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4-11-14 15:38:30
내 이름은 리들리 스콧. 거장이죠
영화 [글래디에이터 2] 리뷰
이 글은 영화 [글래디에이터 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결혼이나 승진 같은 이벤트일 수도 있고, 인생의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얻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순간이 만약 배우에게 다가온다면. 당연히 자신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역할을 만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러셀 크로우라는 배우에게는 극 중에서 그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원수인 황제 앞에서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 내뱉는 순간이 바로 그렇게도 기다리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검투사들 앞을 스쳐 지나가는 그의 모습은, 화면상에서 봤을 때 상대 배우들에 비해 비교적 작은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압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의 극 중 이름에도. 그리고 배우로서의 이름에도 남다른 무게감이 생긴 뒤에 느낄 수 있는 후광효과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후광 효과를 만들어 낸 위대한 감독 리들리 스콧에게도 [글래디에이터]는 매우 특별한 영화다. 24년이 지난 지금에도 막시무스의 이름을 들으면 전율을 느끼는 관객들에게 속편을 선보이며 자신의 이름값뿐만 아니라 영화의 이름값도. 게다가 불세출의 영웅 막시무스에게도 톡톡이 값을 치러줘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님 개연성 어디 갔어요
사진출처:다음 영화
사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해도 겨우 본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그 우려(?)는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현실이 되어버렸다.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들은 1편에서 따왔지만 안타깝게도 개연성과 임팩트는 24년 전 영화에서 신나게 써 버려 이미 멸종한 것처럼 느껴진다.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는 루시우스(폴 메스칼)의 눈에 분노가 있다고 말한다. 전쟁 중 자신의 아내를 비롯한 시민들을 잃었으니 분노의 계기는 명확하다. 그러나 분노의 방향과 깊이는 애처로울 정도로 얕아서 영화 상에서 주인공에게 몰입하기 힘들다. 그나마 쌓아 올린 나노단위의 분노조차도 결국 마르쿠스(페드로 파스칼)를 경기장에서 만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덕분에 영화의 초반부에는 이렇게 말 잘 듣는 전쟁노예가 있었던가.라는 어이없는 생각마저 하게 한다.
초반부에서 자신의 뿌리를 다시 한번 알게 된 각성한 주인공이 후반부에는 독자적으로 "로마황제 프로듀스 101"을 찍고 있는 마크리누스에게로 칼끝을 겨누는 과정도 그다지 인상적이라거나 매끄럽지 않다.
그 연결고리로 선택한 것은 쌍둥이 황제의 존재이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그들이 잘못한 것이라 해봐야 화장을 무당처럼 하는 바람에 밤에 마주치면 무섭게 보이겠다 정도일 뿐. 인간성의 잔인함을 강조하는 것 외에 주인공과 크게 관련된 이벤트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 황제의 존재 이유는 마크리누스의 귀걸이보다도 작고 하찮게 보이고, 그로 인해 과연 그만큼의 품을 들여서 이들을 없앨 이유가 있었던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진출처:다음 영화
또한 2편이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주인공의 태생적인 한계에서부터 온다.
주인공에게 고유함과 더불어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막시무스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루시우스는 자신의 이름보다는 아버지의 이름 덕에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가 등장하는 극초반부의 장면은 정말 많은 정보를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그것도 전장을 둘러보는 막시무스를 향해 인사하는 동료 병사들의 표정으로. 그를 향한 믿음과 존경. 전우애와 의지를 꽉꽉 채운 눈빛으로 말이다.
막시무스는 촉망받는 장군이었으며 분노를 장착한 정치게임의 패배자였고. 죽음이 그를 덮친다 해도 무릎 꿇기는커녕 어서 나를 갈기갈기 찢어보라며 포효할 인물이었다. 잔인한 전투 장면이 없이도 그의 걸음걸음마다 위엄이 느껴졌다.
그러나 루시우스에게 주어진 서사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너무도 옅은 데다 유약했고. 그 덕분에 루시우스는 아버지에게 그저 만담실력을 물려받은 호탕한 사람 정도로만 느껴진다.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힘이 실리지 않는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다. 그는 로마 제국의 단 하나 남은 후계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핏줄을 아무리 영화라지만 살해할 리는 없다.
우리는 막시무스가 그토록 살아남기를 원했고. 화면 속에서 시간이 흐를 때마다 죽어가는 그를 보며 눈물과 안타까움을 삼켰지만. 아들은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온 세상 인물이 다 죽는다 해도 자신은 절대 죽지 않을 테니. 믿는 구석이 애초에 있는 사람의 전투가 간절해 보일 리가 없다.
거장의 장기자랑 타임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장이 자신의 이름을 지키는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십분 살려내 화면과 남은 시간 가득 채워내는 것.
혼란스럽고 실망스러운 초반부가 지나고 나면 후반부에는 우리가 감독에게 기대했던 모든 장면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관객의 눈에 안긴다. 소위 "큰 영화"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가진 요소들인 거대한 스케일과 장엄한 장면에서 갖추어야 할 카타르시스들을 모조리 느낄 수 있다. 기존의 검투 장면들 역시도 작정한 듯 화려하게 준비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거의 장면들은 아름답다 못해 심장을 뛰게 만들기 충분하다. 이런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감독은 지구상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 밖에 없을 것이며. 그의 존재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후반부 덕에 앞부분의 불쾌함이 조금은 날아간다.
물론 영화가 주는 장대함과 압도당하는 힘이 스토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장면 자체가 주는 웅장 함이라는 것은 아쉽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보상은 완벽히 가능하고. 정해진 결말로 가는 그 길마저도 조금은 기대로 채울 수 있다.
마치면서
내가 존 스노우 시절(대충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뜻) 두려움이 너를 구할 것이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꽤 오랫동안 내겐 미스터리와도 같았다.
한낱 평범한 사람인 나 조차도 두려움을 이토록 피하고 싶은데. 자신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버린 작품의 감독에게 이번 영화는 얼마나 피하고 싶은 과제였을까.
두려움에서 자신을 구해내기 위해. 거장은 스스로가 가진 모든 "치트키"를 활용했다. 주어진 두려움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응한 덕에. 이 두려움의 바다에 빠졌을(?) 거장은 뭍까지는 떠밀려 올 수 있었다.
머금은 모래를 내뱉고 따끔거리는 바닷물이 코에서 흐르는 걸 느끼며 진절머리를 쳤겠지만. 비로소 폐 한가득 신선한 공기를 마실 때는 안심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결과 또한 아마도 조금은 매콤하지만 다행인 평이될 것이다.
또한 다음번에 두려움의 바다에 빠졌을 때 무사할 행운이 다를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 글의 TMI]
1. 베이글 그만 먹고 싶은데 그게 안 됨
2. 아침 운동 너무 힘들다.
3. 너무 추워서 난로를 사고 싶은데 전기세가 걱정된다.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munalogi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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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의 힘, 이야기의 뚝심
7★/10★
사실 처음엔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코로나 팬데믹을 비롯한 제작상의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텅 빈 연극 무대에 몇 개의 소품만 놓고 연기하는 배우들을 다소 조악한 카메라로 담아내는 극 영화를 마주한다는 것이. 온갖 촬영 장비와 CG로 더 ‘리얼한’ 화면을 구성하는 게 영화 성패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지금, 독립영화라 하더라도 ‘형식의 실험’을 이유로 대기에는 아무래도 궁색해 보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진실의 힘, 이야기의 뚝심 앞에서 초반의 당혹감은 금세 사라졌다. 거짓말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구조하러 현장에 갔으나, 되레 공권력의 책임이 부재한 곳을 ‘어설프게’ 메우려 했다는 이유로 공권력에 의해 기소당한 민간 잠수사들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카메라의 공백을 애도와 연대의 마음으로 가득 채운다.
두바이에 ‘큰 건’이 잡혀 있던 민간 잠수사 나경수는 팀 막내가 세월호 참사 현장의 구조 활동에 자원했다는 소식에 팀원들을 데리고 사고 현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찬가지로 자발적으로 모인 다른 민간 잠수사들과 팀을 이뤄 혹시 생존해 있을지도 모를 참사 희생자, 그리고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맡는다. 작업은 고됐지만 지원은 부재했고, 해경은 자신들이 방기한 구조를 지원하기보다는 현장을 감추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난다. 열악한 상황에서 혹사하던 민간 잠수사 한 명이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국가의 대응은 기가 막혔다. 검찰은 오히려 민간 잠수사에게 희생의 책임을 물었다. 민간 잠수사들의 구조 활동을 지휘했다는 이유로 과실치사로 기소당한 한 잠수사에게 검사가 묻는다. 왜 안전 수칙을 위반해가면서까지 위험한 작전을 계속했느냐고. 민간 잠수사들은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국가와 달리 사고 희생자들을 마음 깊이 진심을 다해 구하고자 했다. 그게 전부였다. 이들은 물속에서 희생자의 시신을 보고도 울 수 없었다. 시야가 흐려져 구조 작업과 작업자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눈물로 슬픔을 달래지 못한 잠수사들의 몸과 마음에는 병이 생겼다. 무책임한 국가의 책임 전가가 더해져 그 병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누군가는 구조 과정에서 마주한 희생자들의 환영에 현실을 잡아먹혔고, 누군가는 심각한 잠수병 후유증에 시달렸으며, 누군가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들은 송사마저 ‘외주’로 치렀다. 어느 유명 로펌의 사회공헌 활동으로, 마찬가지로 국가의 책임을 외주받았다가 책임을 떠안은 잠수사들의 사건이 변호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신자유주의 한국의 모순 그 자체라는 세간의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
나경수 역을 연기한 이지훈 배우를 비롯해 카메라의 빈 곳을 채우며 민간 잠수사들이 겪은 고통의 시간으로 관객을 들이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무척 인상적이다. 국가의 잔인한 추궁에 정말로 자신에게도 죄가 있을지 모른다고 자책하며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잠수사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유족과 연대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이 지점에 다다른 우리는 분명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영화는 끝나지 않은 세월호를 말하는 가장 적확한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아직도 세월호냐는 비아냥 섞인 물음에 가장 정확한 답은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세월호를 말할 것이다’일지도 모른다. 세월호는 그들이 조롱하듯 경제적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 책임과 연대, 애도와 추모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월호를 주제로 한 여러 영화가 있었다. 자녀를 떠나보낸 부모가 세월호를 놓지 않고 자신의 깊은 슬픔을 ‘공적 추모’로 승화해내는 과정을 담아낸 〈장기자랑〉(2023)과 〈목화솜 피는 날〉(2023), 참사 직전 우정에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두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선보인 〈너와 나〉(2023), 슬픔과 애도를 사회적 자원 삼아 더 크고 넓은 연대를 모색하는 가슴 벅찬 이야기 〈세월: 라이프 고즈 온〉(2024)과 〈바람의 세월〉(2024) 등등. 〈바다 호랑이〉는 세월호 영화의 기존 계보에 더해 왜 세월호를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지, 그럼으로써 우리 개개인과 우리 사회가 무엇을 성찰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우리’의 범주는 어떻게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는지를 또다시 분명하게 증명한다. 아직도 말해지지 않은 더 많은 세월호 이야기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발화될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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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SYNOPSIS.
“행복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왜 한국을 떠나느냐고?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계나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좇아 떠나기로 했다.
POINT.
✔ 통찰력 있는 작가 장강명의 동명 소설 원작이자,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 <한여름의 판타지아>,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등 결이 뚜렷한 감성을 가진 장건재 감독 작품
✔ 믿고 보는 배우 고아성을 비롯해, 하나하나 빛나는 배우들이 현실감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영화
✔ 한국 사회에서 입시와 취업 준비를 차곡차곡 거쳐 직장인이 된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고 각자의 마음을 돌아보기 좋은 작품, 누군가와 같이 보고 나와서 함께 대화하면서 더욱 풍성해질 영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 남들이 다 이렇게 살고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생각, 정말이지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
출퇴근 시간 9호선에 오를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9호선을 타면 좀더 빨라도 다른 노선을 이용하던 시절을 지나, 이사 갈 동네를 고를 때 9호선 라인을 피해 이사를 했음에도, 어쩌다 출퇴근 시간에 9호선을 이용해야 하는 날은 마음의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내가 사방이 탁 트이고 초록빛인 시골에서 자라서 더 그런 건가? 남들은 정말 이게 아무렇지도 않은가? 살아지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누구도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힘들기야 하지만, 그걸 그냥 일시적인 몸의 힘듦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과, 영혼 어딘가가 덜그럭거리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나뉜다는 걸. 그리고 이런 기준선이 9호선 말고도 너무 많다. 계나가 코트 안에 꼬박꼬박 받쳐 입는 경량 패딩이 한국에서 잘 팔리는 이유이자 원작에서 "농담이 아니라 매일 동상의 위기를 겪었다"고 언급되는 이 극단적 날씨, 과장님이 마음대로 골라버린 동태찌개가 자연스럽게 4인분 주문되어도 따라야만 하는 것, 매뉴얼에 따라 업체를 선정할 것이냐 작년 업체를 무조건 고르라는 상사의 말을 들어야만 하나 싶은 순간...
이 모든 기준선에서 우리는 나뉜다. 누군가에게는 그럭저럭 눈 딱 감고 넘길 만한 것이, 누군가에겐 도저히 넘길 수 없는 것이 된다. 후자의 사람들은 한번쯤 눈을 돌린다. 트랙에서 벗어난 삶을 그려본다. 결국 수많은 기준선들은 하나로 귀결된다. 제때 입시를 치르고 제때 직장에 정규직으로 들어가 제때 결혼을 하는 삶, 거기서 어긋나면 나이에 따라 결이 다른 말을 듣게 되는 삶, 그 정해진 트랙 밖의 삶을 상상하고 실현에 옮긴 적이 있는지 아닌지.
<한국이 싫어서>는 얼핏 한국에서의 삶에 잘 적응한 것처럼 보이는 계나(고아성 분)가, 대한민국에 살면서 겪는 실낱 같은 기준선들이 쌓이고 쌓인 끝에, 그는 떠난다. 뉴질랜드로.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사실 계나가 한국을 떠나게 만든 이유들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그럼에도 계나와 같은 선택은 한국에서 크게 지지받지 못한다. 계나 어머니의 말마따나 그만하면 책임감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 계나의 남자친구 지명(김우겸 분) 또한, 한국에서 정해진 트랙을 차곡차곡 쌓아 왔고 앞으로도 쌓아갈 시간의 안정감을 이야기하며 계나를 말리려 한다. 계나는 자신을 무슨 외국 병 걸린 취급하냐며, 자신은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명과 같은 사람의 시각에서 계나의 선택은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계나가 내린 선택의 시간을, 몇 개 장면만으로도 손쉽게 관객에게 다가오게 만든다. 하필 추운 날씨, 겨울이라 해도 뜨기 전부터 달려야만 하는 출근길 장면 하나만 보아도. 길지 않은 사무실 장면,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의 몇몇 장면만으로도.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고, 물 위의 오리인지 백조인지처럼 발을 버둥거려야 하는 삶은 누군가에게는 뿌듯한 노력의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다지 맞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원작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계나의 선택은 더욱 더 드세고 유난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을 기억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을, 실제로 그 시절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한 친구들은 참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낙원을 꿈 꾸며 도망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튼 지금 있는 곳을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 일단 벗어나 보겠다고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 도망이다. 배가 불러서 도망치는 사람은 없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그게 뭐요. 새로운 시작점은 있을 수 있다. 영화는 그 지점을 콕 짚지 않음으로써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누구도 쉽게만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영화의 빼어난 점 중 하나는 인물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계나뿐 아니라 다소 수상쩍고 가까이 해도 될지 의심스러운 몰골로 등장하는 재인(주종혁 분), 뉴질랜드 정착 지원으로 먹고 사는 태은(김지영 분)과 상우(박성일 분) 부부, 계나와 가치관의 차이가 분명한 지명이나 엄마(오민애 분), 성실하게 사는 계나와 다소 대비되는 삶으로 영화에 들어오는 미나(김뜻돌 분) 등... 어느 인물을 보아도 다정하고 섬세한 시선이 얹혀 있다. 위치의 차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만으로 남을 빌런 취급하기 너무 쉬운 시대의 현실에서, 이런 시선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하다.
엄마가 계나에게 원하는 행복과 계나가 생각한 행복은 다르고, 지명이 계나와 그리고 싶었던 삶과 계나가 추구하는 삶은 분명 다르지만, 엄마나 지명의 방식을 영화는 비난하거나 폄하하지 않는다. 성실한 직장인 계나와 집에서 노는 미나 느낌으로 보여지지 않게, 미나와 계나가 함께하는 시간이나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관객이 미나를 알아가게 한다. 혹시나 유려한 말 솜씨로 계나를 등쳐먹을까봐 불안한 눈으로 지켜본 태은과 상우 부부는 그냥 계나와 좋은 파트너였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난 계나가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각자의 고민이 있다는 것을, 교차 편집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안에서 펼쳐 보여준다.
하긴 그렇다. 누구도 쉽게 사는 사람은 없고, 각자 몫의 고민이 있지. 산다는 건 나와 다른, 그렇다고 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닌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알아가고 어우러지고 그렇게 만나고 또 헤어지는 것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영화가 인물들을 보여주는 방식이 더없이 자연스러워 마음에 들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고아성이 연기하는 계나의 모습은 점차로 변해간다. 긴 머리를 정갈하게 내려 묶고 적당한 오피스룩에 코트 차림으로 추워 보였던 한국에서와 달리, 뉴질랜드에서는 화장이나 태닝, 입은 옷으로 계나의 적응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계나의 삶은 점차로 달라져 가고, 교차 편집 속에서도 계나의 시간을 가늠해볼 수 있어, 마치 계나의 여정을 함께하는 기분마저 든다.
그 순간의 온도가 늘 따뜻하지만은 않다. 부당한 일에 맞서 주는 친구도 생기고 함께 달려간 바다에서 모래에 꼼질꼼질 발가락을 묻는 순간은 분명 따끈따끈하다. 뉴질랜드에 막 도착한 계나가 야자나무를 바라볼 때, 낯선 나무를 낯선 바람이 스치는 낯선 소리가 날 때는 조금 스산하다. 원하지 않는 일들이 찾아오거나 가족과 영상 통화가 갑자기 끊긴 후 뺨에 흐르는 눈물은 분명 차가운 쪽일 것이다. 더 차갑고 안타까운 눈물 또한 이 영화에는 등장한다.
그러나 계나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 지금 선 곳의 지축이 뒤흔들려도 또 나아갈 곳을 찾아갈 수 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렇게 흔들려도 자신의 행복이 어떤 모양인지를 알고 또 일어날 힘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내게 이 영화는 끝나고 나서 다시 시작되는 영화였다. 보고 나오자마자 친구에게 물었다. 계나가 처한 상황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면서, 떠날 것인지 말 것인지. 그러면서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도 꽤나 트랙을 벗어난 삶을 살고 있는데, 이제 이렇게 짚어보지 않으면 그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가 되었다는 걸. 모든 선택이 그렇듯 득과 실이 있지만, 지금 삶에서 주어지는 선택들이 좋아서 트랙 속의 안온한 행복이 크게 아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계나와 꽤나 닮은 인생들 같았다. 우리는 이제 트랙에서 이렇게나 멀어졌는데, 계나는 지금쯤 어디쯤에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더 이상 춥지 않은 곳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한 잔 들이키는 기쁨만큼은 분명히 계나 곁에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토록 현실과 밀착되어 있는 영화는, 영화로만 볼 수가 없다. <한국이 싫어서>를 본 후에 옆 사람과 꼭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행복을 느끼는 지점들을 되짚어보기 대국민 운동이라도 벌이고 싶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각자의 행복을 조금씩 더 찾아가길, 너무 춥지 않길 바라게 된다. 따뜻한 영화였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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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질> - ‘낯선 얼굴들이 펼치는 본능적인 추격전’
인질 (Hostage: Missing Celebrity, 2021)
개봉일 : 2021.08.18
감독 : 필감성
출연 : 황정민, 김재범, 이유미, 류경수, 정재원, 이규원, 이호정
‘낯선 얼굴들이 펼치는 본능적인 추격전’
개봉에 앞서 진행된 시사회 이후 ‘황정민이 황정민 한 영화’로 입소문을 탄 필감성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데뷔작 <인질>. 황정민 배우가 ‘배우 황정민’을 연기한다는 영화의 독특한 설정이 눈길을 잡아끌었는데, 거기에 황정민 배우에 대한 믿음이 더해지니 나도 모르게 아주 자연스레 이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황정민 배우님이 나오니까 봐야지!’하고 말이다.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치고는 약간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장면도 있었으나 과하다 싶을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보기엔 조금 머쓱한 부분이 존재하니 참고하시길!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현실감과 몰입감이다. 실존하는 ‘배우 황정민’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세워놓고 진행되는 이야기는 “어쩌면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날 수도 있겠다.”싶은 느낌을 주며 관객들을 황정민 배우의 옆에 폭삭 앉혀놓는다. 그리고 정신 차릴 틈 없이 강렬하고 폭력적인 인질범들을 비추며 관객들의 시선을 묶어놓는다. 더불어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날것의 흔들림을 그대로 담은 초반부는 ‘배우 황정민’과 그를 납치하는 낯선 얼굴들에 생동감을 더하며, 인물들이 흘리는 땀과 퀴퀴한 공장 냄새를 화면 너머로 뿜어낸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모두가 정말 불쾌할 만큼 인간적이다.’
<인질>을 보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만이 인간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은 악하기도, 선하기도, 나약하기도, 이기적이기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배신하기도 한다.
내리막길을 타는 내 인생을 구제하기 위해 돈 많은 톱스타 황정민을 납치하고 돈을 마련하지 못한 다른 피해자를 잔인하게 죽인 인질범들의 모습에서 악한 인간의 본성을 느낄 수 있었고, 악한 마음을 지니고 한편이 된 인물들마저도 각자의 이득을 향해 등을 지고 달려가는 지독하게 인간적인 모습들이 긴장감을 형성하는데 한몫한다. 그리고 죽음의 위기 앞에서 배우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운명 공동체인 소연과 함께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는 황정민의 모습에서 강인하면서도 선한, 정 반대의 인간의 본성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인질>의 또 다른 등장인물. 인질과 인질범이 아닌 사람들은 이 납치 사건을 또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소비한다. 지지부진하던 사건 조사는 톱스타 황정민의 납치와 함께 급물살을 타게 되고 사람들은 이 사건에 집중한다. 길을 지나는 사람도, 무심한 표정으로 뉴스를 들여다보던 사람도 ‘황정민’이라는 이름에 눈을 반짝이며 사건을 지켜본다.
차후 사건이 해결되자마자 사람들은 빠르게 관심을 거둔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악몽으로 남았을지도 모르는 순간을 새로운 이야기로 소비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공들인 현실 고증을 곁들여서. 비슷한 이미지의 신인배우와 함께 사진을 찍는 배우 황정민의 표정을 보며 이질감과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스피디하고 막힘없이 진행된다. 관객들이 액션 장르에 기대하는 두근거림과 쾌감에 대한 기대치는 부족하지 않게, 무난하게 채워낸다. 뒷심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이 영화가 판타지나 히어로물은 아니기에 고를 수 있었던 선택의 폭이 넓진 않았을 거라 이해해 본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지만, 액션과 몰입도만큼은 상당히 훌륭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선택한 낯선 얼굴들이 신의 한 수였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황정민 배우님이 <인질>을 통해 새로운 얼굴들이 떠오르게 될 것이라 언급했었는데,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자신의 본모습과 가장 가까운 인물 ‘배우 황정민’을 실제와 가상의 경계의 선에서 적당하게 표현해낸 황정민 배우님이 연기력도 상당했지만, 그에게 뒤지지 않는 강력한 눈빛을 보여준 김재범 배우님의 존재감이 가히 압도적이었다. 만일 <인질>과 본인의 취향이 정말 맞지 않았던 누군가가 ‘이 영화는 남는 게 없다.’고 평가한다면 나는 ‘취향이 어떻든, 누가 봐도 배우들만큼은 명확하게 남은 영화’라고 반박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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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데드풀 2> 감독이 말아주는 코미디, 액션, 로맨스 장르 풀코스
5월 1주차 개봉예정작 함께보아요!
개요: 액션, 범죄 | 한국 | 109분
감독: 허명행
출연: 마동석, 김무열, 박지환, 이동휘 등
개봉: 2024.04.24.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신종 마약 사건 3년 뒤,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서울 광수대는 배달앱을 이용한 마약 판매 사건을 수사하던 중 수배 중인 앱 개발자가 필리핀에서 사망한 사건이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납치, 감금, 폭행, 살인 등으로 대한민국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장악한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빌런 ‘백창기’(김무열)와 한국에서 더 큰 판을 짜고 있는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이동휘). ‘마석도’는 더 커진 판을 잡기 위해 ‘장이수’(박지환)에게 뜻밖의 협력을 제안하고 광역수사대는 물론, 사이버수사대까지 합류해 범죄를 소탕하기 시작하는데… 나쁜 놈 잡는데 국경도 영역도 제한 없다! 업그레이드 소탕 작전! 거침없이 싹 쓸어버린다!
개요: 액션, 범죄 | 한국 | 109분
감독: 허명행
출연: 마동석, 김무열, 박지환, 이동휘 등
개봉: 2024.04.24.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신종 마약 사건 3년 뒤,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서울 광수대는 배달앱을 이용한 마약 판매 사건을 수사하던 중 수배 중인 앱 개발자가 필리핀에서 사망한 사건이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납치, 감금, 폭행, 살인 등으로 대한민국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장악한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빌런 ‘백창기’(김무열)와 한국에서 더 큰 판을 짜고 있는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이동휘). ‘마석도’는 더 커진 판을 잡기 위해 ‘장이수’(박지환)에게 뜻밖의 협력을 제안하고 광역수사대는 물론, 사이버수사대까지 합류해 범죄를 소탕하기 시작하는데… 나쁜 놈 잡는데 국경도 영역도 제한 없다! 업그레이드 소탕 작전! 거침없이 싹 쓸어버린다!
개요: 액션, 범죄 | 한국 | 109분
감독: 허명행
출연: 마동석, 김무열, 박지환, 이동휘 등
개봉: 2024.04.24.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신종 마약 사건 3년 뒤,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서울 광수대는 배달앱을 이용한 마약 판매 사건을 수사하던 중 수배 중인 앱 개발자가 필리핀에서 사망한 사건이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납치, 감금, 폭행, 살인 등으로 대한민국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장악한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빌런 ‘백창기’(김무열)와 한국에서 더 큰 판을 짜고 있는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이동휘). ‘마석도’는 더 커진 판을 잡기 위해 ‘장이수’(박지환)에게 뜻밖의 협력을 제안하고 광역수사대는 물론, 사이버수사대까지 합류해 범죄를 소탕하기 시작하는데… 나쁜 놈 잡는데 국경도 영역도 제한 없다! 업그레이드 소탕 작전! 거침없이 싹 쓸어버린다!
개요: 액션, 범죄 | 한국 | 109분
감독: 허명행
출연: 마동석, 김무열, 박지환, 이동휘 등
개봉: 2024.04.24.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신종 마약 사건 3년 뒤,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서울 광수대는 배달앱을 이용한 마약 판매 사건을 수사하던 중 수배 중인 앱 개발자가 필리핀에서 사망한 사건이 대규모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다.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납치, 감금, 폭행, 살인 등으로 대한민국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장악한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빌런 ‘백창기’(김무열)와 한국에서 더 큰 판을 짜고 있는 IT업계 천재 CEO ‘장동철’(이동휘). ‘마석도’는 더 커진 판을 잡기 위해 ‘장이수’(박지환)에게 뜻밖의 협력을 제안하고 광역수사대는 물론, 사이버수사대까지 합류해 범죄를 소탕하기 시작하는데… 나쁜 놈 잡는데 국경도 영역도 제한 없다! 업그레이드 소탕 작전! 거침없이 싹 쓸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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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하늘에 수놓아진 색색의 풍선을 보며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가장 먼저 본 영화 <이웃들> .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어서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쿠르드인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민족과 부족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와 폭력이라는 부조리함을 자극적이지 않고도 울림있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영화 <이웃들> 시놉시스
90년대 초 시리아 국경 마을, 세로는 처음으로 학교에 가게 된다. 학교에는 쿠르드인 아이들을 범아랍의 충성스러운 동지로 키워내려는 목표를 가진 선생님이 새로 부임한다. 유대인들을 증오하라고 가르치는 선생님의 말씀은 세로를 혼동스럽게 만든다. 오랫동안 좋은 사이로 지낸 이웃이 바로 사랑스러운 유대인 가족이기 때문이다.
* 해당 내용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보도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이웃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어느 날 생겨버린 국경에 대하여
중학생 때 아프리카의 국경선이 왜 자로 잰듯이 직선인지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다. 이는 당시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있었던 프랑스와 영국이 자신들의 기준대로 그저 땅따먹기 하듯이 영토를 나눠가졌고, 그 지역에 살고 있었던 부족과 민족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이권에 따라서 국경을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부족이 통합되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분할되는 경우도 있었고, 사이가 좋지 않은 부족이 엉겁결에 하나의 나라가 되면서 불화가 더 쌓여버리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그야말로 아프리카는 분열과 전쟁이 도사리는 공간으로 되어버렸다.
아프리카에만 해당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 국경선의 문제가 중동지방까지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리아와 터키를 경계로 쿠르드인은 분할되었고,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이산가족을 상봉하듯이 15분간의 면회로 생이별한 가족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서도 시리아에 있는 군인은 쿠르드인에게 아랍어로 소통할 것을, 터키에 있는 군인은 그들에게 터키어로 소통할 것을 강요한다. 쿠르드인이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말살한 채 터키인과 아랍인으로서만 존재하길 바라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국경이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그와중 쿠르드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철조망을 사이에 둔 터키군과 시리아군이 서로 쿠르드어로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싶기도 했다.
쿠르드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있는가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한 세로는 TV를 통해 만화영화를 보고 싶지만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는 소년이다. 그렇게 평화롭던 세로의 가족에게 어머니가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세로의 엄마와 세로, 그리고 이웃들은 근처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고, 이를 지켜보던 터기 군인은 멀리서 뷰파인더를 통해 세로 어머니를 몰래 훔쳐보면서 동료에게는 새를 보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총구는 세로 어머니를 향한 상태에서 동료는 장난삼아 방아쇠를 당겨버리고, 터키군은 의도치 않게 세로의 어머니를 죽이게 된다.
사람인 줄 모르고 동료는 방아쇠를 당겼을테지만, 그 이후 터키군과 시리아군의 모습을 보면서 쿠르드인을 지켜줄 이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터키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세로의 엄마는 쿠르드인이었어도, 국적은 시리아였다. 하지만 시리아군은 자국민이 다른 나라 군인에 의해 살해되었음에도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사람은 살해한 터키군 역시 어떠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저 쿠르드인은 명목상 거주지에 따라 시리아인과 터키인이라는 국적을 받았을 뿐 실제 국가의 보호를 받지 않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과연 그들을 지켜주는 국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국가가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고, 그저 강압적으로 아랍인이 될 것을 강요하는 상황 속에서 과연 그들이 아랍인이 된다고 하여 실제 아랍인과 같은 처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그런 강압의 장소였던 학교에서 세로는 졸다가 꿈속에서 돌아가신 엄마를 만나고, 거기서 삼촌과 함께 날렸던 색색의 풍선들이 하늘에 수놓아진다. 실제였다면 국경에 있는 시리아군과 터키군이 그 풍선들을 다 터트렸을 테지만 꿈이기에 자유롭게 하늘을 누비는 모습을 보면서 쿠르드인이원한 것은 국가가 아닌 그저 나의 이웃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 뿐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 수많은 풍선들이 국가라는 강압적인 체제가 아닌 함께 자유롭게 서로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바라는 쿠르드인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뭉클했던 순간이었다.
교육의 중요성
영화 <이웃들>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증오가 가득한 선생님이 학교에 부임한다. 갓 학교에 입학한 이들에게 유대인은 아랍인을 납치에 죽인 뒤 그들의 피로 케익을 만들어 먹는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유대인을 만나면 그들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에 대해 가르친다. 새하얀 도화지인 아이들은 유대인 더미를 향해 선생님이 가르쳐준대로 칼로 찌르고, 유대인을 죽여야 한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바로 옆집에 친한 유대인 가족이 살았던 주인공 세로는 중간에서 엄청 혼란스러워한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제껏 지켜봐온 유대인 가족은그런 존재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직접 유대인은 그런 것이냐며 순수하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기준을 점점 세워가지만 학교에서 배웠던 폭력성은 그대로 학습하는데, 제대로 쥐를 잡지 못하는 고양이를 자루에 넣고 유대인 더미를 칼로 찔렀던 것처럼 살아있는 생명을 실제로 죽이기에 이른다. 이 모습을 보면서 어린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인식 없이 생명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느낄 수 있었다.
2시간이 넘는 조금은 길었던 러닝타임에 비해 굉장히 집중도가 높았던 영화 <이웃들>. 외부세력에 의해 갈라진 민족에 대해여, 그리고 그들을 지켜주지 않는 국가와 폭력성에 대해서 잔잔하면서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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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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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더 글로리> 파트2, 3월 10일 공개 확정
ⓒ 넷플릭스
3주 연속 넷플릭스 전 세계 TOP 10 TV(비영어) 순위권에 등극하고, 공개 후 누적 시청시간
1억 4800만 시간으로 K-콘텐츠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더 글로리>의 파트 2가 3월 10일
공개를 확정했다.
진선규 <카운트>, 2월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범죄도시>, <극한직업>, <공조2: 인터내셔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흥행을 이끈 배우
진선규는 <카운트>를 통해 새로운 변신을 예고했다. <카운트>는 오는 2월 개봉을 확정했다.
<헤어질 결심>, 아카데미 감독상·외국어영화상 최종후보
ⓒ 네이버 영화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에 따르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감독상과 외국어
영화상 2개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2월 19일에 개최된다.
<j-hope IN THE BOX>, 2월 17일 디즈니+ 전 세계 동시 공개
ⓒ 디즈니+
지난해 7월 발매된 제이홉의 첫 번째 공식 솔로 앨범 'Jack In The Box'의 앨범 제작 과정 및
다양한 활동을 담아낸 음악 다큐멘터리 <j-hope IN THE BOX>가 오는 2월 17일 오후 5시에
디즈니+와 위버스를 통해 전 세계 동시 공개될 예정이다.
해외
<M3GAN 2.0>, 제작 확정
ⓒ 네이버 영화
북미 개봉 첫날 <아바타: 물의 길>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팬데믹 이후 시리즈
제외 호러 영화로는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메간>은 글로벌 흥행에
힘입어 속편 <M3GAN 2.0> 제작을 확정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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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남자]리뷰/해석:진정한 천만영화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작품
#왕의남자#이준익#천만영화
오래된 영화다보니 주로 줄거리를 중심으로 풀어봤습니다.영상에 사용된 BGM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겨울에 피는 꽃 - https://youtu.be/Vmrrd9nON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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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가 애니를 잘 못만든다고?
#애니메이션 #한국 #리뷰
#떠돌이 까치
1987/KBS1#아기공룡 둘리
1987/KBS1#달려라 하니
1988/KBS2#2020 우주의 원더키디
1989/KBS2#옛날 옛적에1
1990/KBS2#영심이
1991/KBS2#옛날 옛적에2
1991/KBS2#날아라 슈퍼보드
1991/KBS2#마법사의 아들 코리
1993/KBS2#초롱이의 옛날 여행
1993/KBS2#리뷰문의
adonai0919@gmail.com#트위치
https://www.twitch.tv/sura_chtr#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writer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Watch: https://youtu.be/pZzSq8WfsKo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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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공식 티저 예고편
아카데미 수상 감독 기예르모 델토로의 손에서 인기 고전 동화가 재탄생했다. 외로운 목수 제페토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마법처럼 생명을 얻게 된 목각 인형.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엉뚱하고도 반항적인 모험을 떠나는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기예르모 델토로와 마크 구스타프슨 감독이 기발한 스톱모션 영화로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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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코끼리와 나비> 메인 예고편
5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앙투안은 얼떨결에 옛 애인의 딸 엘사를 보호하게 된다.
천사 같은 미소, 심장을 녹이는 애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5살 소녀가 낯설지 않다.
엘사도 앙투안에게 고백한다. "비밀이 있어요, 아저씨가 누군지 알 것 같아요"
서로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면, 그건 우리가 특별한 사이이기 때문일 거야.
존재조차 몰랐던 우리,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