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4-10-22 17:45:07
보통의 가족 | 차분하나 팽팽하고 부조리한 가족드라마
<보통의 가족>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돈만 벌면 된다는 태도로 반성 없는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형 ‘재완’(설경구)과 공정함과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자상한 소아과 의사 동생 ‘재규’(장동건). 전처와 사별한 재완은 필라테스, 요가 등 여러 자격증을 따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지수'(수현)와 재혼하고, 재규는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로 자녀 교육, 시부모의 간병까지 빈틈없이 해내는 ‘연경’(김희애)과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누린다.
어느 날, 평온하던 이들의 가정과 일상이 돌연 깨진다. 재완의 딸 '혜윤'(홍예지)과 재규의 아들 '시호'(김정철)가 학원을 째고 놀다가 길거리에서 노숙자를 폭행해 중상해를 입힌 현장 CCTV 영상이 뉴스로 보도된 것. 재완과 연경은 즉시 혜윤과 시호를 지키려 하고, 재규는 시호의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면서 가족 간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하지만 재완이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하면서 네 가족의 갈등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영화관에서 봐야 되는 가족 드라마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관객들 사이에서 익숙해진 표현이 있다. '영화관에서 봐야 되는 영화.' 비싸진 영화 티켓을 구매해서라도 스크린으로 봐야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지칭하는 말이다. 아이맥스나 돌비시네마로 보면 더 좋고, 특별관이 아니더라도 영화관이라는 환경에서 봐야만 그 감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 <탑건: 매버릭>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이 표현이 붙는 작품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아이맥스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작품 또는 거대한 스펙터클을 기대할 만한 블록버스터 영화인 경우가 많다. 전자는 <오펜하이머>, 후자는 <듄: 파트 2>인 셈이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 혹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작품들은 '영화관에서 봐야 진가가 나온다'와 같은 평을 받지 못했다.
허진호 감독의 9번째 장편 영화이자 제48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공식 초청작인 <보통의 가족>은 다르다. 겉보기에는 평범하다. 일단 화려한 볼거리를 기대할 법한 작품은 아니다. 등장인물은 줄이고 활동반경을 넓힌 <완벽한 타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의외로 <보통의 가족>은 영화관에서 봐야 진가가 드러난다. 스크린 가득한 배우의 표정과 제스처, 그리고 음향을 느껴야 비로소 맛이 사는 가족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차분하나 팽팽하게
<보통의 가족>은 제목에 충실하다. 미디어에서 흔히 묘사되는 한국 가족의 전형이 집약되어 있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 누가 어머니를 어디에 모실 지를 두고 갈등을 빚는 형제. 며느리 간의 갈등. 입시 때문에 학원 뺑뺑이에 시달리는 아들. 부모 몰래 탈선하는 딸까지. 많은 주인공 중 어느 누군가에게는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밖에 없는 판이다.
이는 양날의 검이다. 자칫 주말이나 아침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막장극으로 흐를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보통의 가족>은 절묘하게 균형점을 잡는다. 가족의 특성을 활용했다. 누구든 부모이기에, 또 자식이라서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이 있다. 영화는 그 감정을 최대한 끄집어내면서 상황이 급작스럽게 반전되더라도, 입장이 달라져도 수긍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다.
극장에서 보는 <보통의 가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난다. 수시로 바뀌는 주인공들의 심경을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배우들의 연기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자기가 폭행한 노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죄책감이 없는 혜윤이를 보면서 재완은 충격에 빠지는 순간이 대표적이다. 같은 소식을 들은 재규가 병원 구내식당에서 밥과 반찬을 입에 쑤셔 넣는 장면도 그의 심경을 꾸밈없이 전달한다.
사운드도 인상적이다. 갈등이 극에 달해 분노가 터지는 순간 적막만이 가득한 식으로 음향을 역이용한다. 재완이 혜윤과 사무실에서 상담하는 장면에서는 대화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 그 덕분에 그들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혹은 내렸는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재규와 연경이 차에서 말싸움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정보를 선택적으로 주면서 온전히 각 인물의 감정선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허진호 감독다운 심리 묘사가 빛을 발한다.
흥미롭고 야심 찬
더 나아가 전개도 흥미롭다. 두 형제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는 과정이 극의 핵심이다. 타락한 변호사 같던 재완과 정의만을 추구하던 소아과 의사 재규. 그들의 자녀 혜윤과 시호가 노숙자를 폭행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고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둘의 입장은 뒤바뀐다. 재완은 어른의 부모의 도리를 하자고 동생을 설득한다. 반면에 재규는 오직 자기 아들과 가족만 살리는 게 중요하다며 폭주한다.
특히 두 형제의 직업이 꽤 의미심장하다. 변호사와 의사. 한국에서 오랫동안 문과와 이과를 각기 상징하는 전문직. 어찌 보면 한국의 대표적인 엘리트 직업이다. 이는 <보통의 가족>이 자칫 작위적이라고 느낄 만큼 다양한 사연을 한 가족에게 쑤셔 넣은 이유와도 이어진다. 그저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보여주는 메타포로써 활용하려는 야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통의 가족>은 마치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한국의 부모 세대, 더 넓은 범주에서는 한국의 엘리트들이 어떻게 가족을 대하며 다음 세대를 길러내고자 하는지를 묻는 셈이다. 즉, 자라나는 미래 세대를 봤을 때 과연 한국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미래 세대가 겪는 아픔과 문제를 눈 감고 넘어갈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고쳐야 하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물론 거시적 관점에서는 대답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보통의 가족>은 미시적 차원에서 거시적 문제를 다루기에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의사 동생을 활용해 딸의 봉사 실적을 꾸미는 식으로 아이들을 닦달한 결과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채찍질에 지친 아이들에게 잘못의 책임을 온전히 돌릴 수 있는지. 그들이 자기 자녀일 때 공정한 선택을 할 수 있는지. 한국 사회의 난맥상이 한 가족의 모습에 한가득 담겨 있다.
솔직하나 겸허하게
그래서일까? <보통의 가족>은 허무한 듯 놀랄 만큼 솔직한 결말로 놀라움을 안긴다. 재완과 재규는 마지막까지 평행선을 달린다. 공정한 정의를 추구했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듯 보이는 아들 때문에 생각을 바꾼 동생. 가족만 바라보다가 죄책감도,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딸을 보며 정의를 쫓기로 결심한 형. 결국 동생은 형을 문자 그대로 들이박는다. 미래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현상을 유지하자는 생각으로.
재완과 재규의 선택마저도 한국 사회를 닮았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없어서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지 아무도 답을 주지 못하는 사회가 두 형제에게서 보인다. 흥미롭게도 <보통의 가족>은 이 상황에서 단언하여 답을 주거나 대단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오프닝과 결말이 이어지는 묘한 수미상관으로써 두 형제 모두에게,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꼬인 실타래의 책임이 있다고 암시할 뿐이다.
상업영화로서는 이 선택이 실망스러울 수 있다. 숱한 갈등을 열린 결말에 가깝게, 싱겁게 해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 메시지를 함께 고려하면 오히려 인상적이다. 답을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하고 겸허하게 보여주는 용기가 억지스럽지는 않으니까. 다 같이 웃는 가족사진을 보여주면서 진정으로 행복한 가족과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를 묻는 에필로그가 신선하지는 않아도 여운을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리하나 안이한
그러나 <보통의 가족>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가족 구성원 중 일부의 시점이 부재하다는 것. 바로 아이들의 시점이 찾아볼 수 없다. 철저히 부모의 시선으로, 기성세대의 시점에서 젊은 세대와 아이들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예를 들어 과도한 입시 스트레스는 클리셰처럼 쓰이고, 시호의 학교 폭력 문제는 발단부터 해결까지 중요성에 비해 지나치게 간단히 짚고 넘어간다.
물론 이 소재들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도구로서 역할을 하는 것은 맞다. 다만 다른 어른들을 보여주는 세밀한 묘사에 비해서는 아이들이 지나치게 기능적으로 사용된다. 그 결과 혜윤과 시호는 알 수 없는, 그저 악의만 지닌 평면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시호는 눈앞의 상황만 벗어나기 위해 부모도 손쉽게 속일 수 있는 전형적인 비행 청소년이고, 혜윤은 사이코패스일 뿐이다.
결국 메시지도 무뎌진다. 가족 드라마에 빗대어 한국 사회 문제를 보여주려는 게 <보통의 가족>의 의도다. 그런데 그 의도가 정작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를 바라보는 고정관념 섞인 시선을 드러낸다. 젊은 세대를 잘못 자란, 이해할 수 없는, 악마화된 존재로 그리면서 한국 사회가 겪는 갈등을 입체적으로 풀어낼 기회를 놓치고 만다. 예리한 야심과는 달리 <보통의 가족>의 끝이 평범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cceptable 무난함
차분하나 팽팽하고, 솔직하나 겸허하고, 예리하나 안이하게 담아낸 한국이라는 가족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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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믿을 수 없어서 일어나는 지옥
부럽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친구에게 한 말이다. 보통 취업준비로는 타인을 부러워해 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그런 기분이 많이 든다. 450여 일의 노예생활이 지나면 자취도 하고 내 돈으로 월급도 벌어서 효도도 하겠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야.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아. 나 진짜 열심히는 했는데 말이지." "야. 네가 안되면 누가 안 되냐?" 친구는 나를 위로해줬다. 이 한국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온갖 혐오가 판치고 취업난 구직난이 바글바글한 우리나라에서 1인분 하며 일상을 버틴다는 것은 참 많은 것들을 수반하는 일인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한참 하다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지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었는데. 이미지와 첫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주욱 말했다. 그게 뭐야라고 대답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으로 귀결 지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말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내가 누군지만 아는 그 사람이 구린 이유는, 예민한 게 너무나도 많아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 사람을 직접적으로 아는 건 아니라서 내가 뭐라 하는 것 자체가 우습긴 하지. 그런데 우리나라는 좀 멀리 오기는 했다. 사람같이 살려면 참 많은 게 필요하니 말이다. 16년 전 한 신인 감독이 한국사회의 단면과 초자연적인 것들을 가져와 오싹한 공포영화를 만들어냈다. 한국 호러 영화의 수작, <불신지옥>이다.
영화 개요로 다 함축할 수 없는, 압도적인 이야기
동생이 사라졌다. 언니 희진이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아빠는 없고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희진. 희진은 곧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 태환은 아픈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장이기도 하다. 태환은 부랴부랴 희진을 만난다. 태환은 그렇게까지 희진에게 협조적이지 않다. 동생 소진의 실종이 단순 가출로 가정하고 주변 아파트 주민들을 취재하는 태환. 점점 이상한 게 눈에 띄기 시작한다. 태환은 경비 아저씨부터 옆집 아줌마 경자까지 '그 집에는 무언가가 있다'라는 증언을 듣게 된다. 태환의 조사는 점점 진행되고, 희진에게 계속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이 과정 속에서 두 영화는 이 희진과 소진 자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일이 영화의 주요 소재라고 볼 수 있겠다.
과연 어떤 것이 지옥인가
여러분은 무속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각자 생각하는 무속의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또한 기독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들을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각각 다를 것이다. 영화는 두 종교가 제시했던 지옥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무속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초자연적인 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적인 이미지를 차용해서 역시 초자연적인 두려움을 묘사한다. 그러나 이 둘이 갖고 있는 신적인 공포와 두려움이 전부가 아니다. 영화 안에서 묘사하고 있는 다른 지옥들이 몇 개 있다. 하나는 타인에 대한 폭력적인 시각이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어떤 공포를 주고 있는가'에 대해 쓰면 깊이에 지장이 갈 것 같아 더 쓸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영화 내적으로 묘사하는 인물 갈등이 탁월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희진과 엄마와의 대립, 또 경비 아저씨와 태환과의 대립, 태환과 희진의 갈등까지 누군가가 어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를 묘사하는 꼼꼼한 인물 구성이었다.
또 영화가 조명하는 이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일단 아파트라는 건물 속성 자체가 사람들이 작은 공간에서 빼곡히 사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 덕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밀도가 높다. 영화 안에서 이웃이 태환에게 소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보면, 이 고밀도에 의해 쉽고 가벼운 말을 던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이외에도 군인 출신들의 사회 적응, 대학생이 살기 너무나도 어려운 사회 현실, 타인을 이용하기 충분한 한국사회, 가해자로서의 한국의 위치까지 신의 존재로 넓은 이야기 범주를 호러라는 키워드 안에 무리 없이 담는다.
깔끔하게 짜인 무서운 이미지
흔히 호러 영화의 클리셰로 '점프 스퀘어'라는 말을 쓴다. 갑자기 유령이 튀어나오거나 하는 것이 그 정의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이 점프 스퀘어가 한 번도 안 쓰인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공포를 만드는 방식은 이와 살짝 다른데, 이 작품은 이미지를 사용해서 무서움을 만들어 낸다. 영화 초중반부 어떤 인물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이야기를 태환에게 전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인물이 대사를 치며 하는 표정, 그 말의 내용, 이 인물의 다음 처지까지 감독은 자칫하면 뻔할 수도 있는 공포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또 이 인물의 의문스러운 행동을 받아주는 태환이라는 인물의 성격도 이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신들림'의 이미지 역시 탁월했다. 신들림은 현실과 신 사이의 3의 존재쯤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인물이 빙의되며 변하는 표정연기나 기타 미술까지 현실감 있는 두려움을 묘사했다. 이 신들림과 비슷한 느낌이 운명적인 죽음 아닌가. 특정 인물들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방식 역시 여태까지 봤던 공포영화의 결과는 다를 것이다. 이런 강력한 이미지들이 인물의 행동으로만 쨘하고 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이니 만큼 특정 쇼트들이 관객에게 제시되는데 이 역시 탁월했다. 감독 이용주의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종교적인 이야기?
<불신지옥>이라는 제목을 보고 이 작품이 반종교적인 작품으로 읽힐 수도 있다. 난 영화의 소재가 한국사회의 이기주의라고 본다. 그러니까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 주가 되는 작품은 아닌 셈이다. 영화는 두 가지 종교를 키워드로 전개한다. 바로 무속과 기독교다. 이 영화가 반종교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어머니 캐릭터가 어떤가에 대해 써야 하는데, 극을 보다 보면 그렇게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또한 이 영화에서 종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아파트라는 공간적 배경이다. 물론 극단적인 믿음이 만들어낸 끔찍한 이야기라는 데에는 여지가 없으나, 난 이 영화의 주요 갈등은 '타인에 대해 폭력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본다. 이 폭력적인 시선이 아파트라는 고밀도의 장소에서 바글바글 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점이 영화 안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 유령이 등장하는 것도, 소진이 실종했던 것도, 태환이 출동했던 것도 다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다. 다들 아파트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쉽게 보고 가볍게 이용한다. 영화 끝까지 반복되는 '맹신'의 모티브가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후반부 특정 두 인물 간의 갈등을 굳이 묘사한 부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장면이 굳이 있어야 할까? 난 아니라고 본다. 굳이 그렇게까지 장면을 만들지 않아도 그런 느낌은 충분히 줄 수 있다. 근데 굳이 그 장면과 대사를 넣은 이유는 그럴 위치에 있음 안 되는 사람 역시 뒤틀렸을 정도로 한국사회가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닌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정도로 잘했나 싶어
심은경 배우가 1994년생이니까 지금 스물아홉이다. 이 영화 개봉 연도가 2009년이니까 정확히 15살 즈음에 작품을 찍은 것이다. 15살 때 나는 방구석에서 소설책 읽기 바빴는데 이 배우는 극의 설정이 되는 빙의 연기를 해냈다. 또, 영화의 주요 인물인 김보연-문희경-장영남-이창직 배우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 네 명의 배우가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아침 드라마에 자주 나오던 배우들이었다. 특히 문희경 배우는 너무 자주 나와서 얼굴만 봐도 '이렇겠네' 싶을 정도다. 그런데 이 배우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패턴들에서 더 깊은 퍼포먼스가 나온다. 각본의 힘으로만 묘사되기 어려운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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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보수단체 자유대한호국단이 <서울의 봄>을 단체관람한 용산구 소재 고등학교 교장을 '직권남용죄'로 고발했다고 합니다. <서울의 봄>이 천만을 향해가는 가운데, 보수단체의 반발이 심해지고 있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의 씨네뉴스 같이 살펴보아요!
’영화 꽁짜’ 경복궁 10대 낙서범 대가로 10만원 받았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지난 19일 문화재보호법 위반 및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체포된 임모(17)군이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범행의 대가로 10만원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연인관계인 임모군과 김모양이 경복궁 영추문 인근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영화 공짜’라는 문구와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 문구등을 낙서함 혐의를 받는다고 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30만 명 돌파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 영화 <괴물>이 30만 관객을 넘어섰습니다.
이번 작품 전까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12만 명을 기록하며 가장 흥행한 작품이었으나
<괴물>이 30만 명을 넘어서면서 고레에다 감독이 만든 일본영화 중 최고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다음 ‘영화서비스’ 종료
다음은 20일 포털 웹페이지 공지를 통해 ‘다음 영화 서비스를 다음달 4일 종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다음 영화는 24년 이어온 영화 서비스를 종료하지만 포털 검색을 통한 영화 정보는 계속 제공할 예정이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 검색 업체인 키노라이츠를 통해 외부에서 정보를 공급받는 방식입니다.
<바비> 그레타 거윅 감독 칸 심사위원장 미국 여성감독 최초
그레타거윅 미국 여성 감독으로서 최초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게 됐습니다. 여성 감독이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건 뉴질랜드 출신의 제임 캠피언이 처음이었으며, 미국 여성 감독중에선 최초입니다. 거윅 감독은 <레이디 버드>로 데뷔하여 골든글로브 시상식 작품상을 수상했고, <바비>로 전 세계 14억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올해 최고 흥행작을 기록한 여성 감독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 단체관람한 학교장 고발
20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따르면 보수단체 자유대한호국단은 최근 <서울의 봄>을 단체관람한 용산구 소재 고등학교 교장을 '직권남용죄'로, 관련 성명을 발표한 실천교육교사모임 간부를 '명예훼손죄'로 고발했습니다. 호국단은 지난 13일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와 함께 <서울의 봄> 단체관람을 계획한 서울 마포구의 한 중학교를 찾아가 시위를 벌였다고 합니다.
다음 ‘영화서비스’ 종료
다음은 20일 포털 웹페이지 공지를 통해 ‘다음 영화 서비스를 다음달 4일 종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다음 영화는 24년 이어온 영화 서비스를 종료하지만 포털 검색을 통한 영화 정보는 계속 제공할 예정이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 검색 업체인 키노라이츠를 통해 외부에서 정보를 공급받는 방식입니다.
영화 주인공이 입은 옷 TV에서 바로 살 수 있는 ‘B tv’
SK브로드밴드가 TV 속 드라마 출연진이 입은 옷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연계 쇼핑 서비스 등 초개인화 맞춤형 서비스를 IPTV에 도입했습니다. B tv에서 VOD 시청 중 등장인물이 입은 옷과 악세사리 등 제품 정보를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촬영하면 쇼핑몰과 바로 연결돼 제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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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과 유년기에 관한 보편적 호소
온 동네 사람들이 친밀하게 엮인 정다운 마을에 폭동이 일어난다. 폭동을 주동한 자들은 개신교 민병대로, 그들은 마을에 있는 가톨릭교도들과 그들의 집을 마구잡이로 공격한다. 화염병, 자동차 폭발 등이 일어나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사람들은 겁에 질린다. 골목 입구에는 바리케이드가 생기고 총을 든 군인이 수시로 마을을 순찰한다. 이곳은 1969년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9살 소년 버디가 사는 마을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종교를 앞세워 갱단처럼 행패 부리는 사람들로부터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지만, 그 외에도 문제는 산적해 있다. 북아일랜드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실업률로 고생 중이고, 경제 위기의 여파는 벨파스트를 비껴가지 않았다. 세금 문제와 수입 감소로 골머리를 썩는 버디 부모님의 갈등이 잦아지는 이유다. 아빠는 미래를 위해 벨파스트를 떠나자 하지만, 엄마는 삶의 모든 것이었던 벨파스트를 떠나고 싶지 않다. 감당하기 벅찬 여러 문제를 동시에 마주한 버디네 가족은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 다르다.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를 구분할 줄 모르는 이들은 눈이 뒤집힌 채 폭력을 휘두르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조금은 무섭고 긴장도 되지만 늘 그랬듯이 친구들과 어울리고, 말썽을 부리는 일상을 이어간다. 버디는 따뜻한 말과 사랑을 주고받는 조부모님의 보살핌을 받고, 엉뚱한 방식으로 마음에 둔 여학생과 가까워지기도 한다. 버디는 벨파스트가 오래도록 쌓아온 아름다운 관계의 성취를 듬뿍 만끽하며 성장하는 중이다.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가 멀어질수록 영화의 긴장감은 커진다. 어른들의 혼란과 아이들의 천진함이 동시에 포개진 벨파스트라는 모순은 점점 첨예해지며, 따로 존재하는 게 좋았을 두 세계를 결국 부딪히게 하고 만다. 동네 친구와 비밀서클을 만들어 놀던 버디가 얼떨결에 가톨릭교도를 응징하러 가는 개신교도 무리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약탈하듯 상점을 헤집어놓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에게 선물할 세제를 챙긴다.
그러나 일은 버디의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버디의 엄마는 기뻐하기는커녕 크게 화를 내며 다그치고, 물건을 제자리에 놓자며 상점으로 버디를 데리고 간다. 그런데 문제는 점점 꼬여만 간다. 폭도들이 왜 가톨릭교도에 이로운 짓을 하냐며 버디 모자를 다그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개신교도임에도 평소 자신들에게 거리를 두던 버디 가족을 인질로 잡아 군인들과 인질극을 벌이기까지 한다. 엄마를 위한다는 순진한 동심이 어른들의 혼탁한 세계와 만나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다행히도 버디가 일으킨 소동은 파국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다만, 이 사건을 계기로 버디 가족은 오랫동안 망설였던 영국으로의 이주를 결정한다. 떠나는 버디네 가족을 보며 할머니가 당부하듯 혼잣말로 건네는 말을 들어보자. “가거라. 지금 가거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사랑한다(Go. Go now. Don’t look back. I love you so).” 할머니는 이제 벨파스트가 더 이상 자식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지가 아님을 안다.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인 남편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났기에 버디 가족마저 떠난다면 지독히 외로울 테지만, 자신의 외로움을 볼모로 자식들을 붙잡을 수 없는 그녀는 슬픔이 깃든 결연한 표정으로 벨파스트를 떠나는 자식들을 배웅한다.
이것이 〈벨파스트〉가 고향과 유년기를 그려내는 방식이다. 과잉 낭만으로 고향과 유년기를 그려내는 영화의 방식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벨파스트〉는 다소 성급하고 단조로운 방법으로나마 우리가 지나온 것에 대한 보편적 호소를 만들어낸다. 모든 고향과 유년기에는 고유한 색채가 있다. 지역, 시대, 성별 등에 따라 그 색채는 무한히 다양할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그 시기를 거쳐왔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다. 버디가 벨파스트를 폭력이 난무하던 곳으로 기억할지, 정情이 넘치는 따뜻한 곳으로 기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어떤 곳이었든 벨파스트가 그의 원점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사실로 남는다. 종교와 경제, 폭력과 온정이 들끓으며 뒤섞였던 1969년의 '벨파스트 출신 버디'가 자식들을 멀리 보내는 할머니의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마음과 연결되기를, 그가 언젠가 다시 벨파스트로 돌아와 할머니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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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쉬는 따스함
테크노 사피엔스가 보편화된 사회 안의 한 가정을 조명하는 영화, 애프터 양은 특별하지만 잔잔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가족과 함께 살던 안드로이드 인간, 양은 어떤 작별의 인사도 남기지 않은 채 작동을 멈춘다. 제이크는 그를 수리할 방법을 찾으나 여전히 작동하지 못하는 양을 뒤로한다. 그러던 중 양에게서 특별한 메모리 뱅크를 발견하여 그의 기억 속을 보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애벌레에겐 끝이지만 나비에겐 시작이다.”
나무, 바람, 그 외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그의 기억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보면 볼수록 따뜻해지는 기억이 거리를 두고 있던 가족의 틈을 메우며 당연하다고 느꼈던 가족이라는 단어에 물음표를 찍는다. 가족이라는 단어만으로 존재했던 서로의 거리는 양이 작동을 멈춰 그의 기억을 바라보고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다가오는 따스함을 마주한다.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노래, 장소, 얼굴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
어떤 도구로 쓰임을 시작한 ‘양’은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이 아닌 그저 ‘안드로이드’로 남는 순간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만들었지만, 결코 그들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어떠한 선이 느껴진다는 것이 왠지 이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들의 거리는 ‘양’에 의해 좁혀졌으나 과연 ‘수단’과 ‘도구’로 쓰이지 않았을까. 인간보다 더 인간 답지만 인간은 아닌 그를 바라보면 ‘인간다움’이라는 단어가 인간에게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보다는 그동안 정의되어 온 현재의 인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지만, 이것 또한 사람의 초점에서 바라보고 내리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아시안에 대해 신비로움이 걷히지는 않은 모양새에 다소 실망감을 끼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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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마면 여자, 바지면 남자? : 셀린 시아마의 <톰보이>
2021년 한국, 아무도 여자는 무조건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치마든 바지든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으면 된다고 말하고는 한다. 그러나 이 이분법이 정말로 없어진 것일까? 통계청은 2020년 한국의 혼인 건수가 21만 4000건이라고 발표했다. 식을 올린 결혼 중 여자가 드레스를 입고 남자가 턱시도를 입은 비율은 얼마나 될까? 혹은 여자와 남자 모두 정장 바지를 입은 결혼식은 몇 건이나 있었을까? 화장실 표지판은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픽토그램으로 구성되어있다. 흑백으로도 알아볼 수 있는 치마를 입은 사람과 바지를 입은 사람이다. 교복을 입는 중‧고등학생 중 바지 교복을 입는 여학생은 몇 퍼센트일까? 치마 교복을 입는 남학생은 얼마나 있을까?
<톰보이>의 주인공 로르는 두 자매 중 언니이며 머리가 짧고 바지를 즐겨 입는 소녀이다. 이사를 자주 다니던 로르의 가족은 파리의 한 지역에 정착한다. 로르와 마주친 소녀 리사가 이름을 묻자, 로르는 잠깐의 망설임 끝에 자신의 이름이 미카엘이라고 답한다. 또래 아이들이 로르의 외모를 보고 로르를 남자아이라고 오인했고 그 무리에서 리사가 여자라는 이유로 겉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동생 쟌을 돌보는 자상한 언니인 로르는 친구들과 노는 자리에 쟌을 데려가고, 쟌을 밀친 남자아이와 몸싸움을 한다. 이 때문에 화난 남자아이의 어머니가 집에 찾아와 로르가 남자아이 행세를 하고 다녔다는 것이 들통난다. 로르는 아버지에게 다시 이사를 가고 싶다고 울먹인다. 로르와 쟌은 어른들의 사정에 따라 정착하지 못하고 이사를 다녔지만, 셋째가 곧 태어날 로르의 가정은 아이의 사정을 위해 이사를 가지는 않는다. 대신 어머니는 벌을 주듯이 로르에게 파란 원피스를 입힌다. 로르가 여자아이라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서다. 리사의 집에서 틀었던 노래처럼 ‘언제나 로르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손에 강제로 끌려가 로르는 자기가 때린 남자아이의 집과 자기에게 키스한 여자아이의 집에 원피스를 입고 방문하는 굴욕을 겪는다.
숲에 원피스를 벗어 걸어둔 로르는 또래 무리로 돌아가지만, 친구라고 생각하고 어울렸던 아이들은 로르의 성기를 확인해야겠다며 로르를 사냥하듯 뒤쫓는다. 로르가 소녀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소년은 로르가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여자애라고 말하며 부정하고 싶다면 옷을 벗어보라고 요구한다. 앞서 축구를 하고 수영을 할 때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며 로르는 쉽게 상의를 벗어던지고 풀밭에서 오줌을 누는 등 거리낌없이 신체를 노출해왔지만, 여성임을 확인받기 위해 탈의할 것을 요구받는 순간 노출은 수치가 된다.
<톰보이>는 프랑스라는 구체적인 장소성을 가지고 있으나, 톰보이 로르의 이야기는 많은 나라와 사회에서 통용될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어째서 신체적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는 이른 나이부터 여자는 운동을 하다 상의를 벗을 수 있는 특권을, 아무데서나 소변을 볼 수 있는 권리를, 치마를 입지 않을 자유를 박탈당하는가? 아직까지 여자는 바지를 입을 수 있으나 치마를 벗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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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베르트랑 보넬로가 부산에 왔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 3일차인 19월 6일.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더 비스트>의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이 KNN 극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갈라 프레젠테이션은 거장 감독의 신작이나 세계적인 화제작 중 감독이나 배우가 영화를 직접 소개하고 관객과의 만남을 갖는 섹션이다. <더 비스트>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 ‘정글의 짐승’을 각색한 영화로,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을 비롯해 토론토영화제와 뉴욕영화제에도 초청됐다.
<생 로랑> 이후 9년 만에 두 번째로 부국제에 방문한 보넬로 감독은 “(부국제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면서 “<더 비스트>가 부국제에서 상영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며 인사말을 건넸다.
멜로, 공포, 그리고 SF의 만남
보넬로 감독은 <더 비스트>를 ‘멜로 드라마’로 정의했다. 그는 “멜로 드라마를 생각하면서 자연히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떠올렸다”면서 “사랑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밀어붙임과 동시에 여러 장르를 섞어서 한 세기 이상의 시간을 탐색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1910년, 2014년, 2044년 세 시간대에서 진행된다. 보넬로 감독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 번째 시간대(1910년)은 소설을 따라갔습니다. 20세기가 시작될 때 20세기가 평화와 진보가 가득찬 시기가 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홍수가 발생하는 등 여전히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2014년이라는 시기는 공포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또 엘리엇 로저 사건이 있는 해였기에 골랐습니다. (엘리엇 로저는) 생각으로만 사랑을 나누는 비자발적 독신자, 인셀이라고 할 수 있죠. 극 중 꿈에서만 사랑을 나누는 존재인 '루이'(조지 맥케이)는 그로부터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에 더해 미래까지 가보고 싶었습니다. AI는 새롭고 흥미로우면서도 힘든 개념입니다. 사랑의 가능성까지 따질 수 있는 복잡한 개념이죠. 극본 작업을 4-5년 전에 시작하면서 AI가 동시대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에게는 큰 두려움이 되고 있죠. LA와 할리우드에서는 작가들과 영화 관계자들이 파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미래가 동시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미래를 보여줄지 고민했습니다. SF가 될 수도 있고, 테크놀로지에 치중한 영화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20년 후를 내다 봤을 때,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그리고 싶었습니다.”
사랑, 두려움, 불안함
먼저 만난 <더 비스트>는 자칫 어렵고 복잡할 수 있는 영화다. 여러 시간대, 다양한 장르, 총 6명이 인생이 뒤엉켜 있기 때문. 하지만 보넬로 감독은 감정선만 잘 따라가면 “복잡하면서도 아주 단순한 영화”라고 단언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이 영화의 전반적인 주제입니다. 소설에도 나오죠. 이것은 가브리엘이 비스트라고 부르는, 내면의 무언가를 파괴하는 두려움을 말합니다. 끝내 이 두려움은 사랑에 대한 두려움, 달리 말해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10년에는 가브리엘이 두려워하고, 2014년에는 루이가 두려워하죠.”
그는 <더 비스트>가 사랑, 두려움, 불안함에 관한 영화인 것 같다는 질문에 “이 영화는 그 세 개의 감정이 맞다”면서 “제가 요즘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강렬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영화 삽입곡으로 수잔 잭스의 'Ever Green'을 선택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고 전했다.
“가사 때문이죠. 멈추지 않는 사랑. 상록수처럼 계속되는 사랑. 멈추지 않는 사랑이 제 영화의 주제입니다. 캐릭터가 서로를 그리워하고 사랑이 계속되죠. (…) 그리고 최악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 중심에는 두려움이 있었죠. 비스트는 사랑에 대한 공포이고, (두 주인공은) 이를 뒤늦게 깨닫죠.”
레아 세이두와 조지 맥케이의 만남
<더 비스트>에서는 레아 세두와 조지 맥케이라는 이색적인 조합을 만날 수 있다. 세계적인 스타와 라이징 스타의 만남. 보넬로 감독은 두 배우를 선택한 각각의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레아 세두는 프랑스 배우 중 이 세 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유일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세 시대를 아우를 수 있죠. 영속적인 것도, 현대적인 것도 다 아우를 수 있습니다. (…) 그녀를 보면 사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카메라는 이 미스터리한 부분을 좋아합니다.”
조지 맥케이 캐스팅에 관해서는 가슴 아픈 비하인드를 전하기도 했다. 본래 루이 역할을 맡기로 했던 배우 가브리엘 울리엘이 사망한 것.
보넬로 감독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영국 배우, 미국 배우를 찾기 시작했다”면서 “런던에서 조지를 만나고 잠깐 이야기를 하자마자 적임자라고 생각했고 (…) 영화 제작 중에도 완벽한 캐스팅이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두 배우에 대해 상반된 견해도 남겼다. 레아 세두에 대해선 "세트장에선 바로 연기에 들어가길 원하는 스타일"이라며 "강력하게 본능적인 게 있다"고 평가했다.
맥케이의 스타일은 이와 대조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맥케이는 촬영을 앞두고 준비를 많이 한다"며 "세트장에 도착할 땐 이미 모든 게 그의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듯했다”고 말했다.
보넬로 감독은 관객의 반응이 몹시 궁금하다며, 단순한 호불호를 넘어선 다양한 해석을 기대한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더 비스트>를 즐길 팁 한 가지도 소개했다.
“이 영화가 감정적인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센세이션도 느끼면서요.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을 내려놓고 영화에 몰입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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