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9-30 17:08:46
음식은 킥, 영화는 후킹!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킥'이 중요하고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면 '후킹'이 중요하죠
음식에서 킥(kick)은 기본적인 맛에 자극을 더해주면서 전체적인 요리의 풍미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영화에서 후킹(hooking)은 초반에 관객의 관심을 강하게 끌어들이는것을 의미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킥'이 중요하고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면 '후킹'이 중요하죠.
오늘은 킥과 후킹 모두를 잡은 맛도리 영화들을 준비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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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어져야 손에 닿는 것들
<파리, 13구>의 주요 캐릭터는 단 세명이다. 할머니의 집에서 머물며 타인의 애정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에밀리(루시 장 분), 직업과 연인을 바꾸어가며 정착하지 못하는 카미유(마키타 심바 분), 삶의 주도권을 잡으려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번번이 놓치는 노라(노에미 메를랑 분). 많은 청춘 영화들이 그렇듯 파리 13구의 청춘들은 원하는 것을 단숨에 손에 넣지 못한다. 인생은 항상 생각지 못한 대로 흘러가게 마련이고 얻고자 하는 것은 잡으면 사라지고 잡는 순간 진정 원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대로 얻지 못하지만 결국에는 무언가 다른 것을 얻곤 한다. 13구의 청춘들은 결국에는 원하던 것을 손에 넣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목표물 획득을 포기한다. 그리고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청춘의 아이러니를 흑백 화면에 진하게 담아낸 영화가 <파리, 13구>다.
돌비 시네마가 발달해 관객에게 다양한 색채 경험을 시켜줄 수 있는 현대에도 굳이 흑백을 고수하는 영화들이 있다. 가장 최근에 개봉한 <벨파스트>의 경우 감독 케네스 브래너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과거에 대한 향수를 극대화시키는 장치로서 흑백 화면을 사용했다. 청춘 영화 중에서는 그레타 거윅이 뉴욕을 배경으로 길잃은 청춘을 연기한 <프란시스 하>가 흑백 화면을 고집했다. 청춘을 다룬다는 점, 거대 도시를 배경으로 한 현대 영화라는 점에서 <파리, 13구>는 <프란시스 하>의 파리 버전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프란시스(그레타 거윅 분)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청춘이었던 반면 에밀리, 카미유, 노라는 인간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아마도 자본주의가 짙게 배어 제대로 된 밥벌이가 삶의 방향에 있어 중차대한 역할을 하는 미국과 상대적으로 복지가 발달해 직업보다는 인간관계에서 정체성을 찾는 유럽이라는 배경에서 나온 차이점으로 보인다. 따라서 <프란시스 하>의 흑백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공허감이 <파리, 13구>에서는 화면을 가득 메운다. 현대 문물인 스마트폰이 이질적으로 보일 만큼 <파리, 13구>의 정서는 고전 영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에밀리의 이야기는 홀로 거주하는 큰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아파트가 버거워 룸메이트를 구하던 에밀리는 남자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카미유를 거절한다. 하지만 이내 카미유를 초대하고 연인과 친구 사이를 방황하다가 결국에는 카미유가 떠나가게 만든다. 직업도 일정치 않은 에밀리가 전전하는 직업들은 공통적으로 서비스직이다. 텔레마케터일 때는 고객의 사생활에 대해 묻다가 선을 넘어 해고당하고,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할 때는 다른 종업원들과 어울리다가 식당 한가운데서 춤을 춘다. 마지막으로 잠시 카미유의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통역사로 일할 때조차 의뢰인의 사생활을 캐묻다가 카미유에게 저지당한다. 에밀리는 끊임없이 사람을 갈구하지만 직업을 바꾸었듯이 누구에게도 정착하지 못한다. 그 와중에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 할머니는 모르는 세입자에게 맡긴 사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할머니를 포기했던 에밀리는 카미유를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카미유에게 선택권을 넘겨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토록 매달렸던 카미유에게서 거리를 둠으로써 에밀리는 카미유를 돌려받게 된다.
카미유는 거절을 받아들일 줄 모른다. 남자라서 안된다는 에밀리의 룸메이트 거절에도 직장 때문에 위치가 좋다고 사정하고, 선 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노라의 부탁에도 결국에는 노라와 연인이 된다. 에밀리의 아파트에 월세를 살면서 자신이 없는 동안 여자친구가 에밀리와 있도록 내버려 두기도 하고, 에밀리와 인연을 끊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연락을 유지한다. 겉으로는 에밀리가 카미유에게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끊임없이 타인의 애정에 목말라는 건 카미유 쪽이다. 하지만 에밀리와는 달리 카미유는 자신의 애정욕구를 드러내지 못하고 짐짓 쿨한 것처럼 행동한다. 혼자서도 어떻게든 잘 지내는 에밀리나 노라와는 달리 카미유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찾아나선다. 카미유가 에밀리와의 관계에서 혼란스러워했던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원하면서도 에밀리는 그것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반면 카미유는 감정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밀리로부터 선택권을 넘겨받은 카미유는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에밀리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쿨해 보이려던 겉멋을 포기한 카미유가 돌려받은 것은 그토록 원하던 정착이다.
늦게서야 대학에 돌아온 노라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자연스럽게 사는 삶을 갈망한다. 하지만 자신과 닮은 포르노 배우 앰버 스위트(제니 베스 분)로 인해 가십의 주인공이 된 노라는 꽉 찬 강의실에서 동업자 카미유와 소수의 고객만이 공존하는 좁은 공간으로 이동한다. 카미유에게 경고를 했음에도 연인이 되지만 노라의 진정한 연인은 카미유가 아닌 앰버처럼 보인다. 노라는 앰버를 미워하는 대신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해 말을 건다. 그리고 자신이 몰랐던 세계에 대해 배우면서 친밀감을 나누고 오프 공간에서 만나기에 이른다. 노라와 앰버가 겹치게 된 매개체인 금발 가발은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삭제당한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자기 자신보다는 집단 안에서의 익명성을 갈구하던 노라는 카미유와 헤어지고 공원에서 앰버를 만나는데 이 공간에서는 노라와 앰버가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는다. 새로이 얻은 현실에 휘청하던 노라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앰버에게 입을 맞추는데 이 장면은 흡사 앰버가 아닌 노라 자신에게 키스하는 것처럼 보인다. 꽉 찬 강의실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한적한 공원에서 마무리되며 익명성을 놓고 자기 자신을 마주한 노라에게 돌아온 선물은 그 자신이다.
대학 졸업 후 만난 후배들에게 직장을 다니는 선배들도 끊임없이 진로 고민을 한다고 말해 주었더니 후배들이 당황한 얼굴로 쳐다본 적이 있다. 방황하는 청춘이라기엔 에밀리, 노라, 카미유는 직장을 오가는 자리잡힌 성인들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에밀리는 직장을 전전하며 가족에 대해 고민하고, 노라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마지막까지 질문하며 카미유는 원하는 모습의 가면을 쉽사리 벗어던지지 못한다. 죽을 때까지도 방황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 모두는 죽을 때까지 청춘인 건 아닐까.
*본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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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모든 교사가 피눈물을 흘릴 심리 스릴러
티처스 라운지/The Teacher's Lounge
Germany/2023/99min
일커 차탁 감독/'월드 시네마' 섹션
〈티처스 라운지〉는 모든 교사가 피눈물을 흘릴 심리 스릴러다. 아니, 피눈물은 학교라는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동시대인 모두의 것일지도 모른다. 73회 베를린영화제 2관왕, 2024 아카데미 국제장편상 독일 출품작, 여러 유수 영화제 초청…… 영광스러운 이름이지만, 이 영화의 작품성·사회성·시의성·긴장감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도대체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교사, 학부모, 학생은 학교에서 무엇을 하는가. 이들의 관계성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왜 책임감 있는 유일한 사람이 점차 고립되어 가는가.
젊은 교사 노박의 담당 학급에서 절도 사건이 발생한다. 반 대표를 불러 의심 가는 아이를 지목해달라고 한 후, 해당 아이를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별 근거 없는 오해로 밝혀진다. 이에 범인으로 지목된 아랍계 아이의 부모가 항의한다. 하필 자기 아이가 범인으로 지목된 것이 과연 우연이냐고. 이후에도 절도는 계속되고, 뜻밖에도 학교 직원이 범인이라는 게 밝혀진다. 그러나 그녀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무고죄로 학교를 고발하겠다고 화를 내고 노박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노트북으로 영상을 녹화한 것이 사생활 침해라고 문제 삼는다. 파문은 점차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범인의 자녀는 노박 학급 소속 학생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학생들이 그 아이를 손가락질하고, 그 아이가 엄마는 무죄라며 항변하며 학급이 두 쪽 나는 것이다.
‘진실’을 밝히겠다며 엉뚱한 목소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교내 신문, 학급의 문제에 불안해하기 시작하는 학부모, 노박을 거부하는 아이들, 왜 이리 문제를 키우느냐는 동료 교사의 질책……. 영화는 이 과정을 긴박하게 좇으며 과연 노박에게 이 문제를 다르게 해결할 방법이 있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몰아치는 질문에 의심과 거리두기는 허용되지 않는다. 영화의 전개에는 빈틈이 없다. 어마어마하다. 노박과 마찬가지로 호흡이 가빠지고, 종종 그녀처럼 깊게 심호흡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숨이 쉬어질 것 같지가 않아서다.
노박은 매순간 어른과 선생이 가질 법한 최고의 판단력과 윤리 의식으로 문제에 대처해 나간다. 그런데 계속 무언가 어긋난다. 노박을 제외한 모두가 악인이어서는 아니다. 영화에서 악인은 분명 존재하지만 소수일 뿐이다. 노박을 몰아붙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두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요즘 우리가 자주 접하는 학교 뉴스에서 사건 개요와 사건 관계자 주장을 기술하는 건조한 문장들이 그러하듯이. 영화는 심리 스릴러 장르의 힘을 빌려 그 건조한 문장 이면에 담겨 있을 복잡한 맥락을 훑는다. 무엇하나 개운하게 답변되지는 않는다. 다만 단순한 답은 없다는 것, ‘사적 제재’와 ‘교권 강화’는 일시적 쾌감을 제공할 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 학교의 문제는 단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사회의 문제라는 것은 분명히 드러난다. 비극은 우리가 이 문제를 천천히 들여다볼 마음과 태도를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 모든 질문을 깊이 있게 마주할 수 없는 사회에서, 결국 ‘죄인’은 성숙한 어른이자 책임감 있는 어른인 노박이다. 주변 사람들이 받을 상처를 세심히 배려하고, 학교와 교육자의 역할을 고민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성찰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노박은 점점 고립된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만의 합리성에 기대 큰소리를 칠 때, 온갖 복잡한 윤리적 고민으로 인한 노박의 침묵은 ‘죄’의 근거가 된다. 상식과 윤리가 죄가 되는 사회. 심리 스릴러로서 〈티처스 라운지〉가 갖는 장르의 압도적 재미는 여기서 생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기괴한 비극의 일부다. 과연 노박의 성숙함은 희망의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큐브를 맞추는 알고리즘 같은 것은 과연 존재할까. 학교 문제에 말을 보태고자 하는 성급한 욕망을 조금만 참아보자. 그보다 먼저 노박의 성숙함을 죄로 만드는 그 모든 것을 응시해보자.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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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럭키, 아파트] 좌표지평계를 고정하는 방법
<럭키, 아파트>
수많은 작품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독립 영화계에서 유명한 작가나 감독님도 계실 것이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예쁘고 멋진 배우님도 계셨을 것입니다. 사회를 비판하거나 블랙 유머의 진수를 보여준 영화도 있었을 것이고, 우리가 놓쳤던 일상의 무지개를 발견한 영화도 많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 쟁쟁한 작품들을 이기고 ‘전주시네마 프로젝트’ 마크를 당당하게 걸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랜만에 독립영화의 색을 진하게 간직하면서 대중의 재미를 자극하는 요소로 가득한 영화였습니다. 흥미롭고, 실험적이며, 재미있습니다.
저는 오전 10시 30분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을 장맛비를 뚫고 50분 지하철로 이동했습니다. 의미심장한 장대비가 공간의 온도를 잠식하며 스산했죠. 피곤과 어려움이 몰려왔으나 영화가 시작하고 이어지는 서스펜스와 스릴이 긴장의 끈을 다시 잡게 해주었죠. 아마도 2011년 <모래>를 시작으로 <자, 이제 댄스타임>, <이태원>, <우리는 매일매일> 등 꾸준히 작품을 활동하시는 ‘강유가람 감독’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13년의 긴 세월이 전해주는 시나리오 자체의 재미와 계속해서 주어지는 인물의 과제, 입체적인 시점 자체가 좋았습니다. 관람하는 내내 이 작품은 이미 뼈대부터 탄탄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립 영화는 자신만의 강점과 특색이 매우 강력하게 확고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때론 대중의 반발을 살 수도 있고, 비난이나 불호를 받을 수 있죠. 본 작품을 관람하며 그런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외된 모든 자들에 대한 시를 쓰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줄무늬가 화려한 얼룩말이 초원에서 죽지 않고 머나먼 땅으로 여행을 떠나는 영화 같았습니다.
극에서는 현재 2024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논쟁거리가 가득합니다.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시거나 사회적인 논란에 예민하신 분이라면 관람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논쟁거리가 결국 ‘사람’이라는 실타래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하시면 왜 그렇게 모질게 구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주제가 동시에 함께 다뤄지기 때문에 보시는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 영화는 다른 색깔로 변신할 수 있는 카멜레온이 됩니다.
이제 이사를 하면 떡을 돌린다는 이야기는 늙어버린 추억의 전유물이 된 상황입니다. 이웃의 얼굴을 모르고 사는 경우는 당연한 것이죠. 그만큼 삶 자체가 매우 빠르게 흘러가고, 그것을 느끼기엔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 부족하죠. 극의 전반부는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노년층의 고독사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웃, 사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웃의 상태나 상황을 유심히 바라보기 이전에, 이미 우리 집 문 앞에 던져진 대출이자 통지서에 시선이 갈 뿐입니다. 그것도 지극한 일상이죠. 영화 전반부를 관람하며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카메라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너무 일상적인 소재인데, 어쩌면 우리 집 근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전해주는 평범함의 폭력이 어두운 아파트 복도를 따라 흘러갑니다.
영화는 풀어도, 풀어도 끝나지 않는 기출 문제집입니다. 본 작품도 고독사에 대한 답안지는 전해주지만, 그것을 접근해 가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부딪힘’이란 문제는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선량한 마음을 동 대표를 시작한 누군가의 어머니는 사건이 지남에 따라 악인으로 변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아픈 다리를 들고 움직이는 주인공 선우는 눈초리를 맞기 시작하죠. 일상 속 문제를 해결하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역할인 경찰 역시 본 작품 속 이야기는 단지 퇴근 전에 빠르게 해결하고 넘어가고 싶은 아픈 기억일 뿐입니다. 영화를 관람하시며 흥미롭게 보셨으면 하는 지점은 여기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특정한 이권을 가지고 있고, 그것에 상응하는 대적자가 존재합니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전망 좋은 언덕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어딘가 날카로운 부분을 만들고 있었죠.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영화는 그 모든 문제에 대해 정답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시선과 점점 타들어 가는 담뱃불 그리고 빨갛게 눈을 아리는 경고등만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관람하며 영화 중반부 일어나는, 시나리오상 가장 중요한 대목, 미드 포인트 사건이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조심했습니다. 대게 영화는 6분의 2지점, 절반 지점에서 극의 방향성 자체가 달라지거든요. 본 작품은 중반부 사건 이후, 시점 자체의 변화를 꾀합니다. 전반부에서 다룬 고독사에 대한 묘사나 이웃과의 갈등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존재에서 눈앞의 존재로 옮겨 집니다. 지금까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주인공을 장내의 분노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희생당한 사람으로 변신시킵니다. 극이 두 가지 이야기를 가졌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아쉬웠습니다. 전반부 분위기나 주제를 끝까지 숨기거나 가져갔다면 너무 무리였을까 싶었습니다. 영화는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소재를 풀어가는 어려움이나 반전보다는 문자 그래도 거리적으로 전반부와 가까운 이야기를 선택하죠. 취향적으로 아쉬운 행보지만 그렇다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몰입도를 깨트리지는 않습니다. 중반부 이후 영화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바라보시는 것도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는 선우와 희서는 계속해서 삐걱거리다가 결국 폭발합니다. 두 사람이 주인공인데 주인공끼리 서로 물고 뜯고 해하는 방식은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까지도 인간은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약간의 행동이나 목소리의 톤 등으로 상대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죠. 말로 전해야만 하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을 우리는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당기시오/미시오 문’이라고 느꼈습니다. 어릴 적 도덕 시간에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의 위치와 모습은 달라진다는 구절도 생각났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천대받거나 소외되거나 약자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교육받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존재하죠. 애초에 그런 것에서 자유롭고 태어나는 순간 사랑받는 것이 확정받은 진실이 있는데 말이죠. 영화가 가장 기초적으로 만들어둔 물질 만능주의와 자유에 대한 개념은 아파트 지하에 감춰져 있었습니다.
애초에 문제는 해결하는 소소한 흥미를 가져야 합니다. 문제니까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사고는 그 다음이죠. 말도 안 되는 인생 최대의 문제가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드리고 도움을 받거나 조언을 구하는 과정은 그 어린 시절 작았던 흥미에서 시작합니다. 문제 자체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동일하다고 관람 중 생각했죠. 이집트 신화의 괴물처럼 우리의 삶을 탄생과 죽음 사이에 두고 의도치 않게 껴안은 문제가 얼마나 무거운지 재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졌습니다. 촬영은 물로이요, 연출과 편집, 특히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발색은 긴 여운을 안겨주기에 좋았습니다. 씁쓸하지만 가장 익숙한 이야기를 재치 있게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자체가 영화가 추구하던 욕 먹을 때 웃으려고 노력하는 굳은 미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 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참석 후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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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들의 앙상블을 확인하다
지난 2018년 청룡영화상에서 한지민에게 여우주연상을 선사한 영화 <미쓰백>. 한지민의 연기는 언제나 실망한 적이 없지만 과격한 배역을 맡았던 것을 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과연 교도소도 다녀오고 사회에 버림 받은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하면서도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니 그 연기가 궁금하다는 생각에 보기 시작했다.
영화 <미쓰백> 시놉시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매 순간 날 배신하는 게 인생이야”
“이런 나라도, 같이 갈래?”스스로를 지키려다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되어 외롭게 살아가던 백상아. 누구도 믿지 않고 아무것도 마음에 두지 않던 어느 날 나이에 비해 작고 깡마른 몸, 홑겹 옷을 입은 채 가혹한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아이 지은을 만나게 된다. 왠지 자신과 닮은 듯한 아이 ‘지은’을 외면할 수 없는 상아는 지은을 구하기 위해 세상과 맞서기로 결심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미쓰백>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배우들의 앙상블
영화 <미쓰백>을 보면서 좋았던 부분은 배우들의 앙상블이었다. 타이틀롤로서 영화를 이끌어가는 한지민과 그런 한지민이 지키고자 하는 아이 김시아. 그리고 이 둘을 보살피는 조력자로서이 이희준. 이렇게 3명의 배우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캐릭터를 잘 표현해서 부담스럽지 않게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지민 보다 훨씬 눈에 가는 배우가 있었다. 아동학대범 주미경 역을 맡은 권소현 배우였다. 솔직히 진짜 아동학대범 데려다가 영화를 찍은 줄 알았다.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영화 캐릭터로만 보인다기 보다는 현실 속 배우와 캐릭터가 겹쳐서 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간극이 영화 <미쓰백>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던 작품이었다.
아동학대의 사회적 환기
영화 <미쓰백>의 목적은 아마도 아동학대의 사회적 환기일 것이다. 그래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동학대 사건을 모티프로 해서 영화를 제작했다. 그런데 이것이 모든 영화의 한계인데 이런 아동학대가 있다!!를 보여줄 뿐 뭔가 직접적인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흡한 초동대처로 인해 분노를 느끼지만 그 분노는 영화가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다 사라지고 만다. 정치성이나 사회성을 디는 모든 영화 작품이 갖는 한계를 영화 <미쓰백>에서 다시금 느껴 더 안타까웠던 것 같다.
드라마 <마더>와 너무 비슷했던 작품
배우들의 연기력이 너무나도 뛰어났고 연출 역시 답답하지 않아서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안타까웠던 점은 드라마 <마더>와 이야기 구성이 굉장히 비슷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보는 느낌이 아니라 리메이크작을 보는 것 같았다. 사건의 구성과 연결이 비슷하다보니 장면장면마다 마더의 장면이 겹쳐보여서 오히려 아동학대라는 주제를 제대로 환기시키기 보다는 다음에는 저런 장면이겠구나, 그 다음에는 이렇게 진행될테고, 하면서 머릿속에서 자동 스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아동학대범에 대한 분노보다는 드라마 <마더>와 완전 똑같구나 하는 감상평이 먼저 나왔던 것 같다.
비슷한 작품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진 건 사실이었지만 영화 <미쓰백>은 배우들의 앙상블 만큼은 완벽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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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 月老, 2021
2012년에 개봉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2018년 <몬몬몬 몬스터>까지 작품들의 텀은 길어도, 완성도를 생각하면 납득하게 만드는 "구파도"감독이 신작을 가지고 왔습니다.
앞서 6년이었던 텀을 이번 영화에서도 그대로 가져왔지만, 그 사이에 "각본"에 참여한 작품들도 있어 마냥 작업을 안한 건 아닙니다.
그저, 연출까지 도맡는 그의 온전한 작품을 기다려온 팬으로서 이번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에 거는 기대감은 컸습니다. - 그도 그럴 것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개봉에 앞서 '대만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하는 등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는데요.
그렇게, 보게 된 이번 작품은 어떠했는지? -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잠시, 비를 피하려던 남자는 벼락을 맞고 그만 죽고 맙니다.
이내 자신이 지옥에 떨어진 것을 알고서, 저승사자는 자신의 일을 도와주면 "인간"으로 환생을 약속하는데요.
그렇게, 몇 가지 시험을 통과한 남자는 사람들의 인연을 맺어주는 "월하노인"의 일을 하던 가운데 한 여자를 보고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리고 남자는 잊고 있던 생전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는데...만년이 지나도 재밌을 영화가...?
1. 성공적인 큰 그림 스케치
앞서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에 기대치는 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작품의 감독과 각본을 맡은 "구파도"감독의 신작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가진동"과 함께 했으니 그만한 "로맨스"도 나올 거라는 기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줄거리에서도 보듯이 저를 비롯한 많은 관객들의 기대치에 부합되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초반 전개는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합니다.정신없는 건 여전하네?
줄거리에서 "지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듯이 '사후세계"라는 판타지를 적용한 작품이라 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 설명이 중요한 작품입니다. - 추후 이야기의 개연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문제는 설명만 한다면, 이야기가 늘어지거나 지루해질 수 있어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에 고민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함께 신나는 음악, 그리고 교차편집까지 속도감 있게 보여줘 이를 타개하는데요.
정신이 없다면, 한없이 어지럽지만 늘어지거나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소기의 목적은 해냈다고 생각합니다.2. 이것도 보여주고 싶고, 저것도 보여주고 싶고
이렇게, 세계관을 소개하는데 마친 해당 작품은 저를 비롯한 관객들이 기대했고 간절히 원했던 "로맨스"를 꺼내듭니다.
그렇게, 캐릭터들은 울지만 정작 관객들은 덤덤한데요.
이런 이유에는 앞서, 번잡하게 뻗혀진 이야기와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에도 있습니다.
전작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만 보더라도, 이들에게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쌓아가는 이야기의 설명 순서도 있었거든요.보여줄게 많구나?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사후세계"를 살펴보면, 남자 "샤오륜"과 그의 파트너 "핑키"를 먼저,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들이 맡는 "월하노인"외에도 "염라"와 그를 보좌하는 부하, 그리고 "악귀"와 같은 여러 군상들을 보여줘 이야기의 스케일을 가늠케 합니다.
그렇기에 해당 작품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샤오륜"과 연인 "샤오미"의 이야기는 설명은커녕 꺼내보기도 힘든데요.
결국, 기억이 떠오르고 나서야 뒤늦게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이마저도 이들에게 몰입하기는 어려웠습니다.3. 벌려두기만 하면 뭐 하나?
영화는 "샤오륜"과 "샤오미"의 이야기를 "플래시백"으로 말하지만, 이게 몰입하기가 어렵습니다.
똑같은 시점과 시간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면 몰라도,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이 방식은 뭔가 그때마다 넣어주는 "땜질"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렇다 보니 이를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애절함"보다는 "없는 게 없네"와 같은 만물상 같은 느낌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 자유 갈래로 뻗어나간 이야기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느낌도 강합니다.앞서 설정은 뭣 때문에 말씀하셨나요?
이야기에서 "샤오륜"과 그의 파트너 "핑키"가 착용한 팔찌는 인연을 맺어주는 실을 만드는 능력이 주로 나오지만, 이는 환생을 결정짓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남아있는 하얀 구슬로 "환생 대상"을 정하기도 하지만, 전부 까매진다면 곧장 지옥으로 떨어져 환생의 기회조차 박탈됩니다.
어찌 보면, 이야기의 후반부를 쫀득쫀득하게 만들 장치로 예상되나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이를 전혀 활용하지 않습니다.
이보다 "악귀"의 행패를 "윤회"를 통해서 진정시키는 이야기로 바꿔 후반부를 보여줍니다.4. 신령님, 진정하세요.
전생애에 걸쳐 쌓인 업보, 그리고 은혜 등으로 이야기를 선보이는데 이마저도 앞서 언급한 "샤오륜"과 "샤오미"처럼 "플래시백"으로 말합니다.
지적되는 문제가 새로운 이야기에도 동어반복적으로 되감아지니 128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임에도 그 부족함을 지울 수가 없으며, 피곤하기까지 하네요.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는 그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저희가 보고 싶었던 건 절절한 로맨스뿐인 나무꾼의 심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쿠키 영상 1개가 있습니다.
본 원고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첨받아 참석해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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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실을 향한 발걸음
글은 영화, 소설 [파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과]를 읽었는데 [파쇄]를 안 읽었다? 읽고 오십시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보통 소설을 원작으로 한 제2 창작물이 만들어질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정말 충직하게 원작을 따른 사실주의 그림처럼 되거나, 내가 분노하다 못해 매번 거론하는 [나는 전설이다]처럼 완전히 다른 작품과 색깔로 피카소식 해석을 하거나. 그리고 그 어디에의 중간에 걸쳐져서 감독이 모자이크처럼 여기서 저기서 조금씩 떼어 붙이거나. 그러나 세 가지 방법 중 어떤 특별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영화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원작을 어떻게 그리느냐. 혹은 원작에서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살리느냐. 에 제2 창작물의 승패가 달려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파과]가 선택한 방법은 마지막 방법이었다. 작품의 전반부는 원작의 서사를 잘 압축하고 적절하게 베어 넣어 배치했으며,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던 소설의 분위기도 눈앞에서 안개처럼 펼쳐진다. 물론 거기에도 변주라고 할 법한 부분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슬릴 정도의 큰 프레임의 이동은 없으며, 그 변화로 인해 주요 메시지가 숨거나 해석되지 않게 가면을 쓴 채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그나마 사람에 가까웠던 이름인 [손톱]이었던 시절이건, 이젠 짐승만도 못한 인간에 가까워 보일 이름인 [조각]으로 살고 있는 지금이건. 그녀는 여전히 한쪽 마음에는 깊은 상실을, 그리고 발걸음에는 우울한 쇠퇴함을 잔뜩 묻힌 채 목표물을 향한 관심도, 시선도 거두지 않았으니까.
사진 출처:다음 영화
변주라고 부를 법한 감독의 모자이크는 후반부 1/3 지점부터에 포진되어 있는데. 여기서 아마도 이 영화의 승패 까지는 아니더라도 선호도 정도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원작의 시점은 철저하게 그녀의 시점에서 풀이되고 있다. 그녀의 독백(방백이려나)을 따라가다 보면 으스러지는 것은 그녀의 타깃뿐만이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마음마저도 함께 조각조각 찢어져 나부끼게 된다. 그러나 영화가 원작과 노선을 달리 하는 그 순간에는 “늙고 쓸모없는”과 ”상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전설의 위대함”, 그리고 “관계”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다.
덕분에 책에서는 그다지 강조되지도, 그렇다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액션 장면들이 으스대며 들어설 자리가 생기고, 지나가기 바빴던 인물들도 한 번씩 고개를 돌려 관객들과 눈을 맞출 시간이 생긴다. 또한 자신을 생의 마지막 1분이 남은 시점에서야 알아보고 투정을 부리는 듯한 투우(김성철)의 모습을 보면서. 이 두 사람 간의 애증에 대해 좀 더 느낄 수 있도록 여운을 얹는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하지만 마치 구전설화처럼 전해지던 그녀의 위용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순간은. 독백을 고집했던, 혹은 그녀의 시각으로만 해석되던 전반부의 장면들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후반부에 갑자기 강조된 투우의 시점 덕에 그녀에게만 향하던 집중력이 조금 흩어진다고 느꼈다. 그리고 [파쇄]에서 따온 듯한 킬러양성 법칙 101의 마지막 단계(?)는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는 이해가 되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삼켜 내는 것이 조금은 껄끄러웠다.
그러나 이 모든 단점(?)은 손톱이자 조각이며, 누구에겐 더 이상 만들지 않아야 할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대모님이 되어버린 그녀. 이혜영에 의해 완벽하게 정리된다. 눅눅하기 그지없는 영화 속에서 날이 바짝 선 칼 같은 예리함으로. 바스러질 것만 같은 육신으로도 냉담하게 일을 해내는 원작 속의 조각을 정말 눈앞에 가져다 놓다 못해 애초에 이 업계(?)에서 한평생을 산 것만 같은 모습인 그녀 덕에 말이다.
그녀는 영화에서 톡톡 튀어나온 부분을 친절히 잘라내고 얇게 저미고 천천히 갈아 내게 내밀었고. 나는 가루약을 받아 든 어린 투우가 되어 고개 한 번 끄덕인 채 쓴 약을 꼴깍꼴깍 삼켜낼 수 있었다. 그녀가 이제 곧 사탕을 줄 거야.라는 기대와 함께.
마치면서
사진 출처:다음 영화
엔딩 크레딧이 이렇게 반가우면서도 아쉬울 일인가 싶었다. 이 생각과 함께 찾아온 안도와 동시에 배어 나온 깊은 한숨은, 마치 영화 내내 긴장하고 있던 나의 모든 신경에게 진정하라고 말하는 토닥임처럼 다가왔다.
영화의 본체가 되는 소설 [파과]와 함께 스핀오프 같은 소설 [파쇄]까지 일 하는 척하면서 단번에 읽어 내려갔던 이후로. 이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은 기쁘면서도, [원작 잘 살리기] 위원회(같은 게 있다면) 상무(자리 정도는 차지했을 나 같은 인간)인 나에게는 마치 조각 그녀가 지니고 다니는 비녀의 날 끝처럼 나를 쿡쿡 쑤셔댔다. 고통이라 불러야 할지. 희열이라 느껴야 할지. 조각(이혜영) 그녀가 류(김무열)에게 품었던 마음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아슬아슬함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영화를 기대하기도. 그러면서도 외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가 가져다준 만족감은 소설 말미에 조각이 느꼈을 해방감이라 부를 수 있을 법한 감정과 제법 닮아 있었기에, 새로운 시작 앞에 당도하고 나서야 내보인 킬러 조각의 뒷모습에 대고 슬며시 웃을 수 있었다.
킬러의 뒷모습이 이렇게 반가워서 될 일인가 싶지만. 바뀐 그녀의 마음 때문에 기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매번 상실을 안겨야 할 상대의 모습만을 바라보던 그녀는. 등을 돌려 자신이 상실해 온 것을 향해 달려가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일 테니까. 스스로에게는 어쩌면 가장 약한 고리이기도 했을 부분을 대담하게 드러낸 그녀가 더 강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무용이 너무 귀여워(?)
[이 글의 TMI]
1. 인간적으로 빵 어떻게 끊는지 아시는 분?
2. 인바디 체중계 산 뒤로 매일이 충격의 연속임.
3. 오예 연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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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엘리트들 시즌 5> 공식 예고편
이번 시즌, 해방이 시작된다. 더 이상 잣대도, 규칙도 없다. 당신은 자유로워질 용기가 있는가? 《엘리트들》 시즌 5,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엘리트들넷플릭스 #Élite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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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무명지배: 대환장 특수임무> 예고편
시내에 있는 휴대폰 가게에서 총기 강탈 사건이 벌어지고 그 범인들은 가기라는 여자의 집에 침입하여 몸을 숨긴다.
평소 죽고 싶던 가기는 죽이고 나가라며 범인들을 협박한다.
예전 경찰을 도우며 살아가다 한 번의 사고로 몰락한 마선용은 경찰의 도움이 되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하는 일마다 꼬이게 된다.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서산 대교에서 조직폭력배와 학생들 간에 패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총기를 찾으러 갔다가 구급차에 실리게 되고, 그곳에서 총기 강도 사건의 범인들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