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9-30 17:08:46
음식은 킥, 영화는 후킹!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킥'이 중요하고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면 '후킹'이 중요하죠
음식에서 킥(kick)은 기본적인 맛에 자극을 더해주면서 전체적인 요리의 풍미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영화에서 후킹(hooking)은 초반에 관객의 관심을 강하게 끌어들이는것을 의미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킥'이 중요하고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면 '후킹'이 중요하죠.
오늘은 킥과 후킹 모두를 잡은 맛도리 영화들을 준비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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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가 아동학대인건 알겠는데 주제는 뭘까?
김남길의 팬으로서 하정우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클로젯>에 대한 기대감이 낭낭했었다. 아무리 내가 팬이라지만 마냥 좋다고 평할 수 없을 정도로 말문이 막히는 작품이었다. 심지어 영화 평점을 후하게 주는 친구가 왓챠에 2.5점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클로젯 시놉시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잃은 상원과 그의 딸 이나. 상원은 소원해진 이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새집으로 이사를 간다. 상원은 이나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긋난 사이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이나가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며 웃기 시작한다. 하지만 평온도 잠시, 이나의 방 안에 있는 벽장에서 기이한 소리들이 들려오고 이나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그리고 상원마저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 지 얼마 후, 이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나의 흔적을 쫓는 상원에게 의문의 남자 경훈이 찾아와 딸의 행방을 알고 있다며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이나의 ‘벽장’. 10년간 실종된 아이들의 행방을 쫓고 있는 경훈은 믿기 힘든 이야기를 꺼내고 상원은 딸을 찾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열어서는 안 될 벽장을 향해 손을 뻗는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조했습니다.
하정우에게서 어색함을 느낄 줄이야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하정우에게서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졌다. 무당이 자해를 하는 비디오 테이프 영상 이후 상원과 이나 차를 타고 이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상원이 이나에게 아빠가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정말 어색했다. 전혀 아빠같은 느낌이 아니라 삼촌인데 조실부모한 조카와 어색한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상원이 없어진 이나를 찾는 이유도 잘 와닿지 않았다. 나를 찾아줘의 이영애나 박해준과 같은 모성과 부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대뜸 경찰한테 화를 내거나 방송사에 출연하며 아이를 찾는 노력이 분명 아빠인데도 내가 느끼기에는 굳이?? 이런 감정이 들었다. 이나를 찾으러 이계를 향했을 때도 이나를 찾아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용서를 구했을 때도 전혀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정우에게 아빠라는 캐릭터가 이렇게 어울리지 않았던 것인가? 하는 의문점이 들었던 작품이었고, 하정우식 특유의 유머 없이 시종일관 진중함으로 영화를 끌고가다보니 어울리지 않는 옷을 계속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회수하지 못한 떡밥이 있는데?
영화 <클로젯>을 보면서 물음표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막판에 엄청난 떡밥을 던지고 회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영화 초반에 떡밥을 하나 둘 뿌려놓고 마지막 절정에서 파바박 회수를 하고 결말이 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상원이 이나를 찾으러가는 절정 부분에서부터 이상한 떡밥들이 나오더니 결국 설명해주지 못하고 영화는 끝이 난다.
도대체 왜? 상원의 아내는 이계에서 상원을 죽이려 하는 것일까? 그리고 명진의 엄마는 어쩌다가 나타난 것이고, 왜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인가? 상원의 아내는 사고사였고, 명진의 엄마는 남편의 살인이었는데 명진의 엄마는 이계 속 괴물로 남지 않고 상원의 아내만 괴물로 남았을까? 도통 이해를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뒤 이렇게 찝찝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클리셰란 클리셰는 다 가지고 있으면서 설명은 제대로 안되고 굉장히 허무하고,, 루즈하고,, 영화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빨리 끝나면 저 떡밥들을 회수할 수 없을 것 같고, 걱정만 하다가 결국 회수하지 못하는 영화를 보며 굉장히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어렵게 풀어내야 했을까?
영화 클로젯의 전체적인 소재는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들이 벽장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이유는 명진이라는 아이가 벽장 속에서 아빠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억울해 어둑시니가 되었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 집에 나타나 한 명씩 자신의 세계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부모에게 당한 폭력, 언어적 모욕, 방치, 무관심 등과 같은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명진이라는 아이가 성불을 했음에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또 다른 아이가 벽장으로 들어가려는 듯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아동학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왜 이렇게 어렵게 풀어내야 했을까? 어둑시니라는 우리나라의 토속적인 괴담과 연결을 하려는 시도는 좋았다. 그러나 어둑시니와 이계라는 설정이 더욱 부각이 되고 하정우의 모험이라는 테마가 전방에 먼저 제시되다 보니 오히려 아동학대라는 큰 주제는 묻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막판에는 김남길이 그냥 대사를 통해 “다들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들이었네요.”라고 퉁쳐서 얘기를 하는 바람에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들의 절박했던 그 마음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이 영화의 주제가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이 주변에 많으니 관심을 기울여라 인건지 당신도 모르게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김남길 배우를 좋아하기도 했고, 스릴러 장르를 선호하는 편이어서 기대를 많이 했던 영화 <클로젯>. 하지만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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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예르모 델 토로'가 전하고 싶었던 어두운 피노키오
먼저 떠난 아들
김삿갓이 뭐죠? 방랑시인이 뭐죠? 우리의 예술가이자 귀뚜라미 크리켓은 오늘도 여행하고 있다. 크리켓이 여행 숙소로 머무는 곳은 보통 나무(들)의 심장이다. ‘어디 적당한 나무 없을까?’ 두리번두리번 돌아다니는 크리켓. 크리켓은 그렇게 숙소에 앉아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려 한다. 좋아. 이 자리가 좋겠어. 짐을 풀고 나무에 잠깐 누울 준비를 한다.
퍽. 퍽. 이게 무슨 소리야? 크리켓은 화들짝 놀란다. 나무에서 나오는 크리켓. 어떤 할아버지가 술에 취한 채로 나무를 베려고 한다. 길가다가 벼락 맞는 것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불운이다. 할아버지는 뭔가에 단단히 씌인 것 같다. 무슨 일이지? 저 할아버지는 이 나무 근방에서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제페토. 카메라는 제페토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제페토는 세계 2차 대전 당시에 아들을 폭탄에 의해 잃었다. 회한과 후회가 제페토에게 남았다. 아버지가 되어 지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마음의 병으로 남는다. 미쳐가는 제페토. 제페토는 매일같이 아들의 묘지에 앉아 다시 돌아와 달라고 애원한다. 그런데 터무늬 없다. 망자가 돌아올 리는 없으니까. 제페토는 나무를 베서 또 다른 아들을 만들려고 한다. 직업적인 특성을 발휘하는 제페토. 오래 걸리지 않아 '피노키오'라는 나무 인형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피노키오에 갑자기 특별한 마법이 들어왔다. 피노키오는 신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얻는다. 나타나자마자 온갖 사고는 다 치고 다니는 피노키오. 과연 피노키오는 어떤 일상과 삶을 마주하게 될까?
아날로그 감성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보는 듯하다. 7살 즈음에 봤던 <강아지똥>이 생각난다. 직접 만든 점토 같은 느낌으로 전개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요즘은 애니메이션을 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림처럼 그려 전개한다. 모형으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슨 말이냐? 1 프레임 단위로 모형을 그려 이야기를 만들면 제작자의 눈알과 팔이 빠지기 쉬울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그려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노가다 중 노가다지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더 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이 스톱모션 기법으로 제작한 영화다. 과거에 전설적으로 내려오던 동화를 예전에 제작하던 방식으로 만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도입한 것이 아닐 것이다.
영화는 과거의 어떤 것에 대해 코멘트하고 있다. 영화는 피노키오의 형식만 따왔을 뿐이지 사실 아예 딴판인 이야기다. 영화에서 중요했다고 볼 수 있던 키워드는 두 가지다. 바로 전쟁의 참혹함과 '너 다움을 잃지 말아라'라는 말이다. 이는 과거의 어떤 것을 되살릴 수밖에 없는 영화의 형식과도 이어진다. 일단 아들이 죽었기에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과거의 사건에 대한 현재의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너 다움을 잃지 말아라'라는 말은 예술가로서 두 감독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과거의 편린에 사로잡히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재창조하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주제적인 측면은 제페토와 피노키오가 처절할 정도로 어떤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대표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과거를, 그리고 그 과거와 관련된 기억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를 각자 생각하게 된다.
기본적인 세팅만 따온 이야기
영화 제목에 '피노키오'가 들어간다. 피노키오? 우리가 아는 피노키오 아냐? 맞다. 우리가 아는 피노키오다. 거짓말하면 코가 늘어나는 걔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이 거짓말이라는 모티브를 활용한다. 이 거짓말이라는 모티브는 영화가 품고 있는 다른 한 측면 '다양성'을 관통하는 키워드기도 하다. 나무로 되어있는 피노키오. 사회성이란 게 없기 때문에 여기저기 쏘다니며 사고 치기 일쑤다. 이런 캐릭터 세팅은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시대적 배경과도 이질적으로 맞물리며 후자를 더 돋보이는 효과를 보여준다. 또 피노키오가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역시 기능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이 나무로 구성된 피노키오의 특성은 영화의 후반부까지 끊임없이 제시된다. 늘어난 코를 활용한다던가, 불에 탄다던가, 부서지면 수리할 수 있다던가 하는 캐릭터의 특성을 코미디, 판타지로 소화한다.
또한 이야기 전개 자체가 아예 원작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부분이 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 모두가 행복하게 마무리 저었던 결말과는 달리 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마무리짓는다. 이는 '남겨져 있는 자'가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라는 명제가 대비되는 전-후반부의 설정으로 강화되는 것이다. 영화는 이를 전달하기 위해 전쟁의 참혹함을 시대적인 배경으로 세팅했다. 또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차용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제목에서 '피노키오'보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라는 단어가 더 중요한 것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다른 지점을 찌르는 작품이기 때문에 넷플릭스든 극장에서든 투자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 분은 뭘 먹고살길래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사람은 기예르모 델 토로다. 아마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약간 매니아적인 감독 중에서 제일 대중적인 느낌?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으로 아카데미 위너도 됐고 <판의 미로>라는 걸작을 만들기도 했다. 이 뿐인가? 올해 초에 <나이트메어 앨리>를 개봉시키기도 했다. 일단 델 토로의 작품 특성이라고 하면 시각화 비주얼이다. <나이트메어 앨리>를 제외하고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괴물'이다. 델 토로는 영화에서 괴물을 잘 등장시킨다. 그런데 괴물을 시각화하는 방식이 너무 특이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기억에 선명하게 나온다. 또 폭력 수위도 쉽지 않다. 어쩔 땐 잔인하기도 한 델 토로. 이런 델 토로가 '피노키오'라는 고전소설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이 좀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일단 영화가 전체이용가 심의 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글쓴이는 그렇게까지 기대하지 않았다.
영화는 이런 기대를 한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델 토로의 인장을 쾅쾅 박아 넣었다. 일단 영화에서 틸다 스윈튼이 맡았던 신 캐릭터가 있다. 여기에서 이 여신 캐릭터의 비주얼이 곤충 개미와 '램프의 요정 지니'를 섞은 듯한 비주얼로 뽑혔다. 이 캐릭터가 잔인한 장면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미지에서 뒤틀려있다는 점에서 델 토로 연출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 초반부에 제시되는 영혼의 묘사 방식, 귀뚜라미의 시각화, 피노키오의 모습, 후반부에 등장하는 괴수까지 델 토로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기대치를 충족하는 뛰어난 연출법이 돋보인다. 그래서 혹시 '아 이거 기예르모 델 토로 순한 맛 아닌가' 싶은 분들은 전~혀 그러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다. 영화는 스톱모션이라는 촬영기법과 어딘가 기이한 캐릭터 시각화로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며 후반부까지 질주한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
어느덧 2022년의 끝자락을 맞이한다. 올해는 또 어디까지 왔을까. 연말을 앞두고 많은 분들이 생각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글쓴이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혼자라는 것. 나만 이럴까?라는 것이다. 단순히 커플이 되거나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 혹은 그런 목표들이 내 인생에서 언제까지 나를 지키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마음 한 구석이 어두워진다. 점점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게서 나부터가 마음이 떠나가고 있는 듯하고, 사랑하는 애인은 아직까지 타이밍이 아닌 것 같거든.
영화는 혼자 남은 캐릭터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계속해서 인물들은 한 자리에서 맴돌며 사랑의 의미에 대해 스스로 반문하는 듯하다. 이 질문은 결국 관객에게 전달된다. 과연 우리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서도 당연히 코멘트하고 있는 영화지만 이는 올해 우리가 다시 한번 상기되는 사실이라 생략하기로 한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남아있는 제페토와 피노키오의 행적을 주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당연히 있고, 그 과정이 끔찍할지라도 우리는 서로가 있기 때문에 행복하니까. 다 아는 맛 같지만 마음 한 구석을 찌르는 따뜻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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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지휘자'라는 모순
‘여배우’ 라는 명사를 보며, 언제쯤이면 우리는 직업이나, 일 앞에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붙이지 않을 수 있게 될까 하고 생각해왔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아이가 살아갈 시대엔 성별에 갇힌 사고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다양한 책을 읽고 부지런히 노력해 왔다 자부 했는데…‘여성지휘자’ 라는 말에 오케스트라 지휘자 중에도 여성이 있구나. 하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버린 나의 모순성에 아차 싶었던 영화가 바로‘ 타르TAR’ 이다.
연출의 훌륭함이나, 리디아 타르 그 자체 였던 케이트 블란쳇의 숨막히는 연기력에 대한 감탄보다 나를 더 숨막히게 했던 것은 나의 부족함을 깊이 뾰족하게 여러 방면으로 느끼게 했던 순간이 영화 내내 계속된 점이다.
영화는 몇백년을 이어온 견고한 남성의 세계에서 이미 소수자인 그녀를 ‘레즈비언’이라는 더 소수의 인물로 설정하고, 나처럼 무지했던 사람들에게 오케스트라 지휘의 세계에도 여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도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이 우리가 생각한 여성의 모습보다는 남성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린다.
그렇다. 여기에 모순이 있다. 내가 생각한 여성의 모습은 무엇이고 남성에 가까운 모습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권투를 하고, 폭력성을 가지고 있으며, 권력을 휘두르는 리디아타르의 모습이 남성적이다…라고 라고 생각 하는 나야말로 정말 편협한 사람이구나.
엄마, 여자, 사람으로 나쁘지 않은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나의 어줍잖은 자신감을 비웃고, 깊은 내면에 뿌리 박혀 있었던 게 분명한 보수적인 생각과 성숙하지 못한 나의 사고를 반성하게 하며 뼈를 맞는 기분이었다.
2023년 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슬로건은 “우리는 훨씬 끈질기다” 이다. ‘지금 여기, 변화할 듯 변화하지 않은 현실 속 여러 층위의 벽과 질문들을 끈기 있게 마주하는 우리’ 라는 영화제의 슬로건을 보면서, 끈질기게 ! 끈기있게 ! 마주해야 하는 것엔 여성을 향한 암담한 현실뿐만 아니라, 가장 먼저 나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 성인지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마음에 취하지 않고, 은연중에 고정관념과 차별적인 시선에 사로 잡혀 있진 않은지. 끈기 있게 나를 마주해야 할 때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내가 ‘여배우’ 라는 명사를 보며, 언제쯤이면 우리는 직업이나, 일 앞에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붙이지 않을 수 있게 될까 하고 생각해온 것 자체가 비겁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바라지 않고 내가 지우면 된다. 여기서 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니까.
지휘자를 연기한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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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한국영화를 사랑하게 된 이유
떠나려 하네. 저 강물 따라서. 익숙한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그 시간들도 다시 돌아오진 않아. YB의 윤도현이 부르는 노래다. 난 YB의 음악을 좋아했다. 내가 10대 때에 TV 프로그램이 있었고 거기에 YB가 나왔다. 당시 주류였던 아이돌 음악을 별로 안 좋아했던 나.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이유는 없지만 아이돌의 음악을 그렇게 좋은 음악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26살의 나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 4만 번 이상을 생각했다. 물론 시간은 기차처럼 뒤로 돌아오지 않는다. 행복했던 시간. 후회되는 과거.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하는 미련. 만약과 가정은 잔인하게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근데 그런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터닝포인트는 보통 한 번만 찾아오지 않는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 아닌가? 한번, 두 번, 세 번 계속 일어나서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강물 따라 비행기를 타 한국을 떠나도 그 안에서 계속되는 루틴이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이게 잠깐 들고 끝나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웬만하면 흑역사는 누적되니 괴롭다. 난 21살 때 이 누적되는 흑역사들이 참 싫었다. 엄마, 아빠에게도 병이 있다는 사실 자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우울함에 장식되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에 점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할 때, 새로운 취미에 눈 뜨고 싶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게 됐다. 그리고 한국영화의 팬이 됐다. 나에게 이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니 만큼 여러분에게도 권하고 싶다.
1. 무엇에 관한 작품인가요?
처음 시퀀스를 보면 익숙한 느낌이 들 것이다. 어딘가 사연이 많아 보이는 남자 영호.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일행들의 마이크를 뺏어 노래를 부른다. 노래도 부르다 말고 갑자기 철로 위로 올라가는 영호. 갑자기 만난 사람이 느닷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거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한 명을 남기고 다른 친구들은 트로트 음악에 춤사위를 벌이고 있다. 선로 위에 올라간 영호.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한 채로 영호는 기차에 몸을 던지기로 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비명과 함께.
영화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영호의 과거를 좇는다. 그가 어떤 과정을 겪었기에 그런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격동의 한국사를 천천히 살펴본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정통으로 맞은 영호. 그렇게 자기의 선택지를 고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회의 희생양이 된 인물이 영호다. 이 영화는 왜 사회에게 상처를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얼마나 한국사에 상처가 많은가'와 '당신이 돌아가고 싶을 만큼 행복한 때는 언제인가'라고 묻는다. 이 영화는 그런 작품이다.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세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상처. 역사. 공감. 상처는 인물의 상처를 들여다보기 때문에. 역사는 우리 한국사회의 과정과 인간의 삶이 큰 관련이 있단 걸 보여주기 때문에. 공감은 감독 이창동이 해결책이 아닌 절규로 인물의 최후를 묘사했다는 것에서 그렇게 생각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상처받은 이들에게 설루션이 아닌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세 가지 키워드로 보여준다.
3.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근데 한국적이다. 이게 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전부를 관통하는 장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엔딩을 서두에, 오프닝을 결론부에 배치하는 거야 그렇게 찾아보기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근데 분명하게 구분되는 차이점은 이런 내용을,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건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보장한다. 뭐랄까. 이 영 호라는 인간이 질이 구린 인간인 거야 초반부만 봐도 느껴지는데, 어쩐지 모르게 이 인물에게 느껴지는 공감이 있다. 근데 그 기분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다. 세상에게 상처를 받는 이유가, 어쩌면 그가 피할 수 없는 어떤 요인들 때문이었다는 것이 그 때문일 수도 있다. 또, 그 아픔을 겪고 나서 보여주는 리액션이 우리의 인생과 그렇게 멀지 않음도 그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질이 구린 인간에게 느껴지는 연민과 위로'는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역사에 좌절하는 인간이 보여주는 리액션'은 우리나라 사람이기 때문에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이 이창동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탁월한 완성도도 그 특이함과 장점을 경험할 수 있다.
4)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영화가 어렵지는 않다. 근데 보는 건 좀 힘들 수도 있다. 감독이 연출을 잘 만들어 인물에게 이입을 잘하게 만들었다.
5)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설경구. 문소리. 작년 2021년에 활동했던 배우들이기도 하다. <자산어보>와 <세 자매>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인 두 사람이기도 하다. 이 둘의 신인시절이 담겨 있는 영화다. 후에 <오아시스>로 재회하는 둘이지만 '뇌성마비에 걸린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보다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안에 거대한 화와 상처를 품고 있는 영호. 대놓고 감정연기를 하는 것보다 내면에 화를 품었다는 걸 드러내기가 어렵지 않나? 정말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아픔이나 결핍을 알기 어려우니까. 배우 설경구는 주인공 영호의 심리상태를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끔 아주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걸로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니 평단의 인정을 받았단 뜻도 될 듯. 문소리도 <오아시스>만큼이나 고난도는 아니었겠지만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감독 이창동이 이런 쪽으로 배우의 연기를 뽑아내는 걸 잘하는 것 같다. <밀양>에서의 송강호 배우나, <버닝>에서의 스티븐 연의 연기나 뭐랄까 우리 주변에 실제로 있을 법 한 인물을 잘 설정한다는 느낌이다.
6) 줄거리 외의 부분은 어떤가요?
보통 이 부분에 대해 쓸 때는 미장센에 대해 썼다. 근데 사실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미장센이 두드러지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상미가 안 좋은 뜻은 결코 아니다. 그냥 평범한 영화 같다는 뜻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미장센이 어쩌고는 신경 쓰이지 않는다. 플롯 연출이 워낙 탁월해서 조용히 영호의 마음에 스며든다.
7) 이 영화를 보기 전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아마 10대 때 한국사 과목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IMF, 5.18 광주사태 등등. 우리나라 국민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실들을 상기시키기만 한다면 될 것 같다.
8)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반복되는 상처에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 생의 끝까지 왔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어떤 삶이든, 당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요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 박하사탕을 먹고 조금이라도 더 눈물을 쏟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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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엘리멘탈> 일일관객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 역주행에 성공하며 300만 돌파를 한 엘리멘탈 !
유료시사회를 진행하면서 출격준비를 마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까지
그 외에도 극장가를 꽉채운 해외 영화들 7월 2주차의 박스오피스 다함께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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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7월 둘째 주, 1위를 차지한 <엘리멘탈>! 엘리멘탈이 개봉 4주 차에 더욱 치솟은 관객수로 3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했습니다. 4주 차에 들어섰음에도, 가장 높은 일일 관객수를 보여주고 있으며 꾸준한 역주행의 상승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편 <범죄도시 3>는 누적 관객수가 지난 1일 오전 8시를 기해 1000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역대 국내 개봉작 중에서는 30번째 1000만 돌파입니다.
1. <엘리멘탈>
주말 관객수 80만 명을 넘기면서 전주보다 높은 주말 관객수를 기록하였고 첫 주 42만, 둘째 주 49만, 3주 차에는 68만을 기록하면서 역주행 성공신화를 그리며 300만 돌파에 성공했습니다. <엘리멘탈>의 연출을 맡은 손 감독은 한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엘리멘탈을 통해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감정의 시적점에 대한 이해는 우리를 연결시키게 만들어 서로의 감정에 공감을 일으킨다”라고 밝혔습니다.
2. <범죄도시3>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의 전체 누적 관객 수가 3천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한국 영화 시리즈 가운데 누적 관객 수가 3천만 명을 넘어선 건 <범죄도시>가 역대 처음입니다.
마동석은 이로써 5000만 배우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3.<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은> PART ONE'이 오는 12일 개봉을 앞두고 유료 시사회를 진행하면서 개봉 전부터 주말 박스오피스 3위에 랭크되어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톰 크루즈 주연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인류를 위협할 새로운 무기가 못된 자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추적하던 에단 헌트와 (톰크루즈)와 IMF팀이 미스터리하고 강력한 적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4.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15년 만에 다시 한번 관객을 찾았습니다. 마케팅 비용을 빼고도 2억 9500만 달러를 쏟아부은 역대급 고 예산영화라는 걸 감안하면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억 3000만 달러는 대단한 성과는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박스오피스 4 위대에 머무르며 아쉬운 성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5.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파이더맨 주말 관객수 12만 명을 기록하며 점차 순위에서 밀려나는 추세로 현재까지 총 관객 8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2)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북미 박스오피스 7월 둘째 주 <인시디어스: 빨간 문>이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을 제치고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아동 성노예예와 구출 이야기를 다룬 <Sound of Freedom> 3위, <엘리멘탈>이 4위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5위를 기록했습니다. <인시디어스: 빨간 문>은 2012년 시작된 '인시디어스' 시리즈 5번째 작품으로 2013년에 나온 두 번째 영화 <인시디어스:두번째 집>에 이어 램버트 가족이 다시 한번 악몽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7월 19일 개봉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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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7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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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기억, 그리고 무엇들, <1초 앞, 1초 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1초 앞, 1초 뒤(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2024
일본, 로맨스, 판타지 등 119분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
시간, 기억, 그리고 무엇들, <1초 앞, 1초 뒤>
시간이 방대하게 축적된 추억을 연료 삼아 흐를 때, 기억은 위대함과 무력함이 공존하는 대자연의 힘으로 몸집을 키운다. 시간을 소유하고 싶은 염원은 망각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소망과 다를 바 없고, 기억을 되찾고 싶다는 말은 언제든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그만큼 기억과 시간의 거리는 가깝다. 아니, 하나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만큼 둘 사이는 깊고 밀접하다. 여기서 밀접함은, 서로에게 충분히 충족된다는 의미다. 두 개의 원이 각자의 영역을 확고히 하면서도 반드시 겹쳐있다는 점, 다르게 불리고 굴러가는 방식도 다르지만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시간(기억)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제동이 걸려 때때로 멈춤 현상이 발생하지만, 끝없이 흘러가고 이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 완전한 거부는 불가능하다. 물론 이 강력한 힘을 기억(시간)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삶을 흐르게 하는 바퀴가 고작 두 개일리 없고, 나아가 겹친 수가 겨우 두 겹뿐이겠는가. 시간과 기억, 그리고 무엇과 또 다른 어떤 것들. <1초 앞, 1초 뒤>는 여기에 ‘관계’를 겹쳤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관계, 너와 나의 사이, 우리와 그들의 차이, 거기서 발생하는 이야기. 영화는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의 개인사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면서 마지막엔 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다. 끝엔 합쳐진 이야기가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붙잡지 않고 풀어놓음으로써 해피엔딩을 완성한다. 남들과 달라 늘 혼자였던 두 인물이, 그 다름으로 인해 잊고 있었던 서로를 기억해 내고, 마침내 서로의 품에 녹아들며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 시작은 남보다 1초 빠른 하지메의 속사정으로 출발한다.
교토에서 태어나 한 번도 고향을 벗어나 본 적 없는 하지메는 어렸을 때부터 외로움과 함께 자랐다. 생강을 사러 간 아버지의 실종도 문제였지만, 태생적으로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사는 삶이 그를 결정적으로 혼자가 되게 만들었다. 달리기 시합을 하면 늘 먼저 출발했고, 말과 행동은 지나치게 많고 빨랐으며, 사진을 찍으면 셔터 속도보다 빨리 반응해 항상 눈을 감은 채 찍었다. 웃음 포인트 역시 반 박자 앞서서 본의 아니게 스포 빌런이 됐고, 우정은 물론 사랑 방식도 타인보다 급해 상대에게 먼저 차이기 일쑤였다. 성인이 된 후 집배원으로 일했지만, 속도위반을 밥 먹듯이 해 ‘분노의 질주남’ 별명과 함께 사무직으로 재배치됐다. 현재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조금의 여유도 허용치 않는 그의 업무 속도를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보통 이들이 그렇듯, 일을 적게 하는 걸 좋아하면서도 아예 하지 않는 건 또 꺼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의 하지메는 동료들과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레이카 역시 속도만 다를 뿐 하지메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어릴 적, 시험을 봐도 긴 이름을 쓰느라 문제를 반 이상 풀지 못했다. 느린 탓에 모기를 한 번도 잡아본 적 없고,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지만 움직이는 피사체를 순간 포착하는 건 버킷 리스트가 된 지 오래다. 웃음 포인트도 스포 빌런과 준하는 뒷북 빌런으로, 모든 사람이 웃고 넘어간 지점을 꼭 뒤늦게 밟아 매번 난처하다. 대학을 7년째 다니고 있고, 집 대신 사진 동아리 방에서 숨어 살고 있다. 현실이 팍팍하고 지난하지만, 죽은 아빠가 남긴 카메라로 세상을 찍으며 외로움과 슬픔을 조금씩 덜어내며 산다.
1초의 횡포도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던 두 사람은, 새로 생성된 관계들로 인해 충돌하듯 재회한다. 길거리 가수와의 연애로 30년 만에 행복을 느끼는 하지메와 그런 그의 시야에 레이카가 처음으로 들어온 순간이다. 사실 레이카는 하지메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과거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자신을 위로해 준 소중한 친구를 잊을 리 없었다. 두 아이는 헤어지기 직전 레이카 고모의 우편함 열쇠를 나눠 가지며 꼭 편지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꼬꼬마들의 소꿉놀이는 잊혔고, 시간 탓을 하든 기억 탓을 하든 둘이 다시 만나 서로를 알아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레이카가 그날, 그때, 버스 하차 벨을 늦게 누르지 않았다면 말이다. 1초 느린 여자가 1초 빠른 남자를 못 알아볼 리 없었고, 레이카는 그날부터 하지메에게 우표를 사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가 날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메에게 잊힌 시간보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삶을 산 기간이 더 길었으니까. 무엇보다 레이카는 하지메란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깊이 위로받고 있었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하지메와 가수, 가수와 레이카, 하지메와 실종된 아버지, 하지메와 가족, 레이카와 하지메까지, 둘의 이야기는 포개지는 관계들의 영향력으로 특별한 반전 없이 흘러간다. 하지메의 돈이 목적이었던 가수의 못된 심보가 레이카에 의해 밝혀지고, 돈 봉투를 챙겨 가수를 만나러 가던 하지메는 영문도 모른 채 하루를 잃는다. 그가 잃은 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무수히 많은 1초를 저장해 왔던 레이카의 1일이었고, 레이카는 멈춘 하지메를 데리고 바다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난다. 그녀와 같은 1일 무료 사용권을 가진 버스 기사의 도움으로 말이다. 하지메의 아버지도 집을 나간 날 세상이 멈추는 바람에 자살에 실패하고 지금까지 숨어 살고 있었다. 그는 레이카 덕에 아들과 사진도 찍고 가족들에게 못했던 미안하단 말을 하고 떠난다.
다음 날, 깨어난 하지메는 잃어버린 하루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연속된 우연으로 우편함 열쇠까지 찾아내 레이카가 그동안 보냈던 편지(사진들)를 발견하면서, 덮어뒀던 그녀와의 추억을 찾는 데 성공한다. 매 순간 어긋나기만 했던 둘의 시간이 딱 맞춰지는 그때, 늘 빠르기만 했던 하지메는 레이카를 기다리고, 늘 느렸던 레이카는 하지메를 위해 빠른 걸음으로 우체국 안으로 들어간다. 서로를 마주 보고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터트리는 두 사람, 영화는 잊지 않고 둘의 치유 과정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렇게 흐르게 놔둔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1초 앞, 1초 뒤>는 진옥훈 감독의 <마이 미씽 발렌타인>(2010)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굳이 원작을 언급한 건, 본 작품을 원작과 함께 음미하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작과 다른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주인공의 성별(원작은 여자가 빠르다)이 바뀌었고, 새로운 인물들이 추가로 등장한다. 둘째, 주인공이 잃어버린 하루가 밸런타인데이에서 커플 대회가 열리는 날로 변경됐고 하루 삭제가 가능하게 된 이유도 나름 보충됐다. 셋째, 인물들의 서사에 집중하면서도 배경(일본의 교토)을 보여주는 데 힘썼다. 세 가지 차이점은 단순히 이야기의 구성요소가 바뀌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화의 기본 시각과 주제가 달라졌음을 뜻한다. 두 작품은 ‘1초’를 활용하는 방식과 1초에 숨은 ‘기억’을 다루는 관점에서 차이를 보이며, 그로 인해 관객에게 각각 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출처: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스틸컷 (다음)
<마이 미씽 발렌타인>은 시간과 기억에 ‘방황하는 나’를 겹쳤다. 1초 빠른 여자와 1초 느린 남자는 군중 속 외톨이였다. 따라서 홀로 내면의 힘을 기르고 지키는 일이 먼저였다. 그런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 세상에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상하게만 느꼈던 내가 사실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며, 더는 혼자가 아님을 확신하는 이야기가 영화의 주제다. ‘자신을 사랑하라, 아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에서 ‘자신을 사랑하라,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로 바뀌는 자막도 한몫한다. 따라서 원작에서 ‘1초’는 인물들의 단순 ‘기질’로 표현된다. 여자 주인공은 말과 행동, 생각까지 타인보다 급한 성격을 가진, 그리하여 남보다 시간을 더 쪼개 쓰는 사람이지 <1초 앞, 1초 뒤>의 하지메처럼 특별한 초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원인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리메이크작의 차별화된 방식에 있다. <1초 앞, 1초 뒤>는 제삼자의 시점으로 하지메와 레이카의 평범할 수 없는 삶을 소개한다. 관찰자의 목소리는 원작의 코믹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줬던 ‘연민’이란 감정 외에, 하지메와 레이카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환상’을 덧입힌다. 보통 사람들과 함께 사는 ‘외톨이들의 웃픈 사랑’ 이야기가, 같은 시공간에 속해 있으나 ‘특별한 능력이 있는 자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바뀐 것이다. 시간이 멈춰 하루를 잃는 판타지적 요소도 <마이 미씽 발렌타인>에선 이야기 중반에 갑자기 튀어나오지만, <1초 앞, 1초 뒤>에선 처음부터 하지메와 레이카를 통해 풍기며 등장한다.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도마뱀 인간(정령?)이 <1초 앞, 1초 뒤>에선 생략된 이유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원작이 끝까지 집중한 한 겹은 ‘남들보다 유별난 나(자아)’이고, 리메이크작의 한 겹은 ‘태생적으로 조금 특별한 삶을 사는 우리(관계)’다. 일상 속의 나와 판타지 속의 우리. 사건 해결의 결정적 추도 ‘나’와 ‘우리’로 각자 진행된다. 원작의 인물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개인의 몫으로, 리메이크작의 인물들은 모두의 영역에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한다. 결말의 형태는 같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인물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함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러나, 결말이 주는 의미는 다르다. 원작의 끝엔 유별나도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나와 네가 있고, 리메이크작의 끝엔 오랜 그리움과 기다림을 버텨온, 서로에게만 각별한 연인이 있으니까.
두 작품 모두 재미있다. 원작과 리메이크작이지만, 다른 작품으로 봐도 좋다는 얘기다. 똑같은 로맨스 판타지 장르지만 각자 발산하는 매력이 다르다.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맛이 서툰 삶과 풋풋한 첫사랑에 있다면, <1초 앞, 1초 뒤>의 맛은 순수함과 첫사랑을 향한 불가항력(초능력)에 있달까. 이는 대만 영화와 일본 영화가 가진 각각의 특색과도 연결돼, 보는 맛이 더 다채로울 것이다.
시간, 기억, 그리고 무엇들. 우린 매일 어떤 것이 어떻게 겹친 줄도 모르고 삶을 굴리고, 동시에 굴려지며 그렇게 물 흐르듯 산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하루를 더 보상받거나 하루를 잃고도 이를 전혀 모르고 사는, 그런 발칙한 정체 구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낙이라면, 분명 흐르는 데 좋은 연료로 쓰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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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착병 환자들의 이선생 찾기는 계속된다
?Rabbitgumi 입니다!
지난 주 영화 독전2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습니다.
1편의 하이라이트와 결말부 사이의 일을 다루고 있어요.
감독이 바뀌었지만 등장인물은 그대로 입니다.
형사 원호와 락 그리고 브라이언이 극을 이끌죠.
큰칼이라는 강력한 캐릭터도 있죠.
그런데 영화가 많이 느슨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업데이트하고 있는 영화 에세이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일반적인 영화 리뷰 보다는 보면서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여 전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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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어 ; 바다를 부른 여인 - 욕망과 갈등에 휩쓸리는 네 남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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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은 연극의 영화화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전에도 많은 공연들의 영상화하는 작업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공연 풀샷 혹은 일부의 클로즈업으로 촬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작품은 연극의 영화화라는 이름에 걸맞는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각 장을 원테이크로 찍으면서 연극적 요소를 살린 촬영을 했고 헨드헬드 기법으로 인물들을 따라가며 촬영을 하여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연극 무대와 같은 무대미술을 활용하면서도 배우들의 연기
는 영화의 톤에 맞게 진행되었습니다. 말그대로 ‘연극’의 ‘영화화’라는 작품의 목적에 충실했습니다. 이렇게 영화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은 연극계는 물론 영화계에서 시도된 적이 없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된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
을 주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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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루엘라> 스페셜 예고편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의 광기 어린 악녀이자 디즈니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빌런 ‘크루엘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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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너에게 가는 길> 30초 예고편
34년차 소방 공무원 '나비'와 27년차 항공 승무원 '비비안',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내 아이의 커밍아웃 이후 오늘도 한 걸음 다가가는 중인 현재진행형 그녀들의 뜨거운 이야기.