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3-29 02:50:48
3월 5주차, 위클리 씨네 뉴스
<앵커> <뜨거운 피> <파친코>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그럼, 지난주 동안 국내외 영화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는 '위클리 뉴스' 차례가 왔습니다!
지난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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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천우희 주연 <앵커>, 4월 20일 개봉
배급사 에이스메이커는 배우 천우희 주연의 영화 <앵커>가 다음 달 20일에 개봉한다고 공개했다.
<앵커>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제보 전화를 받은 앵커 세라의 이야기를 다루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이다.
CGV, 영화 관람료 인상
코로나 19로 인해 적자가 누적되면서, CGV에서 불가피하게 다음달 4일부터 가격을 인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코로나 19 이후 있는 세 번째 인상이다.
일반관은 1천원 (성인 기준 - 1만 4천원), 특별관은 2천원. 고급관은 5천원 인상된다.
<뜨거운 피>, 5일째 박스오피스 1위
배우 정우 주연의 영화 <뜨거운 피>가 5일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뜨거운 피>는 지난 주말 15만 6425명의 관객을 모았고,
누적관객수는 23만 6766명에 달했다.
파친코, 공개 삼일 만에 545만 조회수 돌파
지난 25일, 애플TV+는 유튜브에 <파친코>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무료 공개했는데
이틀 만에 545만 조회수를 넘겼다.
해당 영상이 큰 인기를 끌며 유료 구독 가입자 수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
강동원, CAA와 계약
배우 강동원은 한국 밖에서의 활동을 위해 CAA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다.
최근 CAA와 계약을 맺은 한국 배우에는 배우 이정재와 정호연이 있다.
워너 브라더스, 100주년 기념 로고 공개
워너 브라더스는 곧 다가올 창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4일, 100주년 기념 로고를 먼저 공개했다.
100주년 기념행사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기념 상품 출시, 고전 영화 극장 개봉,
소비자 라이브 이벤트 등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로스트 시티>, 개봉주 주말 3천만 달러 달성
산드라 블록과 채닝 테이텀 주연의 영화 <로스트 시티>가 개봉주 주말 매출액이 3천만 달러(367억원)를 달성하여,
이번주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씨네랩 에디터 Hizy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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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
1984년 동독, 개인의 삶은 존중 받지 못했다. 사회주의 체제 아래, 개인을 억압하기 위한 비밀경찰의 감시는 날로 심해졌고, 당시 국민의 3~5%가 비공식 정보원으로 활동했다고 추정될 만큼 이웃, 친구, 연인,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신뢰할 수 없는 사회였다. 비즐러는 대학교수이자 비밀경찰로 일하는 인물이다. 그는 사회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으며, 그 신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 체제에 철저히 복종한다. 그에게 있어서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이는 '사회주의의 적'일 뿐, 하나의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드라이만을 감시하게 되면서, 비즐러의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드라이만은 동시대의 다른 예술인들에 비해 비교적 체제에 순응하는 편이었다. 국가를 노골적으로 찬양하지는 않지만, 정치적 탄압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가 적극적으로 체제에 저항하게 되는 계기가 생긴다. 드라이만의 친구 예르스카는 국가로부터 위험인물로 간주되어 연출가로서 활동을 금지당한다. 자신의 자유 의지를 빼앗긴 예르스카는 삶의 의지 또한 잃고, 결국 자살을 택하다. 정확히는, 국가에 의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린 것이다.
또한, 드라이만의 연인 크리스타는 배우로서의 경력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문화부 장관의 도움을 받는다. 예르스카는 억압된 사회에서 스스로 벗어난 인물이라면, 크리스타는 원치 않는 성적 관계를 감내하면서까지 예술을 통한 생존을 꿈꾼다. 드라이만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허위적인 신념 아래 고통받는 개인의 삶을 고발하기 위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의 내용은 이러하다. 1977년 동독은 자살 관련 통계 공개를 중단하였다. 그해, 유럽에서 동독보다 자살률이 높은 나라는 헝가리뿐이었다. 이는, 개인의 삶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사회 체제가 오히려 폭력을 휘두르고 있음을 드러낸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자신이 복종하던 사회 체제의 허구성을 점차 깨닫는다. 그의 동료 그루비츠는 이미 신념에 지배당하여 당 서기 호네커와 전화를 동일시하는 모습에서 보이듯 인간을 사물화하고 타인을 억압한다. 문화부 장관 헴프 역시 허구적인 신념 위에 군림하며 타인의 삶을 훼손한다. 체제의 모순성과 허구성을 느끼기 시작한 비즐러는 드라이만에 대한 감시를 중단한다. 그때, 그는 드라이만의 삶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예술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계,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다. 따라서 예술에 진정으로 마음을 바친다면 결코 개인주의적인 인간이 될 수 없다. 비즐러가 크리스타의 삶에 연민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예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은 더욱 강력하게 비즐러의 마음을 흔든다. 동독은 예술이 가진 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집착했을 것이다.
생존과 개인의 존엄 사이에서 갈등하던 크리스타는 결국 자신의 연인인 드라이만을 배신하게 되지만, 끝내 생존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신념에서 벗어나 타인을 인간으로 마주하게 된 비즐러에게 타인의 삶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실현된다. 크리스타의 죽음 앞에서 비즐러는 진정으로 슬픔과 죄책감을 느낀다. 타인을 체제의 적으로 규정하고 비인간적으로 고문하던 초반의 모습에서 변화하여 신념에서 해방되고 주체적인 삶을 찾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추구하고 싶은 이상과 혁명할 대상이 사라진 사회'에서 신념에 지배당한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비즐러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간다.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는 비즐러와 같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개인 주체에게 주어진다.
어떠한 신념도 개인의 삶을 앞설 수 없다. 신념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허구적인 개념이며, 온전하지 못하다.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을 생생하게 경험해야 한다. 타인과의 연결이 희미해질 때, 예술에 취해보는 것도 좋다. 타인과 공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주체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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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코리쉬 피자> 사랑의 탈을 쓴 힘과 위치의 변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15세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 어느 날 그는 학교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아름다운 햇살과 함께 등장한 연상의 여인 '알라나(알라나 하임)'를 만나고, 첫눈에 반한다. 스스럼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데이트를 청하며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개리. 그러나 서로 다른 나이와 환경, 직업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는 사이, 연인과 친구 사이에 있는 그들이 비즈니스 파트너로 엮이면서 이들의 연애사는 더욱더 험난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리코리쉬 피자>는 할리우드의 젊은 천재 감독인 폴 토머스 앤더슨(PTA)의 신작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상 후보에 오른 것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리코리쉬 피자>에서 진정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시상식에서 받은 상의 숫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작품이 겉보기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와는 결이 다소 다른 듯 느껴지지만, 그 속내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그간 앤더슨은 설령 스타일은 다를지언정 유사 가족 관계, 폐쇄된 집단, 사이비 종교, 깊은 상처를 가진 캐릭터 등의 소재에 집중하며 불완전한 인간 내면을 낱낱이 파헤치는 드라마를 만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영화는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며 미국의 어두운 부분들을 샅샅이 파헤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1973년 미국 10대, 20대 청춘의 로맨스를 다룬 <리코리쉬 피자>는 필연적으로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첫 장면부터 앤더슨이 그려내는 로맨스가 평범한 사랑 이야기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당장 <리코리쉬 피자>의 시작을 보자.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십 대 소년 개리 앞에 알라나가 등장한다. 따스한 햇살, 그리고 로맨틱한 음악은 그녀의 등장을 더 화려하게 꾸며준다. 사진 찍는 일을 돕는 알라나와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개리는 대화를 이어가고, 그 대화 안에서 그들은 서로의 이름과 나이, 사는 곳 등을 알아가며 조금씩 하나의 관계로 묶인다. 알라나의 등장부터 개리의 퇴장까지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이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리코리쉬 피자>는 그 어떤 하이틴 로맨스와도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간질거림과 살랑거림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 롱테이크의 말미에서 영화는 본색을 드러낸다. 시종일관 나이가 더 많다는 무기를 내세워서 개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알라나. 그러나 개리 앞에서는 여유 넘치던 그녀도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는 촬영 기사 앞에서는 불쾌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약자로 변하고 만다.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찰나에 그 리듬과 분위기를 아주 효율적인 방식으로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눈부신 사랑의 대상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희롱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자 본 작의 테마를 날카롭게 소개한다.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 내에서 그들을 둘러싼 배경과 환경에 따라 그 위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후 2시간에 걸쳐 펼쳐지는 알라나와 개리의 로맨스는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싸움으로 가득하다. 알라나는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큰돈을 만지는 개리를 부러워한다. 반면에 개리는 미성년자라는 한계 때문에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이에 알라나는 개리의 매니저가 되어준다. 또 개리의 촬영장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개리와 알라나에게 서로 다른 남녀가 번갈아가며 데이트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코리쉬 피자>는 우선 앤더슨의 사랑에 대한 정의로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사랑은 감정의 교류, 추억의 공유, 뜨거운 육체적 교감이 아니라 위계의 형성을 뜻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리코리쉬 피자>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남녀 사이에서 더 우월한 지위와 주도권을 점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경쟁과 갈등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접근법을 걷어냄으로써 <리코리쉬 피자>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보다 현실적이며 깊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단순히 남녀와 사랑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대신, 그 관계를 매개로 보다 다양한 역학관계의 전복과 치열한 재전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성의 섹스와 산업 사이의 역학관계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앞서 본 오프닝 시퀀스처럼 말랑말랑한 분위기가 불균질 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애인과 친구 사이 어딘가에 있는 개리와 알라나 사이에 비즈니스가 끼어들고, 그로 인해 알라나의 성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물침대 사업을 시작한 개리는 박람회에서 한 여성에게 섹시한 의상만 입힌 채 물침대를 홍보하게 하며 알라나는 그 여성에게 관심을 표한다. 바로 그 찰나에 개리는 용의자로 잘못 지목되어 경찰에게 체포되는데, 이 대목에서의 장면 전환은 굉장히 사나운 인상을 남긴다. 특히 경찰이 개리를 거칠게 다루며 그의 사업을 일시적으로 막는 모습에서는 마치 여성의 성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는 듯한 느낌도 준다.
더 나아가 이 장면은 다양한 형태로 반복된다. 물침대 상점 오픈식에서 비키니를 입고 홍보를 하던 알라나는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개리를 본 후 좌절한다. 개리가 물침대를 사려는 고객에게 섹시하게 응대하라고 요구하자 알라나는 개리가 말한 것 이상으로 고객을 유혹하기도 하고, 또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후 에이전트와 오디션을 보던 중 개리의 조언을 무시한 채 작품 내에서 노출도 감수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하면서 개리와 격렬하게 싸우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는 개리와 알라나의 관계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려는 찰나마다 섹스를 매개로 빛에서 어둠으로, 환희에서 절망으로 급격하게 분위기를 전환한다.
그러나 <리코리쉬 피자>의 로맨스는 여성의 몸을 성적인 대상을 활용하는 세태에 대한 일차원적인 비판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알라나의 이야기 속 성역할과 성위계를 고정되지 않은 시선으로 고찰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알라나가 성을 이용하는 사회와 산업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위치한다. 성공에 대한 열망을 지닌 그녀에게 성적 매력은 유용한 도구다. 그녀는 촬영장에서 남자 배우를 유혹하고, 자신의 매니저가 된 개리가 불평하자 가슴을 보여주기도 하고, 시장 후보인 조엘이 밤에 호출하자 곧장 달려가기도 한다. 이처럼 단순한 수동적 캐릭터가 아닌 알라나의 모습은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설령 기존의 사회 질서가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더라도, 알라나의 주도적인 선택과 참여가 없다면 그 질서는 완성되지 않는다. 즉, 그녀에게는 개리와의 관계에서도 그러했듯이 선택권과 주도권이 있다.
이는 알라나가 기름이 떨어진 트럭을 끌고 내려가는 후진 장면이 러닝타임 중 가장 시원하며 황홀한 순간인 이유다.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와 선택권을 다르게 활용한 최초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자신을 성적으로 이용하려는 세계에 편입되고자 했던 알라나. 그랬던 그녀는 이제 '존 피터스(브래들리 쿠퍼)'처럼 마초적인 남성의 공간에서 개리로 대변되는 또 다른 남성이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이, 운전대를 잡고서 스스로를 구해낸다.
또한 이 장면은 작중 한국 전쟁의 영웅을 연기한 왕년의 스타 '잭 홀든(숀 펜)'이 오토바이를 탄 채 그의 세계로 빠져들어갈 때, 알라나가 오토바이에서 뒤로 추락했던 장면과 정반대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잭 홀든에게 알라나는 과거 파트너였던 그레이스의 대체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잭 홀든이라는 마초적인 영웅의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없던 그녀는 오토바이 뒤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뒤로 추락했던 그녀가, 이제 오히려 후진을 통해 존 피터스와 잭 홀든이 상징하며 그녀가 편입되고자 했던 기존의 남성적 질서를 전복한다. 그러니 이 장면 직후 세상을 바꾸겠다는 시장 후보 조엘의 선거캠프에 알리나가 합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넓게 보면 미국 사회의 그림자를 들춰내는 앤더슨의 장기가 발휘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리코리쉬 피자>의 메시지는 여성이라는 카테고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보다 많은 이들을 향해 뻗어 나간다. 알라나가 보여주는 주도성과 저항력은 개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개리는 성공을 갈망하는 알라나만큼이나 사회 속으로 편입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는 설령 알라나와의 관계가 뒤틀린다 해도 배우로서 성공을 꿈꾸고, 또 물침대 상점에 이어 핀볼 게임장을 오픈하면서 물질적 성공을 이루고자 한다. 이렇게 주류 질서에 편입되고자 하는 개리의 열망은 그보다 모든 면에서 사회적 위치의 우위를 점하는 남성인 존 피터스에게 조롱당하자 분노하고 또 복수하는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영화 말미에 그는 막 오픈한 게임장을 뒤로한 채 알라나를 향해 달려간다. 마치 알라나가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동성 연인을 지키지 못하는 조엘과 달리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개리에게 달려가듯이. 이렇게 개리도 주류 질서로 편입되고자 하던 과거와 달리, 자신을 감싸고 있던 힘과 권위를 주도적으로 뒤집는다. 사회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본인이 원하는 것을 깨닫고 이루어낸다. 영화는 이러한 커플의 탄생과 변화를 세 번의 달리기를 통해 보여준다. 알라나는 경찰서에 갇힌 개리를 꺼내 주기 위해, 개리는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알라나를 향해 달린다. 이는 두 주인공의 달리기가 스크린 상에서 서로 다른 방향이고, 곤경에 처한 사람도 정반대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위계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에 둘은 그들의 역학관계에서 마침내 평형점을 찾았다는 듯 같은 방향을 보면서 전력으로 질주한다. 이렇게 역학 관계의 변화로 사랑과 연애를 정의하면서 앤더슨은 사랑을 매개로 보다 넓은 사회상까지도 통찰해낸다.
<리코리쉬 피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 중 유독 대중성을 염두에 둔 영화임이 분명해 보인다. 소재 자체가 많은 이들을 시간 여행에 빠트리고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유리한 소재이자 장르인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를 선택한 것부터가 그렇다. 비록 스토리라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듯 보이나, 공간과 음악을 활용해 석유 파동을 비롯한 히피 문화, 반전 운동 등으로 가득했던 70년대의 정취를 스크린에 가득 풀어놓은 것도 큰 몫을 맡는다. 그러나 이러한 겉모습에 현혹되서는 안 된다. 익숙하고 친숙한 사랑 이야기를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낱낱이 파헤칠 때 비로소 앤더슨의 로맨스가 품고 있는 이중, 삼중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사랑을 힘과 관계로 이해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전복의 짜릿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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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일의 밤> - '악과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다.'
제8일의 밤 (The 8th Night)
개봉일 : 2021.07.02 (넷플릭스 공개)
감독 : 김태형
출연 : 이성민, 박해준, 김유정, 남다름, 김동영, 이얼
악과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다.
번민하는 검은 악마의 눈과 번뇌하는 붉은 악마의 눈이 만나는 순간, 세상은 지옥이 된다. 각기 다른 사리함에 봉인된 두 눈은 지옥의 문을 열 순간만을 기다린다.
<제8일의 밤>은 끝없이 이어지는 문을 지키는 자의 운명과 문을 열려는 악의 욕망, 그리고 문을 열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7개의 징검다리가 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7월 2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반응은 꽤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내에서 통용되는 소재 자체는 좋았으나,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 결국 불필요해진 감정들이 아쉬웠다.
결국 악을 물리칠 수 있는 건 대가없는 희생과 선함뿐인 건가. 악에 잠식당한 사람들에게 남는 커다란 구멍과 그 틈을 넘나드는 붉은 눈의 괴기함이 나에겐 완전한 공포보다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악이 원하는 지옥은 무엇이기에 무력한 사람들을 이토록 끈덕지게 괴롭히려 하는 걸까. 개인적으론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 편이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진 못하는데, 걱정보단 덜 공포스러웠기 때문일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식은땀이 날 만큼의 공포는 아니다. 보는 이를 놀라게 하거나 악몽을 걱정할 만큼 잔혹한 공포 같은 것에 집중했다기보단 선과 악의 대립, 악마와 지옥문을 지키는 선한 자의 대립. 그리고 어리석은 사랑에 묶인 운명과 그 또한 감싸 안는 선한 자가 내미는 손과 주어진 숙명. 이런 주제들에 더 집중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죽죽한 장마철을 내쫓을 서늘해질 만큼의 공포 영화를 찾고 있다면 아쉽게 느껴질만한 공포랄까. 그래도 전하려고 한 메시지와 의도, 배우진들의 연기가 좋아 한 번쯤은 감상해보시기를 추천한다.
제8일의 밤 시놉시스
붉은 달이 뜨는 밤, 봉인에서 풀려난 ‘붉은 눈’이 7개의 징검다리를 밟고 자신의 반쪽, ‘검은 눈’을 찾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제8일의 밤, 그 둘이 만나 하나가 되면 고통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지옥의 세상이 될 것이다.
북산 암자의 ‘하정 스님’(이얼)은 2년째 묵언수행 중인 제자 ‘청석’(남다름)에게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의 봉인에 관한 전설을 들려주며, ‘선화’를 찾으라고 유언을 남긴다. ‘청석’은 주소지만 적힌 종이를 들고 길을 떠나던 중 사리함을 잃어버리고 그곳에서 정체모를 소녀 ‘애란’(김유정)을 만나게 된다. 한편, 괴이한 모습으로 죽은 시체들이 발견되고, 강력계 형사 ‘김호태’(박해준)와 후배 ‘박동진’(김동영)은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괴시체들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수사를 이어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때가 되었구나. 전해라… 놈이 왔다”
사리함이 박준철 교수에 의해 발견된 2005년. 정밀 감식 결과 사리함은 최근에 합성된 ‘가짜’라는 결론이 나고 교수는 고고학을 50년쯤 퇴보시킨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사기꾼. 교수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는 의심이 아닌 인정을 받고 싶었고 자신의 말이 진짜임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 가득 차 번뇌의 붉은 눈 사리함에 제물들의 피를 붓는다. ‘번뇌’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 박준철 교수의 현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욕망이다. 악마는 그의 욕망과 제물들의 피를 받아 세상에 깨어나고 지옥문을 열기 위해 징검다리를 밟는다.
지옥의 문을 열려는 악마. 그리고 징검다리 마지막에 서있는 문을 지키는 자. 하정 스님이 타계하고 그의 운명을 내려받은 진수(선화 스님)과 청석. 징검다리를 두고 악마와 지키는 자는 대립한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사람들이 주고받는 ‘운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녀 보살은 자신의 마지막 징검다리가 될 운명을 사주가 같은 동진에게 넘기고, 북산에 있는 지키는 자들(스님)은 자신의 명이 다할 때쯤 다음 사람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을 넘겨준다.
진수와 청석은 청석의 어머니가 낸 사고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다. 청석의 어머니가 낸 교통사고로 진수는 아내와 딸을 잃는다. 그리고 청석의 어머니는 죗값을 갚겠다며 자살을 택한다. 하정 스님과 진수는 홀로 남겨진 어린 청석을 북산으로 데려온다. 그 순간부터 청석은 ‘지키는 자’의 운명을 내려받을 인물이 된다. 청석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 적이 없지만 사고를 내고 자살한 어머니, 스님들에 의해 운명을 부여받는다. 2년이 넘도록 묵언 수행을 하고 있는 청석의 목에 걸린 ‘묵언’ 목걸이를 걸어준 하정 스님. 그 목걸이를 끊어내고 새로운 신발을 신겨준 진수. 두 사람은 청석의 운명을 결정하고, 다시 바꾸는 인물이다. 하정 스님이 타계하고 청석의 묵언수행이 끝이 나고 새로운 신발을 신게 된 건 청석이 새로운 운명, 지키는 자의 운명을 받게 되는 순간임을 암시한다.
호태는 물에 빠져 죽었어야 할 동진의 운명을 바꾼 인물이다. 호태와 동진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동진이 일을 하던 중 어떠한 사고로 인해 다리와 눈을 다쳤고, 호태는 그로 인해 깊은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 모두가 호태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호태는 동진에 대한 죄책감으로 어떻게든 동진을 돕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가 살려낸 동진은 결국 악마의 마지막 징검다리가 되고, 호태는 동진의 몸에 들어간 악마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등장인물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주어진 운명이란 것은 변하지 않고 이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 뿐이다.
<제8일의 밤>에서는 끊어내지 못한 운명과 숙명을 발목에 묶인 족쇄로 표현한다. 애란은 학대받던 자신을 구해준 새아빠 준철을 위해 악마를 소환하는 제물이 된다.
“그리고 항상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냥 믿고 싶어져.”
준철은 악마를 불러내겠다며 어리석은 꿈을 꾸지만 애란은 자신의 전부인 아빠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렇게 애란의 발목엔 무거운 족쇄가 채워지고 애란은 그것을 끊지 못한다.
진수는 악마를 유인하기 위해 덫을 치며 자신의 발목에 단단히 끈을 묶는다. 이미 사리함을 열 운명이 청석에게 내려졌음을 모르는 그는 자신이 마지막 징검다리이며 청석이 나를 죽이면 악마도, 지키는 자의 운명도 끝이 날것이라 예상하고 발목에 끈을 묶는다. 그가 희생을 감수하고 발목에 끈을 묶은 건 지금껏 외면해왔던 ‘귀신을 천도해야 한다’는 숙명을 이제야 단단히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북산을 떠난 순간 청석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이 돌아갔음을 알게 된 진수는 발목에 묶인 끈을 힘껏 내리쳐 덫을 벗어나 청석을 따라간 악마의 뒤를 쫓는다. 발목에 묶인 끈을 끊어낸 진수는 결국 자신을 희생해 ‘마지막 징검다리인 청석을 통해 악마가 부활할 것’이라는 운명을 바꿔놓는다.
내 아내와 딸을 죽인 가해자의 아들. 진수는 모두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그 존재를 용서한다. 진수는 청석의 목을 조르려 했지만 포기하고 북산을 떠난다. 그리고 번뇌와 번민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던 진수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어왔던 죄책감을 털어내고 청석을 용서한다. 사실 아이에게 죄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아이를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는 사고 날부터 제8일의 밤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다시 봉인된 사리함과 남게 된 지키는 자 청석. 청석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을 내려준 스님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그에겐 새로운 숙명이 생겼다. 애란의 서글픈 눈을 바라보며 먼저 손을 내밀던 그의 선함이 오래도록 지옥의 문을 단단히 누르고, 덮어주길. 누군가는 지옥의 문을 지켜야 하는 운명. 그것은 이 세상의 악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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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그라들 줄 알면서도 영원함을 바라게 되는
좋아하는 가수로 주저 없이 스다 마사키를 말하던 때가 있었다. 장발, 넥타이, 통기타를 들고 목소리를 긁어가며 부르는 ‘사요나라 엘러지’ 영상을 족히 50번은 본 듯하다. 그의 노래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에 대해서 알기 싫었던 마음이 있었다. 노래에 대한 감상이 그 가수의 사생활이나 성격으로 인해 영향을 받아 변질되는 것이 싫었다. 그가 배우로 더 유명하다는 사실은 곧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오늘의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주인공 키누(아리무라 카스미)처럼 말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내 감정을 덮지 마. 어젯밤의 여운 속에 있고 싶단 말이야.” 우연히 지하철 첫 차를 기다리며 가까워진 무기(스다 마사키)의 집에서 돌아온 후 키누가 한 생각이다.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가수를 좋아하고, 내가 읽고 싶었던 소설을 이미 그가 읽고 있다. 너무나도 닮은 그들은 서로를 속절없이 사랑하게 되었다. ‘전철을 탄다’라는 말 대신 ‘전철 속에서 흔들린다’라는 말을 쓰는 무기를, 평생을 의문스러워 한 가위바위보의 규칙을 똑같은 이유로 이상하다 여기는 키누를 말이다. ‘운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연스레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일. 무기와 키누의 첫 만남이었다. 21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는 나이에 만난 그들은 싱그러운 사랑을 나눈다.
비록 지하철역에서 30분 동안 걸어가야 하지만, 강이 한눈에 보이는 작은 빌라에서 같이 살게 된 그들은 20대 중반을 함께 마주한다.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어도, 울고 있는 나의 앞에 슬리퍼를 신고라도 달려와 줄 당신이 있기에 그래도 괜찮은 날들이 이어진다. 인생의 목표가 ‘키누와의 현상 유지’였던 무기. 그러나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나선 후, 그의 다짐은 어딘가 어긋나게 된다. 재미없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은 키누와, 인생은 책임이라는 무기. 서로가 점점 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만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키누는 점점 메말라간다.
끝내 헤어짐을 택한 그들은 함께 골랐던 커튼을 정리하고 가구를 옮기며 차근차근 서로의 흔적을 덜어낸다. 그 과정이 너무 아프지만은 않은 이유는, 매 순간 서로를 후회 없이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김없이 모든 것을 다 준 이들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별하고, 누군가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미래를 약속하며 축하를 받기도 한다. 어떤 것이 좋은 결말이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알 수 없다고 얘기하고 싶다. 촘촘하게 얽혀있는 서로를 인생에서 분리해 내기란 당연하게 어려운 일이고, 함께했던 일상에서 혼자로 돌아가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의 젊음을 함께 나눴던 이가 있다는 것, 함께한 시간들이 나의 궤적이 되는 것 역시 값진 일일 것이다.
“시작이란 건 끝의 시작. 만남은 항상 이별을 내재하고 있고 연애는 파티처럼 언젠가는 끝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가져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수다를 떨면서 그 애달픔을 즐길 수밖에 없다.” 주인공 키누가 즐겨보던 블로그의 한 문장이다. 살아있는 꽃은 꺾는 순간 그 생명을 잃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시들어간다. 메말라 버릴 미래를 그리며 안타까워하기에는 그 당장 눈앞에 놓인 싱싱함은 너무나도 아름다울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언젠가 사그라들 줄 알면서도 영원함을 바라게 되는 사랑이 있기를, 찾아오기를, 있었기를 바란다.
Editor. 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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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아바의 마법을 재발견하다, <아바: 더 레전드> 제임스 로건 감독 인터뷰
모두가 아는 이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지만 그만큼 어렵다. 모두가 아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으레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새로운 시각을 더해줄 수 있다면, 전설에서 새로운 마법이 피어난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에서 <아바: 더 레전드> 이후 짧은 박수갈채 대신 아바 노래 박자에 맞춘 박수로 피어난, 새로운 마법의 시작점을 만든 제임스 로건(James Rogan) 감독과 다니엘 고든 홀(Daniel Gordon hall) 프로듀서를 만났다.
(▲왼쪽부터 제임스 로건(감독), 다니엘 홀(프로듀서))
영화 잘 봤습니다. 영화 <아바:더 레전드>가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는지, 또 실제 개막식과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어떤 기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로건 감독) 연락을 받고 정말 충격적으로 기뻤습니다. 한국에서 영화를 소개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기쁜데,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니! 특히 개막식 후 상영에서 관객 분들의 열정적인 반응에 또 놀랐는데요. 영화 엔딩 크레디트 때 나오는 아바 노래 박자에 맞추어 박수를 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깊었습니다. 또한 다큐멘터리 감독에게는 관객이 와서 사인을 요청하는 경험이 흔치 않은데, 제천에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보게 되네요.
(다니엘 홀 프로듀서) 그동안은 저희 작품이 주로 매체를 통해 시청자에게 전해졌다 보니, 이렇게 현장에서 관객들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흔치 않아 더욱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 관객 분들이 많이 계신 것도 인상깊었어요. 오늘 “뮤지컬 <맘마미아>를 통해 아바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노래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되어 기쁘다”는 관객 평이 참 좋았습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로건 감독) 몇 년 전 덴마크 영화 제작자에게 아바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 의뢰를 받았습니다. 올해는 아바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우승 50주년이기도 하고, 2023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또다른 스웨덴 아티스트가 우승하면서 스웨덴이 올해 유로비전 개최국이 되어, 여러 모로 잘 맞는 시기였습니다. 이에 BBC를 포함한 유럽 유수의 방송사들이 연합해서 아바에 헌정하는 영화를 만들자고 기획에 참여한 것이 실질적인 시작입니다.
창작자로서의 마음도 말씀드리면, 아바는 유럽이 가진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로 노래를 불렀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그룹이 팝의 세계를 정복한 그런 성취는 그 전까지 전혀 없었습니다. 요즘 BTS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요. 아바의 성취를 조명하고, 그 과정에서 아바가 겪은 고난과 역경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음악 다큐멘터리의 근본은 음악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작업이 저에게는 핵심적인 일이었는데요. 엔딩은 반드시 가장 드라마틱하고 감정적인 <Winner takes it all>이어야 하고, 오프닝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우승곡 <Waterloo>여야 한다는 원칙을 정한 다음, 이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확정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제임스 로건 감독)
감독님의 지난 작업물을 보면 <프레디 머큐리: 더 파이널 액트>, <1971: 음악이 모든 것을 바꾼 해> 등 70년대와 80년대 음악에 대한 작업물들이 돋보입니다. 그 시기 음악에 대한 애정이 특별히 있으신지요?
(로건 감독) 네, 좋아합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의 좋은 점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죠. 저는 퀸, 존 레논, 아레사 프랭클린, 밥 말리 같은 가수들을 좋아해서 그런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음악도 실컷 들으면서 만들 수 있고, 그들의 음악과 활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음악 영화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이 큽니다.
(다니엘 홀 프로듀서) 워낙 유명한 노래들을 다루다 보니, <Winner takes it all>처럼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들은 곡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영화 장면에서 노래가 나오는 순간,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롭게 들을 수 있고 처음 드는 것처럼 가슴이 뛸 수 있다는 게 음악의 힘, 음악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 아바가 겪는 일들은 현재에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장르에 대한 폄훼, 가짜 뉴스와 사생활 침해, 30시간씩 콘서트 입장을 기다리는 팬들의 모습 등 오늘날의 스타를 둘러싼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제작 과정에서 이런 동시대적인 울림도 고려하셨는지, 제작 의도를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로건 감독) 음악 뿐 아니라 음악을 둘러싼 이슈에도 집중했습니다. 많은 음악 다큐멘터리들이 뮤지션의 위대한 성취에만 집중하고 있다면, 저희는 그들이 인간적으로 맞닥뜨린 도전과 그 도전에 맞서 노력한 다양한 측면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 어려움 앞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팀을 해체하지 않고 유지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그 과정이 당시에 마땅한 인정을 받았을까? 저런 혹독한 비평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이런 질문은 우리와 동시대에 사는 스타들도 마주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아바라는 아티스트는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은 동시대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영화는 아바의 현재 모습을 새로운 인터뷰로 담지 않고, 당시의 무대 영상에 집중하고, 멤버들의 회고는 목소리로만 등장합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을 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로건 감독) 저희가 <1971: 음악이 모든 것을 바꾼 해>를 제작할 때도 사용했던 방식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장점은, 2024년 현재의 아바 멤버들 모습을 보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이 70년대 사건들을 실제로 겪고 있는 당시 아바 멤버들의 모습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죠. 현재와 과거 사이의 격차를 느끼지 않고 더 잘 몰입할 수 있습니다. 대신 흐름에 맞는 영상을 선별하기 위해 고든홀 프로듀서가 어마어마하게 고생을 했어요.
(다니엘 홀 프로듀서) 이미 아바가 성공을 거둔 것을 알고 있는 미래에서 느긋하게 과거를 돌아보는 느낌을 최대한 없애고, 실제 그 시절에 느꼈을 긴박함을 유지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같습니다.
(▲다니엘 고든 홀 프로듀서)
아바 멤버들은 완성된 영화를 보았나요? 반응이 어땠나요?
(로건 감독) 개인적으로 직접 보여드린 건 아닙니다. 아바 스태프이자 좋은 친구였던, 저희 영화에도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잉그마리 할링그(Ingmarie Halling) 씨가 지금 스웨덴에서 아바 박물관 큐레이터로 계신데, 멤버들과 영화를 보셨고 멤버들이 마음에 들어 하셨다고 합니다. 할링그 씨는 아바 박물관 업무상 아바 관련 영화를 빠짐없이 모두 보시는데, 지금까지 나온 아바 관련 작품 중 최고라고 말씀해 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다니엘 홀 프로듀서) 아바 매니저 분께도 완성된 버전을 보내드렸어요. 같은 사건을 겪은 사람들에게도 저마다 다른 기억이 남기 때문에, 저희가 만든 영화가 당시의 진실을 충분히 담았는가 확인받고 싶었거든요. 진실되게 잘 담겼다고 말씀해 주셔서 제작진이 축배를 들었습니다.
수많은 아바 레전드 무대 중에서도 이것만은 꼭 봐야 한다고 추천하는 영상이 있으시다면?
(로건 감독) 영화에도 잠깐 나오는 웸블리 콘서트 영상을 반드시 보셔야 합니다. 압도적으로 아바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아바로서는 드물게 라이브 앨범을 발매한 공연이기도 합니다. 관객들과 함께 <the way old friends do>라는 곡을 함께 부르는데, 그때까지 아바를 혹평해온 비평가들까지도 표를 구하려 애썼던 공연의 마무리였고, 넷이 꼭 붙어 서서 오랜 친구에 대한 가사의 노래를 불러요. 이들이 오랜 시간 음악 여정을 함께해온 좋은 친구들임이 드러나는 상징적 순간 같아요.
(다니엘 홀 프로듀서) 고민할 필요도 없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부른 <Waterloo>입니다. 모든 마법이 시작된 순간이었으니까요.
차기작 계획이 궁금합니다.
아직 미공개 프로젝트라서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음악에 대한 영화이고 역시나 감동적인 정서가 들어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영화 총괄프로듀서이자 저의 아내인 솔레타 로건 프로듀서와 공동 운영하는 제작사를 통해 이미 공개된 계획도 있는데요. 지금 영국에서는 외로움, 노년층 고독사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어요. 특히 노년층에 청력을 상실하면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상황에 많이 처하는데, 이 분들이 수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프로젝트입니다. 선천적 청각 장애로 수어를 사용하는 배우이자 청력을 상실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온 로즈 아일링 엘리스(Rose Ayling-Ellis)와 협력한 프로젝트입니다.
추후 이 영화를 보시게 될 미래의 관객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다니엘 홀 프로듀서) 마음과 귀를 활짝 열고 영화를 보아 주세요. 아바를 좋아하지 않으셨던 분들께는 아바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는 영화, 아바를 좋아하시던 분들께는 아바의 노래를 새롭게 듣고 새로운 각도에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영화가 될 겁니다.
(로건 감독) 저는 아바를 원래 좋아했지만, 이 영화를 작업하며 아바에 대한 시각도 변했습니다. 기존에 <맘마미아>를 포함해 아바를 소재로 한 영화나 영상이 많았지만, 대부분 아바의 키치한 의상이나 팬덤을 부각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이 영화 작업은 한때 두 커플이었던 4명의 인간이 어떤 과정으로 팀을 이루고, 오늘날까지도 반짝이는 음악을 만들어낸 것인지, 아바라는 마법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영화가 이런 새로운 발견의 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정유선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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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
노웨어 스페셜 (Nowhere Special,2020)
개봉일 : 2021.12.29. (한국 기준)
감독 : 우베르토 파솔리니
출연 : 제임스 노턴, 다니엘 라몬트, 에일린 오하긴스
죽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
죽음을 가장 가까이 접하는 직업을 가진 ‘존 메이’의 이야기를 다루며 삶과 죽음, 외로움과 보이지 않는 인연에 대해 풀어낸 영화 <스틸 라이프>로 유명한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7년 만의 신작(개봉 날짜 기준)이 2021년의 끝, 아주 살포시 국내에 개봉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영화, <노웨어 스페셜>은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아빠 존과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의 이야기다. 존은 매일같이 다양한 모양의 창문을 닦으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수많은 일상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의 인생의 가장 큰 행복, 아들 마이클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존은 끝없이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그만큼 미안한 아들을 바라보며 잠시 시름을 내려놓고 웃기도 하고, 또다시 책임감 한 아름을 짊어지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
부모와 자식이란 인연은 한없이 소중하면서도 복잡하고, 아프고,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끊어낼 수는 있지만 끝내 부정할 순 없는 단 하나의 인연이니까. <노웨어 스페셜>은 가장 힘이 될 수도 가장 큰 아픔과 죄책감이 될 수도 있는 이 인연으로 이어진 존과 마이클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내며 잔잔한 슬픔과 감동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 존과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아이 마이클. 존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이클을 보며 여러 고민에 빠진다. 순수한 어린아이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또 아이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 홀로 남겨진 아이를 위해 어떤 것을 남기고 가야 할지. 아이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어떤 이들에게 아이를 맡겨야 할지.. 같은 답 없이 무거운 고민들 말이다.
존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 얹어진 짐을 묵묵히 견디며 마이클을 위한 새로운 가족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는 풍족하지 못한 현실에 놓인 마이클을 보며 항상 미안함을 느낀다. 비싸고 멋진 장난감을 사주지 못하는 집안 형편, 존이 일을 나갈 때면 엄마가 아닌 보모의 손에 맡겨져야 하는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사회통념상 그다지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아닌 것 같다는 죄책감까지. 존은 이제 부족한 아버지의 손을 떠날 마이클을 위해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주고 싶어 한다.
최선을 다하고, 모든 걸 줘도 항상 미안한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뿜어내는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에 소중한 인생의 한순간이 비치고, 그 안에서 죽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을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주연을 맡은 연기 천재 다니엘과 제임스의 눈빛
<노웨어 스페셜>의 강점은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에도 있지만,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제임스 노턴과 다니엘 라몬트의 연기도 큰 몫을 한다. 4살의 나이로 <노웨어 스페셜>을 통해 데뷔한 다니엘 라몬트와 따뜻하고 깊은 눈빛을 보여준 제임스 노턴 배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따로 설명해 주지 않아도 온갖 부자 서사가 뚝딱 만들어진다.
특히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사를 읊는 다니엘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나며 나의 4살 시절을.. 반성하게 된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그때쯤 나는 엄마한테 “이건 뭐야?” 정도의 질문만 반복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게 바로 진정한 ‘연기 천재’구나 싶다. 내가 결혼을 일찍 했으면 .. 저만한 아이가 있을 수도 있는.. 나이니까.. 이모를 넘어 사실상 엄마의 눈으로 흐뭇하게 지켜봤던 것 같다. 이 배우가 어떻게 성장할지 정말 정말 기대된다. 만약 <노웨어 스페셜>이 뛰어난 영화가 아니었다고 해도, 다니엘 라몬트를 발굴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자연스러운 인생의 한순간
툭,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인생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영화이자 ‘우리 감정에 솔직하게, 오랜만에 울어보자’는 느낌이 드는 영화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부터 그렇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홀로 남겨질 어린아이. 그리고 ‘새 부모를 찾는다’는 포스터에 박힌 절절한 문구와 대놓고 관객들의 눈물을 뽑아낼 영화라며 경품으로 쓰인 두루마리 휴지까지. 누가 봐도 ‘이 영화는 슬플 것이다,’, ‘눈물 나는 영화다.’라는 느낌이 확 온다.
하지만 <노웨어 스페셜>은 감정 없이 눈물을 쥐어짜는 영화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의 상황을 봐, 슬프지. 울어봐!하는 식으로 절망과 슬픔을 쌓아가는 형식이 아니다. 이야기는 잔잔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간혹 고통을 느끼는 존의 모습이 나오긴 하지만, 존은 묵묵히 평소처럼 일을 하고, 마이클과 시간을 보내고, 함께 책을 읽고 케이크를 만들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공원을 거닌다.
새로운 가족이 되어줄 이들을 만나는 약속을 제외하면, 존과 마이클의 일상은 평소처럼 흘러간다. 평온하고 온전하게, 사소한 행복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말이다. 커다란 흔들림 없이 두 사람의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고, 존과 마이클은 죽음에 대해 조금씩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존은 이 이야기의 끝에서 마이클의 새로운 선택을 접하며 지금껏 알지 못했던 마이클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사실 관객들을 울리는데 어린아이와 부모의 눈물만큼 확실한 장치가 없지만 <노웨어 스페셜>은 그런 치트키 같은 장치를 전혀 쓰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을 마냥 이별, 마지막 같은 슬픈 의미로 풀어내지 않으며 이별보다는 죽음 앞에서도 온전할 사랑에 대해, 앞으로 더 긴 인생을 살아갈 아이의 선택에 집중한다.
나는 <노웨어 스페셜>을 보며 만들어진 관객들의 눈물엔 억지 눈물이 단 한 방울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느낀 <노웨어 스페셜>은 억지가 아닌 진실된 감정이 가득한 영화였으니까.
노웨어 스페셜 시놉시스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은 창문 청소부 ‘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는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바로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에게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는 것. 세상에 혼자 남을 아이를 위해 ‘존’은 특별한 부모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창문 너머로 비치는 다양한 인생의 흔적들,
그리고 존의 눈에 들어오는 다른 가족들의 순간들
창문 청소부인 존은 매일같이 여러 손님들의 창문을 닦는다. 화려한 장식품이 가득한 가게, 음식점, 아이를 키우는 잘 사는 가정집의 창문. 크기와 모양새, 달려있는 높이도 모두 다른 창문 너머엔 방주인의 인생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가득하다.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의 놀이방엔 장난감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존이 닦고 있는 가게 유리창 너머엔 비석 모양의 장식품이 가득하고, 그 가게 반대편엔 화목해 보이는 한 가족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모습이 보인다.
존은 자신의 인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마이클은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자신이 해주지 못한 것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집의 자식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가끔 마이클이 던지는 “우리 엄마는 어디 있어?”라는 물음이 “나도 엄마가 있어?”라는 의미가 아닌, 정말 말 그대로 “엄마는 어디로 외출했어?” 정도의 질문이길 바랐을 것이다. 조금 더 배워 선망받는 위치에서 일하고, 부유한 환경에서 마이클이 원하는 강아지도 키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을 것이고, 마이클이 자라 친구들과 운동을 배울 때면 그 옆에서 유니폼을 챙겨들고 응원하고 싶었을 것이다. 존의 눈에 비치는 다른 가족들의 모든 순간들이, 특별하고 아리게 다가온다. 평범하고 완전한 가족, 존은 마이클에게 그런 가족이 되어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일
이제야 4살이 된 어린 마이클은 존을 가장 좋아한다. 존의 팔뚝에 있는 타투를 따라 그리고, 함께 생일 케이크를 고르고, 존의 목에 올라타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을 좋아하고, 장난감이 많은 놀이방이 없어도, 그저 우리가 함께하는 ‘우리 집’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순수한 아이. 그게 마이클이다. 마이클에게 존은 사랑하는 아버지이자 유일한 가족이다. 불만 같은 부정적인 감정 하나 없이, 마이클은 그저 존을 사랑한다.
마이클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어린아이다. 마이클은 존의 34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당연하게도 초를 1개 더 꽂을 35번째 생일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존은 마이클에게 죽음을 설명해 주기 위해 함께 동화책을 읽고, 죽은 딱정벌레를 보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죽음은 마냥 슬픈 것이 아닌, 영혼이 육체를 떠난 것뿐이라고, 떠난 것은 사라지지 않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의 주변에 남아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마이클은 조금씩 죽음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마이클뿐만이 아니라 존 또한 죽음에 대한 태도를 조금씩 바꿔간다. 영화의 초반, 존은 새로운 가족 후보들을 만나면서 아이가 아빠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하냐는 질문에 그저 “창문 청소부로요.”라고 답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어린 마이클이 부족했던 가족과 그에 대한 기억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길 바랐지만, 영화의 후반부엔 생각을 바꾸고 마이클을 위한 편지와 자신의 물건 몇 가지, 그리고 떠나버린 아내의 장갑을 남긴다. 나의 죽음이 마이클의 괴로움과 상처가 아닌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 마이클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면 우리의 아름다운 순간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존은 그렇게 초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멈추지 않고 흐를 마이클의 시간, 그리고 마이클의 선택
함께 카니발에 놀러 간 존과 마이클이 거울의 방을 지나는 장면을 보면, 거울에 비친 마이클이 존보다 더 크게 표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존이 떠나더라도 마이클의 시간은 계속될 거란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존이 세상을 떠나도 아이의 시간은 계속될 것이고, 언젠간 존보다 더 큰 어른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오기 위해선 우선 어린 시절을 보살펴줄 새로운 가족을 만나야 하는데.. 존은 이 문제에 대해 혼자 무거운 고민을 반복한다.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에서 홀로 중대한 결정까지 짊어진 존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진다. 그러던 중, 존은 문득 ‘내가 이 아이의 결정을 대신해도 되는 걸까?’ 의문을 갖게 된다. 앞으로 새로운 가족과 살아갈 사람은 마이클이고, 마이클도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궁금증을 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인데 말이다.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마당,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부유한 집안, 장난감 하나쯤은 쉽게 사줄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부모, 사회 통념상 안정적이라고 느끼는 두 부모가 있는 가정. 존은 이러한 조건들에 집중했지만, 마이클은 조금 달랐다. 마이클은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사탕의 수를 세나갔던, 처음으로 “아줌마는 언제 죽어요?”라고 질문했던 집을 선택한다. 그 집은 마당도 없었고,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고, 안정적인 커플도 아니었지만,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아이만큼, 새로 올 아이를 사랑해 줄 수 있다’고 말하던 유일한 집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선택하는 기준은 어른의 눈으로 본 가정 환경이나 부유한 경제력도, 커다란 마당도 아닌 새로운 가정에서 살아갈 아이의 마음, 그리고 아이를 향한 어른의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존은 전혀 부족함 없는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마이클이 아버지와의 시간을 오래도록, 아프지 않게 아름답게 지녀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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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악녀 크루엘라, 패션계를 접수하다!
101달마시안을 새롭게 재해석한 디즈니 영화 크루엘라가 상영중이죠.
엠마 스톤이 크루엘라 역을 맡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요.
정말 기대 이상으로 잘 어울려서 너무 멋지고 또 이상하게도 보이기도 해요.
과거 영화와는 다르게 악녀의 길을 가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조금은 다른 길을 가려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크루엘라의 머리가 흑과 백으로 딱 나뉘어 있는 것처럼 기묘하게 균형감이 살아있는 영화에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 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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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가 날 부를 때> 30초 예고편
꿈을 이루기 위해 홀로 돈을 벌고 공부하며 고군분투하던 ‘안란’.
어느 날, 간절히 바라던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몇 번 본적도 없는 어린 남동생이 안란에게 덜컥 맡겨진다.
동생을 키우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누나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어른들.
“내 인생에는 너만 있는 게 아냐.
나에게도 우주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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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30초 예고편
한 번 들어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죽어야 나갈 수 있는 곳 '뺏벌' 그곳엔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본 여자, 인순이 있다.
저승사자들은 뺏벌의 유령들을 데려가기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인순은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