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11-04 13:31:06
왁킹과 농악의 이질적 결합으로 혐오를 비틀다
영화 〈공작새〉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포즈〉는 북미 퀴어 하위문화의 유산인 왁킹 댄스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한편 트랜스젠더이자 드래그 아티스트인 모지민의 예술과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에는 그녀가 발레복을 입고 고향 집 경운기 위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공작새〉를 보며 이 두 작품이 떠오른 이유가 있다. 〈공작새〉의 주인공 신명은 트랜스젠더 왁킹 댄서다. 동시에 호창농악(고창농악)과 굿을 계승하는 집안의 ‘장손’이다. 퀴어 문화와 전통적인 것의 이질적 조합. 〈공작새〉는 자칫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일을 너끈히, 그리고 아름답게 해낸다.
신명은 간절하다. 1천만 원 상금이 걸린 왁킹 댄스 대회 결승을 앞두고 아버지의 부고 전화가 오지만 그녀는 신덕길(아버지)의 죽음에는 별 관심이 없다. 절연한 지 오래인, 이제는 남인 남자의 죽음보다 대회 상금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수술하지 못한다면 신명은 군대에 가야만 한다. 그러나 그녀는 패배한다. “너만의 컬러가 없어”라는 심사평과 함께. 신명은 수술비를 마련할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때마침 신덕길의 제자인 우기가 신명에게 말한다. 신명이 신덕길의 추모 굿을 하면 유산을 물려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신명은 어쩔 수 없이 죽을 만큼 떠나고 싶었던 고향으로 돌아와, 마찬가지로 죽을 만큼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과 마주한다. 트랜스젠더 왁킹 댄서가 작고한 호창농악 전수자이자 절연한 혈연의 추모 굿을 해야만 하는 기묘한 상황이다.
영화에는 신명이 왁킹 댄스를 추는 장면과 굿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서로 전혀 어우러지지 않을 것 같던 두 장르의 예술이 여러 사건과 신명의 몸을 경유해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든다. 마침내 엔딩에서 신명이 왁킹과 굿을 결합한 추모 굿을 할 때, 지금껏 그녀가 예술가로서 결여한 ‘컬러’와 함께 전통의 색다른 계승이 완성된다.
〈공작새〉는 개성 있는 예술가의 탄생과 변주를 곁들인 전통의 계승 과정을 짜임새 있게 채운다. 핵심 서사는 모두가 인정하는 호창농악의 후계자가 성별 정체성 문제로 완전한 외부자가 된 후, 다시금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트랜스젠더를 향한 비난은 대개 ‘타고난’ 성별을 거부한다는 데에 대한 사회문화적 거부감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 오래된 혐오의 문법을 비튼다. 신명이 호창농악 전수자라는 ‘타고난’ 운명을 트랜스젠더로서 되찾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신명의 할아버지이자 덕길의 아버지가 신명과 같은 존재였다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여성스러운’ 행동으로 ‘몸을 팔며’ 예술을 전수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밑에서 손가락질받으며 성장한 덕길은 자기 아버지와 같은 자식을 보면서 갈등하고 만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명이 ‘여자처럼’ 굴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받을 상처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는 혐오의 논리와 더불어 감정마저 비틀어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게끔 한다.
영화 중반부, 신명이 무릎 꿇고 엎드린 채 냇가에 얼굴을 완전히 파묻고 있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신명에게는 오히려 물속이 숨쉬기 편안하다는 듯 오래도록 이어진다. 어쩌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 성별 이분법이 당연한 세계, 모두가 자신에게 적대적인 세계에서 신명이 숨 쉴 공간은 없다. 때문에 타인이 숨 쉴 수 없는 공간에서는 역설적으로 신명만이 호흡할 수 있다. 그런 세상에서도 신명은 떳떳하게 자기 자신을 지키며 살아간다. 사촌 동생이 성소수자인 것을 감춰주기 위해 억울한 상황에서 누명을 쓰는 신명에게 사람들은 ‘부끄럽지도 않느냐!’며 비난한다. 하지만 정작 신명에게 부끄러운 것은 남들의 손가락질이 아니라 자신이 고통스레 경험한 적대적 세계에 사촌 동생을 던져버리는 일이다. 타인은 신명의 것이라 오인된 행위에 손가락질하지만, 신명은 근거 없이 비난받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공작새〉는 한 예술가가 자기 개성을 찾아나가는 이야기인 동시에 소수자의 윤리가 품은 가능성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얼핏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훌륭하게 엮어낸 영화의 울림은 신명이 추모 굿을 하는 강렬한 엔딩신에서 덕길의 의지를 담아 활활 불타오르는 신성한 나무를 닮아 뜨겁고 화려하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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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10년 만에 마주한 자유가 막막하다
8★/10★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19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 한 아시아 남성이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된다. 절도죄로 보호감찰 중이던 그는 집에서 친구에게 빌린 총을 실수로 발사해 벽에 흔적을 남겼는데, 그 흔적이 살인 사건에 사용된 총의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 살인죄 기소의 결정적인 근거였다. 그의 이름은 이철수. 1952년 한국에서 태어난 이철수는 그를 가족에 맡기고 미국으로 간 어머니의 권유로 미국에 온 한국인 이민자였다. 그의 나이 열두 살 때였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이철수는 수감된 지 10여 년 만에 석방되었다. 그의 수감이 미국 내 한국 이민자, 나아가 아시아 이민자의 열악한 현실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부상한 결과였다. 이철수가 체포되던 때부터 그가 진범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백인으로 구성된 시 당국자와 경찰은 사건의 ‘빠른 해결’을 원했다. 이철수의 범죄 이력과 사건 당시의 행적은 그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검찰이 남긴 기록에서 이철수는 내내 ‘중국인’으로 지칭되었다. 요컨대 이 사건은 아시아인 거주지에서, 아시아인들끼리 벌인 사건으로 성급히 마무리되었다.
한국인 이민자이자 주류 언론에서 일하는 한 기자가 이철수 사건에 주목했다. 사건 기록을 살펴본 기자는 이철수에게 죄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의 기사는 대서특필되었고, 이후 여러 활동가가 이 사건에 달려들었다. 이철수 사건은 곧 아시아인들이 미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상징하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철수는 10년 만에 자유를 되찾았다.
그러나 이철수는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프리 철수 리’, 즉 ‘이철수를 석방하라’는 영화의 요구는 그의 석방으로부터 다시 한번 시작된다. 이철수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는 여기저기를 다니며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이철수는 다시 현실에 발을 디뎌야 했다. 그러나 이철수는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이 막막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는 자신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도운 사람들의 헌신적 노력을 배신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는 사람들이 실망할까 걱정했고, 자신에게 쏠린 기대에 큰 압박을 느꼈다. 그렇게 이철수는 ‘두 번째 감옥’에 갇혔다.
이철수는 한국에서는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고, 미국에 와서는 종종 어머니에게 폭행당했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었고, 언젠가부터 도둑질을 시작했다. 갱단에 소속된 적은 없었다. 그가 차이나타운의 한국인, 즉 외톨이였기 때문이다.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종 별로 나뉜 수감자 무리 한복판에서 이철수는 홀로 생존해야만 했다. 감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건드리는 갱단 구성원을 살해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아시아인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는 남들의 기대에 맞춰 뒤늦게나마 ‘좋은 삶’을 살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전화 안내원, 컴퓨터 세일즈맨, 건물 관리인 등의 일을 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결국 마약에 손을 댔고, 마약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을 도운 사람들을 찾아가 난폭하게 굴었다. 방화 사건에 휘말려 18개월간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를 짓누르는 두 번째 감옥은 첫 번째 감옥과 달리 타인의 도움과 연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듯 보였다. 이철수는 결국 2014년 병환 치료를 거부하고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철수의 삶은 우리를 고양시켰다가 침잠케 한다. 그의 억울한 옥살이가 민권 운동의 결실로 마무리될 때, 우리는 진실과 연대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삶’이라는 기대에 갇힌 이철수의 삶은 앞서 관객을 감동케 한 것들이 동시에 얼마나 허약한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혹은 우리가 상상하는 연대의 깊이와 내용을 상식적인 차원 이상으로 심화시켜야 함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이철수가 ‘두 번째 감옥’에서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사회에 요청할 일은 무엇이었을지 질문하는 일 말이다. 쉽지 않은 질문이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하고, 그 삶을 가능케 하는 안전망의 내용을 현실에 밀착해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감옥의 비극을 방지하기 위한 긴 노력과 여기에 담긴 가치마저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취급되는 시대에 두 번째 감옥의 비극을 막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질 즈음, 자신의 삶 궤적이 켜켜이 새겨진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깃든 그의 얼굴은 우리를 이 불가능한 질문에 붙들어 놓는다. 이철수의 얼굴은 그가 감당하지 못한 질문이 정말 본질적으로 답변 불가능한 것이냐고 묻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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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주 최신개봉영화
11월의 마지막!
11월 5주차에는 어떤 영화가 개봉을 하는지 한번 볼까요?
11월 4주 개봉영화 5편!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 Ghostbusters: Afterlife , 2020
고스트 버스터의 새로운 탄생!
영화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작은 마을에 정착한 한 가족이 전설의 ‘고스트버스터즈’와 얽힌 숨은 비밀을 알게 되고
세계를 뒤흔드는 고스트들에 맞서는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액션 어드벤처입니다.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1980년대를 휩쓴 오리지널 "고스트버스터즈"의 매력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 되었습니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감독 이반 라이트맨 감독의 아들이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의 연출을 맡은 제이슨 라이트맨 감독인데요
오리지널의 코믹하면서도 오싹하고, 긴장감 넘치는 매력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뉴 고스트버스터즈’ 들을 통해 새로운 생동감을 불어넣었다”고 기획의도를 전했습니다.
아들이 연출하고 아버지가 제작한 이전에 탄생한 고스트버스터에서 신선함과 창의성으로
뉴 고스트 버스터즈를 탄생시킨
첫번째 추천영화 "고스트 바스터즈 라이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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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나잇 인 소호 Last Night in Soho , 2021
새로운 호러 명작의 탄생!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매일 밤 꿈에서 과거 런던의 매혹적인 가수 '샌디'를 지켜보던 '엘리'가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면서 펼쳐지는 새로운 스타일의 호러 영화입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토론토, 부산까지 전 세계 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된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음악, 폭발적인 에너지에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이 줄을 이었습니다.
특히 천재 감독 에드가 라이트와 '23 아이덴티티', 넷플릭스 '퀸스 갬빗'의 안야 테일러 조이의 만남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부터 반드시 안야 테일러 조이와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마침내 천재 감독과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것이죠
1960년대와 현재의 두 시대를 완벽하게 담아내 소호 거리와 새로운 호러 명작의 탄생
두번째 추천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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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데타 Benedetta , 2021
가장 성스러운 성스캔들
영화 "베네데타"는 주님의 신부라고 주장해 산골 소녀에서 수녀원 원장까지 되었고
한 여인을 사랑해모든 것을 잃은 17세기 신비주의 레즈비언 수녀 베네데타의 충격적 실화를 다루며
가장 성스러운 성역의 공간에서 일어난 세기의 성 스캔들을 담아낸 영화 입니다.
‘베네데타’는 역사서 '수녀원 스캔들-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을 원작으로
베네데타의 놀라운 이야기를 과감하게 표현했는데요
주인공 비르지니 에피라와 신예 다프네 파타키아, 루이 샤빌렛, 그리고 명배우 샬롯 램플링까지
세대별 대표 배우들이 각기 다른 매력을 스크린에서 볼수 있습니다.
‘엘르’와 ‘원초적 본능’, ‘쇼걸’ 등 전 세계에 논란과 이슈를 만든 폴 버호벤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또 한번의 역작!
세번째 추천영화 "베네데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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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카인드 The Protege , 2021
존 윅을 잇는 원히트 킬링 액션
영화 "킬링 카인드"는 암살자 ‘무디’에 의해 킬러로 키워진 ‘안나’가 마지막 남은 가족이자 친구인 ‘무디’의 죽음을 목격한 후
친절하고 잔인하게 되갚아 주는 복수를 그린 원히트 킬링 액션 무비입니다.
'마스크 오브 조로'와 '007 카지노 로얄'등을 통해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은 할리우드 대표 액션 감독 마틴 캠벨이이 메가폰을 잡았고
마이클 키튼, 매기 큐, 사무엘 L. 잭슨의 활약으로 "킬링카인드"가 탄생을 했습니다
시나리오 속 배경으로 설정된 유럽과 동남아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글로벌 로케이션을 진행했으며.
사건의 발단이자 복수의 주 무대가 되는 베트남, ‘안나’의 안식처 영국, 그리고 핏빛 복수의 종지부를 찍을 루마니아까지
세계 각지를 배경으로 스크린에 풍부하게 담길 예정입니다.
존 윅을 잇는 여성 원톱 액션 무비!
네번째 추천영화 "킬링 카인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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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일이 Chun Tae-il , 2020
평화시장, 부당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뜨겁게 싸웠던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
고(故) 전태일 열사는 그가 22살이 된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준수’ 등을 외치며 자신의 몸을 태워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세상에 알린 상징적 인물입니다.
2011년, 22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흥행작 '마당을 나온 암탉'을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한 명필름이
전태일 재단, 그리고 홍준표 감독의 스튜디오루머와 협력하여 두 번째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선보입니다.
故 조영래 변호사가 저술한 '전태일 평', 1995년 개봉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최호철 작가의 만화 '태일이' 등
전태일을 다룬 영화, 소설, 만화 등이 있지만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는 '태일이'가 최초입니다
배우 ‘장동윤’부터 염혜란, 진선규, 박철민, 권해효, 태인호 등 믿고 보는 실력파 배우들까지!
최고의 목소리 캐스팅!
다섯번째 추천영화 "태일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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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2021)
* 본 리뷰는 <마이 네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2021)
감독: 앤디 서키스
출연: 톰 하디, 우디 해럴스, 나오미 해리스, 미셸 윌리엄스, 스테판 그레이엄 등
장르: 액션, SF
개봉일: 2021.10.13
러닝타임: 97분
베놈과 에디, 드디어 한몸이 되다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하고 '에디 브록(톰 하디)'의 몸 속에 기생하여 평화로운(?) 생활을 하던 '베놈'. '앤(미셸 윌리엄스)'의 결혼 소식을 듣고 심란해하던 에디를 위로해주려고 베놈은 나름대로 노력을 하지만, 그런 행동들이 에디의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킨다. 설상가상으로, 연쇄살인마 '캐서디(우디 해럴슨)'를 인터뷰 하던 도중 분노한 베놈이 그를 공격하게 되는데, 이 때 캐서디가 에디의 손을 물어 심비오트 조각을 흡수해버린다. 제대로 된 인터뷰에 실패한 에디는 베놈과 한바탕 싸우고, 베놈 역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나가버린다.
한편, 캐서디는 사형 집행 직전 '카니지'로 각성하게 되고, 교도소에서 대학살을 저지른 후 탈출한다. 그리고 헤어진 연인 '배리슨(나오미 해리스)'를 찾아가 구하고 두 사람은 각자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하객으로 삼아 결혼식을 올리려 한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잠시 갈라섰던 베놈과 에디는 비로소 한마음을 품게 되는데....
코미디적 요소만 발현될 뿐
<베놈>은 1편이 개봉하기 전부터 굉장히 기대하던 시리즈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많은 장면이 잘려나간 것 같은 편집과 뚝뚝 끊기는 줄거리, 불친절한 캐릭터의 빌드업 등으로 1편은 혹평이 가득했다. 혹평과는 별개로 '톰 하디'의 티켓 파워가 캐릭터 자체에 대한 궁금증과 영화의 오락성으로 인해 상업적인 흥행을 거뒀기에 무난히 2편이 나올 수는 있었는데, 따라서 1편의 단점들을 어떻게 극복했을지가 이번 영화를 감상하는 주요 쟁점이었다.
그러나 개선점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이번에도 러닝타임이 97분으로 굉장히 짧은 편인데, 쿠키영상과 엔딩크레딧을 제외하면 1시간 30분에 불과하다. <베놈2>의 메인 플롯은 1편 쿠키영상에서 예고했던 '카니지'의 등판과 빌런으로서의 빌드업, 그리고 카니지와 베놈의 대치일 터인데, 의외로 돋보이는 장면들은 베놈과 에디가 다투는 코믹한 장면들 뿐이다. 마치 두 인물의 갈등이 부부싸움인 것처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많아 종종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데, 아마 많은 관객이 <베놈>으로부터 기대한 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1편에서는 '베놈'을 처음 접했다는 이유로 그의 잔혹성과 무게감만큼은 분명하게 드러났는데, 2편에서는 한결 귀여움만 더해졌다. 마블과 소니 계열의 히어로 영화들 중에서도 어두움 면에서 손꼽히는 캐릭터인데, 연출 때문에 많이 변질된 감이 있다.
여전히 부족한 캐릭터 빌드업 능력
<베놈 1>에서 '베놈'이라는 캐릭터의 서사와 주인공으로서의 빌드업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는데, 이는 새로운 빌런 캐릭터를 구현하는데도 동일한 문제점으로 작용한다. 빌런 캐릭터인 '캐서디'의 흑화 원인을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설정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가 사형 집행을 앞둔 연쇄살인마가 되었다는 점에서 동정이나 공감을 느낄만한 여지를 없애버렸다.
무엇보다 '베놈'에게서 탄생한 심비오트 '카니지'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 부족한데, 가령 베놈의 대사에 의해 전해지는 '빨간 놈은 위험해' 같은 부분들이 원작 만화를 보지 못한 관객들에게는 굉장히 불친절한 요소로 작용한다. 아무래도 영상물 등급 판정을 낮게 받기 위해 여러 장면을 삭제하면서 개연성이 부족한 결과를 낳게 된 듯한데, 관객의 이해를 해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이 생겨버렸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부분을 놓친 느낌이다. 그리고... 중요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캐서디의 여자친구인 '배리슨'의 숙적으로 등장하는 형사 '패트릭 멀리건(스티븐 그레이엄)'에게 꽤나 중요한 복선을 깔아놓고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짚어주지를 않는다. 결국 영화관을 나온 후 해석영상이나 영화 유튜버들이 설명해주는 영상을 찾아봐야 해당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만들어놓았으니 그야말로 불친절이 극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남은 건 쿠키영상 뿐
그럼에도 <베놈2>를 봐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영화 본편보다 더욱 강한 임팩트를 남긴 쿠키 영상 때문. 바로 원작에서 대치 관계로 엮여 있는 마블의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이 쿠키 영상에 등장하며 역대 마블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렬한 결말을 남겼다. 이 때 똑같은 침대에서 아예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버린 '에디'의 모습을 통해 마블이 앞으로 그려나가고자 하는 '멀티버스'의 등장을 어느 정도 예고했는데 과연 <베놈> 후속작에 마블의 '스파이더맨'이 등장할 수 있는 것인지, 12월에 개봉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어떠한 내용으로 펼쳐질 것인지 여러 방면에서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즉, 쿠키영상이 없었더라면 본편의 값어치 전체가 떨어져 보일 수도 있었을만큼 쿠키영상이 전부였던 후속작이다. 쿠키 영상에 대해서는 해석에 대한 의견도 갈리고, 다양한 가정이 등장하고 있어 어찌 됐건 <베놈2>를 통해 앞으로의 시리즈에 대한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는데는 일부분 성공했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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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의 부활. 다시 한번 요동칠 준비를 마친 전반부
지옥 시즌2 (Hellbound 2, 2024)
뱀의 부활. 다시 한번 요동칠 준비를 마친 전반부
개봉일 : 2024.10.25. (NETFLIX 공개 예정)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공포, 스릴러, 미스터리
감독 : 연상호
출연 : 김현주, 김성철, 김신록, 임성재, 문소리, 문근영
개인적인 평점 : 3.5 / 5
*본 리뷰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지옥 시즌 2> 1-3회의 내용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지옥 시즌 1>은 지옥사자의 심판이라는 초자연적인 재해 앞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공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리즈였다. 20년 전 고지를 받은 정진수 회장은 자신이 느낀 절망, 두려움을 다른 이들에게도 그대로 선사하기 위해 재해와 공포를 엮은 거짓 교리를 전파하는 새진리회를 조직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이 두려움 앞에 바짝 엎드리고 순응하거나, 또는 저항하기도 하며 각자의 지옥을 살아간다.
시즌 1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지옥 시즌 2>는 앞서 쌓아둔 세계관에 누름돌을 올려 만든 더욱 밀도감 있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세상엔 어느 때보다 다양한 믿음과 종교 단체들이 넘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모두 공포가 팽배한 지옥을 살고 있다. 이런 불안한 세상 속에서 되살아난 정진수는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던 뱀처럼 간악한 혀를 뽐내며 다시 세력을 확보하려 한다. 그리고 정진수가 없는 사이에 세력을 늘린 화살촉,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새진리회. 이들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소도까지. 각자의 교리를 주장하는 여러 단체들이 동시에 충돌하기 시작하며 세상은 전에 없던 혼란으로 빠져든다.
1-3편만 감상한 시점이라 ‘지옥 시즌 2는 이렇다’라는 결론을 내리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이 시점에서도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거 칼을 갈고 나왔구나.’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특히 눈에 띄었던 건 김성철 배우의 설득력, 이전보다 커진 스케일과 액션이다.
앞서 누군가 연기했던 인물을 이어가야 한다는 큰 부담감을 지고 나온 김성철 배우는 초장부터 눈을 번뜩이며 극 전반에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내리찍는다. 그리고 연한 눈물 자국과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오묘한 설득력을 싣고는 천천히 극을 장악해간다. 김성철 배우의 연기를 보고도 그가 정진수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비교적 일상적인 공간들이 많이 등장했던 시즌 1에 비해 시즌 2는 화살촉 집회 현장, 소도의 새로운 본부 같은 비일상적이고 재밌는 공간들을 공개하며 세계관에 대한 상상력을 더욱 활짝 열어준다. 그리고 각 단체들이 세력을 키운 만큼 이들이 부딪히는 액션신 또한 이전보다 훨씬 본격적이고 역동적으로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연상호 감독의 최근작인 <기생수: 더 그레이>를 보며 액션 연출이 훅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지옥 시즌 2>에서도 그 느낌을 한 번 더 받았다. 액션이 주가 되는 시리즈는 아니라 큰 액션신을 반복해서 보여주진 않지만 시선을 끌기엔 충분한 정도다.
- 아래 내용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有
신의 영역에서 사람의 영역으로
다시 한번 판을 뒤집을 정진수의 부활시즌 1이 지옥사자의 심판이라는 신의 영역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면 시즌 2는 사람의 영역 안에서 신의 힘을 이용해 잇속을 챙기는 이들의 싸움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지옥사자의 심판’이라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누가 더 먼저 상대의 입을 막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는지. 이런 능력이 더 중요해진 세상이다. 각 단체들은 심판과 공포를 자기 입맛에 맞춰 해석하고 이용하며 새로운 교리를 주장한다. 송소현, 배영재의 죽음은 아름다운 부모의 희생이 아닌 신에게 몸을 내던진 속죄 행위로 해석되고 죽어 마땅했던 죄인은 단숨에 단체를 대표할 캐릭터로 세탁된다.
세상에 가득 찬 모순은 모두를 지옥으로 이끈다. 개인이 개인의 죄를 묻고 진실을 모르는 자가 진실을 찾았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올바른 길을 지키려던 단체인 소도 내부에서도 균열이 일어나고 정진수 회장을 뿌리로 둔 두 단체 새진리회, 화살촉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한다.
아비규환이 된 세상, 구불구불한 뱀 같은 산길의 끝에서 정진수가 부활한다. 화살촉에 빠진 아내가 죽은 후 소도의 일원이 된 천세형은 3달 동안 정진수를 기다리다 마침내 그를 마주한다. 부활 후 산길을 헤매던 정진수는 천세형의 차에서 나오는 헤드라이트 아래서 그의 절을 받는다. 마치 신성한 존재가 탄생한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 이때 천세형은 정진수를 속이기 위해 절을 했지만 전반부가 끝나갈 때쯤엔 정진수의 혀에 속아 진심으로 그를 자신의 신으로 받들게 된다.
전 시즌에서 유일하게 신과 동일한 위치에서 추앙받던 정진수가 부활했다는 건 이 평범한 사람들의 싸움판을 한 번에 뒤집을만한 사건이 생겼다는 뜻이다.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도 여유롭게 “어쩌면 지금이 이 세상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지.”라고 말하던 그의 머릿속에 어떤 계획이 들어있을지, 그의 계획이 앞으로의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기대된다.
과연 이 기대감을 충족시킬만한 설득력 있는 후반부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면 빵빵하게 들어간 바람을 훅 빼버리는 난장판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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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과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절망 속 이야기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초청받아 시사회 참석해 관람한 작품입니다.
<더 웨일> 포스터 [출처: 씨네랩 제공]
힘든 삶의 단편을 비추는 영화
영화 <더 웨일>은 소수의 등장인물과 주인공인 찰리의 집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영화이다.
그리고 찰리의 마지막 일주일을 하루씩 보여주는 영화의 흐름은 그만큼 주인공의 삶에 깊이 들어가도록 만든다.
주인공 찰리는 9년 전 결혼한 아내와 8살 딸을 둔 채로 동성 애인과 사랑에 빠져서 가족을 떠난 인물이다.
영화가 시작하는 시점에 동성 애인은 세상을 떠났고 찰리는 그 충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더 웨일>은 최근 연인을 떠나보내고 실의에 빠져서 초고도비만에 다다른 찰리의 삶을 보여준다.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 역시 모두 찰리와 다른 방식으로 힘들게 이어지고 있는 삶들이다.
고혈압으로 목숨이 위태롭던 순간 우연히 찰리의 집에 방문한 토마스는 종말론을 주장하는 이단 교회의 선교사이다. 그리고 찰리가 9년만에 다시 연락한 찰리의 딸 엘리는 학교에서 낙제점을 받기 직전이며 삐뚤어진 학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법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초고도비만의 동성애자, 눈치없는 종말론자, 반항적인 SNS 중독의 비행청소년.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인물들을 가장 평범한 사람들로 등장시킨다. 사별한 주인공, 선한 마음으로 도우려는 이웃, 아빠와 갈등을 겪고 있는 딸. 이들의 삶은 다른 이유로 힘들고 영화는 힘든 삶을 살아내면서 서로 얽혀있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더 웨일> 스틸 컷(찰리, 토마스, 엘리) [출처: 씨네랩 제공]
가장 좋은 해결책 솔직함
영화에서 주인공 찰리는 대학에서 에세이를 가르치는 강사이다. 원격으로 강의를 하는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 카메라가 고장난 척 검은 화면으로 이야기한다.
이후 찰리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딸에게 연락해서 자신이 모아둔 재산을 모두 줄테니 한번씩 들러서 에세이 쓰는 법을 배우라고 말하는데, 반항적인 딸에게 그가 제시하는 것은 딱 하나뿐이다. 솔직한 생각을 적을 것.
앞서 이야기 했던 인물들인 찰리, 토마스, 엘리는 모두 솔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찰리는 살이쪄서 거대해진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고, 토마스는 사실 교회에서 활동비를 훔쳐서 가출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엘리는 찰리에 대한 그리웠던 마음을 숨기고 있다.
영화는 이들이 숨기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드러내면서 그들을 솔직하게 만들고 그로인해 그들이 스스로 위안을 얻으며 스스로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가 현실적인 부분은 이들이 솔직함을 드러내는 계기가 자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찰리는 가르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매일 저녁 피자를 배달해주는 배달부에게도 절대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 배달부는 단골 손님인 찰리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하거나 걱정을 하는 등 꽤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다 어느날 평소처럼 우편함 안에 있는 돈으로 계산을 하고 배달부가 돌아갔을 거라 생각해 밖으로 나온 찰리는 아직 계단에서 기다리던 배달부를 마주한다.
제 몸을 가누기도 힘들만큼 거대한 몸집으로 피자들 들고 들어가는 찰리를 본 배달부의 표정은 마치 괴물을 본 것만 같다. 이전까지 호의적이던 배달부의 태도는 찰리의 겉모습을 보는 순간 혐오로 가득하다.
솔직하게 드러난 자신의 모습이 불러온 결과를 본 찰리는 분노에 차서 집안에 있는 음식을 마구잡이로 입에 우겨넣고 급격한 폭식에 토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 분노는 스스로 드러낸 솔직함이 아닌 발가 벗겨진 것에 대한 공포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러고 그 분노는 홧김에 대학 학생들에게 같잖은 에세이는 때려 치우고 솔직하게 쓰라는 욕설 섞인 충고를 단체 메시지로 보내는 데에 이른다.
다음날 찰리의 솔직한 욕설 메시지에 정말 솔직한 답장을 보낸 몇몇 학생들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찰리는 감춰왔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후련하게 에세이 강사를 그만두게 된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해당 장면 이후에는 찰리가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장면은 더 이상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토마스의 경우도 완전한 타의에 의해서 가장 숨기고 싶던 것이 밝혀지고 의외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아이러니가 펼쳐진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정직함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영화는 혐오스런 인물들을 통해서 사실 이들 역시 이렇게 된 힘든 과정이 있었고 이들이 자의든 타의든 솔직한 자신을 드러냈을 때 우리가 희망과 사랑으로 받아준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점을 여러 인물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더 웨일> 스틸 컷 [출처: 씨네랩 제공]
희망과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절망 속 이야기
영화에서 찰리는 엘리에게 사랑을 전하려 한다. 찰리가 떠나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한 가지는 딸 엘리에게 스스로가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다.
찰리는 이전에도 종교가 삶의 전부였던 애인 앨런이 삶에 대한 의지를 잃었을 때 아낌없는 사랑으로 그 삶을 이어가도록 만들만큼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떠나면서 챙겨주지 못했던 딸 엘리에게 남아있는 긍정과 사랑을 전하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영화 속에서 가장 절망적이여야 하는 인물이 건네는 사랑을 우리는 영화 내내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는 조금 걸어다는 것 조차도 보조기구가 있어야 하지만 빠짐없이 창문 밖에 지나가는 새를 위해 과일을 놓아두는 사람이고, 자신의 애인을 파멸로 이끌었던 종교에서 선교사가 찾아와도 좋은 말을 건네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병원비를 아껴서 딸에게 미래에 바로 설 수 있는 희망을 건네고, 자신을 욕하는 딸의 SNS 문장에서 촌철살인의 글쓰기 실력을 칭찬한다. 이것이 삶을 놓은 사람이 보일 수 있는 태도인 것일까?
찰리의 고단했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끝이 그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조금 아쉬운 지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선택 역시도 큰 슬픔이 그를 덮친 것일 뿐 오로지 그의 탓이라 하기는 힘들다.
찰리는 이런 결정을 유일하게 도와주는 인물이 있는데, 하지만 이를 아는 보호자이자 전담 간호사이며 떠난 애인의 동생이던 리즈이다.
리즈는 다른 인물들과 좀 다른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떠나간 찰리의 애인이 리즈의 오빠이고 찰리와 함게 고통을 겪은 인물이다. 그 때문인지 리즈는 찰리를 가족처럼 돌봐주면서도 그가 폭식을 일삼는 것을 말리지 못한다. 아마 찰리가 긍정적임에도 삶을 떠나기로 한 것처럼 리즈 역시 살아가는 마음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찰리의 죽음을 암시하며 끝나지만 영화관을 나오면서 떠오른 인물은 리즈였다. 그녀의 삶을 들여다 본다면 찰리가 영화 내내 잠겨있던 절망은 끝나지 않았다. 같은 절망을 겪은 리즈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찰리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영화가 끝나서 이후 그녀의 삶은 알 수 없지만 내심 그녀가 잘 견뎌주길 바라게 되는 결말이었다.
<더 웨일> 스틸 컷(리즈) [출처: 씨네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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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것 그대로 드러난 억압과 폭력의 순환은 끝이없다
▷한줄평 : 고통 받을 자유도 무한대, 착각하지 말아야 할 이유
▷영화 :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 2025.2월
'자유롭다는 착각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노예다'(괴테)
영화 <브루탈리스트>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를 탈출해 미국으로 향하고 있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 라즐로(애드리언 브로디)에게
아내 에르제벳(펠리시티 존스)가 보내는 편지에 담긴 괴테의 문구가 이 영화 전체를 대변한다.
뉴욕항에 도착했다는 안내에 따라 어두운 이민선 밖으로 나와 환호와 함께 눈앞에 펼쳐 보이는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의 모습은 이민자로의 삶의 행로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문득 1968년 혹성탈출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는 각자의 선택의 몫이다.
영화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 (좌) 뉴욕항 입항 안내는 받는 장면, (우) 사촌 아틸라 (알레산드로 니볼라)와 재회하는 장면
(좌) 영화 <브루탈리스트> 2025년 , (우) 영화 <혹성탈출> 1968년
브루탈리즘(Brutalism)이란 프랑스어 ‘베통 브뤼트(Béton brut, 노출 콘크리트)에서 유래한 말로 노출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와 기하학적인 구조를 특색으로
1950~70년대에 유행했던 건축양식을 말한다. 영화 제목 <브루탈리스트>는 이런 브루탈리즘을 추구하는 건축가를 말하기도 하지만,
주인공 라즐로의 콘크리트 표면과 같이 거칠고 순탄치 않은 예술가로서의 삶을 암시하는 듯 하다.
영화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 주인공 라즐로(애드리언 브로디)의 애잔한 모습들
헝가리에서는 바우하우스 졸업하고 부다페스트 시립 센터를 건축할 정도로 인정받는 유능한 건축가였고,
아내 에르제벳 토스 (펄리시티 존스)도 영국 옥스포드대학을 졸업하고 기자 생활을 할 정도로 엘리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민자가 되었다. 노숙자 쉼터를 전전하고, 공사판 인부의 삶도 고달프다.
영화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 (좌/우) 노숙자를 위한 식량 배급에서 만나 친구가 된 고든과 함께 일하는 노동현장 장면
그러나, 항상 새로운 기회는 주어지는 법. 자신의 서재를 리모델링 했던 계기로 인연을 맺은 백만장자 해리슨(가이 피어스)이 그의 천재성을 뒤늦게 발견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는 기념 건축물 설계를 맡긴다.
영화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 (좌) 모던하게 리모델링한 해리슨의 서재, (우) 해리슨의 어머니를 기리는 ‘마가렛 리 밴 뷰런 센터’ 착공식 장면
날 것 그대로 드러난 억압과 폭력의 나라 미국의 민낯
그러나 한줄기 빛으로 보였던 해리슨은 자재를 운반하던 기차사고를 계기로 라즐로의 예술적 도전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하기에 이른다.
부와 권력을 거머쥔 자본가가 예술가적 소양을 갖춘 건축가에게 갖는 열등감을 극복해 내기란 쉽지 않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용하여 부를 창출해낸 초기 자본가들이 자신을 위협하는 경쟁자들이 신분 상승을 하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일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천민 자본을 통해 권력을 독점하고 인간을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 다름 아니다.
자신의 예술적 신념과 이상을 관철하고자 하는 라즐로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뇌의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 (좌) 협력자이면서도 폭력자인 해리슨 부자, (우) 라즐로의 고뇌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아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도모할 수 있는 센터 건축을 완성하고자 하는 라즐라의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영화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1980년, 제1회 건축 베니스 비엔날레.
라즐로의 회고전에서 1976년에 완공된 ‘마가렛 리 밴 뷰런 센터’ 곳곳에 내재되어 있는 홀로코스트의 흔적들이 드러난다.
유대인 강제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하부 구조물과 자유를 상징하는 두개의 기둥, 십자가 모양의 홈을 통해 드리는 십자가의 빛은 전쟁과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와 구원을 상징한다.
높은 천장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고 방들은 그가 갇혀 있던 수용소 방의 크기를 염두에 두었다.
라즐로는 지울 수 없는 홀로코스트의 아픈 상처를 이 건축물을 통해 역사에 남긴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해리슨은 천박한 자본을 이용하여 비열한 방식으로 라즐로를 통제하고 폭력을 가했지만, 그의 예술적 가치까지는 훼손하지는 못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 ‘마가렛 리 밴 뷰런 센터’ 내부의 모습
그렇기에 비엔날레에서 조카 조피아가 남긴 마지막 멘트는 의미심장하다.
‘삶이 아무리 유린당해도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 조카 조피아
영화 <브루탈리트>는 한 인간의 고통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홀로코스트 당사자로서, 유대인으로서, 이민지라는 신분으로서, 가난한 예술가로서, 아픈 아내를 돌봐야 하는 남편으로서
주인공 라즐로(애드리언 브로디)가 감당해야할 인생의 무게가 너무나도 크다.
그렇기에 그의 고통의 보편성을 찾고 공감을 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고통의 심연속에서 몸부림치는 연약하고 고뇌엔 찬 존재만이 남을 뿐이다.
어쩌면 타당한 이유랄 것도 없이 인간 그 삶 자체가 고통의 순간들로 점철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케 한다.
자유를 얻기위해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나도 크다. 선택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프지만 슬퍼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또 다른 '브루탈리스트'로서 날 것 그대로 거칠게 상처를 주고 받으며 각자의 무거운 삶을 지탱해가고 있는 것 아닌가.
나만이 아는 흔적들을 남기며 그렇게 살아내는 것 그 뿐 아니겠는가?
이 영화가 실화가 아닌 것이 다행이다. 3시간 34분 긴 상영시간 중간에 휴식타임(인터미션 15분)도 고맙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 수상했는데, 올해 3월초 아카데미상에서도 작품상을 비롯한 10개 부문 후보에 지명되었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 브루탈리즘(Brutalism) 주요 건출물
국 샌디에이고 가이젤 도서관(Geisel Library), 미국 버팔로 지방법원 청사, 일본 빛의 교회(안도 다다오 작), 슬로베니아(유고슬라비아) 파노라마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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