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2-25 22:06:13
낯선 오늘을 미망하는 시선
영화 <미망> 리뷰
미망 (Mimang, 2024)
낯선 오늘을 미망하는 시선
개봉일 : 2024.11.20.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 92분
감독 : 김태양
출연 : 이명하, 하성국, 박봉준, 백승진, 정수지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종로 길거리. 한 남자가 통화를 하며 길을 찾고 있다. 그는 자신이 서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가다 보면 알겠지”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그의 말대로 그가 아는 길이 나타난다.
영화 <미망>은 이 남자와 같은 태도로 정처 없이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변화하는 길과 시간 위를. 걸을수록 낯선 길은 익숙한 길로 변하고 멀리 떨어져 있던 시간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다. 참으로 멜랑꼴리한 경험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특히 도시, 서울은 정말 쉴 틈 없이 변화를 반복한다. 정신 차려보면 무언가 사라져 있고 익숙해졌다 싶으면 낯선 무언가가 생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것들이 과거로 빨려 들어가지만 나는 과거로 갈 수 없기에 그것들을 잊은 채 낯선 오늘을 살아간다.
가끔은 이 낯선 오늘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오늘 하루 난 뭘 했지? 오늘 하루가, 오늘 있었던 만남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지?. 그저 시곗바늘을 따라 똑같은 자리를 달린 기분. 이런 찜찜함을 안고 잠들었던 밤이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미망>은 나의 이러한 의구심과 찜찜함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똑같은 자리를 달린 게 아니라는걸, 지금의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나를 잡아줄 변치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미래의 나도 길을 잃지 않을 거라는 걸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든다.
과거 연인이었던 남자와 여자는 길 위에서 재회한다. 어딘가 낯설어진 길과 과거 연인의 모습. 이 길이 맞나, 지금 내가 말 걸려는 사람이 그 사람이 맞나. 두 사람은 반신반의 상태로 그 길을 걷지만 여전한 남자의 걸음걸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 추억 같은 그대로 남아있는 익숙한 것들을 찾아낸다.
두 사람이 다시 각자의 길을 가면서 잠깐의 만남은 다시 과거가 되고 그 위로 현재의 새로운 만남이 덧씌워지지만 남자는 한 가지를 깨닫는다. 오늘 나는 12시부터 12시. 같은 자리로 돌아온 시계가 아닌 어제와 다른 나로서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을.
남자와 여자는 과거를 미망(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 하며 낯선 길 위를 미망(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한다. 그러다 작은 익숙함과 재회하고 자신의 발자취를 미망(멀리 넓게 바라봄) 한다. 마지막 미망은 잠깐의 위로를 주고 그들은 다시 각자의 낯선 길로 발을 돌린다. 미망과 미망과 미망. 낯섦과 익숙함, 인연의 과거와 현재. 이 단어들의 조합은 우리의 인생을 표현하기에 한치 부족함이 없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길이 바뀌고 사랑이 지나가고 서울 극장이 사라지고 친구가 죽는다. 남자와 여자의 마음은 아직 과거에, 서울 극장에, 또 떠난 친구에게 머물고 있는데 변화는 너무 빠르게 일어난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길을 헤맨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
동상 하나에도 얽힌 이야기가 수십 개인데 인연에 얽힌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남자와 여자. 그리고 친구는 추억을 떠올리며 지나간 과거와 새로운 현재를 다시 체감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과정이 그렇게 서글프기만 한 건 아니란 거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에 담긴 추억과 감정들은 오래도록 남는다. 모든 게 변한 길거리의 구석, 좁은 골목 한 편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소우처럼 일부는 유실됐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오래된 영화 <미망인>의 필름처럼. 도시가 변하고 극장이 사라지고 남자가 화가가 되고 친구가 택시 운전사가 되고 또 여자가 엄마가 되어도 지난 추억과 감정은 마음속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있다.
여자의 새 연인은 매번 길을 헤맨다는 여자에게 ‘자세히 보면 변치 않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을 보고 길을 찾으면 된다’고 말한다. 언제나 길 한편을 지키며 보행자들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무언가처럼 변치 않은 추억과 인연은 우리의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맬 때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오늘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어 내 마음속 변치 않는 무언가로 남을지 모르니 실망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며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낯선 길 위에서 여자와 재회했던 남자는 새 연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12시에서 12시. 똑 같은 거 같아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네요.”.
낯설고 허탈한 오늘의 끝에서 <미망>을 만난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12시에서 12시를 지나온 건 어제와 같지만 오늘의 나는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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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족이 완벽한 정반합을 망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 퇴각 명령을 받은 '고니시'(이무생)는 즉각 본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권력 공백 상태인 일본 열도에서 곧 내전이 일어날 테니. 하지만 문제가 있다. 순천 왜성을 포위한 조명 연합군 함대를 뚫을 길이 없다. 이에 고니시는 '진린'(정재영)에게 열띤 뇌물 공세를 벌이고, 간신히 연락선 한 척을 포위망 너머로 보내는 데 성공한다.
이 소식을 들은 '이순신'(김윤식)은 분노한다. 조선군은 왜군 퇴각로를 막고 그들을 섬멸할 준비를 마쳤기 때문. 그는 진린에게 양자일택을 요청한다. 조선군 옆에서 싸우거나, 조용히 철군해 달라고. 이순신과 진린이 갈등이 극에 달하는 사이, '시마즈'(백윤식)의 함대는 고니시를 구하기 위해 노량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7년에 걸친 전쟁을 끝낼 마지막 전투의 막이 오른다.
장점만 모아 '3의 저주'에 도전하다
시리즈 영화는 징크스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몸집을 키운 2편이 1편의 매력을 잃어버리는 '속편의 저주'가 대표적이다. 그 못지않게 자주 볼 수 있는 징크스가 바로 '3의 저주'다. 시리즈물 중 유독 3편이 비평적으로 평가가 안 좋은 경우를 말한다. 반복된 소재 때문에 피로감이 누적된 <트랜스포머 3>, 배급사 개입으로 인해 스토리가 중구난방이 된 <배트맨 포에버>와 <스파이더맨 3> 모두 '3의 저주'를 피하지 못한 사례다.
김한민 표 '이순신 삼부작'의 완결편인 <노량: 죽음의 바다>는 다르다. <한산>이 <명량>의 성공에 도취하지 않은 채 장점은 유지하고 단점을 채워 '속편의 저주'를 피했듯이, 이번에도 '3의 저주'를 영리하게 피해 간다. 특히 두 형의 장점만 취하려는 접근법이 인상적이다. 신파 연출이 과했던 <명량>, 이순신이라는 캐릭터는 돋보이지 않았던 <한산>을 반면교사 삼아 완벽한 정반합에 닿으려고 한다.
실제로 조선군, 명군, 왜군 세 진영을 오가는 초반부 외교전과 신경전은 <한산>의 초반부를 닮았다. 그러면서도 <명량>처럼 삼도수군통제사의 인간적인 일면도 놓치지 않는다. 셋째 아들 '이면'(여진구), 전라우수사 '이억기'(공명) 등 먼저 전사한 이들을 그리워하는 이순신의 모습은 모두가 아는 결말로 향하는 길을 감동적으로 장식한다. 다만 이 정반합은 완전하지 않다. 영화의 끝에 덧붙인 사족이 그 감동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한산>과 <명량>이 조화를 이룬 빌드업
<노량>의 도입부는 앞선 두 편과 유사하다. 모든 플롯을 포괄하는 확실한 콘셉트를 잡았다. <한산>의 콘셉트가 '의로움'이었고, <명량>의 모티브가 '천운'이었듯이. <한산> 속 의병, 항왜, 거북선과 이순신의 화살은 모두 같은 의미였다. 누군가를 지키려는 의로운 전쟁을 상징했다. <명량>은 조류의 변화, 거북선의 등장, 백성들의 응원을 통해 천운을 다양하게 보여줬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기적적인 승리의 발판이었다고 암시했다.
<노량>의 콘셉트도 명확하다. '집'이라는 공통 모티브를 살렸다. 당장 명군은 집에 가고 싶은 군대고, 왜군은 집에 가야만 하는 군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명군은 조선에서 싸울 명분이 없어졌고, 왜군은 본국에서 벌어질 다이묘 간의 내전을 대비해야 하니까. 그래서 왜군과 명군은 치열한 외교전을 벌인다. 집으로 가야만 하는 왜군은 명군을, 집에 가고픈 명군은 굳이 전투를 벌이려는 조선군을 설득하려 애쓴다.
이때 <노량>은 <한산>의 화법을 취해 명군과 왜군의 상황을 묘사한다. 자칫 낯설 수 있는 명군과 왜군과 정치적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풀어내며 그들이 싸워야만 했던 이유를 보여준다. 이 대목은 이순신과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서로의 전술을 알아내기 위해 첩보전을 펼친 <한산> 전반부를 확장한 버전처럼도 느껴진다. 진린, '등자룡'(허준호), 시마즈 등 새로운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존재감을 과시할 장이기도 하다.
그와 동시에 <노량>의 전반부는 이순신의 개인적 아픔을 보여준다. 영웅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한다는 점은 <명량>과의 공통점이다. 그는 셋째 아들 이면이 왜군과 싸우다 죽는 악몽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집을 지키려는 아들을 돕지 못한다. 아들의 이름을 외치며 흘린 그의 눈물에는 차마 왜군을 고이 보낼 수 없는 한이 서려 있다. 이 대목은 조선군의 심정을 대변한다. 조선군은 이순신처럼 돌아갈 집을 잃은 군대이기 때문.
<한산>처럼 보여준 노량 해전
착실히 쌓아 올린 명분과 감정은 100여 분에 달하는 해전 시퀀스로 터져 나온다. 우선 잘 짜인 군무를 보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판옥선이 눈을 사로잡는다. <한산>이 어린진과 학익진을 선보인 것처럼 이번에도 진과 진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일례로 시마즈의 수군을 기습 공격할 때 조선군은 일자진으로 일제히 화력을 쏟아붓는다. 비교적 전투력이 약한 명군 집중 공격하는 왜군 진영을 일도양단하는 진법도 인상적이다.
동시에 왜군의 반격도 자세히 보여주며 긴장감을 살린다. 시마즈는 위기의 순간마다 함대를 냉철히 지휘하며 마지막 맞수다운 임팩트를 남긴다. 선봉대가 조선군에게 기습당하자 자기 손으로 선봉대를 포격, 침몰시킨 후 활로를 뚫는 대담함을 보여준다. 관음포에 갇히자 고향을 그리워하는 병사들을 자극해 사기를 끌어올린다. 조명 연합군의 협공에는 등자룡과 진린의 함선을 집중 공략으로 맞대응해 전투의 균형추를 맞춘다.
다만 야간이라는 환경은 일장일단이다. 어두운 화면은 조선군의 화력을 강조할 때 유리하다. 특히 조선군이 화포, 총통, 신기전을 총동원해 화력을 퍼붓는 장면은 거친 박력과 압도적인 쾌감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부감샷으로 전체적인 진의 움직임을 보여줄 때는 문제가 된다. 불을 끈 채로 배들이 이동하다 보니 상영관 환경에 따라서는 조선군, 왜군의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명량>처럼 터뜨리는 감정선
조선군, 명군, 왜군 가릴 것 없이 뒤엉킨 배에서 난전이 벌어지는 순간부터 <노량>의 분위기는 전환된다. 특히 롱테이크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전까지는 상업 영화다운 볼거리에 충실한 전투가 등장했다면, 이 순간부터는 진정한 노량 해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명량>에서도 롱테이크 백병전 장면이 당시 해전의 처절함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바 있는데, <노량> 역시 롱테이크 씬을 활용해 노량 해전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갑판 위에 자리 잡은 카메라는 왜군-명군-조선군 순으로 옮겨가며 일반 병사의 시점에서 노량 해전을 비춘다. 조선군은 복수를, 명군은 신의를, 왜군은 귀향을 위해 죽을 각오로 백병전을 펼치고 있다. 그 광경은 지옥도나 다름없다. 피사체의 주체가 죽으면 그를 죽인 주체가 카메라의 대상이 되고, 또 그를 죽인 사람인 대상이 돼야 할 정도다. 7년 간의 전쟁과 살육을 단 한 순간에 끝내려는 처절함이 스크린을 뚫고 나온다.
그 끝에서 카메라는 이순신을 찾아낸다. 난전 속에서 그가 먼저 죽은 아들과 동료들의 환상을 보고, 갑판에 떨어진 북채를 들어 북을 치고, 전투를 독려하던 중 전사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앞선 롱테이크 씬에서 곧장 이어지는 장면임을 생각하면 이 대목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앞선 전투가 처절하고 참혹할수록 이순신의 회한은 짙어지고, 고뇌도 깊어지기 때문. 삼부작 중 인간 이순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순간처럼도 보인다.
그는 죽은 동료들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왜군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아들의 기개는 대견하지만, 지켜주지 못해 한스럽다. 그들을 기리기 위해서는 왜군을 섬멸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죽어가는 다른 장병들에게 또 죄를 짓는 듯하다. 이처럼 형용하기 힘든 감정의 파고 속에서 이순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전투를 독려하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북을 치는 것. 바로 그 순간 <노량>은 클라이맥스를 맞이한다.
다만 그 이후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명량>이 신파가 과했다는 지적을 받았듯이, <노량>도 후반부로 갈수록 균형을 잃는다. 물론 연출 자체는 세련됐다. 모두가 기대하는 이순신의 전사 장면에 속임수를 주고, 마지막까지 유언을 아끼며 성웅의 죽음을 영리하게 보여준다. 전사하는 순간을 직접 보여주지는 않는다. 대신 진린이 오열하고, 장남 이완이 계속해서 북을 치며, 장례를 치르는 모습만 봐도 가슴은 충분히 미어진다.
단지 피로감을 떨칠 수 없을 뿐이다. 길고 긴 전투 시퀀스가 이어지는 가운데, '굉장하고 장엄하고 뭐라 항의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인 방식으로 시리즈를 끝내고 싶은' 욕심이 끼어든다. 그 결과 영화 말미는 늘어진다. 이순신 전사 앞뒤에 북을 치는 장면이 슬로 모션으로 다소 과하게 반복되고, 조선군과 명군의 돌격 장면도 필요 이상으로 연달아 등장하는 식이다.
다 된 밥에 떨어뜨린 마지막 오점
전반적으로 <노량>은 <명량>과 <한산>을 거쳐 완벽한 정반합으로 시리즈를 끝내려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등장한 쿠키 영상이 끝내 발목을 잡는다. 노량 해전 이후 광해군과 신료들이 순천 왜성에 모인다. 그들이 이순신을 기리고, 일본 공격을 다짐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작가적 관점에서 이순신의 죽음 이후를 그려낸 장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쿠키 영상 이후 150분 간 쌓아 올린 감동은 한순간에 식어 버린다. 고증, 완성도, 연결성에 모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정유재란 이후 조선이 일본 공격을 논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해당 논의는 광해군이 아닌 선조 시기에 진행됐다. 정작 광해군은 즉위 1년 차인 1609년에 기유약조를 체결하고 포로를 송환받는 등 조선과 일본의 우호 관계를 다지는 데 주력했다.
완결성도 문제가 된다. <노량>은 집을 잃은 사람, 집에 가고픈 사람, 집에 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혈투를 보여줬다. 함선 간의 전투보다도 병사들의 시점에서 이어진 롱테이크 씬이 인상적일 정도였다. 이는 죽음을 끝내기 위해 더 많은 죽음을 각오한 이순신의 비장함이 돋보인 배경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전쟁과 죽음을 암시하는 쿠키 영상은 승전의 기쁘보다도 전쟁의 참혹함을 강조하는 메시지와 상충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시리즈 전체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갑작스럽다. '이순신 삼부작'은 조정의 정치적 갈등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었다. 당장 선조나 광해군은 시리즈 내내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극 중 선조와 광해군의 갈등 역시 초반부에 잠깐 암시될 뿐, 주요 플롯이라 볼 수는 없다. 또 이순신과 선조의 관계가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반면, 이순신과 광해군의 관계는 알려진 바가 없기에 이번 쿠키는 더 어색하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분명히 기념비적인 영화다. 이순신이라는 위인을 고찰한 작품으로서도, 사극 해전 영화로서도, 김한민 감독의 변화와 발전을 볼 수 있는 시리즈로서도 부정할 수 없는 성과를 일궈냈다. 하지만 그 의의가 크고 의미가 깊을수록 찬물을 끼얹는 마무리는 퍽 아쉽다. 이순신의 죽음을 그 어느 때보다 장엄하고, 품격 있게, 공들여 그려냈기에 특히 그렇다.
Acceptable 무난함
더 바랄 것 없이 품격 있는 마무리. 쿠키 영상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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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워즈'의 위대함만 다시 깨닫고
디즈니에는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더불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콘텐츠 '스타워즈' 시리즈가 있다. 1970년대 3부작을 시작으로 반 세기 가량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스타워즈' 시리즈가 가진 거대한 세계관은 영화와 드라마를 넘어 계속해서 뻗어나가는 중이다.
경쟁사의 스페이스 오페라 콘텐츠가 내심 부러웠는지 넷플릭스 또한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시리즈를 크리스마스 연휴 앞두고 선보였으니 바로 '레벨 문 파트 1: 불의 아이'다. 특히나 영화 '300', '맨 오브 스틸', '배트맨 대 슈퍼맨' 등으로 관객들에게 눈도장받은 잭 스나이더가 연출을 맡았으니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레벨 문 파트1: 불의 아이'는 오랜 세월 권력을 유지해 오던 왕국이었으나 권력 다툼으로 왕권의 혈통까지 끊어진 마더월드와 혁명을 꿈꾸는 주변 식민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화로운 변방 행성에 지배 세력의 군단이 위협을 가하자, 신분을 숨기고 마을에서 조용히 살던 이방인 코라(소피아 부텔라)와 여러 행성의 아웃사이더 전사들이 모여 은하계의 운명을 건 전투에 나서게 되는 내용이다.
'레벨 문 파트1'인 만큼 영화가 담고 있는 엄청난 세계관과 그 속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 및 인물들의 서사를 쌓아가는 데 집중했다. 주인공 코라의 알려지지 않은 과거를 시작으로 코라와 함께 뜻을 모으는 전사들 카이(찰리 허냄), 타이투스 장군(자이먼 운수), 네메시스(배두나), 타라크(스태즈 네어) 등 인물들의 과거 및 현재 능력을 보여준다.
문제는 코라를 중심축으로 하는 전사들을 차례대로 소개하는 데 지나치게 할애하다 보니 생각보다 전개 속도가 느리다. 관객들이 기대하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진정한 맛인 SF 요소의 신비함이나 전투 신에서 오는 쾌감은 너무나도 싱겁다.
'압제에 저항해 싸운다'는 익숙한 주제 의식을 풀어내는 방식 또한 '레벨 문'의 신선함을 떨어뜨린다. 거대한 제국에 대항하고자 아웃사이더들이 굳센 신념으로 부딪쳐 마더월드 군단들에게 한 방 먹이긴 하나, 생각보다 밋밋하다는 점이다. 새삼 '스타워즈' 시리즈의 대단함을 깨닫게 만든다.
잭 스나이더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지목되는 슬로 모션 기법이 '레벨 문 파트1'을 관람하는 이들에게 방지턱 역할을 해버린다. 주인공 코라가 제국군을 상대로 홀로 거침없는 전투력을 발산하는데 지나치게 슬로 모션을 걸어 속도감을 떨어뜨린다. 해당 액션 연기들을 곱씹어보면 그리 대단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는 영화의 클라이맥스까지 이어지고 있어 한숨만 나오게 한다.
국내 관객들이라면 여성 검객 네메시스 역으로 분한 배두나를 향한 기대감 또한 클 것이다. 두루마기를 연상시키는 의복에 갓을 쓰고 기계 의수로 검술을 선보이긴 하나, 파트1에서 그의 분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의 활약을 기대하려면 내년 4월 19일에 공개되는 '파트2 스카기버'까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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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스포일러 주의!!!!!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소리가 날까?"
파랑의 우울에 관해서 써볼까 한다. 드라마가 끝나고 난 뒤, 나는 파랑이가 별이라고 생각을 했다. 파란 별이 표면온도가 가장 높다는 말도 있으니까.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에서야 자신을 봐달라는 식으로 밝게 빛나다가 폭발해서 사라져버린 별.
파랑이가 연극으로 선택한 작품은 신파랑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꺼져가는 태양 또한 파랑이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로봇 세 명은 파랑이가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마지막 인류학자가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나는 태양이 왜 꺼져가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 질문을 했다면 아마 이런 대답이 돌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더 이상 자신의 춤이 닿으리라 생각하지 못하겠고, 더 이상 자신의 춤을 봐줄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 그의 춤이 닿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연극을 준비하면서 느꼈을 것이다. 아무도 그의 결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무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파랑이가 마지막으로 극단의 일원들을 만나고 다녔을 때, 닿지 않은 것이 아닌 머리카락을 태워 억지로 끊어버린 것이었단 걸 알았을 때 파랑이의 눈빛은 … 정말 깊고 어디론가 빠져버릴 것 같았다.
파랑이의 집 또한 나에게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 야외에는 어지럽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집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텅 비어있다. 나는 그것이 파랑이의 내면 같다고 생각했다. 파랑이의 우울한 파랑으로 가득 찬 것 같이, 퍼런 색의 소주병으로만 가득 차 있다.
파랑이는 모든 사진에서 항상 웃고 다녔다고 했다. 사실 나는 파랑이가 왜 계속 웃고 다녔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속은 너무 고칠 수 없이 망가져 겉옷이라고 주섬주섬 꺼내 입었던 것일까? 돈도 없고 망가져서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사지 못하고 근육통약으로 어영부영 상처를 덮었다. 그 사이사이 빈틈으로 우울의 파랑이 물 밀려오듯이 밀려왔다. 결국에는 죽을 사람이란 걸 알았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후 적어도 나에게는 닿았다고 말하고싶다.
우리는 각자 닿을 일 없이, 각자의 궤도를 떠도는 별들이다.
별과 별 사이 수억 광년의 거리.
속삭이듯 말해서는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온 몸으로 춤을 춘다.
그 별의 당신에게는 아직 판독 불가의 전파에 불과하겠지만,
언젠간 당신의 안테나에 닿길 바라며,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춤을 춘다.
- 파랑이의 연출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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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주 차 개봉작 추천,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신작 <바빌론>의 개봉부터
언론과 평단의 극찬을 받고 있는 <애프터 썬>의 개봉까지!
그럼 2월 첫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더 자세히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극장 개봉 영화
바빌론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89분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디에고 칼바 등
개봉: 2022.02.01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줄거리
황홀하면서도 위태로운 고대 도시 ‘바빌론’에 비유되던 할리우드에서 꿈 하나만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이를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강렬하면서도 매혹적인 이야기를 그린 영화
관전 포인트
<라라랜드> <위플래쉬>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신작 <바빌론>은 BBC가 선정한 2022년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으로 꼽히면서 국내 관객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또한 대세 배우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가 주연으로 출연하며 어떤 연기를 선보일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
ⓒ 네이버 영화
개요: 공연실황 | 한국 | 103분
감독: 오윤동
출연: 방탄소년단
개봉: 2022.02.01배급: 씨제이포디플렉스 주식회사 , CJ CGV
줄거리
ARMY의 함성과 함께 전 세계 229개 국가와 지역에서 함께 즐긴 ‘BTS <Yet To Come> in
BUSAN’ 콘서트의 폭발적인 무대와 생생한 현장의 열기까지, 그날의 모든 순간을 담아낸 영화
관전 포인트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국내에서 열린 콘서트였던 ‘BTS <Yet To Come> in BUSAN’은
방탄소년단의 대표곡들이 모두 담긴 역대급 셋리스트로 화제를 모았으며, '달려라 방탄'을
콘서트에서 최초로 공개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영화관의 다양한 특별관에서 생생한
현장감이 담긴 콘서트 영상을 관람하며 콘서트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애프터썬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영국 | 101분
감독: 샬롯 웰스출연: 폴 메스칼, 프랭키 코리오
개봉: 2022.02.01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줄거리
20여 년 전, 아빠와 보낸 튀르키예 여행이 담긴 캠코더를 보며 이제야 알게 된 그 해 여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관전 포인트
2022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었던 샬롯 웰스 감독의 데뷔작 <애프터썬>은 전 세게
유수 영화제에서 49개 부문 수상, 120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국내에서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마 베프
ⓒ 네이버 영화
개요: 코미디 | 프랑스 | 99분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출연: 장만옥, 장 피에르 레오 등
개봉: 2022.02.01
배급: (주)무비다이브줄거리
한 물간 프랑스 중견 감독 ‘르네 비달(장 피에르 레오)’이 평소 흠모하던 아시아 배우 ‘장만옥’을
캐스팅해 고전 무성 뱀파이어 영화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프랑스 영화의 저물어가는 명성을
기록한 ‘영화 속 영화, 영화에 관한 영화’
관전 포인트
<퍼스널 쇼퍼>의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초창기 영화로 국내에는 27년 만에 정식 상영을 하는
것이다. 영화가 무엇인지, 시네마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관한 심층적 고뇌를 다룬 작품이다.
단순한 열정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프랑스 | 99분
감독: 다니엘 아르비드출연: 라에티샤 도슈, 세르게이 폴루닌
개봉: 2022.02.01
배급: 영화사 진진줄거리
아니 에르노의 베스트셀러 동명 원작을 스크린에 옮기며 한 여자의 거부할 수 없는 육체적 욕망과
탐닉에 대한 이야기를 관능미 넘치면서도 밀도 높게 담아낸 작품
관전 포인트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의 베스트셀러 '단순한 열정'을 영화화해 주목받고 있는 영화
<단순한 열정>은 책 속 문장을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표현해내며 유수 영화제에서 평단과 언론의
찬사를 받고 있다.
관계의 일변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95분
감독: 김기림배우: 김지민, 류준열, 이원규 등
개봉: 2022.02.01
배급: (주)씨엠닉스줄거리
때론 억울하기도, 때론 서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앞으로 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룬 4개의 단편 영화
관전 포인트
김기림 감독이 들려주는 각기 다른 등장인물들의 서툰 인생 이야기로 '응답하라 1988'에
출연하며 인기를 끈 배우 류준열이 출연하며 관심으로 모으고 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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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스펜스에 청춘 한 조각
출처 스포츠서울
사회적 명망이 있던 한 검사 출신 로스쿨 교수가 국내 최고 로스쿨 학생들의 모의법정 시간에 의문사를 당한다. 사인은 필로폰 과다복용에 의한 죽음현장에 남아있던 증거품이라곤 설탕 봉지, 안경, 필로폰 봉지 그리고 커피컵이 전부. 모의변론 수업이었기 때문에 학생들 다수가 목격자이고, 동시에 이들은 잠재적 용의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피해자와 질긴 인연이 있는 한 검사 출신 동료, 양종훈 교수가 용의자로 체포된다. 학생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런데 이 피해자, 그리 청렴결백한 삶을 살진 않았던 것 같다. 그에게 원한을 가진 이가 용의자 교수 뿐만이 아닌데, 이거 범인이 누구라는 거야, 대체???
1. 로스쿨 학생들의 각기 다른 성격, 빡세고도 청춘다운 캠퍼스 라이프
한국에서 가장 비상한 리걸 마인드(Legal mind)들이 모여있다는 한국대 로스쿨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있다. 차상위 계층전형으로 들어와 비상한 머리들 틈에서 아등바등 버티고 있는 강솔 A, 사시 2차를 합격하고도 굳이 로스쿨을 와서 동기들 중에서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한준휘, 까칠한 듯 도도하게 인생이 성적 아니면 의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두 명의 비슷한 청춘, 강솔 B 그리고 서지호. 로스쿨 최고 얼짱, 방예슬 그 외 의대생이다가 로스쿨을 온 승재까지 모든 캐릭터들의 성격이 명확하다. 이 각기 다른 성격들이 충돌하면서 모난 성격은 다정한 사람이 깎아내고, 츤데레처럼 챙겨주기도 하면서 티격태격 정드는 모습이 어른인 척 하는 아기들 같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성적 경쟁할 때에는 한없이 얄밉다가 준휘가 잠시 용의자로 몰려있을 때에 왕따도 시키지만 혐의점이 없어지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모습까지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경쟁적인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본성적인 모습부터 오해가 팩트로 무효화 되었을 때는 쭈뼛거리며 사과하는 찌질한 모습까지 우리네 모습 아닌가.
빡세게 공부하는 청춘들의 모습과 그들을 알게 모르게 지켜보는 교수진들의 묘한 흐뭇한 분위기는 심각한 플롯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 인간적이기까지 하구나 라는 인상을 심어주어 뭐 하나 놓치고 가는 게 없는 드라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학생이 머리를 쥐어뜯고 있으면 시크하게 힌트 주고 가는 양종훈 교수, 학생을 고소하는 쇼까지 하면서까지 더 큰 논란을 막아준 로스쿨 원장, 학생 이름을 일일이 다 외우는 김은숙 교수까지 정말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훈훈한 사제지간을 볼 수 있게 된다. 난 이 부분이 가장 이 드라마에서 판타지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판타지를 통해서 빡빡한 로스쿨 생활도 나름 아름다운 청춘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제작진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본다.
2. 범인을 찾고자 하는 메인 플롯, 캐릭터들의 사연을 담은 서브 플롯들
다른 법정 드라마인 비밀의 숲의 티저에서 등장한 카피 중에 이 드라마 플롯과 유사한 카피가 있었다.
"침묵을 원하는 자, 모두가 공범이다"
매 화가 release 되면서 이 피해자, 서병주 교수와 관련한 각 캐릭터들의 사정이 공개되고 있다. 목격자들 모두 사건 당일 서병주 교수의 죽음을 말하는 데 있어서 조금은 솔직해 질 수 없는 사연들이 있다. 각기 모종의 이유로 누군가는 양종훈 교수를 범인으로 몰아야 하고, 누군가는 지켜내야 한다. 지금 8화를 기준으로 솔 A는 변하지 않을 양종훈 교수 편이지만 예슬, 준휘, 서지호, 강솔 B 등의 솔직할 수 없었던 사정이 오픈되었는데, 앞으로 남은 회차에서 어떤 떡밥들이 풀어질지는 지켜볼 만하겠다. 모든 캐릭터들에 납득할 만한 서사를 갖게 하는 것, 정말 당연하지만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는 양종훈 교수가 범인이 아니라면, 누가 범인이냐는 큰 플롯을 가지고, 각 캐릭터들의 서사를 나뭇가지 삼아 진실을 위해 저울질하는 세부 플롯의 디테일함에 매화 시청하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사실 드라마 비밀의 숲은 로스쿨의 학생들이 일선에 투입되어 겪는 이야기라는 점만 다를 뿐, 범인을 찾고자 하는 메인 플롯에서 각기 개인의 사정을 서브 플롯을 넣어 모든 캐릭터의 서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시청자들이 내용에 몰입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메인 플롯의 단단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서브 플롯의 주인공들의 사연들이 이해가 가야 한다. 시청자들을 설득을 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비밀의 숲, 로스쿨 모두 법정 드라마라는 점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드라마에 빠지게 만들도록 설득하는 과정 모두 흡사하다. 아마 이 두 드라마만 그런 것이 아니리라.
결국, 드라마, 영화 자체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대단히 새로운 게 필요하지 않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메인 플롯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서브 플롯을 정교하게 짜야 하는데, 서브 플롯을 정교하게 구성하려면 인물의 성격에 기반해 그들이 했을 법한 행동들로 시청자들에게 '그럴 수도 있었겠다'라는 반응을 이끌어내면 그것이야말로 드라마 흥행의 좋은 징조가 아닐까. 캐릭터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 시청자는 이미 드라마 내용에 빠져 있을 테니까.
그런데 분석해보면 어렵지 않아보여도 막상 쓰는 사람이 되면, 이것만큼 골치아픈게 어디있을까. 그래서 어느 분야든 창작자들이 제일 존경스럽다.
결론- 좋은 드라마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동반한 시청자 설득 과정,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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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무뢰한>, 아니면서 무뢰한 척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씨발년아."
자신을 칼로 찌른 여자가 있다. 그런데도 그 칼을 꽂힌 채로 그는 그녀를 위한 새해 덕담을 내뱉는다. 이 영화의 느낌은 마지막 대사 하나로도 충분하다. 아니다. 포스터처럼 어스름한 새벽녘의 피곤한 두 얼굴로도 충분하다. 왜 이 영화를 다시금 찾았냐고 묻는다면 그런 날이라서 그랬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담배 연기를 맡고 싶은 날이라서. 다들 그러다 담배를 시작한다고 하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담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연기를 좋아하는 거니까. 담배연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게 보고 싶은 날이었다. 저 대사 같은 말을 해주고픈 사람이 떠올라서일 수도 있다. 처음 봤을 땐 영화의 결말이 정말 '영화'같다고 생각했었다. 뭉근하게 피어오른 담배연기에 자욱하게 빠져있다가 저 결말을 보고선 갑자기 담뱃재가 왈칵 쏟아져내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먼 얘기도 아니더라. 정말 미운데, 그래도 정이 몽당 떨어질 만큼은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온갖 상처를 받고도 그래도 잘 살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는 사람. 기분이 무척이나 나쁘지만 가끔 궁금은 한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쯤은, 내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늦게 깨달은 탓이리라.
앞서 드라마틱한 마지막 애증의 한 마디를 남긴 이는 어딘가 비뚤어진 형사 정재곤이다. 정의구현은 무슨,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법의 테두리를 왔다 갔다 한다. 그는 형사가 두려워해야 할 건 범죄자와 구분이 되지 않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뿐이지, 그의 수단과 방법은 범죄자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어딘가 헛헛해 보이는 살쾡이나 표범 같다. 그는 가장 빠른 루트로 가기 위해서라면 가장 잔인해질 수도 있다. 누군가의 약점을 빠른 시간 내에 파고들어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그가 유명세를 떨치게 된 것이 돼지발정제를 써서 용의자의 애인에게 자백을 얻어 사건을 해결한 것일까. 그러나 그는 그걸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씁쓸한 표정으로 적당히 찌들고 풀어진 눈으로, 삐딱한 걸음걸이로 그는 그의 앞에 놓인 모든 하루를 걷고 있다.
김혜경은 열쇠 7개 있는 집에 들어갈 수도 있었던 단란주점 사장이다. 남자 때문에 인생 종친 케이스라고 모두가 인정. 회장님 세컨드로 잘 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 부하와 엮이는 바람에 인생이 피곤해졌다. 그가 재곤을 만나게 된 건 그녀의 애인이 자신을 괴롭히던 남자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남자란 어떤 존재일까. 권력과 자리에 따라 자신을 유흥거리나 정복지쯤으로 여기는 한량이나 게임중독자일까. 확실히 그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매력이 있고 그 매력을 잘 쓸 줄도 안다. 그러나 늘 여유로운 웃음을 안고 모두를 대하는 그녀라도 실상은 그녀만큼 외롭고 허망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기껏 마음을 붙였던 애인은 이제 도망자가 되어 자신을 돈줄로 써먹고 있다. 돈과 남자는 그녀에게 등짝을 쳐주고 싶은 원수가 아닐까. 남자에게 돈을 벌어 남자에게 돈을 쓴다. 게다가 지금은 범죄자의 애인이라니. 그냥 다 버리고 떠나오기엔 그것들이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 발목을 족쇄에 가둔다. 흘러넘치는 건 술이요, 오도독거리는 건 얼음뿐이라. 까무룩 술이 취해 아침에 잠이 들고 밤에 펼쳐지는 아득바득한 인생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무뢰한이다. 신기한 건 주인공인 재곤과 혜경이 가장 무뢰한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점이다. 오히려 재곤과 혜경을 묶어두고 있는 주변 인물들이 더 피도 눈물도 없는 무뢰한에 가깝다. 주인공인 재곤과 혜경의 공통점이 있다면 빈틈 있고 어딘가 짠하다는 것. 무뢰한 비스무리 사는 중인데 고민이 많다는 것. 인정사정 볼 것 없을 것 같은 재곤은 사실 자존심과 연줄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과 직업의식 사이에서 고민한다. 돈이나 받아먹는 부패한 형사가 되고 싶지 않아 성질을 부렸더니 고작 그의 스폰서가 보낸 금액은 정확히 48만원. 얼척이 없다. 범인을 잡을 때 몸 성치 않게 끝내 달라면서 형사 같지 않은 요구를 하는 건 선배 형사다. 그의 몰골이 짠하다. 그는 선배님의 '내 사람이 맞냐'는 질문에 토해내듯 대답을 했고, 적은 액수의 뇌물을 확인하고 돌려주기 전 허탈한 듯 히죽거린다. 돼지발정제를 쓸 수도 있는 무자비한 형사로서의 그의 모습은 어떠면 그가 속한 교양 있는 무뢰한들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혜경 역시 보다 보면 저렇게 짠할 수가 없다. 뭐하고 살았냐고 물으면 빚 받으러 다니고, 빚 갚으러 다녔단다. 인생의 뭔 빚이 그렇게나 많은지 모르겠다. 범죄자 애인은 몇 천이 누구 집 애 이름 같나 보다. 그의 소식에 혼자 마음 졸이고 그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숨어 지켜보는 재곤의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혜경이 궁여지책으로 외상금을 받으려 돌아다니는 모습은 당당하고 가냘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당당함으로 무장했던 그녀는 웃으면서 돈을 받아내다가 결국은 술집 외상 때문에 인생 종 치고 싶냐며 사정하면서도 나 김혜경이라면서 힘들게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었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진 듯한 것이 마음 아픈 사람.
둘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 진심인 듯 아닌 듯 서로를 속이고 있다. 그것이 무뢰한들의 세상에 걸맞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믿으면, 속으면 바보같이 당하는 세상이니까. 그러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상대의 모습에 흔들리고 만다. 의심 가득했던 그녀는 재곤을 완전히 믿지 못해도 그가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하고, 사건을 위해서 혜경을 이용하려 했던 재곤은 혜경이 다칠까 배려해주고도 아무 일도 모르는 척한다.
그들의 진심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서로를 가장 속여야 하는 순간에 드러난다. 진심과 거짓의 경계에서 그들은 사랑 비스무리한 걸 하고 있다. 혜경이 돈을 위해 재곤(그녀는 그를 '영준'으로 알고 있지만)을 유혹해야 하고, 재곤은 범인 검거를 위해 그 유혹을 알고 짐짓 모른 척 받아들이는 순간. 재곤이 그녀가 자신의 약점이라고 말하고, 그녀가 아끼던 목걸이를 다시 전당포에서 찾아와 내려두는 순간. 지금 애인이고 뭐고 버리고 자신과 살면 안 되냐는 재곤의 말에 진심이냐, 고 물으며 흔들리던 혜경의 눈. 에이, 그걸 믿냐 하며 어설프게 둘러대는 그의 말에 끝내 숨기지 못하는 그녀의 씁쓸한 눈빛과 미소.
혜경이 어처구니가 없는 건 결국 그렇게 자신을 흔들어 놓았던 재곤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자신이 알던 '이영준'이 아니라잖나. 자신의 애인을 한 방의 총알로 날려 보낸 것보다도 아무것도 몰랐던 것에 '나 김혜경이야'라는 말처럼 지켜오던 자존심이 와르르 무참히 쓸모 없어져 버려서. 아무것도 믿지 말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번에는, 그는, 그래도 자신에게만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던 자신에게 분노한 것이리라. 그녀의 집주소며 모든 정보를 알면서 정작 그녀는 그의 아무것도 제대로 안 것이 없다는 것에, 겪을 만큼 겪어봤다 생각했는데 이토록 무방비했던 자신이 비참하고 자존심 상해서. 충격보다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떠는 것이리라. 그 총알로 날렸던 건 애인의 심장만은 아니겠지.
재곤은 사과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찾아와 나는 형사고, 내 일을 했을 뿐이라고, 그녀를 상처주려 했던 게 아니라고 할 뿐이다. 재수 없다. 술을 팔 때보다 더 구차하게 마약을 놔주며 살고 있는 혜경을 찾아가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녀를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면서도, 처량 맞게 집 앞에서 하루 종일 비나 맞고 있으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혜경에게 필요한 건 그 한마디일 텐데. 미안하다고, 다시 곁에 있어달라고. 한번 안아주면 될 텐데.
세상이, 영준이, 아니 영준이라고 믿었던 재곤이 그녀에게 무뢰한이 되라고 가르쳤으니 그녀는 그녀대로 '무뢰하게' 그를 꼭 안아 칼로 찌르고 만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다. 그녀에겐 진짜 이름이 뭐 건간 그는 여전히 그의 애인 준길의 이상한 감방 친구로 그녀 눈 앞에 등장했던, 이영준이다. 그를 보고 싶었던 마음, 한번 꼭 안고 싶은 마음, 왜 비를 맞고 있냐며 묻고 싶은 마음이 한 켠. 그래도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나의 애인을 다리 하나 팔 하나 병신 만드는 것도 아니라 심장에 총알을 박아야만 했나. 나에게 했던 모든 말 그것도 거짓이었냐. 묻지 못한 그 야속함과 증오, 배신감이 한 켠. 그렇게 마음이 한 켠 한 켠 쌓인 뒤섞인 행동이다.
그러나 거기서 알 수 있다. 그렇게 무뢰한같이 칼을 찌르고 나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혜경의 모습에서. 애초에 그렇게 모진 사람이 못된다는 걸. 혜경은 무뢰한이 아니며, 될 수도 없는 사람이란 걸. 재곤 역시 그 칼을 맞고도 유유히 경찰차도 보내고 꾸역꾸역 아파하며 길을 걸어 내려오는 걸 보면. 죗값이다 하고 받아들이는 거 보면. 그 역시 무뢰한이 아니라는 걸. 차라리 아주 못돼 쳐 먹은 사람들이었으면 좋았을 걸. 무뢰한이 아닌 그들이 주변 사람처럼, 세상처럼 무뢰하게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
영화는 대문짝만 하게 자신을 하드보일드 멜로라고 말한다. 세상이 녹록지 않다. 잘 믿어서도, 진심을 잘 들켜서도 안 되는 것이다. 형사인 재곤에게는 범죄자가 애인과 한바탕 나뒹굴고 있는 소리를 엿들으면서도 도시락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하는 것이고, 혜경에게는 한 때는 자기 발 밑 같았던 사람이,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자신을 은근슬쩍 더듬고 희롱해도 감정을 숨기고 웃음을 살짝 지어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 안에 사랑이란 게, 웃음이란 게 있지만 한 군데씩 비틀려 있다. 뾰족한 송곳 같은 사랑, 우스꽝스러운 웃음 같은 것. 그와 그녀의 사랑이 시작된 순간을 꼽자면 언제일까. 그건 그녀가 그가 구구절절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따졌을 때가 아닐까. 어설픈 그의 거짓말에 그녀가 날카롭게 파고들었을 때, 그러고도 그가 예리하네, 하면서 뻔뻔하게 웃어넘겼을 때. 그럼에도 서로가 밉지 않았던 순간. 밤도 아침도 아닌 그 어스름한 새벽에 무뢰한이 아닌 이들의 '무뢰한' 사랑이 시작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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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원, 이종석의 "설계자" / 잘생김이 연기되지 못한 빛바랜 비주얼 / 반전과 결론은 볼만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설계자"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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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이 유행하던 20세기 초 유럽. 흑사병으로 남편을 잃은 그레이스는 전염병을 퍼뜨렸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마녀로 지목되며 마녀재판에 회부된다. 지하 어두운 감옥에 갇힌 그레이스는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진실만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레이스가 갇힌 감옥에는 너무나 끔찍하고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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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세계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어드벤처가 시작된다!공룡 연구를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떠난 뒤 사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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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를 발견한 기쁨도 잠시, 뜻밖의 위기에 빠진 ‘우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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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떠난 ‘우디’와 ‘샤샤’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맞닥뜨리는데..
과연, 두 친구는 위기에 처한 공룡 마을을 지켜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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