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2025-01-17 22:24:45
빛과 어둠의 마에스트로: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 리뷰
씨네랩의 시사회초대로 아내와 함께 용산 CGV에서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를 감상했다. 영화는 바로크 시대를 여는 화가 카라바조의 삶과 예술을 흡인력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의 예술적 천재성과 인간적인 결함이 빚어내는 삶의 극적인 대비는 영화의 핵심 주제로, 카라바조의 명암대비 화풍을 떠올리게 한다.
이태리 감독인 미켈레 플라치도는 카라바조의 대표적 화풍인 명암대비 기법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섬세한 연출로 카라바조의 그림이 그의 개인적인 삶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빛과 어둠의 상징적 대비로 표현했다. 이는 관객들에게 영화전개에 따라 카라바조의 걸작을 하나씩 감상하는 즐거움을 준다.
영화는 역사적 인물 카라바조의 생애를 다루면서도 허구적 요소를 결합해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그림자’ 캐릭터는 허구적인 인물이지만, 카라바조의 삶과 작품 속에서 어둠과 빛이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매개체다.
그림자 역을 맡은 루이 가렐은 표정과 눈빛으로 캐릭터의 신비로움을 유지하면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리카르도 스카마르초(카라바조 역)는 천재적 예술가의 예민함과 격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관객에게 그의 고뇌와 열정, 분노, 아픔을 생생히 전달한다. 루이 가렐의 차가운 시선과 존재감은 카라바조의 열정적인 저항과 강력한 대조를 이루며 스토리를 전개한다.
카라바조는 조화와 균형으로 이상적 아름다움을 찬양하던 교회 통치하의 르네상스 화풍에 도전하며, 현실 속 인간의 고통과 소외를 작품에 담아내었다. 영화 속 카라바조는 권위와 관습에 도전하며, 교회의 제단에 걸릴 성화(聖畵)를 그리면서 거지, 불량배, 매춘부와 같은 사회의 하층민을 모델로 삼았다. 이런 선택은 엄청난 도발이었으나 거리의 매춘부가 그림 속 성모 마리아로 승화하는 일은 단순한 파격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신성함을 발견한 예술적 통찰이었다.
카라바조가 말한 "내 죄를 사해 달라고 요청했소만… 내 그림은 사면이 필요 없소."는 예술이란 도덕적 판단이나 종교적 사면을 구하는 대상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카라바조의 이 대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예술과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오늘날도 종종 정치적, 종교적, 혹은 사회적 기준에 의해 예술이 검열되거나 제한되는 상황이 여전히 존재한다. 영화는 카라바조의 말처럼,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인 예술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평가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림을 사랑하는 이라면, 혹은 카라바조를 더 알고 싶은 이라면, 이 영화는 새로운 시각적 경험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Relative contents
-
- 언젠틀 오퍼레이션
- 언젠틀 오퍼레이션2차 세계전쟁에서 연합군이 독일군과 맞서 싸우는 영화는 수 백, 수 천 편이 넘지만, 크게 보면 '전쟁 영화'와 '액션 영화'로 나눌 수 있다. 전쟁의 참혹함,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비극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 독일군에게 몰살당하는 유대인 서사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이룰 정도로 많다. 반면 2차 세계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독쏘 전쟁'에 관한 영화는 과거 '쏘련'과 지금의 '러시아'를 중심으로 '쏘비에트 연방'이었던 나라들에서 아주 적게 창작되는 수준이다.2차 세계전쟁의 승리는 분명 연합국의 승리가 맞지만, 전쟁 초반에 해당하는 1941년에 독일군이 '쏘련'을 침공하면서 벌어진 '독쏘 전쟁'에서 쏘련군과 쏘련 국민은 무려 3천만 명 넘게 사망하면서 마침내 독일군을 궤멸한다. 독일이 쏘련을 침공한 건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었고, 2차 세계전쟁에서 독일이 지는 결정적 원인이 되는데, 과거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다 패하면서 결국 권력을 빼았긴 것처럼, 히틀러 역시 '쏘련'에게 지면서 자신의 죽음을 앞당겼다.미국이 2차 세계전쟁에 참전한 시기는 1941년 일본군이 하와이를 공습하면서부터다. 이때까지도 미국은 2차 세계전쟁에서 중립을 지키려 했지만, 일본군의 도발로 전쟁은 유럽에서 아프리카 일부 국가를 제외한 지구 전체의 국가들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전쟁으로 기록된다.'언젠틀 오퍼레이션'은 2차 세계전쟁의 핵심 국가 가운데 하나인 영국이 독일과 싸우는 다양한 내용 가운데 '특수전'을 다루고 있다. 가이 리치 감독은 예전에 '맨 프롬 엉클'에서 영국, 미국, 소련 스파이가 힘을 모아 핵폭탄 제조를 하려는 테러 집단을 궤멸시키는 스파이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맨 프롬 엉클'은 정통 스파이 영화로, 미장센이나 스토리가 나쁘지 않았으나 흥행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군의 공식 작전이 아니라는 점에서 '언젠틀 오퍼레이션'도 '맨 프롬 엉클'과 궤를 같이 하는데, 2차 세계전쟁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영국 특수부대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언젠틀 오퍼레이션'을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다. 두 영화 모두 특수부대가 독일군을 궤멸하는 내용인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 '2차 세계전쟁'을 배경으로 한 창작 영화라면,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는 점이 다르다.가이 리치 감독이 왜 이 영화를 만들려 했을까. 그는 '맨 프롬 엉클' 같은 스파이 영화, '셜록 홈즈' 같은 탐정 영화, '더 커버넌트' 같은 리얼한 전쟁 영화도 만들지만, 가이 리치를 상징하는 영화는 갱 영화다. 그의 데뷔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배럴즈'의 충격적으로 놀라운 연출과 서사는 그 전까지 어떤 감독도 구현하지 못한 영화적 상상력이었으며, 연출 방식이었다.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서사 구조와 결정적 장면에서 화려하고 놀라운 슬로우모션을 보여주면서, 스토리, 미장센, 대사, 연기, 연출 등 영화의 모든 요소를 전혀 새로운 감각으로 보여준 영화가 '록, 스탁 앤 투 스모킹배럴즈'였고, 이후 '스내치', '리볼버', '락큰롤라', '젠틀맨' 등에서 가이 리치의 장점은 잘 드러났고, 그의 장점이 드러난 영화는 대개 흥행에도 성공했다.'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순한 맛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버전으로 보인다. 주인공들이 독일군을 가을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처럼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독일군을 잔혹하게 사살하는 장면도 가끔 보이지만, 그래도 전반적 분위기는 정통 드라마 또는 코미디에 가깝다.가이 리치 감독이 '얌전하게' 연출한 이유는 알 수 있다.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실제 인물이 존재하며, 영국이 독일을 상대로 싸워서 이긴 작전 가운데 보기 드문 특수작전이며, 이 작전에서 영국이 자랑하는 윈스턴 처칠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영화에서 윈스턴 처칠은 자주 등장한다. 대서양에서 연합군의 군함과 상선을 닥치는대로 파괴하는 독일군 잠수함 '유보트'의 존재는 영국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 아직 전쟁 초기인 1939년부터 1941년까지 영국은 독일에게 엄청난 공격을 당하면서 거의 고립되는데, 미국에서 보내주는 물품이 대부분 배에 실려 오고 이 과정에서 독일 유보트가 상선을 공격해 침몰시키면서 영국 국민은 식량이 부족해 고생한다.또한 1940년부터 1941년까지 독일 공군은 영국 상공 위에서 폭탄을 투하해 영국 도시를 파괴한다. '더 브리츠'라고 부르는 이 '대공습 작전'은 영국의 각료 일부가 독일에게 항복하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물질적 피해도 컸고, 국민의 심리적 공포도 심각했다.이 심각한 상황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은 독일 유보트가 대서양에서 사라지는 것이고, 잠수함 대 잠수함의 전투에서는 영국이 이길 방법이 없다는 걸 잘 아는 윈스턴 처칠은 독일 유보트를 지원하는 함대를 궤멸시켜 보급을 차단하면 자연스럽게 잠수함들이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다. 결코 쉽지 않은 작전은 분명했고, 이 작전을 위해 윈스턴 처칠과 군 고위 장성 몇 명만 아는 특수부대를 구성하고, 이 몇 명의 대원이 작전을 수행한다.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이때 이미 영국은 독일군이 주고 받는 무선 통신의 암호문을 어느 정도 해독할 수 있는 상태였다. 유명한 영국 과학자 엘런 튜링이 만든 암호해독기는 나중에 컴퓨터로 발전하는데, '암호의 역사'에서 보면, 엘런 튜링이 2차 세계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는 수 많은 역할 가운데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이런 영국군의 암호 해독과 정보를 바탕으로 영국군은 독일 해군 가운데 유보트를 지원하는 함대가 아프리카 중립국 해역에 머물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이들은 특수부대인 만큼 전면전을 펼치지 못한다. 모든 작전은 은밀하고 조용하게 진행되며, 가장 효율적으로 독일군에게 궤멸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장 화려한 장면이 나오지만, 그 장면도 가이 리치 영화로 보면 매우 점잖은, '젠틀한' 장면으로 보인다.제목은 '언젠틀'이라고 썼지만, 사실 내용으로는 '젠틀'한 편이다. 그래서 아쉬운 건, 영화에서 가이 리치의 특징을 살리는 연출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영화 성격상 차분하게 연출해도 재미있을 거라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영화의 재미, 연출의 개성, 영화적 상상력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가이 리치의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은 점은 아쉽다.1941년, 일본군이 하와이를 공습하면서 미국이 2차 세계전쟁에 전격 참전하는데, 이때부터 미국은 연합국의 '군수물자 지원' 중심 기기 역할을 한다. 미국은 당시 독일군과 맞서 싸우는 '쏘련'에게도 수천만 톤의 무기와 식량, 장비를 공급했으며, 영국으로도 그 이상의 무기, 식량, 장비를 공급했다.독일군을 비롯 유럽의 연합국 전체가 생산하는 무기보다 미국 한 나라에서 생산하는 무기가 수십 배 이상 많았기에, 대서양에서 유보트가 침몰시키는 상선보다 미국이 생산해서 내보내는 배가 더 많았다. 전쟁은 그 나라가 가진 모든 재화를 쏟아부어 치르는 엄청난 소모전이라는 걸 생각할 때, 미국처럼 상상 이상의 놀라운 생산성을 가진 나라는 그때까지 역사적 사례를 찾을 수 없었다.2차 세계전쟁에서 연합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여러 조건이 있지만, 미국이 참전하고, 미국에서 만든 전쟁물자가 유럽으로 날마다 공급되었다는 사실은 결정적이다. '언젠틀 오퍼레이션'을 조금 더 재미있게 보려면, 윈스턴 처칠이 독일에 항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는 과정, 엘런 튜링이 발명한 암호해독기와 암호부대가 독일군 암호문을 풀어내는 과정, 쏘련이 독일군에 맞서 동부전선에서 궤멸 직전까지 가는 피해를 입으면서도 끝까지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는 과정 등을 함께 이해하면 이 영화가 2차 세계전쟁에서 드러나지 않은 또 하나의 특수작전으로 놀라운 성과를 이뤘다는 걸 알 수 있다.
- 이 영화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참석한 영화입니다.
-
-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2022
이젠, 가볍게 바라볼 수준은 아니다.
전작 <닥터 스트레인지>는 물론이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봐야 한다. (물론, 이 사이에 있는 <어벤져스>도 당연히 봤겠지?)
여기에 <완다 비전>과 <왓 이프...?>는 "디즈니 플러스"에서만 볼 수 있는 "드라마"와 "시리즈"이다.
근데, 이렇게까지 꼭? 꼭! 봐야 하냐...? - 응!먼저, 해당 장르에 있어 "돈이 잘 벌리는 장르"라는 선입견을 만들어준 사람은 누굴까?
<슈퍼맨>과 <배트맨>, 그리고 <엑스맨>도 있지만 흔히 말하는 "억대 오프닝"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준 영화는 <스파이더맨>이다.
2007년 3편을 슈트를 벗었던 "샘 레이미"가 15년 만에 다시 슈트를 입었다. (공교롭게도 "닥터 스트레인지"는 전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조력자"였는데?)1. 보직과 영웅이 달라진 "샘 레이미"
일단, 그때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샘 레이미", 그가 당시에 선보였던 <스파이더맨 3부작>에는 "세계관"이라는 개념이 전무했다.
물론, 감독 본인과 제작사가 그려내는 청사진은 존재했겠지만 이에 대한 갈등은 2007년 <스파이더맨 3>로 나왔으며 '하차'와 '리부트'라는 결과로 도출된다. (그로 인해, 이후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나오게 된다.)그런 점에서 처음부터 경기를 운영하는 "선발"이 아닌 중간에 투입하는 "중계", 그리고 선수 본인이 아닌 "감독(케빈 파이기)"의 "청사진(세계관)"대로 움직여줄까?
무엇보다 부제 <대혼돈의 멀티버스>에도 쓰여있듯이 넘나드는 세계관으로 되려, 관객들에게 혼란을 줄법하니까...
하지만, "샘 레이미"는 그 누구보다 "청사진(세계관)"을 가장 잘 이해하는 선수이다.2. 똑같은 공인데, 왜 다르지?
먼저, 전작 <닥터 스트레인지>가 호평을 받았던 시각 효과(ex.'미러 디멘션')부터 살펴보자.
"야구"를 비롯하여 스포츠에서 말하는 "자세"는 '어떻게, 힘을 전달하는지?' 혹은 '부상 없이 건강하게 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그런 점에서 '미러 디멘션'은 문제가 없으나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다.
무엇보다 전작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까지 여러 차례 선보인 장면은 신선함이 떨어지기까지 한다.분명히, 똑같은 홈런 타자이고 강속구 투수임에도 타격폼과 투구 자세는 다르다.
그런데도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유에는 '자신에게 맞는 폼과 자세가 있다'라는 것이다.
'특히, 실밥을 어떻게 쥐는지?'에 달라지는 공의 궤적처럼 "샘 레이미"의 '미러 디멘션'은 무섭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는 관절이 우두둑거리며, '미러 디멘션'에서 나오는 "스칼렛 위치"의 장면으로 부족함이 없다.3. 외면부터 내면까지 무섭다!
앞서 말한 '미러 디멘션'에서 보여준 "스칼렛 위치"의 무서움을 비롯해 시가전에서 나타난 촉수 괴물, 썩은 시체의 "닥터 스트레인지"까지 외적인 모습부터 관객들을 한층 물러서게 만든다.
이외에도 "공포 영화"에서 볼법한 카메라 워킹까지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어떤 느낌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재밌는 건, 전작의 감독 "스콧 데릭슨"도 <살인소설> 등 "공포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그리고, 이 가운데에서 무서움이 여과 없이 전달되는 장면은 "스칼렛 위치"와의 추격전이다.
<왓 이프...?>에서 나왔던 "캡틴 카터"를 비롯하여 그 세상의 "어벤져스"가 등장하는데, 머리가 터지거나 돌려지고, 허리가 잘리는 등의 제법 고어스러운 장면들로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다.
여기에 "닥터 스트레인지 일행"을 쫓는 그녀의 모습은 역시, <왓 이프...?>에서 보았던 "좀비"를 연상시킬 만큼 우두둑거린다. (역시, 무서워!)4. 영화도 혼자가 아닌 "어벤져스"
그렇다면, 관객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만든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원동력은 뭘까? - 아이러니하게도 이 힘의 원천은 본 작품이 아니라 <완다비전>에 있다.
물론,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 설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오빠와 남편, 그리고 가족을 잃은 "완다"의 감정, 그리고 마지막에 보여주는 그녀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완다비전>이 차지하는 역할을 배제할 순 없다.
앞서 말했듯이 "샘 레이미"는 그 누구보다 세계관을 잘 이해하는 선수이지 감독이 아니다.(이제는...)작년 <블랙 위도우>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이터널스>, 그리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살펴보자!
"가족 영화"로 정리되는 <블랙 위도우>와 "8-90년대 홍콩 무협 영화"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팬 서비스"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그리고 <이터널스>까지 각자의 특색보단 "MCU"라는 큰 퍼즐, "세대교체"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보여준 으스스한 활기가 반갑다. - 역시, 원조가 뭐가 다르긴 한가보다.
-
- 웃으며 다시 만날 그 내일까지, 잘 지내자 우리
너와 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경기도의 어느 동네에 사는 세미와 하은이다. 세미의 마음이 두근댄다. 내일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 한 번 밖에 없는 날이다. 즐길 준비만 하면 된다. 하지만 세미의 수학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둘도 없는 친구 하은이다. 하은이도 가면 안 되나? 수학여행을 가려면 경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하은이의 집은 그렇게 지갑 형편이 충분하지 않다. 수학여행에 가지 않는 하은. 세미는 불안하다. 세미의 수학여행에 하은이가 없다면 재미가 절반으로 급감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방법이 없을까?
세미가 꿈에서 깼다.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안 그래도 수학여행 안 갈까 불안한데 꿨던 꿈이 생각하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불안감을 낳는다. 사실 오늘 하은이는 자전거에 치여서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만약 심하게 다친 거면 어떡해? 선생님에게 조르고 조른다. "직접 가보면 되잖아!" 가보기로 한다. 하은이게 가는 세미. 심장이 조금씩 두근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세미의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기엔 너무 어렵다. 하은아. 난 널 사랑해. 너와 나, 행복할 수는 없는 걸까?
간단하고 먹먹하게
글쓴이는 이 <너와 나>를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라고 생각한다. 2023년이 두 달이나 남았지만 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미덕을 이야기할 때 사랑을 형상화하는 방식을 가장 먼저 써야 한다. 이 영화에서 오고 가는 마음은 빈 공간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예를 들어 세미의 성격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세미는 불안하다. 왜 불안할까? 영화를 보다 보면 이유가 너무 간단해서 알기 쉽다. 안 그래도 간단한 이유라 몰입하기 쉽다. 하지만 이 몰입하기 쉬운 공감대가 영화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영화의 핵심이 된다. 핵심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간단명료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간단명료해서 이야기가 와닿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갈등을 다루는 방식은 사실상 사랑의 속성을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사랑의 속성 중 하나는 존재와 부재의 차이를 돌이켜보면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존재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했기 때문에 사라지면 아프다. 이 두 차이를 영화가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이 차이를 분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각본은 환상적이다. 어렵지 않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지켜야 할 선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재가 있다. 한국의 현대사에 대한 부분인데, 이 소재를 구체적으로 적는다면 아마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그러나 조현철 배우가 2022년 백상예술대상 남우조연상 수상 후 수상소감에 언급한 걸 아는 분들은 걱정하지 마시라. 사소한 스포일러다). 이 영화는 이 소재를 다루면서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절한 선을 지키고 있다. 우선 이 영화가 이 소재를 다루는 건 합리적이다. 이 영화 자체가 두 사람 사이의 관계성을 탐구하면서 사랑의 빈자리를 주로 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서로가 있다 간 빈 공간을 묘사하는 데 있어 이 사건을 분기점으로 찍는다는 것에 효과적이다. 이야기 소재가 서사에 의미가 생겼다. 이 일이 단지 재미있게만 쓰이지는 않은 것이다. 또 이 영화가 대화하는 방식이 있다. 이 영화는 하은이가 세미에게, 또 세미가 하은이에게 하는 말에 관한 영화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때 두 사람이 처한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이 영화의 핵심이 우리가 아는 이 사건의 한 부분과 본질적으로 어울린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이 영화에 수많은 이미지들이 들어간다. 거울이나, 시선이나, 동물 같은 것들이 영화에서 상징이나 암시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 상징 중에 ‘들어갈 법 한데 없는 티조차 나지 않는’ 이미지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조현철 감독이 이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겠다는, 섬세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다른 관점에서 윤리적인 선을 지킨다는 점 역시 훌륭하다. 우리가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이 부분들이 군더더기가 되어 감정발화의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 탁월하다. 영화에서 억지 신파극이 없었다는 의미다. 만약 이 영화가 우리가 아는 신파극처럼 전개된다고 하면 작품의 진정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영화 후반부에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있던 일을 하나하나 돌이키다 문득 완벽히 혼자인 나를 발견하고 엉엉 운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관점에서는 그게 정말 슬플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그런 이야기 전개가 폭력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이입에서 오는 탄식이 아니라 상처받은 주인공을 보고 불쌍해서 울게 만드는 것이다. 후반부가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면 영화는 이 일을 단지 재미있으라고 사용한 셈이 된다. 영화가 후반부에 감정을 이입시키는 방식은 이 반대다. 사랑의 속성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인물들의 마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껴진다.
빛과 카메라
영화는 전체적으로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 아래에서 이뤄진다. 온갖 뮤직비디오와 브이로그, 드라마와 영화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는 단골손님처럼 자주 사용됐다. 올해 초에 개봉했던 영화 중에서도 이를 찾을 수 있다. <가가린>은 영화가 주인공의 꿈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연출법이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다. 영화의 핵심과 등장인물의 처지가 어울리기 때문에 작품의 잔상이 관객에게 오래 남는 것이다. 이 <너와 나>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이야기 내적으로 왜 몽환적인 분위기를 품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후반부에 설명한다. 이 ‘빛을 활용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 이유’의 질의응답이 영화 내적에서 너무 간단하기 때문에 작품의 화법이 간단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이야기가 꿈처럼 느껴지는 것이 정서적으로, 이야기 상으로도 분명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인물을 담는 방식도 흥미롭다. 영화의 몇 장면을 보면 카메라는 불필요한 모습도 담는 것처럼 보인다. 거울과 관련한 장면이 그렇다. 영화의 두 번째 장면에서 카메라는 거울을 비춘다. 그런데 거울을 비추는 인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인물을 직접 찍지 않은 것이다. 또 이 영화의 카메라는 단순히 이야기 내에서 인물들끼리 움직이는 모습을 찍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 세미와 하은이의 모습을 보여줄 때 그 누구를 비추지 않고 두 주인공을 비춘다던가, 세미의 시점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았다는 점이 그렇다. 이 장면은 왜 인물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설명한다. ‘전지적 카메라 시점’이 되는 셈인데, 이 역시 영화에서 분명한 이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촬영과 연출의 강점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었다.
하은이와 세미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김시은, 박혜수 배우는 생동감이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다. 하은이를 맡은 김시은 배우는 <다음 소희>에서의 연기보다 더 좋았다. 김시은 배우 입장에서 <다음 소희>에서의 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소희가 서서히 잠식된다는 연출은 이 실제 배우가 이런 경험이 없다면 구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너와 나>의 하은 역은 이 전제조건에서 더 나아가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 인물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선에서 활짝 피고 미끄러지는 연기를 보여준다. <다음 소희>에서 연기도 보이면서 그 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다 읽고 연기를 했을 텐데, 이 입장에서 보면 김시은 배우가 ‘어떤 마음이셨나요?’ 물어보고 싶어 진다.
다른 주인공인 박혜수 배우 역시 탁월하다. 세미의 연기는 감정적으로 깊었다. 세미의 캐릭터는 하은이에 비해 단순하다. 세미는 사랑에 진심이다. 사랑에 진심이면 당연히 서투르다. 서투르기 때문에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너무 드러났다. 이 인물 묘사를 다른 관객 분들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박혜수 배우는 이 이기심일지도 모를 마음을 내내 분출한다. 하지만 밉지 않다. 이 ‘밉지 않다’라는 거리감은 영화의 감정이입과도 이어진다. 영화가 점층법처럼 사랑의 잔상을 서서히 밟아가기 때문에, 느슨해진다면 인물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감정이입이 되야 보여주는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박혜수 배우는 이 영화에서 인물이 사랑에 빠진 순간이 가진 양면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이를 거리감을 유지하며 보여준다. 이때 더 어떤 마음을 보여주면 관객이 ‘세미가 하은이를 사랑하고 있구나’ 느낀다는 걸 알고 연기하는 것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나 여타 드라마들에서 볼 수 없었던 배우의 섬세한 모습이었다. 아마 박혜수 배우가 이 작품을 계기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다.
내 사랑아
사실 영화를 보면서 아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긴 했다. 바로 이 영화의 카메오와 관련된 장면이다. 영화가 고등학생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또 유머를 넣으려고 했다는 것이 이야기에서 잘 느껴지는 편이다. 그래서 조현철 감독이 이 인물을 이렇게 묘사한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순간마저 이 인물이 이랬어야만 했을까?라는 데에는 의문이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흐름이 약간 끊기는 듯했다. 인물이 중언부언하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을 흐리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장면이 두 개 있다. 후반부에 이 영화의 사건이 직접적으로 들어간 장면이 그랬고, 노래방에서의 장면이 그렇다. 두 장면 역시 글쓴이가 너무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을 이 장면들로 근거한다면 납득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이 영화는 약점 같은 부분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글쓴이가 생각하는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다. 사랑이 왔다간 자리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그 사랑의 의미를 우리에게 묻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누구나 이 영화와 같은 일을 겪는다. 너무나도 당연한 문장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문장 아래에 우리가 무시할 수도 있는 여러 가지의 아름다움이 있다. 너와 나의 관계, 사랑의 의미,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들, 예술이 사회에게 던지는 위로, 우리 반드시 내일 다시 만날 테니 잘 지내자는 약속까지. 그 모든 의미를 영화는 가로지르며 따스한 온기를 건넨다. 아마 글쓴이는 살아가다 이 영화와 관련한 무언가를 만나면 또 생각에 빠질 것이다(<헤어질 결심>처럼). 하지만 두렵지 않다. 이 영화와 꿨던 아름다운 꿈을 지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했고, 여러분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우리 꼭 다시 만날 것이다.
-
- 실패 속에서 찾는 삶의 의지
모든 것이 잘 안 풀리는 순간에는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어진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자체로 무기력한 느낌을 받는다. 그 상황 자체는 실패이지만 충분히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주저앉아 비관적인 생각들을 한다. '실패자'라는 낙인만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낙오자'라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진다. 그리고 그 비관적인 생각의 바다에서 더욱 빠져나오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간간히 접할 수 있는 노숙자들에 대한 인식은 '실패자' 혹은 '낙오자' 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춘 사람들이다. 여러 가지 사연이 있겠지만 그들은 생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돈을 구걸해 끼니를 겨우 해결한다. 그 낙오의 늪을 빠져나올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건 본인의 의지다. 보통 우리는 노숙자들을 구제불능이나 삶을 포기한 사람으로 대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작은 계기가 있다면 그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다. 그 기회는 대부분 그들이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아주 작은 의지를 만들어준다.
노숙자들의 작은 의지를 보여주는 영화
영화 <드림>은 노숙자들이 자신들만의 작은 의지를 발견하는 과정을 담는다. 이들은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지하철 역 앞에서 잡지를 판매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비용을 벌고 있는 이들이다. 그러니까 아예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한 상태는 아니란 의미다. 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판매 활동 이외에는 다시 사회로 복귀할 기회를 못 찾는 인물이다. 다르게 말하면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는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들이 참여하게 되는 국제 노숙자 월드컵은 축구를 하는 노숙자들의 의지를 더욱 극대화시킨다.
영화에는 노숙자들 이외에 실패자들이 또 등장한다. 바로 전직 축구 선수인 홍대(박서준)와 다큐멘터리 PD 소민(아이유)이다. 홍대는 노력파 축구 선수였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동료를 실력으로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 와중에 불미스러운 사고를 친 그는 축구 선수를 그만두고 연예인으로 데뷔하려고 한다. 그때 노숙자 축구팀의 감독을 맡아 자신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려 하는 인물이다. 본인은 이 일에 참여하기 원하지 않지만, 연예 기획사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참여하게 된다. PD 소민은 자신이 가진 PD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인 노숙자 월드컵 다큐를 찍으려는 인물이다. 이마저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노숙자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의지 없는 사람들이 다시 의지를 가지게 되기까지
소민을 제외하면 참여하는 노숙자들과 홍대는 축구 대회에 나가는 것에 큰 의지가 없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노숙자들은 축구 실력도 없지만 제대로 해보려는 의지도 없어 보인다. 홍대는 감독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팀을 구성하고 만드는 것 자체에 흥미가 없다. 그래서 이 축구팀이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 또 다른 실패의 문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업실패로 가족과 멀어진 환동(김종수), 빚보증을 잘못 서서 아내와 이혼당한 효봉(고창석), 장애인 여자친구를 위해 축구를 하는 범수(정승길) 그리고 실종된 여자친구를 찾으려는 인선(이현우) 등 노숙자들은 각자가 가진 사연이 있다. 주로 이 네 인물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는 각각의 실패자들이 왜 자신의 인생에서 낙오자가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보여준다. 이런 각자의 사연은 그들을 낙오자로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다시 의지를 가지게 만드는 작은 불씨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불씨가 활활 타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감독 역할을 수행하는 홍대일 것이다. 그는 노력해도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못 이긴다는 생각에 축구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억지로 감독직을 맡게 된 그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된 훈련을 시키지 않는다. 홍대가 바라보는 노숙자들은 인생의 실패자였고 자신 또한 실패자라는 생각이 부정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또한 전 세계 노숙자들이 하는 월드컵 대회에 나가서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홍대는 팀의 구성원 중 누구에게서도 희망을 보지 못한다.
홍대가 팀으로서의 희망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희망들을 보게 된다. 그들의 주변인을 통해서 보게 되는데 그건 하나같이 팀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모습들을 보게 만든다. 이혼남 효봉은 자신의 딸을 해외로 떠나보내야 하는 처지다. 그의 딸이 경기장에 찾아왔을 때, 효봉과 딸이 함께 하는 모습에서 효봉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은 의지를 발견한다. 그 이후 환동, 범수, 인선 등에게도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숨겨져 있는 의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 의지를 살아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다시 원래 삶으로 돌아간다는 꿈
영화 제목의 <드림> 은 그들이 가진 꿈을 의미할 것이다. 노숙자들의 꿈은 대회의 우승이 아니라 다시 원래 그들의 삶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삶에 있는 그들의 가족이 바로 그 꿈속에 들어있다. 그 꿈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건 그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승리가 아니라 멋진 패배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의지를 드러낸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승리로 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지가 깨어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드림>은 이병헌 감독의 히트작인 <극한직업>과 같은 오락영화는 아니다. 이야기에 다양한 유머와 슬랩스틱이 포함되어 있지만 실패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느껴지는 안타까운 감정과 감동을 더 부각한다. 하지만 그런 감정적인 부분이 신파로 가지 않도록 유머를 통해 적절하게 조절하고 있다. 여러 가지 아쉽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실패자들의 서사를 통해 우리가 실패를 바라봐야 할 관점을 제시한다. 실패했더라도 그 과정을 뜯어보고 그 안에 참여자들이 얼마나 성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참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유머나 재치 있는 대사들은 역시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보여줬던 것과 비슷하다. <멜로가 체질>은 마니아들에게 사랑받은 시리즈이지만 조금은 오버스러운 대사와 유머가 시청자들의 호불호를 나뉘게 만들었다. <드림>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단점도 후반부의 빠른 경기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상당 부분 상쇄된다.
영화 <드림>은 실패자들이 실패하는 영화다. 하지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노숙자들은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는다. 그들은 경기장에서 그 의지를 경기에서 보여줬고 생중계된 경기를 통해 그들의 가족들에게도 그 의지가 전달되었다. 그들의 의지를 보면서 축구 선수 홍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축구에 대한 의지를 다시 발견한다. 영화는 한 번의 실패가 삶의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작은 의지를 살릴 수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도 이야기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실 수 있어요.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
- 스펜서 (2021)
** 본 리뷰는 <스펜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스펜서 (2021)
감독: 파블로 라라인
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샐리 호킨스 등
장르: 드라마
개봉일: 2022.03.16
러닝타임: 111분
다이애나 스펜서의 지옥 같은 성탄절
영국 왕실의 크리스마스 기간을 함께하기 위해 '다이애나 스펜서(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홀로 차를 몰고 왕실 소유의 저택, 샌드링엄 하우스로 향한다. 이곳은 '스펜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국 왕가가 한자리에 모인 그곳엔 화려한 드레스, 방을 가득 채운 크리스마스 선물들, 그리고 수석 셰프 '대런(션 해리스)'가 고급 식재료들로 완성한 만찬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임에도 길을 잃고 지각을 한 다이애나에겐 불안과 스트레스가 가득하다. 저택에 들어선 순간부터 왕실을 모시는 '그레고리 소령(티모시 스폴)'은 왕실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몸무게를 재고, 3일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입어야 할 드레스가 정해져 있어 그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미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는 중인 남편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의 기분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왕실의 모든 수하인들은 허울 뿐인 왕실에 충성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옥죈다. 결국 다이애나의 울분은 인내심의 끝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그녀는 마침내 해방을 좇아 한없이 질주한다.
창살 없는 감옥, 자유를 향한 갈망
<스펜서>는 '다이애나 스펜서'의 비극적인 삶을 모티브로 상상을 가미하여 쓴 허구의 이야기다. '다이애나 스펜서'의 삶이라면 '이 정도의 사건쯤은 벌어질 수 있었겠지'라는 생각으로부터 발현된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보통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지만, <스펜서>는 오로지 왕실의 크리스마스 파티 기간인 단 3일의 시간만을 다룬다. 따라서 사건의 발생이나 줄거리의 기승전결보다는 오로지 '다이애나'의 심리적 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따라서 그 복합적인 심리를 선명하게 표현해야 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도입부에서 영국 왕실을 위한 식재료를 배달하는 차들이 지나가는 길 위에 죽은 꿩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이는 마치 자유를 좇아 영국 왕실을 벗어나는데 성공했지만, 끝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다이애나'를 상징한다. 시작부터 미장센을 통해 극에서 다이애나의 불행과 슬픔이 그려질 것을 예고하며 극의 분위기를 미리 예측할 수 있게끔 만든다. 극중 꿩들은 왕실 사람들의 사냥 연습을 위해 길러지는데, 마치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왕세자비의 역할에만 충실할 것을 요구받는 '다이애나'의 삶과 닮아있다. 영국 왕실은 다이애나에게 창살 없는 감옥과 같았으며 그녀는 사냥용 꿩들처럼 꼼짝없이 갇힌 채 자신의 역할과 자유를 향한 갈망 사이에서 끝없는 감정의 충동을 겪는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인생연기
<스펜서>는 오로지 '크리스틴 스튜어트'에 의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위한 작품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그의 뛰어난 연기력이 빛을 발한 영화다. 실제로 외모적인 싱크로율이 높기도 하지만, 극 중반부터는 배우가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실제 인물에 빙의했다고 보일 정도로 역할에 혼연일체 되어 소름돋는 연기를 펼친다.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해 온갖 신경이 곤두선 예민한 상태, 자신만큼이나 소중한 두 아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우울과 압박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왕실 사람들에 대한 분노 등 복잡한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특히나 주변의 모든 것이 다이애나를 옥죄어 올 때의 폭발하는 처절한 괴로움과 심리적인 압박은 관객에게 감정을 전이시킬 정도다.
특정 사건 전개가 아닌 다이애나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이기에 배우의 연기가 가진 파괴력이 핵심이 되는 작품인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대치를 넘어 몇 배로 훌륭한 연기를 펼친다. 과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 인생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스펜서의 불행을 극대화한 연출
<스펜서>는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작품 중 하나인 <재키>와 많은 면이 닮아 있다. 대칭 구도의 촬영 기법, 뿌연 화면의 질감과 부드러운 색감의 활용, 과거의 시대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그레인 필름, 그리고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던 상류층 여성의 삶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오래된 동화 같은 영상미와 다이애나의 파스텔톤 의상이 가진 러블리한 색감, 왕실의 온갖 화려한 장식들과 음식들은 다이애나의 시커먼 불행과 대비되어 그녀의 외로움과 답답한 심정을 극대화한다. 파티용 드레스를 입은 다이애나의 모습은 누구보다 아름다웠기에 드레스를 입은 채 자해를 시도하고, 화장실 변기를 붙잡으며 구토를 해야만 했던 현실이 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그토록 괴로움을 터뜨리는 그녀 곁에는 지원군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단순히 다이애나와 그의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파티 3일의 시간을 그렸을 뿐이다. 하지만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이 마치 30년의 긴 세월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지옥 같은 하루하루는 끔찍하게 길었다. 공포스러운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현악기의 연주, 진주목걸이의 찰랑거리는 소리 등의 청각적 요소가 다이애나의 불안과 공포를 선명하게 대변한다. 매일 같이 이러한 상태를 겪었다고 가정하면, 이혼을 바라고 왕실을 뛰쳐나오는 게 당연한 결과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가 진정으로 바랐던 건
물론 픽션이겠지만, 결말부에 다이애나는 두 아들을 사냥장에서 구출해 차를 타고 맘껏 도로를 달리며 자유를 만끽한다. 수석 셰프가 만든 최고급 음식을 모두 토해낸 그녀가 찾아간 곳은 패스트푸드점 KFC였고, 드라이브 스루 주문을 하며 마침내 자신의 이름 '스펜서'를 당당히 외친다. 극 초반부터 고향집을 향해 마구 달려가고, 허수아비에 걸린 아버지의 낡은 자켓을 가져와 소중히 걸어두는 것을 보면 그는 영국 왕실이 다 앗아갈지도 모르는 자신의 뿌리이자 자신의 자아 그 자체를 지키려 했던 것 같다. 왕실은 자신에게 두 가지 역할을 요구했지만, 결국 그 중 하나인 '다이애나 스펜서'로서의 모습은 사라져만 갔고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에 불행의 늪에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국 왕실의 모두가 그녀의 품행을 비판했을지는 몰라도, 허울 뿐인 전통 속에 사로잡힌 왕가의 그 어떠한 사람들보다 그곳에서 자신을 해방시킨 스펜서의 삶이 가장 고귀하고, 혁명적이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
- 가장 내밀한 욕망으로의 여정
욕망: 우리의 가장 내밀한 본능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망한다. 아니, 이 지구상의 생명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탐하고, 더 즐겁고 행복한 것을 탐닉하고자 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우리의 본능이며, 이러한 본능은 우리들을 헤아릴 수 없이 번화하고 다채로워지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욕망의 종류는 다양하다. 꿈을 향한 야망, 야욕, 야심이 있는가면,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인 의욕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성적 욕망을 말하는 애욕, 정욕, 성욕 등도 있다. 사실, 욕망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따라, 욕망은 무엇으로든 이름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많은 욕구들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지만 가장 괄시 받는 것이 있다면, 두 말할 것도 없이 성욕을 꼽을 수 있겠다.
요즘은 꽤나 개방적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문화권에서는 성애를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 성행위는 암묵적으로 '많은 수가 수행하고 있으나' '차마 발설되지 못할' 욕망으로 치부되며, 그것은 나아 사람들로 하여금, 욕구 그 자체를 스스로 거세해 버리게끔 압박하기도 한다.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는, 가볍고, 방탕하고, 차마 상종 못할 '짐승'이 되기도 하고, '싸구려 인간'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것이 바람직한 성이라면, 우리는 그 욕망을 반드시 억압해야만 할까?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이런 의문에 대한 재치있는 답을 담고 있다.
1. 인생이 재미 없는 여자, '낸시'
'낸시'는 삶이 재미없다. 종교학 선생인 그는 평생토록 학생들에게 그들의 욕망을 단속하기를 강요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그의 인생은 브레이크의 연속이었다. 이건 이래선 안돼. 이건 이렇게 보일 거야.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래, 나는 재미없어. 하지만 내가 ~할 순 없잖아. 이런 말들은 끊임 없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그것은 족쇄가 되어 그의 삶을 지치고 지루하고 지난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그는 그 대단한 오르가즘은 문턱에조차 다다른 적이 없었다.
남편을 잃고 선생 일도 은퇴한 어느 오십 줄. 그런 낸시는 오랜 결심 끝에 새로운 자유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 방법이랄 것은 바로, 젊고 매력적인 남자인 '리오 그랜드'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2. 고지식함과 방탕함
그렇게 고심 끝에 생전 처음 보는 남자의 시간을 샀는데, 낸시는 그럼에도 걱정할 것이 많다. 나이 들어 볼품 없어졌을 몸을 보이는 것도 걱정스럽고, 소위 매춘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사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수없이 갈등한다. 눈 앞에는 근사한 리오 그랜드가 앉아 있지만, 그는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욕망이라는 이름의 낯선 세계로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마치 처음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허둥지둥한다. 초보 운전수가 운전을 할 때 손에 땀을 쥐는 것과 같이, 누구나 처음은 녹록치 않다.
그러니 낸시가 새파랗게 젊고 아름다운 청년인 리오를 마주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네 어머니는 네가 이런 일을 하는 거 아시니?" 같은 고지식한 말들을 쏟아내는 것 뿐이었으리라.
한편, 리오 그랜드는 아주 능숙하다.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산 사람들을 그 각각에 맞추어 즐거움을 선사하는 법을 알았고, 그것에 그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다. 그의 여유로운 태도는 여기서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그는 전문가답게, 조금 특별한 손님인 낸시를 차분히 기다린다. 이윽고 그는, 낸시와의 오랜 대화와 얼마쯤의 춤을 즐긴 끝에, 낸시가 바랐던 것을 선사한다. 그는 말한다. 당신은 아름다우며, 얼마든지 원하는 바를 욕망해도 좋다고. 그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고.
3. 무심한 어머니와 상처입은 아들
그러나 그 대단한 리오 그랜드조차도 완벽하지 않다. 끝없이 사적인 물음을 일삼는 낸시와의 대화를 통해 리오는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아프고 쓰라린 기억을 자꾸만 떠올린다. 그는 어머니의 눈에 지나치게 방탕했던 탓에 미움 받았고, 그 탓에 많은 것을 숨기고 숨으면서 안전한 그만의 요새에 다다랐다. 그는 '리오 그랜드'라는 가면을 쓰고 손님들의 돈을 받음으로써 안전한 곳에서, 마음껏 방탕할 수 있는 시간을 영위한다. 그곳에서 만큼은 그는 탕아가 아니라 전문가가 되므로, 그는 그 안락함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며, 그와 동시에, 그 밖과 안을 철저하게 유리시키고자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런 리오를 그만의 '방'에서 끄집어 낸 것은 다름 아닌 낸시다. 리오가 자유를 되찾아준 바로 그 손님 말이다. 낸시가 과격하고 무례한 방식으로 리오를 '커밍아웃'시킨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한 것이라고 한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행동이었으니까.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있다. 바로 낸시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는 것.
리오에게 낸시는 손님이기도 하고, 저를 매정하게 저버린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 낸시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 다시 말해, '리오 그랜드'라는 인물을 속단하고 고지식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자신이 만든 어떤 '틀'에 밀어넣으려고 했던 일에 대해 사과했다.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너는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낸시는 리오가 자신을 달래며 해주던 다정한 말들을 그에게 되돌려준다. 낸시는 그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리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스스로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남의 욕망을 서둘리 재단하던 과거의 일들을 반성했다. 그 고지식하던 사람이, 비로소 진솔한 인간으로 변한 것이다.
어쩌면 낸시가 리오에게 해준 말은, 그가 어머니, 혹은 그밖의 많은 모진 말을 던지던 이들에게서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른다.
3. 우리가 외면해왔던 내밀한 욕망에 대하여
꼰대와 탕아의 만남은 썩 어울리지도 않은데다가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낸시와 리오는 어떤 부분에서 닮아 있다. 어떤 형태로든 간에, 욕망에 충실한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낸시와 리오는 서로를 만남으로서 각자의 구원을 받았다. 영화의 말미에서 두 사람은 비로소, 그들의 욕망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의 짐을 벗어든 순간, 욕망을 마주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진다. 낸시는 마침내, 그가 50년이 넘도록 느끼지 못했던 오르가즘을 맞이한다.
4. 우리는 욕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 영화는 내내 말한다. 욕망은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좀 더 스스로와 세상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거울에 자신의 맨몸을 비춰보며 미소짓는 낸시처럼,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좀 더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에게 색안경을 끼는 일만큼 비극적인 일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조선 땅에서 나고 자란 유교걸이라 이 영화의 핵심적인 소재인 '매춘'(리오는 시간을 사고 파는 일이라고 했지만)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할지는 조금 더 고민된다. 이것은 보다 복잡한 사회적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벗어 던져야할 족쇄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그걸 차치한다면, 글쎄, 영화 자체는 즐거웠다. 엠마 톰슨은 귀여웠고, 데릴 맥코맥은 섹시하다.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구원했으면서도, 고루한 로맨스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좋았다.
나는 나의 욕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오래 고민해 볼까 한다. 혹시 아는가? 나 또한 누군가에게서 구원을 받거나, 그를 구원하게 될지?
-
- 사랑할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요즘 시대의 자만추
-
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아홉 율리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 세상으로 나온다.
파티에서 만난 만화가 악셀과 사랑에 빠진 율리에,
하지만 삶의 다른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걸 원했고 조금씩 어긋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달려나간다.
-
-
- 영화 <도쿄 리벤저스> 30초 예고편
기대 없는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20대 청년 타케미치는
어느 날 뉴스를 통해 첫사랑 여자친구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유일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었던 그녀를 떠올리던 타케미치는
특별한 타임리프를 통해 10년 전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게 되고
그녀를 살리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이 변해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