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yun2024-12-19 11:42:04
만두 맛집인데 뒷맛이 이상해요
영화 '대가족' 리뷰
어디선가 먹어본 익숙한 만둣국 맛이다. 조금 더 음미하다 보면 새로운 무언가가 추가돼 신선함도 있다. 그런데 계속 곱씹다 보면 이상한 맛도 같이 느껴진다. 이것저것 많은 요소들을 '가족'이라는 만두피로 몽땅 담아내 영화로 빚어서다. 양우석 감독의 신작 '대가족'에 대한 간략 평이다.
'대가족'은 스님이 된 아들 함문석(이승기) 때문에 대가 끊긴 만두 맛집 평만옥 사장 함무옥(김윤석)에게 세상 본 적 없던 귀여운 손주들이 찾아오면서 생각지도 못한 기막힌 동거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변호인'과 '강철비' 시리즈 등 휴머니즘 성격이 강하고 묵직한 소재를 담은 작품을 선보여왔던 양우석 감독은 '대가족'을 통해 코미디 드라마 장르에 문을 두드렸다. 초반에 코미디, 후반에는 휴먼 드라마를 배치해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주는 2000년대 초중반 유행했던 한국적인 휴먼 코미디 콘셉트로 구성했다.
과거 한 사건을 계기로 서먹하게 지내는 무옥-문석 부자 앞에 짠한 아이들 민국(김시우)-민서(윤채나) 남매가 짠하고 나타난다. 문석의 생물학적 자식이라고 밝히자, 행복을 되찾은 아버지와 당황을 감추지 못한 아들 극과 극 반응을 보인다. 비슷한 장르와 스토리라인으로 흥행했던 영화 '과속스캔들'이나 일일 드라마에서 볼법한 전개다.

다소 뻔해 보이는 스토리라인에 신선함을 곁들여 줄 킥 하나를 집어넣었는데, 바로 민국-민서 남매의 '출생의 비밀'. 알고 보니 함문석이 대학 시절 하게 된 정자기증으로 탄생한 아이들인 것. 심지어 함문석의 정자를 통해 이 세상으로 나온 아이들이 400명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단숨에 '정자왕'으로 등극해 웃음을 유발한다. '대가족'은 이 황당무계한 사연을 코미디에 녹여내면서 관객들의 웃음을 저격한다.
정자기증을 무기 삼아 영화는 문석의 생물학적 자녀 찾기를 비롯해 함씨 부자간 이야기, 주변인들과의 관계 등 엉킨 실타래들을 천천히 풀어간다. 그러면서 양우석 감독은 후반부에 '가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저출산 문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가족에 대한 정의, 대안 가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 영화 제목인 '대가족'의 '대'가 큰 대(大)가 아닌 대할 대(對)를 쓰는 것이고, 영화 영어 제목을 'About Family'로 작명한 것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다만, 화법이 장벽이다. 화두를 담고 있는 이야기인 만큼 세련되게 풀어내야 하는데 투박하고, 후반부에는 너무 교훈적인 느낌이 강하다. 한 예로, 함문석과 큰스님(이순재)이 가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순간이나 보는 이들에 따라 교조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정자기증을 활용한 코미디로 에너지를 올렸더니, 올드한 감성을 담은 신파로 맥을 끊는다. 지나친 플래시백과 구구절절한 사연까지 2000년에 개봉한 영화들의 단점을 그대로 답습하니 빚은 만두의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
후반부 구성과 연출이 호불호 갈리긴 하나, 배우들의 역량만큼은 인정할 부분이다. '한국판 스크루지 영감' 함무옥을 연기한 김윤석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주며 웃음을 전한다. 동시에 자타공인 인정받은 연기력으로 핏줄에 집착하는 남자가 변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또한 김성령, 박수영은 '대가족'에서 뻔한 맛을 진하고 깊은 맛으로 우려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민국-민서 남매로 분한 아역배우 김시우, 윤채나는 힐링과 에너지를 불어넣는 치트키다.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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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스온탑>, "그냥 곁에만 있어주면 되는 거 아니야?"
개인적으로 이옥섭&구교환(2X9) 감독님의 작품 중에서 특히 더 좋아하는 영화이다.
짧지만 정말 많은 위로가 되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끔 만든 영화이다.
주인공 '우희'는 좁은 6평의 집에서 자꾸 자라나는 선인장을 놓아주려고 한다.
더 넓은 곳에서 자라라고.
선인장의 가시 때문에 잔뜩 상처가 난 손도 신경쓰여서 선인장을 더 이상 자신의 집에서 안 키우려고 한다.
외발자전거를 열심히 연습하던 친구 '주영'에게 이 사실을 얘기하니까 선인장이 포옹해달라고 했냐면서, 그냥 선인장 곁에만 있어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끝으로, 둘은 함께 외발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간다.
"좋은 데 가는 거야.
나 없을 때 집에서 너 혼자 기다리는 것보다 친구들이랑 지내면 좋잖아,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고.
거긴 천장도 높고, 보일러도 따뜻해."
나는 선인장을 '내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혹은 열렬히 응원하는 무언가'라고 해석하였다.
이 무언가는 사람일 수도, 물건일 수도, 혹은 특정 행위일 수도 있다.
난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어떤 것을 너무 좋아해서 나중에 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
감정적으로 힘들든,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힘들든, 주변에서 날카로운 말을 해서 힘들든.
"이제는 외발자전거의 시대야."
내 친구는 이제 외발자전거의 시대가 왔다며, 자꾸 넘어져도 계속 도전한다.
계속 외발자전거를 연습한다.
자꾸 실패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걸 계속 좇는 사람이다.
"눕힐 수도 없고, 천장을 뚫을 수도 없고."
속이 타들어가는 내 마음도 모르는지, 선인장은 자꾸만 커져간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 자꾸만 커져간다.
아직 현실은 준비가 안 되었는데, 이상은 자꾸만 커져간다.
"좋은 데 가는 거야.
나 없을 때 너 집에서 혼자 기다리는 것보다 친구들이랑 지내면 좋잖아,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고.
집에 너 혼자 있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밖에서 마음 불편한지 알아?
거긴 천장도 높고, 보일러도 따뜻해.
가시 땜에 내가 안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결국 선인장을 버리기로 한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버리기로 한다.
나를 위해, 그리고 어떤 것을 위해.
이상과 현실은 다름을 깨달았다.
선인장을 버리면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눈물만 나고, 여전히 손이 쓰리다.
선인장을 만지며 얻은 상처가 아직 아프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며 감수했던 상처들이 눈에 자꾸 걸린다.
상처가 나는 것도 괜찮을 정도로 좋아했는데.
그만큼 진심으로 좋아했는데.
"찾아오자!
야, 선인장이 뭐 너한테 포옹이 필요하대?
걔가 너한테 그랬어?
아니, 선인장은 맨날 태양이랑 포옹하는데 네 포옹이 무슨 소용있어.
그냥 곁에만 있어주면 되는 거 아니야?
야, 타!"
이 때 자꾸 넘어지면서도 외발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계속 시도하는 친구가 내게 말한다.
선인장이 너한테 포옹이 필요하더냐고. 그냥 곁에만 있어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맞다. 실은 간단한 사실이었다.
상처가 나는 것도 괜찮을만큼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을 굳이 앞으로의 현실이 두려워 미리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이 어떤 것을 포기한다 하더라도 내가 계속 속상할 거니까.
계속 선인장이 아른아른거릴테니까.
그게 더 괴로울 것이다.
계속 좋아하면 된다.
계속 좋아하고, 사랑을 주고, 응원하고.
내가 상처를 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영화의 색감, 분위기, 배경음악, 배우들의 목소리에서 토닥토닥-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참 포근하고 따뜻한 영화이다.
선인장이 연인, 사랑, 꿈, 반려동물, 식물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다.
한 영화가 이렇게 다양한 생각의 길을 마련해준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공통적으로 전하고 싶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소중한 '선인장'에게 상처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섣불리 결정짓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선인장'은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할 수도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좋아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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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되는가'보다 중요한 '무엇을 하는가'
사람은 하루하루,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어. 따분한 일을 하고 누구랑 입씨름을 하고, 그런 보잘 것 없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생활이, 인생이 완성되지.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만약 그 사람의 일생을 요약하려 들면 그런 변함없는 일상은 생략돼버려. 결혼이나 이혼, 출산, 전직 같은 커다란 사건은 남겠지만 일상은 생략되지, 소박하고 시시하니까. ‘아무개 씨는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한 인생을 보냈다.’라는 말로 요약되는 거야. 하지만 말이야.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건, 요약되어 사라져 버린 일상의 일이라고,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거지. 요컨대.
이사카 코타로, 『모던 타임스 』中삶의 대부분이 일상으로 채워진 것과 다르게. 이력서에는 일상이 생략되어 있다. 우리는 왜 일상을 살면서, 이력서에는 일상을 거세해놓았을까. 그것은 아마도 사람의 행적을 요약함으로써 대상을 효율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일 텐데. 가끔은 누군가의 일상을 통해 이력서보다 더 효율적으로 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는 자기 자신을 인스타그램 피드로 드러낸다던데, 한 사람을 파악하는 데에는 SNS나 그가 구독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카톡 대화 습관을 살펴보는 쪽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픽사가 새롭게 발표한 작품 <소울>은 언뜻 에덴동산 신화 처럼 보인다. 평화롭지만 조용하고 지루한 ‘탄생 이전의 세계.’ 주인공 ‘조’와 ‘22’는 부끄러움도, 쾌락도 없는 ‘준비된 땅’에서 현실 세계로 추방된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후 ‘종신토록’ 고생해야 했듯. ‘조’와 ‘22’도 이승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다. 두 이야기에 다른 점이 있다면, 에덴 동산이라는 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아담과 이브와는 다르게, ‘조’와 ‘22’는 현실 세계에 남고자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는 쾌락만큼 고통도 따르지만, 그 고통마저도 생을 감각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한편 이 이야기는 『어린왕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낯선 곳을 표류하게 된 주인공(어른인 ‘나’)이 독특한 어린아이를 만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발견하며,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닮아있다. 『어린왕자』에서는 ‘어린왕자’가 ‘나’에게 각각의 별에 살고 있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상’을 보여준다면 <소울>에서는 ‘22’가 ‘조’에게 ‘이상적인 인간상’을 보여준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는 한 가지 트릭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조’가 자신의 천직을 찾아 기쁘게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파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강화해나간다. 사람은 각자 타고난 재능(Talent)이 있고, 그 재능을 직업과 결부시킬 때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만난 이발사나, 자신의 어머니, 지하철에서 기타를 치는 버스커 등이 자신의 재능을 살려 경제활동을 하고, 그 안에서 만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22’를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스파크’라는 것은 인생을 감각하는 일종의 ‘영감’이고 우리는 각자 지닌 ‘영감’에 따라 많은 것을 느끼며 그저 상호작용하면 된다. 우리는 소박하고 시시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 지점에 이르면 주인공이 왜 다름 아닌 재즈 연주자였는지도 알게 된다. 그렇다. 인생은 클래식과 같이 악보를 따라 치는 연주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즉흥 재즈와 같다. 세상에 똑같은 재즈 연주가 하나도 없듯, 똑같은 인생도 없다. 우리는 각자의 스케일과 리듬으로 인생을 연주하는 존재다.
<소울>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보편적인 감동을 이끌어내며 영화관 바깥으로 힘차게 걸어 나갈 힘을 준다. 공기를 들이마시고,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촉감을 느끼고, 기쁘게 씹고 삼킬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울>이 끝났을 때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재징이고, 소울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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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너의 결혼식' 재미있어요! 보세요!
첫사랑의 그리움과 설렘을 한곳에 모아 향수를 느끼게 해준 작품
'너의 결혼식'리뷰 시작합니다!
기본정보
장르 : 로맨스, 드라마
감독 / 각본 : 이석근
출연진 : 박보영, 김영광
개봉일 : 2018년 8월 22일
평점 : 9.01
스트리밍 : tvN , NETFLIX, 웨이브, 왓챠
기획의도
"기억하나요? 당신의 첫사랑?"
고3 여름, 전학생 '승희 (박보영)'를 보고 첫눈에 반한 '우연 (김영광)'
승희를 졸졸 쫓아다닌 끝에 마침내 공식 커플로 거듭나려던 그 때!
잘 지내라는 전화 한 통만 남긴 채 승희는 사라져 버리고,
우연의 첫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 했다.
1년 뒤, 승희의 흔적을 쫓아 끈질긴 노력으로 같은 대학에 합격한 우연.
그런데 그의 앞을 가로막은 건... 다름 아닌 그녀의 남자친구!
예술로 빗나가는 타이밍 속, 다사다난한 그들의 첫사랑 연대기
등장인물
한승희 (박보영)
3초의 운명을 믿는 여자
"이 사람이구나 느낌이 오는 시간이 3초래"
황우연 (김영광)
승희만을 바라보는 순정 직진남
"사랑은 타이밍이다. 근데, 그건 정말 극복이 안 되는 걸까?"
여담
중국에서 <니적혼례>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리메이크 되었다.
너의 결혼식 주인공으로 김영광이 아닌 강하늘이 남자 주인공으로 물망에 올랐으나
다른 작품과 촬영시기에 맞물리면서 최종 김영광으로 낙점이 되었다고 한다.
(강하늘도 정말 잘 어울릴것같지만! 그래도 난 김영광!)
후기 및 결말
결말부터 살펴보자면
사랑에 타이밍이 있다는 말을 믿으시나요?!
못 믿으신다면 영화에서 승희와 우연의 자꾸 엇갈리는 타이밍 속에 한탄하고 안타까워하지만
결국 운명을 이기지 못해 서로는 헤어지며 서로 응원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역시... 처사랑의 불변의 법칙인가....)
영화 '너의 결혼식'은 첫사랑과의 추억을 한껏 끄집어 내면서
너,나, 우리, 모두에게 있었던 첫사랑의 향수와 기억을 끄집어 내주는 영화였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역할의 최적화된 박보영의 사랑스러움과 김영광의 어리숙하지만
한여자만 바라보는 듬직함이 만나 더욱더 재미있게 봤던 작품 입니다.
영화는 9점대로 높은 평점을 유지하며 믿음과 어디하나 모진곳이 없는 완벽한
향수를 그리던 영화라 저는 추천합니다!
오늘밤..
학창시절의 달콤한 로맨스를 끄집어내며
"너의 결혼식" 영화 한편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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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엽다! 너무나 반가운 둘리의 극장 귀환
- "5월 24일 개봉 예정인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언론/배급 시사회 및 기자 간담회에 다녀왔습니다.1996년 개봉했던 작품을 한국영상자료원이 정성 들여 4K로 리마스터링했다고 합니다.덕분에 2D 셀 애니메이션의 색감과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한결 깨끗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구현했습니다.둘리, 또치, 도우너, 희동이, 마이콜, 철수와 영희, 그리고 고길동!매력적인 캐릭터들을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가웠습니다."5월은 '가정의 달'이라 쓰고, '어린이의 달'이라고 읽는다. 매년 5월만큼은 집안과 사회의 대소사가 어린이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물론 아이가 없는 집은 평온한 자전을 계속할 것이다). 부모, 조부모, 삼촌, 이모 등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충실한 제사장이 되어 아이들에게 제물을 바친다. 5월의 극장에서는 어린이 관객을 타깃한 애니메이션이 어깨에 힘을 준다. 어른들에겐 선택권이 없다.올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일본 애니메이션의 열풍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지금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이 둘리 탄생 40주년을 기념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5월 24일 개봉한다. 이 작품을 극장에서 만나는 건 필자처럼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때부터 <아기공룡 둘리>를 좋아했던 '둘리 세대(현재 나이 30~40대로 추정)'에겐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요리 보고 조리 봐도 알 수 없는 둘리 둘리~"라는 주제가 첫 소절만 들어도 가슴속은 온풍기를 틀어 놓은 듯 금세 따뜻해진다. 귀여운 캐릭터들의 코미디 활극을 지켜보는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둘리와 친구들이 절대 기죽지 않고 어른인 고길동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모습은 유쾌, 상쾌, 통쾌해서 없던 변비도 사라지게 할 판이다. 둘리가 엄마와 이별하는 장면에서는 성인이 된 이후 쉴 새 없이 보강공사를 한 덕분에 진도 10의 강진에도 끄떡없을 것만 같았던 눈물샘의 둑이 터진다. 4:3의 화면비, 1990년대 셀 애니메이션의 색감과 감성까지 가세해 초강력 노스탤지어 에너지 장을 완성한다.철수와 영희 남매, 조카인 희동이를 양육 중이었던 고길동은 둘리(공룡), 또치(타조), 도우너(깐따삐야 행성에서 온 외계인)까지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종족과 행성을 넘어선 우주적 포용력을 보여준다. 고길동은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의 최종 보스 '바요킹'과의 대결에서 완벽한 검술을 뽐내며 '소드마스터(swordmaster)'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영화가 나오기 한참 전에 서울시 쌍문동에 거주하는 고길동이 '가디언 오브 갤럭시' 타이틀 홀더였던 것이다.30~40대 관객들 중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아이와 함께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을 관람할 것 같다. <아기공룡 둘리> TV 애니메이션을 본 적 없는 어린이들이 1996년에 처음 개봉했던 2D 셀 애니메이션 영화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을 재밌게 볼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요즘 아이들은 둘리를 비롯한 등장 캐릭터들을 낯설어할 것이고, 매끈한 3D 애니메이션에 더 익숙하다. 이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도 약 30년 전의 한국이라서 정서적 괴리감 때문에 몰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깜짝 흥행을 할 것 같기도 하다. 유사 이래 모든 아이들이 사랑하는 공룡 캐릭터 '둘리'가 주인공이고, 다른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깜찍하다. 시간여행만으로도 신나는데 우주와 지구를 오가는 모험이 함께 펼쳐진다. 오프닝 시퀀스의 펭귄들은 보는 즉시 '뽀로로'를 연상시킨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끝)* 5월 8일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된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 간담회에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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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만들 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여 급감한 관객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하지만 이동진 평론가가 지적했듯 헐리우드 영화의 관객 수는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여 92% 가량으로 거의 회복한 모양새다. 전 세계적으로 ott가 발달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관객들은 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원하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는 영화들은 보란듯이 스크린에서 맹활약 중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계는 전에없는 위기를 경험 중이며, 특히 올 한해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비상사태에 봉착한 상황이다. 관객은 여전히 티켓가 인하를 외치고 있고, 극장과 제작사는 인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관객도 극장도 모두 정답을 알고 있다. 관객은 좋은 영화에 대해 얼마든지 현재의 티켓가를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영화 <차박 - 살인과 낭만의 밤>은 안타까울 만큼 기존의 서사와 캐릭터를 답습하며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문제들을 반복한다. 이런 영화들에 대해서는 기존에 수많은 리뷰를 통해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해 왔기에 이번만큼은 완곡한 표현 없이, 순서를 매겨 문제점을 지적하는 편이 효율적일 것으로 보인다.
1. 인물 간의 관계와 캐릭터성의 진부함
주연배우가 데니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영화를 리드해 나가는 것은 김민채 배우가 연기한 미유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본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안타까울 만큼 진부한 캐릭터를 답습하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인 것은 미유다. 김민채 배우의 빛나는 연기력이 아쉬울 만큼 미유는 기존의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던 '감정적인 여성' 혹은 피해자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을 찾아온 사촌동생에게 단호하게 대처하거나 무시하는 대신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남편에게 애교가 많으며 나약한 여성상을 보여준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비록 후반부에서는 능동적으로 살인마에게 대항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유는 감정적이다.
감정적인 여성 캐릭터가 문제인 이유는 남성은 이성적이고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구시대적인 성별 구분법적 캐릭터 설정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과거 반복되던 서사에서 여성은 감정적인 모습을 약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성적으로 어필하는 데 활용해왔다. 남성 구원자에게 나약한 여성은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기 위한 손쉬운 대상이다. <차박>에서 이 점이 더더욱 큰 문제였던 이유는 심지어 미유가 사촌동생과 근친관계였음을 노골적으로 암시하기 때문이다. 미유가 가진 비밀은 미유 자신의 야망이나 삶에서의 목표가 아닌 연애 관계에 머무른다. 이는 미유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원(데니안 분)에게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고작 아내인 미유를 보호하는 것뿐이라는 점은 서사뿐만 아니라 캐릭터 설정에서도 문제다. 설상가상으로 수원은 이 부분에서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2. 신선한 소재가 전혀 활용되지 않음
언론 시사회에서 감독이 스스로 밝혔듯 차박은 여지껏 영화에 활용된 선례가 극히 드문 신선한 소재다. 익숙한 공간인 집을 공포의 공간으로 바꾸어 일상의 공포를 활용하던 방식은 한때 신선했지만 점점 흔해져 이제는 전단지의 카피로도 활용되지 못한다. 차박은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영화에서는 미유와 수원이 단 둘이 보낼 수 있는 어둠의 배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차박이라는 소재를 영화 초반 잠시 미쟝센으로만 활용하고 결국 공포의 배경으로 야산과 살인마가 활보하는 건물 내부를 택한다. 제목에도 활용된 차박은 영화를 보고 나면 대체 왜 차박이라는 소재가 필요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잠시 등장했다가 장렬하게 전사한다. 서사의 시발점이 되는 소재만큼은 신선하지만 이를 이끌어 나가는 동력이 없는 점은 최근 한국영화가 겪는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3.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인물의 서사가 지나치게 생략됨
<차박>에는 주연으로 활약하는 미유와 수원 외에도 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들에 대한 설명은 전무하다.
인물을 설명하는 데 있어 때로는 미지의 과거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인물의 행동 경위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생략되는 경우는 관객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기실 전사를 알 수 없어 매력적인 캐릭터는 조커와 안톤 쉬거를
제외하곤 극히 드물다. 이 두 캐릭터조차도 이들 외의 인물은 전사가 알려져 있거나 짐작할 수 있어 한층 빛을 발했던 경우다. 영태(홍경인 분)의 경우 영화 초반부 등장해 관객에게 의문을 남기고, 영화 후반부에 재등장해 나름의 활약을 보여주지만 관객에게 영태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일 뿐이다. 영태의 전사가 어렴풋이 짐작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사 내의 행동을 전부 설명해주진 못한다.
무엇보다도, 서사에 드러난 미유와 수원의 전사 또한 이들의 행동을 그다지 잘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캐릭터의 문제가 서사의 개연성 부족으로 이어진다.
<차박>에서 지적할 수 있는 부분들은 이외에도 많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근친 소재를 사용한다거나
소아성애가 암시되는 것, 모든 행동의 이유가 단순히 사랑으로 설명된다는 점 등이 부수적인 문제점이다.
한국 관객들이 단순히 스크린에서 스펙터클만을 기대해서 한국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한국 관객은 이제 보다 발전된 서사와 깊이 있는 메시지를 원할 뿐이다.
*본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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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이토록 뚝심 있고 암울하며 끈적한 조폭 영화라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독] 김창훈 KIM Chang-hoon
출연] Xa-bin HONG 홍사빈 Joong-ki SONG 송중기 Hyoung-seo KIM 김형서
KOREA|2023|124 min|DCP|Color|Special Premiere
시놉시스
명완시에 나고 자란 18세 고등학생 '연규'(홍사빈). 중국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의 꿈은 엄마 '모경'(박보경) 함께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는 것. 하지만 현실을 녹록지 않다. 새아빠 '정덕'(유성주)의 딸 '하얀'(김형서)을 도와주려다 일진과의 싸움에 휘말리고, 졸지에 합의금 300만 원을 토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도움의 손길이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명완시를 떠나 본 적 없는 '치건(송중기)'이 선뜻 300만 원을 준 것. 이를 계기로 연규는 치건처럼 명완시에서 살아남으려 한다. 치건이 중간 보스인 조폭 조직에 합류해 이것저것 일을 배우는 연규. 그러나 연규가 치건에게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치건이 연규를 신뢰하면 신뢰할수록 그들에게는 점점 더 위험한 일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갱스터 영화의 사회적 맥락
갱스터 영화는 필연적으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영화다. 지나치게 남성적, 마초적이라고 비판받고, 높은 수위 때문에 불쾌하다는 지적도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폭력성은 갱스터 영화에 남성 판타지 이상의 사회적 의의가 깃드는 힘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갱스터 영화의 전성기가 두 차례 있었다. 금주법이 시행된 대공황 시기,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사회가 혼란했던 70년대다. 갱스터 영화의 폭력성과 선정성은 당대의 사회 구조적 불안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비정상적인 시스템 하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구를 반영한 몸짓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그 폭력성과 선정성을 스크린 안으로 제한하면서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는 기제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제76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섹션에 초청된 <화란>은 장르의 본분을 충실히 해낸 수작이다. 신인 감독 김창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은 마지막까지 톤을 유지하는 뚝심, 달라붙은 껌처럼 찐득한 장르적 쾌락이 돋보인다. 조폭의 가장 말단에 위치한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한국 조폭 영화의 익숙한 틀을 깨부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부인 오프닝
사실 <화란>은 오프닝이 전부인 영화다.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남학생 일진 무리. 연규가 그들에게 다가간다. 무리 중 한 명을 붙잡더니 돌덩이로 머리를 내리친다. 그러고는 돌덩이를 내려놓는다. 이때 운동장에 고여 있던 물덩이에 피 묻은 돌이 떨어지고,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사이 흙탕물이 된 물덩이 표면에 제목 <화란>이 나타난다.
아무 맥락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주한 오프닝은 충격적이다. 예상치 못하게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 물론 영화는 그 직후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규연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남매 하얀을 돕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다. 그녀가 학교 내 일진이 여자 속옷을 거래하는 일에 휘말려서 협박당하고 있었기 때문.
대신 충격만큼 <화란>의 주제는 간명히 드러난다. 고요한 물덩이가 피로 물들고 파동 치기 시작한 이상, 흙탕물을 되돌릴 수 없다고. 즉, 폭력의 굴레에 발을 내딛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고. 실제로 영화는 현실 속 온갖 폭력으로 가득하다. 연규네 가족은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에 시달린다. 불법 사채업자 치건은 오토바이 절도 사업을 병행하고, 정치인 뒤를 봐주는 조폭이다. 심지어 사회적 혐오와 책임회피 같은 이슈도 끼어들어 있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이들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일절 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를 감싸 안으려고 하지 않는다. 연규도, 치건도, 하얀도, 새아빠도 모두 폭력이 잘못된 것인 줄 안다. 심지어 부패 정치인 '정의석'(서동갑)도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영화는 더 냉혹하다. "열심히 공부해라"라는 말이 빈말로 느껴지는 암울한 사회상과 폭력의 굴레를 고발하겠다는 의지도 강렬하다.
갱스터인 척하는 멜로드라마
악의 굴레를 멜로드라마로 바꿔서 보여주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를 지닌 두 남자의 브로맨스 덕분에 폭력의 의미와 역할이 더 잘 전해진다. 연규는 아버지가 없다. 친아빠는 어릴 적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엄마는 새아빠와 결혼했다. 하지만 새아빠는 술만 마시면 연규와 엄마를 두들겨 팬다. 하얀이 말려야 간신히 말을 들을 정도다.
자연히 연규에게는 머리를 다친 일진에게 줄 합의금 300만 원을 마련할 재주가 없다.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로는 택도 없다. 그런 그에게 치건이 나타난다. 연규에게 홀연히 300만 원을 선물하더니 결코 자기를 찾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폭력에 시달리던 연규는 끝내 치건을 찾아간다. 어떤 힘이든 있어야 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런 그를 보면서 치건은 망설이다 못해 자기만의 생존 방식을 하나 둘 알려준다. 그 역시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가정폭력 피해자였으므로. 폭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과 그럴 수 없는 일. 더 나아가 손가락 하나, 손톱 한쪽으로 책임지는 방법에 대해서도. 그렇게 처한 상황도 성격도 다르지만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 두 사람은 형과 동생, 가족이 된다. 이 과정은 마치 한 편의 멜로 같다.
연규와 치건의 관계는 뻔해 보이기도 한다. 절망에 빠진 주인공에게 의지할 대상이 홀연히 나타난다. 주인공은 그를 닮고 그와 함께 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맞지 않는 길을 걷는다. 여느 갱스터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관계다. <신세계> 속 이자성과 정청,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속 재호와 현수 관계를 자연히 떠올릴 순간도 스쳐 지나간다.
'화란' 속에 '화란'이 있는가
하지만 연규와 치건 사이에는 낚시찌에 걸린 물고기 마냥 애매한 대목이 있다. 그들의 관계가 특별한 이유다. 서로에게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 치건은 연규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아픔을 알아본다. 그래서 그가 자기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절망에 빠진 그를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
연규도 치건의 삶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물론 폭력의 달콤함에 잠시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큰 형님 '중범'(김종수)의 살인 지시에 불복할 만큼의 사리 분별은 한다. 이처럼 원치 않지만 자기 모습을 발견한 형과 잘못을 알지만 형이 되고 싶은 동생. 영화는 쌍방이 빚어내는 애매한 긴장감을 극한으로 몰고 가서 터뜨린다. <화란>의 멜로가 다른 갱스터 영화 속 브로맨스와 차별화되는 이유다.
그 중심에는 제목이 있다. '화란'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재앙과 난리를 뜻하는 말이자 네덜란드의 한자어다. 이때 전자는 현실의 유의어다. 연규와 치건이 사는 세상은 그 자체로 지옥이니까. 후자는 희망의 유의어다.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를 데리고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는 게 연규의 꿈이니까.
두 형제 사이의 긴장감은 두 번째 화란의 유무에서 비롯된다. 연규에게 화란은 두 가지 의미이지만, 치건에게 화란의 의미는 하나뿐이다. 연규의 금속 보관함이 비상금과 네덜란드 여행 가이드북으로 꽉 차 있는 반면, 치건의 나무 보관함은 끝내 비어있듯이. 이 차이가 둘의 말로를 갈라놓는다. 동생은 화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울 의지가 있지만, 형에게는 그럴 화란이 없기 때문. 이는 영어 제목이 <Hopeless(희망이 없는)>인 이유다.
한국 영화의 클리셰를 거부하다
이러한 멜로드라마는 <화란>이 한국 조폭 영화의 틀을 탈피하는 원동력이 된다. 사실 배경은 유사하다. 한국 조폭 영화는 주로 재개발 지역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비열한 거리>, <강남 1970>, 심지어 1달 전쯤 개봉한 <보호자>까지도. 조폭은 철거민을 밀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이는 고도의 압축 성장을 이뤄낸 한국 사회의 집단적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하는 설정이라 할 수 있다.
조폭 영화 속 신축 부동산은 중산층으로 발돋움하려는 평범한 서민의 욕망을 보여준다. 이는 장르는 달라도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궤를 같이 하는 지점이다. 조폭 또한 부동산 재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조직 내외적으로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한국 조폭 영화는 정치인, 기업인, 조폭의 삼각관계를 주로 반복한다. 조폭인지 정치인인지 분간하는 게 의미 없는 <아수라> 속 박성배 시장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 삼각관계에는 올드하다는 이미지와 클리세 범벅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인 감독은 과감한 시도를 한다. 정치인, 기업인, 조폭이 아닌 조폭의 말단, 막내에게 집중한다. 치건의 큰 형님은 재개발 사업 이권을 두고 국회의원 선거를 주무르려 한다. 그러나 연규에게 이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윗사람이 어떤 이익을 두고 싸우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조폭 영화에 담긴 새 세대의 현실
대신 영화는 새로운 세대의 고민에 집중한다. 치건은 연규에게 묻는다. "언제 여기 왔어?" 연규가 답한다. "태어날 때부터요." 이는 단순히 명완시에 언제 왔는지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언제부터 폭력의 굴레에 빠졌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린 연규 입장에서는 답이 어렵지 않은 질문이다.
이 문답의 연장선상에서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성년을 앞둔 고등학생이 이미 존재한 카르텔, 폭력의 굴레를 어떻게 버텨내는지, 책임 지고 빠져나갈 방법은 있는지. 이미 자리 잡힌 사회 구조, 상승할 희망조차 찾기 힘든 시스템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 이는 <화란>의 분위기가 여느 영화보다도 암울하고 처절한 이유다.
그렇다고 <화란>은 그저 냉혹한 현실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한 가닥 응원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 치건과 헤어진 후 집에 돌아온 연규는 새아빠에게 맞아 죽은 엄마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는 새아빠에게 복수하는 대신 하얀과 함께 집을 나온다. 다른 도시로 떠난다. 자기 손으로 폭력을 거부하고, 굴레를 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화란>은 고여 버린 장르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다.
물론 마지막 장면이 마냥 희망적이지는 않다. 과연 연규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를 완전히 떠날 수 있을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두 주인공의 표정도 홀가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그들이 새 출발을 알린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화란>은 회의감을 떨치지는 못해도, 이제 막 성년이 될 두 주인공에게 마지막 응원은 보내려고 노력한다.
좋고 싫은 이유가 같다
분명히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다. 15세 관람가치고 잔인한 장면이 꽤 많다. 완성도 문제도 있다. 여기저기 생략된 지점이 많다 보니 뒤로 갈수록 영화가 버거워한다. 특히 조직 상부에서의 의사결정과 음모, 하부 조직원과의 감정선과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 하얀처럼 점점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캐릭터도 생긴다. 정교한 스토리텔링 대신 배우들의 연기력과 분위기에 기대기 때문. 서사의 빈 공간을 유추해야 하는 불친절한 작품인 셈이다.
다만 역설적으로 좋아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인 영화이기도 하다. 반지하방의 습기처럼 답답하고, 운동화에 달라붙은 껌처럼 찐득한 분위기는 근래 한국 영화에서 맛보기 어려운 개성이다. 도를 넘는 듯한 잔혹함은 그 분위기와 현실을 강조한다. 그 덕분에 송중기의 새로운 모습, 홍사빈과 김형서라는 신인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 나아가 웃음을 단 한순간도 허용하지 않는 뚝심까지 고려하면 <화란>은 근래 한국 영화 중, 특히 갱스터(조폭) 영화 중 보기 드문 수작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들짐승처럼 맹목적이고 폭력적이며 진득한 갱스터 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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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생존자들: 더 레스큐> 메인 예고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의 격렬한 전쟁 속에서
수없이 많은 전투기들이 격추되고,
이에 미국은 '항공구조대'를 조직,
보다 빠르게 군인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선다.
세상의 판도를 바꾼 위대한 임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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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이전트 미스터 찬> 예고편
비밀 특수 요원 미스터 찬은 특별 임무 수행에 실패하여 에이전시에서 해고당한다.
이후 파트너와 함께 사립 에이전시를 운영하다 과거 연인이자 현재는 경찰 보안국장인 흥을 만나게 되고 국장의 의뢰로 인해 줄줄이 이어지는 유명인사 사건들을 맡으면서 하도젠이라는 약을 조사하게 된다.
이 약을 시중에 풀려는 무리와 그에 맞서 싸우는 미스터 찬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