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yun2024-10-13 23:17:12
액션과 혼란이 충돌해 탄생한 칼춤
영화 '전, 란' 리뷰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에서 이례적으로 OTT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이유를 알겠다. 모니터나 TV화면으로만 시청하기엔 아까운 퀄리티 높은 작품이 나왔다.
'전쟁으로 인한 난리통'이라는 의미를 담은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영화 '전, 란'은 두 차례 왜란을 겪으며 양반의 아들 이종려(박정민)와 몸종 천영(강동원)이 빚는 오해와 갈등을 그린다.
'전란'이라는 단어 한가운데 쉼표를 찍어 나눈 것이 눈에 띄는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메시지를 상징한다. 먼저 싸움 전(戰), 이는 두 주인공 종려와 천영의 개인적인 갈등을 의미함과 동시에 이 영화의 장르가 액션 영화인 점을 상징한다. 이어 어지러울 란(亂), 영화 속 패러다임을 둘러싼 혼란한 시대를 담아낸다. 그리고 숨어있는 단어인 다툼 쟁(爭)을 통해 다툼이 벌어짐을 암시한다.
그러면서 정작 전란이라는 말을 담고 있는 전쟁에 대해 비중 있게 그리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시대적 배경인 임진왜란 7년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대신 무서운 기세로 북진하는 왜군 부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허겁지겁 피난 가는 선조(차승원) 일행과 아비규환에 빠진 백성들, 불타는 경복궁, 종전 후 처참한 상처만 남은 조선 전역의 모습 등으로 전란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대변한다.
'전, 란'은 액션 영화로서 본질을 잊지 않고 100% 재현한다. 영화 속 액션의 지분 1위를 차지하는 천영 역의 강동원이 극 전체를 이끄는 선봉장으로 맹활약한다.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화려한 검술 액션을 펼치는 그의 존재감은 영화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형사 Duelist', '전우치', '군도: 민란의 시대'에 이어 '강동원의 사극액션영화=맛집' 공식을 다시 한번 인증한다.
동시에 신분 차이로 엇갈리는 두 남자의 운명과 이들이 살아가는 혼란스러운 시대상 또한 볼만했다. 신분제 사회에서 '평등'을 꺼낸 정여립의 난과 임진왜란으로 인해 기존 체제가 흔들리고,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세워야 할 조선의 체계를 둘러싸고 다양한 캐릭터들이 충돌한다. 기존 패러다임을 수호하려는 자와 파괴하려는 자, 그래도 인정하려는 자와 어쩔 수 없이 포기해 버린 자, 그리고 탈출하려는 자와 전환을 시도하는 자를 그들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운명을 향해 밀어붙이며 전진한다.
그 과정에서 아쉬움도 있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하긴 하나, 이들이 가진 생각이나 변화 과정까지 정교하게 담아내진 못했다. 아무래도 천영과 종려, 속칭 '혐관 서사'로 일컫는 비극적인 브로맨스에도 무게를 둬야 하기에 어떤 부분은 얼렁뚱땅 넘어가거나 급정리되기도 했다. 평등을 담은 메시지를 대중에 전달할 힘이 조금 부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전, 란'의 단점을 상당 부분 상쇄하는 게 배우들의 열연이다. 박정민, 김신록, 진선규, 정성일 등이 출연해 존재감을 뽐내는데, 그중에서 선조 역할을 맡은 차승원이 도드라진다. 시대의 변화와 민중의 요구를 외면하며 시대착오적인 관념과 행동을 취하는 선조를 왕조의 위엄을 뺀 채로 연기하며 분노를 유발한다. '무능함의 아이콘' 선조를 연기하는 데 새로운 지침서를 마련했다.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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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5주차 개봉작, 공개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3월 다섯번째 주도 잘 지내고 계시나요?
벌써 3월의 마지막 주가 다가와 많이 아쉬운데요.
그래도 좋은 작품과 함께 3월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은 설렙니다!
그럼 3월 다섯번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비우스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104분
감독: 다니엘 에스피노사
배우: 자레드 레토, 아드리아 아르호나 등
개봉: 2022.03.30
배급: 소니픽처스코리아
줄거리
희귀혈액병을 앓고 있는 생화학자 '모비우스'는 동료인 '마르틴'과 함께 치료제 개발에 몰두한다.
흡혈 박쥐를 연구하던 중 마침내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모비우스’는
새 생명과 강력한 힘을 얻게 되지만, 동시에 흡혈을 하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던 중 ‘모비우스’의 친구 ‘마일로’(맷 스미스)도 ‘모비우스’와 같은 힘을 얻게 되는데…
관전포인트
<모비우스>는 마블 원작 코믹스에서 스파이더맨과 맞선 '마이클 모비우스' 박사를 주인공으로
한 첫 번째 실사 영화이자, 첫 번째 안티 히어로 영화이다.
개봉 당일, 예매율 50.5%를 넘었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얼마나 많은 기대를 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DC 캐릭터를 연기하던 '자레드 레토'가 마블의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배니싱: 미제사건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범죄 | 프랑스 | 88분
감독: 드니 데르쿠르
배우: 유연서, 올가 쿠릴렌코, 예지원
개봉: 2022.03.30
배급: (주)스튜디오산타클로스,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줄거리
어느 날 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체가 발견되고 사건을 맡은 형사 ‘진호’는 사체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국제 법의학자 ‘알리스’를 찾아 자문을 구한다. 알리스와 진호는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닌
장기밀매 조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국제적인 범죄 조직의 정체와 마주하게 되고 충격적이고 처참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데…관전포인트
<배니싱: 미제사건>은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에 초청된 적이 있다.
대한민국 올 로케이션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국내외로 유명한 배우 유연석, 올가 쿠릴렌코, 예지원, 최무성, 박소이, 아누팜 트리파티 등이
모두 이 영화에 출연하는 최고의 글로벌 프로젝트이다.
B컷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범죄 | 한국 | 93분
감독: 김진영
배우: 김동완, 전세현, 김병옥 등
개봉: 2022.03.30
배급: TCO(주)더콘텐츠온
줄거리
어느날, 한때 최고의 여배우였던 ‘민영’은 ‘승현’에게 망가진 핸드폰 수리를 맡기고,
그 폰 안에서 찾아낸 ‘민영’의 B컷에는 그의 남편이자 유력한 대통령 후보자인 ‘태산’의 충격적인 진실이 들어있다.
관전포인트
<B컷>의 김진영 감독은 "현실과 밀착되어 있어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영화 속 내용에 더욱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객분들이 김동완 배우의 박진감 넘치는 추격씬으로 더욱더 영화에 몰입할 것으로 예상한다.
문나이트
출처: Rotten Tomatoes
개요: SF | 한국 | 6부작
감독: 모하메드 디아브
배우: 오스카 아이삭, 에단 호크 등
공개: 2022.03.30
스트리밍: 디즈니플러스
줄거리
불면증에 시달리며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혼란에 빠진 '스티븐'은 매일 악몽 같은 삶을 이어간다.
어느 날, 달의 신 '콘슈'의 임무를 수행하는 전직 용병 '마크 스펙터'와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신의 힘을 이어받은 초월적 히어로 '문나이트'로 거듭나게 된다.
관전포인트
오스카 아이작이 맡은 문나이트는 다중인격자이라는 점, 그리고 다른 마블 작품과 달리 어두움과 처절함이 강조됐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타미 페이의 눈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26분
감독: 마이클 쇼월터
배우: 제시카 차스테인. 앤드류 가필드 등
공개: 2022.03.30
스트리밍: 디즈니플러스
줄거리
'타미 페이의 눈'은 70, 80년대에 남편 짐 베이커(앤드류 가필드)와 세계적인 종교 방송망과 테마파크를 세운
TV 전도사 타미 페이 베이커(제시카 채스테인)의 흥망성쇠와 구원을 다룬다.
관전포인트
최근에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과 여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한 영화이다. <타미 페이의 눈>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실제 스토리와 비교하면서 보면 재밌을 것 같다.
몸 값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한국 | 14분
감독: 이충현
배우: 이주영, 박형수 등
공개: 2022.03.30
스트리밍: 왓챠
줄거리
처녀를 원하는 중년남자가 여고생과 모텔 방에 들어가 화대를 놓고 흥정을 한다. 처녀가 아니란 이유로 가격을 깎자는 남자. 여고생은 어이가 없지만 남자의 요구를 들어준다.
관전포인트
티빙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되는 드라마 <몸 값>의 원작인 이충현 감독의 영화 <몸 값>. 최초 공개 당시 화제를 모았지만, 정식 서비스가 없어 다시 볼 수 없었던 영화였다. 왓챠에 공개된다는 글이 올라오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패러렐 마더스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멜로 | 스페인 | 123분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 밀레나 스밋, 로시 드 팔마 등
개봉: 2022.03.31
배급: (주)스튜디오디에이치엘
줄거리
홀로 출산을 준비 중인 사진작가 야니스는 같은 병실에서 어린 산모 아나를 만난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딸을 낳은 두 사람은 짧지만 깊은 우정을 나눈다.
야니스는 아나와 자신의 딸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진실을 알리지 못한 채 아나와 점점 더 가까워져만 가는데…관전포인트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페넬로페 크루즈, 두 사람은 총 8번째 협업을 진행 중이다.
그래서 협업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는데요.
<패러렐 마더스>는 두 여성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역사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겨져 있는 영화이다.
극장판 시그널
출처: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일본 | 121분
감독: 하시모토 하지메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 키타무라 카즈키, 키치세 미치코 등
개봉: 2022.03.31
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줄거리
‘사에구사 켄토’가 속한 장기 미제 사건팀은 계획된 범죄임을 의심하고 수사하던 중
2009년에 동일한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도심을 뒤흔든 연쇄 테러 사건과의 전쟁에 맞선 과거와 현재의 공조 수사가 시작된다!
관전포인트
영화 <극장판 시그널>은 일본 드라마 '시그널'에서 이어지는 스토리이다. <영화> 초반에 드라마 속 스토리를 설명을 해주기는 하지만, 미리 보고 간다면 영화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 BTS 정국이 작곡에 참여한 'Film Out'도 들을 수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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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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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을 전설로 내버려둬야 하는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69년, 대학 교수 정년 퇴임을 앞둔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 이 전설적인 모험가는 아들을 잃고 아내와 이별한 채 쓸쓸한 노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교수였던 '바질 쇼'(토비 존스)의 딸이자 자기 대녀인 ‘헬레나’(피비 윌러-브리지)가 존스 앞에 나타난다.
불쑥 찾아와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에 대해 캐묻는 헬레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던 존스. 심지어 나치 출신 물리학자이자 오랜 숙적 '위르겐 폴러'(매즈 미켈슨)의 부하들까지 자기와 헬레나를 습격하자 그는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 챈다. 이에 인디아나 존스는 마침내 중절모와 채찍을 챙겨 들고 새로운 모험에 뛰어든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영화이자 4편 이후 15년 만의 속편인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이하 <인디아나 존스 5>). 그간 시리즈를 책임진 스티븐 스필버그 대신 제임스 맨골드가 연출과 각본을 맡았고, 해리슨 포드가 인디아나 존스 역으로 복귀했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는 공식이 있다. 귀중한 유물을 쫓는 액션으로 가득한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면 카메라는 일상에 복귀한 존스를 비춘다. 그는 이내 새로운 유물을 쫓아 집을 나서지만, 고난으로 가득한 모험 끝에 악역에게 유물을 내준다. 하지만 유물에 깃든 신비한 힘 덕분에 존스는 언제나 해피 엔딩을 맛본다.
시리즈의 최종장을 장식하는 <인디아나 존스 5> 역시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발전한 기술력 덕분에 비주얼은 화려해졌지만 내용은 예전 시리즈와 비슷하다. 이는 할리우드 트렌드에도 부합한다. 최신 기술로 과거의 프랜차이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기획이 유행이기 때문.
익숙한 이야기로 향수를 자극하는 기획은 사실 양날의 검이다. <탑건: 메버릭>처럼 올드팬과 새로운 관객을 모두 사로잡을 수도 있지만,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처럼 모두를 실망시킬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인디아나 존스 5>는 후자다. 디즈니 & 루카스필름 조합의 선배인 <스타워즈>의 전철을 따라간다.
과거에 사로잡힌 고고학자의 은퇴
과거의 전설을 스크린으로 다시 불러왔기 때문일까? <인디아나 존스 5>는 유달리 과거에 대한 고찰로 가득하다. 영화의 핵심 소재인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만 해도 그렇다. 존스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은 시간의 틈을 발견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물건이다.
인디아나 존스의 시선도 과거에 고정돼 있다. 영화의 시점은 1969년이다. 온 세상이 달 착륙에 대해 떠들고, 도심에서는 우주 비행사 퍼레이드가 열린다. 하지만 존스는 고고학자답게 과거만 들여다본다. 그는 강의에서 달착륙 대신 아르키메데스가 시라쿠사를 공격하는 로마군을 격퇴한 방법을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도 그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사이가 안 좋아진 아들은 다툼 끝에 군에 입대했고,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했다. 이 때문에 존스는 아내 마리온과도 갈라섰다. 그래서 그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아들에게 입대하지 말라고 간청하고,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싶으니까.
제임스 맨골드는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를 떠나보내고, 인간 인디아나 존스의 이야기를 살리기로 결정한 듯 보인다. <로건> 속 울버린의 은퇴와 비슷하다. 히어로의 소명을 다하고 로건으로서 퇴장한 울버린처럼 인디아나 존스도 마무리를 준비한다.
그는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을 지켜내며 고고학자로서 소임을 다한다. 마지막 모험을 통해 학자로서의 꿈도 이룬다. 시라쿠사 공방전이 한창이던 역사의 현장에 들어가 아르키메데스를 직접 만난다. 이처럼 고고학자로서 후회 없는 경험까지 한 후,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마리온과 재결합하며 비로소 개인적인 회한을 떨쳐낸다. 스스로를 과거에 묻어 두었던 전설은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명예롭지 못한 퇴장
그런데 이상하다. 감동적이어야 할 인디아나 존스의 은퇴는 큰 감흥이 없다. 2시간 34분에 달하는 러닝타임도 마냥 지겹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각본의 문제다. '과거'라는 주제는 잘 잡았지만, 정작 그 주제를 살려줄 만한 이야기나 구도를 짜는 데는 실패했다
캐릭터들의 관계만 봐도 각본의 실패를 눈치챌 수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존스와 악역, 존스와 동료 간의 케미스트리가 유달리 안 느껴진다. 마지막 악역인 폴러는 나치 출신 과학자다. 그는 히틀러의 실책 때문에 나치가 패망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로 시간을 되돌려 히틀러를 암살하고, 나치 독일에게 승전보를 안기려 한다.
그런데 폴러와 존스의 대립은 대두되지 않는다. 그들이 본질적으로 같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로 돌아가 개인적인 실패를 만회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적대시할 이유나 동기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자연히 과거로 가는 시간의 틈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도 크지 않다. 대신 영화는 나치 대 미국인이라는 익숙한 구도를 답습한다. 그 결과 존스의 마지막 모험은 긴장감이 부족하다.
존스와 헬레나의 호흡도 미묘하다. 그녀는 존스와 대립하는 반동인물이다. 유물 암거래상답게 고대 유물을 박물관이 보존해야 한다는 존스의 신념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존스의 후계자 비슷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존스의 대녀일 뿐만 아니라, 평생을 고고학에 매진한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을 찾아 나섰다. 즉, 그녀는 존스와 함께 모험을 하면서 서서히 그를 닮아가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헬레나의 캐릭터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그녀의 다양한 사연은 착실히 제시되나, 그들을 하나로 묶는 데 실패한다. 그래서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헬레나라는 캐릭터는 돌변한다. 존스의 동료였다가, 대녀였다가, 암거래상이다. 긴 시간을 함께 붙어 있어도 존스와 헬레나 사이에서 특별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결국 존스의 마지막 모험은 악역과의 혈투도, 낭만적인 은퇴도 아닌 채로 유야무야된다.
어드벤처 영화의 전설, 평범해지다
영화의 또 다른 핵심인 액션도 어설프다. 어드벤처 장르의 전설이자 효시인 <인디아나 존스>의 이름값에 미치지 못한다. 전체적으로는 40년 전에 스필버그가 맡은 이전 시리즈보다 발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나의 시퀀스 안에서도 리듬이 뚝뚝 끊기며, 고도의 기술력을 활용한 색다른 볼거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아폴로 11 기념 퍼레이드를 배경으로 펼치는 추격전이 대표적이다. 폴러의 부하를 피해 도망치는 존스. 그는 말을 타고 거리를 질주하다가 뉴욕 지하철 역에서 기차까지 맞닥뜨린다. 이 시퀀스는 분명 놀라운 시각적 경험이다. 하지만 장면과 장면 사이에 어설픈 유머가 끼어들며 자주 끊어지다 보니 박진감은 떨어진다. 또 말을 탄 채 오토바이와 자동차보다도 빨리 달려 그 좁은 도로에서 도망치는 상황의 맥락도 어색하다.
액션 하나하나의 시퀀스도 다소 길다. 오프닝 장면만 보더라도 기차 추격전이 끝날 법한 타이밍에 액션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욕심도 과하다. 액션 시퀀스 하나하나가 긴데, 숫자도 적지 않다. 그 결과 영화는 여러 시퀀스가 얇은 줄거리에 의지해 겨우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팬서비스는 확실했다
<인디아나 존스 5>는 이 모든 단점을 팬 서비스로 무마하려 한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중절모와 채찍을 여러 번 카메라에 담는다. 처음에는 반갑다. 마치 잭 스패로우의 해적 모자나 스카이워커의 광선검을 보는 듯하다. 이전 시리즈의 소소한 재미도 살아있다. 동굴 벽에 가득 붙어 있는 벌레를 본 주인공들이 비명을 지리는 장면처럼.
하지만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는 그들도 더 이상 반갑지 않다. 부실한 내용물을 감추기 위해 중절모와 채찍, 그리고 존 윌리엄스의 음악에 의지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고전 영화에 대한 향수와 팬심을 남용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설령 고전 영화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팬서비스에 치중했다 하더라도 효과적이지는 않다. 최신 영화 못지 않은 비주얼 때문에 실망과 괴리감은 커진다.
다만 <인디아나 존스 5>의 의의는 확실하다. 해리슨 포드의 인디아나 존스를 마지막으로 만날 기회니까. 또 떠나야 할 타이밍에 품격 있는 작별 인사를 남길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실제로 그는 세월이 깃든 얼굴로 최고의 인디아나 존스를 보여준다. 칸 영화제가 그에게 공로상을 안겨 준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Poor 형편없음
전설은 잠들어 있을 때 비로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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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마음 가는 방향으로
OVERVIEW
비밀 문자 누슈에 대한 매료로 연결된 두 명의 중국인 밀레니얼 여성을 과거와 현재에 걸쳐 따라간다. 수백 년 된 이 언어는 여성 공동체의 연대, 희망, 생존을 위한 은밀한 지원 체계로 작동하면서 중국 여성들을 세대를 넘어 하나로 묶어왔다.
REVIEW
예외는 있었겠지만, 수천 년의 중국 역사에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복종해야 했고 읽거나 쓰는 것을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비밀 문자인 ‘누슈’를 통해 때로는 신세 한탄을, 때로는 이루지 못할 꿈을 적어 내려가면서 여자들끼리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연대할 수 있었다. 이제 교육 기회가 균등해졌고, 여성의 권리도 전보다 나아지고 있기에 ‘누슈’는 더 이상 계승되기 어려운 ‘잊혀져 가는 문자’가 되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여성들만이 이해할 수 있었던 문자 ’누슈‘를 각자의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는 두 여성을 통해 ’누슈‘의 역사와 중국 역사 속에서 여성의 의미, 그리고 그들이 ’누슈‘로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조명한다. 물론 ’누슈‘의 원래 의미와는 정반대로, 그저 예쁜 캘리그라피로만 인식하고 상업화하려는 관료들의 모습은 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불평등 속에서 자신의 삶과 생각을 기록하려고 노력해 온 중국 여성들의 ’놀라운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전진수)
세상 다른 수많은 사회처럼, 중국 봉건사회 또한 여성을 기존 제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교육과 사회생활은 요원했고, 자연스레 여성이 스스로 남긴 기록도 많지 않았다. 심지어 전족으로 발 뼈를 부수고 살을 뭉쳐 손쉬운 이동의 자유마저 금했다. 거기서 “노예 같은” 생활을 했다는 여자들은 자기들만 아는 문자를 만든다.
함께 괴로워했던 여자들만의 문자. 그 문자로 시를 짓고 노래를 하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살아가자는 응원을 전했다. 아주 오래 비밀로 내려오던 문자는 세상에 알려진 후로 누슈(女书)라고 불린다. 문자 그대로 여자가 썼다는 담백한 명칭이지만 거기 얽힌 이야기들은 주렁주렁 많다.
영화는 누슈의 어제와 오늘을 고루 비춘다. 누슈의 전승자인 후신이라는 인물을 시작으로, 몇 년 전부터 누슈를 배우기 시작한 쓰무라는 인물을 더하고, 누슈를 실제로 집에서 배운 누슈의 마지막 명장이자 후신을 가르친 허 선생님까지 이어, 누슈를 계속하는 이들을 담는다.
이들은 누슈를 사랑하고, 누슈의 의미를 지키고자 하지만, 가뜩이나 생은 쉽지 않은 것. 의미까지 더해 업고 가기가 쉽지 않다. 세상은 이들의 누슈를 향한 애정과 같은 시선으로 누슈를 바라보지 않는다. 후신의 글자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위한 자리에서 선물로 주어진다. 은밀한 여자들의 글씨였는데, 술잔을 든 남자들을 위한 선물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글씨와 시로 시작한 누슈는 이제 춤과 공연의 대상이다. 누슈 글씨를 쓰고 있는 여자들에게 몰려온 남자들이 "마을 미녀"들이 글을 쓰고 있다며 동물원에 온 것처럼 굴고는 "친구 하자"며 자기들끼리 낄낄거린다.
후신은 누슈로 상당한 성취를 이룬 인물이지만 이혼의 기억을 “여자로서의” 실패로 여기는 마음이 자꾸 올라온다. 다재다능하고 누슈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는 쓰무는 약혼자가 쉼 없이 던지는 말을 들으며 고민에 빠진다. 하루 만에 누슈를 해석해 왔던 듬직한 남자라 생각했응 텐데, 아직 결혼도 하기 전부터 쓰무를 들들 볶으면서도 자기는 부담 주고 있지 않다 말한다. 이들이 사는 오늘의 누슈를, 누슈의 기억을 가진 허 선생님도 바라본다. 그는 오늘날의 누슈가 원래의 누슈와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누슈 작품은 대다수가 자매애에 대한 것이다. 원부가를 지을 수도 있었겠지만, 누슈는 고통이 해소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마치 남자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여성 간의 연대와 지지를 택했다.
여전히 마을에는 새 신부가 나오고, 새로운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그중에는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이야기도 있겠지만, 사랑 아닌 것들도 사랑을 가장한다. 그 허위의 이면에는 몰이해와 몰상식이 있다. 누슈를 인정하고 누슈를 위한 행사에 서 있지만 정작 누슈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는 남자들처럼. 사랑과 결혼을 말하며 결국에는 상대가 취해야 할 도리를 가르치려 드는, 결혼도 하기 전부터 임신에 좋다는 쓴 약을 먹이고, 밥 먹으러 가는 길에 입에 귤이나 넣어주고, 여자가 알아들은 말을 굳이 되풀이해 설명하는 남자처럼.
봉건제도 속의 남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남자들의 몰상식이 횡행할 때, 누슈의 노래 가사는 생생하게 살아 여기까지 전해진다. 왜 여자들은 마음껏 놀 수 없는지, 왜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지 묻는 노래 가사는 본질을 비춘다. 이런 질문은 새롭고 급진적인 사상이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자연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것뿐인 것을. 대약진운동의 흐름 아래 남녀가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일을 했던 시절을 피부로 기억하는 이들은, 따로 교육을 받지 않아도 피부로 안다.
누슈를 둘러싼 남자들의 모습은 촌극에 가깝다. 어떻게 저러나 싶을 만큼 우당탕쿵탕 엉망진창이다. 방향성과 타깃조차 설정하지 않고서 상용화를 하겠다고 설치고, 누슈 관련 행사 무대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여성조차 세워놓지 않은 주제에, 제막식 하나도 제대로 못 해서 현판을 떨어뜨리고 난리가 난다. 그들을 보며 역설적으로 누슈의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21세기에 저러고 있다니 봉건사회에선 어땠을까. 욕하고 때리지 않으면 다행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도망칠 수도 없는 발을 부여잡고 집안 모든 남자들의 발을 씻겨야 했던 여자들의 삶에 누슈가 어떤 의미였을지.
언어의 본질은 소통이다. 허 선생님과 후신 사이의, 편지를 읽고 틀린 문장을 바로잡아 주는 장면이 뭉클하니 아름다웠던 이유는 바로 그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담길 때 비로소 글자는 의미를 갖는다. (마케팅도 거기서 시작했어야 했다. 누슈 상용화로 뭐라도 해보려고 한 멍청한 중국 남자들이여.)
세상의 풍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양한 말을 듣고, 세파에 흔들리고, 그러면서도 후신과 쓰무를 비롯한 동시대의 수많은 여자들은 자기 삶을 살아간다. 어떤 여자는 유리 천장을 깨는 것이 너무 힘드니 그냥 이 자리에서 행복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누슈를 받아들인 이들은 앞길을 몰라도 마음 편한 길로 걸어가 보겠다 한다. 내가 떠받들어 살려야 하는 세상이 아니라, 내가 강해질 때 새롭게 피어날 세상임을 인지한 것이다.
이들은 누슈를 통해 과거와 대화하면서 오늘을 넘기고 내일로 향한다. 누슈 가사 속의 든든한 큰언니들이, 괴로운 한 세상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지지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모르고 가는 길이라도 씩씩하게 나아갈 힘이 되어줄 것이다.
2023. 04. 29. 17:00 CGV전주고사 8관 (247)
2023. 04. 30. 19:30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358)
2023. 05. 01. 16:30 CGV전주고사 5관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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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셋째 주 영화 한줄평] <팜 스프링스>
여름의 끝을 장식할 판타스틱 썸머무비 <팜 스프링스>의 시사에서
2주나 빠르게 <팜 스프링스>를 보고 오신
'씨네랩' 연구원 분들의 한줄평, 한 번 확인해볼까요?
<팜 스프링스>
<기생충>을 넘어
선댄스 최고가 경신!
Hulu 스트리밍 최고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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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연 | 발버둥칠수록 벗어날 수 없는 업보의 늪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채업자'(조진웅)에게 진 빚을 아직 갚지 못한 '박재영'(이희준). 기한이 다가올수록 그는 마음이 급해진다. 이에 아버지를 죽인 후 사고사로 위장하고, 사망보험금으로 사채를 갚기로 결심한 재영. 그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조선족 출신 살인 전과자 '장길룡'(김성균)에게 아버지 살해를 의뢰한다. 하지만 길룡이 아버지의 사망을 사고사로 위장하는 데 실패하면서 재영의 계획은 예상 못한 나비효과를 초래한다.
한편, 한의사 '한상훈'(이광수)는 애인 '이유정'(공승연)과의 데이트 도중 음주 뺑소니 사고를 저지른다. 사망자가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목격자까지 생기자 상훈은 사고를 숨기려 한다. 시체를 암매장하고 목격자 '김범준'(박해수)의 입을 돈으로 막으려는 것. 그러나 범준이 더 많은 돈을 요구해 오면서 그의 계획은 또 다른 사고를 낳고, 사건과 사고가 연이은 끝에 범준, 재영, 유정, 그리고 '이주연'(신민아)의 악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업보로써 직조한 피카레스크 스릴러
힌두교나 불교 같은 인도 계열 종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카르마(Karma), 곧 업과 업보다. 이들 종교에서는 모든 지각 있는 존재의 행위와 결과가 그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연쇄적으로 묶여 있다고 여긴다. 원인으로 작용하는 그들의 생각이나 언행은 업이고, 업의 결과는 업보다. 업에 따라서 업보는 달라질 수 있다. 선업을 쌓았다면 좋은 업보를, 악업을 쌓았다면 나쁜 업보를 감당해야 한다.
이때 업보는 당장 행위자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언젠가는 되돌아온다. 이번 생이 아니면 다음 생, 다다음 생, 혹은 사후의 내세에서라도 업보는 행위의 당사자에게 무조건 되돌아간다. 인도 계열 종교는 대체로 한 개체가 죽더라도 소멸하지 않고 윤회하는 세계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 업보의 연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다. 해탈을 통해 윤회의 수레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검사외전>, <리멤버>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이일형 감독의 신작 <악연>은 'Karma'라는 영어 제목에 맞게 업보의 수레바퀴에 갇힌 이들을 조명한다. 무관해 보이는 캐릭터 7명이 어떻게 연이 닿고, 그 악연이 업보가 되어 되돌아오는지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에피소드 6개를 앉은자리에서 보게 만드는 지독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악연>의 구조와 구성 자체가 업보의 의미와 무게를 체감할 수 있도록 설계된 덕분이다.
하지만 <악연>의 뒷맛은 개운치 않다. 중독적인 첫맛과는 다른 이질적인 맛이 느껴진다. <악연>은 업보의 굴레에 갇힌 이들만 보여주지 않는다. 후반부에서는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려는 이들과 그 방법도 보여주고자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악인들이 얽히고설키는 피카레스크 장르의 분위기가 깨진다는 것. 그 결과 중반부까지의 임팩트도 빛이 바래고 만다.
설계된 반전
<악연>의 첫인상은 독특하다. 수많은 반전 덕분이다. 얼핏 보기에 <악연>의 반전은 장르적 특성 같다. <악연>이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악행에 토를 달지 않고, 도덕적 옹호도 하지 않는 피카레스크 장르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주요 인물만 보더라도 주연을 제외하면 빚쟁이, 사기꾼, 살인자, 꽃뱀, 불륜남 등 악인으로 가득하다. 서로서로 뒤통수를 쳐도 어색하지 않은 판이 처음부터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악연>의 반전은 장르적 특성과는 별개의 작법에 가깝다. 단순히 주인공들이 변심하거나 상대를 배신하는 전개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반전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유도하기 위한 구조적 설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악연>의 반전은 일관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건의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사건의 원인을 나중에 보여주면서 드라마가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앞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식이다.
일례로 상훈과 유정은 처음에 연인처럼 보이지만, 이내 유정이 범준과 작당해서 상훈의 돈을 털어먹으려는 사기꾼임이 드러난다. 심지어 상훈도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한참 후에 등장하면서 더 큰 충격을 안긴다. <악연>은 이러한 반전의 결과를 각 에피소드의 마지막에, 원인은 다음 에피소드에 배치하면서 작품의 유기성과 몰입도를 동시에 끌어올린다.
인과의 역순으로 풀어낸 업보
<악연>의 반전은 그 자체로 영화 제목이자 주제의식인 'Karma(업보)'라는 개념을 영상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업보라는 개념은 단순히 직선적인 인과관계를 뜻하지 않는다. 하나의 원인이 있을 때, 그 원인이 다방면으로 영향으로 끼치면서 두 개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게 핵심이다. 그렇기에 업보는 의도치 않은 나비효과를 유발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언제나 행위자에게 되돌아온다.
<악연>의 반전은 업보의 나비효과를 직관적으로 설명해 준다. <악연>은 시간을 역행한다. 결과를 먼저, 원인은 나중에 보여준다. 또 그 원인을 만들어낸 그 이전의 원인도 나중에 알려준다. 이를 몇 차례 반복하면 모든 사건의 기점인 하나의 사건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의 원인이 서로 다른 사건에 영향을 끼치면서 서로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인물들과 사건이 결국 하나의 실로 이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상훈과 유정의 데이트는 유정과 범준의 범죄행각과 상훈의 불륜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상훈의 부인이 사설업체를 통해 남편을 뒷조사하는 과정에서는 범준의 신원이 밝혀진다. 범준의 행적을 역으로 추적하면 그와 유정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이 드러나고,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이던 재영과 주연이 그들과 악연으로 얽힌 최초의 사건 또한 수면 위로 올라온다.
즉, 한 사건의 파장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결과들을 초래하고, 그 결과가 행위자들에게 되돌아온다는 업보의 개념 그 자체가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이루는 셈이다. 따라서 그저 이야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는 지독한 악연과 업보의 무게감을 자연스럽게, 저절로 체감할 수 있다. 심지어 <왕좌의 게임>이 연상될 정도로 주인공들을 거침없이 퇴장시키기에 그 업보는 더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해탈하지 못하고, 해방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업보가 쌓여서 돌아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은 스타일리시하지만, 업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세련되지 못했다. 후자를 전담하는 이주연 플롯의 완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견 모순적인 '수동적 능동성'에 기반한 각성을 보여줘야 할 그녀의 서사는 수동적인 이미지로만 가득하다. 그 결과 주연은 업보의 굴레로부터 주도적으로 해탈하기보다는 해방되는 것처럼 보이고, 그 쾌감도 크지 않다.
겉보기에 주연은 분명 수동적인 인물이다. 각자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예상치 못한 업보를 쌓는 다른 캐릭터들과는 다르다. 그녀는 강간 피해자였을 뿐이고, 그 이후로는 착실히 경력을 쌓은 의사일 따름이다. 그러다 보니 오프닝 장면부터 등장했고 모든 사건의 시작점에 있는 주요 인물인데도, 그녀의 이야기는 중심부에서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수동적 이미지 이면에는 능동적인 이주연이 숨어있다. 성폭행을 주도했던 재영이 자기 환자로 입원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그녀는 재발한 트라우마와 치열하게 맞서 싸운다. 재영을 향한 살의는 점점 커져 가고, 그녀는 살의를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그를 죽이지 않기로 결심한다. 더 나아가서 그와 관련된 모든 사건을 잊고, 고통과 복수심에 집착하지 않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업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는 이 장면은 주연의 능동성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악연>은 이 기회를 놓친다. 주연이 결단을 내리는 그 순간, 드라마는 그녀의 남자친구 '윤정민'(김남길)에게 먼저 주목한다. 살인을 저지르면 그들처럼 삶이 망가진다며 만류하는 그의 설득이 그녀의 변화보다 부각되는 것. 그 대가로 <악연>의 의도는 흐려진다. 메시지를 담아내야 할 주연의 능동성이 수동적 외양에 전부 가려진 탓이다. 이는 흰 눈이 내리는 세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주연이 장식하는 마지막 장면이 공허한 이유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역효과
윤정민의 존재는 또 다른 역효과도 유발한다. 과거의 고통과 트라우마에 집착하는 대신, 그 갈망을 멈출 때 새롭고 더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주연의 깨달음은 다른 방식으로도 묘사된다. 그녀가 직접 관여하지 않았는데도 가해자들이 인과응보를 받는 식이다. 주연을 강간한 재영도, 그를 이용한 유정도, 그녀를 부추긴 범준도 각자의 업보를 죽음으로 되돌려 받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윤정민의 존재와 역할은 업보라는 주제의식을 약화한다. 재영의 사채 빚을 몰랐던 범준은 재영 행세를 하다가 난데없이 사채업자 패거리에게 납치당한다. 얄궂게도 윤정민은 사채업자 조직에서 장기밀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결국 정민은 범준의 모든 장기를 떼어내고 그를 죽이면서 주연의 복수를 대신한다.
이 전개는 두 가지 문제를 낳는다. 일단 윤정민이라는 캐릭터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써 기능하면서 극의 완성도를 저해한다. 주연을 설득해서 그녀를 각성시키도 하고, 여자친구를 대신해서 복수도 자행하면서 모든 갈등을 편의적으로 종식하기 때문이다. 불법 장기 밀매 사업에 관여한 그가 정작 업보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큰 틀에서는 주제의식에 어긋나는 묘사라고 볼 수 있다.
김남길이라는 배우를 특별출연시킨 반전의 효과도 기대에 못 미친다. 드라마는 그가 수상한 전화를 받고, 친척 핑계를 대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그가 불법 조직과 연이 닿아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다 보니 범준이나 재영이 업보를 돌려받을 때 그가 어떤 방식으로라도 참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즉, 마지막 반전은 앞선 반전들과는 달리 반전을 위한 반전이라서 뻔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잘 만든 스릴러가 아쉬운 이유
이일형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같은 주제의식을 공유한다. 사회적 복수, 정의, 방벌이다. <검사외전>은 사법과 정치 영역의 부패 문제를, <리멤버>는 친일파 청산 문제를 정리, 해결하는 영화였다. <악연>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과연 사회가 청소년 범죄를 충분히 정의롭고 응분히 처벌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악연과 업보라는 흥미로운 소재로써 제기하는 드라마니까.
그렇기에 작위적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구축으로 인해 완결성이 무너진 <악연>의 아쉬움은 작지 않다. 흥미롭게 곱씹어 볼만한 메시지와 소재가 장르적 쾌감으로만 소비되면서 불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분명 잘 만든 스릴러이고, OTT 시청자 입장에서는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오락인데도 <악연>의 몇몇 단점이 유독 눈에 잘 띄는 이유이기도 하다.
Acceptable 무난함
진단은 맞았지만 처방이 잘못된 탈업보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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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 / Resident Evil: Welcome to Raccoon City, 2021
우리에게는 "월드컵 4강"으로 익숙한 2002년, 극장에도 하나의 시리즈가 시작했습니다.
17년 개봉한 6편 <파멸의 날>을 마지막으로 <레지던트 이블>는 "밀라 요보비치 - "폴 W.S. 앤더슨"의 커리어에 있어 대표작을 넘어 부부의 연까지 맺어준 고마운 작품입니다.
이외에도 "게임 원작의 영화는 흥행이 안된다"라는 공공연한 징크스도 깨버린 작품으로 이대로 재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6편 <파멸의 날>의 흥행은 제작비의 7배를 벌어들이는 수익과 최고 성적까지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웠을 겁니다.
근데, 돈 때문에 다시 만들려고 하니 뭔가 명분이 없어 보이지 않았을까요?물론, 명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밀라 요보비치 - 폴 W.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는 "앨리스"라는 오리지널 캐릭터로 게임에는 없는 이야기로 원작 팬들의 마음을 사지는 못했거든요.
이를 염두에 둔 "요하네스 로버츠 감독, <47 미터> 시리즈"의 "원작에 충실하겠다"라는 말은 걱정도 되었지만, 기대도 샀습니다.
그렇게, 먼저 북미에서 개봉한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박스오피스 5위와 함께 1000만 달러 미만의 시작을 알렸고 지금은 속편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에 있어 전문가 26%와 관객 52%의 평가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제 두 눈으로 보는 게 확실하고 빠르겠죠?
'과연,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어떤 작품이었는지?' - 감상을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모기업 "엠브렐러"의 지원하에 번영했던 "라쿤시티".
지금은 기업의 철수로 폐허로 변했고, 그곳을 향해 "클레어"는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비 오는 거리를 달리는 차량은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을 받아치지만 시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의문도 잠시, 도시에 이상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며 살기 위해서라도 발길을 옮기는데...좀비처럼 살아날까?
1. 게임을 해봤다면, 재밌을 거다!
앞서 말했듯이 이번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기존 시리즈와는 다른 작품으로 시리즈를 챙겨보지 않아도 됩니다.
이만하면, 일부러 찾아보려는 관객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고마운 영화로 비춰질겠지만 이번 영화를 연출한 감독의 "원작에 충실하겠다"라는 말은 부메랑처럼 돌아옵니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양조 주택"과 "라쿤시티 경찰서"는 게임의 1편과 2편의 주요 배경이거든요.
그렇기에 아는 사람들은 알아서 재밌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몰라서 몸을 뒤척일 겁니다.게임을 했어야 말이지...
떼거리로 몰려드는 좀비에 총알이 빗발치고 하나둘씩 쓰러지는 물량 전부터 머리가 날아가는 화끈함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 영화는 이럴 겁니다.
"밀라 요보비치 - 폴 W.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 역시 이런 액션적인 성향이 짙었다만 이번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는 반대로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신경 쓴 작품입니다.
극 중 경찰서의 좁은 통로에 몰려드는 좀비들부터 총기에서 나오는 불꽃으로 간간이 보이는 좀비들의 모습까지 제법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초창기 게임을 즐겨본 팬들이라면, 익숙한 시점이라 반가웠을 테니 그 포부가 결코 공수표는 아님을 보여줍니다.2. 근데, 이거 맞긴 해?
이렇게 본다면, "원작 게임 팬들은 만족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들이 나오겠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원작"이 있다면 피해 갈 수 없는 문제 "실사화", 즉 "싱크로율"이 있습니다.
이에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연기한 "클레어"는 그대로 나왔으며, "크리스"와 "웨스커"는 일부 달라진 점이 있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더군요.
그러나 "레온"과 "질"은 원작 팬들이 예상했던 모습과는 꽤 거리가 멉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아예 인종이 다릅니다?홍길동이 언제부터 흑인이었지?
원작 게임에서 보이는 "레온"은 금발에 백인으로 나오는 인물입니다.
하지민 이번 <라쿤시티>에서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흑발로 나와 아예 다른 인물로 등장하는데요.
"질", 역시 이전 <레지던트 이블 2>에서 보여준 실사화가 있기에 이번 <라쿤시티>에서의 모습이 납득되지 않았고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말했듯이 '하얀색 민소매 나시와 청바지, 그리고 콧수염만 있다고 해서 누구나 "프레디 머큐리"가 아니듯이' 그저, 이름만으로는 해당 캐릭터들을 그들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을뿐더러 몰입하기도 어려웠습니다.3. 분위기는 무서웠는데...
이외에도 원작 게임 팬들이라면, 두 장소에서 나올법한 악당의 후보군으로 "타일런트"와 "네메시스"를 기대했을 겁니다.
마지막 전투신을 제외하고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고, 끝까지 주인공 캐릭터들을 쫓아가기에 무섭기도 무서운 캐릭터들입니다.
특히, 최근 리메이크에서는 "중절모"를 씀으로 "김두한"이라는 친숙한 별명까지 얻어낸 캐릭터인 만큼 이들의 출연을 더 기대했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라쿤시티>의 악당은 생각보다 아쉬움이 많았습니다.그들의 불발도 있겠지만...
원하는 출연이 없다는 것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쌓아온 서사가 없는 게 더 큽니다. 앞서 말했듯이 '마지막 전투신을 제외하고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고, 끝까지 주인공 캐릭터들을 쫓아가' 무적의 이미지들로 무서운 캐릭터입니다.
이번에 나온 "윌리엄 버킨", 역시 이와 동일하나 무적의 이미지로 만들기에는 중간에 빼먹은 변이도 많았고, 그만큼의 서사도 빠져있습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로켓 런처"의 등장이 뭔가 눈치 없이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시리즈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무기라서...)
107분이라는 러닝 타임이 기존 "밀라 요보비치 - 폴 W.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을 포함해도 가장 긴 분량의 작품인데,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다는 건 아쉬웠습니다.
분명히, 무서웠는데...※ 이번 영화는 "롯데시네마 단독 상영작"입니다.
※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 한 개의 쿠키가 있습니다. (이 역시, 원작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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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석의 오류
최신 한국 영화를 리뷰하고 추천합니다
영화 '시동'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제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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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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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페라리> 티저 예고편
"일단 내 차를 탔으면 이겨야 해" 파산 위기에 놓인 '페라리'의 최고이자 최악의 1년 할리우드 대표 거장 감독 마이클 만 & 아담 드라이버의 만남! 🏆제80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노미네이트 [페라리] 티저 예고편 공개! 2025년 1월 극장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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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뱅퀴시> 메인 예고편
단 하룻밤, 5번의 픽업을 완수하라!
국가 영웅이었던 전직 경찰국장은
도시를 장악한 5대 조직과 사건에 휘말린다.
그는 마약 운반책이었으나 손을 씻은 그녀의
딸을 볼모로 잡고 위험한 미션을 제안한다.
단 하룻밤, 5대 조직으로부터 5번의 픽업을 하라!
그녀의 킬러 본능이 폭발하고, 도시는 전쟁으로 치닫는데…
오늘 밤, 그녀의 분노가 폭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