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2025-01-25 08:49:14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쏘았다> 리뷰
음악과 역사, 진실을 엮은 애니메이션 다큐 영화
씨네랩의 시사회 초대로 아내와 함께 용산 CGV에서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를 감상했다. 영화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브라질의 천재 피아니스트 테노리오 주니오르의 실종과 비극적 죽음을 중심으로 그려진 다큐 작품이다. 테노리오의 음악적 유산과 남미 우익 독재시대에 음악과 예술인, 그리고 역사가 교차하는 드라마틱한 서사를 영화는 섬세하게 전개해 보여준다.
20세기 중반,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국가들은 수많은 쿠데타와 계엄령, 그로 인한 인권의 억압과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 칠레, 볼리비아,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중남미의 우익 군부독재정권과 협력하여 좌파 척결을 공동 목표로 삼으며 ‘콘도르 작전’을 벌였다. 군인들은 매일 밤 골목에서 시민들을 감시하고 체포하였다. 체포된 사람의 대부분을 군부대의 조사실에서 고문하고 살해하였다. 남미의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자유로운 예술과 표현은 억압되었고, 많은 예술가들이 좌파 혹은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혀 실종되거나 살해당했다.
영화는 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브라질의 천재 피아니스트 테노리오 주니오르의 삶과 죽음을 조명하며, 한 천재 피아니스트가 어떻게 역사의 희생물이 되었는지 드러낸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우익 군부독재정권 치하의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인권과 개인의 자유가 어떤 식으로 침해되고 탄압받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한 예술가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실종과 죽음을 그리면서 무참하게 짓밟힌 예술혼을 조명하며, 민주주의 체제와 독재와 계엄 체제의 상반된 가치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따뜻한 색감과 부드러운 선으로 테노리오의 삶과 예술 세계를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통해 감성적이고 시각적인 몰입감을 제공하여 깊은 여운을 남긴다. 기록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전개는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로서의 무게감을 더한다.
영화는 애니메이션이 실제 영상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하며 역사적 진실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에 더하여 AI가 결합되면 과거에는 재현하기 어려웠던 사건과 인물들을 더욱 정교하게 재현할 수 있을 터이다.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 만들어낼 새로운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이 영화는 음악, 예술, 그리고 역사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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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OTT 종료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12월의 첫째 주, 모두 잘 보내고 계신가요?
12월 첫째 주마다 씨네랩에서 준비하는 콘텐츠가 있죠!
바로, 12월 OTT 종료예정작 추천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12월이 지나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넷플릭스와 왓챠의 종료 예정작을
추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놓치지 마시고 원하는 콘텐츠를 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그것
12.5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동생이 사라졌다. 27년마다 마을에 나타난다는 '그것'이 돌아온 걸까.
실종된 동생을 찾고 싶은 빌은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사악한 광대의 모습을 한 '그것'과
내면의 두려움을 마주한다.
cine pick!
스티븐 킹의 소설이자 TV 시리즈였던 '그것'의 리메이크작인 <그것>은
국내외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7억 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12.14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방사능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 능력을 얻게 된 평범한 10대 마일스.
혼란스러운 그의 앞에 악당과 싸우던 피터가 나타나고,
그들은 여러 평행세계 속에 수많은 스파이더맨들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cine pick!
소니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평행 우주의 세계관 속에
다양한 스파이더맨들이 등장한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유수의 영화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은 영화이다.
서치
12.14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딸 마고에게 걸려온 부재중 전화 3통. 아빠 데이빗은 그 후 연락이 닿지 않는
마고가 실종 됐음을 알게된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지만 단서는 나오지 않던 중,
데이빗은 마고의 노트북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다.
cine pick!
PC 화면으로 극의 대부분을 진행하며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긴 작품이다.
제한된 모니터 화면 속에서 무한한 확장 가능성과 장르적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스타 이즈 본
12.19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가수를 꿈꾸는 여자가 톱스타 뮤지션인 남자를 만나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여자는 스타의 길로 비상하지만, 남자는 고통과 고뇌 속에 점점 무너져가는데.
cine pick!
1937년에 개봉한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배우 브래들리 쿠퍼의
영화 감독 데뷔작이다. 지금까지 리메이크 된 스타 이즈 본 시리즈 중 54년 작품
다음으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페임
12.14
왓챠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소수의 인재만을 허락하는 뉴욕 예술 학교. 이곳에는 각자의 분야에서 실력과 열정을
고루 갖춘 젊은 인재들이 모여 있다. 최고를 꿈꾸는 그들은 경쟁하고 좌절하면서 함께 무대를 만들어간다.
cine pick!
트렌디한 스토리와 노래, 춤 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여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든다.
영화의 OST는 네오클래식, R&B, 일렉트로닉 댄스 팝까지 다양한 장르로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인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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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으로도 채우기 힘든 사람의 마음
난 오늘도 크림 앱을 켜서 사고 싶은 물건을 구경했다. 보통이면 여러 개 찾아 보겠지만 근래의 나는 하나만 검색한다. 이제 물건은 나를 더 이상 기쁘게 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신발은 당근에 내놓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신는 것은 덩크 2족과 컨버스, 로퍼 4켤레다. 살 필요가 없던 것에 돈을 써왔다. 아. 이럴꺼면 그냥 우리 엄마 가방이나 사 줄걸. 무엇이든 경험해 보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라곤 하지만 요즘 신발장만 보면 씁쓸하다. 결국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건 내면이었다. 최소한의 사람구실만 할 정도로,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TPO만 맞는다면 일상을 사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남들 사춘기때 하는 걸 안하고 살았으니 그 만큼의 댓가를 겪었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이 합리화에 살을 더 붙힌다. 에잉. 그래도 뭐 먹는것보단 낫지. 물건이라도 남았으니까. 큰 손해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본다.
근데 이 합리화도 얼마 못 갈거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금전감각이란 큰 돈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무뎌지기
때문이다. 난 머지 않아 요즘은 뭐가 나왔나? 하는 마음에 스니커즈를 보고 있을 것이다. 또 아직 사회인도 아닌데 단일품목에 그정도를 태우는건 선 넘었지 하며 그거보다 싼 것들을 위시리스트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돈을 쓴다. 담배를 안 피우고 밖에서 밥을 잘 안 시켜먹는 내 생활패턴이 이 돈을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하며 내 자신을 속인다. 그리고 호구가 된다. 리셀가로 웃돈을 주고 산다. 이번엔 다를거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마찬가지다. 이걸 산다는 의미가 나의 어떤 것을 증명해주는게 아니라는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마음에 드니까 산다!라는 핑계로 난 나를 속인다. 이 세상은 내가 알아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남이 나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되게 잘 아는 인생의 교훈인데 가끔 나는 알아서 멀리 돌아간다. 가끔 내가 하는 행동이 코미디같다.<블루 재스민>은 자아의 붕괴에 관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재스민과 진저다. 진저와 재스민은 자매 사이다. 자매 사이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재스민의 남편이 진저의 돈을 갖고 사기를 친 것이다. 사실 사기꾼은 재스민의 남편 할이었어서 언니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긴 하다. 이에 따라 언니를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지만 진저는 수천의 빚에 명확한 일자리도 없는 언니가 루이비통 가방과 일등석을 타고 왔다는 사실에 황당해한다.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재스민. 정신 차리기는 커녕 재스민은 과거 회상에 자주 빠진다.
과거 회상에 자주 빠진다는 것은 현재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스민은 사실 오갈 데 없는 처지다. 동생 부부가 복권으로 딴 20만 달러를 사기당해 모두 날렸고 전남편은 남 등쳐먹은 사기꾼이었기 때문에 기댈 가족이 없다. 심지어 이에 대한 충격으로 아들 대니와도 멀어졌으니 낙동강 오리알이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돈 흥청망청 쓰던 과거에서 돌아와 현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재스민은 드와이트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드와이트는 정계 입문에 관심이 있는 외교관으로 품격 있는 미모의 재스민과 완전 찰떡인 커플이다. 둘의 연애 초기는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근데 이 알콩달콩한 분위기는 오래 못 갔다. 우연히 만난 진저의 전 남편(그러니까 남편 할의 사기 피해자)에게 재스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듣고 드와이트는 이별을 고한다. 어려운 이별을 받아들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재스민은 화를 불같이 낸다. 진저와 칠리가 깨를 쏟아내며 알콩달콩 사랑에 빠진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돌아버린 재스민은 진저 커플에게 악담을 내뱉고 밖으로 달려나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를 보자마자 '자아의 붕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지금 당장 네이버에 '자아'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과 관념이라는 뜻이 나온다. 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과 관념'은 구체적으로 딱 떨어지는 단어가 아니다. 그래서 각자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데, 나는 이 자아라는 단어를 삶의 기준이라고 적용하고 싶다. 내 자아가 무너졌을 때도 내 기준이 없어서 사람들이 규정한 것을 따라갔다. 재스민에게 있어 명품은 이 자아를 흐리게 만든 도구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나도 비싼 스니커즈들 좋아하고 아직도 신는 입장이라 잘 안다. 비싸다라는 기준은 애초부터 타인에게서 온다. 내가 싸다고 생각하면 싼거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또 이것은 상대적이다. 내가 어떻게 목표를 설정했느냐에 따라, 또 현실 지갑 상황에 따라 갈리는게 싸다 혹은 비싸다라는 관념이다. 이런 식으로 타인이 설정한 기준이 부조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을때가 있다. 나는 내가 비싼 스니커즈들을 사면서 느꼈던게, 이것들을 사다보면 사람의 돈이 쉬워진다. 넷플릭스 구독료가 올라간다고 하면 '와 얘들 돈독 제대로 올랐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30~40만원대 스니커즈들은 '괜찮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건이 주는 기쁨이 되게 신선한 것이라서 사치품을 사는 것이 자아가 혼자 설 수 있는 환경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더 중요한건 내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일텐데. 그것들에게서 받는 기쁨보다 중요한 건 맛있는거 먹고 좋아하는 사람 만나며 영화 재밌게 보는, 그런 사람의 근본적인 지점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이란 이런 '나는 누구인가'를 채워과는 과정이었다.
재스민은 명확한 직업 교육도 못받았고 무너지는 현실에 대한 대처능력도 없어서 이런 것에 대해 탐구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자아가 붕괴됐다. 오갈데 없는 입장인데 자기가 부자라는 환상에 빠진 채로 끝나는 결말이 그 예시다. 원래 자기가 만든 자아라는게 있었다면 돈을 해프게 쓰지도 않았겠거니와 동생의 복권 당첨금을 다 날려버리는 결과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 뿐일까? 돈 많은 남자랑 연애한다고 몸을 움츠리며 울 일도 없었을 것이고 사기꾼 남편을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쉬운 구조를 통해 현실감각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우디 앨런식의 코미디가 아닌 현실의 한 단면을 잘라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내가 누구라는 물음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있게 도와준다. 물건? 있으면 좋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내 자신이 어떻게 서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앞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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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호러영화에는 재미도 있고 슬픈 전설까지 있어
여러분은 어떤 것에 무서워하는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이뤄지는 걸 무서워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될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던 게 현실화되면 무섭다. 거의 대부분 현실로 이뤄지는 게 함정이지만 이 공포에 무덤덤함이란 없다. '혹시 누가 화장실 물을 안 내렸으면 어떡하지' 싶으면 간혹 그 더러운 광경을 보게 된다. 비단 시각적인 것으로만 국한 지을 필요는 없다. '이 쯤되면 뭐 하나 잃어버릴 것 같은데' 싶으면 잃어버린다. '돈 다 쓸 것 같아'라면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돈이 빠진다.
당연히 우리 모두 다 재미없는 삶을 싫어하기 때문에 혹시 나를 두려워할 것이다. 이게 심해지면 불안장애라는 병으로 발현되기도 하지 않나. 이런 걸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 외로 내 운명이 바뀔까 하는 두려움은 거의 클래식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각자가 믿는 신에 다들 기대곤 하는 거 아니겠어? 그 점을 활용한 예술 장르가 공포영화고. 한국과 그렇게 멀지 않은 곳 대만에서 호러영화 한 편이 공개됐다. 이 영화, 무섭다, 기괴하다. 당신의 110분을 사라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저주 걸린 여자의 삶 가까이에 다가가 보자.
건드리지 말아야 했던 것
저주가 있다고 한다. 여자는 저주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백하는 여자. 자기를 리궈난이라고 소개한 주인공은 과거에 있던 일을 털어놓는다. 끔찍한 금기를 건드렸다는 여자. 금기를 건드린 탓에 리궈난의 주변에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카메라를 들고 간 경찰서에는 의문의 자살사고가 벌어진다. 계속되는 불행에 삶에 벌어지는 일들을 체념하기로 한 것 같다. 리궈난은 자기의 처지를 고백하고 금세 이 영상을 찍고 있는 이유를 말한다. “우리 딸의 불행을 극복하고 싶어서에요”
카메라는 리궈난의 일상으로 옮겨간다. 리궈난에겐 딸 한 명이 있다. 어두운 낯빛이지만 그래도 환하게 웃어 보이는 어머니 리궈난. 리궈난은 양육권을 뺏길 위기에 처한 것 같다. 평가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친모로서의 권리가 박탈될지도 모른다. 카메라와 리궈난은 한 남자와 만난다. 아마 공동으로 양육권을 가질 아버지가 되는 분인 것 같다. 촬영하고 있는 영상의 목적 ‘영상일기’를 설명한다.
둬둬는 리궈난 인생의 전부다. 그녀가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도, 유일하게 웃는 것도 딸을 만날 때가 아니면 볼 수 없다. 그런데 마음대로 편하게 굴러가진 않는다. 같은 차에 탔는데도 흐르는 어색한 기류. 차에 타서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둬둬와 리궈난은 행복할 자격이 있다. 간단한 놀이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녀. 둬둬는 어머니 리궈난에게 살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갑자기, 돌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시작됐다. 리궈난은 정해져 있던 저주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사실 뻔하다. 이 영화는 호러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다. 호러 영화에서 주인공이 저주에 걸리는 설정은 가지각색으로 다양하다.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 아무 이유도 계기도 모른 채로 맞이한 비극, 식인종 연쇄살인마와의 대담, 내재되어있는 분노 폭발 등 기존에 있는 호러 영화 수작들처럼 창의성 있는 도입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 금기를 건드리게 된 계기는 허무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뻔하다. 당장 떠오르는 <텍사스 전기톱 2022>부터 <이블데드>까지 전통과 근본의 주요 소재를 기시감이 들 정도로 답습하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저주의 시각화다. 이 저주를 시각화한 방식은 다른 영화와는 다른 차이점을 부여한다. 이 저주에 힘을 빡 줘서인지 인트로에 힘이 영 없는 건 분명한 단점이다.
이 단점이 영화 초반부에 제시되면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초반부가 지루하다는 점이다. 이야기 전개가 예상대로 이어진다. 눈길을 잡아끄는 건 자극적인 저주뿐이다. 단점이 이런 선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편집이 좀 산만한 감이 있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영화의 등장인물이 직접 카메라를 찍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형식)의 특성이 어느 정도는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근데 이 장르의 특성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내용이 좀 있다. 구체적으로 초입부의 저주의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첫 번째로 저주가 시각화되는 장면이 있다. 이 신은 아쉬움이 있다. 전체적으로 후반부의 폭주하는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다음 장면에 '어떻게 주인공들이 저주에 걸리게 됐는가'를 정작 영화에서 힘을 주고 싶은 부분이 너무 대놓고 드러나는지라 전반부는 기능적으로 단지 분위기만 제시하기 위해 쓰인 느낌이 강하다. 냉장고에 물건들이 다 엎어지고, 느닷없이 꼽등이가 날아들며 불이 깜박깜박하는 것이 후반부까지 통일성 있게 나타나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전반부는 그냥 잊힌다. 이 장면에서 둬둬가 저주가 걸린 부분을 1/3으로 줄이고 중반부로 이야기를 전개했어도 큰 무리는 없다. 이런 식으로 초반부는 단지 무서운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만 쓰인다. 이때 이 영화의 미술팀이 열일을 해서 무서운 느낌을 내는 건 충분하다. 그런 측면에서는 영화의 성취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자극적으로 높은 템포를 단지 유지하기 위해서 러닝타임을 썼다는 점은 사람에 따라서 지루하다가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디어가 너무 재치 있고 흥미로워서 영화의 서사가 희생된 느낌?
이 단점은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앞에서 쓴 현재 시퀀스 바로 다음은 과거 회상이다. 어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던 주인공. 친구들과 함께 한 마을의 전통을 취재하려고 한다. 이 취재는 리궈난이 저주에 걸린 계기가 된다. 그니까 둬둬가 걸려있는 저주의 증상을 보여주고 리궈난이 이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엇갈려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방식은 중반부 터닝포인트가 있기 전까지 지속된다. 근데 이건 사실 좀 더 쉽게 전개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초반부에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이 저주를 알면 알수록 더 큰 위험에 빠져들어요'라고. 그러면 이 저주가 대체 뭐하는 것이길래 인물들을 이렇게 끔찍한 비극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걸까? 의문점이 든다. 난 이 저주의 숙주에 대해 알고 싶다. 그런데 계속 저주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를 보여준다. 그게 불필요한 건 아닌데 주인공이 어겼던 종교적인 금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을 방해할 정도로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영화는 초반부터 중반까지 끊기는 느낌인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엇갈려 배치할 필요가 없는 느낌이었다. 이게 현재 시점에서 겪는 저주 연출이 현실적으로 기괴해서 그렇지 미술팀의 열일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굉장히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다행히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을 보여줘 이야기에 집중이 되지만 천천히 쌓아 올린 빌드업이 불친절한 것은 영화의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저주에 걸린 모녀의 모습 - 과거에 어떻게 저주에 걸렸는가 - 현재 관점에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 - 하이라이트 신(과거 회상) - 엔딩으로 이어져도 극이 훨씬 깔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영화의 다른 단점 중 하나는 엔딩이다. 아마 "..?" 싶을 것이다. 중후반부까지 쌓아 올린 압도적인 이미지에 무색하게 좀 허무하게 끝난다. 근데 이 영화는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무섭고 기괴한 에너지가 강점인 영화다. 그래서 엔딩이 그렇게까지 페널티는 아니다. 좀 어이없을 뿐. 아무 인상도 주지 못하는 엔딩이었다. 이 부분은 직접 확인하시길!
압도적인 시각 디자인
이 영화는 이렇게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사실 장점이 훨씬 더 크다. 일단 앞에서도 쓴 시각 디자인은 정말 노력의 대가가 그대로 나타났다. 일단 기괴한 이미지를 너무 잘 짰다. 어쩜 그렇게 무서운 짓만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초반부에 어떤 할머니가 차 밖에서 인물을 관찰하는 신이 있다. 그냥 슥 지켜보는 게 아니라 딱 달라붙어서 구경한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서 하는 행동들, 몸의 각도들, 대사들까지 경제적인 활용법이 돋보인다. 이 감독은 어떻게 해야 그냥 지켜보는 행위로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 수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기괴한 짓만 골라서 러닝타임을 끌고 가기 때문에 호러 영화의 제1원칙 '일단 무서워야 함'을 아주 충실히 충족한다. 그래서 이 영화 자체가 재미있는 영화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 계속 생각난다. 하이라이트 신에서 만든 세트장은 진짜 실제로 그런 게 있을 법하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뭐라 뭐라 보여주지 않아도 디자인의 현실감 하나로 모든 설득력을 갖는다.
이 시각 디자인의 강점은 신체를 활용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분명 여러분들이 다 익숙한 맛일 것이다. 근데 그 익숙한 맛에서 살짝 비켜나가서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초반부에 입 안을 열었는데 치아가 많은 장면이 있다. 이 때 치아가 좀 누리끼리하지 않다. 정말 새하얗다. 근데 입 안이 또 완전 새빨간색은 아니다. 적당히 빨갛다. 적당히 빨갛고 아예 새하얀 치아를 탁한 조명으로 묘사한다. 이 이미지에서 오는 기괴함은 아직도 생각날 정도다. 그리고 무슨 피부에 발진이 나는 형태도 현실감 있게 잘 그렸다. 단순히 끔찍하게만 그려서 무서운 게 아니다. 진짜 일어날 법한 상처라서 더 무섭다. 이 상처를 비추는 조명이나 촬영 방식도 잘 골랐다. 연출자의 섬세함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믿음이 가는 이 느낌
<랑종>이 생각난다. <랑종>과 이 영화는 어느 정도 비슷한 감이 있다. 아시아권의 영화감독이 동양적인 소재로 호러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궤를 공유한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도 장점을 공유한다. 바로 신뢰를 팍 주는 중심인물들이다. <랑종>에서는 님 역을 맡은 배우가 실제 다큐를 보는 듯한 든든한 연기를 보여줬다. 반대로 이 영화에서는 유사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인물의 특성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인물의 표정연기와 대사 치는 톤으로 신뢰감을 형성한다. 이 사람은 진짜 그럴 것 같다. 그리고 후반부로 이어지는 폭발하는 연기 역시 생동감 있게 잘 소화했다. 이 인물의 행보, 등장과 퇴장을 유심하게 지켜보면 극의 배경이 되는 연기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또 모녀의 연기 역시 좋았다. 특히 아역 배우 둬둬를 맡은 배우는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이 호러를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을까? 90년대-00년대 아마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귀신 들린 연기를 깔끔하게 잘 소화했다. 또 리둬난 역을 맡은 배우도 리액션 연기가 좋았다. 기괴한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어딘가 불안한 내면을 탄탄하게 소화했다. 어쩌면 불안한 각본을 이끌 수 있었던 건 이 세 배우의 호연 덕이다.
그냥 보기 좋아
영화를 왜 볼까? 난 그냥 본다.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본다.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라는 매개체가 주는 특성은 남다르다. 가끔은 장점이고 단점이고 나발이고 순수하게 무서운 영화가 끌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 장점을 충실히 구현하는 좋은 영화다. 일정한 톤으로 기괴한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극에 빠져드는 장점이 될 것이다. 시각 디자인팀이 만든 영화의 에너지를 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이 후딱 지나가 있을 것이다. 작년 <랑종> 역시 무서운 영화였다. 이 영화는 <랑종>의 장점과 단점을 어느 정도는 갖고 와 나름의 방식으로 변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맥주 깐 상태로 보기 좋은 공포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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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꿈과 사랑 앞에 선 한여름의 두 청춘, 영화 <지원의 여름> 김우식 감독 인터뷰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7월에서 9월로 계절을 옮겼습니다. 9월은 바야흐로 가을의 시작이지만, 아직까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하면 저절로 여름이 연상되곤 합니다.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은 <지원의 여름>은 이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 비슷한 점이 많은 작품입니다. 지난해 9월에 촬영했지만 여름 느낌을 물씬 풍기는 작품이지요. 충청도를 배경으로 하기에 제천에서 보았을 때 그 느낌이 더 남다르기도 합니다. 김우식 감독은 여름이라는 계절이 주는 강렬함과 그것이 끝나갈 때의 속 시원하면서도 아쉬운 감정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9월의 제천에서, 김우식 감독을 만나 <지원의 여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원의 여름
Summer Replaying
Summary
동명의 연인, '지원'과 '지원'. 7년의 연애와 밴드활동에 마침표를 찍고, 두 사람은 어느 늦여름 밤에 재회한다. 여느 밤처럼 어물쩍 지나갈 하룻밤을 기대한 '지원'과 달리, 또 다른 '지원'은 어떤 결심을 하기 위해 그를 찾아온다. 이튿날, '지원'은 해체한 밴드 멤버들과의 낮술 자리에 가게 되고, 그 해 여름은 예상 밖으로 전개된다.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Cast
감독: 김우식
출연: 구교민, 성채우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여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가을로 옮겨 괜히 아쉽더라고요. 그런데 제천에 와보니, 다행히 영화 속 배경과 꼭 닮은 여름 그 자체의 날씨네요.
실은 저희도 작년 9월 11일에 첫 촬영을 했어요. 한여름에 찍으면 너무 더울 것 같아서 일부러 좀 뒤에 찍었거든요. 더위를 피해 9월에 찍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좀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꿋꿋이 촬영해보려고 했지만, 결국엔 다 버리고 어쩔 수 없이 추가 촬영을 했죠. 그런데 오히려 좋았어요. 예산이 한정된 독립영화 촬영 환경에서 리허설은 꿈도 꾸기 어렵거든요. 추가 촬영 덕분에 리허설 아닌 리허설을 해보고, 더 나은 방식으로 촬영할 수 있었어요.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메이드인제천 세션의 유일한 장편 영화입니다. 제천에서 관객분들을 만나시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이 작품은 7년 전에 만든 시나리오로 되게 오랜만에 찍은 영화예요. 저희 같은 독립영화는 영화제가 아니면 관객을 만나 생명력을 얻기가 어렵잖아요. 어떻게 보면 <지원의 여름>이 비로소 생명력을 얻어 본인의 역할을 하는 순간이라서, 저희에게도 뜻깊고 특별해요. 단 한두 명의 관객이라도 저희 영화에 공감해 주시고, 잘 봤다고 이야기해 주시면 너무 힘이 나고 벅찰 것 같아요.
이 영화는 두 '지원'의 이야기입니다. 이름이 같은 연인의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저희 작가가 당시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밴드가 있었는데, 실제로 그 밴드가 해체를 겪었어요. 그런 일련의 사건들과 엮어서 나온 이야기예요. 초반부에 나오는 인터뷰와 밴드 공연 장면은 실제로 작가가 좋아하는 밴드가 해체되면서 공개된 유튜브 영상을 레퍼런스로 삼아 작업했죠. 또 각본을 쓴 저희 작가가 '지원'이라는 이름을 좋아하기도 했어요. 생각해 보면, 시나리오를 쓰던 당시에 저희가 늘 어딘가에 지원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기도 했네요.
끝까지 진심을 다하는 여자 '지원'과 비참해지기 전에 그만두는 것을 선택하는 남자 '지원'. 두 사람은 사랑과 꿈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완전히 다른데요. 이러한 캐릭터 설정을 통해 하고자 한 이야기가 무엇인가요?
남자 '지원'은 모든 건 자신의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꿈도 사랑도 자신 있게 선택하지 못하는 친구예요. 선택을 계속 미루는 거죠. 음악도 계속하고 싶고, 여자 '지원'도 여전히 사랑하는데 말이에요. 반면, 여자 '지원'은 꿈과 사랑을 계속할지 말지를 정확하게 선택하려는 친구예요. 그래서 끝까지 가볼 수 있는 거죠.
극 중의 주인공은 음악을 직업으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저도 그들과 비슷한 나이에 영화를 직업으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어릴 땐 평생 영화를 찍으면서 예술가이자 감독으로서 살 거라고 믿었어요. 첫 영화제 갔었을 때 제가 최연소 감독이었거든요. 그 당시에 스스로 되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죠.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의 발톱의 때만큼도 못 따라가겠구나. 그렇게 현실을 알게 되고, 영화를 할지 말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처음엔 남자 '지원'처럼 영화를 애매하게 하기는 싫었어요. 지금은 영화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그런 걸 기대하지 않고, 욕심도 부리지 않아요. 다만, 만들고 싶은 소소한 이야기가 있을 때 이를 영화로 만들 수 있었으면 해요. <지원의 여름>은 이런 저 자신의 이야기도 반영된 작품이에요.
'지원'을 맡은 배우들이 완전히 다른 두 성격의 인물을 잘 표현해 주신 것 같아요. 배우를 섭외할 때 고민하신 지점이 있었나요?
<지원의 여름>은 남자 '지원'이 끌고 가는 부분이 많은 영화예요. 다른 어떤 역할보다도 남자 배우의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남자 '지원' 역의 배우를 섭외하고, 그 분과 어울리는 배우분들을 찾았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섭외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남자 '지원' 역을 맡은 구교민 배우에게 같이 활동하는 배우 중에 시나리오와 어울릴 만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제가 섭외를 해서 케미스트리를 만들기보다 이미 케미스트리가 있는 사람들이 나오길 바랐거든요. 그렇게 여자 '지원' 역과 밴드 멤버 분들을 모집할 수 있었죠. 이 영화는 '구엔터' 없었으면 배우 섭외가 어려웠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해요.
여름을 잘 담아낼 로케이션도 중요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장소를 고르셨나요?
원래 배경은 한강이었어요. 그러다가 촬영 지원을 받기 위해 로케이션을 충청도로 바꾸었죠. 공간을 바꾼 게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원래 주된 이야기가 펼쳐지는 남자 '지원'의 집이 복도식 아파트였는데요. 그때만 해도 아파트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였는데, 7년 동안 세상이 바뀌면서 그게 불가능해졌죠. 그래서 아예 공간을 주택과 담벼락으로 바꾸었어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담벼락에서 남자 '지원'은 어린 소녀 '지원'을 만나기도 합니다. 남녀 '지원'에 이어 어린 소녀 '지원'까지 넣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저희 영화에는 이렇다 할 영화적 사건이 없어요. 1박 2일에 걸쳐 벌어지는 일에 불과하니까요. 소소한 이야기들의 연속일 뿐이죠. 냉정하게 따지면 장소도 많이 나오지 않아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재미를 더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구조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캐릭터가 리듬을 바꿔주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이 작품에서는 어린 소녀 '지원'과 밴드 멤버 '영재'가 바로 그 리듬의 캐릭터였어요.
'로우테잎'이라는 실제 밴드의 공연 모습으로 영화가 막을 내려요. 픽션일 뿐이었던 영화가 한순간에 현실로 끌어당겨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실제 밴드의 노래들이 많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곡 저 곡 쓰기보다는 실제 밴드의 음악이 들어가서 일관된 느낌을 자아냈으면 했거든요. 그래서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밴드와 협업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분들도 제가 담고자 했던 이야기와 비슷한 고민을 해오셨던 걸 알게 됐어요. 실제로 이 밴드가 엔딩곡으로 삽입된 노래를 싱글로 발매하면서 다시 활동을 시작하셨거든요. 저희 영화가 그 밴드의 삶을 모티브로 한 건 아니지만, 엔딩 장면을 통해 이러한 이야기들이 단순히 상상력으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고민들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거죠.
<지원의 여름> 이후, 어떤 이야기로 관객을 만나고 싶으신가요?
이 작품이 저의 첫 장편 영화인데, 한 번 찍고 나니까 다음 기회가 자연스럽게 열리더라고요. 아직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인데, 일제강점기에 강제 이주를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관객들이 자신을 어떤 감독으로 기억하길 바라시나요?
제가 만드는 영화는 살짝 애매한 포지션에 있어요. 완벽한 상업 영화도 아니고, 이런 영화제가 사랑하는 뾰족한 영화도 아니죠. 하지만 이야기에 빠져들고 나면, 나름대로 괜찮게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일상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를 만드는 감독으로 기억해 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9월 8일(일) 16:00 청풍리조트 컨벤션홀
9월 9일(월) 10:00 제천예술의전당
글: 하이스트레인저 방해리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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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정해놓은 경계따위를 뛰어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영화 <바운더리>
< 바운더리, 윤가현 >
오늘날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를 이른바 '메갈'이라 부르며 폄하하고 비하하고 조롱한다.
그러나 이들이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왜 메갈이 되었는지를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을 거라 생각한다. 2021년인 지금, 한국에서 여성의 권리는 어느 정도까지 보장되고 있는지 우리가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보호받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해당 다큐멘터리를 통해 조금이나마 고민해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불꽃페미액션은 여성단체로써 그간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은 피해, 희생된 사건들을 조명하며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의를 갖는지를 계속해서 알리고 잊히지 않기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나는 그들이 이러한 단체활동을 지속하는 이유가 사회가 여성이라는 존재를 지우려고 할 때 우리가 살아있음을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며 알 만한 굵직한 사건과 운동들 가운데 이 단체가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를 알 수 있어서 더없이 반가웠고 해당 단체를 비롯한 다양한 개인과 단체들의 선행이 있기에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여성인권에 관심을 갖을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더더욱이 사람으로 인정받고 안전하게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생각이 다를지라도 여성을 위한다는 사실만큼은 같을 거라고 본다.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며 사회에서 안전한 삶,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더 빨리 도래했으면 좋겠다. 또한 나도 그 개인으로서 제 한몫 열심히 살고 싶다.
끝으로 이 영화의 제목만을 놓고 봤을 때 '경계'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일반적으로 경계란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이고 그것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리기 쉽다.
안전의 의미를 담은 경계는 논외로 하고,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경계'를 생각할 때 그것이 위험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례가 없거나 으레 그렇듯 아무도 하지 않으니 더더욱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위대한 발명을 하지 않아도 되고 세계의 난제를 푸는 일까지는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난 그저 내 자리에서 남들이 두려워하거나 내가 두려워했던 것들을 용기와 호기심을 갖고 훌쩍 뛰어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스스로의 경계를 넘고 더 나아가 사회의 경계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넘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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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줄거리
만삭의 엄마와 숲 속으로 들어가는 오필리아.
먼 길을 힘겹게 달려왔건만, 새아버지는 자신들을 딱히 반기지 않는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오필리아는 숲 속 미로에서 자신을 '판'이라 소개하는 요정을 만난다.
판은 그녀를 '모안나'라고 부르며 오필리아가 원래는 지하왕국의 공주라고 말한다.
오필리아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예언의 책을 건네는데...
시청포인트
1. 마냥 아름답고 달콤한 판타지가 아닌 다크 판타지
2. 점점 오필리아에게 동화되는 자신을 발견
3. 여운 짙은 마지막 장면
전체 평점
★★★★★(5.0 / 5.0)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그 장면'을 우연히 접하고 영화가 궁금해져서 보게 되었다. 이런저런 해석을 해보려고 했지만, 슬쩍 검색만 해봐도 어마어마한 분량의 분석들이 쏟아져 나오는 터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뜯어내서 일일이 분석하고 싶지 않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야말로 '멍 때리고' 본 영화. 내게 정말 좋은 영화란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되는 영화다. 혹은 숨이 턱 막혀 말이 나오지 않거나. 두고두고 보고 싶을 만큼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영화였다.
이 글은 내가 영화 속 내용을 진실 혹은 오필리아의 상상, 어떤 것으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어차피 이 영화의 핵심은 그 부분이 아니던가. 역사적 사실이나 정치적 견해가 아니라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희망이 있겠거니'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지만, 암울한 결말에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영화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면 좋겠지만,
나로서는 오필리아의 상상이라고밖에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과 결부시키지 않고 표면만 보아도 이해가 된다. 연이은 부모의 죽음과 계부의 학대, 불안정한 주변 환경, 누구에게도 관심받거나 사랑받지 못한 채 방치된 아이. 오필리아는 책 속 아름다운 세상처럼 자신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지하왕국에서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현실에서 충분히 만족했더라면 구태여 판이 내미는 선택의 책을 받아 들 필요가 있었을까? 지금 현실세계에서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
더불어 자신을 '공주'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도 맞아떨어진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었을 때 사람들은 오필리아를 보고 좋아하지만, 진흙투성이가 된 오필리아를 보고는 그녀의 어머니조차 화를 낸다. 굳이 자신의 외관이나 행동을 꾸미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주는 이는 없다. 어린 소녀는 자신의 자아를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를 '기억을 잃은 공주'로 설정한 것이다.
보통 우리는 사람이 죽었을 때,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란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오필리아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후, 황금빛 드레스를 입고 지하왕국의 부모님 앞에 서 있는 장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눈물이 났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감내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승화시켜 아름답고 황홀한 세계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달빛만이 오필리아를 비추는 장면에 비해 지하왕국은 너무도 휘황찬란해서 확연한 슬픔을 자아낸다.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진 작은 소녀에게는 이승에 남아 있을만한 그 어떤 이유조차 없다. 그나마 삶을 버티게 해 주었던 가족마저도 자신보다 앞서 저승에 갔기 때문. 오필리아에겐 차라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고달픈 현실을 애써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마저도 본인이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 애달플 뿐이지만.
오필리아가 죽은 후라도 자신이 원하는 '어느 거짓과 고통도 없는' 곳으로 가서 모안나 공주로 영원히 행복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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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맨, 넷플릭스에서 보기 아까운 액션 영화
?Rabbitgumi 입니다!
마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감독인 루소 형제가 마블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죠.
이번에는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그레이맨이라는 영화로 돌아옵니다.
라이언 고슬링과 크리스 에반스가 출연하고 있는 액션영화인데요,
꽤 스케일이 큰 액션 영화여서 극장에서 선 공개 되었어요.
넷플릭스가 엄청난 금액인 2억 달러를 투자한 영화죠!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는 아래 링크에서! :)
https://rabbitgumi.stibee.com/
브런치는 아래 링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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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주 최신 개봉영화(강릉,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1984 최동원, 뉴오더, 아담스 패밀리2)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1월 2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강릉 #태양은움직이지않는다 #1984최동원 #뉴오더 #아담스패밀리2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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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공식 티저 예고편
한여름 찾아온 수상한 손님으로 인해, 평온한 일상이 무너지고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8월 23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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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암모나이트>
“긴 시간의 끝, 그곳에 네가 있었다”
1840년대 영국 남부 해변 마을,
생계를 위해 화석을 발굴하는 고생물학자 ‘메리’는
그곳으로 요양을 위해 내려온 상류층 부인 ‘샬럿’을 만난다.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거친 해안에서 화석을 찾으며, 그렇게 기적처럼 서로를 발견하고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당신의 마음에 각인될 강렬한 러브 스토리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