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1-21 20:46:53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 리뷰
SYNOPSIS.
[성모의 죽음], [메두사], [성 마태오의 소명], [세례 요한의 참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카라바조’
살해 혐의로 도망자 신세가 된 '카라바조'는
로마 교외로 도피 생활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그림을 놓지 않는다
한편, 교황청은 그런 그의 사면 자격을 조사하기 위해
비밀리에 ‘그림자’를 파견해 뒤를 쫓는데…
POINT.
✔️ 카라바조를 아시나요? 바로크 회화 거장. 렘브란트, 루벤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등이 영향을 받은 사람. 이전까지 없던 강렬한 화풍을 가진 독특한 화가의 세계로 안내하는 작품.
✔️ 카라바조 역할을 맡은 리카르도 스카마르치오의 든든한 존재감 뒤로, 이자벨 위페르 & 루이 가렐이 어마어마한 아우라를 뽐내는 작품. 둘 다 프랑스 배우라 그런지 더빙을 했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그럼에도 이 둘을 캐스팅한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 만큼... 얼굴로 에너지를 다 드러냅니다.
✔️ 사랑과 예술이 함께하는 길. 종교로 대표된 권력에 맞서 인간적 에너지를 드러내는 카라바조 캐릭터의 매력을 볼 수 있어요.
✔️ 영화를 보고 나니, 마침 진행 중인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시(~2025년 3월 27일)가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그가 5살쯤 되었을 때에 흑사병이 터졌다. 유럽 인구의 1/3 가량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병으로 혼란한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견습 생활을 거쳐 화가로 자라난다. 폭발적인 주목을 받은 엄청난 능력치, 다른 의미로 폭발적인... 술과 폭력과 염문으로 절여진 사생활로 숱하게 화제가 된다. 결국 말다툼이 번진 결투에서 살인죄를 저지르고, 로마를 벗어나 몰타로 도피했으나... 몰타에서도 문제를 일으켜 나폴리로 또 도피하게 된다. 도망길에서도 붓을 놓지 않으면서, 마치 당시 상황을 반영하듯 거칠고 어두운 화풍을 남긴다. 혹자는 피살되었다고도 하고 혹자는 풍토병이라고도 하는 모종의 이유로 사망한다.
여기까지가 카라바조라는 화가에 대해 알려진 개략적 사실이다.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가 흥미로운 지점은 이 사실들을 크게 비틀지 않으면서도, 카라바조라는 인물에게 전혀 다른 이미지를 덧입힌다는 점이다.
'까'와 '빠'를 다 미치게 만들어야 슈퍼스타라던데,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카라바조는 당대의 슈퍼스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등장인물 대다수가 그를 극도로 좋아하거나 혹은 극도로 싫어한다. 그리고 그 반응들을 보는 것은 꽤나 재미있다. 오늘날 여기저기서 쉽게 재현되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나와 거리감이 있는 시공간에서 익숙한 구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걸 보고 있자니 알 것 같다. 왜 나는 사랑-예술 사이에 인력이 있고, 사랑-권력 사이에 척력이 있다고 느끼며 살아왔는지를.

사랑과 예술의 대척점에, 권력
천상의 이야기와 지상의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던 시대. 성모 마리아 그림은 반드시 특정한 구도와 정물 등 계산된 방식대로만 그려져야 했고,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해서도 안되었다. 하물며 길거리의 매춘부를 모델로 하다니 당시의 '높으신 분들'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르고 봤을 때는 마음을 정돈하기에 도움이 되었던 성모화가, 모델이 매춘부임을 알고 나니 더없이 거슬리는 것이 되었다.
카라바조의 천재적 재능은 '천상의 이야기'를 지상에 전하기에 적합했지만, 그가 펼치는 예술의 방식은 신성모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를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그 조사관(루이 가렐)이 '그림자'처럼 어두운 데 몸을 두고, 카라바조의 '그림자'를 좇으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카라바조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모두가 각자의 증언을 하고, 카라바조의 삶은 모자이크화처럼 점점 우리에게 다가온다.

카라바조를 싫어하는 사람들 축에, 온갖 권력자들이 있다. 이들은 솔직할 수 없기에 뒤틀린다. 카라바조의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솔직하게 경탄할 수 없어, 권위를 내세운 말들로 그의 그림을 깎아내리는 아카데미의 화가들을 통해, 예술의 진실성이 빛을 잃는다. (그림 뿐 아니라 비평도 함께.)
마찬가지의 양상을 종교 지도자들도 보여준다. (종교) 권력의 속성을 체화해 보여주는 캐릭터, '그림자' 조사관을 맡은 루이 가렐은 직선적인 눈빛으로 위압감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기다란 막대봉을 땅에 내리꽂으며, 사람들을 협박하다시피 강압적으로 상대의 이름을 묻고 정보를 뜯어낸다. 상대의 양쪽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속삭이는 루이 가렐의 모습은 (진짜 너무 잘생겼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악마적이다. 종교를 수호한다는 캐릭터가 가장 악마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렇게, 종교의 진실성 또한 빛을 잃는다.

권력은 막대봉처럼 오직 파괴적이고 직선적인 방식으로만 내리꽂힌다. 사실 예술가들처럼 당대의 종교인들 또한 카라바조에게 사랑을 보았고 내심 끌렸지만, 그들의 권력을 유지해온 모양과 다른 그 사랑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랑의 속성은 반-권력인가, 생각하다 문장을 바꿨다. 권력의 속성은 반-사랑이구나. 종교가 권력이 되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서 본다. 권력을 탐하는 종교에 사랑이 머물 곳은 없다. 그 자리에선 예술도 거짓될 수밖에 없다.

살아 있기에 가능한, 예술
반대로 예술과 사랑이 빛나는 카라바조의 삶은 자동으로 반-권력적이 된다. 그의 예술은 상대의 눈을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상대가 매춘부든 사형수든, 그가 이름을 묻는 방식은 마치 존재를 알아봐 주는 듯한 모양이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을 직접 서술하게 한다. "당신 대역죄인이오?" 물어 상대가 아니라고 자기 서술을 할 수 있도록. 진정한 예술은 우리에게 1인칭 언어를 피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질문들이 인상 깊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밤을 뜯기며 시달리던 창부는 카라바조 앞에서 혼곤한 잠에 들고, 두려움과 용기를 구분 못하겠다며 마지막 밤을 회피하던 사형수는 두려움을 인정하고 심지어 두려움을 넘어서 자신의 신념을 꿋꿋하게 외친다. 카라바조는 사랑의 눈빛과 질문으로 상대의 정체성을 끌어내고, 거기서 본 얼굴을 그려낸다. 권력이 끌어낼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 끌어낸다. 예술가가 탄생하는 지점은 공교한 기술 이전에 시각의 차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
아직 천부인권이라는 말이 발명되기 전이었던 시대, 거리의 약자들은 철저하게 타자화되었다. 상처에 술을 부어주는 신부의 너털웃음, 그가 베푸는 음식과 약품 정도가 이들이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의 친절이었다. 여성이 성추행을 당해도, "만지게 두었다고" 즉결 심판으로 채찍질을 당하는 시대.
그곳에서 카라바조의 사랑은 홀로 빛난다. 비록 창부를 표현한 장면들이 다소 필요 이상으로 성적 대상화를 위한 대상화를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와중에도, 카라바조의 사랑은 난봉이나 염문이라기보다 인류애로 느껴진다. 삶에 진심인 사람,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의 죽음이나 상처를 쉽게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 역설적으로 그럴 때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카라바조의 캐릭터에 부여해 드러낸다.
이는 카라바조를 경멸한 종교의 속성을 생각할 때 더욱 흥미롭다. 죽음 뒤의 부활로 죽음에 대한 승리를 선포하는 종교가 미세한 의심의 자국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오히려 믿음이 약한 모습을 볼 때, 진정한 사랑과 예술은 재갈에 물려 피를 흘리고 두려움을 인정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자리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오는 미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훗날 자신이 노벨문학상을 수상자가 될 사실을 모른 채, 연필로 꾹꾹 이 문장을 눌러 썼던 여덟 살 아이의 마음. 거기 고여 있는 것을, 이 영화에서도 볼 수 있었다. 사랑이 없을 것 같지만 놓인 곳. 반대로 있어야 하지만 없는 곳. 그 구도를 소실점처럼 현실로 끌어와 본다. 그리고 묻는다.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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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한 가족의 여름
감독: 카를라 시몬
출연진: 아이넷 조우노우, 호르디 푸욜 돌세트, 안나 오틴, 제니아 로세트, 알베르트 보쉬
시놉시스: 복숭아 농장을 운영하는 한 가족에게 여름 안에 떠나 달라는 지주의 통보가 도착한다.
카를라 시몬 감독은 전작 <프리다의 그해 여름>(2017)에 이어 또 한 번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인물이 몇 등장하지 않던 전작에 비해 열몇 명의 인물이 등장하며 비교적 스케일이 커진 이번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감독의 자전적 경험에서 시작한다. 감독의 고향이자 지금도 가족인 삼촌들이 복숭아를 재배하며 살고 있는 알카라스가 바로 영화의 무대다. 원제에 '여름'이라는 한 단어가 더 붙은 국내 제목이 암시하듯 이 영화에서 여름이라는 계절의 의미는 어떤 의미로든 특별하다. 영화의 초반부터 이리스 가족은 통보를 받는다. 계약서가 없기 때문에 여름이 끝날 때까지 떠나 달라는 실토지주 피뇰에게서 온 통보문이다. 길지 않게 쓰인 글의 말미에 '예외는 없다'는 부분은 멀지 않은 이들의 미래를 짐작케 만든다. 복숭아나무가 자라고 아이들이 뛰노는 알카라스의 눈부신 여름의 풍광은 그럼에도 눈부시게 빛난다.
과거에 이리스의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피뇰 가는 이들에게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자신의 땅에 살게 해주는 대신 태양전지판을 관리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복숭아 농사의 주축이자 이 집의 가장인 이리스의 아버지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며 농부이길 택한다. 마을을 채우던 복숭아 밭이 하나둘 사라지며 태양전지판으로 변하고, 이리스 가족은 이를 보게 된다. 자신은 끝까지 농부의 길을 걸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농사일 보다도 책을 읽고 공부하길 바라는 아버지의 태도는 이처럼 자본에 잠식되어가는 개인 농부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방황하는 아들과 할아버지의 외출을 지켜보는 손녀의 모습은 그런 아버지 세대의 저물어감을 보게 되는 농촌 신세대로도 읽힌다.
농부들의 시위를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나 태양전지판이 밭의 공간을 점차 차지하게 되는 정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를 바라보는 이리스 가족의 표정으로 이루어진 숏들로 미루어볼 때 분명 이 영화는 정치적인 영화로 읽힐 여지가 충분하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정치 혹은 사회 영화로만 본다면 이 영화의 일부분만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도적으로 심어둔 몇몇 숏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하나, 전체로 볼 때 이것은 사실 일부에 불과하다. 결국 이 영화는 한 3대 가족의 이야기이자, 그 가족이 다함께 보내는 어느 여름날의 추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어느 가족의 개인적 이야기에 가깝다.
감독은 전작에 이어 이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에서도 아이의 시선을 영화 안에 녹여내기를 택했다. 카를라 시몬 감독은 아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에 대본을 쓰지 않는다. 그들에게 대본을 주거나 상황을 설명하기보다 어린 배우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유대감을 쌓는다. 촬영장에서 그들이 자유로이 놀도록 하고, 그렇게 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특히나 아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롱숏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관객이 캐릭터와 그 캐릭터의 감정을 함께 체감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화에는 예상외로 쿡쿡대게 만드는 꾸밈없는 장면들이 가득하다.
*영화의 엔딩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가만히 지켜보며 찍는 연출은 어쩌면 감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인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그냥 카메라를 두고 찍으면 되지 않냐는 식의 물음이 따라오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경우에 따라 맞는 말일지도 모르나, 이 영화는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 영화의 엔딩이 그렇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카메라에 담는 것만으로도 다른 의미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여느 날처럼 화목한 어느 날, 포클레인 소리에 이리스 가족은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본다. 바로 앞에서 포클레인이 나무를 뭉개고 있다. 리버스 숏으로 가족들의 표정이 보인다. 여기서 영화가 끝났을 수도 있으나, 이 영화는 원경에서 이 광경을 재차 보여준다. 마치 영화 전체를 한 숏에 압축한 것처럼도 느껴진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고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포클레인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는 아직 망가지지 않은 그들의 복숭아 밭이 보인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면 결국에는 끝이 날 이들의 소중한 여름을 마지막 한 숏에 담으며 영화가, 감독이 이들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 느껴진다. 이 영화의 엔딩은 올해의 엔딩이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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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5주차, 위클리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그럼, 지난주 동안 국내외 영화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는 '위클리 뉴스' 차례가 왔습니다!
지난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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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천우희 주연 <앵커>, 4월 20일 개봉
출처 | 네이버 영화
배급사 에이스메이커는 배우 천우희 주연의 영화 <앵커>가 다음 달 20일에 개봉한다고 공개했다.
<앵커>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제보 전화를 받은 앵커 세라의 이야기를 다루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이다.
CGV, 영화 관람료 인상
코로나 19로 인해 적자가 누적되면서, CGV에서 불가피하게 다음달 4일부터 가격을 인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코로나 19 이후 있는 세 번째 인상이다.
일반관은 1천원 (성인 기준 - 1만 4천원), 특별관은 2천원. 고급관은 5천원 인상된다.
<뜨거운 피>, 5일째 박스오피스 1위
출처 | 네이버 영화
배우 정우 주연의 영화 <뜨거운 피>가 5일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뜨거운 피>는 지난 주말 15만 6425명의 관객을 모았고,누적관객수는 23만 6766명에 달했다.
파친코, 공개 삼일 만에 545만 조회수 돌파
출처 | Rotten Tomatoes
지난 25일, 애플TV+는 유튜브에 <파친코>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무료 공개했는데
이틀 만에 545만 조회수를 넘겼다.
해당 영상이 큰 인기를 끌며 유료 구독 가입자 수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
강동원, CAA와 계약
출처 | NEW
배우 강동원은 한국 밖에서의 활동을 위해 CAA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다.
최근 CAA와 계약을 맺은 한국 배우에는 배우 이정재와 정호연이 있다.
워너 브라더스, 100주년 기념 로고 공개
출처 | Warner Bros.
워너 브라더스는 곧 다가올 창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4일, 100주년 기념 로고를 먼저 공개했다.
100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기념 상품 출시, 고전 영화 극장 개봉,소비자 라이브 이벤트 등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로스트 시티>, 개봉주 주말 3천만 달러 달성출처 | 네이버 영화
산드라 블록과 채닝 테이텀 주연의 영화 <로스트 시티>가 개봉주 주말 매출액이 3천만 달러(367억원)를 달성하여,
이번주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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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어느새 71세가 된 조반니 “난니” 모레티 감독의 최신작 <찬란한 내일로>는 그의 대단한 필모그래피를 고려하면 일견 수수해보인다. 난니 모레티는 본명과 직업이 같은 주인공을 직접 연기하며, 나이든 감독이 평생 잘 굴려왔다고 믿은 영화와 가족 양측에서 내쳐지고 비로소 얻은 깨달음과 후회를 코믹하게 펼쳐둔다.
<아들의 방>과 <악어> 시절부터 모레티와 오랫동안 합을 맞춘 마르게리타 부이, 실비오 올랜도 등 반가운 배우들이 극중 조반니의 오래된 동료나 부인으로 분하더니, 크레딧 롤을 대신하는 듯한 마지막 행진 장면에서는 아예 지금껏 협업한 배우들을 카메오로 불러내 클로즈업하기도 한다. 알바 로르바케르(일층 이층 삼층), 자스민 트린카(아들의 방), 다리오 칸타렐리(미사는 끝났다/아들의 방/악어/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등등), 줄리아 라짜리니(나의 어머니), 안나 보나이토(악어)와 리나 사스트리(에체 봄보)까지. 송경원 평론가의 말마따나, 그야말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대행진‘이다.
거장이 된 창작자가 자기 ‘사단’을 불러다놓고 (그동안 지겹도록 말해진) ‘영화 만드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우회적으로 논하는 자전적 작품은 생각보다 드물지 않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거장들은 자꾸만 일생의 마지막 정리를 하는 듯한 작품을 만들어왔는데, 그런 영화들은 종종 긴 세월의 노고를 함께 해준 ‘이너 서클’에 대한 우애나 자기 자신의 좋았던 시절에 대한 애틋한 치하를 필연적으로 담지하고 있어 관객인 내게 애수와 함께 아주 미약한 피로감을 불러일으킬 때도 있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반드시 사변적이라거나 습작적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확률상’ 그런 루프에 빠지기 쉬운 것도 사실인데, 노장의 자전적 필모그래피란 그런 습작성을 가릴 만큼의 노련함까지 갖추고 있어 소위 ‘흐름’을 타지 못하면 영화 내내 홀로 축제에 합류하지 못한 찝찝한 기분으로 뒤에 남겨지기 일쑤였다. 서사성의 결여, 자기애적 회고에 대한 반발감 때문에 만듦새를 돌아볼 새가 없어지고 그 무엇보다도 ‘감독의 리듬과 나의 리듬이 잘 맞는가’가 가장 중요해지고 마는 아쉬움. 굳이 꼽자면 내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나 빅토르 에리셰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그런 작품이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사적인 영화, 우회하지도 않고 그 어떤 서사적 덧붙임도 없이 본연의 ‘일 이야기‘로 직행하는 난니 모레티의 <찬란한 내일로>는 왜 아무런 거부감 없이 만점짜리 영화로 마음에 안착할 수 있었을까. 왜 이 화려하고 친밀한 출연진과 훌륭한 이탈리안 코미디로서의 연출과 노련한 ‘리듬감’을 보고도 이 영화가 편안하고 충만한, ‘자신과 너무 먼 나를 받아들이는’ 영화라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영화적 야심의 충족 대신 환대와 허용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장들(보다도 그들의 맹목적 추종자들)이 숱하게 저지르는 실수와 달리 난니 모레티는 ‘영화를 마음대로 해석해주는’ 관객에 대한 불만을 전연 느끼지 않고 오히려 모두의 즐거움을 보장하는 따스한 경청의 태도를 취한다. 영화도 그렇거니와 영화 바깥의 태도 역시 그러하다. 한국 관객들과의 씨네토크에서 그는 특정 장면의 ‘의도’가 헤집어질 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연출했다고 말하고,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물을 때 “영화는 크로스워드 퍼즐이 아니기 때문에 정답은 없고, 여러분도 몇 년 후 다시 보면 감상이 또 달라질 것”이라며 웃는다. 영화 속 조반니가 그의 영화를 맡게 된 낯선 한국 제작자들의 “사랑과 정치, 예술과 공산주의의 죽음”이라는 어마어마한 해석에 그저 “네, 맞아요”라고 수긍한 것처럼 그는 타인의 의견에 (그것이 폭력과 비윤리를 미화하지 않는 한) 절대적으로 열려있(게 된)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는 저 먼 한국에서 와서 소주로 건배를 권하는 제작자를 생경하게 생각지 않은 조반니처럼 ‘나를 따돌리지 않는’ 영화다.
극중 조반니가 처음부터 모든 종류의 충돌에 관대한 인물이었냐 하면 물론 아니다. 난니는 페르소나인 조반니를 상당히 짜증스럽고 고압적이기도 한 연출자로 그려내는데, 편집증에 가까운 그의 강박은 애꿎은 젊은 스탭들을 괴롭게 하고 ’우리(부부) 얘기만 빼고 다‘ 하는 그의 일방적 수다는 상대적으로 온화한 부인 파올라가 이혼을 결심케 만든다. 조반니는 혼자만의 의식에 집착하고 “단어 하나만 달라져도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 영화라면서 제작진과 배우들을 몰아세운다. “20테이크 정도만 더 찍자”는 조반니의 예사로운 말에 스탭들이 몰래 한숨을 쉬고, 스포트라이트나 즉흥 연기를 바라는 배우들은 “그 친구 클로즈업 안 해요”라든가 “카사베츠는 카사베츠고 이건 내 영화”라는 조반니의 단언에 허물어진다.
이런 조반니가 5년만에 찍고 있는 영화의 정체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을 배경으로,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따른 이탈리아의 평범한 공산주의자들의 혼란을 담은 작품이다. 마을에 방문한 헝가리 서커스 단원들과의 심정적 연대, 정치적 노선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압박에 처한 지부 사람들은 고뇌하며 갈등한다. 조반니와 함께 전동 킥보드를 타던 프랑스 제작자 피에르는 고전적인 영화를 두고 이렇게 상찬한다:
서커스는 현대 영화의 은유잖아요. 줄 하나에 매달릴 뿐 앞일을 전혀 모르니까요.
감독님 영화는 체제 전복적이에요.
조반니는 손사래 치면서도 내심 뿌듯한 표정을 짓지만, 그로부터 며칠 후 집 나간 부인의 행방을 찾다 외동딸에게 동음이의의 잔인한 선고를 듣기도 한다:
아빠랑 있으면 늘 외줄 타는 기분이긴 해요.
40년간 13편의 영화를 공동 제작한 동업자이자 부인 파올라가 새 영화를 제작하는 현장에서 유망한 신진 감독 주세페를 밤새도록 가르치는 조반니를 보고 있노라면 이 ’외줄 타는 기분‘을 곧장 추체험할 수 있다. 스콜세지에게 무턱대고 전화를 걸고 온갖 인맥을 동원해 그 영화의 폭력성이 왜 정당하지 않은지 연출적으로 어떻게 부족한지를 설파하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완고한 침입자.
자기 영화 현장에서도 조반니는 마찬가지로 자기 ’원칙‘에 따라 소품, 의상, 촬영 감독과 캐스팅 디렉터들을 차례로 당황시킨다. 1950년대 물 상표부터 낡은 옷깃 표현까지 하나하나 간섭하는 그의 원칙이란 ’실제가 어떠했는지‘에 사활을 거는 척하면서도 결국 실제가 아닌 자신만의 고집에 복무하기에 허구적이다. “스탈린 포스터를 실제로 걸었더라도 내 영화에선 아냐”라든가, ”당시 실제 기사예요“라는 미술감독의 항변에 ”그건 상관없어요“라며 기사 캡션을 줄여 (자기 마음에 들게) 다시 제작해오라는 지시에서 이 원칙의 자의성과 이중성이 낱낱이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는 미학도 있지만 윤리도 중요”하다는 조반니-난니 모레티의 철학은, 넷플릭스-액션-(자칭)네오리얼리즘으로 요약되는 차세대 감독 주세페와 충돌하는 바로 그 장면에서 명료해진다. 키에슬로프스키를 거론하며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폭력 외의 다른 묘사는 전부 폭력에 대한 미화고 옹호라는 조반니의 지론은 넷플릭스식 액션에 익숙해지고 폭력에 매료된 현대 사회 관객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물론 젊은 영화 연출가는 ‘최면에 걸렸다 깨어나서 우는 날’이 올 거라는 경고를 거부하고, 밤새워 강의하며 제작진 수십 명을 대기시킨 조반니는 파올라에 의해 현장에서 쫓겨난다.
“사악함밖에 없는 영화잖아. 당신까지 그러면 안 되지. 안 그러더니 변했다”는 말로 파올라의 분노를 산 것만큼 심각한 문제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노감독의 뒤로 그 매혹적인 폭력의 묘사가 배우들에 의해 간단히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조반니는 그를 무시하고 흘러가는 - 점점 더 빠르게,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 세상의 속도로부터 완전히 유리되고 있다.
몇십 년간의 영화/결혼 생활 동안 상대를 돌아보지 않는 그의 완고함은 주변에 생채기를 내어왔다. “새 영화를 들어가서 상담을 줄일” 정도의 책임감으로 임하고 있고, “촬영장을 못 떠나겠어요”라며 기실 조반니를 떠나지 못했던 이유까지 자신도 모르게 설명한 파올라의 영화에 대한 (조반니 못지않은) 열정을 조반니만 우습게 알고 있다. 제작자 피에르가 사기 혐의로 붙잡혀 가면서 투자받기 어려워졌고, 못내 경멸하던 넷플릭스 투자를 꿈꿔봤지만 ‘왓더퍽’하는 모먼트가 없단 이유로 수정 요청을 받으면서 촬영은 점점 더 난항이 되어간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데려온 코끼리들은 싸움이 나고, 스페인 곰은 탈주해 숲으로 숨어들어가는 난장판이 프로덕션을 어지럽힌다. 오래 협업한 주연 배우 엔니오가 우물쭈물 의견을 밝히지 못하는 사이, 또다른 주연 배우 베라는 조반니가 싫어하는 뮬을 신고 “제게 연기란 재즈처럼 배우가 대본을 변주하는 일”이라거나 “누가 요즘 정치물 봐요? 이건 사랑 얘기예요. 모르시겠지만 그래요”라고 주장하며 대들지만 조반니에겐 그를 다른 ‘고분고분한’ 배우로 교체할 권위도 잃었고 사실 명분도 없다.
조반니는 자신만의 룰로 세상을 주물러왔지만 더이상 세상은 그의 틀에 만만히 잡혀줄 정도로 ‘고분고분하지 않다’.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은 폴란드 대사 예르치와 사랑에 빠진 딸처럼, 영화 속 의도되지 않았던 로맨스 서사를 쟁취하더니 현실에서도 결국 커플이 된 배우 베라와 엔니오처럼, 조반니와 같이 과거에 매이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생히 역동하고 반응하며 조반니는 외로이 그 생기를 억누르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이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타협하든가 잊혀지든가 둘 중 하나뿐이다.
만일 조반니가 묵묵함이라고 일컬어지던 불통, 장인정신이라고 오해되던 고집을 계속 발휘한다면 그의 영화도 삶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엔니오와 조반니의 다이얼로그가 암시하듯이.
“(주인공의 자살이) 영웅적이지 않나요?”
“과한 면이 없지 않죠. … 사실 영화 마지막 장면부터 떠올라서 나머지 대본을 썼어요.”
“언젠가는 하실 줄 알았어요. 주인공의 자살로 끝나는 작품을요. 감독님다워요.”
‘감독님답다’는 말에 멍해진 조반니는 “당신이 묻어있는 인물이 자살하는 결말인게 왠지 불길해”라던 파올라의 염려가 어떤 예지였는지 갑자기 깨닫는다. 혼자 사는 삶은 삶이라 부를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도 그를 찾아든다. 그래서 그는 세트장을 횡단이동해 옆방으로 건너가 (즉 그가 ‘원칙’에 충실하느라 앞만 보고 달렸을 때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옆’으로 나아간다) 침묵 속에 잠긴다.
결국 한국 제작자들까지 모두 모인 폴란드 대사관의 다국적 식탁에서 “결말을 완전히 바꿔야겠어요”라고 조반니가 운을 떼는 순간 모두의 대사들이 생생히 터져나온다. 연출적 감동을 자아내는 이 극적인 소란 속 조반니는 독백한다. “삶에는 ‘만약에’가 없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만약에’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가 바란 ‘만약에’란 소련의 압제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헝가리와 연대하며 폭력에 순응하는 대신 용기 내어 윤리를 선택한 1956년의 이탈리아이며(‘이탈리아 공산당은 이후 소비에트 연방과 결별하고 맑스, 엥겔스의 정신을 독자적으로 실현했다.’), 타인의 영향력이 자신을 침범하도록 놔두지 않고 자연스럽게 웃고 춤추고 노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이다(‘우리는 지금도 행복하다’).
찬란한 내일로 난니 모레티 감독 GV
with 씨네큐브 X 에무시네마 (에무필름) X 송경원 평론가
Q. 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가 작년 칸에 둘 있었다. 감독님의 <찬란한 내일로>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Fallen Leaves. 56년 헝가리 혁명이 배경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A. 두 가지 이유인데 첫째로는 근현대 이탈리아에서 공산주의가 갖던 의미를 다루고 싶었다. 또 그때 이탈리아인들이 소련의 영향에서 해방될 기회를 놓친 때이기 때문이다.
Q. 중간부터 극 중 극과 별개로 젊은 연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싸움이나 대사들은 마치 단막극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연출한 이유는?
A. 원래 겹겹의 구조를 좋아하는 편이다.
Q. 최근의 이탈리아 영화 제작 환경은 어떤 편인가? 극중 촬영과 실제 촬영 현장은 얼마나 다른가?
A. 다른 감독의 촬영을 멈추는 취미는 없고(ㅎㅎ) 춤도 안 춘다ㅎㅎㅎㅎ 예전의 나는 실제로 즉흥 연기를 반대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많이 누그러졌다. 조반니의 나머지 면과 나는 상당히 비슷하다.
Q. 감독님이 제일 애정하는 씬은 무엇인지? (송평은 이탈리아에 공산당이 있었냐고 배우가 맹하게 묻는 대본 리딩 장면부터 ‘아 내가 좋아할 영화다, 너무 재미있는 코미디겠구나’ 하고 확 끌렸다고)
A. 글쎄… 영화는 크로스워드 퍼즐이 아니기 때문에 정답이나 해답이 없다. 여러분들도 2년 후 다시 보면 또 감상이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아 노래가 나오는 모든 씬, 그리고 그 젊은 커플이 나오는 장면을 좋아한다. 예전부터 50년간 함께 하는 커플을 (다큐멘터리처럼) 50년간 찍는 작업으로서 다루려고 시도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 그 숙원을 풀게 되었다. 또 커플 중 여자 쪽의 대사는 나의 개인적인 노트에서 가져와서 대본에 없는 대사다. 내 일기, 노트의 글들을 대사로 넣기 위해 연출한 것이기도 하다. 즉흥적인 결정이기도 했기 때문에 여배우는 당연히 대사를 다 외우지 못했고, 내가 카메라 옆에서 직접 말해준 장면도 있다.
Q. 극중 조반니의 촬영 현장을 구하는 한국인 제작자들이 나온다. 통역 격인 유선희 배우를 작년 칸에서 운좋게 만나뵀는데, 감독님에 대해 “20번 넘는 테이크를 찍는 완벽주의자”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수십 번 리허설한 대사를 현장에서 바꾸는 분”이라고 표현했다.
A. 감독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기, 음악, 변칙 등 상세한 요소들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71세가 된 대감독인 저라도 (현장에 따라 즉흥성을 발휘하는) 이 정도의 반항심은 있어야 한다는 거다. 동시에 그런 (일관된) 연출을 위해, 배우들이 좀 지름길로 가고 싶어할 때가 있으면 내가 단호하게 멈추기도 했다.
Q. 아까 언급한 주세페의 영화에 끼어들던 장면. 거기서 “영화의 윤리”라는 게 언급되는데, 오늘날의 영화의 윤리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A. 반복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오늘날의 영화 제작진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폭력을 우대하고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Q. 이 영화가 그런 현상에 대한 해독제라든가 반작용이 될 것을 의도했는지?
A. 그런 것을 특별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관객을 만족시키려는 목적에 충실했기 때문에 나 역시 만족스럽다.
Q. 프랑스와 한국 제작자, 폴란드 대사 등 각국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유는?
A. 먼저 프랑스 출신의 제작자들과는 친분이 두텁다. 내게 프랑스는 거의 제2의 고향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다. 폴란드 대사 예르치는 오로지 그 배우를 위한 역으로 만들어넣었다(배우분 본명도 예르치). 오래된 친구이자 동료였고, 그를 위한 역할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제작자들에 대해서라면, 이탈리아 사람이 재깍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에서 온 사람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른 사람들이 영화를 살리고 영화를 마음대로/좋게 상상하고 해석해주는 부분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영화 산업이 얼마나 활발하고 독특한지는 잘 알고 있어 원래도 관심이 컸다.
(송평: 그 ‘마음대로 해석해준다’는 부분과 관련해서, 이 영화가 그런 접근을 너그러이 허용해주는 영화라고 느껴져서 아주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런 지점이 가장 좋았다)
Q. 마지막 장면의 행진이랄까 축제 같은 장면에서 처음에는 작게 사람들을 잡다가 점점 행렬 규모가 커지고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던 배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알바 로르와케르 등 감독님의 다른 작품에 나오는 배우들이었는데, 이런 연출의 이유는 무엇인지.
A. 주조연 배우들과 1회차 촬영을 했는데, 갑자기 공산당 리더로 엔딩에 잠깐 나온 엑스트라 배우라든가, 작가들, 조감독들, 그리고 한국 제작진들까지 이 영화와 연관된 모든 인물들이 포함되면 좋을 것 같아서 2회차 촬영을 했다. 그런데 편집을 끝낼 때쯤 10~30년 전의 내 영화에 등장한 배우들까지도 다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해서 다시 3회차 촬영으로 마무리했다.
(송평: 정말 대단원의 대행진이라 할 만하다…)
Q. (플로어 질문) 차 속에서 노래를 틀고, 다같이 따라 부르는 씬이나, 조반니가 혼자 축구공을 위로 뻥뻥 차올리는 씬 등 전 영화들의 오마주로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의도된 것인지?
A. 사실 그런 장면들은 하나도 의도되지 않았다. 45년 간의 커리어를 이어오다 보니 우연히 겹쳤을 것이다ㅎㅎ 촬영 들어가기 전 다같이 노래하는 장면은…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무 뜻도 없다.
Q. (플로어 질문)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나, <롤라>, <라 돌체 비타> 등등… 서커스라는 모티브도 그렇고 이탈리아 영화들에 대한 존경의 오마주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난니 모레티 감독에게 페데리코 펠리니란?
A. 씨네마 그 자체. 덧붙여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내 초기작에서 언급된 영화들은 사실 비판적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인용한 영화들이었는데 이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때 언급한 영화들을 비판받을 수 있는 자리에 놨다면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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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어떤 상황에도 그 사랑을 결코 놓치지 말 것
인생 역전의 꿈
이 영화의 주인공은 스트립 댄서 애니/아노라(미키 매디슨)다. 영화의 첫 장면은 애니가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다. 열심히 사는 애니. 감정을 억누르고 손님으로 온 남자들을 응대한다. 현금이 없으면 "ATM기로 가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 어떤 상황에도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대한다. 4대 보험 보장 안 되는 직장이더라도 성실하게 사는 애니. 그러던 어느 날 특별한 손님이 나타났다. 딱 봐도 돈 많게 생긴 반야(마르크 예이델시타인). 반야는 애니에게 반했다. 반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애니. 그 짧은 순간에 서로 사랑에 빠졌다. 결코 그 사랑을 놓쳐선 안 된다. 반야를 놓치기 싫은 애니. 불안함이 가득할 때 장애물이 등장한다. 반야의 부모님들에게 이 소식이 들어갔다. 아니 결혼을 해도 그런 애랑 결혼한단 말이야? 바로 부모의 부하인 토르소(카렌 카리굴런)에게 연락한다. "얘네 결혼한 거 없던 일로 만들어!" 토르소는 이고르(유리 보르소프)와 가닉(바체 토브마샨)과 함께 반야의 집으로 쳐들어간다. 그 어떤 상황에도 이 사랑을 놓쳐선 안 된다. 애니는 인생의 아노라를 만날 수 있을까?
션 베이커
올해 칸 영화제 수상자가 발표됐을 때 글쓴이는 적지 않게 놀랐다. 션 베이커? 션 베이커가 경쟁 부분에 올랐다는 것도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황금종려상까지? 그의 영화 세계 자체가 사회의 주류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데다 미국사회의 허점을 찌르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바로 전작인 <레드 로켓>에서 백인 남성이라는 전형적인 캐릭터가 ‘난 애국자야!’라고 주장하는 장면은 간단한 비유를 의미하고 있다. 이 인물을 중심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표현하겠다는 야심을 보여준다. 이 야심을 바탕으로 미국 국기가 포장지로 등장하는 장면이나 할리우드라는 장소가 가진 상징성까지 남자 주인공의 전락은 미국사회와 겹쳐진다. 전전작인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무니와 아이들은 세 명이서 몰려다니며 온갖 사고를 다 치고 다닌다. 또 무니의 어머니는 입에 욕을 달고 산다. 이렇게 애정을 가지려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영화 전면에 등장한다. 이 인물들은 단순히 저렴하게 웃기는 캐릭터들이 아닌데, 이렇게 소외계층으로 밀린 사람들이 받아야 할 인간적인 대우(복지)는 어디까지 이뤄져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 션 베이커가 보여준 인물 연출법이 있다. 바로 적당한 거리 두기다. 제삼자 캐릭터 바비를 등장시켜서 이 영화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다. 현실적이지만 이 인물들을 둘러싼 현실이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션 베이커는 이런 식으로 얄밉게 영화를 만드는 인물이기도 했다.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으면서 미국사회에 대한 냉정함을 공박하는데 머무름이 없다. 또 그러면서 영화라는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 마음의 언저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션 베이커는 미국이 얄미워할 만한 필모그래피를 <아노라>에서도 그대로 이었다. <아노라>는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애니가 주인공이다. 애니는 욕을 입에 달고 다닌다. 처음 반야를 만났을 때는 뭔가 부끄럽고 쑥스러워하는 기색을 풍긴다. 이 인물이 중반부 찍고 내지르는 대사를 생각해 보면 인물의 입체성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핼리가 무니를 대하는 다층적인 모습이 이 <아노라>에게 애니에게 그대로 옮겨왔다고 볼 수 있다. 또 영화에서 인물의 가장 기본적인 배경이라고 볼 수 있는 성노동자라는 설정이 단순히 자극적인 방식으로 소비되기 위해 사용된 건 아니다. <레드 로켓>에서 미국사회가 그동안 축적해 온 허영심을 드러내기 위해 포르노 배우를 직업으로 삼았다. 또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는 주인공 모녀의 인간관계성을 드러내는 데 있어 성노동자라는 직업적인 특성이 중요했다. <아노라> 역시 마찬가지로 성노동자라는 직업적인 성격이 영화 후반부에 강하게 감정적인 울림을 전달하기 위해 들어갔다. 다만 미국사회의 낡은 부분을 공격하는 건 줄였다. 인물에게 좀 더 집중해 감정적인 여운을 강화시켰다. 다만 이 특징이 션 베이커 필모그래피의 높고 낮음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강력한 무기에 션 베이커가 더 집중했다는 의미다. 이런 선택과 집중 덕에 션 베이커가 대중적으로도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고도 남는다는 입증이다. <추락의 해부>에서 쥐스틴 트리에가 법정물의 탈을 쓰고 감정적으로 질척거리는 걸 보여주듯 <아노라>에서 션 베이커는 감정적으로 깊은 구멍에 관객을 초대시킨다.
도파민 폭탄
이 영화를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그중 하나는 ‘도파민’이다. 영화 전면에 직접적으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므로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주인공 애니의 직업이 뭐지? 바로 성노동자다. <아노라>의 첫 장면은 애니가 직업인으로서 일을 하는 모습이다. 또 영화 초중반부 애니와 반야를 묘사할 때 등장하는 수많은 성관계 장면이 주인공의 스트립 댄스와 같은 선상에 놓이기도 한다. 이 스트립 댄스를 보여주는 방식도 보면 적당한 거리를 주는 척하면서 별 이상한 제스처를 다 보여준다. 왜 이럴까? 이 영화가 상정하고 있는 성 노동의 의미가 그렇다. 사실 초반부에 영화에서 온갖 자극적인 게 다 나와서 그렇지 주인공 애니에게 그 모든 장면은 그냥 일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일’에 대한 부분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 토로소의 첫 등장 장면이다. 이고르의 첫 장면도 엄밀히 따지면 이고르가 돈 받은 값을 하는 것 그 자체다. 이 모든 과정을 일로 묶는다면 이 <아노라>에서 베드신은 그냥 일의 한 단면이다.
이렇게 시작한 영화 안의 성관계가 후반부에 이르러 어떤 결론으로 향하는지도 아주 흥미롭다. 영화에서 관계를 하고 나서 반야와 애니가 나누는 대화를 보면 이질적이다. 이 두 인물의 차이점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 차이점은 중반부 기점 찍고 사실상의 진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과의 대화와도 두드러진다. 어떤 인물은 누군가와 육체적인, 성적인 호기심으로만 가득 찬 관계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어떤 인물과는 반대다. 이 두드러진 차이가 영화에서 성노동자가 등장하는 게 필연적인 토대가 된다. 어떻게 보면 성노동자에 대한 세상의 혐오가 이 서사의 완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실제로 션 베이커가 그런 부분도 어느 정도 넣은 거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행동들. 모든 자극적인 장면들이 이 영화의 마무리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는 이 영화가 도파민을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전용기를 타면서 온갖 목청을 다 내지만 영화 안에 방점이 찍힌 장면이 어디고. 돈으로 바른 의상들이 나오지만 정작 이 영화에서 온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어떻고. 션 베이커가 인간의 욕망을 관객에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찔렀다는 점에서 일종의 경지에 다다랐다고도 볼 수 있는 점이다.
유명한 영화덕후임
이 영화를 만든 션 베이커는 유명한 영화덕후다. 지금 당장 ‘Sean Baker top’이라고 구글에 검색하면 리스트 10편이 나온다. 그중 글쓴이 눈에 들어오는 영화는 <밀양>이다. 그리고 레터박스에선가 뽑은 ‘최애 영화 탑 4’를 뽑았을 때 <오아시스>가 있었다. 이 사람이 영화 덕후라는 예시는 수많은 인터뷰로 보여줄 수 있지만 글쓴이는 이 두 영화를 근거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이 여러 영화제에서 상도 많이 타서 유명한 인물이긴 하지만 최애 중 하나로 <오아시스>를 뽑는 경우는 유니크하잖아? 심지어 이 션 베이커는 이창동 감독 때문에 한국에 온 적이 있을 정도다. 이 영화 구력(?)을 그대로 구현한 것 같은 플롯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 곳곳에서 <밀양>과 <오아시스>의 향기가 난다. 어떤 장면에서는 오마주가 들어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밀양>과 이 <아노라>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할 수는 없겠지? 한국영화의 팬이라면 이 영화의 엔딩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익숙하면서도 다른 방식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글쓴이가 <아노라>를 보면서 느꼈던 건 마틴 스코세이지의 향기다. 어떤 인물이 있다. 인물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그 일대기에서 두 가지를 비춘다. 감정적인 여운과 미국사회의 단면이다. 가령 <아이리시맨> 같은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남자 주인공이 전문 킬러로 전직하면서 온갖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 <아노라>의 애니가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자기가 상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영화에서 뒤틀리는지는 스코세이지의 방식이 비슷한 감이 있다. 하지만 마냥 따라 하기만 했다? 그렇지만은 않다. 엔딩에서 확실하게 휘감으며 아노라의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뭘 보여줄 것인가
이 영화에 대한 글쓴이의 총평. 션 베이커의 차기작에서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까?라는 호기심이다. 초반부와 후반부에서 읽는 로맨스 코미디물로도 흥미롭지만 중반부에서 보여주는 감정적인 질척임이 흥미로웠고, 그 중반부를 위해 초반, 후반부를 장르적으로 엮는 만듦새가 놀라웠다. 이 영화가 구사하고 있는 기술적인 부분이 이야기의 주제와 이어진다는 점에서 훌륭한 세공능력을 보여준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쓴이가 글이 아니라 말로 누군가와 대화할 때 나누고 싶은 건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의 의미다. 예쁘고 잘생기면 좋지. 돈 많으면 좋지. 하지만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요소에 그런 물질적이고 외적인 것만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건 무엇일까. 다른 관점에서, 과연 이런 수많은 좌절에서, 또 한 사회의 밑바닥으로 내몰린 인물에게 내밀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유리 보리소프가 연기하는 묵묵한 울림이 영화의 깊이를 더한다. 황금종려상의 이유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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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매체 선정, 집콕족을 위한 집에서 보기 좋은 영화 10편
해외매체 더 랩(The Wrap) 선정, 집콕족을 위한 집에서 보기 좋은 영화 10편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실천하면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정말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바깥 외출이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고 있는데요. 당연히 극장을 방문한지도 오래되었고, 다른 여타 문화생활도 즐긴지도 정말 오래됐습니다. 그 공허함을 주로 넷플릭스로 달래다 보니 넷플릭스에서도 볼 것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고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번에 미국 영화 전문 매체 더 랩에서 10편의 영화를 선정해봤다고 하는데요.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고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그런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은 이번 리스트에 뽑은 것 같습니다. 그럼 해외매체 더 랩에서 선정한 집콕족을 위한 집에서 보기 좋은 영화들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료 및 이미지 출처: 더 랩, IMDB
나 홀로 집에(Home Alone, 1990)
감독: 크리스 콜롬버스
출연: 맥컬리 컬킨, 조 페시, 다니엘 스턴
한국 개봉일: 1991년 7월 6일
선정 이유: 이 존 휴즈(나 홀로 집에의 제작자)의 고전은 크리스마스 휴가를 가는 도중 가족들이 그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집에 홀로 남겨진 '케빈'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맥컬리 컬킨은 케빈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나 홀로 집에>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전 세계적으로 4억 7천7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나 홀로 집에> 중에서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2000)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출연: 톰 행크스, 닉 서시, 헬렌 헌트 < 나홀로 집에> 중에서
한국 개봉일: 2001년 2월 3일
선정 이유: 톰 행크스는 격렬한 폭풍으로 인한 비행기 추락 사고로 태평양의 한 외딴섬에 고립된 페덱스사의 간부 '척 놀랜드'를 연기한다. 그는 윌슨이라는 이름의 배구공만 있는 섬에서 4년을 혼자 보낸다. <캐스트 어웨이>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며, 전 세계적으로 4억 2천9백만 딜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캐스트 어웨이>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2007)
감독: 프란시스 로렌스
출연: 윌 스미스, 앨리스 브라가, 찰리 타핸
한국 개봉일: 2007년 12월 12일
선정 이유: 1954년 리처드 매드슨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윌 스미스의 스릴러는 바이러스가 인류의 대부분을 죽이고 나머지를 괴물로 몇 년 후를 배경으로 한다. 뉴욕의 유일한 생종자인 '로버트 네빌'은 용감하게 치료법을 찾아 나선다. <나는 전설이다>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5억 8천5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나는 전설이다> 중에서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 2007)
감독: 숀 펜
출연: 에밀 허쉬 ,크리스틴 스튜어트, 빈스 본, 윌리엄 허트
한국 개봉일: 국내 미개봉
선정 이유: 숀 펜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갓 대학은 졸업해 히치하이킹을 하고 알래스카 황야에서 살기 위해 그의 모든 재산을 포기하는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인 투 더 와일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5천6백7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다.
<인 투더 와일드> 중에서
디스터비아(Disturbia, 2007)
감독: D.J. 카루소
출연: 샤이아 라보프, 사라 로머, 데이빗 모스
한국 개봉일: 2007년 8월 30일
선정 이유: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교사를 폭행한 죄로 90일간의 가택 연금 처분을 받은 고등학생 '케일 브레히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케일은 지루함을 떨치기 위해 망원경으로 이웃들을 관찰하고 엿보기 시작하는데, 그러던 중 그들 중 한 명이 연쇄살인범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디스터비아>는 전 세계적으로 1억 1천8백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다.
<디스터비아> 중에서
더 문(Moon, 2009)
감독: 던칸 존스
출연: 샘 록웰, 케빈 스페이시, 도미니크 맥엘리곳, 카야 스코델라리오
한국 개봉일: 2009년 11월 26일
선정 이유: 만약 여러분이 혼잣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샘 록웰의 <더 문>을 찾아보자. 우주에 혼자 표류하게 된 비행사에 관한 수많은 영화 중 하나인데, 이 영화는 우주에서 3년간 홀로 근무를 하던 '샘 벨'이 여정이 끝나갈 때쯤 개인적인 위기를 맞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더 문>은 98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다.
<더 문> 중에서
127 시간(127 Hours, 2010)
감독: 대니 보일
출연: 제임스 프랭코, 케이트 마라
한국 개봉일: 2011년 2월 17일
선정 이유: 제임스 프랭코가 출연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 미국 유타주 블루 존 캐니언을 홀로 등반에 나선 '아론'은 떨어진 암벽에 팔이 짓눌려 고립된다. 그는 로프와 칼, 그리고 물 한 병으로 살아남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며 127시간을 버텨낸다. <127 시간>은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한 6개의 오스카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며, 전 세계적으로 6억 7천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다.
<127시간> 중에서
그래비티(Gravity, 2013)
감독: 알폰소 쿠아론
출연: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한국 개봉일: 2013년 10월 17일
선정 이유: 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작품은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탐사하던 '라이언 스톤' 박사가 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와 부딪혀 우주 한가운데에 홀로 남겨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그린 작품이다. <그래비티>는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7개의 오스카를 수상했고, 전 세계적으로 7억 2천3백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다.
<그래비티> 중에서
와일드(Wild, 2014)
감독: 장 마크 발레
출연: 리즈 위더스푼, 로라 던
한국 개봉일: 2015년 1월 22일
선정 이유: 셰릴 스트레이드의 회고록 "Wild: From Lost to Found on the Pacific Crest Trail"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리즈 위더스푼은 개인적인 비극으로부터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100마일의 단독 하이킹을 완수하기로 결심하는 주인공 '셰릴'을 연기한다. <와일드>는 여우주연상을 포함한 두 개의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며, 5천2백5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기록했다.
<와일드> 중에서
마션(The Martian, 2015)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맷 데이먼, 제시카 차스테인, 세바스찬 스탠, 케이트 마라, 제프 다니엘스
한국 개봉일: 2015년 10월 8일
선정 이유: 화성에서 홀로 고립된 후 나머지 승무원들은 전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는 지구가 아닌 곳에서 1년 동안 홀로 생존하기 위해 식물학자로서의 그의 지혜와 지식을 총동원한다. <마션>은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한 7개의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며, 전 세계적으로 6억 3천2백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마션> 중에서
* 본 콘텐츠는 리쓰남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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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램덩크' 원작 잘 모르는데 이 영화 봐도 될까요
봄날은 바로 지금
영화의 카메라는 북산고와 산왕고의 토너먼트로 향한다. 땀냄새나는 코트. 10명의 선수들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전력적 열세인 북산고. 그렇지만 이번 경기에서 모든 걸 다 걸어야만 한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다섯 명의 학생들이 오랫동안 바라왔던 전국제패가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전력 차를 극복하는 것 같다. 경기 초반, 비등하지만 앞서 나가고 있는 북산고. 의외로 별로 차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이대로만 가면 되겠는데? 이렇게 가만히 있을 산왕고가 아니다. 산왕고의 벤치가 뭔가 심상치 않다. 전략을 바꾸는 산왕고. 전략을 새롭게 도입하며 경기의 흐름을 바꾸려고 한다. 고전하는 북산고. 특히 강백호와 송태섭은 뭔가 문제가 있는 듯하다. 특히 태섭의 얼굴 표정에는 비장함이 서려있다.
무언가 놓고 온 게 있었나. 다른 선수는 안 그랬나 싶지만 유독 태섭이 승리를 원했던 이유는 색다르다. 태섭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다. 가장이 없어진 집안. 남은 것이라곤 형 송준섭과 동생 송태섭, 그리고 여동생과 어머니다. 농구선수였던 형 준섭. 준섭이는 농구를 놓을 수 없다. 농구선수로서의 출세를 꿈꾸던 준섭.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어선을 탔다. 태섭은 눈물을 흘린다. "나랑 같이 농구 한 판 하기로 했잖아!" 배를 타기 전에 형의 손을 잡을 수 있었지만 화가 난 마음에 거절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준섭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혼자 남은 태섭. 형이 남기고 간 농구공을 잡아, 새로운 무언가를 향한 도전을 꿈꾸려고 한다. 이제 태섭이가 코트에 우뚝 설 일만 남았다. 영화는 태섭의 이야기와 산왕전을 엇갈리게 제시하며 그가 왜 절실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원작 보고 가야 되나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보고 가는 것이 좋다. 시간이 없다면 인물이 누구인지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좋다'다. 글쓴이는 영화 중반부까지는 잘 집중이 됐다. 그러나 중후반부 즈음에 살짝 졸아서 밖에 나갔다 왔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이야기가 흥미롭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산왕전의 결과가 궁금했다. 송태섭을 처음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 서사와 산왕전이 엇갈리는 영화의 형식이 가끔 흐름을 깬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송태섭 서사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봤던 것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소담한 감성이 중심이긴 하다. 이런 연출 방식을 좋아하는 분들은 송태섭 서사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걸 잔잔하게 받아들인다면, '특정 인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의 템포를 확 바꾸지는 못한다. 이는 영화에서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중후반부 이야기 전개를 통해 '왜 이렇게 영화를 보여줬는지' 다 설명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불친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글쓴이는 사실 원작을 보고 가는 게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강백호, 서태웅, 정대만, 채치수, 송태섭, 안 선생님이 누구인지, 산왕고는 극 중 어떤 위치인지 정도는 무조건 알고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솔직히 글쓴이는 90년대생 중에 슬램덩크 짤 단 한 번도 안 본 사람 1만 명도 안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살짝의 배경지식은 다들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해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원작을 봤던 분들이라면 흥미롭게 받아들일 부분이 많다. 만화에서, 영화 주인공인 송태섭은 존재감이 부족하다고 한다. 이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인물의 특성은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원작을 많이 봤던 팬들이라면 송태섭이 다른 북산고 멤버들과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를 테니 이에 대해 보여주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강백호와 서태웅이라는 슬램덩크 시그니쳐들과는 다른 이미지에서 극을 시작한다는 점이 아는 이야기를 좀 더 다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또 원작 이야기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영화가 살짝 뻔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팬들 입장에서야 송태섭 서사가 신선하지 모르는 관객들 입장에선 그냥 다 똑같은 농구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이 송태섭 이야기로 만든 가족드라마와 스포츠 영화는 기존에도 있었다. 글쓴이는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아도 <스텐바이, 웬디>와 <족구왕>이 생각난다. 이뿐인가? 이 두 작품 외에도 이와 유사한 영화들은 수도 없이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비슷한 서사가 많다고 해서 이야기 흐름을 바꾸기엔 위험부담이 있다. 자기가 만든 만화를 뒤엎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극전개에 있어 좀 다른 방식으로 아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주인공을 바꾸는 게 제격이다. 같은 일을 받아들이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인간의 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질감과 운동
영화 전반적으로 '참 따뜻하다' 싶었던 것은 극의 색감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무조건적으로 화사하진 않지만 따뜻한 색감을 잘 활용했다. 가령 이 영화의 가장 첫 번째 시퀀스는 태섭이 형 준섭과 이별하는 장면이다. 처음부터 감정적으로 센 장면을 배치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를 보다 보면 '왜 태섭의 이야기를 영화에서 엇갈리게 제시했을까' 의문이 든다. 초반에 이 인물이 이것에 대해서 그렇게 깊은 의미부여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바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뭔가 따로 노는듯한 송태섭의 서사를 고립되어 있는 공간감과 살짝 탁한 색감으로 소화한다. 러닝타임동안 태섭에게 이 상실의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데, 이를 연출로 잘 보여준 셈이다. 혼자 있어 외롭고, 어두운 세상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관점을 영화언어로 보여준 것이다. 이는 극후반부 엔딩과 대비된다. 글쓴이는 엔딩 신과 초반부의 장면 색감이 좀 차이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첫 장면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입장 변화를 색감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이 송태섭 서사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산왕전이다. 살짝 잔잔한 톤으로 전개되는 송태섭 서사와는 반대로 산왕전은 인물들의 농구경기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 중요성과는 반대로 산왕전의 초반부를 볼 때 뭔가 어색하다고 느껴졌다. 약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보는 느낌? 그런데 초중반부를 넘어가면 극 이해에 큰 문제가 없다. 이 영화는 인물들의 운동능력에 대한 큰 동선을 잘 잡았다. 스포츠에 정답은 없다. 공 갖고 하는 운동이면 닥터 스트레인지가 와도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간다. 당연히 농구에서도 리바운드나 덩크슛 같은 상황이 매번 다르게 나타난다. 이를 잘 이해하듯 영화 내적인 이야기에서 인물들의 상황에 맞게 움직임을 잘 짰다. 이 덕에 농구경기라는 영화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생동감이 생긴 것이다. 그중 제일 좋았던 운동 묘사는 산왕고의 전략 변경이다. 산왕고가 경기를 다르게 운영함으로써 북산고 멤버들이 어떻게 느낄지를 잘 표현해서 영화의 생동감을 살렸다.
영화여야만 해
글쓴이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또래들이 좋아하는 <원피스>나 <나루토>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다. 당연히 이 <슬램덩크> 시리즈 역시 보지 않았다. '불꽃남자 정대만' '강백호'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하나도 성장하지 않았어'같은 유행어들은 알았지만 그게 슬램덩크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다. 이 영화에 대한 평이 하도 좋아서 표 예매하기 20분 전에 부랴부랴 인물들에 대해 읽어본 게 전부다. 영화 보기 전에 생각했던 것이 '이거 좀 전형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건 아닌가' 싶었다. 금세 티켓값 10000원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냥 원래 계획대로 안 보는 게 나았나?
글쓴이는 영화를 보기 잘했다고 느낀다. 이유는 이 영화는 영화여야만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원작의 연장선상? 만화를 본 분들이라면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핵심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어떤 대사를 한다. 질문의 형식이다. 이 대사가 영화의 핵심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질문이긴 하지만 작품 형식에서 이 문장에 힘을 빡 주는 연출을 보여줬기 때문에 이 작품 자체의 오리지널리티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 영화가 갖고 있는 다른 핵심 소재는 용서와 화해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용서/분노/혐오를 조금씩을 갖고 있는 듯하다. 강백호나 정대만도 양아치였던 시절이 있고, 서태웅과 강백호는 라이벌이다. 이런 식으로 각자가 마음속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다. 이 마음속의 응어리를 농구경기를 통해 해소한다는 점에서 '왜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가'에 대한 답변이 된다고 생각한다. 왠지 모르게 영화의 엔딩을 보고 나서 내가 농구경기를 다 뛴 느낌이 들었다. 후반부에 많은 분들이 언급하는 '그 청각효과'때도 마찬가지다. 극장이 고요한 느낌이 <드라이브 마이 카> 이후 오랜만이었다.
물론 원작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만큼 행복한 기억이 없을 것이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 이제 '톰스파'가 아닌 다른 두 스파이더맨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제 스포일러가 아니다. 이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짧은 기간에 3명의 주인공을 만들어냈다. <탑건 : 메버릭>이 36년 만의 후속작을 낸 것과는 대비된다. 이렇게 짧은 기간으로 인물들을 찍어냈기 때문에 시리즈 내적으로 다른 스파이더맨과의 차이점을 만들어야 한다. 이 차이점은 관객에게 하여금 '이 스파이더맨을 볼 때 내가 어떤 상태였지'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영화는 이렇게 추억팔이가 갖는 힘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강백호, 서태웅, 정대만, 채치수 등 주요 인물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 농구공을 건네는 듯하다. 어린 시절 만화를 보던 그 때에서 시작해 그동안 잘 지냈구나 싶은 안도감이 드는 것이다. 자, 원작 만화와 영화까지 20여 년이 걸렸다. 긴 시간 동안 품어온 여러분의 미련은 무엇일까? 태섭이가 질문하고 있다. 답할 준비가 됐다면 코트로 달려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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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소년심판> 티저 예고편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그 나이에. 감히. 범죄를. 저질렀으니까. 《소년심판》 2월 25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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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대가족> 티저 예고편
넝쿨째 굴러들어 온 금쪽이들🧒🏻👧🏻💝 [대가족] 티저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