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1-11 20:00:57
역사의 결절을 목도하는 눈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리뷰
SYNOPSIS.
위안부, 강제노역, 원폭 피해자…
일제강점기 조선인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재일조선인 2세 다큐멘터리스트 ‘박수남’
그의 집에 쌓인 작품화되지 못한 10만 피트, 약 50시간 분량의 16mm 필름
기억의 망망대해에서 수집해낸 역사가 강렬하게 들려온다.
잊혀진 피해자들의 표정을 되살려내고 식민과 전쟁으로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아간다!
POINT.
✔ 이렇게 멋진 기록자, 선구자, 영화인, 작가...를 왜 아무도 저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죠? 이제야 박수남 감독을 알게 된 게 너무 아쉬울 만큼, 그냥 인생 자체가 너무 압도적입니다.
✔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정말 귀한 풋티지를 보실 수 있는 작품을 놓치지 마세요
✔ 소수자성과 당사자성, 기억과 기록에 대해 사유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 영화는 11월 13일 수요일 개봉합니다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어두운 화면에서 목소리로 시작한다. 마의태자를 아느냐고 묻고, 딸의 이름도 마의태자에서 따왔다고 말한다. 영화 작업을 함께한 박마의 감독의 이름이 독특하더라니. 어떤 마음으로 딸의 이름을 마의라고 지었을까. 망국의 슬픔을 온몸으로 휘감고 사라진 왕자의 이름을. 그러나 마의태자에 관한 좋은 노래가 있다며 서정적으로 부르는 목소리는, 망국의 슬픔으로 이야기가 끝나게 두지 않는다. 마의태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싸매는 다정한 노랫말. 딸의 이름과 그 유래에 맺힌 노랫말. 슬픔의 자리와 그 자리를 혼자 두지 않는 마음. 박수남 감독의 인생처럼 느껴지는 오프닝 시퀀스다.
옛 사진 몇 장 위로 스쳐가는 몇 문장의 증언만으로도 녹록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음을, 보통 사람이 아님을 금방 짐작할 수 있다. 이 예감은 148분 동안 스크린 위에서 겹겹이 펼쳐지고 풀어진다. 수많은 테스트 영상들, 수많은 인터뷰들, 방에 있었던 50시간 분량의 필름 중 10시간 분량을 풀어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10시간 분량 안에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에 관한 기록유산으로 지정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은 귀한 풋티지들 사이사이, 하나하나 기함할 사건들 사이사이, 박수남이라는 인물의 삶을 보여준다.
역사의 결절을 목격하고 지적하는 눈
잘나가는 고깃집 사장님으로 살면서 글을 쓰던 박수남 감독은 가게를 팔고 다큐멘터리 감독의 길을 걷게 된다. 그 후로 수많은 곳을 다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와 모습을 기록한다. 펜으로 담기에는 언어의 한계가 있었다던, 때로는 언어 바깥에서 더 선명하게 전해지던 떨림과 침묵을 담기 위해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었다.
영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박마의 감독과 대화하는 장면은 다분히 인상적이다. 젊은 사람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쉽게 설명해 주는 영화를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는 박마의 감독의 말 앞에, 박수남 감독은 단호하게 말한다. 알기 쉽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고. 두 사람의 대화는 이내 '카메라 앞'을 두고 더욱 단호해진다. 박수남 감독은 한 치의 타협도 먹히지 않을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카메라, 내가 영화라고.
오랜 세월 그가 들어온 목소리들은 마치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엔딩에서 울려퍼지던 목소리처럼 그를 감싸고, 그는 이제 영화로 현현한다. 1인칭으로서의 카메라, 체화된 카메라. 키노 아이 그 이상의 카메라. 그는 기계적인 카메라의 정확성보다, 발군의 기억력과 소상한 기록의 힘으로 카메라를 역사의 경지에 끌어 올린다. 개인이 겪은 모욕과 수난의 증언들은 모여서 역사가 된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기록한 것들을 결국 거칠게 요약하면 일본 제국주의의 낯이다. 수탈하고 강제 연행할 때는 '내선일체'지만, 폭력과 피폭의 뒷수습을 할 때는 철저히 남, 아니 투명한 비존재 취급을 하는.
관동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부모님 아래서 태어나,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박수남이라는 사람은 작가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차차 기록자로 나아간다. 마침내 이 영화에 이르러서서는, '이 정도면 기록 계의 무형 문화재 아니야?' 하는 생각을 하는 관객이 생겨난다. 소수자로서 또 당사자로서 예리하게 포착한 감각들이 켜켜이 쌓여 여기까지 왔다.
역사의 결절을 목격하고 지적하는 사람, 스스로가 뚜렷한 사람. 사유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든 교실로 만들고, 그 교실에서 만난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 이 영화에서 내가 배운 건 다음과 같다.
ㅁ 기억도 기록도 힘이 세다
가끔은 이 말 자체가 구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현실 정치와 모략이 판치는 세상에서 기억이 과연 얼마나 힘이 셀 수 있을까. 힘이 셌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구호처럼 맺힌 문장은 아닌가. 그러나 평생 동안 삶으로 기억하고 기록한 사람을 보니 이는 허망한 구호가 아니다. 실제 그의 기록 중에는 역사 교과서의 몇 줄 행방을 가르는 주효한 대목도 있었다. 목격한 일을 전하는 것이 인간의 일이라는 말 앞에서, 기억과 기록은 단순히 내 주장을 뒷받침하고 내 목소리를 크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내가 참으로 인간 되기 위함임을 통감한다. 그러면 결국 생각이 다른 서로를 가르는 선은 딱 하나로 모인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가?
ㅁ 피의 대립, 국적의 대립이 아닌 역사의 대립이다
그렇기에 이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 대립도 아니고, 어떤 피를 타고났는가에 따라 답이 갈리는 문제도 아니다. 이는 인간으로서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 사이, 역사를 무엇이라 기록하고 싶어하는가의 차이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취급되지 못했던 역사를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람과, 차마 그럴 수 없는 사람의 차이이다. 박수남 감독은 철저히 후자다. 눈물로 바다가 되도록 울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말로 못 다하는 말까지 다 담을 수 있다고 위로하는 사람.
ㅁ 인류애는 한 걸음부터
박수남 감독은 당시 소년이었던 고마쓰가와 사건의 이진우에게 편지를 쓰며 민족의 정체성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민족의 정체성은 배타적인 민족주의와 전혀 다르다. 손을 떼라는 "상부"의 금지령을 듣지 않고, 반국가적 인물이 되기를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자신으로 살려면 어디에 살아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있었던 일은 있었던 일이므로, 민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민족의 정체성을 가르친 끝에 소년 이진우가 발견한 것은 인류애다. 잘못되었으면 어쩌지, 하고 옆 사람을 걱정하기 시작할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의 범죄가 왜 잘못되었는지 받아들이게 된다.
ㅁ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영화에 짧게 지나가지만, 지금도 원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이 있다. 피폭 다시 히로시마에 재일 조선인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인터뷰하는 한 장애인 남성은, 감독과 자신이 차별 받는 존재라는 공통점으로 서로 공감할 수 있다고 밝힌다. 이 대목은 짧게 지나감에도 내게 너무나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서로 손을 맞잡는 방법은 그뿐이지 않을까? 뿌리는 다양성에서 찾아야 한다. 한 사람은 한 가지 정체성만 갖고 살지 않으므로, 어딘가에서는 다수파의 안온한 자리에 서지만 또 어딘가에서는 소수자의 자리에 선다. 이러한 소수자의 감각을 일깨우는 건 다양성이다. 그걸 토대로 우리는 좀더 쉽게 타인의 자리를 가늠해 보고, 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이 영화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묻는 영화였다. 가끔 이렇게 내가 하고 있던 고민이나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느껴지는 영화가 있다. 이런 영화를 적시에 조우하는 기쁨이 있다. 이런 영화들이 등불처럼 비추어 주는 길이라면, 걸어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이 영화의 엔딩 신은 내가 최근 몇 년 간 본 영화의 엔딩 신 중 가장 산뜻하고 말끔했다. 이렇게 마음을 놓게 해주는 엔딩이라니. 박수남 감독은 병으로 점차 시력을 상실해 가고 있지만, 투쟁의 도구이자 기계적 정확도를 가진 '키노 아이'를 넘어서는 눈을 우리에게 빛낸다. 발군의 기억력과 끈덕진 마음으로 오케스트라처럼 울려 퍼지는 목소리들이 더 큰 감각을 가져온다. 50시간 분량의 필름 중 10시간 분량을 이렇게 풀어냈으니, 남은 40시간 분량의 필름 또한 언젠가 또 볼 날을 기대한다.
**혹시 저처럼 지금부터 박수남 감독님의 작품과 궤적을 따라가보실 분들을 위해 남겨둡니다.
[박수남 감독 작품]
▶ <침묵>, 2017 (퍼플레이로 보러 가기 / 편당 결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이옥선 씨가 전후 50년, 긴 침묵을 깨고 14명의 동료들과 함께 일본 정부에 사죄와 개인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그 과정을 동행하며 담은 기록입니다.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께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작품 중 굉장히 시각이 독특한 작품이라며 꼭 추천한다고 하셨어요.
▶ 또 하나의 히로시마 + 아리랑의 노래 /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방문 관람 가능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이 터졌을 때, 당연히 그곳에는 조선인도 있었습니다. 강제 연행과 피폭으로 이어진 피해는 컸지만, 전후 보상 대상에서 이들은 빠졌습니다. 이들을 기록한 이 작품은, 일본이 내세우던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라는 슬로건(?)에 균열을 내고, 현실에 변화를 이끌어낼 만큼 큰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 누치가후: 옥쇄장으로부터의 증언 /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방문 관람 가능
*한국어 자막 없음 (영, 일)
태평양 전쟁이 끝나가던 1945년 3월, 미군의 상륙 공격이 임박해오자, 오키나와에서는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굴 등의 은신처에서 일본인에게 받은 수류탄을 터뜨려 자결하거나 서로 목 졸라 살해하는 참극... 생존자들은 일본군의 명령과 강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이 교과서에서 삭제하고 싶어하는 또 하나의 역사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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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을 대하는 자본의 위선
이민자의 삶은 언제나 고통의 연속이다. 아무리 착한 사람들이 모인 동네라도 자기 신념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은 간사한 존재라서 차라리 무관심하면 나은데, 나와 생각이 다를 때 끊임없이 찍어누르며 자신이 정답이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여기 한창 전쟁 중이었던 유럽에서 막 망명한 건축가 라즐로도 이런 편견을 견뎌내었다. 그의 인생이었던 건축이 미국 상류층 사회에 미친 영향과 반대로 상류층이 그의 삶에 미친 영향을 관객으로서 바라보며 몰입하게 된다. 이 영화는 자유를 외치는 예술 조차 돈과 힘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는, 라즐로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1. 예술가와 자본가의 논리의 차이
라즐로는 전쟁이 망친 건축계의 천재였다. 하지만 천재도 세상의 풍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파시스트가 판치는 세상에선 능력보다는 인종, 피만으로 사람이 평가받던 시기였기에 라즐로는 그저 하등한 출신의 예술가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온 미국에서도 그는 그저 이민자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예술적 능력은 한 부자의 책장을 리모델링해주면서 분출된다. 그렇게 해리슨과 라즐로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들의 인연은 파탄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자명했다. 해리슨은 자신의 영역을 마음대로 바꾸었다는 이유로 라즐로를 욕보여 놓고 세상의 주목을 받으니 그제서야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라즐로의 능력을 첫 눈에 알아본 사람이 아니고, 세상이 알아주니 그제서야 그를 치켜올렸다. 고로 해리슨은 대단한 예술적 취향이 있는 인물이라기 보다는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중요한 사람임이 처음부터 드러난다. 하지만 지출은 줄여가며 명성은 유지하고 싶어하는 자본가적 속성은 라즐로의 예술성은 돈 먹는 하마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라즐로의 예술성을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이 그의 예술성에 가려진다고 생각할 때마다 돈으로 괴롭혔던 것 같다. 돈은 없지만 어디서든지 빛나는 재능을 가진 이가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한 편으로는 기쁘다가도 그의 재능이 자신을 하찮게 만든다고 생각이 들 땐, 유일하게 가진 그의 재능인 돈으로 그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리라.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 세상의 수많은 부자들이 천재들을 후원하는데, 그 후원은 순수할 수가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보여준다. 예술은 예술가들의 미학인 것 같지만 더 깊게 들어가면 자본가들의 미학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돈많은 예술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돈이 없어 자신의 재능을 미끼삼아 후원해줄 자본가를 찾아온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도 메디치 가의 후원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라즐로의 예술도 결국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라즐로 또한 자신의 재능에 취해, 해리슨을 친구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라즐로의 잘못이라면 잘못이리라. 해리슨은 자신을 고용한 고용주일 뿐 친구는 될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 같다. 그런 라즐로의 세상 물정 모르는 모습은 그의 예술가적 순수함으로 발현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예술성을 마음껏 펼치기에는 그의 건축은 남의 돈에서 비롯되어 결국 자본가의 논리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늦게 알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2. 세상은 가끔 천재를 동경하다가도 질투한다.
역시 신은 모든 것을 주시진 않는 것 같다. 라즐로가 세상 이치에 밝았다면 자신의 돈으로 자신만의 건축을 하는 예술가로 살 수 있었겠지만 많은 예술가들의 삶이 자본가의 논리에 휘둘렸던 역사를 보고 있자면, 신은 생각보다 공평한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능 있는 자에게 실리적 관점을 주지 않고, 실리만 있는 사람에겐 예술적인 안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로를 끊임없이 부러워하게 만드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신은 어쩌면 장난이 과하신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해리슨의 예술에 대한 동경, 라즐로에 대한 질투는 미국의 역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로 남았지만 후대의 평가는 확실히 갈리는 듯하다. 깊은 내면의 애로사항을 알 리 없는 후손들은 그의 작품을 수용소를 형상화했다고도 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어쩌고 하기도 한다. 과거의 예술작품을 후대가 해석할 때 어쩔수 없이 주관이 개입하는 것 같다. 그의 작품을 내가 해석을 해본다면 그는 그저 모더니즘의 경도되었던 예술가였고 모더니즘의 본질이 군더더기없는 표현을 통해 정확한 메시지의 전달이었다고 한다면 그는 그저 예배당으로서의 기능, 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충족시켰던 것이 아닐까. 특히 건축물을 해석할 때 건축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투영되는 것에 대해서는 제 3자가 가치판단을 할 순 없는 것 같아서 더 이렇게 해석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기능에 대한 관점에서 해석하게 되었다.
총평
예술은 자본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기에 자본가의 입맛에 좌지우지된다. 하지만 자본가가 예술가를 질투까지 해버리면 그 관계는 파탄이다. 영화는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사람의 파탄을 보여주니 후대가 보는 라즐로의 작품은 어디까지가 그의 의도인지를 알 수가 없다, 중간에 자본가 집단이 어떻게 장난질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 세기의 천재들이 남긴 작품들의 이면들을 대부분 알 수 없기 때문에 후대는 일부만 알고 떠드는 것일수도 있겠다. 우리가 뭘 안다고 떠들 수 있을까.
과연 해리슨은 어디로 숨었을까. 엘리자벳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해리슨에게 죽음이란 사회에서의 망신살을 당하는 것이라는 걸, 신체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것보단 사회에서의 매장이 그에게 곧 죽음이라는 것을. 라즐로의 예술성을 부러워하다 못해 탐한 것이 온 세상에 알려졌기에 그는 더 이상 미국 필라델피아에 공식적으로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그가 살아있대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 것이다.
덧붙여 현대 건축에 대한 헌사를 아낌없이 표현하는 작품이다. 긴 러닝타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매 장면 그림이 아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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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위한 피날레인가
길고 길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마지막 시즌까지 정주행 완료하면 '스위트홈'이 달라 보일 것이라고 이응복 감독이 큰소리쳤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혹평 세례를 면치 못했던 시즌 1이 제일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위트홈'은 시즌 3까지 이어오면서 굵직한 이야기를 담아왔다. 시즌 1이 욕망의 씨앗에서 탄생하는 괴물을 선보이며 'K-크리처물'의 시작을 알렸다면, 시즌 2는 장기화된 괴물화 사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며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이 바통을 이어받은 시즌 3은 신인류의 탄생까지 다루며 최종장을 향해 달려 나간다.
동시에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도 있었다. 이전 시즌에서 무리하게 확장시킨 세계관과 빌드업이 망가진 캐릭터들, 회수 없이 떡밥 뿌리기에만 치중에 둔 스토리 전개 등으로 혹평받았던 부분을 만회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시즌 3은 시즌 2에 심어뒀던 복선 회수를 하는 데에 집중했으나, 회수 방식이 마구잡이였다. 회수에만 포커싱 했는지 개연성 또한 없고, 막상 복선이 공개됐을 때에는 기대했던 것과 달리 놀라운 반전 등은 없었다.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복선들을 잔뜩 깔아 뒀는지 제작진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무리하게 확장시킨 세계관 매듭짓기 또한 허술했다. 괴물화와 다른 MH(몬스터휴먼)라고 부르는 특수감염인에 모자라서 신인류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등장했으나, 막상 '스위트홈 3'에서 비중이 크진 않았다. 신인류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은혁(이도현)의 컴백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고, MH는 편상욱(이진욱)과 서이수(김시아) 부녀 간 관계성에 묻혀버렸다.
이와 함께 등장인물들을 무분별하게 죽여나가며 급하게 마무리하는 느낌도 지을 수 없었다. 개연성 없이 캐릭터들이 퇴장하는 과정을 봐야 하는 시청자들에 대한 배려 따윈 없었다.
시즌 3까지 다 보고 나면 '과연 이 작품은 무슨 말을 전하고 싶었을까?', '왜 스위트홈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게 된 것일까?' 등 물음표도 붙는다. 새 시즌이 등장하면서 드라마의 결이 너무나도 달라져 같은 작품인지도 혼란스럽고, 시즌 1에서 조명했던 주요 메시지 '욕망과 인간성에 대한 고민' 또한 희석되어 간다.
아, 장점도 있다. 시즌 2에서 차현수(송강)의 적은 분량이 불만이었던 시청자들에겐 이번 시즌에선 100% 만족할 것이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원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갈망했던 이은혁, 이은유(고민시) 남매의 재회도 이번 시즌에서 그려진다. 다만, 깊이감은 없으니 이 점 참고해 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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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엄마를 부르는 숲, 가족이 되는 순간
Director
Jerome YOO
Cast
JIN Sein, KIM Jae-hyun, NAM Da-nu, KANG Sangbum, Jedd SHARP, Candyce WEIR, Morgan DERERA
시놉시스
1991년 여름, 슬픔에 잠긴 어느 한국인 가족이 야생 들개의 침입으로 고초를 겪고 있는 캐나다의 대초원으로 이민을 간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면서 이들은 가족 사이의 깨져버린 유대감과도 직면해야 한다.
들어가며,
이민 2세대인 제롬유 감독의 영화는 캐나다를 배경으로 한 한 이민가정의 생활을 독특한 스토리텔링과 화면구성 방식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God, Cowboy, Blond라는 부제를 붙은 세 파트에선 아버지(광선), 아들(하준), 딸(하나)이 돌아가며 주인공이 된다. 같은 집, 같은 시간에 살고 있지만 진실의 층위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감각하는 이민생활의 최우선 문제 역시 다르게 인식된다. 한국에 정주하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선 ‘이민’이라는 한 단어로 퉁쳐지는 문제가 그를 받아들이는 각 세대마다 이토록 섬세하고 다양한 양상을 가질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된 영화이기도 했다.
잡종에 대해서,
표면적으로 잡종의 의미는 이것저것이 섞여 순종이 아닌 어떤 종류를 말한다. 모국을 떠나 타국인이 되어야 하는 이민세대의 고충을 뜻하는 뜻이기도 하겠으나 <잡종>은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을 ‘집을 잃어버린 떠돌이 개’로 확장시키며 인물들이 가진 결핍의 구심점을 만든다.
집을 잃어버린 채 마을과 숲을 오가며 사는 이들 들개는 어느 경계에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자로 해석된다. 이것은 한복을 입고 매니큐어를 칠한 한나, 영어를 쓰고 금발의 친구들과 놀지만 엄마의 노래를 듣는 하준, 땅주인을 위해 들개들을 잡을 때 한국식 위령제를 지내는 광선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제목의 필연성을 생각케 한다.
#1. GOD : 광선은 자식들에게 자꾸 강해지라고 한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바다를 건너왔다. 먹고 살기 위해 들개를 잡아 죽이는 사냥꾼이 되었다. 그들 가족에게 살 곳을 제공해준 마을의 목사 스캇은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유산을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들개들을 죽이고자한다. 광선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스킬로 들개를 다루어 단번에 스캇의 팀에 들어가게 되지만 밤이 되면 자신이 개들의 울음소리에 괴로워한다.
사냥을 망설이는 큰아들에게 ‘빨리 죽여주는 게 걔한테 도움되는거야!’라고 소리치지만 사실 그는 사냥을 시작할 때마다 나무에 오색실을 묶어두고 산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사람이다. 먹고 살기 위해 짐승을 물어뜯는 들개와 자신이 다를 것 없다는 죄책감이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이다.
#2. COWBOY : 하준은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반면 하준은 죽은 들개의 사체 위에 들꽃을 올려주는 마음을 가진 소년이다. 그러니 광선이 하준에게 거칠게 대하는 이유는 아마 그 모습에서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보이는 것은 그의 고통이 아니다. 그저 소리치거나 고성방가를 하는 무서운 아버지일 뿐.
하준은 노아를 비롯한 캐나다인 친구들인과 어울릴 땐 ‘그들’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여동생 하나와 같이 있을 땐 여전히 ‘집’에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노아가 친구 이상으로 느껴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하준이 원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아버지와 싸워도 돌아오게 되는 원점은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극과 극을 향해 달리던 아버지와 아들은 상실의 공감대로 연결된다. 그들은 이제 하나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려야 한다.
#3. BLONDE : 그리고 가족을 하나로 모으는 ‘하나’.
하나는 비행기 100개를 먹으면 소원을 빌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을 믿고 착실하게 비행기를 찾아다니는 소녀다. 목사의 부인인 로라는 딸이 없는 아쉬움을 하나에게 투영하며 엄마처럼 잘해주려한다. 옆자리, 생일파티, 기도문화, 선물, 매니큐어까지 하나는 아버지가 오빠가 자리를 비운 빈 집에 혼자 남아 엄마를 그리워 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아줄 여유가 있는 가족은 없다. 로라처럼 노랗게 머리를 탈색하려던 하나는 불현듯 숲으로 뛰쳐들어간다.
철없는 아이의 가출이라 생각했던 광선은 엄마가 올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하나를 보며 말문을 잃는다.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그리움을 두려움없이 꺼내버리는 천진난만함에 결국 무너지고 만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끈을 잡고 있던 가족은 다시 조금 가까워지게 된다.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엄마’라는 단어
하나가 숲 속에서 엄마를 부르고 광선이 (돌아올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함께 아내를 부르는 장면은 꼭 초혼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성인인 아버지와 아들이 각자의 이슈로 미루어두었으나 사실 가장 선행되어야 했던 ‘애도’는 막내딸 하나의 챕터에 와서야 이루어지게 된다. 여담이지만 이민가족들은 전통문화에 대한 보수성과 현지 문화에 대한 개방성이 묘하게 섞이게 되는데 높은 확률로 보수성의 일면은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발현되는 것 같다. 아버지는 아버지인데 엄마는 엄마가 되는 사례도 꽤 많은 것 같다. 현실의 사례에서 채택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이 호칭의 차이가 이 가족이 가진 거리감과 상실감의 깊이를 유추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섬세한 포인트였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한국식 요리를 해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한나가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단순히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그리움만이 아니라 어머니가 이들 가족의 구심점으로서 가족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어머니가 사라진 뒤 심화 된 갈등은 이들 각자의 정신적 위기로 확장되어 서로가 모르는 시간에 존재론적 위기를 겪게 만들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잡종이란 뿌리를 잃어버린 것이라는 해석으로 재정의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비단 한 이민가족의 개인사적 위기를 그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불안한 시대를 ‘영혼의 집’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로 확장된다.
긴 방황 끝에 같은 그리움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 세 명의 가족이 들개의 울음소리로 뒤늦을 애도를 함께 하는 장면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영혼의 집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샤론 최와 함께하는 <영특한 대화>
<잡종>은 사실 각각 부제를 붙인 세 편의 다른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인물 각자가 마주하고 있는 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특한 클래스>의 모더레이터로 참석한 샤론최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균질’한 서사인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영화가 담고자 한 이민세대의 진짜 고충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는 그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녀의 모더레이팅으로 영화가 사용한 각기 다른 화면비와 색감, 음악의 테마가 이 불균질과 충돌을 다루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었다. <영특핸 대화>에서는 디아스포라와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 외에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통역한 통역사로 명성을 얻었지만 제롬유 감독과 시네마 스쿨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신인영화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준비중인 샤론최의 커리어패스와 작업 근황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Schedule in JIFF
2025.05.02.(금) 17:30 CGV전주고사 1관
2025.05.03.(토) 17:00 CGV전주고사 1관
2025.05.07.(수) 17:00 CGV전주고사 2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4.30 ~ 5.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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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11월 첫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
이번 주는 지난 주보다 기온이 오른다고 하지만, 일교차가 크다고 하니
외출 시 두꺼운 외투를 챙기는 걸 추천드립니다.
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
'개봉주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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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자백> (-)
▶ 개봉 2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자백>. 관객들의 입소문과 함께 지난 주말과 비슷한 관객수를 동원했으며,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주말 동안 (11월 4일 ~ 11월 6일) 관객 수 17만 2,278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3만 6,01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2. <리멤버>
▶ 친일파에 대한 복수에 관한 스토리인 <리멤버>가 2주 연속 2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신선한 스토리, 빠른 전개,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더불어 두 배우의 케미가 관객을 사로잡았다.
주말 동안 (11월 4일 ~ 11월 6일) 관객 수 14만 1,571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23만 9,350명을 돌파하였습니다.
3. <블랙아담> (-)
▶ 스펙터클한 볼거리와 역대급 스케일로 극장가를 사로잡은 히어로 액션 영화 <블랙 아담>이
지난 주에 이어 3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주말 동안 (11월 4일 ~ 11월 6일) 관객 수 6만 4,317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75만 5,36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25회 예측 이벤트는 11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
정답자 비율(%)
▶ 한 주 동안 많은 씨네픽 유저분들이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 주셨는데요.
이번에는 많은 분들이 순위를 맞추셨는데요. 저번 주와 같이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를 보면 TOP3 안에 들어갈 영화는
<자백>, <리멤버>, <블랙 아담>이라는 반응이 뚜렷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125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 떡잎 학교> (-)
▶ 개성 넘치는 극장판 캐릭터들과 잘 짜여진 스토리로 개봉하자마자 화제를 모으고 있는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 떡잎 학교>.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 떡잎 학교>.
극장판 짱구 시리즈 중 역대급 흥행 신기록을 세울 것으로 주말 동안 (11월 4일 ~ 11월 6일) 관객 수 4만 2,76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75만 2,940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1)
▶ 순수 입소문의 힘으로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10월 마지막 주에 6위를 차지했다 11월 첫째 주에 5위로 올라섰습니다.
주말 동안 (11월 4일 ~ 11월 6일) 관객 수 4만 567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241만 1,471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Black Adam>이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One Piece Film: Red>가 개봉하며 순위에 등장한 것 외에는
박스오피스 순위의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Black Adam>는 주말 동안(11월 4일 ~ 11월 6일) 매출액은 18,520,299 (한화 약 260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총 누적 매출액은 137,366,000 (한화 약 1,934억) 달성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5>
1. <블랙 아담> 1,852달러 (누적 1억 3,736만 달러)
2. <원피스 필름: 레드> 947만 달러 (누적 947만 달러)
3. <티켓 투 파라다이스> 851만 달러 (누적 4,673만 달러)
4. <스마일> 400만 달러 (누적 9,910만 달러)
5. <프레이 포 더 데블> 387만 달러 (누적 1,364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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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11월 첫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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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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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공정위, 티빙·시즌 합병 승인
ⓒ 티빙
공정거래위원회에서 OTT 서비스 티빙과 시즌의 합병을 승인했다.
두 회사가 합병되면서 점유율이 18.05% 합쳐져 업계 2위로 부상하게 되었다.
차은우, <데시벨> OST 발매
ⓒ 네이버 영화
아스트로 멤버 겸 배우 차은우가 첫 스크린 주연작인 <데시벨>의 OST '항해'를 부른다고 한다.
배우 차은우는 <데시벨>에서 해군 잠수함 음향 탐지 부사관 역을 맡았다.
윤제균 감독 신작 <영웅>, 12월 개봉 확정
ⓒ 네이버 영화
안중근 의사를 다룬 영화 <영웅>이 12월 개봉을 확정했다. 뮤지컬 <영웅>에서 초연부터 지금까지 총 7번의
시즌에 참여한 정성화가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배우 김민하, 고담어워즈 최우수연기상 후보
ⓒ 사람엔터테인먼트
배우 김민하가 고담어워즈에서 애플TV플러스 시리즈 <파친코>로 신작 시리즈 최우수연기상에 후보에 올랐다.
고담어워즈는 오스카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대표 어워즈로 미국의 권위 있는 행사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고담어워즈 3개 부문 노미네이션
ⓒ 네이버 영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최우수 작품상, 주연상, 조연상에 후보로 올랐다.
영화는 국내에서 개봉 2주차 주말에 36,639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었으며,
입소문과 N차 관람으로 흥행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옥의 화원>, 12월 개봉 확정
ⓒ 찬란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화제작 <지옥의 화원> 마침내
12월 국내 정식 개봉을 확정하였다. <지옥의 화원>은 압도적 격투 능력만 있다면 최강의 여직원으로
칭송 받는 세계,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나오코가 싸움에 휘말리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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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은 어떻게 거장이 되는가?
이 시사회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천재에 대한 일화는 언제나 대중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가 다다른 '거장'의 지위가 눈부셔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러한 천재들이 그 나름대로의 탁월한 방식으로 한 분야의 새 지평을 여는 순간들이 짜릿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들의 남다름은 매력적이고, 그들의 열정은 경탄을 자아낸다. 대개 그들의 삶에는 혁신이 있고, 약간의 과장을 덧붙이자면, 그 삶의 흐름은 혁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그러한 천재의 반열에 오른 거장 중의 하나다. 그가 영화에 담아낸 음악들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그의 이름을 들어 본 일이 없더라도 그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을 것이다.(사실, 내가 그랬다.) 거친 황야 너머로 울려퍼지는 팬플루트 소리라든가, 낯선 남미 땅에서 울려퍼지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오보에 연주('넬라 판타지아'라는 음악으로 더 알려져 있다.)는 한국인들의 귀에도 너무나도 익숙한 곡들이 아닌가. <시네마 천국>, <황야의 무법자>, <피아니스트의 전설> 등 제목만 말해도 '아!'하고 탄성이 절로 나오는 영화들 역시 그의 음악을 말미암아 빛을 발했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엔니오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불후의 명곡들을 만들었을까? 우리는 운 좋게도 오는 7월에 나오는 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에서 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거장의 삶을 추적하며 그가 음악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조명한다. 그와 동시에, 거장이 거장으로 불리기까지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그는 천재이자 혁신가이고, 또 한편으로는 한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낸 개인이기도 하다. 천재를 감히 평범하다고 일컫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의 삶은 분명 눈부셨지만 사람다운 구석이 있었고, 바로 그 점이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스크린 너머에서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거장은 그저 거장으로 태어나 거장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끝없는 노력과 열정, 실험 정신, 그리고 좌절을 말미암아 진정한 '마에스트로'로 거듭난다.
조용하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다던 그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혹은 정해진 길만을 걷기를 거부했다. 트럼펫 연주자가 되라는 아버지의 말을 어기고 작곡가가 되었고, 현대 음악을 경시하던 기존 클래식 학계에 기꺼이 반기를 들었다.
그는 나아가 그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상업적'이며 음악의 고유한 가치를 떨어트린다는 평을 받던 영화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가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을수록 클래식계에서의 비난은 거세어졌지만 그는 꿋꿋이 그의 길을 걸었고, 마침내는 클래식계와 영화계 양쪽 모두에게서 인정 받는 음악가이자 영화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언제든지 거만해질 수 있었고, 언제든지 그가 뿌리를 둔 고전 음악계나,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영화 음악을 뿌리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젊은 날의 그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매순간을 절실하게 살았다. 그는 혁신과 변화, 새로움을 꿈꾸는 자였지만 그와 동시에 음악 선배들이 수 백년에 걸쳐 전해 온 규칙을 계승하고자 했고, 바로 이 점이 그를 한 사람의 위대한 음악가가 되게 했을 것이다.
나는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내로라하는 작곡가들의 이름이나 아주 단순한 화성학이니 뭐니 하는 음악 용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사실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그의 삶은 충분히 눈부시고, 그가 기울인 탁월하고도 성실한 노력들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 동안 나는 나의 삶은 어땠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그처럼 천재가 아니고 그만큼 탁월하거나 성실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매일매일을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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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삶 뿐만 아니라 그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영화관에서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시간이 난다면 가능한 음향 시설이 좋은 시설에서 마음껏 그의 음악을 즐겨보는 것도 이 영화를 즐기는 탁월한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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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킹스맨이 한국에서 성공한 이유 #3
환몽(幻夢) CINE 리뷰 3화_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킹스맨 감독과 인물 소개 및 비화
- 킹스맨이 왜 유독 한국에서 성공했을까?
-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
- 기타 영화 관련 썰 - 일루미나티 등
- 우리가 꼽은 명장면
- 몽's 한줄평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를 보고나서 마구 생각하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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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티저 예고편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스즈'는 사고로 엄마를 잃은 후 더이상 노래할 수 없게 된다.
평범한 나날이 계속되던 중, 우연히 가상세계 U에 접속하게 된 '스즈'.
그는 그곳에서 신비로운 가수 '벨'로 다시 태어나 순식간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그런데 '벨'의 대규모 콘서트가 열리는 어느 날, '용'이라 불리는 의문의 존재가 나타난다.
큰 상처를 안고 있는 듯한 '용'에게 마음이 쓰이는 '벨', 그리고 현실의 '스즈'.
과연 '스즈'의 목소리는 그에게까지 닿을 수 있을까?
두 세계가 하나로 이어질 때, 기적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