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2-27 00:07:07
흐릿한 얼굴 위로 하얀 빛
영화 <밀레니엄 맘보> 리뷰
SYNOPSIS.
그녀는 하오하오와 헤어졌지만 그는 늘 그녀를 찾아냈다. 주술이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늘 돌아왔고 스스로 다짐했다. "은행에 있는 50만 대만달러를 전부 써 버리면 그를 영영 떠날 거야"
그녀는 클럽에서 잭을 만났다. 잭은 항상 그녀를 데리고 다녔고 그녀를 가장 친한 친구처럼 대해 줬다.
이 일은 10년 전인 2001년의 일이었다. 세계는 21세기를 맞이했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축하했다.
POINT.
✔️ <비정성시>, <카페 뤼미에르>, <쓰리 타임즈>, <자객 섭은낭>... 대만 뉴웨이브의 대표자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작품
✔️ 세기말 청춘의 정서를 흠뻑 느껴볼 수 있는 작품.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요즘 젊은이들"의 빠른 속도 속 젊음을 담았다고 평한 바 있습니다.
✔️ 대배우 서기의 저력을 볼 수 있는 작품. 시나리오 없이 시놉시스로 시작해서 촬영한 영화라고 (아니 뭐라고?) 해요.
✔️ 금마장 영화제 촬영상, 영화음악상, 음향효과상 + 겐트 영화제 감독상. 칸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초청받았어요.
✔️ (재)개봉은 2024년 12월 31일. 밀레니엄처럼 찾아올 새해의 새벽에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빛이 어슴푸레한 터널 안으로 배우 서기가 분한 '비키'가 터널을 가로질러 걸어간다. 뚝뚝 비트가 떨어지는 음악 위로, 긴 머리가 흩날리고, 현란한 무늬의 옷에 감싸인 팔을 휘적거리기도 하고... 그 위로 영화 시놉시스가 내레이션으로 등장한다. 헤어져도 계속해서 찾아오는 연인과 매인 듯 자꾸 돌아가게 되는 연인. 3인칭으로 담백하게 풀어낸 내레이션 이후 터널 끝에서 계단을 내려간 비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나면, 방금 들은 내레이션이 영화에 그대로 펼쳐진다. 영화 전반은 비키의 내레이션이 나온 후 그 내용을 화면으로 풀어내는 식이다. 내레이션은 2001년으로부터 '10년 후', 즉 2001년작인 이 영화를 기준으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비키는 '나'라는 1인칭 대신 '그녀'라는 3인칭을 사용해 내용을 풀어낸다. 우연히 만나 불 같은 사랑에 빠져 모든 걸 버리고 서로에게 엉겼던 진득한 풋사랑은, 회상의 말보다 영상 속에서 더 지리멸렬하다.
어리고 철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연인의 관계는 대부분 어두운 조명 속에서 흘러간다. 밤의 간접 조명, 거의 블랙라이트 조명에 가까워 흰 옷이 푸르게 비치는 클럽의 조도, 희미한 빛, 깜빡이는 불빛 아래서나 그들은 서로를 원하고 있다. 그들에게 투명하고 올곧은 직사광선은 내리쬐는 법이 없다. 아침이 되어도 빛은 간유리나 비닐이 덕지덕지 발린 창을 투과하여 들어오며, 그나마도 끊임없이 소리를 빚어내는 유리 문발에 걸려 갈가리 조각난다.

유리알 부딪는 소리는 이내 관계의 파열음으로 발전한다. 목욕 수건과 샤워 타올 차림으로 경찰을 맞이하는 이 커플의 결말은 결국 (이 시대 창작물에 흔했던 방식 중 하나로) 비키를 몰아넣으며 일단락되지만, 내레이션에서 "주술" 같다고 표현했던 것처럼 이 사랑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파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까닭은 아마도... 파멸의 원인이 남긴 자욱이 너무 깊어, 설령 내게 해롭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떼어내기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무감하게 삐그덕거리며 공허하게 지속된다. 하오하오가 몇 번이나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강조하듯 상반된 빛이다. 검푸른 클럽 디제잉의 빛을 집안에까지 가져오는 하오하오와 달리, 붉은 계열 물건이 많은 비키의 방은 언제나 난색 조명으로 밝혀져 있다. 간유리와 유리 발로 깎이고 깨져 들어오는 빛일지언정 같은 빛 안에 있던 날들은 이미 바랬다.

사랑이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와도 발을 내딛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사랑을 징검다리처럼 밟아야만 발을 내딛는 이들이 있다. 땅 위에 단단히 두 발을 딛고 서는 대신, 사랑에서 다음 사랑으로, 때로는 불안한 발을 서서히 옮기느라 두 개의 돌 위에, 발을 괴고 있는 것이다.
휘적휘적 걷던 비키는, 유리알 같은 파열음을 남기며 끈질기게 이어져온 하오하오와의 인연이 잠시 소강 상태에 들어섰을 때 잭을 만난다. 잭은 의아하리만큼 충성스러운 자세로 비키를 보호한다. 억지로 약을 빼앗아야 했던 하오하오와 달리, 그는 부엌에 서서 비키에게 먹일 무언가를 요리한다. 끊임없이 괜찮다는 말을 해준다.

그러나 잭의 요리는 비키의 입맛에 맞지 않아 매운 소스를 몇 번이나 다시 뿌려야 하고, 반대로 잭의 담배는 비키에게 너무 강하다. 도무지 맞지 않는다. 내레이션이 먼저 펼쳐진 후에 영상이 펼쳐져 비교적 알기 쉬웠던 전반부와 달리, 잭의 시간은 영상이 먼저 펼쳐진 후 내레이션으로 정리된다. 하오하오에 비해 잭은 알기 어려운 인물이다.
엉망진창으로 자기를 좀먹는 관계라는 걸 알았다 해도, 요즘 같으면 인터넷에 올리자마자 헤어지라는 댓글이 빗발칠 (아니면 <무엇이든 물어보살> 나와서 서장훈에게 한 소리 씨게 듣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박제될) 하오하오여도, 그와의 관계는 최소한 비키에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잭이 아무리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해도 그는 비키에게 미지의 세계다. 그가 해결하려고 애쓰는 일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알 수 없다.

결국 잭과의 관계 속에서도 비키의 얼굴은 내내 흐릿하다. 잭의 집 부엌에는 큼직한 창이 나 있지만, 비키에 앉아있는 거실은 여전히 난색 조명으로만 겨우 밝혀져 있다. 잭의 자동차를 타고 그에게 얼굴을 온통 기대고 있을 때조차, 비키의 얼굴은 터널 속에서 스치는 조명으로 짧고 흐릿하게만 보인다.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조차 햇빛이 유리에 푸르게 반사되어 얼굴은 흐릿하다. 손에 쥔 머그컵에도 흐린 얼굴 무늬가 찍혀 있다.
영화 내내 비키의 얼굴은 흐릿했다. 흐릿한 간접 조명에 그림자 져서, 클럽의 검푸른 조명에 실루엣만 남아서... 심지어 일본 혼혈 형제와 함께 향했던 유바리 시에서 신나게 눈밭을 뛰어 다니던, 모처럼 생기 있어 보이던 그 날조차 눈밭에 푹 찍은 얼굴은 흐릿한 흔적만을 남겼다. 사랑 비슷한 것에서 사랑 비슷한 것으로, 제 발로 땅 딛고 가기보다 불안하고 빠른 발걸음으로 겅중겅중 넘어온 비키의 사랑이 그랬듯.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서 눈 쌓인 유바리 영화의 거리를 걸을 때, 낯선 외국어를 입내 내어 따라할 때 비로소 비키의 얼굴은 환하게 빛난다.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내레이션은 잭과 하오하오의 순간들을 무감하게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에 대한 감상을 밝힌다. 그리움이 묻어 있던 잭의 외투를. 해가 뜨면 사라져 버리는 눈사람처럼 느껴졌던 하오하오, 그의 불안을 끌어안고 사랑을 나눈 추억을. 비로소 비키는 사랑의 온전한 서술자가 된다.
그 자리에 영화가 있다. 정갈하게 낡아 가는 오래된 포스터들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우리의 흐릿한 얼굴을 비춘다. 흰 눈처럼 빛을 반사해 우리 마음을 들여다 보게 하고, 1인칭의 언어로 나의 사랑을 서술하게 한다. 아무 것도 없이 흰 눈만 내리는 것 같은 그 거리에, 영화가 있다. 우리의 마음이, 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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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록한 세계에서 이야기는 돌고 돌아
세계는 발명되는 것이지 발견되지 않는다. 전체가 곧 각각의 합이라면, 개인이 느끼는 감각의 총체적 집합을 통해 에도 시대 일본의 전반적인 인지를 파악할 수 있을 테다. 하늘이 이어져있어 이 나라와 (기껏해야 가까이는 조선과 명나라뿐이었을) 저 나라들 바깥의 무언가가 더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없는 시대, 더군다나 배를 한참 타야만 수도로 나갈 수 있는 시골 마을에서라면 ‘세계’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개념이다.
나라를 위해 고언하다 면직된 사무라이 출신의 겐베이는 고명딸 오키쿠와 함께 빈곤층의 공동주택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다. 그들에게 계급적 추락은 별 타격이 없는 일이든가 아니면 그들이 변화에 원체 빨리 적응하는 사람들인 것만 같다. 왜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평등이란 언어가 발명되기도 전에 평등의 감각을, 평등해야만 한다는 정언명령을 몸에 새겨 갖고 태어나는 것 같은 사람들. 시대에 따라 예수나 붓다 같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을 사람들.
겐베이는 올곧고 열려있는 사람답게 가난한 하층민들에게 빠르게 친절한 ‘선생님’으로 인식되고, 불가촉천민처럼 취급되는 똥지게꾼 청년 츄지와 야스케를 포함한 모두와 자연스럽게 섞여든다. 츄지와 야스케는 똑같이 가난해도 가장 만지기 싫고 보기 싫은 배설물을 다루는 업에 속한다. 그 사람들 앞에서, 역류한 변소 앞에서 코 막고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바로 겐베이다. 오키쿠 역시 겐베이의 성정을 똑닮은 사람. 그는 절에 나가 빈민층 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친다.
겐베이는 또한 세계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는 유일한 마을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츄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고 말해줘. 그게 최고의 말이야.”라고 일러주곤 운명을 받아들이러 가는데, 공교롭게도 츄지가 연정을 품은 상대는 그의 딸 오키쿠다. 이날 겐베이는 옛 후배였던 사무라이들이 청해온 결투 끝에 살해당하고 아버지를 지키려던 오키쿠도 목을 다쳐 목소리를 잃는다. 비극적이고 고전적이고, 겐베이의 말을 빌리자면 '뒤떨어진' 죽음 전후의 각 장 제목이 묘하다. 원통한 오키쿠. 분노한 오키쿠. 기력을 잃어 방에서 칩거하고 한 계절 넘게 밖으로 나오지 않는 오키쿠.
츄지는 오키쿠를 걱정하고 츄지에게 똥지게꾼이 되라고 권유했던 형 야스케는 원래 하던 대로 할 일을 한다. 시대가 시대이지 않았다면 아무리 격하됐대도 전 사무라이 집안의 따님인 오키쿠와 천민 중의 천민인 츄지는 절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정쟁에 휘말린 겐베이가 파문되지 않았다면 오키쿠가 빈민들의 연립주택까지 끌려내려 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1850년대 후반, 메이지 유신이 채 5년도 남지 않았고 번은 막부의 사절단을 시해하기도 하는 혼돈의 시대라면 어떤 반체제적인 사랑이든 가능해진다.
계절이 몇 번 더 흐르고 오키쿠는 조금씩 회복하며, 츄지는 기어이 “이런 나라도 괜찮겠어요?”란 질문에 수줍게 끄덕이는 오키쿠에게 차마 말로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는 마음을 전하지 못한다. 그러기엔 그의 마음이 너무 크고 절절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눈이 소복이 쌓일 긴 시간 동안 하늘과 땅을 번갈아 계속 가리키고 두드리고 오키쿠를 가리키고 자기 가슴팍을 치는 반복된 모션으로 오키쿠를 어리둥절하게 할 뿐이다.
츄지와 오키쿠 사이 싹트는 마음만큼이나 야스케의 이야기-성,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위치가 눈길이 간다. 야스케는 ‘본래’ 지게꾼으로 시작한 사람이라 처음엔 폐지를 주워 팔다가 사정이 정 어려워지자 ‘어쩔 수 없이’ 지게꾼이 된 츄지와 출발부터 다르다. 츄지는 종이라는 매개를 통해 글을 배우는 일에 대한 일말의 동경을 가졌고, 그와 떼어놓을 수 없는 신분에 대한 불만 섞인 자각이랄까 확장으로의 욕심을 조금이라도 품고 있는 젊은이다. 하지만 야스케는 무례에 발끈하되 운명에는 저항하지 않는다. 야스케에게는 성실하게 하루하루 일해 먹고살며, 종종 극장으로 놀음을 가는 취미만이 그와 남을 다르게 하는 자의식의 전부다.
야스케는 심지어 분별없는 상층민 고용주가 그들에게 똥지게를 통으로 들고 뿌렸을 때, 그래서 츄지가 벌떡 일어나 화낼지 말지 고민하던 그때조차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무릎 꿇고 먼저 잘못을 비는 이다. 이상하게 비굴하지 않은 그의 속죄는, 고민 없는 순응보다는 고민을 이미 모두 끝내버린 이의 체념과 요령 좋은 처세에 가까워 더 슬프다. 야스케가 웃자 망연히 서 있던 츄지까지 덩달아 웃음이 터지는 장면은 ‘하위계급(혹은 소수자)의 웃음은 언제건 무조건 권력자를 불안케 한다’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시대가 그를 그냥 그렇게 초연히 비껴서 있게 두지 않는다. 그 후로도 그는 여러 번 쫓겨나고, 똥을 맞고, 더러운 파리 소리를 듣고, 그 꼴을 오키쿠에게 목격당해 수치를 겪기까지 한다. 오키쿠와 츄지의 로맨스가 살금살금 전개될 때 그 옆에서 흐릿한 관찰자의 위치를 유지하던 야스케는 돌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이야기꾼이 되는 거란 말이지”라고 아무렇지 않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츄지조차 흰소리를 하는 것처럼 여상히 넘겨버린 이 말이 사실 그의 가장 깊은 곳에 그도 모르게 잠재된 소망일지니.
야스케는 실제로 이야기를 잘한다. 그의 넉살은 츄지도 오키쿠도 (아직) 따라할 수 없는 겹겹의 애환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성실은 실제로 한 마을을 굴린다. 그가 오지 않으면 변소가 넘친 공동주택 인근은 아예 기능이 마비되고 만다. 에도 시대 막부 권력이 붕괴되고 ‘세계’가 도래하고 유신과 전쟁이 찾아오기 직전의 1858~59년, 이 마을에서 가장 천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한 사람을 고르자면 다이묘도 유지도 불경 외는 법사도 아닌 야스케인 것이다. 야스케를 겁박해 쫓아낸 한 무사의 집에서 내내 노름하던 동료 무사 중 하나가 정겹게 “아, 고생하는구먼 자네. 하지만 우리보단 자네 처지가 나을지도 몰라!”라고 인사를 건넨 것은 그가 (겐베이처럼)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야스케는 가장 낮은 곳에 도사린 폭발적인 잠재력을 상징하는 이야기의 조각이다. 가장 천한 것과 가장 고귀한 것, 먹고 싸는 일, 이곳의 사람과 저 집의 사람이 다르지 않다는 것. 그것이 이 순환하는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다.
사카모토 준지 감독 X 하라다 미츠오 프로듀서
에무시네마 24/02/25 미니 GV
- 흑백 - 컬러 교차는 왜?
사카모토 준지 감독 : 일단 개인적으로 흑백극을 좋아하는데. 현대극을 찍으면서 흑백 시도하면 의도에만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에 맘껏 흑백일 수 있는 영화 찍고 싶었다. 단편집 영화이기 때문에 각 장의 엔딩을 알리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체 흑백으로 하면 옛날에 만든 영화인가 하고 착각할 수도 있고.
하라다 미츠오 프로듀서 : 기본적으로 순환형 경제에 대한 의식을 저변으로 삼은 영화인데, 이 ‘순환형 경제’란 현대에도 이어지는 얘기이기 때문에 컬러를 통해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려 했다.
- 일본의 ‘좋은날 프로젝트’(후대에 전해주고 싶은 영화) 일환으로 시작된 영화. 만든 계기는?
하라다 미츠오 : 삼십여 년간 영화를 만들었는데 아파서 잠시 영화계 떠난 동안 우연찮게 환경과학자들을 만났다. 일반 대중에게도 드라마성을 중심으로 환경 문제를 전하고 싶어졌고, 그게 바로 여생 동안 만들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에도 시대가 순환 경제의 최고봉이었다고 들었다. 과학자들이 많은 조언을 줬고, 분뇨의 순환을 통해 시대적 배경을 드러내고 싶었다.
(감독님 반응은?) 감독님은 흔쾌히 받아들임… 그래서 심지어 처음 시나리오 제목은 ‘에도의 똥’이다…
- 똥은 어떻게 만드셨는지...
사카모토 준지 : 거리에 뿌리는 거나 일반적인 씬에 쓴 건 박스로... 입에 들어가는 장면에선 배우가 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밀가루 글루텐을 썼다
- 현대 일본영화보다도 1900년대 일본영화 같았는데, 촬영 관련해 옛 느낌을 살리기 위한 디테일은 어떻게 생각하고 만들었는지?
사카모토 준지 : 시대극 두 번째로 만들어보는데, 이전 것은 사실 영화화되지 못했지만 공부는 많이 되었고 그 경험을 통해 다음 시대극은 완벽한 고증을 거쳐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검토하다 보니 그 시대 감독님들은 오히려 자유로웠고 극에 많은 거짓말을 포함하고 있었단 걸 알게 됐다. 그래서 현실의 속박을 좀 신경 쓰지 않고 만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쿠로사와 아키라는 흑백 영화를 찍은 대표적 감독인데 음영 대비를 위해 먹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 방법도 참고하고, 세트에 분무기로 물 뿌려서 흐릿함과 더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흑백이라 더 도전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배우들도 많이 노력해주었다. 쿠로키 하루는 마스크부터 기모노를 잘 소화하는 배우이기도 한데, 그 자신도 기모노를 입고 사는 방법이나 인사법을 공부해오기도 했다.
- 세계라는 단어 없었던 에도시대를 콕 집어 배경으로 한 이유?
270년간의 에도시대 중 말기를 표현했다. 조선 등 쇄국 정책 펴던 몇 안 되는 나라들과 함께 일본이 문호 개방하라는 압력 받던 시대여야 했다. 외부와 일본이 섞이려던 시대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또 세대를 어떻게 볼지… ‘세계’를 굳이 끌어들인 후 삼 년 동안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때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세계라는 단어 자체가 추상적이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에 제작하지 않았다면 제목에 세계가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 라스트씬의 볼록하게 찍은 숲의 의미는?
스님의 세계에 대한 설명, ‘여기서 출발하면 결국 반드시 저기서 돌아온다는 의미’를 구체화하려는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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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감정의 파노라마
정말 마음이 아팠던 순간을 만나면 누구나 울음을 터뜨린다. 마음껏 눈물을 흘리면서 그 슬픔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면 마음속에 있는 무거움과 압박이 조금 해소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매 순간이 기쁨으로 가득 차있다면 물론 행복하겠지만, 실제 인생에선 기쁨을 느낄 시간보단 아픔과 슬픔을 느끼는 시간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슬픔의 감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 영화가 바로 <인사이드 아웃> 1편이다.
2015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기쁨, 슬픔, 까칠, 분노, 소심이라는 감정들이 11살 라일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무척 흥미롭게 보여줬다. 디즈니의 픽사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 감정들과 기억을 처리하는 공간을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창조해 냈다. 기쁨을 담당하는 조이가 조종간을 잡으면 라일리도 기쁨을 느끼고, 분노를 담당하는 버럭이가 조종간을 잡으면 화를 낸다. 실제 라일리가 느끼는 상황에 따라 감정이 변화하는 모습을 무척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쉽게 화면으로 담아냈다.
[첫 번째 감정] 불안
이번 <인사이드 아웃2>는 사춘기가 된 라일리의 감정들을 다룬다. 더 확장된 감정에 어찌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라일리의 모습과 감정들을 보여준다. 특히나 불안은 라일리의 행동을 흔드는 가장 큰 감정이다. 라일리는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 그리고 학업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불안은 라일리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불안으로 인해 라일리는 자주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영화는 라일리가 시험 성적에 대한 불안으로 밤잠을 설치고, 친구 관계에 대한 걱정으로 식사도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사춘기 청소년들이 겪는 공감할 만한 상황이다.
영화는 라일리의 불안이 어떻게 그녀의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불안한 감정에 휩싸인 라일리는 종종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작은 실수에도 크게 자책한다. 이러한 모습은 불안이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두 번째 감정] 당황, 따분, 부럽
불안만 있는 건 아니다. 불안이 주로 영향을 주긴 하지만 중간중간 당황이나 부끄러움을 느끼는 포인트도 늘어난다. 라일리가 학교에서 발표를 하다 실수를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말을 더듬는 순간들이 그 예이다. 특히나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반응했다가 실수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한 상황이다.
따분함을 느껴 누군가를 비꼬거나 무시하는 감정도 자주 찾아온다. 라일리는 수업 중에 딴짓을 하거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청소년들의 전형적인 태도로, 영화는 이를 통해 라일리의 감정 변화를 더욱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부러움도 청소년기에 많이 나오는 감정이다. 라일리는 반에서 인기 많은 친구나, 학업 성적이 우수한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이는 사춘기 시절 많은 이들이 겪는 감정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면서 생기는 부러움이 자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 번째 감정] 자아 형성
영화 초반 자아의 모습은 하얀색이거나, 빨간색이다. 단색으로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던 자아는 영화 후반에는 다채로운 색깔로 변화한다. 상황에 따라 색깔이 이리저리 변화되며, 이는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상징한다.
자아 형성의 과정을 사회심리학적 이론과 연결해 보면, 이는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과 관련이 깊다. 에릭슨에 따르면, 사춘기 시기는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라일리는 영화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며 자신의 자아를 찾아간다. 이는 에릭슨의 이론이 제시하는 자아 정체성 확립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이 과정을 통해 라일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점점 더 명확히 하게 된다. 이는 청소년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영화는 이러한 자아 형성의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내며, 라일리가 성장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담아낸다.
결론적으로 1편의 신선함에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훌륭한 픽사의 감정 세계와 감정의 작용 방식을 영상으로 무척이나 쉽고 감동적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라일리의 감정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사춘기를 겪는 모든 이들에게 큰 위로와 공감을 줄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감정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다양한 감정들이 조화를 이루며 우리의 자아를 형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사이드 아웃2>는, 감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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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물려준 삶을 대하는 태도
흙바닭 위에 파란 방수천으로 세워 둔 큰 천막이 있고, 그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노래 하는 어린 아이가 있는 낡은 사진이 있다. 그 사진 속에는 5살의 내가 웃고 있다. 내 뒤에 세워진 그 천막은 우리 집이었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집이 아닌, 흙 바닥 위에 스티로폼을 깔고 지냈다고. 부부는 참 지독히도 가난했다. 당시 엄마의 가계부에는 콩나물 몇 십 원조차도 외상으로 샀던 일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의 집은 방 하나가 전부였다. 그야말로 단칸방.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있고 ㄷ자로 작은방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의 방 한 칸이 우리 집이었다. 여러 가족들이 화장실 하나를 쓰던 집이었다. 월세를 낼 수가 없어서 흙바닥에 파란색 천막을 쳐놓고 산 적도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난 기억이 없지만, 그 천막 앞에서 해 맑게 노래하는 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증거처럼 남아있다.
어릴 때 아빠는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가난했기에 돈을 쓸 수 없었겠구나 싶었지만, 지금까지도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빠의 의지였던 것 같다. 학벌이 좋지 않아서, 부모가 나빠서, 가난해서…불행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아픔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딸과 한 번 더 웃겠다는 아빠의 강력한 의지.콩나물을 외상으로 살 정도로 가난했다는데, 아빠는 내가 태어나고 며칠 뒤 카메라를 샀다. 미놀타 수동 필름 카메라. 오빠를 3년 동안 키워보니, 이렇게 이쁜 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게 너무 아까운 마음이 들어 덜컥 값비싼 카메라를 샀다는 것이다. 엄마는 “너희 아빠는 그런 사람이지.”라고 말했다. 생활은 팍팍했지만, 오늘의 행복을 놓치지는 않는 사람.
아빠는 그 카메라를 들고 헤헤하고 입을 활짝 벌리고 웃으며, 나와 오빠와 엄마를 담았다. 그 파란색 천막집 앞에서도, 벽지가 다 벗겨진 단칸방에서도, 가난한 배경과 관계없이 우리는 노래했고 춤을 췄다. 아빠는 늘 재미있었고, 장난기가 가득했다. 나는 웃음이 많은 아빠 얼굴 그대로 자주 웃었다. 그 시절 가난한 집 아이들이 그렇듯 미미 같은 인형은 산타 할아버지 선물로 크리스마스에나 한 번쯤 가질 수 있었고, (그것도 이모와 외삼촌의 선물이었다고) 그 흔한 그림책 같은 것도 없었지만, 아빠는 우리 가족을 둘러싼 모든 것이 놀이가 되게 했다. 지도 한 장을 펼쳐놓고, 온 세상으로 상상 여행을 떠난다거나, 어려운 한자를 공부해 서로 맞추는 게임을 한다거나. 흡사 대국을 펼치는 것처럼 진지하게 오목을 둔다던가. 돈과 상관없이 일상의 작은 순간을 행복하게 즐길 수 법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흙바닥 위에 파란 방수 천막으로 간이집을 만들어 살았던 때를 지나, 꽤 오랫동안 가난했던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도 내 기억 속에 남은 것은 결핍으로 인한 서글픔이나 두려움, 걱정, 욕망이 아니라 ‘웃고 있는 표정들’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며, 나는 내내 아빠를 생각했다. 현실이 괴로워도 살아 숨쉬는 순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그런 삶의 방식과 사랑을 자녀에게 고스란히 남겨 준 아빠. 영화의 주인공 ‘귀도’의 삶은 나의 아빠의 삶과 너무 닮아 있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1997년에 상영된 이탈리아 영화이다. 로마에 갓 상경한 시골 총각 ‘귀도’는 운명처럼 만난 여인 ‘도라’에게 첫눈에 반한다. 넘치는 재치와 유머로 약혼자가 있던 그녀를 사로잡은 ‘귀도’는 ‘도라’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분신과도 같은 아들 ‘조수아’를 얻는다. ‘조수아’의 다섯 살 생일, 갑작스레 들이닥친 군인들은 ‘귀도’와 ‘조수아’를 수용소 행 기차에 실어버리고, 소식을 들은 ‘도라’ 역시 기차에 따라 오른다. ‘귀도’는 아들을 달래기 위해 무자비한 수용소 생활을 단체게임이라 속이고 1,000점을 따는 우승자에게는 진짜 탱크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불안한 하루하루가 지나 어느덧 전쟁이 끝났다는 말을 들은 ‘귀도’는 마지막으로 ‘조수아’를 창고에 숨겨둔 채 아내를 찾아 나서지만, 끝내 독일군에게 들켜 잡히게 되고, ‘조수아’가 안심하도록 마지막까지 코믹한 모습을 보이며 시야에서 사라진다. 시간이 지나 ‘조수아’는 아빠가 당부했던대로 모든 사람이 없어졌을 때 숨은곳에서 나오고 되는데, 밖엔아빠 말대로 진짜 탱크가 ‘조수아’ 앞에 와 있었다.
"이건 내 이야기이며
날 위해 희생한
내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이것이 아버지가
내게 남긴 선물이다."
주인공 귀도를 연기한 로베르토 베니니는 이 영화의 감독이며, 도라역의 니콜레타 브라스키는 실제 그의 아내이다. 감독의 아버지는 실제로 수용소에서 3년을 버틴 생존자로, 아들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때 귀도가 어린 조수아에게 그랬던 것 처럼 게임에 비유했다고 한다.
돌아보면 부모가 되기 전에 나의 삶엔 현재와 미래만 있었다.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의 목표를 향해 있던 시선에서, 아이를 낳아 길러보고 나서야, 부모에게 받은 과거의 경험이 고스란히 아이와의 일상에 투영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잠자리에 누워 끝도 없는 세계로 이야기를 뻗어 나가는 시간을 갖는 것, 매일 오늘 발견한 예쁜 말을 기록하는 것, 책을 선물할 때면 꼭 날짜와 짧은 편지를 쓰는 것, 별것 없는 식사 한 끼에도 케첩으로 하트를 그려 넣는 것, 작은 꽃들을 관찰하고 그리는 것, 우리의 귀여운 시간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록하는 것, 매일 일어나는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까지 …부모에게 받은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나를 발견하고서야 어린 시절과 그 시절의 아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아픈 과거에서 배움을 얻지만 얽매이지 않고, 큰 미래를 꿈꾸며 나아가지만 그 때문에 현재를 저당 잡히지 않는 사람. 오늘의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고 균형 있는 삶을 꾸려온 아빠를 통해 나 역시 괴로워도 아파도 매일의 행복을 발견하는 삶의 태도를 갖게 된 것 같다. 아름다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사람과 그를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영화가 내 곁에 있다는 것 또한 오늘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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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부활한 코스믹 호러
세상에 태어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다. 우리는 부모의 DNA를 이어받아 작은 존재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한 길을 걷게 된다. 태어난 순간부터 먹고, 자라며, 배우고,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 과정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된다. 학자들은 이것을 종족 유지라는 학문적 개념으로 설명하지만, 사실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단지 살아가는 본능에 의해 우리는 존재하며, 계속해서 그 본능을 이어갈 뿐이다.
이러한 생명체의 본능적인 삶은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 더욱 극적으로 묘사된다. 이 영화는 단순한 SF 호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조인간, 그리고 에이리언이라는 세 가지 다른 존재가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명확한 본능을 지닌 존재는 바로 에이리언이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폭력적인 행동을 하며, 다른 이들을 해치고 자신을 지키려 한다. 이 점에서 그들의 삶은 극도로 본능적이며,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들이 그저 생존을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주인공은 10대 인간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식민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환경은 무척 열악하다. 부모들은 일하다 죽거나 병에 걸리며, 아이들은 희망 없는 삶 속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다. 그 중심에는 레인(케일리 스패니)이 있다. 레인은 부모를 잃고 나서, 이 우울한 행성에서 벗어나 태양이 떠오르는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기를 꿈꾼다. 이 여정에서 레인과 인조인간 동생 앤디(데이비드 존슨),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은 버려진 회사의 함선을 타고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함선에 숨어있던 에이리언들이 그들의 여정에 큰 위협으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변화한다.
[첫 번째 감정] 인간 레인의 희망
레인은 직접 태양이 떠오르고 지는걸 보고 싶어한다. 종일 비가 내리는 식민행성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장면이다. 부모의 죽음이후 열심히 일하는 시간을 채워 다른 행성 이주를 꿈꿨지만, 정부에서 그것조차 허가하지 않는다. 레인의 희망은 태양이다. 태양을 볼 수 있는 어딘가로 가는 것이 그에게 남아있는 작은 희망의 조각이다. 레인은 자신이 왜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하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왜 살아가야하는가.
그 의문이 레인을 움직이게 만든다. 레인 뿐 아니라 그녀의 친구들도 그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버려진 함선에 가려고 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태어난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드는 방법은 조금 위험한 일이라도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레인 역시 고민하지만 그 일을 해보려고 한다. 태양을 꿈꾸는 그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레인에겐 동생이 있다. 기능 오류로 버려져있었던 인조인간 앤디다. 레인에겐 정말 동생같이 챙겨줘야하는 존재이고, 레인이 힘들어보이면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며 레인에게 위로를 준다. 인조인간 앤디 역시 자신이 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에겐 명확한 목표가 있다. 바로 레인을 위한 선택과 행동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감정] 인조인간 앤디의 미안함
앤디는 스스로를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함을 자주 느낀다. 그의 몸이 고장나고, 움직이지 못할 때마다 레인이 그를 리부트해 주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이는 앤디가 자신의 한계에 대해 느끼는 미안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중반부에서 앤디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더 강력한 인조인간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감정은 점차 사라진다. 앤디는 점차 기계적인 존재로 변해가지만, 그의 본질적인 존재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레인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 목적이 그를 움직이게 만든다.
앤디의 이러한 존재는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등장했던 인조인간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의 철학적인 고민과도 닮아 있다. 데이빗은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인간과 인조인간의 경계가 어디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존재다. 앤디 역시 인간적인 감정과 기계적인 존재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를 탐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의 미안함과 혼란은 단지 기계적 오류를 넘어서, 그가 가지는 존재의 이유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앤디가 다시 원래의 고장난 앤디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적인 느낌 때문일 것이다. 마치 가족처럼 레인을 생각하고 챙기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존재가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난 그 자체가 바로 가족을 위해서라는 아주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비록 인조인간이지만, 이 영화 안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다.
[세 번째 감정] 에이리언의 본능
이 영화에서 가장 순수한 본능을 가진 존재는 에이리언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단지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다른 생명체를 공격하고,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싸운다. 에이리언들은 자신들이 왜 태어났는지,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단순하다. 살아남고, 더 많은 생명을 빼앗아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 그들은 극도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존재지만, 그것은 그들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이 에이리언들을 바라볼 때, 그들의 폭력성에 경악할 수 있지만, 사실 그들 역시 생명체로서 자신을 지키고, 생존하기 위해 싸우는 존재다. 이 점에서 에이리언들의 존재는 인간과도 일맥상통한다. 인간 역시 생존을 위해 싸우고,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이러한 본능적인 생존에 대해 인간과 에이리언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가 그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에이리언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지만, 그들이 가진 본능은 그 자체로 생존의 이유를 설명한다. 반면 인간은 그 존재를 넘어 더 위대한 존재가 되고자 하며,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역시 결국에는 에이리언의 본능과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진화하고자 하는 욕망, 더 강력한 존재가 되려는 욕구는 결국 더 큰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시도에 불과할 수 있다.
성공적으로 돌아온 코스믹 호러
영화를 연출한 페데 알바레즈는 <맨 인더 다크>와 같은 작품을 통해 관객의 심리를 자극하는 스릴러와 호러 장르에서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 감독이다.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도 그는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강렬한 비주얼로 에이리언 시리즈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알바레즈는 공포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며, 단순한 시각적 충격을 넘어 심리적인 공포를 강조하는 연출을 통해 관객을 몰입시킨다. 그의 연출 스타일은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공포 영화에서 벗어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깊이를 담고 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알바레즈가 기존의 에이리언 시리즈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 설정들을 재구성하면서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 점이 돋보인다. 그는 에이리언의 원초적인 공포를 유지하면서도, 우주적 공포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성공적으로 표현해냈다. 기존 시리즈의 코스믹 호러 요소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관객에게 새로움과 익숙함을 동시에 전달했다.
케일리 스패니가 연기한 레인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 자신의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녀의 연기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을 감성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이 그녀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도록 만든다. 인조인간 앤디를 연기한 데이비드 존슨 역시 기계적인 존재와 인간적인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며, 그의 캐릭터에 깊이를 더했다. 이들의 연기는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단순한 생존 영화가 아니다. 인간과 인조인간, 그리고 에이리언의 대립을 통해 생존의 본질과 그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인간이 결코 에이리언의 위협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극악의 존재로부터 오는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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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에 찾아온 낭만
현실에 찾아온 낭만
영화 <어느 멋진 아침> 리뷰
감독] 미아 한센 로브
출연] 레아 세두, 파스칼 그레고리, 멜빌 푸포, 니콜 가르시아, 카밀 르방 마르탱
시놉시스] 여덟 살 난 딸, 투병 중인 아버지와 파리의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산드라는 어느 날 오랜 친구 클레망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일과 가족, 사랑 사이에서 삶은 계속되고 때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하지만 아침은 여느 때와 같이 찬란하게 찾아온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영화 어느 멋진 아침에서 주인공 산드라의 직업이 산드라의 고단한 삶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산드라의 직업은 통역가다. 불어를 말하면 영어로, 영어를 말한면 불어로 양쪽이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창구를 열어주는 존재다. 현실 속에서도 산드라는 가족 사이에서 소통의 창구를 맡고 있다. 이혼한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서, 그리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버지와 학교를 다니는 딸 사이에서, 동생과 어머니 사이에서, 그리고 아버지와 그의 제자들 사이에서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산드라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기 보다는 다른 존재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서로 전달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한다기 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녀의 인생을 대변하듯 그녀의 직업도 통역가로 설정된 것이 인상 깊었다. 통역가 역시 자신의 의견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산드라는 본인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 혹은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우연히 클레망이 다가오게 되고 클레망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랑의 시작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클레망과의 첫 만남에서 자신의 인생에 자신의 감정보다 가족과의 관계에 더 중심을 두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클레망과 더욱 가까워지면서 사랑이 시작된다.
낭만과 함께 맞는 어느 아침영화 어느 멋진 아침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 산드라의 의상이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산드라는 항상 청바지에 티를 입고 생활한다. 일적으로 중요할 때 정장을 입는 것을 빼고는 언제나 바지에 면티를 기본적으로 입고 있는데, 그런 그녀에게 클레망이 찾아오면서 그녀의 옷차림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그를 만나러 갈 때는 원색의 원피스나 치마를 입으며 현실과 다른 낭만을 즐기고 있음을 의상을 통해서 잘 보여준다. 여성으로서 클레망에게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산드라의 본능적인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영화 속에서 이를 완벽하게 구분함으로써 산드라의 고단한 현실과 클레망을 통해 만난 아름다운 낭만이 더욱 대치될 수 있도록 부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 둘은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헤어지게 되고, 정리가 끝난 클레망은 다시 갑작스럽게 산드라를 찾아온다. 그렇게 산드라는 현실 속에서 클레망을 다시 만나게 되고, 이 때 거의 처음으로 클레망을 현실 속의 산드라 모습 그 자체로 만나러 가지 않았나 싶다. 평소의 청바지를 입고 클레망을 만난 산드라는 그렇게 현실 속에서 클레망을 만나면서 낭만과 현실이 조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산드라는 자신의 딸과 사랑하는 클레망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현실과 낭만이 지속적으로 부딪히다가 그 낭만이 현실이 되어 찬란한 아침을 맞이하는 이 영화의 결말 덕분에 잔잔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어느 멋진 아침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현실과 낭만이라는 이원적인 관계를 통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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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 꼭 사랑하겠어'라는 집착이 꾼 악몽
우리는 신혼부부
이 영화의 주인공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 수진과 현수다. 두 사람은 아직까지 연애 초반의 풋풋함을 유지하고 있다. 서로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두 사람. 현수는 배우지만 중요한 역할을 맡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런 현수를 위해 수진은 임산부의 몸을 이끌고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못내 미안한 현수. 하지만 이런 미안함도 신혼부부라면 함께 이겨낼 수 있다. 사실 현수와 수진은 굉장히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 바로 두 사람 사이의 아이가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만 할 것 같은 두 사람. 서로에게 서로가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일상이 만족스럽다.
어느 날. 현수가 자다 일어나서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갑자기 느닷없이 일어나서 뭐라 중얼거리는 현수. “누군가 들어왔어”란 말을 한다. 난데없는 잠꼬대에 아내인 수진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문 밖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가보는 수진. 침실 근처에 있는 드릴을 무기 삼아 누가 있는지 물어본다. 사실 별거 없었다. 다시 잠에 드는 수진. 수진과 현수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이 이야기를 나눈다. 글쎄. 어제 그런 일이 있었어. 그래? 별 일 아니네. 수진이 퇴근하고 난 다음 이뤄졌던 대화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다시 잘 준비를 앞두고 있다. 갑자기 얼굴을 벅벅 긁는 현수. 현수나 수진이나 여기까지는 별 일 아닌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현수의 얼굴에 피가 흥건한 채로 큰 상처가 생긴다. 경악하는 수진. 두 사람의 잠에 끔찍한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묘한 기시감
영화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향수가 있다. 첫 번째는 구로사와 기요시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일본의 영화감독이다. 기요시는 무의식에 내재해 있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던 예술가다. 일본 영화 역사상 가장 큰 발자국을 찍은 <큐어>, 2006년에 발표한 <절규>가 대표작이다. <잠>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은 갈래가 나뉘는데, 이는 기요시의 필모그래피와 유사하다. 구체적으로 비슷한 영화는 <큐어>다. 두 영화(<큐어>, <잠>)의 주인공 서사는 공통점이 있다. 내적으로 미쳐가는 인물을 각기 설득력 있게 표현한 것이다. 또 기요시는 시각적으로도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괴함을 묘사했다. <큐어>의 엔딩신이 나 <회로>에서 웅덩이와 관련한 장면들이 그렇다. 이는 <잠>에서도 볼 수 있는데, 영화에서 카메라가 침대 밑을 비추는 신이 있다. 이 장면은 <큐어>에서 주인공이 아내를 살해하고 난 다음을 연상케 한다.
다음은 두 오컬트 영화 <유전>과 <곡성>이다. <유전>을 단지 가족영화로만 정의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가족이기 때문에 거역할 수 없는 요소가 영화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 <잠> 역시 가족이기 때문에 알거나 알지 못했던 것들이 이야기에서 중요하다. 또 <곡성> 같은 경우는 극 중 서스펜스를 만드는 것을 어느 정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돼서 이 부분을 깊게 풀어쓸 수는 없지만 <곡성>을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공통점을 쉽게 찾으실 것이다. 이렇게 병치시킨 이야기 때문에 단점도 느껴진다. <유전>과 <잠>의 캐릭터가 조금 비슷한데, 정유미, 이선균 두 배우의 호연으로 끝까지 몰입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이 세 영화들이 생각난다고 해서 <잠>이 남 따라 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잠>은 기존 호러영화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데이터들을 유재선 감독의 영상언어로 깔끔하게 재구성한 영화다. <큐어> <유전> <곡성>과 분명한 차이점이 되는 지점이 있다. 주인공 수진과 관련된 부분, 현수의 직업, 딜레마를 왜 다뤘는가에 대한 부분 등 기존의 영화들과 구분되려고 했던 수가 돋보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구분되는 차이점은 영화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몇 장면들은 공간이 열리면 열리는 대로 닫히면 닫히는 대로 그 특이점을 보여준다. 수진의 동선과 관련된 부분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벌이는 행동이라 관객으로 하여금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것들은 <유전>, <곡성>, <큐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연출 방식이었다.
이건 몰랐지
영화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예상을 벗어난다는 점이다. 정유미 배우가 맡은 수진 캐릭터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 영화를 이끈다. 여주인공이 플롯의 핵심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수진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과 이에 대한 근거를 쌓는 과정은 영화가 다른 호러/미스터리물에 비해 가지는 분명한 차이점이다. 이를 위해 영화는 수진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관객들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끔 사건을 배치한다. 예를 들어 수진의 어머니 캐릭터, 중반부에 등장하는 핵심 조연 둘, 현수의 리액션이 그렇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진의 내면묘사다. 100분 언저리의 짧은 러닝타임에 굵직한 사건이 많아 지나치기 쉬우나 초반부 이 인물이 갖고 있는 설정은 사실상 이야기의 모든 지점을 관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이 사소한 요소들을 후반부에 방점으로 사용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정유미 배우의 호연이 돋보인다.
현수 캐릭터 역시 관객의 예상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현수의 직업은 배우지만 담당 배우 이선균처럼 유명한 인물이 아니다. 드라마에서 큰 역할을 맡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무명 배우라는 직업적 특성은 영화의 배경이라고도 볼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이 설정이 영화에서 다른 두 가지의 핵심 소재를 은유하는 것으로 영화가 묘사하고 있으면서 영화가 다루고 있는 딜레마를 표현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 인물의 설정을 인간의 도리와 부부가 지켜야 할 선으로 표현한 점은 영화가 갖고 있는 창의성이다.
두 가지의 갈림길
영화의 이야기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어 관객들끼리 다양한 해석을 토론할 수 있는 작품이다. 주류 여론이 어느 쪽으로 향할지 예상할 수는 있지만 반대측면에서 이야기를 바라봐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두 설정 각자가 갖고 있는 디테일이 살아있어 n회차를 해도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두 딜레마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다 함께’라는 부분이다. 수진과 현수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묘사도 둘의 연대를 두고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전개하는지에서 온다. 가족이 다 함께 모이거나/해체되어 있는 것이 영화의 갈등구조인데 이 부분을 염두하고 본다면 이 영화가 어떤 부분을 염두하고 짠 이야기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맑은 눈
이 영화에서 이선균, 정유미 두 배우는 엄청난 연기를 보여줬다. 정유미 배우의 수진 캐릭터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거대한 원동력이다. 헤어스타일에 따른 각기 다른 감정변화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영탁 역 이병헌 배우가 생각나는 퍼포먼스였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3부를 잊지 못할 것이다. 글쓴이도 3부를 보면서(물론 1,2부도 정유미 배우의 연기가 감탄스럽다) 이 배우가 이런 연기도 잘할 것 같았어 감탄했다. 글쓴이 같은 사람들은 아마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나 <우리 선희> <다른 나라에서> 같은 작품으로 기억하지 드라마에서의 활약상은 잘 모른다. 오랜만에 볼 수 있었던 그녀의 다른 얼굴이 흥미롭다. 이병헌 배우와 함께 온갖 '~주연상'의 유력 후보다. 파트너인 이선균 배우는 내내 깔아주는 듯한 퍼포먼스를 하다가 강력한 임팩트 한 방을 보여주는데, 이 장면이 가진 위압감과 장면 연출은 박력을 가지고 있다.
굳이 꼽자면
영화의 단점을 굳이 뽑자면 ‘이야기를 다 보고 나서’로 함축할 수 있다. 강한 템포로 뛰어다니는 영화이기 때문에 몇 장면은 생략한 것 같다. 수진의 감정선이 더 들어가면 영화가 더 입체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수의 내적 갈등이 좀 더 들어갔다면 엔딩 해석이 더 폭넓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보고 싶은 것과 보여주고 싶은 것의 딜레마만을 다루기 위해 캐릭터가 약간 희생된 것이다. 하지만 관람에 큰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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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주 최신 개봉영화(화이트데이, F20, 스틸워터, 쁘띠마망, 인어가 잠든 집)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0월 1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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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혹성탈출 : 새로운 시대> 티저 예고편
레전드 블록버스터 시리즈의 귀환!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티저 예고편 공개 2024년 극장 대개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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