹>이 순위권인 3위에 머무르며 여전히 무서운 뒷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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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 포레스트>
<리틀 포레스트>
" 심심한데 맛있는 영화 한 편 보고 싶을 때 "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 <리틀 포레스트>. 사실 일본에서 먼저 만들어진 영화를 봤지만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아 끝까지 보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 보러 가려고 표까지 끊어놨건만 밀려드는 일이 바빠 보지 못했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차차 잊혀 간 작품으로 남을 줄 알았는데 ... 이런저런 영화를 보다 보니 자극적인 맛에 질린 때가 오고야 말았다. 액션은 너무 정신없고, 드라마는 너무 마음 아프고, 로맨스는 너무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껴두었던 이 영화가 떠올랐다. 주저 없이 영화를 틀고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보았다. 103분이라는 적당한 러닝타임 동안 숨소리만 내고 영화를 즐겼다. 평화롭고 단조로운 아주 진한 여행을 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이 영화를 특별하다고 정의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다만, 기존에 있던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는 영화였다. 정말 <리틀 포레스트>만의 색깔을 담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꽤 슬픈 일이다. 꿈을 위해 도시로 나선 사람들이 각박함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온다는 건 그리 현대사회가 가진 슬픈 이면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 속 미디어는 귀농에 대한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장면들로 가득 채워 도시와 대비되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마치 그곳을 현실처럼 꾸며놓는다. 하나, 20년간 시골에서 자란 내가 생각하기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꿈꾸는 시골에서의 삶이란 영화만큼 완벽할 수 없다. 그렇기에 <리틀 포레스트> 완벽한 대리만족의 영화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어보지 않았기에 공감할 수 없다는 점은 이럴 때 이점이 된다. 그저 낭만을 편집해 붙여놓은 장면들은 간접적으로 겪어 보기에는 행복한 꿈이지만, 현실은 이상적인 판타지가 아니다. 감독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조금 언질을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다.
그러니까, 현실성은 많이 떨어진다.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고 몇몇 관람객들도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틀 포레스트>가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아마 '힐링'이 가득 담겨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따듯한 난로를 켜고,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요리해먹고, 친구들을 만나 그저 수다나 떠들 수 있는 그런 환경은 현대인들이 가장 꿈꾸는 이상 중 하나일 것이다. 사람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도시로 모여든다. 도시에서의 삶은 다친 마음과 허무한 나날뿐이다. 도시를 떠나올 때 혜원(김태리 분)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시험에서 떨어지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해가는 삶이란 결국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온 고향에서 누구에게도 재촉받지 않고 오로지 먹고살기 위한 것에만 집중한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괜찮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 이 단순한 문장으로 영화는 진짜 소중한 삶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무작정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선택해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맞는 말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음식으로 유명한 영화이다. 음식을 담아내는 컷들이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감독이 마치 어떻게 찍어야 예쁘게 나오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음식의 조리과정이나 맛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영화를 찾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음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정성을 다한다는 것, 온 마음을 전부 내비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틀 포레스트> 속 음식에 관한 의미는 깊다. 편의점 도시락이나 길거리에 파는 컵밥 같은 게 아니라 직접 수확한 재료로 시간을 들여 음식을 해 먹는다는 것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삶의 본질적인 의미에 관한 '채움'이었을지도 모른다. 허무하고 공허하기만 한 도심 속 삶에서 내 손으로 만들어본 적 없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어보는 것. 음식은 사계절의 시간을 따라가며 마음속 엄마(문소리 분)를 불러일으키고, 때를 기다려 하루를 보내도록 유도한다. 영화 속 음식은 곧 혜원의 내적 감정을 좀 더 활성화하는 장치였을 것이다.
먹는 것으로 시작해 먹는 것으로 끝을 낸다면, 먹방과 다를 것 없는 한 편의 영상으로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의 본질은 이야기에 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영화의 수준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리틀 포레스트>는 스토리면에서도 타 영화들과 비교되지 않는 탄탄한 구성을 선보인다. 서울살이에 지쳐버린 딸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오래전에 떠난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감독은 영화 초반에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그랬다' 식으로 이야기를 군데군데 던져두고 사건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도 하지 않는다. 관객은 백 스토리를 통해 '그랬겠구나'하고 암묵적인 내용만을 파악할 뿐이다. 하나, 놀랍게도 이러한 전개가 큰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읊조리는 주인공을 따라 천천히 가다 보면 어느새 결말에 당도해있다. 삶 속 여유에 대한 메시지를 이야기해주기 위해 비교적 느리게 스토리를 전개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마치 지루한 전개에 답답해하는 관객들에게도 여유를 가져라 하고 말하듯이 말이다. 유년시절의 주인공과 현재의 주인공, 시간의 순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 이유에서 나온 게 아니었을까.
여백이 많은 영화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극의 호흡을 느리게 다듬어 관객에게 쉴 시간을 주는 그 순간은 극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이러한 여백을 만드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당연하게도 여유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아름다워야 하며, 셋째는 흐름을 끊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나가야 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이러한 여백의 공간을 천천히 메워나간다. 계절이 되었다가, 재료가 되었다가, 마음이 되었다가 말이다. 겨울을 시작으로 이어가는 계절 컷은 시간의 진도를 맞출뿐더러 각 계절이 가진 색과 향을 그대로 담아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과 초록색으로 도배된 봄, 찐한 햇빛을 머금은 여름과 갈색빛의 가을까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이해시키는 여백들은 영상미와 더불어 영화의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주위 인물인 재하(류준열 분)나 은숙(진기주 분)의 모습을 보면 혜원을 만날 수 있다. 재하는 자존감을 갉아먹는 회사에서 뛰쳐나와 농사라는 자신의 삶으로 돌아갔고, 서울의 삶을 꿈꾸는 은숙은 현실과 타협하고 고향에서 살아간다. 영화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현실의 모든 삶을 포기하고 농촌으로 돌아와 그럭저럭 살아라가 아닐 것이다. 혜원이 선택해야 할 삶의 방향을 친구들을 통해 이야기한다. 적당히 괜찮게 타협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벗어나고 진짜 자신의 삶 근본으로 돌아올 것인지 말이다. 혼란스러운 혜원의 마음이 남 일 같지 않은 건, 20대라는 배경과 인물 설정이 현대 사회 취업준비생인 20대들과 지나치게 닮아있기 때문이다.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그냥 휘둘리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혜원의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고한다. 때문에, 감독은 재하의 입을 통해 이야기한다. 혜원은 지금 아주심기를 준비중일 거라고. 아주 쓸쓸한 겨울 될 테지만 좀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지는 시기가 오게 될 거라고 말이다. 당신도 아주심기를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
앞서 말했듯 영화가 단순히 귀농의 판타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닐 것이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는 다소 머니까 말이다. 임순례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만의 공간에서 당신만의 휴식'이 아닐까. 어린시절에 살았던 고향이 혜원에게 하나의 '공간'이 되었듯이 당신 또한 그러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집이 될수도 있고, 카페가 될수도 있고, 취미가 될 수도 있다. 오로지 당신의 공간에서 당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통해 성장하고 바뀌어나가는 것. 이러한 성장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근본을 찾아낼 것을 강조한다. 또한 감독은 20대 혜원의 모습을 통해 당신의 휴식을 권고한다. 바쁜 도시생활에서 벗어난 혜원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삶은 늘 뜻대로 되지 않고 버겁기만 하다. 주위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는데, 나만 제자리에 서서 똑같은 위치에 맴돌고 있다면 그것만큼 비극적인 청춘이 없을 것이다. 영화는 말한다. 사회적 성공이나 명예에 집착하기보다, 혜원의 '배가 고프다'는 말처럼 인간의 기본 욕구에 좀 더 충실하라고.
무작정 좋은 영화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고, 너무 영상미에만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 사회 영화는 너무 맵고 짠맛에 길들여져 있다. 이것이 꼭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자극적인 것들로는 마음을 채우기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흥미롭지 않으면 관객들이 봐주지 않으니까, 소비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의 <리틀 포레스트> 열풍은 반가우면서도 낯설었다. 맵고 짠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순한 맛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컷들의 연속, 영상미가 돋보이고, 카메라를 통해 완성되는 요리와 맛까지 ... 현대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방영되었던 영화처럼 부작으로 나누어 상영했다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동시에 한 편으로 끝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만한 여지를 주었구나 라는 만족감이 든다.
출처 : <리틀 포레스트>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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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필리아> - '햄릿의 여인이 아닌 오필리아의 진짜 이야기'
오필리아 (Ophelia)
개봉일 :2021.07.14 (한국 기준)
감독 : 클레어 맥카시
출연 : 데이지 리들리, 조지 맥케이, 나오미 왓츠, 클라이브 오웬, 톰 펠튼, 데본 테렐
'햄릿의 여인이 아닌 오필리아의 진짜 이야기'
2020년 2월, 기생충과 1917이 아카데미에서 경합을 벌였던, 어느덧 1년 반쯤이 지난 그때. 영화관에서 1917을 보고 ‘조지 맥케이’에게 홀라당 빠져버려 그의 필모를 샅샅이 훑던 중, 이 영화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정식 수입이 진행되지 않아 매일 사진만.. 보며 “조지.. 너무 예쁘다....” 하고 눈물만 줄줄 흘렸던 나날들을 지나 드디어 <오필리아>가 한국에 정식 개봉했다.
마치 유화로 그린 명화를 보듯 아름다운 숲의 풍경과 시대극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려 주는 의상과 세트장, 그리고 <스타워즈 시리즈>의 데이지 리들리, <위아영>, <버드맨>, <멀홀랜드 드라이브>등 굵직한 작품을 남긴 나오미 왓츠, <1917>로 스타덤에 오른 조지 맥케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톰 펠튼 등 화려한 출연진까지. 조지 맥케이를 좋아하는 나의 사심을 제외하고도 <오필리아>를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필리아>의 개봉을 기다리며 이 이야기가 어떻게 각색되었는지 비교해보기 위해 최근에 ‘햄릿’ 원작도 다시 감상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고전 희곡 ‘햄릿’. 나는 지금껏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햄릿이라 생각했다. 아버지를 잃은 햄릿의 복수심과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과 고뇌, 오필리아를 향했던 사랑과 그녀를 잃은 슬픔. 대부분 햄릿의 감정을 중심에 놓고 이 작품을 해석했고 그의 심리적 갈등에 집중했었다.
<오필리아>라는 제목부터 감이 오겠지만, 이 영화는 햄릿이 아닌 ‘오필리아’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여기서 오필리아는 닥쳐온 슬픔에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흘리는 여인이 아닌 누구보다 당돌한 여인이다. 자신의 인생을 누구보다 천국과 지옥을 자주 목격한 인생이라고 칭하는 그녀가 이제 오래된 역사가 되어버린 잃어버린 왕국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말하려 한다.
이 영화엔 사랑에 빠져도 되는지 갈등하거나 슬픔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미쳐버리고 마는 연약한 비련의 여주인공은 없다. <오필리아>는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한 여인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고 와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 한다. <오필리아>에는 햄릿이 아닌 그날의 오필리아가 있다. 칼이 아닌 꽃을 들었지만 누구보다 강하고 올곧은 그녀가 있다. 햄릿에서의 오필리아는 햄릿의 여인이지만 <오필리아>에선 다르다.
오필리아 시놉시스
현명함과 자유로움을 지닌 오필리아는 왕비 거트루드의 총애를 받아 왕실의 시녀가 된다. 왕실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오필리아에게 첫눈에 반한 왕자 햄릿은 운명적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의 격차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은 위기를 맞는다.
선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국은 혼란에 빠지고, 오필리아는 이 사건의 배후에 커다란 음모가 감춰져 있음을 알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난 그 누구보다 자주 천국과 지옥을 목격했어요.
사랑에 빠진 순간의 천국과 잃어버린 왕국의 지옥을 모두 목격한 여인 오필리아. 그녀는 역사가 되어버린 왕국의 중심에서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읊어낸다. 복수와 욕망, 실연과 피로 점칠 되어 결국 파멸해버린 한 왕국에서 분노와 복수심이 아닌 희망 한 줌을 건져 나온 그녀는 지금은 사라진 인물들을 떠올린다.
오필리아는 당돌하고 눈에 띄는 어린아이였다. 평민 출신이지만 온갖 노력으로 왕의 고문관 자리를 꽤 찬 폴로니어스의 여재. 폴로니어스의 유일한 보석. 거트루드 왕비는 꾀죄죄한 얼굴로 힘차게 왕과 귀족들의 앞으로 튀어나온 오필리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시녀로 키우기로 결정한다.
수녀원에서 자라 항상 다른 여자들에게 쪼였던 거트루드와 평민 출신 주제에 왕비의 총애를 받는다며 시녀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오필리아. 시녀들은 보석 대신 꽃을 머리에 꽂은 오필리아를 놀리고 무시하지만 오필리아는 포기하거나 달아나는 대신 항상 자리를 지키며 진심으로 거트루드를 보필한다. 거트루드는 그런 오필리아를 더욱 특별하게 느낀다.
든든한 왕과 사람을 보살필 줄 아는 왕비. 전쟁에 힘을 쏟긴 했지만, 폭력적이지 않았던 왕과 왕비가 통치하는 왕국은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이 평화는 한순간의 욕망과 복수심으로 인해 망쳐지고 만다.
오직 저만이 그 사실을 잊지 못하겠죠.
“오랫동안 숨겨온 욕망을 여인에게 쏟아부었다.” 거트루드 왕비가 즐겨읽던 책의 한 구절이다. 클로디어스는 왕이 되기 위해 형을 독살하고 거트루드를 유혹한다. 전쟁에만 힘을 쓰던 왕에게 지쳐있던 거트루드는 바보 같은 사랑에 눈이 멀어 클로디어스에게 왕위를 넘긴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뒤늦게 왕국으로 돌아온 햄릿은 왕의 의자 앞에 서서 클로디어스를 내려다보며 분노를 쏟아내지만 이미 옮겨간 왕관의 힘에 밀려 바닥으로 내려와 무릎을 꿇는다.
왕국의 비극은 클로디어스의 욕망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왕의 힘이라는 것이, 눈이 먼 사랑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노라.
클로디어스의 욕망이 비극의 시작이었다면 비극을 가속화 시킨 건 복수심과 사랑이었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거트루드, 클로디어스, 햄릿과 레어티즈, 그리고 메틸다는 서로에게 독과 칼을 겨눈다. 클로디어스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오필리아와 햄릿의 존재를 없애고 싶어 하고, 클로디어스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던 햄릿은 오필리아와 레어티즈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를 찌른다. 아버지를 잃은 레어티즈는 복수를 위해 햄릿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클로디어스에게 배신을 당한 치료사 메틸다는 진실을 알고 그를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사랑은 왕권에 대한 욕망만큼이나 강했다. 클로디어스에게 눈이 먼 사랑을 한 거트루드,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계급을 내려놓겠다고 다짐한 햄릿,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한 오필리아.
오필리아와 햄릿은 진실되게 서로를 사랑했으나 왕자와 평민이라는 계급 때문에 정식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다. 햄릿은 오랜 시간 오필리아의 머리끈을 간직했고 자신의 반지와 함께 오필리아의 머리끈을 돌려준다. 자신의 온 마음을 담은 물건을 돌려주며 햄릿은 오필리아에게 사랑을 맹세한다. 햄릿과 오필리아가 함께 보낸 시간은 빈틈없이 아름답고 푸르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두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드는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이 사랑이 더 애틋하고 아름답게 느껴진 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깨어질 거란 걸 알기에 더 오래 붙잡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내가 궁금한 건 사랑이 어디 있냐는 거야
진짜 사랑은 어디 있는 걸까. 사람의 몸은 온갖 장기와 지방, 근육으로 가득 차있는데 사랑이 들어갈 틈은 어디에 있는 걸까. 사랑과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복수심으로 불타던 왕국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서로 사랑했다고 믿었던 클로디어스에게 버려진 메틸다와 그에게 이용당한 거트루드. 사랑과 복수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복수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 햄릿.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 햄릿은 복수심이 담긴 독에 중독되어 죽고 만다. 클로디어스는 왕, 햄릿, 메틸다의 복수를 담은 거트루드의 칼에 죽었고, 햄릿은 폴로니어스의 복수를 담은 레어티즈의 독 묻은 칼에 죽었고, 거트루드는 메틸다의 독약을 마시고 죽는다. 사랑에 배신당한 이의 분노가 가득 담겨있었던 어두운색의 독약은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오필리아는 햄릿과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햄릿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그가 물에 빠져 죽지 않길 바라며 독약을 마셨고, 햄릿의 복수를 말리려 했지만 결국 비극으로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데는 실패한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총명하고 용기 있는 여인이었다. 진짜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직접 노를 저어 나아가던 오필리아의 이야기가 다소 낯설기도 하고 햄릿의 존재감이 아쉽기도 했지만 딱 현시대에 알맞은 각색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유도 모른 채 슬퍼하다 물에 빠져 죽은 비련의 오필리아와 이별한 새로운 오필리아의 이야기엔 깊은 비극을 비집고 나온 희망이 단단히 자리하고 있었다.
햄릿에서의 오필리아는 슬픔에 미쳐버려 연못에 빠져 죽는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오필리아는 선왕의 음모를 눈치채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독약을 먹고 연못에 뛰어드는 엄청난 결단력을 보여준다. 왕국 인물 중 유일하게 복수심이란 감정에 빠지지 않은 지혜로운 그녀는 무너진 왕국에서 홀로 살아남는다.
원작에선 ‘연못에 빠져 죽은 여인’으로 끝나버렸던 그녀는 사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새로운 삶을 이어나간다. 햄릿과 뭇 남성 인물들의 복수심에 가려져 지금껏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오필리아’의 진짜 이야기는 "그대도 언젠가는 당신만의 이야기를 하게 되겠죠."라는 그녀의 한마디와 함께 마무리된다. 나는 이 한마디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누군가를 향한 위로와 응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적 편견과 넘지 못할 선 앞에서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도 언젠가 오필리아처럼 ‘나의 진짜 이야기’를 알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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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눈먼 두사람 ; 영화 블라인드 리뷰
이 글은 영화 [블라인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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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에 얇게 치약을 바르면 된다고 하지만 그거 바를 정성이면 제가 이를 닦고 산책을 나갔겠죠? 저는 게으릅니다.
저는 시력이 좋지 않습니다.
저희 집식구들 모두 시력이 좋은데 저만 그렇습니다 . (참고 1) 요새처럼 마스크가 제2의 문신이 되는 일상이면 안경에 김이 서려 시각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식이나 라섹 같은 시력 교정술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 니다. 하지만 현미경을 많이 보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빛 번짐이 가장 흔한 부작용 중 하나인 그런 수술을 쉽게 선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그 어떤 감각보다도 제게 중요한 것은 바로 시력입니다. 조금만 안경에 문제가 생겨도 불안해합니다. 그러니 건강한 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온 마음 가득 담뿍 담으며 살다가 시력을 잃어버린 루벤의 상실감은 얼마나 클까요. 집이 제아무리 부자라 해도. 루벤이 갇혀 있는 어둠을 걷어줄 수 있는 안경은 구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출처:네이버 블로그 [은하계 반지하]
" 이 거울 조각들은 세상 모든 지역을 날아다녔다. 그리고 이 작은 거울 조각이 사람의 눈에 들어가게 되면 본인은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그 순간부터 그는 모든 것을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자신이 보는 것의 가장 나쁜 부분만 보게 된다. 그 거울 조각이 심장에 박힌 사람들이 있는데 이 경우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의 마음이 꽁꽁 언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
눈의 여왕
후천적 사고는 참으로 명사수였습니다. 정확하게 루벤의 아름다운 눈을 겨냥해 활시위를 당겼죠. 그리고 그 화살은 보기 좋게 과녁을 맞혔습니다. 점점 시야는 희미해지는데, 자신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자신만 못 본다는 생각에 루벤은 미친 듯이 발악합니다. 덕분에 화살은 더 깊숙하게 박혀 루벤의 자존감까지 관통해버리고 말았죠.
안타깝게도 영화에는 화살을 맞은 또 다른 짐승이 등장합니다.
어릴 적부터 학대를 받아 외모 콤플렉스가 심한 마리입니다. (참고 2) 길고 오래된 학대에 대한 기억은 마리가 다른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어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겉모습 은 학대의 흔적인 흉터로 가득합니다. 그녀의 고개가 다른 사람의 눈높이까지 쉽사리 올라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루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을 조건으로. 상처받은 두 짐승은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주기 위해 처음 만나게 됩니다. 루벤은 루벤대로. 마리는 마리대로. 눈과 가슴에 모든 것을 차갑고 나쁘게만 보는 거울 조각이 박힌 채로 말입니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어린 카이, 소중한 카이, 드디어 너를 찾았어!!"
그러나 카이의 몸은 뻣뻣하고 차가웠으며 앉은 채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어린 겔다가 흘린 뜨거운 눈물이 카이의 가슴에 떨어지더니 그 기운이 카이의 심장까지 전해졌고 얼음조각 같던 심장을 녹여주고 심장에 꽂혀 있던 작은 유리조각마저 씻겨내 버렸다. 카이와 겔다는 그 의자들에 앉고 나란히 손을 잡았다. 그러자 장엄했지만 춥고 텅 비어 있던 눈의 여왕의 궁전이 악몽처럼 그들 기억에서 사라졌다.
"너희들이 어린아이들처럼 되지 못하면, 너희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 "
눈의 여왕
처음 만난 순간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부딪침은 있었죠. 시각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한 루벤과 달리. 이상하게 마리는 루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리 지르고 막 대해도. 마리는 정해진 시간에 루벤을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루벤은 마리의 손길 아래서 점점 순한 짐승이 되어 갑니다. 마리가 책을 읽어주는 그 시간만큼은 욱신거리는 자신의 상처를 잊을 수가 있었죠
.그것은 마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리가 가진 단점들을 루벤은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마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외모가 아닌 마리 자체를 봐 준 사람을 만난 순간이었을 겁니다. 가난하고 흉측하다고 손가락질 당하는 마리를 좋아해 준. 사람이기도 했고요. 자신은 알 지 못할 순수한 표정으로 마리에게 조금씩 호감을 보이는 루벤이 싫을 리가 없었습니다.
루벤은 점점 마리 옆에서 웃음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 역시 루벤의 옆에서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합니다. 그들의 마음에 깊이 박혔던 유리조각은 서로에 의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죠 .
루벤은 점점 마리와의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하지만. 마리는 자신을 느끼려 하는 루벤의 손길에 자신의 추함이 드러날까 두려워합니다. 탐스러운 붉은 머리에. 스물한 살의 마리. 그것이 자신이라고 포장합니다. 그저 마리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루벤은 마리의 말을 참고로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녀의 초상화를 완성해 나갑니다.
사진출처 : 티스토리
카이의 생각들은 여전히 그의 눈 안에 들어가 있는 유리조각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는 완벽한 구조를 지닌 모양을 많이 조립해서 서로 다른 단어들도 표현해냈지만, 본인이 그렇게 만들어내고 싶은 단어가 있었지만 만들어 내지 못한 단어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영원'이라는 단어였다. 눈의 여왕이 그에게 말했었다. "네가 그 단어를 알아낼 수 있을 때, 너는 너 자신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이 모든 세상과 새로운 스케이트 한 쌍을 줄게"그러나 카이는 그 단어를 만들 수가 없었다.
눈의 여왕
하지만 심술궂은 운명은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주치의는 루벤에게 시력 회복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고 알려줍니다. 꿈에만 그리던 마리를 직접 만날 수 있던 생각에. 루벤은 한껏 신이 났지만. 마리는 그렇게 될 경우 끔찍한 자신의 겉모습을 보고 루벤이 떠나버릴 까봐 겁이 나기 시작합니다.
마리의 거짓말을 알고 있는 루벤의 어머니 케서린 역시. 슬슬 마리가 원망스럽습니다 .
루벤이 시력을 찾게 되었을 때. 마리의 실제 모습에 실망하게 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모습이 걱정되었을 테죠. 이미 너무도 깊어진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나빠지기 시작한 자신의 건강하지 못한 몸이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지. 모든 것이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복잡해진 마리는 자신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는 루벤을 바라봅니다.
이제 피어나는 20대의 삶을 시작하는 자신의 연인. 그토록 그리던 시각을 찾고 나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것을 알고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은 마음을 거두지 않을 수 있을지.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목에 기꺼이 목줄을 끼워 마리의 손에 단단히 고삐를 쥐여준 자신의 지고지순한 연인을 바라봅니다. 마리는 그저 서재에 숨어 한없이 우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이 드넓은 세상에서 홀로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그것은 모두 깨진 유리조각 때문이야. 하나는 카이의 심장에 박혀있고 아주 작은 유리 파편이 그의 눈에 들어갔어. 이 유리조각들을 빼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는 다시는 인간과 같은 따뜻한 영혼을 가질 수 없어. 카이는 눈의 여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돼.
눈의 여왕
마리는 결국 떠나기로 합니다. 사랑해 마지않는 자신의 어린 연인을 두고. 완전히 모습을 감추기로 합니다. 그리고 영영 놓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손에 단단히 쥐어진 루벤의 고삐를 천천히 놓아줍니다.
마리가 없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 버린 루벤은. 고통 속에서 수술을 마칩니다. 마리는 눈을 뜨기 전에도. 그 후에도. 자신의 앞에 없었습니다. 설상가상 자신의 곁에서 묵묵히 모든 것을 지켜봐 주던 어머니까지 세상을 뜨게 되죠. 루벤은 눈을 뜨고 모든 것을 얻을 것 같았지만. 시력을 잃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자신이 그토록 그렸던 세상을 볼 수 있었지만. 결국 자신이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자신의 연인은 모습을 감춘 뒤였죠.
루벤은 정처 없이 떠돕니다.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머나먼 여행도 떠나봅니다. 하지만 마음은 흙탕물처럼 가라앉아 잠잠해지기만 할 뿐. 조그마한 충격에도 다시 섞여 루벤의 마음은 매번 혼탁해지기만 합니다. 그 원인은 언제나 마리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었죠.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이 영화는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 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루벤이 카이 , 그리고 마리가 겔다 . 라고 말을 하죠. 하지만 영화상에서는 루벤의 시력 회복 수술을 기점으로 이 역할은 바뀐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의 차가운 루벤을 바꿔준 것이 마리. 라면 후반부의 차가운 마리를 치유해 주는 것은 다시 루벤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서로에게 서로가 없이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그것이 절실히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이 안타까운 연인이 도서관에서 재회하는 신(Scene)부터라고 할 수 있죠.
루벤은 외모로는 마리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자신이 기억하던 향기와 책을 읽어주던 목소리로 도서관의 사서가 마리임을 확신합니다. 자신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애절하게 말을 하지만. 마리는 그런 루벤의 마음이 진심이 아닐 것이라고.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견디지 못해 결국은 돌아설 것이라고 단정해버립니다. 그리고 루벤의 손길과 마음을 다시 한번 뿌리치게 되죠.(참고 3)
자신의 앞에서 사라져 가는 마리를 보며, 루벤의 마음은 다시 한번 흙탕물이 되어버립니다.
"장미는 피었다가 지지만, 아기 예수는 항상 볼 수 있다"
지붕 옆 테라스 의자에 앉아 있는 카이와 겔다는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아이처럼 순수했다. 초여름이 되었다. 따스하고 아름다운 초여름이었다.
눈의 여왕
루벤은 선택을 하기로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리가 없는 세상은 자신에겐 의미가 전혀 없었죠. 그녀가 다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게 할 방법이 단 하나뿐이란 것을. 루벤은 너무도 쉽게 찾아냅니다.
자신이 두 번 다시 못 보게 될 세상을. 루벤은 두 눈 가득 담아봅니다.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하지만 그다지 미련 따위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가 원하는 세상은 결국 눈을 감았을 때야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러니 루벤 은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찔러버리는 행동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암흑으로 돌아간 루벤을 비추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그렸던 마리의 모습과 실제 마리의 모습이 달랐을지언정. 자신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죠. 다시 장님이 되었으니 자신의 연인 마리가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루벤은 웃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영화의 끝을 열린 결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꽉 찬 돌직구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장면의 배경을 보세요. 차갑고 시린 겨울이 아닌 (최소) 봄이 배경입니다. 루벤의 마음이 마리로 인해 완전히 녹았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마리의 마음도 자신이 녹여줄 것임을 다짐하는 루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죠.
다른 사람들은 손가락질할 것입니다. 아직도 이런 미련하고 초라한 사랑이 존재할 것 같냐고 반문도 하겠죠. 하지만 카이와 겔다의 여행이 끝이 나고 봄이 온 것처럼. 둘은 서로를 사랑으로 구원해 낼 것입니다.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그 "초라한"사랑으로 말입니다.
참고 1.
저희 집 사람들은 생활 패턴이 매우 규칙적입니다. 저는 뭐 말 안 해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부모님이나 남동생이 잠들었을 때 책이 읽고 싶었었는데 그게 안되니 작은방에 숨어서 불도 켜지 않고 책을 읽었죠. 덕분에 혼자만 시력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주워 온 거 아닙니다.
참고 2.
마리는 백색종(알비노) 비슷한 병으로 인해 학대를 받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참고 3.
저 장면에서 아 같이 가라고!!!!!라고 소리 지를 뻔함.
[이 글의 TMI]
1. 영화관에서 스피커 바로 밑자리에 앉는 바람에 루벤이 소리 지르면서 난리 칠 때마다 고막 나가는 줄 알았음.
2. 최근 다이어트를 하시는 잇님들이 많아지셔서. 다이어트 관련 글도 쓰려고 합니다. 욕 주의.
3. 연애 관련 포스팅을 계획하고 써 내려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도 순수한 사랑은 존재한다고 생각함.
4. [눈의 여왕]이 기억 안 나서 [겨울 여왕] 이라고 구글에 치고 안 나온다고 구글 탓함. 뎨성합니다.
5. 이 영화는 마리의 입장에서 심리학적으로 접근한 글 or 연애에 외모가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다시 쓸 예정
* 본 콘텐츠는 브런치 Rigo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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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시하는 카메라를 내려놓기
카메라를 내려놓기 – 영화 <마이제너레이션>(2004)
영화는 병석이 촬영한 영상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를 들고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담던 병석은 버려진 수첩을 줍는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은 없는 것이다.” 수첩의 주인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이 병석의 목소리로 발화될 때, 그것은 카메라를 든 병석의 욕망이자 선언으로 들린다. 보고자 하는 욕망. 본 것을 기록하고자 하는 욕망. 그렇게 영화는 시작부터 병석을 ‘보는’ 사람이자 기록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까지, 촬영한 곳까지가 그의 세상이다. 병석에게 카메라는 돈이나 재산 이상인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고, ‘보기’는 세상과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이다. 하지만 자칫 숭고하기까지 한 카메라는 정작 병석의 현실에서 너무도 무기력하다. 병석의 영상은 별다른 맥락 없는 주변 사물의 나열에 그치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화면과 조악하게 사용된 줌에는 아무런 규칙도 없는 듯하다. 그가 카메라를 다루는 방식, 세상을 보는 방식은 다소 투박하고 미숙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병석은 돈이 없다. 통장엔 잔고가 없고 카드엔 빚이 있다. 아버지와는 따로 살고, 어머니는 어떤 정보도 없이 서사에서 완전히 지워져 있다. 친형은 병석의 이름을 훔쳐 빚을 내고 달아났다. 무력한 현실과 무용한 카메라. 회색뿐인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컬러를 담아내는 순간이 병석이 촬영한 화면이라는 이유로 그의 카메라에서 희망을 읽어내는 것은, 어쩌면 오만한 기만일지도 모른다. (흑백영화인 <마이 제너레이션>은 병석이 그의 카메라로 촬영한 화면만을 컬러로 보여준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카메라를 든 병석이 그것을 내려놓기(버리기)까지의 과정이고, 현실에 짙게 깔린 어둠과 무기력함을 들여다 보는 영화이다. 그렇기에 진정 흥미로운 건 그 안에, 혹은 그 다음에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는 온기, 희미한 가능성이다. 카메라를 내려놓은 다음에야 발견되는 또 다른 가능성.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긴 우울을 지나야 한다. 아니다. 긴 터널을 지나서라도 반드시 그 빛을 이야기해야 한다.
한 선배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영상을 찍고 다닌다는 병석을 한가하다고 비웃고 일거리를 제안한다. 차가 쌩쌩 내달리는 도로에서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일. 병석은 너무 춥다고 선배에게 말하지만, 홀로 운전석에 앉아 딴짓하던 그는 창문을 내리곤 “넌 고생 좀 해봐야” 한다고 욕을 섞어가며 핀잔한다. 병석은 결혼식 비디오 촬영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업체)사장은 뮤직비디오 마냥 “왔다리갔다리 쌩쇼”하는 병석의 카메라를 못마땅해 한다. 그에게 병석의 카메라는 병석이 갚아야 할 ‘카드빚’일 뿐이고, 그는 그 빚을 핑계로 본격적으로 자신의 일을 돕기를 권유한다. 제안과 권유. 혹은 은근한 강요. 선배와 사장은 자신들의 기준에 쓸모없어 보이는 병석의 카메라, 즉 세상-보기 방식을 버릴 것을 요구하고 그보다 더 생산적인, 돈으로 환산되는 노동을 요구한다. <마이 제너레이션>이라는 제목이 부르는 ‘세대’에 대한 감각. ‘나의 세대’라는 명명에는 ‘다른 세대’와의 구분이 뒤따른다. 선배와 사장, 친형으로 대표되는 윗세대는 병석(과 그의 방식)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어쩌면 병석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그들은 보다 먼저 자본의 논리에 적응했다는 특권으로 아랫세대에 자신들과 똑같아질 것을 요구한다. 병석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이는 같은 세대라 할 수 있는 그의 애인 재경뿐이다. 하지만… 재경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가족은 보이지 않고, 힘들게 얻은 직장에서는 하루 만에 해고당한다. 재경은 해고에 불복하지 않고, 할 수도 없다. 대신 자신의 얼굴이 “우울해 보이냐”고 묻는다. 직장에서 잘리기 전 사장의 “우울해 보인다”는 말이 재경의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재경은 숱하게 당한 해고보다 자신의 얼굴에 그늘진 우울을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보기’를 대신하는 재경의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면. 재경은 배가 먹고 싶다는 병석을 위해 남의 밭에 쪼그려 앉아 배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직접 손을 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기다리면 언젠가 배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믿기 때문에. 남의 배 대신 자신의 배(腹)를 문지르며 빨리 떨어지라 주문을 외워도 보지만 결국 얼마간 기다림 끝에 둘은 발길을 돌린다. 그래, 그게 언제 떨어질지 알고 기다리겠어. 하지만 바보 같던 재경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등 뒤로 배가 떨어진다. 배는 떨어지지만 그들은 보지 못한다. 아니다. 그들은 보지 못했지만 배는 떨어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걸어가는 재경과 병석의 뒷모습이 마냥 슬퍼 보이지만은 않는다. 먹고 싶던 배는 먹지 못했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이 둘의 단촐한 식사 장면이라는 점은 분명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보기’ 대신 ‘보이진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 직접 눈으로 보진 못해도 믿음과 희망으로 견뎌낼 힘이 여기 있다고, 이 장면은 말하는 것 같다. 또 다시 이어지는 재경의 대사. 재경은 병석에게 착하게 살자고 말한다. 그 뻔하고 단순한, 순진한 구호 또는 다짐이 이 숏들을 통해 우리에게 비(非)응시의 희망을 전언한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반대되는 두 사람의 방식은 단번에 융합되지 않는다. 병석은 재경의 우울한 얼굴을 촬영하고자 한다. 문제는 재경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병석이 말 없는 재경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밀 때 그 불안하고 미숙한 프레임은 폭력에 가깝게 느껴진다. 재경이 자신의 우울한 얼굴을 마주하는 대신 부정 혹은 유예를 택했다면, 병석은 재경의 우울을 정확히 응시하고 기어코 카메라에 담아내길 욕망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재경의 대답. “왜 항상 네 방식으로만 모든걸 봐?” 오프닝 내레이션(“나는 장님이다. 아무것도 없다... 그럼 뭐가 있는 거지?”)이 다시 환기되는 건 이때다. 자신이 본 것까지를 존재함으로 명명하던 병석은 정작 가장 가까이 있는 재경 앞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다. 또 한 번의 기회.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공교롭게도 오늘은 그가 카메라를 들 수 있는 마지막 날. 재경은 쇼핑몰 다단계까지 당하고, 결국 병석은 둘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카메라를 팔기로 했다. (병석의) 화면 속 재경의 얼굴이 더욱 시리게 다가오는 이유는 지금을 마지막으로 병석이 카메라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병석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프레임을 꽉 채우는 재경의 얼굴. 병석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번이나) 묻고, 기어코 재경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찍는다. 우리가 정말로 견디기 힘든 건 어쩌면 영화 내내 이어지는 두 청춘의 끝없는 실패와 좌절, 무기력함 보다도 재경을 향한 병석의 집요한 응시와 그로 인한 두 사람의 소통 불가능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라운 건 이 마지막 장면이 끝나는 순간, 처절함이 극에 달하는 그 때 “카메라 끄면 말할게”라는 재경의 대사 뒤로 병석의 카메라가 꺼짐과 함께 영화 또한 끝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병석의 카메라와 <마이 제너레이션>의 카메라가 동시에 꺼지며 열리는 다른 차원. 세상-보기 방식으로의 카메라를 버리기를 내내 요구받았던 병석이 끝내 카메라를 내려놓게 되는 건 자본주의의 힘 때문도, 그것을 이용한 윗세대의 강요 때문도 아니라 재경의 요청 때문이다. 병석은 재경의 요청으로 카메라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새로운 방식을 얻는다. 재경의 우울을 응시할 수 없음을, 그것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병석의 깨달음인 동시에 <마이 제너레이션>의 감독 노동석이 깨달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병석은 카메라를 버리고 일어서야 한다. 그러니까 <마이 제너레이션>은 그 순간 끝마쳐야 한다. 이제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재경을, 세상을 마주할 것이다.
또 한 가지 덧붙여보고 싶은 이야기. 동생(병석)을 이용해 빚을 진 형(병석의 친형)이 퇴장한 뒤에야 등장하는 또 다른 동생(요한). 형은 어느 날 병석의 집을 찾아 오고, “한 대만 때리자”는 병석의 말에 형은 맞을 준비를 갖춘다. 병석은 “이게 형제냐”고 따져 묻고 한 대 때리기 대신 형을 껴안아버리기를 선택한 뒤, 마찬가지로 자신과 제대로 된 형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동생 요한을 찾아간다. 병석은 어린 동생이 자신을 알아보는지 확인하고 싶다. 동생에게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듯 싶지만 병석이 실제로 묻는 건 아버지가 잘 계신지가 아니라 그가 동생을 잘 놀아주는지, 다시 말해 동생이 (아마 병석은 받지 못했을) 아버지의 보살핌 아래 잘 지내는지의 여부이다. 형제는 물론 부모와의 관계도 온전하지 않은 병석이 교류 없던 어린 동생을 찾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야”로 시작해 “요한아”로 이동한 짧은 대화. 존댓말이 아닌 형제끼리의 반말(“다음부터는 존댓말 하지마. 형제끼리는 반말하는 거야. 알았지?”)을 요청하는 대화. 그것은 요원하고 불완전한 동생과의 관계를 접합하려는 시도이자, ‘다음 세대’로 기약되는 희망을 붙잡으려는 마음이다. 나는 그 마음이 병석과 재경에 각자의 방식대로 옅게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들이 우리에게 짙게 남긴 흔적 또한,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무력한 현실과 차가운 자본의 논리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이 미약한 온기에 기인한다고 믿는다. 영화로 확인할 수 없는, 카메라를 내려놓은 병석과 재경의 대화, 그리고 동생 요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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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릭레이어> 액션 영화의 집합체 같은 영화, 브릭레이어
액션 영화의 집합체 같은 영화, 브릭레이어
CIA의 최고의 요원들이 연이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브릭레이어라는 별명의 전설적 존재로 불리우던 전직 CIA 요원 ‘스티브 베일’을 다시 불러들인다. 베일은 현직 CIA 요원 ‘케이트 배넌’과 파트너가 되어 사라진 요원들을 추적하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과 갈등에 휘말리게 되는데.. 과연, 베일은 자신의 과거와 싸우며 적들을 제압하고, CIA의 존폐를 위협하는 숨겨진 적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운명을 걸고 펼쳐지는 치열한 추적과 반전의 연속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네이버 <브릭레이어>영화 소개글
영화 <브릭레이어>는 CIA에서 나와 브릭레이어 즉, 벽돌공으로 일하던 '스티브 베일'이 다시 CIA와 엮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스티브 베일'은 그 과정에서 숨겨진 비밀과 감춰진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액션 영화, <브릭레이어>이다.
<브릭레이어>는 총격전, 폭파, 자동차 추격 등 액션 영화에서 관객이 충분히 도파민을 느낄만한 요소들을 모두 담고 있다.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진실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는 점에서도 끝까지 영화가 가지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전직 CIA 요원으로 현장 경험이 많은 '스티브 베일'과 엘리트 요원이지만 현장 경험이 없는 그의 파트너 '케이트 배넌'의 케미를 플롯에 넣어 관계성이 두드러지게 표현된다는 점에서도 영화는 관객의 재미를 사로잡기 위해 많은 요소 넣었다는 것이 잘 느껴졌다.
다만, <브릭레이어>의 아쉬운 점은 바로 이 모든 것이 이미 나왔던 액션 영화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이다.
'스티브 베일'은 다양한 액션을 보여주지만 다른 액션 영화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전직 CIA 요원이자 현재는 벽돌공으로 일하는 '스티브 베일'만의 액션이 많이 등장하지 않아 차별점이나 <브릭레이어> 액션만의 특징을 느낄 수 없었다. 영화 제목이 <브릭레이어>인 만큼 벽돌공으로서 얻은 직업병이라든지 습관으로 인한 행동이 액션에 담겨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또한, 영화의 전개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스티브 베일'과 '케이트 배넌'사이의 관계성도 이전 액션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점도 관객으로서 아쉬웠다. 현장 경험이 많은 '스티브'는 CIA의 원칙을 따르지 않고 독단적 행동을 한다는 설정, 그리고 '케이트'는 반대로 원칙을 고수하는 현장 경험이 없는 인물인 점, 그런 '케이트'가 진짜 현장을 마주하게 되면서 겪는 괴리와 '스티브'와의 작전으로 성장한다는 설정까지 관객에게는 무수히 관람한 액션 영화의 하나로밖에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은 다소 뻔한 등장인물의 관계성이다. 또한 '케이트'의 역할이 주도하기보다 '스티브'의 보조로서만 등장하여 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영화의 결말에 밝혀지는 진실 그리고 반전 이후에 또 다른 반전이 있을 것 같다는 추측 모두 관객으로서 예측할 수 있. 이미 개봉한 액션 영화의 클리셰와 같은 요소들이 많이 들어가 관객에게 다소 아쉬움을 남긴 영화, 브릭레이어였다.
※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대되어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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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톺아보기] 김보라 배우 출연작 파헤쳐 보기!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의 톺아보기 주인공은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 출연할 예정이며,
오늘이 바로 생일인 배우인데요. 바로 배우 '김보라'입니다!!
그럼, 바로 김보라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톺아보러 가볼까요?!
배우 '김보라' 프로필
ⓒ sidusHQ
이름 | 김보라
출생 | 1995년 9월 28일
소속사 | 엠씨엠씨
데뷔 | KBS2 드라마 <웨딩>
배우 '김보라' 데뷔 과정
ⓒ sidusHQ
배우 김보라는 10살이던 2005년에 KBS2 드라마 <웨딩>으로 데뷔를 했다. 이후 지금까지 17년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안정된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배우 '김보라' 활동
ⓒ sidusHQ
아역 시절부터 배우로 활동하며 주조연으로 연기를 펼쳤고, 학업과 병행하다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2014년도 수시 전형에 응시를 하였고, 수석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아역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성인이 된 이후에도
주로 학생 역을 맡았고, 2016년 작품 <삼례>에서 처음으로 성인 연기를 하였다.
배우 '김보라' 대표작
천국의 아이들 - 성아
ⓒ 네이버 영화
김보라 배우는 친구들에게 담배를 공급하며 말투가 거친
문제아 학생 역할인 '성아' 역을 맡았다.
삼례 - 희인
ⓒ 네이버 영화
삼례를 떠나고 싶어하는 신비롭고 당돌한 매력을 가진 '희인'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웨이브, 티빙, 왓챠
소년, 소녀를 만나다 - 큰 하진
ⓒ 네이버 영화
김보라 배우는 통일 준비를 위해 북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홈스테이가 시행되어,
남한 소년 우영의 집으로 홈스테이를 가게 된 '큰 하진'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웨이브
스카이 캐슬 - 김혜나
ⓒ JTBC
김보라 배우는 예서와 전교 1,2등을 다투는 라이벌이자, 뛰어난 두뇌와 성취욕을 지니며 영악하고
영특한 신아고 학생 '김혜나'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
그녀의 사생활 - 신디
ⓒ Tving
김보라 배우는 남자 아이돌그룹 화이트 오션의 멤버 차시안의 홈마로,
남들이 찍지 못하는 사진을 올리며 시나길의 라이벌 홈마로 떠오른 '신디'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넷플릭스, 티빙
굿바이 썸머 - 수민
ⓒ 네이버 영화
김보라 배우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는 사람이며,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수험생인 '수민'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U+ 모바일tv
SF8-우주인 조안 - 조안
ⓒ MBC
김보라 배우는 평균 수명 30세인 N과 고가의 항체 주사를 맞은 C로 나뉜 세상에서
학교 안의 유일한 N이며,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 대학생 '조안' 역을 맡았다.
------------- 시청 가능한 OTT -------------
웨이브
도둑잠 - 홍주
ⓒ KBS
김보라 배우는 집도 없고 돈도 없어 1년 전 헤어진 전남친의 원룸에서 도둑잠을 자기로 한
헤어샵 어시스턴트 4년차 '홍주'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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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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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아톤리뷰/소개]초원이는 커서 고니가 됩니다. 조승우의 지리는 연기력!
#말아톤#말아톤리뷰#영화말아톤
이 영상은 예고편이 아닌 본편을 활용해 제작했습니다. 모든 저작권 및 수익은 영화사,제작사,배우 등 원작자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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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가 훨씬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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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겨울왕국 2'를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저의 가장 큰 힘이 됩니다!
※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 연락처
adonai0919@gmail.com
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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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잇츠 어 신>
[2021년 3월 24일 왓챠 공개]
“게이만 걸리는 병?, 영국에서 남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정체불명의 병이 런던을 덮치고, 리치와 친구들의 삶은 위협받는다.
하지만 온 세상이 등을 돌릴 때, 그들은 서로를 붙들며 노래한다, 라! 라!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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