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1-05 23:46:42
시듦을 인정하며 완성되는 사랑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리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꽃다발의 의미
- 달라진 신발과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책장
- 이어폰과 함께 듣는 음악의 의미
- 엔딩 결말 해석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We Made a Flower Bouquet, 2021)
시듦을 인정하며 완성되는 사랑
개봉일 : 2021.07.14.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 124분
감독 : 도이 노부히로
출연 : 아리무라 카스미, 스다 마사키, 키요하라 카야, 호소다 카나타, 오다기리 죠, 토다 케이코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각자 다른 꽃을 꺾어 이리저리 배치하고 꾸미면 예쁜 꽃다발이 하나 완성된다. 색, 질감, 가지의 길이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다발 안 꽃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그것들이 원래부터 하나의 덩어리였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이런 꽃다발처럼 보이는 사랑을 한 청춘 남녀의 이야기다.
무기와 키누는 막차가 임박한 지하철역 앞에서 처음 만난다. 서로 부딪히며 삐끗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막차를 놓치고, 어쩌다 보니 개찰구 앞에 있던 직장인 두 남녀와 함께 바에서 첫차를 기다리게 된다. 무기는 딱히 공감할 수 없는 직장인 남녀의 대화를 불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키누는 무기의 말과 표정에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각자의 길로 찢어지려던 찰나. 공통점 하나로 말문을 트게 된 두 사람은 서로가 운명임을 직감한다.
무기와 키누가 생각하기에 둘은 서로 공통점이 너무도 많았다. 처음 만난 날 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고, 같은 작가를 좋아하고 같은 책을 읽었고, 같은 뮤지션을 좋아했으며 같은 날의 공연 표를 사놓고 가지 못한 것까지 똑같았다. 두 사람은 첫차가 올 때까지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고 다음을 약속한다. 그리고 상대의 사소한 행동에 설렘과 특별함을 느끼며 연인이 되고 나의 일부를 꺾어내 ‘똑닮은 우리’라는 하나의 꽃다발을 만들어간다.
무기와 키누는 이 꽃다발이 조화롭고 완벽하다고, 이대로 평생 가슴에 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뿌리를 내리며 자라나는 화분 속 꽃과는 다르게 흙도 뿌리도 없는 꽃다발 속에 자리 잡은 꽃들은 각자의 속도로 시들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시들어가는 우리를 느끼며 이별을 생각한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다발,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말을 이렇게 오목조목 곱상하게 펼쳐내는 영화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누군가의 이상행동, 문제를 만드는 제3자, 슬픔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잉 감정 등 호불호 포인트가 될만한 것들을 싹 배제한 채 최대한 담백하게 사랑과 이별의 순간을 그린다.
시간의 흐름에 올라탄 연인
달라진 신발과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책장
아르바이트와 학교 성적 유지 정도의 비교적 무겁지 않은 책임만 주어지는 나이에 만난 두 사람은 시간이라는 불안정한 흐름에 함께 올라탄다. 이들은 키누가 학교를 졸업할 때쯤, 부모님의 압박과 취업 문제, 작은 경제적인 문제를 맞이하지만 그것 또한 나름의 로맨스로 승화한다.
취업을 못해 집안에서 눈엣가시가 된다면 집을 나와 함께 살면 되고, 집이 역에서 멀면 커피 한 잔을 사들고 행복한 데이트 코스로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점점 깊어지고 무기와 키누는 연인을 위해, 우리의 미래를 위해 잠시 꿈을 접어두고 현실에 몰두하게 된다.
취업만 성공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은 더 멀리 벌어진다. 두 사람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기는 장면들이 점점 줄어들고 키누는 거실 창문 너머에, 무기는 방 창문 너머에 담기는 장면들이 많아진다. 말하지 않아도 늘 함께 신었던 흰색 스니커즈는 문 안을 바라보다 문 바깥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끝내 사라져버린다. 흰색 스니커즈가 있었던 자리엔 다른 모양새의 구두 두 켤레가 어색하게 자리하고 있다.
무기는 ‘돈이 없으면 키누에게 밤일을 시켜보라’는 선배의 말에 자극을 받아 열심히 취업을 준비했지만 막상 취업을 하고 나선 키누에게 마음을 주지 못한다. 키누에게 상처를 줬던 딱딱한 면접관을 욕하던 그는 어느덧 그 면접관처럼 이마무라 나츠코의 ‘소풍’을 읽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키누에게 상처를 준다. 일에 휩쓸리던 무기는 학생 때처럼 영화, 책, 게임을 사랑하는 키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몇 번의 갈등이 생긴다. 이때 각자의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사이엔 한때 즐거운 마음으로 공유했던 거대한 책장이 버티고 있다.
키누는 새로 나온 만화책이나 함께 보기로 했던 연극 등 예전에 무기가 좋아했던 것들을 주제로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 노력하지만 무기는 키누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일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키누는 이런 무기 앞에 앉아 빨래를 개고 옷장 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 빨래와 함께 섭섭한 마음도 함께 접어 넣는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랑이 완성되는 과정
하나의 이어폰을 나눠 쓰던 두 사람
오프닝신에 나온 무기와 키누는 “이어폰 하나를 나눠 끼고 듣는 건 둘이 다른 음악을 듣는 일”이라며 분개한다. 음악은 최소 스테레오 채널(2채널)로 구성되어 있는 콘텐츠라 왼쪽, 오른쪽에서 나오는 각자 다른 소리를 같이 들을 때만 그 음악을 제대로 들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은 모노 채널이 아니다. 연인이라 하여 사랑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할 순 없다. 다른 채널에 있는 연인이 어떤 사랑을 원하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고려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노력한 것만 이야기한다면 그 사랑은 온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처음 고백하던 날, 무기와 키누는 한 이어폰을 끼고 레스토랑 점원 포린의 음악을 듣는다. 어렸던 무기와 키누는 한 이어폰으로 같은 음악을 듣고 ‘무기와 키누의 사랑’이라는 똑같은 꿈을 꾸며 노력한다.
무기는 키누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회사에 취업한다. 키누도 무기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취업을 하고 무기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취미 생활을 공유하려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 어떤 사랑을 원하고 있는지, 그가 이 사랑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진 헤아리지 못한다.
무기와 키누는 첫 만남부터 수많은 공통점을 공유했기에 자연히 연인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보단 무기는 키누가, 키누는 무기가 취업, 지인의 죽음, 시간이라는 변화 앞에서 자신과 같은 태도를 취하길, 같은 결말을 바라길 기대한다.
하지만 무기와 키누는 많은 부분이 닮은 타인일 뿐, 동일한 존재가 아니다. 무기는 키누가 열광했던 미라전을 무서워했다. 미라전을 보고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눌 때, 키누는 전시회 도록을 펼치며 흥분한 듯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무기는 애매한 표정으로 키누의 말을 듣다가 점원이 오자마자 재빠르게 미라로 가득한 도록을 덮어버린다. 키누는 무기의 가스탱크 영상을 보다가 깜빡 잠들어버린다. 무기는 키누가 가장 재밌는 장면에서 1시간 동안 잠들었다며 아쉬워한다. 두 사람은 이러한 사소한 다름을 알아채지 못하고 나와 다른 연인에 오래도록 실망하고 슬퍼한다.
무기와 키누는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이별을 결정한다. 그리고 ‘똑닮은 우리’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고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미라전과 가스탱크에 느꼈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지금껏 듣지 못했던 다른 채널에 담긴 소리를 들으며 ‘무기와 키누의 사랑’이라는 꿈의 마지막 소절을 완성한다.
시간이 지나며 무기와 키누의 꽃다발은 싱그러움을 잃어갔지만 그 과정은 전혀 추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르고 시들어갔다기보단 완성되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두 사람은 아름답게 말라붙은 우리라는 꽃다발과 함께 펼쳤던 베란다 커튼을 뜯어 정리하고 각자의 길로 향한다.
이별 후 두 사람은 각자의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고 다른 이와 각자의 연애를 이어간다. 현재의 연인은 음악을 듣는 방법부터 나와는 다른, 옛 연인처럼 나와 똑 닮았다고 말할 순 없는 사람이지만 무기와 키누는 그들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하고 현실적인 사랑을 찾는다.
사랑한다고 꼭 하나의 이어폰을 갈라 같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연인과 다른 음악을 듣고 다른 목표점을 가진 사랑을 하더라도 나의 것을 그에게 들려주고 그의 것을 이해하며 사랑하는 것. 그것 또한 사랑임을. 무기와 키노는 어린 사랑의 끝에서 그것을 깨닫는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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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되는 생활 속, 미묘한 변주를 찾기를
<쉘 위 댄스>에서 매너리즘에 가득 찬 얼굴로 지하철 창문 밖으로 보이는 댄스 학원을 보았을 때 야쿠쇼 코지의 표정을 기억하는가?
필자는 이 장면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고 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지하철에 몸을 맡겨 집으로 휩쓸려가는 와중에, 야쿠쇼 코지는 고개를 아주 조금. 들어 올렸을 뿐이다. 그랬을 뿐인데, 그 이후로 그의 삶은 360도 바뀌게 된다.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이라 생각한다. <세 번째 살인>, <멋진 세계>, <큐어> 등 여러 작품에서 보여줬던 야쿠쇼 코지의 연기는 설명 없이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전율이 스크린을 타고 넘어와 나에게 전해진다. 올해 개봉한 <퍼펙트 데이즈>에서도 그러했다. 아니, 전보다 더한 것이 몰려왔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시부야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일상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강박적일지 모르는 그는 다음과 같은 행동을 매일 반복한다.
매일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어젯밤에 본 책 한 구석을 접어 표시해 두고 책장에 넣는다. 그러곤 일층으로 내려가서 주방 싱크대에서 양치를 하고, 수염을 정리하고, 물통을 들고 올라가서 방 한 구석 놓여 있는 식물에 물을 준다. 그러고 옷을 챙겨 입고, 내려와서 문 앞에 놓인 나무 선반 위에 필름 카메라, 지갑, 차키 그리고 동전 몇 개를 챙겨서 나간다. 현관문을 열고 하늘을 보며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그다음 집 앞 자판기에서 보스 캔커피를 뽑아 차에 타고 출근을 한다.
관객은 반복되는 그의 행동, 그의 하루를 보며 지루함을 느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삶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듯이 극이 진행될수록 약간의 변주가 주어진다. 왕래가 없던 조카가 찾아와 며칠을 같이 지내게 되거나, 젊은 직장 동료의 여자친구에게 혼자만 듣던 노래를 들려주거나, 단골 식당 여주인의 전남편과 강변 공원에서 그림자놀이를 하거나, 갑자기 차가 퍼져 본인이 아끼던 카세트를 팔거나. 그럼에도 히라야마의 삶은 다시 중심을 찾고 원래의 루틴을 찾아 다시 반복된다. 그러고 영화가 끝이 난다. 단조로워 보이지만, 그만큼 담은 것이 풍부한 영화이다.
영화를 보러 간 날, 주말 오전이라 그런지 영화관 로비에는 어린아이와 부모들이 가득했다. 동시기 개봉작 애니메이션 탓인 것 같다. 부산스럽고 활기 찬 그들 사이를 비집고, 조용한 상영관에 들어앉았다. 내 옆엔 30대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고, 내 앞으로 4줄은 단체 관람을 온 듯한 중년부터 노년까지의 관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위에서 보니, 그들의 뒷모습은 왜인지 모르게 <퍼펙트 데이즈> 속 히라야마와 닮아 있었다. 정적이면서도 어딘가 삶의 조그만 부분에서 희망을 바라는 듯한 그 모습. 그날따라,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지 않던 내가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도시의 마천루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햇빛을 보며 울고 있는 히라야마,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 이와 상반된 분위기의 당찬 배경 음악. <퍼펙트 데이즈>에서 가장 역동적인 장면이라 느껴졌다. 이 마지막 장면의 여운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그랬던 것 같다. 내 주변 젊은 관객들이 크레딧이 올라가는 도중에 극장을 떠났고, 앞서 언급했던 단체 관람 중년층 관객들만이 자리 잡고 크레딧을 지켜보았다. 아마 그들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으리라.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쿠키 영상으로 다음과 같은 문장이 보였다.
코모레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뜻한다. 코모레비는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이 문장을 보지 못했더라면, 이 영화를 온전히 마음속에 담아 두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빠르게 박혔다. 히라야마는 반복되는 일상 속 코모레비를 놓지 않는, 누구보다 최선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약간의 바람에도, 약간의 시간 경과에도, 약간의 고개 각도에도 사라지고 달리 보이는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줄기 햇빛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적인 일상이라도 미묘한 변주가 찾아올 수 있다고 희망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관을 나오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이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당연히 집으로 가는 발길을 서둘렀겠지만 그날만큼은 지금 이 순간의 코모레비에 눈길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히라야마의 점심시간처럼,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과 다를 바 없는 하늘이었고, 평범한 세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속으로 되뇌었다. 지금이 내 일상의 코모레비임을. 정말 완벽한 하루였다.
아직 이 영화를 아직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의 코모레비를 찾았으면 한다. 그들의 코모레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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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보다는 흥미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
각종 세계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존 덴버 죽이기'(아덴 로즈 콘 데즈 감독)는 현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온라인 마녀사냥, 사이버 불링, 디지털 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문제를 담아 더욱 주목을 받고 있고 국내에는 11월 23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아이패드를 훔쳤다는 누명을 쓴 존 덴버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친구와 싸운다. 그 과정이 편집된 채, SNS에 동영상이 올라가며 존 덴버 사건이 알려진다. 앞 뒤가 잘린 동영상은 존 덴버가 아이패드를 훔쳐간 것도 모자라 친구를 폭행했다는 사실이 되어 '악마'가 된다. 사실과는 전혀 다른 일이 기정사실화 되어 존 덴버는 사이버 불링의 피해자가 되지만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완벽한 '악마'가 되어갈 뿐이었다.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난관에 봉착한 존 덴버는 자신의 결백함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지 영화에서 확인해보면 좋을 듯하다. 설령 당신이 기대했던 결말과 조금 다를지라도.
사실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누가 범인일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존 덴버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실한 영상이 나오지 않았다면 "내가 훔치지 않았어요"라는 말을 믿었을까? 그런 내 모습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물론 범인이 밝혀져야 존 덴버의 무고함에 힘을 보태어줄 수 있지만 이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불특정 다수에 의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으며 추측으로 인한 2차 피해까지 고려하지 않는 현 세태의 문제를 이리도 꼬집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비판을 넘어서 과도한 비이성적인 비난은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은 폭력에 불과하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를 따지기보다 흥미롭고 자극적인 정보 공유를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SNS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우리나라 과거의 문제라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실에 의거한 진실보다는 흥미에 관심을 쏟다가 또 다른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으로 옮겨간다. 사실이 아닌 내용과 짜깁기 한 영상들은 검색과 클릭만 할 수 있다면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있으니 사라지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개인의 가벼운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름만 바뀐 채 ㅇㅇㅇ죽이기는 반복될 것이다. 언제까지 혐오에 시간을 허비할 것인가. 여전히 # 해시태그는 한 사람을 향하고 있다. 어딜 향해 날아들지 모를 수많은 말의 화살이 내일은 당신을 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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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 뒤의 얼굴
당신이 영원히 아름답기를 빕니다.
이 말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십대 한복판의 나였다면 축복이라 생각했을 지도. 아름다워지는 것으로 인생의 많은 것이 달라진다 생각했던 나이였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생각한다. 그 말은 축복보다는 저주일지 모른다고. 아름다움은 많은 것을 주겠지. 그러나 더 많은 것을 앗아가겠지. 그 목록을 헤아려보지 않은 채로 쉽게 해서는 안될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아름다움으로 찬양을 받다가, 사람들이 원한 모습이 아니라고 수군거림을 받던 이들을 많이 보았다. 사랑한다 생각해본 적 없던 이들이었는데 그 죽음에 마음이, 몸이, 시리듯 아팠다. 그들의 죽음을 오래 숙고한 끝에 생각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하지 않기 위해서는 삶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고 긍정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 얼마든지 "코르사주"를 벗어 던질 자유가 필요할 것이라고.
그래,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 영원히 아름답기를 빕니다"는 인사를 들으며 정작 본인은 코르셋에 짓눌려 기절하던 엘리자베트 황후를 보고 한국의 여자 아이돌을, 또 그 영향을 받는 수많은 여자 아이들을 떠올렸다.
더없이 알려진 얼굴을 말하기는 쉬워 보인다
실존 인물 엘리자베트 황후의 삶은 어떻게 보면 여자 아이돌의 삶과 닮은 면이 있다. 당대에 가장 사랑받는 '미녀' 황후였고, '씨시'라는 애칭이 지금까지도 널리널리 전해져 온다.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이역만리 타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고, 그 얼굴은 지금까지도 관광 상품 한가운데 앉아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사랑받는 존재구나 하고 넘기기엔 엘리자베트의 일상이 편치 않았다. 머리카락 무게만 1킬로그램에 달할 만큼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고,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식단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프랑스어로는 코르사주 영어로는 코르셋이라 불리는 기괴한 장치를 허리에 대고 있는 힘껏 조여 신체를 압박해야 했다. "가짜 가짜 진심 없는 가짜"들에 둘러싸여 보낸 세월.
그 중에서도 영화 <코르사주>가 그리는 엘리자베트 황후의 순간은 마흔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한창 나이지만, 당대 유럽에서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생이 저물어갈 날이 가까워지는 나이였다. 세간에는 자신을 운명적으로 사랑했다고 알려진 남편조차 그저 '얼굴'이 되기를 종용해 오는 세상에서 엘리자베트는 서서히 쇠해 가는 젊음, 그리고 거기 따라붙을 세간의 말들을 마주해야 한다.
그가 행해온 '철저한 자기 관리 노력'을 언급하는 문장들은 모두 기묘한 감정을 준다. 꼭 누군가의 기행을 수군거리는 말처럼 들린달까. 묘하게 그의 추락을 기대하고, 그의 나이 듦을 고소해 하는 듯 보인다면 착각일까. 코르사주를 너무 조이다가 쓰러지기까지 했대. 화장품에 엄청 집착했대. 머리 스타일에 자부심이 대단해서 머리카락 무게만 1킬로그램에 달하도록 길렀대. 그런데 글쎄 나이가 들수록 초상화 속 자기 얼굴을 보기 싫어해서 나중에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지 뭐야. 어머나.
문장 뒤에서 어쩐지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세상은 여성에게 미를 강요하지만, 여성이 미를 향해 노력하는 순간 그 노력을 폄하한다. 세상이 강요하는 미의 전형도 정해져 있다. 살이 찌면 쪘다고 빠지면 빠졌다고, 성형을 했다고, 무표정했다고... 너무나도 많은 외면과 태도의 검열 조건을 통과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름다움이고, 그렇게 어렵사리 인정받은 아름다움은 너무나 한시적이다. 당대에 가장 사랑받는, 존재 자체로 센세이션이었던 연예인들에게 어떤 악질 루머가 따라붙는지, 작은 행동 하나에도 죽일 듯 달려드는 말은 또 얼마나 많은지 보라. 알려진 얼굴에 대해 말하기는 참 쉽다.
'알려진 얼굴' 뒤에도 사람 있어요
실존 인물을 활용한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결말이 거의 정해져 있다시피 하고, 심지어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는데, 아예 제목부터 코르사주인 영화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엘리자베트라는 캐릭터의 주체성을 살릴 것인가 궁금했다. 바로 그 질문에 이 영화가 답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로웠다.
우선 이 영화는 엘리자베트 황후의 "알려진 얼굴" 뒤를 더듬는다. 물론 그가 1킬로그램에 달하는 머리를 고슬고슬 유지한 것도, 저체중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다한 것도 사실이다. 영화에도 끊임없이 코르사주를 조이고 머리를 다듬는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영화는 '외면'의 노력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황제보다 강하다고 상호 알고 있었을 정도로 훌륭했던 그의 펜싱 실력, 방에 링을 설치해 둘 정도로 '홈트'에 열성이었던 그의 자세, 시어머니의 '극성'에 반해 '외부 세계'로 데리고 나갔던 딸을 잃은 후 그가 느낀 고통과 그 이후의 자식들에 대해 느낀 애정, 평생 느낀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병동을 강화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는 점... 같은 "사실적" 요소들을 충분히 녹여 내면서도, "사실적" 기록에 기술되지 못한 그의 판단과 생각을 상상력으로, 그러나 충분한 설득력을 포함한 상상력으로 담아낸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온전히 전기 영화라 보기 어려움에도, 그 어떤 전기 영화보다 그를 가까이 느끼게 한다. 코르사주를 "조금 더!" 조이면서 그가 바라봐야 했던 현실을, 그 현실에서 그가 취해야 했던 태도를. 그러니 그를 사랑했던 이들이 보기에는 어쩌면 전기 영화보다 더 사실을 품고 있다 여겨질 것이다. 그의 코르사주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태도 또한 묘하게 현실적이다. 1킬로그램의 머리카락이 누군가에게는 '왜 저렇게까지 기르는 걸까' 의아한 것인 한편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역작이 되는 것처럼.
언젠가 시대를 등져야만 했던 어떤 아름다웠던,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추대되고 내쳐졌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타인의 기록으로 담긴다면 나 또한 이 점을 가장 주목해서 볼 것이다. 그를 둘러싼 상승과 하락이 아닌, 오롯이 그의 발걸음과 그의 마음이 잘 담겨있는가. 바로 그 지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어떤 전기영화보다 그 마음을 잘 담아냈으니, 잃어버린 어떤 여자들을 떠올리면 고마울 정도로 소중한 작품이었다.
얼굴 뒤의 얼굴을 본다면
사람마다 어울리는 삶의 양태가 제각기 다른 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그게 허용되지 않는 자리에서 종종 비극이 태동한다. 영화 속 엘리자베트는 가면 위에 가면을 덧써야 하는 자리에 앉아서도 자기 삶의 양태를 꿋꿋하게 지켜 나간다. 코르사주를 조이면서도, 머리를 기르면서도. 펜싱을 하고 말을 타고 사촌과 친하게 지내고, 비웃음만 사던 활동사진을 언젠가 사랑받을 거라며 긍정하고. 과거에 매이지 않고 현재를 딛고 미래를 긍정하는 인물은 당대 여성에게 기대되는 인물상이 아니었다.
대신 당대 여성에게 기대되었던 "코르사주"는 이 영화의 공기에 묵직하게 담겨 압박감으로 전해져 온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옥죄었는가. 과연 오늘 이 영화를 보는 21세기의 여자들은 그 코르셋에서 자유로운가. 너무 과하게 익숙해진 나머지 가끔은 자신조차 미소에 감춰둔 얼굴 뒤의 얼굴이 없는가.
얼굴 뒤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아름다운 초상화로만 존재하던 엘리자베트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계단을 오르는 엘리자베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나풀나풀 춤을 추는 엘리자베트까지. 다 보고 나면 이 영화는 새로운 초상 정도가 아니라 초상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온 수준의 존재감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영원한 아름다움을 비는 말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그 말이 축복이 아니어도 되는 세상에서 각자의 양태대로 행복한 세상이 오길. 그 날까지 이런 영화는 계속 나와야 할 것이다. 자유로워야 했고 자유롭고자 했으나 그렇지 못했던 그 모든 위대했던 여자들을 위하여.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2022년 12월 21일 오늘! 개봉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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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근데 황정민이 전두환이야?"
<서울의 봄>을 보고 나오던 길.
화장실 앞에서 친구로 보이는 세 사람이 떠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심히 지나가던 내 귀에 흥미로운 문장이 꽂혔다.
A: 야 근데 황정민이 전두환이야?
A의 말에 B와 C는 의아한 기색이었다.
B: 엥?
C: 무슨 소리야?
A는 B와 C의 반응에 자못 당황한 듯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A: 아니 그 사살 당한 사람이 전두환 아냐?
B, C: 뭔 소리야~!
(나: 저게 진짜 뭔 소리여)
곁눈질로 보니 A가 B와 C의 반응에 놀라 굳어버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자리에 멈춰서 더 듣고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대화였지만, 갑자기 멈추면 이상한 낌새를 느낄까봐 어쩔 수 없이 화장실로 갔다. 나와보니 세 사람은 사라져있었다.
대체 A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영화가 상영된 것이란 말인가…….
전두환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왜 이 영화를 보러 온 것이며…….
그보다 전두환을 왜 모르는 거지……?
<서울의 봄>을 타란티노 영화로 만들어버리다니.
무수한 궁금증만 남은 <서울의 봄> 이야기.
흥미롭게도 <서울의 봄>을 보고 나서 타란티노를 언급하는 글을 하나 보았다. 이를테면 아래의 글.
[백승찬의 우회도로]타란티노라면 전두광을 어떻게 했을까
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32/0003264309?date=20231130
그런데 <서울의 봄>은 전두광이 체포되거나 죽으면 상당히 시시한 이야기가 됐을 것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 자체가 피카레스크극이므로, 마지막에 악이 승리하지 않으면 김 빠지는 결말에 불과하다. 전두광이 국무총리 공관에서 체포 당할 뻔하는 서스펜스 장면이 허구라는 걸 생각하면, 위 기사 같은 반응을 영화가 유도한 건 맞지만서도. 차라리 <26년> 영화화 버전이나 <헌트>에서 '그 사람'을 잡는 게 더 실현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이것도 시시한 결말이겠지만).
생각해보면 <바스터즈>에서 히틀러 암살이 가능했던 이유도 어느 정도는 '2차 세계 대전'(특히 나치)이라는 소재가 페티쉬화 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운성이 인스타에 올린 아래 글에 따르면, 5공 시절도 이렇게 페티쉬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인데…….
5공 시절이 '데이터베이스 소비' 단계에 접어들었는지 아닌지를 떠나서, 아즈마 히로키가 도입한 비평 개념과 도구 자체가 이제는 일본 서브컬쳐 대상으로도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유념해야겠다.
문제는 아즈마 히로키 이후 세대 서브컬쳐 비평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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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뇌와 번민, 요괴로 재탄생하다
삶에서 고민이나 걱정거리는 항상 찾아온다. 평생을 살면서 이런 고민들이 없이 살아가는 시간은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은 그 무수한 고민들의 해답을 찾지 못해 우울하거나 절망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 고민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삶의 방향성을 찾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쉽지 않다. 불교에는 번뇌(煩惱)라는 말이 있다.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뜻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주를 비롯해 발생하는 자신의 마음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 번뇌들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은 상태가 곧 열반의 경지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모든 인간은 마음속에 찾아오는 다양한 번뇌를 각자의 방법으로 억누르거나 조절해가며 살아간다. 이것이 잘 조절되지 않거나 억눌러지지 않으면 그것은 번민(煩悶)이 된다. 마음이 답답해진다는 의미의 번민은 열반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속을 가득 채워 괴로움을 만든다. 어쩌면 과거의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번뇌를 해결하지 못해 번민이 가득해 더욱 우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엄청난 발전을 이룬 지금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마음의 갈등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번뇌와 번민에 대한 영화 <제8일의 밤>
영화 <제8일의 밤>은 번뇌와 번민에 대한 영화다. 불교의 개념을 가지고 와서 두 단어를 어떤 기이한 존재로 형상화했다. 붉은 눈과 검은 눈을 일종의 요괴의 눈으로 설정하고 과거 부처가 별도의 장소에 각각을 봉인하여 묻어버렸는데 현재에 그것의 봉인이 풀려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봉인이 풀린 붉은 눈은 검은 눈을 찾기 위해 사람을 징검다리 삼아 조금씩 검은 눈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면서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의 맨 첫 장면부터 산스크리트어로 설명되는 요괴의 봉인 과정은 꽤 흥미롭다. 마치 불교 삽화처럼 구성된 애니메이션이 현지어와 함께 설명되며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만든다.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묵언 수행 중인 스님으로 등장하는 청석(남다름)이다. 등장인물 중 가장 마음의 짐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며 순수해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큰 틀에서 보면 그가 요괴의 두 눈이 다시 만나는 것을 돕기도 하고 또 그 반대로 막기도 하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꽤 중요한 인물이다. 그리고 과거 스님이었으나 지금은 평범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인 진수(이성민)는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다.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번민하는 인물인데 그 과거는 청석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에서 진수가 가진 번민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지는 요괴와의 싸움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 외에도 형사 호태(박해준)와 후배 형사 동진(김동영) 그리고 신비한 인물 애란(김유정)이 등장해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 애쓴다. 주요 등장인물 중 진수와 호태는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마음 한구 석에 큰 번민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둡고 심각하다. 요괴에게 희생당한 인물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쫓아가게 되는데, 진수는 그 이유와 막는 방법을 알고 요괴의 흔적을 따라가는 반면 호태는 이면에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모른 채 그 길을 따라가게 된다. 동진과 애란의 경우, 요괴와 연관성 있는 인물로 그들이 요괴가 지나가는 징검다리가 되는지 여부가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번민으로 가득 차 있는 인물 진수
관객의 입장에서는 사실 진수의 시선과 입장을 주로 따라가게 되기 때문에 그가 가지고 있는 태도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영화 초반 진수와 청석이 만났을 때는 거의 대화가 없다. 청석은 묵언 수행 중이며, 진수는 상대방과 별로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석이 자신이 생활하던 절에서 봉인된 검은 눈을 들고 내려온 후, 자신의 스승과 함께 생활했던 진수를 만나게 되는데 그 어느 순간에 청석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2년 넘게 하고 있던 묵언 수행이 중단된 이후 두 인물의 대화가 많아지고 교류가 시작된다. 그런 게 이렇게 대화가 많아진 이후 청석을 바라보는 진수의 눈빛은 더 큰 번민에 휩싸이는 듯 보인다.
결국 영화가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진수와 청석의 관계는 복잡해진다.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인물은 진수는 자신과 연관된 청석을 지켜야 하지만 그에 대한 분노가 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두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것을 영화는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이 영화에서는 어떤 영적인 속삭임을 통해서 전달되거나, 진수의 망설임과 표정으로 드러난다. 아마도 영화에서 가장 좋은 지점을 뽑으라면 진수와 청석의 애매한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들일 것이다.
영화가 가진 번뇌와 번민의 형상화는 꽤 독특하고 괜찮은 아이디어다. 그것을 실체화하고 살아 움직이게 하면서 불교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퇴마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영화 안에 퇴마사라고 불만한 인물은 없다. 진수가 그에 가장 가깝지만 완성된 요괴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요괴의 약점이 전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중간에 그에 대항하거나 싸우는 장면은 너무 일방적이어서 오히려 맥이 빠진다. 중간중간 요괴가 사람들을 옮겨 다니면서 요괴가 조종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기괴한 모습은 공포스럽지만 그 이외의 장면에서는 그런 긴장감이 연결되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호태와 애란의 경우, 영화가 꽤 공들여 이야기 속에 등장시키긴 하지만 결국 그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영화는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영화는 추진력을 잃고 자꾸 뒷걸음친다. 이 두 인물은 아마도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반전을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고, 또 근본적으로 번뇌와 번민의 부득이한 희생자일 텐데 그들이 영화 말미에 하는 역할은 미미할 뿐이다. 결국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진수와 청석이며, 특히 진수가 가진 번뇌와 번민을 그가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느냐가 영화의 결말과 연결된다. 영화는 번뇌와 번민을 요괴로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그 요괴는 진수의 마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밀어붙이지만 아쉬움이 많은 영화
영화 <제8일의 밤>은 사실 1일부터 8일까지의 각 날짜가 중요하지는 않다. 대부분은 8일 밤에 벌어지기 때문에 그 전의 날들은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요괴가 이동하는 단계가 있지만 그것이 마지막 날짜를 제외하고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1일에서 7일까지 벌어지는 일들을 볼 때 이야기가 많이 늘어진다. 그래서 8일에 벌어지는 일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쉽지 않다. 8일 밤에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들에서는 꽤 긴장감 있는 상황들이 이어지지만 요괴들을 상징하는 검은 연기나 그래픽들이 다소 어색해 보여 아쉬움을 남긴다.
이 영화의 감독인 김태형 감독은 <제8일의 밤>으로 각본과 연출 데뷔를 했다. 첫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최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주연 배우 이성민은 그가 가진 특유의 어두움과 과묵함으로 진수 역을 잘 소화하고 있다. 또한 창석 역을 맡은 매부 남다름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순수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어른 스님의 연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에서 단독으로 공개된 <제8일의 밤>은 극장보다는 집에서 불을 끄고 관람할 때 더욱 괴기스러움이 전달될 작은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제8일의 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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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주 차 개봉작 추천,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북미에서 57일간 박스오피스 10위권을 꾸준히 자치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국내 개봉부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에놀라 홈즈의 2번째 시리즈인 <에놀라 홈즈 2>의 공개까지!
그럼 11월 첫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더 자세히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극장 개봉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25분
감독: 올리비아 뉴먼
출연: 데이지 에드가 존스, 테일러 존 스미스 등
개봉: 2022.11.02
배급: 소니픽처스코리아줄거리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된 카야가 자신이 자라온 공간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감성 드라마
관전 포인트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성장과 치유를 담은 웰메이드 영화로
1억 불에 가까운 오프닝 수익을 달성했으며, 로튼토마토 관객 지수 96%를 달성하였다.
고속도로 가족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29분
감독: 이상문
출연: 라미란, 정일우, 김슬기 등
개봉: 2022.11.02
배급: CJ CGV줄거리
고속도로 휴게소를 따라 캠핑 같은 노숙생활을 하는 한 가족과 우연히 그들의 손을 잡게 된
부부의 만남과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관전 포인트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와 함께 흥미로운 전개와 강한 흡인력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상영 직후 많은 호평을 받으며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중 하나로 떠올랐다.
알카라스의 여름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이탈리아, 스페인 | 120분
감독: 카를라 시몬배우: 조르디 푸홀 돌체트, 안나 오틴 등
개봉: 2022.11.03
배급: 영화사 진진줄거리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 위치한 작은 마을 알카라스에서 3대에 걸쳐 복숭아 농사를 짓는
솔레 가족의 찬란한 여름을 그린 영화
관전 포인트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이견 없이 황금곰상 수상이 확정될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 받은 <알카라스의 여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식 초청되었으며,
3번의 상영 모두 매진을 기록하기까지 하였다.
탑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98분
감독: 홍상수배우: 권해효, 이혜영, 송선미 등
개봉: 2022.11.03
배급: (주)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줄거리
중년의 영화감독이 오랜만에 만난 그의 딸과 함께
인테리어 디자인하는 여자의 건물을 찾는다.
딸이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해서 그녀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서다.
디자이너는 직접 고친 그 4층 건물의 소유주이고,
자기가 어떻게 고쳤는지 보여주고 싶어 한 층씩 두 사람을 데리고 올라간다.
각층의 방을 다 열고 들어가 보는 세 사람.
그렇게 시작한 영화는 그리고 나서, 이제 다시 밑에서부터 한 층씩 올라온다.
관전 포인트
홍상수 감독의 28번째 작품으로 한 건물을 주 무대로 촬영된 흑백 영화이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 중 가장 긴 롱테이크 씬을 볼 수 있으며, 그 안에 배우들의 열연과 홍상수 감독의 섬세한
연출을 볼 수 있다.
분노의 추격자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96분
감독: 브라이언 굿맨배우: 제라드 버틀러, 제이미 알렉산더 등
개봉: 2022.11.03
배급: 와이드 릴리즈(주)줄거리
평소와 다를 바 없던 귀갓길, ‘윌’이 주유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 ‘리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사소한 실마리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한 ‘리사’
‘윌’이 그녀를 찾기 위해 분투할수록
드러나는 증거들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관전 포인트
영화 <오페라의 유령> <300> <드래곤 길들이기> 등에서 주연을 맡았던 제라드 버틀러가
영화 <분노의 추격자>에서 주연을 맡았다. 킬링타임용으로 좋은 영화이다.
OTT 공개 영화
에놀라 홈즈 2
ⓒ 넷플릭스
개요: 모험 | 영국 | 129분
감독: 해리 브래드비어
출연: 밀리 바비 브라운, 헨리 카빌, 헬란 본햄 카터 등
공개: 2022.11.04
스트리밍: 넷플릭스줄거리
날카로운 추리력과 당찬 의지로 가득한 셜록 홈즈의 막내 여동생 에놀라가 탐정 사무소를 열고
맡게 된 첫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 가득한 모험을 그린 넷플릭스 영화
관전 포인트
1편 공개 당시 공개 후 28일간 7,600만 가구에서 시청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에놀라 홈즈의 2편이 공개된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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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 영화리뷰? 구타로 숨진 해병대 군인의 억울한 죽음ㅣ결말포함 영화리뷰ㅣ어퓨굿멘ㅣ방구석1열
? [결말포함/영화리뷰] "어퓨굿맨"(A Few Good Men, 1992)
"살아있을 때 봐야하는 영화들" : 명품영화 고품격 영화리뷰 시리즈각본: 아론 소킨
감독: 롭 라이너
출연: 톰 크루즈, 잭 니콜슨, 데미 무어, 케빈 베이컨#결말포함 #영화리뷰 #결말포함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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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토토리! 우리 둘만의 여름> 티저 예고편
아름다운 대자연으로 캠핑 여행을 떠난 ‘베가’와 ‘빌리’.
5살 나이에 딱 걸맞게 모든 게 신나기만 한 ‘빌리’와 달리,
9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베가’는
병원에 있는 엄마의 특명을 받아 아빠와 동생 챙기기에 바쁘다.
그런데 아뿔싸! 아빠가 강가 바위 틈으로 추락했다!
아빠를 구하기 위해 왔던 길을 거슬러 가보지만,
곧 드넓은 숲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모든걸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떠오른 엄마의 한마디.
“포기할 거야? 아니면 슈퍼히어로가 될 거야?”
내 안의 슈퍼파워를 깨우는 마법의 주문!
다 함께 외쳐봐! 토~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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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 더 하이츠>
지금까지 이런 뮤지컬 영화는 없었다 ??
[스텝 업] [나우 유 씨 미] 감독의 신작 #인더하이츠 #공식예고편 공개!
꿈을 향한 완벽한 리듬에 몸을 맡기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