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1-30 11:14:31
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
영화 [서브스턴스] 리뷰
이 글은 영화 [서브스턴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글은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한국어를 매우 잘한다는 가상의 상황에서 편지를 받았다고 제발 믿어주라(?)

리지 씨에게.
안녕하세요.
우선 너무 늦게 당신의 이야기를 영화관에서 만나게 된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저 역시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라는 같잖은 헛소리를 최근까지도 들으면서 자란 사람이기에. 당신의 이야기를 지켜보면서 참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먼저 영화를 본 친구들은 분명 징그럽고 피 튀기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막상 영화관을 나올 때 저를 지배했던 감정은 당신을 향한 슬픔과 동병상련이었습니다. 이런 감정의 부조화는 마치 당신과 또 다른 당신의 관계처럼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마음이 꽤 오랫동안 복잡했어요. 어쩌다 거울 속의 당신을 스스로가 미워하게 된 것일까.라는 물음에 제가 감히 답을 낼 수도, 내기도 어려웠거든요. 저의 얕은 생각과 비루한 기억력을 거스르고 또 거슬러 올라가서. 그 미움의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를 더듬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답(?)이 나오더라고요.
단 한마디였습니다. 당신의 빛남(sparkle)을 가져간 것은. 타인. 그것도 당신보다 더 나이가 들었으면 들었지. 아니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남자의 단 한마디. 아마도 당신은 여태껏 스스로 빛을 내는 별(항성)인 줄 알고 살아왔을 텐데. 그 비수는 참 힘이 세서. 당신의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던 핵융합의 심장부에 꽂혀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당신 안의 반짝임을 스스로가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의 평판을 반사해야만 빛나는 행성이 되어버린 순간이라고 할까요. 아, 그리고 저는 당신이 새우를 씹던 하비의 입을 찢어놓지 않았다는 그 절제력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저였으면 포크로 아마 콧구멍을 후벼 팠을 거예요.

한국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은교]에서는 이런 문장(대사)이 있습니다. 너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말이죠. 분명 당신 또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패배감과 상실감. 그리고 더 이상 스스로 빛날 수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도 없으니 반사되어 빛나기라도 할 수 없다는 초조함이 아마도 수의 탄생을 부추기는 힘이 되어버렸으리라고 생각해요.
나였어도 그랬을 것입니다. 저 역시 또 다른 나의 탄생을 막을 수 없었을 거예요. 과연 누가 당신의 선택에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그리고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는 가정을 한다면. 차라리 저는 수의 탄생 이후에 당신이 행복하길 바랐습니다. 어쨌거나 서브스턴스 제공사(?)측의 말처럼 당신과 수는 하나였으니까. 두 사람 간의 균형이 지켜질 것이라는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그렇지 못했어요. 당신이 멍하니 TV앞에 앉아서 수의 탄생 전 보다 더 슬픈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과의 데이트에 앞서 스스로의 모습을 부정이라도 하듯 립스틱을 빡빡 닦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미워하는 듯한 당신의 모습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언젠가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거든요.
물론 그 어떤 위로도 당신에겐 통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수를 탄생시킨 것은 당신이고. 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젊음을 누리고 싶었던 것도. 그리고 그토록 증오했지만. 어쩌면 당신에겐 가장 필요했을 하비의 인정을 바랐던 것도 당신이었을 테니까요. 다시 한번 더 빛나고 싶다는 스스로의 욕망이 이토록 큰지. 당신도 몰랐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래 욕망이라는 게.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깊이의 우물 같은 것이니까요.

육신이라는 게 참 덧없지요.
분명 미워해 마지않던 50대의 당신이었잖아요. 하지만 그마저도 수에게 하루 이틀, 야금야금 빼앗기고 난 후의 당신의 눈빛은 참 아팠습니다. 그리워하고 있더군요. 커다란 액자 속 스스로가 미워했던 그 모습을 말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절박감은 수에게도 찾아왔죠. 그녀가 늦게 깨달은 것인지. 당신이 일찍 깨달은 것인지. 줄 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의 치아가 뽑혀나가는 그 순간만큼은 그저 한 사람의 절박함과 공포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토록 기다렸던 시간의 정중앙에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순간으로 기록되어야 할 그 순간에. 피를 흘리다 못해 분사하는 당신의 모습은 여태 하고 싶었던 본심을 모두에게 전달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괴물인가. 아니면 당신들이 괴물인가. 아니지, 우리 모두 괴물인거지.라고 울부짖는 것만 같았어요. 마치 영화 [샤이닝]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그 괴기스럽기도, 또 과장되어 보이기도 하는 장면에서. 저는 허망하게 흩어지는 당신의 살점과 피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주변 세탁소에서 기함을 토하며 그냥 이 옷을 버리라고 말할 것 같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꼭 당신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아 물론 정상적인?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피를 그만큼 흘릴 수도 없을뿐더러 그만큼 흘리면 명예의 전당까지 기어갈 힘도 없겠지만. 이것은 저의 직업병이며 영화적 허용이라 보고 넘어가도록 하죠(?)

마지막 인사를 뭐라 해야 할지 참으로 많이 망설였습니다.
당신은 그래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이해한다 라는 뭉뚱그린 말로도 그간 입은 상처를 다 보듬을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그동안 외로웠죠.라는 개똥철학도 건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힘내라는 뻘소리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최후는 바닥에 묻은 케첩의 말로처럼 참 처참했지만. 그러면서도 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끝나버렸죠. 이 모든 것이 아 시발 꿈처럼 느껴지는 마지막이었기에 더 어떤 말로 마무리를 해야 할지 모른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당신이 겪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절대 없어지지 않겠죠. 두 번째 당신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저 역시 그 푸른 드레스를 입은 살덩어리를 괴물이라 부르지 않을 자신은 없습니다. (아마 제가 제일 먼저 도망갈걸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기억될 거예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말이죠. 그게 정말 당신이 원했던 것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추신.
그…. 주삿바늘은 한 번쓰고 버리신 거 맞죠? 어우.. 제발..
[이 글의 TMI]
1. 이렇게 자도 될까 싶을 정도로 연휴 내내 자는 중.
2. 이럴 거면 그냥 겨울잠을 자라.
3. 노동요 추천받습니다.
#영화리뷰 #최신영화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서브스턴스 #데미무어 #영화리뷰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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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츠 인 더 무비] ‘아이스크림’ 인 더 무비
- [왓츠 인 더 무비 What’s In the Movie]:영화가 시작되고 들려오는 첫 사운드부터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직전까지, 당신의 귀와 눈을 자극하며 들어오는 모든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영화를 만든 이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것들은 모두 영화 속에서 저마다의 의미를 갖는다. 지나가는 행인 7의 신발색부터 ‘인셉션’의 팽이까지, 영화 속 요소가 얼마나 사소한지, 혹은 얼마나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각각의 대상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토대로 작품을 바라볼 건지는 전적으로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달렸다. [왓츠 인 더 무비]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들을 생각해 보고, 의미를 느껴본다.4월의 오락가락한 날씨 속 느껴지는 뜨거움, 벌써부터 올 한 해도 유독 뜨거운 여름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흔히 우리는 ‘여름을 이겨낸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사실 여름이 이겨내고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인 것은 결코 아니다. 해수욕장과 계곡에서의 물놀이부터, 야구와 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 대회들까지 여름은 즐길 것 천지다. 물론 삼계탕과 냉면, 수박 등 과일들까지 다양한 여름 먹거리도 빠질 수 없는데, 이러한 여름의 먹거리들을 제쳐두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아이스크림’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입만으로 여름의 더위를 가시게 하는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은 우리 일상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에도 특별한 의미와 함께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극의 상황을 이 차갑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대신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번 [왓츠 인 더 무비]에서는 아이스크림이 가지는 의미를 중심으로 작품들을 소개한다. 지금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물고, 아이스크림처럼 차갑지만, 달콤한 영화의 세계에 빠져보자.<로마의 휴일>“함께였기에 더욱 자유로웠던”감독 : 윌리엄 와일러출연진 : 그레고리 펙, 오드리 헵번. 에디 알버트, 마가렛 로우링스아이스크림과 영화, 이 두 가지의 단어를 놓고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단연 ‘로마의 휴일’이다. 특히 극 중에서 ‘앤’ 공주 역할을 한 ‘오드리 헵번’이 스페인 광장에서 젤라토를 먹는 장면은 아이스크림과 관련된 영화 장면 중에서 제일 유명할 뿐만 아니라, 장면 자체도 영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면이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오드리 헵번이 먹는 젤라토는 아이스크림이 아니지만 말이다.‘앤’ 공주는 유럽의 여러 국가를 순방하게 된다. 그러나 공주로서의 너무나 가혹한 스케줄로 그녀는 결국 일탈을 시도한다. 숙소를 몰래 빠져나간 앤 공주는 그날 밤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를 만나게 되는데, 처음에 그는 그녀의 신분이 공주인 줄 몰랐기에 그녀를 잠깐 재워주고 보내주려 한다. 그러나 기자였던 조 브래들리는 신문에 나온 사진으로 앤이 공주인 것을 알게 된다. 조 브래들리는 앤을 통해 특종을 잡기로 하고, 집에 있던 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보내주는 척을 한 후 그녀를 미행한다. 작별 인사를 마친 앤 공주는 대사관으로 바로 가지 않고 로마의 일상을 즐기는데, 그러던 중 신발을 사고 머리도 자른 뒤 스페인 광장에서 젤라토를 먹게 된다. 젤라토를 먹는 앤을 보고 타이밍을 잡 은 조 브래들리는 우연을 가장해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난다.“잊지 못할 달콤함은 녹아버리고”이 장면에서 바로 앤 공주가 조 브래들리 곁에서 젤라토를 먹는 그 유명한 장면이 등장한다. 극 중에서 젤라토는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주체성을 상징한다. 앤은 한 나라의 공주로 극진한 대접을 받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완벽한 모습을 강요받는 새장 안에 갇힌 새와 같은 신분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본인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타국에서 자유로운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사소해 보이지만 공주로서가 아닌 한 손님으로서 자신이 직접 값을 지불하고, 사람들 많은 광장에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젤라토를 먹는다는 것은 그녀의 처음이자 다시 오지 못할 자유이다. 많은 동화와 연극에서 그러하듯 해당 작품에서도 앤 공주와 조 브래들리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잊지 못할 평생의 추억을 선사한 조 브래들리와의 만남은 쉽게 설명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다. 그들의 만남이 더욱 달콤하게 느껴졌던 것은 어쩌면 앤의 입안에 아직 남아있던 달콤한 젤라토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본다.<포레스트 검프>“목적 없이 아름다운”감독 : 로버트 저메키스출연진 : 톰 행크스, 로빈 라이트, 게리 시니스, 마이클티 윌리엄스남들보다 낮은 지능으로 태어난 포레스트 검프 (톰 행크스). 그는 남들보다 몇 배는 어려운 자신의 환경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누구보다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그러한 과정에서 미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겪음과 동시에 자신과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흔히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로 흔히 알려져 있다. 베트남 전쟁과 ‘핑퐁외교’, ‘엘비스 프레슬리’와 애플 컴퓨터를 소재로 다루기도 하는 등 미국의 문화를 알기에 좋은 영화로 많이 소개되곤 한다. 하지만 단순히 미국인들의 국민 영화로 치부되기에는 포레스트 검프가 갖는 의미는 넘쳐난다.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게 된 포레스트 검프는 졸업식 때 모병관이 준 지원서에 순진하게 지원하게 되면서 베트남 전쟁까지 참전하게 된다. 전쟁 중에, 검프는 언젠가 함께 새우잡이 배를 하기로 약속한 절친한 친구 ‘버바’를 잃게 된다. 검프는 친구를 잃었지만, 엉덩이에 총까지 맞으며 자신의 상관인 ‘댄 중위’를 구하게 되고, 댄 중위와 그는 군 병원에 함께 입원한다. 군 병원에 검프와 댄 중위를 비롯한 군인들은 원하는 대로 아이스크림을 제공받게 되는데, 검프는 이에 굉장히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중에서 검프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대로 먹을 수 있던 점이 엉덩이에 총을 맞아 좋았던 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러한 순진무구한 검프와 별개로 검프의 옆자리에 있던 댄 중위는 검프가 준 아이스크림을 바로 변기에 버려버린다. 그 이유는 그의 두 다리가 절단되었기 때문이다.“달진 않지만, 마냥 쓰지도 않은”이처럼 포레스트 검프에서 아이스크림은 검프의 순수함, 그에 대조되는 댄 중위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는 메타포로 사용된다. 친구를 잃고 자신도 부상당한 비참한 상황에서 도 아이스크림 하나로도 즐거워하는 모습은 현실적인 댄 중위와의 극명한 차이를 이룬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스크림으로 대표되는 검프의 따뜻함이 결국 댄 중위의 마음을 녹이게 된다는 것도 의미한다. 위로를 위해 검프가 댄 중위에게 아이스크림을 주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는 위로의 정서로 작용해 댄 중위의 마음을 움직였다. 당시에 댄 중위가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고 버리긴 해도 댄 중위는 매춘부들이 검프를 괴롭힐 때 검프의 편을 드는가 하면 나중에는 검프를 믿고 새우잡이배 사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마침내 댄 중위는 세상과 화해한다. 비극적 상황에서 건넨 검프의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결국 못 먹을 정도로 썼던 누군가의 농도를 조금이나마 희석해 준 것이다.<헤어질 결심>“온전히 끌려가기에 사랑인가?”감독 : 박찬욱출연진 :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박용우부산에서 모범적 형사로 근무 중인 해준 (박해일)은 남편의 살해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오른 서래 (탕웨이)를 만난다. 해준은 서래에게 용의자에게는 느낄 수도, 느껴서도 안 되는 감정을 갖게 된다. 서래 또한 그러한 해준의 태도를 이용하는가 하면, 그녀 역시 해준 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는다. 서래에게만 유독 관대한 태도의 해준은 그녀의 알리바이와 증언을 받아들이며 그녀에 대한 의심을 없애게 된다. 그와 동시에 해준은 며칠동안 서래의 집을 몰래 보며 그녀를 관찰한다. 그러던 중 서래가 아이스크림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을 알게 된다. 해준은 본인만이 서래를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서래 역시 해준을 관찰하고 있으며 자신이 해준에게 관찰당하고 있다는 상황 또한 알고 있다.“맛보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마침내”작중에서 아이스크림의 의미는 해준을 향한 서래의 유혹이다. 서래는 해준이 자신에게 이끌리고 있으며, 사랑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녀 역시 품위있는 그에게 이끌리고 있다. 그러한 해준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래는 해준의 욕망을 자극한다. 천천히 아이스크림을 먹는 서래의 모습은 검거를 마치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해준과 대치된다. 그와 동시에 서래의 입이 천천히 부각된다. 이는 해준을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서래의 태도와 그녀에게 해준이 빠져들게 됨을 보여준다. 해준은 부인 정안 (이정현)과 성관계를 하는 장면에 있어서 어딘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관심과 사랑의 대상인 서래를 대하는 태도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인 것이다.서래의 아이스크림은 유혹의 상징으로 사용될 뿐 아니라 동정심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한 끼 한 끼 먹는 것에 있어서 진심인 해준과 달리 매번 아이스크림으로 식사를 마치고 담배마저 태우는 서래의 모습은 그녀에 대한 해준의 동정심을 끌어낸다. 또한 해준과 서래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준다. 잠을 못 자는 해준에게는 서래가 잠을,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하는 서래에게는 해준이 식사를 제공한다. 이처럼 서래가 자신이 필요한 것과, 또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드러내는 이유는 그녀가 해준을 필요로 하고 해준 역시 그녀가 필요할 것을 알고 있어서이다.서래의 아이스크림은 녹아있다. 서래는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굳이 치우지 않고 방치한다. 차갑고 딱딱한 아이스크림이 흐물흐물한 액체가 되어 뚝뚝 흐르는 장면은 고고하고 품위 있던 형사 해준이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버려 흔들린다는 것을 암시한다. 서래의 대사에 나오는 ‘아무 생각도 못 하고 바다 밑으로 점점 내려가는 해파리’처럼 말이다. 결국 헤어지기 위해 결심까지 필요했던 그들의 사랑은 붕괴된다. 미제사건처럼 영원히 남자의 기억 속에 남고 싶다던 여자의 말은 아마 이루어질 것이다. 이미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은 다시 얼려보아도 원래의 형태로 돌아갈 수 없기에.<플로리다 프로젝트>“디즈니월드 반대편 또 다른 천국”감독 : 션 베이커출연진 : 윌렘 데포, 브루클린 피니스, 브리아 비나이테, 발레리아 코토천진난만한 미소의 세 아이 뒤에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들이 사는 곳은 플로리다주의 올란도이다. 6살의 무니 (브루클린 피니스)는 매직캐슬이라는 이름의 모텔에서 엄마 핼리 (브리아 비나이테)와 살고 있다. 매직캐슬이라는 이름도 근처 올란도 디즈니월드에서 따왔을 정도로 꿈과 희망의 나라 디즈니월드와 그들의 집은 가깝다. 그러나 언제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디즈니월드의 반대쪽에 거주하는 그들은 매주 방세를 내며 간간히 살아간다. 핼리 역시 미혼모로 향수를 팔거나 성매매로 돈을 벌어 무니와 살고 있다. 무니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항상 쾌활하고 즐겁다. 모텔의 전기를 끊어 버리거나 집에 불을 내기도 하고, 때때로는 관광객들에게 구걸해 아이스크림을 사먹기 도 한다.“하나의 아이스크림도 행복을”영화 속 아이스크림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친구들과 함께 하니 무엇이든 즐거운지, 구걸로 번 돈으로 산 아이스크림콘을 세명이서 나눠먹는 아들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무언가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어른들이 울 것 같으면 자신은 바로 안다’는 무니의 말은 아이들의 순수해 보이는 모습이 결코 아무것도 몰라서가 아니라 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도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을 이겨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어른스럽다라는 말 자체를 부끄럽게 한다. 더운 날씨 탓에 금방 녹은 아이스크림은 빨리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와 달리, 뛰어다니며 한입씩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그들의 모습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녹아버려 사라지는 아이스크림처럼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그들의 삶은 어쩌면 작지만 황홀한 한 입처럼 누군가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즐겁고 가치 있을 것이다.플로리다 프로젝트에 악역은 없다. 성매매를 하며 싸구려 향수를 판다고, 무책임하고 불법적으로 보이는 헬리는 조금 자유로울 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무니와 함께 살아간다. 무니 역시 가족, 친구와 함께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에 무니를 보호하기 위해 위탁 가정에 보내려는 아동 보호국이 오히려 악역으로 보일 정도이다. 이처럼 1967년 디즈니 월드의 건설 초기 프로젝트를 의미하던 ‘플로리다 프로젝트’든, 집 없는 이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말하는 ‘플로리다 프로젝트’든 어떤 대상도 누군가에게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고 의미를 갖는다. 필요 없게 여겨지는 작은 동전 하나 하나가 모여 최고의 아이스크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8월의 크리스마스>“여름보다 뜨거웠던 사진의 온기”감독 : 허진호출연진 : 한석규, 심은하, 신구, 이한위무더운 여름날 정원 (한석규)는 땀을 흘리며 사진관으로 들어온다. 사진관에서 기다리는 주차단속원 다림 (심은하)은 그런 정원에게 사진을 뽑아달라 닦달한다. 정원은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을 듣고 장례식장에 다녀온 직후였다. 다음에 오라고 정원은 약간은 짜증을 내지만, 그러한 짜증이 못내 미안했는지 다림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건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투의 정원에게 다림은 호감을 느끼게 되고 그들은 가까워진다. 정원과 다림은 다른 연인들처럼 대놓고 애정 표현을 하지도, 사랑을 입으로 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고, 달리기를 하고, 산책하면서 그들의 말과 표정은 사랑을 전한다.
“한 순간의 달콤했던”“지난 20년간 한국 멜로는 결국 허진호였다”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오글거리는 사랑 노래 없이도 뛰어난 연출 덕에 영화의 정서는 온전히 느껴진다. 이러한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 영화에는 다양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영화 내내 정원과 다림 곁에 함께 등장한 것은 바로 아이스크림이었다. 바 아이스크림, 컵 아이스크림, 콘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아이스크림들이 영화 속에서 역할을 한다. 시한부라는 비참한 삶과 현실에도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을 수 있었던 다림을 먼저 신경 쓴 정원, 그가 건넨 미안함과 선함이 담긴 아이스크림 바 하나는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 삶의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준비한 아이스크림을 쑥스럽게 건넨 정원과 그의 사과를 흔쾌히 받아주는 다림. 그렇게 둘의 아름다운 사랑을 시작된다.존대하던 사이에서 반말을 하고 함께 스쿠터를 탈 정도로 가까워진 그들은 어느 순간 또 하나의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장남이었었던 정원과 오 남매였던 다림은 가족 이야기를 하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나의 아이스크림을 퍼먹는다. 이 장면은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사랑함을 보여줄 뿐 아니라 둘의 더욱 가까워진 사이를 암시한다. 다림과 정원은 다림이 퇴근한 후 술을 마시기로 하는데, 왠지 모르게 그날 다림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 후 화장을 한 다림은 정원의 사진관에 찾아오는데 이번엔 정원의 아이스크림도 거절하고 함께 술을 마신다. 사소한 대화를 나누던 중 다림은 ‘서울랜드’에서 일하는 친구 덕분에 언제든지 가면 공짜 표를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녀의 마음은 눈치챈 정원은 웃는다.서울랜드에 놀러 가 벤치에 앉은 그들은 다시 아이스크림을 먹게 된다. 딱 붙어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저번과 달리 둘의 거리는 마치 한 사람의 자리만큼 벌어져 있다. 이러한 거리를 의식한 터일지 다림은 먼저 다가가 거리를 좁히는데, 정원은 그저 웃음만 보인다. 마지막 아이스크림은 그들이 함께 보내는 마지막 날에 먹은 아이스크림이다. 정원의 상황을 모르기에 다가가는 다림과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정원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가슴 아픈 장면이다.놀이공원 데이트를 마치고 목욕탕에 갔다가 산책까지 하면서 알차게 하루는 끝나지만, 결국 정원이 쓰러지고 입원하면서 그 둘은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 영화는 정원의 웃는 영정사진과, 자신의 사진이 걸린 사진관을 보며 웃는 다림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결국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처럼 한순간이었던 다림과 정원의 사랑은 끝이 났지만 너무나 달콤했던 여름날의 사랑은 그들에게 남아있을 것이다.“영화와 아이스크림”차갑지만 따뜻하며, 딱딱하지만 부드러웠던, 녹아서 사라지기에 더욱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영화의 가치는 공유된다. 자유부터 사랑까지,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아이스크림 하나가 주는 남다른 의미는 어떤 대상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까지 아이스크림의 의미를 중심으로 다섯 가지 영화를 함께 살펴보았다. 이러한 의미를 조금은 생각해보며, 아이스크림을 먹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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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주 차 개봉작 추천,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2월 둘째 주 개봉 예정인 작품들을 소개드리려고 해요.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으며 세계 유수 영화제의 찬사를 이끌어낸 <다음 소희>부터
개봉 25주년을 맞아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하는 <타이타닉>까지!
어떤 영화들이 개봉하는지 지금부터 알아볼까요?
다음소희
Next Sohee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38분
감독: 정주리
출연: 배두나, 김시은 등
개봉: 2023.02.08
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시놉시스
“나 이제 사무직 여직원이다?” 춤을 좋아하는 씩씩한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 오랜만에 복직한 형사 유진. 사건을 조사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자취를 쫓는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언젠가 마주쳤던 두 사람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그 애를 만난 적이 있다.
CINE PICK!
<다음 소희>는 지난 2017년 1월, 전주에서 대기업 통신회사의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고등학생이 3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지켜주지 못했던 소희를 위로하고 또 다른 소희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제작되었으며, <도희야> 이후 9년 만에 신작을 선보이는 정주리 감독의 탁월한 연출과 베테랑 배우 배두나, 신예 김시은의 호흡이 기대되는 영화입니다.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선정되었으며,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평가를 얻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타이타닉: 25주년
Titanic
ⓒ 네이버 영화
개요: 멜로/로맨스, 드라마 | 미국 | 195분
감독: 제임스 카메론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등
개봉: (재) 2023.02.08
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씨네힐
시놉시스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은 당신을 만난 거야" 우연한 기회로 티켓을 구해 타이타닉호에 올라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화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막강한 재력의 약혼자와 함께 1등실에 승선한 로즈(케이트 윈슬렛)에게 한눈에 반한다. 진실한 사랑을 꿈꾸던 로즈 또한 생애 처음 황홀한 감정에 휩싸이고, 둘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는데… 가장 차가운 곳에서 피어난 뜨거운 사랑! 영원히 가라앉지 않는 세기의 사랑이 펼쳐진다!
CINE PICK!
세기의 로맨스 영화로 불리는 <타이타닉>이 1998년 개봉 이후 25주년을 맞아 4K 3D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탄생하였습니다. 전 세계 역대 흥행 3위이자 아카데미 역대 최다인 11개 부문 수상 기록 등을 달성하며 전 세계 관객과 평단을 동시에 사로잡았던 전설적인 영화를 4K 3D로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네가 떨어뜨린 푸른 하늘
The Blue Skies at Your Feet
ⓒ 네이버 영화
개요: 멜로/로맨스, SF | 일본 | 93분
감독: 유키 사이토
출연: 후쿠모토 리코, 마츠다 겐타 등
개봉: 2023.02.08
배급: (주)이놀미디어
시놉시스
푸른 하늘 아래 매월 1일마다 영화를 보기로 약속한 ‘미유’와 ‘슈야’. 하지만 ‘슈야’의 변심에 약속은 깨지고 만다. 충격에 빠진 ‘미유’ 앞에 다시 나타난 ‘슈야’, 그 순간, 트럭이 돌진하고 ‘슈야’는 ‘미유’를 감싼 채 교통사고를 당한다. “딱 하루만 시간을 돌려주세요!” 눈을 뜬 ‘미유’ 어제와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슈야’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미래를 바꿔야 한다!
CINE PICK!
<네가 떨어뜨린 푸른 하늘>은 고등학생 미유가 교통사고를 당한 남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몇 번이나 같은 날을 반복하며 그의 진실을 알게 되는 시간 초월 타임 루프 로맨스입니다. 600만 이상 누적 조회 수, 행부수 23만 부 이상을 기록했던 동명의 대히트 웹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사랑스러운 감성 판타지 로맨스 영화를 기다리던 관객들에게 선물 같은 작품이 될 예정입니다. 또한 지난 11월 개봉해 호평을 얻고 있는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고 해도>에서 열연을 선보였던 후쿠모토 리코가 주인공을 맡아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디텍티브 나이트: 가면의 밤
Detective Knight: Rogue
ⓒ 네이버 영화
개요: 범죄, 액션 | 미국 | 105분
감독: 에드워드 드레이크
출연: 브루스 윌리스, 로슬린 먼로, 지미 장 루이스 등
개봉: 2023.02.08
배급: (주)디스테이션
시놉시스
미국 전역에서 강도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에 나간 동료 형사 ‘피츠제럴드’가 목숨을 잃는다. 전직 스포츠 선수들이 범인이라는 단서를 찾은 ‘나이트’는 그들의 배후에 불법 도박업자 ‘위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복수와 정의를 위해 그들의 본거지인 뉴욕으로 향한 ‘나이트’ 과연 정의를 사수하고 복수를 실현할 수 있을까…
CINE PICK!
<디텍티브 나이트: 가면의 밤>은 할리우드가 낳은 최고의 액션 스타 브루스 윌리스를 주인공으로 한 '디텍티브 나이트'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영화는 나이트 형사가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강도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작년 은퇴를 선언한 브루스 윌리스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인 만큼 브루스 윌리스의 액션을 사랑했던 팬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성스러운 거미
Holy Spider
ⓒ 네이버 영화
개요: 범죄, 스릴러 | 덴마크, 독일, 스웨덴, 프랑스 | 118분
감독: 알리 아바시
출연: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 메흐디 바제스타니 등
개봉: 2023.02.08
배급: 판씨네마(주)
시놉시스
‘순교자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이란 최대의 종교도시 마슈하드. 그곳에서 1년 사이 16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 살인마 ‘거미’는 자신의 범행과 시체 유기 장소를 직접 언론에 제보하는 대담한 행동을 이어간다. 살인마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여론이 일고 정부와 경찰마저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 가운데 여성 저널리스트 ‘라히미’만이 홀로 살인마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그의 뒤를 쫓는데…
CINE PICK!
영화는 <성스러운 거미>는 데뷔작 <설리>와 <경계선>으로 잇따라 칸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알리 아바시 감독의 신작입니다. 2000년부터 1년간 이란 최대 종교도시인 마슈하드에서 어린 자녀를 둔 싱글맘과 생계가 막막해진 암산부를 포함한 성매매 여성 16명이 잇따라 살해당했던 비극적인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로,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 역을 맡은 배우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지난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연쇄살인범이 뻔뻔하게 활보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여성들은 히잡 안에 숨어 살아야만 하는 이란의 현실과, 오랜 여성 혐오 습관으로 인해 연쇄살인마를 잉태하는 이란 사회에 대한 비판을 가감 없이 담아내 호평을 받았습니다.
안녕, 소중한 사람
More Than Ever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 | 123분
감독: 에밀리 아테프
출연: 비키 크립스, 가스파르 울리엘 등
개봉: 2023.02.08
배급: 티캐스트
시놉시스
엘렌과 마티유는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커플이다.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지만, 엘렌이 희귀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후 두 사람의 마음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함께하고 있지만 서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이 각자의 마음에 켜켜이 쌓여가던 중, 엘렌은 자신처럼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미스터’라는 남자의 블로그를 발견한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의 풍광에 매료된 엘렌은 난생처음,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고요하고 장엄한 자연 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되찾게 된 엘렌은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마티유에게 전한다. 하지만 차마 이 사랑을 놓을 수 없는 마티유는 마지막으로 엘렌을 설득하기 위해 노르웨이로 향한다.
CINE PICK!
영화 <안녕, 소중한 사람>은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시선'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으로, 죽음을 피하지 않으려는 시한부 환자 엘렌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티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연출을 맡은 에밀리 아테프 감독은 BBC 드라마 '킬링 이브' 시즌4, 그중에서도 IMDB 평점이 가장 높았던 5화, 6화를 연출한 실력파로, 각본과 연출을 함께 소화한 이번 영화에서 오랫동안 투병한 어머니를 지켜본 경험을 녹여냈다고 합니다. 빼어난 영상미와 세련되고 절제된 두 배우의 연기 조화가 돋보이는 영화로 평가되며, 지난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영화 팬들을 슬픔에 빠지게 했던 가스파르 울리엘의 유작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더욱 가슴 아프고 애틋한 작품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Someone You Loved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03분
감독: 형슬우
출연: 이동휘, 정은채 등
개봉: 2023.02.08
배급: (주)영화특별시SMC
시놉시스
이별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연락처의 애칭을 풀네임으로 바꾸면? 카톡 친구를 삭제하면? SNS 팔로우를 끊으면? 사랑하는 사람에서 아는 사람으로 아는 사람에서 모르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현실 이별 프로세스
CINE PICK!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다양한 단편으로 시체스영화제,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청룡영화상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돼 뛰어난 연출과 감각을 인정받은 형슬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실제 경험담에 기반한 사실적이고 통통 튀는 에피소드와 세련된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만남보다 이별이 어려운 청춘들에게 공감을 자아낼 영화입니다. 주연을 맡은 정은채 배우와 이동휘 배우의 호흡 또한 기대되는 지점입니다.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
Love My Scent
ⓒ 네이버 영화
개요: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 대한민국 | 108분
감독: 임성용
출연: 윤시윤, 설인아 등
개봉: 2023.02.08
배급: (주)콘텐츠존
시놉시스
삶에 치여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남자 ‘창수’(윤시윤). 낯선 이에게 받은 향수를 뿌리자마자 여자들이 달려든다?! 가족에 치여 누굴 좋아해 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여자 ‘아라’(설인아)는 어느 날, 매일같이 타던 버스에서 나는 향기에 두근대기 시작한다 ‘창수’에게 이끌린 ‘아라’는 영문도 모른 채 사랑에 빠지고, 서툴러도 조금씩 사랑을 키워나가던 그때! 갑작스럽게 등장한 전 애인 ‘제임스’(노상현)가 폭로한 ‘창수’의 비밀! 내가 사랑에 빠진 게, 향수 때문이라고?
CINE PICK!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는 한 남자가 정체 모를 향수를 손에 넣으면서 몇 년째 짝사랑해왔던 여자와 연인이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데뷔작인 <지붕뚫고 하이킥>부터 꾸준히 로맨스 연기를 해온 윤시윤과 지난해 방영됐던 인기 드라마 '사내맞선' 속 사랑스러운 연기로 인기를 얻었던 설인아의 첫 영화 주연작으로, 두 배우의 호흡이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다가오는 밸런타인 데이에 가볍게 볼 영화로 추천드립니다.
트윈
The Twin
ⓒ 네이버 영화
개요: 공포 | 핀란드 | 108분
감독: 타넬리 무스 토넨
출연: 테레사 팔머, 스티븐 크리 등
개봉: 2023.02.08
배급: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시놉시스
쌍둥이 아들을 잃은 레이첼 가족을 향해 위로를 가장한 이교 집단의 손길이 뻗친다.
CINE PICK!
<트윈>은 쌍둥이 중 한 명을 잃고 새 출발하려는 ‘레이첼’ 가족에게 다가오는 이교 집단의 광기와 사악한 진실을 담은 오컬트 호러입니다. 오컬트 호러를 표방한 만큼 마니아들이 눈여겨볼 기괴한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모든 것을 잃은 엄마이자 아내 레이첼을 연기한 테레사 팔머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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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망무제(一望無際)
구구절절히 설명하면 재미가 없다. 또 과하게 친절하면 매력이 없다. 왠지 모르게 이성관계에서 적용되는 이론을 꺼내오고 싶어진다. 과연 배때지가 불러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인가. 네 연애나 제대로 하고 이런 문장을 쓰라고 하면 사실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인간관계에도 적당한 선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던 말이지만 요즘은 그 말이 맞다고 느꼈다. 오히려 아무 연락도 안 하고 지내야 그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커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 같다. 누군가가 정말 좋았다가도 ‘별 쓰잘데기 없는 소릴 하네’라는 생각이 들면 멀어지게 된다. 너무 많이 말하면 다 알아서 상상력이 줄어드는데, 적게 알면 그만큼 사람이 생각할만한 건덕지가 넓어져 관계를 오래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게 만드는 결말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는 경우가 많았나보다. 한 유령이 있다. 유령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이 유령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마음을 한번 열어보자.
간단하고 단촐하게
<고스트 스토리>는 살아있는 사람에 관한 영화다. 루니 마라와 케이시 에플렉이라는 할리우드의 빅 네임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근데 제작비는 10만 달러로 초초초 저예산 영화에 속한다고 한다. 이런 초저예산 영화의 특성만큼이나 줄거리는 소박하다. C와 M은 다정한 신혼부부다. 근데 갑자기 남편 C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M는 혼자 남겨졌다. 그렇게 C가 떠난 빈자리를 감당하며 일상을 보낸다. C는 이 빈자리를 조용히 관망하기만 한다. 유령이기 때문에 말도 무엇도 할 수 없다. 그가 떠난 빈 집에서 파이를 먹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등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다. M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이내 집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삿짐을 준비하는걸 전부 마무리한 M. 집을 떠나며 무언가 쪽지를 쓰고 벽에 묻는다. 유령이 된 C는 M이 떠난 후 벽을 열심히 파서 쪽지를 보게 된다.
줄거리를 쓰기에 간단한 구성이다. 그 덕에 영화는 딱 두 가지 상황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C와 M이 부부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C가 세상을 떠나고 M을 지켜본다는 것이다. 이 구분은 유령이냐/유령이 아니냐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안에서 중요한 건 M이 유령이 되고 난 후다. 이 작품은 M의 사후를 조명하는데, 이 과정이 영화라고 할 것도 없이 굉장히 심심하다. 솔직히 루니 마라가 파이 먹는 걸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녀가 파이를 먹는 건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파이 먹는 게 재미있는 분들은 유튜브에 '먹방' 검색하고 아무 영상이나 재생하는 것이 더 도움 될 것이다. 별 것 아닌 일상 속의 시간까지 조명하는 이 영화다. 영화는 M의 시점에서 C를 구경한다. 다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구경만 하는 것이다.
떠나간 이가 느낄 감정들에 대해
누군가의 곁을 떠난 우리. 떠난다는 건 허무함과 우울함의 연속이다. 이를 수식할 수 없을까? 아니다.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이 영화와 같이 조용하다. 바쁘게 사는 것이 그 누군가를 떠나보내기에 아주 좋은 상황이란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바쁘게 보내려고 한다. 치열했던 일상이 끝났다. 하루를 마치고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눕는다. 그러면 알게 된다. 문득 혼자라는 걸. 난 이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사람의 존재는 내 생각보다 컸었다. 그러면 무슨 행동에 전제조건이 붙게 된다. 어떤 일을 ‘그걸 이겨내기 위해’ 했었던 만큼 그 인물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는다. 그러면 일상 속에서 타인의 흔적이 강하게 박혀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이라고 파이를 혼자 먹고 싶어서 먹고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익숙한 상황을 즐기지 못한다는 그 지점은 인간에게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되게 별 것 아닌 순간에서 사람은 그제야 떠난 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외로움과 허전함이라는 감정을 묘사할 때 일반적으로 다른 영화들은 주인공이 갖고있는 정서를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보여줬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해피 투게더>의 경우 왕가위는 아휘 캐릭터가 밥알을 하나씩 하나씩 먹는 장면을 통해 주인공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반대의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 관객이 인물을 지켜보며 다양한 생각을 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롱테이크와 장면을 길게 늘이는 방식이 그 예인데, 파이를 먹는 신에서 그게 잘 드러난다. 이 장면은 4분 30초간의 한 장면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부엌 안에 덩그러니 앉아서 파이를 먹는 M. 우리는 그걸 지켜보며 다양한 생각에 빠진다.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한 부엌. 집엔 아무것도 없고 여자 혼자만 있다. 그럼 감정이입이 된다.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고독하다는 걸 나타내는 행위는 없는데도, 인물이 외로움을 느끼는 걸 지켜보는 것이다.
여태까지 없던 방식으로 삶을 돌아보다
우리는 이 외로움이란 정서를 M과 함께 공유하며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우리, 원래 둘이 있으면 뭐든 함께했다. 혼자서 먹을때도 재미있는 이야기 해 줄 생각에 행복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같이 나눌 이가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 '함께'라는 사실에 기댔다가 누군가가 나를 떠나면 그 기분을 느낄 수 없다는 씁쓸함에 외로워진다. 근데 인간에게 있어 이 시간은 점점 누적된다. 외로움에 지치면 무엇이든 하기 싫어진다. 근데 지치면 지칠수록 시간은 너무나 길어서 사람이 더 고독을 느끼게 된다. 영화로 돌아가서, 한 장면을 4분 30초 동안 본다고 가정해보자. 외로움을 느끼며 시간이 진짜 안 간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난 이 시간이 안 가는 기분이 너무 싫었다. 함께라면 이 파이가 더 맛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고개를 들었다. 금새 잊지 못했던 상처가 생각나 또 외로워진다. 그 외로움에 빠져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시간 더럽게 안 간다. 같이 하면 더 많은 걸 하면 시간을 보냈는데, 혼자서 하니까 눈이 파이 먹는 것에만 집중되는 것이다. 이는 이 정서를 100% 의도한 연출이다. 일부러 잔잔하고 조용하게 설정해서 인물이 느낀 고통을 극대화시켰다. 만약 왕가위라면 나레이션에 색감보정에 이것저것 많이 넣었겠지만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인물 하나와 파이 하나만으로도 고독감과 외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는 상실의 의미와 아름다움
감독이 설정한 이 정서를 함께 느끼다 보면 우린 알게 된다. 내가 사랑했던 타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타인의 존재감을 느낀다. 삶의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억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함께 있게 된다. 극 중 예언자의 말처럼 존재를 기억하는 데 있어 흔적 같은 건 필요 없다. 우리를 떠난 사람들의 흔적이 굳이 남지 않더라도 어쩌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아름답다. 완전하게 신선한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표현했다. 외로움은 우리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이걸 표현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명제일지도 모른다. 또 우리는 각자 다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이가 내 옆을 떠났고 그 인물이 나에게 무슨 느낌을 줬는지는 모두가 다를 것이다. 감독은 이에 대한 공감의 방식으로 색다른 방법을 택했다. 정해지지 않은 유령과도 같은 무언가를 보여줬다. 우리는 이 덕에 각자가 잃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한한 상상을 우리에게 선사한 것이다.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인간의 이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우리에게 각자가 품고 있는 정서를 드러나게 했다. 일망무제가 딱 적당한 표현이다. 우리 인생은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다. 또 영화와 예술은 이런 우리의 텅 빈 무언가를 꺼내주는 아주 감사한 매개체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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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빌린 것으로 조명하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쉽게 버는 돈은 중독적입니다. 하지만 그런 돈은 탈도 쉽게 나기 마련이죠. 범죄로 버는 돈 역시 쉽게 손에 쥘 수 있는 돈이며, 그런 돈을 취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뒤따릅니다. 쉽게 버는 돈의 흐름이 끊이지 않는 범죄 시장에서, 그중에서도 특히나 중독성이 강하다는 도박판을 조율하는 이들은 어떤 대가를 맞닥뜨릴까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도박꾼들을 고객 삼아 불법 마권업을 이어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오래된 것, 새로운 것, 빌린 것
Something Old, Something New, Something Borrowed
Summary
펠페토 가족은 동네에서 비밀리에 불법 복권업을 운영했다. 최근 몇몇 복권업자들이 불시 단속을 당한 뒤 동네 분위기가 묘해졌다. 경찰 해고와 거액의 돈 거래에 대한 이야기가 돌지만, 텔레비전 뉴스나 소문이 사실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에르난 로셀리
출연: 마리벨 펠페토, 알레한드라 카네파, 우고 펠페토
가족의 유산이 된 불법 마권업
영화의 소재가 되는 '불법 복권 판매업', 이른바 '마권업'이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 찾아보았습니다. 본래는 제도권 안에서 공인된 경기 등에 한해 임의의 배당률로 베팅받는 개인이나 단체를 '마권업자'라고 칭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권업이 공인되지 않은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일확천금의 꿈을 좇는 도박꾼들이 모여드는 거대한 범죄의 세계를 만들었죠. '펠페토' 가족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서 오랜 시간 그러한 유형의 범죄를 가족 사업으로 운영해 왔습니다.
마권업을 주도하던 아버지 '우고'가 사망한 이후, 마을에는 마권업자들에 대한 경찰의 단속이 벌어질 거라는 소문이 퍼집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어머니 '알레한드라'와 딸 '마리벨'은 위험한 가업을 이어가기로 하죠. 부모의 삶은 가족의 유산이 되어 자식의 현재를 결정합니다. 딸 '마리벨'은 바로 그러한 유산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인물이지요.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연스럽게 도박 사업을 물려 받아 운영합니다. 경쟁 조직의 눈치를 살피고, 경찰과 유착하며, 수사망에 걸리지 않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죠. 이 모든 게 당연할 일인 듯이, 세습된 범죄 안에서 살아갑니다. 선택으로 맺어지지 않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관계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리 애스터의 영화 <유전>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도 이러한 내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래된 것, 새로운 것, 빌린 것>이라는 제목은 결혼과 관련된 오랜 속설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속설은 원래 이러한 상징적인 물건을 지님으로써 행복한 결혼 생활로 나아가라는 의미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남긴 가족의 불법 마권업을 '오래된 것'으로, 딸과 어머니가 새롭게 구축하는 가족 사업을 '새로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 ⊙
픽션에 매력을 더하는 '빌려온 것'
영화는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옛 푸티지를 현재의 장면 사이에 교차 편집하며 전개됩니다. 아버지의 죽음, 불법 마권업자 사이의 패권 경쟁, 경찰의 단속 위험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현재와 달리, 과거의 푸티지 속에는 따뜻한 일상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단란한 가정의 바닥에 은밀한 범죄의 세계가 깔려 있을 거라고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죠. 과거의 이미지 위에 덧씌워지는 현재의 독백들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모순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사용된 푸티지들이 바로 제목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상징, '빌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푸티지가 극 중 '펠페토' 가족을 연기한 배우 '펠페토' 가족이 1985년부터 2000년까지 촬영한 실제 홈비디오이기 때문인데요. 배우들의 실제 과거를 빌려와 사용함으로써, 감독은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새로운 형태의 연출을 탄생시킵니다. '펠페토' 가족은 영화 속에서도 각자의 이름으로 그대로 연기하며, 남아있던 픽션과 다큐멘터리 사이의 옅은 경계까지도 완전히 허물어버리죠.
빌려온 영상으로 현실성을 더해 색다른 형태의 픽션을 직조하는 방식은 특이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영화의 매력을 더하는 새로운 시도들은 극장에서 개봉하는 작품에서는 쉽게 볼 수 없기에 더 흥미로운데요. 전주국제영화제는 그러한 작품들이 극장에 걸리는 흔치 않은 기회인 만큼,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하셨다면 <오래된 것, 새로운 것, 빌린 것>과 같은 영화를 한 번쯤 관람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One-Liner
헤어 나올 수 없는, 범죄 그리고 가족이라는 덫
Schedule in JIFF
2025.05.01(목) 메가박스 전주객사 5관 10:00
2025.05.05(월) 메가박스 전주객사 5관 10:00
2025.05.06(화)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21:0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4월 30일 - 05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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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어째서 희망과 다정함을 잃은 혐오의 시대를 반복하는 것일까
우린 지금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도, 성별의 이슈에서도, 연예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서도, 심지어 아주 가까운 인간관계임에도 사소한 무언가를 꼬투리 삼아 비난하려 하는 우리의 관계에서도, 우린 타인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생각해봐야 할 점은 혐오의 시대가 어쩌다 만들어졌는지,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마저도 알지 못 한다는 것이다. 출처도, 신빙성도 없는 누군가에 대한 루머, 실수, 관념들은 우리의 귀까지 은닉하여 스며들어 마치 진실인 것마냥 자세를 취하고, 나만의 올바른 자세를 취하기 무섭게 그것들을 믿는 사람으로 나를 변모시킨다. 그럼 이런 혐오의 시대가 현재의 21세기에만 존재했을까? 가까운 근현대사로만 넘어가도, 냉전 시기가 만든 엄청난 정치적 혐오의 시대가 존재했고, 제2차 세계대전 유대인들을 향한 독일의 홀로코스트는 혐오를 넘어 무분별한 증오의 시대였다. 'Never Again'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고 몇 번이고 우리 일류는 되내이고, 다짐하고, 결심했지만 결국은 'Do Again'을 들고 일어섰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속 "안나"와 같은,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속 "빌 펄롱"과 같은 희망이 이 혐오의 시대를 종식시킬 인류의 최고 무기임을 앎에도 어째서 우린 그 무기를 홀대하고 혐오를 택한 것일까.
영화 <화이트 버드>는 인류 세계사 중 어쩌면 가장 끔찍한 혐오의 시대라였던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속 희망과 희망 속에 피어나는 10대 청소년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직접적으로 나치군과 싸워 승리를 쟁취하는 식의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인물들의 작지만 거대한 용기들이 한데 모여 서사를 이끈다는 점이 본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영화는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영화 <원더>에 등장했던 "줄리안"과 줄리안의 할머니 "사라"의 대화를 외화로 두고, 내화엔 "사라"가 "줄리안"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즉 영화의 본 이야기 "사라"와 "줄리안"의 서사로 진행된다.
내화의 초반부와 중반부 조금 그리고 종반부까지 "사라"의 나레이션을 통해 내화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과 사건의 진행을 소개하는데, "사라"가 "줄리안"에게 설명하는 거지만 마치 "사라"가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외화는 학교 폭력으로 퇴학당해 전학 온 새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아직 뉘우치지 못한 "줄리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주려는 "사라"의 대화 장면과 종반부 어둠을 극복한 "줄리안"과 연설을 통해 "줄리안"에게 전한 교훈을 관객에게 다시 상기시켜주는 장면으로 구성되었다. 영화는 내화와 외화를 정확히 구분짓지 않고, 오가는 식의 진행을 선보이는데, 외화와 내화를 번갈아가면 간혹 관객의 몰입도를 해칠 수 있어 위험성이 있는 연출법이지만, 영화 <화이트 버드>는 그런 점이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또한 거시적 관점에서 영화의 구조는 어두웠던 소년이 할머니의 교훈을 통해 극복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로서, 그렇기에 영화가 극의 대비감과 반전된 상황들을 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초반부 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본인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친구에게 차갑게 대하면서 동시에 그녀를 무시하고, 비하하는 일진에게 아무런 대응하지 못하던 "줄리안"을 종반부에서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변신시켜주었다는 점에서 영화가 매우 안정적이었고, 관람하는 데에 있어 편함만을 즐길 수 있었다.
파리와는 멀리 떨어진 프랑스의 한 고즈넉한 마을에 "사라"라는 소녀가 살고 있다. 화목한 가정, 평범해서 더욱 따뜻했던 "사라"의 집은 어느날 마을로 들이닥친 나치 군대의 점령에 혼란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대인이였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이민을 떠나려려 했지만 갑작스럽게 나치군이 학교로 쳐들어왔고, "사라"는 그런 나치군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위기의 순간, 동급생이자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를 잘 쓰지 못한다는 이유로 왕따 당했던 "줄리안"에게 도움 받아 "사라"는 그의 곳간에 들어가 나치군의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영화의 초반부와 중반부, 이 곳간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영화는 "사라"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줄리안"은 어떤 식으로 그녀를 도와주는지, 두 청소년 남녀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는지를 다룬다.
영화 <화이트 버드>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이런 주객전도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인기도 많고, 공주처럼 잘 커왔던 한 소녀와 장애로 인해 왕따 당하고, 무시받던 소년의 관계가 나치의 홀로코스트라는 상황으로 인해 역전되어, 무시와 홀대의 관계에서 도움과 구원의 관계로 바뀌었다는 점이 영화의 핵심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비유대인이더라도 유대인을 도왔을 경우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녀를 구원하고, 자상함을 베풀 수 있었던 데에는 사랑의 힘이 있었다는 것을 영화는 지속적으로 관객에게 관계의 역전성을 통해 일러주었고, 또한 이를 성인의 사랑이 아니라 10대 청소년의 애틋한 사랑이었기에 더욱 가슴 따뜻해지고, 그들을 응원하고 싶게 했다.
작품의 초반부, 외화 속 "줄리안"이 등교하는 길, "줄리안"이 하교하는 길 등 영화는 "줄리안"의 행하는 길, 행하는 움직임 등에서 모두 '어울리지 못함', '혼란스러움'을 하강하는 시선을 통해 표현했다. 또한 유리창 사이 작은 공간에 비춰지는 그의 연약한 모습들을 비추곤 했는데, 이는 내화 속 창문틈과 벽 틈 사이로 보이는 바깥 풍경과 지붕 틈에 앉은 하얀 새를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이 '틈과 벽'을 통해 마치 외화와 내화 간의 이동을 대화와 나레이션을 사용하여 영화의 구조에 있어 벽을 표현한 것처럼 "사라"가 곳간과 외부 간의 간극, 즉 "줄리안"의 보호와 희망으로 존재하는 공간과 나치의 혼돈과 공포만이 흐르는 공간을 구분지었고, 이는 비록 작은 틈, 얇은 벽이지만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을 극대화시켰다. 이 점에서 인상적인 점은 "줄리안"과 "사라"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하는 놀이가 바로 '상상놀이'와 '영화'라는 점이다. 이 둘은 공통적으로 '현실이 아니다.' 현실이 아닌 것들을 통해 현실과 같이 즐기려 그들의 행위는 상상을 통해서라도 행복감을 구하려는 데에서 비롯되었고, 이는 결국 관객이 그들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더욱 몰입하고, 그들에게 더욱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영화는 초반부와 중반부까지 "사라"와 "줄리안"이 어떤 식으로 서로를 돕고, 이해하며, 자상함을 베푸는 지 풀어내고, 후반부에 도착하여 극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데, 이 점만큼은 필자에게 있어 다소 아쉬웠다. 등교하는 길에 실수로 통행증을 안 가지고 와 나치군에게 "줄리안"이 붙잡히게 되고, 그로 인해 "사라"의 존재를 알게 된 나치군이 곳간으로 가 추격씬을 펼친다. "사라"는 늑대들에게 도움을 받아 살아남게 되지만, "줄리안"은 도망치던 와중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암시한다. 물론 주연인 인물이 절대적으로 사망해서는 안됨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야기의 메인을 담당했던 캐릭터가 사망하게 된다면 그에 마땅한 씬 소비를 했어야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화이트 버드>가 "줄리안"이라는 인물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공들여 쌓아올린 탑을 생각한다면 영화가 그 탑을 허무는 과정도 소중히 대하는 게 서사적으로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영화는 너무 한순간에 탑을 무너뜨려 소비시켰고, 그의 죽음이 희생이 되어 무언가 남는 것이라도 있었다면 영화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점도 없었기에 좀처럼 영화의 그러한 선택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물론 영화의 이 모든 것들이 의도였고, 이를 통해 '어쩔 수 없는 그런 슬픈 상황'이라는 점을 살리고자 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점을 생각해보아도 어색함을 감출 순 없었다.
또한 내화의 초반부를 외화 속 "사라"의 나레이션을 통해 장식하고, 배경을 소개한 것과 마찬가지로 내화의 종반부를 외화 속 "사라"의 나레이션으로 마무리지었는데, 너무 이르게 결론짓고, 황급히 마무리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비록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사라"와 "줄리안"의 슬픔 속에 피어난 사랑이고, 결국 내화도 외화 속 변화의 매개체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외화와 내화가 뚜렷하게 존재하는 작품에서 내화를 본 작품과 같이 끝내는 것은 무리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내화를 방점 찍는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의심되었던 이웃들이 사실은 유대인들을 돕고자 했던 가족이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어느날 갑자기 찾은 아버지와 함께 파리로 떠나게 된 "사라"의 뒷이야기를 설명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관객을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관객에게 정보를 던져주는 식의 자세였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초반부와 중반부까지의 진행이 굉장히 편하고, 안정적이었어서 상대적으로 종반부의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는 것일지 몰라도, 결국 종반부의 완성도로 인해 영화 전체의 완성도가 다소 아쉬워졌다. 더불어, 초반부와 중반부마저도 극의 안정감과 완만함에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하지, 예술적 창의성이나 색다름의 측면에서는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그렇기에 영화의 후반부와 영화가 결론짓는 방법이 매우 중요했다. 영화의 초반부 진행과 순서는 관객들 모두 예측 가능한 범주 내에서 일어났고, 그 단조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 남녀의 사랑으로 장식하려 했지만 모두 채우기엔 무리가 있기에 영화의 후반부에 무언가 킥이 필요했지만 부실한 킥으로 인해 이 모든 계획이 다소 어긋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필자의 관점에서 종반부가 초반부와 중반부에 비해 너무도 아쉬워 혹평을 남겼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 교훈, 메시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에 중요한 이슈로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혐오의 시대를 다시금 반복하지 말자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반복하고 있는 우린 무엇 때문에 다정함을 잃었을까. 어째서 우린 인류의 가장 큰 무기인 다정함을 놓아버리고, 가장 큰 원흉인 혐오를 택한 것일까. 사랑으로 서로를 품을 순 없는 것일까. 많은 분들이 본 작품을 통해 이런 질문들을 생각할 시간을 가지실 수 있으면 좋겠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씨네랩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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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얼리티 가족 다큐멘터리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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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성 발언.
나는 여자다. 그리고 김씨다. 조부는 종가집 장손이었다. 무려 4대 독자! 그리고 대망의, 내 본적은 경상북도다. 나는 순혈이다. 지독한 가부장제의 순수혈통. 종친회에서 고칠 데를 손 봤다는 올칼라 족보를 만들었고, 여전히 나는 남동생의 동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 가족 소개 같은 숙제를 하면 아버지가 그리 말씀하셨다. 우리 집은 무슨 김씨 무슨 파 무슨 왕의 몇대손이며 우리 할아버지는 몇대 독자고 어쩌고 저쩌고. 어릴 때는 그게 자랑인 줄 알았더랬다. 그리고 좀 커서는 족보를 샀겠거니 생각했다.
커서 보니 쓸 만한 유전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나와 내 동생과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등과 비슷한 모습일진대 무슨 놈의 대를 그렇게 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도대체 이 족보주의에서, 순수 혈통을 이어가서 얻는 게 무엇인가. 그 유전자를 굳이 길이길이 남겨야 하는가. 어릴 때부터 이해가 안 갔다. 물론, 뭐 내가 태어났을 때 딸이어서 아무도 병원에 안 오고, 내 이름이 뒤에 아들 낳는 이름으로 지어질 뻔하고, 족보에도 올려주지 않아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무슨 왕정 제도를 미시체계에서 이룩한다는 게 좀 우스우니까. 장남을 왕세자에 책봉하고, 훗날 왕위를 물려주는 것마냥 일개 가정에서 신수왕권설 같은 걸 주장하는 게 이상하니까.
자, 개인사를 주절주절 늘어놓은 까닭은 영화 <장손>이 픽션이기 때문이다. 픽션인데,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리얼리즘 픽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경상북도 김씨 가족의 장손에 관한 이야기'다. 너무도 핍진하여 두 시간 동안 경상북도 김씨 가족의 차남의 장녀가 괴로움에 몸부림쳤던, 그 이야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건
족보와 장손밖에 없다. 장손을 제외한 나머지는 흩어져야 산다. 영화는 가정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층위의 갈등을 두 시간 동안 보여주는데, 그 갈등이 비단 가정 내에서만 발생하지는 않는다.
프랙탈은 일부를 확대해 보면 전체와 동일한 모양이 반복되는 구조를 말한다. 그러니까 '선산 김씨'네 가정은 대한민국의 프랙탈이다. 영화는 가족에 관해서 말하고 있으나 이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서사가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은 '선산 김씨'네가 유난스럽지도, 특이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몇 개의 갈등이 중첩되면서 켜켜이 쌓인다. 그 갈등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제법 클리셰적인 갈등이다.
자기네 조상 제사를 지내는데 김씨 아닌 사람들만 모여 앉아 전을 부치고, 김씨들은 방문을 닫고 들어가 화투 치고 맥주를 마신다거나, 장손이 올 때까지는 에어컨도 안 틀어준다거나.
6.25 전쟁 때 빨갱이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고장난 라디오처럼 말하는 노인과 노인의 얘기가 궁금하지 않은 손자, 사업으로 부자가 된 자식과 사는 게 녹록지 않은 자식. 애초에 돈 되는 공장은 아들 주고, 낡은 집은 딸을 준 유산 분배.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와 세대갈등과 남녀갈등이 총체적으로 한 가정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전체와 동일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두부 공장'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두부가 바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음식 아닌가.
두부를 잘 뭉치려면 쌩노가다를 해야 한다. 원래는 가정 내에서 만들었다(아는 척하는 이유는 내 외조모가 두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선산 김씨네 두부공장 역시 처음에는 가정 내에서 조모인 오말녀가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말녀는 며느리가 공장에서 찍어내는 두부가 못마땅하다.
두부 공장 씬에서 장남인 태근이 일하는 모습은 스케치로도 거의 잡히지 않는다. 대부분 며느리가 일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일하는 사람은 손녀사위다. 그런데 사장은 당연히 태근이다.
간단히 설명된다. 이 가정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여자와 여자와 여자와 여자들이다. 다시 프랙탈. 유사 이래로 놀고 먹은 여자는 소수다. 장손이라 해서 집안을 일으키고 어쩌고저쩌고 한 것만 같지만, 사실상 장손 혼자서 가정을 부양하고, 조상들을 제사지내주지 않는다.
조모는 장손 판타지를 공고히 한다. 조부는 규범과 같은 상징체계에만 관심이 있다면 실질적으로 현실화하는 사람은 조모다. 장손이 올 때만 에어컨을 켜 주고, 장손의 어릴 적 이야기를 신화처럼 반복하고, 제사상에 올릴 음식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여자들을 감시하는 여자. 장손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여자. 장손이라는 고귀한 존재를 만들어 희생을 합리화하는 여자. 어쩌면 장손은 고된 여자들이 만든 신화다.
그러니 사실 여자들이 뭉치지 않고 흩어지는 순간, 장손? 그게 뭔데.
가족의 미래
영화의 초반부에 제사 준비를 하면서 오말녀는 딸에게 '상조보험'에 가입하라고 재촉한다. 보살이 집안에 초상날 것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누구 하나 죽긴 죽겠구나' 하고 예상하게 된다.
누가 죽을까. 가족의 미래를 점쳐보자.
1. 김승필(장손의 조부)의 사망: 매우 자연스럽다. 나이도 많고, 대장암 수술을 해서 건강도 좋지 못하다. 제사를 꼭 자정에 맞추어 지내야 한다는 매우 고지식한 사람이다. 입만 열면 빨갱이 타령. 김승필이 사망한다면 자연스럽게 집안의 주도권이 김태근에게 넘어갈 것.
2. 김태근(장손의 부)의 사망: 장손의 모가 농담으로 하는 말. 하도 미워서 잘 때 한 대 때렸다. 죽지도 않고 왜 깼냐. 뭐, 슬프지만 장손이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두부 공장과 관련된 이슈가 발생할 것. 공장은 서울에서 연기하는 장손에게 갈 것이냐, 공장에서 일하는 손녀사위에게 갈 것이냐.
3. 김성진(장손)의 사망: 큰일난다. 이 가족 망한다.
4. 오말녀(장손의 조모)의 사망: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책임지고 있는 실질적 가장. 오말녀는 현재 매우 건강하고 꼬장꼬장한 노인이다. 한글을 배우려는 의지가 강하다. 오말녀가 죽는다면 장손 판타지로 이어온 가정은 붕괴된다. 오말녀만큼 장손을 우쭈쭈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
5. 그 외 여자들의 사망: 서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 큰 사건이라 함은 누군가의 장례식이 될 것이다. 장례식은 별 탈 없이 잔잔하게 살던 가족에게 던져진 돌멩이가 아니다.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는 겉잡을 수 없는 와류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장례식을 계기로 드러났을 뿐.
<장손>은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BS독립영화상과 오로라미디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기 전 감독이나 출연진, 줄거리,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갔다. 두 시간 동안 경북에 본적을 둔 여성을 미치게 만드는 솜씨에 무슨 상을 받아도 받았겠거니 예상만 했다.
이 영화에 다양한 매력이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탁월한 이미지를 꼽고 싶다. 오래된 한옥에 사는 노인들의 출입을 쉽게 하려고 문간에 걸어둔 동앗줄 같은 디테일. 동그란 손잡이가 달린 줄조차도 굉장히 의미심장해 보인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압권인데, 장손 성진이 택시를 타고 떠나고, 성진을 배웅한 노인은 눈 쌓인 비탈길을 아주 오래 걷는다. 롱테이크로 잡아낸 그 장면은 마치 서편제 같다. 뭐 대단한 걸 하고 돌아서는 장면 같다는 뜻이다.
택시를 탄 성진의 얼굴에 아침해가 날카롭게 비친다. 성진은 눈을 찡그린다. 빛을 보는 대신 눈을 가려 버린다. 그런 디테일에서, 이 가부장제라는 망령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장손 성진의 손에서는 결코 낡은 시대가 종언되고 새로운 체제가 구축되지 않을 것임을 예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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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그땐 그랬지' 정도의 픽션, 누군가에게는 현재 진행형의 고통, 또 누군가에게는 피해망상,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관습'.
<장손>은 픽션이 아니다. 리얼 다큐멘터리다. 추석 직전에 개봉하는 만큼, 가족과 함께 보면... 과연 괜찮을까?
장손(House of the Seasons, 2024)
감독: 오정민
출연: 강승호, 손숙, 우상전 외
러닝타임: 121분
개봉: 2024. 09. 11.
씨네랩에서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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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기에 있다 - 좋은 재료로 끓인 라면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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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4월 12일 개봉하는 작품
[나는 여기에 있다]의 개봉전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과거, 살인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칼에 폐를 찔린 후 장기 이식을 통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형사 ‘선두’(조한선)
수사 일선에 복귀한 그는 연쇄 살인범 ‘규종’(정진운)을 쫓던 중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아승’(노수산나)을 통해
‘규종’이 자신과 같은 공여자의 장기를 이식받은 것은 물론,
공여자가 과거 자신이 검거했던 살인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피 끓는 형사 VS 폭주하는 살인자
지독한 운명에 얽힌 두 남자의 극한 추격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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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어셔가의 몰락> 공식 예고편
누구도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마이크 플래너건(《힐 하우스의 유령》)의 미스터리 시리즈. 무자비한 성격의 로더릭과 매들린 어셔 남매는 포추나토 제약사를 부와 특권, 권력의 제국으로 성장시킨다. 그런데 어셔 가문의 상속자들이 어린 시절 엮인 미스터리한 여인의 손에 죽임을 당하면서, 과거의 비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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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라이브> 메인 예고편
? 유나TV 실제 상황 "트렁크 납치 생방송 시작합니다" [드라이브] 메인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