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0-17 14:58:46
10월 넷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시리즈의 피날레! <베놈: 라스트 댄스> 개봉

2024년 최대 기대작이었던 <조커: 폴리 아 되>의 부진으로 또 다른 대형 영화인 <베놈: 라스트 댄스>의 성적은 어떻게 될 것인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베놈: 라스트 댄스>는 북미 개봉 첫 주에 7천만 달러의 수익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작인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9천만 달러와 시리즈의 첫 영화인 <베놈>의 8,020만 달러보다는 낮은 수치이지만, 기대 이하였던 <조커: 폴리 아 되>의 성적을 감안하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7천만 달러의 개봉 성적이 유지된다면, <베놈: 라스트 댄스>는 2024년 두 번째로 높은 오프닝 성적을 기록한 코믹북 영화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작들의 각본을 쓴 켈리 마르셀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아 감독을 맡은 <베놈: 라스트 댄스>는 오는 10월 23일 국내 개봉 예정입니다.
베놈: 라스트 댄스
Venom: The Last Dance

개요: 액션 | 미국 | 109분
감독: 켈리 마르셀
주연: 톰 하디, 치웨텔 에지오포, 주노 템플, 리스 이판
개봉: 2024.10.23.
배급: 소니 픽쳐스

줄거리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환상의 케미스트리의 에디 브록(톰 하디)과 그의 심비오트 베놈은 그들을 노리는 정체불명 존재의 추격을 피해 같이 도망을 다니게 된다. 한편 베놈의 창조자 ‘널’은 고향 행성에서부터 그들을 찾아내기 위해 지구를 침략하고 에디와 베놈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마지막 운명을 건 대서사의 클라이맥스 우리는 끝까지 함께한다!
마이펫의 컴백홈 어드벤처
Gracie and Pedro: Pets to the Rescue

개요: 애니메이션 | 캐나다 | 87분
감독: 케빈 도노반, 고트프리드 루트
주연: 빌 나이, 수잔 서랜든, 브룩 쉴즈, 알리시아 실버스톤
개봉: 2024.10.23.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줄거리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품격 있는 강아지 ‘그레이시’와 장난기 많은 스트릿 출신 고양이 ‘페드로’가 공항 수화물 사고로 가족과 떨어지게 된다. 상상 이상의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와일드한 바깥세상에 던져진 그레이시와 페드로, 과연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못 말리는 사고뭉치 콤비,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뭉쳐야만 한다! 멍X냥 크로스!
룸 넥스트 도어
The Room Next Door

개요: 드라마 | 미국 | 107분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주연: 틸다 스윈튼, 줄리안 무어
개봉: 2024.10.23.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줄거리
유명 작가인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오래전 잡지사에서 함께 일했던 절친한 친구 ‘마사’(틸다 스윈튼)가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간다. 연락이 닿지 않았던 시간 동안의 안부를 묻고 서로가 처한 현재의 문제에 대해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중요한 순간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하는데…
어프렌티스
The Apprentice

개요: 드라마 | 캐나다 | 122분
감독: 알리 아바시
주연: 세바스찬 스탠, 제레미 스트롱, 마리아 바카로바
개봉: 2024.10.23.
배급: ㈜누리픽쳐스

줄거리
세입자들에게 밀린 집세를 받으러 다니는 뉴욕 부동산 업자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는 어느 날 정·재계 고위 인사들을 변호하며 정치 브로커로 활동하는 변호사 ‘로이 콘’을 만나게 된다. 성공을 향한 강한 야망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는 불법 수사와 협박, 사기, 선동으로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고 불리는 ‘로이 콘’을 스승으로 삼고 더욱 악랄한 괴물로 거듭나는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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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판타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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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 단독 영화 1편 중에서 가장 최고
서론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집단 '텐 링즈'의 수장인 아버지 쑤웬우의 손에서 암살자로 자라난 쑤샹치. 그러나 끝내 암살자의 길을 벗어던지고 학창 시절 친구인 케이티와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던 샹치는 어느 날, 버스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암살자들과 맞닥뜨리게 되고, 곧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임을 직감한다. 그렇게 자신과 함께 가려는 케이티와 함께 웬우를 만난 샹치는 가족의 비밀을 알아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벌이지는 일들을 다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25번째 작품이다. 일단 꽤나 재미있게 보았다. 괜한 반중 감정 때문에 저평가 받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여러 면에서 만족스러운 수작이었다.
액션도 좋고 악역도 좋았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당연하게도 액션이다. 개인적으로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를 포함한 모든 마블 영화들 중에서 가장 좋았는데, 초반에 나오는 버스 액션신부터 시작해서 중반에 빌딩 액션신, 그리고 후반에 텐 링즈를 이용한 액션신까지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특히 초반에 볼 수 있는 버스 액션신은 역대급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게 잘 뽑혔고, 기가 막히는 OST를 적재적소에 깔아놓은 덕분에 쭉쭉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 액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텐 링즈라는 무기를 굉장히 임팩트 있게 연출한 것도 마음에 들었는데, 원작과는 달리 채찍과 비슷한 용도로 바뀐 것이 약간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화려하고 멋져서 눈 호강 하나만큼은 제대로 해준다. 그리고 양조위가 연기한 웬우라는 캐릭터는 마블 영화 역사상 최고의 악역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빌런이었다. 영화의 서사나 감정선이 샹치에게 향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조위의 연기가 하드캐리를 한 덕분에 웬우의 이야기에도 굉장히 몰입을 하면서 볼 수 있었다.
훌륭히 그려낸 '아버지 살해 신화'
그리고 이야기 또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기본적으로 필자가 '샹치' 류의 스토리, 그러니까 가족 간의 갈등을 다루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이 영화의 이야기 자체가 꽤나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의 기초이자 바탕이 되는 서사인 '아버지 살해 신화'를 단순히 답습하지 않고 뒤틀었다는 점에서 좋았는데, 주로 아버지 살해 신화는 자의적이나 운명적인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전개이다. 그러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이 틀을 부수고, 샹치와 웬우의 갈등을 지극히 '복수'라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묶어놓았다는 점이 재미있다. 먼저 샹치는 어머니가 죽은 후 아버지가 필요했던 자신을 그저 암살자로만 키운 동시에 어머니의 고향까지 쓸어버리려는 급진적인 행동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게 되었고, 웬우는 빌런이 된 것부터가 아이언 갱에 의해 아내를 잃고 아내를 내친 고향에 대한 복수심, 그리고 아내가 죽어갈 동안 방관만 하고 있던 자식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복수심이 이 영화 갈등의 중심이 된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대결을 단순한 선과 악으로 확실히 나누지 않았다는 것이 굉장히 좋았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개인적인 복수심을 가지고 행동했고, 이들의 행동을 쉽게 선과 악으로 명확하게 나눌 수 없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입체감과 무게감이 늘어났다고 본다.
따뜻한 메시지
그리고 이 점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 또한 매우 좋았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주먹을 쥐고 상대의 눈을 마주 보기를 거부했던 사람이 주먹을 펴고 눈을 마주 보게 되는 과정을 마블식으로 뭉클하게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샹치와 웬우 모두 복수심에 눈에 멀어 서로의 눈을 바라보기는커녕 오히려 주먹을 쥐고 덤비기만 했지만, 그랬던 두 인물이 과거의 아픔(아내, 어머니의 사망)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고, 아들을 구한 뒤 손을 펼쳐 텐 링즈를 줌으로써 부자간의 갈등을 해소했다. 그리고 영화는 이 부분을 통해서 이 영화는 서로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서로'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 영화들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비극 스토리를 가장 따뜻하게 풀어낸 '착한 영화'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의미 있는 세대교체
거기다 웬우가 '어둠의 드웰러'한테 죽은 것도 마음에 들었는데, 이 어둠의 드웰러는 과거의 아픔으로 인해 피어난 분노를 상징한다고 본다. 죽은 아내의 목소리를 하고 있고, 무차별적으로 온갖 영혼들을 앗아가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온갖 영혼들을 앗아갔다는 점이 웬우랑 꽤나 닮아있다. 웬우 역시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대며 영혼들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매번 과거의 아픔을 지니며 영혼을 빼앗아가던 웬우가 아내가 진짜 죽은 것이었다는 진실을 알아채게 되고, 그 뒤 자신의 눈을 막고 족쇄처럼 끌고 다녔던 과거의 분노 '드웰러'와 함께 다음 세대들에게 미래를 맡기며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드웰러가 수면 위에서 죽는 장면, 마지막 장례식 장면) 그리고 웬우가 과거에 짊어지고 다녔던 무기인 텐 링즈가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면서 이 영화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의미 있는 세대교체를 이루어낸다. 또 과거의 분노를 상징하는 어둠의 드웰러가 주먹이 아닌 주먹을 편 손에 의해 죽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오리엔탈리즘 없음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동양인의 스테레오 타입은 한 번도 묘사가 되지 않으며 ('데스 딜러'에 대한 묘사가 지적이 되던데, 닌자 가면이 아닌 중국의 경극 화장 가면이다.), 심지어 동양인에 대한 편견도 강하게 비판을 하고 있다. 영화 초반부에 샹치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애가 샹치에게 '헤이, 강남스타일!'이라고 하자 '나 한국인 아니야, 멍청아.'라는 말을 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는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거기다 영화 후반부에 볼 수 있는 다양한 동양 생명체들과 설정들, 동양 신화를 잘 담아낸 걸 보면 제작진들이 사전조사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구미호를 미국 영화에서 보게 될 줄은...) 다만 의외로 오리엔탈리즘 범벅이라는 혹평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의견은 존중할 수 있으나 도저히 동의는 못하겠다.^^;; 동양 신화를 다루면 그걸 다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머리라고 해서 다 전두환이 아니듯이, 동양 신화를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오리엔탈리즘이라 혹평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플래시백
더불어 플래시백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영화를 재미없게 본 사람들 중 대부분은 지속적으로 나오는 플래시백이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첫 번째 볼 때는 플래시백의 문제를 잘 느끼지 못했는데, 두 번째 봤을 때서야 몰입감이 약간씩 뚝뚝 끊긴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플래시백을 마냥 비판만 할 수는 없는 게,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의 플래시백은 단순히 전개의 편의성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닌, 샹치의 심리를 묘사하는 장치 중 하나로 사용된다. 이 영화에서 샹치는 이야기가 진행이 되면 될수록 어렸을 적의 기억들을 하나하나씩 되찾아간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걸 반영하여 중간중간 플래시백을 넣어 작품 자체가 샹치의 머릿속을 담은 것마냥 과거 스토리와 현재 스토리를 교차편집하며 진행된다.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철저히 개인에 몫이지만, 필자는 현재의 의문을 과거로 답해주는 형식 같기도 해서 꽤나 마음에 들었다.
부족한 개연성, 지루한 중반부
이렇게 액션, 비주얼, 이야기, 메시지 전부 다 좋았는데, 아쉬운 부분도 당연히 있었다. 일단 첫 번째로 개연성의 부족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텐 링즈라는 조직은 대체 어떻게 해서 비밀은 지켜왔는지 모르겠다. 무려 샹치의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반인인 케이티를 비밀조직인 텐 링즈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훤히 보여준다던가, 얼굴 없는 생명체인 '모리스'는 대체 어떻게 해서 지하 감옥까지 오게 된 건지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모리스가 사는 '탈로'에서부터 지하 감옥까지 거리가 엄청나게 멀다.), 동물인 모리스와 인간인 트레버는 어떻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지, 텐 링즈는 또 어디서 난 건지를 영화가 제대로 설명을 해주질 않는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엄연히 영화의 부재가 '텐 링즈의 전설'임에도 불구하고 속편을 위해서 기원조차 다루지 않았다는 게 참 별로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야기의 템포가 느려지는 탓에 지루해지는 중반부다. 초반만 하더라도 영화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덕분에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몰입한 채로 봤는데, 주인공 일행이 텐 링즈로 가는 순간부터 이야기의 템포가 지나칠 정도로 느려지는 게 작품에게 큰 독이 되고 말았다. 물론 샹치의 내적 갈등을 제대로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였겠지만, 결과적으로 지루해졌다는 점에서 뼈아픈 선택이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전형적으로 변한 마블 서사 구조
그리고, 어쩌면 요즘에 나오는 모든 마블 영화들에게 해당되는 문제점인데, 바로 영웅 서사의 구조가 다른 마블 영화들과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주인공의 평범한 삶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다가, 중반쯤에 가서는 사건이 터지며 오로지 주인공만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 내적 갈등이 나오고, 후반에 가서는 히어로가 각성하여 액션 한 방 터트려준 다음 해피엔딩으로 가는 구조가 이제는 너무나 지겨워졌다. 물론 누군가는 히어로 영화라면 이러한 구조는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불과 2018년에 이 구조를 탈피해낸 영화가 마블에서 나왔다. 바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인데, 25편이나 되는 시리즈에서 일반적인 틀을 깬 영화가 겨우 1편이라는 점이 참 아쉬울 따름이다. (다만 '인피니티 워'는 애초에 '엔드게임'을 위한 전편이기 때문에 배드 엔딩으로 가는 건 당연한 것이기는 했다.^^;;) 그리고 DC나 폭스로까지 나아가면 [다크 나이트]도 있고 [로건]도 있다. 거기다 심지어 [아쿠아맨]도 주인공을 시작부터 사기캐로 만들면서 이러한 서사 구조를 약간씩이나마 비틀었다. 물론 이러한 점에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도 돋보이는 면은 있다. 샹치라는 캐릭터의 능력치를 처음부터 최대치로 찍어놓은 덕분에 마블 1편에서 보기 힘든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초반부터 버스에서 무쌍을 찍는다거나, 3편에나 가서야 활용할법한 용이 나오는 등) 그러나 [아쿠아맨]을 통해서 이미 한번 본 탓에 큰 신선함은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 참 아쉽다. 부디 이번에 나올 [이터널스]가 이러한 구조를 깨는 또 하나의 마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결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반중 감정 때문에 저평가 받고 있는 게 참 아쉽지만, 간만에 제대로 나온 마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마블 단독 영화를 보고 만족한 적은 2018년 이후로 처음이라 개인적으로 더더욱 애정이 가고 기특해 보이는 작품이다.^^
평점: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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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러드 심플 - 코엔 형제
블러드 심플 - 코엔 형제
코엔 형제의 영화는 이미 데뷔작에서 완성되었다. 이후의 작품은 모두 데뷔작의 변주곡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코엔 스타일’은 처음부터 완벽하다. 이렇게 뛰어난 작품으로 감독 데뷔를 한 사람은 테렌스 멜릭, 장 뤽 고다르, 짐 자무쉬, 프랑수아 트뤼포, 쿠엔틴 타란티노, 스티븐 소더버그, 장준환 감독 등이 떠오른다.
코엔 형제가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이렇다. 작은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둘러싸고 사람들 사이에 오해가 생기거나 서로를 믿지 못하는 우연한 사건들이 연결된다. 우연과 실수, 난감한 상황 등이 결합하면 드물게 범죄가 발생한다.
그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은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이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어처구니 없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보인다. 이것이 코엔 형제가 노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비극과 희극의 구분과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 우연한 사건이 개입 또는 발생하고, 삶은 그런 작은 사건들의 연속을 통해 이어지며, 삶과 죽음의 무게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픈 것이다.
애비(프란시스 맥도먼드)는 남편 마티(댄 헤라야)이 있지만, 남편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일하는 직원 레이(존 게츠)와 불륜 관계다. 이들이 타고 가는 차에서 두 사람의 옆모습은 극도로 클로즈업되어 있고, 그 뒤로 아웃포커스된 유리창으로 빗물이 흐른다. 이 불투명한 유리창처럼 두 사람의 미래는 불안하다.
마티는 사립탐정 로렌 비저(에멧 윌쉬)를 고용해 아내와 직원의 불륜 사실을 확인한다. 보통의 남자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영화 '해피엔드'에서 서민기(최민식)은 학원을 운영하는 아내 최보라(전도연)가 학원강사와 불륜 관계라는 걸 알게 되지만, 자신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를 '해피엔드'에서 잘 보여주고 있는데, 더구나 이 부부에게는 어린 자식까지 있는 상황이다. 무능한 남편이라는 자책과 낮은 자존감까지 서민기를 내리누르면서, 배신, 좌절, 분노의 감정이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처럼 쌓여간다.
하지만 미키는 그렇게 냉정하거나 잔인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아내가 다시 돌아와 주길 바라고 있고, 직원 레이는 해고하면 그만이다. 그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유지하고픈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대화로 원만하게 문제를 풀어가려 하지만, 아내는 미키를 무시하고, 직원 레이는 두 주일치 임금을 달라고 떼를 쓴다. 아내의 뻔뻔한 태도와 시건방진 직원 레이의 행태를 보면서 마티는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다.
미키는 다시 지난 번 의뢰했던 사립탐정 로렌 비저를 찾아가 두 사람(아내와 레이)을 죽여달라고 청부한다. 로렌 비저는 마티에게 한 사흘쯤 낚시나 하고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밤이 되어, 레이의 집에서 동침하고 있는 현장을 창문으로 바라보고, 장면이 바뀌어 로렌 비저는 미키의 술집 사무실에서 미키에게 흑백사진을 건넨다. 그 사진에는 직전에 보였던 애비와 레이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는 장면에, 총에 맞아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사건은 단순하고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우연과 욕망이 개입한다. 미키는 약속대로 사립탐정 로렌 비저에게 1만 달러를 건넨다. 두 사람을 죽이면 1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고, 현금을 건넸으니 약속을 완벽하게 이행한 것이다. 하지만 로렌 비저는 미키를 살해한다. 왜? 코엔 형제의 영화는 아주 작은 부분, 별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부분에서 발단한다. 미키가 사립탐정 로렌 비저에게 첫번째 일을 맡겼을 때, 즉 아내를 미행해 아내와 직원 레이의 불륜 장면을 확인하라고 했을 때, 로렌 비저는 그 일을 잘 해냈고, 미키는 약속한 돈을 주었다. 이때 미키가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 있는데, 그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지만, 로렌 비저는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미키가 금고에서 돈을 꺼내는 장면을, 그리고 금고 안에 현금이 꽤 많이 있었던 것을.
로렌 비저는 미키의 부탁으로 애비와 레이를 죽이고, 증거 사진을 미키에게 보여주는데, 이 사진이 조작한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미키는 순순히 1만 달러를 금고에서 꺼내 로렌 비저에게 건네는데, 이것만 봐도 미키는 천성이 나쁜 인간은 아니다. 증거를 완벽히 없애려면 미키가 로렌 비저를 다른 장소에서 살해하는 것이 더 깔끔할텐데, 미키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로렌 비저는 탐욕으로 미키를 살해하고 금고를 털어 달아난다. 그리고 미키의 사무실을 찾아온 사람은 레이. 밀린 주급을 달라고 한밤중에 온 것이다. 심상치 않은 느낌으로 사무실을 들어선 레이는 미키가 총에 맞아 죽은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두 번째 미세한 장치. 로렌 비저가 미키를 죽일 때 쓴 총은 애비의 핸드백에서 꺼낸, 애비의 총이었다. 이건 로렌 비저가 계획한 것으로, 애비와 레이의 뒤를 밟으면서 애비의 핸드백에서 권총을 훔쳤고, 그 총으로 미키를 살해하면, 당연히 애비는 살인범으로 잡혀 처벌받을 것을 계산했다. 로렌 비저는 금고의 돈과 살인청부 비용으로 받은 1만 달러까지 두둑하게 챙기고 사라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레이도 애비의 권총을 알고 있었기에, 미키의 사망과 그의 의자 옆에 놓인 애비의 권총을 보는 순간, 애비가 먼저 와서 미키를 죽였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레이가 해야 할 일은? 레이는 미키의 주검을 차에 싣고 밤길을 달려 으슥한 곳에 매장하려는데, 놀랍게도 미키는 죽지 않고 살아난다. 총을 맞아 심하게 부상 당했지만, 어떻든 미키는 의식을 차리고, 차에서 내려 기어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병원에 데려가 충분히 살릴 수 있지만, 레이는 애비가 죽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키를 살려둘 수 없는 상황이다. 살아 있는 미키를 땅을 파서 산 채로 묻고 새벽에 그곳을 떠나는데, 미키가 묻힌 밭에서 가까운 곳에 집이 있었다. 즉, 레이는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으슥한 곳을 찾아 시신을 묻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누군가의 집앞에 미키를 암매장한 것이다. 이건 의도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보여준다.
레이는 사무실에서 미키가 흘린 피를 닦아내고, 살인의 흔적을 모두 지운 다음, 집으로 돌아간다. 애비가 레이를 찾아왔을 때, 레이는 애비가 한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을 하지만 정작 애비는 레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당연하다. 애비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걸 관객은 알게 된다.
적어도 레이가 애비를 사랑하는 건 맞다. 애비가 남편 미키를 죽였어도 그녀를 위해 증거를 없애려 최대한 노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미키의 실종이 드러날테고, 그러면 경찰이 수사를 시작해 애비와 레이는 당장 용의자로 지목될 것이 분명하다. 증거는 나오지 않겠지만, 정황으로보면 두 사람은 강력한 용의자가 된다. 어떻게든 두 사람에게는 불리한 상황이다.
여기서 세 번째 장치. 사립탐정 로렌 비저는 살인을 청부한 미키에게 사흘 정도 낚시나 하고 오라고 말한다. 미키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다. 로렌 비저가 애비와 레이를 죽이고(사실은 죽이지 않고) 미키의 사무실에서 만나 돈을 받고 나서 미키를 죽일 때, 탁자 위에 로렌 비저는 자기가 아끼는 라이터를 올려 놓았고, 그 위에 미키가 낚시로 잡아온 물고기가 라이터를 덮고 있었다.
미키를 죽이고, 금고를 털어 집에 돌아온 로렌 비저는 담배를 피우려다 라이터가 사라진 걸 깨닫는다. 그리고 라이터는 지금 미키의 사무실 탁자 위에 놓여 있다는 것도. 이 라이터만 잘 보관했다면, 로렌 비저는 깜쪽같이 이 사건에서 사라지고, 애비와 레이가 덤터기를 쓸 것이 분명하지만, 라이터의 존재는 이 모든 인과관계를 흐트러뜨리고 뒤섞이며, 관계와 시공간을 얽히도록 만드는 촉매로 작용한다.
미키의 사무실에서 라이터가 발견되면, 당연히 용의자는 로렌 비저가 된다. 그는 레이의 뒤를 밟아 레이와 애비가 함께 있을 때 두 사람을 모두 죽이려 한다. 두 사람 가운데 누군가 자신의 라이터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짐작한 것이다. 로렌 비저는 레이를 죽인다. 여기서 레이는 미키를 산 채로 매장한 벌을 받는다. 그리고 로렌 비저는 애비의 총에 맞아 죽는다. 미키와 레이를 죽인 벌을 받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 적절한 보상이나 처벌을 받게 된다는 걸 코엔 형제는 인과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미키는 아내와 직원 레이를 죽여달라고 청부한다. 물론 불륜을 저지른 아내와 직원 레이의 행위는 나쁘지만, 그것이 죽어야 할 정도인가를 묻는다. 로렌 비저는 사람들의 뒤를 캐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버는 인간이다. 그가 미키를 죽인 이유도 금고에 있는 돈 때문이었고, 자신의 범행을 감추려고 레이와 애비도 죽이려했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행동하는 배경과 서로의 관계를 추동하는 것은 의외로 작은 물건이다. 사진, 금고, 라이터, 물고기, 세면대에서 떨어지는 물 등 사물의 존재가 인간의 행위를 추동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행위와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 단지 '합리적 이성'이라고 믿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걸 코엔 형제는 보여준다.
인물들은 모두 자기가 생각하거나 계획 또는 예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이거나 맞닥뜨린다. 뜻하지 않은 상황의 변화 앞에서 어떤 사람은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고 돈을 훔치거나(로렌 비저), 어떤 사람은 시신을 차로 옮기려다 살아난 사람을 다시 죽이거나(레이), 사람을 죽여달라고 청부했다가 오히려 자기가 죽는(미키) 상황에 놓인다.
이것은 마치 '나비의 날개짓'과 같아서, 어느 한쪽에서 움직인 의도가 파장을 일으키며 다른 쪽에 영향을 주는 것과 같다. 미키의 의도는 로렌 비저를 움직이고, 그 결과에 따라 레이가 영향을 받았으며, 애비에게도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간다. 가벼운 말 한 마디,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 하나가 사건을 일으키고, 그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거대한 형태로 변한다. 대부분 인간의 삶이 의도나 계획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불특정하고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는 인간의 존재는 규정할 수 없는 불확실한 존재라고 코엔 형제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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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호실] 다들 당시에는 모르는 마음들이 있으니까
aftersun(2022)
첫 장면부터 관객에게너 이 영화 좋아하게 될 걸? 너 마음에 박히게 될 걸? 하고 통보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어떤 영화는 러닝타임을 따라갈 수록 그 감동이, 여운이, 감정이 올라오게 한다.
애프터썬은 완벽히 후자의 경우를 따른다.
사실 영화가 시작된 이후로 큰 감동이나 감정이 찾아오지는 않았는데 영화의 중반부에 다다르자 아, 이 영화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가 느껴지고 후반부에 이르면 음악의 힘을 받아 성인이 된 소피의 마음을 따라가게 된다.
이렇게 감정을 고조시키는 데에 사운드트랙이 큰 역할을 했다. 모든 사운드트랙이 다 좋았다! 삽입된 씬과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도 정말 좋았음. 영어가사에 익숙했던 곡들이 한글 자막으로 스크린에 비춰지고 그 글자들이 화면과 어우러지면서 단순히 화면만 존재할 때보다 감정이 더 큰 파도로 찾아오는거야. 특히 Queen, David bowie의 under pressure.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걸 알지만 모국어인 한글로 가사를 읽을 때 느껴지는 직관적인 느낌을 크게 받을 수 있었다고 해야하나. 영화 보고 집 가는 내내 under pressure를 들으며 소피와 칼럼의 불안이 밑에 깔린 행복한 시간을 머릿속에서 돌려보게 되는 그런 사운드트랙이었다 이 음악 때문에 영화가 더욱 좋아지는 그런.
사실 친절한 영화는 아니고 계속 영화에 집중해서 따라가고 또 생각해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그 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건 한 시간 반 동안 쌓아온 소피, 칼럼의 이야기와 감정을 마지막 10분 동안 관객들이 마음에서 같이 열어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제 막 커가면서 새로운 것들을 궁금해하고 경험하는 소피. 소피가 이제 막 해가는 것들을 이미 다 해보고 잠깐 흔들리는 중인 칼럼. 서로 이해하는 부분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두 명의 여행이 아름답고 행복해보였다.
캠코더로 계속해서 아빠의 모습을 담으려 하던 소피는 열한살에는 몰랐겠지 아빠가 무슨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성인이 되어 그 영상을 재생해 이미 눈으로 봤던 광경을 다시 한 번 보면서는 그제서야 칼럼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다들 당시에는 모르는 마음들이 있으니까
그 마음을 되새기며 다시 한 번 더 과거를 재생해 보면 또 새롭게 칼럼과 떠났던 튀르기예 여행을, 칼럼을 생각할 수 있겠지. 여운을 깊게 주는 영화 참 좋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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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크리처> 파트 1 | 경성은 있는데 크리처는 없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경성에서 제일가는 전당포 주인 '장태상'(박서준). 경성 최고 셀럽으로 화려한 삶을 누리던 그는 1945년 봄, 느닷없이 역경에 빠진다. 경무국장 '이시카와'(김도현)가 그의 목숨과 재산을 뺏어버리겠다고 협박한 것. 그의 아내 '마에다 유키코'(수현)가 숨긴 자기 애첩 '명자'(지우)를 벚꽃이 질 때까지 찾아내지 못한다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장태상은 모든 연락망을 동원해 명자의 행방을 수소문하지만, 좀처럼 그녀에 대한 정보를 찾지 못한다. 결국 도움을 받기로 결정한 그는 만주에서 제일가는 토두꾼 '윤채옥'(한소희)과 '윤중원'(조한철) 부녀와 계약을 맺는다. 그들의 도움 덕분에 일본군 병원인 옹성병원에 명자가 갇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태상은 직접 그녀를 빼내오려 한다. 병원 지하실에 일본군이 만든 괴물이 있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한 채.
크리처물의 딜레마
괴수물, 넓게는 크리처물은 언제나 딜레마에 직면한다. 장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과 일반 관객이 기대하는 바가 엇갈리기 때문. 전자는 괴물이 얼마나 강하고 독특한지, 괴물 혹은 인간과의 싸움이 얼마나 스릴 넘치는지를 따진다. 등장인물의 서사, 인간 캐릭터의 완성도는 뛰어나면 플러스 알파이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다.
반면에 일반 관객은 크리처물이나 괴수물을 볼 때 당황하기 쉽다. 일반적 작법을 자주 벗어나니까. 서사의 개연성과 핍진성이 과하게 부족하거나, 인간 캐릭터가 단지 괴물을 소개하기 위한 도구로 소비되는 식이다. 일례로 괴수들의 액션에 집중한 <고질라 VS. 콩>은 일반적 관점에서 완성도를 등한시한 범작이다. 반면에 장르 팬이 보기에는 더 바랄 것 없는 선물이다.
시즌 1과 2를 통틀어 제작비 700억을 투입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도 딜레마를 피하지는 못했다. 이 드라마는 <미스터 션샤인>과 <스위트홈>을 섞으려 했다. 1945년 봄 경성을 살아가는 조선인의 애환과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괴물과의 싸움을 그려냈다. 하지만 파트 1만 놓고 보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시도는 실패에 가깝다. '경성'은 살렸지만, '크리처'물로서의 정체성은 약해졌기 때문이다.
1945년 경성 사람을 그려내다
<경성크리처>의 기초공사는 일견 착실하다. 참신하다고는 못해도, 시기의 특수성을 나름 적절히 활용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제의 침입이 본격화된 1900년대 초나 일제의 수탈이 한창인 1920년대나 30년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항일운동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기에 용이하므로.
<경성크리처>는 다르다. 1945년의 봄을 보여준다. 일본의 패망이 임박한 시기가 배경이다. 물론 화려한 금옥당을 비롯한 거리 모습은 물자 배급이 시행되던 실제 역사와는 차이가 있다. 다만 그 시대의 사람들을 그려내려고 애쓴다. 옹성병원에서 붙잡힌 장태상과 거래하는 일본군 장교가 대표적이다. 그는 경성에서의 삶이 이미 익숙하다며, 태상을 풀어주는 대신 일제의 패망 이후 조선 정착을 도와달라고 제안한다.
이에 더해 <미스터 션샤인>처럼 독립운동을 묘사하는 방식도 눈에 띈다. <미스터 션샤인>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캐릭터가 당연히 조선 독립을 원하는 뻔한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진 초이, 구동매, 김희성처럼 조선을 증오하거나 방관하던 이들이 고애신의 조선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돌리는 이야기였기에 흥미로웠다.
<경성크리처>의 주인공 장태상도 마찬가지다. 그는 같이 독립운동을 하자는 '권준택'(위하준)의 제안을 항상 거절한다. 일본의 일부인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그에게 독립운동은 설령 옳더라도, 자기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의열단의 조력자였던 어머니의 생전 마지막 말이 "살아남아라"이기에 더더욱. 이처럼 <경성크리처>에서는 선과 악을 딱 잘라 말할 수 없게 된 일제 치하의 세월을 녹여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역사를 붙잡은 괴물
그 덕분에 시대극과 크리처물의 조합도 어색하지 않다. 패망 직전이기 때문에 괴물을 만들겠다는 일본군의 발악에는 설득력이 깃든다. 단순히 한 과학자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 하에서 이뤄지는 실험이기 때문. 병원장이 괴물을 길들이거나 대량 생산이 가능한지 묻고, 결과를 천황에게 보고할 것이라는 장면만 봐도 일본군이 이 괴물을 태평양 전쟁 전황을 바꿀 신무기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성크리처>의 상상력은 역사와도 부합한다. 하얼빈에 위치한 731 부대는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조선인 대상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전쟁 말기에는 실험 기록과 시설을 없앤 후 일본으로 도주했다. <경성크리처>는 이 역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했다. 만주를 떠나 경성에서 실험을 이어가거나, 웅성병원 건물 디자인이 731 부대 건물을 닮은 점이 대표적이다.
물론 국내 드라마 기준으로는 클리셰에 가까운 대목일 수 있다. 다만 거시적으로는 인상적인 시도일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간 할리우드 영화는 비밀무기를 개발하거나 찾아내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꿈꾸는 나치 독일을 자주 등장시켰다. <인디아나 존스 5>에서는 나치 잔당이 시간을 되돌리는 기계로 역사를 바꾸려 했다. <캡틴 아메리카> 1편에서도 나치 소속인 레드 스컬과 하이드라가 테서렉트를 이용해 승전을 꿈꿨다.
반면에 같은 추축국이었는데도 일제가 주체인 경우는 많지 않았다. 종전 직후 냉전에서 미국이 일본을 우방국으로 두기 위해 전쟁 범죄를 눈감아 준 역사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731 부대의 연구 성과를 이용하려고 731 부대원의 전범 재판 기소를 면제하거나 거액의 돈을 주기도 했다. 그저 괴물만 괴물은 아닌 셈이다. 그렇기에 <경성크리처>는 승전국이 아닌 과거 식민지의 콘텐츠라서 가능한, 분명 흥미로운 시도다.
문제는 괴물 활용법
하지만 <경성크리처>는 '경성'을 살려낸 것에 비해 '크리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괴물의 등장부터 호불호의 여지가 크다. <경성크리처>는 2014년도 <고질라> 같다. 이 영화는 고질라가 파괴한 도시, 공항, 함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위용을 간접적으로 강조했다. 클라이맥스가 돼서야 고질라를 전면에 등장시켜 방점을 찍었다.
<경성크리처>도 마찬가지다. 괴물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참혹하게 살해되는 일본군과 조선인 희생자들의 리액션을 비춘다. 괴물은 중후반부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일장일단이 있다. 극의 속도를 조절하며 서스펜스를 강화할 수 있지만, 괴물의 활약을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감질날 수밖에 없다.
주인공 일행과 일본군의 비중도 감점 요소다. 괴물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 빈 분량을 드라마는 장태상, 윤채옥과 일본군의 병원 내 추격전으로 대신한다. 크리처물을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울 만하다. 마치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싸움 대신 미군과 디셉티콘이 싸우는 장면만 나오는 <트랜스포머>를 보는 심정과 비슷하다.
괴물 묘사도 일관적이지 않다. 초반부에 괴물은 수많은 일본군을 손쉽게 제압한다. 초인적인 속도와 먼 거리를 넘나드는 촉수 앞에서는 어떤 무기도 속수무책이다. 그런데 정작 두 주인공을 마주한 순간부터 괴물은 속도도, 촉수도 활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무기를 쓰거나 몸을 숨기기에 충분한 시간을 준다. 자연히 긴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괴물과 윤채옥의 신파가 더해지면 극의 전개는 더욱 억지스러워진다.
경성은 있는데 크리처는 없다
주요 플롯 중 하나인 장태상과 윤채옥의 로맨스도 덩달아 부자연스럽다. 극 중 로맨스는 우연적 요소에 기대 급하게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장태상이 윤채옥의 외모 때문에 첫눈에 반했다거나, 운명적인 사랑임을 깨달았다는 식으로. 이는 경성 배경 시대극과 크리처물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방증이다. 드라마가 크리처물 플롯을 살리기 위해 로맨스에 할애할 분량을 줄였기 때문.
결국 <경성크리처>는 무엇을 기대했는지에 따라 첫인상이 갈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경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역사를 활용하는 방식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보는 나름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크리처'를 기대했다면 속 시원하지 못한 전개와 억지스러운 묘사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과연 <경성크리처> 첫 시즌의 남은 에피소드 3개는 첫인상을 바꾸고, 시즌 2의 기대감을 키울 수 있을까?
Poor 형편없음
'경성'크리처냐, 경성'크리처'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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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서니, 영화는 시(poetry)이자 모호함(ambiguity)이다." 저는 항상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브레이킹 아이스> 안소니 첸 감독 인터뷰 (2)
1편에서 이어집니다.
씨네랩 | 특히, 전작 <일로 일로>는 감독님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들었는데요. 감독님의 작품들은 언제나 사적인 감정에서 출발하지만,그 안에 보편성이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브레이킹 아이스> 역시 본인의 청춘과 닮아 있는 지점이 있을까요? 더불어, 개인적인 기억을 영화로 확장시킬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소니 첸 | 솔직히 말해서 <브레이킹 아이스>가 제 청춘을 많이 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이 시대의 청년들을 담아내려고 했고, 그 세대가 제 세대와는 정말 많이 다르다고 느꼈거든요. 저는 80년대에 태어났지만, 90년대나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와는 정말 다르다고 생각해요. 70~80년대 세대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세대였어요. 그냥 계속해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세대였죠. 그래서 저는 요즘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행하는 '탕핑(躺平, 누워서 산다)' 현상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궁금했어요. 왜 사람들이 일을 멈추고, 꿈을 멈추고,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걸까? 제 세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또 나아갔으니까요.
제가 기억하기론, 정신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사실 불과 10년 정도밖에 안 되었어요. 예전에는, 예를 들어 상사에게 혼이 나더라도 그냥 참아내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나갔거든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내 정신 건강을 챙겨야 해요”라고 말하는 걸 자주 듣게 돼요. 실제로 포스트 프로덕션 회사에서 회의 중에 어떤 젊은 친구가 갑자기 회의실을 나가더니 우는 걸 보기도 했죠.
이런 차이를 이해해 보려 노력하기도 했고, 특히 영화를 팬데믹 기간 중에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심리에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팬데믹 동안 저도 꽤 우울했거든요. 그 불안감, 우울감, 그리고 환멸감을 저 또한 강하게 느꼈어요. 그래서 이 세대의 청년들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사실 제 청춘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저는 2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학생일 때 결혼했거든요. 그래서 어떤 모험을 즐긴다거나 삶을 허비하는 식의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했죠. 그래서 이 영화는 저에게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다시 젊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또 작품에는 두 개의 내러티브가 있잖아요. 하나는 카메라 앞에서 배우들이 재미있게 연기하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카메라 뒤에서 저와 배우들이 매일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시간이죠. 마치 제가 이 젊은 세대의 일부가 된 것 같았어요. 팬데믹 동안 우울했던 제가 다시 젊음을 되찾은 것 같은…
씨네랩 | 특히, 영화 속 세 인물의 청춘은 모두 다르게 그려지고 있는데요. (꿈에 좌절한 청춘(나나), 타인의 기대에 맞춰 버겁게 달리다 탈이 난 청춘(하이펑), 주어진 삶만 살아내다 의미를 잃은 인물(샤오)를 통해 ‘청춘의 불안’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났던 것 같은데, 세 인물 중 가장 공감가는 인물과, 그리기 가장 어려웠던 인물은 누구였는지 궁금합니다.
안소니 첸 | 저는 '하오펑'을 담아내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정신 질환을 다루는 게 정말 어렵다고 늘 생각했거든요.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을 영화에 담아내는 건 어려운 작업이니까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촬영하면서 점점 더 그(하오펑)와 연결되어 갔어요. 우울과 그의 싸움이 제 싸움처럼 느껴졌거든요. 팬데믹 기간에 제가 느끼던 바로 그 감정들과 씨름하고 있었던 거죠.
아시다시피, 저는 정말 그와는 접점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떤 지점에서 그와 연결된 거죠. 사실 저는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라서, 삶이 저를 절대 쓰러뜨릴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거야, 계속 갈 거야'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그를 촬영하면서, 이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들에 깊이 공감하게 됐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저는 그게 팬데믹 기간 동안 저 자신, 즉 영화감독으로서 겪었던 위기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게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야만 했어요. 영화관이 문을 닫았을 때, 정말 너무 막막했거든요. 언제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싶어서 너무 혼란스러웠죠. 아시다시피 저는 잔잔하고 절제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장르 영화나 공포 영화, 대작 같은 걸 만드는 감독이 아니거든요. 흥행 위주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아니고요. 저는 정말 조용하고 섬세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별다른 사건이 없는 작고 조용한 영화를 보러 극장을 다시 찾게 될 때, 과연 제가 영화감독으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약간의 위기나 우울증 같은 것에 빠졌던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새로운 출구를 찾는 거잖아요. 이 영화가 저에게는 새로운 출구였습니다.
이 영화는 제가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저 자신에게 말했어요. 제 첫 두 편의 영화는 싱가포르에서 만들었는데, 이제 제가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고향으로 돌아가, 저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을 거라고 저 스스로 다짐했거든요. 그래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땅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기후에서 영화를 만들도록 스스로 다그쳤습니다. 같이 일해본 적 없는 새로운 스태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고요. 익숙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보통은 늘 같은 조감독이나 같은 배우들 한두 명이 있었고, 편안함을 주는 익숙한 사람들이 있기 있었죠. 하지만 이번엔, 그냥 저 자신을 그 밖으로 끌어냈고,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영화를 만들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고요.
씨네랩 | 저희는 특히, 단군신화가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웠는데요. 영화가 “불안한 청춘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인 만큼, 100일의 인고 끝에 갈망하던 사람이 된 곰의 서사가 청춘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타국의 신화의 어떤 지점이 흥미로웠는지, 극으로 발전시키는데 고민은 없으셨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안소니 첸 | 음, 중국엔 ‘장백산’이 있고, 아시다시피 한국에는 ‘백두산’이 있잖아요. 산을 처음 본 순간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어요. 저와 제 프로듀서가 함께 그 산을 올랐던 기억이 나는데, ‘천지’라고 불리는 호수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더라고요. 정말 감동적이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이걸 꼭 영상으로 담고 싶었고, 이곳을 배경으로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산에 대해 조사를 많이 해봤는데, ‘곰’에 관한 이 전설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리고 유명한 한국 노래 ‘아리랑’과도 연결되어 있고요. 그 신화에 대해 더 자세히 읽어봤을 때, 사실 예전에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모든 세부 사항은 알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곰이 인내하고 견뎌내서 결국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했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동했어요. 정말 시적이고 감동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걸 현실로 가져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본을 쓸 때, ‘우리는 그냥 전설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직접 곰을 보여줄 거야’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고요. 저는 ‘나나’라는 인물의 캐릭터와 이 ‘곰’ 사이에 어떤 유사점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나나가 자신의 실패를 마주해야 하는데, 그 서사에서 위안을 얻거든요. 저는 그 경험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감동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네, 저는 그 신화가 지닌 문화적, 정치적 의미나 부담 같은 건 크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게는 그 신화 자체, 그 전설 자체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감동적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곰’을 영화 속에 데려오는 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씨네랩 | 그리고 영화에 아리랑이 등장하죠. 아리랑을 듣는 세 청춘의 모습을 보면서, ‘승화’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승화’는 에너지를 전환하는 개념인 만큼, 물리적, 심리적인 측면에서 모두 활용되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감독님이 영화를 비유할 때 사용하신 얼음이 가지는 물리적인 성질과 세 인물들이 여러 경험을 통해 얻는 심리적인 변화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을 담고 있는 아리랑이 정말 알맞은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감독님께서는 ‘한’과 ‘아리랑’을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어떤 의미로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안소니 첸 | 네, 백두산에 관한 글을 읽어보다가, 그 민요(아리랑)가 백두산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리랑은 여러 버전이 있잖아요. 그런데 아주 초기 버전에 ‘가장 추운 겨울에도 백두산에는 꽃이 피어난다’는 구절이 있었어요. 그 구절이 너무 감동적이었고, 영화에 꼭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캐스팅팀에게 이 곡에 맞는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죠. 그들이 그 가수를 찾아주었고, 그녀를 캐스팅하고 녹음을 진행했어요. 저는 노래가 위로가 되면서도 동시에 좀 애절하고, 씁쓸한 느낌이 들게 불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복합적인 방식으로 당신을 감동시키는 목소리를 찾는 게 중요했습니다.
제가 항상 믿어왔던 것이기도 하고, 영화 학교 시절, 파벨 파블리코프스키라는 정말 훌륭한 폴란드 감독님께 배웠죠. 그는 영화 <이다>로 오스카를 받았고, 칸에서도 상영된 <콜드 워>라는 영화를 만들었죠. 그분이 영화 학교에서 저에게 늘 말씀하셨어요. "앤서니, 영화는 시(poetry)이자 모호함(ambiguity)이다." 저는 항상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질 때 영화는 정점에 도달할 수 있죠. 제가 하려고 했던 것도 바로 그거였습니다. 저는 항상 시와 모호함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그 모호함은 '이건가? 아니면 저건가?' 같은 질문에서 오는 거죠. 흑백처럼 명확하지 않다는 거예요. 영화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회색 지대'에 있을 때 나타나죠. 뭔가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완벽히 이해하거나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지대요.
그게 파벨 감독님이 학교에서 저에게 가르쳐주신 거고, 아, 사실 저는 최종 편집본을 확정하기 전에 항상 감독님께, “감독님, 바쁘신 거 알지만, 편집을 마쳤어요. 2일 안에 봐주실 수 있나요? 제가 최종 편집본을 확정해야 해서요.”라고 말하며 편집본을 보내드려요. 그리고 감독님은 항상 저를 위해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씨네랩 | 감독님께서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셨는데, 이 부분이 이후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을까요? 질문 드린 이유는, 감독님께서는 작품 간 텀이 긴 편인데, 작품 구상이나 시나리오 작업 등을 긴 호흡으로 작업하는 걸 선호하시는 걸까요?
(*안소니 첸 감독은 2013년 영화 <일로 일로>를 통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했다.)
안소니 첸 | 예전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하곤 했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정말 특별한데, 어느 순간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충동이 확 일어났거든요. 팬데믹 동안 2년 내내 집에만 앉아 있는 게 너무 지겹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영화감독으로 존재해야 해. 내가 아직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느껴야 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죠.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중국에 있는 제 프로듀서 파트너에게 연락해서 "영화 만들 겁니다!" 했더니, 그가 "무슨 영화요? 대본 있어요?" 묻더라고요. "아니요" 했죠.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정말 미친 일이었어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있었고, 한겨울인 12월에 촬영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8월이었습니다! 12월 1일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아이디어는 8월에 떠올렸고, 10월 4일에 중국으로 날아갔어요. 그리고 21일 동안 격리까지 해야 했죠. 그 이후에 백두산을 직접 오르고, 연길의 모든 장소를 답사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을 제가 직접 전화로 캐스팅했어요. 중국에서 정말유명한 배우들이라 보통은 굉장히 바쁘거든요. 그런데 팬데믹 기간 중에는 사람들이 비교적 한가하다는 걸 알게 됐죠. 일이 줄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말 그대로 전화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12월에 시간 되세요?" 했더니 그들이 "네" 하더라고요. 아마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답사까지 마친 다음에도 완전한 대본이 없었어요. 조금 더 확장된 스토리와 트리트먼트 정도만 있었죠. 그리고 상하이로 돌아갔는데, 배우들이 다 저를 만나러 날아왔던 게 기억나요. 다 같이 점심을 먹었습니다. 세 명 모두요. 중국에는 개별 룸이 많은데, 거대한 원형 테이블에 주동우 배우를 비롯해서 세 배우가 앉아 있었죠. 그들 뒤편에는 매니저들이 있었고요. 점심을 먹는데 그들이 묻더라고요. "그래서 대본은 있나요?" 그때는 이미 10월 말이었죠.
아직 대본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하자, '아, 그럼 스토리가 뭐예요?' 이런 분위기였죠. 그래서 제가 스토리를 들려주기 시작했어요. '피겨 스케이터가 있는데, 투어 가이드로 일하고... 그리고 누구랑 같이 산에 올라가는데, 그러고 나면 이런 일이 벌어지고, 곰을 만나고... 그리고 아주 감동적인 순간이 있고...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이런 식으로 장면들을 묘사해줬어요. 어떤 장면은 대본이고, 어떤 장면은 그냥 제 머릿속에 있는 거였죠.
그리고 마지막에 그들이 저를 보더니 '와, 정말 시적이고 감동적으로 들리네요. 그런데 대본이 없잖아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들에게 물었죠. "그래도 이 영화 하실 거예요?" 그랬더니 다들 "네" 하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매니저들은 다들 "아아아아..." 이런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완전히 망할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렇게 모든 사람들을 설득한 거죠.
결국, 촬영 10일 전까지 아무도 대본을 읽지 못했어요. 제가 촬영 10일 전에 최종 대본을 완성했거든요. 그때 연길에 있었는데, 12월 1일에 촬영을 시작했으니 11월 한 달 내내 연길에 있었던 거죠.정말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11월 20일 오전 9시에 대본을 끝냈습니다. 잠을 안 잤죠.
낮에는 장소 답사를 하고 회의를 하면서, 대본을 쓰고 쓰고 또 썼죠. 그 사이에 배우들이 베이징에서 연길로 출발했고, 매니저들이 '지금 출발하는데, 대본을 볼 수 있을까요?' 묻는 겁니다. 프로듀서는 '아, 아직 대본이 준비가 안 됐어요. 10시에 드릴게요'라고말했고, 배우들이 탄 비행기가 오후 3시에 도착했죠. 마침내 제 대본이 완성되었을 때, 팀 전체가 복사하느라 바빴습니다. 아무도 대본을 읽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복사하고 복사하고 또 복사하고... 그리고 저녁 7시가 됐죠.
호텔 방에 배우들, 촬영 감독, 프로듀서, 각 부서 팀장들, 미술 감독까지 다 같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대본을 처음으로 읽었죠. 특히 배우들이 대본을 읽고, 또 읽고, 많이 읽더라고요. 많이 다른 캐릭터들이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에 촬영 감독님이 "와, 이거 정말 감동적이고 아름답네요"라 말했고, 저는 "좋아요, 그럼 이제 촬영합시다!" 외쳤습니다. 네, 촬영 시작 10일 전에 대본이 완성되었던 거였죠.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에필로그)
인터뷰를 진행하며 안소니 첸 감독님의 MBTI도 살짝 엿볼 수 있었는데요. 확신의 E(외향형)일 것 같았지만, 역시나 E(외향형)이었던 감독님. 관련한 일화도 들어봤습니다.
안소니 첸 | (MBTI 아시나요?) 네, E랑 I 같은 거요. 압니다. 제가 고등학교 16살 때 MBTI 테스트를 해봤어요. 기억은 나는데, 제가 완전 외향형(E)이라는 건 확실히 기억나거든요. 나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외향형인 건 분명해요.
제가 만든 영화 중에 가장 미친 영화였어요. 상하이 격리 호텔에서 대본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첫 주가 지난 후에, 어느 시점에 싱가포르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어요. "나 정말 큰일에 휘말린 것 같아. 이 배우들을 다 영화에 참여하게 했는데, 대본이 안 나오고, 완성된 대본을 만드는 게 너무 힘들어." 그냥 '프로젝트 취소한다고 하고, 코로나에 걸렸다고 말해버릴까?' 싶었죠. 코로나 걸렸다고 하는 게 최고 변명이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기억나는 게, 친구들이 제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야, 네가 이 미친 영화를 만들겠다고 도전을 시작했으니, 그냥 끝내야지."라고요. 그래서 그냥 밀어붙였습니다.
정말 미친 모험이었죠. 제 인생에서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아마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아요. 매일 심장마비 올 것 같았거든요. 아시다시피, 너무 불확실하니까요. 보통은 대본 하나 쓰는 데 2년 정도 걸리거든요?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정말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나의 아파트를 찾고 있었는데, 그래서 여러 부동산 중개인들과 약속을 잡고 다른 아파트들을 보러 다녔던 게 기억나요. 중간중간에 시간이 빌 때, 공원을 하나 봤어요. 공원에 들어가서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자고 했죠. 그런데 사람 대신 동물들을 발견했어요. 원숭이랑 사슴 같은 게 있더라고요.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들이 이곳에 들어가는 장면을 썼습니다. 거기는 동물원이 아니에요. 실제로는 공원인데,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공공 공원이에요. 도심 한가운데 있는 센트럴 파크 같은 곳이라고 상상해보세요. 동물들이 정말 많았죠. 그래서 밤에 그곳을 배경으로 하기로 결정했어요. 정말 비현실적이었고, 제가 본 모든 것이 영화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이렇게 즉흥적이었던 적은 없었어요.
좀 미친 짓이었죠. 하지만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살면서 한 번쯤 미쳐보고 싶다면, 아직 젊을 때 지금 해야 해." 왜냐하면 제가 40대, 50대가 되면서는 이런 종류의 위험을 감수할지 모르겠거든요. 위험을 덜 감수하게 되고, 훨씬 안전하게 가려고 할 테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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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2화 중간까지는 엄청난 띵작이었지만
그 이후는... 음... 글쎄요ㅎㅎㅎ 샛별이 10화까지가 그립네요
#보건교사안은영 #보건교사 #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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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에몽의 비밀도구와 공룡들의 도움으로 공룡의 발자국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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