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4-12-02 19:04:03
모아나 2 |뻔한 레시피, 쉬운 재료, 평범한 플레이팅
<모아나 2>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다른 섬에 사는 부족들을 찾기 위해 꾸준히 항해에 나서던 '모아나'(아울리이 크러발리오). 그녀는 전설적인 항해자이자 길잡이를 뜻하는 '타우타이' 칭호를 받은 직후 고대의 조상이 등장하는 환영을 본다. 인간 세계의 이야기를 지우고자 하는 폭풍의 신 '날로'(토피카 페푸리이)가 숨긴 섬, '모투페투'를 찾아내어 바닷길을 열지 못하면 모아나의 부족이 고사하게 될 것이라는 예지를 받은 것.
이에 모아나는 발명가 '로토'(로즈 마타페오), 농부 '켈레'(데이비드 페인), 이야기꾼 '모니'(후알랄라이 청)와 함께 다시 바다로 향한다. 그러나 모아나 일행은 날로가 보낸 괴물들을 만나 위기에 처하고, 그녀는 타우타이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런 그녀 앞에 오랜 파트너이자 반신반인 영웅 '마우이'(드웨인 존슨)가 나타나고, 그의 격려에 힘입어 모아나는 다시 한번 모투페투를 찾는 여정에 나선다.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6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모아나>. <모아나>의 매력은 신선함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폴리네시아 신화는 이전까지의 디즈니 작품에서 보지 못한 볼거리였다. 족장의 '후계자'로서 생산 업무에 직접 관여하는 여자 주인공의 등장도 파격적이었다. <겨울왕국>의 엘사, 안나 자매만 해도 전통적인 공주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으니까.
반면에 8년 만에 돌아온 속편 <모아나 2>는 기대보다 걱정이 컸다. 개봉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은 디즈니의 2024년 1분기 실적 보고회에서 TV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중이던 속편이 돌연히 극장용으로 전환되었다는 발표가 있었기 때문. 전편의 OST를 맡았고, 현재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곡가 린 마누엘 미란다가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뉴스도 불안감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모아나 2>는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말았다. 전편을 답습하는 데 그친 전반적인 얼개와 스토리, 고막을 유혹하는 데 실패한 OST는 본래 TV용 작품이었던 초안의 방증이나 다름없었다. 예상치 못하게 흥미로운 특이점은 있지만, 그조차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본래 특징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결국 <모아나 2>도 완성도 측면에서는 <스트레인지 월드>와 <위시>로 이어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부진을 끊어내지 못했다.
익숙한 이데올로기를 담은 환상
개봉 전에 <모아나 2>에서 보고 싶었던 장면을 하나만 꼽자면 카누를 타고 망망대해를 시원하게 가르는 모아나와 독수리로 변신해 그 위를 날아가는 마우이의 투샷일 것이다. 그런데 <모아나 2>는 이 장면에 예상치 못한, 하지만 디즈니라서 자연스러운 함의를 불어넣었다. 폭풍의 신 날로의 방해를 뚫고 모투페투 섬을 찾아서 자유로운 바닷길을 열어야 하는 모아나의 항해가 '항행의 자유 작전'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승전한 후 지금까지도 미 해군은 서방 진영의 항행의 자유를 보장했다. 국가 간 무역을 활성화해 시장 경제를 키우며 자국 중심 질서를 정립한 것. 근래 중국처럼 이를 방해하려는 세력이 나타나면 군사 작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를 고려하면 <모아나 2>는 놀라울 만큼 현실적인 작품이다. 모아나는 미 해군, 마우이와 동료들은 미국의 동맹국, 날로 신은 중국처럼 항행의 자유를 방해하는 국가에 정확히 대응되기 때문.
물론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 해석처럼 보일 수도 있다. 바닷길의 중요성은 미국만의 가치가 아니며, 바다를 통한 소통과 교류는 역사를 발전시키는 핵심 원동력이었으니까. 명나라가 정화의 원정 이후 돌연 바닷길을 포기한 이후 서구 열강이 중국의 국력을 추월한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따라서 바닷길을 끊어서 인간 세계를 암흑 속에 빠트리려는 날로의 존재는 인류 문명 공통의 공포이자 두려움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모아나 2>는 어디까지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디즈니는 대공황 이후부터 미국 사회가 추구하고 유지할 가치와 윤리를 충족시키는 환상 속에서 재미와 쾌감을 추구한 스튜디오였으니까. 자연히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미국식 이데올로기를 은연중에 관객에게 심어주는 역할을 맡아 왔다. 그렇기에 <모아나 2>가 보여주는 모험과 항해를 미국 중심적 시각에서 이해해도 무리는 아니다.
신화로 가린 이데올로기
다만 미국 패권에 대한 은유는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 <모아나 2>가 전편의 미덕을 본받아 인간 영웅이라는 신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 대다수 신화는 초자연적 존재를 조력자나 대적자로, 인간 영웅을 주인공으로 묘사하는 공통의 작법을 공유한다. 대체로 신적 존재는 아무리 강해도 여러 제약이 있다. 그렇기에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인간만이 신과 인간 세계 양쪽을 넘나들면서 모험을 펼치고, 운명을 성취한다.
<모아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다'와 같은 강대한 존재도 세계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 대신 모아나를 영웅으로 낙점하고, 그녀가 좌절하거나 포기하려 할 때마다 간접적으로 도울 뿐이었다. 남태평양 섬의 원주민들이 공통적으로 숭배하는 영웅, 마우이로부터 항해술을 배우도록 난파된 모아나의 배를 그의 섬으로 이끌어주는 식이었다. 모험을 계속할지 말 지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모아나의 몫이었다.
<모아나 2>도 마찬가지다. 전편이 반신반인이 아닌 인간의 모험이라는 콘셉트를 제시했다면, 속편은 이를 구체화한다. 날로와 전투를 펼치는 클리아맥스가 대표적이다.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가는 가운데, 모아나는 자신과 마우이의 역할을 바꾼다. 날로가 능력이 더 뛰어난 반신이 아니라 오직 인간만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 이는 뻔할 수 있었던 후반부를 변주시키며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원동력이 된다.
아는 맛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안타깝게도 <모아나 2>의 장점은 여기까지다. 우선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은 전편을 답습했다. 고향 모투누이 섬에 위기가 닥치는 환영을 본 모아나. 선조들이 발견하지 못한 전설 속의 섬을 찾아내지 못하면 부족 사람들이 모투누이에서 고립된 채 고사할 것이라는 예지를 받자 그녀는 다시 한번 항해에 나선다. 이는 모투누이에 찾아온 재앙을 풀기 위해 항해를 떠난 전편과 다를 게 없다.
발단 이후의 전개도 전편과 거의 동일하다. 서로 떨어져 있던 모아나와 마우이는 항해 도중에 합류해서 다시금 한 팀을 이룬다. 최종 빌런을 마주하기 전에 한 차례 실패를 겪는 것도, 좌절한 일방을 다른 일방이 위로하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도 유사하다. 단지 전편에서는 모아나가 마우이를, 속편에서는 마우이가 모아나를 일으켜 주는 게 다를 뿐이다.
물론 기시감을 옅게 만들려는 시도는 있다. 돼지 '푸아'와 닭 '헤이헤이'에 더해 모아나의 여동생 '시메아', 동료 선원 모니와 로토 등에게 적잖은 분량을 부여하고, OST에서도 로토에게 래퍼 역할을 맡기는 식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부작용을 동반한다. 모아나와 마우이의 분량이 줄면서 도리어 그들의 캐릭터성이 평면적으로 변한다. 일례로 전설적인 길잡이의 칭호까지 받은 모아나의 내적 갈등은 스케치 수준으로 스쳐 지나간다.
귀가 허전해
마지막으로는 음악의 쾌감도 전편에 미치지 못한다. 더 이상의 검증이 불필요한 린 마누엘 미란다의 공백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진다. 그는 모아나가 항해에 나서기로 결심을 굳힐 때 부르는 노래인 'How Far I'll Go'를 작사, 작곡하면서 <모아나>의 흥행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바 있었다. 엘사가 부른 'Let It Go'가 <겨울왕국>을 상징하듯이, 'How Far I'll Go' <모아나>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했으니까.
린 마누엘 미란다가 제작에 불참한 <모아나 2>는 'How Far I'll Go'와 같이 뇌리에 각인될 만한 OST를 들려주지 못했다. 두 번째 모험의 시작을 알리는 'Beyond'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하지만, 이전 곡과 같은 임팩트를 주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물론 노래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편에서 모아나가 항해에 나서기까지 겪은 역경만큼 극적인 전개를 속편이 고안해내지 못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에 가깝다.
귀가 허전한 아쉬움을 비주얼로 만회하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클라이맥스 전투 시퀀스는 확실히 눈을 즐겁게 한다. 특히 모아나의 카누가 거대한 파도를 빗겨 타는 순간을 4d로 본다면 마치 서핑을 하는 듯한 쾌감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음악의 아쉬움을 온전히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클라이맥스 외의 장면에서는 특별히 놀랄 만한 장면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모아나 2>는 쿠키 영상에서 예고하는 3편을 위한 징검다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듯 싶다. 그와 동시에 과연 <모아나 2>가 징검다리 역할을 온전히 해냈는지는 끝나는 순간까지도 의문이다. 세 번째 애니메이션보다는 약 1년 반 뒤에 개봉할 <모아나> 실사 영화가 더 궁금해지니까.
Acceptable 무난함
디즈니가 디즈니한 무색무취한 속편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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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사와 외계인이 써내려 간 사상누각 SF 판타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22년 현재, 인간의 몸에 가두어진 외계인 죄수의 탈옥을 막기 위해 지구에 상주 중인 로봇 ‘가드’(김우빈)’와 ‘썬더(김대명)’. 인간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서 이들은 지구의 여러 시간대에 죄수를 가둬두고, 자동차와 비행선으로 변신할 수 있는 썬더를 통해 시간여행을 하며 죄수들을 감시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려시대 말로 이동해 탈옥한 죄수를 검거한 가드와 썬더는 의도치 않게 인간의 아기를 현재로 데려와 키우기 시작한다. 한편 고려말 도사 ‘무륵(류준열)'은 현상금을 받기 위해 신검을 찾으러 나서다가 요괴를 만나고, 마찬가지로 신검을 찾는 ‘이안(김태리)'과 속고 속이는 쟁탈전을 벌인다. 두 신선 ‘흑설(염정아)'과 ‘청운(조우진)'도 마찬가지로 요괴의 존재를 감지하고 신검을 좇는 가운데, 밀본의 수장 '자장(김의성)' 도사도 신검 쟁탈전에 가담한다.
SF와 판타지의 만남을 보여주는 영화 <외계+인> 1부는 <범죄의 재구성>부터 <타짜>, <전우치>, <도둑들>, <암살>에 이르기까지 흥행불패를 이어온 최동훈 감독의 7년 만의 신작이다.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 소지섭, 염정아, 조우진, 김의성, 이하늬 등의 스타 배우들이 총집합했고, 387일이라는 한국 역사상 최장 프로덕션 기간을 자랑한다. <승리호>처럼 한국형 SF를 표방한 것이나, 올여름 격돌할 이른바 한국영화 Big 4 중 첫 번째이기에 기대가 더 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외계+인> 1부는 실망스럽다.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영화의 초점은 산만하고, 감독의 장점인 하이스트 장르의 특징이 발현되려는 찰나에는 리듬감이 툭툭 끊기는 느낌이 든다.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일부를 제외하면 캐릭터들의 매력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외계+인>은 감독의 전작이자 한국형 히어로 혹은 무협 판타지 영화였던 <전우치>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지점에서 sf와 판타지라는 상이한 장르적 특성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혹은 않은) 듯 보인다.
우선 <외계+인> 1부는 여러 측면에서 <전우치>와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도사 무륵의 첫 등장은 모의고사 지문으로도 등장했던 전우치의 등장씬을 오마주하며,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한 <전우치>처럼 <외계+인> 1부도 시간여행을 펼친다. 두 신선 흑설과 청운이 코미디를 도맡는 것은 신선 3인방을 연상시키고, 고양이로 변신하는 좌왕과 우왕은 유해진이 연기했던 초랭이를 보는 듯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도사가 등장해 여러 시련 끝에 스승이 알려주지 않는 비기를 득도한다는 전개도 전우치의 성상 서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사람의 모습을 한 채 숨어 지내며 피리를 노리던 요괴 '화담(김윤석)'처럼 외계인이 사람의 모습을 취한 채 신검을 쫓는 것 역시 공통점이다.
이는 바꿔 말해 <외계+인> 1부가 제목에서부터 강조하고 있는 외계인의 존재가 <전우치>를 더 큰 세계관을 확장시키기 위한 핵심 도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우치>가 일방향적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하는 데 그쳤으니, 영화는 더 많은 도사와 더 복잡한 시간 여행기를 보여주려 한다. 그렇다고 이미 한 차례 활용한 빌런인 요괴를 등장시킬 수 없기에 전혀 다른 존재인 외계인을 등장시켜 현재와 과거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세계관을 키운다. 그래서 외계인은 철저히 수단적으로 활용된다. 외계인 캐릭터는 생동감이나 입체감이 부여받지 못한다. 그들의 존재는 위기를 자아내고, 시간 여행의 문을 열어서 사건의 발단을 만드는 것으로 활용가치가 충분하다. 그 문을 넘어서면 더 많은 도사와 주변인들이 과거의 현재 사이에서 펼치는 화려한 티키타카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까지만 보면 외계인을 투입한 선택은 그 역할을 충실히 다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도구적인 외계인 활용법은 두 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하나는 무색무취한 외계인의 등장은 결국 SF 장르의 스펙터클이라는 외피만 취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이로 인해 SF와 판타지라는 장르 사이에서 영화가 좀처럼 균형점을 찾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외계인을 통해 깔아 둔 판 위에서 펼쳐져야 할 여러 캐릭터들의 티키타카가 그 자체로 큰 재미를 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단 <외계+인> 1부는 SF 장르와 판타지 장르가 일반적 인식과 달리 결합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SF와 판타지는 초자연적이고 초현실적인 현상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있다. 판타지 영화는 초자연적 세계와의 경계를 없애버리는 장르에 가깝다. 이 세계의 것이 아니라서 이해하기 어려운 마법과 같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나니아 연대기>과 같은 판타지는 현실에 발붙이는 대신 초월적 세계를 주무대로 삼으며, 선악의 대립에 기초한 형이상학적 윤리관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장식한다. 반면에 SF 영화는 알려지지 않은 초자연적 세계를 향해 돌진하는 영화에 가깝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통해 당장은 이해할 수 없으나 미래에는 이해할 수 있을 현상과 세계에 대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한다. 이때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주체적 노력이 이끌어내기에 SF는 판타지와 달리 당장 현실의 문제에 발 딛고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SF 영화가 재현하는 세계에는 당장 오늘의 현실적 문제가 투영된다. SF 영화 속 세계는 알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새로운 발견과 기술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세계의 변화를 일으킨다. 이 지점에서 SF 영화에는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낙관만큼이나 인간의 기계화나 혹은 기계의 인간화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우려가 자연히 깃들 수 있다. 그래서 SF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과학과 관련된 사회 제도와 구조와 관련이 깊을 수밖에 없다. 즉, SF 영화는 과학에 근간을 둔 스펙터클을 통해 오히려 인간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는 통로이며, <터미네이터>, <아바타>, <쥬라기 공원> 등의 SF 명작들은 제각기 사회적 문제를 다룬다. 선악의 대립 끝에 선의 승리를 통해 기존의 세계관과 질서를 반복하는 판타지가 보수적이라면, SF는 진보적인 장르인 것이다. 이는 SF 작가 테드 창이 "판타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면 SF는 세계가 변화하는 이야기"라고 요약한 이유다.
단순히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돋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활용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데에만 치우친 많은 한국 SF 영화는 이 대목에서 번번이 좌절을 맛봤다. 현재나 혹은 과거 사회상에 대한 의식이 느껴지지 않는 이질적인 세계를 상상해 스크린에 띄운 결과 영화에서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도, 부정적 우려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SF 영화의 세계관을 기대하는 관객과의 소통 부재를 일으키는 결정적 이유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담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나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로 인한 미래상을 그려낸 <설국열차>와 넷플릭스의 <승리호>가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외계+인> 1부는 익숙한 실수를 반복한다. 외계인들의 행성이 전쟁으로 인해 초토화된 후 평화에 반대하는 '설계자'를 비롯한 이들을 지구의 인간 속에 가두고 있다는 설정에서는 현실 세계를 향한 비판적 시선이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구체적인 장면 없이 대사로만 전달될 뿐만 아니라, 반전과 평화를 추구한다는 주제의식 자체도 지나치게 일반론적이다. 그나마 모든 것을 수치화하는 가드와 썬더가 인간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인간의 감정처럼 계량화 할 수 없는 요소들의 중요성을 깨닫는 대목에서는 인간성이 사라지는 세계에 대한 비판의식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 내용은 고려시대를 배경을 한 도사들의 이야기에 밀려 제대로 된 서사와 분량을 배분받지 못하며, 결국 급작스러운 전개로 인해 메시지에 설득력이 실릴 틈이 없다. 가드와 썬더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가 <전우치>의 연장선상인 판타지적 세계관에 속해 있기에, SF의 외적 요소를 제외하면 지향점이 근본적으로 다룬 SF영화의 스토리는 좀처럼 하나의 영화에 통합되지 않는다.
최동훈 감독이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적인 방식으로 <어벤져스>만큼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힌 대목에서는 이 실수가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당장 그 <어벤져스>도 판타지와 SF의 세계를 혼합하는 데 긴 시간을 투자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고도로 발전한 과학이 마법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중심이 된 시리즈에 신화 속 인물인 토르는 좀처럼 섞이지 못했다. <토르> 시리즈의 1편과 2편은 판타지도 sf도 아니라는 혹평을 들었고, 배경을 완전한 외계 행성으로 바꾼 3편부터 세계관에 녹아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외계+인> 1부도 단순히 기능적으로 SF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판타지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이정표를 목표로 했다면 더 많은 준비가 있어야 했다. 판타지와 SF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를 충분히 전개할 수 있는 구조와 구성, 시리즈의 편수와 영화가 아닌 넷플릭스 시리즈와 같은 배급 방식에 이르기까지 더 고민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는 최동훈 감독이기에 남는 아쉬움이기도 하다. 불안정한 세계관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려면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역으로 이는 최동훈 감독의 특기였다. 그의 영화들은 자세한 설정과 배경 설명, 구체적인 세계관을 토대로 관객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한눈에 들어오는 특출 난 캐릭터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관객의 귀로 곧장 꽂히는 매력적인 대사들로 무장한다. 관객의 눈과 귀를 현혹해 부족한 점을 가리고 러닝타임 내내 최동훈 감독의 시나리오를 따라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유달리 최동훈 감독의 작품은 명대사와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많다. 십수 년이 지나서도 명대사와 캐릭터를 재발굴할 수 있는 영화인 <타짜>, 모의고사 지문으로도 등장해 화제가 된 <전우치>, 전지현의 대표작인 <도둑들>과 이정재의 성대모사하면 빠질 수 없는 영화인 <암살>에 이르기까지.
<외계+인> 1부에서는 이러한 매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부실한 세계관의 허점을 눈감고 넘어갈 수 있는 매력적인 포인트가 없다. 물론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도사들의 이야기는 나름대로 인물들의 매력을 어필한다. 흑설과 청운의 콤비는 등장인물들 중 가장 고타율의 유머를 자랑한다. 어느 시점부터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과거와 현재의 접점을 따라 전형적인 이야기를 보여주는 무륵과 이안도 2부에서 풀릴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감은 심어준다. 나름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자장 도사도 극의 무게감을 잡아준다.
문제는 현대 시점이다. 외계인 캐릭터를 철저히 도구적으로 설정한 결과 그들과 맞서 싸우는 가드는 일인다역을 소화하는 김우빈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원맨쇼를 펼치는 듯 느껴진다. 그와 합을 맞춰야 할 또 다른 캐릭터인 썬더도 문제가 적지 않다. 전투가 벌어지거나 가드가 일을 할 때 달걀 모양의 로봇인 썬더가 말하는 "비상", "위험하다", "생명력 9%"와 같은 유치한 대사의 내용이 다급한 톤과 묘한 부조화를 일으키면서 흐름을 깨기 때문이다. 그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인 점,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한 C3PO와 R2D2처럼 로봇 캐릭터가 SF 영화에 매력을 더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달리 아쉬운 대목이다.
결국 <외계+인> 1부는 한국 영화에서 여전히 생소한 SF와 판타지 간의 이종결합을 시도했다는 의의는 있을 지라도, 상업영화로서 최동훈 감독의 명성에 걸맞고 그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결과물은 아닌 것 같다는 인상만을 남긴 채 내년에 개봉할 2부를 기약한다.
P(Poor, 형편없는)
한국형 SF 판타지의 도전 그 자체를 칭찬하기에는 반면교사도, 롤모델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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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의 달, 가족이 보고 싶어지는 영화 BEST 4
안녕하세요. 광남입니다. 오늘은 다가오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이 보고 싶어지는 영화 BEST 4를 선정해봤습니다. 가족조차 모이기 힘든 요즘, '가족'이란 단어도 어색해지지 않았나 싶은데요. 조금은 낯간지러울 수 있지만 광남이가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이 보고 싶어지는 영화로 어떤 영화들을 선정했는지 궁금하시다면 끝까지 함께해주세요. 그럼 바로 시작합니다.
가정의 달, 가족이 보고 싶어지는 영화 BEST 4
집으로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 손주 ‘상우’예요” 도시에 사는 7살 개구쟁이 ‘상우’가 외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 시골집에 머물게 된다.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 외할머니와의 시골살이. ‘상우’ 인생 최초의 시련은 과연 최고의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첫 번째 가족이 생각나는 영화 '집으로' 입니다. 아마 어린시절 유승호를 볼 수 있다는 재미도 있지만, 할머니와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공감하면서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가 나왔을 당시에는 조폭, 건달 등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가 많이 나왔었는데 이렇게 잔잔하고 할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나와 많은 공감을 얻었었죠. 어쩌면 지금의 10대는 느끼기 힘들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한번 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가정의 달, 가족이 보고 싶어지는 영화 BEST 4
이프 온리
어느날, 사랑하는 여자 사만다(제니퍼 러브 휴잇)가 사고로 죽었다.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를 떠나보낸 남자 이안(폴 니콜스)은 사만다의 악보를 끌어안고 잠에 드는데.. 다음날, 눈을 떠보니 옆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리면서 사만다가 있음을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지난 날을 꿈이라고 생각한 이안은 사만다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지만 사만다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정해진 운명은 다시 일어나는 법! 전날 이안이 겪었던 일은 다른 방식으로 모두 나타나고, 이안은 더 늦기전에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사만다에게 전하려고 한다.
두 번째 가족이 보고 싶어지는 영화는 '이프 온리'입니다. 이프 온리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 남주 이안은 매일 보는 연인 사만다에 대해 익숙함으로 인해 상대방에 대한 감정조차 까먹고 말죠. 결국, 사만다가 죽고 나서야 이안은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데, 다음 날 살아 돌아온 사만다와 보내는 마지막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이 영화는 어찌 보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부 관계에서 소홀해질 수 있는 감정을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정의 달, 가족이 보고 싶어지는 영화 BEST 4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
20세기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현재의 21세기 일본은 감정도 없고 메마른 곳이라며 현재의 일본을 20세기 되돌려 놓으려한다. 그래서 짱구네 가족이 자신들의 미래를 찾기 위해 이를 막아내고 다시 일본은 원래대로 돌아온다.
세 번째 가족이 보고 싶어지는 영화는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입니다. 이 작품은 어른들과 아이들의 전쟁을 짱구만의 포인트로 그려낸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 속 짱구 아빠 신영만의 과거 회상 장면이 생각보다 많은 어른들의 감정선을 터치하는 바람에 애들 보여주려고 봤다가 어른들이 울어버린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자체는 짱구는 못말려 애니메이션 1편을 보는 느낌이지만 그 안에 잠깐 담겨있는 짱구 아빠의 과거 회상 하나만으로도 가족이란 단어에 들어있는 수많은 의미 중 일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정의 달, 가족이 보고 싶어지는 영화 BEST 4
어바웃 타임
모태솔로 팀(도널 글리슨)이 성인이 된 날, 아버지(빌 나이)로부터 놀랄만한 가문의 비밀을 듣게 된다. 그 비밀은 바로 대대로 집안 남자들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시간을 되돌려 히틀러를 죽이거나 여신과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없지만 여자친구 정도는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팀은 가문의 비밀을 안고, 꿈을 위해 런던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메리(레이첼 맥아담스)에게 한눈에 꽂히게 된 팀은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어설픈 대시와 시간 되돌리기를 반복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사게 되는데..
마지막 가족이 보고 싶어지는 영화는 '어바웃 타임'입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팀의 집안은 대대손손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고, 자신이 원하는 이성인 메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곤 합니다. 그렇게 메리와의 결혼에 성공한 팀은 더이상 시간을 되돌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암으로 죽기 직전에 처하고 시간을 되돌리고자 하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현재 자신의 아이가 바뀔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시간을 되돌리지 못하는데요. 영화 어바웃타임에서는 팀과 메리의 관계도 있지만, 아버지와 팀의 관계 속에서 보여주는 부정에 대해 뜨겁게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오늘은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이 보고 싶어지는 영화 BEST 4를 선정해봤습니다. 이 외에도 너무 따뜻하고 가족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들이 많이 있을 텐데요. 오늘 소개해드린 작품들도 한 번 다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가오는 5월 가정의 달에는 부디 코로나 확진자 수가 올라가지 않고 내려가서 안정화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 광남 -
* 본 콘텐츠는 블로거 광남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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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점으로 쏘아 올린 장점
이 글은 넷플릭스 작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리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mbc
장르물을 다루는데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나 설정들이 있다. 예를 들어 수사물에서는 발바닥에서 땀난다는 말 외엔 묘사할 방법이 없는 형사들의 고군분투가 그려진다던가. 주인공은 조사를 해야만 하는 세력과의 갈등을 겪으며 숨길 수밖에 없는 비밀을 가진 채 초조해한다던가. 흑막이라고 불리는 최후의 빌런이 나타났을 때 아니 네가!!라는 말이 나오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장르마다의 특성은 대다수의 사람이 기대하는 점이면서도 식상함을 느끼기 쉬운 포인트이기에, 기본적인 규칙은 지키면서도 작품만의 변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 이중고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변주로 가득하다고 하기보다는 단점으로만 가득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화면은 어둡고 사건 전개는 느리며 수사물에서 볼 법한 장면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이런 단점을 뒤집어 모조리 장점으로 만들어버린다.
사진출처:mbc
12.3일 이후로 가르마 위치만 달랐지 우리나라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히틀러의 인기는 스포트라이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두컴컴한 곳의 가장 정중앙에 우두커니 선 채로 그는 마치 자신만이 계시를 받은 듯 밝은 빛 아래에 존재했고. 모두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가운데 반짝반짝 홀로 빛나며 말빨 하나로 군중들을 홀라당 사로잡았다.(아 물론 누구는 그마저도 못해서 전 세계인의 욕만 홀라당 얻어먹었으니 그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이렇듯 스포트라이트는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주지만 수사물에서는 그다지 각광받는 시점은 아니다. 그리고 이 포커싱을 위해서, 극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태수(한석규)의 집은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어두워야만 한다는 위험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이 단점을 완벽하게 커버하기 위해. 위대한 배우 한석규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한석규는 허탈함을 표현해 낼 줄 아는 세상 몇 안 되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의 진가가 모든 장면에서 발휘된다.
태수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담은 숨결 한 번에. 시청자들은 마음 바닥까지 훑는 듯한 저릿함을 느끼기도 하고, 애처롭게 딸을 쳐다보는 눈빛에서 쏟아지는 태수의 복잡한 심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도 한다.
극 중 분위기와 너무도 닮은 태수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침착하고 냉철하며 묵직한 태도를 취하지만. 마치 혼자만 벚꽃을 뿌린 듯 샤랄라 빛나는 군도 속의 강동원처럼. 태수는 자신을 에워싼 어둠에 조금도 잠식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좋은 배우를 보는 카타르시스 자체가 스포트라이트가 되어 확실하게 태수를 비춘다.
사진출처:mbc
수사 장르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속도로 수사가 진행되려면 계엄에서 해제까지의 속도쯤은 되어야 할 텐데, 이 작품은 프로파일러라는 태수의 직업상, 수사의 진척이 마치 국민의 짐 때문에 탄핵이 자꾸 미뤄지는 것만큼 느릿느릿하고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각본의 거의 대부분을 태수와 딸 하빈(채원빈)에게 집중시키는 두 번째 스포트라이트를 씀으로써 흩어지는 이야기를 없애고 극 중에 덩그러니 두 사람만을 남겨둔다.
여러 용의자와 더불어 결국에는 밝혀질 최종 빌런을 이리저리 꼬아 놓으려면 주변에 대한 설명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극을 따라가는 데 있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과연 이 등장인물이 필요했는가?라는 물음이 생기기도 하고. 소위 말하는 떡밥이 완벽하게 설명되지 못해 물음표를 남기거나 실패한 수사물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외롭게 뻗은 두 가지 외에 모든 곁가지를 없앰으로써 극 전체는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딸과 아버지 사이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으로 시청자를 단단히 동여맨 채 수사의 방향과 속도를 받아들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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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나 그 와중에도 이탈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이라도 되었던 듯. 작품은 세 번째 트릭을 쓰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버릴 것 하나 없이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형사들의 냄새나는 양말도, 목에서 피맛이 느껴질 것 같은 추격전도. 흠씬 두들겨 맞아 정신이 혼미해지는 폭력 장면도 없다. 오로지 극의 분위기를 십분 닮은 태수의 집이 존재할 뿐이다. 그의 집은 과연 김건희의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정도가 아니고서야 프로파일러의 월급으로 이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아름답지만. 동시에 어딘가 비밀을 감춘 듯 모든 문이 닫혀 있으며 대척점을 이루는 부녀관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듯 그들은 늘 식탁의 끝과 끝에 존재한다.
장면들이 가진 아름다움과 선으로 구분한 상징들은(마치 영화 [기생충]처럼) 배우들과 어우러져 최종적인 장면을 구성한다.
분명 비어있거나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위험요소를 이 마지막 트릭이 완벽하게 없애준다. 덕분에 배우들은 빛나고, 극의 진행 또한 매끄러우며, 비밀을 숨긴듯한 아름다움을 보면서 만족할 수 있는 드라마가 완성될 수 있었다.
마치면서 (좀 길다)
1. 한석규 베우는 나이에 맞는 역할을 언제나 따박따박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만큼 그의 나이와 시간과 때에 맞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 하나의 거짓 없이 진실과 진심만으로 뭉친 대배우를 보는 이 마음이 얼마나 감사하면서도 코끝이 찡한 건지 모르겠다.
2. 비질란테로 대변할 수 있는 "사이다"물이 아니지만. 가장 현실적인 마지막을 선사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이런 결말은 한석규 배우가 있었기에 더 진실되었다고 생각한다.
3. 개인적으로는 제목조차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딸만 아버지를 배신한 줄 알았으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관계의 인물들이 서로에게 비수를 꽂다 못해 더 이상 고통을 호소할 수 없을 때까지 서로를 괴롭힌다. 그들의 관계에서 오는 배신감 때문에 모든 장면이 아름답지만 동시에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최근 누군가는 알량한 신뢰를 업고 온 국민을 배신했다.
이 배신이 가진 파급은 너무 커서 열흘이나 지난 지금도 일상에 온전히 발을 붙이지 못하고 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덕분에 불안장애 약을 안 빼먹고 자알 먹는다)
제목이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라는 극 중 대사는 가르마 타는 거 외엔 그 어떤 관심도 없어 보이는 당신에게 선사하는 메시지 같기만 하다.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당신 혼자 빠진 그 망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를 이용했다는 히틀러처럼. 당신 또한 그의 말로를 따라갈 것이니. 그대의 최후가 오거든 단 한 번만이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그대로 보기를 바란다.
당신은 우리에겐 친밀하지는 않았을지언정 배신자였으며. 주지 않은 신뢰마저도 이용하려 했다는 것을. 앞에 펼쳐진 이 모든 처참함은 당신이 자처한 것임을.
[이 글의 TMI]
1. 도시락 싸놨는데 안 들고 옴
2. 나 잡혀가면 좌표 좀 찍어줘요.
3. 냄비밥 해놓고 깜빡해서 밥 다 쉬었음.ㅠㅠ
#넷플릭스 #영화리뷰 #OTT리뷰 #이토록친밀한배자 #munalogi #한석규 #신작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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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이 우리를 청춘에 데려다줄 거야
SYNOPSIS.
“빅밴드 재즈? 그게 뭐하는 건데?”
지루한 보충수업을 째고 싶었을 뿐, 토모코(색소폰)
야구부 선배에게 홀딱 반했을 뿐, 요시에(트럼펫)
남들보다 폐활량이 뛰어났을 뿐, 세키구치(트럼본)
어쩌다 친구 따라왔을 뿐, 나오미(드럼)
심벌즈가 적성에 안 맞았을 뿐, 나카무라(피아노)
짝사랑하는 재즈 덕후일 뿐, 수학 선생님(지휘)
대단한 이유 없음! 눈부신 재능 없음! 거창한 목표 없음!
그래서 우린 스윙한다♬ 그 누구보다 재미있게♬
POINT.
✔️ 우에노 주리가 실제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촬영한 영화. 조금 엉뚱하고 풋풋한 매력이 빛납니다.
✔️ 그러나 배역 준비는 풋풋하지 않음. 실제로 배우들이 악기를 배워서 연기했다고 해요.
✔️ 교복 입고 무언가에 열정을 불태우는 청춘 영화... 안 좋아하는 법 아시는 분?
✔️ <워터 보이즈>로도 사랑받은 야구치 시노부 감독 작품입니다.
교복 입은 아이들이 해맑게 나와서 각자의 청춘을 향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사실 이렇게 말한다는 자체가 특정 시대 콘텐츠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다. 요즘 교복 입은 애들은 해맑게 청춘 타령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괴생명체랑 싸우고, 좀비 바이러스 퍼진 학교에 고립되고, 성매매에 연루되고, 온갖 폭력에 맞서고, 기껏 공부 좀 해보려는 애도 타고난 재능이 싸움이고 뭐 그렇다... 다시 말해 학원물 또한 액션물과 장르물의 파도를 타는 시대다. 갖은 욕망들이 드글드글 서로의 머리채를 잡는 빨간 맛 드라마가 각광 받는 시대. 다이나믹한 스토리에 강한 K-콘텐츠 특성이기도 하고, 다이나믹한 현실을 노련하게 담아낸 창작물이라는 뜻도 되겠지만, 유순하고 말간 학원물이 이따금 그리울 때가 있다.
청춘 영화가 좋은 이유
콘텐츠조차 숨가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맹한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영화는 그냥 그 자체로 귀엽다. 특히나 <스윙 걸즈>는 2004년에 개봉한 영화다. (한국에서는 2006년 개봉했다.) 불과 20년 전이지만 분명 다른 시대 정신이 그 안에 분명 있다. 그 시절 시골에는... 정말 <스윙 걸즈> 같은 느낌의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가 그저 타성에 젖어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교 풍경, 여름 방학 보충 수업이라고 그 타성조차 늘어진 날들. 학교에서 덥다는 생각으로 교복 깃을 풀풀 흔들며 매미 소리나 듣고 있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그래서 외국 영화임에도 <스윙 걸즈>의 풍경이 아주 낯설지는 않다.
그다지 치열하지 않아도 되는 (관념 속의) 학교와 교복, 지방의 작은 열차를 타고 다니는 푸릇푸릇한 (관념 속의) 시골 풍경, 바쁘기보다는 무료할 정도로 단조로운 날들, 거기에 반짝 빛을 더해주는 친구들과의 시간, 집 전화로 서로를 부르던 시절의 감각, (역시나 관념 그 자체인) 여름 쓰르라미 소리, 기분 좋아질 수밖에 없는 음악까지... 이 영화는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영화다.
동양권 청춘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이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청춘의 파릇파릇 예쁜 면을 가득 보여주고, 조금씩 배경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한국-일본-대만 정도의 권역에서는 무리 없이 그 감성을 고스란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나라 애들은 수능 말고 무슨 시험을 보는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청춘의 표면만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20여년 전 일본 영화, 10여년 전 대만 영화 등 이런 "청춘물"이 우수수 쏟아지던 시절을 한 번 훑고 나면 그건 시대의 기억이 된다. 실제로 이 영화를 나도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땐가 봐서, 내 청춘의 기억과 중첩되어 더욱 푸릇푸릇하게 느껴진다. 나이 들면서 좋은 점 중에는 이렇게 기억의 중첩으로 감각이 더 진하게 우러난다는 점도 있구나.
나이 들어 좋은 점은 하나 더 있다. 그 시절 '언니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였던 <스윙 걸즈>는, 얼추 두 배의 나이가 되어서 보니 마냥 귀엽기만 하다. 기껏 정 붙은 악기를 내어주고 자리를 비켜 주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나, 친한 친구여도 옆자리 친구와 기묘하게 경쟁하게 되는 마음, 꿈 같던 여름이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묘하게 어색해진 친구와의 거리감 같은 것들이 죄다 귀엽다. 그 시절에 가장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감각임을 알기 때문이다. 바쁜 일이나 정해진 일정 같은 것들에 얽매이는 삶을 아직 시작하기 전, 그 시기 특유의 감각.
우연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무료하리만큼 고요한 날들도, 그 시절의 청춘도 모두 아름답지만... 오랜만에 본 이 영화가 옛날과 달리 마음에 남긴 것은 또 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되는 것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하는 질문이다. 여름에 우연히 손에 쥔 관악기들이 아이들을 전혀 다른 겨울로 데려갔듯이, 우연한 시작은 우리를 생각지도 못한 길에 데려다 놓는다. 그런 마법은 어릴 때만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 새로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비록 시작이 마법 같다고 그 여정이 즐겁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악기를 갖고 준비를 하기 위해 나름대로 들인 시간과 공이 있었듯, 무언가가 되어가는 과정은 언제나 지난하고 쉽지 않다. 그러나 조금씩 해냈을 때의 즐거움도 있으니까. 이 아이들처럼, 그렇게 그 길을 가게 된다.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과 함께 은은한 유머 감각이 빛나는 장면이나, 모로 가든 어찌됐든 문제가 얼렁뚱땅 해결되는 뻔뻔한(positive) 전개, 타카하시 잇세이나 키노 하나, 에구치 노리코(악기점 점원이었다!) 같은 배우들의 한껏 젊은 시절을 보는 일, 뭐 그런 것도 즐겁긴 했지만... 이 영화가 가장 산뜻하게 즐거웠던 이유는 역시 그 우연한 시작을 정말로 무언가 '되게' 만드는 여정을 담았다는 지점이 아닐까.
우연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몰라도, 그 길을 박수 짝짝 치며 친구들과 즐겁게 걷다 보면 우린 어딘가에 다다른다. 그 지점은 청춘 영화에서 계속 본 그 싱그러움을 닮아 있다. 어쩌면 청춘의 외피를 더덕더덕 붙여 바른 것처럼 느껴지는 이 영화는, 그 속살을 따라갈 때 가장 싱그러운 청춘에 도달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치면 청춘은 나이의 개념이라기보다, 마음의 상태에 더 가까운 개념인지도. 고등학생 귀엽고 나이 들어 좋은 점이 있다고 글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싱그러운 자리의 빛에 가슴이 뛰고 있으니까.
그러니 오늘도 좋아하는 걸 마음껏 좋아하고, 그 길이 우리를 어떤 싱그러운 자리로 데려다 주는지 기쁘게 바라보자. 잘하든 못하든, 기회가 있든 없든. 우연이 우리를 청춘에 데려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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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판과 고질라 그 무엇들보다 <커튼콜>
*영화추천*
<커튼콜> Curtain Call, 2016
감독: 류훈
빨판과 고질라, 그 무엇들보다
출처: 영화 <커튼콜> 스틸컷(네이버)그는 한때 셰익스피어를 쪽쪽 빨아먹는 빨판이라 불렸다.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기대주이자 모든 동료의 눈과 입에 요란하게 걸릴 인재이기도 했다. 그의 친구는 맛깔난 애드리브로 연극판을 씹어먹는 고질라였다. 빨판과 고질라, 민기와 철구, 두 친구는 자칭, 타칭 천재 연출가와 배우, 그보다 더한 수식어가 따라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예술가’가 될 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매섭고 서글프다. 빨판은 ‘하느냐, 마느냐’에 철학을 욱여넣은 삼류 에로 극단 ‘민기’의 연출가가, 고질라는 식대 영수증만 보면 애드리브가 폭발하는 프로듀서가 됐다.
꼭 꿈과 현실 중 하나를 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착각이다. 두 친구는 셰익스피어와 에로 중간에 서서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극단에 소속된 단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의 암울한 속사정이 무대 위에 난잡하게 흩어져 있는 걸 알지만, 굳이 치우려 하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절망이 때론 답답한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수단이 된다는 걸 알고 있고, 무엇보다 무대에 올라간 ‘내가’ 그것들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출처: 영화 <커튼콜> 스틸컷(네이버)
물론 극단 민기의 햄릿은 엉망진창이다. 정말 배꼽 빠지게 웃긴다. 단원들의 숨 막히는 실수는 끊이질 않고, 우리가 알던 햄릿은 점점 요상해지지만, 실없거나 우습지 않다. 오히려 놀랍다. 한없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던 햄릿이 순식간에 수백 개의 질문을 머금고 원래 제 무게를 찾는 순간, 우린 <커튼콜>이 대극장에 오른 연극이었음을 깨닫는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고 했던가. 아니다, 진짜 일류는 어쩔 수 없음을 어쩔 수 없음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자다. 세상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은 날려버리고 무작정 끝을 보는 자, 언제든 절망을 희망으로 읽을 수 있는 자, 갑자기 ‘죽느냐, 사느냐’가 ‘하느냐, 마느냐’로 들려도 전혀 개의치 않는 자, 바로 ‘민기’ 같은 사람들이다.
출처: 영화 <커튼콜> 스틸컷(네이버)
위로든 힐링이든 힘이 든 뭐든 다 좋다. 빨판과 고질라 같은 것들이 주는 위세보다 더 강렬하고 곧은 나만의 심지를 확인했으면 한다. 그런 커튼콜이라면 몇 번이고 반복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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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어날 수 없는 상실의 늪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아픔 중 가장 사무치는 고통은 상실에 대한 고통이다. <톡 투 미> 이후 다시금 상실이라는 소재로 극장가를 찾아온 필리포 감독의 공포영화는 한층 더 잔인하고 슬픈 서사로 무장한 채 관객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공포라는 장르는 죽음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다.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오는 좀비물, 죽음의 공포와 맞서야 하는 슬래셔물, 죽음에서 벗어나려는 컬트물 등 어쩌면 너무 당연했기에 잊고 있었던 소재이기도 하다. 우리와 가깝고도 먼 이 죽음을 필리포 감독은 그간 어떻게 다뤄왔을까?
사실 <브링 허 백>의 경우 개봉 예정작인 <톡 투 미>의 속편을 제외한다면 그들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일관성 있는 필모를 쌓고 있는 셈인데 적어도 이 두 편의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한 가지 사실은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죽음에 의한 상실은 때로 누군가를 미치게 한다는 것. <톡 투 미> 속 '미아' 는 엄마의 자살을 받아들이지 못한 십 대 소녀이다. 생전 영매술사의 손이었다던 조각을 매개로 죽은 자들을 본 이후 미아는 악령들에게 시달리게 되고 결국 그들에 의해 현실과 환상의 괴리를 이기지 못한 채 최후를 맞는 인물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금기시 되던 '90초를 넘기지 말 것' 을 진즉 어겨버린 그녀였기에 마치 악령들에 의해 살해 된 것처럼 묘사되나 사실 영화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여러 인물의 대사나 행동을 통해 사실 미아가 상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원흉은 물론 생과 사의 매개체였던 조각이었을지 모르나 악령들에게 있어 죽음에 사로잡힌 미아의 영혼은 이미 죽음으로 끌어들이기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브링 허 백>은 어떨까.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위탁모 '로라'의 집으로 향하게 된 '파이퍼'와 '앤디' 남매의 시점으로 시작되는 영화엔 역시나 상실의 고통이 기저에 깔려있다. 하지만 <브링 허 백>은 <톡 투 미>가 보여주었던 매개로 인한 파멸 그 이상의 이야기를 전개하며 좀 더 상실이라는 키워드에 가까이 접근한다.
딸 '캐시'를 잃은 위탁모 로라는 남매 중 유난히 장애를 가진 파이퍼에게 지극한 정성을 보인다. 샐리 호킨스가 분한 로라라는 인물은 어쩐지 앤디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화의 전개상 마냥 다정한 인물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로라의 집으로 이사 온 첫 날부터 그녀는 앤디의 핸드폰을 훔쳐보거나 노골적으로 시각장애인이었던 자신의 딸을 파이퍼와 겹쳐보는 등 심리적 거리감을 잔뜩 벌려둔 채 앞으로 그녀가 벌일 난장판으로 관객을 미리 끌어들인다. 그렇기에 관객은 더더욱 로라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오래 전 떠나보낸 강아지를 박제 해 집 한 켠에 둘 정도로 무언가를 떠나 보내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가 다름 아닌 딸의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불편한 동거가 진행될 수록 관객은 로라뿐 아니라 그녀의 아들인 '올리버'를 경계하며 긴장 속에 놓여지는데 올리버가 보여주는 기행과 간간히 보여주는 파운드 푸티지를 통해 그녀가 일종의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초반부부터 알 수 있게 된다. 즉 로라와 올리버로 장르적 재미를 살리는 동시에 상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녀가 어떠한 방식으로 남매를 갈라놓으려고 하는지 그 과정 자체가 보여줄 충격과 고통에 보다 집중 할 수 있도록 선택한 전개 방식인 것이다.
<톡 투 미>와 마찬가지로 <브링 허 백>에도 역시 매개가 등장한다. 일전에는 추정컨대 박제 당한 영매사의 손이었다면 이번에는 살아있는 아이 올리버이다. 관객은 올리버의 존재가 껄끄럽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집을 배회하거나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등 확실히 기이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아이' 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올리버로 지칭되던 아이가 사실 '버드' 라는 이름을 가진 실종 아동이며 이는 사실 로라가 딸 캐시를 죽음으로부터 데려오기 위해서 매개체로 삼은 아이였다는 것이 아마 해당 영화의 가장 충격적인 소재가 될 것이다. 상실의 고통으로 인해 총 세 명의 아이가 고통 받고 있는 이 전개 속에서 영화는 재차 로라의 상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영화는 <톡 투 미>가 그러했듯 어떤 현상에 대한 극복을 제시하기 보다 그 현상이 끝까지 갔을 때 벌어지는 비극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비극의 가장 큰 희생양인 앤디는 극 중 파이퍼의 이복 오빠로 친 아버지에게 폭행 당한 트라우마와 더불어 죽음을 목격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소년이다. 미아와 가장 닮아있기도 한 캐릭터이지만 그녀와 한 가지 확실히 다른 점을 꼽자면 앤디에게는 지켜야 할 동생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못해 로라의 집에서 그의 아버지가 보여준 차별적이고도 폭력적인 행동과 대치되는 듯한 로라의 행동을 견디면서 앤디는 끝까지 여동생을 지키고자 한다. 상실이라는 공통의 트라우마를 기반으로 공고해진 남매는 타자 로라에 의해 와해되지만 악령의 예언을 빗겨가게 하기 위해 그에 반항을 시도한 이들로 그려지기도 한다. 아빠와 로라, 두 어른을 향한 아이들의 반항이 성공적으로 그려지진 않았을지라도 적어도 앤디와 파이퍼, 버드 라는 세 인물 중 앤디를 제외한 두 아이가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해당 영화가 끔찍함으로 무장하고 있을지라도 이들이 상실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리란 점을 시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 캐시는 극 중 이미 죽은 상태로 등장하나 어쩐지 의식의 마지막 도중 급하게 '엄마'라고 외치던 것이 캐시는 아니었을까 하는 여지를 남긴다. 버드의 몸 안에 갇혀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엄마가 두 남매를 완전히 와해시키는 것을 보고 의식이 성공할즈음에 어쩌면 엄마를 일깨우고자, 말리고자 고군분투했던 또 다른 아이였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의 많은 부분은 설명보다는 보여주기를 택한다. 의식의 과정이나 어디서부터 오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길 택함으로 보다 로라와 파이퍼 남매에게 집중 할 수 있는 전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다만 생과 사의 매개체인 버드가 식이라는 행위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아이의 몸에 영혼이 비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해당 영화에서 중요 상징으로 등장하는 원은 생과 사가 흐려지는 공간의 안팎이라는 경계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끝내 상실의 원 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인물들과 그 밖으로 벗어난 인물들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앤디는 솔직함을 의미하는 남매의 수식어 '자몽'을 끝내 파이퍼에게 전달하지 못한채 죽음을 맞는다. 그가 미지막으로 파이퍼에게 남기고자 했던 말, 지난 과거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으며 그럼에도 널 사랑한다는 사실이 끝내 로라가 끌어들인 상실의 늪 안에 갇혀버리고 만 것이다. 로라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내에서 독보적인 안타고니스트로 등장하는 로라는 원 안팎으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나 이미 의식과 무의식 모두를 상실에 사로잡혀버린 인물이다. 그녀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원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어쩌면 로라의 최후는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반면 도망에 성공한 파이퍼는 물론 버드 역시 힘겨울 것을 알면서도 원 밖으로 나가 구조 된다. 영화는 말한다. 그들은 상실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연이은 상실이었음에도 분명 파이퍼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그저 비행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여정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오빠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로라라는 인물의 상실은 자신 뿐 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끌어들이는 지독한 우울의 늪이자 구덩이로 묘사된다. 마치 공명하듯 자신과 같은 우울을 갖고 있는 이를 찾아내 어떻게든 그곳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앤디는 결국 파이퍼를 그런 운명으로부터 도망치게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도 처절하다. 온 몸이 흙 투성이가 되고 고통에 몸부림쳐야 벗어날 수 있는 끔찍한 기억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원 밖을 벗어나야 한다. 망자에, 상실에, 트라우마에 자신을 가두지 않기를 영화는 말한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더욱 끔찍하고 슬픈 이야기였으나 결국 죽음에 사로잡혔던 <톡 투 미> 속 미아와 달리 <브링 허 백>이라는, 마치 로라의 절규와도 같은 제목의 영화는 아이들이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상실의 힘보다 사랑의 힘이 더 크기에, 스스로를 그리고 너를 구원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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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위 워 솔저스 '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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