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2024-10-01 10:28:43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가족 이야기, 영화 <위국일기>
영화 <위국일기> 리뷰
<위국일기(違国日記)>는 갑작스럽게 함께 살게 된 이모와 조카가 서로를 이해하며 서서히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일본 영화입니다. 소설가 마키오는 소식을 끊고 지내던 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합니다. 그곳에서, 고아가 된 조카 아사를 두고 ‘버려진 대야 같은 신세’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을 본 마키오는 충동적으로 아사를 맡기로 결심합니다.
‘위국일기(違国日記)’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어긋난 나라의 일기’입니다. 이 제목은 이모와 조카의 태생적 거리감과 서로의 성격과 생활방식이 달라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을 상징합니다. 두 사람이 전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같은 제목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가족과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차분하게 돌아보게 합니다. 주연을 맡은 아라가키 유이(이모 역)와 하야세 이코이(조카 역), 카호(이모 친구 역)의 섬세한 연기는 마치 그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감독의 서정적인 연출 역시 이들의 일상을 조용히 담아냅니다.
씨네랩의 영화 크리에이터로 영화의 시사회에 초대받아 좋은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위국일기>는 일상 속에서 각자가 품고 있는 외로움과 상처를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모와 조카의 복잡한 감정선과 세대 간의 이해와 소통을 담아낸 이 영화는 관객에게 잔잔한 감동과 따뜻한 여운을 남깁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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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완전할 수 있다는 반쪽의 믿음
태초의 인간은 두 개의 신체가 등을 맞대고 있는 형태였다. 당시에 인간들은 두 배의 신체 기관을 가지고 있었던 덕에 지금의 인간들보다 훨씬 더 강력했고, 신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이 힘을 두려워했던 신들은 인간을 지금 우리의 모습처럼 두 쪽으로 갈라놓았고, 둘로 나뉘게 된 인간은 원형으로 돌아가기 위해 잃어버린 반쪽을 갈망한다. 플라톤의 「향연」은 그 반쪽에 대한 갈망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앨리스 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반쪽의 이야기>(The Half of It, 2020)는 <헤드윅>(2001)에서도 모티프로 쓰인 적이 있는 이 「향연」 속 담론을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앨리 추(리아 루이스)의 반쪽을 찾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단순히 '사랑'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 사랑으로 변화하는 앨리의 '성장드라마'를 숨겨둔다.
앨리의 성장은 그녀가 머무는 '공간'으로 엿볼 수 있다. 앨리는 역무원인 아버지와 둘이서 미국의 작은 마을인 스쿼하미시에 사는 동양인 여고생이다. 그녀는 스스로 사람들을 밀어내며 혼자가 되려 하는데, 이 당시 앨리는 스쿼하미시 기차역을 관리하는 작은 역무실에 갇힌 것처럼 생활한다. 그러다 폴 먼스키(대니얼 디머)의 부탁을 받고, 그를 대신해 자신도 짝사랑하고 있던 애스터 플로레스(알렉시스 러미어)에게 러브레터를 보내게 된다. 편지를 쓰기 위해 애스터의 관심사들을 조사하면서 앨리만의 세상이었던 역무실은 점점 애스터에 관한 정보들로 채워진다. 시간이 흐르고, 앨리는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의 괴롭힘 때문에 오랫동안 준비한 연주회를 망칠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폴의 도움으로 연주회를 무사히 마친 앨리는, 자신을 가둔 역무실을 벗어나 그와 함께 친구들이 있는 뒤풀이 장소로 향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성당 미사에서 사람들에게 공개한 후엔 앨리는 마을 밖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용기를 얻는다. 기차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마을 밖으로 떠날 용기가 없었던 소녀는 사람들에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을 가둔 작은 도시를 떠날 수 있게 된다.
나는 비밀 호수에서 애스터와 앨리가 목욕하는 장면과 앨리가 스쿼하미시를 떠나는 기차 안 장면을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순간으로 뽑고 싶다. 앨리가 폴을 대신해 ‘스미스코로나’라는 가명으로 애스터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땐, 역무실 창문에 비친 모습과 실제 앨리는 분리되어 보인다. 하지만 '스미스코로나'가 아닌 실제 자신의 이름으로 애스터와 함께 갔던 호수에선 물에 비친 자신의 반쪽 모습과 겹쳐 「향연」 속 원형의 형태가 된다. 이 장면에서 앨리는 폴이나 애스터로 비유되는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이 아니라 자족적으로 완전해지는 것이다. 앨리가 역무실과 기찻길에서 벗어날 때는 친구 혹은 짝사랑하는 연인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최종적으로 벗어나야 할 스쿼하미시에서는 자신의 힘으로 탈출한다. 그래서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들과는 달리 앨리는 기차 밖에서 뛰어올지도 모르는 자신의 반쪽을 기다리지 않는다. 혼자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혹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역시 앨리를 응원하고 싶었는지 창 안으로 한 줄기 빛을 비춰준다.
<반쪽의 이야기>는 다소 상투적인 플롯과 클리쉐적인 인물들이 엮어가는 미국 하이틴로맨스의 전형이다. 하지만 동양인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위시하는 만큼 인종과 퀴어에 관해서도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주위의 인정과 그들의 일원이 되는 편의적인 결말이 아니라 앨리가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성취다. 앨리는 이제 막 스쿼하미시를 떠나는 기차에 올랐을 뿐이지만, 다행히 무기력해 보이는 기차 안 사람들 틈에서 앨리의 얼굴에는 결연한 활력이 서려 있다. 선명하고 우직하게 말하고 싶은 것들을 전달하는 <반쪽의 이야기>를 응원하고 싶은 이유는, 타인과 비교해서 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체로 완전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한 번 더 손에 쥐어보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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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에서 아카이빙을 활용하는 방법
<넬리와 나딘>
영화는 수용소에서 해방되어 돌아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나레이션과 함께 진행된다. 흑백의 과거 영상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했다. 이 질문에서 진행된 영화는 각 여성들의 이름과 얼굴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 지 말한다. 그 중 유독 더 집중해서 보여주는 얼굴이 있는데, 그 인물은 ‘나딘 황’이다.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화면은 컬러로 바뀌며 시간과 공간이 바뀌고 새로운 인물인 ‘실비’가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의 할머니 ‘넬리’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넬리’는 수용소에 삶 이전에 가수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수용소에 잡혀가고 거기서 적힌 끔찍한 나날 속에서 유독 많은 이름이 보인다. 그 이름은 ‘나딘 황’이다.
‘넬리’와 ‘나딘’은 수용소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나갔다. 해방된 이후에도 여생을 함께 살며 그들의 사랑은 이어져갔다. 영화 내내 그 둘의 수많은 아카이브 영상을 보면서 실존 인물인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 풍부하게 다가왔다.
수용소에서의 끔찍한 삶에서도 그 둘, 그리고 다른 수용소 사람들 또한 이 삶을 버티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사랑이라는 것을 느꼈다. 영화가 진행될 수록 이 둘이 얼마나 깊은 사랑을 하고 서로를 버티게 하는 기둥이 되어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역사는 수없이 만들어지지만, 잊혀지고 사라지는 역사들 또한 수없이 많다. 이 둘이 기억되고 우리가 알 수 있는 이유는 아카이브라는 걸 느꼈다.
잡동사니로 분류되어 방치된 기록들은 실비의 발견을 통해 <넬리와 나딘>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수많은 아카이브를 발견하고 이것들을 어떻게 엮고 만들어나갈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역사에 좀 더 집중을 해서 그 시절 수용소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아니면 성소수자들의 삶, 아시아인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 스파이가 된 이유..등등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사랑’에 좀 더 집중한 부분이 이 영화를 좀 더 따뜻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방대한 자료 속에 어떤 이야기를 취사선택 하고 진행할 지도 감독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수많은 흑백 과거 영상 속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역사가 있다. 그것은 ‘넬리’와 ‘나딘’처럼 기록되어 전해지기도 하고 , 아니면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소멸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수많은 역사 속에서 살고 있고 역사를 쓰고 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가고 보존할 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면 사라지고 소멸된 지나간 역사들를 소중히 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김군’을 찾는 영화이다. 영화에선 ‘김군’이 북한군이다, 아니다 정말 많은 말이 오고 가는 인물이다. 감독은 이 ‘김군’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수많은 아카이빙 자료를 분석하고 제시한다. 영화의 흐름에 맞춰 보는 내내 ‘김군’은 도대체 누구인가? 에 집중하게 된다.
긴장감 속에서 ’김군‘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 우리는 영화 속 등장한 수많은 ’김군‘을 마주할 수 있었다. ‘김군’은 북한군도 아니고 어떤 모함을 지닌 인물도 아닌 그저 고아로 광주를 지키고자한 평범한 인물이었다.
우리는 단 한 명의 ’김군‘이 아닌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속 수많은 ’김군‘들의 노력과 희생을 보게 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소설, 영화, 드라마, 다큐 등 다양한 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데 볼 때마다 늘 가슴이 아프고 슬퍼진다. 그만큼 이 사건이 비극적이고 끔찍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김군‘이라고 명명된 이름은 어떤 누구도 다 ’김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큐멘터리 속 ’김군‘ 찾기를 통해 이러한 일은 다시는 일어나면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또 한 번 생각하고 다짐한다.
영화 속 아카이브는 매우 적절하고 긴장감 있게 사용되었다. 그 사이를 지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기록과 역사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그렇기에 영화는 과거의 기록 자료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의 인터뷰로 구성된다. 자료로 제시된 신문기사와 사진들 속에 더해진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은 극에 더 몰입감있게 집중할 수 있었다.
<넬리와 나딘>, <김군>은 둘 다 아카이브를 사용했다. 하지만 어떤 메세지에 집중하고 관객들에게 보여줄 것인지가 다른 영화이기에 이 두 영화가 사용하는 아카이브 방식은 다르다고 느껴졌다.
<넬리와 나딘>은 풍부한 아카이브 영상과 재연 나레이션을 통해 편지를 읽는 방식을 통해 감성적인 연출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면, <김군>은 좀 더 시사적인 느낌과 추적, 추리의 차가운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이를 통해 방대한 아카이브 속에서 어떤 이야기에 집중하고 보여줄 것인지에 따라 연출하는 방식도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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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그 문을 열지 마시오
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제목 : <오픈 더 도어>
감독 : 장항준
출연 : 서영주, 이순원
프로그램 노트
: <오픈 더 도어>는 어느 밤 술에 취한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미국 뉴저지, 치훈(서영주)은 매형인 문석(이순원)과 함께 술을 마신다. 과거를 추억하던 두 사람은 애써 외면했던 불행까지도 길어 내게 되고, 감정이 격해진 문석에 의해 숨겨져 있던 비밀이 밝혀진다. 장항준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오픈 더 도어>는 과거를 되짚어가며 숨겨진 사연을 조금씩 풀어놓는 미스터리 형식을 취한다. 숨겨진 그날의 진실보다 중요한 건 그에 이르는 과정이다. 4개의 챕터로 이뤄진 영화는 인물들이 불안과 의심으로 무너져 가는 모습을 조금씩 증폭시켜 나간다. 한정된 공간과 제한된 인물, 긴 호흡의 카메라를 활용해 밀도 높은 긴장감을 쌓아나가는 솜씨가 놀랍다. (송경원)
다섯 개의 섹션
영화는 총 다섯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진다. 그마저도 시간의 흐름이 아닌, 섹션이 뒤로 갈수록 과거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특이점은 영화의 제목부터 말해주듯 섹션의 시작마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실 이와 같은 사실을 자각하기까지는 네번째 섹션이 되서야 깨달았다. 문을 여는 행동은 '어떠한 선택'을 의미한다.
첫 시퀀스는 미국 뉴저지, 치훈이 매형인 문석의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며 시작된다. 둘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술에 취하니 그들이 꺼내서는 안될 이야기를 꺼낸다. 바로 '치훈'의 엄마이자 문석의 장모님의 살인 사건. 대화로 짐작해보면 그녀는 세탁소를 운영 중, 강도에 의해 살해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감정은 격해지고. 결국 문석이 숨겨진 비밀을 뱉어낸다. (첫번째 시퀀스 끝.)
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긴 카메라 호흡 그리고 사운드의 매력
사실 공포 영화, 스릴러 영화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1위가 스토리 그리고 그 다음이 사운드라고 생각한다. 공포 영화 혹은 스릴러 영화는 귀를 막고보면 하나도 안 무섭다는 말이 딱 그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오픈 더 도어>는 고전적일 수도 있는 사운드로 그 긴장감을 살린다. 실제로 옆자리 관객분은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귀를 막고 있었다. 나름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긴 카메라 호흡의 지루함을 사운드로 채워준 듯 했다.
영화 <오픈 더 도어>는 긴 카메라 호흡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첫 시퀀스부터 컷 전환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호흡이 길다. 스릴러 영화에서는 관객들의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컷 전환하기 바쁜데 이 영화는 다르다. 치훈과 문석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컷 전환이 거의 없었다.
영화를 관람할 당시에는 왜 호흡이 길지?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렇기에 궁금증을 유발하였고 결과적으론 난 그 둘의 대화에 깊게 집중했다.
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길어진 호흡에는 연기력이 필요하다
상기 문단에서 언급했듯이, 영화 자체의 호흡이 길다. 그 말은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이 필요하다. 영화에는 불안 그리고 의심, 균열,그리고 배신 등의 감정이 담겨있다. 조금이라도 비어보이면 무너져버리는 스토리. 그럼에도 <오픈 더 도어> 배우들은 깊은 연기력으로 그 틈을 꽉 채워주었다. 장르가 '스릴러'인데 배우들 모두 연기가 '스릴러'스럽다. 사실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는 장항준 감독만을 보고 선택하는 바람에 배우들은 사전에 찾아보지 않았는데 기존에 조연으로 많이 보았던 배우들이기에 연기력이 보장된 것 같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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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최근 키아누 리브스가 <존 윅 5>에 대해 “그 캐릭터는 죽었다.”라고 속편에 대해 답변한 것과 상반되게 제작사 라이온스게이트는 현재 <존 윅 5>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라이온스게이트는 <더 크로우>, <보더랜드>, <메갈로폴리스> 등 대형 흥행 실패를 겪어, 북미에서만 2억 달러를 벌어들였던 <존 윅> 시리즈(<존 윅 4>)를 제작하지 않기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한편, 라이온스게이트는 현재 매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HBO/HBO Max 오리지널, 쿠팡플레이에서 본다
<석세션>, <하우스 오브 드래곤> 등 HBO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다시 국내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쿠팡플레이가 국내 독점 제공으로, 오는 3월 21일 금요일부터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쿠팡플레이는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와 콘텐츠 파트너십을 맺어 HBO/HBO Max 오리지널 콘텐츠와 워너 브라더스 픽쳐스의 콘텐츠들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세이디 싱크, <스파이더맨 4> 출연 확정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로 큰 인기를 얻은 배우 세이디 싱크가 <스파이더맨 4> 출연을 확정 지었습니다.
톰 홀랜드와 함께 주연을 맡은 세이디 싱크가 <엑스맨> 시리즈의 대표적인 캐릭터 ‘진 그레이’를 연기할 것이라는 가설에 힘이 실리고 있는 가운데, 과연 그가 맡게 될 캐릭터는 무엇일지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한편, 이번 작품의 연출은 <샹치>의 감독 ‘데스틴 크리턴’이 맡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애프터 양> 코고나다 신작, 북미 개봉 연기
전작 <애프터 양>으로 호평받았던 코고나다 감독의 신작 <A Big Bold Beautiful Journey>가 북미 개봉일을 연기했습니다.
애초 2025년 5월 9일 개봉 예정으로 알려졌지만, 9월 19일로 개봉일이 연기되었습니다.
마고 로비와 콜린 파렐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의 자세한 줄거리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결혼식에서 만난 낯선 두 사람이 GPS에 의존한 여행을 함께 떠나는 이야기라고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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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어진 집중력을 뛰어넘게 만드는 "전종서의 핏빛 액션"
집중력. 요즘 영상을 보는 내게 커다란 주제다. 한참을 유튜브 숏츠와 인스타 릴스를 돌려보다보니 짧고 강렬한 영상에 익숙진 나는 집중력이 약해졌다. 하지만 집중력을 돕는 중요한 도구가 있는데 바로 음악이다. 시각으로만 화려하고 자극적인 영상에 노출되다가 지쳐버린 집중력이 생경한 음악을 만나게 되면 다시 정신차리게 된다.
영화 발레리나는 그런 영화다.
영화는 강렬하다. 액션도 음악도. 빠르다. 액션도 전개도. 익숙한 전개이며 서사인데도 집중력을 흐틀지지 않는다. 개연성이 아쉽기도 하고, 뜬금없는 등장인물들에 물음표도 던지지만 결국 배우 전종서 그리고 그를 돋보이게 만드는 감독의 연출 거기에 귀를 만족시켜주는 천지 프로듀서 GRAY. 삼위일체는 결국 넷플릭스 세계 2위까지(2023년10월13일 기준) 오르게 만들어 버렸다.
우선 첫 등장씬에서 부터 귓가를 반갑고 즐겁게 만드는 80-90년대 오락실에서나 나올듯한 BGM이 온 신경을 집중하게 만든다. 그레이의 천재성은 영화 내내 음악에서 발견할수 있다. 편의점을 터는 무자비한 강도들. 그들의 폭력가운데 조용히 덤덤하게 등장한 주인공 옥주. 그리고 시작되는 거침없고, 사정없는 액션.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의 '우마 서먼'이 보이는 모습은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색감이 멋진 영화
자살로 마감한 친구가 남긴 소원. 그리고 그 소원을 자신이 꼭 해야할 일로 받아들인 옥주. 옥주(전종서)의 피의 복수는 거대한 조직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되고 최프로를 찾아가는 과정속에 진행되는 액션은 시원하다 못해 서늘해진다. 영화 <발레리나>는 색감이 뛰어난 영화다. 옥주와 동창인 발레리나 민희. 그둘은 서로의 무료함에 생기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회상 장면마다 나오는 파스텔 톤의 색감과 카메라 워킹은 보는이로 하여금 고단한 액션의 속도감에 환기를 가져다 준다.
이와는 정반대의 색감이 나오는 것이 바로 최프로와의 액션씬이다. 소중한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최프로'(김지훈)를 찾아 붉은 빛이 감도는 호텔에서 핏빛 액션은 더욱 전종서를 전종서 답게, 최프로를 최프로 답게 몰고가는 황홀한 레드 액션이다.
건가타 액션을 즐겨보시길
또한 이 영화의 즐길거리는 바로 건 가타 액션신이다. 필자는 이퀼리브리엄턴을 좋아한다.
특히 주인공 존 프레스톤(크리스찬 베일)의 놀라운 건 카타 장면을 잊을수가 없다.
건 카타란?
커트 위머 감독의 영화 《이퀼리브리엄》에 등장하는 요원들인 그라마톤 클레릭들이 사용하는 가공의 총기 무술. 카타는 한자 形의 일본 한자음 독음으로, 본래는 일본 무술에서 태권도의 품새나 쿵푸의 투로 같은 개념으로써 무도의 기술을 규정된 형식에 맞추어 자습할 수 있도록 이어놓은 동작을 말한다. <나무위키 참고>
전종서의 건 카타를 떠오르게 만드는 액션씬은 이 영화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할 장면이다. 특히 잠깐 등장하지만 분위기를 압도하는 조사장(김무열)의 너무나 통쾌한 죽음은 나에게 있어서 발레리나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등장하는 특별출연의 총포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함께 몸담았던 조직의 문영언니 연기나 개연성이 아쉽기는 했지만 아무 생각없이 빠른 전개감에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영화에 빠지고 싶던 내게 발레리나는 그 길로 인도해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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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시> | 지나치게 디즈니다워서 엉망인 100주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원을 이뤄주는 마법사 '매그니피코 왕'(크리스 파인)이 다스리는 왕국 '로사스'. 100살이 된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뤄지길 고대하는 소녀 '아샤'(아리아나 드보즈)는 매그니피코를 도우러 간 자리에서 우연히 그가 숨겨 온 어두운 진면목을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다.
그런 아샤 앞에 무한한 힘을 지닌 특별한 '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별은 염소 '발렌티노'(앨런 튜딕)에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별의 힘을 믿고 매그니피코의 음모를 막기로 결심한 아샤는 일곱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그녀의 계획을 먼저 눈치챈 매그니피코는 야욕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폭주하기 시작하고, 아샤와 친구들은 예상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디즈니의 모든 것'이 문제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각자 고유한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픽사 애니메이션은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 관객에게도 소구력이 있다. 예상 못한 뭉클함에 눈물 한 방울 흘리는 경험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도 마찬가지다. 특유의 이미지가 가장 공고한 제작사라고 볼 수도 있다. 디즈니만의 매력 두 가지는 백 년간 변하지 않았으니까. 바로 동화와 뮤지컬이다. 물론 디즈니도 <주토피아>, <모아나>, <겨울왕국>처럼 동화를 변주하기는 했다. 그러나 드림웍스처럼 동화를 파괴하고 재창조하지는 않았다. 또 설령 작품 평가가 부정적이어도, 디즈니의 음악만큼은 대체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100주년 기념작 <위시>는 이러한 디즈니만의 이미지를 온전히 구현하려는 노력이 가득 담긴 선물 세트다. 지극히 동화적인 이야기에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피터 팬> 같은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작품의 오마주가 가득하다. 귀를 즐겁게 하는 뮤지컬 음악 사이로는 디즈니 특유의 교훈과 새로운 사회에 발맞추려는 변화가 깃들어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디즈니스러운 만듦새는 끝내 <위시>의 발목을 잡는다. 지난 100년 간 쌓아 올린 디즈니의 유산을 한 데 모아놓고 보니, 그들끼리 충돌하면서 여러 모순을 드러내고 만다. 그로 인해 <위시>는 자기만의 매력도 좀처럼 찾지 못한다. 결국 디즈니의 소문난 잔치에는 먹을 것도, 즐길 것도 없어지고 말았다.
평범해도 괜찮아. 어차피 동화니까.
<위시>의 이야기는 평범하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형식만큼이나 전형적이다. 늘 그렇듯이 악의를 지닌 악역과 그로부터 고통받는 공주가 등장한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공주는 여러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예상대로 빌런을 꺾는 데 성공한다. 권선징악이라는 환상은 뛰어난 기술력과 아름다운 목소리 덕분에 더 빛난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평범한 이야기를 비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위시>가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임을 고려하면 오히려 초심을 찾으려는 시도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상술했듯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본래 맛깔나게 동화를 들려주는 할머니나 유모 같은 존재였다. 관객에게 순수한 즐거움과 희망을 주는 것이 디즈니 작품의 목적이었고, 디즈니의 매력이었다.
<위시>의 그래픽과 음악만 봐도 초심을 강조하려는 듯한 흔적이 역력하다. 우선 기존 작품에 비해 단순하고 직관적인 그래픽이 눈에 띈다. 동물 털까지 세밀하게 만들어낼 줄 아는 최신 기술력을 좀처럼 뽐내지 않는다. 외려 직접 그리거나 손으로 나무를 파내 만든 판화로 찍어낸 듯한 느낌이 강하다. OST도 마찬가지다. 그 유명한 디즈니의 오프닝 음악을 변주한 선율이 가득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위시>는 지극히 동화답기에 오히려 신선하다. 지난 몇 년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항상 변화를 쫓느라 바빴다. 동화가 아닌 소재를 찾거나, 동화를 변주하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시도는 관객을 매료하기도 했지만, 디즈니만의 개성을 잃고 픽사 작품을 닮아간다는 비판을 낳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위시>의 지극히 원형적인 이야기가 역으로 인상적일 여지가 분명히 존재한다.
형식과 내용의 충돌
문제는 <위시>의 동화적인 형식이 정작 내용과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시>는 제목대로 소원에 대한 동화다. 로사스 국민은 매그니피코 왕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소원을 맡긴다. 왕은 매달 로사스를 위협하지 않는 소박한 소원 하나만을 이뤄준다. 그는 로사스 사람들은 자기가 맡긴 소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왕에게 소원을 안전히 맡기는 데에 만족한 채로 살아간다.
아샤는 이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한다. 소원을 이뤄주는 기준을 자의적으로 정하고, 공익을 위해 개인의 소원을 희생하며, 소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자유와 가능성을 평생 뺏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래서 아샤는 왕 대신 별에게 소원을 빈다. 로사스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소원을 되찾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살도록 해달라고. 그러자 이 소원을 들은 별은 땅에 내려와 아샤와 함께 모든 소원을 되찾는 여정에 나선다.
<위시>는 이 과정을 통해 다음처럼 말한다. 소원을 이룰 개개인의 자유와 가능성은 별처럼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고, 구속될 수 없는 존재니까. 이 대목이 발단이다. <위시>의 교훈은 형식만큼이나 동화적이다. 그런데 그 교훈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은 동화로 포장될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다. 그 결과 <위시>는 동화와 현실, 형식과 내용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동화로 노래할 수 없는 현실
실제로 <위시>의 교훈은 익숙한 현실을 소환한다. 우리 모두 하나의 별이니 자존감을 갖고 전진하자는 말은 어디선가 많이 들은 이야기다. 이는 개개인에게 주어진 역량과 가능성을 살리고, 재능을 오롯이 발전시켜 최상의 결과를 만들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난 수십 년 간 우리 사회를 지배한 미국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이고, 더 나아가 능력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발현인 셈이다.
그런데 스크린 너머 관객의 현실에서 <위시>의 교훈은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소원을 지녀도 재능과 가능성을 찾을 수 없는 환경에 처했거나, 재능을 알더라도 계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도 소원을 이루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데 인색하기도 하다.
심지어 마이클 샌델 교수의 지적대로 운이 따라 성공한 사람들에게 모든 과실이 쏠리고, 실패한 이들과의 차이가 벌어지고, 패자들이 멸시받는 일이 많아지기도 했다. 즉, 스크린 너머의 현실에서는 능력주의에 대한 회의감, 기회의 평등에 대한 의문, 신자유주의 체제애 대한 불신이 나날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소원을 이루자'는 <위시>의 교훈은 제목만큼이나 꿈같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자연히 <위시>의 메시지는 하늘에서 땅으로는 내려와도, 스크린 너머까지는 닿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을 동화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순간 거부감을 키울 뿐이다. 동화로 포장할 수도 없고, 환상만으로 해결될 수도 없는 현실을 기만하는 것 같은 위선마저 느껴진다.
동화라서 보이는 구멍
물론 <위시>는 나름대로 형식과 내용, 메시지와 현실의 간극을 메우려고 애쓴다. 유머, 노래, 화려한 CG를 총동원한다. 하지만 끝내 동화라는 한계를 벗어나려 하지는 않으며, 결국 동화라는 이유로 생략된 수많은 현실은 수많은 구멍을 낳는다. 우선 동화라는 이유로 평범한 이야기를 옹호할 수 없다. 오히려 드라마는 너무 경직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겨울왕국> 감독인 크리스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캐릭터도 매력이 없다. 전형적인 동화의 주인공인 아샤와 그의 아버지는 흥미롭지 않다. 귀여움만 어필하는 염소도 <겨울왕국> 속 스벤에 비하면 존재감이 부족하다. 반전을 염두에 둔 '왕비'(안젤리크 카발)도 근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한 '주체적인 여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나마 매그니피코가 강렬하다. 행적은 뻔하지만, 과하게 무게 잡는 대신 유머로 잔뜩 무장한 악역이라서 차라리 새로워 보이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는 디즈니의 야심 찬 변화도 설득력을 잃는다. 아샤에게는 일곱 난쟁이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성별과 인종으로 이뤄진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다양성을 부각하려는 시도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인종별로 고정관념적인 외모를 활용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으니까. 당장 아샤의 가장 친한 친구 '달리아'(제니퍼 쿠미야마)만 해도 동아시아인임을 보여주기 위해 키가 작고, 통통하며, 안경을 쓴 여성으로 그려졌다.
이에 더해 동화의 근본적인 한계가 또 한 번 디즈니의 발목을 잡는다. 아무리 다양한 인종과 성별이 작품 내에 공존한다고 해도 다양성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저 병풍에 불과하다. 동화는 특정한 주인공 한 명의 이야기이고, 필연적으로 그의 특징만 부각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처럼 디즈니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줘야 할 변화도 <위시>에서는 결국 모순으로 귀결된다.
엔딩 크레디트만 빛난다
그럴수록 <위시>에는 100주년을 기념하겠다는 강박만이 남는다. 물론 강박의 순기능도 있다. 모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교집합 내지는 프리퀄 같은 오마주는 디즈니 작품을 보며 자란 관객에게 독특한 감동을 안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녹아 있는 엔딩 크레디트 역시 100주년에 걸맞은 인상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다만 이 모든 노력은 찰나의 기쁨일 뿐이다. 과거의 영광은 변화한 현실을 보지 못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할리우드에서도 꿈과 환상을 가장 오랫동안, 가장 잘 그려내기로 유명했던 디즈니의 100주년 기념작 치고는 중요한 미덕을 여럿 빼먹은 셈이다. 그러니 <위시>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 안에 담긴 디즈니의 현재와 미래가 마냥 화려해 보이지는 않으므로.
Poor 형편없음
동화와 현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표류 중인 디즈니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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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2] (브런치작가/영화리뷰/결말x) 진짜 저스티스리그가 찾아왔다!
잭 스나이더가 하차하면서 자신의 버전을 완성하지 못했던 저스티스 리그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2017년 조스웨던이 완성한 버전은 여러모로 평가가 좋지 못했죠.
이번 HBO max에서 공개된 영화는 한국에서는 Vod로 공개 되었어요.
4시간의 상영시간이 아깝지 않을만큼 완성도 자체는 조금 올라갔어요.
여전히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전 버전에 비해서는 캐릭터 서사가 나아졌고, 액션 장면도 좋아졌어요.
또한 음악감독을 맡은 정키XL의 음악도 영화에 힘을 줍니다.
마지막 전투도 조금 바뀌어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 합니다.
잭 스나이더의 다음 편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래도 좀 더 나은 저스티스 리그를 볼 수 있어 좋네요.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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